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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할 때 숙소 선택은 항공권 다음으로 골치아픈 요소입니다. 사실 모든 숙박업소가 파노라마 카메라로 자신들의 방을 보여주지도 않거니와, 그 보여주는 영상을 그대로 믿는다는 건 뽀샵처리한 미녀를 다 믿는 것과 같죠.

런던에서는 호텔을 이용할까 생각을 했지만 일단 가격이 너무 비싸고, 평이 괜찮은 곳들은 귀신같이 매진이 되어 있더군요. 소형 호텔의 경우 2인 1실 1박에 50파운드 선이 하한선입니다. 더 싼 곳은 그야말로 여인숙 수준인 것 같고, 런던의 호텔 중에는 방마다 욕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이게 무슨 호텔이야!). 여기에 8월이란 점을 생각하면 웬만큼 괜찮은 호텔은 훌쩍 70-80파운드를 넘어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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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고려해 본 숙소는 요즘 한국인들도 많이 이용한다고 하는 대표적으로 싼 호텔인 이곳(http://www.wardoniahotel.co.uk/)과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자쿠지도 있더군요^)을 갖춘 호텔인 이곳(http://www.rhodeshotel.com/default.html) 이었습니다. 그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호텔(http://www.ibishotel.com/gb/hotel-5623-ibis-london-earls-court/index.shtml) 도 국내 여행사를 이용하면 표시가보다는 훨씬 싸게 예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옵션을 고려하다가 막판에 민박 이용 쪽으로 확 꺾어 버렸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웬만한 가격에 조식 제공에다 민박의 가장 큰 약점인 욕실+사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숙소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제가 이용한 숙소는 런던 히스민박(http://cafe.daum.net/heahthouse) 이라는 곳입니다. 몇가지 장점이 있지만 일단 가장 큰 장점은 교통입니다. 런던은 서울과 비교할 때 그리 큰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도심 한 복판(런던 교통용어로 zone one)에 있느냐 아니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패스도 zone one과 zone two까지는 차이가 없죠. 더욱 중요한 것은 최종 거리, 즉 최종 전철역에 내렸을 때 집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민박집은 히스로 공항에서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와서, 런던 여행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킹스 크로스를 지나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됩니다(공항에서 약 70분 거리). 그리고 전철역에서 뛰면 1분, 걸어도 2분이면 민박집 대문 앞에 도착해 있습니다. 뭣보다 공항에서 환승 없이 민박집 앞까지 도달하고, 거기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런던의 주요 관광 포인트에도 30분 이내에 대부분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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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서 몇발 안 걸으면 전철역이 보입니다. 화면 정중앙의 콩알만한 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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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바로 이 역이죠. 한국처럼 1번출구 2번출구가 없어서 편합니다.)

홀몸이라면 도미토리(한 방의 2층침대에 4-6명이 자는 방)를 써도 무관하겠지만 그런 처지가 아닌지라 65파운드짜리 2인실을 사용했습니다. 사실 55파운드짜리 2인실도 있었지만 계단 오르내리는데 낭비할 체력이 없을 것 같아서..^

이 집의 2층 65파운드짜리 2인실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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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페의 안내 사진을 보면 한켠에 작은 책상이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커다란 더블 침대가 두개 들어 있습니다. 넓게 쓰면 2인이 적당하겠지만 어린이 포함 가족이라면 3-4인 정도는 묵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의 상태는 대단히 청결합니다. 오른쪽에 꽤 큰 옷장이 있습니다.

무선인터넷 사용 가능합니다. 단 한국 기준의 속도는 기대하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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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딸린 욕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는 악평(?)도 있었지만, 어느 기계나 말 잘 듣는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사용 요령만 파악하면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샤워박스는 아내의 말에 따르면 "폐쇄공포를 느낄 정도로" 좁습니다. 한 변이 0.7미터 정도 되는 정사각기둥 형태입니다. 물론 영국에 가서 더 큰 샤워박스를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워낙 좁게 사는 사람들이라서. 적응하면 쓸만합니다. 온수사용에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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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대단한 강점이 있습니다. 사장님(여자분)이 아침 일찍 다른 일을 나가시기 때문에(식당 경영 쪽인 듯 합니다) 새벽 일찍 아침 or 점심을 도시락으로 준비해 주시는데, 음식의 수준이 프로급입니다. 이 도시락을 세번 먹었는데 매번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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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보이면 이런 별식도 나옵니다.^

저녁식사는 컵라면. 커피포트를 이용해야 하고 김치는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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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으로 이용되는 1층 공간. 깔끔하고 쾌적합니다.)

주인의 캐릭터도 매우 중요한 요소죠. 이댁 사장님은 학생 위주보다는 가족 위주의 손님을 원하는 분입니다. 따라서 늦은 귀가나 고성방가, 작취미성 등의 행동을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아예 도미토리는 없애 버릴까도 고민중이라시더군요. 집안 관리는 좀 지저분하게 하더라도 냉장고에 항상 소주와 삼겹살이 들어 있는 형님 스타일의 민박 사장님과는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이 집은 남들과 욕실을 공유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여성층, 호텔의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염증을 느낀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는 퍽 괜찮은 선택이 될 듯 합니다. 뭐 학생이더라도, 약간의 애교와 예의범절만 갖춘다면 간까지 다 빼주실 것 같은 분이기도 합니다(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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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런던이든 다른 유럽 국가든, 호텔에는 슬리퍼가 준비된 곳이 꽤 많지만 민박집에서는 사정이 어떨 지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실내용 슬리퍼를 준비하시든가, 도착해서 싸구려를 하나 사시는 걸 권장합니다. 실내에서도 밖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 다니면 왠지 피로가 배가되는 느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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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라디오 신청곡에 대한 글에 쏟아진 성원에 용기를 얻어서 두번째도 관련있는 글로 써 봅니다.

결혼식 축가로 쓸 수 있는 곡은 천지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 나라 가요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가사가 사랑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사랑에도 기쁜 사랑과 슬픈 사랑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골라야 합니다. 가수 신승훈은 그 많은 히트곡 중에 결혼식 축가로 쓸 노래는 막상 거의 없어서(죄다 이별 노래) 몇년 째 '어느 멋진 날' 하나로 버티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축가로 많이 불리는 노래, 축가로 적당한 노래, 축가로 살짝 적당하지 않은 노래들에 대핵서 얘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일단 축가로 많이 불리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축가계의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죠. 유리상자의 '신부에게'나 '사랑해도 될까요',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로 시작하는 '사랑은', 그리고 역시 CCM 곡인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등등이 있죠. 최근들어 이재훈의 '사랑합니다'도 많이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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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래들이 축가로 장수할 수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도 멜로디가 아름답고, 가사도 좋고, 사람들이 많이 알기 때문에 호응도 좋고, 수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생에 한번 하는 결혼'이기 때문에 축가도 특이한 걸 바라는 분들이 많죠. 하지만 약간 갸우뚱한 선곡도 가끔 나옵니다.

일단 현재 많이 불리는 노래 중에는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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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클어진 머릿결 이젠 빗어봐도 말을 듣지 않고
초점없는 눈동자 이젠 보려해도 볼 수가 없지만
감은 두눈 나만을 바라보며 마음과 마음을 열고
따스한 손길 쓸쓸한 내 어깨위에 포근한 안식을 주네

저 붉은 바다 해끝까지 그대와 함께 가리
이 세상이 변한다해도 나의 사랑 그대와 영원히

무뎌진 내 머리에 이제 어느하나 느껴지질 않고
메마른 내 입술엔 이젠 아무말도 할 수가 없지만
맑은 음성 가만히 귀기울여 행복의 소리를 듣고
고운 미소 쇠잔한 내 가슴속에 영원토록 남으리

저 붉은 바다 해끝까지 그대와 함께 가리
이 세상이 변한다해도 나의 사랑 그대와 영원히

제목이야 너무나 좋고 가사도 어쨌든 대의는 좋은 뜻이지만, 이 노래는 묘하게 뭔가 남습니다. '감은 두눈' '보려 해도 볼수가 없지만' 등등은 뭔가 핵폭발로 인류가 멸망하는 시점에 적막한 바닷가에 덩그러니 앉아 죽어가는 두 남녀(^^)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묘하게 어두운 내용이라, 축가로는 왠지 걸맞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이문세의 노래 중에서 꼽으라면 '깊은 밤을 날아서'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은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 어느 결혼식에서 제가 살짝 갸웃했던 노래입니다.

지금 곁에서 딴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 그대
설레는 마음에 몰래 그대 모습
바라보면서 내안에 담아요

사랑이겠죠 또 다른 말로는
설명할수 없죠
함께 걷는 이길 다시
추억으로 끝나지않게
꼭 오늘처럼 지켜갈께요

사랑한다는 그말 아껴둘걸 그랬죠
이젠 어떻게 내맘 표현해야 하나
모든 것이 변해가도
이 맘으로 그대 사랑할께요

망설였나요 날 받아주기가
아직 힘든가요
그댈 떠난 사람 그만 잊으려고
애쓰지마요

나 그때까지 기다릴테니
사랑한다는 그말 아껴둘걸 그랬죠
이젠 어떻게 내맘 표현해야 하나
모든 것이 변해가도
이 맘으로 그대 사랑할께요

눈물이 또 남아있다면
모두 흘려버려요
이 좋은 하늘아래 우리만 남도록

사랑할수 있나요 내가 다가간만큼
이젠 내게 와줘요 내게 기댄 마음
사랑이 아니라해도
괜찮아요 그댈 볼수 있으니
괜찮아요 내가 사랑할테니


가사 내용이 위험수위를 살짝 넘었다 다시 들어왔다 합니다. 그러다 2절 첫부분에서 아찔해집니다. 아무래도 이 노래는 이혼경험이 있는 재혼부부의 경우에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그러고 보니 축가일 때는 1절만 두번 부른다는 얘기도 들은 듯 합니다)

아슬아슬한 노래는 또 있습니다. 최근 이승기에 의해 부활한 조규만의 '다줄거야'입니다.


그대 내게 다가오는 그 모습
자꾸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감은 두 눈 뜨지 못한거야 너를 내게 보내준 걸
감사할 뿐야 고마울 뿐야

정말 많이 외로웠던거니 그동안
야위어가는 너를 보며 느낄 수 있어
너무 힘이 들 땐 실컷 울어
눈물 속에 아픈 기억 떠나보내게

내 품에서

서글픈 우리의 지난 날들을
서로가 조금씩 감싸줘야해
난 네게 너무나도 부족하겠지만
다 줄거야 내 남은 모든 사랑을


아니 도대체 신랑이든 신부든 한쪽이 얼마나 속을 썩였길래 야위어가기까지 한 겁니까. 얼마나 결혼에 난관이 많았던 걸까요. 속사정을 몰랐던 친지나 양가 부모님이 흥분하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축가로는 살짝 피하는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보단 덜하지만 살짝 걸리는 노래가 자전거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입니다.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되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초록의 슬픈 노래로 내 작은 가슴 속에 이렇게 남아
반짝이던 너의 예쁜 눈망울의 수많은 별이 되어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

정말 아름답고 멋진 노랩니다만, 가사 속의 '추억'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가슴에 콕 박힐 여지가 있습니다. 대개 현재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추억이라고 말하진 않죠. 물론 같이 살아가면서 추억을 만들어 가기도 하고, 저 노래가 미래의 한 시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공간이동을 할 수도 있는 만큼 별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아주 살짝 껄끄러운 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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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우려했는지 나무자전거(자전거 탄 풍경의 바뀐 이름이죠)의 강인봉 선생은 아예 축가용 노래를 새로 내놨더군요. 서영은이 참여한 '내가 사랑해'입니다.

