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아무래도 가장 먼저 주목을 받는 것은 배우들입니다. 아무래도 최고의 수혜자들은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드라마의 진짜 주역은 작가연출가입니다. 아무래도 그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제가 양심에 가책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진짜 주인공을 꼽자면, 백미경 작가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분을 처음 뵌 것은 2014년 여름, 유병술 몽작소 대표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명 제작자였던 유병술 대표가 건네준 대본 표지에는 사랑하는 은동아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유병술 대표도 지금은 '사랑하는 은동아'와 '오 마이 비너스'를 거쳐 잘나가는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목만으로는 전혀 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본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어라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슬금슬금 온몸이 빠져들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용은 아시다시피 아주 새롭지는 않은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 고교생 현수와 초등학생 은동이는 운명처럼 만나 짧고 강렬한 애정을 느끼지만, 그걸로 인연은 끝이 나고 맙니다. 성인이 된 현수는 은호로 이름을 바꿔 톱스타가 되고(사실 유명해지고자 한 것도 은동이를 쉽게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은동이를 찾기 위해 자신의 자전적 일기를 출판합니다. 현수가 구술하는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줄 작가로 정은이 발탁되죠.

 

이쯤 되면 드라마 좀 보신 분들은 정은이 바로 어린 시절의 은동이고, 뭔가 사연이 있어서 현수가 은호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거다라는 건 충분히 짐작하실 만 할 겁니다. . 누구든 지금껏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 보거나 지켜봤을 법한 그런 내용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은동아는 달랐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줄거리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냥 박제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원초적이고, 때로는 적나라하면서 어느새 은동이가 현수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가슴이 벅차 오르고, 엉뚱하고 고집불통이면서도 순수한 어른 은호의 모습에 웃음보가 터져나오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당시 드라마 편성을 위한 회의 때 제가 한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제가 미친 것 같습니다. 전혀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았는데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미친게 아니었습니다. 빨리 어떻게 해 보자는 결론이 났고, 그때부터 대체 이 작가는 누구냐고 알아 보는 과정이 시작됐습니다. 신인이라는데, 도저히 신인의 솜씨는 아니라는게 공통된 의견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구 출신. 영어 학원 경영 경력. SBS 극본공모에서 단막극 강구이야기가 당선돼 제작된 바 있고, 현재 한 방송사 극본공모의 최종 결선에 작품이 올라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작품의 제목을 물어보고 다시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작품은 JTBC 극본공모에서도 수상 내정작으로 뽑혔는데...?” (아직 비공개작이라 여기서 제목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방송사들끼리 비슷한 시기에 극본 공모를 하면 응모하는 작가들은 누구나 양쪽 공모전에 모두 출품을 합니다. 수천개의 응모작 중에 수상작은 몇 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입상만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도 양쪽 모두로부터 입상하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워낙 심사하는 작품 수도 많고, 심사위원들의 취향도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드물게도 양쪽 모두 수상권에 들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저희보다 그쪽 방송사의 최종 발표가 빨랐으므로, 백미경 작가님의 대본은 그쪽 방송사의 수상작이 됐습니다. (방송국끼리의 관례상, 다른 방송사에서 먼저 수상작으로 뽑은 작품은 나중 수상에서는 제외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중복 시상은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약간의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그쪽 방송사에서 당선 즉시 그 작품을 미니시리즈로 제작하자고 제안해 온 겁니다. 저희 쪽은 저희 쪽대로 이태곤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하고 사랑하는 은동아의 제작을 진행하고 있던 터라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처음으로 백미경 작가님의 의리를 경험해보게 됩니다. “미안하지만 JTBC와 이미 이야기되고 있는 작품이 있다. 그걸 먼저 제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당선이 취소되더라도 감수하겠다.” 이게 신인작가에게 얼마나 어려운 결단인지, 업계에 계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결국 약속 엄수와 극본공모 당선을 맞바꾼 셈이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은동아는 세상에 나왔습니다. 시청률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화제성은 상당했습니다. 일반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에게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이 보통이고, 작가나 연출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대단히 이례적이지만 업계에서는 대체 이 작가가 누구냐는 소문이 폭풍처럼 지나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신인 작가로서는 특급 대우의 재계약이 이뤄졌습니다. “성적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쨌든 JTBC에서 데뷔했다는 걸 잊지 않을게요. 은혜는 갚을 날이 올 거에요.” 작가님의 멘트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첫번째 글에서 언급했듯, 2016년 초 백작가님은 다시 한 편의 대본을 건네주셨습니다(통상 이럴 때에는 시놉시스와 대본 1,2부가 같이 있습니다). 한국형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바로 이 대본입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주 종목이 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가, 스릴러, 성인용 멜로, 휴먼, 판타지…. 대개 한 장르에 능한 분들은 다른 장르에서는 약점을 보이곤 합니다. 하지만 힘쎈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가장 놀란 건 바로 장르를 넘나드는 힘이었습니다. 한 드라마 안에 로코와 스릴러, 판타지가 위화감 없이 공존하고 있었던 겁니다. 셋 중 두 가지는 몰라도 세 장르가 이렇게 사이 좋게 들어 차 있기는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사실 공개된 것이 이 정도일 뿐 실제로는 더 있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의 스릴러 부분은 시그널풍의 본격 수사물이라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는 미드 위기의 주부들을 연상시키는 시니컬한 심리 스릴러입니다. 게다가 제가 위에서 언급한 다른 작품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홈 코미디와 판타지의 조화가 돋보였습니다. 당대의 수많은 대작가들 가운데서도 제가 과문한 탓인지 이렇게 여러 장르에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분이라는 이야기를 빼놓으면 안 되겠으나, 아무리 이 블로그가 사적인 공간이라 해도 다 털어놓기에는 좀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튼 지난 1, ‘힘쎈여자 도봉순의 제작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머리를 식혀 가며 품위있는 그녀’ 20회를 탈고한(때로 천재들은 두어 가지 일을 번갈아 하는 것이 뇌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집필력은 범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단 두 작품으로 이렇게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솔직히 이 두 작품이 이 분의 대표작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누가 농담으로라도 이런 말을 하면 나 아이템(소재) 무한대인 거 알죠?” 하고 씩 웃을 분이기 때문입니다.

힘쎈여자 도봉순대본은 거의 끝나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 대본이 끝날 때에는 무척 서운하면서도 설렐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엔 대체 어떤 상상을 초월하는 대본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니까요.

 

P.S.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작가님의 스타일상 사진은 싣지 못했습니다. 아마 머잖은 미래에 어느 시상식장에서 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728x90

'힘쎈여자 도봉순'이 시작하기 전에, 만약 누군가 "야, 이 드라마 잘 될 것 같아. 한 4회 쯤에 8%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라고 했다면, 아마 칭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봤을 때 감히 기대하기엔 너무 높은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회만에 '힘쎈여자 도봉순'은 전국 8.3%, 수도권 8.7%라는, 저희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 성적을 냈습니다. 막연히 '잘 될 거'라는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밀려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감사드릴 곳이 너무 많습니다.

아울러 우리의 무적 삼각편대, 박보영-박형식-지수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도 참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이어서 -

솔직히 말하면 박형식을 남자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던 JTBC 드라마는 '힘쎈여자 도봉순'이 처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상류사회'의 박형식을 본 뒤로 푹 빠져들었습니다.

'상류사회'의 유창수는 참 독특했습니다. 신분(?)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인 알바 지이(임지연)를 사랑하게 됐지만 그녀와 결혼 같은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고, 오히려 자신과 결혼을 해야 하는 상대는 비슷한 재벌 집 딸인 윤하(유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창수는 알아차립니다. 자신은 그 '마음'을 무시하고 머리가 가리키는 대로 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물론 하명희 작가님의 캐릭터부터 독특했죠. 한국 TV 드라마에 등장했던 그 수없이 많은 남자 재벌 2세들 가운데 가장 싱싱한 재벌 2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게 없던 젊은 남자. 그런데 처음으로 마음과 생각이 따로 노는 상황을 맞닥뜨린 남자.

만약 박형식이 아닌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했더라면 절대 '왜 내 마음이 내 머리를 배신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라는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리한 배우가 아니라면 절대 그렇게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뒤로 수차에 걸쳐 - 남자 주인공이 필요할 때마다 - 제1후보로 박형식의 현재 상황을 체크했지만 그럴 때마다 스케줄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때에도 일단 박형식을 떠올렸지만 - 매우 길고 두터운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사전제작드라마 '화랑' 의 촬영이 진행중이었던 겁니다. 제작기간도 길고, 방송기간도 매우 긴.... (물론 박형식을 캐스팅하고 싶은 저희 심정에서 그랬다는 겁니다. 뭐 지금도 '도봉순 촬영 왜 이렇게 안 끝나냐'고 애태우고 있을 다른 제작진들도 있겠죠.^^)

어쨌든 정말 아슬아슬하게, 박형식의 출연이 결정됐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죠. 그리고 결과를 보면 박형식에게나 '힘쎈여자 도봉순'에게나 모두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안민혁은 엉뚱함과 따스함이 교차하는 쉽지 않은 남자입니다. 게다가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재력까지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꿈의 남자친구죠. 태연하면서도 의뭉스럽게 "뭘 그러고 서 있어? 짝사랑하는 남자 여자친구라도 본 사람처럼?", 이런 대사를 하는 박형식을 볼 때 우리는 그 안민혁의 현신을 보고 있습니다. 멍뭉커플 화이팅.

삼총사 중에서 마지막 빈 자리, 국두 역도 간단치는 않았습니다. 이 캐릭터에 대한 백미경 작가님의 애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국두는 원리원칙에 죽고 사는 엘리트 경찰이라는 기본 캐릭터 외에, 결국 봉순이와의 멜러에서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추억 속 첫사랑의 느낌을 살려야 하는 역할입니다.

이 대목에서 후보로 급부상한 배우가 바로 지수. 군인이나 경찰관의 느낌으로 잘 어울릴 배우이기도 했지만 사실 지수군은 JTBC에 약간의 빚(?)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방송된 '판타스틱'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죠.

