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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은 다 아시다시피 천재적인 관상가 내경(송강호)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사람들은 점이나 조짐, 팔자 등에 기대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면 몰라도 계유정난 당시, 각 진영엔 결정적인 판단을 할 때 의견을 묻던 점술가가 있었을 겁니다. 이 영화는 그런 상상에서 출발한 것이죠.

 

그럼 조선시대의 기록에 그와 비견할만한 역술가가 있었을까요. 조선 초기, '조선 왕조 500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역술가'로 불린 인물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록이 너무 기이하다 보니 실존 인물인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고 문헌마다 살았다는 연도가 제각각이라 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한 면이 있습니다. 반면, 그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을 듯.

 

그의 이름은 홍계관입니다.

 

 

 

 

홍계관(洪繼灌, ?~?)

 

영화 관상은 관상의 대가 김내경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실제 사건인 계유정난을 재해석한 영화다. 영화 속 내경(송강호)는 누구든 얼굴만 보면 내력과 속내, 그리고 장래의 운명까지 꿰뚫는 천재 관상가다. 누구든 이렇게 관상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치세보다는 난세에 훨씬 더 출세하기 쉽겠지만, 불행히도 영화 속 내경의 행보는 그리 평탄치 않다.

 

실제로도 내경 같은 인물이 있었을까.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는 도성 안에 통명청(通明廳)을 두고 빼어난 점쟁이를 국복(國卜)으로 삼아 큰 일을 점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여러 사서에 조선을 통틀어 최고의 점쟁이로 홍계관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어찌나 유명했던지 한양 도성 안에 홍계관골이라는 마을이 생길 정도였다.

 

관상의 내경이 관상가였던 반면 홍계관은 맹인이었다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백발백중이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어쩌지 못했다는 점에선 매우 유사하다 하겠다.

 

여러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 홍계관의 일화에는 계유정난을 전후로 한 세종~세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과 명종 시대의 것이 뒤섞여 있다. 두 시대의 간격이 약 100년 정도이니 동일인일 가능성은 없고,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인물이 남긴 행적이 합쳐졌을 것이다.

 

세조 시대의 홍계관은 계유정난의 주역 중 하나인 홍윤성의 장래를 알아 본 것으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 장안의 유명한 건달이었던 홍윤성이 점을 보러 오자 홍계관은 갑자기 자세를 고쳐 큰 절을 올렸다. 놀란 홍윤성이 연유를 묻자 공은 뒷날 정승의 자리에 오를텐데, 뒷날 제 아들이 누명을 쓰고 죽을 위기에 놓일 테니 그때 목숨을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과연 홍윤성이 홍계관의 지시에 따라 세조와 인연을 맺고 승승장구,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는데 한 죄수가 윤성을 보고 저는 점쟁이 홍계관의 아들이니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홍윤성이 그의 목숨을 구해 주고 홍계관의 재주에 탄복했다는 이야기다.

 

 

 

 

부계기문(涪溪記聞)’엔 이렇게 전해지지만. 극작가 윤백남의 채록에 따르면 홍계관의 아들은 배은망덕한 홍윤성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는다. 권세를 남용하며 백성을 학대했다는 홍윤성에 대한 민간의 반감이 표현된 설화다.

(윤백남의 채록에 따르면 홍윤성은 홍계관의 아들임을 알고도 뇌물을 요구하고, 홍계관의 아들에게 뇌물로 줄 돈이 없자 그를 처형당하게 내버려 둡니다. 그러자 홍계관의 아들은 끌려나가며 "우리 아버지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는 평생 후손이 없을 것이라 합디다"라고 울부짖었다는 것이죠. 윤백남에 따르면 홍윤성이 그 뒤로 절손을 당했다고 하나, 실제로 홍윤성에게 자손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듯 합니다.)

 

명종 시대의 홍계관은 젊은 날의 승려 보우(普雨)와 재상 상진(尙震)을 만나 앞날을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어느날 자신의 운명이 궁금해진 홍계관은 모년 모월모일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용상 밑에 엎드려야 한다는 점괘를 얻는다. 명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홍계관은 왕에게 사정해 한시간 동안 용상 아래 숨을 수 있게 되었다.

 

용상 아래 홍계관이 죽은 듯 엎드려 있을 때 갑자기 전각 안으로 쥐 한 마리가 후다닥 달려들어왔다. 갑자기 홍계관을 시험하고 싶어진 왕은 지금 들어온 쥐가 모두 몇 마리냐고 물었다. 그러자 홍계관은 점을 짚어 본 뒤 세 마리라고 답했다.

