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힘쎈여자 도봉순] 1회가 성원에 힘입어 JTBC 드라마 사상 첫회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수도권 4.04, 전국 3.8이라는 저희로서는 꿈의 숫자가 나왔습니다. 진정 작가님, 감독님, 스태프, 제작사, 그리고 모든 출연진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난번 예고대로 드림 트리오의 결성 계기로 돌아갑니다. 박보영-박형식-지수를 저희는 무적 트리오라고 부릅니다. 그냥 단지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축이라서가 아니라, 본래 드라마의 구성이 '도봉순의 힘, 안민혁의 돈과 기발함, 인국두의 수사력과 활동력'이 삼각편대를 이뤄 악의 무리들을 물리쳐 간다는 흐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셋이 모여야 '정의의 편'이 완성되는 구조였던 것이죠.

물론 삼총사라고는 하지만 뭣보다 우선, 당연히 타이틀 롤인 도봉순 역에 누구를 기용하느냐가 최대 관건이었습니다.

일단 이 드라마의 어머니인 백미경 작가님과 처음 대본을 놓고 마주했을 때부터, '일단 육체적으로 강건해 보이는 늘씬한 건강미녀 스타일은 배제하자'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JTBC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외형적으로 연약해 보이고, 전혀 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스타일'이 필요하다는 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했습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도봉순은 단지 슈퍼히어로일 뿐만 아니라 한국 88만원 세대, 구직자 젊은이, 그 중에서도 여성 구직자를 대변하는 캐릭터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 귀여움이 필수. 당연히 체격도 크면 안 됨.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나가다 보니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상적인 도봉순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보영이었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도봉순 역으로 박보영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가 당시의 염원이었습니다. 검증된 연기력. 천부적인 귀여움. 아담한 체격.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폭넓은 인기. 어디 하나 부정적인 요소가 없었습니다. 다만 작품 보는 눈이 까다롭고, 워낙 찾는 곳이 많아 모시고 오기가 어렵다는 것 뿐.

그런데 다행히도, 이미 박보영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공동제작사 JS픽처스의 이경식 이사님이 일단 박보영 측과 교감이 있었고, 작품에 대한 호감도 형성시켜놓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곧 '최종 결심'은 아닌 상황이었죠. 아무튼 그 뒤로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캐스팅을 하다 보면 늘 그렇지만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정말 이 배우가 우리 대본을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좋아한다면 대체 얼마만큼이나 좋아하는 걸까.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던 어느날, 박보영과 친분이 두터운 어떤 인물과 우연히 통화를 했습니다.

그: 보영이가 요새 꽂혀 있는 대본이 있다던데요?

나: (헉) 그, 그게 뭔데요?

그: 제목은 모르겠고... 뭐 슈퍼우먼 이야기라던가? 여주인공이 힘이 엄청 세대요. 아무튼 재미있대요.

합창교향곡 4악장이 머리 속에서 울려퍼지는 느낌. 이거 되겠구나.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기쁜 예감은 머잖아 현실이 되었습니다. 작가/감독님과 함께 CD만한 얼굴의 박보영을 처음 만난 날. 차오르는 환희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냥 된거다. 이 다음부터 뭐가 어떻게 되든, 이 박보영/도봉순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수 있을거야. 뭐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죠. (백미경 작가님: 어쩌면 그렇게 예뻐요. 쳐다 보고만 있어도 질리질 않네.)

그날의 만남 이후에도 우리의 보영님을 노리는 수많은 마수(?)들이 뻗어왔지만(정말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제의가 쏟아졌습니다. 농담 아닙니다) 당대의 의리녀 보영님은 사악한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일편단심 도봉순을 기다려 주었고, 결국 우리는 박보영이 연기하는 최상의 도봉순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피데스스파티윰 김상유 대표님. 사랑합니다.)

촬영이 시작된 이후 우리의 보영님은 한번도 저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박보영이 모니터를 가득 채울 때, 이형민 감독님을 비롯해 촬영장의 모든 스태프는 추위도 잊고, 배고픔도 잊고(이건 아니고), 그저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거든요.

네. 글자로만 쓰여져 있던 도봉순의 이상을 200% 실사로 실현시킨 것은 바로 박보영이었습니다.

이미 드라마 본편 방송 전, '한끼줍쇼'를 통해서도 확인된 이 뽀블리의 위력.

박보영의 캐스팅 확정 이후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에 헤벌레 하고 있었지만 사실 두 사람의 남자 주인공이 필요했습니다. 도봉순을 둘러 싼 두 남자, 안민혁과 인국두. 잠시 프로필을 살펴봅니다.

안민혁: 재벌가 5형제의 막내지만 부모 덕 안 보고, 게임 회사를 창업해 어린 나이에 자수성가에 성공한 능력자. 거기에 완벽한 꽃미남이지만 또 그런 만큼 오만불손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관심이 없음. 그리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괴상한 사고방식의 소유자. 대 저택 지하에 AV룸+게임룸+지하 방공호 개념의 던전을 짓고 남자의 꿈을 실현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상식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존재 봉순에게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은 어느새...?

인국두: 완벽한 외모와 신체조건에 경찰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능력자. 성장 과정 내내 주위의 선망을 한몸에 받았던 엘리트. 피아노도 잘 치고 각종 무술에도 능함. 하지만 정의감이 지나쳐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고위층을 수사하는 똘끼를 발휘하는 바람에 좌천돼 집 근처 경찰서 수사팀으로 배치. 봉순의 초중고 동창이며 오랜 시간 봉순이 꿈꿔온 이상형. 다만 여자친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봉순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쌀쌀맞게 딱딱 끊는 철벽남. 알고 보면 츤데레...?

이 두 남자를 데려와야 환상의 트리오가 만들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특히 시장엔 정말 남자 배우 기근이 심각하고... 어떤 배우들은 1,2년 전부터 스케줄이 잡혀 있고... 더구나 영화 쪽에서는 '뭉쳐야 뜬다'는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웬만한 주연급 배우들이 한 영화에 3,4명씩 잡혀 있기도 하고....

(정말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특히 '신과 함께' 같은 영화는 정말 생태계 파괴의 주범입니다. 영화 한편에 이정재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디오를 묶어놓고 있으면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근데 재미있긴 하겠다.)

아무튼 너무 길어져서 남자들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겠습니다.

 

P.S. 힘쎈여자 도봉순은 아직 안 깐 패가 너무 많습니다. 일단 웃음의 핵심병기 임원희 김민교는 아직 등장도 안 했고, 동네를 공포에 몰아넣는 연쇄 납치범 이야기도 이제 시작. 아울러 민혁을 위협하는 협박범의 정체도 아직 기미도 안 보이죠. 게다가 뒤로 가면 오돌뼈라는 신비의 인물(?)도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이제 시작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P.S.2. 아울러 특별출연해주신 JTBC 1등신부감 아나운서 강지영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728x90

[급하게 썼다가 오타가 많아 몇군데 수정했습니다. 낯이 뜨겁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이 곧 방송됩니다. 사실 [힘쎈여자 도봉순]은 태어난지 좀 되는 아기입니다. 벌써 1년 전인 2016년 어느 봄날, '사랑하는 은동아'의 백미경 작가님이 대본을 한번 읽어 보라며 주셨습니다. 한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작가님의 2015년 작품인 '사랑하는 은동아'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일찌기 한국 드라마에 없었던 여성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탄생해 있었더군요.

'여성 슈퍼히어로 드라마'라고 구별해서 썼지만 사실 한국 드라마 가운데 변변한 남성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있었느냐 하면 뭐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몇몇 시도가 있었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방송된 히어로 드라마다'라고 할만한 작품은 없었다고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꼽자면 '홍길동'이나 '전우치' 같은 전통적인 영웅들의 활약을 다룬 작품 정도?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을 슈퍼히어로라고 놓기는 좀 불편합니다. 영화까지 영역을 넓혀 봐도 류승범 주연의 '아라한 장풍대작전' 정도가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강동원 주연의 '초능력자'가 있지만 주제 면에서 일반적인 히어로 무비와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대체 왜 한국에는 그런 드라마가 없었을까...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물론 반성이 앞섰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드라마 소재란 이런 것'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이죠. 확실히 우리 드라마의 소재는 좀 더 다양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날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막장 드라마 계열도 새로운 시도에 인색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무슨 생각을 하다가,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전혀 예기치 못한 작품이 하나 툭 튀어나오긴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한국 드라마는 정말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은 심지어 한국 상황에 매우 적합한 슈퍼히어로 드라마였습니다. 일단 '힘쎈 남자'가 아니고 '힘쎈 여자'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이때 저는 감히 '욱씨남정기'라는 드라마의 cp를 맡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에 매료된 것도 사실 '강한 여자' 라는 테마가 지금의 한국 드라마에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생각대로 '욱씨남정기'는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에서 '욱씨'역을 맡았던 이요원도 뜨거운 찬사를 받았습니다. 강은경-주현 작가님이 숨을 불어 넣은 캐릭터가 이형민 감독님의 손끝을 거치면서 21세기 한국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죠.

무엇에 대한 공감일지는 너무도 자명했습니다. '욱씨남정기'의 승부는 '사이다'에 있었던 것이죠. 직장에서도 약자, 그러다 집에 오면 엄마이자 주부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것이 여자. 상사-남편-부모, 심지어 자식까지 포함해도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는 시청자들에게 이요원이 연기한 욱다정(옥다정)은 그야말로 냉장고에서 갓 꺼낸 사이다 자체였을 겁니다(네.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여기서 추정으로 바뀝니다).

'할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그러면서도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 사실 '여자가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싸가지 없다고 욕을 먹는 현실까지 잘 반영돼 있었습니다 - 욱다정은 진정 독보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흥미로운 캐릭터를 발견하게 됐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욱다정 이요원이나 '직장의 신'의 김혜수가 '못하는 게 없이 완벽한' 직장형 슈퍼우먼이라면 도봉순은 사실 힘이 세다는 것 외에는 전혀 슈퍼우먼스럽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도봉순은 단란한 가정에서 쌍둥이 남매 중 누나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기대는 서울대 의대를 간 쌍둥이 남동생에게 '너무나 당연히' 쏠렸고, 공부머리가 부족한 봉순이는 그저 그런 학력으로 그저 그렇게 사회에 나왔지만 결국은 길고 긴 구직자의 대열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봉순이가 학교에서 뭘 전공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봉순이의 꿈은 게임 제작자. 자신을 닮은 캐릭터를 활용해 대박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열심히 스펙을 쌓...으려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전문용어로 구직자. 구체적으로 말하면 백수입니다.

