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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다섯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웹시리즈(웹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은 총 5부작으로, 이제 마지막회가 남아 있습니다. 총 50만 뷰 이상의 수치가 나왔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뜨거운 반응이라 다들 고무되어 있습니다. 격려 전화도 옵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

 

"너희 예고 잘 봤다. 잘 만들었더라."

"예고? 아. '더 비기닝' 말씀이군요. 2편도 보셨나요?"

"2편은 또 뭐야. 예고가 2편이 있냐?"

"14분, 15분씩 되는 예고가 어디 있어요. 그거 5부작 웹 드라마에요. 본편 앞부분을 새로 편집한."

"응? 그게 그렇게 길었어? 5부작이면 드라마를 다 보여주는 거 아니냐? 왜 그렇게 많이 보여줘?"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데에는 수억원의 돈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비싼 콘텐트를, 방송 전에, 다른 플랫폼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미리 다 보면 누가 본방을 보겠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습니다.

 

드라마만 그런 것은 아니었죠. JTBC 예능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뽑아서 예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재미있는 걸 예고로 보여주면 누가 본방을 보겠느냐"는 주장 때문이었죠. 이걸 방송용어로 '바레(일본말입니다. '네타바레'의 그 '바레'죠)'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처럼 볼 거리가 널려 있는 시대에는 가장 재미있는 것이 예고로 나가야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습니다. '아끼면 똥 된다'의 세상인 셈입니다.

 

 

 

다행히 '사랑하는 은동아'의 이태곤 감독은 사전 프로모션의 중요성을 잘 아는 분이었고, "시청자들에게 아낌없이 드라마의 고갱이를 보여줘야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여전히 불안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드라마의 저변을 일찍 넓혀야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대세론이 이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웹 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 5부작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JTBC는 이전부터 드라마의 온라인 선공개 사례가 몇차례 있었고, 꽤 반응도 좋았습니다. '무정도시',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세계의 끝' 등이 1회 70분 분량을 미리 인터넷을 통해 선공개됐고, '밀회'도 예고편이라기엔 매우 긴 25분 분량의 압축 영상이 미리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당연히 꽤 큰 반향이 있었고, 화제를 낳았습니다.

 

 

 

 

이번 '더 비기닝'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셈입니다. 사실 온라인의 작은 화면으로 70분 분량의 드라마를 한꺼번에 보는 것은 상당히 피로한 일입니다. 그리고 방송용 드라마와 온라인 영상의 호흡도 다르다는 점을 반성했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번에는 웹 드라마의 형식에 따라 5부작 시리즈가 탄생한 것입니다.

 

 

 

 

 

 

웹 드라마 제작에는 공동 연출자인 김재홍 감독이 가장 큰 기여를 했습니다. 본래 대본 순서대로 촬영된 장면 가운데 웹드라마 형식에 가장 적절할 것 같은 장면을 뽑고, 편집을 새로 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29일 방송되는 본편을 보시는 분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드라마를 보시게 될 겁니다. 몇 장면은 웹 드라마에만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네이버 측의 정책에 따라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은 '웹 시리즈'라는 이름을 갖고 방송됩니다. 처음부터 온라인을 목표로 제작된 콘텐트는 아니기 때문에 '웹드라마'라는 장르에 포함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뭐 운영 정책인데, 거기 맞설 이유는 없겠죠.

 

아무튼 시청자들이 정규 편성 시간에만 드라마를 보고 즐길 거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시청자의 환경이나 취향에 따라 콘텐트를 소비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시청자들에게 낚싯밥을 던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스크린에서 시청자들이 콘텐트를 소비한다고 해도, 네트워크 TV의 편성 자체가 의미 없는 시대까지는 아직 좀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의 월-목요일 밤 10시대나, 토-일요일 밤 10시대, 그리고 '사랑하는 은동아'가 방송될 금-토요일 밤 8시40분대 같은 시간은 오프라인 매장의 윈도우 같은 역할을 하는 시간대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간대에 살아남는 드라마는 고전적인 시청률이 높은 작품일 수도 있지만, '나와 비슷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라는 생각을 공유하게 해 주는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같은 콘텐트를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물론 SNS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그 기분을 표출할 수 있게 된 세상이죠), 그걸 위해서라도 편성 시간의 의미는 꽤 의미를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금,토요일 밤 8시40분입니다.)

 

웹 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 1회 이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2회부터 4회까지.

 

 

 

 

 

 

 

 

 

 

 

사실 웹 드라마 제작의 반론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좋아. 선공개가 재미있어서 본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나머지 분량의 시청률이 높아진다고 치자. 만약 선공개의 반응이 안 좋으면 미리 공개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것 아닐까?" 뭐 맞는 얘기긴 합니다만, 그렇게 해서 망할 드라마라면 굳이 선공개를 하지 않아도 망하겠지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가장 빛나는 현수-은호 3인방의 떼샷. 이렇게 놓고 보면 참 캐스팅 잘 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뿌듯)

 

다음엔 전체적인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 드라마에 현수/은동이만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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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네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이미 첫글을 보셨으면 드라마의 줄거리를 아시겠지만, 이 드라마는 주인공 역할이 3명씩인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대략 이런 느낌이죠.

 

10대 현수 (주니어)             -         10대 은동 (이자인)

20대 현수 (백성현)             -         20대 은동 (윤소희)

30대 현수-은호 (주진모)      -         30대 은동 (?)           -              작가 서정은(김사랑) 

 

 

 

 

특히 남자 주인공을 2명 쓰느냐, 3명 쓰느냐는 꽤 골치아픈 문제였습니다. 대개의 작품에서 대부분의 역할은 10대 남자/현재 남자, 10대 여자/현재 여자 정도로 나뉘는게 보통인데, 이 드라마는 구성상 각각 3명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로 쓰여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본편 드라마를 보시면 아마 이해하실 듯.)

 

그래서 남녀 메인 주인공이 주진모-김사랑으로 결정된 다음에, 10대와 20대 역할들을 어떤 배우로 채워가느냐 하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특히 주진모의 어린 시절로 누구를 캐스팅할 것이냐 하는 문제 때문에 정말 많은 배우들을 검토했습니다. 유명 아이돌들을 비롯해서, 대한민국 18~25세 정도의 배우들 가운데 '10대 현수'역으로 검토해보지 않은 배우는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만치 이 캐스팅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P모씨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 없나?"

"우리 애들이 요새 좀 바쁘긴 한데, 한번 보실라나?"

"누구?"

"주니어요."

 

주니어라면 그.... 아무개씨와 이름이 똑같던 얘?

 

 

 

그, 글쎄... 그렇게 잘생겼다는 기억은 없ㅇ...

 

솔직히 말해 JJ프로젝트도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때는 얼굴이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주니어군이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헛.

 

너 언제 이렇게 잘생겨진거냐. (물론 원래 잘 생겼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오디션을 본 주니어는 그렇게 뛰어난 연기 자질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쳐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얼굴에 비해, 연기력은 아직 미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준.

 

심지어 오디션 말미에 이태곤 감독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네가 뽑히면 부모님 덕이고, 안 되면 네 탓이다." 주니어 군이 떠난 뒤에도 약간의 논란이 있었을 정도. "그래도 주인공인데 저 연기력으론 곤란하지 않냐"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저런 비주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드라이브 (물론 저도 이 쪽이었습니다)에 반론은 묻혔습니다.

 

두번째 위기는 스케줄. 세계로 뻗어가는 탑 아이돌 그룹의 멤버답게 국내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연기를 잘 하면 모르겠는데, 연기가 불안하기 때문에 절대 촬영 일수를 양보할 수 없다." 하지만 한류 팬들을 외면할 수 없던 소속사의 고민이 시작됐고, 다들 애가 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니어 군은 그냥 저냥 얼굴만 잘생긴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볼 때마다 일취월장. 그때부터 주니어는 이 드라마의 에이스로 자리잡았습니다. 스케줄만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나오는 장면이 훨씬 늘어났을텐데...

 

(모든 제작진의 아쉬움을 담아 묵념.)

 

 

 

 

주니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상대역은 이자인. 덧니가 매력적인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네. 은동이의 실제 나이죠. 처음 대본을 볼 때만 해도 "열일곱 고등학생과 열세살 초등학생 사이에... 그게 뭐냐"에서부터 "대체 얘들이 느끼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는 주장이 꽤 있었습니다.

 

사실 대본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감정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습니다. 현수 말마따나 '가슴에 쥐가 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보고 있으면 막 안타깝고, 귀엽고, 죄진 듯한 기분이 들면서 정말 뭐라도 다 해주고 싶은 그런 느낌.

 

제작진은 열일곱 소년에게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얼굴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리고 머잖아 그 소녀가 나타났습니다.

 

 

 

 

 

사실 자인이의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 뒤에는 굉장한 승부욕이 숨어 있었습니다. 최종 오디션을 볼 때, 이태곤 감독은 여섯명의 후보 중 이자인 양에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는 가장 유력한 후보인데 질문을 안 하는게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질문이 돌아오지 않자 이자인 양은 얼굴에 숨김 없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정말 귀여웠습니다.)

 

오디션이 끝난 뒤, 왜 자인이게는 아무 질문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질문할 필요가 없지요. 처음 볼 때부터 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아저씨들의 속을 몰랐던 자인양은 오디션이 끝난 뒤 엄마 앞에서 분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카메라 스태프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촬영 시작.

 

 

연출을 맡은 이태곤 감독입니다.

 

 

 

햇살이 무척 따가운 날이었습니다.

 

사실은 이런 날도 조명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낮에 왜 조명팀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조명이란 결국 최적의 광량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겹친 끝에 드라마 한 장면이 얻어지는 것이죠. 1분, 2분짜리 짧은 그림을 얻기 위해 수십명의 보이지 않는 제작진이 땀을 흘립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첫 결실이 오늘 선을 보였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 1회. 5부작인 '사랑하는 은동아'의 웹드라마 버전 중 첫번째 편입니다.

 

 

 

 

첫날부터 뜨거운 반응 보여주신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나자나 왜 곧 방송될 드라마를 왜 이렇게 온라인으로 먼저 보여주고 난리일까요? 다음 번 글은 바로 이 '웹드라마 버전을 굳이 만드는 이유'에 대한 내용이 될 듯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이런 심쿵 장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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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에 대한 세번째 글입니다.

 

가끔 되물어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랑하는 운동화' 아니고, 스포츠 드라마 아닙니다.

 

아무튼 앞글들은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첨밀밀'에 이어 '사랑하는 은동아' 제작진이 오마주할 작품으로 선택한 영화는 바로 이 작품, '화양연화'입니다.

 

1990년대의 왕가위 감독은 인간을 벗어난 존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도 흠잡을데 없는 작품들이지만 이 영화, '화양연화'에서 보여준 감정의 폭발은 그야말로 최고. '어른들의 금지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아마도 영원한 레퍼런스로 남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은동아'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특히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현수와 은동이의 관계는... 대본만 보더라도 참 보는 이들을 가슴아프게 합니다. (물론 가슴아프게만 하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도 웃음이 넘치는, 특이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어쨌든 실로 어느 한 장면을 꼽기 힘든 이 영화.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음악. 냇 킹 콜의 목소리.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추억입니다.

 

아무튼 구상은 끝났고, 이제 실천에 들어갑니다.

 

 

 

일단 '첨밀밀' 편. 서울 당인동의 창 넓은 카페가 영화 원작에 나온 전파사로 변신했습니다.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지만 찍는 품은 장편 드라마와 똑같습니다.

 

 

 

 

 

 

 

 

 

 

이 영상에는 '사랑하는 은동아' 본편의 주역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왼쪽 모자 쓴 분이 이동규 조명감독, 오른쪽 카메라 옆에 있는 분이 김천석 촬영감독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 중 한 분인 김천석 감독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등을 통해 드라마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잘 알려진 분이죠.

