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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 18개 부문 수상. 디즈니 플러스 <쇼군>이 엄청난 기록으로 미국 TV 역사에 발자국을 남겼다. 쇼군 이야기는 지난번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사실 나오자마자 보지는 않았다. 이 드라마를 늦게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여주인공에게서 고전적인 일본 미인의 느낌을 받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누가 뭐래도 2024년 <쇼군>의 주인공인 애나 사와이는 전통적인 일본 미인상이라기 보다는 하와이-폴리네시안 얼굴로 보였다. 이런 얼굴이 마리코 역을 맡는다는 것은, 왕년의 마리코 역을 연기한 시마다 요코에 대한 모욕이라는 느낌이 살짝 들 정도라...

 

혹시 영상이 궁금하신 분은 이쪽

아무튼 앞의 글, <쇼군(2024)>에 대한 글에서 제임스 클라벨의 베스트셀러 소설 <쇼군>은 1975년에 출간됐고, 미국에서 1980년 NBC 5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히트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1980년 버전의 미니시리즈, 그러니까 내가 1981년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극장판으로 본 그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도대체 나는 그때 그걸 왜 보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1980년 12월25일자 매일경제 지면에는 베스트셀러 집계 단신이 실렸다. 국내 소설로는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 1위, 국외소설로는 제임스 클라벨의 <장군>이 1위였다. 클라벨의 <장군>, 즉 <쇼군>은 일단 미국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일본으로 역수입되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물론 미국에서는 진작부터 이걸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명목상의 주인공인 파란 눈의 사무라이 안진 역에는 리처드 체임벌린이 캐스팅됐다. 체임벌린으로 말하자면 19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잘 나가던 TV 스타 중 하나라고 불러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쇼군>으로 골든 글로브 TV 부문 남우주연상을 꿰찼고, 3년 뒤, 한국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가시나무새>를 통해 다시 한번 같은 상을 차지했다. 오죽하면 공식 별명이 '킹 오브 미니시리즈'다.

<가시나무새>의 레이첼 워드와 리처드 체임벌린. 49세의 나이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을 소화해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들었다. 대단한 양반.

당시 미국 TV에서 가장 핫한 장르는 '미니시리즈'였다. <달라스>나 <다이내스티>로 잘 알려진 이 장르는 짧으면 4부작, 길면 10부작 정도의 길이로 영화 못잖은 제작비를 투입해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쇼군>이나 <가시나무새>은 물론이고, 그 시절 한국 시청자들의 기억에 생생할 대표적인 미니시리즈들로는 남북전쟁을 그린 <남과 북>, 파충류 외계인의 지구 공격과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그린 <V>, 닉 놀테-피터 슈트라우스 형제를 스타로 만든 <야망의 계절>, 시드니 셀든 원작의 <내일이 오면> 등이 있었다. 

 

극장용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조금 모자라지만, 일반적인 TV 드라마 배우들보다는 지명도에서 앞서는 배우들이 딱 이 장르의 주인공 감이었다. 한국 TV의 드라마 장인들도 이 장르의 영향을 받아 1990년대부터  '미니시리즈'라는 이름의 드라마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한국에선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16부작이 기본 틀이 되었다. 그래도 핫한 배우들이 나오고, 보다 젊은 시청층을 겨냥하고, 일반적인 드라마보다 훨씬 큰 제작비를 투입한다는 면에선 같은 맥락 위에 있었다. 

영화 <타워링>의 주역들. 스티브 맥퀸, 로버트 와그너,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제니퍼 존스, 프레드 어스테어, 폴 뉴먼, 리처드 체임벌린, 로버트 본, 그리고 O.J. 심슨. 1950년대~70년대의 빅 스타들이 포진한, 뒷날의 <오션스 11> 못지 않은 화려한 출연진이다. 여기서 지명도로 따지면 체임벌린이 최하위 급?

아무튼 체임벌린은 이 영역에서 가장 빛났던 배우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들이 억대 예산을 투입할 만한 배우는 아니었다. 할리우드 빅 스타들이 총출동한 대작 <타워링>에도 출연했지만, 그의 역할은 꼴사납게 구명대에서 떨어져 죽는 악당 사위 역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TV에서는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4차례나 노미네이트되는 거물 대접을 받았다. 그 시절엔 TV 배우(한국식 영어로는 '탤런트'?)와 영화 배우사이에 매우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영화 <타워링> 출연진을 한 자리에 모은 사진. 위 사진의 배우들 이름을 7명 이상 댈 수 있다면 1950~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해 뭔가 한마디 해도 좋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왼쪽부터 스티브 맥퀸, 로버트 와그너,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제니퍼 존스, 프레드 아스테어, 폴 뉴먼, 리처드 체임벌린, 로버트 본, 그리고... O.J. 심슨. 모두 다 설명하려면 각각 한 문단씩은 충분히 채울만한, 당대/전세대의 슈퍼스타들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영화 <솔로몬 왕의 보물>과 그 속편(무명 시절의 샤론 스톤이 나온다)을 매우 재미있게 봤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가 아라미스 역을 맡았던 <삼총사>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영화 커리어의 실패는 좀 안타깝다. (여담이지만 그 많은 그의 TV 미니시리즈 주연작들 중에는 뒷날 영화로 리메이크돼 대박을 친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도 있었다. 이 오리지널 시리즈도 매우 재미있었던 기억.)  만년엔 커밍아웃을 하고 이런 톱스타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성 정체성(!)을 꼭꼭 감춰야 했던 아픈 추억을 털어놔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사실 세계 영화계를 기준으로 하면 체임벌린보다 도라나가 역의  미후네 도시로가 훨씬 더 슈퍼스타였을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몬>,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등 칸 영화제를 휩쓴 걸작들 덕분인데, 이런 명성에서 한국은 분명 예외였다. 철저한 일본 영화/음악에 대한 금수 조치 때문에, 아마 <쇼군> 당시 국내에서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유학생들 외엔 거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비디오 테이프도 구할 수 없던 시절이다).

한국 관객들이 그나마 미후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진주만 기습을 다룬 <토라 토라 토라>나, 알란 들롱과 공연한 <레드 썬> 등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왕년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영화광들이 아니라면, 굳이 '자막 붙은 영화'를 볼 이유가 없었던 미국의 일반 관객들에게는 그냥 마토(Mato)나 별 차이 없는, '영어 못하는 동양인 배우'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쇼군>은 미후네가 한국 팬들에게 처음으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53년생인 시마다 요코는 이때까지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톱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본도 '할리우드의 주목'에는 열광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고, 시마다 요코는 체임벌린과 함께 골든 글로브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 덕분에 일약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일본 TV는 <쇼군>을 수입 방송하면서, 매회 시마다 요코를 기용, 시청의 편의를 돕는 '해설'을 제작해 덧붙이기도 했다.

 

그 뒤로도 미모와 지성(?)으로 주목받은 요코였지만 사생활에서 유부남과의 관계, 알콜 중독으로 인한 파산,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누드 사진집 발간, 만년엔 58세의 나이로 성인용 비디오 출연 등 파란만장한 사건사고를 기록하며 69세로 삶을 마감했다. 비운의 스타라 할만 하다.  

 

 

아무튼 이야기는 다시 한국으로. 당초 일본에서도 1980년 11월 극장판이 먼저 공개되었고, 한국에서도 상영될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쏟아졌던 느낌이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가당치 않은 얘기였다. 1962년, 한국 정부는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영화 <콰이강의 다리> 상영을 불허한 적이 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영국군 포로들을 상대로 가혹행위를 벌이는 이야기가 한국인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당연히 지식인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는 집단 항의에 나섰고, 결국 이듬해 상영이 허락되기도 했다.

 

그만치 한국 사회에서 '왜색'이라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범죄였다. 한국 영화에 한국 배우들이 일본 의상을 입고 일본인으로 출연하는 것은 허용이 되었지만(물론 그래봐야 왜구 역이나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왜군 역 들, 혹은 개화기 조선에 들어와 여기저기서 폐를 끼치는 낭인들 정도), 미국 혹은 다른 나라 영화라도 일본적인 느낌이 나는 영화들은 아예 수입사들이 처음부터 시도를 안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그 수많은 닌자 영화, 사무라이 검술 영화들이 한국에서 전혀 공개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런데 <쇼군>의 경우는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1980년부터 미국에서 드라마로 방송된 <쇼군>이 엄청난 화제작이라는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하더니 1981년에는 수입추진중이란 이야기가 돌았고, 개봉이 결정된 뒤 일본 배우 미후네 도시로와 시마다 요코가 내한해 영화를 홍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요즘 같으면 상식적인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대체 이유가 무엇인지는 당연히 알 길이 없다. 

그리고 1981년 12월26일,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물론 저때에는 저걸 <쇼군>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당연히 <장군>이지. 

 

솔직히 수입업자들의 촉으로는 당연히 수입해서 상영관에만 걸리면 대박이 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 다음으로 이 영화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한국 관객들이었을테니 말이다. 소설 <쇼군>은 물론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이 '지식인의 필독서'였던 시절. 게다가 전 중장년층의 80~90%가 일제시대에 교육받은 일본어 회화 가능자들(즉 은근히 일본 문화에 대한 향수가 어딘가에 남아 있는 분들). 

물론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그리 듣던 만큼 대단한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좀 심심하기도 했고(대규모 전투신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내가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수준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일본의 쇼군 이야기라더니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디 가고, 들어본 적도 없는 도라나가가 주인공이냐는 의아함도 있었다. 게다가 그때까지 일본 역사나 문화를 깊이 있게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젊은 관객(나다)들에겐 대체 영화 속의 정치 상황이 어떤 것인지, 마리코가 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지 등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리코의 실제 모델은 아케치 다마 혹은 호소카와 카라샤 라고 불리던 인물.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이다. 호소카와가의 며느리가 되었는데, 대역죄인의 딸이라 마땅히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이미 출가외인이고, 호소카와 가문은 아케치에게 동조하지 않고 맞선 공이 있어 '멀리 유폐' 되는 선에서 끝났다.

