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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2025년에는 본 드라마도 많았지만, 마음에 드는 드라마도 많았다. 미드나 영드보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 한 해 인듯. 주변에서도 미드/영드 추천을 많이 받지 못했다. <은중과 상연> 덕분에 <나의 눈부신 친구>가, 바카리즈무의 <핫스팟> 때문에 <브러시 업 라이프>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인 듯.  

은중과 상연

극본 송혜진, 연출 조영민. 친구란 뭘까. '여자에게 오래된 남사친이란' 이란 질문의 답은 '내가 OK하면 바로 사귀는 사이가 될 수도 있지만, 사귄다고 남들 앞에 내놓기엔 부끄러운 남자' 일때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런 식의 논리를 '여자들 사이의 우정이란'에 대입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내게 만만한' 이나 '내게 도움이 되는' 외에 정말로 동등한 선에서 나란히 세상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우정이란 가능할까. 아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 사이에서는 가능할까. 아무튼 그런 우정, 그런 사랑, 그런 젊음을 설득력있게 그려낸 드라마. 결말 외에는 다 마음에 들었다.

 

파인

극본 강윤성 안승환, 연출 강윤성. 윤태호 원작 만화를 각색한 작품. 1970년대, 신안 보물선 탐사 당시 남아 있는 유물을 정부 몰래 찾기 위해 뛰어든 온갖 인간들의 행태를 그렸다. 지금 보기에 촌스럽기 짝이 없는 1970년대 목포 풍경이 그럴듯했고, 어중이 떠중이 다 모아놓은 듯한 패거리들의 치사한 행태가 쓴웃음을 자아냈다. 다만 연출에서 류승룡을 비롯한 패거리들의 살인 등 악행을 너무 가볍게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연기 못하는 배우가 없는 출연진 가운데서 '복근이' 김진욱에게 특히 눈길이 갔고, 60년대 영화를 보면서 말투를 공부한 듯한 임수정도 확실한 변신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근처가 고향인 유노윤호의 사투리 연기도 발군. 

 

 

중증외상센터

극본 최태강, 연출 이도윤. 현직 의사인 한산이가 원작을 각색. 그렇다고 의학적 엄밀성, 의료계 현실반영 등등을 기대하면 큰일나는 판타지 드라마. 그저 시청자들은 국민 응급의 이국종 박사를 상상하며 사이다에 환성을 올렸고, 그거면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주지훈은 이제 버럭남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았고, 26세 추영우가 <옥씨부인전>에 이어 확실하게 차세대를 책임질 주인공으로 부각됐다. 개인적으로는 윤경호라는 배우의 이름을 처음 찾아본 작품.  (그런데 이 드라마의 제목이 중증의학센터가 아닌 것도 이번에 확인.)

 

 

폭싹 속았수다

극본 임상춘, 연출 김원석. 여기에 아이유 박보검 주연. 그야말로 국가대표 드라마답게 확실한 위력을 뽐냈다. 줄거리 모르는 사람 없을테니 생략. 애순이 아이유가 연기 잘했다 생략. 어쨌든 양관식 박보검은 이 지독한 순정남 연기로 국민 이상형의 자리를 굳혔고, 이미 다 떠 있는줄 알았던 염해란이 차세대 국민엄마의 자리를 넘볼 수 있게 올라왔는데, 뭐니뭐니해도 이 드라마의 최고 수혜자라면 '학씨' 최대훈을 빼놓을 수 없을 듯. 관식이 엄마 오민애와 학씨네 젊은 사모님 채서안도 빛을 발했다.

이 내용으로 글로벌 석권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해외 반응도 꽤 있었던 듯? 하지만 2030에게는 거의 관심 밖의 드라마였다고도 한다. 외국보다 더 먼 젠Z의 세계...

(그런데 정말 정확하게 쓰기 어려운 제목. '폭삭 삭았수다'도, '폭싹 삭았수다'도 아니었다.)

 

 

서초동

극본 이승현, 연출 박승우. <중증외상센터>나 마찬가지로 현직 변호사 집필. 문유석 작가 이후로 '현직' 붐이 이는 모양이다. 변호사들 사이에서 은근히 '지금까지 나온 변호사 드라마들 중에서 리얼리티로는 최고'라고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물론 리얼해서 좋았다는 건 절대 아니고, 도시 한복판에서 만난 깍정이 변호사들이 '밥동무'라는 이름으로 서로 어울리며 도와 살아가는, 그런 청년 직업인들의 모습이 좋았다고 할까. 

