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KBS 2TV '미녀들의 수다'의 베라가 쓴 책을 놓고 인터넷이 시끌시끌합니다. '미수다'에서 베라의 캐릭터는 '뭘 말해도 웃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잡혀 있죠. 같은 독일 사람인 미르야가 다소 딱딱하면서도 분명한,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독일 사람' 이미지인 반면 베라는 부드럽고 밝은 이미지라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그 '스마일 베라'가 독일에서 출간한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Schlaflos in Seoul)'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부분 번역에서 인터넷에 올린 몇몇 사람들에 따르면 '작정하고 한국을 까려고' 마음먹은 듯한 내용이라는군요.

원문을 보지도 못했고, 본다 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처지에서 책의 내용이 한국을 비하했는지 아닌지 뭐라 말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이 사건을 보도한 수많은 매체들의 태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책의 내용에서 사람들이 흠을 잡는 부분은 * 한국인을 쥐에 비교했다 * 한국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라다 * 한국여자들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서 다리를 가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 등등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쥐에 비교했다는 부분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한국의 지하철을 출퇴근시간에 타면 서로 밀고 밀치는 환경이 끔찍하다. 지하철을 탈 때는 파리에 있던 시절을 연상시켰다. 서울이나 파리같은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누구나 남들을 앞질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때 나는 내 누이가 키우던 쥐들을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쥐들이 있을 경우, 쥐들은 서로를 물어뜯어서 우리는 그 쥐들을 떼어놔야 했다."

최초의 번역자와는 다른 사람인 블로거의 번역을 참고했습니다. 구체적인 번역 내용은 이 분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wunderba/50069746349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부분이 '한국인을 쥐에 비교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쥐라는 동물을 유쾌하게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만큼 출퇴근 시간의 만원 전철에 오르는 것 역시 불유쾌한 일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여기서 쥐라는 것은 그 불쾌감의 상징일 뿐, 이를 '한국인=쥐'라는 비교로 보는 것은 지나친 자학 증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를 들어 누군가 '63빌딩에 올라가면 오가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고 썼다고 칩시다. 이걸 '그 아무개가 한국인들을 벌레에 비유했다'고 주장하는게 그리 온당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이 좀 거칠기는 합니다만, 이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일단 '스마일 베라'와는 좀 다른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뭐든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았던 스마일 베라와는 달리 이 책을 집필한 베라는 상당히 냉소적입니다. 한국어 교육원에 다닐 때 담임 선생님이 계속 아내로부터 걸려 오는 전화를 받아 가면서 노래방에서 제자들과 어울리는 광경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이런 한국 남자의 태도가 그리 아름답게 비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과연 이런 비판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성질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한국인이 외국 생활을 하면서 우리와는 다른 외국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해 다소 희화화된 글을 쓰는 경우는 지금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은 없다' 처럼 지독하게 악의적이고 왜곡된 글을 쓰는 한국인도 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어디에나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소개된 미즈노 슌페이 교수의 경우는 그 뒤통수 때리기의 정도가 정말 극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름 한 글자를 바꾼 필명까지 사용하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털털한 웃음과 전혀 다른 면모를 과시한 미즈노 씨는 다시 한국에 발 붙일 자리가 없어야 마땅합니다. 다만 베라의 경우를 미즈노 슌페이 교수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꽤 무리가 있을 듯 합니다. 베라는 학자도, 한국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의 인상을 그대로 서술한 일반인일 뿐입니다.

(아울러 아직도 한국을 미개국 보듯 하는 일부 선진국 매체들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분개하거나 항의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일반인'들에 비해 '언론 매체'들은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비판할 의무가 훨씬 무겁기 때문입니다. 즉 미즈노 슌페이 같은 '학자'들이나 구로다 가쓰히로같은 '기자'들의 발언이나 논설은 주목할 필요가 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미수다'에서 요즘 모습을 볼 수 없는 캐서린의 경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캐서린의 실종이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수다'가 한국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 때문에 '미수다' 제작진으로부터 퇴출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미수다', '작가가 써 준대로 방송하는 미수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베라 사건에서 볼 때 결국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누구인지는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바로 한국에 대한 사소한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미수다'가 아니라 '한국 여론'이, '네티즌'이었던 겁니다. 베라의 잘못이라면, 한국인들이 이렇게 속좁은 사람들인 줄 모르고 섣부르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았다는 점일 겁니다. 아직 한국인들을 잘 몰랐던 것이죠.

('미수다'에서는 좋은 말만 하던 베라가 한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데 배신감을 느끼신 분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번 사건의 반응들을 보면, 왜 '미수다'가 한국 찬양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만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와 친구가 되기 위해 부드러운 말투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내게 다가오는 누군가가 모두 칭찬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칭찬에만 반색을 하고 사소한 비판에는 불같이 화를 낸다면 과연 누군들 그 사람에 대해 '뒷다마'를 까지 않게 될까요.

누구든 남들의 행동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아, 이런 것은 이래서 다르구나'라고 이해한다면 그게 더 좋은 것이겠지만, 그냥 본 대로 받아들이고 '이런건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고 해서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일일히 '망언' 이라고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체나 기자들도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728x90

장근석 박신혜가 출연하기로 한 SBS TV의 차기 수목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 뜻하지 않은 새 캐스팅 소식이 있었습니다. FT아일랜드의 이홍기가 이 작품에 합류한다는군요. 더군다나 장근석+이홍기+남자판 박신혜 등 네명이 아이들 그룹을 결성한다는 얘기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느낌은... '어떻게 구별하나'.

장근석은 알아도 이홍기가 누군지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두 친구는 구별이 안 되게 닮았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몇살 더 먹은 장근석이 살짝 더 남자 티가 난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그 얼굴이 그 얼굴입니다.

둘이 헤어스타일을 어지간히 다르게 하기 전에는 시청자들 중 상당수가 둘을 구별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지도 모르는데 과연 이것이 제작진의 의도적인 캐스팅인지, 아니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뭐 '환상의 커플'의 홍자매가 집필하는 드라마라는데, 아무래도 이들 둘을 공연하게 할 때에는 뭔가 복안이 있는게 아닐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눈썰미가 아주 좋은 분들은 '난 암만 봐도 다르구만' 하실테지만... 제 눈에는 똑같습니다(참고로 왼쪽이 이홍기, 오른쪽이 장근석입니다). 신기한 건 연예인 A와 B가 닮았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경우에도 팬들은 "우리 오빠가 훨씬 잘생겼어욧!"하고 발끈한다는 겁니다. 지난번에 한국과 일본 연예인들 사이의 닮은 얼굴에 대한 포스팅을 했을 때에도 김현중과 야마삐가 닮았다는 말에 격분(?)하는 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이런 류의 닮은꼴들은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뭐 한예슬-하주희, 정려원-이요원 등등이 닮았다는 건 너무 오래된 얘기고,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셨을테니 조금 신선한 쪽으로 골라 봤습니다. 성형수술의 보편화 이후로 닮은 연예인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있죠.

일단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티아라의 지연과 김태희. 그런데 사실은 여기는 비밀이 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건 지연이 정면을 바라보면 김태희와 별로 닮지 않았다는 사실. 물론 어떤 분들은 정면 얼굴도 똑같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리고 살다 보니 느끼는 건데, 닮았다고 느끼는 감각도 개인차가 심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척 닮았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 닮지 않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기태영과 이상우가 잘 구별이 안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둘은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모범생 이미지 때문에 더 닮아 보입니다. 하긴 또 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별로 안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군요.

기태영은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 아들, 이상우는 '조강지처 클럽'에 오현경의 상대역인 구세주 역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어? 걔가 걔 아니었나?'하는 분이 꼭 있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주진모 사진이 둘일까 생각하는 분도 있으려나요. 가운데 김범을 사이에 두고 있는 주진모와 이용우도 참 비슷한 이미지죠. 나이는 주진모가 위지만 혼동할 수도 있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서로 별로 닮지 않았는데도 구별이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 두 배우가 헷갈립니다. 사진을 붙여 놓고 보더라도 분명히 별로 닮지 않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김정태와 이종혁은 이상하게 제 머리 속에서 뒤섞여 있습니다. 아마 저만 그럴 겁니다. '친구'에서 김정태가 맡았던 도루코 이미지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종혁이 연기했던 못된 규율부장 역할이 교복과 함께 엇갈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둘도 최근까지 이름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둘 중 하나가 따로 있으면 '이 친구가 고명환 아니면 문천식인데... 대체 둘중 누굴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이건 둘이 닮았다기 보다는 너무 오랫동안 붙어 활동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붙어 활동해도 서경석과 이윤석, 이수근과 김병만을 혼동하는 일은 없죠. 대체 왜 이 둘이 헷갈리는지 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가장 닮았으되 가장 다른 길을 걸은 사람이라면 이 둘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90년대 중반, 이 두 사람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데뷔 시기도 거의 비슷했고, 누가 봐도 우열을 가리기 힘듭니다. 연기력도 둘 다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나이는 이세창이 두살 위.

그 시기의 이세창이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동건이가 꽃사슴 이미지라면 나는 들개 이미지"라고 했었죠. 뭐 그렇게 공감 가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둘 다 꽃사슴 이미지였기 때문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참... 과연 무엇이 그렇게 두 사람을 갈라 놓았는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맨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장근석과 이홍기가 같이 나오는 드라마... 자칫 영화 '디파티드'를 볼 때 맷 데이먼과 마크 월버그를 구별하지 못해서 곤란을 겪었던 분들(생각보다 꽤 많더군요^^)의 고초가 재현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728x90
KBS 2TV '1박2일'이 다음주까지 글로벌 특집으로 진행됩니다. 미국, 영국, 루마니아, 코트디브와르(아이보리코스트), 일본, 인도에서 온 각국 젊은이들이 기존의 1박2일 멤버들과 각각 파트너가 되어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이미 친구를 한명씩 데려와 보기도 했고, 일반인 한 부대씩을 이끌고 1박2일을 치러본 적이 있는 멤버들이라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리 어려울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1박2일 멤버들이야 원래 연예인이라 그렇겠지만, 새로 등장한 외국인 친구들의 끼는 못말릴 정도더군요.

이 대목에서 우리가 느낄 만한 점이 있습니다. 이날 방송에 나온 친구들은 '한국인의 좋은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외국인 친구들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객지인 외국에 와서도 잘 적응하고, 한국 방송에까지 출연해 시청자들을 웃기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외국에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도 사랑받는 외국인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요?