항상 내 곁에 있어줘
햇살처럼 닿는 너의 온기
나를 깨워줘

간지러운 봄비 마음을 적시고
힘들고 지쳤을 때
나를 안아줘

오래 널 지켜줄게
어지러운 세상 한가운데
보살펴 줄게
그림자가 되어 따라갈게
작은 별을 따줄게
밤마다 네 마음 비춰줄게
꽃피워줄게
싱그러운 아침 이슬을 머금고
오래 기다려 왔어

너를 사랑해
내가 사랑해


사연이 있는 커플이라면 그 사연을 살리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예를 들어 신랑 신부가 초등학교 동창이라거나, 오랜 동안 같은 동아리에서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으로 급 발전해 결혼에 이르렀다면 김동률-이소은의 '기적'같은 노래가 맞춤형 축가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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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눈을 바라보면 모든게 꿈인 것 같아요... -D
이 세상 많은 사람중에 어쩌면 우리 둘이 였는지 -D
기적이었는지도 몰라요 -D

그대의 품에 안길때면... -S
새로운 나를 깨달아요.. -S
그대를 알기 전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요 -S
죽어있었는지도 몰라요 -S

어쩌다 이렇게도 엇갈려왔는지..-D
우린 너무 가까이 있었는데.. -S
서로 사랑해야 할 시간도 너무 모자라요 -D&S
나를 믿어요 -D (믿을께요) -S
세상 끝까지 함께 할께요 -D&S

얼마나 나를 찾았나요 -S (헤매었나요) -D
나의 기도를 들었나요 -S ( 내 기도에 귀 기울였나요)-D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단 한번 스쳐지나갈때 워~~ -D
한 눈에 서로 알아볼 수 있게 되길 ... -D 이렇게.... -D&S

김동률의 '감사'도 요즘 뜨고 있는 축가입니다. 권상우가 결혼식에서 직접 불렀던 노랩니다.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감싸며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그 누구에게도 내 사람이란게
부끄럽지 않게 날 사랑할게요
단 한 순간에도 나의 사람이란 걸
후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지금부터는 제 마음에 드는 축가입니다. 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좋은 노래들이 있겠지만 그중 두 곡을 골라 보겠습니다. 첫번째 노래는 제가 결혼할 때 들어보고 싶었던 노랩니다. 본래는 당연히 성가곡이지만 종교적인 냄새는 거의 없습니다.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내 맘에 사랑 없으면
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
아무 소용 없으니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나 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
나 자신 다 주어도 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
사랑은 영원하네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자랑치 않으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불의 기뻐하지 아니하네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
내 맘에 사랑 없으면
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
아무 소용 없으니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나 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
나 자신 다 주어도 아무 소용 없네 소용 없네
사랑은 영원하네 영원하네 영원히

...혼성 4부합창 정도로 들어야 제 맛인데, 퍼온 동영상이 제값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다음은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하시길. 요즘 축가로 가끔 사용되고 있다고도 들었습니다만, 축가 부탁을 받은 사람이 노래에 좀 자신이 있다면(당연히 그런 사람이겠죠^) 이 노래를 부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적 - 다행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란걸


이렇습니다. 가사가 정말 와 닿죠. 뭐 이밖에도 좋은 노래는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축가를 좋아하시는지?




일전의 '라디오 신청곡도 조심해서 하자'는 글은 다음 링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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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시간 넉넉하게 찍는 드라마는 없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16부작짜리 미니시리즈가 50부작짜리 주말드라마보다 다급하게 찍는 건 당연하다 치겠지만, 주말드라마 제작진에게 가면 '우리는 미니같은 주말'이라고 합니다. 일일드라마라고 '미니같은 일일'이 아닐 리가 없죠.

미니시리즈 제작진에게 가면 이건 초치기 제작입니다. 이건 생방송이죠. 방송 당일 오후 늦게나 촬영한 테이프를 갖고 연출자가 편집실로 들이닥칩니다. 아홉시 뉴스 시그널을 듣고 나서야 편집이 끝나죠. 월,화,수,목요일 밤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간은 대개 9시55분 전후입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방송 끝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런 드라마에서 영상미가 어쩌고, 작품성이 어쩌고 하는 건 사실 말장난입니다. 방송 나가면 다행인 거죠. 대체 왜 이런 일이 매번 되풀이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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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생방송 드라마를 봐야 하나

한국 최초의 TV 드라마는 1962년, KBS의 개국 특집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알려져 있다.
원로 배우 이순재가 기억하는 당시의 드라마에는 녹화라는 개념이 없었다. 모든 연기자가 실시간으로 방송 시간에 맞춰 연기를 했다. NG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광고도 홈쇼핑처럼 드라마 세트 한 켠에 상품을 갖다 놓고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그로부터 46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첨단 HD장비까지 등장했고, 제작 환경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런데 정작 지금도 수많은 드라마가 사실상 생방송이란 사실이 맥빠질 뿐이다.

SBS TV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주인공 문근영의 코뼈 부상으로 15일과 16일 방송을 스페셜 영상으로 꾸민다고 밝혔다. 워낙 문근영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얘기. 하지만 당장 바로 그 주부터 방송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은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바람의 화원'은 방송 2주째부터 드라마 시작 30분 전에 편집이 끝나는 살얼음판을 걸었다. 사실 어지간한 드라마는 죄다 이 꼴이다. 심지어 지난해 방송된 MBC TV '태왕사신기'는 편집이 늦어지자 9시 뉴스를 20여분 연장해 가까스로 방송을 내보내는 기상천외의 사태를 빚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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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시작이 아예 늦었다면 모를까, 2개월 이상의 여유를 갖고 촬영을 시작한 드라마가 왜 초반부터 방송 나가기도 힘겨워야 할까. 결국은 연출자들의 욕심에서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관계자들은 "시청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1,2부에 워낙 '힘'을 주려다 보니 시간과 물량 면에서 무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러다 보니 1,2부에선 그럴 듯 했던 드라마가 끝날 때에는 용두사미처럼 흐지부지하는 경우도 많다.

신인 연출자들이야 시간 조절에 실패해 이런 문제를 자초하기도 하지만 고참 연출자들도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 한 연출자는 "상황이 여의치 못해 방송 3주 전에 미니시리즈 촬영을 시작했다. 몇 회 못가 보조 촬영팀이 등장했고, 준비가 덜 된 작가까지 한 토막씩 '쪽대본'을 내놓고 있었다. 후반부는 내 작품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했다"며 푸념하기도 했다.

이런 제작 환경에서 드라마의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따지는 것은 언감생심. 그나마 결방 사태라도 막으려면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계약을 할 때 30%든 40%든 일정 비율 이상은 완성해 놓고 방송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항이라도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전작제 얘기는 꺼내기도 무섭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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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씨의 '생방송 드라마' 얘기는 이쪽에서도 한 적이 있죠.



요즘엔 16부작이 보통인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경우, 10부쯤 되면 'B팀'이 등장하는게 아예 상식처럼 되어 있습니다. B팀이란 촬영 시간 단축을 위해 동원되는 두번째 촬영팀을 말하죠. 본래의 촬영팀인 'A팀'이 한 장소에서 촬영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는 사이 출연진은 B팀이 대기하고 있는 다른 촬영장소로 이동해 쉬는 시간 없이 촬영을 이어간다는 뜻입니다. 방송 시간에 쫓기는 드라마들은 드물게 C팀까지 등장, 세 팀이 분주하게 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멀쩡한 드라마들이 방송 시작 이후에 늘 쫓겨서 생방송 드라마가 되고 마는 건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사이에서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협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드라마 제작이 지연되는게 외주제작사 탓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외주사야말로 하루라도 빨리 촬영을 끝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제작 일정을 끌거나 제작비를 오버하거나 하는 건 전적으로 연출자의 책임이자 권한이죠. 또 이런 경우 외주제작사는 현실적으로 '그 연출자를 다음에는 안 쓰는 것' 외에 아무런 제재 방법이 없습니다. 많은 경우 연출자들은 방송사 본사 소속의 PD들이고, 이럴 때 손해는 고스란히 제작사의 몫이 됩니다.

하긴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말이 안 되는 부분은 이 정도가 아니죠. 심지어 가장 큰 부분, 드라마를 외주 제작해서 흑자를 내는 회사는 아무도 없는데 날이 갈수록 제작사가 늘어나는 기현상은 대체 뭘로 설명을 해야 할까요. 참 이상한 시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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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주말의 일입니다. 운전을 하고 가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을 듣고 있는데, 대략 이런 사연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대단히 엄격하고 권위주의적인 분이었는데, 나이가 드시더니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고 계시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공연까지 같이 보러 가셨다. 두 분이 사이 좋게 해로하셨으면 한다."

그리고 사연을 보낸 사람(그 부부의 딸)은 부모님이 함께 들으시라면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신청했습니다. 어어, 왜 하필 신청곡을 그 노래로? 하는 사이에 벌써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DJ나 PD가 제지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만 노래가 나오더군요.

이 노래를 아시는 분들은 다 악 소리를 냈을 겁니다. 가사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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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고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가네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여기까지는 뭐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젭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그렇습니다. 이 노래는 사랑하던 아내의 죽음을 맞은 어느 노인의 애절한 노래였던 것입니다. 부모님이 오래 오래 함께 행복하게 사시란 노래가 아니었죠. 제목만 보고 가사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탓에 착한 따님이 불효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짓궂은 친구들이 일부러 결혼식 피로연 같은 데서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이나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같은 노래들을 부르기도 했습니다만, 이런 노래를 결혼식 축가로 신청하는 사람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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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오래된 고전인 트윈 폴리오의 '웨딩 케익'이란 노래는 결혼식 신청곡으로 종종 등장했습니다. 장난기 있는 DJ들은 친구들이 보낸 신청곡 사연은 다 읽어 준 뒤, "제가 이 노래를 틀어 드리면 10년 우정이 끝장 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른 노래로 바꿔 틀어 주곤 했죠.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이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이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사랑치 않는 사람에게로
마지막 단 한번만 그대 모습 보게하여 주오 사랑 아...


아픈 내마음도 모르는 채 멀리서 들려오는 무정한 새벽 종소리
행여나 아쉬움에 그리움에 그대 모습 보일까 창밖을 내다봐도
이미 사라져 버린 그모습 어디서나 찾을 수 없어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음...

...네. 특히나 신랑 되시는 분이 이 노래를 들었으면 참 심경이 묘했을 겁니다. 신부의 친구들이 결혼 축하곡이라고 신청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가 이 노래라니. 이건 무슨 경고도 아니고 암시도 아니고 그냥 지금이라도 결혼 취소하라는 노래군요.

이 노래는 Cornnie Francis의 'Wedding Cake'를 그대로 가져다 가사만 붙인 노랩니다. 이 시절에는 도대체 저작권이란 개념이 없어서 그냥 작곡자 란에 '외국곡'이라고 써 버리면 그만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원곡의 가사는 저 가사와 정 반대 방향으로 '새로 출발하는 커플의 행복'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죠.

원곡은 이렇습니다. (트윈폴리오의 곡은 없더군요.)




어버이날에도 비슷한 노래가 있습니다. 사실 god의 '어머님께'에서도 어머니는 마지막에 일어나지 못하시죠. 이 노래에 흐르는 모자간의 끈끈한 사연은 참 눈물겹지만 어버이날 축하곡으로 듣기엔 너무 청승맞은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이 노래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습니다.요즘 분위기에 맞는 어버이날 축하곡은 테이의 '어머니'나 박효신의 '1991년 어느 추운 날에'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을 챙기고 싶은 분들은 싸이의 '아버지'나 넥스트의 '아버지와 나'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절대 신청해선 안 될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최성빈, 혹은 F&F의 '사랑하는 어머님께'입니다. 이 노래가 아직도 가끔 어버이날 라디오에서 선곡된다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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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이렇게 흘러가기 때문이죠.

어머님 죄송합니다.
이 글을 읽으실 때쯤 전 그녀와 함께 멀리 떠나있을 꺼예요.