당시 지수는 극중 박시연의 탈출구가 되는 연하남 검사 역으로 발탁됐습니다. 연기 경력으로 볼 때 다소 무리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막상 연기를 해 보니 순진하면서도 저돌적인 연하남의 이미지가 잘 어울렸고 박시연과의 케미스트리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 두 사람 사이에 본격적인 멜로드라마가 펼쳐질 대목에서 지수군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입니다. 급성 골수염 진단으로,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런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판타스틱'은 다급한 대본 수정이 이뤄졌고, 김현주-주상욱 커플 못지 않게 주목받던 지수-박시연 커플은 갑자기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겉도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한창 시청률이 오르고 있던 '판타스틱'에 제동이 걸린 것과 지수의 부상이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죠. 당시 '판타스틱' CP를 맡고 있던 터라,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다리로 서지도 못하는 환자를 어찌 할 수도 없고... 병원에 찾아갔을 때,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데 거기다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랬던 상황이라 '의리'를 앞세워 국두 역할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판타스틱'의 아쉬움을 씻어 보자. 다시 한번 JTBC와 함께 해 보는게 어떠냐?" 물론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런 정도의 설득이 먹혀들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의리의 사나이 지수는 다시 한번 한 배를 타는데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 자신에게도 '판타스틱' 때 못다 이룬 아쉬움이 못내 컸던 거죠.

 

초반 국두를 대표하는 대사들은 "아저씨,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에서 "남자는 다 개야!"에 이르는 순도 100%의 순정 마초 대사들이지만 뒤로 갈수록 국두도 마음 속 로맨스가 살아나는 역할을 연기하게 됩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국두의 변신, 기대하실만 합니다.

이렇게 해서, '힘쎈여자 도봉순'이 자랑하는 무적의 삼각편대가 완성됐습니다.

 

박형식이 91년생, 지수가 93년생으로 두 살 차이면 사회에 나가서는 사실 친구도 될 수 있는 나이지만 지수군은 어찌나 형을 좋아하는지(평소에도 뭐하냐고 물으면 '형들과 뭐 한다'는 대답) 바로 '형식이형'이 '우리 형'이 돼 버렸습니다. 보기에도 훈훈한 두 남자가 서로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촬영장 분위기가 나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아무튼 현재 두 배우 모두 자신들의 기대치를 100% 이상 달성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뭐든지 다 해주는 남자' 박형식에게 좀 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지만, 지수 또한 언젠가 국두의 과거 - '국두는 왜 하늘하늘한 여자가 좋다고 했을까' - 가 소개되면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과 함께 캐릭터가 한 단계 올라서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둘 사이의 뭔가 달달한 브로맨스도... 아쉽지 않게 준비돼 있으니 기대하시길.^^

 

P.S. 노파심에서 한마디 -

제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어설프나마 제가 이 드라마의 초기 세팅 과정을 잘 알고 있고, 나름 이 드라마 제작진을 대표하는 입장에서입니다. 글 내용에 나오는 것들을 모두 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거나, 내가 없었으면 이 드라마가 없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명 넘는 스태프와 연기자, 그리고 작가와 연출가가 피와 땀을 쏟습니다. 그 분들의 공로를 대변해서,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 중 흥미로울 부분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연기자들이 등장하는 화려한 드라마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728x90

 

 

[힘쎈여자 도봉순] 1회가 성원에 힘입어 JTBC 드라마 사상 첫회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수도권 4.04, 전국 3.8이라는 저희로서는 꿈의 숫자가 나왔습니다. 진정 작가님, 감독님, 스태프, 제작사, 그리고 모든 출연진에게 감사드립니다.

지난번 예고대로 드림 트리오의 결성 계기로 돌아갑니다. 박보영-박형식-지수를 저희는 무적 트리오라고 부릅니다. 그냥 단지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축이라서가 아니라, 본래 드라마의 구성이 '도봉순의 힘, 안민혁의 돈과 기발함, 인국두의 수사력과 활동력'이 삼각편대를 이뤄 악의 무리들을 물리쳐 간다는 흐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셋이 모여야 '정의의 편'이 완성되는 구조였던 것이죠.

물론 삼총사라고는 하지만 뭣보다 우선, 당연히 타이틀 롤인 도봉순 역에 누구를 기용하느냐가 최대 관건이었습니다.

일단 이 드라마의 어머니인 백미경 작가님과 처음 대본을 놓고 마주했을 때부터, '일단 육체적으로 강건해 보이는 늘씬한 건강미녀 스타일은 배제하자'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JTBC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외형적으로 연약해 보이고, 전혀 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스타일'이 필요하다는 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했습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도봉순은 단지 슈퍼히어로일 뿐만 아니라 한국 88만원 세대, 구직자 젊은이, 그 중에서도 여성 구직자를 대변하는 캐릭터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 귀여움이 필수. 당연히 체격도 크면 안 됨.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 나가다 보니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상적인 도봉순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보영이었죠.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도봉순 역으로 박보영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가 당시의 염원이었습니다. 검증된 연기력. 천부적인 귀여움. 아담한 체격.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폭넓은 인기. 어디 하나 부정적인 요소가 없었습니다. 다만 작품 보는 눈이 까다롭고, 워낙 찾는 곳이 많아 모시고 오기가 어렵다는 것 뿐.

그런데 다행히도, 이미 박보영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공동제작사 JS픽처스의 이경식 이사님이 일단 박보영 측과 교감이 있었고, 작품에 대한 호감도 형성시켜놓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곧 '최종 결심'은 아닌 상황이었죠. 아무튼 그 뒤로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캐스팅을 하다 보면 늘 그렇지만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정말 이 배우가 우리 대본을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좋아한다면 대체 얼마만큼이나 좋아하는 걸까.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그러던 어느날, 박보영과 친분이 두터운 어떤 인물과 우연히 통화를 했습니다.

그: 보영이가 요새 꽂혀 있는 대본이 있다던데요?

나: (헉) 그, 그게 뭔데요?

그: 제목은 모르겠고... 뭐 슈퍼우먼 이야기라던가? 여주인공이 힘이 엄청 세대요. 아무튼 재미있대요.

합창교향곡 4악장이 머리 속에서 울려퍼지는 느낌. 이거 되겠구나.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기쁜 예감은 머잖아 현실이 되었습니다. 작가/감독님과 함께 CD만한 얼굴의 박보영을 처음 만난 날. 차오르는 환희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냥 된거다. 이 다음부터 뭐가 어떻게 되든, 이 박보영/도봉순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수 있을거야. 뭐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죠. (백미경 작가님: 어쩌면 그렇게 예뻐요. 쳐다 보고만 있어도 질리질 않네.)

그날의 만남 이후에도 우리의 보영님을 노리는 수많은 마수(?)들이 뻗어왔지만(정말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제의가 쏟아졌습니다. 농담 아닙니다) 당대의 의리녀 보영님은 사악한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일편단심 도봉순을 기다려 주었고, 결국 우리는 박보영이 연기하는 최상의 도봉순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피데스스파티윰 김상유 대표님. 사랑합니다.)

촬영이 시작된 이후 우리의 보영님은 한번도 저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박보영이 모니터를 가득 채울 때, 이형민 감독님을 비롯해 촬영장의 모든 스태프는 추위도 잊고, 배고픔도 잊고(이건 아니고), 그저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거든요.

네. 글자로만 쓰여져 있던 도봉순의 이상을 200% 실사로 실현시킨 것은 바로 박보영이었습니다.

이미 드라마 본편 방송 전, '한끼줍쇼'를 통해서도 확인된 이 뽀블리의 위력.

박보영의 캐스팅 확정 이후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느낌에 헤벌레 하고 있었지만 사실 두 사람의 남자 주인공이 필요했습니다. 도봉순을 둘러 싼 두 남자, 안민혁과 인국두. 잠시 프로필을 살펴봅니다.

안민혁: 재벌가 5형제의 막내지만 부모 덕 안 보고, 게임 회사를 창업해 어린 나이에 자수성가에 성공한 능력자. 거기에 완벽한 꽃미남이지만 또 그런 만큼 오만불손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관심이 없음. 그리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괴상한 사고방식의 소유자. 대 저택 지하에 AV룸+게임룸+지하 방공호 개념의 던전을 짓고 남자의 꿈을 실현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상식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존재 봉순에게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은 어느새...?

인국두: 완벽한 외모와 신체조건에 경찰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능력자. 성장 과정 내내 주위의 선망을 한몸에 받았던 엘리트. 피아노도 잘 치고 각종 무술에도 능함. 하지만 정의감이 지나쳐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고위층을 수사하는 똘끼를 발휘하는 바람에 좌천돼 집 근처 경찰서 수사팀으로 배치. 봉순의 초중고 동창이며 오랜 시간 봉순이 꿈꿔온 이상형. 다만 여자친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봉순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쌀쌀맞게 딱딱 끊는 철벽남. 알고 보면 츤데레...?

이 두 남자를 데려와야 환상의 트리오가 만들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특히 시장엔 정말 남자 배우 기근이 심각하고... 어떤 배우들은 1,2년 전부터 스케줄이 잡혀 있고... 더구나 영화 쪽에서는 '뭉쳐야 뜬다'는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웬만한 주연급 배우들이 한 영화에 3,4명씩 잡혀 있기도 하고....

(정말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특히 '신과 함께' 같은 영화는 정말 생태계 파괴의 주범입니다. 영화 한편에 이정재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디오를 묶어놓고 있으면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근데 재미있긴 하겠다.)

아무튼 너무 길어져서 남자들 이야기는 다음편에 하겠습니다.

 

P.S. 힘쎈여자 도봉순은 아직 안 깐 패가 너무 많습니다. 일단 웃음의 핵심병기 임원희 김민교는 아직 등장도 안 했고, 동네를 공포에 몰아넣는 연쇄 납치범 이야기도 이제 시작. 아울러 민혁을 위협하는 협박범의 정체도 아직 기미도 안 보이죠. 게다가 뒤로 가면 오돌뼈라는 신비의 인물(?)도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이제 시작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P.S.2. 아울러 특별출연해주신 JTBC 1등신부감 아나운서 강지영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728x90

[급하게 썼다가 오타가 많아 몇군데 수정했습니다. 낯이 뜨겁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이 곧 방송됩니다. 사실 [힘쎈여자 도봉순]은 태어난지 좀 되는 아기입니다. 벌써 1년 전인 2016년 어느 봄날, '사랑하는 은동아'의 백미경 작가님이 대본을 한번 읽어 보라며 주셨습니다. 한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작가님의 2015년 작품인 '사랑하는 은동아'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일찌기 한국 드라마에 없었던 여성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탄생해 있었더군요.