1박2일 글로벌 특집의 교훈은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외국인이 될 수 있을까'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간단합니다. 입장만 바꿔 놓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일단 그 나라 말을 쓰려고 노력해라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려고 결심하면 6개월 전부터 그 나라 말을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뻥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와 6개월 사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말을 배울 수 있는 지능을 모두 갖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이건 그냥 예로 든 겁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가이드북이라도 그 나라 말을 어느 정도 소개하지 않는 가이드북은 없습니다. 하다못해 인삿말이라도 좋습니다. 그 나라 말을 최대한 하려고 노력합시다. 패키지 여행만 가도 가이드는 처음에 그 나라 인삿말과 몇가지 표현을 가르쳐 줍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말을 한번이라도 써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그냥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그 나라 사람들이 볼 때 어느 쪽에 더 정이 갈까요.
소위 세계 공용어라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웬만한 지역에 가면 불편 없이 지내다 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현지어 인사말 한 마디는 팁보다 좋은 효과를 낼 때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말은 못해도 좋다.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여라

자, 인삿말은 할 수 있다. 그래도 의사소통은 언감생심. 특히 '외국어 울렁증'이 많은 분들은 아예 말을 못 꺼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함부로 영어로 입 열었다가 전혀 '외국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현지인들의 따발총같은 말투(...이건 누가 뭐래도 미국인들의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에 찔끔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더욱 그럴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외국을 몇번 나가 본 결과, 양쪽 모두 소통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사람과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할 줄 알고 모르고보다는 이 의지가 중요합니다.
'1박2일' 글로벌 편에서 감탄한 건 아프리카 출신의 와프입니다. 한국어 실력이 여섯명중 가장 처지는 사람이지만, 눈치 하나로 뭐든 해결할 수 있는 재치가 돋보였습니다. 눈치 하면 또 한국 사람 아닙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그 나라에 대해 공부해라.

미국 출신 출연자가 시애틀 출신이라고 하자 강호동이 "오바마의 고향?"이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하자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시카고도 고향은 아니죠. 오바마씨는 하와이 출신입니다) 어쨌든 이런 말이라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가장 감동적인 건 청산도를 걷다가 "아리랑 노래 부를때 이 길 아니야?"(위 사진)하던 단의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단은 '서편제'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세 주인공의 '진도 아리랑 신'(아래 사진)을 보았던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한국 사람도 '서편제'를 봤다면, 단의 말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 말 한마디로 단은 '나는 한국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람의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다른 말 백마디 보다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사람이 루마니아에 갔다고 칩시다. "우리(루마니아) 축구 예전에는 잘 했는데 요즘은 영 별로다"라고 말하는 현지인들에게 "무슨 소리냐. 게오르그 하지는 정말 최고의 선수였다"고 말해줘 보십쇼(물론 무투도 좋습니다).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하다못해 "어려서 코마네치의 팬이었다" 정도만 해 줘도 좋아할 겁니다. 이날 출연한 와프가 제기를 찰 때 "와, 디디에 드록바(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첼시 스트라이커)의 나라 출신이라 역시 대단하구나"하면 얼마나 좋아할까요.
90년대에도 유럽에서 기차 타고 배낭여행을 하다가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면 아무 맥락 없이 "루드 훌리트, 반 바스텐, 라이카르도, 요한 크루이프!" 라고만 해도 치즈와 하이네켄 맥주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는 얘기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요즘은 오히려 그쪽에서 '박지성!'해서 한국 관광객들로부터 뭘 얻어 먹을지도...).
예를 축구로 들어서 그렇지,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공부하고 갑시다.



4. 그 나라 음식을 먹어라.

요즘은 용병 선수들이 흔해져서 그렇지 프로야구나 농구의 용병 도입 초기에는 지겨울 정도로 '토종 용병'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어느 구단의 아무개는 곰탕에 밥을 말아 김치를 척척 얹어 먹네, 아무개는 보쌈에 굴김치가 없으면 못 먹네, 아무개는 청국장도 먹네...
그렇습니다. 음식만큼 친근감을 자아내는 것도 드물죠. '똑같은 것을 먹는 사람=통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6개월 이상 산 외국인 가운데 "개고기 먹을래?"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굉장히 붙임성이 없는 사람일 겁니다.
'1박2일'에서도 묵은지에 회를 싸먹는 외국인들의 식성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미녀들도 말합니다. 한국 식당에 가서 한국어로 "아줌마, 소주는 써비쓰!"하면 술값은 안 내도 된다는 거죠.
물론 닳고 닳은 관광객 전용 식당에서는 이런게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어느 나라를 가건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을 가 봐야 하는 겁니다. 외국인이 발품 팔아 찾아온 걸 신기하게 여기는 그런 식당에서는 "맛있다. 뭐 다른 건 없어?"라고 할 때마다 신이 난 주인들이 더 맛난 걸 가져옵니다. 원래 사람이란 그러게 돼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 한국말이라도 조심해라.

이미 2번 항에서 얘기했지만 신기하게 한마디도 모르는 나라 말이라도, 의미는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억양만 봐도 이게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는 귀신같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해외에 나가면 "한국말로 하는 건 절대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큰 소리로 방문한 나라를 욕하는 것도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이 생각나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6.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봐

해외에서 처음 만나는 미국인들에게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건 "나는 미국이 싫으니 내 앞에서 썩 꺼져"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요즘은 별로 없겠지만 예전엔 일본 사람만 만나면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야?"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C가 이날 한 말 중에 위태위태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출신인 와프에게 "우리보다 이 프로그램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야생의 땅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이유로 와프는 야만인이나 원시인 취급을 받는데 진력이 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프리카에 미개척 지역이 많다고 해서 와프가 나무에 매달려 야자열매를 따 먹다가 온 건 아니겠죠. 이런 식의 표현은 매우 위험합니다.
베트남에 가서 "우리 삼촌이 월남전때 와서 무공훈장 받았다던데..."라는 말로 '방문국과 나의 인연을 얘기해서 친근감을 두텁게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터키에 가서 친숙하게 보이려고 "아, 나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보고 터키에 꼭 와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터키를 소재로 한 영화인 건 분명하지만 이 영화 속의 터키 교도소는 생지옥입니다. 일본에 가서 "태어나서 가장 신났던 영화가 '일본 침몰'"이라고 말하는 식일 겁니다.
3번의 '공부하자'는 말과 통하는 얘깁니다. 어설프게 알면 사실 좀 위험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얘기하면 "미국 사람들은 우리 나라 와서 제멋대로 하는데 왜 우리라고 나가서 눈치를 보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미국 사람 뿐만이 아니라 잘 사는 나라일수록 밖에 나가서 현지인들의 눈치를 안 보는 경향이 있죠.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그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으면 맘대로 하라"고 해야겠죠. 우리가 무시당한 걸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걸로 풀고 싶다면 그걸 누가 말리겠습니까. 다만 그런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괜히 피해보는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외국은 나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을 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그나자나 후편에서도 역시 와프의 활약이 돋보일 듯 합니다... 아, 그리고 인도 청년의 '뚫훅송'도 오랜만에 참 반갑더군요.




728x90
정우성의 '기무치 파동'이 결국 본인의 실수 인정과 사과로 끝났습니다. 전말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일본 후지 TV의 인기 프로그램 '톤네루즈'에 출연한 정우성이 한국의 음식 이름을 'kimuchi chige'라고 쓴 패널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김치찌개를 표시하는데 왜 굳이 김치(kimchi)라고 쓰지 않고 일본식 표기인 기무치(kimuchi)라고 표기했느냐는 것이 이 방송을 본 국내 네티즌들의 지적이었죠. 그런데 정우성의 소속사는 초기 대응에서 또 한번의 실수를 합니다. "kimuchi라는 글자는 정우성이 쓴 것이 아니라 일본 방송의 스태프가 쓴 것"이라고 발뺌한 것입니다.

결국 정우성이 이것이 거짓말이었음을 직접 밝히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정우성은 남자답게 사과를 했고, 이번 사건은 해외에 진출한 한국 스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네.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억해둬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치가 어느 나라 음식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코웃음을 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세계인을 대상으로 볼 때 과연 김치와 기무치 중 어느 쪽이 더 인지도가 높을지, 김치가 한국 원산인지 일본 원산인지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 지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 '당연히 김치는 한국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일본은 '기무치'라는 상품을 통해 '김치는 한국산, 기무치는 일본산'이라는 식의 노선을 취해 세계 시장을 차지해갔습니다. 결국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한국이 황급히 노력해 이뤄낸 것이 2001년 CODEX의 식품명 공식 표기 선정입니다. 이때부터 kimuchi라는 상품은 사라지고, 모두 kimchi라는 이름을 쓰도록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즉, 세계가 공짜로 '김치=kimchi'를 인정해 준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kimchi라고 표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이 일본산이나 중국산보다 우수한 상품으로 평가된다는 법은 없으니 김치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인 kimchi가 자칫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kimuchi라는 표기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악몽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계 식품 시장에서 이런 식의 원산지 빼앗기 다툼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보드카=러시아의 국민주'라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1977년대에는 폴란드가 "보드카는 폴란드에서 처음 탄생한 술이므로 폴란드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은 술에 보드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청원한 바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구 소련 측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폴란드가 고문서와 기록 등을 들어 이 주장을 본격적으로 관철하려 해 두 나라 사이에 '보드카 원조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결국은 러시아가 100년 정도 앞선 보드카 생산 기록을 제시함에 따라 '보드카 원조는 러시아'라는 내용이 공식 인정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정우성의 kimuchi는 그동안 kimuchi를 몰아내고 kimchi를 표준으로 하기 위해 애쓴 분들의 노고에 대한 결례로 여기지는 것입니다. 사소하지만 의미는 꽤 큰 차이였던 거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번 사건은 최근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에 출연한 이병헌의 한국어 대사와 맞물려 묘한 느낌을 줍니다. 이병헌은 일본 캐릭터도 되어 있는 자신의 역할 스톰 섀도우를 '한국인 출신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 자신의 아역인 소년에게 직접 한국어 대사를 지도하는 열의를 보였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라마의 흐름으로 따지자면 닌자인 스톰 섀도우는 일본인이라는 쪽이 훨씬 자연스러웠겠지만 어쨌든 이병헌은 이 대작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한국인임을 좀 더 확실히 해 두려 했고, 혹시나 일부 국내 팬들이 일본인 역할을 연기하는 데 대한 반감을 갖지 않을까 의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건 정우성의 경우와 절대적인 차이로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한 비가 역시 자신의 캐릭터 이름인 '토고 칸'을 '태조 토고 칸'으로 바꾼 것 역시 같은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임을 뜻하는 태조, 일본 식의 성 토고, 그리고 징기스칸에서 따온 듯한 칸으로 이 이름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아닌 '아시아인'을 의미하는 이름이 됐죠.

이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비는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 부착된 유니폼을 고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좀 더 선명하게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국내용 프로모션이든, 국제용 프로모션이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정우성의 기무치 사건은 그가 한국의 얼굴로 해외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국내 팬들에 대한 배려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입니다.