 

시간 절약을 위해 촬영 장소를 한 곳으로 제한했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흔히 "나 드라마 촬영장 구경 가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실제 촬영장에 가면 30분도 못 버티고 지겨워서 도망가시곤 합니다. 만들어 놓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분들은 신 단위로 보게 되지만 촬영은 컷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카메라를 옮기고 조명도 새로 세팅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분들은 촬영장에 직접 가도 왜 1분 남짓한 장면을 찍는데 길게는 한시간씩 시간이 가는지 의아해 하곤 합니다.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두 주인공은 카페 한 구석의 기타를 집어들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두 사람 모두 기타 유단자. 주진모는 고교시절 일산 부근에서 소문난 밴드의 기타리스트였고, 김사랑은 클래식 기타리스트 배장흠씨의 제자로 지난해 7월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못 믿으실까봐 퍼왔습니다. 약 4분13초 정도부터.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영화 '원스'의 느낌이.

 

 

 

아무튼 이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

 

 

 

'첨밀밀' 편 촬영이 마무리됐습니다.

 

해가 진 뒤 곧바로 '화양연화' 편 촬영이 시작됩니다.

 

 

 

장소는 종묘 뒤편. 흔히 '순랏길'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해가 지고 노란 가로등이 켜지면 이렇게 운치있는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촬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이 담벼락.

 

 

 

처음이라 좀 어색한 듯한 느낌도 있지만 이내 프로답게 감정이 잡혀 갑니다.

 

사실 두 배우는 이 예고 촬영 때까지 두 사람이 같이 찍는 장면이 없었습니다. (포스터 촬영 외에는)

 

 

 

어깨에 기대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장만옥. 감정 들어갑니다.

 

 

 

 

치파오 차림이 참 잘 어울립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보면 이런 느낌.

 

 

 

 

밤도 깊어가고, 짧은 영상이지만 베스트 컷을 얻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에 밤은 점점 깊어갑니다.

 

 

 

 

 

 

다음 글에선 우리 최강 비주얼의 세 현수, 주니어-백성현-주진모 중 주니어 커플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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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에 대한 두번째 글입니다.

 

첫편은 이쪽:

[사랑하는 은동아]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한 편의 드라마를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드라마를 잘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그 잘 만든 드라마가 묻히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즉 앞의 것은 production, 뒤의 것은 promotion입니다. 다른 모든 흥행 업종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콘텐트가 있어도 사람들이 그 콘텐트의 존재를 몰라서 접근하지 못한다면 말짱 헛일이 되고 맙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수없이 많은 스크린에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콘텐트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선.

 

그래서 어떤 식으로 '사랑하는 은동아'에 손님들을 모셔올 것인지에 대한 숙의가 시작됐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포스터와 티저(Teaser)라고 불리는 예고입니다(본래 티저란 예고나 광고 중에서도 뭔가 속임수를 쓴 듯한 특이한 기법을 사용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근래에는 아예 예고를 티저라고 부르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더군요). 영화라면 트레일러(Trailer)라고 부를 것들입니다.

 

이미 보여드린 바와 같이 '사랑하는 은동아'의 첫번째 티저는 드라마의 전체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기자회견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이어서 공개될 티저를 뭘로 할까를 놓고 회의를 진행햇습니다. 그러다 '사랑하는 은동아'의 두 주인공, 주진모와 김사랑이 고전 명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오마주(Hommage)를 해 보자는 거였죠.

 

 

 

 

 

 

물론 오마주를 한다고 해서 아무 영화나 할 일은 아니고, '사랑하는 은동아'와 뭔가 맥이 통하는 작품이라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일단 어떤 영화의 어떤 작품을 오마주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줄거리를 아시는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사랑하는 은동아'는 일단 '위대한 개츠비'에 꽤 많은 것을 빚진 작품입니다. '한 남자와 일생을 건 사랑' 이야기라는 면에서 그렇죠. 그밖에도 이 작품은 몇 가지 영화가 레퍼런스 역할을 합니다. 그런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해 보는 것은, 영화의 주제를 잠재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개츠비라면 이런 장면. (사실 디카프리오 버전은 크게 기억나는 장면이 없죠. 오히려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예전 개츠비 쪽이 명장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전 영화라 곤란하다는 결론.)

 

 

 

두 주인공의 '기억', 그리고 '평생에 걸친 사랑'이 중요하게 부각된다는 점에서 '노트북'도 큰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심지어 드라마 2부에는 주인공들이 이 영화를 같이 보는 장면도 나옵니다. 특히 이런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그런데 저 장면을 보고 '노트북'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까?"라는 질문 나옴.)

 

 

 

 

역시 '정말 사랑하면서도 운명에 의해 만나지 못하게 된 연인'의 이미지를 담은 '러브 어페어'도 상당히 관련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장면도 정말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역시 비슷한 질문 나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서 찍어보자"는 의견 낸 사람이 폭행당함.)

 

 

 

그리고 남편이 있는 여주인공과의 절절한 사랑이란 면에서 고전 중의 고전인 이런 작품,

 

 

 

 

 

뭐 풋풋한 첫사랑을 다룬 작품인데다 근래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멜로드라마라는 점에서 이런 작품도 거론됐습니다. (물론 거론만... 주진모와 김사랑이 저 장면을 재현한다는 건 좀...)

 

 

 

뭐 첫사랑 얘기를 하자면 너무너무 지겨운 -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써먹어서 - 이런 장면도 있죠. (하지만 너무 식상해서...)

 

 

 

이 작품도 끝까지 거론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가 한 여자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력적이었고, 특히 이 엔딩 장면은 참 여러 모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됐지만 안타깝게도 '리무진은 구할 수 있지만 베란다에 사다리가 달린 집은 국내에서 찾을 수 없다'는 말에 꿈을 접게 됐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이 장면을 참 좋아합니다만, 그리 지명도가 높지 않은 장면이라는 점에서 탈락.

(기억하시는 분 있을 겁니다. 저 보석 상자로 탁 깨무는...)

 

그래서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된 영화는,

 

 

바로 이 영화. 세대를 뛰어넘은 고전이면서, 평생을 그리워 하지만 운명에 의해 자꾸만 엇갈리는 연인들의 이야기. 등려군의 노래들과 함께 정말 잊을 수 없는 영화죠. '인연'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는 면에서 '사랑하는 은동아'와 어울리는 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 하면 이 장면을 떠올리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이 장면 또한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죠.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무튼 이 영화와 또 한편의 영화(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공개합니다)가 최종 선정돼 이 두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사랑하는 은동아'의 예고편을 만들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자, 그런데 어떻게 만들지?

 

일단 '첨밀밀' 편을 보시고, 너무 길어졌으므로 '그 어떻게'에 대한 나머지 얘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갑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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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라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제목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 그리 썩 세련됐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은동이'가 여자 아이의 이름이라는 것도 쉽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제목을 처음 들은 사람은, "'사랑하는 운동화'? 스포츠에 대한 드라마야?" 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대본을 읽다가 저는 제 정체성을 살짝 의심했습니다. 저는 본래 '가을동화'나 '겨울연가'류의 드라마를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참고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본은 사람을 푹 빠져들게 하더군요. '내가 이상해진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해서, 저는 이 드라마를 통해 드라마 CP로 데뷔하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간략하게 정리하면,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사랑 하나를 갖지 못한 남자가, 20년간 사랑해온 여자를 잊지 못해 일어나는 이야기' 입니다. 어찌 보면 '위대한 개츠비'와 닮아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2015년 현재. 30대 톱스타 지은호(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입니다)가 어느날 자서전을 쓰겠다고 발표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단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는 진정한 자신의 사랑을 찾겠다는 겁니다.

 

지은호가 은호라는 예명을 쓰기 전인 20년 전(1995),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고1 박현수(지은호의 본명입니다)는 열 세살 소녀를 처음 만납니다. 부모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왠지 씩씩하고 구김살 없는, 맑은 눈망울을 가진 은동이. 현수는 은동이를 보면서 '가슴에서 쥐가 나는' 느낌을 갖게 되지만, 불행히도 뭔가 어떻게 해 보기도 전에 둘은 헤어집니다.

 

10년 뒤(2005), 현수는 배우 지망생입니다. 잘생긴 얼굴에 비해 연기 재능은 별로라는 평을 들었지만 어느날 길에서 은동이를 만납니다. 10년 만에. 아무 예고도 없이. 둘은 그대로 불타오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쩐 일인지, 은동이는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현수에겐 아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다시 10년 뒤인 현재(2015). 현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가 되어 있습니다. 부와 명성을 모두 차지한 남자. 누구나 부러워하는 남자.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의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한 남자. 그래서 그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은동이가 살아 있다면, 나를 모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은동이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은 이미 죽었거나, 내가 자신을 찾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은호가 된 현수는 책을 씁니다. 자신과 은동이가 만난 많지 않은 날들의 기억을 담은 책을.

 

그렇지만 생전 글을 써 보거나 한 적이 없는 은호. 그래서 주위의 알음알음으로 대필작가 정은을 구합니다. 은호는 자기의 사연을 말로 녹음해 전달하고, 정은은 그걸 풀어서 글로 쓰는 역할이죠. 정은은 은호의 육성을 통해 현수와 은동이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기 얘기처럼 공감하면서 글로 사연을 정리합니다.

 

 

 

 

 

이 대본을 선택한 이유 중 가장 큰 건 역시 '신선함'이었습니다. 무슨 소리냐. 어린시절부터 시작하는 순정 스토리가 어떻게 참신할 수 있느냐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전통적인 멜러드라마의 선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감각을 줄타기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다릅니다. 고전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지나친 순수함과 맹목적인 정열 때문에 자신도 망치고 상대도 망치는 민폐성 인물들이었다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적당히 이기적인, 실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면모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드라마들에 비해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 표현이 있는 것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대본을 쓴 백미경 작가는 비록 신인으로 분류되지만, 필력은 결코 신인이 아닙니다. 작가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결국 한 남자의 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일찌기 개츠비가 그랬듯, 한 남자의 심지 굳은 사랑은 때로 '위대한 사랑'으로, 어떤 때에는 집착에 가까운 '지독한 사랑'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이 드라마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 돈, 명예, 명성, 대중의 사랑을 모두 가진 한 남자가 어떻게 사랑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사랑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를 '지금까지의 비슷한 드라마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경쾌한 템포로' 보여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며칠 전 경기도 모처(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드라마의 판타지를 깰 수 있기 때문입니다)에서 '사랑하는 은동아'의 도입부를 이루는 기자회견 장면의 촬영이 있었습니다. 은호가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은동이의 존재를 알리는 그 장면입니다. 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주진모의 첫 촬영이기도 했죠.

 

 

 

이 작품을 위해 5kg를 감량한 주진모의 날쌘 턱선이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의 기자 여러분들은 물론 진짜 기자가 아니지만, 중간 중간 진짜 기자보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나와 주진모씨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복근 관리' '얼굴 사이즈' '이상형'에 대한 질문들도 나왔습니다. 간간이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사실 저렇게 멀쩡히 앉아 있지만 이날 주진모는 땀을 1리터는 흘렸을 겁니다. 일단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문을 닫고, 에어콘 소리도 막아야 했기 때문에 저 자리는 엄청 더웠습니다. 조명 아래 앉아 보지 않은 분들은 그 고초를 모르죠.)

 

 

 

 

이 장면이 현재 공개된 '사랑하는 은동아'의 첫번째 티저가 됐습니다.

