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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가요계를 악의 소굴로 생각하는 재야 가요 운동가라는 사람들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야말로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에 현재의 한국 가요계를 과연 '순위' 없이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든 순위를 '납득할 수 있는 기준'만으로 매길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차트인 빌보드 차트도 결코 판매량으로 매기는 차트는 아닙니다.

차트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과연 그나마 방송사만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차트를 만들 수 있는 기관이 한국에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실을 모르는 맹목적인 비판만큼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지난 1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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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왜 방송사는 가요 순위를 매기면 안되나?

MBC TV '음악중심'이 순위 발표를 포기했다. 이로써 한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가요에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그동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던 각종 시민단체들은 무척 속 시원해 할 일이겠지만 기자의 심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과연 TV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일각에서 주장하듯 가요계를 '정화'하는데 도움이 될까? 기자는 이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가요계의 비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동물원을 없애면 야생동물 남획이 사라지고 초등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으면 우등생과 열등생이 없어지는 평등한 사회가 된다는 식의, 지극히 단순한 논리의 소산일 뿐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공격하는 논리를 살펴보자. 비판자들은 가요의 순위 매기기가 비리의 온상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물론 방송은 대다수 가수와 제작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 중 하나지만 매주 발표되는 음반의 수에 비해 매주 방송에서 다뤄줄 수 있는 가수와 노래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이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가수들에게 있어 1차적인 문제는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그 다음 얘기다. 일단은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렇다면 비리 근절의 가장 좋은 수단은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방송에서 가요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되어야 한다. 1위냐 2위냐 순위를 다툴 수 있는 가수들이 전체 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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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를 매기든, 매기지 않든, 가요계의 비리가 이슈가 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무명의 신인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성 인기 가수들이 새 음반을 냈을 때,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인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제아무리 담당 PD가 자신의 귀를 믿고 훌륭한 신인을 발굴해도 어딘가에서는 잡음이 나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비리를 둘러싼 논란이 '순위'와는 사실 별 상관이 없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또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특정 장르에만 편중해 대중음악의 저질화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순위 매기기와는 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방송사의 자체 기준에 의한 출연자 선정에 외부의 입김이 개입됐을 때, '카우치 사건'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10대 취향의 음악에만 편중해 대중음악계를 왜곡시킨다'는 주장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의 축으로 지목된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한국에서 가장 대중의 지지가 높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그리고 현재 대중음악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은 계층은 바로 10대들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계층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 일이지,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을 뜯어고치자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런 주장을 드라마에 그대로 적용하면, '10대를 겨냥한 시트콤'같은 프로그램도 사라져야 한다. 과연 모든 드라마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일 필요가 있을까.

일각에서는 순위 매기기 자체가 가요계의 '상업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이런 주장에까지 응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방송사든 아니든 가요 순위가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 당장은 누가 인기가수이고 누가 인기가수가 아닌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지만,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난 뒤 누군가 한국 가요사를 정리하려는 상황이라면,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당시를 평가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음반 판매량도 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빌보드 차트가 그저 음반판매량 순위가 아닌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빌보드 차트가 지금의 권위와 명성을 획득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빌보드 지 편집진의 노력이 있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비판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TV 가요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공정한 순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존재가 음반 판매량과 방송 회수, 다운로드 회수, 전문가들의 평가 등을 종합해 방송사보다 권위있고 공정한 순위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보다 믿을만한 순위 작성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이런 중요한 과업을 일부의 비판 때문에 폐지해버린 방송사들의 단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끝)





이 글을 쓴지 2년이 돼 가지만 상황이 달라진게 있다면 지상파 TV 가요 프로그램들이 극도의 시청률 저하로 영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정도입니다. 가수들은 시청률이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해 인지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기존의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비정상적인 시각도 이런 현실을 만든 범인 중 하나일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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