물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정우성의 사과를 인정하되,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스타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비슷한 종류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728x90
사흘 뒤, 오는 13일이면 마이클 잭슨의 49재가 되겠군요. 한국식 습관이지만 뭔가 의미를 찾고 싶은 날이기도 합니다. 눈물로 그를 보낸 사람들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법도 한데 들려오는 소식은 논란과 번복, 말다툼의 연속입니다.

한 시대를 지배한 팝의 제왕이 죽은 뒤 정리하는 포스팅도 꽤 많이 올렸습니다. 세 보니 모두 9개더군요. 15년간 취재한 그의 모습은 이제 마지막 한 편만 남겨 놓고 있습니다. 1999년 서울에 마지막으로 왔을 때까지 정리하는 걸로 그에 대한 조상을 마칠 생각입니다.

관련 포스팅을 한데 묶을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인덱스 포스팅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 포스팅을 찾을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팬으로 15년
 
사망후 첫번째 쓴 글입니다. 그의 일생에 대한 간략한 정리입니다.


1. 모스크바에서 만난 마이클 잭슨
 
1996년, 첫 내한공연을 앞두고 모스크바로 그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을 정리한 포스팅입니다. 그와 함께 찍은 가보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2. 96년 내한공연(1)
 
마침내 서울에 온 잭슨과 당시 국내에서 펼쳐졌던 잭슨 공연 반대 운동의 기이한 열기, 그리고 서울에 온 잭슨의 몇가지 기행들을 다뤘습니다.


3. 96년 내한공연(2) - 그를 껴안은 남자
 
2회 공연중 무대에 오른 마이클 잭슨에게 한 단발머리 남자가 달려들었습니다. 대체 이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왜 그에게 달려든 것일까요?


4. 평양에 먼저 갈뻔한 마이클 잭슨
 
1997년 갑자기 무주 리조트에 나타난 마이클 잭슨. 그는 왜 돌연 한국에 나타난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평양으로 가려던 그의 노력은 어떻게 됐을까요.


5.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서울 무대

<이 포스팅은 준비중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머지는 그에 대한 이런 저런 화제들입니다.


왜 라이브가 드물까?
 
MBC는 두 차례에 걸쳐 그의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연 실황을 방송했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이 그의 유일한 공식 공연 영상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대체 전설로 남은 그의 공연 영상이 왜 이렇게 상품화되지 않은 것일까요.


사망 직전의 영상들
 
사망 직전, 런던 공연을 준비하던 그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영상들입니다.


영결식 총정리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영결식에 누가 왔고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


마이클 잭슨의 여인들
 
다이애나 로스에서 브룩 실즈를 거쳐 데비 로에 이르는, 그의 일생을 스쳐간 여인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중 진정한 그의 사랑은 누구였을까요.




728x90

마이클 잭슨의 사인에 이어 마이클 잭슨의 딸 패리스의 생부가 자기라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왕년의 '멜로디' '올리버'의 아역 스타 출신 배우 마크 레스터라는군요('코만도'의 감독인 마크 레스터와는 동명이인). 사후 한달이 넘었지만 잭슨과 관련된 화제는 끊일 날이 없어 보입니다.

저도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이야기를 빨리 정리해야 할텐데 막상 쓰기 시작하면 또 얘깃거리가 새록새록 살아나서 어느새 분량이 길어지곤 합니다. 아무튼 기왕 시작한 거니 끝을 보겠습니다.

사실 기자 생활을 10여년 하면서 참 신기한 일을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세상에서는 가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는 식의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마지막으로 "그게 사실이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고 말한 날은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이 끝나고 1년이 지난 1997년 11월18일 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월18일 오전의 일입니다. 마감을 마치고 점심 약속차 회사를 벗어났는데 당시 친하게 지내던 김 아무개 작가님(지금은 원로급 작가가 되셨죠)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대뜸 "마이클 잭슨이 지금 한국에 와 있다더라"는 거였습니다.

에이 아무리... 하는 생각이 먼저 스쳤습니다. 마이클 잭슨 쯤 되는 사람이 그렇게 소리 없이 움직일 수 있을리도 만무하고, 우리 나라가 그렇게 마이클 잭슨 같은 인물이 조용히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거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그런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된 시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이클 잭슨이 들어왔으면 지금 온 나라가 난리가 났을텐데 이렇게 조용하다는게 말이 되냐"고 오히려 훈계조(?)의 말을 늘어놨습니다. 마무리는 "지금 잭슨이 서울에 있다면 내가 손바닥에 당장 장을 지지겠다"는 걸로 끝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고 나서 뭔가 찜찜하긴 했는지 회사로 정보보고를 했습니다. 이런 소문이 돈다는 정도였죠. 하지만 회사 안의 반응도 냉담했습니다. "너 할일 되게 없구나"라는 식이었죠. 그런데 오후, 회사에서 긴급 호출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정말 왔다"는 거였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무주 리조트에 갑자기 떠서 난리가 났답니다.

그때부터 호떡집에 불난 듯 여기저기 확인에 들어갔지만 사실 한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행적에 대해 취재를 한대봐야 찔러 볼 곳이 뻔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잭슨의 음반 발매사인 소니뮤직으로 문의가 빗발쳤지만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 없다. 연락받은 것 없다"는 멘트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확인된 것은 무주 리조트에서 만날 사람이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라는 것 정도였죠. 이 경로를 통해 흘러나온 내용은 "리조트 산업에 관심이 많은 잭슨이 무주 리조트에 거액을 투자해 세계적인 관광단지를 개발하려 한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너무 허점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잭슨이 해외의 리조트 산업에 투자를 했다는 얘기는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리조트를 개발한다면 그게 왜 한국이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던 오후, 국내 최고의 팝 전문가였던 당시 데스크께서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해냈습니다. 잭슨의 이번 극비 방한은 마이클 잭슨의 숙원인 평양 공연을 이루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다는 겁니다. 충격적인 얘기였죠.

마이클 잭슨의 야망이 세계의 모든 폐쇄적인 나라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라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온 얘기지만, 1994년 6월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특사로 삼아 평양에서 김일성과 협상을 벌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카터가 가져간 카드 중 하나가 마이클 잭슨의 평양 공연이었다는군요.

이야기가 제대로 진전됐다면 잭슨은 서울 공연보다 평양 공연을 먼저 치렀을 지도 모릅니다(그랬다면 상당한 망신이었겠죠. 북한보다 더 폐쇄적이고 장애물이 많은 나라 취급을 받았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김일성-카터 회담이 있은지 한달만인 7월, 김일성은 갑작스레 사망합니다. 설혹 이때 잭슨의 공연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그런걸 이행할 정신은 누구도 없었을 겁니다. 만약 김일성이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뭐 역사에서 가정이란 별 의미가 없겠죠. 다행히 1996년 서울에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 열렸고, 이로써 북한에 추월될 가능성은 없어졌습니다.

아무튼 그런 사연 속에서 1997년 내한한 잭슨은 1안으로 평양 공연,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판문점이나 비무장 지대 공연을 염두에 두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내한했다는 것이 새로운 정보의 내용이었습니다. 잭슨 혼자 벌이는 공연이 아니라 그와 친한 세계적인 스타들이 함께 할 것이고, 그 수익금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벌인다는 명분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공연장으로 불러낸다는 계획도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이 내용을 대서특필했는데, 취재는 데스크가 거의 다 하셨지만 관례상 이름은 제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극비 방한, 진짜 목적은 평양 공연 추진'이라는 화끈한 기사였죠.

그런데 특종이란게 사실 너무 앞서가도 못쓰는 법입니다. 제 이름으로 나간 기사 빼고는 온 사방의 모든 기사가 '마이클 잭슨, 무주 리조트 투자차 방한'이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경쟁사들이 따라오고 싶어도 도대체 기사를 확인할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잭슨은 21일 서울로 올라와 그해 연말 있을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 당시 아태재단 이사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잭슨이 한국을 떠난 뒤 마침내 26일,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잭슨이 판문점에서 세계적인 스타들과 함께 북한 어린이 돕기 공연을 펼칠 것이라는 내용이었죠. 이로써 특종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지만 마음 속으론 '평양에선 결국 공연이 열리지 않는구나'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듬해 2월, 잭슨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서울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도 자주 오다 보니 잭슨이 오는 것도 이제는 그냥 늘 있는 일처럼 여겨지더군요^^. 이때 방한한 잭슨은 무주 리조트에 대한 투자 양해각서(MOU)를 작성하고 1억달러인가 하는 거금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최원석 당시 동아그룹 회장의 자택을 방문해 150만평에 달하는 인천 매립지에 대한 개발 계획을 논의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돈 얘기는 그냥 이렇게 나왔다 사라졌습니다. 잭슨은 한국 땅에 단 한푼도 투자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마이클 잭슨을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은 알 왈리드 왕자 같은 갑부들이 몇몇 한국 기업에 투자를 했습니다.

하지만 98년으로 예정됐던 문제의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공연은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습니다. 아마도 잭슨의 개인 사정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듯 합니다. 그러는 사이 잭슨과 한국의 인연을 만든 최규선씨도 이 공연과 관련된 사기 혐의로 궁지에 몰리고, 잭슨의 공연은 다시 한국에서 열릴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1999년, 국내 최대의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이 참여하면서 꺼져가던 불씨는 확 되살아납니다. 이것이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한국 땅에서 열린 '팝의 제왕'의 마지막 무대였습니다. 바로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의 공연이죠. 여기까지 정리를 해야 이 글이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p.s. 최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북 특사로 파견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태라는 뉴스를 보면서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그리고... 여러분도 어떤 경우에든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는 말은 함부로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의 앞의 사연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포스팅을 참고 바랍니다.

728x90
규장각 각신과 성균관 유생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는 나라로부터 녹봉을 받는다...가 아닐까요. 뭐 눈치 있는 분들은 사실은 소설 얘기라는 걸 금방 눈치채셨을 겁니다.

휴가철을 맞아 읽은 책이 몇권 있습니다. 뭐 여기 소개할만한 책도 있고, 아닌 책도 있는데 아무래도 재미로 따지면 새로 나온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2권 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아시는 분든 다 아시겠지만 이 책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속편입니다. 이 책 제목을 지금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있다면, 인생을 헛사신 겁니다. 지금이라도 yes24나 리브로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만해도 상당히 늦게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접한 편인데, 읽어보고 나니 후회되는 부분이 꽤 있었습니다. 이걸 왜 지금에서야 보게 됐을까...하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성균관'의 배경을 잠시 설명합니다. 때는 정조 초기. 몰락한 남인 가문의 딸 김윤희는 홀어머니와 병약한 남동생 윤식의 생계를 위해 남장을 하고 서책 필사로 돈을 법니다. 그러다 필사 가격을 올려 받을 욕심에 어찌 어찌 해서 과거를 보게 되고, 어찌 어찌 하다 급제까지 해 성균관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간 성균관에서 윤희는 노론 벽파 좌의정의 아들이며 조선 최고의 꽃미남이자 천재(...죄송합니다. 설정이 그런걸 어쩌겠습니까)인 이선준, 천재 시인이지만 술과 쌈박질의 달인인 소론 문재신, 그리고 당파도 아리송하지만 사치와 주색잡기, 그리고 네트워킹의 달인 구용하를 만나게 됩니다.