아무튼 그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기독교에 투신하고, 뒷날 호소카와 가문이 도쿠가와의 편에 서자 이시다 미츠나리가 가라샤를 인질로 잡기 위해 군대를 보냈는데, 이때 포로 되기를 거부하고 폭탄에 불을 붙여 장렬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쇼군>의 마리코와 상당 부분 행적이 일치한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실제 모델이 있었는지, 아케치 미쓰히데가 대체 누구인지, 남편과는 왜 사이가 나빠졌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봤으니 당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물론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당시 청춘/틴에이저 영화로 유명했던 문여송 감독이 동아일보에 기고한 감상문을 보면, 마침내 금기를 뚫고 극장에서 일본 문화를 접하게 된 감회가 넘쳐 흐른다. 

'마리코는 분명 블랙슨의 침실에 침입했다. 그러나 뒷날 간밤에 침실에 침입했던 여자는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보낸 하녀였다고 시침떼는 장면은 모든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쇼군에서 느낀 것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늘 갈구하던 영화 에로티시즘의 한 단면, 어떤 기교를 다시 한번 생각케 했다.  (1982. 2. 4. 동아일보)'

그랬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장면은 2024년에도 그대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재현되었다. 아무튼 그때 그 <쇼군>이 부활해 에미상을 휩쓰는 공전의 히트작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참... 감회가 새롭다. 어쨌든 왕년의 <쇼군>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로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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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종>이라는 새로운 드라마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이수연 작가의 작품이고 한효주 주지훈이 주인공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작품이 한방에 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에 나눠 업로드 된다는 걸 알고 나선 '다 올라오면 봐야겠다'로 태세를 전환했다. 마침 <쇼군>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있어 이번 디즈니 멤버십 부활의 타겟을 <쇼군>과 <지배종>으로 잡았다.

 

(이 OTT 난립의 시대, 그 많은 OTT에 모두 월사금을 바치는 것은 너무 부를 과시하는 일이라는 입장이라, 대부분의 OTT들은 똑 똑 떨어지는 빗물이 고이면 멤버십을 살려 후루룩 마시고, 바닥이 마르면 구독을 끊는 형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업계 종사자분들, 이해하시죠?)

요즘 핫한 바이오 산업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라길래 주인공들이 너무나 야근을 많이 해서 <집에 좀> 가라는 드라마인가 잠시 생각했으나(...죄송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정 한국에서 보기 드문 웰메이드 테크노 스릴러였다. 디즈니 플러스를 볼 수 있는 분들이면 지금이라도 꼭 보시길.

 

(올해 상반기에 드라마 좀 보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다들 '아니 왜 이렇게 볼만한 드라마가 없어요?' 하시던데, 보실게 있었습니다. 바로 이거였어요. 주제 의식, 전개, 배우들의 연기, 핵심을 찌르는 대사, 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꼽기에 손색이 없네요.)

 

시작: 현재에 아주 가까운 미래. 동물의 특정 부위 세포를 대량 증식해 소를 잡지 않고도 꽃등심이며 안심을 실험실에서 배양해 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축산업의 양상이 뿌리부터 흔들린 시대. 그 중심에 한국 기업 BF가 있다. 수백조 가치를 평가받는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 BF 총수 윤자유(한효주)는 과감하게 농업과 축산업을 공장에서 대체하는 것만이 환경 파괴를 막고 인류 문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길임을 역설한다. 

 

해군 대위 출신의 경호원 채운(주지훈)은 전직 대통령(전국환)을 불구로 만들고 자신을 퇴역하게 한 의문의 폭발 사건에 대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채운에게, 당시 폭발 현장에 윤자유도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BF에 접근해 그 배후에 BF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사해 볼 것을 지시한다. 

한편 BF는 생계 위협을 받는 농어민들의 시위로 여론이 악화되고, 국제적인 사이버 테러리스트 집단에게 해킹을 당해 거액을 요구받는 위기를 맞는다. 총리 선우재(이희준)는 이 상황을 정국 운영에 유리하게 활용하려 하고, 선우재의 아버지이며 재벌 그룹 회장인 선우근(엄효섭)은 윤자유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BF의 지분을 요구한다. 

 

스포일러가 싫은 분들은 대략 여기까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윤자유와 채운은 어찌 어찌 같은 편이 되어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역시 이수연 작가의 팬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은 누가 정말 같은 편이고 누가 정말 적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의심하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위해 진심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다. 얼른들 보셔.

참,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들도 있던데 지배종이란 dominant species, 즉 여러 생명체가 같이 존재하는 하나의 생태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종, 즉 다른 종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종을 말한다. 당연히 지구 생태계의 지배종은 인간인데, 내용상 이 드라마에서 지배종이란 현생 인류보다 한 단계 더 진화했다고 볼 수 있는 '새로운 인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여기까지만. 

 

(스포 경고. 넘어오지 마세요)

 

<비밀의 숲>에서 거대한 적들에 비해 돈도 없고, 뭔가 힘도 없는 주인공들의 노력이 안타까우셨던 분들이라면 이번엔 좀 편안하게 보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상대인 재벌그룹이나 국무총리만은 못하지만 BF그룹은 기술도 있고, 맨파워도 있다. 최소한 돈이 없어서 뭘 못하는 일은 절대 없다. 경호원도 수십명씩 고용할 수 있다.

 

비록 이 드라마가 근미래, 아직 이뤄지지 않는 신기술이 적용된 사회상을 그리고 있지만, 혹시나 <그리드> 같은 드라마일까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그리드>에 비하면 기술은 그렇게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고, 복잡한 타임슬립 트릭도 없다. 연출 의도인지 가끔씩 시간상의 인과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시청에 방해 되는 요소는 아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24>나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느낌의 슈퍼 에이전트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드라마라는 점. 국내 드라마 주인공 중에선 이 작품의 주지훈에 비견될만한 캐릭터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배신+배신으로 점철되는 악당들의 뿌리를 추격해 가는 과정이 탄탄한 플롯 덕분에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심지어 <존 윅>에나 나올법한 파워 수트, 인공장기 수술의 부작용(?)인 초인적인 힘까지 장착하다니. 

윤자유라는 '이상주의자이면서 유능한 이과 출신 경영자'의 역할을 한효주 외에 다른 어떤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었을지도 솔직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 역할은 수시로 매우 인간적인 대학교 서클 회장 언니에서 사람 수십명의 목숨 따위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적들과 한치 양보없이 싸워야하는 우리편 대장의 면모를 오가야 하는데, 결코 구현이 쉽지 않을 인물이 한효주 덕분에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졌다. 

그리고 드라마에 생동감을 주는 것은 역시 막강한 악의 무리들. 엄효섭, 이희준의 화려한 악당 연기는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고, 잘 모르는 배우였던 박지연의 열연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것이, '악당들'의 목적이 BF가 갖고 있는 '진짜 무서운 비밀'의 확보에 있었다면, 대체 김신구 교수(김상호)를 굳이 죽여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살려서 핵심 원천 기술을 빼오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활용이 아닌가 하는 대목 처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또 후배 경호원은 하필이면  '칼과 불을 막아내는' 파워 수트를 입고 있다가 죽고, 경찰 세 사람을 공중부양시키는 채운의 괴력은 막상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특공대원들과의 1:1 대결 때에는 어디론가 실종되어 버린다는 진행 등도 아쉽다. 가장 중요한 전투 신에서 채운이 좀 더 슈퍼파워를 과시했어야 하는 건 아닐지. 

그래도 현 시점에서 가장 시즌2가 기대되는 한국 드라마라면 아무래도 <지배종>을 첫 손가락에 꼽게 된다. 내부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디즈니 플러스의 빠른 결단을 촉구한다. 

P.S. 그리고 디즈니 플러스 마케팅 점검 좀 하시죠. 어떻게 구글 검색을 해도 포스터 말고는 검색되는 사진이 이렇게 없을수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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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플러스의 10부작 <쇼군>. 드라마 한편을 보고 나서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은 작품도 정말 오랜만이다. 일단 줄거리를 살펴보자.

배경은 서기 1600년의 일본. 타이코(태합) 나카야마는 1598년 사망하면서  '5대로'라고 불리는 다섯 명의 강대한 영주들에게 어린 아들의 앞날을 부탁했다. 하지만 2년 뒤, 5대로의 결속은 깨지고, 나카야마의 심복인 이시도는 후계자를 위한 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어린 후계자의 생모인 오치바와 동맹을 맺고 강력한 라이벌인 에도의 다이묘 토라나가를 거세하기 위해 갖은 압박을 가한다. 


내전을 예감한 각지의 영주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엄청난 눈치보기를 시전하던 상황, 네덜란드 배를 탄 영국 항해사 존 블랙손이 토라나가의 세력권인 이즈 반도 끝으로 표류해온다. 당연히 일본과 단독 무역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포르투갈인들과 그들의 편인 천주교 영주들은 이 개신교도의 출현을 껄끄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고, 토라나가는 이 복덩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심복의 아내 마리코를 블랙손에게 통역으로 붙인다. 블랙손은 피치못하게 토라나가의 수하가 되어 전국시대의 종말을 앞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일본의 1600년이라면 임진왜란 종결로부터 2년 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시대인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왜 생소할까. <쇼군>의 원작을 쓴 제임스 클라벨이 창작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인지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모두 바꿨기 때문이다. 저 위의 줄거리에서 나카야마 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시도 대신 이시다 미츠나리, 토라나가 대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대입하면 실제 역사가 된다. 사실 블랙손이라는 인물 역시  '안진'이란 이름으로 도쿠가와를 섬겼던 영국인 윌리엄 아담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디테일은 다르지만 큰 줄거리는 대략 일치한다. 