 

재차 확인해도 홍계관이 세 마리라고 말하자 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네가 그 동안 사기로 점을 쳐서 민간의 재물을 함부로 취했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당장 처형할 것을 명했다. 홍계관이 형장으로 끌려가 죽음을 기다리는데 혹시나 싶었던 왕이 쥐의 배를 갈랐다. 그 안에는 새끼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제야 홍계관의 재주에 탄복한 왕은 급히 내시를 보내 형을 멈추려 했으나 이미 홍계관은 목이 잘린 뒤였다. 왕이 아차하고 탄식했다는 데서 이 곳의 지명이 아차산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아차산은 지금의 노량진 사육신묘 부근이란 설과 서울 광진구 아차산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고구려 때 추남(楸南)의 이야기와 사실상 같다. 역시 억울하게 죽게 된 점쟁이 추남이 고구려 왕에게 내가 신라 김서현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 이 원한을 갚겠다고 한 뒤 김유신으로 태어났다는 설화다.

 

배경이야 어쨌든 이야기의 교훈은 유명한 점쟁이라 해도 제 죽을 날을 내다 보지 못한다는 것. 영화 속 내경의 경우에도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을 보면, 운명을 예측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부질없는 짓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끝)

 

 

 

이렇습니다. 추남의 이야기란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유신의 젊은 시절 일화 중 하나입니다.

 

김유신이 국선(國仙)인 화랑(花郞)이 되었을 때, 백석(白石)이란 사람이 낭도(郎徒)로 있었다. 김유신이 삼국통일 계획을 세우는데, 백석이 고구려의 정세를 탐지한 뒤에 계획을 수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말을 옳게 여긴 김유신은 백석과 함께 고구려의 사정을 탐지하기 위해 길을 떠나 하루는 밤에 산 고개에서 쉬는데, 두 여자가 나타나 따라가겠다고 했다. 같이 일행이 되어 가는데, 골화천(骨火川)에 이르니 밤에 다시 한 여자가 나타나, 세 여자는 김유신에게 과일을 대접하며 즐겁게 얘기하고 놀았다.

 

김유신이 세 여인들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니, 여인들은 신(神)의 모습으로 변하여 자신들은 나라를 지키는 내림(奈林) 혈례(穴禮) 골화 등 세 지역 수호신인데, 김 공이 적국 사람에게 유인되어 가는 것을 막으려고 온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놀란 김유신은 나와서 골화관에서 자고, 중요한 문서를 잊고 왔으니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와서 백석을 묶은 다음 문초를 했다. 백석은 원래 고구려 사람으로, 김유신이 전생에 원한을 품고 죽은 고구려의 추남이기 때문에 그를 잡으러 왔다고 했다.

 

추남은 고구려의 유명한 점쟁이였는데, 국경지역에 냇물이 거꾸로 흐르는 변고가 생겨 점을 치게 했더니 추남은 왕비가 왕과의 잠자리에서 음양을 거꾸로 하기 때문에 일어난 변고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왕비는 요망한 거짓말을 하니, 다른 것으로 시험해 보고 맞히지 못하면 벌을 가해야 한다고 임금에게 말했다. 임금이 상자 속에 쥐 한 마리를 넣고 봉한 다음, 무엇이 들었는지 맞혀 보라 했는데, 추남은 쥐 여덟 마리가 들었다고 대답했는데, 왕은 쥐 한 마리가 들었기 때문에 잘못 대답했다고 해 추남을 죽였다. 그런데 상자 속의 쥐를 꺼내 배를 갈라보니 새끼 일곱 마리를 배고 있었다.

 

추남은, 자신이 억울하게 죽으니 다른 나라 장군으로 태어나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고 말하고 죽었는데, 이날 밤 임금의 꿈에 추남이 신라 서현공 부인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꿈 얘기를 들은 고구려 사람들은 모두 추남이 원수 갚기 위해 신라 김유신으로 태어났다고 믿고 있어, 김유신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김유신은 이야기를 듣고 백석을 사형에 처한 후, 음식을 마련해 지역 수호신에게 제사를 모시니, 신들이 나타나 흠향했다.

 

 

그러니까 홍계관의 사망 관련 설화는 아무래도 삼국시대 추남의 이야기, 혹은 그 이전부터 전해오던 용한 점쟁이의 이야기가 슬쩍 변형되어 '홍계관'이란 유명한 점쟁이의 이름에 덧씌워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선시대의 문헌이 '홍계관골이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는 걸 보면 홍계관이라는 용한 점쟁이가 있었다는 건 사실인 듯.

