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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김연아 공화국입니다. 최근 월간 포브스 코리아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김연아는 온갖 연예인들을 모두 제치고 한국의 파워 셀러브리티 1위에 올랐습니다. 추정되는 수입, 매스컴의 주목도, 일반인들의 평가를 종합한 결과입니다.

이런 종합적인 순위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흔히 '귀한 몸'의 지표로 기록되는 것은 광고 모델료입니다. 여기서도 김연아가 최정상에 올라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었는데, 새로 드러난 결과를 보면 'top of top'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 광고업계의 3 top이라고 불렸던 전지현-송혜교-김태희보다도 한 단계 위의 대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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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광고업계는 통상적으로 모델의 순위를 정합니다. 모델료의 액수까지 얼마라고 정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S급, A급, B급, C급 정도로 규정해 놓죠. 모델이 되는 당사자도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이 내부 구분이 바로 모델료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결정합니다.

대부분의 큰 대행사들은 자체적으로 구분을 해 놓고 있고, 필요에 따라 대행사들끼리 정보 교환을 통해 구분을 재조정하죠. 예를 들어 스타 A의 결혼설이나 이혼설이 돌면 모델 우선 순위는 뚝 떨어집니다. 반면 최근의 F4 붐처럼 화려하게 떠오르는 스타는 갑작스럽게 모델료가 급상승하죠. 그 올라간 모델료를 유지하는지, 다시 과거의 수준으로 떨어지는지는 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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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만 해도 연예인들은 앞다퉈 모델료를 공개하지 못해 안달을 했습니다. 어느 시기에나 한 시기를 이끌어가는 리드 모델이 있기 마련이고, 거기서 누구나 인정하는 '대세'가 되기 위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델료에는 어느 정도 뻥튀기도 있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6개월 단발을 1년 전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고, 1-2억원 정도를 늘려 발표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연예인들이 이렇게 발표하는 동안 대행사들은 '관례에 따라 모델료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CF 모델료와 관련된 기사는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국세청. 연예인들의 소득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 인식되면서 세금 추적이 극심해졌습니다. 미디어를 상대로 할 때에는 모델료를 부풀리던 연예인들은 반대로 종합소득세 신고 때에는 수입을 줄여 신고하곤 했지만 세무서에서는 "몇월 며칠자 보도를 보니 무슨 무슨 모델을 해서 총 얼마를 벌었다고하던데 그건 뭐냐"고 따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 이후로 특히나 CF 수입 총액이 상위 TOP 10 안에 드는 연예인들일수록 CF 계약 내용을 비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공개하는 경우도 물론 아직 남아 있지만,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광고 관련 기사들은 '추정액'이라는 단서를 달고 나오게 됐죠.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광고대행사들은 여전히 '관례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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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개된 한 광고대행사의 모델료 기준표를 보면 김연아의 모델료는 1년 전속 기준으로 10억원. 이때의 전속이란 '다른 모든 광고에 출연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동일 계열의 다른 광고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계약기간은 3개월 단발, 6개월 단발, 1년 전속 중 하납니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2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하는 건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장동건-삼성전자나 김혜자-CJ 정도 외에는 10년 이상의 오랜 파트너십은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 동안에도 혜교-지현-태희 급의 모델들(S급)은 '10억원 선'의 모델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대행사의 자료에는 김연아가 10억원 급, 나머지 S급들은 8억원 급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 액수는 김연아가 혜교-지현-태희급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급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김연아가 10억원을 받으면 송혜교는 8억원만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송혜교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광고주가 있다면 10억원 급이 될 수도 있죠. 다만 현재로서는 최고의 큰손들인 대기업들 가운데 김연아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크다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아울러 CF 몸값에 대한 순위를 보면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 가요를 통해 대중에게 소구하는 힘(즉 티켓 파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지현 김태희 송혜교의 예를 보더라도 이들의 최근 출연작은 그리 아름다운 결과를 낳지 못했습니다. 현재 연예인으로서의 가치를 보면 이들보다 손예진이나 이효리가 훨씬 우위라고 할 수 있지만 광고업계는 흥행력 있는 여배우나 가수보다는 생명력이 다소 떨어져도 모델로서의 이미지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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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모델로는 비가 최상위에 올라 있어 장동건이나 송승헌보다 인기 있는 모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남녀 모델을 통틀어 최상위에 있어야 할 모델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다소 의외일 수 있습니다. 배용준이나 이영애, 서태지도 없습니다. 이런 모델들은 다소 특수한 경우들입니다. 모델료는 S급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봐야 하지만 활동 범위를 스스로 엄청나게 축소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한꺼번에 여러 개의 광고에 출연해 매출액을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보다는 모델 활동조차도 극도로 제한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무엇보다도 우위에 놓고 있는 사람들의 특별한 경우죠.

이런 저런 점을 종합해 볼 때 김연아가 최고의 모델로 대우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답 1번은 김연아의 인기와 지명도입니다. 그리고 2번은 용모와 실력의 조화, 3번은 미혼이라는 점(눈치채셨겠지만 위 표의 등장인물들 중 기혼자는 한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4번이 '안티가 없다는 점'일 겁니다. 아마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는 게 5번쯤 되겠죠.

누구나 인기가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입니다.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나쁜 소문도 달고 다니기 마련이고, 안티 집단도 존재하죠. 하지만 지금 현재 국내의 유명인 가운데 안티가 가장 없는 사람이라면 김연아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이벌이 있다면 아마 얼마 전에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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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김연아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이미지 위에 덧씌우고 싶을 겁니다. 김연아의 위업 중 하나는 LG 냉장고와 삼성 에어컨 광고에 모두 출연했다는 겁니다. 삼성과 LG의 가전 분야는 특히나 라이벌 의식이 강해 절대 비슷한 시기에 모델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LG텔레콤과 삼성 애니콜 광고에 동시 출연할 뻔 했던 F4 이민호가 결국 빠진 걸 봐도 알 수 있죠. 하지만 김연아에게는 삼성과 LG 어느 쪽도 감히 시비를 걸지 못했습니다. 이게 바로 현재 김연아가 갖고 있는 위력입니다. (물론 이민호가 표적이 된 사이 슬며시 두 광고에 모두 출연한 김범의 경우도 있긴 합니다. 김연아처럼 '감히' 건드리지 못한 건 아니지만.^^)

스포츠 스타로서는 이전에 누구도 이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국민 영웅 박찬호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현역 시절 안티 그룹의 존재에 시달렸고, 박지성이나 박세리, 최경주도 각자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김연아는 어찌 보면 그동안의 스포츠 스타들에게 있었던 모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은 완전체라는 느낌을 줍니다. (하긴 그러고 보니 박태환이 있군요. 조금 경우가 다른 부분이 있긴 합니다만.)

물론 일각에서는 장미란보다 김연아가 몇 배 더 잘 나가는 광고 모델이라는 게 불편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인지상정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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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백상예술대상을 마침내 마쳤습니다. IS 일간스포츠는 매년 두 개의 연예 시상식을 개최합니다. 하나는 매년 연말에 하는 가요 시상식인 골든디스크요, 또 하나는 매년 봄에 하던 TV-영화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입니다.

올해는 다양한 사정과 요구 때문에 평소보다 2개월 정도 시상식 시기가 앞당겨졌습니다. 매년 백상이 전하는 것은 만개한 꽃바람 같은 것이었는데 올해는 날씨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비록 날씨가 따뜻해지는 천운은 따르지 않았지만, 수많은 스타들이 보여준 화려한 컬러는 봄 소식을 꽤 빨리 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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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45년이라는 긴 역사에 비해 백상예술대상의 명성은 그리 강하게 부각돼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수상 분야가 발목을 잡았다고 봅니다. 과거의 백상은 TV와 영화 뿐만 아니라 연극과 뮤지컬, 라디오까지 포함하는 대형 시상식이었죠.

이렇게 시상 분야가 많아지면 후보 관리가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미리 발표하고, 그저 상을 받는 사람들만 오는 시상식이 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21세기에도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고, 3년 전부터 시상식의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일체 수상자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게 됐고, 후보들의 참석도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단, 어제 시상식의 경우엔 사전에 자신의 수상 사실을 알고 있던 수상자가 딱 한명 있었습니다. 그 얘기는 저 밑에서.)

물론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더군요. 꿈은 연기부문 40명(남/녀, 영화/TV, 최우수/신인)의 후보를 모두 앉혀 놓고 치르는 것이지만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좀 더 자리를 잡으면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앉아서 보시는 분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물론 어제 시상식 정도의 스타들을 모으는 것도 주최측으로서는 뼈골이 빠지는 일입니다.)

우선 수상 결과부터.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수상자 명단

■ 영화부문

▶대상=강우석(강철중:공공의 적 1-1)▶작품상=이형승 아이비픽쳐스 대표(경축! 우리사랑) ▶감독상=이윤기(멋진 하루) ▶신인감독상=이충렬(워낭소리) ▶최우수연기상(남)=주진모(쌍화점)▶최우수연기상(여)=손예진(아내가 결혼했다) ▶신인연기상(남)=소지섭·강지환(영화는영화다) ▶신인연기상(여)=박보영(과속스캔들) ▶시나리오상=강형철(과속스캔들) ▶푸르밀 인기상=주지훈(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박보영(과속스캔들)

■ TV부문

▶대상=김혜자(KBS 엄마가 뿔났다) ▶작품상(드라마)=정을영(KBS 엄마가뿔났다) ▶작품상(교양)=한재신(SBS 그것이 알고싶다 '독도의 선택')▶작품상(예능)=김석현(KBS 개그콘서트) ▶연출상=신우철(SBS 온에어) ▶신인연출상=부성철(SBS 스타의연인) ▶최우수연기상(남)=김명민(MBC 베토벤 바이러스) ▶최우수연기상(여)=문근영(SBS 바람의 화원) ▶신인연기상(남)=이민호(KBS 꽃보다남자) ▶신인연기상(여)=윤아(KBS 너는내운명) ▶예능상(남)=김병만(KBS 개그콘서트) ▶예능상(여)=박미선(MBC 일요일일요일밤에) ▶극본상=유현미(SBS 신의저울)▶하이원 인기상= 김현중(KBS 꽃보다남자) 윤아(KBS 너는내운명) ▶공로상=이순재(KBS 엄마가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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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상식에서 후보들의 참여율이 가장 저조했던 분야가 TV 부문 남자 연기상과 영화 부문 여자 신인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의 그림자가 너무 컸기 때문이죠. 송승헌, 송일국, 박용하 등 세 후보가 '김명민'이라는 이름 앞에서 좌절하고 참가를 기피한 가운데서도 이준기는 끝까지 식장을 지켰습니다. 꼭 우리가 주최측이라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참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제 이준기를 보고 잠시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시상자로 나와 박솔미와 주고 받던 대화중에 나온 일입니다. 이준기가 박솔미의 출연작 '핸드폰'을 '휴대폰'이라고 얘기해 잠시 웃음이 터졌죠. 박솔미가 마무리 멘트로 "..그리고 핸드폰, 꼭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얘기하자 이준기는 "네.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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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전 국민의 70%정도는 '물건을 흘리다'라는 뜻의 '잃어버리다'와 '기억이 사라지다'의 뜻인 '잊어버리다'를 혼동해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준기가 두 단어의 뜻을 정확하고 또렷하게 구별해서 사용하더군요.