 

어쨌든 클라벨의 이 소설은 1975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번역 출간된 한국과 일본에서도 크게 성공했고, 1980년에는 5부작 미니시리즈(약 540분 분량)로 제작되어 역시 큰 성공을 거둔다. 이 미니시리즈는 한국에서 방송되지는 못했지만 2시간짜리 극장판으로 편집돼 1981년 피카디리 극장에 걸린다. 이 영화를 본 사람으로 생각나는 얘기가 참 많은데...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따로 한번 써야 할 것 같다.

쇼군, 1980


1980년판의 리처드 체임벌린(뒷날 <가시나무새>로 잘생긴 남자가 신부복을 입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바로 그 분이다), 미후네 토시로, 시마다 요코의 명성에 비길 정도는 아니지만 2024판에서도 사나다 히로유키를 필두로 아사노 마사노부, 히라 타케히로 등 할리우드에도 어느 정도 기반을 갖고 있는 일본 톱스타들이 출동해 탄탄한 연기를 보여준다.

사실 드라마의 작중 화자 겸 명목상의 주인공은 블랙손 역을 맡은 코스모 자비스지만, 누가 봐도 진정한 드라마의 축은 토라나가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와 마리코 역의 안나 사와이다. 굳이 주제를 찾자면 '아시아의 정치 고수들 손바닥에 놓인 단순한 영국인' 이라고나 해야 할까.  블랙손은 끝까지 일본인들을 깊고 깊은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장깃말처럼 끌려다니는 존재다.

반면 다른 한 쪽에서 이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야부시게 역을 맡은 아사노 타다노부의 열연이다. 왕년의 섹시 스타가 어쩌다 이런 코믹한 아재가 됐는지 모르겠으나, 야부시게는 여기서 큰 영주들 사이에 낀 소영주, 즉 대영주의 가신들이 겪는 애환을 상징하는 존재다. 명분상의 의리로는 토라나가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나, 가문과 영토를 보존하려면 이시도를 무시할 수 없기에 거의 내놓고 양다리를 타는 그런 남자... 전설 속 일본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실체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2024년의 <쇼군>이 주는 충격은, 1970년대(소설 <쇼군>은 1975년에 나왔다) 미국인들이 바라보던 저 먼 동양의 신비로운 나라 일본의 이미지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는 거다. 사실 이런 시각은 1969년작인 <007 두번 산다>나, 일본이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떵떵거리고 있던 1993년작인 <떠오르는 태양>에서나 큰 차이가 없다. 이 작품들 속의 일본인들은 항상 신비로운 미소 속에 자신들만의 세계를 갖고 있고, 특히 여성들은 뭔가 은밀한 임무를 위해 언제든 몸과 마음을 다 외국인들에게 바친다. 상급자의 명령은 하급자에게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며, 잘못에 대한 사죄는 결국 항상 셋푸쿠(切腹, 우리에겐 '할복'이 더 익숙하지만 정작 일본어로 많이 쓰이는 이 단어는 한자로 '절복'이다)를 통해서만 해결된다. 

 

현대 일본인들이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일본인들이 이 드라마를 만드는 데 동원된 명분은 아무래도 '아니, 누가 지금이 그렇댔나, 이건 400년 전 얘기잖아' 같은 것일텐데, 이 드라마 속의 몇몇 상징들을 봐선 지금도 미국이 일본과 일본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번 <쇼군>에서 블랙손이 일본에 상륙하는 이즈 반도 끝자락엔 시모다(下田)란 항구가 있다. 1853년, 미 해군의 매튜 페리 제독이 구로후네, 즉 흑선(黑船) 함대를 몰고 무력시위를 벌여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킨 바로 그 곳이다. 참고로 블랙손의 모델인 윌리엄 아담스가 실제로 상륙한 곳은 저 머나먼 큐슈였다. 

...뭐 이런건 그냥 일종의 피해망상이라고 치자. 아무튼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나 흥미로울, 넘쳐나는 오리엔탈리즘 덕분에 이 드라마는 공전의 히트작이 됐다. 디즈니 플러스 발표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미국 국내에서는 훌루(Hulu), 글로벌하게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배급됐는데 '역대 디즈니 플러스가 만든 드라마 시리즈 중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한다. 

 

미주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봐선 이것은 한류를 한방에 날리는 일류(日流)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일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일본 배경의 미국 드라마고 쇼러너인 레이첼 콘도는 일본계지만 하와이 출신 미국인이다. 말하자면 <오징어게임>보단 <파친코>에 가깝다. 그건 그런데, 사실 겁나는 건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봤지? 이런게 통하잖아. 우리도 이런거 만들면 당장 미국 시장 다 먹을 수 있어! 잘 할 수 있잖아?" 할 몇몇 사람들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이란게 과연 어떤 걸까. 혹시 남편이 죽으면 수절 과부 만들기 위해 며느리에게 자결을 강요하고, 자손 얻기 위해 씨받이를 들이고, 그래도 안되면 남자를 씨내리로 들이고, 복자승에게 보내 임신을 시켜 오려 하고, 가문과 나라의 안녕을 위해 딸들을 대국에 공물로 바치고, 그중 권력자의 처첩으로 성공하는 케이스가 나오면 그 댓가로 아버지와 오빠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고.... 뭐 이런 이야기들 아닐까. (왠지 너무 잘 먹힐 것 같아 불안하다.)

어쨌든 이런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 것은 내가 그런 사정을 지켜보며 살아 온 한국인이기 때문인데, 사실 이런 생각을 걷어 내고 보면 <쇼군>이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점은 감히 부인할 수가 없다. 검술 액션이나 전투신은 거의 없지만 의상, 건축, 미술은 탄복할 만 하고, 음모, 폭력, 잔혹, 그리고 은밀한 남녀관계까지 볼거리가 넘친다. 배우들의 연기, 연출력 모두 탄탄하다. 거기에 몇 차례의 셋푸쿠 신을 둘러싼 제작진과 시청자의 줄다리기는.... 정말 대단한 경지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센고쿠(전국)시대란 무엇인가, 쇼군과 다이묘는 어떤 관계인가, 하타모토는 또 뭔가. 에도와 오사카는 어떤 관계인가 등등을 알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쇼군>은 그런거 하나도 몰라도 드라마를 즐기는 데 전혀 지장이 없도록 잘 만들어진 오락물이다.

오히려 일본 역사에 관심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장면 때문에 몰입이 깨질 수도 있을 부분들이 있는데, 이 역시 재미있게 보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뭐 그렇게 자잘한 생각이 많은가?"

남의 일이니까 재미있게 보는데 이런게 내 이야기가 되면 별로 즐겁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이런 느낌은 어떻게 하면 사라질 수 있을까.

...하긴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보고 즐기기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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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스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주만한 크기의 목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 토호 존 더튼 역. 더튼과 충실한 2인자인 장남 리, 변호사인 차남 제이미, 반항적인 카우보이인 막내 케이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천재 딸 베스의 4남매가 변해 가는 주변 환경 속에서 ‘트래디셔널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전통적인 미국인의 가치를 가장 간단히 요약하면 ‘내 집과 내 가족은 내가 내 힘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인 것 같다. ‘정의’의 기준은 ‘네가 넘어오면 결과는 네 책임이다’고, 좀 더 나아가 ‘자기 방어’의 기준은 ‘나와 내 가족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이든 제거해도 된다’가 된다.
 
이 ‘무엇’ 안에는 해충과 방울뱀, 인간이 모두 동등하게 포함된다. 존 웨인 영화 속 세계가 21세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자못 충격적이다.
 
보다 보면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다. 몬태나 주와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경찰력을 비교해 보면 각각 201명대 250명,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몬태나 주엔 남한 4배 정도의 넓이에 1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경찰 한 명이 약 115제곱킬로미터를 커버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 <옐로우스톤>에선 ‘시체 버리는 장소’가 자주 등장한다. 한 인물이 “왜 늘 시체는 여기다 버리느냐”고 질문하는데, 대답이 이렇다. “여기서 사방 100마일 내에는 인가도, 경찰도, 보안관도 없기 때문이지.”
 
케빈 코스트너는 말보로 광고에 나오는 듯한 19세기적 카우보이 보스였다가, 적들을 거리낌없이 제거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냉혹한 범죄단체 수장이었다가, 결국은 전통적인 미국의 개척정신을 수호하는 신념의 화신으로 미화된다. 총 몇방 맞은 정도로 의사 신세를 지는 것은 수치고(정말 존 웨인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적들조차도 결국은 그를 존경하게 된다(물론 대부분 그 전에 시체가 되어 황무지에 버려진다). 한국의 꼰대 아저씨들 따위는 그 앞에 가면 순진한 유치원생처럼 보일 듯한 느낌이다.
이런 가치관에 동의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고, 미국의 단면을 본다고 생각하면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다. ‘아무리 악인이지만 내가 인간의 목숨을 이렇게 빼앗아도 되는가’ 따위의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고구마가 없다. 진행도 빨라서 정신을 차려보면 5시즌 순삭.
물론 보고 있으면 버본이 마시고 싶어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티빙에 시즌5까지 있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서서히 테일러 셰리던 월드에 젖어들고, 다른 작품들까지 모두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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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연이겠지만 2023년 상반기에는 재미있게 몰두해서 본 드라마가 많았던 반면, 하반기에는 재미있을 뻔 하다가 만 드라마들이 많았던 듯 합니다. 굳이 외면한 작품으로는 병자호란-소현세자로 이어지는 시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연인>을 처음부터 안 본 정도? 