누가 봐도 도봉순의 가장 큰 강점은 넘치는 힘 - 달리는 버스를 세울 수 있을 정도의 힘입니다 - 입니다.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 때부터, 엄마에게서 딸에게 수백년에 걸쳐 대물림되어 온 신비로운 힘이죠. 하지만 봉순이는 이 힘을 장점으로 활용할 의지도, 환경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힘이 센게 왜 나빠?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지만, 사실 봉순이의 힘은 일종의 은유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여자가 무식하게 힘만 세서 뭐하게!'라는 봉순이 엄마의 등짝 때리기 신공도 나오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힘을 써서 괴롭히다가 천벌을 받은 조상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드라마를 위한 장치들이죠. 이 드라마에서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남자들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참고 살아야 했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봉순이의 '넘치지만 감춰져야 했던 힘'은 바로 그 '참고 살아야 했던 여자들의 능력' 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힘쎈여자 도봉순'은 원더우먼이나 엘렉트라 같은 우먼 히어로 이야기와 결별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냥 비슷한 힘쎈 여자 이야기지만, 그냥 그 힘쎈 여자가 나쁜 놈들 혼내주고 다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은 스물이 한참 넘도록, 넘치는 슈퍼 파워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 힘을 어디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늘 자신감 없이,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이 살아온 봉순이가 어느날, 몇 차례의 만남과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쓰여야 할지를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남들보다 빼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던(심지어 상당수는 자신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온) 한 젊은이가 진정한 자기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도봉순이 여자다 보니 이 '힘'은 글자 그대로 물리적인 힘으로 드라마 안에서 활용됩니다. 예를 들면 '약한 여자' 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들이 요즘 특히 많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밤길 함부로 다니기 무섭고, 술 마시고 집에 가는 택시 혼자 타기도 무섭고(얼마전 목포에서 무서운 일이 있었죠),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않는다고 막말하는 나이 헛먹은 할아버지들이 무섭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막무가내로 팔목 잡고 집에 못 하게 할 때 무섭고, 여자 혼자 산다고 방범창 뜯고 들어오는 동네 미친놈이 무섭고... 그런 세상에서 봉순이의 힘은 시원한 대리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요소일 겁니다. (네. 우리 드라마에서 봉순이는 이런 '놈'들을 아주 시원하게 응징해 드립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볼수록 '힘쎈여자 도봉순'은 반드시 드라마로 만들어야 할 대본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아, 물론 이런 대의를 갖고 있는 드라마라는 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죠. '힘쎈여자 도붕순'의 대본은 일단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봉순이를 가운데 놓고 벌이는 게임회사 사장 민혁과 엘리트 형사 국두의 일진일퇴 공방전도, 봉순이 가족들의 알콩달콩한 분위기도, 그리고 봉순이의 초반 주적(?)인 건달 백탁 일파의 황당무계한 행각도 흥미로웠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백미경 작가님은 데뷔작인 '사랑하는 은동아' 같은 심각한 멜로 드라마 때도 넘치는 유머감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잊지 못할 코믹 명장면들을 만들어 냈던 분입니다. 그런 양반이 이번엔 맘 먹고 코믹 드라마를 쓰겠다고 내놓은 대본이니 뭐 그런 쪽으로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가 딱 맞는 표현입니다.

 

 

이 드라마를 제대로 만들어 주실 분은 누구일까....는 사실 그리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현재, 리얼 타임으로 '욱씨남정기'로 매주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던 이형민 감독님이 바로 곁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네. 왕년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만드신 거장 맞습니다. 바로 그분이 코믹 장르에도 눈을 뜨시고 만든 작품이 바로 '욱씨남정기' 입니다. 이형민 감독님도 OK를 하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도봉순은 누가 해야 할 것인가...인데, 이것 역시 사실 긴 고민이 필요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 배우를 데려올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죠.

(너무 길어져서 접습니다. '무적의 트리오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에 대한 글은 다음번에...)

 

728x90

[욱씨남정기]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의 회사에 그런 얘기를 듣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3대 마녀'니 '5대 마녀'니 하는 여자들 말입니다.

 

개중에는 진짜 성격이 나쁜 여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이 친목 단체도 아니고, 다 같이 만나 일을 하는 곳이다 보니 애당초 개개인의 인성에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마녀'라고 불리는 여자들 가운데 '일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나의 일과 남의 일을 똑부러지게 구분하는 경우, 남자들의 보조 역할을 하기 거부하는 경우, 최상층의 신뢰가 두터운 경우 등에 '마녀'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됐던 일'을 해 내는 여자를 '마녀'라고 부르기도 하고, 대략 미모가 뛰어난 여직원은 대개 일 보다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많다는 통념(물론 이런 통념은 당연히 편견의 영역에 해당합니다)을 깨고 '미모에 비해 지나치게(?) 일과 성공에 의욕을 보이는' 경우를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도 꽤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경우들이 있지만 최소한 한 가지 정도의 공통점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유능함을 발휘하고, 그 유능함이 아직 대다수인 남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때 '마녀'라는 호칭이 절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유능하다고 해서 다 마녀로 불리는 것도 아니고, 마녀라고 불린다고 다 유능한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요약해 보면 능력이 출중하건 아니건, 백이 있건 아니건, 외모가 빼어나건 아니건, 명문대를 나왔건 아니건 '무능한 여직원'을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위협'이라는 요소와 매우 관계가 깊은 듯 합니다.

 

(중간에 불쑥 얘기하자면, 이 글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왜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집어 들었나'에 대한 글입니다. 그러자니 당연하게 '우리 편 입장'만 나옵니다. )

 

 

 

 

 

'욱씨남정기'라는 대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품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옥다정은 한번 불끈 하면 자제가 안 되는 성격 때문에 '욱씨' 혹은 '욱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 '더러운 성격' 때문에 이혼을 세 번이나 했고, 꽤 능력이 있어 나이에 비해 일찍 팀장까지 승진했지만 그 뒤에는 별별 소문이 다 따라다닙니다. 성격이 지랄같은 것은 기본, 사내 스캔들이 수차례 있었고 고위층과는 소파 승진의 의혹도 있습니다. 심지어 연상 연하 가리지 않고 남자를 밝힌다는 이야기까지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정작 대본과 시놉시스를 보다 보면 드러나는 여자는 이와는 좀 다른 여자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수시로 '욱'하고 나서서 성격 나쁘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이 먼저 원인 제공을 하지 않는 일에 함부로 '욱'하는 여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욱다정이 분노하는 일들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해야 하지만, 다들 후환이 두렵거나 '좋은 게 좋은 거' 기 때문에 슬쩍 못본 채 넘어가는 일들입니다.

 

게다가 남의 시선을 굳이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사내 연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욱다정의 첫번째 남편은 같은 회사 동료였습니다), 타고 난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눈에 띄었습니다. 업무에 열정적이고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에 남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같이 일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 한국 사회에서 웬만한 회사의 관리직에 오르려면 사회관계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건 남녀를 불문하고 당연한 얘기고, '서글서글한 여걸스러움'이 여성 관리자들에게는 필수 요소가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 그런 태도를 곱게 보지 않는 누군가의 술자리 뒷담화에는 이런 여자들이 수시로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 가나 남자들이 이끌어가기 마련인 회사 집단. 그 회사 집단에서 남자들의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여자들 중에 바로 욱다정이 있었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었던 것이죠.  

 

 

 

 

꼴갑(甲) 저격 사이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의 초반 에피소드들을 언뜻 보면 왠지 하청기업 과장인 남정기(윤상현)를 욱다정(이요원)이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따라가면, 사실 옥다정이 실수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청을 원하는 기업이 부실한 자료를 제출한 것에 대해 화를 낸 것, 다소 무례한 실수에 대해 냉정하게 대처한 것,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반발한 것, 같은 아파트 주민의 부당한 복도 점유(복도에 자전거나 가구를 내 놓는 것은 소방법 위반이라고 합니다)를 지적한 것 등 모두 따지고 보면 옥다정이 정당한 판단과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워 '먹고 살기 힘든데' '뭐 고작 그정도 가지고' '그런 일 안 당해 본 사람이 누가 있나' '하여간 유난을 떤다' 며 욱다정에게 '역시 듣던대로 성질이 더럽다'는 말을 합니다. 당연히 억울하겠지만 어차피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욱다정, 변명을 하거나 자기 편을 만들어 하소연을 하거나 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평판은 점점 굳어가고,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이유가 '욱씨남정기'인 이유는 욱다정의 정 반대편에 있는 인간, 즉 '책임을 지는 순간 명이 짧아진다'는 소심함과 무사안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남정기가 처음으로 욱다정이 '소문으로 듣던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욱다정에게 가장 많이 당한 남정기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 앞서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차리고, 그 여자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 가면서 지지리도 못났던 자신의 지나간 삶을 반성한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전개로 느껴졌습니다. 

 

'욱씨남정기'는 그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아 온 탓에 '드센 여자' 혹은 '지랄맞은 여자'로 낙인 찍혀 온 한 여자가 제대로 평가를 받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녀 또한 완벽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옆집의 속터지는 '고구마 가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고 그 자신에게 부족했던 타인과의 공감 능력을 서서히 찾아 가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코미디라서 일단 보고 있는 동안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지만, 그 속에 주변의 오해 속에서 '강한 여자'를 넘어 '마녀'로 치부되고 있는 한 여자. 그 여자가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욱씨남정기'는 해 볼만한 드라마라고 느꼈습니다. 일단 다들 한번씩 보시면 무슨 말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겁니다.

  

 

 

 

그럼 남정기는 그냥 별 의미 없는 고구마 인생이냐.... 그건 또 아니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728x90

우여곡절 끝에 '하녀들'이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금요일 밤 9시45분(정확하게는 금-토 9시45분)이라는, 드라마가 낯선 시간대에 처음 등장해서 '삼시세끼'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두 예능 프로그램에 '나는 가수다 3'까지 끼어든 뒤, 자력 생존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하녀들'이 갖고 있는 '(양반들의) 슈퍼 갑질에 대한 을(노비들)의 분노'라는 주제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땅콩 리턴' 사건과 맞닿아 일으킨 화학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은 지금껏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애사극'입니다. 템포와 주인공의 배치가 남다르죠. 지금까지의 사극들 가운데에도 '멜로 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대부 계층의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져 있고, 거기에 맞춰 다양한 캐릭터들이 배치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대장금' 처럼 서민 계급의 주인공을 배치한 위대한 작품도 있었지만 '대장금'은 사실 대표적인 궁정 사극이고, 연매물도 아니었죠.

 

이에 비해 '하녀들'은 조선 초기를 무대로 일단 양반댁 규수 가운데서도 "조선의 개국공신인 명문거족 국씨 집안의 무남독녀라 여느 반가의 규수들과는 급이 다른", 그 시대의 it girl 이던 인엽(정유미)가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한방에 최고의 지위에서 노비로 전락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드라마 '하녀들'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엽을 중심으로 정혼자이며 양반 댁 도련님인 은기(김동욱), 그리고 뭔가 비밀스럽지만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병판 댁 노비의 우두머리 무명(오지호)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축소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뭔가 아쉬움을 느낄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함흥차사'입니다. 극중 인엽이 병조판서 허응참(박철민)의 연회장에 박차고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함흥에 차사로 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간 것이죠. 또 이어 허응참의 아내이며 윤옥(이시아)의 어머니인 윤씨부인(전미선)이 인엽에게 쏘아부치는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잔혹한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이 함흥차사란 무엇일까요. 대개는 아시겠지만,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해설 들어갑니다.