 

 

 

아무튼 홍계관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점쟁이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점쟁이의 초인적인 능력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운명의 힘이란 점 따위로 비껴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짚어 내고 있습니다. 결국 영화 '관상'의 결론도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홍계관과 재상 상진(尙震)의 일화는 그 예외는 바로 '선행'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점쟁이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는 뜻은 그런 교훈담이었다는 이야기.

 

상진 관련 설화를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출전은 '연려실기술'.

 

점쟁이 홍계관(洪繼灌)이 공의 일생을 점쳐 보니 길흉화복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고, 죽을 해까지도 말하였다. 공이 지난 일이 다 맞았으므로 그해에 이르러 미리 초상에 쓸 것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홍계관이 마침 일이 있어 호남에 가 있으면서, 서울에서 오는 이를 만나면 꼭 공의 안부를 물었는데 1년이 다 지나도 공은 탈이 없으니, 홍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서 서울에 오는 길로 곧 공을 찾아 인사하니, 공이, “내가 자네의 점을 믿고 명이 금년으로 다 된 줄 알았더니, 어찌 맞지 아니하는가.” 하였다.

 

홍이 말하기를, “대감의 명수를 보면 어긋남이 없을 것이오나, 예전 사람이 음덕으로 수명을 연장한 이가 있었으니, 대감께서 반드시 그런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는가. 다만 내가 수찬으로 있을 때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노상에 붉은 보자기가 있어서 주워 보니, 순금 잔 한 쌍이라 가만히 간직해 두고 대궐 앞에 방을 붙이기를, ‘아무날 물건을 잃은 자는 나를 찾아오라.’ 하였더니, 이튿날 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소인은 대전 수랏간 별감(大殿水刺間別監)이온데 자질의 혼인이 있어 몰래 주방에 있는 금잔을 빌려 내왔다가 잃었으므로 이미 죽을 죄를 범하였으니, 후일 탄로가 나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대감께서 얻으신 것이 그 물건이 아닌지요.’ 하기에, ‘그렇다.’ 하면서 내어주었다.” 하니, 홍이 말하기를, “대감의 수명이 연장된 것이 반드시 이 때문입니다.” 하였는데, 15년 후에 죽었다.

 

결론: 착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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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사회를 거치면서 예견됐던 일이기도 합니다.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으로 시작하는 초 호화 캐스팅과 계유정난이라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 그리고 과연 '관상이란 과연 운명을 지배하는 것인가'라는 흡인력 있는 주제가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결과입니다.

 

좋은 배우들의 열연은 '관상'의 가창 큰 힘입니다. 영화 초반은 송강호와 조정석의 착착 감기는 유머에 김혜수의 존재감이 영화를 풀어 갑니다. 후반은 잔혹무도한 수양대군(이 영화에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역을 맡은 이정재의 오만방자함이 힘을 발휘하죠. 이 배우들 보는 맛 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네. '관상'이란 영화는 대체 '관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가 매우 궁금해집니다.

 

 

 

 

 

줄거리.

 

보는 즉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는 관상의 대가 내경(송강호)은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과 함께 어느 바닷가 시골에 묻혀 살다 도성의 유명한 기생 행수 연홍(김혜수)의 방문을 받습니다. 관상의 사업적 가치를 알고 있던 연홍이 내경의 소문을 듣고 한양으로 불러 올리려 한 것입니다.

 

비록 관상쟁이가 됐지만 내경과 진형은 모두 역모죄로 처단된 양반의 자손. 아버지가 관상 보는 것을 싫어하는 진형은 어쨌든 선비답게 글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고, 역적의 자손이 출세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아는 내경은 이런 진형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곡절 끝에 내경과 팽헌은 도성으로 향하고 진형은 절로 들어가 공부를 계속합니다.