아무튼 나중에 생각해 보면 2023년은 개인적으로 '테일러 셰리던의 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미드계의 박봉성'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이 양반 정말 대단합니다. 2023년 현재 <옐로우스톤> 시즌 6, <라이오니스> 시즌2,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 시즌3, <1923> 시즌2, <털사킹> 시즌2를 동시에 자신의 크레딧으로(작가/제작)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아무리 밑에 유능한 작가들이 많고, 대본 공장을 심하게 돌려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대부분 다 재미있고 성공하고 있다는...)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드라마 중에는 역시 상반기의 <글로리>와 <카지노>가 워낙 강렬한 탓인지 그 뒤로 <소년시대>가 오기 전까지 그닥 인상적인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 정도...? 

 

옐로우스톤, 1863, 1923

테일러 셰리단 월드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아마도 2023년의 가장 결정적인 선택이었던 듯. 미국 몬태나 주를 무대로 '그 자체가 서부 개척사'라 할 수 있는 더튼 가문의 150년을 한꺼번에 훑어보는 이 장대한 사가에 한번 발을 들여 놓은 뒤로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옐로우스톤>은 현재 몬태나의 실세인 대 목장주 존 더튼의 삶, <1863>은 처음 더튼 가문이 어떻게 서쪽으로 역마차를 끌고 이동해 몬태나까지 오게 되었는지(사실 오레건으로 가다가 중간에 멈춘), 그리고 해리슨 포드가 주연인 <1923>은 자동차가 말을 밀어내는 시대에 미국 서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저런 스틸컷을 보면 이 드라마가 <초원의 집> 같은 미국의 전원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몬태나 주는 19세기 후반과 큰 차이 없는 야망과 살육의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드보일드 대하 드라마.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옐로우스톤>의 다섯 시즌, 그리고 그 조상들의 이야기인 <1863>과 <1923> 을 보고 있으면 어쩌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고 또 되려고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미국. [티빙]

옐로우스톤, 서부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옐로우스톤, 서부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

fivecard.joins.com

털사킹

테일러 셰리단 월드는 몬태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잘 나가던 뉴욕의 마피아 중간 보스에서 하루 아침에 오클라호마주 털사를 나와바리(?)로 받은 실베스터 스탤론. 30년의 옥살이 끝에 지성과 펀치를 겸비하게 된(노인 우습게 보는 동네 깡패들을 한방에 제압하고 돌아서서 검찰 여수사관에게 치근댈 때에는 세네카를 인용할 수 있는 남자!) 스탤론의 인생 2모작 이야기인 셈인데, 일단 보시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듯. [티빙]

 

라이오니스

셰리던은 <옐로우 스톤> 시리즈와 <털사 킹> 외에도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과 <라이오니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신통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중 더 재미있었던 쪽은 <라이오니스>. 근육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미 특수부대 장르에 여자들이 주도하고 여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새로운 유닛(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에 대한 이야기다.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은 시즌2로 가며 엿가락 신공이 작용하고 있는 듯 해서 애정이 식었지만 이 쪽도 팬이 많다는 정도는 언급해도 좋을 듯.  (이상 테일러 셰리단 시리즈는 미국에서는 파라마운트, 한국에서는 웨이브였는데 최근 한국 서비스 OTT가 티빙으로 바뀐 듯.)

조이 살다나, 니콜 키드먼의 조합이 생각보다 좋다.  [티빙]

아무튼 여기까지가 테일러 셰리던 시리즈.

글로리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2023년의 드라마로 과연 이 작품을 빼놓고 뭘 얘기할 수 있을지. 오히려 <글로리>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에 2023년을 빛낸 다른 한국 드라마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여러 학폭 사태로 인해 하늘이 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무적의 송혜교 외에도 주변의 악역 하나 하나, 그 악당들의 주변 인물 하나 하나까지 모두 살려낸 대본은 실로 '드라마의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넷플릭스]

소년시대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이성한 감독의 2009년작 영화 <바람>. 그리고 충청도를 무대로 했던 영화 <불타는 청춘>이나 뭔가 촌스러운 큐슈 기지촌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이상일 감독의 <69>는 아마도 반면 교사 역할을 했을 듯. 어떤 면에서는 일본 만화 <엔젤전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소년시대>제작진의 위대함은 이미 존재했던 이 많은 작품들을 보고 본인들이 아쉬웠던 점을 후련하게 털어낸 뒤 완벽에 가까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점. 대본, 연출, 그리고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해 데뷔한 듯한 수많은 젊은 배우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2022년에 박은빈이 있었다면 2023년에는 임시완이 있었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열연. 물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상진이 연기한 호석이가 가장 사랑스러웠다. [쿠팡]

디플로맷

프로페셔널 외교관 부부. 의뭉스러운 대통령의 의지로 영국 전문가인 남편이 아닌 아내가 주영 미국 대사가 된다. 같은 뿌리를 갖고 있고 항상 같은 편이지만 그래도 뭔가 긴장이 흐르는('영국 총리는 미국 대통령의 애완견이냐'는 시각은 항상 존재한다 - 물론 이런 것도 <러브 액추얼리>같은 영화에서 본 거지만) 미국과 영국의 관계. 그 안에서 온갖 음모와 싸우는 용감한 여대사 케리 러셀의 1인 무적 드라마인데, 사고를 치는 건지 아내를 도와주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남편(전남편) 루퍼트 시웰이 은근히 더 빛나는 느낌도 있다. 시즌 2를 기다리는 중. [넷플릭스]

브러쉬업 라이프

회귀물을 참 많이 봤는데, 인생 2회차 드라마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고, 성공한 작품은 더더욱 없다. 아무래도 그만치 쓰기 어려운 듯. 그런데 인생 5회차 6회차 7회차를 그리는 드라마가 나왔다. 일본 드라마 <브러쉬업 라이프>. 야망도 뭣도 없는 평범한 공무원이 어찌어찌하다 살아온 삶을 뒤엎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판타지다.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찰떡같다.

물론 살아 보면, 역시 인생이란 두번 정도 살아서 무슨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과거를 바꾸면 그 과거는 계속 또 다른 과거(그러니까 좀 더 가까운 과거)를 만들고... 아무튼 '젊은 여자들 이야기인데 남자 주연은 하나도 없는' 신기한 드라마. 여자들의 우정이 주제다. 멜로가 없으면 드라마가 아닌 분들께는 비추. [웨이브]

 

플레이리스트

스포티파이라는 셰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음원 앱을 주제로, 그 앱을 만든 창업자, 개발자, 경영자, 그리고 이 사업을 존재 가능하게 한 변호사, 이 사업과 손을 잡아야만 했던 음악산업의 거물,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인 콘텐트를 제공하는 아티스트라는 6개의 시각으로 그 성장 과정을 살펴본 드라마. 꽃미남/미녀/멜로 전혀 없고, 만듦새부터 내용까지 모두 '아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을 주는 혁신적인 드라마. 그런데 재미있다. 특히 IT 비즈니스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는가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강추. 물론 다큐 아님. [넷플릭스]

카지노

시기적으로 살짝 애매하지만 어쨌든 내가 본게 2023년이니 여기에. 결코 흠이 없는 드라마는 아니다. 초반 주인공의 어린 시절 성장 서사가 사실 너무 뻔하고, 너무 지루하다. 하지만 일단 필리핀으로 넘어가면 중간에 끊고 안 볼 수 없게 하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특히 호구 형님과의 시퀀스가 '아... 저기서 멈췄으면' 하는 생각과 '저런 의지 없는 인간은 밑바닥까지 당해 봐야지'하는 묘한 양가감정을 일으킨다. 드라마를 통해 보는 남의 불행은 이런 식으로 즐길 거리를 주는 걸까. 아무튼 일단 흐름에만 오르면 결말까지(그 결말이 꼭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이건 그냥 개취) 한방에 달리게 하는 탄탄한 드라마. [디즈니]

리키시

일본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넷플릭스를 노릴까. 일단 고레에다가 게이샤/마이코 이야기로 물꼬를 텄는데 아무래도 페도파일 냄새가 불편했다. 어디 가서 함부로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없는 드라마(그리고 개인적으로 재미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의 기념비적인 드라마는 바로 이 <리키시>라고 생각한다.

<리키시>는 한자로 역사(力士), 즉 '힘 쓰는 남자=스모 선수'라는 뜻. 모래판을 무대로 강백호보다 10배 쯤 더 말 안 듣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천재형 스모 선수가 어찌어찌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이야기. 전혀 잘생기지 않고, 본받을 데도 없는 주인공이 신선하고 이야기 전개도 좋았는데, 주연급 여성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발암이다. 이런 요소는... 앞으로 일본 드라마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데 분명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너무 뭔가 아저씨 드라마 판 인것 같아 하나 추가하면,

반짝이는 워터멜론

그렇게 많은 2023년의 말랑말랑 청춘 드라마들 중에서 시간을 기다려가며 볼만한 드라마는 이거 하나였다는 생각. 아빠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한국의 그 많은 과거 회귀 작품들 가운데서도 드물게 신선함이 빛났다고나 할까. 특히 최현욱의 신비로운 매력은 정말.  [지금 보려면 티빙?]

기타:

물론 매번 시즌이 바뀔 때마다 다시 얘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만달로리안3>는 따로 꼽을 수 없었다. 좀 경우는 다른데 최근 넷플릭스로 소개된 <나이트 에이전트>도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이미 본지는 꽤 오래 된 작품. 드라마 외의  TV show 로 꼽는다면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데블스 플랜>이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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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러쉬업 라이프의 세 주역
<재벌집 막내아들(2022)>의 원작 웹소설 이후로 요즘 '인생 2회차' 서사가 넘쳐나지만 사실 이 장르에서 아 그거 걸작이었지 싶은 작품은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페기 수 결혼하다(1986)>, 해롤드 래미스의 <사랑의 블랙홀(1993)> 이후로는 <어바웃 타임(2013)> 정도? 일본 만화 <리라이프>?
그러니까 내가 과거로 가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빙의되어 다시 태어나는 경우는 흔한데 '내 인생'을 동시대에 다시 살 기회가 생기는 서사는 생각보다 흔치 않았다. 아마도 2023년 일본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는 이 전통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될듯 하다.
 