여자 신인상 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지난해 여자 신인 연기의 최고봉은 '미쓰 홍당무'의 서우와 황우슬혜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말부터 '과속스캔들'의 열풍이 불었고, 박보영의 이름이 너무 크게 부각됐습니다. 결국 다른 후보들은 '박보영에게 이번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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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시상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뭐니뭐니해도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구도가 가장 좋다는 겁니다. 특히 이번 영화 부문의 남/녀 연기상 같은 경우는 정말 치열한 경합이 이뤄졌죠.

'쌍화점'의 주진모도 '멋진 하루'의 하정우나 '공공의 적'의 설경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상 소감 직전 잠시 눈물을 비친 주진모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 "사람들이 상을 받으면 왜 우나 했는데, 내 이름이 호명되고 무대에 오르자 정말 가슴속에서 울컥 하는 것이 올라왔다. 눈물이 솟구치려는 찰나, 내 눈 앞에서 팔을 풍차처럼 돌리고 있는 조연출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자 눈물이 쑥 들어가더라."

'팔을 풍차처럼'이라는 것은 생방송중에 흔히 볼 수 있는 수신호입니다. 현재 시간이 많이 오버되어 있으니 빨리 진행하라는 것이죠. 오래 전 한 배우는 조연출이 앞에서 풍차처럼 팔을 돌리는데도 무려 7분에 걸친 소감을 털어놓는 바람에 연출진을 기절시킨 적도 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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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상식에서 자신의 수상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딱 하나. 바로 손예진이었습니다. 이건 담당 작가의 실수 탓입니다.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손예진은 이날 시상식 맨 마지막 순서에 장중호 일간스포츠 사장과 함께 대상 시상자로 결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 진행 작가가 대상 시상때 읽어야 할 약식 대본을 2부 시작 때 손예진에게 먼저 건네 준 겁니다(미리 읽어보고 연습해 두라는 뜻으로 가끔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대본 첫줄의 사장님 코멘트가 "손예진씨, 수상을 축하드립니다"였던 겁니다. $%&^*&^((&(&)) (생방송에서도 이 코멘트는 그대로 나갔습니다.)

물론 대본을 집필한 작가야 대상 시상이 여자 연기상 결과 발표보다 뒷 순서이니, 아무 상관 없을거라고 생각했겠죠. 대본을 전달한 작가 역시 모든 시상자에게 자기 코멘트를 미리 나눠줬으니 손예진만 예외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무튼 지난 연말 청룡영화상 수상 때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모습으로 소감을 말했던 손예진은 미리 수상 사실을 안 덕분인지 훨씬 안정된 소감을 말했습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강우석 감독의 경우도 코믹합니다. 올해 백상은 평소보다 2시간 정도 늦은 오후 9시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강우석 감독의 취침 시간은 오후 10시랍니다. 담당자의 강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강감독은 감독상 시상이 끝나자 "그럼 내 순서는 끝났구나"라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했답니다. 그러다 담당기자와 마주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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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 나 이제 할일 다 했으니까 가도 되지?"라고 말하는 강감독에게 기자는 진땀을 빼면서 "안됩니다. 제발 제 얼굴을 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 주십쇼"라고 설득을 했습니다. (대상 수상자가 중간에 가 버리면 정말 대형 사고죠.^^)  이때 담당기자가 복도에서 강감독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모골이 송연합니다.

뭐 생방송을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기 마련입니다. 2006년에는 시상자로 결정돼 있던 남상미가 늦게 오는 바람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김아중이 방송 시작 3분전에 대리 시상을 한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예능상 수상자 유재석은 수상 8분 전에 현장에 도착하기도 했죠. 이럴 때 주최측은 피가 마릅니다.

올해도 시상식 진행 대본에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애가 수애로, 김준이 김범으로 잘못 쓰여져 있어 아찔한 상황을 연출할 뻔 했습니다. 그밖에도 사소한 꼬임으로 준비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했지만.... 이런 기억은 갖고 가 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빨리 잊는게 상책입니다.

기타 수상 결과에 대해서는 이만하면 잘 됐다고 자평합니다. '엄마가 뿔났다'에 너무 상이 몰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지난해 '엄마가 뿔났다'가 국민들에게 해 준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수현 작가가 몇해 전 '시상식 은퇴'를 선언하지만 않았어도 극본상까지 돌아갈 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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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잘한 게 있다면 F4를 한 자리에 모은 겁니다. 뭐 저희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F4의 인기가 극도로 치솟은 가운데서 열린 첫 메이저 시상식에 이들이 오지 않는다면 다른 걸 아무리 잘 해봐야 허전한 행사였겠죠. 그래서 'F4를 모아라!'가 이번 백상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됐습니다만, 정말 넷 다 모으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공이 들었습니다.

'꽃보다 남자'의 촬영 일정이 당일 오전에 오후 스케줄을 모르는 식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네 사람 모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는게 참 기적같은 일이죠. 자리를 빛내 준 네 사람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특히 구준표군은 생애 첫 시상식에서 넘어지는 멋진 추억도 남겼습니다.

물론 진선미 삼총사를 포함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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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백상을 생각하니 다시 쓰러져 잠들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짜증을 유발하는 얼굴들도 잇달아 떠오릅니다. 시상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내가 상도 안 받는데(혹은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왜 가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생방송 2시간 전까지 '수상 내역을 알려달라'며 졸라대는 사람만큼 끔찍한 사람들이 없기 마련이죠. 이런 사람들이 없는 우리나라 좋은나라가 과연 언제나 찾아올지 궁금합니다.


p.s. 어제 현장에서 진행이 꼬여 한껏 짜증나 있는 상황에서 출연자의 길을 막고 질문하던 리포터 한 분을 밀쳤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정말 바보같고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도 뒤늦게 사과했지만,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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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어제 시상식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 옆 사람이 절로 생각나더군요.

한쪽은 장근석, 한쪽은 전 Guns and Roses의 기타리스트 Slash입니다. (원피스에 나오는 로브루치의 캐릭터도 아마 슬래시에서 따온 것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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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드레서는 각자 골라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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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스타 하면 떠오르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아예 2002년용 가수로 기획(?)되어 나왔다는 의혹을 산 미나가 있고, 2002년 월드컵의 열풍을 겪으면서 국민 가수로 떠오른 윤도현 밴드도 있습니다. 이밖에 크라잉넛, 버즈 등도 있지만 진짜 월드컵 수혜가수는 따로 있습니다. 이건 글 맨 아래에서 공개합니다.

2006년 월드컵이 낳은 주요 스타 중 하나인 엘프녀 한장희가 가수로 데뷔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똥습녀, 시청녀에 이어 결국 엘프녀도 활동을 시작하는군요. 막상 2006년 당시에는 온 사방의 인터뷰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나는 연예인 절대 안 할 것"이라고 했지만 조금 지나고 나자 이미 몇년 전부터 트레이닝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죠. 훈련을 시작한 것이 2004년 무렵이라고 알려졌으니 무려 5년 동안 실력을 갈고 닦은 셈입니다. 소녀시대처럼 15세때부터 훈련이 시작된 것도 아니고... 좀 길긴 하군요.

아무튼 엘프녀도 월드컵 스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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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스타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리키 마틴입니다. 무명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수였던 리키 마틴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주제곡인 'Cup of Life'로 세계 최고의 팝스타 자리에 올랐습니다. (물론 무명이라는 건 세계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어린 시절엔 미키마우스클럽 출신 -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이쪽 출신이죠 - 의 아이들 스타로 꽤 유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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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대 월드컵 주제가중 가장 인기를 얻은 노래라면 Cup of Life보다는 '올레-올레올레올레'로 유명한 'Ole Ole'를 먼저 꼽아야겠지만, 이 노래로 스타가 된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리키 마틴은 잘생긴 외모와 춤 실력을 이용해 그 뒤로 Livin La Vida Loca까지 히트시키며 한때 라틴 팝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한때 이탈리아 꼬모에서 설익은 리조또를 씹으며 리키 마틴을 인터뷰하던 좋은 시절이 생각납니다. 아. 세월이여.) 세월이 흐르고 그렇게 하늘을 찌를 듯 하던 리키 마틴의 인기도 참 온데간데 없으니 정말 권불십년이란 말이 맞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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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월드컵으로 뜬 가수로 아무래도 윤도현을 가장 먼저 꼽게 됩니다. 그 전에도 물론 인기 밴드였지만 '오 필승 코리아' 열풍을 몰고 온 데에는 아무래도 YB의 공로가 가장 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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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지금까지도 '월드컵 가수'라고 불리는 미나는 그 뒤로 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사실 가수라고는 하지만 누구라도 미나를 생각하면 노래보다는 몸매가 먼저 떠오르죠. 아마도 미나는 '월드컵으로 가장 성공한 가수'보다는 '월드컵을 가장 잘 이용한 가수' 쪽으로 포함시켜야 할 듯 합니다.



그럼 국내 가수 가운데 월드컵을 통해 가장 크게 성공한 가수는 누구일까요?

사실 일반인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하지만 '월드컵 덕을 가장 많이 본 가수라면 싸이를 꼽아야 합니다. 벌써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해지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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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당시 싸이는 다소 불미스러운 범법사건^^ 때문에 방송을 쉬는 연금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월드컵이 개최됐고, 응원의 불꽃이 그렇게 뜨거워질 줄 몰랐던 각종 기업과 단체들은 거리 응원 인파를 모으기 위해 가수들을 동원한 대형 공개 행사를 앞다퉈 개최했습니다. (뒷날의 그 인파를 생각하면 가수 개런티가 아까울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가수 수요가 부족하자 방안에 조용히 있던 싸이에게도 손길이 뻗어왔습니다. 사실 야외에서 관중들을 흥분시키려면 발라드가수로는 한계가 있죠. 특히나 각종 대학 행사등을 통해 내공을 쌓은 싸이에게 기회가 온 겁니다.

이때만 해도 싸이는 무척 겁을 먹었다고 합니다. 혹시나 야유라도 나오지 않을까 해서였죠. 하지만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관객들은 싸이의 사소한(?) 잘못 따위는 싹 잊어버렸고, 열심히 월드컵 응원관중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싸이에게는 어느새 면죄부가 내려진 셈이 됐습니다. 자연히 그 열기를 타고 방송 출연도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이 응원 열기의 경험이 바로 싸이의 명곡인 '챔피언'의 탄생 배경이 됐습니다. '모두의 축제/ 서로편가르지 않는것이 숙제'라는 얘기가 바로 월드컵 응원 얘기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월드컵 열기가 식지 않은 2002년 9월, 이 노래는 당연히 대박이 났습니다.




뭐 2006년의 싸이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챔피언'에다 신무기 '위 아 더 원'으로 무장한 싸이는 월드컵 관련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수로 부각됐습니다. 아마도 이때가 싸이의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싸이에게는 또 한번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군대를 두 번 간 남자가 되어 버릴 운명이었던 거죠. 세월은 빨리도 흘러 오는 6월이면 싸이는 두번째 제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묘하게도 또 한번의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시기입니다.

과연 지금부터 준비하면 2010년 월드컵은 싸이에게 세번째 도약의 기회를 제공해줄까요? 지금까지의 운으로 봐선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과연 엘프녀 한장희도 그때 스타덤에 올라 있을지, 그건 좀 더 지켜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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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런데 그때 나름 유명했던 시청녀는 지금 뭘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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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가 2주에 걸쳐 MBC TV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습니다. 주제는 '너무 솔직해서 사고를 치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었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난 10년간 권상우와 주고 받은 말들이 눈앞을 스쳐갔습니다.