 

 

 

앞으로 [사랑하는 은동아]라는 말머리를 단 글은 실제 제작 일정과는 좀 다른, 저만의 제작 일지로 써 볼 계획입니다. 드라마 현장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드라마 촬영장이란 곳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번 글은 '영화같은 티저를 만들어라'가 될 겁니다.^  저 길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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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2일. 또 한번 저의 공연 관람사에 남을 날짜가 생겼습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 폴 매카트니 첫 내한 공연의 날입니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첫'이라고 쓰고 싶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비 맞으며, 스마트폰으로 메모 해 가며, 셋리스트를 대략 기록했습니다. 물론 모르는 곡 넘어가고 넘어가고.

 

 

 

 

 

결국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셋리스트를 대략 정리해 봤습니다. 결론은 첫곡 빼놓고 이번 Out there 투어의 4월27일 도쿄돔 공연 때 셋리스트와 첫곡 빼고는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첫곡은 왜 바꾸셨을지... 너무 분주하게 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동정의 노래?)

 

아무튼 토요일 잠실 야구경기가 끝나지 않아 종합운동장 주변 주차장은 모두 마비 상태. 거의 1시간 가까이 주변을 돌다가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 주차. 다행히 견인되거나 하지는 않았더군요. 공연은 8:30 경 시작.

 

1. 8 days a week

2. Save us

3. Can't buy me love

4. Jet

5. Let me roll it

 

오프닝입니다. 애용하시는 곡들의 흐름이라 낯설지 않습니다. 일본에선 첫곡으로 Magical Mystery Tour 등장

 

6. Paperback writer

7. My Valentine

8. 1985 ('윙스 팬들을 위한 곡' 이라고 소개됨)

9. Long and winding road

10. Maybe I'm amazed

 

처음 듣는 곡이 나와서 잠시 당황. 그리고 Long and Winding Road에서 핸드폰을 이용한 조명이 장내를 밝히기 시작. 그리고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주최측에서 받은 우비가 있어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감전당할 위기만 피한다면, 오히려 빗속에서 보는게 더 재미있죠.

 

 

 

 

11.I've just seen a face

12. We can't work it out

13. Another day

14. Hope for the future

15. And I love her

 

14번은 Destiny인가 하는 게임에 사용됐다는 곡입니다. 폴 옹의 음악세계 밥그릇 수를 따지자면 꽤 신곡. 그런데 의외로 훌륭합니다.

 

 

 

16. Blackbird

17. Here today (존을 위한 노래)

18. New (신곡)

19. Queenie Eye (신곡)

20. Lady Madonna

 

먼저 간 존(레논)을 그리는 노래와 두 곡의 '신곡' 발표가 있었습니다. 물론 말이 '신곡'이지 2013년에 이미 발표된 곡들입니다(물론 이 공연을 보러 간 사람 중 절대 다수에겐 그냥 신곡이겠죠^^. 2013년에도 신곡이 나오고 있다는 게 마냥 놀라울 뿐). 그리고 그동안 미온적인 반응(?)이었던 관객들을 열광시킨 Lady Madonna. 아, 이제 막 달리는구나!

 

21. All together now

22. Lovely Rita

23. Eleanor Ligby

24.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25. Something (조지를 위한 노래)

 

...라고 생각하기엔 좀 일렀죠. 존을 위한 노래에 이은 조지를 위한 노래가 나오고 있으니 링고를 위한 노래는 왜 안 나오나 했지만 링고 스타는 멀쩡히 살아있는 인물. 뭐 살아 있어도 이 먼 나라까지 왔으면 링고를 위한 노래 하나 쯤은 해 줄만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 다음 텀이 진짜 하이라이트.

 

26. Obladi Oblada

27. Band on the run

28. Back in USSR

 

세 곡 달려 주다가,

 

29. Let it be

 

한 박자 쉬는 척 하면서 다시 한 번 잠실을 핸드폰 불빛으로 덮어 버리고,

 

 

 

 

 

30. Live and let die

31. Hey Jude

 

두 곡의 킬러 넘버로 확실하게 본 공연 마무리. 특히 "Live and let die 는 건스 앤 로지스 노래가 아니야" 라고 으름짱을 놓는 듯한 강렬한 연주와 엄청난 물량의 불꽃놀이가 압권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떼창곡인 Hey Jude는 뭐 굳이 군말이 필요 없을 열광의 무대. 폴 옹의 습관인 '자, 남자끼리 한번' '자, 여자끼리 한번', '자, 그럼 다같이'는 이번에도 여전했더랍니다.

 

이렇게 해서 1차 퇴장.

 

 

1st Encore

 

32. Day Tripper

33. Hi HI Hi

34. I Saw her standing there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첫번째 앵콜. 무대에 다시 올라온 폴 옹을 일부 관객들이 '나 나 나 나나난나 나나난나 헤이 주드'로 맞이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워낙 떼창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이지만 메인 공연 마무리 때 'Hey Jude' 떼창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거죠.

 

 

 

처음엔 다소 황당함을 느꼈던 폴 옹은 기타로 반주를 해 줘 가며 Hey Jude의 떼창 부분을 리바이벌 해 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관객이 하고 싶다는데 해야지, 라는 최상의 팬 우선주의. (유튜브에 어느 분이 올리신 걸 퍼 왔습니다.)

 

살짝 세 곡 달려놓고 야속하게 무대 뒤로 숨어버린 폴 옹.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관객들이 알아버린 사실.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The End 다. 그 노래가 나올 때까지 다들 방심하지 마라!

 

2nd Encore

 

35. Yesterday

36. Helter Skelter

37. Golden Slumber

38. Carry the weight

39. The End

 

그야말로 화려한 마무리. 야~~ 정말 살다 보니 Yesterday를 폴 옹의 라이브로 들을 날이 오는구나.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폴 옹의 매너는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한국어 발음을 해 가며 '고마워요' '대박' 등을 구사하는가 하면 어떤 내한공연에서도 보지 못한 동시통역 서비스까지. 대단한 멘트를 한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관객들을 위해 이만한 배려를 한다는 게 참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가끔씩 구사하는 귀요미 포즈와 표정은 참.... 한번 귀요미는 영원한 귀요미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싫어하시지만 참 '정말 세상 좋아졌다'가 절로 입에서 나왔습니다. 레이프 가렛의 내한으로 남산 숭의음악당이 뒤집어지고 둘리스 내한으로 서울 시내 각급학교가 합동 '학생 단속반'을 구성하던 시절. 그나마 팝 신에서 알아줄만한 대형 밴드의 내한 소식이라고는 리틀 리버 밴드 정도가 고작이던 시절. 그 젊은 날, 퀸이나 키스, 딥 퍼플이나 아바, 마이클 잭슨이나 토토는 아예 한국이란 나라가 지구상이 존재하는지 마는지도 관심이 없던 것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을 생각하면 마룬 파이브와 오아시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을 찾고, 비록 젊음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오지 오스본이나 롭 핼포드의 모습을 보면서 늦은 것이 없는 것 보다는 훨씬 행복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거인 중의 거인, 폴 옹의 아직도 정정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풀이를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버킷 리스트의 한줄이 지워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한편으론 이제 또 어떤 거인이 이만치 가슴을 설레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저 워터스는 잠실에서 감동적인 공연을 볼 수 있었고, 엘튼 존과 빌리 조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물론 두 사람이 한꺼번에 피아노를 맞대놓고 공연하는 FACE TO FACE는 아직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생전 세 차례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걸 행운으로 생각하렵니다. 그럼 이젠? 롤링 스톤스? 아이언 메이든? 리치 블랙모어? 지미 페이지? 액셀 로즈? 

 

개인적으론 이 형님들을 한번쯤 만나 보고 싶은 기대가 있습니다. 한때는 진정 뜨거웠지만 지금은 마이너리티가 되어 버렸지만. 멤버들도 여전히 싸우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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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 했어(Good Job)'야."

 

이 말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 '위플래쉬(Whiplash)'를 봤습니다. 압권입니다. 특히 마지막 15분 가량, 대사는 열 마디도 되지 않는 가운데 펼쳐지는 치열한 대결과 반전, 이런 영화는, 특히 이런 피날레는 어떤 영화에서도 일찌기 본 적이 없습니다. 근 몇년간 본 영화 중 가장 강추하고 싶은 작품.

 

감독 데미안 차젤(Damien Chazelle, forvo.com에 따르면 샤젤도, 차젤레도 아닙니다)은 18분짜리 단편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본 뒤, 그 성과를 토대로 투자를 받아 이 본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인간승리.

 

그런데 의외로 이 영화에 반감을 갖는 분들도 적지 않더군요. 물론 어떤 부분이 거부감을 낳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드럼에 재능 있는 학생 앤드루(마일스 텔러)는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인 샤프너 스쿨(가상의 학교입니다)에 입학해 꿈을 키워나갑니다. 여느 때처럼 밤 늦게 연습하던 어느날, 학교 최고의 실력자인 플레처 교수(J.K. 시먼스)로부터 지목을 받고, 학교의 엘리트들이 속해 있는 스튜디오 밴드의 연습에 나가게 됩니다. 그날부터 앤드루의 지옥 문이 열립니다.

 

플레처의 광기는 영화 전편을 통해 관객을 장악합니다. 어린아이를 보거나, 마음에 드는 순간에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따뜻한 말로 간을 빼줄 듯 얘기하지만, 일순간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를 접하게 되면 조상 삼대를 들먹이는 욕설과 함께 폭행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미친 선생'이죠. 그에겐 레귤러와 후보의 구분도 없습니다. 어제 아무리 잘 했어도 오늘 실수하면 당장 연습장 밖으로 악기를 싸 들고 나가야 하는 것이 그의 규칙입니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이런 식의 훈육 방식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수도 있는데, 영화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전제는 플레처의 실력입니다. 일반인은 물론 드러머들의 귀로도 구별하기 힘든 미세한 박자 차이를 고집하고, 30여명의 밴드 가운데 누가 틀린 음을 냈는지 귀신같이 짚어 내는 능력. 그리고 그가 지도한 밴드의 수상 경력과 그가 키워낸 제자들의 활동상이 이미 그의 실력을 검증해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폭거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죠.

 

이런 내용이다 보니 영화의 제목이자 메인 테마인 곡의 제목이 whiplash, 곧 '채찍질' 인게 당연한 일. 

 

 

 

 

 

이 영화에 대한 반감의 포인트도 여기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시퀀스들을 '교육 현장'에 대입하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영화 중간에 플레처의 훈육을 받았던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문제 제기가 중요한 장면으로 등장하기도 하죠.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의 내용을 교육 전반에 대한 우화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위 0.01%, 아니, 상위 0.0001%에 속하는 초 엘리트들의 도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학교 교육이란 '과정 이수'와 '졸업 자격'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입니다. 즉 '이 수준의 학교에서 60점 이상으로 과정을 마치면 어느 정도의 수준 이상임을 인정할 수 있다' 정도가 학교 조직의 목표인 셈이죠. 하지만 이 경우, 고도의 능력을 갖춘 슈퍼 엘리트의 육성을 기대하는 것은 큰 무리입니다. 이른바 일반 교육과 영재 교육을 분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나를 극한까지 혹독하게 몰아쳐서 내 안의 잠재력을 일깨워 줄 수 있었으면'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런 욕구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욕구는 의외로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정상을 노릴 만 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서구인들보다는 한국인들의 내면에 이런 정서가 더 잘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그랬고, 만화도 영화도 아닌 김성근 감독의 신화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와 존경을 보내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플레처가 계속 예로 드는 찰리 파커와 조 존스의 전설도 '누군가를 끝까지 쥐어짜 죽을 힘까지 다 발휘하게 하지 않으면 천재성은 쉽게 발현되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을 뒷받침합니다. 일본 만화에서 주인공이 한번 '각성'에 이르기 위해선 온갖 시련을 죄다 극복해야 하는 것처럼.