일본 어느 지방도시 공무원으로 아주아주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던 아사미. 어느날 교통사고로 급사해 저승의 흰 공간에 떨어지고, 생전의 자기와 너무나 하는 짓이 비슷한 저승 공무원("규정때문에 안됩니다")에게서 지금 환생하면 쌓은 덕의 포인트가 부족해 다음 삶은 과테말라의 개미햝기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단, 그게 싫으면 인생을 다시 살아서 만회할수 있는 기회는 있다. 그래? 그렇다면 당연히 다시 살아야지. 인생 2회차 도전!
이라는 이야기인데, 과연 인생을 두번 살면 얼마나 삶이 달라질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삶은 어느새 훅 지나가 버린다. 더구나 덕을 쌓지 않으면 미물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니. 대체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한 덕'이란건 정체가 뭐냐.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그의 타고난 포텐셜인가, 노력인가. 과연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이란 존재하나. (단, 장르는 코미디)
...라는 식의 이야기는 인생이 2회차면 다 될것 같으냐는 진지한 접근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위에 계란 후라이처럼 가장 돋보이게 덮인 것은 놀랍게도 철저하게 일본적으로 변형된 <섹스 앤 더 시티>.
 
아니,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일까? 네 친구의 너무나도 끈끈하고 치열한 우정이 사뭇 감동적인데 심지어 거기엔 남자의 그림자가 없다.
 
남성 캐릭터 중 가장 비중이 큰 후쿠짱은 그야말로 커다란 곰 인형 수준. 사랑이며 연애며 하는 것은 그녀들의 인생에서 정말정말 사소한, 지나가는 얘깃거리일 뿐이다. 정정하면 <노 섹스 앤 더 시티>. "Trends come and go, but friendships never go out of style." 그런데 정작 작가는 75년생 남자(바카리즈무).
소꼽친구 여자들 이야기에서 연애라는 강력한 재료를 아예 들어내고도 10부작 드라마가 이토록 흥미로울수 있다니. 사뭇 놀라울 뿐이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사회교육방송적인 색채도 최대한 억누른(물론 아주 없지는 않다) 연출도 새롭고, 말 실수 하나도 나중에 보면 다 이유가 있었던 초세심 대본도 빛을 발한다. 안도 사쿠라의 명연기는 말할것도 없고.
물론 <펜트하우스>나 <아씨두리안>이 인생드라마였던 분들에겐 비추. 왓차/웨이브/티빙에서 시청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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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때문에 디즈니 아이디 살렸는데 어 어벤저스밖에 없네 인제 뭐보지 하는 분들을 위한 추천. <만달로리안>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를 보시고, 물론 <카지노>도 볼만한데 <드롭아웃>도 한번 보시라고.
우리에게 황우석이 있지만 바이오 벤처의 역사에는 그 정도는 우스울 수많은 사기꾼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 피 한방울만으로 200가지 질병을 진단할수 있다는 신기술로 엄청난 투자를 모아 초거대 성공신화를 쓴 늘씬한 금발 미녀가, 실제론 모든게 구라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한때 수조원이었던 기업가치를 0원으로 만들고 실형을 살고 있다는 실화.
 
<드롭아웃>은 바로 이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사기의 원칙이 살아 있다. 사기를 치려면 가능한 한 상상의 범주를 넘어 크게 쳐야 한다. 그래야 '설마 저게 사기겠어?'라는, 대중의 사각에 위치하게 된다.
극중 사기의 패턴은 너무 간단해서 놀라울 정도. 우리를 검증하겠다고? 미안. 정보 유출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검증은 불가하다. 특허는 현재 검토중이며, 곧 모든게 선명해진다. 얼마나 많은 유명인사들이 우리를 지지하는지 알고 있나? 그 사람들은 뭐 다 바보라서 그러고 있을 것 같은가.
 
우리 실험실을 보여주지 않으면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아,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꼭 투자하라는 얘기는 않겠다. 다른 투자자가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엘리자베스 홈즈는 실제로 금발, 외모, 언변이라는 자신의 자산을 최대로 이용한 인물인 듯(드라마 한 회차의 제목이 '백인 중년 남성'이다). 테라노스 사건 이후로 한 여성 벤처기업인은 "홈즈를 연상시킬수 있으니 금발을 다른 색으로 염색하라"는 조언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암튼 보고 있으면 선악의 자리바꿈이 현란하다. 홈즈의 피해자(투자자)들은 그야말로 탐욕의 화신들. 홈즈의 변호인은 너무나 '정의'를 자주 들먹인다. 한편 유일하게 진실을 파헤친 사람은 모두가 싫어하는 극 비호감 인물이란 점도 흥미롭다.
 
 
그리고 이 작품의 해석에 따르면 홈즈는 소시오패스다.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역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연기를 보는 것이 큰 재미. '감정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보고 학습해서 그걸 연기로 써먹는' 연기가 진정 압권이다. 아무튼 참 실화라기엔 실감이 안 나는 놀라운 이야기. 재미있다. #드롭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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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오징어게임>이 처음 나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썼던 글입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읽어봤는데 별로 틀린 말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때 온갖 호들갑이 쏟아져 나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 나올 때 썼던 글이라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아무튼 그 뒤로 K-콘텐트의 물결이 세계를 휩쓰는 걸 보게 된 지금, 다시 읽어볼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1970년대 초 쯤이라고 치자. 서양인 서넛이 아시아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다 길을 잃어 인적이 드문 변두리로 빠졌다. 어두컴컴해서 겁도 슬슬 나고 배도 고픈데 저 앞에 영자로 된 레스토랑 간판이 보인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다. 잘 닦아진 커틀러리 하며, 리모주 자기 그릇들이 예사롭지 않더니, 거북이 알 수프에서 브랜디에 담근 메추라기, 농어 구이까지 제대로 된 프렌치 정찬 코스가 나오는 거다. 다들 놀라는 가운데 어디서 좀 먹어봤다는 친구가 말한다.
“수프와 메인은 좋았어. 하지만 제빵기술은 아직 부족해. 치즈도 두가지밖에 나오지 않고, 이렇게 쿰쿰하지 않은 까망베르는 어린이용이지. 뭣보다 와인리스트는 손을 봐야 할 거 같아.”
그러자 다른 친구 하나가 말한다.
“무슨 소리야. 뉴욕이나 파리에서 이 가격에 이런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면 우리는 내일부터는 이 식당에 다시는 예약을 못 하게 될거야. 그리고 넌 대체 뭘 바라는 거야. 이 음식이 어떻게 나온 건지나 알아? 이 도시 이름이라도 제대로 알아? 여기가 홍콩이나 도쿄라도 되는 줄 알아?”
 
 
 
 
2. <오징어게임>에 대해 입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요즘. 굉장히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온 세계 사람들이 모두 <오징어게임>에 열광하는데 왜 한국 사람들만 여기저기서 재미없다, 잘 못 만들었다 말이 많은 건가요?”
한때는 <기생충>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을 매국노로 몰아 죽창으로 찔러 죽일 기세더니(물론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살려주세요), 이젠 <오징어게임>이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콘텐트에 토를 다는 행위는 마치 여동생이 선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얘 눈이랑 코랑 다 성형한 거에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듯한 분들이 적지 않다.
올림픽 금메달에서 ‘전 세계 넷플릭스 1위’까지, 국위선양, 환호, 좋다. 다만 해외에서 <오징어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일단 이 콘텐트가 너무 짧은 시간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고, 이방인 평자들은 이 콘텐트를 ‘어떻게 보아야 할 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붐은 여기저기서 징후가 보인지 오래지만 이렇게 큰 화제가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은 신기하고 낯설다는 뜻이다. 좀 익숙해졌다 싶은 순간, 드디어 외국에서도 ‘비평’이 시작되고 있다. 알리 캐릭터가 엉클톰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부터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많지만,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3. 가장 답답한 것은 ‘<오징어게임>의 분석을 통해 K-콘텐트의 성공 원인을 분석’ 하려는 시도다. 이건 전봉준이나 나폴레옹의 캐릭터 분석을 통해 동학혁명의 실패 원인이나 19세기 초 프랑스의 군사적 성공 원인을 파악하려는 시도와 비슷해 보인다.
개인적인 의견: K-드라마는 이미 충분히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상품을 내놓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대대적인 노출의 기회, 즉 쇼윈도의 존재였다. 이 경쟁력의 배경에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비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어 온 창작의 자유가 있었다. 일부 제한된 분야, 즉 섹스와 폭력에 대해서는 상당 수준의 금기가 작용했지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그런 제약을 일시에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있으면 늘 하던 대로 천, 지 인으로 나눠 서술하고 싶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이 정도만.)
 