어머니와 그녀를 사이에 두고 많이 고민했지만 저의 현실은 그녀를 버릴 수 없어요
어머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을 그녀에게서 배웠으니까요
저 몰래 어머님이 그녀를 만나 심한 말 하신 걸 알고 그녀에게 갔었죠
조그만 자취방에 그녀는 고열로 의식을 잃은 채 하염없이 울고 있었죠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뛰면서 전 정말 죽고 싶었죠

이제껏 무책임한 저의 행동은
순결했던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기에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를 이렇게 만든 건 모두 나의 잘못이야
용서해 너의 몸이 낫는 대로 우리 멀리 떠나자 아무도 없는 곳에
어머님 용서하세요 그녀에게 저밖에 없는데 그녈 버릴 수는 없어요
언젠가 우리 모두가 다시 뵐수 있는 날까지 건강하시기를

저희는 지금 기차 안에 있어요
떠나기 전에 우리는 그녀가 다니는 성당에서 조촐한 결혼식도 올렸어요
그리고 신부님 앞에서 그녀와 전 눈물로 약속했죠 후회하지 않겠다고
어머님 저는 그녀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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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위에 나오는 황당무계한 신청곡들을 들은 DJ들이 정말로 틀어주고 싶었을 노래는 아마도 이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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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웬 사진인가 하실 분들도 있겠죠.

네 사람 중에서 세 사람은 대단히 유명한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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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얼마 전 제가 강화도에서 찍은 사진. 카메라를 살짝 왼쪽으로 돌리면 위 사진과 같은 배경이 됩니다. 갯벌이 보이는 모텔이죠.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810/06/200810061300312176020100000201040002010401.html

이 제정신이 아닌 방송 관계자들이 저 맨 위 사진을 갖고 보도자료를 돌렸지 뭡니까. 저런 사진을 다른 매체에서 써 줄 리가 없죠. 어쩔 수 없이 저희 쪽에서는 보도를 했습니다만... 참 코믹한 일이죠. 아무튼 15일 밤 11시쯤 첫 방송이 나간답니다.

저번 '근황(http://isblog.joins.com/fivecard/162)'에서도 얘기했지만 이날 정말 분주했습니다. 저렇게 강화도에서 뭔가를 하다가 바로 상암동 DMC로 뛰어가 이런 것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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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modern_2008?Redirect=Log&logNo=50035708296



그나자나 강화도 참 좋더군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짬 내서 새우라도 먹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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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하다, 라는 말이 우리 생활 속에서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섬유나 암석 등의 질감을 표현해주던 것이 어느새 사람에게로 옮겨 와 그 전까지 '퉁명스럽다', '싸늘하다', '냉랭하다', '딱딱하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냉소적이다' 등으로 표현되던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까칠함이 하나의 매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을 통해서 그렇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아직은 좀 힘들 지 모르지만, 최소한 드라마든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든, '까칠한 사람'에 매력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물론 눈치채셨겠지만 이 까칠남들은 대부분 남자들입니다.

요즘 인기 좋은 까칠남의 선두 주자로는 바로 이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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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박', '하박'이라고 불리는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님입니다.

하우스 박사의 까칠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진단 전문의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한쪽 다리에서 여전히 주기적인 통증이 밀려와 진통제를 사탕처럼 와작와작 씹어 먹고 다니는 사람이 신경질적이 아닐 리가 없겠죠. 그런데 신경질을 뿜어도 참 머리를 써서 뿌려댑니다. 그가 하는 말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한 2초 정도 생각해야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High Sense of Humor를 담고 있죠. 물론 유머는 유머이되 매우 뒤틀려 있습니다. 내장이 꼬여도 힘 좋은 아낙네 둘이 열심히 빙빙 돌린 홑이불 빨래만큼 꼬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여인네들이 세상에 널렸습니다. 오래 전의 드라마들에 나오던 주인공들처럼 내면은 사실 따뜻하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워낙 많이 받은 터라, 혹은 알게 모르게 불치병의 소유자라서 세상 사람들이 행여 자신에게 정을 줬다가 상처를 받을까봐 위악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진짜로 못됐고 진짜로 꼬인 심성의 소유자인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환호하는 이유가 뭘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단 다른건 다 몰라도 그의 실력 하나만큼은 최고라는 데서 찾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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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이라면 애저녁에 보따리를 싸서 달아났을 그의 수하 의사 세 사람이 악착같이 하우스의 곁에 붙어 있었던 것도(물론 지금은 다 떠나 있지만) 그의 탁월한 실력과 경험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또 흔한 얘기로 '위급상황에서 병원에 실려갔을 때, 인간성 좋은 의사보다는 못됐더라도 실력 좋은 의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 모든 사람의 꿈이기도 하죠. 아무튼 하우스 박사를 인기남으로 남아 있게 하는 건 우선 그의 뛰어난 실력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바이크도 잘 타는 그의 다양한 개인기, 마지막으로 한번 싫으면 무작정 싫다는 단순한 태도가 다소 어린애같은 면을 보여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한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 더 보탠다면 TV에선 냄새가 안 난다는 점을 꼽아야겠죠. 하우스의 스타일을 보면 대체 옷을 언제 갈아입는지, 머리는 감는지 궁금합니다. 자연 냄새가 풀풀 나겠죠. 하우스의 '수려한 용모'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순전히 여성 시청자들에게만 수시로 일어나는 전형적인 캐릭터의 음덕 현상(캐릭터의 매력이 배우의 외모로 전이, 본래 그 배우가 잘 생겼던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현상)입니다. 가까이는 생쥐 아빠일 때, 멀게는 로완 애킨슨과 공연했던 영국의 걸작 고전 코미디 '블랙애더'(요즘 BBC 위성채널에서 일요일 오전마다 틀어주고 있습니다) 시리즈를 본 사람이 휴 로리의 외모에 대해 높이 평가할지는 대단히 비관적입니다.


하우스 박사님의 인기가 유일한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습니다.

이를테면 오만 개성질 다 부리기의 고수 고든 램지 선생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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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수면 난 파바로티다 스타일의 인간 말종 스타일 사이먼 코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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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픽션 속 인물로 돌아가 정말 싸가지없는 강마에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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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강마에씨가 자꾸 착해지는 바람에 드라마의 재미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몇몇 시청자들은 강마에에게 '초심으로 돌아가' 계속 못되게 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하박사님을 포함해 이런 캐릭터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입니다. 뭘 조언을 하건, 남들의 약점을 짚어 내건 틀리는 법이 거의 없죠.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게다가 이 사람들은 모두 솔직 담백면에선 확실한 믿음을 줍니다. 남들처럼 돌려서 얘기하는 법을 아예 모릅니다. 램지나 코웰은 나름 꿈을 안고 온 도전자들에게 "실력도 없는게 왜 여기서 시간낭비 하고 있어? 얼른 딴데 가서 알아봐"라며 쏘아붙입니다. 강마에씨야...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최고의 전문가라는 점', 그리고 '최소한 거짓말은 안 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상당한 매력의 원천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들이 인기라고 해서 실생활에서도 그 흉내를 내거나, 저런 캐릭터로 보여서 이성의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건 참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라고 쓰고 보니 거의 똑같은 기사(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335317)가 이미 나와 있더군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포스팅을 한 시간이 10월12일, 링크의 기사가 나온 건 14일입니다 - 베낀 건 아니란 뜻입니다.

아무튼 확 지워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길게 쓴게 아까워서 그냥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에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하의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까칠한 캐릭터들에게 열광하는 이유, 일단 그들이 잘났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런 캐릭터들이 통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둘째, 그게 자기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TV 속 강마에를 보면서 깔깔 웃던 사람들이 과연, 실제로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이 속엔 뭐가 들었을까, 똥.덩.어.리"해도 웃음이 나올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실생활에서 저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독설을 정면으로 받는다면 아마 안색이 변하고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끼얹거나 하는 반응을 보일 겁니다. 사람들이 저런 캐릭터를 좋아할 수 있는 건 그에게 당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닐 때까집니다. '남들이 당할 때'와 '내가 당할 때'의 차이를 무시하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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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위의 캐릭터들은 모두 허구 속의 존재들입니다. 저들의 완벽함은 실생활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우스나 강마에는 픽션 속 인물이니 당연한 얘기고 램지나 코웰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램지도 고기를 설익히거나 수프를 망칠 수 있습니다. 코웰 또한 정말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를 못 알아볼 수도 있겠죠. 이들 역시 방송 속에서만 전지전능합니다. 방송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들 역시 보통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고 말 겁니다.

물론 실생활에서도 '상당히' 까칠한데 '상당히' 인기 있는 사람들은 꽤 있죠. 하지만 그 사람들에겐 틀림없이 까칠하지만은 않은 비장의 무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까칠한게 통한다'는 착각으로 이 아저씨들의 흉내를 내시려는 분이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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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좋지만 남들의 기대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고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제리(샤이아 라보프)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계좌에 75만달러라는 거금이 입금된 사실에 깜짝 놀랍니다. 잠시 후 들어간 자취방에는 첨단 무기가 가득 쌓여 있고 전화벨이 울립니다. "30초 안에 달아나지 않으면 FBI가 덮친다. 어서 달아나"라고 말하는 감정이라곤 담기지 않은 여자 목소리.

이 목소리를 무시한 제리는 엄청 곤욕을 치릅니다. (이상은 예고편에 나오는 장면) 알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리는 그의 명령에 반항해 봐야 소용이 없고,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제목에 나오는 '이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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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는 곧 자신처럼 이글 아이에 의해 조종되는 싱글맘 레이첼(미셸 모나한)을 만나고, 군 수사관 페레스(로자리오 도슨)와 FBI 수사관 모건(빌리 밥 손튼)은 그들을 뒤쫓으면서 이름 모를 강력한 손을 느끼게 됩니다.

D.J. 카루소 감독은 히치코크의 모든 작품을 현대판으로 개작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은 걸까요? 샤이아 라보프가 출연한 전작 '디스터비아'가 '이창'의 현대판이듯 '이글 아이'는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의 현대판이라고 감독 자신이 밝힌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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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북서로 기수를 돌려라'에 나오는 악당들은 '이글 아이'에 비하면 정말 어린애 장난 수준입니다. 그들은 절대 그렇게 전지전능하지도, 모든 것을 통제할 힘을 갖고 있지도 못했죠. 공통점이라면 그저 죄 없는 사람이 범인으로 오인돼 쫓겨 다닌다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이 영화와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당연히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첫 손에 꼽힐 겁니다. 그야말로 빅 브라더 스타일의 악당, 즉 모든 네트워크와 감시 수단을 이용해 상대를 추적하는 대 악당에 의해 위기에 몰린 주인공의 이야기로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만한 작품이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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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그러고 나서 보니 포스터까지 비슷하군요.^^)

그럼 '이글 아이'는 대체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사실 대단한 고민이었을 겁니다. 웬만한 극적 장치나 도구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거의 다 써버렸거든요. 실제로 이 영화의 액션에서 대단히 참신한 장면은 아예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스피드는 확실히 빨라졌죠. 이 스피드 역시 상당 부분을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로 단련된 관객에게 이 영화에 나왔던 시퀀스를 다시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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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글 아이'는 스스로 새로운 착안을 하기 보다는 아주 쉽게, 또 한편의 고전 영화를 가져다 계란 후라이처럼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위에 얹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그냥 넘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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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한 스티븐 스필버그는 샤이아 라보프의 캐릭터를 관리하는 데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영화의 라보프는 '인디애나 존스 4'에서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성질만 좀 덜 급한가요?). 위기에 몰려도 위트를 잊지 않는 젊은 인디애나 존스라고나 할까요. 라보프의 연기력이 발전한 것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이글 아이'에서는 훨씬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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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액션 블록버스터에서는 별로 본 기억이 없는 빌리 밥 손튼은 그 이유로 무척 신선해 보입니다. 반면 로자리오 도슨은 커리어 관리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또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대체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작은 역인데다 빛도 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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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미셀 모나한도 여러 모로 좀 실망입니다. 라보프에 비해 지나치게 나이들어 보이기 때문에 남녀 주인공 사이의 연애 감정에서 나오는 긴장감을 거의 주지 못합니다. 대본상의 문제지만 이 캐릭터는 그냥 아들 구하기에 정신이 팔린 무뇌아 여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미션 임파서블 3에 나왔을 때에도 이미 실망스러웠죠.