'여성 슈퍼히어로 드라마'라고 구별해서 썼지만 사실 한국 드라마 가운데 변변한 남성 슈퍼히어로 드라마가 있었느냐 하면 뭐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몇몇 시도가 있었지만 '이것이 한국에서 방송된 히어로 드라마다'라고 할만한 작품은 없었다고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굳이 꼽자면 '홍길동'이나 '전우치' 같은 전통적인 영웅들의 활약을 다룬 작품 정도? '인간시장'의 주인공 장총찬을 슈퍼히어로라고 놓기는 좀 불편합니다. 영화까지 영역을 넓혀 봐도 류승범 주연의 '아라한 장풍대작전' 정도가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강동원 주연의 '초능력자'가 있지만 주제 면에서 일반적인 히어로 무비와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대체 왜 한국에는 그런 드라마가 없었을까...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물론 반성이 앞섰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드라마 소재란 이런 것'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이죠. 확실히 우리 드라마의 소재는 좀 더 다양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날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막장 드라마 계열도 새로운 시도에 인색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무슨 생각을 하다가,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전혀 예기치 못한 작품이 하나 툭 튀어나오긴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한국 드라마는 정말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은 심지어 한국 상황에 매우 적합한 슈퍼히어로 드라마였습니다. 일단 '힘쎈 남자'가 아니고 '힘쎈 여자'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이때 저는 감히 '욱씨남정기'라는 드라마의 cp를 맡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에 매료된 것도 사실 '강한 여자' 라는 테마가 지금의 한국 드라마에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생각대로 '욱씨남정기'는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에서 '욱씨'역을 맡았던 이요원도 뜨거운 찬사를 받았습니다. 강은경-주현 작가님이 숨을 불어 넣은 캐릭터가 이형민 감독님의 손끝을 거치면서 21세기 한국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죠.

무엇에 대한 공감일지는 너무도 자명했습니다. '욱씨남정기'의 승부는 '사이다'에 있었던 것이죠. 직장에서도 약자, 그러다 집에 오면 엄마이자 주부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것이 여자. 상사-남편-부모, 심지어 자식까지 포함해도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는 시청자들에게 이요원이 연기한 욱다정(옥다정)은 그야말로 냉장고에서 갓 꺼낸 사이다 자체였을 겁니다(네.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여기서 추정으로 바뀝니다).

'할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그러면서도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 사실 '여자가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싸가지 없다고 욕을 먹는 현실까지 잘 반영돼 있었습니다 - 욱다정은 진정 독보적인 캐릭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흥미로운 캐릭터를 발견하게 됐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욱다정 이요원이나 '직장의 신'의 김혜수가 '못하는 게 없이 완벽한' 직장형 슈퍼우먼이라면 도봉순은 사실 힘이 세다는 것 외에는 전혀 슈퍼우먼스럽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도봉순은 단란한 가정에서 쌍둥이 남매 중 누나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기대는 서울대 의대를 간 쌍둥이 남동생에게 '너무나 당연히' 쏠렸고, 공부머리가 부족한 봉순이는 그저 그런 학력으로 그저 그렇게 사회에 나왔지만 결국은 길고 긴 구직자의 대열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봉순이가 학교에서 뭘 전공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봉순이의 꿈은 게임 제작자. 자신을 닮은 캐릭터를 활용해 대박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열심히 스펙을 쌓...으려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전문용어로 구직자. 구체적으로 말하면 백수입니다.

누가 봐도 도봉순의 가장 큰 강점은 넘치는 힘 - 달리는 버스를 세울 수 있을 정도의 힘입니다 - 입니다.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 때부터, 엄마에게서 딸에게 수백년에 걸쳐 대물림되어 온 신비로운 힘이죠. 하지만 봉순이는 이 힘을 장점으로 활용할 의지도, 환경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힘이 센게 왜 나빠?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지만, 사실 봉순이의 힘은 일종의 은유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여자가 무식하게 힘만 세서 뭐하게!'라는 봉순이 엄마의 등짝 때리기 신공도 나오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힘을 써서 괴롭히다가 천벌을 받은 조상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만 이런 건 어디까지나 드라마를 위한 장치들이죠. 이 드라마에서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남자들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참고 살아야 했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봉순이의 '넘치지만 감춰져야 했던 힘'은 바로 그 '참고 살아야 했던 여자들의 능력' 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힘쎈여자 도봉순'은 원더우먼이나 엘렉트라 같은 우먼 히어로 이야기와 결별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냥 비슷한 힘쎈 여자 이야기지만, 그냥 그 힘쎈 여자가 나쁜 놈들 혼내주고 다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힘쎈여자 도봉순' 은 스물이 한참 넘도록, 넘치는 슈퍼 파워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 힘을 어디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늘 자신감 없이,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이 살아온 봉순이가 어느날, 몇 차례의 만남과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쓰여야 할지를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남들보다 빼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던(심지어 상당수는 자신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온) 한 젊은이가 진정한 자기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도봉순이 여자다 보니 이 '힘'은 글자 그대로 물리적인 힘으로 드라마 안에서 활용됩니다. 예를 들면 '약한 여자' 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일들이 요즘 특히 많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밤길 함부로 다니기 무섭고, 술 마시고 집에 가는 택시 혼자 타기도 무섭고(얼마전 목포에서 무서운 일이 있었죠),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 않는다고 막말하는 나이 헛먹은 할아버지들이 무섭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막무가내로 팔목 잡고 집에 못 하게 할 때 무섭고, 여자 혼자 산다고 방범창 뜯고 들어오는 동네 미친놈이 무섭고... 그런 세상에서 봉순이의 힘은 시원한 대리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요소일 겁니다. (네. 우리 드라마에서 봉순이는 이런 '놈'들을 아주 시원하게 응징해 드립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볼수록 '힘쎈여자 도봉순'은 반드시 드라마로 만들어야 할 대본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아, 물론 이런 대의를 갖고 있는 드라마라는 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죠. '힘쎈여자 도붕순'의 대본은 일단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봉순이를 가운데 놓고 벌이는 게임회사 사장 민혁과 엘리트 형사 국두의 일진일퇴 공방전도, 봉순이 가족들의 알콩달콩한 분위기도, 그리고 봉순이의 초반 주적(?)인 건달 백탁 일파의 황당무계한 행각도 흥미로웠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백미경 작가님은 데뷔작인 '사랑하는 은동아' 같은 심각한 멜로 드라마 때도 넘치는 유머감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잊지 못할 코믹 명장면들을 만들어 냈던 분입니다. 그런 양반이 이번엔 맘 먹고 코믹 드라마를 쓰겠다고 내놓은 대본이니 뭐 그런 쪽으로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가 딱 맞는 표현입니다.

 

 

이 드라마를 제대로 만들어 주실 분은 누구일까....는 사실 그리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현재, 리얼 타임으로 '욱씨남정기'로 매주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던 이형민 감독님이 바로 곁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네. 왕년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만드신 거장 맞습니다. 바로 그분이 코믹 장르에도 눈을 뜨시고 만든 작품이 바로 '욱씨남정기' 입니다. 이형민 감독님도 OK를 하시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도봉순은 누가 해야 할 것인가...인데, 이것 역시 사실 긴 고민이 필요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 배우를 데려올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죠.

(너무 길어져서 접습니다. '무적의 트리오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에 대한 글은 다음번에...)

 

728x90

 

 

 

JTBC 개국 이후 드라마 몇 편의 책임프로듀서를 맡아 봤지만 단 한번도 캐스팅이 쉬운 적은 없었습니다. 좋은 대본을 찾는 일은 물론 어려운 일이고, 좋은 기획을 대본으로 발전시키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드라마 한 편을 같이 만드는 백여명의 스태프 중 어느 한 자리 '정말 좋은 사람'을 구하는 일 중 간단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드라마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장 힘든 일'이 뭐냐고 물으면 아마 십중팔구는 '캐스팅'이라고 할 겁니다.

 

어떤 프로듀서도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방송국에서 원하는 캐스팅이 안 되고 날짜는 가고 있으면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잠을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가 않다"고. 그런데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도 똑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본과 훌륭한 연출이 있어도, 좋은 배우가 붙은 상태와 붙지 않은 상태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훌륭한 대본은 아주 유명한 배우가 없어도 그 빛을 발휘합니다. 내로라하는 톱스타가 출연해도 망하는 드라마들이 많고, 반대로 무명의 신인들이 혜성처럼 나타나 드라마도 살리고 자신도 몸값을 높이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죠. 하지만 만약 그 대본에 정말 지명도 있는 배우들이 붙었다면, 그건 정말 대박이 났을 겁니다.

 

유명한 배우의 힘은 일단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요즘 TV 드라마의 경쟁자는 다른 채널 드라마가 아닙니다. 일단 채널 자체도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TV 외에도 스마트폰이나 IPTV, 그리고 수많은 다른 엔터테인먼트들이 경쟁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초반에 '어? 재미있어 뵈는데 한번 볼까'하는 생각에 들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행히도 저희는 '판타스틱'을 준비하면서 주상욱김현주라는, 믿을만 한데다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들을 주인공으로 기용할 수 있었습니다. 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캐스팅에는 설득이라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릅니다. 그리고 두 배우 모두 지난한 설득 끝에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됐습니다만, 주상욱이 망설인 이유 중에는 "어떻게 연기해야 좋을지 잘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몇개 있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발연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본으로 이 드라마를 접한 사람들은(아, 물론 무식한 저만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다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발연기가 뭐가 어려워?' 잘 하는게 어렵지 못하는게 뭐가 어려울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하고 1주일 안에 드디어 그 '발연기'를 눈앞에서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2부의 '대본 연습' 신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극중 드라마 작가 소혜(김현주)가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던지며 대본을 자기에게 맞게 수정해 달라는 해성(주상욱)에게 짜증이 나서 '킬러의 고뇌를 눈빛으로 연기하는' 고난도 감정 신을 쓰고, 대본 연습을 요청해서 해성을 망신시키려 하는 내용입니다.