 

루드비히 Ludwig

근래 짬짬이 본 드라마 중 최고는 역시 <Ludwig>. <루드비히>, <루드윅> 한글로는 어느 쪽으로 쓰는게 좋을지 애매하긴 하다. 시리즈의 전체 음악이 베토벤 작품의 변주라는 점에서 <루드비히>가 더 의도에 맞는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영국인인 주인공이 쓰는 필명은 <루드윅>이겠지.
(그런데 놀랍게도, 한글 제목은 <루드 비히: 퍼즐로 푸는 진실>이다. 아니 이 근본없는 띄어쓰기는 대체 뭔가...)
왠지 개인적으로 사회적 적응력이 떨어지는 천재 탐정 이야기에 집착하는 것 같다. <몽크>나 <엔데버>를 좋아했고, 사실 이런 탐정들의 조상은 셜록 홈즈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루터>도 반대 방향이긴 하지만 반 사회적 성격이긴 하네 ㅋ)
'루드윅'이란 필명으로 크로스워드 퍼즐을 만드는게 직업인 존 테일러는 어느날 형수 루시로부터 형 제임스(쌍둥이다)가 돌연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제임스의 직업은 수사반장.
 
 
당연한 수순으로, 존은 제임스 행세를 하면서 제임스가 사라진 이유를 추적하려 하는데, 그러려니 제임스가 맡았어야 할 사건 파일들이 그의 앞에 놓인다. 그런데 딱 보니 퍼즐이 풀리고 범인이 보이네. 그러니 말을 안 할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명탐정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
물론 천재다보니 사건을 어떻게 퍼즐화하는지 시청자는 그 뇌 속 알고리듬을 '당연히' 알 수 없는데, 그런 추리의 결과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티키타카가 아주 좋다. 주인공 데이빗 미첼은 로버트 웹이라는 동료와 코미디 듀오로 유명한 모양인데 이 작품에서 처음 봤다(문득 왕년의 사이먼 펙-닉 프로스트도 그립네).
아무튼 이런 풍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 왓챠 웨이브 티빙에 있는데, 누구든 좋은말 할때 빨리 시즌2를 내놓기 바란다.

 

아수라처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솜씨. 좋아하는 일본 배우들의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빛났던 작품. 재미있었다. 문득 작년에 본 영화 <세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일본식의 자매 서사는 확실히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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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처럼, 순한 맛의 아수라장

1. 나이를 넘어 고혹적인 맏딸, 미야자와 리에. 둘쨋딸, 미인이지만 확 끌리지는 않는 둘째딸, 오노 마치코. 별 인기도 없고 남자와 인연도 별로 없는 셋째딸, 아오이 유우(이건 좀 캐스팅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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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오브 어스

유명한 게임이라는 건 일찍부터 듣고 있었다. 해본 사람들마다 게임이되 어지간한 드라마나 영화는 발라버릴만한 강력한 극성을 갖고 있다고들 했다. 마침내 드라마로 접했다. 감동했다. 

근미래의 아포칼립스가 된 미국. 좀비 비슷한 감염자들이 세상을 뒤덮은 가운데, 유일하게 그 감염병에 면역을 갖고 있는 소녀가 나타난다(그 소녀가 바로 <왕좌의 게임> 후반부에 "킹 인 더 노쓰!"를 외치던 바로 그 소녀라니). 그래서 주인공 페드로 파스칼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저항군의 본부가 있는 중서부 깊숙히 소녀를 데리고 길을 간다. 파스칼은 <만달로리안>에 이어 어쩐지 '보호자 역에 특화된 배우'의 길을 가고 있는 듯. 어쨌든 긴 말이 필요없다. 시즌2가 시즌1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데, 누구도 시즌1에 대해서는 트집잡을 구석이 없을 거라고 생각. 

 

 

재칼의 날

이 드라마를 보고 얼마 뒤, 지난 6월에 원작자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부음을 들었다. 한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가라고 생각했던 사람. 사실 아직도 이 드라마 <재칼의 날>보다는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1973년작 영화 <재칼의 날>이 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드라마 <재칼의 날>에 나오는 가족 서사는 정말이지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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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칼의 날, '가족'이 과연 필요했을까

2025 첫 완주 드라마는 . Peacock 오리지널인데 한국에서는 웨이브를 통해 공개됐다. The Day of the Jackal. 한때 세계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했던 프레드릭 포사이스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었다. 소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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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오퍼