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심지어 '선덕여왕'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사회에 들어간 여장 남자' 이야기가 꽤 보편화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풀어내는 사연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켜볼만큼 재미있습니다. 아울러 여자인 윤희가 '대물'이라는 얄궂은 호칭으로 불리게 되는 과정까지도 무리 없이 풀어낼 만큼 작가의 필력이 뛰어납니다. 여기까지가 '성균관' 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2편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우여곡절 끝에 성균관을 마치고 규장각에 들어가게 된 이들 4총사(책 안에서는 '잘금 4인방'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기생이건 양가집 규수이건 다들 오줌을 찔끔찔끔 싸게 된다는....)의 좌충우돌하는 사연을 그립니다.

문벌도 다르고 당파도 다른 네 인재를 남달리 총애하는 정조. 하지만 이들이 속해 있는 각 당파는 당연히 이들을 한데 묶는데 불만이 있고, 심지어 몰락한 남인 가문의 후예인 김윤식(행세를 하고 있는 윤희)이 규장각에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관료 사회에서는 파격에 가깝습니다.

이들을 불만스러워하는 조정에 대고 정조는 퉁명스럽게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테스트를 해서 떨어뜨리렴"이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관료들은 온갖 머리를 짜내 이들을 괴롭히려 하지만... 주인공들의 능력은 워낙 사기 유닛입니다. 세상에 못하는 게 없고, 모르는게 없습니다. 이선준의 폭넓은 지식과 식견, 윤희의 못잖은 실력과 최고의 필사력, 재신의 체력(?)과 문장력, 그리고 용하의 재력과 높은 경험치가 결합되면 난제라는게 존재하질 않습니다.

정은궐 작가에게 탄복하는 것은 규장각과 당시의 조정 구도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연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규장각' 도입부에서만 봐도 선준과 윤희 앞에 가로놓인 첩첩의 난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데 그 난제들을 풀어가는 방법에 별 무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규장각'과 '성균관'의 가장 큰 차이는 정조의 이미지 부각입니다. 성질도 급하고, 막말도 하고, 머리가 좋은 만큼 머리 나쁜 신하들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는 인간적인 정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얼마 전 발견된 어찰첩의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다면 참 정은궐 작가는 선견지명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재미있는 책을 보신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남아있는 페이지가 점점 줄어들 때의 아쉬움을 아실 겁니다. 위안이 되는 거라면 줄거리나 마무리 방식으로 보아 아무래도 3부가 나올 것 같다는 점(책의 끝부분을 보면 3부의 제목도 '*** **들의 나날'이 될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만 스포일러에 해당하기 때문에 굳이 밝히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머잖아 '성균관'이 드라마판으로 방송될 것 같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판권이 애저녁에 팔렸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과연 누가 주인공이 되면 어울릴까를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제 생각에는 윤희 역은 똑떨어지는 배우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한효주양이죠. '어지간한 남자들만큼' 큰 키. 선량한 눈빛. 게다가 선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똑똑한 말씨(이 대목에서 많은 경쟁자들이 탈락입니다), 고운 얼굴 선. 뭣 하나 빠지는 게 없습니다. 그냥 윤희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미리 얘기한게 아니라면, 지금 '찬란한 유산'으로 상한가를 때리고 있다는게 캐스팅의 난제로군요. 한효주 본인으로서도 해볼만한 역할일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선준 역에 맞는 배우가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는 겁니다. 훌쩍 큰 키, 자상한 미소, 조선 시대의 천재 이미지에 맞는 지성미(네. 사실 이 부분에서 턱 막합니다), 적절한 나이... 제가 아는 남자 연예인 중에서는 이 조건을 충족시킬 사람이 영 떠오르질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굳이 생각하자면 조이병 정도? 그런데 제대할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겠죠.

재신 역도 만만찮은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탓에 딱 떨어지는 캐스팅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사실 책을 봐선 '젊은 김영호' 정도의 이미지인데 조한선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이 소지섭 얘기를 하시던데 아마 출연료 견적이 안 나올겁니다. 되기만 한다면야 하정우가 최고겠지만 말입니다.

용하 역은 비교적 폭이 넓습니다. 박용우 차태현에서 강지환까지 연출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의 용하와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젊은 배우 중에는 김동욱이나 이규한 같은 스타일도 이런 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성균관' 드라마도 언제쯤에나 보게 될지 궁금합니다. 기다리기 지루한 분들은 '규장각'을 보시면서 시간을 보내셔도 좋을 듯 합니다.



728x90
동방신기와 SM의 설전이 한차례 오갔고, 이 초대형 아이들 그룹의 앞날이 온 사회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팬 수를 보나 앨범 판매량을 보내 국내 최고의 인기 그룹인 동방신기가 이대로 가다가 해체라도 되는 날이면 반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도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분들은 늘 하던대로 '악마같은 소속사의 농간'이라고 치부하고 있고, 어떤 분들은 장자연 사건 이후 늘 말썽이 되어 온 소위 '노예계약' 문제로 한방에 싸잡아 보려 하기도 합니다(상황을 잘 모르는 일부 기자들도 포함됩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있는데도 외면하거나,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서툰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핵심적인 논점 세가지를 챙겨 봤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째. 동방신기는 수입의 0.4%~1%만 가져간다?

현재 SM에 계약해지를 요구한 세 멤버의 주장 중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일부 팬들은 "동방신기에게 그동안 지급한 돈이 110억원에 달한다"는 SM의 주장을 보고 나서 "몇천억원씩 버는 아이들에게 고작 110억원(?) 주고서 생색이냐" "110억원을 다섯 멤버에게 5년으로 나누면 연간 4억원 정도다. 그걸 많이 줬다고 할 수 있느냐"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지 한번 보겠습니다.

일단 회사 쪽이 지급한 액수가 SM의 주장대로 110억원이라고 믿는 것을 전제로 하겠습니다. 아마도 상대방이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이런 액수로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 표는 네이버 증권정보가 제공하는 SM의 연간 매출액 규모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방신기가 데뷔한 2004년 199억원에서 2008년 434억원까지, 2004년 이후 5년간의 매출액 합계는 148723백만원, 즉 1487억여원이 됩니다. '1년에 천억원씩 버는 동방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매출 1487억원 가운데 얼마가 순익인지는 다음 표에 나옵니다. 역시 네이버 증권정보가 제공하는 SM의 손익 기록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이익은 23, 37, 16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5년 12억원의 흑자를 낸 것을 포함하면 4년간의 영업수지는 64억원의 적자인 셈입니다. 이 4년간 동방신기에게 간 돈 110억원을 46억원 이하로 줄였다면 이 기간 내내 SM은 흑자를 낼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SM의 매출 규모로 볼 때 동방신기가 데뷔후 5년간 받았다는 돈의 총액 110억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하나의 함정은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는 세 멤버가 제시한 숫자의 함정입니다. 이들이 발표한 원문을 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멤버들이 계약 기간 동안 SM으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계약금이 없음은 물론, 전속 계약상 음반 수익의 분배 조항을 보면, 최초 계약에서는 단일 앨범이 50만장 이상 판매될 경우에만 그 다음 앨범 발매시 멤버 1인당 1,0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50만장 이하로 판매될 경우 단 한 푼도 수익을 배분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조항은 2009. 2. 6. 에 이르러서야 개정되었는데, 개정 후에도 멤버들이 앨범 판매로 분배받는 수익금은 앨범판매량에 따라 1인당 0.4%~1%에 불과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서 "아니, 0.4에서 1%라니, 이런 노예계약이 어디 있어!"라고 흥분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잘 보시면 이 조항은 '앨범 판매로 분배받는 수익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동방신기의 수입은 앨범 판매 외에도 공연, 행사, 사인회, 초상권, 방숭출연(물론 이건 무시해도 좋습니다) 등을 통해 나옵니다. 굳이 그 가운데서 앨범에 대한 수익금만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입니다.

만약 다른 부분의 수입에서도 0.4~1.0%의 수익 배분이라면, 과연 SM의 매출은 얼마가 되어야 할까요. 위에서 본 대로 동방신기 데뷔 후 SM의 총 매출이 1487억원 가량입니다. 이 매출이 모두 순익이라고 하더라도 1인당 1%면 약 15억원. 5를 곱해도 75억원 가량이 됩니다. 순익도 아니고 매출의 1%씩을 줘도 75억원인데 110억원을 줬다면 SM은 미친 회사입니다.

물론 이 매출이 모두 순익일 리는 만무합니다. 게다가 이 매출은 보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가 기록한 매출을 모두 합한 것이죠. (설마 매출과 순익을 구별 못하는 분은 없겠죠?) 즉, 동방신기 멤버들은 다른 부분의 수입에 대해서는 1.0%보다 훨씬 높은 분배 비율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방신기가 지금까지 판 앨범의 수는 이렇습니다. 이중 SM이 번 돈은 얼마일까요. 앨범과 싱글의 가격이 다르고, 제작사의 수입은 소매가가 아닌 공장도 가격에 달려 있고, 계약에 따라 수익률이 다르기 때문에(게다가 해외 판매 수입의 경우는 정하기 나름입니다. SM의 경우는 또 일본 수입은 AVEX와 나눠야죠) 딱 잘라 얼마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얼추 계산해볼 때 SM의 동방신기 앨범 수익은 100억원에서 200억원 사이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수입에서 동방신기가 나눠 받는 비율을 높였다면 다른 부문의 수입에서는 배분율이 나빠졌을 겁니다. 반대로 동방신기가 이 부분에서의 수익율을 포기했기 때문에(여러 차례에 걸쳐 계약 조건을 수정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수익 배분율에 대한 조정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상당히 큰 부분을 배분받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결론:
1. '0.4~1.0%'라는 것은 전체 수입 가운데 앨범 판매 수입에 대한 분배 비율이다.
2. 따라서 동방신기가 번 돈중 '0.4~1.0%밖에 못 받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3. 110억원은 회사의 규모나 전체 매출을 볼 때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번째, 13년간의 장기 계약은 사실상 종신계약이다?

이 부분은 사실 SM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처음 연예계에 입문하는 연습생들은 사실 이런 조건에 크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일단은 데뷔가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는 이런 조건에 아무 불만 없이(혹시 불만이 있더라도 조용히) 동의합니다.