 

신이 나서 대본을 읽어보던 해성은 마침내 감독과 상대역 여배우 앞에서 얼어붙고, 상대역 여배우는 그 자리에서 역할에 몰입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을 보다가 긴장한 나머지 평소보다 더 심한 발연기를 폭발시킵니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보다가 아, 왜 저 장면이 어렵다고 한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상욱은 해성의 캐릭터를 분석해 보고, '한류 톱스타가 할 수 있는 선의 발연기'를 구현하려 고민했기 때문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죠.

 

보통 사람들이 '발연기'를 생각하면 흔히 장수원의 '로봇 연기'를 떠올립니다. 이 '로봇 연기'는 그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아예 다른 하나의 장르로 간주해야 할 부분이지만, 아무튼 극중 해성이 로봇 연기를 보여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류해성은 아시아권의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는데, '로봇 연기'로 그런 자리에 갈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막상 주상욱의 연기를 보고 있으니 그 '한류스타의 발연기'라는 것이 오히려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적게는 2%, 많게는 5% 정도 부족한, 아주 끔찍한 연기도 아니면서 절대 잘 한다고는 할 수 없는, 그래서 뭔가 명연기를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딱 좋은, 절묘한 선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연기였습니다.

 

이 장면은 아마 방송으로 익히 보셨을테니 메이킹 영상을 가져 옵니다.

 

 

 

 

 

 

이 발연기 장면은 3부에서도 선배 배우 박원상의 지도를 받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아무튼 그 뒤로 인터넷에 기사가 뜰 때마다 '발연기 장인'이라는 별호가 주상욱에게 붙는 걸 보고 역시 큰 노력은 누가 봐도 확연히 보인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 호흡은 누가 뭐래도 마에스트로급입니다. 정말 요소 요소에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회 '발연기'와 '깨방정'으로 분위기를 살려 주는 주상욱이 큰 주목을 받으며 노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 관계자로서 참 흐뭇한 일입니다. 

 

 

 

 

 

 

P.S. 그런데 이 주상욱의 기막힌 발연기 연기가 중국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안타깝습니다. '한국에서 발연기로 소문난 배우가 중국에서는 우상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은 중국 시청자들이 발연기와 명연기를 구별할 줄 모른다고 비웃은 것 아니냐'는 느낌을 받으신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저희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한 이야기입니다.

 

문득 개인적인 경험이 떠오릅니다.

 

몇해 전에 홍콩에서 방송학을 강의하시는 여교수님 한분과 우연히 저녁 자리에서 만난 일이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조예가 깊었던 이 분은 저를 보더니 이런 저런 덕담을 하다가 "한국 여배우들은 어쩌면 그렇게 다들 예쁜 것 뿐만 아니라 연기까지 잘 하느냐. 연기 못하는 배우가 없는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누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더냐"고 물었더니 이 분이 그 자리에서 줄줄이 십여명의 이름을 대는 겁니다. 이영애, 송혜교, 김태희, 김희선, 수애, 최지우, 전지현, 하지원.... 그랬더니 자리에 있던 다른 분이 웃으면서 "그러냐. 그런데 지금 말한 여배우들이 모두 얘기하시는 것만큼 명배우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보기엔 중국 여배우들이 훨씬 더 연기를 잘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좌중의 많은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랬더니 이 교수님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누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더냐"고 반문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장만옥, 유가령, 관지림, 서기, 이가흔, 장백지, 판빙빙..."이라고 어렵지 않게 중화권 여배우들의 이름을 댔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막 웃으면서 "그런가요? 내가 보기엔 장만옥 외에는 다 별론데..." 라고 하시더군요.

 

 

 

 

이런 시각차에 대해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하다가 그날의 결론은 1) 남의 떡이 커 보인다 2)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연기력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사실 2)는 우리가 평소에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남자 주인공들 가운데서도 조니 뎁이나 조지 클루니가 명배우로 꼽히는 반면, 키애누 리브스나 매튜 매커너히, 올란도 블룸은 수시로 관객들이나 평론가들로부터 '발연기'라고 혹평을 받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배우들은 전 세계적으로 전자의 배우들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죠. 특히나 비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은 저 배우들의 연기력이 혹평의 대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아 그래?' 하는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역시 언어의 장벽이란 이럴 때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중국 시청자 여러분들이 혹시 이 글을 접하시게 된다면(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만), 저희는 중국을 비하하려는 생각 따위는 손톱만큼도 없었다는 점을 좀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에서 인기는 높지만 발연기로 놀림 받는 배우가 중국(혹은 일본, 혹은 대만, 혹은 브라질)에서 인기를 얻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 배우가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다는 설정 자체가 불쾌하시다면 그건 어쩔수가 없겠지만, 요즘처럼 문화 교류가 빈번한 시대에는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극중 해성이 중국에서 환대 받는 장면은 최근 중국 스타 허위주(许魏洲, 쉬웨이저우)가 내한했을 때 인천 공항에서 펼쳐졌던 대대적인 환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만약 호가(胡歌, 후거) 같은 배우가 내한한다면 환영 인파로 정말 큰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오해는 말아 주시길. 늘 얘기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대신 그냥 재미있게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P.S. 2. 주상욱의 연기와 함께 꼭 같이 거론됐으면 하는 분은 바로 이분. 둘의 케미는 진정 환상입니다.^^

 

 

 

728x90

드라마가 무슨 시사회야... 하시던 분들. 제대로 했습니다. 서울에서도 극장가의 코어,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드라마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바로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 얘깁니다.

 

사실 배우들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 드라마는 제때 만들어서 방송 내기 바쁩니다. 바빠서 죽을 새도 없고, 밤을 밥먹듯 새 가며 납기일 맞추는 게 제격입니다. 게다가 극장에서 시사회를 하려면 대관해야지, 조명 마이크 시설 갖춰야지, 영상이 제대로 재생되는지 영상 플레이도 체크해야지, 음향도 알아봐야지, 정말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치고 제대로 작정해야 가능합니다. 물론 앞에서 말씀드렸듯, 본방 거의 1주일 전에 1회를 완성에 가까운 형태로 내놔야 한다는 짐이 제작진에게 떨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 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 행사를 기획한 JTBC 홍보마케팅팀과 영상을 만들어 주신 조남국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행사는 결국 아주 단순한 니즈, 즉 "어떻게 하면 드라마를 방송 전에 널리 알려 볼 수 있을까"하는데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극장에서 시사회를 해 보자는 거였죠. 물론 전에도 비슷한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제대로(사실은 티켓을 팔아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대형관에서 팬들과 몇몇 관계자들, 파워블로거들을 초청해서 해 보자는 생각을 한 겁니다.

 

 

 

뭐 기왕 판을 벌인 김에 이런 등신대 패널을 설치해 팬들이 사진 찍을 수 있는 플레이스를 만들었고

,

 

입장할 때 팬들이 써 넣은 사연에 따라 소원 들어 주기 이벤트도 진행했습니다.

 

 

 

 

이날 이벤트에서 특히 잊을 수 없는 한 분이 있습니다.

 

 

 

 

주상욱씨 팬 중에 "제 눈을 보고 제가 어디가 예쁜지 말해주세요"라는 사연을 쓰신 분.

 

 

 

 

다 쓰러졌습니다. ㅋ (얼마나 예쁜 분이었는지는 상상에...)

 

 

굳이 길게 말로 하는 것보다, 대체 어떤 행사였는지 직접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다행히 관객 반응도 좋더군요. (행사에 대한 반응 말고 드라마에 대한 반응^^)

 

 

 

 

 

박수갈채 속에 상영이 끝나고, 행운권 추첨 이벤트까지 이날의 행사가 끝났습니다.

 

 

아, 이미 앞에 감사 인사는 JTBC 홍보마케팅팀과 조남국 감독님에게 드렸지만 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JTBC의 장남 장성규 아니운서. 이날 제작발표회에 이어 시사회까지 환상의 진행 실력을 뽐냈습니다.

 

요즘 인터넷방송 '짱티비씨'로도 인기 폭발입니다.

 

짱티비씨 보실 수 있는 곳은 페이스북의 https://www.facebook.com/JjangTBC  여기나 http://afreecatv.com/jjangtbc 

 

 

 

영상을 퍼올까도 생각해봤지만 지금 짱티비씨는 짱티비씨고,

 

주제는 판타스틱.

 

혹시 그동안 판타스틱 예고 한번 못 보신 분이 있다면 엑기스를 드립니다.

 

옛다.

 

 

 

 

 

에... 아무튼 재미있다는 이야기고요.

 

첫 방송은 9월2일 금요일 밤 8시30분.

 

앞으로 두어달 동안 여러분을 흥분시킬 그 드라마입니다.

 

 

 

 

 

본방사수!

 

 

 

728x90

 

 

'판타스틱'이라는 대본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이 드라마가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그 다음은 불치병이라는 소재를 전혀 무겁지 않게 다뤘다는 점이었습니다. 작가와 톱스타라는 남녀 주인공의 구도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암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국내 드라마 중에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자세를 유지했던 드라마는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판타스틱'의 주인공 이소혜는 인기 드라마 작가. 어렵다는 장르 드라마에서 연속 히트를 기록하며 시청자들에게는 '갓소혜'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런 소혜는 드라마 속 시한부 인생 대목의 자문을 위해 암 전문의 홍준기를 자주 만나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자신이 바로 유방암 말기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소혜.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돈도 꽤 벌고 직업인으로서 기반은 굳혔지만, 버는 족족 돈은 가족들에게 들어갔습니다.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는 언니네가 들어가 살고 있고, 자신은 작업실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죠. 결혼은 커녕 연애도 언제가 마지막인지 가물가물.

 

이렇게 인생을 끝낼수 없다고 결심한 소혜는 마지막 나날을 화려하게  불살라 보기로 결심합니다. 10년 넘게 연락이 끊긴 친구들을 찾아내고, 평소 전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들에 도전합니다. 그러는 사이, 오래 전 뭔가 관계가 맺어질 뻔 했던 류해성이 드러내놓고 자신에게 대시해 오고, 주치의인 홍준기도 "우리 사귀는게 어떠냐"고 제안해 옵니다. 심지어 홍준기는 현재의 삶을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암 환자입니다.

 

진작들 나타났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무튼 인생이 마지막 나날이 외롭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 아무튼 이렇게 해서 두 남자와 썸 타랴, 자신의 유작이 될 것 같은 드라마 집필하랴, 소혜의 분주한 나날이 이어집니다.