물론 고민은 저렇게 설정됐지만, 진짜 고민은 다른 데 있었죠. 권상우에게 현재 최고의 악재는 자신도 밝혔듯 거짓말로 인한 이미지 악화입니다. 그는 결혼식 당시 아내 손태영의 혼전 임신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임신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는 '오삭동이'라는 비아냥이었죠.

하지만 권상우는 2주간의 '무릎팍 도사'를 통해 어느 정도 이미지 회복에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그가 약점으로 꼽은 '솔직함'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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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가 솔직담백한 성격이라는 것은 그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갈 길이 정해지면 그냥 질러 버리는 스타일이죠.

그가 25일 밤 손태영과 만나 거의 첫눈에 반하다시피 하고 그대로 밀어붙여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털어놓는 동안, 잠시 눈앞에 스치는 광경이 있었습니다.

6년 전, 권상우는 대전 동산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남대 미술교육과 출신인 권상우는 교사자격증 취득을 위해 교생실습이 필수였죠. 이 학교로 가게 된 것은 친형인 권상명 선생님이 이 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중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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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 정도의 스타가 교생실습을 하고 까까머리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건 당시에도 흥미로운 뉴스였기 때문에 수많은 기자들이 대전으로 몰려갔습니다. 당시에 저도 내려갔는데 학교 문 앞에 다른 학교 여학생들이 줄을 서고, 난리도 아니더군요.^ 이때 우연히 권상명 선생님과 잠시 1:1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얘기 끝에 '권상우의 여성관'에 대한 화제가 나왔습니다. 이때 권선생님은 씩 웃으면서 말씀하시더군요. "어려서부터 여자 하나를 좋아하면 다른 데를 못 보더라구요. 순정파라고 해야 하나, 한번 빠지면 다른 여자는 거들떠도 안 봐요." 권상우의 이런 성격에 대한 얘기는 서울에서도 들은 적이 있는 터라 형의 말씀에 함께 으하하 웃을 수 있었습니다.

형이 알고 있을 정도면 대전에 살던 시절의 얘기였을 겁니다. 한눈에 반해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스타일이라는 얘기는 권상우가 '무릎팍 도사' 이전에도 직접 여러 차례 밝힌 이번 결혼 과정과도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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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는 손태영을 만나면서 열기구를 태우는 등 호주로 데리고 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고, 사랑을 고백했다고 했습니다. 호주의 대자연을 유난히 좋아하던 권상우의 얘기도 사실 이전에 들은 것과 거의 똑같더군요.

2006년에 만났을 때도 권상우는 '저 푸른 초원' 얘기를 했습니다. 아마 온 가족이 호주 여행을 다녀온 것이 이 무렵인 듯 합니다. "나중에 가정을 꾸리게 되면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넓은 초원에 전원주택을 지어 놓고 살고 싶다." 이때는 손태영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시절입니다. "그 넓은 초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고 뛰어 놀고, 좋은 아버지로 아이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

당시 했던 얘기와 25일 '무릎팍 도사'에서 한 얘기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런 얘기들은 갑자기 지어낸 것이 아니라, 권상우의 마음 속에 늘 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데 대한 안타까움이 가슴 속 깊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런 일련의 행돌들은 결국 '내 가족을 갖고 싶은 강한 열망'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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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의 권상우는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군복무를 마친 뒤 서울 이모 집에 얹혀 살면서 부지런히 모델 에이전시에 자기 사진을 돌리던 꿈만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던 권상우는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동네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었다. 몸이 재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헬스클럽을 등록하고 나면 밖에 나가서 먹을 점심값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많이 먹었다. 정말 많이 먹었다. 점심을 걸러야 하니까. 그러고서 압구정동으로 전철을 타고 나가 모델 에이전시를 돌면서 혹시 일 들어온게 없나 확인했다. 대부분 그 일대에 회사들이 몰려 있어서 한남대교에서 삼성동 정도는 그냥 걸어서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다시 밥을 먹으러 들어왔다."

그러다 우연히 MBC TV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 중국집 배달청년으로 등장했고, 거기서부터 권상우의 스타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립니다.

(그 무렵에 대한 얘기는 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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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솔직해서 늘 손해'라는 말과 '거짓말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그의 모습은 상당한 불일치를 이루는 게 사실입니다. 결혼과 일련의 과정을 통해 팬클럽 급감과 CF 이탈로 100억원 가까운 손해를 입은 것도 눈에 보이는 변화입니다.

하지만 "100억원을 날린 대신 1조원을 얻었다(아들을 낳았다는 뜻)"며 활짝 웃는 권상우의 모습은 본래의 가식 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동안 보여준 행동들이 '가족을 사랑하는 남자'이기 때문에 치러야 했던 일들임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데에도 어느 정도 성공한 듯 합니다.

앞으로는 아마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동안의 다소 경솔했던 행동에 어느 정도 족쇄를 채워 주는 역할을 하겠죠. 그런 면에서, "욱 할때는 아들 얼굴을 생각하라"는 무릎팍도사의 처방은 어느 때보다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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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가 마침내(혹은 예상대로) 아카데미상을 차지했습니다. 죽은 히스 레저가 산 다른 명배우들을 압도한 셈이죠. 레저의 수상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있겠지만, 아는 분들은 다 아십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수상이었는지를.

지금은 히스 레저가 요절한 재능있는 스타의 대명사처럼 불리지만 그 전에도 수많은 요절 스타들이 있었죠. 이소룡이 있었고,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있었고,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있었고, 약간 범위를 넓히면 기타의 제왕 지미 헨드릭스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름들을 모두 합해도 '제임스 딘'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상징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히스 레저는 이번 수상으로 제임스 딘의 신화를 넘어 선 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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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올해 히스 레저가 수상할 수 있었던 환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론의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후보의 선정을 보면 아카데미가 교묘하게 레저의 수상을 지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올해 남우조연상의 후보들입니다.

Heath Ledger for The Dark Knight (2008)
Josh Brolin for Milk (2008/I)
Robert Downey Jr. for Tropic Thunder (2008)
Philip Seymour Hoffman for Doubt (2008/I)
Michael Shannon for Revolutionary Road (2008)

조쉬 브롤린의 '밀크'는 보지 못해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왕년의 오스카 수상자들에 비해 필모그래피나 지명도에서 많이 떨어집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마이클 섀년은 연기는 좋았지만 극중 비중이 너무 작았죠. 윈슬렛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두 번 방문하면 그의 역할은 끝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위력을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트로픽 선더'로 오스카를 받는다면 그건 그 자체가 패러디 코미디의 소재가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있습니다. 영화도 오스카가 좋아하는 진중한 소재에다 연기 또한 흠잡을 데 없이 막강합니다. 하지만 역시 너무 연극적인 소품인데다, 아카데미는 이미 주연상을 받은 배우에게 조연상을 주는 것을 꺼린다는 속설(한 평론가의 주장입니다)도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년에 비해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와 경쟁할만한 후보가 똑부러지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레저의 운이기도 하죠. 지난해의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뎀 같은 역사에 남을 연기가 같은 해에 나왔다면 조커 아니라 조커 할아버지를 했어도 수상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오스카 81년 사상 두번째의 사후 연기상 수상의 영광이 레저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죠.

(어떤 사람들이 그동안 사후 수상에 실패했는지 궁금한 분들은 맨 아래 링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그전에 한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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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전설은 1956년 이미 탄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청춘의 상징으로 꼽히는 명우 제임스 딘이 1955년 사망한 뒤, 영화 '에덴의 동쪽'으로 195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죠. 세상을 떠난 사람이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도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딘의 사망은 반향이 컸습니다.

당시의 여론은 너무도 당연하게, 딘의 수상으로 전설을 완성시키자는 분위기가 거셌지만 그 해의 대세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마티'였습니다.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고, 흥행에서도 대박을 기록했죠. '블랙록에서의 하루'에서의 스펜서 트레이시도 당대의 터프 가이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연기(트레이시를 괴롭히는 악당들 중 하나로 보그나인이 출연합니다^)를 펼쳤고, 제임스 캐그니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이름도 쟁쟁합니다.

Marty (1955) - Ernest Borgnine
Bad Day at Black Rock (1955) - Spencer Tracy
East of Eden (1955) - James Dean
- This was the first posthumous acting nomination in Academy Awards history.
Love Me or Leave Me (1955) - James Cagney
Man with the Golden Arm, The (1955) - Frank Sinatra
 
하지만 제임스 딘이 1956년에 주연상을 받기 어려울 운명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유는 바로 그 1년 전인 1955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휩쓴 작품과 관련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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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 카잔 감독의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는 1955년 남우주연(말론 브란도), 여우주연(에바 마리 세인트)과 작품-감독-각본상 등 핵심 5개 부문을 싹쓸이하는 등 8개 부문을 석권한 걸작입니다. 총 10개(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는데 그중에서도 남우조연 부문에는 무려 3명이 후보로 올라가 집안 싸움을 벌였습니다. 결국 표가 분산된 탓인지 아무도 못 받았죠.

어쨌든 이 작품이 화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1년 전 같은 시상식에서 이렇게 싹쓸이를 해 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에서 2년 연속으로 남우주연상을 준다는 건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특히나 아카데미가 싫어하는 수상의 방식입니다.

아카데미상은 한 해에 한 영화에 상을 몰아주는 데에는 전혀 인색하지 않지만, 같은 배우나 같은 감독의 영화에 2년 연속으로 좋은 대우를 해 주는 것은 상당히 꺼리는 듯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톰 행크스의 3회 연속 남우주연상 수상 좌절 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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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필라델피아', 95년 '포레스트 검프'로 행크스가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나서 96년 벽두, 언론은 '행크스의 3연패가 유력하다'며 바람을 잡았습니다. 해당작은 론 하워드 감독의 '아폴로 13'. 그리고 마땅히 행크스를 저지할만한 다른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론의 예상이 불쾌하기라도 했던 듯 아카데미는 행크스를 아예 그 해의 남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물론 '데드 맨 워킹'의 션 펜이나 '일 포스티노'로 사후에 후보에 오른 마시모 트로이지 등 당시에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수상자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였습니다.

만약 여론이 너무 일찍부터 '행크스 3연패'라는 식으로 몰아 가지 않았더라면 행크스는 진짜 사상 초유의 3연패를 달성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Leaving Las Vegas (1995) - Nicolas Cage
Dead Man Walking (1995) - Sean Penn
Mr. Holland's Opus (1995) - Richard Dreyfuss
Nixon (1995) - Anthony Hopkins
Postino, Il (1994) - Massimo Tro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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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957년으로 돌아갑니다. 제임스 딘은 이번엔 '자이언트'로 남우주연상을 다시 한번 노크합니다. '자이언트'는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임스 딘이라는 막강무비의 세 주역 때문에 화제가 안 될래야 안 될수가 없는 작품이었죠. 특히 비뚤어진 성격의 석유 재벌 역을 맡은 제임스 딘의 연기는 그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다고 할만한 독특함으로 빛났습니다. 영화가 그의 사후 1년 뒤인 56년에 공개됐으므로 57년 오스카 후보에 오른 겁니다.