 

도성에서 내경과 팽헌이 마주한 것은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등극한 직후의 천하.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이정재)과, 이에 맞서 문종-단종 부자를 보호하려는 김종서(백윤식)의 편으로 세상이 나뉘고 있는 사이 내경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집안을 다시 일으켜 보려 합니다. (여기까지)

 

 

'관상'의 초반은 매우 활기차게 시작합니다. 15세기판 납뜩이 팽헌으로 변신한 조정석은 끊임없이 촉새 짓을 하고, 가끔씩 이를 눌러 주면서 오히려 웃음을 증폭시키는 송강호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관객들을 쉽게 빨아들입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특히 내경이 김종서를 만난 뒤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그 다음부터는 미리 놓인 철길을 따라 흘러가는 느낌을 줍니다. 역사의 갈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은 모든 관객이 알고 있지만, 영화 후반만 놓고 보면 내경은 존재감이 너무 미약해져 버립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내경이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관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얘기하면 줄거리를 건드리기 때문에 이 정도만. 궁금하신 분들은 저 아래쪽을 읽어 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살려내는 것은 단연 배우들의 힘입니다. 이름만 대도 대한민국이 다 아는 명배우들은 장면 장면마다 매력적인 커트를 내놓더군요. 특히 후반부, 한명회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신은 배우 김의성의 소름끼치는 표정과 함께 관객의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문득 왕년 조니 뎁 주연 영화 '프롬 헬'에서 이안 홈의 눈동자 색이 바뀌던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그밖에도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들은 충분합니다. 치밀한 고증보다는 상상력의 소산이겠지만 조선시대 기방의 화려하고 방자한 모습이나, 황토빛이 도는 유려한 영상, 수양대군과 수하들의 공격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 야외 신 등에서의 미술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합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 정도면 추석 연휴를 앞둔 관객들에게 훌륭한 볼거리가 될 듯 합니다. 특히나 조정석, 이종석 팬들에겐 좋은 선물이 될 듯 합니다.

 

P.S. 개인적으로 영화 첫 부분에서 '아마데우스'가 떠올랐습니다.^^

 

P.S.2. 충분히 의도된 것이겠지만 이 영화 속 송강호의 얼굴은 참 윤두서 자화상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자, 기본적으로 여기까지.

 

더 아래로 내려가시는 분들은 줄거리에 노출되실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멈춰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2부 시작.

 

 

 

 

 

 

영화 '관상'은 누구나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전제는 '관상이라는 것이 있고, 그를 통해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관상'은 흘러가던 도중 갑자기 변화구를 시도합니다. 김종서를 만나고 죽음의 위협을 경험하기 전까지 내경은 백발백중의 귀신같은 실력을 발휘합니다. 처음 만난 연홍의 속내를 한눈에 꿰뚫고, 관상만 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고, 탐관오리를 적발해 내는 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도, 한명회의 경우엔 죽은 다음의 일까지 예측해 냅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능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뚝 떨어져 버립니다. 이를테면 김종서가 호랑이의 길상을 가진 인물이란 것을 알아내지만, 그가 비명횡사하고 멸문을 당할 팔자라는 것은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수양대군이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성품이라는 것은 읽어 내지만 그가 왕위에 오를 팔자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정말 관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면 내경은 문종이 곧 죽을 것이라는 점, 단종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점, 또 김종서의 측근들은 모두 일찍 죽고 집안이 몰락할 것이라는 점, 반면 수양대군의 측근들은 모두 부귀영화를 누릴 상이라는 점 등을 맞춰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영화 속에서 죽은 여자의 경우처럼 '무병장수할 관상이라도 상대를 잘못 만나면 비명횡사 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지만, 그럼 양쪽 진영의 사람들이 함께 있어 길한 관상인지 흉한 관상인지 정도는 짚어 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내경은 "나는 파도만 바라보고 있었지, 바람을 보지 못했다.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라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구나 파도를 보고 바람을 읽습니다. 파도가 동쪽에서 치면 동풍이 불고 있다는 뜻이죠. 수양대군의 측근 신숙주가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이고, 김종서의 측근 황보인이 비명횡사할 팔자라면(물론 영화 속 내경은 이 자체를 읽어내지 못하지만) 어느 쪽이 승자가 될 운명인지는 너무 당연하게 읽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죠.

 

내경이 생명의 위협을 겪은 뒤에도 계속 관상쟁이 노릇을 하는 것은 첫째, 김종서의 부름이 있은 뒤 역적의 후손으로 망해버린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둘째는 이름을 바꾸고 벼슬길에 들어선 아들 진형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입니다. 비록 내경이 문종과 단종에게 충신 역할을 하지만 이건 당대의 세도가인 김종서 곁에서 보호를 받기 위한 것일 뿐, 그가 자진해서 문종이나 단종의 안위를 걱정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설정상 선량한 사람이긴 하지만 '자신과 아들 진형의 앞날을 위해' 편을 선택한 것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까지 '김종서가 죽으면 우리 다 죽는다'며 수양대군의 김종서 살해 현장에서도 끝까지 김종서를 보호하려 합니다. 만약 그가 '누가 역사의 승자가 될 지'를 관상을 통해 읽어냈더라면 당연히 수양대군 쪽으로 편을 바꿨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경이 무능한 관상쟁이로 바뀌면서 영화는 점점 무거워지고 갈 길이 뻔해집니다. 내경이 더 이상 사람들의 얼굴에서 아무 것도 읽어내지 못하게 된 이상, 앞으로 보여질 내용들은 내경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한 저주가 실현되는 과정 뿐입니다. (영화 초반, 내경은 진형에게 "벼슬길에 나가면 화를 당할 관상"이라고 했고, 처남 팽헌에게는 "성질을 못 이기면 신세 망칠 관상"라고 했죠.)