 

어쩌면 작가 본인의 판타지로 보이는 이 내용(연출자 조남국 감독은 이성은 작가에게 "본인이 하고 싶었던 연애 내용이 다 들어가 있는 거냐"고 대놓고 얘기하십니다 ㅋ) 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라는 점에서 볼 때 김현주와 주상욱은 최상의 조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따질 땐 따박따박 따지고 바늘끝처럼 신경이 예민한 여자이면서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 소혜 역이라면 누가 봐도 김현주가 적격입니다. 나이는 먹었지만 마음 속은 어린이인 철없는 한류 스타 역할을 주상욱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도 드물죠.

 

특히나 팬들 앞에서는 허세 가득한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과시하지만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에게는 애교 덩어리. 겉으로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마음 속은 히트맨 아닌 '히타맨'인 남자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면 더욱 그럴 겁니다.

 

 

 

캐스팅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지만(누군가 말했습니다. "캐스팅만 안 해도 되면 드라마 프로듀서는 신의 직업"이라고), 어쨌든 두 주인공이 결정된 뒤에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습니다. 왕년의 거칠 것 없는 여고 퀸에서 지금은 거대 로펌 오너의 아내로 숨 죽여 살고 있는 백설 역을 박시연이 맡게됐고, 백설로 하여금 답답한 현실을 박차고 역시 자기의 삶을 찾게 하는 연하의 남자 상욱 역에 지수가 캐스팅됐습니다.

 

사실 순서상으로 가장 먼저 캐스팅된 사람은 의사 홍준기 역의 김태훈입니다. 무시무시한 연기력 덕분(?)인지 그동안 이상성격의 인물들 역할을 자주 맡는 바람에, 저는 이 배우의 진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동안 보여지지 않았던 엉뚱한 김태훈의 면모가 드러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캐릭터들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영상. 저 다섯 주인공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깨알같은 "이거 너무 잘생긴거 아니야?" ㅋㅋㅋ

 

 

 

 

 

 

생각해 보면 올해만큼 사회 각계에서 '여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해도 별로 없었던 듯 합니다. 각종 혐오 범죄와 여혐 논란, '미러링'이라는 생소한 단어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펼쳐졌고, 그런 가운데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이어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등장한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사회 전반에서 '유리 천장'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을 예견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저희는 올해 '여성'이 뭔가 중심에 오는 이야기들에 계속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냥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대해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여성, 세상을 자기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여성, 사랑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여성,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이야기가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욱씨남정기'의 욱다정 이요원이었고, 배경이 조선시대이기는 합니다만 '마녀보감'의 연희도 저주와 운명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줬습니다. '청춘시대'의 다섯 주인공 역시 아직 미생의 존재인 여대생들이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눈치 채셨겠지만 '죽음을 앞두고서야 생활로부터 해방된 여자'의 이야기는 '여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한국 사회의 모든 성인들은 사회에 나서는 순간 주위를 둘러 볼 여유 없이 '앞으로 앞으로' 자전거 페달 밟기를 강요당합니다. 다리를 멈추는 순간 자전거가 쓰러지고 너는 낙오된다는 교훈 속에서 수십년간 훈육된 결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시한부 진단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자녀 있는 분들에게는 큰일 날 얘기죠.^^) 

 

 

아무튼 '판타스틱'은 넓게 보아 남자든 여자든 '생활로부터 벗아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작은 판타지입니다. 어떤 계기에서든 조금 여유를 가지고, 그 지긋지긋한 생활의 쳇바퀴에서 살짝 내려온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잠시 즐겨 보는 것이 힘든 일상에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P.S. 이 드라마 1,2회를 보시고 나면 옛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질 겁니다. 문득 한참 떠올리지 않았던 이름들을 찾아 보고, 전화번호가 011이나 016으로 되어 있어도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다들 살기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728x90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청춘시대' 티저에 쓰였던 윤동주 시인의 시 '병원' 입니다. 이미 대본을다 읽은 뒤였기 때문에, 티저에 들어간 저 싯구절이 더욱 적확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청춘시대'를 본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예상대로, '너무 자극이 약하지 않느냐' '전개가 느리다' '대체 누가 남자 주인공이냐'는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기간이 지나고, 서서히 이 드라마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두 가지 정도의 이야기가 폭발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이 드라마에 굳이 주인공이 있다면 주인공일' 윤진명, 즉 한예리의 지독한 불행입니다. 그 불행이 단적으로 나타난 장면은 지긋지긋한 알바와 그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든 매니저의 갑질이 아니라, 어느날 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윤진명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복도. 바닥에 주저앉은 어머니는 "수명아, 그동안 엄마 불쌍해서 못 간 거지? 내가 안다. 우리 아들. 6년 동안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를 되뇌며 주위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 어디선가 다가온 의사는 말합니다.

 

"걱정마십시오. 안정됐습니다."

"...?"

"바이탈이 안정됐습니다."

"예?"

"원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서 침묵하는 어머니. 어떤 어머니들에게든 '아들의 죽음'보다 절망적인 상황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지만 '청춘시대' 4회의 이 장면은 아들의 죽음보다 더 큰 절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들의 죽음에 오열하던 어머니가 '아들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말에 고개를 떨궈야 하는 무서운 상황입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던 윤진명은 어머니의 시선을 외면하고 돌아서 가 버립니다. 그리고는 박재완(윤박)에게 '날 좋아하지 말라'는 말을 던지고 집(벨 에포크)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눈물을 보입니다. 우는 이유는 "삶이 고달파서"가 아니라 "손톱이 빠진게 너무 아파서".

 

스물 여덟의 대학 졸업반. 세 군데 알바를 뛰어야 간신히 이어갈 수 있는 삶. 항상 바라보고 있는 두 사채업자의 그림자. 병원에 누워 있는 식물인간 남동생. 그 손을 놓지 못하고 빚만 쌓아 가고 있는 어머니. '절망적'이란 말 하나로 설명하기 힘든 한 여자의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의 어깨를 눌러 옵니다.

 

어쩌면 이런 무게를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그 이유로 이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실은 그래도 윤진명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람들이라야 이런 드라마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도 있겠죠. 아무튼 그 '절실함'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때립니다.

 

 

 

 

 

 

 

또 하나의 동력은 막내 유은재(박혜수)의 첫사랑입니다. 은재가 은근히 좋아하는 복고풍 미남(대본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그런 유은재가 귀여워 미치겠지만 그 눈치없음에 환장할 것 같은 선배 윤종열(신현수). 이 구도가 너무나 깜찍했습니다.

 

과연 요즘의 스무살 안팎 청년들이 아직도 저렇게 깜찍하게 연애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 유은재와 윤종열의 모습은 '요즘 대학생'이라기 보다는 한 10여년 전 대학생들의 모습과 더 닮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아직 철이 덜 든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처음 다가가 보여주는 동작이 상대에겐 '시비 걸기' 내지는 '사소한 일로 꼬투리 잡아 괴롭히기'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특히나 상대가 경험이라곤 저혀 없는 초짜 중의 초짜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둘의 연애는 시작하기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것을 시청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콧물 흘리는 모습조차도 귀여운 박혜수, 그 박혜수를 자기도 어찌할 줄 몰라 바라보지만 어쨌든 너무 귀여워서 죽을 것 같은 신현수. 두 배우의 매력이 이 드라마를 살린 원동력 중 하나라는 건 아마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사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리얼한지'에 대해서는 큰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는 2016년의 진짜 대학생들 이야기이기 보다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진짜 순수했던 그 시절'의 그림에 더 가까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젊은 배우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아마도 매우 중요한 한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드라마를 떠올릴 때마다 그 배우들은 시청자들과 함께 시공을 넘어 누구에게나 있을 '젊은 날'의 기억을 공유하게 됐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태곤 감독의 세심한 연출은 그 공감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해서 몇 회 남지 않은 '청춘시대'. 일단 이 드라마는 12회로 끝나지만 이 끝이 그냥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어디 가서 이만한 완성도의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정확히 언제가 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디서든 윤진명, 강이나, 정예은, 송지원, 유은재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될 날을 은근히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부터는 한껏 웃으면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판타스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728x90

 

그러니까 대략 거의 1년 전 일입니다. 어찌 어찌 하다가 '벨 에포크'라는 대본을 받아 보게 됐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박연선 작가님의 작품이라 두 손으로 고이 받들어 읽어 봤는데(당시엔 5부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1부 읽고 나면 2부가 궁금하고, 2부 읽고 나면 3부가 궁금하고, 아무튼 그래서 순식간에 5부까지 읽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또 뒷 얘기가 궁금하더군요.

 

하지만 팬으로서의 자세는 자세고, 일단 냉정을 되찾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어디 있지? 로맨스는? 연애 상황에서의 긴장감은?' 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뭐 당연합니다. 원래 없었으니까요. 뜯어볼수록 정말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혹시 1년 전이라니까 엄청나게 옛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드라마 제작에서 1년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농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태양의 후예'와 '닥터스'의 원본 대본은 이미 5년 전에 나와 있었습니다.)

 

 

 

 

사실 용기의 문제였습니다. 네. 위에 말한 '드라마의 흥행 요소들' 없이도 잘 되는 드라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꽃같은 여대생 다섯이 한 집에 사는 이야기'라면 시청자들이 기대할 만한 상업적인 요소는 굉장히 적은 드라마가 분명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잠시 오고 가다가 어찌 어찌 해서 이 드라마는 다른 방향을 타게 되고, '그래, 좋은 대본은 다 임자가 있는 거구나' 하고 미련을 접었드랬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 대본이 다시 시장에 등장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뭐랄까, 내가 어쩔수 없이 떠나 보낸 옛 애인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배경음악: '마치 어제 만난 것 처럼~~')

 

그리고 어느새 새로운 용자, 함영훈 CP가 "이 작품을 우리가 해 보자"고 주장했습니다. 뭐 불감청 고소원이지요. 상업적으로 큰 기대를 할 만한 로맨틱 코미디 종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작품성 있는 좋은 드라마가 될 것은 분명했으니까요. 시일도 촉박했지만 아무튼 '지금 와서 이름 있는 스타들이 이 드라마에 출연할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신선한 얼굴들로 여대생들을 채우고, 원작의 품격을 최대한 살려 가 보자'는데 다들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연출해 보고 싶어하던 이태곤 감독도 순식간에 섭외됐습니다.

