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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긴 일정의 하이라이트. 클라우스 메켈레의 앵콜. 

물론 이건 늦은 밤 얘기고, 당연히 오후 시간대로 되돌아갑니다. 

밖으로 나오니 가는 비가 살짝 오락가락.

파리 사람들은 이런 비에는 익숙한 듯, 우산 쓴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동행인이 뭐 좀 사러 가야 한다는 곳이 있어서 비내리는 마레 거리를 조금 걸었다.

샵 이름이 메르시. 바로 옆의 농 메르시는 다른 가게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메르시 아님'이라고 가게 이름을 정한 걸 보면 주인이 같은 가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저 메르시는 커피숍 입구고, 정작 편집샵으로 들어가려면 바로 옆의 좁은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작은 정원과 함께 샵 메르시가 등장한다. 

그리고 샵 안에서 내다보면 이렇게 커피숍과 연결된다. 

물론 연결된다는 것은 공간의 연결이고, 샵에서 커피숍 쪽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 아무래도 물건을 쓱 집어들고 자연스럽게 커피숍으로 갔다가 도망친 도둑들이 꽤 있었지 싶다. 어쨌든 편집샵 안은 생각보다 엄청 넓고 물건도 많고... 한국말도 많이 들리고...  (아는 분들은 다 아는 데라고)

물론 태생이 물건 사는데 별 관심이 없는 터라(먹을 수 있는 물건 빼고) 이런 곳은 들어가는 순간, 제발 언제 나갈 수 있는 지 알려줘, 하는 심정이 된다. 대강 봐선 물건 값도 비싸다. 

그렇게 비가 살짝 뿌리는 마레 거리를 조금 걷다가, 꽤 알려진 카르나발레 박물관/카페를 갈 생각이었는데 동절기 휴관. 으슬으슬 추운 가운데 뭔가 차라도 한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보주 광장 주변의 유명한 카페라는 카레트 Carette 라는 곳을 갔으나, 역시 사진 한 장 찍고 싶지 않은 그저 그런 공간. 

 

숙소로 돌아와 저녁 스케줄을 위한 재정비를 하고, 북쪽으로 출발했다.

일단 저녁을 먹으러 향한 곳은 벨레뷜르 지역의 동 후옹 Dong Huong.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지난번에 파리에서 먹었던 쌀국수가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터라, 이번에도 파리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쌀국수였는데, 불행히도 한번 좌절했다. 

그래서 이번에 검색을 통해 다시 도전한 것.

현지 매체에서는 '파리에서 진정한 베트남 쌀국수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몇 곳...' 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그런데 저 위평 為平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메뉴에는 為平牛粉이라고 써 놨던데... 뒤의 牛粉이야 소고기 쌀국수라는 뜻이겠지만 위평은 대체 뭣일지. 

동 후옹이라고 쓰면 중국 남부의 동썅 桐鄕 이라는 도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 식당 집안의 조상이 저 동썅에서 오신 분들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베트남어로 동 후옹이 또 다른 뜻이 있는지도.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이 고이꾸온을 주문했는데.... 한입 깨물었더니 고기 냄새가 역하다.

고기가 삶아 놓고 냉장고에서 일주일은 버틴 듯한 냄새. 갑자기 자신감이 땅으로 꺼졌다.

구운 고기는 언뜻 보기엔 먹음직스러웠으나 어떤 건 질기고, 어떤 건 설익고. 

기본 쌀국수는 나름 괜찮았으나 기본적으로 국물이 너무 달다. 대체 4년, 코로나 사이에 파리의 쌀국수 집들이 단결해서 다들 설탕 한 숟가락씩 더 넣고 장사하자고 합의라도 한 것인가. 

아무튼 총평은: 쌀국수는 그럴듯 했으나... 굳이 다른 지역에서 차 타고 찾아갈 만한 곳은 아니었다는 걸로.

사실 목적이 라 빌레트에 있는 파리 필하모닉 홀을 방문하는 거였기 때문에 중간의 동 후옹을 갔던 거라서. 굳이 애써 동선을 낭비한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1998년에 방문한 라빌레트는 파리 북쪽의 공원이었고, 그 한 구역이 엑스포 같은 형식의 청소년을 위한 미래 과학 홍보관처럼 꾸며져 있었다. 과연 그 시설은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궁금했는데, 2015년에는 파리 필하모닉의 새 보금자리가 이곳 라빌레트에 지어졌다.

입구쪽에서 걸어가다 보면, 조명을 받아 빛나는 은갈치같은 괴물이 보인다.

오오 멋지다.

 

낮에 보면 이런 모습이라는 얘기. 장 누벨의 작품인데 안 멋질리가...

약간 빙빙 돌아서 입장해 보면 대기 공간이 이렇게 생겼다.

내부를 잠시 돌아보니 바는 4곳이나 있고, 다들 모두 뭔가를 마시고 있는데, 화장실은 아주 아주 아주 먼 곳에, 몇개 안 된다. 이상하게도 이 나라는 공중화장실을 굉장히 천대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공연장에서. 저렇게 한잔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화장실을 이렇게 멀고 적게 짓는 이유는 뭘까. 

아주 아주 그럴듯한 내부 공간.

무대도 막 멋지고.

글쎄 간거 맞다니까요.

잘 안 보이시는 분들 위해 부분확대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코러스석 쪽에 설치된 장애인 특별석. 

개를 데리고 들어와 있다. 맹인용 인도견은 짖지 않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콘서트 홀 안에도 데리고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봤다. 

(이것도 잘 안 보이시는 분들 위해... 강아지 여기 있습니다.)

이런 쪽으론 선진국 맞는 느낌.

관객들이 꽉꽉 차고, 시작한다!

마켈레 등장.

이 동네 사람들은 음악 연주를 하고 있을 때 외에는 사진을 마구 찍어댄다. 당연히 제지하는 사람도 없다.

한국이 좀 특이한 듯. 

클라우스 마켈레. 이 공연을 보고 있을 당시 27세. 세계 지휘계의 신성이자 아이돌. 훤칠한 키와 훈훈한 외모, 역동적인 지휘로 2021년부터 파리 필하모닉의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역시 아주 핫한 유자왕 언니의 남친이 되어 세계 클래식계의 핫 커플로 자리한지... 아직 잘 사귀고 있겠지?

어쨌든 이날 메켈레가 동향 북유럽의 16년 선배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노르웨이 출신)를 독주자로 불러들여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임윤찬 덕분에 더욱 핫해진 이 곡. 

 

임윤찬이 섬세하고 투명하다면 이 듀오는 지칠 줄 모르는, 데스메탈을 연상시키는 라흐마니노프를 연출해냈다. 장하다 스칸디나비안 브라더스, 역시 메탈의 고향! 바이킹 화이팅! 

그런데 이날 콘서트는 왠지 여기가 하이라이트였다는 느낌. 그 다음 메인 연주곡은 12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린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크리스마스 때마다 호두까기 인형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이 없는 서구 관객들은 어땠을 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딱히 큰 감회가 없었다. 

 

어쨌든 메켈레와 장 누벨의 홀을 경험했으니 여한은 없다. 파리 도착 후 시내에서는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 날인데, 중간에 잠시 전철이 끊기는 사고(그러나 옆에 서 있던 한 파리 시민은 '이런 일 늘 있어요' 라며 별 짜증도 안 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있었으나 다른 노선을 이용해 무사히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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