 
그리고 또 한가지. 한국이라는 나라를 레스토랑에 비유하자면 현재의 K-콘텐트는 훌륭한 디저트다. 디저트만으로도 명성을 떨칠 수 있지만 메인디시까지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때가 진정한 성공의 시작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P.S. 그럼 앞으로는? 당연히 잘 되겠죠. 이웃 나라 중에 K-콘텐트를 온 국력을 다해 응원하고 있는 나라도 있는데, 당연히 잘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건 <펜트하우스>가 넷플릭스에 올라가면 어떤 반응을 얻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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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라고 되어 있는 것은 아시다시피 한 편으로 끝나지 않는 시리즈 영상물을 말합니다. 요즘 TV는 그냥 단말기일 뿐, 네트워크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에 연속극이냐, 8부작이냐, 30부작이냐, 매주 연속공개냐, 한방에 다 공개냐 따위의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는 시리즈를 그냥 '드라마'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이제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3시간 이내의 단편이냐, 아니면 1시간~1시간30분 이내를 한 편으로 하고 내용의 동일성이 유지되는, 대략 3편 이상의 시리즈이냐 정도로밖에 구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 네트워크의 대표적인 특징인 '16부작 미니시리즈', 일본 드라마의 특징인 '연 4분기에 따라 공개되는 10~11부작', 미국 드라마의 특징인 '인물과 배경을 유지하고 시즌1이 성공하면 무한시즌 연속제작' 등이 다 OTT라는 거대한 늪에서 뒤섞이는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늘 그렇듯 '볼게 없어....'하다가 연말이 되면 '아, 올해도 꽤 많이 봤구나' 하게 되는 드라마 결산.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숫자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냥 갯수를 세기 위한 도구일 뿐. 그리고 2022년이라는 것은 제가 해당 드라마를 본 게 2022년이라는 것이지 이 드라마들이 모두 2022년작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그러나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에 빛나는)가 현실 법조계에 뛰어들어 다양한 사건을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 단언컨대 한국에서 지금까지 나온 장애에 대한 드라마 가운데 가장 유니크한 시선을 보여준 작품. 물론 '실제 장애인들에 비해 너무나 뛰어난' 우영우가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다른 편견을 일으킨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원래 드라마란 매우 특이한 인물들을 보여주는 장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P.S. 한 법조인은 "지금까지 본 한국 법정 드라마 중에서 가장 재판 장면이 리얼하다"고 평가하기도.

 

2. 재벌집 막내아들

최초는 아니지만 한국 드라마의 세계에 본격적인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의 장을 연 드라마로 기록될 역사적인 작품. 평생 재벌 그룹에서 일했다기보다 재벌 일가의 집사처럼 일했던 한 직장인이, 심각한 배신을 경험한 뒤 그 일가의 잊혀진 막내로 빙의, 거대한 성공과 복수의 인생 2회차를 살아가는 이야기. 도준이가 대체 언제 비트코인을 사나 궁금했는데...

1회와 16회 vs 나머지 2~15회를 별도의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온갖 이야기가 쏟아졌지만, 이런 논란이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려면, 과연 21세기 한국의 시청자들이 '정말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들려 주고 싶었던' 이야기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차이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했을텐데, 그렇지 못한 한국의 드라마 평단(?)이 좀 답답했습니다.  

 

3. 나의 해방일지

<재벌집 막내아들>이 '지분'을 남겼다면 이 드라마는 '추앙'을 남겼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통학은 30분, 통근은 1시간 이상 걸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탓에 이 드라마의 깊은 상징성에 대해 뭐라 말할 처지는 못되고, 그저 2022년의 가장 달달했던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합니다. ("나 안 되는데." "왜?" "살쪄서" "한시간 내로 살 빼고 나와")

그리고 한편으로 이 드라마의 진정한 가치는, 21세기 초의 한국이라는 나라의 한 단면 - 인구의 50%가 '수도권'이란 곳에 모여 살고, 그 안에서도 안쪽에 사는 절반과 바깥쪽에 사는 절반이 어떤 다른 생각을 하고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 어떤 사회학 서적보다 훌륭한 이해를 가능해게 해 줬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4. 모닝쇼 (애플)

10년 이상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아침 프로그램 <모닝쇼>에서 어느날 남자 MC의 성희롱에 대한 고발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방송국 사장, 이사, 담당 CP, PD, 그리고 혼자 남은 여성 MC(제니퍼 애니스톤)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치열한 눈치보기에 돌입합니다. 목적은 단 하나 '남들이야 어찌 되건 나에게는 그 불똥이 튀지 않도록'. 이런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에 갑자기 등장한 시골 방송국의 무명 기자 리즈 위더스푼. 예측 불허의 다이내믹한 전개가 엄지를 절로 들게 하는 걸작.

....그러나 시즌2로 숫자가 바뀌는 순간, 거짓말처럼 드라마는 쓰레기로 바뀝니다. 주의.

 

5. 테드 라소 (애플)

별 성적을 내지 못하던 EPL 구단에서 어느날 미국 대학 농구 감독을 데려다 감독 자리에 앉힙니다. 미국인이 축구를 잘 알 리가...의 수준이 아니고, 오프 사이드 룰이 뭔지 설명하지 못하는 수준. 하지만 그는 타고난 친화력, 낙천성, 강한 의지로 팀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온갖 난관을 돌파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위대한 미국인이니까! 

드라마 전체가 하나의 농담이지만 매우 강력합니다. 그리고 감동적입니다. 최고.

 

6. 아파트 주민들이 수상해 (디즈니)

디즈니플러스를 탈탈 털어도 <만달로리안>과 이 <아파트 주민들이 수상해> 만한 작품은 다시 없다는게 제 생각. 뉴욕의 유서깊은 고급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어찌 어찌 하다가 엮인 세 주민은 힘을 합쳐 실시간으로 범죄를 추적하는 팟캐스트를 운영합니다. 한물 간 배우와 한물 간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그리고 신인 화가의 케미가 의외로 찰떡. 

시즌2도 재미있습니다. 

 

7. 페리패럴 (아마존)

한국에선 마이너 OTT에 불과하지만 세계 2위 OTT인 아마존은 사실 매우 강합니다. 비록 <더 보이즈> 같은 작품이 시즌2에서 쓰레기로 불타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페리페럴> 같은 걸작을 내놓고 있습니다. 클로이 모레츠가 드디어 성인 역할에서 제대로 한 작품을 뽑아냈다는 생각.

근미래. 흔한 미국 시골 마을에 병으로 눈이 멀어가는 어머니, 술이나 축내는 제대 군인 오빠와 살고 있는 클로이 모레츠는 알고 보면 보기 드문 게임 천재. 뭔가 실생활에서도 직업을 찾으려 하지만 실제 수입은 부자들의 게임 레벨 올려주기 알바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너무나 실감 넘치는 게임에서 뭔가 미션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와. 정말로 실제같은 게임. 그런데.... 

 8. 업로드 (아마존)

사실 신작은 아니고, 몇해 전 시작을 했지만 사정에 의해 못 보게 되었다가 올해 다시 정주행한 작품입니다. 배경은 인간의 뇌를 하드 디스크에 저장해 육신의 생사와 무관하게 인간의 의식을 살아 있는 상태로 뇌에 저장할 수 있게 된 근미래 시대. 그렇게 해서 인간들은 죽음을 거부하고, 자아를 인간이 만든 메타버스 세계에 저장해 생전보다 훨씬 더 꿈같은, 그야말로 인간이 만들어 낸 천국에서 영생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 천국에 가게 된 남자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 설정만 봐도 흥미진진!

 

9. 애나 만들기 (넷플릭스)

엄청난 물량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의 올해 대다수 시리즈는 실망의 연속. 그러나 <애나 만들기>는 강추할만 합니다. 사기꾼이란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리고 왜 사람들은 그 사기꾼에게 놀아나는가. 정확한 분석과 정교한 묘사. 이것은 다큐인가, 드라마인가(사실 넷플릭스에는 이 사건에 대한 다큐도 있고, 이 드라마에서 언급되는 파이어 아일랜드 페스티발에 대한 다큐도 있습니다. 후자 강추). 흥미진진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애나 아버지가 독일에서 어린 애나를 만나 레스토랑에서 페트루스를 주문하는 장면.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웬즈데이 (넷플릭스)

아담스 패밀리를 봤건 안 봤건, 좋아했건 안 좋아했건, 이 독특한 청소년 드라마에 빠져들지 않기는 쉽지 않을 듯. 이 드라마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담스 패밀리>보다 <해리 포터>를 예로 드는 것이 훨씬 좋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어둠의 세계의 해리 포터>라고 해야 어울릴 듯한 작품. 캐서린 제타 존스의 모습이 좀 슬프긴 하지만, 드라마는 참 재미지죠.

아주 이상한 아담스 패밀리의 딸 웬즈데이가 집안 내력에 따라 기숙학교를 가는데, 그 기숙학교에는 뱀파이어, 인어, 늑대인간, 마법사 등이 드글드글. 한마디로 별 초능력 없는 웬즈데이가 평범해 보일 지경. 하지만 곧 모두들 알아차립니다. 과연 누가 제일 이상한 아이인지.

 

그리고 10대 드라마에는 꼽지 못했지만 올해의 기념할 만한 작품들로는:

* 수리남: 한 4.5회 분량으로만 줄였어도 10대 드라마에 당연히 꼽았을.

* 슈룹: 유니크해서 재미있었는데, 가짜 역사를 너무 진짜처럼 포장해서 살짝 마음에 안 든.

* 사내맞선 : 뭐라 욕해도 좋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재미있었던. 

 

아, 그리고 어디다 끼워 넣어야 할까....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고, 했던 것 중 하나.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의 마지막 편, <히바로 Jibaro>야말로 2022년을 대표하는 영상 작품 중 하나였죠. 알베르토 미엘고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 엄청난 작품. 

히바로 Jibaro, 21세기 인류 문명의 정수 (joins.com)

이렇게 2022년의 드라마들을 보내고, 이제 <더 글로리>를 열심히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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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 <러브 데쓰+로봇> 시즌3의 마지막 편인 <Jibaro>를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얼얼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작 17분짜리 애니메이션이지만 담고 있는 이미지와 스토리는 인류 문명 전체를 제대로 관통한다. 진정한 글로벌 프로젝트란 이런게 아닐까 싶다.
 
2. 가장 기본이 되는 배경 스토리는 신대륙을 짓밟은 스페인 침략자들의 이야기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혹은 키르케) 이야기의 결합인듯.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미지의 폭격은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다.
 
 
3. 지역 문명을, 지구를, 혹을 자연을 제멋대로 약탈하고 유린하는 침략자들에게 원주민들이 숭배해 온 자연신(혹은 신적 존재)이 저항하는 이야기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고전으로는 존 부어맨의 <에메럴드 포레스트>가 있었고, <원령공주>나 <아바타> 가 그랬다.
 