 

그 준비과정에서 제가 한 거라곤 가끔 옆에서 구경하는 것 밖에 없었지만(아 네, 저는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 차곡차곡 들어차는 젊은 배우들의 면면을 보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주축인 다섯 여대생이 관건인데, 대략 이렇습니다.

 

 

 

 

 

유은재(박혜수) :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신입생. 어찌 보면 작중 화자 역할. 네 선배들이 모여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에 유은재가 들어 오면서 드라마가 시작됨.

 

용팔이 동생 박혜수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새내기 여대생 느낌이 팍 납니다. 대본을 찢고 나온 듯한 적역.

 

 

 

 

정예은(한승연) : 가장 여성적인 성격. 살짝 평범한 자신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는 여대생.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목을 매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친구가 항상 가장 속을 썩임.

 

카라의 한승연인데 뭐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까?

 

 

 

 

송지원(박은빈) : '학보사 기자'라는 타이틀에서 연상되는 선머슴아. 입심은 신동엽인데 사실 실전 경험은 없고 입만 열면 어디서 주워들은 구라가 쏟아짐. 사람들 많은 자리에선 조용하고 어색한 걸 못 참아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지만 그러다 보면 항상 집엔 혼자 돌아오는 타입.

 

사실 박은빈이라면 단아한 한복 차림이 기억에 남는데, 이렇게 단장하니 또 새로운 느낌이군요. 아래 예고에서 막춤 신을 보시면 그 '단아한 느낌' 속에 감춰진 끼를 느낄수 있습니다.

 

 

 

 

강이나(류화영) : 직선적이고 솔직하고 화려하고 섹시한데다 개방적인 성격. 후원해 주는 '오빠'가 셋은 있어야 생활이 유지된다. 셰어하우스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커다란 비밀이 드러나는 역할.

 

제작진이 가장 고심 끝에 캐스팅한 역할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력 면에선 류화영보다 훨씬 앞선 후보들이 꽤 많았지만 연출을 맡은 이태곤 감독은 류화영의 눈빛 하나에 올인. 기대됩니다.

 

 

 

 

윤진명(한예리) : 공부와 알바 외에는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온 경주마 인생. 아무 여유 없는 청춘이지만 그래도 청춘에겐 청춘의 빛이 내리쬐기 마련. 대체 그녀 인생의 봄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는 타입.

 

연기력으로 보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로 보나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 줄 맏이(극중에서도 맏이). 어떻게 봐도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한예리라는 배우에겐 그리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멜로멜로한 장면들이 기대되는 작품.

 

 

 

 

 

 

 

 

이렇게 서로 섞이지 않는 다섯 색깔의 여대생들이 한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대생 밀착 동거담'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붙어 있습니다. 사실 기운 팔팔한 여자 다섯이 한 집에 머리 맞대고 있으면 가장 큰 화제가 뭐겠습니까. 남자와 연애겠죠. 그래서 이 드라마의 '대사 수위'는 어찌 보면 꽤 높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중요한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아프니까 청춘' 어쩌고 하는 말도 꼰대들의 짜증나는 헛소리로 여겨지는 지금,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그냥 그대로 놔 두고 봐 줘'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청춘이라고 늘 즐거울 수도 없고, 아무리 세상이 힘들다고 절망에만 빠져 있을 수도 없는데 뭘 그리 분석하고 위로하려고 애쓰느냐는 얘기죠.

 

그냥 그대로 두고 보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티저.

 

 

 

 

이 드라마의 원 제목이자 이들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의 이름인 '벨 에포크 Belle epoque' 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는 19세기말~1차대전 발발 전까지의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제목과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윤동주 시인의 시가 깔려 있는 이 티저의 영상과 절묘한 조화를 느끼게 됩니다.

 

하긴. 그 언제라고 청춘이 아름답기만 한 시절이 있었을라구요.

 

 

 

 

 

728x90

[욱씨남정기] 

 

지난주 '욱씨남정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욱다정의 시원한 던지기 한판이었습니다.

 

화려한 손기술이었는데, 정확하게 이런 동작을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유도 경기 중계방송에서 보던 빗당겨치기와 비슷한 한판이었는데,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영상 준비했습니다.

 

 

 

비교적 촬영 초기에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찍은 장면이라 이때까지는 욱다정 역의 이요원과 남정기 역의 윤상현이 아직 서먹서먹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잔혹한 액션 소화가 가능했는지도...(물론 농담입니다. 이 장면을 찍으면서 이요원이 몇 차례나 '빵' 터지는 바람에 촬영이 계속 중단됐습니다^^).

 

아무튼 현장에서 이 장면의 촬영을 지켜보며, 짧은 액션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차례씩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던지며 노력하신 스턴트맨들의 프로 정신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볼 수 있는 현장 메이킹 영상. 아는 얼굴(?)이 나와도 너무 놀라지 마시길.^^

 

 

 

 

 

 

 

그런데 욱다정은 대체 어디서 그런 고급 격투기를 익혔을까요? 사실은 3부 앞부분에 그 답이 숨어 있었습니다.

 

 

 

 

3부의 한 장면. 이요원의 머리 뒤로 사진 같은 것이 보입니다.

 

 

 

 

위치를 바꿔 봅니다. 벽장에 뭔가 상장 같은 것과 사진이 같이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궁금증 해결을 위해 경기도 모처에 있는 '욱씨남정기' 세트로 가 봅니다.

 

 

엘리베이터 홀을 지나

 

 

 

다정의 방으로 갑니다. 거실과 방 하나를 터서 아주 큰 원룸식 거주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위 장면에 나온 다정의 책상을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반대쪽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

 

 

 

방 한 구석에는 강한 여자를 상징하는 케틀벨이,

 

 

그리고 책장에 마침내 문제의 그 사진이 보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유도 단증과 검은 띠 도복을 입은 옥다정의 모습입니다.

 

욱다정은 본래 유도 유단자였던 것입니다.

 

단증은 대한유도회가 발행한 실제 단증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진짜 단증은 대개 초단이든 3단이든 '몇 단을 수여함'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는 그게 없군요.^^ 그리고 눈이 좋은 분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5년 당시 대한유도회장은 김정행 金正幸  현 대한체육회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단증에 도장을 찍어 주신 분은 '김정신 金正辛' 회장입니다.

 

(이 표기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소품 제작 과정의 실수인지는 물론 모릅니다.^^) 

 

책장 속의 이 사진이 드라마 속에서 공개될 날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건 아직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개되던 아니건, 제가 가까이서 지켜본 드라마 제작진들은 보통 이 정도의 디테일은 반드시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김희애 이성재 주연 '아내의 자격' 촬영장에는 극중 치과의사로 나온 이성재의 치과 의사 자격증이 극중 이름으로 만들어져 진료실에 걸려 있었고(물론 이 자격증을 클로즈업하는 장면 같은 건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 때에는 이순재 서우림 할머니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모여 찍은 팔순 잔치 기념사진이 장지문 위에 걸려 있었습니다(물론 이 사진 역시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 단 한번도 가까이서 비쳐진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소품들이 놓여 있는 공간, 그 공간이 출연자와 제작진에게 거는 마법의 힘을 무시해선 안될 듯 합니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 하나 하나가 모여서 일단 만드는 사람들을 홀리고, 나아가 시청자를 홀리는 것이니까요.

 

 

 

여기는 욱다정의 침실.

 

 

욱다정은 자기 전에 만화를 즐겨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방. 거실과 마찬가지로 화이트와 아이보리 톤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간략하게 욱다정의 집을 살펴봤습니다. 이 집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사용하는 남정기네 집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건 다음 기회에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아직 깊이 잠들어 있는 황찬성 군의 활약이 5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더 이상 민폐 봉기는 아닙니다. ^^

 

728x90

 

 

 

[욱씨남정기]

 

꼴갑 저격 사이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첫 두 편의 방송이 나간 뒤,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뭣보다 두 주인공의 역할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특히나 윤상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시대의 찌질남 남정기가 그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욱씨남정기'라는 대본을 받았을 때, 남정기라는 역할에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야 할지는 상당히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당장의 화제성이 우선이냐, 연기력이 우선이냐도 논의의 대상이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당연히 - 특히나 남정기 같은 캐릭터는 - 연기력이 우선이어야 할 것 같지만 요즘은 점점 화제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오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윤상현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본인도 대본을 읽어보고 즉시 '이건 나만큼 잘 할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을 보였고, 뭣보다 윤상현 카드가 현실이 됐을 때, 대본을 읽어 본 사람 중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배우의 열의와 연기가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윤상현이라고 완벽한 배우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목소리는 좋지만, 열연을 하다 보면 가끔 발음이 뭉개질 때가 있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경우에 성우 같은 발성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 그런 발성이 역할에 훨씬 더 어울리기 마련입니다. 결점이 결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어느 일터에나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윤상현은 압도적으로 전자에 속합니다. 육아...라기 보다는 아기 사랑 때문에 늘 붉은 눈으로 촬영장을 오가지만(새벽까지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서 눈을 붙여야 할 때에도 아기를 보면 너무 예뻐서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늘 밝은 모습으로 다른 출연자들에게 에너지를 전파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사실 남정기는 소심을 넘어 자칫하면 발암 캐릭터입니다. 누구든 자기 집에 호수도 확인하지 않고 신발 신고 들어와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긴다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당장 발끈해서 화를 내고 싸움을 벌였겠지만, 우리의 남정기는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죠. 연애를 했어도 정말 속터지게 했을 것 같고, 한마디로 21세기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되기엔 덜 떨어져도 한참 덜 떨어진 캐릭터입니다. 실수도 잦아서 거기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하면 불쌍한 토끼처럼 움츠러들어서 심하게 뭐라 하기도 어려운, 마음 놓고 화내기도 쉽지 않은 답답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윤상현을 통해 표현되는 순간, 남정기 과장은 안쓰러운 마음에 왠지 도와주고 싶은 인물로 묘하게 살아납니다. 애정이 생겨 버리는 거죠. 이게 바로 이 배우의 진정한 능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끝까지 답답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답답이 남정기가 욱다정이라는 인생의 웬수이자 멘토를 만나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갈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1회를 보고 나니 윤상현 이외의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했더라면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뭐 저희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더군요. 쏟아지는 호평을 바라보면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의외로 1,2회를 보시고 엉뚱한 장면에서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이 꽤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남정기는 왜 갑자기 방에서 묘한 소리를 내면서 파스를 붙이냐, 대체 낮에 뭐 하는 거냐 (대부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 인부 아저씨 대신 일당을 벌어 갚기 위해 이삿짐 나르는 알바를 한 거죠) 등에서부터 남정기는 왜 부인이 없냐까지 다양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뭐 여기에 한꺼번에 묶어서 대답을 해 드립니다. 또 궁금하신 게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 남정기는 왜 부인이 없나?