 

 

 

 

 

 

함흥차사

[명사] 咸興差使. 심부름 등을 위해 한번 떠난 사람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음. 함흥은 함경남도의 지명, 차사는 예전 긴한 일을 위해 보내던 사신에게 주는 임시 관직명.

12일부터 방송된 JTBC 새 주말연속극 하녀들은 여주인공 인엽(정유미)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조선 태종(안내상)의 밀명을 받아 함흥차사로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함흥차사네 글자는 요즘도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말에는 불발된 쿠데타의 흔적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본래 8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권력 다툼으로 세 아들을 잃었다. 결국 천수를 누린 사람은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그리고 5남 방원(태종) 뿐이었다.

 

'태조는 왕좌를 위해 형제들을 죽인 태종을 용서하지 않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흥(영흥부)으로 돌아갔다. 조선이 건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은 1401. 아버지가 아들의 왕 자격을 부정한다는 것은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었으므로 태종은 수시로 태조와 가까웠던 인사들을 보내 태조의 귀경을 설득했다. 하지만 태조는 차사들이 오는 족족 목을 베어 돌아갈 뜻이 없음을 알렸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함흥차사의 유래다.

 

 

     [극중 인엽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이성계(이도경)에게 차사로 가서 도성 귀환을 설득하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장면.]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현재 함흥차사에 대해 가장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 문헌은 역사서가 아니라 야담집인 축수편(逐睡篇)이다. 여기에는 성석린이 이성계를 회유하다가 귀공은 나를 달래러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가 그런 이유로 왔다면 제 아들들이 눈이 멀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그의 두 아들은 장님이 되었고, 성석린은 "아무리 목숨이 걸렸어도 그런 장담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하고 탄식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이성계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또다른 차사 박순의 죽음 덕분이다. 태조는 박순에게 설득당했으나, 그가 돌아가자 태조의 측근들은 그를 따라가 죽일 것을 권했다. 이에 태조는 그가 이미 멀리 갔을 것이라 보고 장수에게 칼을 주며 용흥강을 못 건넜거든 베어 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병으로 걸음을 지체했던 박순은 강가에서 죽음을 맞았고, 이를 후회한 태조가 귀경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사(正史)의 기록은 어떨까. 일단 태조가 처음 북쪽으로 떠난 것은 태종 1(1401) 3월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해 410일 태종이 도승지를 보내 안변(현재의 원산 부근)에 머무는 태조의 문안을 묻고, 태조가 오래 머물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태종이 성석린을 보내 설득하자 태조는 426일 도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126, 태조는 한밤중 갑자기 소요산으로 떠났다. 실록은 임금(태종)이 전송하려 따라갔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꼴도 보기 싫은 태종의 전송 같은 것은 전혀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태종은 다시 성석린을 보내 설득했으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결국 해가 바뀌고 14024, 태종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소요산 자락까지 찾아갔다. 426, 마침내 태조의 입에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왔다.

 

6개월 뒤인 115, 안변부사 조사의반란을 일으켰다. 명분은 태종에게 살해당한 이복동생 방번-방석 형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8일자 실록에 눈여겨 볼 기사가 실려 있다. 조정에서 파견된 박순이 함주에서 조사의의 난에 가담하지 말라고 지방 수령들을 설득하다가 피살됐다는 내용이다. 이 박순은 위의 축수편에 대표적인 함흥차사로 기록된 그 '함흥차사' 박순이다.

 

 

 

게다가 이성계는 안변 바로 북쪽인 함주에 머물고 있었다. 119일자 실록은 태종과 조정 대신들이 반란군 지역에 있는 태상왕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과 무학대사를 급파해 태조의 귀경을 설득하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축수편에서 박순을 죽이라고 주장했다는 태조의 측근이 누구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세등등했던 조사의의 반군은 한달도 못 되어 1127일 안주 부근에서 궤멸됐고, 128일자 실록에는 태상왕(이성계)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짧은 한 줄이 기록됐다. 다시 야사로 넘어가면, 마지막 함흥차사는 무학대사라고 전해진다. 박순의 죽음으로 자책하던 태조는 옛 스승 무학대사의 말에 마음이 풀어져 도성으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수편에는 도성으로 돌아온 태조와 태종 사이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환영 잔치를 벌이려 장막을 칠 때, 태조의 성품을 잘 아는 하륜이 태종에게 기둥은 반드시 사람 몸통보다 굵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간했다. 태조는 멀리서 태종을 보자 바로 활을 쏘았고, 태종은 급히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명궁으로 소문난 태조 이성계였으나 화살은 기둥을 뚫지 못했다.

 

태조는 탄식하며 태종에게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옥새가 여기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륜은 또 직접 술을 권하지 말고 내시를 시켜 전달하라 조언했고, 태종은 그대로 했다. 그러자 태조는 술잔을 들이키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옷소매 속에서 무쇠방망이를 꺼내 내려놓고 모두 하늘의 뜻이로구나하며 껄껄 웃었다.’

 

과연 태조의 북행과 차사들의 죽음은 조사의의 난과 무슨 관계일까. 태조는 아들 태종에 대항해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 쿠데타를 시도한 것일까. 축수편의 마지막 기록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녀들'에서 인엽의 아버지 국유는 아마도 성석린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 조사의의 난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함흥차사'의 고사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성계는 8명의 아들을 뒀는데 첫 아내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장남 방우,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4남 방간, 5남 방원(태종), 6남 방연의 여섯 아들을 두었고 한씨 사후 계비 신덕왕후 강씨로부터 7남 방번과 8남 방석을 두었습니다. 이중 6남 방연은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고 장남 방우는 - 여러 기록을 볼 때 아버지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듯 한 - 역시 조선 건국 2년만인 1394년 40세에 술병(?)으로 사망합니다.

 

누가 봐도 아들들 가운데 가장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1392년 당시 25세였던 방원이었지만 정도전과 이성계는 8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노골적으로 방원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합니다. 결국 방원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을 비롯해 방번 방석 형제를 죽였고, 2남 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킨 뒤 1400년 초 2차 왕자의 난으로 바로 위의 형인 방간을 축출합니다. 방간을 바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자신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한 뒤 마침내 그해 11월 왕위에 오릅니다.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뜻을 어기고 형제들을 참살한 방원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고, 태종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공을 무시하고 왕위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 아버지가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개국 10년도 안 된 나라의 안정을 생각하면 아버지까지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고려를 되돌려 놓으려는 유신들의 세력(곧 밝혀질 '하녀들'의 또 다른 축입니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조사의의 난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고, 정사든 야사든 꼭 집어 '그 배후에 이성계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사건이 이성계와 무관할 리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태종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설득해 반란에서 발을 빼게 하려 특사들을 보내 설득했고, 함흥차사들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약간 완곡하게 표현한(아버지와 아들이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살짝 감추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 살짝 과장과 은유가 깃들며 '축수편'에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진 것이죠.

 

(진짜 의문은 당대 최고의 무장인 이성계가 뒤에 있었다면, 왜 조사의의 군대가 한달도 못가 그렇게 쉽게 무너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종과 이성계의 극적인 타협? 조사의의 심각한 무능? 이성계의 일방적 변심? )

 

 

어쨌든 '하녀들'은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음모인 고려 회복 운동과 태종의 대처,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엽이 노비의 치욕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 남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절대 을'이었던 노비들이 '슈퍼 갑'인 양반들을 어떻게 조롱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가는지가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그 시대의 '슈퍼 갑'이었던 양반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피고용인을 노비 대하듯 하는,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심한 모습일 수도 있는 기괴한 모습들...)

 

 

 

 

 

 

'하녀들'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남다른 공간감입니다. 조명의 사용을 통한 실내 공간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조현탁 감독의 연출은 지금까지 사극에 나왔던 대청/안방/주방/창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하녀들'을 보는 새로운 재미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728x90

[밀회]

 

소문이 무성했던 화제의 [밀회] 1회가 방송됐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얘기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습니다. 대본을 아무리 읽어보고 잘 아는 배우들이 나와도, 편집을 마치고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기 전엔 그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가 될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던 '밀회'. 순산이었습니다.

 

 

 

 

'밀회' 첫회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설명에 소요됐습니다. 일단 인물관계도는 이렇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본질적으로 혜원(김희애)-선재(유아인)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한복판에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1회를 제대로 보신 분이라면,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이 아직 살짝 감춰놓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금세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장 흥미로운 관계는 혜원을 중심으로 한 성숙(심혜진)과 영우(김혜은)의 관계입니다. 혜원은 예고 동창인 영우와 명목상 친구로 되어 있지만 재벌 회장의 딸이자 자신의 고용주 뻘인 영우의 시녀 역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물론 혜원은 연봉 1억인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 자리에 그 시녀 역할까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회장의 후처인 성숙이 있습니다. 교양미넘치는 포장에도 불구하고 고급 룸살롱의 마담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영우로부터 절대 계모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실속을 차리려는 야심과 계략이 가슴에 가득하고, 총명하고 성실한 혜원을 자기 사람으로 곁에 두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성숙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건 자신을 '한마담'이라고 부르는 영우의 목소리. 그 한마디에 성숙은 애써 지켜 온 교양미의 허울을 벗고 영우의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암늑대가 되어 버립니다. (1회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화장실 격투 신;;)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혜원의 '뺨 맞는 신'은 바로 이런 갈등이 표출된 결과입니다.

 

 

 

             

 

 

새파랗게 어린 남자 모델을 데리고 오피스텔에서 잠든 영우를 깨우러 간 혜원. 그 혜원이 "하려면 진짜 사랑을 하든가"라고 쓴소리를 하자 영우는 다짜고짜 뺨을 갈기며 쏟아붓습니다. "기집애야, 너는 진짜야? 너 정말 강준형 사랑해서 바람 안 펴? 니 남편 허당인거 누가 몰라?"

 

그리고 드라마는 서한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서한음대의 민학장(김창완)과 혜원의 남편인 교수 준형(박혁권)을 보여줍니다. 이 사회의 맨 꼭대기에서 여러 혜택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 향기롭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음을, 그리고 이 드라마가 그 군상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예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한때 기획 단계에서 이 드라마는 '음악판 하얀 거탑'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얀 거탑'이 한국 의학계의 후진성과 어두운 단면을 보여줬다면 '밀회'는 한국 고전음악계의 병폐와 환부를 백일하게 드러낼 겁니다.

 

 

 

제법 긴 1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우연히 서한재단 아트센터의 공연 날, 택배 물건을 갖고 현장에 도착한 선재가 무대 뒤에서 커튼 너머로 혜원 일행을 바라보는 지점입니다. 협연을 앞둔 조인서 교수(박종훈)와 민우(신지호)가 피아노를 조율하며 혜원과 함께 잡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재에게는 감히 꿈꿀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이 장면을 트친 하나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청년의 눈빛은 가늘게 떨리며 촉촉하고 몽환적이다.