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인 <대부>의 제작 과정을 그린 드라마.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물론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스티브 맥퀸(응?), 알리 맥그로 등이 등장한다. 물론 주인공은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마일스 텔러가 연기하는 알버트 루디와 매튜 구드가 연기하는 로버트 에반스. 그밖에 역사의 뒤안길에 있었던 숨은 주역들이 주욱... 설명이 필요없다. <대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면 날밤을 새도 모자랄 작품.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누벨 바그>도 고다르가 영화 <네멋대로 해라>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라는데, 이런 작품들은 좀 더 많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

1. 다음 사항 중 4개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
- <호간의 영웅들>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는 사람(사실 영화 <파벨만스>에서도 잠시 언급된다. ㅎㅎ)
- <대탈주>에서 스티브 맥퀸의 오토바이 신을 기억하는 사람. 혹은 영화 <르망>을 본 사람.
- <러브 스토리> 주인공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
-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들 이름을 아는 사람.
- <캬바레>의 라이자 미넬리 의상이 기억하는 사람, 혹은 <올 댓 재즈>를 본 사람.
-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누군가에게 대리수상하라고 시킨 배우를 아는 사람.
- 코폴라 와인을 호기심에 사 본 사람.
2. 다음 대사가 나오는 영화 장면이 3개 이상 떠오르는 사람.
-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네"
- "그분은 나쁜 소식은 빨리 듣고 싶어하죠."
- "화해를 주선하는 자가 배신자야."
- "내가 내 누이를 과부로 만들거 같아?"
- "카놀리 사 오는거 잊지 말아요."
- "흑인들에겐 마약을 팔아도 돼. 놈들은 영혼이 없으니까."
- "마이클 콜레오네, 악과 맞설수 있습니까?"
위 조건을 통과하신 분, 드라마 <디 오퍼>를 보십쇼. 인생 드라마가 될 겁니다. (그런데 왓챠에서만 볼수 있단게 문제...)

 

 

 

핫스팟

후지산이 보이는 일본 야마나시현 어느 호숫가의 작은 호텔. 이치카와 미카코가 이 호텔에서 일하는 싱글밤 키요미를 연기한다. 그 주변에는 세상에 대한 큰 야망이나 기대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들뿐인데, 어느날 호텔에서 함께 일하는 선임 노총각 다카하시가 엄청난 초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심지어 그냥 초능력자도 아니고 외계인... 

이 드라마가 수없이 많은 초능력자, 외계인 드라마와 달라지는 점은 그 다음부터다. 키요미는 다카하시의 능력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다카하시는 절대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한 키요미가 친구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데 화를 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속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초능력자든 뭐든, 세상을 살아하게 하는 것은 이런 엉뚱하면서도 사소한 욕망의 구현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카리즈무(일본의 잘나가는 코미디언이자 작가)의 영특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보는 사람이 절로 빠져들밖에. 

혹시 아직 <브러쉬 업 라이프>를 안 보신 분들, 꼭 찾아서 보세요. 

 

사건수사대 Q      DEPT.Q

매튜 구드에게 별 관심없는 사람들은 얼굴을 보고도 뭐야, 두산에서 뛰던 니퍼트 아냐? 할 정도의 배우. 그런데 희한하게 이 열편의 드라마 중에 <디 오퍼>에 이어 두번째로 등장한다. 아무튼 넷플릭스에서 <사건수사대 Q>를 보고, 이런 글을 페북에 썼다.

 

매튜 구드. 아마도 <와치맨>의 오지맨디아스 역으로 본게 처음일테니 20년이 족히 됐는데 그 이후로 큰 변화를 못 봤다. 생김새를 보고 넥스트 제레미 아이언스라고 생각했는데 별 엣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 동년배 영국 배우들을 보면 존재감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법도 하다. 톰 하디, 마이클 파스벤더, 제임스 매커보이, 벤 위쇼, 에디 레드메인 같은 쨍한 개성은 암만 봐도 없다. 휴 댄시나 루크 에반스처럼 뭔가 깊이 악한 느낌도 약하고. 핸섬 앤 댄디만으로 이겨내기엔 경쟁자들이 너무나 강력했다.
그렇게 묻혀 늙어가나 했는데 갑자기 수염을 기르고 형사로 나섰다. 이건 누가 봐도 더스틴 니퍼트.... 사실은 에딘버러가 무대라길래 보기 시작했는데, 보다 보니 재미있다.
<사건수사대 Q> . 원제도 Dept.Q. 제잘난 맛에 동료들을 다 개무시하고 혼자 잘난데다 시니컬하고 상처도 잘 받지 않는, 샤프한 대문자 T 모크 형사. 현장에서 총격 사고를 당하고 복귀해보니 자리도 없고, 원래 없었던 인망은 더 없고.
사실 이 구도는 전혀 드물게 없는데 시리아에서 대체 뭘 하다 왔는지 모르겠으나 못하는 게 없는 치트키 아크람, 딱 봐도 너무나 일 못하게 생겼는데 분석력도 있고 앞가림도 잘 하는 로즈가 추가되고 나니 희한한 올 루저 팀 하나가 뚝딱 생겼다. 에딘버러판 슬로 호시스인가.