King and I, The (1956) - Yul Brynner
Giant (1956) - James Dean
Giant (1956) - Rock Hudson
Lust for Life (1956) - Kirk Douglas
Richard III (1955) - Laurence Olivier

하지만 이 해의 제왕은 생애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 '왕과 나'의 율 브리너였습니다. 이 해의 제임스 딘은 사망한지 2년이나 됐다는 점이 이번엔 감점 요인이 된데다, 공연한 록 허드슨과도 표를 나눠 가져야 하는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물론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왕과 나=율 브리너'로 통하는 인상적인 명연기를 보여준 대머리 왕의 위력이 너무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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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기는 배우가 책임질 수 있지만 영화의 흥행은 당시의 대진운을 비롯해 수많은 다른 외부 요인들에 의해 어디로 갈 지 모릅니다. 연기상의 경우에도 상을 받고 못 받는 데에는 그 해의 다른 배우들, 영화의 완성도, 심지어 그 전년이나 전전년의 수상 기록, 같은 해의 다른 시상식 결과 등 수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한마디로 한 배우의 전설을 완성시키는 데에는 실력 못잖게 운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히스 레저는 비록 사후이긴 했지만 제임스 딘보다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물론 그런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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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의 오스카를 대리수상한 아버지 킴, 어머니 샐리, 그리고 누나 케이트 레저입니다. 영화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케이트 레저의 '케이트'와 히스 레저의 '히스'는 모두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따 온 것이라는군요. 히스클리프같은 비운의 주인공 이름을 따 온 바람에 슬픈 운명을 맞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칩니다.





p.s. 사후 수상은 대단히 감동적인 이벤트이지만, 이것 역시 '이벤트'일 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절대 순수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감정에 기대 시상식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하는 이벤트죠. 아카데미가 81년 역사 동안 단 두번밖에 사후 시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시상식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정적인 선동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이죠.

따라서 사후 시상을 당연한 일이라거나,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는 시선은 위험합니다. 사망한 최진실에게 상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떤 시상식을(물론 비난받아 마땅한 시상식이긴 했지만) 비난하는 것은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노벨상은 아예 사망한 사람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것을 규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업적으로만 평가하자는 생각입니다. 시상식장이 추도식장으로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관련된 글은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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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시상식장, 사회자가 '동 건 촹'을 호명하고, 장동건이 환호에 답합니다. 수상소감은 "살라카둘라 매치카불라 비비디바비디 부." 대체 저게 뭔 팬더 국수뽑는 소린가 했던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살라카둘라 매치카불라'는 떼놓고 '비비디 바비디 부(Bibidi Babidi Boo)'만 귀에 쏙쏙 들어온 분들도 많을 겁니다. 장동건이 읊조리는 곡조 또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건데...하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테구요. 놀랍게도 '드래곤 볼' 애독자 중에도 이 말이 기억 안 나는 분들이 있다니 참 신기합니다.

비비디, 바비디, 부가 따로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요? 잘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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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CF를 못 보신 분들은 거의 없겠죠?

이 광고 홈페이지만 들어가 봐도 다 써 있지만 이 '비비디 바비디 부'의 정체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꽤 있더군요. 요즘 이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대체 비비디 바비디 뜻이 뭐야?"

디즈니 만화영화 '신데렐라'에 나오는 주문입니다. 신데렐라에게 무도회 채비를 해주는 요정 할머니가 외는 주문이죠. 주문을 외면 호박이 마차가 되고 누더기가 드레스가 됩니다. 그래서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라는 의미가 나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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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저작권에 민감한 디즈니다 보니 영어로 만든 버전은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질 않더군요. 포르투갈 말로 된 더빙 버전입니다. 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살라카둘라 매치카불라-'는 선명하게 잘 들립니다만.^^ 가사는 별것 없고, 대략 '간절히 원하면 원하는대로 이뤄진다'는 내용입니다.

Salaga 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Put 'em together and what have you got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It'll do magic believe it or not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ans mechicka booleroo
But the thingmabob
that does the job
is bibbidi-bobbidi-boo

Salagadoola mechicka boola
bibbidi-bobbidi-boo
Put 'em together and what have you got
bibbidi-bobbidi
bibbidi-bobbidi
bibbidi-bobbidi-boo!

자세히 보니 '살라가둘라/ 메치카불라'가 맞군요.^^

그런데 '신데렐라'야 워낙 오래된 작품이고, 이걸 못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보셨더라도 기억에서 지워졌거나), 아마 '드래곤 볼'을 안 보고 자란 분들은 없을텐데 그 분들도 이 비비디 바비디를 기억못하시는 건 좀 의외입니다.

드래곤볼 최강의 악당이라면 아마도 마인 부우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이 부우를 만든 마법사의 이름이 비비디, 그리고 그의 아들이며 부우를 깨워 세계 정복에 이용하려 한 마법사의 이름이 바비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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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아버지 비비디, 왼쪽이 아들 바비디입니다. 이 일련의 이름을 비비디-바비디-부우라고 지은 것은 도리야마 선생의 유머감각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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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착한 부우 참 좋아합니다. (...동질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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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Deerhof라는 밴드가 2004년에 이 제목의 앨범을 낸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뭘 해도 '수리수리마수리 수수리사바' 하나지만 서양에서는 주문도 참 다양합니다. 유명한 '아브라카다브라'에서 '비비디 바비디 부'까지. (가끔 '하쿠나 마타타' 얘기 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건 주문은 아니죠.^^)

아무튼 결론은 '비비디 바비디 부'는 한국식으로 하면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이 닦는 소리의 차음이라고도 하죠)'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 '치키치키'를 쓰는 광고가 나오는 날이 언제쯤 올까 궁금합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나는군요. 혹시 '우랑바리다라나 바로오 무따라까 따라마까 쁘라냐!'도 기억나는 분들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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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연예인 강호동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친근감 때문입니다. 가끔은 MC몽이나 유세윤을 폭력으로 제압(?)하기도 하고, 처음 정했던 조건에 쉽게 승복하지 않은 채 끈질기게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억지를 부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그의 밑바닥에는 대중에 대한, 또 함께 출연하는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선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방송인 강호동을, 가끔은 거칠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구라나 신정환과는 다른 종류의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18일 방송된 '무릎팍도사'에서 유세윤과 강호동의 모습은 그런 부분에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바로 늘 웃음의 대상이 되는 권상우의 혀짧은 발음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입니다. 권상우도 웃어 넘겼지만, 사소하게 넘어가기에는 그 대목이 영 마음에 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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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윤은 처음부터 '덩서야 한덩서'를 시작으로 '천국의 계단(한정서는 이 드라마에서 최지우의 이름)'에 나오는 대사를 흉내내며 권상우를 자극했습니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권상우의 프로필을 낭독할 때에도 마지막 순간에 '다당은 움디기는 거야(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명한 권상우의 CF 멘트를 흉내냈죠.

이걸 본 권상우가 기가 차다는 듯 웃자 강호동은 사과한답시고 엎드려서 '데송합니다. 데송합니다'를 연발했습니다.

뭐 재미있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고, 언뜻 암시된 대로 권상우와 강호동이 사석(같은 사우나에 다닌다더군요)에서는 형 아우 하고 지내는 격의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편안한 말투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발음 부분은 배우로서의 권상우에게 계속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어 온 부분이고, 어찌 보면 태생적인 약점입니다. 권상우는 데뷔 이후 줄곧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현재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이 약점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입니다(물론 흥분하거나 긴장된 장면의 연기 때에는 가끔 다시 살아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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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발음으로 놀리기'는 '천국의 계단' 때의 상대역이었던 최지우가 더 많이 당한 바 있습니다. 있는 자리건 없는 자리건, 화를 잘 내지 않는 최지우의 성품을 이용해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약점을 놀려먹었죠.

아무튼 이런 부분들은 당사자의 노력으로 고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보는 사람을 그리 즐겁지 않게 합니다. 변명거리는 많습니다. 언뜻 완벽해 보이는 권상우에게도 그런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을 좀 더 행복하게 할 지도 모르고, 권상우 본인이 웃어 넘겼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난리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진짜 코미디란 남의 약점보다는 나의 약점을, 남의 부족한 점보다는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수근과 정명훈이 '키컸으면'을 외칠 때 웃을 수 있었던 건 자신들의 약점을 코미디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정종철이나 오지헌이 자신들의 외모를, 대성과 김종국이 자신들의 작은 눈을, 이윤석이나 윤종신이 자신들의 건강을 거론하며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건 페어 플레이지만, 이런 약점들을 다른 사람들이 캐내 공격하는 건 아무래도 반칙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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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에게 혼전 임신을 부정한 거짓말을 추궁하거나, 손태영의 옛날 애인이던 신현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거나, 이런 부분들은 토크 프로그램의 본령이고 권상우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 이미 감수했을 부분들이니 여기서 예의를 따지는 건 좀 빗나간 행동입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보다는 혀짧은 소리의 흉내가 훨씬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최근 몇년 사이 막말과 예의상실이 예능 프로그램의 기본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경험담을 이용해 남을 스토커로 몰거나(김세아 - 김민준 사건이죠), 방송에서 '개새끼'라는 욕을 하고도 아직 아무런 조치도 없는 방송(상상플러스는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이 만연하고 있는데, 그나마 품위를 유지하고 있던 국가대표 방송인 강호동까지 그런 대열에 합류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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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날 방송 최고의 유머는 권상우의 '숙면'이었습니다. 자신과 송승헌이 출연한 영화 '숙명'이 전날 잠을 못 잔 관객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했다며 '숙명'이 아니라 '숙면(영어로는 Deep Sleep이라고 친절하게 영역까지)'이라고 빗대더군요. 그러고 보면 '자신의 약점을 승화시킨 개그'의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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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보신 분도 있습니까? 연예인이나 웹서핑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퓨마쇽(Pumashock)이라는 아이디를 아실 겁니다. 아니면 '소녀시대, 원더걸스 노래를 한국어로 자유자재로 부르는 흑인 여가수'라고 하면 아시려나요?

이 흑인 여가수의 이름은 나탈리 화이트입니다(나이는 굳이 안 밝히겠다는군요. 한 독자 분의 도움으로 알아낸 결과는 82년생^^). 아직 음반을 내거나 한 적은 없지만 게임 음악 등을 직접 만들고 있는 뮤지션이고, 자신이 만든 곡으로 싱글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프로 가수 지망생이더군요.

며칠간 추적 끝에 저희 팀에서 이메일 인터뷰에 성공했습니다. 알고 보니 나탈리, 엄청나게 밝은 아가씨에다 한국 대중문화를 줄줄이 꿰고 있는 미국의 한류 마니아더군요. 발빠른 SBS TV '스타킹'에서도 벌써 접촉을 했다니 잘하면 곧 한국 TV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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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셨던 분들이라면 일단 노래를 들어보시는게 가장 이해가 빠를 겁니다. 소녀시대의 'Gee'.



노래 중간의 가사 '바보'에서 머리를 툭툭 치는 몸짓을 보면, 그냥 한국어를 흉내만 내는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포 혹은 2세 쯤 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사실 지난주에 교포걸님이 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시기 전까지 이 친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더군요. 원더걸스의 '노바디' 등 노래들을 한국어로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더욱 놀라운 건 발음만 한국어로 하는게 아니라 그 의미까지 알고 부르더라는 겁니다.

이런 친구라면 한번 찾아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유튜브에 개인 페이지가 있더군요. 즉시 안 되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쪽지를 날렸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오더군요.^

Hello Song,

Thank you so much for contacting me! It's a pleasure to meet you :)
It's so cool that you watched my videos! I'm just amazed at the positive response and would like to reach out to as many Koreans as I can with my singing.
I'd love to do an email interview with you. It's an awesome opportunity!
Please contact me at 이메일 주소^^ with your instructions.
...how exciting X-D

Thanks again,
Natalie White

그래서 그 다음에는 저보다 영어 잘 하는 후배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답장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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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과시하듯 중간 중간 한국어를 섞어 쓴 구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일 먼저 본 한국 드라마는 지진희 수애 조현재 주연의 '러브레터'였고, 가장 먼저 본 뮤직비디오는 신화의 것이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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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보고 나온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902/18/200902181021261076020100000201040002010401.html

그러니까 시카고 근처 노스웨스턴 대학(대단한 명문입니다. 엄친딸 냄새가...) 재학중 자취방에 채널이 3개밖에 안 나오는 채널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잘 나오는 채널이 하필 한국 교포 유선방송이라 어쩔수없이 한국 문화에 노출됐다가 깊이 빠져들었다는군요.