근데 심지어 그게 유아인이란 거지." (@hsjeong)

 

더 이상 적절할 수 없습니다.

 

 

 

숨가쁘게 달린 1회는 사전 공개 영상에서 드러났던 장면, 즉 혜원이 선재를 불러 피아노 실력을 테스트 해 보는 장면 바로 앞에서 끝났습니다.

 

이 예고에 대한 내용은 이쪽: 밀회, 보는 이를 압도하는 20분 http://fivecard.joins.com/1240

 

그러니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 두 주인공이 만난 것이 1회 끝나기 3분 전인 걸 보면 - 사실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머잖아 두 사람의 관계에선 불꽃이 튈 겁니다.

 

드라마가 나오기도 전에 설정만으로 이 드라마를 싸구려 불륜 드라마 취급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1회를 보라'는 것 뿐입니다.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수준으로 이 드라마와 견줄 만한 작품은 올해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한마디 더 보탠다면, "이게 바로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있게.

 

혹시 1회를 보실 기회를 놓친 분들, 여기서 1회를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다행인 건, '이제 겨우 1회가 방송됐을 뿐'이란 겁니다.

아직도 15회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만치 더 즐기실 수 있단 얘기죠.

 

P.S. '베토벤 바이러스' 까지만 해도 연주자의 손이 흘러나오는 음악과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누가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느냐'는 게 일반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밀회'는 다릅니다. 진짜 피아니스트들인 박종훈, 신지호는 물론이고 김희애와 유아인도 정확하게 건반을 짚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밀회'가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작은 예일 뿐입니다.

두고 보시면 더 놀랄 일이 많습니다.^^

 

 

 

728x90

'우리 결혼했어요'가 아닙니다. '꽃보다 할배'도 아닙니다.

 

가상 결혼 프로그램이면서 새롭게 등장한 실버 예능의 기수입니다. 제목은 '님과 함께'.

 

티저를 보시면 느낌이 확 올 겁니다. 제목은 '재혼자들'.

 

 

 

 

그러니까 임현식-박원숙씨가 드라마 아닌 예능에서 가상 부부 체험을 하는 얘깁니다.

 

두 분은 수없이 많은 드라마에서 커플 연기(주로 서민적인 정서가 뚝뚝 떨어지는)를 보여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한지붕 세가족'.

 

그 변형입니다. 2차 티저. '한지붕 새가족'.

 

 

 

 

'산업 폐기물 같은 맛'...이란.

 

그런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추억의 드라마가 솔솔 생각납니다. 바로 '한지붕 세가족'.

 

 

 

'봄바람 분다고 장독대 꽃피나'로 시작하는 김창완의 국악풍 주제가가 인상적인 오프닝.

 

 

 

 

 

'한지붕 세가족'은 자료에 따르면 1986년 11월9일부터 1994년 11월13일까지 방송됐습니다. 방송 시간은 몇번 바뀌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일요일 아침을 고수했던 작품입니다. 참 지금 보니 젊은 모습.

 

 

 

제목이 한지붕 세가족인 것은 주인 집(현석)이 집의 2층과 별채를 세놓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서민 거주 지역에선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거주 형태였죠. 그 시절을 잘 모르는 분들은 영화 '완득이'에 나오는 동네를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 임현식, 엄마 박원숙, 아들 이건주로 구성된 순돌이네는 동네의 전파사 및 만물 수리점이었죠. 그리고 순돌 아빠의 라이벌(?)로는 동네 세탁소 주인인 만수 아빠 최주봉이 있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했지만 우등생인 만수와 늘 노는 것과 먹는 것만 밝히는 순돌이의 캐릭터가 대조를 이뤘습니다.

 

세월이 흘러 집 주인이 임채무로 바뀐 뒤에는 임채무의 처남 강남길과 애인 차주옥, 그리고 강남길의 어린 시절 친구인 김영배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위 사진은 90년대 '한지붕 세가족'의 모습인 듯 합니다.)

 

 

 

 

특히 강남길의 고교 동창이며, '시골 고등학교에선 동네와 학교를 주름잡는 멋진 친구였지만 나이를 먹어 이제는 허세밖에 안 남은' 김영배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죠.

 

 

 

사실 작가와 연출자들은 소재도 떨어지고 시청률도 고르지 않아 몇번이고 종영이 검토됐지만 그럴 때마다 "'한지붕 세가족'을 없애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MBC로 빗발쳤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드라마에 '회장님'과 '사모님'이 나오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었지만 그래도 이 시절엔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이런 드라마가 있었죠.

 

또 수많은 스타들이 '한지붕 세가족'을 통해 안방극장에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한석규 음정희를 비롯해 김혜수 차인표 등도 이 드라마를 거쳐갔죠.

 

그래도 화려한 스타 후보생들보다는 역시 서민적인 정취를 가진 연기자들이 '한지붕 세가족'에선 더 빛을 발했습니다.

 

 

 

 

 

그렇게 8년을 방송한 '한지붕 세가족'도 막을 내리고, 다들 나이를 먹었습니다.

 

개구장이 꼬마였던 순돌이 이건주가 어느새 어른이 됐죠.

 

 

 

 

 

 

 

 

그리고도 몇해 더 세월이 흘러 순돌아빠와 순돌엄마는 예능 속에서 맺어졌습니다.

 

재혼을 염두에 둔 가족 예능인 '님과 함께'에는 순돌이네 커플과 함께 이영하-박찬숙 커플도 출연합니다.

 

 

인생에서 일어날 법 한 웬만한 일들은 다 겪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청춘들과는 또 다른 재미가 기대됩니다.

 

 

728x90

[히든싱어] 2014년 1월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는 밤. JTBC 사옥 호암아트홀에선 '히든싱어2'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왕중왕전 생방송이 펼쳐졌습니다.

 

왕중왕전으로는 세번째 방송. 그러니까 1월11일과 18일, 2회로 나뉘어 왕중왕전 본선이 치러졌고 25일에는 거기서 살아남은 세 사람의 모창 도전자 - 임성현(논산가는 조성모), 조현민(용접공 임창정), 김진호(사랑해 휘성)의 최종 대결이 펼쳐진 것입니다.

 

두 차례의 왕중왕전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치열한 대결을 뚫고 올라온 이들입니다. 난다긴다하는 모창자들 중에서 선발됐고, 그 우승 혹은 준우승자 사이에서도 각 조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들이니 말입니다.

 

 

 

 

물론 결과는 아시는 바와 같이 휘성 모창자 김진호의 우승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마지막날 생방송을 현장에서 보고 있으니 과연 더 이상 '모창'이란 말로 이 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습니다. 이미 모창이란 큰 의미가 없어진 대결이었습니다.

 

 

 

PM 10:20

 

이날 호암아트홀 무대는 정말 발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찼습니다. 앞에 보이는 빈 자리는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 연예인들과 그동안 '히든싱어2'에 출연했던 멤버들을 위해 비워 놓은 자리들이고, 나머지 자리는 꽉 들어찬 것을 지나 복도까지 어떻게든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만약 '히든싱어3' 때도 최종 생방송을 한다면 경희대 평화의 전당 정도는 충분히 채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PM 10:30

 

30분 전. 출연진들은 분장실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고, 스태프들은 원활한 무대 진행을 위해 마지막 점검이 한창입니다.

 

 

 

2층에서 본 모습.

 

 

 

PM 10:50

 

하늘 위에서 찍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지미집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팔을 휘저어 봅니다. 앞줄엔 출연 연예인들이 착석 완료를 확인하는 스태프들이 아직 서 있죠.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

 

 

 

 

 

PM 11:00

 

무대 중앙문에서 전현무가 걸어나오며 환호와 함께 방송 시작.

 

세 사람의 도전 여정을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신선한 건 세 도전자가 처음으로 예심에 나섰을 때의 모습.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세 사람 모두 지금과는 꽤 다른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처음에 보였던 쭈뼛대는 모습이 지금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신감이 예전과는 전혀 달라 보입니다.

 

순서대로 세 도전자의 노래.

 

 

 

 

조현민과 김진호를 향한 임창정과 휘성의 찬사와 응원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조성모가 나오지 못한 임성현이 혼자 좀 쓸쓸해 보입니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야 할 조성모가 없으니 어딘가 힘이 빠져 보이는 아쉬움. 휘성의 무대 의상까지 그대로 물려입고 나온 김진호의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가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5일 무대에서 가장 빛났던 사람은 임성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히든싱어' 시즌 1,2를 통틀어 원조 가수를 누르고 우승한 사람든 단 둘뿐, 신승훈 편의 장진호와 조성모 편의 임성현 뿐입니다.

 

장진호가 의외의 부진으로 최종 3인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 이변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의 실력은 탁월했습니다. 특히 임성현은 25일 무대에서 최상의 실력을 보여 진짜 조성모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던 당시의 우승이 우연의 결과가 아님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AM 00:00

 

부조정실. 전현무의 말이 많아질수록 조승욱 PD의 주름이 늘어갑니다. 자꾸 시간이 초과되기 때문이죠.

 

당초 실시간 문자투표를 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왕중왕전 두 차례를 마친 뒤 1주일간 진행한 사전 인터넷 투표의 총 개표수가 1만건 정도밖에 안 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방송중 투표를 수없이 진행한 ARS 업체에서도 "이 시간이면 15만표 정도가 예상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15만표는 방송 시작 20여분만에 훌쩍 넘어섰고, 밤 12시를 지나면서 50만표 이상이 확실시됐습니다.

 

대박 예감.

 

 

 

 

 

AM 00:30

 

최종 투표가 마감됐습니다. 총 투표수는 864,868표.

 

음향편집실 스태프도 분주합니다. 이때부터 전현무 특유의 '쪼는' 시간에 맞는 음악이 나갑니다.

 

물론 3위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선 광고를 봐야 합니다.^^

 

 

 

 

 

"우승자는 김진호!"

 

두 사람이 남은 상황에서 전현무의 발표 순간, 김진호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세 사람 모두 사연이 있습니다. 조현민은 많은 사람이 아는대로 부산에서 용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병환과 집안 환경 때문에 음악에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임성현은 현역 뮤지컬 배우이지만 수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했던 아픔을 겪었고, 곧 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임성현의 아버지가 "내가 못 이룬 꿈을 아들이 이뤘다"며 눈물을 보이는 광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진호는 연세대에 다닐 정도의 우등생이지만, 한편으론 거울을 보며 휘성의 동작을 따라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진로를 놓고 남들은 짐작하지 못하는 고민을 겪었을 겁니다.

 

이런 세 사람 모두에게 왕중왕전 생방송은 그야말로 한풀이의 무대였습니다. 음악이란 이들에게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목표였고, 어찌 보면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켠에는 그들 각자에겐 음악의 세계를 엿보게 했던 우상들이 있습니다. 이들 각자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우상에 대한 존경, 그리고 현실에 대한 아쉬움이 바로'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표출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세 사람의 고민과 좌절이, 이날 보여준 놀라운 실력에 날개를 달아준 듯 했습니다.