▲ 상처를 한 것인지, 이혼을 한 것인지 궁금하실 분들이 꽤 있겠지만 남정기는 이혼남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 아니 그 성격에 왜 이혼을? 부인이 웬만큼 바가지 긁어도 잘 맞춰줬을 것 같은데?

▲ 전처 쪽에서 '너같은 남자랑 못 살겠다'고 한 셈인 거죠.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요. 이해가 갑니다.

 

- 동생 봉기(황찬성)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듯?

▲ 1회에 나왔듯 정기의 현재 나이는 마흔하나. 봉기는 20대 중후반이니 최하 띠동갑 정도 되는 형제간입니다. 1회 아버지 용갑(임하룡)의 대사에도 있듯 "늘그막에 어디서 저런게 하나 튀어나와서..." 인 형제간이죠. 매일 맞을 짓을 하는 동생이지만 정기에게는 아들(?) 같아서 애틋한 동생입니다. 그래서 용돈까지 챙겨 줄 마음이 생기는 것이죠.

 

 

 

 

- 그런데 봉기를 너무 실감나게 때린다.

▲ 원래 친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영화 '덕수리 5형제'에서도 이미 많이 맞았다고... (참고로 임하룡씨는 제작발표회 때 "(황)찬성이는 심형래 이후로 가장 나에게 많이 맞고 있다. 이걸로 곧 큰 인물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뭐 맞는 역할은 원래 맞아야 크는 겁니다.

 

- 1회에 엘리베이터에서 정기를 강제로 내리게 하는 사람은 누구?

▲ 1부엔 출연 분량이 없었지만 정기의 회사인 러블리 코스메틱의 실권자인 인사팀 신팀장(안상우)입니다. 본래 이 회사는 조사장(유재명)의 처가집 지분이 훨씬 컸고, 그래서 조사장도 처남인 신팀장에게 함부로 말을 못 하는 처지죠. 그래서 신팀장은 회사 인에선 안하무인으로 행동랍니다.

 

- 정기네는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원인 서민이고 욱다정은 나름 상류층인데 같은 아파트 이웃이라는게 말이 되나?

▲ 혼자 살지만 넓은 집을 좋아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한 재산 형성에 아무 관심이 없는 욱다정의 성격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주보는 집이라도 집안 인테리어를 보면 같은 단지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을 듯.

 

 

- 2회에 남정기에게 로케트 펀치 쏘는 여자는 누구?

▲ 은행 대출담당 여직원 역으로 출연한 신인 배우 김은지입니다. 참고로 윤상현씨와 한 집 사시는 분.

 

- 대체 아파트 복도에 자전거를 세워 놨는데 왜 65만원을 내야 하나?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10조 2항에 보면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의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파트 복도 계단 등에 유모차나 자전거 등을 세워놓는 행위는 불법인 거죠. 그래서 이삿짐 나르던 인부는 그 자전거에 걸려 넘어지면서 팔을 다쳤다고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한 것이고, 욱다정은 그 원인을 제공한 자전거 주인을 찾아 책임지고 보상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 조사장은 왜 계속 양갱을 먹나?

▲ 원래 긴장하면 당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인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세요.

 

- 혹시 양갱이 협찬인가?

▲ 협찬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제과업체든 협찬해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꾸벅)

 

- 황금화학은 욱다정도 그렇고 지팀장(송재희)도 그렇고 너무 김상무한테 막말을 한다. 한국 회사에서 그게 가능한가?

▲ 좋은 회사라서... (먼산)

 

- 결국 이 드라마도 끝에 가면 남정기랑 욱다정이 연애하는 얘기로 갈거 아님?

▲ 사람 일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가지는 않을 것 같은...  글쎄, 일단 둘이 잘 어울리기는 할까요?

 

(뭐 오늘은 이 정도. 옥다정 쪽의 궁금증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3부는 3월25일(금) 저녁 8시30분에 방송됩니다.

 

 

 

 

728x90

[욱씨남정기]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의 회사에 그런 얘기를 듣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3대 마녀'니 '5대 마녀'니 하는 여자들 말입니다.

 

개중에는 진짜 성격이 나쁜 여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이 친목 단체도 아니고, 다 같이 만나 일을 하는 곳이다 보니 애당초 개개인의 인성에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마녀'라고 불리는 여자들 가운데 '일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나의 일과 남의 일을 똑부러지게 구분하는 경우, 남자들의 보조 역할을 하기 거부하는 경우, 최상층의 신뢰가 두터운 경우 등에 '마녀'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됐던 일'을 해 내는 여자를 '마녀'라고 부르기도 하고, 대략 미모가 뛰어난 여직원은 대개 일 보다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많다는 통념(물론 이런 통념은 당연히 편견의 영역에 해당합니다)을 깨고 '미모에 비해 지나치게(?) 일과 성공에 의욕을 보이는' 경우를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도 꽤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경우들이 있지만 최소한 한 가지 정도의 공통점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유능함을 발휘하고, 그 유능함이 아직 대다수인 남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때 '마녀'라는 호칭이 절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유능하다고 해서 다 마녀로 불리는 것도 아니고, 마녀라고 불린다고 다 유능한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요약해 보면 능력이 출중하건 아니건, 백이 있건 아니건, 외모가 빼어나건 아니건, 명문대를 나왔건 아니건 '무능한 여직원'을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위협'이라는 요소와 매우 관계가 깊은 듯 합니다.

 

(중간에 불쑥 얘기하자면, 이 글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왜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집어 들었나'에 대한 글입니다. 그러자니 당연하게 '우리 편 입장'만 나옵니다. )

 

 

 

 

 

'욱씨남정기'라는 대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품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옥다정은 한번 불끈 하면 자제가 안 되는 성격 때문에 '욱씨' 혹은 '욱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 '더러운 성격' 때문에 이혼을 세 번이나 했고, 꽤 능력이 있어 나이에 비해 일찍 팀장까지 승진했지만 그 뒤에는 별별 소문이 다 따라다닙니다. 성격이 지랄같은 것은 기본, 사내 스캔들이 수차례 있었고 고위층과는 소파 승진의 의혹도 있습니다. 심지어 연상 연하 가리지 않고 남자를 밝힌다는 이야기까지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정작 대본과 시놉시스를 보다 보면 드러나는 여자는 이와는 좀 다른 여자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수시로 '욱'하고 나서서 성격 나쁘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이 먼저 원인 제공을 하지 않는 일에 함부로 '욱'하는 여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욱다정이 분노하는 일들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해야 하지만, 다들 후환이 두렵거나 '좋은 게 좋은 거' 기 때문에 슬쩍 못본 채 넘어가는 일들입니다.

 

게다가 남의 시선을 굳이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사내 연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욱다정의 첫번째 남편은 같은 회사 동료였습니다), 타고 난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눈에 띄었습니다. 업무에 열정적이고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에 남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같이 일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 한국 사회에서 웬만한 회사의 관리직에 오르려면 사회관계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건 남녀를 불문하고 당연한 얘기고, '서글서글한 여걸스러움'이 여성 관리자들에게는 필수 요소가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 그런 태도를 곱게 보지 않는 누군가의 술자리 뒷담화에는 이런 여자들이 수시로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 가나 남자들이 이끌어가기 마련인 회사 집단. 그 회사 집단에서 남자들의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여자들 중에 바로 욱다정이 있었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었던 것이죠.  

 

 

 

 

꼴갑(甲) 저격 사이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의 초반 에피소드들을 언뜻 보면 왠지 하청기업 과장인 남정기(윤상현)를 욱다정(이요원)이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따라가면, 사실 옥다정이 실수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청을 원하는 기업이 부실한 자료를 제출한 것에 대해 화를 낸 것, 다소 무례한 실수에 대해 냉정하게 대처한 것,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반발한 것, 같은 아파트 주민의 부당한 복도 점유(복도에 자전거나 가구를 내 놓는 것은 소방법 위반이라고 합니다)를 지적한 것 등 모두 따지고 보면 옥다정이 정당한 판단과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워 '먹고 살기 힘든데' '뭐 고작 그정도 가지고' '그런 일 안 당해 본 사람이 누가 있나' '하여간 유난을 떤다' 며 욱다정에게 '역시 듣던대로 성질이 더럽다'는 말을 합니다. 당연히 억울하겠지만 어차피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욱다정, 변명을 하거나 자기 편을 만들어 하소연을 하거나 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평판은 점점 굳어가고,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이유가 '욱씨남정기'인 이유는 욱다정의 정 반대편에 있는 인간, 즉 '책임을 지는 순간 명이 짧아진다'는 소심함과 무사안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남정기가 처음으로 욱다정이 '소문으로 듣던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욱다정에게 가장 많이 당한 남정기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 앞서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차리고, 그 여자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 가면서 지지리도 못났던 자신의 지나간 삶을 반성한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전개로 느껴졌습니다. 

 

'욱씨남정기'는 그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아 온 탓에 '드센 여자' 혹은 '지랄맞은 여자'로 낙인 찍혀 온 한 여자가 제대로 평가를 받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녀 또한 완벽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옆집의 속터지는 '고구마 가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고 그 자신에게 부족했던 타인과의 공감 능력을 서서히 찾아 가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코미디라서 일단 보고 있는 동안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지만, 그 속에 주변의 오해 속에서 '강한 여자'를 넘어 '마녀'로 치부되고 있는 한 여자. 그 여자가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욱씨남정기'는 해 볼만한 드라마라고 느꼈습니다. 일단 다들 한번씩 보시면 무슨 말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겁니다.

  

 

 

 

그럼 남정기는 그냥 별 의미 없는 고구마 인생이냐.... 그건 또 아니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728x90

 

 

무슨 일이든 끝이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난 5월29일 첫 방송된 '사랑하는 은동아'가 7월18일 16회로 막을 내립니다.