 

물론 아무리 쥐어 짜도 그 방면으로 별 특출한 재능이 보이지 않는 학생을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이 '누군가'는 부모, 교사, 가족, 친지, 심지어 그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미친듯이 쥐어 짜 봐야 그 결과가 해피엔딩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합니다. 다만 그 누군가가 그 자신이라면 - 즉 자기를 남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미친 짓으로 보이는 고된 수련의 길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 그 자신이라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그만치 자신을 쏟아 부을만 한 목표를 갖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위 사람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재능이 보잘것 없는 것이고, 그 부문에서 큰 성취를 기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처와 앤드루는 둘 다 행복한 편입니다. 비슷하게 미쳐 있으니 말이죠. 이 둘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원하는 바가 같고, 원하는 바를 위해 가려고 하는 길도 같습니다. 앤드루 역시 기회가 온다면 언젠가 또 다른 플레처가 될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명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쨌든, 앤드루나 플레처 같은 사람을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아무튼 아닌 경우도 있겠으나, 대개의 경우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천재를 낳게 하는 것은 가혹한 훈련과 경쟁의 결과라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위플래쉬'의 영화적 성취는 탁월합니다. 영화 전편에 나오는 드럼을 모두 직접 연주했다는 마일스 텔러의 노력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은: 꼭 보세요.

 

 

 

P.S.1. 이 영화와 더불어, '세상은 꼭 1등만을 위한 것은 아니야. 평범한 재능의 사람들에게도 이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야'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개의 가치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문제죠.

 

P.S.2. 영화의 결말은 제 생각엔 해피엔딩인 것 같습니다만,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은 듯. 글 저 아래에 데미언 차젤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가 끝난 뒤 두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붙여 놨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P.S.3.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곡들은 이미 존재하는 명곡들입니다. 듀크 엘링턴의 '캐러밴'. 그 유명한 조 존스의 드럼 솔로입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보시죠.

 

 

 

그리고 행크 레비의 '위플래쉬'. 역시 전설적인 섹소폰 연주자 돈 엘리스의 1973년 오리지널 녹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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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데미언 차젤 감독은 이 영화의 엔딩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부러 번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사실 아니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영화를 본 뒤에 읽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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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ivecard.joins.com/1304 에서 이어집니다.

 

 

1. 유후인 료칸 야스하, 살짝 들여다 보기  http://fivecard.joins.com/1304

2.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란? http://fivecard.joins.com/1305

3. 유후인, 야스하 료칸의 아침 식사는?  http://fivecard.joins.com/1306

4. 유후인, 왜 모든 사진들이 다 똑같을까?  http://fivecard.joins.com/13067

 

 

 

아무래도 료칸 여행은 식도락 여행을 겸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이세키 요리라는 특전이 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가이세키' 라고 한글로도 일본어로도 발음이 똑같은 회석 會席 요리와 회석 懷石 요리를 착각합니다. 전자는 격식을 갖춰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정찬 요리로 양도 많고 코스도 다양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후자의 가이세키도 다양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도 용어로, '배고픔을 이기기 위한 간단한 식사'라는 의미입니다.

 

정리하면

가이세키 會席 = 양이 많고 코스가 다양한 정찬 요리 

가이세키 懷石 = 다도에서 비롯된 간단하고 정갈한 소품 식사

 

역사적으로 연원을 따지면 會席요리는 일본 전래의 정찬인 혼젠요리(理, 4~5차례 상을 바꿔 들이며 대접하는 전통적인 손님 접대용 정찬 요리)에 懷石 요리의 형식이 영향을 미쳐 성립된 것이라고 하니, 전혀 무관한 사이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지향하는 방향이 정 반대이기 때문에 혼동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발음이 같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일식당 중에도 나오는 요리를 보면 會席 쪽인데 한자는 懷石 이라고 써 놓은 집을 가끔 보게 됩니다.

 

아무튼 우리가 료칸에서 먹은 것은 會席(이제부터 이 글에서 쓰는 가이세키는 모두 이 會席 요리를 뜻합니다) 요리. 기본적인 가이세키 요리는 '전채1( - 전채2(前菜) - 맑은 국( - 생선회(お造り)- 구이(焼物) - 튀김(- 찜( - 초절임(酢物) - 밥(お碗) - 디저트'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야스하라는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 구성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식전주

오자쓰키(

 

 

 

이 료칸에선 이렇게 미리 한글로 된 메뉴를 줍니다.

 

일본 료칸은 본래 방으로 큰 상을 들여다 식사를 제공했고, 아직도 전통을 중시하는 일류 료칸들은 그렇게 한다고들 합니다만, 이미 대다수 료칸들은 별도의 식당을 마련하고 식사를 하게 합니다. 아무래도 방까지 상을 들이는 인건비 등이 만만치 않아 그렇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이렇게 나와 먹는게 더 편하게 느껴집니다.

 

 

 

식전주. 복숭아 맛이 나는 달콤한 칵테일. 거의 술이 아닙니다.

 

 

오자쓰키(

 

 

젠사이(膳彩). 아귀 간과 두부, 치즈스틱을 햄으로 만 것, 가다랑어 무침, 호두 선, 사과 젤리, 새우 마요네즈 무침, 오징어 유자 매실무침, 농어 초밥... 아기자기해서 참 먹기 아깝습니다만 호로록 호로록.

 

 

 

 

 

 

생 와사비와 앙증맞은 강판 제공. 참 강판이 귀엽기도 하거니와, 생 와사비에서 매운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달다고 생각될 정도.

 

 

 

야스하의 특징으로 꼽히는 간장 젤리. 간장에 다섯가지 과일주스 등을 섞어서 굳힌 젤라틴 형태의 간장입니다. 가끔 장조림에 들어 있는 반 고형 간장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듯. 색깔별로 다른 향이 살짝 스치는 희한한 맛입니다. 아무튼 굿.

 

 

 

 

 

 

 

 

 

 

 

 

 

 

 

 

 

배가 부른데! 배가 부르다고!

 

 

 

  

 

다 보여드리는 건 뭐 귀찮기도 하고, 아무튼 다시 11코스의 가이세키 요리를 먹었습니다.

 

  

 

  

 

유일하게 이틀 연속 등판한 분고 비프. 아무튼 두번쨋날 저녁에도 여지없이 배가 터졌습니다.

 

이 포스팅이 마음에 드셨으면 아래 버튼을 한번 사용해 보시는 것도...^^

 

 

 

 

...그리고 다음은 아침식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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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처음으로 일본 료칸(旅館)을 다녀왔습니다. 일본 여행은 꽤 해 봤고, 당연히 온천도 가 봤지만 전통 료칸에 머문 것은 처음이라 꽤 궁금했습니다.

 

사실 일본에 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료칸에 대한 로망을 갖고 가지만, 쉽게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료칸이라고 불리려면 당연히 온천이 있어야 하고, 전통적인 다다미방 숙소에 홑이불을 깔아 주는 서비스가 있고, 일본 전통 가이세키(會席. 일식집 중에도 가끔 다도에서 쓰는 懐石과 혼동해서 써 놓은 경우가 있는데 발음은 같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요리로 저녁 성찬을 차려준다는 점 등이 갖춰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를 받으려면,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 료칸의 요금은 손님 1인당 가격으로 계산한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위의 조건을 갖춘 료칸은 대개 1인당 1만엔 대부터 시작하고, 별채 방마다 개인용 욕실이 딸려 있느냐, 그리고 그 욕실이 노천 온천이냐 아니냐, 주위의 풍광이 얼마나 좋으냐, 식사를 방에까지 날라다 주느냐 등의 조건에 따라 가격이 점점 올라갑니다.

 

최고급 료칸 중에는 1인당 5만엔대까지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면 2인 1박에 한국 돈으로 100만원인 셈이죠(물론 제가 간 곳은 당연히 이런 최고급 료칸은 아닙니다;).

 

아무튼 사치라면 상당히 사치인 셈인데, 최근의 엔저 에 용기를 얻어 한번 질러 봤습니다.

 

총 4편의 글 중 첫편입니다.

 

1. 유후인 료칸 야스하, 살짝 들여다 보기  http://fivecard.joins.com/1304

2.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란? http://fivecard.joins.com/1305

3. 유후인, 야스하 료칸의 아침 식사는?  http://fivecard.joins.com/1306

4. 유후인, 왜 모든 사진들이 다 똑같을까?  http://fivecard.joins.com/1307

 

  

 

유후인(湯布院) 역 전경. 만약 유후인만 갈 생각이라면 후쿠오카 공항에서 바로 연결되는 직행 고속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듯 합니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역 정면으로 약 30m 떨어져 있습니다. 편도 2800엔 정도. 2시간~2시간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그렇지 않고 후쿠오카 시내(하카다 역?)까지 들어가든, 큐슈의 다른 도시를 거쳐가든 하면 역을 이용할 일이 있겠죠.

 

아무튼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무것도 곁눈질하지 않고 그냥 료칸에서 쉬다 오는 거였기 때문에 바로 버스를 이용해 저 위치에 내렸습니다. 역전에서 료칸에 전화하면 차가 데리러 오거나, 택시를 이용하는데 택시 요금을 료칸에서 지불합니다. (물론 안 그런 곳도 있습니다. 예약할 때 확인 필요.)

 

 

역에 내리면 보이는 유후인의 랜드마크는 유후다케라고 불리는 저 흰 봉우리.

 

 

차를 타고 료칸으로 가는 동안에도 정면의 흰 봉우리가 보입니다. 역에서 유후다케 방향으로 가는 큰길이 유후인의 메인 스트리트입니다. 그리고... 금세 알게 되지만 유후인은 매우 작은 골입니다. 정말 두어 시간이면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마을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니 차로 한 10여분 달리면 야스하(泰葉) 료칸에 도착합니다. 메인 스트리트 주변에도 료칸들이 눈에 띄지만, 메인 도로에서 건물이 약간 드물어질 때쯤 왼쪽 산길로 올라가면, 오르막길을 타고 좌우 양쪽에 료칸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약간 산속 같은 곳에 있는 편이 더 료칸 분위기가 납니다.

 

홈페이지는 http://www.yasuha.co.jp/index.htm  예약도 여기서 할 수 있습니다.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위에 보이는 건물이 1번의 메인 건물. 2층 건물로, 객실 몇개와 대욕장(이라지만 크지는 않음)이 있습니다. 2번 건물은 식당, 3번은 건물이 아니라 족욕장입니다.

 

 

족욕장에서 유후인 시내 쪽을 내려다보면 대략 이런 풍경입니다. 흰 연기는 온천수를 뽑아내는 수증기.

 

이 료칸을 선택한 건 '유후인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온천수'를 보유한 집이라는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유후인의 수많은 온천장 가운데서도 이 집의 원탕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뭐 무슨 근거인지 알 수 없지만 몸을 담가 본 결과 믿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도 이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일부 료칸들은 아직도 전화로만 예약을 받더군요.^)

 

http://www.jhpds.net/yasuha/uw/uwp3100/uww3101.do?yadNo=333257

 

 

 

객실과 객실 사이는 다 이런 회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눈비가 올때 편하도록.

 

 

위 지도에서 보면 7번 위치에 있는 방입니다. 다다미 8조짜리 별실이고, 전용 노천욕조가 바로 밖에 붙어 있습니다.

 

 

들어가 보면 이런 모습. 다다미가 깔린 끝에 2인용 탁자가 있고, 그 창밖이 바로 노천온천입니다. 왼쪽 문을 열고 나가면

 

 

이런 작은 욕실을 거쳐 바로 노천온천입니다.