 

이런 주장에 대해 혹시 어떤 분들은 애당초 처음부터, 영화 '관상'이 생각한 관상의 힘은 한 사람의 '능력치와 성격'을 읽어 내는 것이지 '운명이나 미래'를 읽어 내는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만한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관상의 힘'을 제한된 것으로 설정해 놓고 들어갔다고 하면 내경의 능력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야기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을 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 정도의 능력이라면 애당초 내경에게 역사를 바꿀 어떤 기회를 기대하는 것 조차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물 됨됨이를 파악하는 정도의 능력이라면 아무리 김종서가 신임한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된 일들일 뿐입니다. 아울러 문종 앞에 선 내경이 "그 인물과 행동거지를 함께 보면 과거의 일 뿐만 아니라 미래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한 이야기가 매우 공허해지는 것이죠.

 

내경에게 진정 미래를 꿰뚫는 능력을 인정하되, '그럼에도 바꿀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보여주는 극적 장치를 좀 더 정교하게 보여주었더라면, 혹은 운명의 힘을 직감하면서도 그를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할만한 동기를 내경에게 부여했더라면, '관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P.S.3. 이 영화에서 가장 와 닿는 말은 수양대군의 대사  "하지만 나는 이미 왕인데, 이제 와서 내가 왕이 될 관상이라고 하면 그걸 맞춘다고 할 수 있나?" 입니다.  이 세상의 가짜 예언자들과 아부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할까요. 결과적으로 "관상이란게 무슨 쓸모가 있어?"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수양대군은 왜 내경에게 계속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고 물어 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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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시민공원의 흔히 볼 수 있는 박스형 매점에 사는 한 가족이 있습니다. 아버지(변희봉)의 속을 무던히도 썩히는 덜떨어진 장남 강두(송강호)는 딸 현서(고아성)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여동생 남주(배두나)의 양궁 경기로 채널을 돌립니다. 그러나 이날 괴물이 한강 밖으로 몸을 드러내고, 강두는 두 눈 앞에서 딸이 괴물에게 납치되는 광경을 봅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물을 먹었지만 운동권 출신으로 날건달처럼 지내고 있는 둘째 아들 남일(박해일)은 현서의 영정이 놓인 합동 영결식장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한마디가 관객들의 웃음보를 풀어놓습니다.

"현서야~~ 너때문에 다 모였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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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기자시사회가 치러진 이후 전국은 <괴물>을 칭송하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온갖 언론과 평론들이 입을 모아 <괴물>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나섰습니다. 저는 일반인 대상의 시사를 통해서나 영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기대가 컸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발걸음은 왠지 그리 가볍지 않았습니다. 일단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110억원. 큰 돈이지만 사실 1000만 달러를 조금 웃도는 정도의 돈입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1/10 가격으로 저 정도의 CG 괴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 괴물은 몸에 불이 붙었을 때 외에는 거의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더 이상 기대하면 곤란할 정도로 훌륭합니다. 네 명의 가족들은 각기 톱니바퀴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수행해냅니다. 아무래도 가장 인상적인 역할은 아버지 역의 변희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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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철없이 밖으로만 나돈' 아버지 변희봉은 강변 노점 벽에 걸린 멧돼지 얼굴이 보여주듯 상당히 거친 과거를 가친 인물입니다. 비록 지금은 한강시민공원에서 컵라면을 파는 노인에 불과하지만, 사제총(혹은 엽총)을 들고 괴물과 맞서는 일순간, 그의 젊은 날을 짐작할 수 있는 표정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거야말로 노련미  넘치는 노장의 진가가 드러나는 장면이었죠.