많은 리뷰어들이 플롯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 수많은 하이테크 블록버스터들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특별히 문제가 많은 영화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정작 문제는 신선한 발상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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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말이 안 되는 장면이 많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본듯 한 식상한 요소들이 전편의 내러티브 내내 발견된다는 점이 더 문제죠. 쌍둥이 발상 같은 건 좀 헛 웃음이 나오게도 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교훈은 아무리 훌륭한 배우들과 엄청난 특수효과 팀, 그리고 시나리오 다듬기의 귀재들이 모여서 영화를 만든다 해도, 결국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발상에 당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인식시킨다는 정도입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예고편을 매우 속도감 넘치게 잘 만들었고, 영화 전체에서도 속도감이 돋보인다는 점 정도입니다. 안 그랬으면 대단히 지루했겠죠. 다행히 영화는 두시간 정도 즐기기에는 별 부족함이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 면에선 대본에 비해 연출력이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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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월 E'에 이어 이 HAL의 눈을 또 보게 되더군요. 반가웠습니다.

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던 이 분은 이 영화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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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물가를 생각하면 당연히 싸게 먹는게 급선무일수밖에 없어서 '싸게 먹기'편을 먼저 올렸습니다. 물론 그것도 그리 싼 편은 아니라는 뒤늦게 나타난 에딘버러 주민 한 분의 말씀에 조금 마음이 상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여행을 갔으면 궁상만 떨고 있을 수는 없죠. 멋진 데 가서 기분 내는 재미도 없으면 대체 여행을 왜 간단 말입니까. 제가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런던의 레스토랑입니다.

단 가격은 좀 비싸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라면이나 햄버거, 햇반으로 끼니를 때우던 분들도 가끔은 지갑을 풀어야 나중에 기억할 거리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비싸게 먹기 편을 먼저 보시면 눈을 버리실테니, 일단 '싸게 먹기'편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이쪽이 '싸게 먹기' 쪽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확 느낌이 오는 분도 있을 겁니다. 제가 런던에서 가장 멋진 곳 중 하나로 추천하고 싶은 테이트 모던입니다.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레인보우 브리지를 건너면 나타나는, 겉모습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미술관입니다.

본래 화력발전소였던 곳을 개축했으니 외양이 그리 빛날 리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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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영제국은 오래 전에 빛을 잃었지만, 영국인들은 창의력으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영화, 뮤지컬, 대중음악, 패션 등등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영국은 여전히 최고의 선진국이죠.

그리고 그런 창의력이나 미적 감각의 근원이 이런 수준 높은 공공 미술관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료로 이런 멋진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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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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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의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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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의 '스타른베르크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히 뿌듯한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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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7층에는 'one of the finest view of London'을 제공한다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이름은 그냥 테이트 모던 레스토랑. 하지막 막상 밤까지 영업하는 날은 금요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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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서 오른쪽 창 밖으로는 미국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세인트 폴 대성당의 탑이 보입니다.

당연히 창가 자리에 앉으면 테임즈 강을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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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뷰는 그냥 평범한 시내입니다.

런치 메뉴입니다. 사실 가격은 꽤나 비쌉니다.

Penne pasta with butternut squash, cavolo nero, salted ricotta and pine nuts £11.95
Deep fried Cornish haddock with chips, tartare sauce and mushy peas £12.50
Smoked haddock & cod fish pie £12.95
Fish of the day, fresh from the Newlyn day boats, Cornwall (Market price)
Roast Suffolk chicken breast with baby gem and herb rotolo £15.50
Char-grilled salt marsh leg of lamb steak with red onion, feta, mint & oregano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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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st Suffolk chicken breast with baby gem and herb rotolo를 골랐습니다.
(herb rotolo는 이탈리아풍의 둥근 말이 음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닭 밑에 깔린 저 걸쭉한 소스가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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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토마토와 모짜렐라의 가벼운 요리. 카프레제는 본래 많이 먹는 음식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조합은 처음입니다. 저 푸짐한 모짜렐라 치즈와 구운 토마토에서 나온 단맛이 정말 하늘나라의 조화를 느끼게 하더군요. 혓바닥까지 삼킬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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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요리의 국물이 아까워서 빵을 따로 시켜서 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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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테임즈강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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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경관과 음식 맛에서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게 합니다.

런던에 가시는 분들은 여유가 되시면 한번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단 두 사람의 점심으로 40파운드 정도는 각오를 하셔야 할 듯. http://www.tate.org.uk/modern/eatanddrink/restaurant.htm 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예약도 가능.


그 다음 장소는 유명한 고든 램지 선생이 경영하는 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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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든 램지를 모르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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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게임인 '헬스 키친'을 진행하고 있는 유명 요리사죠.

런던 시내에만도 램지가 경영하는 식당은 대여섯곳이나 됩니다. 모두 gordonramsay.com에 올라 있죠. 폭스트로트 오스카는 그중 하나로, 빅토리아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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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본 바깥. 저녁 첫 손님이라 그런지 비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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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내기용으로 시킨 아이리쉬 사이다 Magners.

Cider는 본래 40도 정도의 스피릿이라고 들었는데 이 사이다는 4.5%더군요. 사이다가 소다수와 동의어로 쓰이는 건 우리나라뿐입니다.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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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가 많이 든 딱딱한 빵.

메인 메뉴는 대략 이렇습니다. 테이트 모던보다는 좀 싸군요.

아무튼 메뉴에 코코뱅이 있는 걸로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프랑스식 요리입니다.

Confit duck leg with braised lentils £11.75
Sausages and mash with onion gravy £11.25
Lobster, salmon and crayfish pie £12.75
Casterbridge 9oz rib-eye steak with béarnaise sauce £15.75
Leek and stilton tart £10.25
Game pie £11.50
Beer battered hake with chips and pea purée £12.75
Braised pig’s cheeks £12.75
Foxtrot fishcake £11.00
Coq au vin £11.50
Whole pan-fried rainbow trout with toasted almonds £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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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가스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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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Sold) 뫼니에르. 지금 메뉴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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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로 만든 프리카세(fricasse). 감자, 당근 등 고기와 함께 와인 소스를 가미한 스튜.

빅토리아 역 근처가 숙소인 분들이나, '빌리 엘리어트'를 보러 가시는 분들이라면 들러 볼 만 합니다. 빅토리아 역에서 139번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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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가장 부러운 건 테이트 모던의 세계적인 미술품들 앞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수천명을 먹여 살리는 세계적인 크리에이터가 나올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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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열기에 슬쩍 편승한 포스팅입니다. 준 PO에서 롯데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홈에서 2연패를 했군요. 지난밤 부산에서 쓰러진 소주병이 얼마나 될지... 상상이 갑니다.

삼성이 2연승을 하는 동안 눈길을 끈 점이라면 아무래도 삼성에 있는 롯데 연고, 특히 부산 출신 선수들의 분전이 돋보였다는 점입니다. 1차전에서 6타수 4안타를 친 1번 박한이와 4번 진갑용의 부산고 선후배가 롯데 마운드를 초토화시키는데 기여했다면, 2차전에서는 채태인이 이번 PO 첫 홈런을 때려냈죠. 채태인은 부산상고 출신입니다.

물론 부산 출신 선수는 당연히 롯데에 훨씬 더 많죠. 손민한-장원준-손광민으로 이어지는 부산고, 송승준-이대호-박현승으로 이어지는 경남고의 양대 명문고를 비롯해 대부분의 선수가 부산 경남 출신입니다. 하지만 이들보다는 적지에서 뛰는 삼성 소속의 부산-경남 출신 선수들이 사직구장에서 더 펄펄 날았다는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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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홈 사직구장은 뜨거운 응원 열기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홈 승률이 매우 낮은 구장이기도 합니다. 올해 롯데의 홈 승률은 63경기 중에서 32승 31패. 5할이 간신히 넘습니다. 여기서 마산 경기(1승5패)를 빼면 31승26패로 올라가긴 합니다만, 시즌 승률(.548)에 비해 낮은(.544) 승률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홈구장' 치고는 의외의 성적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분의 분석(http://toto5071.egloos.com/325459)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사직구장에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건 2006년과 올해 뿐입니다. 이건 롯데의 최근 전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지난 2000년 이후 9시즌 동안 사직구장 승률이 시즌 전체 승률보다 높았던 해는 2003, 2005, 2006년의 세 시즌밖에 없더군요. 좀 의아해지는 성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뜨거운 응원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자주 진다는 이유로 왕년에 자기 구단 버스에 불도 지른 적이 있을 정도(뭐 이건 부산이 아니라 마산에서 있었던 일이지만)로 뜨거운 롯데 팬들의 열성이 자칫 롯데 선수들을 주눅들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극성 엄마를 둔 수험생의 긴장...같은 것일까요?

반면 간간이 사직을 찾는 타 구단 소속의 부산-경남 출신 선수들은 왠지 모를 고향의 푸근함 때문에 실력을 다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풀이의 의미는 아닙니다. 손민한과 부산고-고려대 동창인 진갑용은 두산 시절에도 롯데 쪽으로 곁눈질을 했다지만 엉뚱하게도 1년 먼저 입단한 최기문이 롯데로 트레이드되는 일도 겪었죠. 1,2차전에서 제 실력을 보인 선수들은 롯데도 탐내던 선수들이죠. 트레이드로 삼성에 간 신명철(마산고 출신)이라면 또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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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삼성에는 이밖에도 롯데 연고 선수들이 주요 전력으로 많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준PO 출전 선수 중에는 3차전 선발 예고된 윤성환도 부산상고 출신이고 신명철과 김창희(마산고), 강봉규(경남고) 등이 있죠. 이 선수들도 롯데를 상대로 계속 펄펄 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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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롯데는 아직도 부산-경남 출신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여기도 대구-경북 출신들이 꽤 됩니다. 투수 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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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에 나온 강영식(대구상고),

야수 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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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포철공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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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혁(대구상고)이 대표적이죠.

과연 대구 3차전에서는 삼성에서 뛰지 않고 있는 이들이 제 실력을 발휘해 삼성에 타격을 줄까요, 아니면 대구구장의 안방 텃세가 더 셀까요. 3차전을 보고 나면 어느 쪽의 운이 더 강한지 판가름이 날 것 같습니다.

그나자나 선수 명단을 보니 삼성은 정말 '순혈 대구-경북' 선수들이 정말 적군요. 하지만 오히려 향토 출신 선수들이 타지 출신들을 왕따시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정서가 강했던 시절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눈길이 갑니다.

◇롯데
▲감독= 제리 로이스터
▲코치= 박영태, 아로요, 김무관, 이철성, 한문연, 공필성
▲투수= 손민한, 송승준, 장원준, 이용훈, 조정훈, 염종석
김이슬, 강영식(대구상고), 최향남, 코르테스
▲포수= 최기문, 강민호(포철공고)
▲내야수= 박현승, 조성환, 박기혁(대구상고), 김주찬, 이대호, 정보명, 이원석, 박종윤, 김민성
▲외야수= 이승화,최만호,이인구,손광민,가르시아

◇삼성
▲감독= 선동열
▲코치= 한대화, 이종두, 김평호, 류중일, 조계현, 강성우
▲투수= 이상목, 전병호, 조진호, 정현욱, 윤성환(부산상고), 배영수, 오승환, 권혁, 안지만, 조현근, 에니스
▲포수= 진갑용(부산고), 심광호, 현재윤
▲내야수= 박진만, 신명철(마산고), 손지환, 조동찬, 채태인(부산상고), 박석민
▲외야수= 양준혁, 김창희(마산고), 강봉규(경남고), 박한이(부산고), 최형우, 우동균





p.s. 그나자나 선수도 죄다 바뀌고 저렇게 피도 섞였는데 대체 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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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과 전병호. 좌완에다 직구 시속은 간신히 130km에 턱걸이 할 정도. 다른 구단에는 그닥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투수들. 하지만 둘 다 모두 롯데 타자들에게는 선동렬만큼 두려운 투수로 통했고, 통하고 있습니다. 대체 이유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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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입니다.

한글날에 좀 맞는 화제를 들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난번 추석 연휴때 또 나왔던 얘기이기도 한데 아끼고 아꼈다가 한글날 다 같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TV에서도 원음을 살려 자막으로 외화를 방송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요청은 대개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인기 외화가 몰아서 방송되는 명절 때 많이 제기된다고들 하지요.