 

9개 에피소드를 한 사건으로 끌고 가니 사건은 꽤 지지부진한데 0에서 99로 만드는 과정이 그럴듯하고, 캐릭터들의 티키타카가 특히 재미있다. 시즌2에선 아크람의 과거사가 좀 더 드러나길. 어쨌든 수염 기르고 나온 매튜 구드의 변신 성공을 축하하며 추천.
 
 

그밖에도 <미지의 서울>, <협상의 기술>도 좋았고, 아직 결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프로보노>도 울림이 대단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질적으로 볼 때 한국 드라마의 전성기인 것은 분명하다. 물론 아직도 뒷목잡게 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작품의 수준이 훅 성장했다. 

미드 중에는 <외교관3>가 정상적인 폼을 유지하며 잘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가 아닌 시리즈로는 단연 <피지컬 아시아>. 이렇게 손에 땀을 쥐고 본 시리즈가 없었다고나. 

이렇게 해서 2025년 결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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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법원 타운을 가면 약국 편의점보다 변호사 사무실 간판이 더 많다. 건물 하나가 1층의 편의점이나 식당 빼고는 2층부터 7,8층까지 전부 로펌인 경우가 적지 않다.
<서초동>은 그런 건물 한 층씩을 쓰는 작은 로펌(변호사가 2~3명씩밖에 없다)에서 각각 일하는 10년차 이내의 '어쏘' 변호사들 이야기다. 법조계란 매우 좁은 선후배들의 사회다 보니 대략 한두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 변호사도 늘 끼니는 해결해야 하니 밥동무가 필요하다. 그렇게 한 건물에 다니는 이유로 고정 밥동무가 된 젊은 변호사 다섯명의 이야기다.
 
밥동무 이야기다 보니 당연히 식사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것이 처음부터 작가의 의도인지, 연출의 착안인지 모르겠으나 매끼 모여서 다른 음식을 먹는 장면이 '굳이' 나오는데, 그 장면들이 참 좋았다. 물론 아는 분들은 '먹는데 환장한 네가 보니 그렇겠지'라고 하시겠으나, 사실 식구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밥 식, 입 구. 끼니때 모여 밥 같이 먹는 사람이 식구다. 그렇게 매일 '특별한 일 없으면' 같이 수저를 맞대는 사이야말로 진짜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일 수 있다. 그 '밥 먹는 장면'과 이런 저런 장면들을 볼 때, 박승우 감독은 조만간 걸작을 내놓을 것 같다.

 

 
<서초동>은 지금까지 드라마에 주로 나오던 변호사들과는 '다른 변호사들'을 보여준다. 너무 영웅스러워서 부담스럽지도 않고, 방금 구치소에서 자기가 풀어준 마약상습범 재벌 2세와 특급호텔의 퍼스널 스카이라운지에서 로마네콩티로 건배를 나누는 모습도 아닌, 대략 근처에서 많이 보이는 직장인 비슷한 변호사다.
물론 어쏘 변호사라도 변호사인 만큼, 그 또래의 일반 직장인들보다는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영원히 어쏘로 있을 수는 없다. 나이가 차면 개업을 하든, 다른 무슨 길을 찾아 떠나야 하는게 어쏘의 숙명이다. '사장' 변호사의 입장에선 머리가 굵으면 슬슬 인건비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고, 또 한편으로는 '키워서 부려먹을만 하면 나가는' 것도 짜증스러울게다. 그런 애매한 시기의 변호사들이 나오는 건 변호사판 <언젠가는 슬기로울...>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중간쯤 될까.
 
많은 드라마 속 변호사들처럼 <서초동>의 변호사들도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일들을 하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그래도 '변호사라는 것이 원래 돈 받고 의뢰인이 하려는 말을 대신 해주는 기능직'이라고 변명한다. 그래도 <서초동> 속 변호사들은 불쌍한 사람이 더 불쌍해지는게 싫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너무 지나친, 정의감이 넘쳐서 도저히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아니라서 좋았다.
 