 

 

이런 모습. 오른쪽은 관을 통해 온천물이 쉴새없이 흘러들고 있고, 왼쪽에는 냉수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습니다. 온천 원수는 매우 뜨겁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 왼쪽 찬물을 틀어 대략 온도를 낮춰야 합니다. 찬물을 타면서 왼쪽에 있는 저 넓적한 판때기로 물을 아래위로 휘젓죠.

 

 

방에 이불을 깐 모습. 채널 5개가 나오는 TV 한대, 빈 냉장고 한대, 물을 끓일 수 있는 포트와 차 세트가 있고, 얼음물은 무한 공급입니다. 유카타는 당연히 공급.

 

야스하 료칸에는 일반 객실, 다다미 8조짜리 별채 객실(노천온천 포함), 12조짜리 별채 객실(노천온천 포함)의 세 가지 방이 있습니다. 당연히 뒤로 갈수록 비쌉니다. 8조와 12조의 차이는 방 크기 외에 온천이 있는 정원도 조금 더 넓은 듯 합니다. 하지만 2~3인 정도라면 8조 객실로 충분합니다.

 

 

 

노천온천은 욕조 위로 바로 하늘이 보이는 타입은 아니고, 지붕이 있어 비가 올 때에도 노천욕을 하는데 지장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있으면 왕년에 홋카이도에서 겪었던, '노천온천에 누워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는 맛'은 보기 힘들죠.^^

 

뭐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지만, 이 온천에 누워 울창한 수풀과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순해지는 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소개글들을 보면 야스하 료칸의 온천수는 은은한 푸른색을 띤다고 되어 있습니다.

 

바닥의 돌이 파란 색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은근히 푸른 느낌이 드는 건 맞습니다.

 

 

일단 온천을 본 이상 이성을 잃고 뛰어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발 하나로 모든 설명 끝.

 

 

 

물은 쉴새없이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갑니다. 출수구의 저 흰 얼룩이나,

 

 

탕의 수위선에 어느새 생긴 흰 선을 보면 물에 석회질이 상당 부분 섞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새벽에 일어나 탕으로 나가면 이렇게 푸르스름한 안개까지. 분위기 좋습니다.

 

 

 

방 밖은 거의 항상 이렇게 온천수를 뽑아내는 수증기로 가득.

 

 

온천수의 성분 때문에 주위의 나무들이 저렇게 흰 색으로 뒤덮인다고 합니다.

 

 

다시 본관. 본관은 이렇게 거대한 화덕 주위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 공간 바로 뒤편에 대욕장(공동탕)이 있습니다.

 

 

공동탕 안에는 당연히 이런 욕조와 일반 목욕탕 같은 벽면의 샤워 시설이 있고,

 

 

 

거기서 한번 더 문을 열고 나가면 대망의 노천탕이 있습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잘 꾸며져 있고 나무가 우거져 있어 개방감이 좋습니다. 전체적인 푸르스름한 색조도 좋고, 몸을 담그면 기분 좋은 짜릿함이 느껴집니다.

 

일부 지역에는 이 노천탕이 남녀 혼탕인 곳이 있지만 여기는 노천탕도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다만 바로 옆이라 소리를 지르면 들릴 정도는 될 듯...^^

 

 

물론 저런 공동탕도 좋지만 형편이 허락한다면 방마다 딸린 독점 노천탕의 유혹은 어마어마합니다. 특히 번거롭게 멀리 있는 욕장에 갈 채비를 할 필요 없이 그대로 옷만 벗고 탕으로 뛰어들어갈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매력입니다.

 

밤의 모습. 쌀쌀한 날씨에 뜨뜻한 탕 안에서 몸을 덥히고, 너무 더워지면 밖으로 몸을 내밀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서늘해지면 또 탕에 뛰어들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놓으면 금상첨화.

 

정말 저러고 있으면 세상에 부러운게 없더군요. 글자 그대로 PERFECT RETREAT.

 

 

 

 

 

 

자. 다음은 당연히 식사편. http://fivecard.joins.com/1305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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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잘 하겠다고 반성해놓고 또 이런 일이 ;;

 

죄송합니다. ;;

 

 

 

 

 

10만원으로 즐기는 3월의 문화가이드(2015)

 

해외에 나가서 공연을 본다고 하면 가장 선택하기 어려운 게 연극이지. 아무래도 대사의 비중이 크다 보니, 외국어에 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하지만 요즘은 해외 유명 극단들도 내한공연을 하고, 기술의 발달로 자막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연을 즐기게 됐지.

 

2015 3월에 가장 관심이 가는 공연은 국립극장에서 35일부터 7일까지 펼쳐지는 영국 극단 컴플리시테의 라이온보이. 지난달 프랑켄슈타인은 무대극을 녹화한 영상이었지만 이번엔 진짜 배우들이 하는 내한공연이지.

 

원작은 2의 조앤 롤링으로 불리는 영국 작가 지주 코더(본명은 루이자 영)의 판타지 소설 라이온보이시리즈야. 검색해 보니 첫 공연 이후 수많은 미디어로부터 경이롭다’ ‘무대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어마어마한 극찬을 받았어. 고양이과 동물의 말을 알아듣게 된 흑인 소년이 납치된 부모를 찾아 벌이는 모험의 세계라는데, 과연 그걸 어떻게 영화도 아닌 연극 무대에서 펼칠지 사실 나도 궁금해. 일단 영국 가디언지가 브로드웨이에서 온 다른 커다란 맹수(뮤지컬 라이온 킹을 말함)보다 훨씬 볼만하다고 평했으니 기대해 볼만. VIP 7만원부터 시작인데, 3만원짜리 S석도 괜찮을 거라고 권해 주고 싶어.

 

이달은 추천하고 싶은 볼거리가 월초에 몰려 있네. 33,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윤한(피아노), 성민제(더블베이스), 크리스 리(피아노) 등 이미 실력으로 명성 높은 네 훈남 연주자들이 재즈 연주를 위해 뭉쳐. 공연 제목은 더 로맨티스트’. 연주 곡목도 루이 암스트롱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 등 재즈의 고전 중 고전들. 감상용으로도 좋고 데이트용이라면 최고일 듯. R 12만원부터 시작인데, 어차피 오빠들의 얼굴은 맨 앞자리 아니면 안 보여. B 3만원으로 좋은 시간 보내도록.

 

 

 

3월 후반엔 예술의 전당의 해피 버스데이 바흐가 눈길을 끄네. 바흐는 1685 321일 생이지만 공연 날짜는 22. 그러니까 탄생 330주년 생일 잔치인 셈이지. 임경원 교수의 무반주 첼로조곡 1번을 비롯해서 유명 연주자들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 바흐의 간판 히트곡들을 연주해. 제목은 몰라도 일단 들어 보면 , 이것도 바흐 곡이구나할 곡들이야. S 35천원. 31일엔 같은 기획으로 해피 버스데이 쇼팽공연도 있으니 참고해.

 

 

 

이달의 추천 책 1번은 질 브라가르, 크리스티앙 루도 공저 대통령의 셰프. 세계 정상들의 식사를 책임진 특급 셰프들의 에피소드를 정리한 책인데, 전체적으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책이야. 다뤄지고 있는 나라는 각각이지만 그 셰프들은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이니 말야.

 

하지만 전 세계 명문 축구 클럽이 브라질 산 스트라이커를 찾듯(하긴 뭐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미식에 대한 한 프랑스인 셰프들과 프랑스 요리들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으니 어쩌면 정상적인 비율일 수도 있겠지. 20세기 초까지 프랑스 정찬은 15~10코스, 3시간이 표준이었는데 음식에 별 관심이 없었던 드골 대통령이 그나마 줄인 게 5코스에 100분 정도라는 얘기도 이 책에 나와. 레이건 대통령의 셰프였던 피에르 샹브랭이 남긴 지방이 없는 음식은 맛이 없다. 나는 평생 훌륭한 요리를 해 왔다. 병원 요리를 하고 싶었다면 병원에 취직했을 것이란 명언은 다이어트에 지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기도 해. 12000원 정도.

 

이 책 얘기를 하다 보니, 이런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뜨리지 않아야 할 책 한권이 생각났어. 바로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이야. 요네하라 마리 팬들이 보시면 아니 이런 뻔한 고전을 이제사 소개해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따지실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 이 책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강추하고 싶어. 어린 시절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살았던 저자의 독특한 경험이 낳은 책이야. 보드카 원조국의 명예를 걸고 벌인 러시아와 폴란드의 대결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 11000원 정도. 이달은 조금 넘쳤지? 다음 달에 절약해.

 

P.S. 이달의 궁금증은 공연 제목 더 로맨티스트(Romantist)’. 영어엔 로맨티시스트(Romanticist)라는 말은 있어도 로맨티스트라는 말은 없어. 출연자 이름의 절반이 영어인 저 공연에 어쩌다 저런 제목이 붙었는지 정말 궁금해. 혹시 아는 사람 있으면 제보 부탁해.

 

 

3.5~3.7, 영국 컴플리시테 극단의 라이온보이       S 3만원

3.3     더 로맨티스트공연                       B 3만원

3.22    해피 버스데이 바흐콘서트                S 35000

질 브라가르, 크리스티앙 루도 저 대통령의 셰프     12000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11000

 

                                                   118000

 

 

 

 

안 그래도 월초에 볼거리가 몰려 있어 어쩔까 싶던 차에 복잡한 일들이 한데 몰려 이런 참사가 일어났습니다그려;;

 

대신 책 많이 읽으시는 3월이 되기를(퍽) 기원합니다.

 

'대통령의 셰프'를 읽다 보면 이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 얘기가 나오는데, 마침 3월 개봉이더군요. 책 안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안 그래도 보수적인 남자들의 사회인 주방에서, 여성 셰프가 프랑스 대통령의 수석 셰프가 된 뒤로 수많은 갈등과 얘깃거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현실에선 대단한 해피엔딩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영화 소개는 이 쪽: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148

 

아무튼 위에서 예로 든 피에르 샹브랭의 코멘트처럼 'Kcal=맛의 단위'라는 것은 역시 정설인 듯 합니다.

 

같이 소개한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은 블로그에서도 한번 소개했던 책이고, 사실 국내에서 요네하라 마리의 산문 열풍이 불게 했던 발화점을 제공한 책이기도 합니다. 따뜻하면서도 유머 넘치고, 그러면서도 뭔가 냉철한 그의 문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의 다른 책들이 이 책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살짝 실망하기도 했던.)

 

마지막은 아무래도 생신 맞으신 바흐님에 대한 헌정입니다.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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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 비밀 정보 기관 [킹스맨]의 멤버 갤러해드(본명은 해리, 콜린 퍼스)는 임무 수행중 죽은 동료의 아들에게 메달을 줍니다. 세월이 흘러 17년 뒤, 그 소년 엑시(타론 에저튼)는 곡절 끝에 킹스맨의 멤버가 되기 위한 테스트에 응합니다. 그 사이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세계적인 IT기업가 발렌타인(새뮤얼 잭슨)은 지구에 붙어 사는 바이러스적 존재인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 음모는 엄청나게 위험한 계획이란 사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론 [킹스맨]을 즐기기 위해 사전에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어떤 다른 영화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단순합니다. 사실 기본 설정부터 말이 안 됩니다. '유명 양복점들과 연관된 재력가들이 뭉쳐 전 세계 어떤 정부, 어떤 권력과도 관련이 없는 정의 수호를 위한 국제 정보기관을 만들었다'라뇨.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랍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괴팍한 설정과 막나가는 진행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킹스맨'의 첫번째 포인트는 당연히 '스파이는 영국산'이라는 교훈의 부활입니다. 물론 너무 늦게 태어난 까닭에 이미 스파이 세계가 이선 헌트와 제이슨 본이 지배하던 세계였던 분들, 그리고 007 시리즈가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극약 처방으로 본래의 색채를 잃은 시대에 영화를 보기 시작한 분들에겐 참 죄송하기 짝이 없는 얘기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과거 션 코너리와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로 활약하던 시대를 얘기하는 것은 참 무의미한 경우가 많고, 그보다 더 마이너한 TV 시리즈들인 '어벤저(The Avengers)'나 '전격대작전(The Persuaders)', '세인트(The Saint)' 등을 얘기하면 이 뭔 선사시대 이야기인가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이런 '수트를 폼나게 갖춰 입은 영국제 스파이'의 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킹스맨'이 가장 반가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전격 제로작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방송된 'New Avengers'의 패트릭 맥니. 존 스티드라는 빛나는 '영국 스파이' 캐릭터로 20여년에 걸쳐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007 이전, 카리스마 넘치는 '세인트'로 인기 스타의 자리를 굳힌 로저 무어.)