그 뒤로 10년. 항상 백설공주에 나오는 듯한 멋진 남자들(Prince Charming)이 여주인공을 놓고 싸우는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고, 이제는 좋아하는 한국영화로 김기덕 감독의 '빈집(3-iron)'을 꼽는 수준이 됐습니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의 이름은 한 20여명 되는 리스트였지만, 가장 먼저 있는 이름은 윤은혜였습니다. '커피 프린스'를 열심히 본듯 공유의 이름도 곧 나오더군요. 특히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해피 투게더'의 '쟁반노래방'이었고 유재석과 김제동을 정말 좋아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신동엽과 이효리 시절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온갖 한국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과 노래까지 챙기고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지만 LA의 클럽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새 춤을 춘 뒤 새벽까지 하는 코리아타운 식당가에 가서 daeji bulgogi, spicy rice cakes(...아마 떡볶이가 아닐까요^), ox-tail soup(...떡볶이에 꼬리곰탕이라... 음... 럭셔리하군요) 등을 시켜 먹는걸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역시 한국의 24시간 영업문화, 경쟁력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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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자기 홈페이지의 게시글을 통해 "내가 한국어로 연기한다면 '내이름은 김삼순'에 나오는 다니엘 헤니 같지 않을까?^^" (I want to perform in Korea someday and act too! I could be like Daniel Henney's character in "Samsoon" haha!** I'm working hard to learn the language, so please forgive any mispronunciations... I'll get better!) 라고 말하고 있을 만큼 한국에 대한 나탈리의 관심은 뜨겁기만 합니다.

그동안 한류 팬이라면 우리 아시아 동포들이나 '대장금'을 보시는 아랍, 아프리카의 친구들만 생각했다가 미국 본토에서 이런 반응을 보니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는 굳이 밝히지 않지만 한국 문화에 빠져든 지 10년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아마 30대 초반 정도...? ^^  요즘 '꽃보다 남자'도 혹시 잘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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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국에서 모습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메일로만 접해봤지만 참 밝고 씩씩한 친구더군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꿈을 펼치고 잘 살기를 바라게 됩니다.

16일 올라온 나탈리의 최신작, 이효리의 '유고걸'입니다.




원더걸스의 '노바디',





동방신기의 '미로틱'입니다. 특이합니다.



유튜브 개인채널 http://www.youtube.com/user/Pumashock 에서 신청곡도 받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편곡하는지 궁금하신 곡이 있으면 신청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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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박중훈 쇼'의 게스트로 최양락이 나와 좋았던 옛 시절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때 박중훈이 최양락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배우 경력을 폭로(?)했죠. 최양락은 87년 이후 총 6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박중훈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뭣보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공연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규형 감독의 1987년작,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입니다. 흔히 '청춘스케치'라면 이 영화였는데 뒤늦게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1994년작 'Reality Bites'가 '청춘스케치'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되면서,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라는 긴 원제를 다 얘기해야 통하는 영화가 돼 버렸습니다.

지금이라면 우스운 숫자지만 1987년 7월 개봉한 이 영화는 2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6월 항쟁 때 깔린 종로 거리의 최루탄 가루가 아직 다 흩어지기 전인 정치의 시대였지만 오히려 그런 분위기 때문에 갑갑한 청춘들에게는 피난처 역할을 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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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겠지만 한국 대중문화는 1985년 스포츠서울이 창간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88년 올림픽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컬러 1면과 가로쓰기 체제의 스포츠 신문이 새로 나온 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죠.

이 신문은 급속도로 젊은 층 독자를 빨아들였는데, 당시의 제작1선에 섰던 분들은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규형이라는 새로운 인물의 주간 연재 소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였죠. 감각있는 필체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던 글쟁이 이규형 감독은 턱없이 순수하지만 현실에서는 별볼일없는 남자 대학생 철수와 역시 그저 그런 여대생이지만 장래에 대한 꿈 만큼은 원대한 미미 커플을 등장시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웃기는 짜장면' '슬픈 울면' 같은 표현도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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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심하고 빌빌한 철수와, 술 - 주먹 - 미모(책에는 나중에 미미가 영화배우로 캐스팅되는 사연까지 나오죠)만큼은 탁월한 미미 커플은 대단한 인기였습니다. 영화 데뷔작인 '청 블루 스케치(천호진과 허준호의 데뷔작)'로 감각을 인정받은 영화감독이었지만, 아무래도 당시의 이규형 감독은 글쟁이로서의 재능을 한층 높이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1986년 연말, 소설 '청춘스케치'가 미미와 철수의 결혼생활로 접어들어 아직 연재되는 상황에서 태원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은 '청춘스케치'의 영화화를 결정합니다. 뒷날 '서편제'를 만든 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지만 당시까지는 소장파 제작자에 속했던 분이죠.

영화판의 주인공은 세 사람. 철수, 미미와 철수의 친구 보물섬이었습니다. 철수 역은 '깜보'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박중훈, 보물섬 역은 '가슴을 펴라'라는 영화로 주목받은 김세준으로 일찌감치 결정됐습니다. 미미는 '엽기적인 그녀'의 원형을 이루는 말괄량이로 워낙 선명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수많은 배우들이 거론됐지만 결정은 쉽게 되지 않았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강수연이 이 역할을 맡게 되면서 다른 주장은 쑥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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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신화는 이뤄지기 몇달 전(물론 '씨받이'는 1986년 개봉됐었죠)이었지만 강수연은 다른 두 배우와는 격이 다른 스타였습니다. 1970년대 아역 시절부터 지존의 미모로 신화적인 인기를 누렸고, '고교생일기'나 기타 다른 드라마로도 익히 잘 알려져 있었던 배우였기 때문입니다.

이밖에 조연급으로 '최 아랑드롱'이라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이 역할은 본래 소설에선 철수를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이태원으로 데리고 가 프로의 위력을 보여주는 초절정 미남이었지만 영화에선 말만 앞세우는 속빈 강정 캐릭터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역할은 당시 이규형 감독과 친분이 두터웠던 개그맨 최양락의 차지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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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감독은 최양락을 캐스팅할 때 '강수연과 러브신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강수연과 단 한 신도 함께 출연하지 않아 뒷날 '속았다'며 투덜댔습니다. 최양락은 15일 방송에서 "그래서 시사 이벤트 때 콩트를 짜 실컷 껴안아 봤다"고 뒷얘기를 하기도 했죠. 최양락은 이후 이규형 감독의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와 '난 뭔가 깜짝 놀랄 일을 할거야'에 잇달아 출연해 인연을 이어 갔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 이규형 감독은 흥행을 위한 영화 홍보에도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신기법을 활용해 주목을 끌었습니다. 대대적인 엑스트라 모집 광고도 그중 하나였죠. '철수 뒤에서 짜장면먹는 남자 역, 미미 뒤에서 짬뽕 먹는 여자 역, 지하철에서 조는 남자 역' 등의 조역들을 일반인들로부터 공모를 받아 채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의대생 역에는 진짜 의대생, 법대생 역에는 진짜 법대생을 캐스팅하겠다는 공고도 있었죠(절반 정도 성공했습니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이규형 감독은 오래 전부터 혹독한 브레인스토밍을 거쳤습니다. 7-8명으로 구성된 팀이 늘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감독과 김영남 조감독(뒷날 최진실의 데뷔작인 '꼭지딴' 감독)이 판정위원이 되는 식의 회의였죠. 이때 회의를 거친 사람들 중 상당수가 90년대에서 현재까지 한국 예능 방송계를 이끌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음악도 꽤 주목을 끌었습니다. 일단 1986년 발매된 산울림 11집 수록곡 중 2곡이 메인 테마로 쓰였습니다.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와 '안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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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두 곡 외에도 가수 최성수가 프로듀서 역할을 맡은 O.S.T에는 당시 꽤 주목받던 노래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프닝에 흐르던 손현희의 '오늘은 어떤 일이'에서, 미미의 나이트클럽 신에 나왔던 벗님들의 '우리의 젊음', 그리고 최성수의 '내사랑 미미'까지 꽤 짭짤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참 22년전, 어제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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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이 영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일까요?^

산울림의 '안녕'입니다.



p.s. '박중훈 쇼'가 날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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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중국 연예계의 대부 성룡이 김장훈에게 돌연 편지 한장과 함께 1만 달러의 돈을 보내왔습니다. 선행에 앞장서고 있는 김장훈의 노력을 치하하면서, "젊은 친구가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하고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며 자신의 선의를 보탠 것입니다.

김장훈이 성룡을 직접 만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아시아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성룡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게다가 기부의 액수로 따진다면 성룡은 그야말로 자선의 황제 격입니다. 지난번에도 4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런 자선활동, 한국에 대해 보여온 지속적인 호의,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배우 겸 감독으로서의 탁월한 성과 때문에 아마도 성룡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해외 스타 중에서 호감도 1, 2위를 다툴만한 인물입니다. ('추석이나 설 연휴때면 생각나는 인물 1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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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눈여겨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룡이 보낸 편지는 순 한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 잘 쓴 글씨는 아니지만, 틀린 부분도 없는 깔끔한 한글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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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은 공식석상에서 일부러 한국어를 자제하지만 사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70년대 초, 한국 액션영화의 전성기 때 성룡은 충무로에서 스턴트맨으로 활동했고, 한국 여자친구와도 오래 사귄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였던 홍금보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기도 했죠. 기자회견이라도 하면 성룡은 이미 한국 기자가 던진 질문을 다 알아 듣고 씩 웃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대답은 농담할 때를 빼면 전부 중국어로 합니다.

저 편지를 받은 김장훈 측도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성룡의 친필 편지'라고 말했지만, 뒤늦게 성룡 측에 의해 이 편지를 대필한 사람이 유승준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일부 기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좋은 기사'에 과연 유승준의 이름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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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유승준을 자신의 매니지먼트사인 JC 소속 연예인으로 만든 이상, 성룡의 급선무는 한국 내에서 유승준의 복권을 이루는 것이죠. 그 방안의 하나로 성룡은 한국에서 호감도 1위인 김장훈과 외국인 스타 중 호감도 1위인 자신의 좋은 사연 속에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슬쩍 끼워 넣은 것입니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성룡의 선의나 김장훈에 대한 경의를 부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성룡의 입장에서는, '마침 이런 좋은 일을 하자니 여기에 승준이도 한몫 하게 하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구상은 좋았지만, 이 정도로 얼음이 녹기엔 유승준에 대한 배척은 너무도 공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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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햇동안 유승준은 한국 방송과 관련해 두 차례의 논란을 겪었습니다.