다만 법정드라마답게 많은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 각각의 사건들이 변호사들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주는 용도로는 적절하지만 시청자의 관극 욕구를 충족해줄만큼 자극적이거나 흥미롭지 않다는 점은 좀 아쉽다. 아무래도 법정드라마라면 사건 자체로 관심을 끌 수 있었어야 하는데, 이것까지도 지나치게 리얼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P.S. 로펌 대표들 중 하나인 김지현이라는 배우에게 눈길이 갔고, 강유석의 생활연기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문가영이 이렇게 매력적인 배운줄 지금까지 몰랐다니. 무슨 말을 해도 편들어 줄 것 같은 사랑스러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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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이를 넘어 고혹적인 맏딸, 미야자와 리에. 둘쨋딸, 미인이지만 확 끌리지는 않는 둘째딸, 오노 마치코. 별 인기도 없고 남자와 인연도 별로 없는 셋째딸, 아오이 유우(이건 좀 캐스팅에 문제가...?), 그리고 젊음과 발랄함이 주제인 막내 히로세 스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수라처럼>을 본 사람은 누구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떠올린다. 같은 감독이 만든 자매들 이야기. 그때 밖에서 들여온 막내였던 히로세 스즈가 이번에도 막내지만 업둥이 아닌 정규 멤버가 되었다는 점에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어쨌든 믿고 보는 고레에다. 명불허전. 드라마는 아름답고 섬세하다. 안 보신분들 얼른들 보시고,

2. 그 네 딸들이 남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바람을 피우고, 바람을 의심하고, 자매간에도 툭탁거리고, 그러면서도 가족의 테두리를 꿋꿋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라 매우 흥미롭다. 템포도 적당히 빠르고, 중간 중간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같은 것 없이 툭툭 넘어가는 시간 흐름도 좋다. 그런데 제목이 <아수라처럼>이라니. 한국식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에겐 아수라장이라면 이보다 10배는 더 극악스러워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느낌인데.

 

그럼 한국에서라면 어떤 제목이 적절했을까. 아사리판? 문득 아사리판의 어원이 아수라장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3. 게이샤 지망생인 마이코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었다가 약간 쓴 맛을 봤지만, 고레에다는 글로벌 시청자를 상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로컬리티를 강조해야 한다는 신념을 아직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일본 프로듀서들의 공통된 입장인 듯. 고레에다가 에이스인 팀 재팬은 지금까지 게이샤, 스모, 닌자처럼 오래 전부터 서구인들이 사랑해온 소재들로 넷플릭스를 노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미국 시장에서 <쇼군>의 성공을 봤으니 이런 신념은 다 굳어졌을 것 같다.

 

똑같이 목표는 세계인에게 먹히는 콘텐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향하지만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쪽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한국 팀과는 상반된 접근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잘 만들면 다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파이팅.

4. 그런데 자매 이야기를 해서 성공하려면 딸이 넷이어야 하는 법칙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작은 아씨들>도 그렇고, 지난해 인상적으로 읽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도 그렇다. 특히 같은 일본 작품이다 보니 <세설><아수라처럼>은 은근히 구조적인 공통점이 눈길을 끈다.

 

네 자매지만 맏딸보다 둘째딸이 동생들을 리드하는 역할을 한다든지, 그러다 보니 둘째딸의 남편이 처형이나 처제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족의 일원처럼 행동한다든지, 셋째는 남녀관계에 소극적이고 넷째는 오히려 지나치게 개방적이라 대조를 이루면서 가족들의 걱정을 산다든지...사실 이런 것들보다 더 표면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일본 전통 복장의 네 자매가 전면에 나선 포스터 같은 것들이다.

(세설이 뭔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세설, 벚꽃이 지는 간사이의 봄날같은.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세설, 벚꽃이 지는 간사이의 봄날같은.

물론 벚꽃철에 교토에 간 적은 없었다. 단지 상상했을 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 세상을 화려하게 뒤덮다 강 위로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을 노래하고, 그렇게 처절하게 사라지는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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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오히려 똑같잖아!’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튼 부분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세설>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비교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5. 사실은 <세설>과의 공통점을 너무 강조할 수도 없는 것이, <아수라처럼> 자체가 일본에서는 워낙 유명한 브랜드였더라고. 1979년에 이미 원작 드라마가 나와 히트했고, 2003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고레에다의 2025년 드라마 출연진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올스타 캐스팅으로 보이지만, 2003년작 영화에는 오타케 시노부, 구로키 히토미, 후카츠 에리, 후카다 교코가 네 자매 역으로 출연. 굳이 점수를 매겨 보자면 이쪽이 더 대단한 캐스팅으로 보인다. 