 

그 전통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본드는 불행히도 그 맥을 스스로 잘라 버렸습니다. 바로 2006년작 '카지노 로얄'에서 시작된 다니엘 크레이그의 새로운 007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그 본질적인 정취가 사라져 버렸죠. 일부 본드 마니아 중에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거칠고 냉혹한 이미지가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창조한 초기 본드의 모습과 어울린다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주장을 펴는 분들은 플레밍이 왜 '근육질의 액션 스타형 젊은이' 션 코너리를 캐스팅 한 데 실망감을 표하고 "내가 원했던 본드는 데이빗 니븐"이라고 말했는지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플레밍은 이미 이 시절에 '영국산 스파이'의 본질이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낙관적인 태도로 극복해 나가는, 여유 있는 신사의 이미지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예상과는 달리 션 코너리는 역사에 남을 영국산 스파이의 전형을 멋지게 연기해 냈고, 그 연기를 본 플레밍이 "내가 그를 과소평가했다"며 만족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007 시리즈 제작진은 피어스 브로스넌 체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전성기만큼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판단하에 시리즈의 색채를 짝퉁 제이슨 본 시리즈로 만들어 놓은 뒤 흥행 면에서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정통 영국산 스파이'의 정취는 영영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국 귀족의 후예로 태어날 때에는 드 비어 드루먼드 라는 거창한 이름이었던 매튜 본이 칼을 뽑고 나선 것입니다. ('드 비어'라는 이름은 '킹스맨'에도 등장하죠. 갤러해드가 발렌타인에게 접근했을 때 쓰는 가명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킹스맨'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다니엘 크레이그 체제의 007을 비롯해 일단 뛰고 달리고 아크로바트 액션을 펼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린 21세기 초반의 스파이 영화 시장입니다. 과연 관객이 원하는 것이 그렇게 천편일률적인 스파이 영화 뿐만이겠느냐는 냉소가 담겨 있죠. 물론 '오스틴 파워'나 '자니 잉글리시'도 방향만 보자면 비슷한 노선을 택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 영화들이 갖추지 못한 미덕을 '킹스맨'은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수트 포르노'라고 불리는 진정한 '수트 입은, 섹시한 영국 스파이' 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발몽'의 꽃미남 시절 콜린 퍼스. 누군가 '킹스맨'을 보고 "왜 콜린 퍼스는 제임스 본드 후보에 오르지 않은 거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뭐 오르지 않았을 리야 없지만 사실 경쟁이 너무 치열했던 거죠.)

 

사실 콜린 퍼스는 경력만 놓고 보면 '대영제국 스파이'의 이력이 없는 배우지만, 어쨌든 전 세계 여성 팬들을 녹일 수 있는 댄디한 매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매튜 본의 의도는 타론 애저튼을 앞세워 '귀족인 척 하는 자들의 희화화'였는지도 모르지만, '킹스맨'을 본 전 세계의 대다수 여성 관객들에게 이 영화에서 애저튼은 퍼스의 비중에 비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미미한 존재라는 점에서, 별 의미 없는 얘기로 전락하고 맙니다. (영화를 본 거의 모든 분, 특히 여성 관객들은 콜린 퍼스 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아울러 1960년대, 또 다른 히트 스파이 시리즈인 '해리 팔머' 시리즈를 주도한 마이클 케인이 아서 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영화에 '영국산 스파이'와 '안경 쓴 쉬크한 스파이'의 정통성을 부여합니다. 물론 킹스맨 2층의 회의실이 원형 테이블이 아니라는 건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지만요.

 

 

(해리 팔머 시리즈 시절의 풋풋한 마이클 케인.)

 

 

 

 

이런 맥락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 과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비판이나 계도성 메시지가 담겨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존재 의미를 좀 왜곡하는 느낌이 듭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매튜 본의 영화 이력은 사실상 가이 리치의 히트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의 프로듀서 역할에서 시작합니다.

 

그 뒤로 직접 감독으로 나서 만든 영화들 - 가이 리치 의 영화라고 해도 아무도 신기해 하지 않을 '레이어 케이크'에서 이번 '킹스맨'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B급이면 어때'와 '주인공만 주인공이란 법 있어' 입니다. 보는 이에 따라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과연 그의 영화에서 몇몇 평론가들이 읽어 내는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서태지의 '소격동'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을 읽어내려는 것 만큼이나 억지로 느껴집니다. 뭐 이 영화에 귀족과 기득권층에 대한 비웃음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로 '킹스맨'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타란티노의 '장고'는 인종차별국가 미국을 전복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라고 보아야 할 정도겠죠.

 

사실 '킹스맨'은 매우 비교육적인 영화이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매겨진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 담긴 생명 경시나 성차별, 인종 차별, 그리고 '정치적 공정성'이란 말 자체를 비웃는 듯한 표현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저속함을 이유로 무시하기엔 이 막나가는 코미디 영화가 갖고 있는 재미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데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코미디는 그냥 코미디로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돈나를 사이에 두고 왼쪽이 가이 리치, 오른쪽이 매튜 본)

 

P.S. 한때 매튜 본은 '가이 리치의 재능을 흠모해 따라다니는 돈 많은 친구' 정도의 대접을 받았지만, '킹스맨'을 통해 마침내 가이 리치와의 위치를 역전시킬 기회를 잡았습니다. 가이 리치가 데뷔 초의 재능은 어디로 팔아먹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 시리즈 같은 영혼 없는 영화로 흥행 감독의 면모만 유지하게 되어 버린 결과죠.

 

흥미롭게도 가이 리치 또한 나폴레옹 솔로라는 슈퍼 스파이로 유명한 왕년의 인기 시리즈 '첩보원 0011(Man from U.N.C.L.E)'의 리메이크와 함께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의 제작을 발표해, '고전적 스파이 이야기'와 '아서왕 이야기'를 한방에 버무린 매튜 본과 평행선을 그리게 됐습니다. 과연 이 두 작품에서 가이 리치가 왕년의 기발함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 옛날, 매튜 본의 '스타더스트'에 대한 글 http://blog.joins.com/fivecard/8417922

 

매튜 본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리뷰 http://fivecard.joins.com/939

 

그리고 가끔 혼동되는 또 다른 매튜 본에 대한 글^^ http://fivecard.joins.com/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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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 서서히 인기에 불이 붙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하녀들'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나라가 선 지 1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상황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사회가 아니고 보면 10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닙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두메산골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새 나라가 섰다는 사실도 최신 뉴스일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나라의 주역들이 가장 경계할 일은 아무래도 전 왕조의 후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동태 파악입니다. 백제가 망한 뒤에도 백제의 강역에서 부흥운동이 펼쳐졌고, 고구려도 부흥운동이 일어난 데 이어 그 땅에서 고구려의 후신임을 주장하는 발해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자료를 보면 태조 이성계는 공양왕을 비롯한 고려 왕실의 후예들에게 상당히 관대한 듯 하지만 그 아랫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죠. 자신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조선이 망한 뒤 고려 왕씨들이 어떤 운명을 걸었는지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름은 바로 '왕 거을오미' 입니다.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 1393~) [가장 극적으로 살아남은 고려의 후예]

 

드라마 하녀들에는 조선 초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반목하는 사이 고려를 수복하려는 왕씨들과 그 유신들로 구성된 만월당이라는 비밀 조직이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려가 망한 뒤 두문동에 들어간 72명의 고려 유신들이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는 기록은 있으나, 누군가 조직적으로 고려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운동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구려의 안승이나 백제의 귀실복신 같은 인물은 고려가 망한 뒤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 고려 왕씨의 후손들은 조선 건국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집권 직후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손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공양왕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둔 데 이어 태조 2(1393) 526일에는 거제도를 비롯한 낙도로 유배가 있던 공양왕의 후손들을 육지로 나오게 해 생업을 주고 안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들 중 왕강은 위화도 회군 당시 이성계에게 동조한 공이 있어 조선 건국 뒤에도 벼슬을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계 본인보다 정도전을 비롯한 공신들은 훨씬 더 강력하게 왕씨들을 처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을 내버려 둘 경우 새로운 왕조에 해가 될 것이라는 상소가 빗발쳤고, 마침내 1394226일에는 이성계가 직접 보호하던 왕강와 왕승보 등도 귀양가는 몸이 되었다. 이어 414일 윤방경 등을 강화에, 손흥종 등을 거제에 보내 왕씨 일족을 단속하라는 명을 내렸다. 말인즉 파견되는 관리가 재량껏 단속하라는 것이었으나, 조정의 여론을 감안하면, ‘재량껏이란 씨를 말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삼척에 귀양 가 있던 공양왕도 이때 아들과 함께 처형됐다.

 

야담집 추강냉화에는 당시 학살의 풍경이 기록돼 있다. 파견된 관원들이 왕씨들에게 육지에서 떨어진 낙도에 모두 모여 살게 해 주겠다며 거짓 포고령을 내려 포구에 모은 뒤, 배에 싣고 가다가 가라앉혀 몰살시키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이 이성계의 꿈에 나타나 죄없는 내 후손들을 몰살시키니 네 아들들도 뒤가 좋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어 426일에는 아예 왕씨라는 성의 사용 금지령이 내려진다. 본래 왕씨면 어머니의 성을 쓰고, 사성(賜姓)으로 왕씨를 받은 자들도 본래의 성으로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왕씨들이 전()씨나 옥(), ()씨로 성울 바꾼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다들 한자로 보면 자가 들어 있는 글자들이다.

 

공양왕의 형인 왕우는 태조의 8남 방번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귀의군에 봉해진 뒤, 이런 변란 속에서도 왕씨의 제사가 끊겨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목숨을 보존했다. 하지만 1397년 왕우가 죽고 장남 왕조가 귀의군의 칭호를 물려받은 뒤, 이듬해인 1398 826일엔 귀의군 왕조와 그 아우 왕관이 죽었다는 기록이 실렸다. 이날은 1차 왕자의 난으로 방번-방석 형제와 정도전, 남은 등이 주살당한 날이다. 방번이 죽었으니 그 처남들인 왕조와 왕관을 더 이상 살려 둘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 왕씨가 사라졌다.

 

하지만 태종 13(1413) 11, 고려 왕족인 왕휴의 서자 왕거을오미가 발견되어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왕휴가 이밀충이란 사람의 누이를 첩으로 삼아 낳은 아들인데 20세가 되어 호패를 마련하려는 것을 지신사 김여지가 조정에 보고한 것이었다.