 

이날 무대에 선 것은 임창정과 조성모, 휘성을 모창하는 세 사람이 아니라, 그 세 우상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세 젊은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세 사람의 노래가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들린 것입니다. 임창정이 장난스럽게 던진 "전 저렇게 못 불러요"라는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닐 정도로, 세 사람은 생방송 무대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나 보기 좋았던 것은 그런 꿈의 소중함을 아는 선배들과 곧바로 '즐기는 무대'가 연출됐다는 것.

 

 

 

AM 1:00

 

생방송이 끝난 무대는 몰려 나온 축하객들로 북적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무대에서 단연 인기있는 출연자가 있었으니.

 

 

 

바로 아이유 모창자 샤넌.

 

최종 결승에 진출하지 못해 많은 남성 시청자들을 좌절시켰던 '히든싱어2'의 주역(!) 중 하나.

 

 

 

다들 샤넌과의 기념 촬영을 위해 줄을 섭니다.

 

옆에 찬조출연한 작곡가 주영훈. "야, 샤넌이랑 빨리 찍어. 얘 데뷔하면 우린 사진도 같이 못 찍을거야."

 

 

 

그래서 저도 잠시 본분을 잊고...

 

 

 

샤넌양, 정말 얼굴이 조막만 하더군요. 화장기 없는 얼굴도 어쩌면 그리 귀여운지.^^

 

 

 

AM 1:20

 

곧바로 심야의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새벽 시간이지만 취재 열기가 뜨겁습니다.

 

 

 

다들 밝게 웃는 모습.

 

대락 기억나는 질문과 답은:

 

 "전현무를 시즌3에도 MC로 쓰겠느냐"는 질문에 "생각 중"이라고 말한 조승욱 PD.

 

"내가 '히든싱어2' 최고의 수혜자인 것 같다. 안티가 많이 줄었다"는 휘성의 말에 "안티는 제가 더 많습니다"라고 덧붙인 전현무.

 

상금 2000만원을 어떻게 쓰겠냐는 말에 "제작진과 출연자들을 모아 고기를 배터지게 먹겠다'는 김진호.

 

세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가장 감격스러운 건 팬카페가 생겼다는 것.

 

 

 

 

임성현은 이미 노래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세 사람의 인생이 '히든싱어2' 출연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김진호의 말처럼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 기억으로 이겨내겠다"고 한다면, 참 좋은 일일 듯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세 사람 모두 수천명의 지원자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승자들이라는 것.

 

늦은 시간,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세 사람을 환영했습니다.

 

국민투표에 임해 주신 864,868명의 시청자들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히든싱어2'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물론 '히든싱어3'는 당연히 돌아옵니다. 아쉬우시겠지만 늦어도 8월이면 '히든싱어3'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짧은 안녕을.

 

 

 

 

728x90

[히든싱어] 시즌2를 마감하는 왕중왕전 1,2부가 화려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히든싱어' 방송 이후 처음으로 원조 가수를 앞선 두 명의 도전자들, 신승훈 편의 장진호와 조성모편의 임성현을 포함해 총 13명의 도전자가 치열한 경쟁을 치렀습니다.

 

자신들의 우상과 맞붙어 마지막까지 각축전을 벌였던 모창 능력자들은 한동안 쉬면서 축적한 기량이 눈에 띌 정도였습니다. 첫 방송 출연 당시에는 아무래도 100%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겠지만, 두번째 도전인 왕중왕전에서는 활짝 개화한 듯한 도전자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습니다. 비록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아이유 모창자였던 사년의 열창과 웃음은 많은 남자 시청자들을 열광시켰죠.^

 

아무튼 이들의 기량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연출자 조승욱 PD까지 경악하게 했던, 예상을 뛰어넘는 대접전 끝에 '논산가는 조성모' 임성현, '용접공 임창정' 조현민, 그리고 '사랑해 휘성' 김진호가 최종 결선에 진출했습니다. 이들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국민투표 결과와 25일 생방송을 통해 최종 우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왼쪽부터 조현민, 임성현, 김진호.

 

혹시 방송을 못 보신 분들이 꼭 보셔야 할 세 워너비들의 노래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온 국민의 관심사'라고 부르는 것은 좀 낯간지럽지만, 아무튼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이 두 시즌을 방송하면서, '모창'이라는 장르에 대한 국민의 시선을 바꿔 놓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지난 12일 57세로 작고한 가수 김갑순씨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바로 '너훈아'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히든싱어'가 처음 방송될 때, 많은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이 그저 기존의 '스타킹'이나 '묘기대행진' 처럼 신기한 기술의 하나로 모창능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히든싱어'야 말로 진정한 트리뷰트 프로그램, 즉 원조 가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에 쓴 글입니다. "'히든싱어', 감동은 어디서 올까?"  http://fivecard.joins.com/1118 )

 

 

 

 

방송이 진행될수록, 모창 도전자들의 사연이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히든싱어'에 출연하는 도전자들의 출발점은 모두 '지극한 팬심'이었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조홍경 원장의 지도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영혼 없는 연습만으로 그렇게 똑같이 부르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수영이나 백지영, 주현미 편에 출연했던 도전자들이 가수와 함께 눈물을 흘린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도전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그 가수들의 노래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를 털어놓고, 가수들은 가수들대로 자신들이 불러 온 노래들이 어딘가에서,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의미를 주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수라는 직업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부와 명예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노래에 진정으로 공감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천만장의 팬레터와 문자 속에 파묻혀 있어도, 이렇게 팬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다 못해 목소리부터 몸짓까지 똑같이 흉내낼 정도인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그들에게도 대단한 행운인 셈입니다.

 

 

 

사실 '너훈아' 김갑순씨의 출발점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나훈아라는 거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더욱 더 열심히 그의 노래를 연습하게 되고, 남들도 인정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고, 그리고 나선 아예 그의 그림자가 되는 인생을 선택한 것이죠.

 

'모창 가수'의 나쁜 예로 가수 박상민을 사칭하며 돈벌이를 했던 임모씨가 가끔 거론됩니다. 하지만 이 임모씨는 스스로 '박상민 행세'를 했기 때문에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반면 너훈아를 비롯한 대다수의 모창 가수들은 스스로를 '이미테이션 가수'라고 부르며, 가끔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들이 선택한 애정과 추앙의 대상에게 자신의 인생을 기댄 셈입니다.

 

'히든싱어' 출연자들 가운데 너훈아 김갑순씨처럼 온 인생을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뮤지컬 김광석' 최승열처럼 김광석과 닮은 목소리 덕분에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주연으로 활동하게 된 경우를 보듯, 이들이 모창한 기존 가수의 삶과 활동은 이들의 이후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18일 방송된 '히든싱어2' 왕중왕전에서 '사랑해 휘성' 김진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처음 출연했을 때, '단 하루만이라도 휘성으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왕중왕전 무대까지 서고 나니..."

 

누구나 스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모창자들은 자신의 우상과 최대한 비슷해지려 노력하면서, 그 가수의 성공을 보면서 자신의 꿈이 이뤄지는 듯한 대리만족을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히든싱어' 시즌1과 시즌2를 합해 가장 인상적인 무대를 꼽자면 지난해 시즌1의 왕중왕전 출연자 전원이 함께 부른 '거위의 꿈'을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종서' 이현학과 '윤민수' 김성욱의 활약이 눈부셨죠.^^

 

 

 

 

 

물론 올해의 '마법의 성'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즐거움과 웃음이 가득한 히든싱어 왕중왕전의 잔치를 보면서, 문득 김갑순씨의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때로 '짝퉁'이라는 말로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기도 했던 이미테이션 가수 너훈아. 그의 활동 역시 나훈아에 대한 헌정이었다는 점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도 '히든싱어'의 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사. "너훈아로 20년, 그는 마지막까지 김갑순을 꿈꿨다"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1/18/13259846.html?cloc=olink|article|default

 

 

 

25일 방송을 마치는 '히든싱어2'. 2014년 하반기 방송될 '히든싱어3' 에서는 또 어떤 가수들과 어떤 모창자들이 또 다른 사연과 놀라운 기량으로 시청자들을 두근거리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P.S. 물론 팬심이 팬심으로만 꼭 끝나야 하는 건 아니죠. 어제 놀라운 가창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샤넌. 언젠가는 아이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우뚝 서는 날을 보고 싶더군요.

 

 

아래 손가락 모양을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글 소식을 빨리 알 수 있습니다.

 

728x90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누가 들어도 너무 깁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우사수]라고 불릴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2012년 연말부터 2013년 초까지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습니다(당연히 '우결수'라는 제목으로 불렸죠). 이 드라마는 김윤철 PD와 하명희 작가가 호흡을 맞췄고, 결혼을 앞둔 두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안과 기대, 좌절과 화해를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성준과 정소민이 사랑스런 젊은 커플로 등장했고, 정소민의 '세상 물정을 다 아는' 닳고 닳은 엄마로 이미숙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만에 김윤철 PD는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또 한편의 여자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우사수'는 MBC TV의 '기황후', KBS 2TV '총리와 나', SBS TV '따뜻한 말한마디' 와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월화드라마입니다. 묘하게도 '우사수'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우결수'를 집필했던 하명희 작가가 '따뜻한 말한마디'의 작가이기도 하다는 게 참 묘한 운명을 느끼게 합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응답하라 1994' 와 같은 궤도에서 출발합니다. 드라마 한 편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빨라도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니, '응답하라 1994'가 종영하고 바로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건 사실 우연입니다(제작발표회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는데 김윤철 PD는 안타깝게도 '우사수'의 준비 때문에 '응사'를 한 회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1995년, 다같이 지긋지긋한 고3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세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잠시 삽화로 보이는 2002년. 정완(유진)은 만삭의 임산부, 선미(김유미)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 그리고 지현(최정윤)은 원숙한 주부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인 세 친구는 열심히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현재. 서른 아홉 동갑내기엔 세 친구의 위치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던 정완은 남편과 헤어져 홀어머니와 함께 아들 태극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는 선미는 잘 나가는 골드미스. 지현은 준재벌급의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셋 모두 그늘이 있습니다. 정완은 생활고 때문에 마트에서 알바를 해야 하는 처지. 선미는 어느새 동년배 남자들에게 자신이 '늙은 여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현은 결혼생활 10년이 넘었는데도 어려운 형편의 친정 때문에 여전히 시모에게 가정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찍 낳은 딸 세라는 어느새 무서운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빵꾸똥꾸' 진지희가 어느새 성장해 10대 역으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사수' 1회는 1995년에서부터 이들 세 단짝 친구의 현주소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세 여자 주변에 포진된 남자들도 슬슬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완은 영화사 대표 도영(김성수)와 젊은 나이에 장래가 촉망되는 감독 경수(엄태웅)을 만납니다. 동시에 도영은 지현의 첫사랑이기도 하고, 선미 역시 경수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선미에겐 진심을 고백하는 한참 연하의 부하 직원 윤석(박민우)이 있지만, 선미가 보기엔 정말 철딱서니 없는 사내아이일 뿐.