꽤 전에 한 방송사 편성 담당 간부 한 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문득 외화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죠. 'X-파일'이 방송되던 시절인데, 일부 일간지에서는 'X-파일'의 인기로 미국 드라마 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기사가 나올 때였지만 정작 시청률이 왕년의 인기 외화들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왜 '프렌즈'같은 시트콤을 방송하지 않느냐"고 물었죠. 그 간부는 "우선 정서가 한국 정서가 아니고, 너무 섹스와 관련된 얘기가 많아 적절하게 옮기기가 함들며, 성우들이 그 시트콤의 맛을 낼 거라고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자막으로 내면 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죠.

그러자 그 간부가 씩 웃으며 하던 말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거야? 누구 쪽박 차는 거 보고 싶어?" 저는 그때까지 정말 몰랐습니다. 한국 시청자들이 그렇게 자막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 간부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자막 들어가서 방송된 프로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게 뭔지 알아? '여명의 눈동자'야. 그거 빼곤 전부 한자리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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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TV 외화, 더빙해야 할까 자막으로 볼까

명절 때가 되면 홍콩 스타 성룡(成龍)이 나오는 영화가 방송된다는 건 상식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주 재연되는 논란이 있다. 바로 '성룡의 목소리'와 관련된 문제다.

TV 외화는 더빙을 하는 게 좋을까, 하지 않는게 좋을까. 한쪽에선 관람의 편의나 우리말의 소중함을 내세우고, 다른 쪽에선 실제 배우의 육성이나 만들어진 음향을 해치지 않는 관람을 요구한다. 당연히 돈이 더 드는 쪽은 더빙을 하는 쪽이다. 어느 쪽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방송사 쪽에선 돈을 안 들이고 욕먹는 쪽이 낫다고 보아야 할까?

일단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떤지 볼 필요가 있다. 더빙과 관련해 '원어로 영화/드라마를 볼 수 있는 자유'를 말하자면, 한국만큼 이 자유를 폭넓게 보호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한국과는 반대로, TV는 물론 극장에서도 '자국어로 더빙된 영화를 볼 권리'를 국민들에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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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스페인, 독일 등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은 방송 드라마의 경우 전면 더빙을, 극장용 영화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더빙을 원칙으로 생각한다. 그런 탓에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성우들이 인기 스타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원어판(자막판)을 상영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더빙이 되어 있지 않음'을 명시해야 한다. 관객에게 '자막을 읽는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중국도 마찬가지. 자막 상영이 더 보편적인 일본에서도 거의 모든 영화가 더빙판 상영을 병행하고 있다.

오히려 극장에서 자국어로 더빙되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정도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외국(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쉽지 않은 것은 더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엔 '자막을 읽어 가며 영화를 보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며, 외국어로 된 영화에 자막을 넣지 않는 것은 관객을 곤란하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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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로 된 영화나 드라마를 원어 그대로 보든, 자국어로 더빙해서 보든, 사실 대단한 문제는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이블TV의 경우 어린이용 애니메이션까지 자막 방송을 하기도 한다는 점은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혹시 이런 현실이 자국어에 대한 애정의 부족 때문은 아닐까. 더빙 여부가 제작비 몇 푼의 문제, 성우 몇 사람의 생계 문제만은 아니라는 부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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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 관객들의 기준은 그리 일관적이지 않습니다. 1980년대, 홍콩 영화 포스터에는 조그맣게 '중국어 발성'이라는 문구가 써 있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홍콩 합작 영화가 꽤 많았고, 합작 영화는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홍콩에서는 광동어로 더빙되어 상영되는 게 상식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이소룡에 이은 성룡의 성공이 모든 걸 바꿔놨습니다. 관객들은 재빨리 '중국어로 발성되는 영화'가 '한국어로 더빙된 중국 영화'에 비해 작품성이나 재미가 훨씬 낫다는 걸 알아 차린겁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더빙된 영화를 노골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죠. '중국어 발성'이란 바로 품질 보증이었던 겁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말할 것도 없죠. 극장에서 더스틴 호프만 대신 배한성씨의 목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걸었다가는 아마 관객들의 항의가 하늘을 찌를 겁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은 지금도 더빙판을 병행 상영하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극장에 가서 외화를 본다=자막으로 영화를 본다'로 굳어진 지 오랩니다.

하지만 TV의 경우엔 영 다릅니다. 절대적으로 더빙된 영화에 대한 선호가 높죠. '어, 난 아닌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죄송하지만 이 경우에 여러분은 소수파입니다. 전체 국민, 즉 전체 시청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 자막이 들어간 외화는 절대적으로 기피 대상입니다. 자막으로 방송되는 'CSI'가 인기라구요? 그래 봐야 시청률로 따지면 2~3%가 한계입니다. 더빙으로 방송되는 지상파에서는 6~7%까지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도 만약 국산 드라마와 붙여 놓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자막으로 된 외화를 선호하는 사람은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전 시청자의 절반 이하입니다. 많이 배운 여러분이 쉽게 계산에 넣지 못하는, '나이도 많고 교육수준도 낮은' 시청자들에겐 자막이 전혀 인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건 우리나라 쪽입니다. 다른 나라는 잘 사는 나라건 못 사는 나라건, 대개 극장에서도 더빙 상영판을 메인으로 간주합니다. 아예 원어 상영(자막판)을 하지 않는 나라도 꽤 많죠. 이건 바로 가장 기본적인 자국어 우선 정책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리도 '더빙'을 무턱대고 구시대의 유물 취급하는 태도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극장에서야 지금처럼 자막 상영의 기본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겠지만, TV에서는 더빙이 좀 더 늘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영화까지 굳이 지막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어린이들이 일본어로 만화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걸 보고 "조기 외국어 교육이 효과가 있네" 하면서 좋아할 수 없는 건 저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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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진은 위에서부터 배한성, 양지운, 장유진, 얼마 전 돌아가신 장정진, 그리고 탤런트로 더 유명한 김영옥씨와 그분들이 연기한 대표적인 역할입니다. 어려서 쇠돌이의 목소리를 내는 분이 중년 아줌마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기도 했더랬습니다.

요즘은 어떤 분들이 스타 성우인지 저도 잘 모르겠군요. 이누야샤 목소리를 내던 강수진씨 정도나 알겠네요. 그래서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X-파일'의 경우 유독 더빙에 대한 선호가 높은 것 같더군요. 멀더군의 실제 목소리에 실망했다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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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지 타임이 최진실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제니퍼 빌(Jennifer Veale)이라는 기자가 서울발로 기사를 썼더군요. "South Koreans Are Shaken by a Celebrity Suicide"라는 제목입니다. 주요 내용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기사가 한국의 실정을 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려는 말은 알겠지만 의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팩트가 약간 갸우뚱한 부분이 있습니다.

원문을 보시라고 하면 고문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꽤 있을 것 같아서 거칠지만 살짝 번역을 해 봤습니다. 뭐 사소한 오역은 꽤 있겠지만, 꽤 중요한 부분이 잘못된 경우엔 가차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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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was more than South Korea's Julia Roberts or Angelina Jolie. For nearly 20 years, Choi Jin Sil was the country's cinematic sweetheart and as close to being a "national" actress as possible. But since her body was found on Oct. 2, an apparent suicide, she has become a symbol of the difficulties women face in this deeply conservative yet technologically savvy society. Incessant online gossip appears to have been largely to blame for her death. But it's also clear that public life as a single, working, divorced mom - still a pariah status in South Korea - was one role she had a lot of trouble with.

그녀는 한국에서 줄리아 로버츠나 안젤리나 졸리보다 한 단계위의 스타였다. 근 20년 동안 최진실은 극장에서 전 국민의 연인이었고, 실제 존재하는 배우들 중 가장 '국민 여배우'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2일 명백히 자살로 보이는 시체가 발견된 이후, 그녀는 '최신기술에는 빠삭하지만 엄청나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자들이 직면해야 하는 어려움'의 상징이 되었다. 끊임없는 온라인상의 가십이 그녀의 죽음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혼하고 아이가 딸린 채 일을 해야 하는 여성 - 한국에선 여전히 불가촉 천민(pariah)에 해당하는 - 으로서의 역할이야말로 그녀를 가장 괴롭혔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

파리아는 인도에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카스트에 들지 못하는 그 이하의 천민을 말합니다. 가끔 인도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빨래 하는 노역자 등이 이 계급에 속하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쇠고기를 먹어도 될 정도라는군요.

싱글맘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요즘은 꽤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인도의 불가촉천민 - 손으로 건드리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 뜻 - 과 비교하는 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계속 이어집니다.

Dubbed the "nation's actress," Choi starred in some 16 movies and more than a dozen TV soap operas throughout the 1990s. But her career took a hit in 2002, when the public learned of her troubled marriage and subsequent divorce from Cho Sung Min, who plays baseball for the big leagues across the sea in Japan. After her divorce in 2004, the mother of two became anathema to producers and broadcasters who, according to industry observers, were and still are reluctant to put single mothers in starring or prominent roles. After four years of struggling, Choi's career had begun to pick up when her body was found in her bathroom in southern Seoul. She apparently hanged herself with a rope made of medical bandages. (Hanging is the most common form of suicide in South Korea, where gun ownership is illegal.) Her suicide has gripped the nation, dominating headlines as authorities, relatives and even the government try to determine what went wrong.

'국민 여배우'로 일컬어지는 최진실은 90년대를 통틀어 16편의 영화와 최소한 12편 이상의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커리어는 지난 2002년 일본 프로야구에도 진출했던 조성민과의 결혼 생활의 파탄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잇달아 이혼으로 이어지면서 타격을 받았다. 2004년 이혼한 뒤에는 두 아이의 엄마인 최진실은 방송 관계자들에게 저주받은 사람 취급을 받게 됐다. 업계를 지켜보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들은 싱글맘들을 주인공이나 눈에 띄는 역할에 캐스팅하는 걸 꺼린다. 4년간 (이런 통념과의)투쟁 끝에 최진실의 커리어는 회복되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그 시점에서 최진실의 시신은 강남에 있는 자신의 집 욕실에서 발견됐다. 그녀는 붕대로 노끈을 만들어 목을 맨 것이 분명했다. (총기 사용이 불법인 한국에서는 목을 매는 것이 가장 흔한 자살방법이다) 그녀의 자살은 한국인들의 관심을 장악했고, 헤드라인을 독점해 전문가들, 친척들, 심지어 정부까지 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혀내려 진땀을 뺐다.

최진실이 2000년 결혼부터 2004년 이혼때까지 출연한 작품은 연변 처녀로 나와 류시원과 공연한 MBC TV '그대를 알고부터' 한편뿐입니다. 출산과 육아로 스스로 활동을 자제한 덕분이죠. 이혼의 충격으로 부진했다고 할만한 드라마 역시 2004년의 MBC TV '장미의 전쟁' 뿐입니다. 바로 이듬해인 2005년 KBS 2TV '장밋빛 인생'으로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PD들이 저주받은 사람(anathema) 취급하면서 피했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심지어 '장미의 전쟁'이 부진했는데도 MBC TV와의 계약 잔여분을 무시하고 '장밋빛 인생'에 출연하려다 MBC로부터 고소당하기도 했습니다. 필요 없는 연기자라고 생각했으면 절대 그랬을 리가 없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MBC TV '나쁜여자 착한여자'도 꽤 주목을 끌었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CF도 끊기지 않았죠. 윗글처럼 'STRUGGLE'이라고 할 만큼 사회 통념(?)과 싸울 기회가 아예 없었습니다.


According to Korean news reports, Choi became depressed when rumors started circulating last month in the country's very active online communities that she was a loan shark and had driven a fellow actor, Ahn Jae Hwan, to kill himself. The word on the Net was that Choi had been pressuring Ahn to repay a loan of some $2 million. After enduring the accusations (which police said after her death were untrue), Choi killed herself in a "momentary impulse," according to the investigative team, driven by malicious rumors and prolonged stress.