 

 

 

관계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 공초가 있었으나 태종은 역성혁명이 일어나도 전조의 자손들을 아예 멸족시킨 경우는 없었다. 특히 태조의 경우 왕씨들을 몰살시킨 것이 본의가 아니었고, 당시만 해도 내가 나이 어려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제 내가 왕씨의 자손들을 보호하겠다며 거을오미의 석방령을 내렸다. 이후 문종 1(1451)에는 왕씨의 사용 금지령을 해제하고 임금이 직접 "왕씨의 후손들을 찾아 조상의 제사를 지내게 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오늘날까지 개성 왕씨의 후손들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가 망한 뒤 부흥의 움직임이 공식 문서에 기록된 바 없는 것은 아마도 이런 가혹한 박해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왕거을오미도 왕씨에 대한 박해가 끝났음을 알린 인물이기는 하나, 관직이나 토지를 주어 잘 살게 했다는 기록 역시 없는 것을 보면 무슨 특전이 주어진 것은 아닌 듯 하다. 문종 때 왕씨의 사당인 숭의전을 짓고 왕우지를 발탁해 왕순례라는 이름을 내린 뒤 숭의전 부사로 봉해 토지와 집을 주어 조상의 제사를 모시게 한 것이 완전한 사면의 첫 기록이다.

 

이렇듯 조선 왕조가 왕씨를 받아들이는 데 대략 건국에서 60년이 걸렸다. 다시 한번 망국의 비애를 느끼게 된다.

 

P.S. 고려 왕씨에서 비롯된 성씨 중에는 위에서 거론한 성씨 외에 개성 내()씨가 있다. 일설에 따르면 조선 초 검문하던 군관이 무슨 성씨냐고 묻는 말에 당황한 왕씨 일족이 ?”하고 반문하는 바람에 내씨가 되어 살아남았다는 것인데, 믿을만한 이야기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개성 내씨 이야기는 참 코믹합니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았다니 다행이라는 생각.

 

뭐 역사의 만약이란 얘기해 봐야 그냥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지만, 왕우와 이성계가 사돈을 맺을 때 하필 방번과 왕우의 딸을 결혼시킨 것이 묘한 상황입니다. 이성계가 후계자로 삼으려 한 아들은 방번과 어머니가 같은 방석이었으니, 그대로만 됐으면 왕우의 집안은 누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왕자의 난으로 태종 방원이 방번-방석 형제를 처지했으니 왕우의 자손들은 두 겹의 역적이 된 셈이죠. 망국의 왕손인데다 난신적자의 집안... 이것이 팔자 소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끔 전씨(全이든 田이든) 중에 고려 왕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속설에 따르면 가능성은 꽤 있는 편입니다. 한때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의 측근들도 넌즈시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비슷한 경우를 부여 서씨의 경우에도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왕성은 본래 부여(夫餘)씨인데, 나라가 망한 뒤 여(餘)자의 일부를 변형해 여(余)씨나 서(徐)씨로 성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왕씨의 후손들은 이렇게 경기도 연천의 숭의전(문종 때 세워진 왕씨들의 사당)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니, 굳이 누가 진짜 고려의 후손인지를 따질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하녀들'은 태종 초, 함흥차사가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시작했으니 왕씨의 후예들은 모조리 참살당한 뒤의 상황입니다. 그래도 고려 부흥의 음모가 등장하니 왕씨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하녀들'의 등장인물 중에는 누가 고려 왕실의 후예일까요. 뭐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눈치 빠른 분들은 대략 짐작을 하실 듯 합니다. 당연히 비밀조직 만월당의 주역들 중에 있겠죠.^^

 

('하녀들'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미 김치권[김갑수]와 아들 은기[김동욱]가 고려 왕실의 자손이고, 무명[오지호]은 이방원의 아들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이 글은 그 전에 쓰여진 글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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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2월입니다. 세월 참 빠르죠?

 

이달의 기대는 바로 이것.

 

 

 

 

 

10만원으로 즐기는 2월의 문화가이드 (2015)

 

이번달 예술의 전당 공연 중에는 향수라는 표제의 공연이 눈길을 끌어. 대부분의 연주회들이 별 설명 없이 레퍼토리를 내놓는 데 비해 이 공연은 향수라는 주제로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첼로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 9신세계를 연주해. KBS 상임지휘자였던 함신익과 심포니송의 연주. 첼로 독주자는 인기 최고인 송영훈이야.

 

함신익과 심포니송은 지난해에는 황홀이란 표제를 달고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 4번을 연주했는데, 한 작곡가를 이렇게 한 단어로 압축하는 건 무리가 아니냐는 생각도 드는 반편, 참신하고 대중적인 접근이란 면에서 그럴듯하기도 해. 물론 많은 사람들이 드보르작의 음악 세계를 설명할 때 미국에서 활동하며 고향 보히미아를 그리던 작곡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걸 보면 드보르작과 향수를 연결하는 건 무리가 없어 보여. C 3만원이면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거야.

 

다음. 국립극장에서 영국 국립극장(NT, National Theatere)의 공연을 그대로 녹화한 영상을 가끔씩 상영하고 있다는 걸 아는 분들은 이제 아실 거야. 그런데 이번 공연은 그야말로 마니아들을 흥분시킬만한 대박이야. 영국 BBC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미국 뉴욕판 셜록 드라마인 엘리멘트리의 셜록 조니 리 밀러가 함께 무대에 서거든. 작품은 메리 셸리 원작 프랑켄슈타인’.

 

누가 프랑켄슈타인 박사고 누가 괴물이냐고? 둘 다야. 두 스타 배우가 공연에 따라 번갈아가며 괴물과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을 바꿔 연기해. 이번 국립극장에선 두 가지 버전의 공연을 각각 3회씩 상영하지. 게다가 연출은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 이 글을 쓰는 나부터도 마음이 급해지네. R 15000, S 1만원. 알았으면 서둘러야겠지?

 

 

 

 

이달에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다니구치 지로의 선생님의 가방이야. 1년에 150권을 읽는(정상이 아닌) 다독가 하지현 교수가 추천한 책인데, 줄거리를 요약하면 술 좋아하는 37세의 골드미스 츠키코가 우연히 술집에서 옛날 고교시절 선생님을 만나 차츰 남녀관계로 발전해가는 이야기야. 3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남녀, 그것도 노인의 연애 이야기인 거지.

 

하 교수에 따르면 나이가 만큼 사람 사이의 사랑은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와 관계의 감정이 무르익어 자연스럽게 숙성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일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좋은 책이라고 하는데, 남자든 여자든 이제 나이 들어 의미가 가슴에 닿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권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 두권 짜리 만화의 울림이 만만치 않아. ‘고독한 미식가등을 통해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체를 접해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한컷 한컷이 작품이라는 생각이 정도의 공력이 느껴져.

 

 

 

 

문득 반대쪽에 있는 책을 하나 추천하고 싶어지네. 배명훈의 책을 추천하는 이번이 두번째인 같은데, ‘맛집 폭격이라는 제목을 들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 한국과 곳에 있는 어떤 나라가 묘한 긴장 상태에 들어가. 워낙 거리라 직접 교전은 없지만 양쪽 상대방의 본토에 대해 미사일로 정밀 공격을 가하면서 눈치를 보는 상황인 거지. 그런데 한국의 상황 분석자가 보기엔 정말 묘할 정도로, 적의 공격 목표가 한때 사랑했던 그녀 함께 가던 추억의 맛집들이더라는 거야. 과연 메시지가 뜻하는 뭘까.

 

선생님의 가방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쳐 어떤 감정을 감정이라고 말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맛집 폭격 감정 대놓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쿨하지 못하고 촌스러운 행동이라서 차마 그렇게 말할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야. 그렇게 너무나 달라. 아마 작품 모두를 좋아하는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인터넷 서점 기준으로 맛집 폭격 12000 , ‘선생님의 가방 권당 1만원 .

 

 

 

마지막으로 이달의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작년 128일부터 열리고 있는 폼페이. 중앙박물관 전시 중에는 드물게 유료 행사야. 기원 79 화산 폭발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고, 유적은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서 봐야 곳으로 꼽히지. 이번에는 폼페이에서 나온 유물 300여점이 전시돼. 폼페이 유적이 특별한 도시가 서서히 몰락해 가면서 텅빈 유령도시가 되어 유적화한 것이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생활이 진행되던 상태에서 화산재로 덮여 정지화면처럼 그대로 남았다는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당시 생활을 재현할 있는 유물이 풍성한 편이지. 성인 13000.

정도면 2월은 심심찮게 보낼 있을거야. 3월에 만나.  

 

 

향수 드보르작                                            C 3만원

국립극장,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밀러의 프랑켄슈타인  R 15000

다니구치 지로, ‘선생님의 가방’ 1,2                            1만원

배명훈, ‘맛집 폭격                                          12000

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                                     13000

 

                                                           9만원

 

 

 

그러니까 긴말 할 것 없이,

 

 

 

 

그리고

 

 

 

이렇게 두가지를 볼 수 있다는 거죠.

 

뭐 굳이 말을 더 길게 할 필요가 없을 듯. 팬들은 얼른 예매하세요.

 

이달의 음악도 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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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하녀들'이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금요일 밤 9시45분(정확하게는 금-토 9시45분)이라는, 드라마가 낯선 시간대에 처음 등장해서 '삼시세끼'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두 예능 프로그램에 '나는 가수다 3'까지 끼어든 뒤, 자력 생존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하녀들'이 갖고 있는 '(양반들의) 슈퍼 갑질에 대한 을(노비들)의 분노'라는 주제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땅콩 리턴' 사건과 맞닿아 일으킨 화학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은 지금껏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애사극'입니다. 템포와 주인공의 배치가 남다르죠. 지금까지의 사극들 가운데에도 '멜로 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대부 계층의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져 있고, 거기에 맞춰 다양한 캐릭터들이 배치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대장금' 처럼 서민 계급의 주인공을 배치한 위대한 작품도 있었지만 '대장금'은 사실 대표적인 궁정 사극이고, 연매물도 아니었죠.

 

이에 비해 '하녀들'은 조선 초기를 무대로 일단 양반댁 규수 가운데서도 "조선의 개국공신인 명문거족 국씨 집안의 무남독녀라 여느 반가의 규수들과는 급이 다른", 그 시대의 it girl 이던 인엽(정유미)가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한방에 최고의 지위에서 노비로 전락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드라마 '하녀들'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엽을 중심으로 정혼자이며 양반 댁 도련님인 은기(김동욱), 그리고 뭔가 비밀스럽지만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병판 댁 노비의 우두머리 무명(오지호)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축소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뭔가 아쉬움을 느낄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함흥차사'입니다. 극중 인엽이 병조판서 허응참(박철민)의 연회장에 박차고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함흥에 차사로 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간 것이죠. 또 이어 허응참의 아내이며 윤옥(이시아)의 어머니인 윤씨부인(전미선)이 인엽에게 쏘아부치는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잔혹한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이 함흥차사란 무엇일까요. 대개는 아시겠지만,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해설 들어갑니다.

 

 

 

 

 

 

함흥차사

[명사] 咸興差使. 심부름 등을 위해 한번 떠난 사람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음. 함흥은 함경남도의 지명, 차사는 예전 긴한 일을 위해 보내던 사신에게 주는 임시 관직명.

12일부터 방송된 JTBC 새 주말연속극 하녀들은 여주인공 인엽(정유미)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조선 태종(안내상)의 밀명을 받아 함흥차사로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함흥차사네 글자는 요즘도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말에는 불발된 쿠데타의 흔적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본래 8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권력 다툼으로 세 아들을 잃었다. 결국 천수를 누린 사람은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그리고 5남 방원(태종) 뿐이었다.