 

과연 이 남자들이 서른 아홉이란 나이의 여주인공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의 도입부에서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시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열 아홉 나이의 세 친구가 일제히 미장원으로 달려가 한껏 헤어스타일을 고치고, 귀를 뚫습니다. 이걸 통해 '어른이 됐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죠. 성년식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나란히 귀를 뚫은 세 친구가 20년 동안 우여곡절을 - 대학 졸업반이 될 무렵 IMF를 겪고, 취업난으로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해외 연수가 보편화되기도 하고(물론 졸업 연도를 늦추려는 시도와 함께), 대학 운동권이 총학생회에서 배제되기도 하고,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경험해 보기도 하고, 2002년의 대축제로 20대의 끝자락을 장식해 보기도 하고, 그리고서 이제 중년의 문턱에 와 있는 세 친구.

 

그런 그들의 시작을 '귀를 뚫는다'는 행위로 표현한 것. 매우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세 배우 모두 서른 아홉이란 나이를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나이.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실제 나이보다 위인 배역은 거의 맡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캐스팅이지만 선공개된 '우사수' 1회를 봐선 이들 중 누구도 연기의 깊이가 부족해 애를 먹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1회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누가 뭐래도 '여자를 가장 잘 아는 연출'로 불리는 김윤철 PD의 늘어지지 않는 속도감. 따발총같이 쏟아지는 대사가 아닌데도 지루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빠른 전개가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39라는 숫자를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노래는 퀸의 '39'입니다. 물론 나이로 서른 아홉이 아니라 1939년을 담고 있는 노래지만, 그래도 흘러간 좋았던 날들을 돌이켜보는 데서 이 드라마, '우사수'와도 만나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우사수'와 관련해선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가 여자의 인생에서 갖는 의미와 관련해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이쪽도 들러 보셔도 좋습니다.

 

여자 나이 서른 아홉, 공돈 1000만원이 생기면 뭘 하지? http://fivecard.joins.com/1209

 

 

 

 

P.S. '우결수'도 '우결수'지만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의 시놉시스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드라마는 2004년 방송됐던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극본 김인영 연출 권석장)'였습니다. 당시엔 명세빈 이태란 변정수가 사회생활과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30대 초반의 세 친구로 나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샀던 작품이었죠.

 

'우사수'는 '응답하라 1994' 세대의 현재 이야기인 동시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10년 뒤 이야기라면 딱 맞을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보실만 하지 않을까요.  

 

 

 

728x90

[맏이] 여기저기서 '힐링 드라마' '힐링 예능'이 등장한지 오랩니다. 하지만 진짜 '힐링 드라마'라고 부를만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바로 JTBC 새 주말드라마 '맏이'. 어떤 드라마일까요?

 

타이틀 사진을 보면 어떤 내용일지 대략 짐작하실 만 합니다. 어린 다섯 남매가 부모를 잃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죠. 제목이 '맏이'인 것은 그 성장을 위해 맏언니가 엄마 노릇을 하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한다는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것이구요.

 

그 '맏이'가 14일 처음 방송됐습니다. 그리고 방송 첫날부터 반응이 호평 일색입니다. 한마디로 무공해 청정 드라마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일단 누가 누군지 구별을 해야 드라마 보는 데 도움이 될 듯. 드라마의 중심인 오남매부터 시작합니다.

 

아역 캐스팅은 단연 최강입니다. 얼굴만 봐도 캐릭터가 절로 느껴집니다.

 

 

다섯 남매의 성격까지 뚜렷합니다. 드라마의 핵심인 맏이답게 똑똑하면서도 심지가 굳고 갖은 고생 속에서도 밝고 바른 마음씨를 간직하는 맏딸 영선. 아역 유해정, 어른 역은 윤정희가 연기합니다.

 

둘째 영란은 집안 살림이야 어쨌든 예쁜게 좋고 비싼게 좋은 허영 덩어리. 어느 집안에나 희한하게 둘째 중에 이런 성격이 많은 듯 합니다. 예쁘게 자라지만 그 예쁜 얼굴 때문에 결국 문제를 만듭니다. 아역 박하영, 어른은 조이진.

 

 

 

'난 공부가 제일 싫어요'라고 말하는 세째 영두. 아들이지만 똑똑한 구석도 없고, 야무진 구석도 없는 그런 아이. 아역은 김윤섭, 어른은 강의식. 그저 착한 것 하나 외에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네째 영숙은 말 없이 소심하고, 부모를 잃은 충격 때문에 몽유병까지 생기는 약한 아이입니다. 언니의 도움이 유난히 필요한 동생이죠. 아역 한서진. 어른은 미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막내는 아직 아기 상태에서 못 벗어난 영재. 김예찬 군이 연기합니다. 10여년 뒤라고 해도 아직 아역 상태일 듯.

 

 

 

 

이 다섯 아이들이 아빠(윤동환)와 엄마(문정희) 밑에서 가난하지만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고 어쩔 수 없이 고모를 찾아가 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고모도 소실 살이에 눈치 보며 사는 처지라는 것. 그 고모네 환경입니다.

 

 

 

고모 은순(진희경)은 동네 갑부 이상남(김병세)의 첩 살이를 하면서, 둘 사이에 아들 종복이를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그 이상남의 본처가 이실(장미희). 둘 사이에는 인호(아역 박재무, 어른 미정)와 지숙(아역 노정의, 어른 오윤아) 남매가 있지만 이실은 누구에게나 냉랭하기만 합니다. 워낙 상남과의 결혼이 원치 않은 결혼이었던데다 결핵이 깊어지며 누구 하나 곁에 가까이 두려 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실을 어려서부터 짝사랑했던 창래아재(이종원)만이 마음을 기울여 이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정도. 딸인 지숙까지도 '차라리 돌아가시는게 낫겠다'는 속내를 비칠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 은순의 조카 오남매가 들이닥치면 반가워 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겠죠. 은순 역시 떠맡을 처지가 아니지만 여기 말고는 기댈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영선이 친자식들조차 열지 못한 이실의 차가운 마음을 열게 되는 스토리.

 

 

 

 

그리고 한 동네에서 성장하는 영선의 소울메이트 순택네가 있습니다.

 

순택이네는 그래도 양반 끄트머리를 자처하는 집안. 어머니 반촌댁은 일자무식에 떡장수지만 그래도 아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전형적인 어머니입니다.

 

그 아들인 순택(아역 채상우, 어른 재희)은 도내 1등을 차지하는 수재. 부잣집 아들인 인호와 학교에서는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입니다. 당연히 부모의 온갖 기대를 품에 안은 '개천에서 난 용' 캐릭터죠.

 

그 동생인 순금(아역 박지원, 어른 미정)은 오빠와는 달리 공부는 전혀 소질이 없지만 마음만은 하늘만큼 넓은 소녀. 눈치도 없고 남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공해 캐릭터입니다. 특히나 아역 박지원 양의 캐스팅은 정말 신의 한수. 단 1회만 봤을 뿐인데도 웃음이 빵빵 터집니다.

 

 

 

'맏이'의 초반은 이 아역들의 눈부신 활약이 신화를 만들어 낼 것 같은 예감.

 

부모 없이 오남매만 남아 갖은 고생 끝에 천천히 어른이 되어 가고, 어른이 되어서도 돌봐줄 사람 없어 또 고생하고, 그중에 또 철없이 맏언니 속 썩이는 캐릭터도 있고...

 

이렇게 이야기만 들으면 참 불쌍하고 눈물나고 답답한 이야기일 듯 하지만, 대한민국 원로 작가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김정수 작가는 그리 뻔한 드라마와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듯 한 구석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어른들을 웃깁니다. 그 웃음이 오히려 더 찡하게 와 닿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전체적인 드라마의 색채는 밝은 녹색입니다.

 

 

 

 

저 또한 농촌 생활 한번 해 본적 없지만, 오가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래, 저 시절엔 다들 저랬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할 드라마죠.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정말 저 시절엔 저랬나' 싶은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피가 조금 다를 뿐,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람살이의 모습은 똑같다고나 할까요.

 

또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듣다 보면 이건 금세 우리 삼촌, 우리 고모, 우리 누이의 모습이라고 공감할 만한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요 인물들만 20여명이 되는 대형 드라마인데도 인물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가 모두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다는 데서 대 작가의 관록이 느껴집니다.

 

저 불쌍한 아이들이 언제 다 자라서 사람 구실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드라마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눈길을 떼기 힘들게 하는 드라마. 이런 드라마는 참 오랜만이 아닌가 싶습니다.

 

 

 

 

 

728x90

[무정도시 정경호]

'무정도시' 라는 드라마가 월/화요일 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동시간대에 방송된 쟁쟁한 지상파 드라마들의 몇배나 되는 검색량이 밀어닥쳤습니다. 검색어 순위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그만치 이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화제의 핵심에는 '정경호'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는 배우. '무정도시'에서는 국내 최대 마약 거래 조직의 하부 조직을 이끄는 중간 보스 시현 역을 맡았습니다.

 

드라마에 대해서도 '영화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정경호에게 저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인도 아니고, 주연을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이미 수많은 출연작과 꽤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에게 이런 평이 나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정경호 본인과 제작진에겐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고 말이죠.

 

 

 

'무정도시'가 방송되기 전까지, '정경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활짝 웃는 미소년의 얼굴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런 모습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런 모습.

 

 

 

 

그런데 '자명고'에서는 슬쩍 남자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무정도시'에서는 활짝 피어납니다.

 

흔히 말하는 '리젠트 스타일'의 머리와 수트 차림의 색다른 모습. 단정한 듯 하지만 감정의 동요가 없는 냉정함이 빛납니다.

 

 

 

대개 '리젠트 스타일'이라고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하는데, 뭐 사실 서양에선 리젠트 스타일이란 말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폼파두르 스타일 Pompadour style 을 일본에서 '리젠트 스타일'이라고 부른다는 얘기가 있군요. 그런데 누가 봐도 콩글리시같은 올빽 All-back'은 엄연히 쓰이는 표현이라니... 참 어렵습니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

 

아무튼 리젠트든 올빽이든, 아무나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머리 모양입니다. 일단 머리칼 외의 얼굴 각 요소들과 전체적인 윤곽이 받쳐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결점을 백일하에 드러내 주는 공포의 헤어 스타일.

 

 

 

 

그런데 저런 수준의 외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머리 모양으로 남성미를 극대화해서 표현하신 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어린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바로 누아르의 제왕, 험프리 보가트 선생이십니다. 물론 머리숱이 적어서 저런 머리 모양밖에 안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저런 허무와 냉정이 깃든 눈빛은 아무한테서나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무정도시'의 정경호에게서 그런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의 대사.

 

"수야... 이 거리, 우리가 다 먹어 보자."

