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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팬이라면 아마도 이들의 소위 전성기가 훨씬 지나 1987년에 나온 앨범 '가우디 Gaudi'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이 음반의 첫 곡 제목은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 다.

 

 

 

이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노래를 듣고 나서 당연히 '대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뭐야?'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당연히 찾아 봐야겠는데, 1980년대 후반의 한국은 인터넷은 커녕 PC통신도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백과사전에서 찾아낸 몇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세월이 흐르며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혹은 성 가족 성당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 쌓일 수록, 죽기 전에 반드시 가 봐야 할 곳이라는 다짐은 점점 굳어 갔다. 이 노래에서 보컬을 맡은 존 마일즈의 격정적인 목소리와 함께.

 

La Sagrada Familia we thank the lord the danger's over
La Sagrada Familia behold the mighty hand
La Sagrada Familia the night is gone the waiting's over
La Sagrada Familia there's peace throughout the land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신에게 감사드리자. 위험은 끝났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신의 손길을 바라보라.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밤은 지나갔고, 기다림은 끝났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들었네.

 

그리고, 긴 기다림이 끝났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이런 모습으로 방문객을 처음 맞는다. 저 입구가 있는 벽체를 파사드 Pasad라고 부른다. 네 개의 옥수수 모양 탑이 있는 동편 파사드는 예수의 탄생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부조들은 모두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복음서의 기록들을 조각으로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1882년 지어지기 시작한 이 성당에서 1926년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 완성된 면은 단 한쪽 벽면. 바로 이 동쪽 면이다.

 

가우디의 구상에 따르면 동쪽 면은 예수의 탄생을, 남쪽 면은 예수의 영광을, 그리고 서쪽 면은 예수의 희생을 상징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었다. 이 동쪽 면을 가득 채운 조각들은 지금 봐도 당연히 찬탄을 자아낸다.

 

 

 

그 정중앙을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세월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 극사실주의적으로 표현된 인물 조각들을 보고 있으면, 전 유럽의 거장들이 천년 동안 만들어 온 모든 성당을 뛰어 넘고야 말겠다는 가우디의 야망이 피부로 느껴진다. 

 

 

 

성당의 이름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즉 '성가족'이니 요셉의 비중이 작지 않다. 수태고지의 관을 쓰는 마리아를 옆에서 늙은 요셉이 바라보는 모습을 정면 중앙에 배치했다.

 

조각이나 그림 속의 요셉은 왜 이런 늙은이로 묘사되어 있을까. 그건 마리아가 결혼 뒤에도 처녀였다는 내용과 관련 있다. 요셉이 젊고 혈기방장한 남자일 경우 과연 그게 납득이 가겠느냐는 깊은 생각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위로는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예수를 상징하는 JHS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JHS, 혹은 IHS가 예수를 상징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찾아 보니 그게 무엇의 약자인지는 사실 의론이 분분하다고 한다. 라틴어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 Iesus Hominum Salvator ' 의 약자라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그냥 IHS 자체가 '예수'의 다른 표기법이란 의견도 꽤 설득력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아직도 한참 공사가 진행중. 공사 얘기가 자꾸 나오는데, 가우디 사후 100주년을 맞는 오는 2026년을 넘기지 않고 완공시킨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사실 공사 기간은 엄청난 음모설의 대상이었다. 성가족성당의 공사가 초대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1926년 이후의 진척도를 생각하면 뭔가 이상한게 사실이다. 150층짜리 빌딩도 몇년이면 다 짓는 요즘 세상에 왜 70년 80년이 소요되고 있는가?

 

공식 답변은 '소요되는 엄청난 공사비를 기부금으로 충당했는데 모금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들어도 궁색하다. 오히려 스페인 정부가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갖고 있는 관광자원으로서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의로 완공을 미루면서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었다는 음모설이 훨씬 설득력있다.