한국 보도에 따르면 최진실은 한국에서 대단히 활발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달 이후 그녀가 고리대금업자이며, 친한 연기자인 안재환을 자살로 몰고 간 장본인이라는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을 때 매우 의기소침했다. 온라인상에 떠돌던 소문에 따르면 최진실은 안재환에게 200만달러에 달하는 빚을 갚으라고 압력을 넣어왔다는 것이다. 수사 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소문(경찰은 그녀가 죽은 뒤에야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을 참다 못한 최진실은 악의적인 루머와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살했다.

South Korean police have since announced that they will crack down on online defamation, but little has been said about the late actress's problems as a single mother in this deeply conservative society. Choi spoke openly on the taboo topic and sought to change the unpopular public perception of single moms in South Korea. "Korean society does not like strong women, and thinks single moms have a personality disorder," says Park Soo Na, a national entertainment columnist. "It's like a scarlet letter." She says single mothers often ask their parents to raise their grandchildren so the kids don't have to endure the shame of living without a father figure.

한국 경찰은 심지어 온라인상의 명예훼손을 근절시키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런 지독하게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 여배우가 싱글맘으로서 겪었던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질 않았다. 최진실은 터부시되어 온 주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해왔고, 한국에서의 싱글맘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의적이지 않은 인식을 바꾸려 했다. "한국 사회는 강한 여성을 좋아히지 않고, 싱글맘들은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국의 연예 칼럼니스트 박수나씨는 말한다. "그건 마치 '주홍 글씨'와도 같다"고 말한 그녀는 싱글맘들은 자녀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는 치욕을 견디지 않아도 되도록, 자신들의 부모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누가 이분에게 이런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제공했나 했더니 박수나씨라는 분이군요. 그런데 그 하늘의 별처럼 많은 인터넷의 연예 라이터들 중에도 박수나라는 이름은 전혀 검색에 걸리지 않습니다. 대체 이 분은 어디다 칼럼을 쓰시는 걸까요. 자기 일기장에?
 
(...혹시 나박수씨는 아니겠지요?)

또 최진실이 대체 언제 터부시되어온 주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를 했으며(spoke openly on the taboo topic),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운동을 했단 말입니까.

게다가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외조부모와 함께 살면 아버지 있는 자식이 된단 말입니까. 오히려 엄마도 없는 자식이 되어 버리죠.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릴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심하게 놀리겠군요. 이런 얘기는 10대 딸이 사고를 쳐 낳은 아이를 자기가 늦동이로 낳은 아이라고 속이는 어머니의 경우에나 해당되는 얘기일 것 같습니다. 오히려 '차이나타운'이나 '초원의 빛'같은 옛날 미국 영화에 많이 나오는 얘기로군요.


And for women without a movie star's bankroll, there's limited public financial support available, forcing some women to place their children in orphanages for long stretches or even put them up for adoption. "There's still a negative notion about single moms," says Lee Mijeong, a fellow at the Korean Women's Development Institute. "They have a hard time."

그리고 영화계 스타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여성들의 경우, 공공 재정 지원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몇몇 여성들로 하여금 오랜 기간 동안 자녀들을 고아의 상태로 방치하거나, 아예 입양시키게 하기도 한다. 한국 여성개발원의 이미정 연구원은 "여전히 싱글맘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그들은 매우 고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이 싱글맘보다는 자녀 입양에 100배 정도 더 부정적이란 사실을 모르는 듯. 물론 해외 입양인지도 모르겠군요.

Whatever the motivation for her suicide, the actress's death has raised fears about a ripple effect. Korea has had the highest rate of suicide among the world's industrialized countries for the past five years. Policy makers and the general public readily admit that mental illness - even a common disorder like depression - is rarely talked about openly in the country.

그녀의 자살 동기가 무엇이건, 최진실의 죽음으로 인해 파문 효과(ripple effect)에 대한 우려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5년간 세계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여왔다. 정책입안자들이든 일반 대중이든, (거의 모든 사람이) 한국에서 정신질환이 - 신경쇠약 같은 아주 흔한 질환까지도 - 공개적인 화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당연하게 여긴다.

"Koreans are very secretive about psychiatric problems," says Lee Myung Soo, a psychiatrist at the Seoul Metropolitan Mental Health Centre who agrees that one of the main reasons that people won't talk about it here is fear of losing one's job. More people will probably seek treatment because of Choi's death, explains Lee. But he also fears that there will be more suicides, as has happened after other celebrity deaths.

서울 시립정신병원의 이명수 박사는 "한국인들은 정신질환과 관련된 문제를 매우 은밀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얘기하길 꺼리는 이유가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데 동의했다. 이박사에 따르면 최진실의 죽음으로 인해 치료받으러 나선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또한 유명인사의 죽음 이후 더 많은 자살사건이 있을 것을 우려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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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렇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그냥 상식적인 내용. 은근히 한국을 너무 덜 깨인 나라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오리엔탈리즘의 샤워가 다 씻기지 않은 듯 합니다. 게다가 IT 강국 한국의 인터넷이 한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매체인지를 잘 모르는 듯한 뉘앙스도 풍깁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납득할만한(물론 한국 독자들이 아니라 한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고국의 독자들이) 이유를 제시하려다 한국 여성들을 차도르를 쓰고 다니는 아랍 여성들 취급을 해 버린 듯 합니다.

(흑백논리를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을 위해 꼭 덧붙이자면) 물론 한국이 싱글맘에게 온통 마음을 열어놓고 있는 나라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 글에 나오는 정도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pariah)'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라는 생각입니다.

Veale씨, 웬만하면 한국어를 좀 배워서 진짜 한국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시는게 어떻습니까. 그리고 연예 칼럼니스트 박수나씨의 글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는지도 좀 가르쳐 주시죠.





p.s. 시사주간지 타임과 일간신문 타임즈(Times)를 혼동한 인터넷 기사도 눈에 띄던데 다시 찾아보니 안 보이는군요. 그새 수정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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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메릴 스트립을 꼽습니다. 위대한 배우죠. 남자의 경우라면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같은 배우들이 번갈아 꼽힐 자리지만 여자의 경우엔 메릴 스트립에 맞설 만한 경쟁자가 쉽게 거론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이앤 키튼 같은 대배우도 "우리 세대의 천재"라며 경쟁의 뜻을 전혀 비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에게도 감히 '그게 연기냐'고 비웃을 수 있는 천적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미리 알려드리면 재미 없으니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앞부분의 얘기는 이 블로그를 자주 오시는 분들이라면 자칫 '또 이 얘기야?'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보이시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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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 '맘마미아'에 잘 어울렸을까?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맘마미아'가 국내 박스 오피스를 강타하면서 '적역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맘마미아'는 70년대의 명 그룹 아바(ABBA)의 노래만으로 제작된 뮤지컬. 지난 1999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이번에 영화화됐다.

스트립이 연기한 여주인공 도나는 갓 스무살의 딸과 함께 그리스의 한 섬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잘 나가는 여성 그룹의 리더였던 도나가 '사고'를 쳐서 아빠도 모르는 딸을 낳은 것이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므로 도나의 극중 나이는 많아야 4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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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트립의 실제 나이는 59세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젊어 보이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다. 주름살과 윤기 잃은 머리칼의 '전통적인 어머니' 상이 된 스트립과 뮤지컬에서의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도나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관객들이 상당수 있다.

물론 이런 무리를 모를 리 없는 제작진(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맘마미아'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맡았던 무대 연출가 출신)이 굳이 스트립을 캐스팅한 이유를 읽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영화의 주요 타깃을 30대 이상 여성층으로 놓고, 가능한 한 많은 관객들에게 '어머니'로 느껴질 수 있는 배우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스트립 본인이 "새로 배울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바와 '맘마미아'의 팬이라는 사실도 한 몫을 했다.

스트립의 도나 연기에 우호적인 여성 팬들 가운데도 '노래는 조금 아쉬웠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사실 여기엔 약간의 오해가 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메릴 스트립은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다. 12세때부터는 오페라 가수를 목표로 성악트레이닝을 받았고 영화 '뮤직 오브 하트'에 캐스팅됐을 때는 8주 동안 하루 6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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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노래 실력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영화 '에비타'의 에바 페론 역할을 놓고 마돈나와 경합했을 때 했다는 말에서 드러난다. "내가 마돈나보다 노래 실력이 나아요. 그래도 마돈나가 그 역을 차지한다면, 그 여자 목을 찢어버리겠어요(I'll rip her throat out)."

물론 진지하게 한 얘기는 아니었겠지만, 유튜브 같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그의 노래 실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실크우드'에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로버트 알트만의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서 부른 '마이 홈 미네소타', '헐리웃 스토리(Postcard from the edge)'의 엔딩 장면에서 부른 '아임 체킹 아웃', 그리고 전성기 지난 여배우 역으로 나온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의 첫 장면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신에서 '미(Me)'를 부르며 보여준 춤과 노래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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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스트립이 왜 '맘마미아'에서는 적역 논쟁에 시달리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음역이다. 아바의 원곡은 아니프리드와 아그네사라는 두 명의 걸출한 여성 보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의 청정 고음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귀에는 스트립의 저음은 거칠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트립의 '실력'은 알토 음역으로 컨트리풍의 노래를 부를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외모나 노래 실력에 대한 호오는 엇갈릴 수 있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스트립의 연기력이다. '맘마미아'에 대해서도 "노래도 연기라는 점을 생각할 때, 목소리를 떠나 가사에 실린 감정의 전달에서는 완벽했다"는 호평이 적지 않다.

1979년 '디어 헌터' 이후 아카데미상 역대 최다인 16회 노미네이션과 2회 수상('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소피의 선택), 동시에 칸 영화제(1989년 '이블 엔젤스')와 베를린 영화제(2003년 '디 아워스')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여배우. '현존하는 최고의 여배우'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지만 유독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4회 수상해 역대 최다 기록을 갖고 있는 선배 캐서린 헵번은 "연기에서 딸깍 딸깍 소리가 난다"는 혹평을 해 눈길을 끈다. "톱니바퀴가 돌 듯 너무나 계산적이고 기계적인 연기를 한다"는 뜻이라나. (끝)


스트립의 수상 광경을 잠시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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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1980년 오스카를 수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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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2004년 에미상 수상 장면입니다. 수상작은 'Angels in America'라는군요.

사실 스트립은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의 단골 시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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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피터 오툴 때도 시상자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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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로버트 알트만이 생애 마지막으로 오스카 무대에 올라 공로상을 받을 때도 시상자였습니다. 그해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 출연하기도 했었죠.

자기가 출연한 작품이 작품상을 받아도 자신의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아예 참가를 기피하는 어떤 나라의 배우들과 참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기계적인 연기'라니, 대체 누가 천하의 메릴 스트립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감히...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캐서린 헵번이라면 반대로 스트립이 그냥 수긍해야 할 얘기일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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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번은 '모닝 글로리(나팔꽃, 1933)',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 '겨울의 사자(The Lion in Winter, 1968)', '황금연못(On Golden Pond, 1981)'으로 4개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았습니다. 스트립이 2회, 그것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는 여우조연상이었으니 정말 불멸의 기록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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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4회 수상이 불만인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1907년생이니 26세때 처음 받고 60세, 61세, 74세에 세 개를 받았군요. 사실 아카데미상의 경로사상 덕분에 덕을 보기도 했을테니 스트립이 역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아무튼 캐서린 헵번은 평소 제레미 아이언스, 존 리스고, 글렌 클로즈를 좋은 배우로 칭찬했던 반면 스트립에 대해서는 '계산하는게 빤히 보인다'고 혹평을 했다고 합니다. 스트립은 '억울하면 역전'을 반드시 시켜 봐야겠군요.

이 글을 추천하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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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람들이 메릴 스트립과 가장 자주 혼동하는 스타는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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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글렌 클로즈와 메릴 스트립을 혼동한다고 하는군요.^ 글렌 클로즈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로 토니상 여우주연상도 받았고, 영화판에서도 바브라 스트라이젠드를 제치고 주연을 따내 이완 맥그리거와 공연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영화가 개봉될 기미가 안 보입니다.