그나마 동방신기처럼 데뷔해서 스타가 되었다면 모를까, 정작 심각한 문제는 데뷔를 못 하고 세월만 흘러가고 있는 연습생들의 경우입니다. 다른 기획사에서는 충분히 데뷔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더라도 SM의 내부 경쟁에 밀려 기회를 잡지 못하는 연습생들은 늘 논란의 대상입니다. SM이 이들의 계약을 해지해 주는 데 지독하게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건 SM의 문제점이지만, 동방신기 부분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므로 여기선 이 정도로 합니다.)

그럼 관건은 동방신기의 13년 계약이 정당하냐...는 것인데,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몇가지 있습니다. (1) 아이들 그룹의 경우는 육성기간이 5년에서 7년에 달한다는 것 (2) 그 육성기간에는 수입을 기대할 수 없으며, 이들이 데뷔하지 못하면 전액 회사의 적자가 된다는 것 (3) 설혹 데뷔한다 해도 히트하지 못하면 역시 순손실이 될 뿐이라는 것(SM도 천상지희나 트랙스처럼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죠) (4)따라서 회사 전체의 재정에서, 히트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이들의 수익을 통해 전체 회사의 수지가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4)에 이르러서 논란이 발생합니다. 동방신기를 예로 들자면, 이들의 가족이나 팬들은 당연히 "우리 **(혹은 우리 오빠)가 번 돈으로 온 직원 월급 주는 것도 아까운데, 왜 다른 '못 나가는' 애들의 뒷감당까지 해야 하느냐?"는 입장을 보입니다. 굳이 설명하려면 사실 간단합니다. 동방신기가 열심히 연습생으로 훈련할 때 쓴 비용은 굳이 설명하자면 H.O.T나 신화, 보아가 번 돈이기 때문입니다.

데뷔하는 족족 모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보면, 어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든 동방신기와의 수입 분배를 할 때에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전체 아티스트들의 수입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거의 모든 소속 연예인이 자기가 버는 수입과 무관하게 용돈(혹은 월급)을 받는 일본식의 매니지먼트 포맷입니다. 일본식에 따르면 한창 떼돈을 벌어 오는 아이들 스타보다 데뷔 15년 된 퇴물 가수가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제도를 들여온다면 당장 난리가 날 겁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된 기간, 계약 기간 부분은 바로 이런 이유로, '회사가 연예인 육성에 들어간 자금을 회수하고 순익을 낼 수 있을 때까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SM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솔직히 말해 동방신기처럼 황금 알을 낳는 그룹이 순 흑자로 돌아서는 데 13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고 볼 수는 없겠죠.

여기에 대한 SM의 주장은 "수차에 걸쳐 계약 조건을 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이탈 멤버들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조정' 기회 때 왜 계약기간에 대한 조정은 없었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쪽이든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결론:
1. 아이들 그룹의 계약기간이 긴 것만으로 무조건 노예계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2. 장기계약은 정작 스타가 된 쪽보다는 무명 연습생의 경우에 더 심각한 문제다.
3.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13년은 너무 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째, 과연 해체해도 손해날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굴까?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해체는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해체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바보는 아무도 없겠죠. 누구도 팬들의 심사를 거스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럼 거꾸로, 동방신기가 해체되면 가장 타격이 클 것은 누굴까요. 누가 봐도 그건 SM입니다. 동방신기같은 슈퍼 아이들을 다시 만들어내는 데에는 몇년이 걸릴 지 모릅니다. 엄청난 손해죠.

멤버 개개인도 절대 해체를 원할 리는 없다는 데 표를 던지겠습니다. 사소한 의견 충돌이나 분열이 있다 해도 그 오랜 세월,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한 정과, 지금까지 어떤 슈퍼 그룹의 멤버들도 흩어졌을 때 원래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1/N(멤버 수 나누기 1이라는 뜻입니다) 이상의 위력을 내지 못했다는 점(핑클의 이효리가 유일한 예외겠군요)을 감안할 때 어떤 경우에든 해체는 막대한 손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외는 '주변 사람들'입니다. 멤버들의 가족도 포함됩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연예계의 생리도 잘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남의 100원보다는 내 10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멤버들의 가족들은 전통적으로 어떤 그룹이든 자신의 가족을 뺀 나머지 멤버들은 '우리 **이 때문에 먹고 사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함니다. 10년 이상 연예계를 지켜본 바에 따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런 분들이 흔들기 시작하면 어떤 공고한 그룹도 깨질 수 있습니다. 회사는 버리고, 친구도 버릴 수 있지만 가족은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1. SM은 해체를 원할 리가 없다.
2. 동방신기 멤버들도 해체를 원할 리가 없다.
3.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까짓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대목에서 팬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쉽게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경우든 팀이 깨지고 나면 팬들이 상처를 받을 것은 뻔합니다. 깨지고 나서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겠죠.

어쨌든 개인 팬이건 팀의 팬이건, 지금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합니다. '깨진 뒤의 동방신기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늘까지 개인 멤버의 열렬한 팬이더라도 팀의 존속을 원한다면 '팀이 깨질 경우 단호하게 고개를 돌릴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된 동방신기를 믿습니다'가 아니라 '깨지면 알아서 해'라는 입장이 좀 더 도움이 될 때인 듯 합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정말 해체가 현실이 된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기 바랍니다.


p.s. ...그런데 대개 이런 경우 '기자들 책임이다'라는 주장이 가끔 나오더군요. 이번엔 좀 아니길 바랍니다.


728x90
당신은 정말 당신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속인 적이 없습니까?

국내에도 상륙한 김구라의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라는 프로그램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폭스TV에서 방송됐던 이 쇼는 현재 국내 케이블 채널 QTV에서 방송중입니다. 일반적으로 막연히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식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보니 위력이 만만찮더군요.

물론 그동안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가끔씩 거짓말 탐지기가 소품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반 장난이었죠. 그러나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모멘트 오브 트루스'는 좀 섬칫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썼던 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20년 전쯤 그룹 서바이버가 부른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 이하 MOT)란 노래가 히트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는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 <카라테 키드>의 주제곡이었다. 이 ‘MOT’라는 제목을 다시 듣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이번엔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케이블 채널 QTV에서 최근 방송을 시작한 는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첫 시즌이 방송된 뒤 국내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꽤 소문이 돌았다. ‘독하디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진행 방식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출연자는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거짓말 탐지기를 몸에 부착하고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50여 개의 질문에 답한다. 제작진은 그 중 스물한 개의 독한 질문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출연자에게 다시 묻는다. 스물한 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거짓말 탐지기에 의해 사실로 판정되면 1억 원(미국의 경우 50만 달러)을 손에 쥘 수 있다.

‘거짓말만 안 하면 1억 원을 줄게’라는 것은 상대가 어린이라면 ‘자, 1억 원 줄게, 가져’와 같은 의미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모두 성인이고, 제작진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스튜디오에는 이 질문과 직접 관련이 있는 친구, 부모, 애인, 아내 등이 나와 있어 출연자를 난처하게 한다. 남편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남편이 내 몸을 만지는 게 싫어 자는 척한 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MOT, 즉 ‘진실의 순간’이라는 말은 ‘El Momento de la Verdad’라는 스페인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본뜻은 ‘투우사가 지친 소의 숨통을 끊기 위해 장검을 찔러 넣는 순간’을 말한다. 사실 사람들은 문제의 순간이 닥치기 전까지 사실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혹한 것인지를 잊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순간에 영원한 사랑의 꿈을 깨버리고, 믿었던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박곤 한다. 이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미국에서도 당연히 도마에 올랐지만, 사람들은 때로 가정 파탄이나 인간관계 단절의 위기를 무릅쓰면서도 출연 신청에 줄을 이었다.

자신은 정말 솔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거짓말 탐지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불신한 걸까. 한국에서 방송된 첫 회를 보고 나서,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공포는 사생활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질문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남자 출연자는 여자친구가 바라보는 앞에서 ‘돈 때문에 여자와 성행위를 한 적이 있느냐’ 는 질문에도 ‘그렇다’라는 솔직한 대답을 해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간단해 보이는 질문 앞에서 무너졌다. 바로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명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상대방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나의 말을 신뢰할 것이라는 전제를 안고 살아간다. 저 질문은 “남에게 ‘내 말을 믿으라’고 말하는 당신은, 정작 당신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의미다. 그는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이 대답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기계의 판정을 신뢰한다면 출연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거나,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오래전 심리학개론 시간에 들은 ‘일곱 개의 베일’ 이론이 떠올랐다. 사람은 평소 일곱 개의 베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고 있으며, 가까운 사람일수록 베일을 하나씩 벗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베일 한 장은 남아 있다. 마지막 베일은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벗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멘트 오브 트루스'는 이런 두려움을 되살아나게 했다. 이건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내겐 어지간한 납량 특집보다 훨씬 소름이 끼쳤다. (끝)>>

 

미국 방송때도 화제가 됐던 인물의 출연 모습입니다. 로렌 클러리(lauren cleri)라는 여성이 출연했고 친정 부모와 남편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건 그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해서 "너는 남편이 아니라 나와 결혼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남자는 로렌 클러리의 옛날 애인입니다. 말하자면 특별출연이죠. 로렌의 대답은 YES. 판정은 TRUTH. 이렇게 해서 로렌은 10만 달러를 확보합니다.

3개의 질문을 더 거치면 2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상태. 이어지는 질문은 "남편과 결혼한 뒤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역시 대답은 YES, 판정도 TRUTH.

하지만 그 다음 질문은 생뚱맞게도 "당신은 좋은 사람(GOOD PERSON)입니까?"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로렌은 YES라고 대답하지만 판정은 FALSE입니다. 사회자는 "마음 속 어느 한 곳에서는 너도 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거짓말 탐지기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했던 일에 대한 질문, 즉 '당신은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신은 여자친구의 용모를 다른 여자와 비교해 본 적이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의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건 꽤 어려운 일일텐데 말입니다.

제작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각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대답이 '사실일 확률'을 결과로 내놓는다는 것이죠. 방송에 쓸 때 '사실일 확률' 혹은 '거짓일 확률'이 55%나 60%(즉 거짓말 탐지기의 판단이 틀릴 확률도 40-45%가 된다는 얘기죠)인 질문은 아예 방송에서 제외한다고 합니다. 최소한 80% 이상의 확실한 판정이 내려지는 질문만을 방송에서 이용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출연자의 인권에 대해서 제작진이 하는 대답은 "출연자는 언제든지 도전을 멈출 수 있다. 또 질문이 위험하다 싶을 때에는 참관인(가족이나 친구)도 1회에 한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출연자가 자진해서 출연한 방송인 만큼 그 이상의 조치는 오히려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그까짓거 사실대로만 대답하면 되는게 뭐가 어렵냐"고 합니다. 하지만 3회까지 나간 이 프로그램을 보면 그 "사실대로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여기 도전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죽었다 깨나도 못할 것 같습니다. ^^


728x90
왕년의 인기 프로그램인 KBS 2TV '출발 드림팀'이 부활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2회 정도의 파일럿을 촬영해 본 뒤 정규 편성을 고려한다는 상황인 모양입니다. 공식 반응은 '현재 전담팀이 꾸려져 있다' 정도군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 방송됐던 '출발 드림팀'은 운동신경이 뛰어난 젊은 남자 연예인들이 주로 등장해 선수 못잖은 기량을 자랑하던 프로그램이죠. 혹은 한때 '한국 가요계에서 뜨려면 애를 잘 보든가, 뜀틀이라도 잘 넘어야 한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낳았던 바로 그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 MC로 등장했던 개그맨 이창명은 여기서 얻은 인기를 통해 '자장면 시키신 분' 광고에 출연했고, 이 광고의 인기를 타고 전국에 널린 자장면 체인 사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창명이야말로 왕년의 '출발 드림팀'에서 최고의 수혜자였다고 꼽을 만 합니다.