영화는 어땠는지도 궁금하네.

 

 

6. 사실 아무도 관심 없을 디테일 하나. 1980년대 초가 배경이고, 넷째딸의 남편이 권투선수이다 보니 구시켄 요코가 잠시 언급된다. 사실 나도 구시켄 요코를 직접 보거나 아는 세대는 아니지만, 장정구와 유명우를 언급할 때마다 따라다니던 이름이라 저 두 영웅을 아는 사람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한국의 장정구와 유명우가 세계 라이트플라이급을 호령하기 얼마 전, 일본의 구시켄 요코는 세계 타이틀을 무려 13차례 방어하며 일본의 복싱 영웅으로 군림했다. 물론 이 기록은 장정구가 15차 방어에 성공하며 깨진다.

 

이런 걸 보면 문득 한국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대략 10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다시 걸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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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첫 완주 드라마는 <재칼의 날>. Peacock 오리지널인데 한국에서는 웨이브를 통해 공개됐다. 

The Day of the Jackal. 한때 세계 최고의 작가라고 생각했던 프레드릭 포사이스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었다. 소설이 나온 것이 1971년, 첫 영화가 나온 것이 1973년. 원작을 한 줄로 요약하면 '특정 정치 단체가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거액을 들여 세계 최고의 프로페셔널 킬러를 고용하고, 어찌 어찌 해서 이 정보에 접하게 된 유럽 각국의 수사기관이 총력을 기울여 음모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다.

1962년 실제로 있었던 음모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드골이 저격수에 의해 암살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진정한 걸작 스릴러. 특히 오늘날의 시선으로 본다면 핸드폰도 위성 감시도 인터넷도 없는 시대에 재칼 한 마리를 지목하고 포획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재칼(암살자의 암호다)이 한 수를 두면, 수사관들도 한 수를 둔다. 바보짓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양쪽 모두 최선을 다 한다. 어지간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생각하듯, 멀리 건물에 진을 치고 총 한방 쏘면 되는 저격은 없다. 포사이스의 작품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람 하나 죽이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디테일이 어마어마하다. 

총 한자루도 그냥 총이어선 안되고, 총알도 그냥 총알이어선 안된다. 뭣보다 총이 총의 형상을 갖고 있다면 아예 그 총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해야 하고, 접근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자살 테러라면 죽이는데까지만 생각해도 되겠지만, 돈을 받는 프로 킬러는 살아남아서 그 돈을 써야 한다. 당연히 현장에서 어떻게 도망칠지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뭐 비슷한 상황이 쫓는 쪽에서도 펼쳐진다. 

1973년작인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영화 <재칼의 날> 역시 스릴러의 역사에서 걸작으로 꼽기에 아쉬움이 없는 작품이다. 뭣보다 소설의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다큐멘터리 같은 건조한 연출이 빛난다. 재칼 역을 맡은 에드워드 폭스의 무표정한 연기도 일품.  (그러나 두번째 영화화라고 일컬어지는, 브루스 윌리스, 리처드 기어 주연의 <재칼>이 있는데, 솔직히 이 영화는 프레드릭 포사이스 원작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아깝다. 거론하지 않는다.)

세번째 작품인 드라마 <재칼의 날>은 배경을 현대로 바꾸고, 저 원작의 한줄 요약 내용을 '드골 대통령'에서 '세계 경제의 흐름을 한방에 바꿔 놓을 IT계의 거물'로 바꿔 놓고 시작한다. 인터넷도, CT 검색대도, 프로파일러도 있는 시대다. 

이 '현대성'의 적용은 일단 성공적이다. 원작과 워낙 시대 차이가 크다 보니 그냥 가져다 쓸 에피소드는 거의 없는 셈인데, 거의 1:1 대응처럼 원작의 흐름을 현대에 적용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대 시청자들에게도 '이렇게 과학이 발달해도, 방어하는 쪽도 첨단 기술을 쓰다 보니 그걸 뚫고 들어가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를 충분히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 드라마가 '킬러'라는 존재에 대한 포사이스의 시각을 상당히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사이스의 건조한 문체를 따라가 본 분은 기억하시겠지만, <재칼의 날>에서 포사이스는 킬러를 일종의 자연재해, 질병, 혹은 사람들을 호환의 제물로 만드는 사나운 동물처럼 묘사한다. 이 존재에게는 인간의 윤리나 정의가 적용될 수 없다.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도 없다. 그냥 대자연의 일부인데 인간에게는 때로 해로울 수 있는 것들일 뿐이다. 요약하면, 재앙은 인간의 논리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며,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식이다. 