하나는 MBC TV '무릎팍 도사' 이범수 편에서 나온 유승준의 자료 화면입니다. 왕년의 자료 화면 한번 보여준 것 갖고도 여론이 들끓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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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은 MBC TV '네버엔딩 스토리'가 홍콩에 가서 성룡을 인터뷰하면서 유승준을 함께 동석시켰던 사건입니다. '성룡 편에 유승준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여론은 죽창을 세웠고, 결국 MBC는 유승준이 등장하는 부분을 싹 편집하고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사실 성룡 측에서는 이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가 바로 유승준을 한국 TV에 한번 내보내 보자는 의도였다는 후문인데, 이것도 실패한 셈입니다.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유승준은 국적 변경과 함께 한국 입국이 좌절된 뒤로 기회 있을 때마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시도해왔습니다. 몇몇 기자들과는 실제로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그때마다 데스크 선에서 모두 게재가 좌절됐습니다. 일부 매체는 - 좀 코믹하지만 - 유승준의 이름을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이라고 표기하는 상황에서 누구든 유승준의 앞잡이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그렇게 '폭탄돌리기'를 하던 사이 최근 한 여성지가 용기있게 기사를 실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성룡은 한국인의 문화와 스타일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유승준의 한국 연예계 복귀는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 '대병소장'이라는 새 영화에 유승준을 기용하면서 다시 유승준의 복권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대체 그는 왜 이렇게 유승준에게 공을 기울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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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유승준은 중국에서도 장나라 급의 최고 한류 스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스타덤을 구축하고 있는 연예인입니다. 춤과 노래 실력은 이미 10년 전에 정평이 났죠.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타이즈 프로그램이 예능의 주류를 이루던 시절 활동을 하면서 연기력도 제법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빼어난 용모는 기본이고 한국어-영어, 그리고 중국어까지 3개 국어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나이도 이제 고작 만 33세. 제작자라면 당연히 탐낼 재목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의 폭발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곳은 한국이라는 점이 성룡의 고민입니다. 더구나 한류 시장에서도 '한국산 한국 연예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즉 성룡+유승준의 시너지가 최대한 발휘되기 위해선 유승준이 한국 시장에서 복권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죠.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이미 영화 촬영 계획이 밝혀졌으니 이 영화가 만들어지면 한국 국민들은 다시 한번 유승준과 관련된 화제에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성룡의 한국측 대리인이 "유승준 하나 나온다고 이 영화의 한국 상영을 고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는 입장을 보였으니 어떻게든 공개는 되겠죠. 관객들이 극장 앞에서 시위를 하든, 스크린에 계란을 던지든, 그건 그때 가 봐야 알 일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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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유승준에 대한 배척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살인죄보다 더 무서운 국민정서법 위반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하지만 통장에 26만원밖에 없는 아무개씨도 돌 맞을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병역 비리 사범으로 몰렸다가 뒤늦게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다른 연예인들도 왕년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나라에서 왜 유독 유승준에게는 여론의 손길이 가혹한 걸까요?

많은 사람들은 유승준의 가장 큰 잘못은 병역 기피 그 자체보다도 "당당히 군대를 가겠다"고 선언했다가 뒤늦게 공인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물 위에 쓴 글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의도 서쪽의 둥근 지붕 아래에도 우글우글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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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8대 국회의원 299명 중 25명이 전과자인 나라(그나마 지난 17대의 60명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셈이더군요)에서,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출마자 6869명 중 10.5%인 725명이 전과자(그것도 대부분 뇌물공여, 부정수표단속법, 사기 등 죄질이 나쁜 종목)였던 나라에서 과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연예인' 하나가 이 나라 땅조차 밟을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죄인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인 듯 합니다.

누구도 유승준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면, 대체 그가 자신의 잘못을 정말 뉘우치고 있는지, 얼마나 어떻게 반성하고 있는지라도 한번 드러낼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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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지나고 나자 '꽃보다 남자'의 위력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물론 취재 일선에서는 이미 처음 1,2주 사이에 '이건 대형사고다'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지만, 회사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느낌은 늦게 전달됩니다.

특히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은 '꽃보다 남자'가 뭔지를 모르거나 어쩌다 눈에 띄어도 "뭐 저런 유치찬란하고 황당한 드라마가 있어"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설 연휴는 온 가족이 모이는 시기입니다. 70대 할머니와 10대 손녀가 함께 앉아서 이민호와 김현중의 화려한 미모에 정신을 잃고 빠져드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다들 "아, 이 드라마에 뭔가 있구나"라는 걸 절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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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배운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아내의 유혹' 못잖은 막장 드라마고, 교훈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생각도 없는 한심한 작품이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한글을 해독할 수 있는 여성 시청자들은 모두 '꽃남'의 노예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30일, 여러 매체에 의해 '이민호의 옛날 여자친구 사진'이 일제히 보도됐습니다. 요즘 같은 인기라면 대체 이민호와 한때라도 사귀었던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관심이 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런 사진이 나온다고 해서 이민호가 손해를 볼 일은 전혀 없습니다. 혈기방장하고 매력만점인 20대 젊은이가 지금까지 여자친구 한번 사귄 일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경악할 일이죠. 만약 이민호가 어떤 인터뷰에서건 "지금까지 여자 손목도 안 잡아봤다"고 얘기한다면 그날로 바로 이민호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정작 곤란한 건 바로 그 옛날 여자친구겠죠. 이런 식으로 얼굴이 공개되면 불편할 일이 꽤 있을텐데 말입니다. 심지어 일부 매체는 얼굴도 가리지 않고 사진을 싣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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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일제히 보도된 사진 외에도 현재 인터넷에는 '이민호의 전 여자친구'라고 돌아다니는 사진이 2-3 종 정도 있습니다. 화질이 선명치 않아 같은 인물인지, 그냥 닮은 사람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아무튼 이런 사진들에 대해 이민호의 소속사 측 역시 너무도 평온한 반응입니다. "이민호가 고교시절까지 합하면 지금까지 한 2-3번 정도 여자를 사귄 걸로 알고 있다. 아마 그 중 한명인가보다"라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럼 여자도 안 사귀어 봤겠느냐는, 지극히 당연한 입장이죠.

(흥미롭게도 그 상황에서 이런 사진을 갖고 이민호에게 협박(?)을 시도한 웃기는 기자 - 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 - 나부랭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료를 확보했다.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는 식으로 접근을 하더라는군요. 어쩌다 이 바닥이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민호 본인도 쿨하기 그지없는 반응을 보입니다. 저런 먼 과거의 일들 말고 현재의 일들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한때 일각에서 다비치 멤버 강민경과 사귀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민호는 "앞으로 박보영, 문채원, 최은서까지 3번은 더 열애설이 날 것 같다"며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끼리 스스럼없이 놀러 다니다 보니 함께 찍은 사진도 많고 본 사람도 많을 거란 얘기죠. 이렇게 떳떳한데 뭐 더 보탤 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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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나왔던 강민경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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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학교 ET' 시사때 박보영과의 모습.

(울학교 ET 시절 이야기는 이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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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소속사 후배이자 친구인 최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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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장 절친한 친구라면 일지매군을 빼놓을 수 없겠죠.


'이민호의 옛날 여자친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매우 평온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미남 미녀들끼리 만났나"하는 찬탄과 부러움이 대세를 이루고 있죠. 몇해 전만 해도 일부 아이들 그룹의 경우, 소속사가 멤버들의 과거 사진까지도 '세탁'을 하고 입단속을 하던 것과는 천지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세상이 성숙해졌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민호가 유독 '옛날 여자친구' 들로 화제가 된 건 아무래도 무명이었던 시기가 길었고, 현재 너무 갑작스러운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무명 시절은 어딜 가도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일도 없었겠죠.

그나자나 지금은 드라마 찍느라 정신이 없어 개인 행동은 할 시간이 없겠지만, 이제부터 F4 멤버들은 어딜 가나 세상의 눈길에 시달릴텐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스스로 달라진 위상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충격도 만만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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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남자들은 대개 현재의 F4 중에서 외모로는 김현중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아무래도 이민호 쪽으로 몰리는 듯 합니다. 한국판 '꽃남'의 특징은 김현중이 연기하는 윤지후(하나자와 루이) 캐릭터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 같은데, 윤지후는 원작이나 일본판 드라마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인물이더군요. 김현중이 '야심만만'에서 "친구의 애인이건 뭐건, 마음에 들면 일단 대시하고 본다"고 말했듯 극중의 윤지후도 금잔디에게 서슴없이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김현중의 연기력도 그만큼 뒷받침이 되어야겠죠. 물론 연기가 태어나서 처음이란 점을 감안하면 현재 하고 있는 것도 대견하긴 합니다만, 회를 거듭하면서 좀 더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의 단면에 대한 글



김현중과 이민호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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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쇼! 비디오자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이때가 바로 한국 코미디의 전성기였습니다.

지금도 '개그콘서트'나 '웃찾사'같은 프로그램들이 있지 않느냐구요? 몇해 전 '개그콘서트' 초창기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지 않았냐구요? 그건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들의 얘깁니다. 당시 '쇼! 비디오자키'의 인기는 지금의 '개그콘서트'와 '패밀리가 떴다'를 합쳐 놓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쇼! 비디오자키'에서 유행어가 하나 뜨면 그게 전 사회의 유행어였죠. 매주 화요일에 방송되던 '쇼! 비디오자키'를 보지 않으면 1주일 동안 사람들의 대화에 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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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김형곤 최양락 이봉원 장두석 심형래는 정말 최고의 스타들이었습니다. 오프닝 코너로 는 임하룡과 김정식의 '도시의 천사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쉰옥수수' 임하룡과 '밥풀떼기' 김정식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뒤에 서 있던 양종철 서원섭 조문식 등의 모습도 말입니다.

이 프로그램 전성기에는 "오! 신이시여!"를 외치던 최양락이 네로, 임미숙이 황후 날라리아 역으로 나오는 '네로 25시'가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조연들도 엄청난 인기였죠. 못된 메기테리우스 이상운, 평소에는 강직하기 그지없다가도 술만 먹으면 호스테스 버전으로 급변신하던 페트로니우스 정명재, 항상 강직하게 옳은 말만 하다가 네로에게 학대를 당하던 당돌리우스 엄용수, 이상한 캐릭터의 쌍벽이었던 얼떨리우스 하상훈과 헷갈리우스 김용, 그리고 발바리우스 이경래 등이 바로 '네로25시의 주역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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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네로 25시'에는 세계 코미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캐릭터가 나옵니다. 바로 '침묵리우스' 손경수죠.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합니다. 가끔 네로가 부르기는 하죠. '침묵리우스'라고.

최양락은 얼마 전 그런 캐릭터를 자신이 직접 만든 거라고 언급하면서 "심지어 대사 한마디 없던 침묵리우스까지도 CF를 두 개나 할 수 있게 해 줬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쇼! 비디오 자키'의 힘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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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흘러가던 '쇼! 비디오 자키'의 마무리는 김한국-김미화의 '쓰리랑 부부'였습니다. 물론 여기에 국악인 '북치는 소녀' 신영희씨와 강아지 행국이, 그리고 '지씨 조이너' 지영옥이 가세해야 완벽한 팀이 만들어지죠. 최근 예능 활동을 재개한 김한국이 "그때 사실 김미화와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행국이는 단 한번도 같은 개가 두번 출연한 적이 없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놔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펭귄 심형래와 곰 박승대의 '동물의 왕국', 이봉원-장두석의 '시커먼스', 이경래-이경옥의 '달빛 소나타' 등이 '쇼! 비디오자키'를 빛낸 코너들입니다.