그럼 이 프로그램이 부활한다면, 시즌 2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이 프로그램의 부활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조성모를 꼽게 됩니다. 조성모는 군 제대 복귀 후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드림팀 시절이 그립다'는 소회를 털어놨습니다. 그의 말대로 높이뛰기에서 2m50을 뛰어 넘었을 때 앨범이 250만장씩 팔려나갔으니 정말 그리운 그 시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드림팀'이 조성모에게 최적의 무대였던 것은 여리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조성모에게 남자다움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조성모가 '드림팀'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만 해도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감상적인 발라드 가수인 조성모가 뛰고 달리는 데 이렇게 재능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성모는 한때 '출발 드림팀'에 이어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마라톤을 10회 완주하는 철인 프로그램에도 도전, 발톱이 빠져 가며 421.95km를 달리는 무시무시한 역정을 소화하기도 했습니다. (네. 당시엔 정말 가수 하기 힘들었습니다) 아무튼 제대 후 신작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조성모는 새로 시작하는 '출발 드림팀'에 반드시 참여해 부활을 노릴 전망입니다. 과연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성모 못잖게 득을 본 사람은 이상인입니다. '드림팀'이 없었다면 이상인이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마 지금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체육인 이상인'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고려대 출신이라는 드문 학벌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차력으로 단련된 이상인은 슈퍼탤런트 2기로 데뷔할 때(동기 중에 박선영과 이주현이 있습니다)부터 "황영조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뽑은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으며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아마 '드림팀'이 다시 뜨면 그에게도 복귀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림팀과 함께 영광을 누리다 보기 힘들어진 연예인 중에 탤런트 김승현이 있습니다.

큰 키와 매끈한 콧날, 가수 채연과 퍽 닮은 얼굴로 인기를 모았던 김승현은 어느날 갑자기 아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소 물의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의 김승현은 차세대 주연급으로 꼽히는 유망주였고, '드림팀'에서는 조성모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높이뛰기의 다크호스였습니다.

요즘은 TV에선 자주 볼 수 없고, 쇼핑몰 운영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고 하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드림팀'의 영광을 말하자면 전진과 김종국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전진은 큰 키에서 뿜어나오는 주력과 점프력으로 거의 모든 종목에서 막강한 위력을 뽐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짜 체육인임을 뽐낸 것은 오히려 박용하였습니다. '드림팀' 출연이 그리 잦지는 않았지만, 등장할 때마다 가공할 스피드를 뽐냈던 박용하의 모습은 지금도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림팀'에 이런 영광의 과거가 있었다면 어둠도 있었습니다. 얼핏 기억하기에 전진도 꽤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고, 많은 연예인들이 촬영 중 사고로 응급실 신세를 졌습니다. '드림팀'에서는 연예인들과 기존 스포츠 스타들의 대결도 자주 추진하곤 했는데, 현재 MBC ESPN 이상윤 해설위원(축구)은 2001년 이 프로그램 녹화 때 당한 부상 때문에 축구 인생이 바뀌기도 했죠.

물론 제작진도 크게 신경을 썼겠지만 몸으로 달리고 부딪는 프로그램인 만큼 부상의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었고, 결국 4년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 프로그램은 '사람 잡는다'는 비판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또 이 프로그램에서 펄펄 날던 연예인들이 대부분 현역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비판의 여지를 남겼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출발 드림팀'이 부활된다면 가장 관심을 끌 승부는 '왕년의 드림팀'과 요즘 펄펄 날고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연예인들이 벌일 대결일 듯 합니다.

젊은 층은 아무래도 '짐승돌' 2PM이 주축이 될 듯 하군요. 과연 이 '짐승돌'들의 탄력과 스피드에 왕년의 노병들이 얼마나 맞상대할 수 있는지(예비역의 노련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켜보는 건 생각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정규편성이 아니면 특집의 형태로라도 한번쯤 '드림팀'을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근데 재미있게 보셨으면 바로 아래 추천을 좀...
728x90
KBS 2TV '1박2일'을 보다 보면 이제는 선수 중의 선수가 된 여섯 멤버들의 개인 기량 발전에도 주목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정말 하는게 운전 밖에 없는 듯 하던 이수근은 이제 여섯 멤버 가운데 가장 웃기는 멤버로 발전했고, 초반에는 그냥 거친 형들(?)의 놀림감이던 허당 이승기는 오히려 형들을 가지고 노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좀 너무 웃자랐다는 느낌이 가끔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섯 멤버 가운데 가장 놀라운 성장을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제가 보기에는 은지원입니다. 수시로 '천재'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은지원은 여섯 멤버 가운데 순발력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미리 짜여져 있는 룰 안에서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하지만, 그때마다 발생하는 새로운 국면에 대한 적응에서는 이제 한 경지에 올랐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확실히 짙게 한 것이 26일 방송에 나온 '섭섭도사' 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작위로 떠난 전남 영광 여행에서 갑자기 돌발적으로 고민 상담이 시작됩니다. 고민 상담이라면 연예계 고민 상담의 1인자 무릎팍 도사 강호동이 있지만 경쟁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무릎팍 도사를 연기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전에도 한번 등장했던 이수근의 '물렁뼈 도사'가 등장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물렁뼈도사는 내공 부족으로 조기 은퇴. 그리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섭섭도사 은지원이었습니다. 은지원은 손님으로 바뀐 이수근, 리액션에 약점이 있다는 김C, 드라마 뿐만 아니라 예능에서도 1인자가 되고 싶다는 이승기를 연속으로 처리해 도사로서의 자격을 인증받았습니다.

사실 이게 미리 짜여져 있던 얘기라면 별로 할 얘기가 없겠지만, 프로그램의 흐름으로 볼 때 '섭섭도사'라는 이름조차도 이수근이 그 자리에서 지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세 손님에게 적절한 대처를 해서 돌려보낼 수 있었다는 건 은지원의 순발력이 만만찮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번 '집으로' 특집 때에도 은지원의 솜씨에 대해 칭찬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집으로'라는 당시 방송분의 컨셉트가 아예 은지원을 위해 짜여진 거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스스로 상황을 만들고 거기에 대처해야 하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경우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이제 메인 MC의 자리를 위해 은지원에게 남은 과제는 뭘까요. 제 생각엔 긴 호흡과 교양입니다. 순발력과 받아 치는 실력으로는 발군인 박명수도 단독 MC로 나섰을 때에는 만만찮은 곤란을 겪었습니다. 이건 메인 MC와 서브 MC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은지원에게도 좀 다르지만 비슷한 주문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1시간 가량 길이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확한 문장 구사력과 평균 이상의 교양 수준이 필수입니다. 초기의 강호동을 생각하면, 지금의 강호동이 얼마나 많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기억하시는 분들은 다 알수 있을 겁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발군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은지원이 앞으로 어떻게 차세대 MC의 모습을 갖춰 가는지도 지켜볼 만 할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그나자나 영광굴비... 정말 침샘을 바쁘게 하더군요. 내외가 한참 침을 삼켰습니다. 어디 가서 숙성 잘 된 보리굴비 한마리 구해다 먹어야겠습니다.


728x90

LG아트센터의 2009년판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고 왔습니다.

어떤 장르든 '입문용 작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음식이라는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면, 처음부터 삭힌 홍어나 청국장을 먹여서 한국음식에 입문을 시키려 한다면 거부감을 느끼고 달아날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이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뮤지컬, 특히 대중용 뮤지컬의 입문용 작품으로 가장 적절한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춤과 노래, 스토리의 세 박자가 - 오늘날의 시선에서 볼 때는 유치할 정도로 지나치게 단순하고 명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 잘 갖춰진 작품입니다. 물론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도 지금 뮤지컬을 즐기고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이런 작품부터 시작해서 내공이 쌓여나간다면 이상적일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작품은 이번으로 모두 네번째 보게 됐습니다. 1996년 국내 초연 때 처음 봤고 브로드웨이서는 2001년 리바이벌 공연 때 본 적이 있습니다. 뮤지컬의 고풍스러운 느낌과는 달리 브로드웨이 초연도 1980년, 생각보다 훨씬 늦습니다.

그런데도 옛날 작품 냄새가 가득한 이유는 이 뮤지컬이 1933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주 오해가 일어나는데, 이 원작 영화는 '뮤지컬 제작 현장을 무대로 하고 있을 뿐' 뮤지컬 영화가 아닙니다. 뮤지컬인 줄 알고 DVD를 샀다가 이게 뭥미 했던 사람이 여기도 하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2번가'의 스토리 라인은 앞에서도 말했듯 지독하게 단순합니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연출자인 줄리언 마쉬는 새로운 뮤지컬 '프리티 레이디'에 출연할 배우들을 고르기 위해 오디션을 실시합니다. 연예계 진출을 꿈꾸는 시골 처녀 페기 소여(빌리 조엘의 노래로 유명한 알렌타운 출신입니다)는 이 오디션에 늦어 기회를 얻지 못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가 막차로 코러스에 합류합니다.

마쉬가 이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점찍은 도로시는 무식하고 촌스러운 장난감 공장 사장 애브너를 꼬드겨 '프리티 레이디' 제작에 거액을 투자하게 하지만 정작 도로시에게는 숨겨운 애인 팻이 있습니다. 마쉬는 팻의 존재가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팻을 제거하려고 손을 쓰기도 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이 작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결말이 펼쳐집니다. 즉 이 이야기는 '순진한 시골 처녀가 하루 아침에 브로드웨이의 빅 스타가 되는 이야기'인 것이죠.

1980년 초연된 작품은 3천회 이상 공연되는 성공을 거뒀고, 2001년의 리바이벌 공연도 1천회 이상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번 LG아트센터 공연은 굳이 1980년의 프로덕션을 따른다고 되어 있더군요.

'1980년 버전이 스토리의 완결성에서 앞선다' 어쩌고 하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2001년 버전과 1980년 버전은 몇가지 무대 장치를 빼놓고는 똑같기 때문입니다.