특히 그런 부분에서, 재칼이라기 보다는 한마리 표범 같은 에디 레드메인의 캐스팅은 탁월했고, 매우 성공적이었다.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킬러는 사실 판타지지만, 레드메인이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순간 설득력이 발생한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훌륭한 각색이지만 레드메인의 연기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장점들이 있고, 그것만 잘 살렸더라도 <재칼의 날>은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문제는 가족. 2024년 판 <재칼의 날> 제작진은 아마도 자신들의 버전만에 있는 요소를 추가하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는 건조한 킬러 이야기만으로 에피소드 10개의 드라마를 만드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킬러에게도 아내와 처가 식구들을 주었고, 추적의 핵심인 MI6 수사관에게도 가족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상상력의 빈곤이 시작된다. 수사관의 가족은 너무나 뻔한, 클리셰의 덩어리다. 너무 바빠서 아이를 돌봐주지 못하는 엄마, 알고보니 사람도 죽이는 아내... 여자 특공대원이나 경찰 가족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백번쯤 본 상황이 이어진다. 

킬러의 가족 쪽은 더 심한데, 일단 어떻게 해도 추적할 수 없게 흔적을 남기지 않는 킬러가 고정된 거주지와 맨얼굴을 본 가족, 동네사람을 수십명 만들어 놓는다는 것부터 너무나 말이 안 되지만, '아내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서 어쩔수 없었다'는 것을 강요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상당 부분의 개연성을 포기했다. 아예 코미디를 하자는 거라면 그렇다고 이해를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이 드라마는 코미디가 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킬러를 인간이 아닌 재앙처럼 그리는 것이 포사이스의 놀라운 장점인데, 가족을 붙여 놓은 장면에서는 이 장점이 사라져버린다. 안타깝다.

포사이스의 원작은 물론이고 진네만의 영화도 가장 놀라운 점은, 보는 이에게 "...저럴 때 왜 저 방법을 쓰지 않아?" 라고 할만한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상황이 최선의 수들로 연결되어 있고, 만약에 등장인물이 언뜻 보이는 최선의 방책을 선택하지 않을 때에는 거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다. 드라마 <재칼의 날>은 이 부분에서 70% 정도는 성공하지만 30% 정도는 그냥 포기해버리는데, 포기해 버리는 부분 중 거의 모두에는 이 '가족'이 연결되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일단 따르기로 한 원작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현대에 맞춰 잘 구현해 냈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에 여전히 볼만한 드라마가 됐다. 시즌2가 확정이라는데, 부디 제작진이 시즌2에서는 킬러를 가지고 홈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이상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두줄 요약: 냉혹하고 건조한 킬러의 하드보일드 걸작이 될 수 있었으나 부적절한 가족 코미디의 시도에 다소간 희생당한 억울한 작품. 그래도 재미있다. 

P.S. 이 드라마는 유럽 각국 사람들에 대한 클리셰가 꽤 등장하는데, 이것들이 모두 영국인 중심이라는 게 웃음의 포인트다. 이 작품에 따르면 프랑스인은 감정의 통제를 하지 못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독일인은 겉으로 티는 내지 않지만 속마음은 여전히 인종주의자들이고, 스페인인은 프랑스인보다 더 감정 통제를 못 하고 특히 사랑에 눈이 머는데 스스로는 스마트하다고 착각하고, 헝가리인들은 야만적이고 무지한데 탐욕스럽다. 유럽은 아니지만 미국인들은... 진정한 돈에 환장한 것들이고, 자만심 때문에 스스로를 해친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우리' 영국인들이 이들을 이끌어 주지 않으면 큰일날 것들이다,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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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더 많이 봤고, 물론 드라마라는 장르 특징상 1,2회 보다가 때려 친 것도 많고, 일단 완주한 것 위주로 꼽아 봤습니다. 영화나 마찬가지로 순서는 무의미. 맨 위에 있다고 1등이라는 뜻 아닙니다. 