본래 1950년작인 '선셋 대로'는 글로리아 스완슨의 전설적인 명 연기로 기억되는 걸작이죠. 뮤지컬도 'With one look'같은 명곡이 히트했지만 흥행에선 별 재미를 못 봤다는군요. 저도 무대에서 전편을 본 적이 없어서 은근히 영화판이 기다려집니다.

우선 'Once upon a time'과 'With one look'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잘 알려진대로 '선셋 대로'는 자신이 아직도 전성기인 줄 아는 왕년의 스타 여배우와 시나리오 작가의 기이한 관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위 영상은 이들의 첫 만남 장면. 남자가 "당신 한때 대단했잖아(You used to be big)!"라고 말하자 눈을 똑바로 뜨고 "I'm Big. It's the picture that's got small(난 여전히 대단해! 작아진 건 바로 영화야)"라고 말하는 여배우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다음은 'As if we never said goodbye'입니다. 1995년 토니상 시상식. '백야'의 그레고리 하인즈와 '프로듀서즈'의 네이선 레인이 작품을 소개하고 글렌 클로즈가 등장합니다.




갑자기 엉뚱한 얘기로 흘러갔군요.^ 혹시 메릴 스트립이 예전 영화에서 노래하던 모습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로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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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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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는 친일파 갑부의 아들 이해명(박해일)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부임 온 검사 친구 신스케(김남길)와 함께 재즈 클럽에 갔다가 아름다운 여인 난실(김혜수)의 춤과 노래를 보고 푹 빠져버립니다. 난실의 선심을 사기 위해 그가 일하는 양복점에서 수십벌의 양복을 맞추는 수고를 게을리하지 않지만, 어느날 난실이 싸준 도시락이 총독부 사무실에서 폭발해버립니다.

당연히 혼비백산한 해명.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난실을 찾아다닙니다. 그 과정에서 난실이 쓰는 이름만도 로라, 나타샤, 난실 등 여러개라는 사실을 알아버린데다 남편까지 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 뒤에도 난실에 대한 해명의 집착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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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날뛰는 해명 역의 박해일은 영화 '모던 보이'의 상징입니다. 모던 보이란 1930년대의 유행어로, 꽤 전에 사용되던 말로는 '오렌지 족' 정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는 적당한 대체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강남 뺀질이' 정도 되려나요('엄친아'와는 좀 다릅니다). 아무튼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줄인 '모뽀(당시의 공식 표기는 모단 뽀이)', '모걸'은 당대의 유행어였습니다.

영화 카피에는 '경성 최고의 플레이보이'라고 표현됩니다만, 이건 영화 속 해명의 '자칭'일 뿐이지 사실 해명의 캐릭터를 놓고 저렇게 인정해 주기는 좀 힘듭니다. 너무 촐삭대기 때문이죠. 이런 캐릭터가 관객에게 재미를 주긴 하지만, 실제로 저렇게 경박한 타입이 최고의 플레이보이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게다가 플레이보이의 절대적인 조건이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라는 점임을 생각하면 해명은 일단 그 계열에서는 열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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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두고도 말들이 좀 있었습니다. 의상이야 요즘도 통할 멋진 복고풍의 댄디한 스타일이지만, 머리 모양은 다소 해괴하거든요. 이 머리에 대해 정지우 감독은 "당대 최고의 모던 보이로 통하던 시인 백석의 헤어스타일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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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월북시인이란 이유로 한국 문학사에서 매장당하다시피 했던 백석은 그 시절 '문단의 3대 미남'으로 통했다는군요. 물론 이것도 백석의 '자칭'이라는 주장이 있고 보면 '모던 보이'의 해명은 헤어스타일 뿐만 아니라 행태도 백석의 영향을 받은 셈이 됩니다.

1912년생으로 평안도 정주 출생인 백석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함흥 영생고보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할 정도의 엘리트였습니다. 1937년이면 25세의 한창 나이.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백석은 전혀 주요 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정지용도 마찬가지였죠) 들어본 시라고는 바로 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우연히 보고 '아주 특이하고 희한한 시'라서 기억이 나는 정도죠.

그렇다면 백석의 연인인 나타샤는 누굴까요. 기록에 따르면 이 시가 나오던 1938년, 백석은 제자의 여동생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사건을 겪습니다. 비록 엘리트이긴 했지만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기생 자야를 비롯한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점에서 감점을 당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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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또 다른 기록에는 백석의 진짜 연인은 바로 이 기생 자야이며, 이 자야는 서울 성북동에서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다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동해 으리으리한 요정을 그대로 절집으로(현재의 길상사) 시주한 인물입니다.

자야에 호의적인 기록에 따르면 백석은 기생과의 연애를 끊으려는 부모에 의해 세 차례나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때마다 달아나 서울에 있던 자야에게 갔다는 주장입니다. 어쩐지 위의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이죠.

그런데 또 다른 기록에는 제3의 여인인 '란(蘭)'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을 만난 것은 자야나 제자의 동생보다 먼저인 1934년이라는군요. 당시 기자였던 백석은 이화여전 재학생이던 란을 만나 사랑을 불태웠습니다. 뭐 그 1년 뒤에 자야를 만나고, 또 얼마 뒤에 다시 란을 만나고, 만주로 가서는 이름모를 기생 출신과 동거하다 아들도 낳고, 그 뒤에 또 다른 아내로부터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이 드문 드문 보입니다. ...시인의 사랑이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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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백석을 모델로 했다기엔 해명은 또 너무 순정형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일단 난실에게 한번 빠지고 나니 직장이고 현실이고 고문이고 모두 나몰라라입니다. 심지어 엉겁결에 '열사'가 될 뻔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정지우 감독의 오랜 주제이기도 합니다. '해피엔드'에서 '사랑니'를 거쳐 '모던 보이'에까지 이르는 동안 세 영화는 모두 저항할 수 없는 매혹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파멸에 이르는 가파른 내리막길로 치닫죠. 연하의 매력남 때문에 아기의 엄마라는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을 넘어선 전도연, 연하남과의 야릇한 사랑에 빠져 뭐든 다 내팽개칠 수 있게 된 김정은, 그리고 이번엔 난실에 빠져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게 된 박해일과 그 해명에게 빠져 자신의 사명을 잊을 지경이 된 김혜수까지.

(우연히 정지우 감독에게 이 일련의 주제에 대해 말하니 '말을 듣기 전까지 그렇게 묶을 수 있다는 걸 정말 몰랐다'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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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의 '매혹'은 나무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였던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순도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명을 유혹에 빠뜨리는 난실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해명에게 빠지는 난실 쪽이 더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아무튼 두 배우의 연기는 따로 떼놓고 볼 때 그리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케미스트리는 그리 짙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그 다음의 불만은 좀 더 관객에게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리 영화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해도, 영화의 많은 부분은 코미디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좀 더 관객을 편히 웃게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관객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는 웃기 힘들죠. 영화 전반부의 흐름을 보다 쉽고 선명하게 했더라면 좀 더 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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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던 보이'의 장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30년대의 사진첩을 선명하게 HD 화질로 복구한 듯, 그 시절 경성의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아울러 해명을 탈 시대적인 인물로 그려낸 것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주얼 면에서 '모던보이'는 역대 한국 영화가 이뤄낸 성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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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김혜수가 부르는 몇 곡의 노래들 역시 매혹적이더군요. 물론 '개여울'의 가사는 김소월의 시지만 노래는 1970년대 정미조가 취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배경과 절묘하게 어울려 떨어집니다. 일본어 노래 역시 실제 그 시대의 노래가 아니라 그 시대 음악의 분위기를 살린 트리뷰트 곡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몇해전 적우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한번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반주가 대단한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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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대구 부근의 기지촌에서 컨트리 뮤직을 연주하던 상규(조승우) 패거리는 낯선 흑인음악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만식(차승우) 패거리를 만나 의기투합, 6인조 밴드를 결성합니다. 팀 이름은 데블스. 때맞춰 서울에서 보컬그룹 페스티발이 열린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서울 진출을 노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서울 진출은 결코 쉽지 않죠. 시민회관 화재 이후 막 피어나던 그룹사운드들은 설 자리를 잃고, 은근히 이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던 주간지 기자 병욱(이성민)은 통행금지와 밴드의 공연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건 바로 통금 해제 시간인 4시까지 올나잇으로 영업하는 나이트클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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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 감독의 '고고70'은 한국 최초의 '본격' 록 밴드 영화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음익 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은 꽤 많이 있었습니다. 80년대의 청춘스타 전영록을 주인공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이 있었고(개중엔 여성 밴드를 주인공으로 한 '돌아이' 시리즈도 있었죠), 또 한때는 동방신기급의 인기를 끌었던 송골매 멤버들이 주연한 '모두다 사랑하리' 류의 영화들도 있었습니다. 윤도현의 '정글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겠죠.

하지만 음향과 음악, 연주와 스토리가 제대로 '붙은' 영화로는 아마도 '고고70'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 속의 밴드지만 조승우와 차승우를 주축으로 한 밴드 데블스는 실제로 존재했던 밴드인 동시에,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진짜 밴드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승우와 신민아지만, 진짜 주인공은 '밴드'입니다. 혹은 이 밴드가 펼치는 공연과 노래야말로 진짜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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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화려한 휴가'를 볼 때와 비슷한 안타까움입니다. 1970년대, 지금은 기억마저도 희미해진 옛날이지만 우리에게도 저렇게 촌스럽고 미약해 보이지만 다양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문화가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아깝고 분했습니다.

혹자는 이 시기의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에 대해 '번역 문화'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이 시기의 밴드들은 해외의 성공적인 음악을 '따 오는 데' 급급합니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관심도 없을 때라 귀로 들어서 좋은 음악을 그대로 가져다 개사해서 쓰기도 하던 시절이죠. 이 영화에도 나오는 C.C.R의 'Proud Mary'같은 노래는 한글로 개사한 곡만도 10여 종류가 존재할 정돕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조영남의 '물레방아 인생'이죠. '도올고, 도오는, 물래방아 이인생' 하는 노래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올라가요 남산, 놀아봐요 명동'이라는 가사로 등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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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지 몇해 되지도 않았던 시절, 그렇게 남의 문화를 '이식'하는 과정이 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지가 의문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것을 모방하고, 베껴 내다 보면 어느 틈엔가 우리만의 독특한 것을 만들어 낼 여지가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70년대는 너무 어두웠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 원한 것은 스파르타식의 금욕적인 병영국가였고, 한국전쟁을 겪은 당시의 '어른' 들은 이런 국가 이념에 쉽게 동조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 문화라는 것은 사치였고, 나약과 퇴폐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란 군가나 새마을 노래의 수준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TV를 처음 이해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한국 대중문화계는 정말 뻥 뚫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대마초 파동'으로 이름을 알만한 가수들은 모조리 무대와 방송에서 사라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창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던 친척 형들은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나 이장희의 '그건 너', '한잔의 추억' 같은 금지곡을 부르는 걸 반항의 상징으로 생각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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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는 '딴따라'를 경시하는 풍조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일까요. 어차피 대중들이 모두 좋아하기엔 한계가 있는 클래식 문화는 숭상하면서도(그것도 사실 숭상이라기보단 해외 유명 콩쿨에서 입상하는 걸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걸 보듯하는 분위기에 가깝죠) 대중이 모두 사랑할 수 있는 문화는 비천하고 시간낭비에 가까운 것으로 매도한 대가를 한국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 대가란 이런 겁니다. 40년 전만 해도 한국의 국부는 땅만 보고 묵묵히 일하는 근면한 사람들에 의해 어느 정도 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몇명의 천재가 수천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입니다. 이른바 창의력의 시대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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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란 나라는 19세기가 전성기였고, 양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한 구석으로 찌그러져 버리지만, 현대의 영국은 창의력 선진국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패션과 음악,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영국은 세계 최첨단의 인재들을 계속 배출하고 있죠(물론 세계적인 금융 선진국이기도 합니다만). 대중 문화의 질과 다양성 부문에서 영국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물을 계속해서 뽑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요.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보수적이고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면서도 '딴따라'들에게 기사 작위를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진취적인 태도가 바로 그 힘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딴따라'들과 협연하기를 꺼리지 않는 그런 문화적 관용과 창의력은 종이의 앞뒷면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튀는 놈'들을 '딴 생각을 품은 놈', 혹은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놈' 들로 때려 잡은 결과, 한국의 대중문화는 21세기까지도 외국 것들을 누가 먼저 베껴오느냐로 승부가 갈리는 수준에 머물게 됐습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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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동기에 이미 '퇴폐문화의 주범'이라는 철퇴와 함께 지하로 사라져버린 한국 록 문화의 위기는 말할 것도 없죠. 몇 차례의 '쥐잡기'로 인해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고, 또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사이 '록 문화'에는 심각한 왜곡이 등장합니다. 가장 대중적이고 즐거워야 할 록 문화가 기이하게도 저항의 상징(물론 이런 부분도 의미와 전통을 가진 것이지만) 처럼 되어 버린 겁니다. 가장 대중 가까이 가야 할 록 문화가 오히려 대중과 멀어질수록 정통성을 가진 것처럼 오해되는 분위기를 띠게 된 것이죠. 이것 역시 통탄할 일입니다.