2001년 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계단 신입니다. 출연자 거의 전원이 조명이 밝혀진 화려한 계단에 서서 금빛 반짝이 의상을 차려 입고(이 대목에선 영화 '코러스 라인'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화려한 탭댄스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장면이죠. 이 장면을 위해 수십명이 무대 뒤에서 계단을 달려내려오는 장면은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이번 LG아트센터 공연은 엄밀히 말하면 1980년과 2001년의 중간입니다. 화려한 반짝이 의상과 탭댄스 퍼포먼스는 그대로 있지만 계단은 없어졌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계단을 만드는 비용의 문제일지... 그러고 보면 2001년 버전에 있는 중간의 코러스 숙소 신(서로의 방에서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없어졌습니다.^

아무튼 이 작품이 주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향수와 순진한 유머감각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통하는 듯 합니다. 공연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열광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지킬 앤 하이드'나 '돈 주앙' 같은 심각한 분위기의 뮤지컬들이 나오는 시대에 이렇게 선의와 순박함으로 가득 한 작품이 생명력을 얻고 있다는 것 역시 이 작품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작품의 주제가이자 브로드웨이의 주제가가 되어 버린 '브로드웨이의 자장가'입니다.

제가 본 공연은 마쉬(김법래), 페기(임혜영), 도로시(박해미)의 캐스트였습니다. 김법래의 마쉬는 매우 훌륭했고, 아마도 박상원의 마쉬보다 카리스마의 측면에선 좀 더 나은 캐스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임혜영의 페기입니다. 춤과 외모, 전반부의 목소리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끝부분, '페기의 성숙'을 표현하는 장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은 매우 놀랍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쉬는 공연 직전 페기에게 "무대에 올라갈때는 신출내기지만 내려올 때에는 스타가 되어 있어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쉬에게 파티에 함께 가자고 말하는 페기는 전과는 전혀 다른, 요부의 느낌을 주어 마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런데 임혜영의 페기는 이 장면에서 무대에 올라가기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목소리의 한계 때문인지, 새로운 인물 해석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극 전편에서 이 장면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임혜영의 페기로 이 공연을 본 사람은 포인트 하나를 놓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옥주현의 페기를 보지 못했으므로 둘 중 누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LG아트센터 공연의 강점은 잘 짜여진 안무와, 원작의 의도를 전혀 훼손하지 않는 화려한 안무입니다. 특히나 '대체 뮤지컬이라는 걸 왜 보러 가는 거야?'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이래서 보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는 더 이상 적절한 작품이 없을 정도입니다. 평점은 '놓치면 후회'.


728x90
MBC TV '무릎팍도사'에 박중훈이 출연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반드시 빠지지 않고 나올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던 질문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장동건이 어떻게 하면 무릎팍도사에 나올까요?'라는 질문, 두번째는 선배 안성기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 그리고 세번째는 자주 무릎팍도사와 비교됐던 '박중훈 쇼'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22일 방송된 박중훈 편 2부에서는 세가지 얘기가 모두 나왔습니다.

세 질문 중 가장 흥미도(?)가 떨어질 법한 안성기와의 관계. "배우 박중훈에게 안성기는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박중훈은 "아버지와도 같다. 안성기라는 배우는 속도는 느리지만 크고 튼튼한 트럭이다. 반면 나는 시속 200km를 낼 수 있는 스포츠카다. 가끔은 추월하지 않고 그 트럭의 뒤를 쫓는게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 뒤를 쫓아 달렸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 영화계, 혹은 연예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건 단순히 이 말 이상의 의미가 담긴 얘기가 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한민국 가요계에 조용필이 있다면 영화계에는 안성기가 있습니다. 이 경동중학교 동창생인 두 사람은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양쪽 분야에서 수많은 후배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고, 독보적인 '대선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조용필에게 김종서와 신승훈이 있다면 안성기에게는 박중훈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차이는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통적으로 가수 쪽의 선후배 의식이 훨씬 강합니다. 아이들 그룹의 범람도 이런 전통적인 선후배간의 관계를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조용필에 대한 존경은 80년대를 휩쓴, 카리스마 넘치는 제왕에 대한 자연스러운 추종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강한 위계질서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배우 쪽에서는 안성기라는 인물이 구심점으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한동안 이런 전통적인 관계들이 실종됐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들을 다시 정립한 것이 바로 박중훈이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관계를 정립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한때 한국 영화계 최대의 파워 서클이었던 골프 모임 싱글벙글이었습니다. 이름은 살짝 촌스럽지만^ 회장 안성기, 부회장 한석규 박중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 영화계의 거의 모든 주연급 남자 배우들이 회원이었던 모임이죠. 이 모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안성기-박중훈을 축으로 하는 한국 남자 톱스타의 대열에 합류한다는 의미였으니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후배들인 남자배우들은 가끔 "중훈이형의 부름을 받았을 때"를 흥분된 목소리로 상기하곤 합니다. 사실 영화계는 제작자건 스태프건 모든 소속된 사람들을 하나의 거대한 서클로 취급하는 몸짓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안성기 선배님'이라고 불리는 안성기의 카리스마를 완성시킨 데 박중훈이 세운 공헌은 수많은 다른 후배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그것이 영화계의 한 시스템을 완성하는 역할을 해 온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얼마 전 한 술자리에서 어느 톱스타 남자 배우가 이제 막 스타로 발돋움하려는 남자 배우에게 열심히 이런 체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톱스타(이름을 그냥 쓰기는 그렇고, 얼마 전 왕 연기로 호평을 받은 J씨라고 해 두겠습니다)는 후배에게, 자신이 처음 '안성기 선배님'과 '중훈이 형'을 선배로 모시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다 잘난 사람들끼리 무슨 선배고 후배고, 위 아래 질서를 이렇게 따지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 영화계에 들어온 이상, 그렇게 형들이 위에 계시고 그 어디쯤에 내 위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게 그만큼 든든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어. 너도 곧 알게 될거다. 내가 자리를 만들테니까 그때 다시 한잔 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술자리라서 얘기가 좀 장황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 후배는 아직 이런 이야기에 그리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도 머잖아 그 대열에 합류해 있을 거란 점은 그리 의심스럽지 않더군요.

아무튼 박중훈은 '안성기 선배님'을 영화계 전체가 '선배님'이라고 부르게 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누구도 그를 안성기의 그림자에 묻힌 인물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질서의 정립을 통해 그 자신 또한 존경받는 선배로 자리하게 된 것이죠. '박중훈 쇼'에 그 많은 톱스타들이 선뜻 출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젠가 "연예계에서 분야에 관계 없이 대통령을 뽑는다면 가장 당선 확률이 높은 사람은 박중훈일 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 주장이 옳다는 데 꽤 무게를 실어 준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폭넓은 인망이야말로 그가 '시속 40km로 달리는 트럭 안성기'의 뒤를 묵묵히 지킨 대가가 아닐까 합니다. 만약 그가 무리하게 앞서가려 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것들 말입니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박중훈의 현명함을 돋보이게 하는 점들입니다.


728x90

MBC TV '무한도전'에 나왔던 명카드라이브의 '냉면' 열풍이 몰아치는 핑계를 대고 냉면 얘기를 써 봤습니다. 아, 물론 박명수와 소녀시대 제시카가 부른 '냉면'은 '차가운 얼굴'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한자로 쓰면 '冷面'이죠. 중의적인 표현의 가사가 신선합니다. 일각에서는 '30분만에 쓴 노래'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런 발상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제가 냉면에 환장한 사람이라는 걸 이미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테니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대신하겠습니다. 아무튼 오늘의 주제는 대체 왜 한국에서, 하필이면 한국에서 냉면이라는 음식이 꽃을 피웠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똑부러진 대답이 나오기엔 글의 분량이 너무 짧습니다. 진짜 답은 읽는 분들이 내려주셔야 할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한 주간 '냉면'이란 노래가 급격한 인기 물살을 탔다. '차디차 몸이 떨려/ 질겨도 너무 질겨/ 그래도 널 사랑해'라는 단순한 가사의 쉬운 노래지만 지난 11일 MBC TV '무한도전'에서 소개된 뒤 무서운 기세로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장마철의 끈끈한 더위가 노래의 인기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여름만 오면 유명한 냉면 전문점 앞에 줄을 서는 일이 반복된 것일까. 작가 성석제에 따르면 김유정이나 이효석의 1930년대 저작에도 냉면 식도락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특히 이효석은 1939년 쓴 '유경식보'에서 '평양냉면은 유명한 것으로 치는 듯하나 서울 냉면보다 희지 못하다'고 쓰고 있다. 김찬별의 '한국 음식, 그 맛있는 탄생'에 따르면 여름 냉면집의 단체 식중독 기사가 1929년부터 거의 매년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니 냉면이 외식 산업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도 만만찮게 오래된 일인 듯하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냉면이란 음식이 대체 어쩌다 한국에서 이런 인기를 누리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더위로 치자면 훨씬 더운 나라 천지고, 국수 사랑으로 따져도 결코 한국에 뒤지지 않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스파게티의 나라 이탈리아에도 식혀 먹는 국수가 있긴 하나 샐러드에 파스타를 얹는 정도다.

이웃 중국과 일본의 대표 음식 중에도 차가운 국수는 쉬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엔 량몐(凉麵)이니 렁반몐(冷拌麵)이니 하는 음식들이 있지만 그냥 초보적인 비빔국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과 옌볜의 영향으로 동북식냉면이니 조선냉면이니 하는 음식들이 침투하고 있다.

일본에도 히야시추카(冷やし中華)라는 차게 식힌 라멘이 있지만 이름만 봐도 자국 음식 대접을 못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냉면만큼 보편화된 품목을 찾자면 장에 찍어 먹는 메밀 소바 정도다. 그러나 이 역시 한국처럼 벌컥벌컥 육수를 들이켜며 더위를 쫓는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평양냉면 매니어들은 여름 아닌 한겨울이 제철임을 지적한다. 싸늘한 동치미 육수를 싹 비운 뒤, 거리로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아, 시원하다(물론 '씨원하다'라고 써야 더 느낌이 온다)”고 중얼거리는 바로 그 맛. 대체 한국인들은 어쩌다 이런 별난 습성을 갖게 된 걸까. 한국인의 냉면 유전자가 궁금하다.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대목에서 예전에 냉면에 대해 썼던 글 안내입니다. 이른바 냉면 챌린지.