 

 

 

 

현수와 은동이나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곳, 춘천 근교의 공원으로 설정된 원당 승마공원에서 마지막 촬영이 있었습니다.

 

날씨와 풍경이 너무 예쁘군요.

 

 

 

 

 

 

 

 

 

 

 

 

 

일조량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 웃음도 오늘이 마지막.

 

 

 

 

감독님의 파이팅 넘치는 디렉션도 오늘이 마지막.

 

 

 

 

 

마지막 촬영을 위해선 크레인이 동원됐습니다.

 

 

 

뭐랄까,

 

하직 인사는 나중에 다시 드리는 걸로.

 

 

 

 

728x90

'사랑하는 은동아'에 대한 열번째 글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사랑하는 은동아] 5. 웹 드라마로 먼저 보여드리는 이유는? http://fivecard.joins.com/1318

[사랑하는 은동아] 6.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http://fivecard.joins.com/1319

[사랑하는 은동아] 7. 김태훈. 김민호. 김미진을 통한 완성 http://fivecard.joins.com/1320

[사랑하는 은동아] 8. 주진모라는 배우를 다시 알다 http://fivecard.joins.com/1322

[사랑하는 은동아] 9. 김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http://fivecard.joins.com/1324

 

 

오늘은 '사랑하는 은동아'가 촬영되고 있는 세트에 대한 글입니다.

 

10대 현수 주니어가 살던 집과 30대 은호 주진모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중심부에서 1시간 반 정도 거리, 파주에 있는 세트장입니다. 외관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드라마 세트장들이 그렇듯 처음부터 방송용으로 설계된 곳은 아닙니다.

 

 

여기는 10대 현수의 집. 10대 현수(주니어)가 살던 춘천 집입니다.

 

1995년의 한 중산층 가정 거실인데, 사실 90년대, 20년 전이라 해도 그리 옛날의 느낌은 아닙니다. 요즘도 있을법 한 그런 거실의 느낌.

 

 

부엌입니다.

 

 

옛날식 라면 박스 스티커의 디테일. 그리고 냉장고 구석에는 중국집 배달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욕실.

 

 

현수의 방을 찍기 위해 거실을 카메라 스태프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스튜디오 촬영은 스튜디오 카메라, 야외 촬영은 야외용 카메라가 동원됐지만 근래에는 같은 종류의 카메라로 야외와 세트를 모두 소화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점점 더 진짜 건물 내부인지, 세트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차이가 많이 나는 드라마도 있죠)

 

 

 

여기가 10대 현수의 방.

 

 

주니어군이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1회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낮에 은동이 만난 날, 현수가 침대에 누워 "박현수, 남자다" 하면서 혼자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현수를 높은 곳에서 찍어야 하는 장면이라 카메라가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 위치에서 찍으면,

 

 

 

이런 장면이 찍히는 것이죠.

 

 

그리고 연출진은 밖에서 모니터로 촬영 장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왼쪽이 이태곤 감독입니다.

 

 

 

그래도 이 세트장은 비교적 지원 시설이 괜찮은 편입니다. 최근 들어 점점 드라마 세트가 대형화/정밀화 되어 가는 추세라 2000년대 이전에 건설된 각 방송사의 스튜디오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권의 폐 공장, 폐 창고들이 스튜디오로 개축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경우 부대시설이 부족합니다.

 

특히 냉난방 시설까지 가면 참담한 경우도 있죠. 물론 점점 상황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현재 많이 나오고 있는 은호(주진모)의 집 세트입니다.

 

 

 

촬영중 잠시 장면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운데 은호가 서 있죠.

 

눈 밝은 분들에게 보이는 쿠르베 스피커.

 

 

 

은호의 침실도 쿠르베 스피커가 지키고 있습니다.

 

 

복층식 대형 펜트하우스 아파트의 설정이기 때문에 층고가 대단히 높습니다. 고급스럽죠.

 

 

 

 

은호의 집답게 벽에는 왕년의 지은호 사진들이 붙어 있습니다.

 

...은호가 아니라 주진모인지도.^

 

 

여기는 은호가 영화를 보는 방.

 

 

그리고 옷방.

 

 

욕실 인테리어가 상당히 깔끔합니다.

 

 

2층에서 바라본 거실 전경. 늘 은호가 자고 있는 소파가 보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은호의 테라스. 네. '합성이다' 에 시달렸던 그 공간입니다.

 

이 공간도 사실은 실내에 있기 때문에 은호가 여기서 전화통화를 하거나 할 때, 하늘은 블루스크린을 통해 합성됩니다.

 

 

고급스러운 주방.

 

 

 

그리고 은호네 집에서 가장 큰 창은 바로 지금 보이는 저 왼쪽의 창인데요,

 

 

밤 장면에서 이 창밖으로는 이런 야경이 보입니다.

 

 

창문 밖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막 뒤에 조명이 켜져 있죠. 이렇게 하면 저 사진막의 불켜진 창들이 실제 불켜진 야경처럼 살아나 보입니다.

 

 

 

아, '사랑하는 은동아'가 이제 4회만 남겨놓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728x90

 

[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아홉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사랑하는 은동아] 5. 웹 드라마로 먼저 보여드리는 이유는? http://fivecard.joins.com/1318

[사랑하는 은동아] 6.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http://fivecard.joins.com/1319

[사랑하는 은동아] 7. 김태훈. 김민호. 김미진을 통한 완성 http://fivecard.joins.com/1320

[사랑하는 은동아] 8. 주진모라는 배우를 다시 알다  http://fivecard.joins.com/1322

 

 

 

 

직업의 특성상(물론 전 직업을 포함해서) "만나 본 여자 연예인 중에 누가 제일 예쁘냐"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남자들끼리의 술자리라면 "난 전지현이 제일 예쁜데", "그래도 얼굴은 김태희 아닌가?" "무슨 소리야. 손예진이지" 하는 얘기들이 오가는 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반대 경우라면 강동원 정우성 김우빈 등이 거론되겠죠). 아무튼 이런 경우, 저 위에 있는 이름들 못잖게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코드 네임 김러브. 김사랑이죠.

 

 

 

 

 

김사랑의 비주얼은 이미 전설이 된지 오래입니다. 2000년 미스코리아는 진 김사랑, 선 신정선, 미 손태영을 배출한 역대 최강급의 대회로 꼽힙니다(여기에 미스 한주여행사 박미선 - 박시연도 있죠). 얼마 전 JTBC에서 역대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출연하는 '비밀의 정원'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할 때, '2010년대 이후 미스코리아 출연자들이 뽑은 가장 인상적인 선배'로 김사랑이 뽑혔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몸매까지 포함하면 정말 반칙이죠. 물론 얼굴만 보더라도 결코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얼굴이 지금까지도 전혀 손상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 포털 검색창에 '김사랑'을 치면 '김사랑 나이'가 연관 검색어로 나옵니다.

 

 

 

 

누가 봐도 사기 유닛이죠. 다른 여배우들이 나란히 서기를 꺼린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 김사랑이 출연한 드라마 중 가장 지명도 높은 작품인 '시크릿 가든'에서도 이 장면이 유독 화제가 됐습니다. 진정한 '피지컬 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화력 시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사랑은 '시크릿 가든' 이후 4년 동안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습니다. 스포츠용품 광고는 큰 화제가 됐지만 드라마든 영화든 출연작이 없었던 거죠. "그렇게 내키는 작품이 없었다"던 김사랑에게 '사랑하는 은동아'가 찾아간 건 어쩌면 큰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미팅에서 이태곤 감독이 김사랑에게 그 4년 동안 주로 뭘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도"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김사랑을 '사랑하는 은동아'로 이끈 건 하느님의 말씀이었던 듯.

 

그리고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 지금, 역시 그 선택은 올바른 것임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수많은 명장면들이 꼽히고 있지만 김사랑의 감정이 가장 아름답게 폭발한 장면은 아무래도 이 장면 아닐까 싶습니다.

 

 

 

 

김사랑은 이 드라마를 통해 비주얼에서 끝나지 않는 진정한 내면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은동아'의 여주인공 캐스팅이 어려웠던 것은 - 물론 어떤 작품의 캐스팅이 쉬울까 마는 - 이 역할이 가지고 있는 약점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서정은은 열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그냥 편하게 '애 엄마 역에는 애 엄마'를 캐스팅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작품의 특성상 '애 엄마 느낌이 나지 않는 배우'를 찾았기 때문에 저희는 고난의 세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 역할은 본질적으로 매우 어려운 역할입니다. 서정은은 톱스타 지은호의 구술 녹음을 듣고 자서전을 써 주는 대필 작가입니다. 그런데 이 대필 작업이라는 걸 하면 할수록, 왠지 친숙한 이야기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지은호 매니저를 만나고, 지은호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마침내 곡절 끝에 지은호 본인을 만나고, 자신이 자신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차리게 됩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기억이라는 것이 단 한 순간에 망치로 머리를 띵 맞고 한꺼번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8부 엔딩에서 서정은은 일단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았지만, 자기가 바로 지은호가 찾고 있는 지은동이라는 것을 학적 확인을 통해 안 것이지, 그 당시 자신이 지은동으로 살았던 기억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연기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즉 정은의 마음 속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왠지 낯설지 않은, 뭔가 이상한 느낌의 상태' - '혼란스럽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 - '알 수 업는 설렘과 함께 그 남자가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상태' - '내가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은 상태' 를 거친 뒤에야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지가 모두 기억나는 상태'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김사랑은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공감하시겠지만, 이 각각의 상태들을 구분해 연기하기란 어떤 배우라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사랑은 역할에 대한 애정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냈고,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인생 연기'라는 호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제 반환점을 넘었지만, 문득 이 드라마를 완주한 뒤의 김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천부적인 하드웨어에 감정 연기 옵션이 추가된 완전체가 된다면. 결국 그 뒤의 김사랑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그 경계가 된 작품으로 '사랑하는 은동아'를 꼽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럴 거라고 확신합니다.

 

 

 

 

P.S. 티저 촬영 때의 잠시 설정샷. 제작발표회 때 시청률 5%가 넘으면 김사랑의 기타 연주 영상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저는 아직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아울러 언젠가는 이렇게 두 사람이 기타를 연주하며 마주 보는 장면을 볼 수 있기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