 

남자다움을 강조하기 위한 거친 말투나 과장된 몸짓은 없습니다. 말투도 조용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거역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담겨 있습니다. 상복에 가까운 검은 수트는 원래 '그쪽' 남자들의 유니폼 같은 것이지만, 정경호의 스타일은 결코 그 안에서 땀을 흘리거나 칼을 휘두를 것 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20대1로 '다구리'를 뛴 뒤에도 땀방울 하나, 숨결 하나 가빠질 것 같지 않은 모습입니다.

 

물론 저 수트 안에 탄탄한 근육이 감춰져 있긴 하지만, 결코 근육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이 아닙니다. 정경호는 스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을 익힌 듯 합니다.

 

(혹은 이정효 감독의 디렉션이 정경호의 내면을 제대로 끌어낸 것인지도.)

 

 

 

지난번 리뷰에서도 얘기했지만 '무정도시'에는 유난히 등장인물들이 거리를 바라보는 뒷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좋게 말하면 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욕망의 표현이죠.

 

누구의 눈에서 바라본 미래가 현실이 될까요. 물론 '무정도시'는 꽤 길고 잔혹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의 주인공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그건 지금부터 드러날 이야기들입니다.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글 소식을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아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728x90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첫 주말이 지나갔습니다. '인조' '김자점' '소용 조씨' '인조반정' '병자호란' '소현세자' 등 관련 검색어들이 주말 내내 포털 헤드라인을 장식(물론 가장 오래 떠 있던 검색어는 아무래도 소현세자빈 역의 '송선미' 였지만)하더군요. 물론 검색의 동기에 대해 말하자면 또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뭐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폭됐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1,2회에서는 인조(이덕화)와 김자점(정성모)의 질긴 인연이 중요한 요소로 그려졌습니다. 1636~37년에 걸친 병자호란이 끝났을 때, 인조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도원수 김자점을 죽였어야 정상이었습니다. 도원수는 오늘날의 육군 참모총장.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항복을 하는 상황에서 도원수가 멀쩡히 병력을 유지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건 죽어 마땅한 죄죠.

 

하지만 인조는 김자점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캐자면 1623년,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해 왕이 될 때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드라마에서도 그 장면에 다뤄졌죠.

 

 

 

 

 

일단 인조반정의 주역들을 인명록처럼 살펴보겠습니다. 1623년 3월12일(음력)로 돌아갑니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기록입니다. 광해군의 마지막 날이죠.

 

 

왕이 대신·금부 당상·포도 대장을 부르게 하고, 또 도승지 이덕형(李德泂), 병조 판서 권진을 입직하게 하였다.【이반의 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여러 여인들과 어수당(魚水堂)에서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하여 오랜 뒤에야 그 상소를 보았는데,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이에 유희분·박승종이 두세 번 비밀리에 아뢰어 속히 조사하게 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 명을 내렸다. 대신 이하 관원들이 대궐에 나갔으나 대궐문이 벌써 닫혔으므로 비변사에 모였는데, 비변사 당상들도 와서 모였다.】 도감 대장 이흥립(李興立)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호위하게 하고,【흥립은 박승종의 사돈으로서 그의 추천으로 직임을 제수받았는데 이 때 은밀히 반정군과 합세하였다.】 천총 이확(李廓)을 보내어 창의문(彰義門) 밖을 수색하게 하였다.【이반이 문 밖에 반정군이 주둔해 있다고 고했기 때문이었다. 이확이 명령을 받고 즉시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 때 밤이 이미 자정이 지났다.】 이날 금상(今上)은 연서역(延曙驛) 마을에 주둔하였는데, 대장 김류(金瑬),【이때 전 강계 부사(江界府使)로 집에 있었다.】 부장 이귀【이때 전 평산 부사로서 논핵을 받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은 최명길(崔鳴吉)【전 병조 좌랑.】·김자점·심기원【유생.】 등과 홍제원(弘濟院) 터에서 모였고, 장단 방어사(長湍防禦使) 이서(李曙)는 부하 병사를 거느리고 왔고, 이괄(李适)【북병사(北兵使)에 제수되었는데 떠나지 않았다.】·김경징(金慶徵)【전 찰방인데 김류의 아들이다.】·신경인(申景摠)【도총도사(都總都事).】·이중로(李重老)【이천 방어사(伊川防禦使).】·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유생인데 이귀의 아들이다.】 장유(張維)【전 한림.】·원두표(元斗杓)·이해(李澥)【유생.】·신경유(申景裕)【무신인데 전 부사이다.】·장신(張紳)·심기성(沈器成)·송영망(宋英望)【유생.】·박유명(朴惟明)·이항(李沆)【무신.】·최내길(崔來吉)【사예.】·한교(韓嶠)【전 현감.】·원유남(元裕男)【전 병사.】·이의배(李義培)【무장.】·신경식(申景植)【전 현감.】·홍서봉(洪瑞鳳)【전 승지.】·유백증(兪伯曾)【전 좌랑.】·박정(朴茢)【승문원 정자.】·조흡(趙潝) 등이 모두 와서 모였다. 문무 장사(將士) 2백여 명이【군사는 모두 1천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으로 들어가【전날부터 바람이 불고 운애가 끼어 성안이 낮에도 어두웠었는데 반정군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구름이 걷혀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창덕궁 문 밖에 도착했을 때 이흥립이 지팡이를 버리고 와서 맞이했고 이확은 군사를 이끌고 후퇴하였다. 그리고 대신 및 재신(宰臣)들은 군대의 함성소리를 듣고 모두 흩어져 도망갔다.

 

역사 상식. 광해군 때의 정권 주도 세력은 북인, 특히 대북이었고 인조 반정의 주역들은 서인들이었습니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 소장파였던 서인들은 벼슬이 없거나, 부사/좌랑 정도가 고작입니다. 북병사로 임명된 이괄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내쫓기던 중종반정 때에도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양다리를 걸쳤듯 인조반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광해군이 반정 음모를 입수하고 궁성 경비를 맡긴 이흥립이 바로 반정군과 내통하고 있었으니 이건 뭐 성공하지 못하면 이상할 지경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인조실록의 첫번째 기사, 즉 3월13일 기록된 인조반정의 상세한 내막을 보면 참 진행 과정이 가관입니다. 어쩌면 성공한게 신기할 정도로 엉성한 반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엉성한 음모에도 무너질 정도로 광해군 하대의 정국은 어수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해군에 대한 최근 역사가들의 우호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그리 유능한 군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는 하선이 아니고 진짜 광해여서 그랬는지도.^^)

 

 

 

 

인조반정 기사입니다.

 

 

 상(=능양군, 즉 인조)이 의병을 일으켜 왕대비(王大妃)를 받들어 복위시킨 다음 대비의 명으로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였다. 광해군(光海君)을 폐위시켜 강화(江華)로 내쫓고 이이첨(李爾瞻) 등을 처형한 다음 전국에 대사령을 내렸다.


 상은 선조 대왕의 손자이며 원종 대왕(元宗大王)【 정원군(定遠君)으로 휘는 이부(李琈)인데, 추존되어 원종이 되었다.】의 장자이다. 모후는 인헌 왕후(仁獻王后)구씨(具氏)【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이다. 추존되어 왕후가 되었다.】로 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만력 을미년(1595년) 11월 7일 해주부(海州府) 관사에서 탄생하였으니, 당시 왜변이 계속되어 왕자 제궁(王子諸宮)이 모두 해주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탄강할 때 붉은 광채가 빛나고 이상한 향내가 진동하였으며, 그 외모가 비범하고 오른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무수히 많았다. 선묘(宣廟)께서는 이것이 한 고조(漢高祖)의 상이니 누설하지 말라고 하면서 크게 애중하여 궁중에서 길렀고, 친히 소자(小字)와 휘(諱)를 명하고 깊이 정을 붙였으므로 광해가 좋아하지 않았다. 장성하자 총명하고 어질고 효성스럽고 너그럽고 굳건하여 큰 도량이 있었다. 여러 번 자급이 올라가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져서는 더욱 겸양하면서 덕을 길렀다.


(중략. 중간 내용은 광해군의 실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반정의 정당성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죠.)

 

...상이 윤리와 기강이 이미 무너져 종묘 사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 개연히 난을 제거하고 반정(反正)할 뜻을 두었다.

 

무인 이서(李曙)와 신경진(申景禛)이 먼저 대계(大計)를 세웠으니, 경진 및 구굉(具宏)·구인후(具仁垕)는 모두 상의 가까운 친속이었다. 이에 서로 은밀히 모의한 다음, 문사 중 위엄과 인망이 있는 자를 얻어 일을 같이 하고자 하였다. 곧 전 동지(同知) 김류(金瑬)를 방문한 결과 말 한 마디에 서로 의기투합하여 드디어 추대할 계책을 결정하였으니, 곧 경신년(1620년)이었다. 그 후 경진이 전 부사(府使) 이귀(李貴)를 방문하고 사실을 말하자 이귀도 본래 이 뜻을 두었던 사람이라 크게 좋아하였다. 드디어 그 아들 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 및 문사 최명길(崔鳴吉)·장유(張維), 유생 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 등과 공모하였다. 이로부터 모의에 가담하고 협력하는 자가 날로 많아졌다.

 

(3년 된 음모. 이렇게 3년에 걸쳐 모의가 진행됐고, 참여자도 한둘이 아니었으니 음모가 소문이 아니 날 재주가 없습니다. 특히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따르면 주동자인 이귀가 입이 싸서 '음모가 자주 누설되었다'고 되어 있을 정도.)

 
임술년(1622년) 가을에 마침 이귀가 평산 부사(平山府使)로 임명되자 신경진을 이끌어 중군(中軍)으로 삼아 중외에서 서로 호응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모의한 일이 누설되어 대간이 이귀를 잡아다 문초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김자점과 심기원 등이 후궁에 청탁을 넣음으로써 일이 무사하게 되었다.

 

(김자점이 광해군의 총애를 입은 김상궁 김개시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뇌물을 써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1차 위기.)

 

신경진과 구인후 역시 당시에 의심을 받아 모두 외직에 보임되었다. 마침 이서가 장단 부사(長湍府使)가 되어 덕진(德津)에 산성 쌓을 것을 청하고 이것을 인연하여 그곳에 군졸을 모아 훈련시키다가 이때에 와서 날짜를 약속해 거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훈련 대장 이흥립(李興立)이 당시 정승 박승종(朴承宗)과 서로 인척이 되는 사이라 뭇 의논이 모두들 ‘도감군(都監軍)이 두려우니 반드시 이흥립을 설득시켜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에 장유의 아우 장신(張紳)이 흥립의 사위였으므로 장유가 흥립을 보고 대의(大義)로 회유하자 흥립이 즉석에서 내응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이서는 장단에서 군사를 일으켜 달려오고 이천 부사(伊川府使) 이중로(李重老)도 편비(褊裨)들을 거느리고 달려와 파주(坡州)에서 회합하였다.