이밖에도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에게 굳이 연기를 잘했네 어쩌구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이승엽의 방망이질이 날카롭네 힘차네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생략해도 좋을 듯 합니다. 특히나 무슨 일이 있어도 뛰지 못하는 배두나의 거북이 캐릭터는 너무 실감이 넘쳐서 분통이 터질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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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도 빛을 발합니다. 송강호의 답답한 캐릭터는 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어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이미 유명해진 'NO VIRUS' 신을 비롯해 관객들의 폭소선은 여러번 터집니다. 이 대목에서 박노식과 김뢰하가 별 특징 없는 장면에 투입된게 좀 아쉽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밥먹자"는 <살인의 추억>의 "밥은 먹고 사냐?"를 연상시키는 대사이긴 합니다만 두 '밥'의 의미는 완전히 갈립니다. 후자의 '밥'은 '너 따위도 모진 목숨을 이어갈 자격이 있느냐'는, '생존의 자격'을 내포한 단어라면 전자의 '밥'은 그저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라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생존의 욕구'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아무튼 밥을 먹는 라스트신은 너무도 인상적인 마무리입니다.

(중간에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장면에 현서가 나타나 밥을 함께 먹죠. 이건 '제사밥'이라는 한국 고유의 전통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라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괴물>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런데도 불만이 있다면 기대가 지나친 탓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대체 괴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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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영화는 그저 그대로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만 보(아도 사실 별 상관은 없겠지만)면 어쩐지 엉성한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일단 아무리 괴물이 무서운 존재라 해도, 어느 정부가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이야기에만 정신이 팔려 괴물의 수색 자체를 포기하겠습니까. 게다가 미국의 생화학부대까지 파견돼 한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려 하는 것은 이 영화를 좀 지나치게 정치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악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거대한 한편의 우화입니다. 우화라면 무엇에 대한 우화일까요. 봉준호감독은 일찌감치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다'라는 말을 통해 이 영화에 제기될 반미 시비를 차단하려 합니다. 봉감독을 옹호하는 평론가들 역시 '그저 반미라기보다는 반미를 넘어선 권력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며 박자를 맞춥니다. 하지만 그 '권력'의 주체가 결국 미국이라는 점은 이 영화가 위치하고 있는 노선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물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감독들이 위압적인 권력이나 부패한 사회를 괴물이나 유령으로 형상화하는 작품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에 나오는 좀비들이나 <천녀유혼>에 나오는 귀신들은 모두 부조리의 화신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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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골뱅이를 닮은 괴물은 무엇일까요. 어떤 존재를 1:1로 상징한다기보다는 부패한 권력 자체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 부분에서 봉감독은 해석의 여지를 충분히 열어 둡니다. 어떤 이의 말대로 괴물은 '미국의 독(포르말린)에 의해 만들어진 독재 권력'을 상징하는지도, 또는 그 괴물과 접촉한 사람을 무조건 격리시키게 하는 북한 정권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아예 '분단이라는 모순' 자체를 상징할 수도 있죠.

쇠파이프(송강호)와 화염병(박해일)으로 무장한 '민중'들이 맞서야 하는 존재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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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쏟아지는 상징과 암호들은 이 영화를 그저 웃고 즐길 수만은 없는 작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반미 코드요? 물론 그저 '반미'라고만 요약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영화는 미국이 누리고 있는 전 지구적인 권력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를 쉴새없이 전달합니다.

'바이러스를 처리하러 왔는데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코멘트는 누가 뭐래도 이라크전을 상징하는 것이죠. 아무튼 이런 수없이 많은 '기호들' 이 때문에 이 영화의 오락적인 효용은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현악 4중주를 들으러 갔는데 풀 오케스트라는 물론, 전자기타와 가야금, 투베이스 드럼까지 등장한데다 어디선가 천둥소리, 대포소리, 폭포수 소리, 귀신 우는 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한다면 청중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정작 들으러 왔던 현악 4중주는 '자, 이건 기본이니까 안 들어도 알지?'라는 듯한 지나친 생략 때문에 사뭇 위축돼 있다면 막상 듣는 사람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청중들에게 '그저 현악 4중주만 들으려 했는데 천상의 소리가 다 나더라. 기대한 것 이상으로 듣고 나니 정말 행복하다'는 '신선'들의 고담준론은 왠지 허탈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p.s 고백할게 있다면, 저는 주인공이 바보스러운 영화를 대단히 싫어합니다. 특히 뭐 하나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이 답답한 가족 이야기가 제게는 참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이 영화가 편하지 않았던 것은 구구절절 풀어놓은 이야기와는 달리 그저 제 개인적인 취향 탓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공과는 직접 보시고 평가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만치 공들여 잘 가꿔진 영화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2006.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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