이 '쇼! 비디오자키'와 함께 주말에 방송되던 '유머 1번지'는 김형곤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들이 돋보였습니다.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탱자 가라사대'가 있었고, 심형래 임하룡의 '변방의 북소리', 그리고 김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작그만'이 역시 최고의 인기 코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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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사이에 당시의 주역들은 대부분 현역에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김형곤과 양종철은 고인이 됐고 김정식은 종교에 투신했죠. 임하룡은 영화배우가 됐고 심형래는 영화감독이 됐습니다. 이 시대의 주역 중 가장 오래 코미디를 지킨 김미화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했죠.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장두석이 오랜 명상을 끊고 활동 재개를 선언했고, 김한국 김학래 최양락 이봉원 등이 이제 예능계로 서서히 돌아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현재를 지배하는 유재석-강호동 중심 체제에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일단 40대 후반에서 50대에 접어드는 이들이 미리 잘 짜여진 콩트보다는 순간적인 순발력을 중시하는 최근의 예능 동향에 적응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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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워낙 얘깃거리가 많이 축적되어 있는 노장들인 만큼 한 6개월 정도는 왕년의 추억담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들을 잘 모르는 신세대 연예인들과 이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상황이죠. 오래된 얘기거리를 털어내고, 이제 이들이 신진급 연예인들과 마주하는 상황이 시청자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됐을 때, 과연 이들은 무엇을 무기로 계속 자신의 가치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일단 새로운 분위기에의 적응력 면에서는 최양락의 실력을 믿어도 충분할 듯 합니다. 최양락은 최근까지도 예능 프로그램의 물길을 자기 쪽으로 돌린 적이 있었죠. 바로 몇년 전 불같이 일어났던 '알까기 열풍'입니다. 어떤 사전 맥락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원로기사 윤기현 9단의 말투를 흉내낸 느릿느릿한 바둑 해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런 기량을 보여준 최양락이기 때문에 '감'을 찾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최양락에게 '복귀'라는 말을 쓰는 것은 모욕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도 라디오에서는 발군의 진행 솜씨를 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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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것은 협력체제입니다. 현재의 예능계는 독불장군이 살아남기 힘든 형태입니다. 유라인과 강라인은 물론이고 대세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윤종신-신정환-김구라-김국진의 라디오 스타 팀, 또는 송은이-신봉선의 패키지를 보듯 팀의 형태로 움직이는 것이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말하자면 '라인의 구축'이 급선무입니다.

그럼 과연 최양락의 곁에는 누가 있게 될까요?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될 일입니다. 다만 그 시점에서도 '왕년에 잘 나갔던 노장들'만으로 움직인다면 그건 상당한 약점이 될 걸로 보입니다. 지금은 강호동이 살짝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젊은 쪽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유리해 보입니다.

노장 노장 하지만 최양락은 1962년생. 이경규보다 2년 연하고 여자 연예인과 비교하면 최화정과 황신혜의 사이에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정상에 설 수 있는 나이입니다. 모처럼 노장들의 성공적인 행진이 오래 가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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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피디, 주철환 사장, 주철환 교수, 이 분의 변신을 가리켜 손석희 교수는 "인생을 삼모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하지만 정말 자주 신분이 바뀌는 분입니다. 최근 다시 야인으로 돌아시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 많은 호칭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직함은 아무래도 아직 '주철환 피디'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이 분이 일간지에 연재하던 칼럼 '주철환의 사자성어'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주로 방송-연예계를 중심으로 한 그 주의 최신 화제를 사자성어로 풀어 내는 코너였죠. 시사적인 관점을 강조하다 보니 책으로 묶여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책이 되어 나온 모습을 보니 전혀 어색하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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뵐 일이 있어서 책 한권을 선물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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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저서나 말씀을 들어보면 탁월한 정리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말장난으로 치부할 만한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말 늘 이런걸 펼쳐 놓고 연구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예들을 잠시 들어 보겠습니다.

'명작 탄생에는 3정이 필수다. 정보, 정열, 정성이다.'

'PD가 되려면 4척의 배(ship)를 갈아타야 한다. 멤버십, 파트너십, 프렌드십, 리더십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친구가 되지만 좋은 사람을 만들면 리더가 된다.'

'조용필 공연에는 3S가 있다. 사운드, 스케일, 스토리다.'

'오프라 윈프리를 꿈꾸는 박경림의 현재 위치는 오프로 윈프리다.'

'매니저는 스타의 CSI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캐릭터, 스타일, 이미지의 고양을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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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될 때의 코너 제목은 '즐거운 천자문'이었지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사자성어입니다. 과물탄개(過勿憚改, 잘못을 알았으면 고치기를 주저하지 말라)처럼 보기 드문 말도 있지만 대개는 흔히 듣고, 흔히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이 분이 제게 주신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2번에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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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교육계에 몸담았던 분인 터라 개그콘서트의 '변선생' 코너에 숨은 의미를 짚어내는 등하불명(燈下不明) 풀이 같은 부분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 코너에서 투명인간인 이종훈 캐릭터 얘깁니다. 담임 교사든, 같은 반 학생이든, 교장이든 이사장이든 그 학생이 안 보일 리가 없죠. 하지만 보고도 못본 척 하는 사이에 학생은 투명인간이 되어 가고 투명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이 눈길을 끌려 벌이는 행동은 점점 더 과격해져 갑니다. 과연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페이지는 가볍지만 느낌은 가볍지 않은 책입니다. 일독하시면 최소한 그동안 금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4자 성어들이 적재적소에서 살아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출판사에서 붙인 소제목일 '어휘력 증가 프로젝트'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p.s. 이분을 가리켜 '인생삼모작'이라고 평한(책 서두에 있습니다) 손석희 교수는 이분과 처남 매부간입니다(손석희 교수의 누나의 남편). 왕년에 주철환 사장님이 쓰다가 끊으신 소설에도 처남 캐릭터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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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최근 사직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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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시끄러웠고, 매년 잊혀졌습니다. 방송 3사의 연말 연기대상 결과 얘깁니다.

매년 연말 연기대상 결과가 발표되면 시청자들과 인터넷 게시판은 수상 결과에 대해 한 순간 파르륵 불타 오릅니다. 욕을 먹는 이유도 매년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상의 갯수가 많냐' 에서부터 '그 많은 상에 공동 수상은 또 왜 그리 많으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못 받고 엉뚱한 데로 상(특히 대상)이 갔다'는 식의 푸념입니다.

올해만 그랬을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데, 내년에도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송 3사의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은 진짜 시상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상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그야말로 남의 다리 긁는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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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3사의 연기대상이 시상식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다시 한번 정확하게 풀어서 쓰자면, '비록 이름은 연기대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개개인 연기자의 연기력에 대해 평가하는 상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상을 주고 박수도 치니 시상식은 분명히 시상식이죠. 하지만 시상 기준은 일반 시청자들이 '상상'하는 것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시청자들은 아마도 이런 연기대상을 볼 때에도 청룡상이나 대종상 같은 영화상 시상식을 연상하기 때문에 이런 착각을 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 시상식에서 주는 남우주연상이나 여우조연상도 냉정하게 말하자면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만으로 수상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암묵적인 평가 기준은 '연기력 : 배우의 지명도 : 출연작의 흥행 내지는 화제성'의 비율이 5:2:3 정도라고 할까요? 물론 이건 심사위원 개개인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3:3:3(나머지 1은 전체 형평성)으로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7:1:2 정도로 볼 수도 있죠. 여기에 '연기력'이라는 것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에 대한 평가가 심사위원 개개인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가끔씩 일반인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렇습니다.

하지만 방송사의 연말 연기대상 결과는 훨씬 예측하기 쉽습니다. 수상자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해당 방송사에 대한 공헌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헌도는 '시청률, 방송 기간, 화제성(혹은 스타성)'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시청률이 90%를 결정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방송 3사 연기대상은 연기로 주는 상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어느 해, 어느 방송사도 '연기'를 제 1 조건으로 평가해서 연기대상을 준 적은 없습니다. 해당 방송사가 자국에서 방송된 1년간의 드라마들을 총정리하면서 거기에 '출연해 주신' 연기자들을 상대로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입니다. 가장 높은 시청률과 가장 긴 방송기간으로 기여해주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연기대상의 본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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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티즌들을 들끓게 했던 MBC 연기대상의 송승헌-김명민 공동 대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에덴의 동쪽'과 '베토벤 바이러스'의 시청률은 일단 시청률 면에서 상대가 안 됩니다. '에덴의 동쪽'이 1.5배 이상 앞서죠. 방송 기간 역시 '에덴의 동쪽'이 2배 이상 깁니다. 그렇다면 '에덴의 동쪽'의 주인공인 송승헌이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김명민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두 배우의 극중 비중에 대해 따질 수도 있겠지만 통상 두 주인공은 각각 두 드라마를 대표한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그럼 왜 송승헌의 단독 수상이 아니라 김명민과의 공동 수상일까요. 이건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합니다. 지난해 MBC는 '태왕사신기'의 배용준에게 대상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배용준은 다리 부상을 이유로 마지막 순간까지 출연을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검은 목발을 짚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대상은 누구의 것일까요. 당연히 '하얀 거탑'의 김명민이 차지했을 겁니다. 그리고 배용준의 부재시를 대비해 어느 정도는 김명민에게 '당신이 대상'이라는 귀띔이 들어갔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2008 대상도 송승헌이 차지하고 김명민이 2년 연속 최우수연기상(2등)에 머문다면, MBC는 최악의 경우 김명민과 등을 지는 상황을 각오해야 합니다. 물론 MBC는 현 상황에서 당대 최고의 배우 중 한명을 적으로 돌릴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송승헌이야 단독 수상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시상식 목전에 벌어진 이다해 사건의 부담을 생각하면, 공동수상이야말로 두 사람이 윈-윈 하는 결과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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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KBS의 김혜자 수상은 누구나 인정할 상이겠죠. 단 이 경우에도 가장 큰 이유는 '연기력'이 아니라 '공헌도'라는 점을 잊어선 안됩니다. 방송사마다 조금씩 다른 원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KBS의 경우에는 1980년대부터 1TV의 주말 시간대에 방송되는 대하 사극 주인공에게 강력한 어드밴티지를 주어 왔습니다.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같은, KBS의 간판 프로그램들이죠. 이 드라마들은 시청률에서도 선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논란이 있었던 것은 2005년 '불멸의 이순신'의 김명민이었죠. 시청률이나 화제에선 '장밋빛 인생'의 최진실이 앞섰지만, KBS는 100회라는 긴 기간과 이 드라마의 주인공을 놓고 들였던 고생(이병헌-정준호-최수종-송일국의 캐스팅 실패로 엄청난 애를 먹었습니다) 등 여러가지 이유로 김명민의 공헌도를 더 높게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대왕 세종'의 기세가 약했던데다 '엄뿔'의 성공이 너무 폭발적이었죠. 김수현 작가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03년, 이병헌이 '올인'으로 대상을 수상하자 자신의 작품인 '완전한 사랑'의 김희애가 받지 못한 데 흥분, '내 마음으로는 김희애에게 이미 상을 줬다'고 홈페이지에 쓰기도 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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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변은 SBS의 문근영 시상입니다. '바람의 화원'은 작품성은 몰라도 시청률 면에서는 절대 앞으로 내세우기 힘든 드라마입니다. 아마도 역대 방송사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낮은 시청률(내내 10%대 초반)일겁니다. 그럼 문근영의 연기력(물론 칭찬할 만 했습니다)을 높이 평가한 결과일까요. 그렇게만 보면 너무 순진한 평가겠죠.