딴 얘기가 너무 길어졌지만, '고고70'은 그런 암울한 시대, 한국 대중문화의 창의력을 군화가 짓밟아 버린 시대의 우화입니다. 소재는 지극히 비극적이지만, 당시의 발랄했던 청춘을 그린 작품인 만큼 분위기는 밝고 싱싱합니다. 최호 감독의 손끝을 통해 이런 분위기는 관객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말하자면 이런 거죠. 70년대와 80년대,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구호를 외친 것도 저항이었지만 머리를 기르고 기타를 메고 다니거나, 통금 해제 시간인 새벽 4시 거리로 달려나오면서 경찰관들을 희롱하듯 소리를 지르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도 소극적인 저항이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당시의 록밴드 문화와 데블스 멤버들을 마냥 우상화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이들 또한 그냥 인간들일 뿐이고, 도덕적으로는 우월할 것 하나 없습니다. 인기를 무기로 여자들과 희희낙락하기도 하고, 도박으로 악기를 날리기도 하며, 인기에 취해서 친구며 '초심'을 잃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균형을 이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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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70'이 이런 완성도를 갖는 데 있어 조승우라는 탁월한 배우의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특히 무대에서 '엄마, 보고싶다!'를 외치는 조승우는 지금껏 우리가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가져 보지 못한 록 히어로의 상상 속 재현이라는 느낌이 아깝지 않은 명연을 펼칩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승우라는 배우의 에너지가, 그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 최대한으로 발휘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에너지라는 단어를 자꾸 사용하게 되는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영화 전체가 에너지로 꽉 차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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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아 또한 이제껏 보여주지 못했던 발랄함을 이 영화에서는 한껏 뽐낼 수 있습니다. 이 배우에게도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중 최고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군요. 이 작품에서의 신민아를 보면 그동안의 갖고 있던 청순의 이미지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타리스트 만식 역의 차승우도 연기자 데뷔(?)를 통해 감춰졌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아무튼 배우들의 열연과 영화의 열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고고70'는 남달리 생기 넘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신나게 찍었는지 느껴진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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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걱정되는 부분은 사실 이해의 깊이에 따라 감상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시대를 경험했거나 어렴풋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이 영화의 진정과 유머가 통렬하게 와 닿을수 있는 반면, 197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관객들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시대를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에게는 좀 불친절한 영화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그리고 뇌가 정확한 반복 박자의 '나이트 댄스' 음악에만 젖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올해 여름 이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영화라면 '고고70'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과 댓글을 생활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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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막상 화면을 보면서 낄낄대고 웃으면서도 마음 속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저 시대, 그렇게 무식하게 싹을 죽이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좀 더 나은 대중문화 환경을 향유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기 때문이죠. 물론 영화 자체는 그런 생각 따위일랑 걱정 많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저 신나게 '놀면서' 볼 수 있는 영홥니다.


p.s.2. 이 영화는 한국 대중음악의 '2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승우는 록 아티스트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가수 조경수의 아들. 만식 역의 차승우는 한때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렸던 미남 가수 차중락의 조카입니다. 아버지 차중광도 가수였죠. 또 록의 대부 신중현의 2세들인 신윤철과 신석철도 등장합니다. 잘 찾아보시길.^


p.s.3. 영화에 나오는 주간서울 이병욱 기자의 모델은 잘 알려진대로 타이거 JK의 아버지인 서병후씨(전 주간중앙 기자)입니다. 하지만 이 분은 이 영화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보기엔 이런게 시빗거리가 될까 싶기도 하고, 특히나 이 분이 대중문화에 정통하신 분이란 점에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반응입니다. 이 분의 항의로 결국 와일드캣츠라는 여성 그룹의 이름이 와일드걸스로 바뀌었다는군요.

서병후씨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01&eid=L0dCFk3/eDOtVynGoSZHNNdPgHP5Lbxu&qb=yLK058fRIL+1yK0goa6w7bDtNzChryC/1rDuu+ewxw==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노래, 'Land of 1000 dances'의 원곡입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윌슨 피켓의 노래죠. 이런 분위기의 음악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50초만 들으면, '아, 이 노래?' 하실만큼 유명한 후렴구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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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물론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나 정치적 발언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이은주에 이어 최진실마저 보내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이것이 과연 진정한 언론의 자유이자 표현의 자유인가 되묻게 됩니다.

인터넷에 유포되는 악성 글들은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이처럼 인터넷이 서로에게 소통의 장이 아니라 침 뱉는 장소가 된다면 우리는 차라리 아날로그로, 펜으로 편지 글을 쓰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면 우리는 그를 둘러싼 다양한 평가들을 원합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 감독들은 문화 권력이 너무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일방적으로 가 있지 않나 우려합니다. 창작자의 발언, 전문가인 기자·평론가의 발언, 그리고 관객인 네티즌의 발언이 고루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함에도 거의 일방적으로 네티즌의 파워에 쏠려 있는 불균형 상태를 심히 우려합니다. 때로는 막말과 인격 살해를 일삼는 그 네티즌이 과연 관객 전부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후략)."
('최진실을 보내며'. 10월2일 한국 영화감독네트워크 성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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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법'의 추진 움직임이 정치권의 화두가 됐습니다. 물론 어떻게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번 사건이 통칭 사이버 모욕죄의 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값진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최진실의 죽음의 원인이 100% 인터넷의 악성 댓글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항상 어리석은 사람들일 수록 100%냐 아니냐를 따지죠.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악성 댓글과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루머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의 인터넷 환경에 대해 문제점을 느끼지 않은 사람도 없을 듯 합니다. 수많은 댓글과 근거 없는 루머의 확산 채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둡고 습기가 차면 당연히 곰팡이가 핍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웅크리고 세상에 독을 뿜어내는 족속들에게 인터넷은 너무나 바람직한 환경이 됩니다. 슬쩍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익명성, 그리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좋다는 방임의 환경이 이런 곰팡이들을 천지에 피어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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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요 포털은 '최진실'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기사에 댓글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죽음을 맞은 연예인들의 경우 이런 식으로 댓글을 차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2년 전, 그러니까 이의정의 암 투병-복귀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들을 보고 하도 기가 차서, 이런 광경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당시 접촉했던 포털 홍보 담당자의 말은 이랬습니다. "인터넷은 자유로운 의사 교환의 장이며 댓글은 그 중요한 수단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댓글을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네. 아름다운 말입니다.

의사 표현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걸 근거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는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만연했다는 이런 광경을 연상시킵니다.

남자 A, 남자 B의 뒤통수를 친다.
B: 왜 때려?
A: 자유야.
B: 뭐?
A: 나한테는 너를 때릴 자유가 있어. 이제 해방됐으니 자유야.
B: 뭐가 어쩌고 어째. 오냐. 그럼 이 방망이로 너를 패는 것도 자유지? 맛좀 봐라.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실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라고 있는 것 중에서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자유'라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안에서, 혹은 부득이하게 피해를 줄 경우 타인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한도 안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 단군 이래 지금만큼 이 자유가 널리 보장된 적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언론과 출판의 결과물은 엄격한 법에 의해 배포 이후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명에훼손과 사생활 침해, 모욕죄, 업무방해죄 등에 의거해 언론의 잘못되거나 왜곡된 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떻습니까. 백화제방의 시대를 맞아 인터넷에서는 개인의 의견이 어떤 언론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됐습니다. "정선희 남편이 죽었는데 최진실이 왜 기절해?" "글쎄, 돈 빌려 줬었나보지"라는 식의 실속 없는 농담이 "최진실이 거액의 사채를 빌려줬다더라"는 어처구니없는 루머가 되어 돌아오는 게 인터넷 환경의 특징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남의 인격을 파괴하는 행위는, 고층 건물에서 창밖으로 볼펜을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볼펜에 맞고 누군가 죽었다면, 당사자는 책임을 져야겠죠. 그것이 사이버 모욕죄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아무런 죄책감이나 책임 의식 없이 툭툭 던지는 심한 말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그것이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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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존재하는 법규로도 어느 정도의 처벌(그래봐야 솜방망이지만)은 가능합니다. 제가 종사하는 분야가 이런 쪽이라 자주 봐 왔지만, 연예인에 대한 악성 댓글이나 허위 소문의 유포로 막상 경찰에 잡혀 온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하는 짓 또한 너무도 똑같습니다. "별 악의 없이 한 일이다.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지 몰랐다. 용서를 빈다." 그러고 나서, 해당 연예인이 '선처를 호소'하지 않으면 악플이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 재수없다. 지가 대단한 줄 안다. 다 팬들이 밀어줬으니까 오늘의 영화가 있는거지, 뭐 대단한 말을 했다고 안 풀어주고 **이냐?" 연예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안티 세력의 등장입니다. '안티가 많다'는 소문이 돌면 가장 큰 수입원인 CF가 끊기기 때문이죠. 결국은 아무리 심한 악플을 달아도 대개는 그냥 훈방해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최진실법이라는 것의 등장이 갖는 의미는, 여기서 거론하고 있는 사소하고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내가 이 행동으로 인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그 법으로 인해 처벌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든, 그런 인식의 확산이 무엇보다 절실한 순간입니다. 아니, 이미 2,3년 전부터 세상은 이런 조치를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게 그저 망자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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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글에도 아마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댓글들이 꽤 달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의 끄나풀답다" 뭐 이런 내용도 있겠죠. 그런 분들에게 하나 권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정당하다면, 어디에서 뭘 하고 사는 누군지를 밝히고 댓글을 달아 보십쇼. 어둠 속에 숨어서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바보같은 손가락질이나 하지 말고 말입니다.


p.s. 2. 최진실에 대한 보도 행태를 보면 사태가 사태인 만큼, 기자들도 예전보다 훨씬 조심하는 태도가 역력합니다. 하지만 일부 보도를 보다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한 기사가 가끔 눈에 띕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괴담에는 그녀가 동생을 바지사장으로 앞세워 사채업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또 돈 때문에 정선희를 안재환에게 소개시켜줬다는 루머도 나돌고 있다. 이른 바 '정략 중매설'이다. 안재환에게 빌려준 돈을 갚기 위해 돈을 잘 버는 후배 정선희를 결혼 상대로 소개시켜줬고 최진실의 의도를 알게 된 정선희가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게 루머의 요체다.

세 사람과 관련된 루머의 핵심은 최진실씨가 안재환씨에게 사채를 빌려줬다는 설. 증권가에 도는 소위 ‘찌라시’(온갓 소문을 모은 정보지)에서 출발한 이 소문은 최씨가 직접 돈을 빌려줬다는 것에서 시작해 바지사장을 내세워 대신 빌려줬다는 바지사장설, 새아버지가 사채업자라 새아버지를 통해 빌려줬다는 새아버지설 등으로 끈질기게 부풀려져 갔다.

이런 걸 쓰는 기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관련 기사를 쓰면서 '그 소문이란게 사실 이러이러한 것이고 이러이러하게 발전되고 있답니다'라고 그렇게 충실하게 독자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까? 오히려 기사가 루머 확산에 더욱 더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습니까? 혹시 망자에게 미안하지는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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