 

그러던 것이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내가 죽기 전에 이 성당에서 미사를 한번 집전해 보는게 소원"이라고 얘기하면서 전 세계 가톨릭권의 압력이 스페인으로 밀려왔고, 결국 '등 떠밀린' 스페인이 공사에 속도를 붙여 2010년에는 지붕이 완성되고 미사가 진행되는 데까지 일이 진행됐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한번 맘먹고 지으면 금세 지을 걸 왜 그렇게 시간을 끌었느냐는 의혹만 더욱 짙어지고 있다.

 

 

 

아무튼 예수 탄생 기록을 위해 가우디는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켰는데,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거의 모든 조각품이 실제 모델의 본을 떠 석고 모형을 만든 뒤 이뤄졌다는 것. 심지어 왼쪽의 '이집트로 피난가는 성가족'에서 마리아가 탄 당나귀를 표현하기 위해 진짜 당나귀의 본을 떴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오른쪽, 헤롯의 명령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을 참살하는 병사의 모습에도 얘깃거리가 있다.

 

일단 모든 모델을 석고본을 떴으면 아기는....?

 

병원에 연락해서 죽은 아기를 가져다 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아기를 들고 있는 병사, 완성해 놓고 보니 발가락이 여섯개였다는 것이다.

 

 

 

 

 

죽은 아기가 모델이라니 왠지 좀 섬뜩하게 느껴지긴 한다. 아무튼 대단하다.

 

 

 

예수의 영광을 그려낼 남쪽 파사드는 현재 열심히 공사중이다.

 

 

 

모퉁이를 돌면 서편, 그러니까 지금의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쪽 파사드가 보인다.

 

이른바 '수난의 파사드'인데, 조각가가 주젭 마리아 수비락스 Josep Maria Subirachs 로 바뀌면서 조각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적이고 화려한 동편의 조각과는 달리 20세기 스타일의 추상적인 형상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네 개의 옥수수탑 중앙부, 녹색 공사용 그물이 쳐져 있는 곳에 약간 노리끼리한 사람의 형상 같은 것이 보인다.

 

그 장면을 확대하면 이렇다.

 

 

 

예수상이다. 문제는 높이 있으면 작아 보이는게 인지상정인데, 수비락스의 의도는 이 예수상이 아래쪽에 있는 예수상과 같은 크기로 보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위에 있는 조상일수록 커져야 하는 법. 이 예수상만 3톤의 크기라고 한다. 그럼 저 거죽을 바른 도금엔 금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아무튼 서쪽의 추상적인 스타일은 동쪽의 고전적인 스타일과 완전히 대비를 이루며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도 아예 공사 현장의 X빔을 그대로 노출시켜 사용했고,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수건으로 피와 땀에 젖은 예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베로니카 성녀를 가운데 배치하는 파격적인 연출도 눈길을 끈다.

 

또 옆에 서 있는 로마 병사들은 카사 밀라 옥상에 있는 가면 쓴 병사들의 형상들을 그대로 가져와 가우디와의 접점을 마련했다(심지어 왼쪽 끝에 서 있는 사람은 누가 봐도 가우디).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이 형상들은 영화 스타 워즈에 나오는 제국 군대 스톰 트루퍼의 원형이라고도 한다. 

 

 

 

 

사실 이 모습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실은 피터 잭슨만 알고 있겠지.

 

 

심지어 맨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만년의 가우디.

 

 

 

이건 관찰력이 필요한 부분. 왼쪽의 사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모두 33. 이 조각은 예수에게 키스해 병사들의 습격을 받게 하는 유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누가 예수고 누가 유다인지 혼동할까봐 유다의 발밑엔 뱀을, 예수의 등 쪽에는 합계 33(예수가 죽을 때의 나이)의 사방진을 배치했다. 왜 사방진인지는... 글쎄.

 

 

 

이렇게 해서 알파와 오메가의 형상이 동시에 그려져 있는 기룩한 성전 기둥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외관을 보면서 박수를 쳤다면, 내부를 보고는 감히 박수를 치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 대단해서. 지금까지 세계를 돌며 좋은 것도 꽤 많이 봤지만, '이런 건' 정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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