 

'태조는 왕좌를 위해 형제들을 죽인 태종을 용서하지 않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흥(영흥부)으로 돌아갔다. 조선이 건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은 1401. 아버지가 아들의 왕 자격을 부정한다는 것은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었으므로 태종은 수시로 태조와 가까웠던 인사들을 보내 태조의 귀경을 설득했다. 하지만 태조는 차사들이 오는 족족 목을 베어 돌아갈 뜻이 없음을 알렸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함흥차사의 유래다.

 

 

     [극중 인엽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이성계(이도경)에게 차사로 가서 도성 귀환을 설득하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장면.]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현재 함흥차사에 대해 가장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 문헌은 역사서가 아니라 야담집인 축수편(逐睡篇)이다. 여기에는 성석린이 이성계를 회유하다가 귀공은 나를 달래러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가 그런 이유로 왔다면 제 아들들이 눈이 멀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그의 두 아들은 장님이 되었고, 성석린은 "아무리 목숨이 걸렸어도 그런 장담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하고 탄식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이성계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또다른 차사 박순의 죽음 덕분이다. 태조는 박순에게 설득당했으나, 그가 돌아가자 태조의 측근들은 그를 따라가 죽일 것을 권했다. 이에 태조는 그가 이미 멀리 갔을 것이라 보고 장수에게 칼을 주며 용흥강을 못 건넜거든 베어 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병으로 걸음을 지체했던 박순은 강가에서 죽음을 맞았고, 이를 후회한 태조가 귀경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사(正史)의 기록은 어떨까. 일단 태조가 처음 북쪽으로 떠난 것은 태종 1(1401) 3월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해 410일 태종이 도승지를 보내 안변(현재의 원산 부근)에 머무는 태조의 문안을 묻고, 태조가 오래 머물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태종이 성석린을 보내 설득하자 태조는 426일 도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126, 태조는 한밤중 갑자기 소요산으로 떠났다. 실록은 임금(태종)이 전송하려 따라갔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꼴도 보기 싫은 태종의 전송 같은 것은 전혀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태종은 다시 성석린을 보내 설득했으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결국 해가 바뀌고 14024, 태종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소요산 자락까지 찾아갔다. 426, 마침내 태조의 입에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왔다.

 

6개월 뒤인 115, 안변부사 조사의반란을 일으켰다. 명분은 태종에게 살해당한 이복동생 방번-방석 형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8일자 실록에 눈여겨 볼 기사가 실려 있다. 조정에서 파견된 박순이 함주에서 조사의의 난에 가담하지 말라고 지방 수령들을 설득하다가 피살됐다는 내용이다. 이 박순은 위의 축수편에 대표적인 함흥차사로 기록된 그 '함흥차사' 박순이다.

 

 

 

게다가 이성계는 안변 바로 북쪽인 함주에 머물고 있었다. 119일자 실록은 태종과 조정 대신들이 반란군 지역에 있는 태상왕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과 무학대사를 급파해 태조의 귀경을 설득하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축수편에서 박순을 죽이라고 주장했다는 태조의 측근이 누구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세등등했던 조사의의 반군은 한달도 못 되어 1127일 안주 부근에서 궤멸됐고, 128일자 실록에는 태상왕(이성계)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짧은 한 줄이 기록됐다. 다시 야사로 넘어가면, 마지막 함흥차사는 무학대사라고 전해진다. 박순의 죽음으로 자책하던 태조는 옛 스승 무학대사의 말에 마음이 풀어져 도성으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수편에는 도성으로 돌아온 태조와 태종 사이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환영 잔치를 벌이려 장막을 칠 때, 태조의 성품을 잘 아는 하륜이 태종에게 기둥은 반드시 사람 몸통보다 굵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간했다. 태조는 멀리서 태종을 보자 바로 활을 쏘았고, 태종은 급히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명궁으로 소문난 태조 이성계였으나 화살은 기둥을 뚫지 못했다.

 

태조는 탄식하며 태종에게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옥새가 여기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륜은 또 직접 술을 권하지 말고 내시를 시켜 전달하라 조언했고, 태종은 그대로 했다. 그러자 태조는 술잔을 들이키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옷소매 속에서 무쇠방망이를 꺼내 내려놓고 모두 하늘의 뜻이로구나하며 껄껄 웃었다.’

 

과연 태조의 북행과 차사들의 죽음은 조사의의 난과 무슨 관계일까. 태조는 아들 태종에 대항해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 쿠데타를 시도한 것일까. 축수편의 마지막 기록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녀들'에서 인엽의 아버지 국유는 아마도 성석린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 조사의의 난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함흥차사'의 고사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성계는 8명의 아들을 뒀는데 첫 아내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장남 방우,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4남 방간, 5남 방원(태종), 6남 방연의 여섯 아들을 두었고 한씨 사후 계비 신덕왕후 강씨로부터 7남 방번과 8남 방석을 두었습니다. 이중 6남 방연은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고 장남 방우는 - 여러 기록을 볼 때 아버지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듯 한 - 역시 조선 건국 2년만인 1394년 40세에 술병(?)으로 사망합니다.

 

누가 봐도 아들들 가운데 가장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1392년 당시 25세였던 방원이었지만 정도전과 이성계는 8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노골적으로 방원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합니다. 결국 방원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을 비롯해 방번 방석 형제를 죽였고, 2남 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킨 뒤 1400년 초 2차 왕자의 난으로 바로 위의 형인 방간을 축출합니다. 방간을 바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자신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한 뒤 마침내 그해 11월 왕위에 오릅니다.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뜻을 어기고 형제들을 참살한 방원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고, 태종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공을 무시하고 왕위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 아버지가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개국 10년도 안 된 나라의 안정을 생각하면 아버지까지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고려를 되돌려 놓으려는 유신들의 세력(곧 밝혀질 '하녀들'의 또 다른 축입니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조사의의 난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고, 정사든 야사든 꼭 집어 '그 배후에 이성계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사건이 이성계와 무관할 리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태종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설득해 반란에서 발을 빼게 하려 특사들을 보내 설득했고, 함흥차사들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약간 완곡하게 표현한(아버지와 아들이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살짝 감추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 살짝 과장과 은유가 깃들며 '축수편'에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진 것이죠.

 

(진짜 의문은 당대 최고의 무장인 이성계가 뒤에 있었다면, 왜 조사의의 군대가 한달도 못가 그렇게 쉽게 무너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종과 이성계의 극적인 타협? 조사의의 심각한 무능? 이성계의 일방적 변심? )

 

 

어쨌든 '하녀들'은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음모인 고려 회복 운동과 태종의 대처,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엽이 노비의 치욕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 남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절대 을'이었던 노비들이 '슈퍼 갑'인 양반들을 어떻게 조롱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가는지가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그 시대의 '슈퍼 갑'이었던 양반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피고용인을 노비 대하듯 하는,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심한 모습일 수도 있는 기괴한 모습들...)

 

 

 

 

 

 

'하녀들'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남다른 공간감입니다. 조명의 사용을 통한 실내 공간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조현탁 감독의 연출은 지금까지 사극에 나왔던 대청/안방/주방/창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하녀들'을 보는 새로운 재미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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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요즘 먹히고 있는 워맨스 코드가 들어간 작품이라서..." "워맨스? 워맨스가 뭐야?" "아, 그게 브로맨스의 상대 개념인데..." "브로맨스는 또 뭔가?"

 

네. 당연히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워맨스

 

[명사] womance. Woman+romance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 동성애는 아니지만 자매애도 아닌, 우정과 사랑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동지애적인 감정.

 

여성 시청자나 관객들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 삽입된 BL코드, 혹은 브로맨스(Bromance) 코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흔한 이성애자 남자가 영화 신세계의 자성(이정재)과 정청(황정민)의 관계, 혹은 2014 최고의 화제작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임시완)-한석률(변요한)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여성 관객(혹은 시청자)들은 이들 사이에 가상의 러브라인을 그어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심지어 장그래와 오차장의 관계에서 로맨스를 느끼는 시청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이런 취향을 의식해 응답하라 1994’ 처럼 아예 쓰레기(정우)를 향한 빙그레(바로)의 애타는 짝사랑을 집어 넣어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었다. 물론 빙그레 역시 드라마가 끝나기 전 의예과 여자 선배(윤진이)와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성애자라는 게 중요하다.

 

 

 

Brother romance를 합해 만든 브로맨스(bromance)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 질 무렵, 그 반대편의 워먼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물론 이 또한 이미 존재하던 경향에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문화 상품 가운데 워먼스 코드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을 가장 먼저 꼽게 된다. 수잔 서랜든(루이스)과 지나 데이비스(델마)가 연기한 두 여배우는 모두 이성애자들이며, 심지어 델마는 젊은 남자 제이디(브래드 피트)에 정신이 팔려 둘의 도피를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주인공의 관계는 흔히 말하는 우정의 선을 훨씬 넘어 운명적인 유대를 느끼게 한다. 때로 워먼스 코드는 단 두 사람이 아닌, 복수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빈민가에서 자란 네 흑인 여성이 은행강도를 계획하는 이야기인 셋 잇 오프(1996)’의 경우 스토니(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프랭키(비비카 폭스)의 관계를 중심으로 네 주인공이 서로 자매애와 흡사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브로맨스와 마찬가지로 워먼스도 동성애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아예 레즈비언들의 애정과 갈등을 그린 미국 드라마 ‘L-워드(L word)’류와는 접점이 없다. 반대로 이성애를 기본으로 한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워먼스 코드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레이 아나토미속의 메레디스(엘런 폼페오)와 크리스티나(산드라 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워먼스 코드가 전체적인 여성 등장인물들간의 연대로 표현된 경우는 메가 히트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볼 수 있다. 네 도시 여성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그리던 이 드라마는 결국 남자들은 왔다가도 가지만 친구들은 영원하다(Boys may come and go, but friends are forever)”라는 교훈으로 긴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현재 방송중인 MBC TV 드라마 전설의 마녀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교도소 한 방에서 수감생활을 한 네 명의 여주인공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워먼스 코드는 가끔 적대적인 관게에서 표출되기도 한다. 말 많은 영화 쇼걸(1995)’에서 무명 댄서 노미(엘리자베스 버클리)와 스타 댄서 크리스탈(지나 거손)은 영화 내내 적대적인 관계에 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사실상 같다는 점을 서로 이해하면서 남다른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방송된 MBC TV 드라마 마마에서도 승희(송윤아)와 지은(문정희)은 각각 태주(정준호)의 아들과 딸을 낳은 사이. 전통적인 드라마에라면 본처와 시앗의 관계지만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를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돕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양상의 워먼스 관계를 보여줬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여성 캐릭터간 관계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시도로 여겨질 법 하다.

 

여러 면에서 워먼스는 브로맨스와 떼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브로맨스를 동성애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판타지로 여기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비해 여성 동성애자들은 워먼스에 대해 호의적이다.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밝힌 미국의 칼럼니스트 엘리자베스 앤 톰슨은 최근 브로맨스 대 워먼스라는 글에서 워먼스라는 개념을 통해 걸프렌드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었다며 동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여성과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워먼스라는 단어를 통해 재정의하기도 했다.

 

P.S. 물론 브로맨스와 워먼스는 모두 여성 관객들에게서만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이성애자 남성 관객들은 둘 중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워맨스가 왜 뜨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브로맨스나 워맨스 코드를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로 생각하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남녀간의 연애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관계와 반대쪽에 있는 것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쓰였던 대가족 중심의 가족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핵가족화로 인해 전형적인 가족간의 형제애/자매애에 대한 기억이나 공감의 여지가 많이 약해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선후배에게서 그것을 대체할 만한 감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관념적으로 '가족보다 친구가 더 가까운'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 그러냐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겠지만.

 

 

맨 위 영화 사진은 우마 서먼, 재닌 갈로팔로 주연 영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여성 관계가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로맨틱 코미디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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