일단 여기선 생략했지만 냉면의 역사는 최소한 조선시대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형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제가 수시로 우려먹는 김찬별 선생의 명저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오미자로 국물을 우려낸 냉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19세기 이후의 문헌을 보면 사 먹는 냉면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뼈 등으로 육수를 우려 낸 것이고 집에서 해 먹는 냉면은 깻국이나 콩국에 말아 먹는 것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조상들은 냉콩국수와 냉면에 큰 차이를 두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냉면이란 음식은 독특합니다. 이렇게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다는 발상 자체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기도 하죠. 혹시 윗글을 보다가 왜 요즘은 국내에서 세를 꽤 넓혀가고 있는 중국냉면 이야기가 안 나오나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 중국냉면이라는 것이 이름과는 달리 사실상 한국 음식이라는 데 있습니다. 중국냉면을 직접 만들고 있는 화교 주방장들조차도 "중국사람은 이런 음식을 모른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짬뽕'이라는 음식이 없듯(이 음식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중국냉면 또한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이 '중국냉면'의 형태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이건 나중에 다시 한번 집중소개하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중국에는 본래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풍습이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먹는 량몐은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윗부분에 이탈리아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래 전 이탈리아의 한 소도시에 갔을 때 한 노천 카페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더운 날이어서 콜라를 주문했는데, 잔과 콜라 병을 갖다 주더군요. 그런데 콜라는 냉장고에서 꺼낸 것은 분명했지만, 기대만큼 차지 않았습니다. 또 당연히 잔에 얼음이라도 채워다 줄 걸로 생각했는데 그냥 빈 잔이었습니다. 웨이터를 불러 얼음을 좀 갖다달라고 했더니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군요.

현지 생활이 10년 넘은 동행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 아마 여기서 일하면서 얼음 달라는 사람은 처음 봤을 거야." 실제로 그때 그 카페 안의 손님들 중 얼음이 들어있는 잔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이었는데도 다들 그냥 미지근한 물잔을 들고 있더군요. '아이스 워터'가 기본인 미국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잠시 후 나타난 웨이터는 얼음통도 아닌 사발에 얼음을 담아 와서, 얼음집게도 아닌 숟가락으로 얼음을 떠서 제 잔에 넣었습니다. 딸랑 한 개를 넣더니 "더 드릴까요?"하고 물어보더군요. 잔에 가득 채우라니까 '오 마이 갓' 하는 표정으로 얼음을 딸랑 딸랑 채우곤 어깨를 으쓱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아주 찬 음식도, 아주 더운 음식도'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더군요. 뭐 세계적인 건강식이라는 지중해식이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이가 시린 냉면 한 사발을 보여주면 과연 뭐랄지 궁금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처음부터 예고했지만 답은 없습니다. 그냥 더운 여름에는 시원하게, 추운 겨울에도 더 씨원하게 살 수 있도록 냉면을 만들어 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p.s. 명카드라이브의 '냉면'도 좋지만 역시 냉면 노래는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와서/ 구경을 하는데/ 이골목 저골목 다니면서/ 별별것 보았네' 가 제격이죠. 이 노래는 미국의 구전가요인 Vive La Compagnie에 작곡가 박태준이 가사를 붙인 것입니다. '맛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네'. 절로 침이 넘어갑니다.

'냉면'으로 녹음된 곡은 없군요. 그냥 곡조만 들으시기 바랍니다. 앞의 30초 정도를 지나가면 노래가 나옵니다.

728x90

마이클 잭슨에 대한 기억을 더 잊기 전에 정리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러가지 일로 분주하다 보니 자꾸 늦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첫번째 내한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야 할 듯 싶습니다.

1996년 10월 11일, 역사적인 첫번째 공연 당일까지도 매표 성적은 꽤나 부진했습니다. 아마도 팝 아티스트의 공연으로는 최초로 10만원을 넘긴 티켓 가격이 워낙 고가였던 탓도 있었을 것이고, 공대위까지 결성해 조직적인 공연 반대 운동을 펼친 일부 기독교인들의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공연 주최측인 태원예능 측은 "한국 공연이 마이클 잭슨의 월드 투어 중 유일하게 매진을 기록하지 못한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공연 전날, 보도진에는 몇가지 생소한 지침이 내려졌습니다. 우선 사진촬영은 공연 시작 후 첫 3곡까지만 허용된다는 것, 그리고 무대에서 거의 100m 떨어진 포토라인 이외의 지역에서는 일체 사진 촬영을 불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이라면 상식적인 제한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매체들은 이런 제한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초 공연 전 김정민과 클론이 오프닝을 할 계획이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핵심 장비를 실은 잭슨의 전용 수송기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공연은 1시간 이상 지연됐고, 무대 설비가 덜 끝난 탓에 오프닝 공연은 자동 취소됐습니다.

그래서 오후 8시가 다 된 시각,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랐습니다. 공연의 표제인 History에 걸맞게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잭슨의 모습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고, 애니메이션 속의 로켓이 실제로 무대에 착륙(?) 하면서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첫 곡은 'Scream'.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곡 순서는 이랬습니다.

"Gates of Kiev" Computer Animation Introduction
"Scream" / "They Don't Care About Us" / "In the Closet"
"Wanna Be Startin' Somethin'"
"Stranger in Moscow"
"Smooth Criminal"
"The Wind" Video Interlude
"You Are Not Alone"
"The Way You Make Me Feel"
Jackson 5 Medley: "I Want You Back" / "The Love You Save"
Jackson 5 Medley: "I'll Be There"
Off the Wall Medley: "Rock with You" / "Off the Wall" /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Remember the Time" Video Montage Interlude
"Billie Jean"
"Thriller"
"Beat It"
"Come Together"
Black or White "Panther" Video Interlude
"Dangerous"
"Black or White"
"Earth Song"
"We Are the World" Video Interlude
"Heal the World"
"HIStory"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진은 1999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때의 영상을 캡처한 것인 듯 합니다. 아무튼 크레인이 등장해서 그냥 참고로 보시라고 가져다 놓았습니다.)

잭슨의 무대는 가운데가 길게 타조 목처럼 객석 깊숙이 튀어나와 있는 형태였습니다. 이 튀어나온 부분의 정체는 크레인이었죠. 'Beat It' 때와 'Earth Song' 때 이 크레인은 높이 솟아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특히 Earth Song은 탱크가 등장하고, 탱크에서 내린 군인에게 소녀가 꽃을 달아주는 퍼포먼스를 통해 공연의 주제를 전달하는 중요한 곡이었죠.

11일 공연은 별 무리 없이 끝났습니다. 국내 초유의 스타디움 공연이었으므로 "무대가 너무 멀어서 안 보인다"는 불평들이 있었지만, 공연의 수준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죠. 수많은 기자들이 잭슨의 예측불허 동선을 쫓느라 지쳐 조금만 허물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긁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었지만 차마 공연에 대해서는 뭐라 악평을 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3일 공연은 같은 날 바로 옆인 잠실 야구장에서 현대와 쌍방울의 플레이오프 최종전이 열리는 가운데서도 거의 매진에 가까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13일. 데스크에서 "잭슨 공연을 못 가본 사람도 많으니 오늘은 공연장에 가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어차피 모스크바에서도 똑같은 공연을 본데다 사흘동안 잭슨의 뒤를 쫓느라 지쳐 있던 터라 오히려 반가운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형사고는 13일에 터졌습니다. 바로 '마이클 잭슨에게 매달린 남자' 사건입니다.

(처음부터 감상하셔도 좋지만 노래가 좀 깁니다. 3분 50초 정도부터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전 세계 히스토리 투어 중 한국 영상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13일 공연 도중인 오후 9시40분쯤, 크레인을 사용하는 노래 두 곡 중 한곡인 Earth Song이 연주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대로 기어올랐습니다. 경호원들이 제지하려 했지만, 남자는 가볍게 피해 막 공중으로 올라가려는 크레인 끝에 탄 잭슨을 껴안았습니다. 이미 크레인은 공중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잭슨은 남자의 허리를 꼭 끌어 안아 사고를 예방했습니다. 크레인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남자는 '완전히 얼이 빠져 보였고', 내려오자마자 경호원들에 의해 무대 뒤로 끌려갔습니다.

혹시라도 경호원들에 의해 구타(?)라도 당하지 않을까 몇몇 기자들이 무대 뒤를 체크했지만 남자는 마냥 황홀해 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남자라는 것도 나중의 일입니다. 체구가 작고 머리가 단발이어서 이 상황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웬 여자가 마이클 잭슨에게 매달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실제로 한 신문은 '한 10대 소녀가 잭슨에게 매달렸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볼만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불행히도 이 모습을 기록한 사진은 단 한장도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모든 취재 카메라가 퇴장한 다음이었기 때문이죠. 또 요즘처럼 디지탈 카메라가 보편화된 세상이라면 누가 찍어도 찍었겠지만, 불행히도 이건 13년 전의 얘깁니다. 결국 유일한 자료는 동영상인 셈입니다.

이날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휴지통' 란의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3일 밤 9시20분경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의 2차공연 도중 마이클 잭슨이 무대 중앙 9m 높이의 리프트에 올려진 순간 김**군(19·**전문대 1년 휴학중)이 갑자기 『나도 가수가 되고 싶다』며 관람석에서 리프트계단을 타고 올라가 마이클 잭슨을 포옹하는 깜짝쇼를 연출…▶…관객들은 이 「사건」을 주최측이 연출한 것으로 알고 열렬한 환호를 보냈으나 김군이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벌인 해프닝으로 뒤늦게 밝혀져 실소…▶…한편 경호상의 책임을 놓고 대한경호협회와 백호기획은 상대방에 책임을 떠넘기며 실랑이를 벌였으나 정작 마이클 잭슨측 관계자는 『우리도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었던 기막힌 쇼였다』며 김군에게 감사를 표시…

그토록 까다롭게 굴었던 잭슨 측이 "기막힌 쇼였다"고 즐거워 했다니, 참 뜻밖입니다.^^

이 대목에서 혹시 당시의 본인이 이 글을 보시거나, 주변 사람 가운데 이 분을 아시는 분이 있으면
fivecard@naver.com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이 때 이 분의 근황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두 차례의 공연을 마친 다음날인 14일, 잭슨 일행은 다음 공연국인 타이완으로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아침, 잭슨은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해 축복을 받기도 했죠. 이때 잭슨은 교황, 김 추기경과 함께 '스톱 더 워'라는 노래를 만들자는 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날 저녁 한국을 떠나면서 잭슨이 보여준 마지막 기행(奇行)은 공항에서 한 청원경찰의 유니폼을 산 것입니다. 제복 마니아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잭슨은 공항에서 청원경찰 박모씨가 입고 있는 푸른 색 제복을 보고 "저 옷을 갖고 싶다"고 손가락질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경호원이 500달러를 주고 청원경찰에게 "옷을 벗어 달라"고 요청, 이 분이 뜻밖의 횡재를 했다는군요.

5일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예측 불허의 스케줄로 기자들을 농락(?)했던 잭슨은 이렇게 한국을 떠났습니다. 워낙 고생을 했던 터라 기자들은 대부분 "제발 다시 오지 마라"라며 출국을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 옛날 일이군요.

그리고 나서 1년 뒤, 잭슨은 거짓말처럼 한국에 나타납니다.

이 포스팅 앞뒤의 내용이 궁금하시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