 

(도감군이란 바로 훈련도감의 정예병. 말하자면 광해군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핵심이 되는 군사력입니다. 그런데 그 훈련도감을 지휘하는 훈련대장 이흥립이 돌아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반(李而攽)이란 자가 그 일을 이후배(李厚培)·이후원(李厚源) 형제에게 듣고 그 숙부 이유성(李惟聖)에게 고하자, 유성이 이를 김신국(金藎國)에게 말하였다. 이에 신국이 즉시 박승종에게 달려가 이이반으로 하여금 고변(告變)하게 하고 또 승종에게 이흥립을 참수하도록 권하였다. 이반이 드디어 고변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12일 저녁이었다.

 

그리하여 추국청(推鞫廳)을 설치하고 먼저 이후배를 궐하에 결박해놓고 고발된 모든 사람을 체포하려 하는데, 광해는 바야흐로 후궁과 곡연(曲宴)을 벌이던 참이라 그 일을 머물러 두고 재결하여 내리지 않았다. 승종이 이흥립을 불러서 ‘그대가 김류·이귀와 함께 모반하였는가?’ 하므로 ‘제가 어찌 공을 배반하겠습니까?’ 하자 곧 풀어주었다.

 

(이흥립의 평소 처신이 좋았던 것인지... 광해군 말년에 정말 인물이 없었던 것인지. 아무튼 위에서 보듯 이흥립은 수도방위사령관에 해당하는 요직에 있으면서 반정 핵심인 장유의 아우의 장인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광해군의 측근인 박승종과도 사돈 사이입니다. 내심 '어느 쪽이 이기든 내게 설마 해를 입힐까'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계유정난이나 중종반정, 인조반정 때의 실록 기사를 보면 어찌나 5.16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지 가끔 놀라곤 합니다.

 

이렇게 양다리에 능했던 이흥립은 결국 반정에 참여한 댓가로 공신의 자리에 오르지만, 1년 뒤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자결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도성으로 쳐들어 온 이괄 앞에서도 이렇게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 한편으로 몰린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정작 거병 소식을 박승종에게 고발한 김신국이 인조 즉위 후에도 중용됐다는 점입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만...)

 

 의병은 이날 밤 2경에 홍제원(弘濟院)에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김류가 대장이 되었는데 고변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포자(捕者=체포하러 오는 관원)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그를 죽이고 가고자 하였다. 지체하며 출발하지 않고 있는데 심기원과 원두표(元斗杓) 등이 김류의 집으로 달려가 말하기를, ‘시기가 이미 임박했는데, 어찌 앉아서 붙잡아 오라는 명을 기다리는가.’ 하자 김류가 드디어 갔다.

 

(솔직히 '나를 잡으러 오는 놈을 베고 가려 했다'는 말은 핑계로 들립니다. 오히려 다 들통났다고 생각하고 움츠리고 앉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다른 기록에는 '포자를 죽이고 가겠다'는 호기있는 표현보다 '이렇게 된 이상 체포될 뿐'이라고 말했다고도 되어 있습니다.)

 

 

 

 


 이귀·김자점·한교(韓嶠) 등이 먼저 홍제원으로 갔는데, 이때 모인 자들이 겨우 수백 명밖에 되지 않았고 김류와 장단의 군사도 모두 이르지 않은 데다 고변서(告變書)가 이미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군중이 흉흉하였다. 이에 이귀가 병사(兵使) 이괄(李适)을 추대하여 대장으로 삼은 다음 편대를 나누고 호령하니, 군중이 곧 안정되었다. 김류가 이르러 전령(傳令)하여 이괄을 부르자 괄이 크게 노하여 따르려 하지 않으므로 이귀가 화해시켰다.

 

(정작 군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이괄 뿐이었는데 반정의 공로를 가를 때 이괄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결국 이것이 반정 1년 뒤, 이괄의 난의 계기가 된 것이죠. 저런 소극적인 입장이었던 김류가 금세 장 행세를 하고, 정작 군대를 이끈 이괄에게 2등 공신 자리밖에 주지 않은 데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상이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나아가 연서역(延曙驛)에 이르러서 이서(李曙)의 군사를 맞았는데, 사람들은 연서를 기이한 참지(讖地)로 여겼다.

 

(바로 '꽃들의 전쟁'에 나오는 '김자점이 능양군을 찾아가 설득해서 끌어냈다'는 부분은 이 대목이라야 할텐데, 실록에는 그런 흔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려실기술'에는 능양군이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추대할까 경계해 일찌감치 가솔들을 거느리고 연서역에 나와 있었다고 전합니다.

 

아무튼 김자점은 초기 능양군을 임금 감으로 점찍어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고, 그 뒤로도 인조가 김자점을 감히 떨치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인연이 큰 역할을 합니다.) 

 

 

 

 

장단의 군사(=장단부사 이서가 거느린 군사)가 7백여 명이며 김류·이귀·심기원·최명길·김자점·송영망(宋英望)·신경유(申景裕) 등이 거느린 군사가 또한 6∼7백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러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다가,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성문을 감시하는 자를 만나 전군(前軍)이 그를 참수하고 드디어 북을 울리며 진입하여 곧바로 창덕궁(昌德宮)에 이르렀다.

 

이흥립은 궐문 입구에 포진하여 군사를 단속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초관(哨官) 이항(李沆)이 돈화문(敦化門)을 열어 의병이 바로 궐내로 들어가자 호위군은 모두 흩어지고 광해는 후원문(後苑門)을 통하여 달아났다. 군사들이 앞을 다투어 침전으로 들어가 횃불을 들고 수색하다가 그 횃불이 발[簾]에 옮겨 붙어 여러 궁전이 연소하였다.
 
상이 인정전(仁政殿) 계상(階上)의 호상(胡床)에 앉았다. 궁중의 직숙관(直宿官)이 모두 도망쳐 숨었다가 잡혀왔는데, 도승지 이덕형(李德泂)과 보덕(輔德) 윤지경(尹知敬) 두 사람은 처음엔 모두 배례를 드리지 않다가 의거임을 살펴 알고는 바로 배례를 드렸다. 명패(命牌)를 내어 이정구(李廷龜) 등을 불러들이니, 새벽에 백관들이 다 모였다.

 

박정길(朴鼎吉)이 병조 참판으로 먼저 이르렀는데, 판서 권진(權縉)이 뒤미처 이르러 ‘정길이 종실(宗室) 항산군(恒山君)과 함께 군사를 모았는데, 지금 들어왔으니 아마도 내응할 뜻을 둔 것 같다.’라고 하였으므로 곧 정길을 끌어내어 참수하였다. 항산군을 잡아다 문초하니, 혐의 사실이 없어 석방하였다. 그런데 정길은 당연히 참형을 받아야 할 자라 사람들이 모두 그의 참수를 통쾌하게 여기었다.

 

(그러니까 박정길이 죽은 것은 혼란중의 착오에 의한 것이지만, 원래 미움 받는 사람이었다...는 정도의 의미. 항상 혁명 때에는 반혁명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요주의 대상이 됩니다. 얼른 궁으로 찾아온 것은 잘 한 것이지만 오해를 풀지 못할 정도로 혁명 주체들과 평소 관계가 엉망이었다는...)


 그리고 상궁(尙宮) 김씨(金氏)와 승지 박홍도(朴弘道)를 참수하였다. 김 상궁은 선묘(宣廟)의 궁인으로 광해가 총애하여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줌으로써 권세를 내외에 떨쳤다. 또 이이첨의 여러 아들 및 박홍도의 무리와 결탁하여 그 집에 거리낌 없이 무상으로 출입하였다. 이때에 와서 맨 먼저 참형을 받았다. 홍도는 흉패함이 흉당 중에서도 특별히 심한 자라 궐내에 잡아들여 참수하였다. 광해는 상제가 된 의관(醫官) 안국신(安國臣)의 집에 도망쳐 국신이 쓰던 흰 의관을 쓰고 있는 것을 국신이 와서 고하므로 장사들을 보내 떠메어 왔고, 폐세자(廢世子)는 도망쳐 숨었다가 군인들에게 잡혔다.
 
상이 처음 대궐에 들어가 즉시 김자점(金自點)과 이시방(李時昉)을 보내 왕대비(王大妃)에게 반정한 뜻을 계달하자, 대비가 하교하기를 ‘10년 동안의 유폐 중에 문안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밤중에 승지와 사관(史官)도 없이 이처럼 직접 계문하는가?’ 하였다. 두 사람이 복명하여 아뢰자 상은 곧 대장 이귀(李貴)와 도승지 이덕형, 동부승지 민성징(閔聖徵) 등에게 명하여 의장을 갖추고 나아가 모셔오게 하였다. 이에 이귀 등이 경운궁(慶運宮)에 나아가 사실을 진계하며 누차 모셔갈 것을 청하였으나 대비는 허락하지 않았다. 상이 이에 친히 경운궁으로 나아갔다.

 

유사가 연(輦)을 등대하고 위의를 베풀었으나 상은 이를 모두 거두라 명하였다. 교자에 오르기를 청하였으나 역시 따르지 않고 말만 타고 가면서 광해를 떠메어 따르게 하였는데, 도성 백성들이 환호성을 울리면서 ‘오늘날 다시 성세를 볼 줄 생각지 못하였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이하는 생략. 어쨌든 무력으로 궁을 장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서열상 광해군의 모후 뻘인 인목대비의 추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나 광해군은 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것 때문에 여론의 공격을 받아왔고, 그런 의미에서 인목대비의 인정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죠. 다만 인목대비는 은근히 '누가 새 왕이 될지는 내가 결정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광해군을 죽여서 내 아들(영창대군)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이 강해 공신들과 꽤 긴 시간 동안 옥신각신합니다. 이때 이귀가 인목대비와의 기 싸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덕분에 인조반정의 핵심 주체 사이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유지하게 됩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류, 최명길, 심기원, 원두표, 구인후, 김자점 등 인조반정의 주체들은 14년이 지난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점에도 정국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자점을 해칠 수 없는 것은 김류의 조언 때문입니다. 사실은 인조보다는 김류에게 김자점이 더 필요한 인물이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당시 이들 혁명 주체 세력은 같은 서인 출신이지만 뒤늦게 사림에서 정치에 나선 송준길, 송시열, 김상헌 등의 인물들에게 위협을 느낍니다. 특히나 패전에 대한 책임이나 명에 대한 의리의 선명성에서 이들은 뭔가 뒤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혁명 주체 세력의 투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용도로 김자점이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이건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각과는 약간 차이가 납니다. 위에서 그렇게 판단을 했건 말건, 김자점은 왕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 '꽃들의 전쟁'의 출발점이니까요.

 

아무튼 김자점의 생애와 의혹(그는 정말 반란을 꿈꿨나?)에 대한 부분은 다른 글에서 조명해 보겠습니다. 기록을 보면 볼수록, 참 흥미로운 삶을 산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절해고도에서 인조의 배신과 옛 인연을 되새기다 광기어린 춤을 추기 시작하는 김자점 역의 정성모. 정말 대단한 에너지의 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이 장면은 두고 두고 '궁중잔혹사'의 명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쪽 추천 상자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