연기대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헌도와 함께 미래 공헌도에 대한 기대가 대단히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미래 공헌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스타에 대한 투자입니다. 방송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당근인 대상은 '두고 두고 우리와 잘 해볼 수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1994년 MBC의 최대 히트작은 심은하의 'M'이었지만 대상은 '서울의 달'의 채시라에게 돌아갔습니다. 간단한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엔 채시라가 훨씬 더 스타였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잔혹한 얘기지만, 이런 면에서 SBS는 '조강지처 클럽'의 오현경이나 '일지매'의 이준기보다 문근영에게 빚을 지우는 쪽을 선택한 셈입니다. 그리고 '바람의 화원'은 방송사의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는 시청률 이상의 공헌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기부천사 문근영'의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기도 하죠.

이렇게 보면 MBC는 공헌, KBS는 명실상부, SBS는 미래가치에 각각 투자한 모습입니다. 사실 KBS는 행운입니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배우(김혜자)의 주연작이 최고의 성과를 거뒀으니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거죠. 하지만 어떤 경우든, 수상자의 결정은 방송사의 몫, 기준은 방송사의 기준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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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누군가는 그럼 대체 '방송국 연말 공로대상'이라고 하지 왜 '연기대상'이라고 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느냐고 울분을 토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것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입니다. 많은 회사들이 연말 연시에 '모범 사원'을 표창합니다. 이때의 '모범 사원'은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서 정말 타에 모범이 되는 그런 사원일까요? 그럴 리가 없죠. 이 모범 사원이란 '최고의 실적을 올려서 회사의 수익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원'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겁니다. 원래 사회란 그런 거죠.

그래서 앞으로 매년 방송사의 연기대상 시상식을 볼 때면 저 상은 원래 그런 상이겠거니 하는 마음가짐으로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 상은 본래 모범사원 표창 내지는 유치원의 재롱잔치같은 성격을 가진 상입니다. 방송사 입장에선 시상식에 온 배우들 중 어느 한 사람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죠. 그래서 누구도 빈 손으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습니다. 마음 상하는 어린이가 없도록 배려하는 유치원 선생님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이걸 알고 보신다면 '대체 저 상은 뭐야?' '왜 또 공동수상이야?'라는 생각은 안 하시게 될 겁니다. 이게 바로 한국 방송사들의 현재 수준입니다. 이런게 방송의 사유화라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식의 시상식은 전파 낭비라고도 하는데 사실 전파 낭비가 맞습니다. 이런 식의 상이라면 내부적으로 큰 행사장을 빌려 파티를 열고 나눠 주는게 마땅할겁니다. 하지만 그러자면 큰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일 리가 없겠죠. 그래서 방송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생방송으로 대형 행사를 진행하는 겁니다. 권위의 추락이니 뭐니 하는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당초 권위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쾌한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방송사에 대해 시청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납니다. 채널을 돌리는 거죠. 미리부터 욕을 하려고 마음 먹고 보신다면 모르지만, 이제 연말 연기대상의 본질을 아셨으니 앞으로는 공연히 스트레스를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p.s. 마지막으로, 세상의 어떤 시상식도 '연기력만 갖고' 사람에게 상을 주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매년 변희봉, 김혜자, 나문희, 김수미 같은 배우들이 상을 휩쓸고, 그 틈으로 간간이 송강호나 김윤석, 설경구, 김희애의 이름이 보이는 시상식만 보게 될 겁니다. 과연 시청자 여러분이 그런 시상식을 원하실지, 그건 정말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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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코리안 특급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허당 박찬호'가 등장하자마자 '1박2일'을 일요일의 시청률 톱에 올려놨습니다.

사실 그동안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의 시청률 진검 승부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SBS TV '일요일이 좋다'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시청률을 체크하는데 1부='패밀리가 떴다'이기 때문에, '패밀리가 떴다'의 시청률은 매주 선명하게 알 수가 있었죠.

하지만 '1박2일'이 속해 있는 KBS 2TV '해피선데이'는 3시간짜리 프로그램 전체의 시청률로 공개되기 때문에 '1박2일'만의 시청률은 정확하게 알기 힘들었습니다. 그동안에도 '패밀리가 떴다'가 '1박2일'보다 시청률이 앞선다는 말은 대략 추정한 수치였죠. 아무튼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1박2일' 부분의 시청률이 32.5%, '패밀리가 떴다' 쪽이 27.7%였습니다. (처음에 한 얘기는 착각이었습니다. 숫자를 잘못 읽었군요. 죄송.^)

물론 두 프로그램이 28일에도 별로 겹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숫자 역시 진검대결이라고 할 수는 없죠. 아무튼 박찬호 덕분에 '1박2일'은 상징적으로나마 일요일 밤의 최고 인기 코너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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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출연으로 박찬호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다소 친근하지 못한 이미지를 벗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박찬호는 아주 친근한 스타는 아니었죠. 잘생긴 외모와 빼어난 성적 덕분에 온 국민의 성원을 받는 대 스타였지만 한 켠에서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엄..."하는 식의 말투와 함께 다소 까다로운 이미지 덕분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인상을 줘 왔습니다. 그동안 방송에서도 웃는 얼굴보다는 경기중의 긴장된 얼굴,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잘 웃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1박2일'에 출연한 박찬호를 보면 그 동안의 유감(?)이 사라지는 느낌을 누구나 받았을 겁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건 강호동에게 '딱밤'을 맞은 뒤 바로 "한판 더 합시다" 하고 정색을 하는 박찬호의 모습이었습니다. '박찬호도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를 메이저리그 100승 투수로 만든 것은 바로 저런 '지고는 못 사는' 경쟁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장면이었죠. 이어진 '허당 찬호'의 등장은 말할 것도 없죠.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13년 전의 박찬호가 떠올랐습니다. 1995년 초, 귀국 개인 훈련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박찬호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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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미국행이 결정된 것은 1993년 말이었습니다. 제가 회사에 처음 출근할 바로 그 시점이었죠. 처음 '박찬호 메이저리그행' 보도가 나갈 때만 해도 '그냥 조회만 해 본 정도겠지'라는 의견이 과반수였습니다. 최동원이며 선동렬, 박찬호의 동기생들인 임선동 조성민에 이르기까지 메이저리그가 관심을 가졌던 한국 투수들은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박찬호의 경우는 진짜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였습니다. 물론, 이때까지도 회의적인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거기가 어떤 덴데... 가서 얼마나 버티고 올 지 모르겠다.' 이들의 예상대로 1994 시즌, 박찬호는 LA 다저스에서 단 2경기에 등판, 11.25라는 치욕적인 방어율을 기록합니다. 한마디로 성적이랄 게 없었죠. 물론 토미 라소다 감독은 끊임없이 박찬호에 대한 칭찬을 했지만 이때는 '립 서비스'라는 비아냥을 받았습니다.

첫 시즌을 마친 박찬호가 귀국했을 때 공항에는 취재진이 인산인해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야구계와 취재진의 기본적인 정서는 '어쨌든 간 게 어디냐'는 생각과 '첫 시즌을 보니 별볼일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반반쯤 혼재된 상태였죠. 여기서 박찬호는 은근히 국내 야구인들의 심사를 건드리는 대답을 한마디 합니다. "지금 한국 프로에서 뛴다면 어느 정도 성적을 낼 것 같으냐"는 질문에 "엄... 한 20승?"이라고 가볍게 대답한 것이죠. 이 얘기를 전해 들은 한 지도자는 어떻게 보느냐는 말에 "하하하"하는 냉소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물론 1997년, 14승을 거둔 뒤의 박찬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면 20승도 꽤 겸손한 대답이었겠지만, 이건 아직 1994년의 얘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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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중에도 그랬지만 윈터 시즌의 신문 스포츠면은(스포츠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박찬호 얘기로 도배가 됐습니다. 고향 잔치에까지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들이 득시글거릴 정도였죠. 그런데도 쉬이 식는 것이 인심이듯, 정작 박찬호가 95년 초 출국할 때에는 공항에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급히 몰래 출국한 것이기도 했고, 워낙 그동안 수없이 다뤄진 터라 이제 더 얘기할 거리도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아무튼 입국할 때의 아수라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모습이었죠. 기자는 단 두명, 지금은 모 포탈에 계신 전 중앙일보의 이 모 기자(박찬호의 결혼식에 기자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은 분입니다)와 저뿐이었습니다. 환송객도 박찬호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한양대 동기생이던 차명주 한 사람 뿐이었죠.

저를 뺀 세 사람은 그 며칠 전에도 함께 노래방을 다녀왔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좀 소외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저는 세기의 대투수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어 봤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까지의 박찬호는 맥주 한잔도 피할 정도의 금주가였던 반면 노래방이 없으면 못 산다는 귀여운(?) 면을 보여줬습니다.

기회가 기회였으므로 내심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94년말, 박찬호가 소속된 LA 다저스에 일본의 야구 영웅 노모 히데오의 입단이 결정됐습니다. 매스컴이 노모에게 박찬호와 같은 팀에서 뛰게 된 소감을 묻자 "축하한다. LA의 한국 나이트 클럽이 좋다던데(?) 박찬호와 함께 놀러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하더군요. 당연히 기자들은 박찬호에게 이 말을 전했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죠. 이때 박찬호의 대답은 "난 그런데 안 간다"는 짧고 무뚝뚝한 것이었다고 보도됐습니다.

저는 95년의 박찬호에게 당시 왜 이런 식으로 대답했느냐고 물어봤죠(메이저리거에게 그 귀한 시간에 이런 거나 물어보냐고 질책하셔도 할 말 없습니다. 그게 궁금했거든요.^). 의외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기분 나쁘잖아요. 자기가 왜 한국 나이트를 가요." 그렇습니다. 독립기념관이 가까운 공주 출신의 우리 찬호군은 항일정신이 탄탄한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뒷날, WBC 일본전에서의 박찬호를 봤을 때도 이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때도 박찬호는 지극히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사람들은 기회가 왔을 때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를 즐기지 않죠. 당시 박찬호는 슬슬 '거만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터라 그 정황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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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대를 뛰어넘어 2008년 연말, '1박2일'에 나온 박찬호는 몰라볼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방송 초반에는 어느 정도 경직된 모습이었죠. 하지만 그걸 그냥 두고 보면 강호동이 아닙니다. '운동 선후배'임을 들어 일단 '말을 트고', 한대 맞고 나면 아찔해지는 딱밤을 통해 박찬호의 승부욕에 불을 질렀죠. 이것이 당대 최고 MC의 실력입니다.

이날의 하일라이트는 누구나 알 수 있듯 냉수 입욕입니다. 여기서 강호동 역시 특유의 경쟁심을 보여줍니다. '네가 1인자면 나도 1인자'라는 것이죠. 한겨울에 냉탕에 들어간 두 사람은 만만찮게 버팁니다. 여기서도 강호동이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님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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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출연은 강호동과 박찬호에게 윈-윈 게임이었습니다. '1박2일'은 정상의 방송이라는 성적과 자신감, 또 첫 게스트 기용에서의 성공이라는 이익을 봤고 박찬호는 그동안 자신을 알게 모르게 감싸고 있던 '거리감'과 '거만함' 등등의 부적절한 이미지를 씻는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또 과거로 잊혀질 뻔한 '117승의 신화'를 되살리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죠. 

(이날 막내 이승기가 "저는 어려서 잘 모르는데 그때 그렇게 박찬호 선수가 대단했나요?"라고 말하는 걸 보고 저는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그게 벌써 그렇게 옛날 일이 됐구나....)

아무튼 13년전의 그 내성적인 거한 청년이 이렇게 유연하게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걸 보니 새삼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현역인 박찬호, 2009 시즌에는 왕년의 위력을 다시 찾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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