 
4. 그런데 여기에 존 워터하우스의 <사이렌>이나 <라미아> 같은 작품들의 메시지, 밀레이의 <오필리아> 같은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물과 꽃잎 이미지, 금색 조각들로 뒤덮인 클림트의 <키스>같은 그림들의 아우라가 풍겨나온다. 극중 사이렌의 이미지나 동작은 인도+발리풍?
 
(물론 이건 다 제 기분에 그렇다는 겁니다. 전문가분들이 보시고 야 그거랑 그거랑 뭔 상관이야 하시면 바로 깨갱...)
 
5. 물론 이런 이미지나 스토리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지만, 알베르토 미엘고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사실 다 가져다 합쳤다는 것만도 놀라운데), 전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 다음엔 또 어떤 것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17분밖에 안 된다. 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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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태곳적부터 있었던 거라고 쉽게 생각해버리곤 한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냉장고나 스마트폰을 사용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당연히 없겠지만 그보다는 좀 덜 선명한 요소들, 예를 들어 고려시대에도 솥뚜껑에 삼겹살을 구워 먹었을 거라든가, 조선시대에도 "역시 한우가 맛있네" 같은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분들은 <양식의 양식>을 보시길 권장한다.

 2. 또 그 얘기냐고 하실 분들을 위해 신속하게 주제 전환. 오늘 얘기는 프로 스포츠의 기원에 대한 거다. 축구의 발상지 영국에서 FA컵이라는게 있는 시절이라면 당연히 밥먹고 축구만 하는 선수, 그러니까 프로 선수가 있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19세기 말까지 오히려 '돈을 받고 축구하는 선수'가 있는 팀은 출전정지를 먹는 게 룰이었다.

 3. 이유는 당연히 '스포츠맨십을 해치는 부도덕한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 스포츠란 건강과 여가를 위한 것이니 돈에 팔린 선수는 그 순수함을 해치는 존재라는 논리다. 직장인 야구적인 사고방식.

 4. 이런 논리는 축구라는 스포츠가 어떻게 정립된 것인지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모이면 공을 차던 시절, 그러니까 축구나 팩차기나 별 차이 없던 시절에 이튼과 해로우 등 영국의 유명 보딩 스쿨 축구인들이 모여 공식 룰을 만들었다. 대주분 귀족 출신인 동호인들이 축구를 '소유' 했기때문에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이 축구의 본질이 된 것이다.

 5. 그런 시대, <더 잉글리시 게임>에서 최초의 프로 축구선수가 된 퍼거스 수터(블랙번 로버스)는 말한다. "만약 그 규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같은 노동 계급 선수는 당신들처럼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을 영원히 축구로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따로 연습할 시간도 체력도 없습니다."

 (정말 똑똑한 자본가들은 이 대목에서 ', 축구라도 져 주는게 장기적으로 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겠구나! 입장료 수입이 얼마지?'라고 느꼈을 터.)

6.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당시의 사회상에서 축구라는 것이 어떻게 귀족들의 여가에서 노동계급의 엔터테인먼트로 변해가는지를 이해하게 해 주는 너무나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한다. 이것은 축구판 <양식의 양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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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플레이크드 Flaked>를 조금씩 쪼개 시즌 2까지 봤다. 미친듯이 정주행한 건 아니고 시간날때마다 곶감 빼먹듯 계속 보고 있었다. 낄낄대며.

주인공 이름은 칩. 그럭저럭 관리가 된 40대 싱글 남자. 전 장인(전처의 아버지) 소유 건물에서 전혀 장사가 되지 않는 가구점 운영. 세 안냄. 친구 데니스 어머니 소유 주택 본채(?)에 얹혀 생활. 역시 세 안냄. 인생에 대한 대단한 철학이 있는 척 하기 위해 핸드폰도 운전면허도 없이 산다. 한마디로 보기에 멀쩡한 빈대. 왜 제대로 된 뭔가를 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엄청나게 길어진다. 

특기는 순간적인 멋진 척, 생각있어 보이는 척, 상처 많이 받은 척, 그리고 얄팍한 거짓말을 이용한 임기응변. 실상을 알고 보면 도대체 긍정적인 면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워낙 뛰어난 사회적 위장막 덕에 사람들에게 은근히 인기있는 편이다. 특히 그를 무슨 롤모델인 양 떠받드는 남자 후배들(?)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자아는 비대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유아 수준인 중년 남성이 주인공이다. 이 두가지가 종특이라는 중년 한남으로서, 보고 있으면 누군가 옆에서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매저키스틱한 쾌감이 일품이다. 그런 면에서 아저씨의 세계를 필요 이상으로 미화했던 <나의 아저씨>와는 우주 정 반대에 위치한 작품이랄까. 어쩌면 홍상수 영화를 영어로 보는 듯한 느낌도 있다.

대체 왜 제목이 flaked일까. '너무 얄팍해서 속이 뻔히 보일 듯한 캐릭터' 때문일까도 했는데 한국어로는 뭐라 번역하면 좋을까. 들통난? 뽀록난? 드라마 좀 보다 보다 뻔하지 않은 드라마 찾는 분들께 추천. 이런 엉망진창 개차반인 캐릭터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도 궁금.  

#자신있는사람만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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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2019년에는 개취 10대 영미 드라마, 2020년에는 개취 10대 외국 드라마를를 포스팅했는데 이제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K-콘텐트 원년, 그냥 한국을 포함해 2021년 본 드라마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것들 것 꼽겠습니다. 이른바 개취로 꼽는 전 세계 드라마 TOP 10’. 물론 제가 본 것 중에서만 꼽았습니다. (별로 꼽을 게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한국 드라마까지 합하고 보니 좀 넘치네요. 양해해주세요.) 

그래도 제목은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폼나는 건 TOP10일 때잖아요.

(매년 보시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2021년의 드라마라고 해서 꼭 2021년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2021년에 본 것 중에 최고라는 뜻이죠.)

 

 

라인 오브 듀티 Line of Duty

경찰 조직의 건강성 확보를 위해 부패 경찰을 수사하는 내사 조직 이야기. 그런데 어느 순간, 내사 조직이 오염되고 있다는 경보음이 들리고, 형사들은 이제 바로 옆의 동료를 의심하게 된다. 시즌1~5까지 왓챠에 있고 시즌6을 기대하고 있음.

개인적으로 2021년에 본 작품들 중 단연 최고. 인생 드라마 중 하나. 

라인 오브 듀티, 이런게 바로 드라마다 (tistory.com)

 

라인 오브 듀티, 이런게 바로 드라마다

넷플릭스가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말하자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다.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2배속 기능이 없기 때문' 이라고 대답했다.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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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랙  Flack

셀럽들의 사생활에서 터지는 사건사고를 어떻게든 커버해 그들의 몰락을 막아주는 여성 위기관리전문가 이야기. 그 주인공이 <피아노>의 안나 파퀸이라는 걸 알아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일반인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수준의 사기와 조작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뇌하는 주인공. 나는 정말 괜찮은 인간인가, 아니면 괴물인가. 이것도 왓챠에서 봄.

 

조용한 희망 Maid

세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천둥벌거숭이 미혼모는 어떻게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나. 그건 그의 행운인가, 타고난 자질 덕분인가. 보고 나니 실화라고. 넷플릭스.

조용한 희망 Maid, 너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려면 (tistory.com)

 

조용한 희망 Maid, 너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려면

영어 제목이 Maid라니까 많은 사람들이 혹시 전도연 나오냐는 드립을 쳤다. 한국 제목은 <조용한 희망>. 사실 잘 지은 제목은 아니다. 스무살 나이에 아기 엄마가 된 주인공.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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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탈영은 수시로 일어난다. 스무살 안팎의 피 끓는 청춘들을 대체 무슨 수로 통제할 것인가. 그런 청년들의 일탈을 군법이란 무시무시한 단어로 억눌러도 될까. 아무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약자 D.P.

(요번 링크는 리뷰가 아니라 잡담입니다. ㅎ)

D.P.를 보다 생각난 드라마 만들던 시절 (tistory.com)

 

D.P.를 보다 생각난 드라마 만들던 시절

1. 6년 전. 드라마팀에 있던 시절. 뭘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을까 눈에 불을 켜고 찾던 무렵이다. 김보통이란 작가의 '아만자'를 재미있게 봤는데 누군가 'D.P. 개의 날'이라는 작품도 좋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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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게임

놀이와 스포츠는 언제부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나?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스포츠라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은 과연 어떻게 해서 출현하게 되었을까? 공을 차서 골에 넣는 것은 즐겁지만, 그 즐거움을 먹고 사는 수단으로 삼아도 되는 것일까? 영국에서 프로 축구라는 것이 탄생할 무렵, '돈을 받고 축구를 하는 것'이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지던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낯선 문제에 접근해 보는 것도 어떤 이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 같다. (아직 넷플릭스에 있나?)

잉글리시 게임, 프로 스포츠란 어떻게 만들어졌나 (tistory.com)

 

잉글리시 게임, 프로 스포츠란 어떻게 만들어졌나

1.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태곳적부터 있었던 거라고 쉽게 생각해버리곤 한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냉장고나 스마트폰을 사용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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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 차차차

도대체 왜 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영화 <홍반장>TV 리메이크. 뒤늦게라도 한국 로맨틱 코미디 사상 가장 멋진 캐릭터 중 하나인 홍반장이 부활한 기쁨. 물론 조용하지는 않았으나… tvN.

 

괴물

선악이 불분명한 주인공을 선호하는 취향 저격. ‘누구도 믿을 수 없는마음 속 어둠의 심연과 내가 너를 못 믿으면 누굴 믿겠니가 여전히 살아 있는 시골 마을 정서가 교묘하게 한데 어우러지는 부분이 비슷비슷한 다른 작품들과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다. 심나연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 어려운 완성도. 여진구 신하균은 말할 것도 없고, 김신록은 <지옥>의 김신록 이전에 <괴물>의 김신록. JTBC.

 

지옥

어느날 찾아온 지옥의 겁벌. 그런데 그 겁벌이 대체 무슨 기준으로 주어지는 지 알 수 없게 된다면 세상이 어찌 될까에 대한 이야기. 모든 종교의 오랜 질문을 CG로 풀어낸 K-CONTENT의 수작. 연상호 감독의 한 칼. 

지옥,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방법 (tistory.com)

 

지옥,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방법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지옥으로 소환되기 시작하고, 어떤 수단도 그 소환을 막을 수 없다. 이 소환은 신의 심판일까? 그럼 그 소환되는 자들은 모두 죄인일까? 그렇게 믿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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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희생양      The Victim

2019BBC. 범인도 피해자도 미성년자인 과거의 사건. 당연히 범인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어느날 피해자의 엄마는 한 남자가 어린 시절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라고 SNS에 게시해 버리고, 남자의 일상은 그때부터 지옥이 된다. 법이란. 제도란. 그리고 그걸 운영하는 사람의 태도란.

 

나쁜 아이들(은비적각락)        隱秘的角落

10대 초반 청소년들이 우연히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 일반적인 드라마라면 아이들은 살인범에게 쫓기게 되겠지만 이 드라마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음. 후반의 다소 무리한 진행 때문에 점수를 깎아먹기도 하지만, 예상을 빗나가는 나쁜아이들 이야기는 중독성이 극강.

 

프로페서T          Professor T

하다 하다 벨기에 드라마까지 보게 될 줄은. 결벽증 환자인 천재 범죄심리학 교수인 T 선생이 일선 형사들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 몽크와도 다르고 하우스 박사와도 또 다른 이상성격 교수님의 좌충우돌 활약이 포인트. 형사들간의 로맨스와 T 교수의 아련한 앳 사랑도 시청자의 즐거움.

 

그리고 막상 또 하다보니 열개로 끝내기가 좀 아쉬워서 몇개 더 꼽아 봅니다. 물론 이것들도 추천작.^^

플레이크드

영웅/반영웅을 넘어 이제는 과연 인간 쓰레기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를 얘기해야 할 듯한 시대. 중년에 갓 접어든 한 남자가 있다. 허우대는 멀쩡하고 자칭 직업은 목수. 하지만 실제론 주위 사람들의 호의에 얹혀 살고 있고, 매일 하잘것없는 사기와 몽상, 엽색(?)으로 세월을 보내는게 일이다. 과연 이 남자의 인생도 제 길을 찾아 갈 수 있을까?

플레이크드, 좀 심하게 적나라한 중년남의 실체 (tistory.com)

 

플레이크드, 좀 심하게 적나라한 중년남의 실체

넷플릭스 드라마 <플레이크드 Flaked>를 조금씩 쪼개 시즌 2까지 봤다. 미친듯이 정주행한 건 아니고 시간날때마다 곶감 빼먹듯 계속 보고 있었다. 낄낄대며. 주인공 이름은 칩. 그럭저럭 관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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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 조지아 Ginny and Georgia

첫눈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엄마와 딸 이야기지만 한꺼풀 까고 들어가면 미스터리, 그리고 두 모녀가 각각 펼치는 연애 이야기. 10대 안에서의 다문화 환경 이야기까지 담으며 세상의 변화까지 엿볼 수 있는 엄청나게 풍성한 보따리가 되었다.

지니 앤 조지아, 가족 드라마의 미래일까. (tistory.com)

 

지니 앤 조지아, 가족 드라마의 미래일까.

왜 이 드라마를 보게 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가장 최근 끝까지 본 드라마. (다들 그러시겠지만, 요즘은 끝까지 보고 싶은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30세의 엄마 조지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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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올해의 작품으로 거론할 만한 드라마들은 <해피니스><철인왕후>, 그리고 <악마판사>입니다. 기본적인 재미도 재미지만, 세 작품 모두 각각 기존의 드라마 틀을 깨고 성공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국 배우 휴 로리 팬으로서 <로드킬>도 올해의 드라마로 꼽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강추!

여러 사람에게 강하게 추천을 받았던 <석세션>을 비롯해 항간에 화제가 됐던 작품 중 <완다비전>, <록키>, <스위트홈>, <플라이트 어텐던트>는 사뭇 실망스러웠습니다. <브리저튼>, <갱스 오브 런던>, <오징어게임>은 나름 괜찮았으나 추천까지 할 작품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취)

 

, 여러분의 2021년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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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드라마를 보게 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가장 최근 끝까지 본 드라마. (다들 그러시겠지만, 요즘은 끝까지 보고 싶은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30세의 엄마 조지아(브리앤 하위)와 15세 딸 지니(안토니아 젠트리)의 이야기다. 백인 금발 미녀인 조지아가 가출 소녀 시절에 흑인 예술가 자이온을 만나 지니를 낳았고(그래서 지니의 외모는 흑인), 바로 헤어지는 바람에 조지아는 혼자서 아빠가 다른 남매를 키우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미모와 사악한 지능을 최대한 활용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두운 구석이 많다. 

<지니 & 조지아>는 이들 모녀가 백인 중산층이 모여 사는 미국 동부 소도시로 이사오면서 시작된다. 이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당시 조지아의 남편(몇번째 남편인지는 분명치 않다)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 조지아가 유산을 받기 때문인데 과연 이 죽음이 자연사인가는 드라마 후반까지 이어지는 미스테리다. 

워낙 미모가 출중한 글래머 엄마와 매력적인 딸은 새로운 환경에 오자마자 각자 삼각관계에 휘말린다(몇몇 분들이 기대하시는 것처럼 엄마와 딸이 삼각관계의 꼭지점을 이루지는 않는다). 엄마+두 남자, 딸+두 남자의 구도.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정통 삼각관계’를 미국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두 남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도 최대한 선의와 정성을 다해 자신을 어필하는 구조다. 이런 이중 연애 드라마 구조는 한때 미국 드라마의 주류 중 하나였던 영 어덜트 장르가 <가십걸>로 소멸하고, 새로운 시장 확보를 위해 성인 연애 장르와 결합하려는 시도로 보여 매우 신선했다. 

연애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결국 이 이야기는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많은 걸 감추다니 기분나빠’라는 틴에이저 딸과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이런 배은망덕한 것이’라는 엄마의 갈등 이야기로 압축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건 <브레이킹 배드>의 변주이기도 하다. 

아무튼 근래 본 몇몇 작품 가운데 가장 다음편이 궁금해 후다닥 볼 수 밖에 없었던 작품. <위기의 주부들> 풍의 중산층 주택가 미스터리에다 미남 미녀가 넘쳐나는 하이스쿨 러브스토리, 그리고 시대에 걸맞는 PC함까지 한 편에 담으려 애쓴 역작이다. 흑인인 지니의 두 남친 중 하나는 대만계 중국인 2세다. 남친 집에 놀러간 지니는 또렷한 한국어로 “저, 지금 무지 떨려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즘 ‘쿨한 것’이 어떤 것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이라는 점에서, 현재 미국 콘텐트 기획자들의 고민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어떤 걸 만들어야 최대한 넓은 폭의 OTT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라는 느낌도 든다. 연애, 미스터리, 영 어덜트, 가족, 상당히 많은 키워드로 묶일 수 있다.

아무튼 속편이 곧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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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지옥으로 소환되기 시작하고, 어떤 수단도 그 소환을 막을 수 없다. 이 소환은 신의 심판일까? 그럼 그 소환되는 자들은 모두 죄인일까? 그렇게 믿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 믿음은 곧 깨져간다. 

<지옥> 단상. 

1. <오징어게임>이 무서워서 못 봤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니 그러면 대체 <추격자들>이나 <곡성>은 대체 다 누가 본 거였나 의아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슬래셔 계열의 호러는 매우 싫어하고 윤종찬의 <소름>이나 장재현의 <사바하>같은 영화에 열광하는데, 이런 장르에서 <지옥>은 오랜만에 재미있게 몰입할수 있었던 작품이다. 

2. 다만 넷플릭스 오리지날 시리즈를 볼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옥>도 예외가 아니다. 주제와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고 연출도 좋지만, '좀 길다'. 물론 주관적으로 길다. 1~3부까지 훌륭한데 4~6부는 정말 작품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면 2회 정도로 줄였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 여기에 개인적인 취향으로, 묵시록적 세계관을 가진 작품들의 몇가지 뻔한 캐릭터 고구마 공식들(이를테면 스토리를 이끌어야 할 기자나 형사 캐릭터는 고독한 고집쟁이라서 남의 말을 안 듣고, 남들도 그의 말을 안 듣고, 늘 혼자 움직이는데다 항상 판단도 관객보다 한박자 늦어서 결국 곤경에 처한다는)을 매우 싫어하는 편인데, 굳이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안이함이 좀 아쉽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이런 초자연적인 재난에 대해서는 과학계와 군, 경찰 등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차피 결과는 별 차이 없다고 해도 현재 인류가 갖고 있는 과학기술의 수준에 비해 사회적인 대응이 너무 무기력하고 별 고민이 없다. "지구상에 없는 물질이랍니다" 만으로는 아무래도 아쉽다.



4. 개인적으로 전편을 통해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6부에서 이동욱(캐릭터 이름임)과 새진리회 최고간부들이 스피커폰을 켜고 대화하는 장면. 이런 장면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걸. 

5. 유아인이 교주 역을 맡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누구나 아 이건 대박이구나 생각했겠지만, 역시 유아인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과연 이 역할을 누가 이보다 더 잘 소화할 수 있었을까 싶다. 

P.S. 글로벌하게 또 터진듯. 뭐랬어요. <오징어게임> 말고도 앞으로 줄줄이 많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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