물론, 제목에도 있지만 기준은 개취입니다. 생각해보면 좋은 작품이 꽤 많았네요. 

졸업

대치동. 학원에서 장학금까지 줘 가며 성공 사례로 잘 키운 우수한 학생이 어느날 대기업을 때려치고 대치동 일타강사가 꿈이라며 돌아온다. 대체 왜? 제일 반대한 건 그 학생을 키워 오늘날 일타강사가 되어 있는 여선생. 그리고 그 둘은... 뭐 그 뒤는 안 봐도 알 것 같겠지만, 이 시대의 드라마 장인 중 하나인 안판석은 어찌 보면 뻔한 연하남-연상녀의 러브 스토리 속에 학교, 청소년, 수업, 장래, 꿈, 교육, 이 시대의 가장 무겁다 싶은 키워드들이 생생하게 뛰어놀게 했다. 지금이라도 찾아 보시길. 려원의 재발견도 놀랍다. (tvN - 티빙)

졸업, 당신의 염치는 안녕하신지 묻는 드라마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졸업, 당신의 염치는 안녕하신지 묻는 드라마

많은 사람들이 '봉테일'을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디테일의 제왕은 단연 '안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안판석의 드라마는 10억 픽셀의 해상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 지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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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거나 나쁜 동재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고?' 하실 분이 적지 않을 듯. 이 재미있는 드라마를 모르는 건 고사하고, 심지어 동재가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하긴 사람에 따라서는 <비밀의 숲>조차도 들어본 적 없는 마이너 드라마 취급을 받으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좋거나 나쁜 동재>는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좋지도, 딱히 나쁘지도 않은 성정의 주인공이 끝까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사실상 최초의 드라마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미드에 비교하자면 한국판 <Better Call Saul>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지금 바라는 건 동재2건 비숲3이건, 이 유니버스가 계속 이어지는 것 뿐. (티빙 오리지날)

 

지배종 

역시 이런 드라마는 처음 들어 보시는 분이 많을 듯. 디즈니 플러스가 반성해야 할 이유 중 하나. 미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한국의 신기술기업이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고, 그 회사의 존재가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이수연 작가의 본격 SF로는 두번째 시도라 할 수 있겠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웠던 <그리드>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매끄러워졌다. 한효주-주지훈의 호흡도 제대로다. 그런데, 이수연 월드에서 이 정도의 주인공 커플은 사실상 처음 아닌가? (디즈니)

지배종, 새로운 한국 드라마의 또 다른 시작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지배종, 새로운 한국 드라마의 또 다른 시작

이라는 새로운 드라마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이수연 작가의 작품이고 한효주 주지훈이 주인공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작품이 한방에 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에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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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올해 가장 할 얘기가 많았던 드라마. 임진왜란 2년 뒤인 서기 1600년, 일본의 미래를 건 다이묘들간의 최종전이 펼쳐진다.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휘하에는 영국 항해사 출신의 사무라이가 있었다는 것 까진 실제 역사에 기록된 내용이고, 이걸 제임스 클라벨이라는 아시아 덕후 작가가 소설로 쓰고(일본의 역사적 인물들은 모두 이름을 고쳤다), 그걸 미국 제작자들이 1980년에 만들어 히트하고, 2024년에 다시 만들어 또 히트시켰다. 디즈니 플러스 사상 최고 히트작이라나. 

백인들이 쓴 얘기다 보니 영국인 주인공의 눈으로 센고쿠시대의 끝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1980년과 2024년은 비교할 수 없는 시대인 것 같지만 내용에 담긴 오리엔탈리즘은 거의 차이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이 드라마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워낙 스토리 자체가 흥미롭고, 당대에 할 수 없었던 화려한 미술과 특수효과가 놀라운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배우들은.... 아무래도 1980년판의 배우들보다 못한 느낌이. 물론 개취. (디즈니)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디즈니 플러스의 10부작 . 드라마 한편을 보고 나서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은 작품도 정말 오랜만이다. 일단 줄거리를 살펴보자.배경은 서기 1600년의 일본. 타이코(태합) 나카야마는 1598년 사망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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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을 휩쓴 쇼군, 1980 vs 2024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에미상을 휩쓴 쇼군, 1980 vs 2024

에미상 18개 부문 수상. 디즈니 플러스 이 엄청난 기록으로 미국 TV 역사에 발자국을 남겼다. 쇼군 이야기는 지난번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사실 나오자마자 보지는 않았다. 이 드라마를 늦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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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태양은 가득히>에서 <리플리>까지, 이미 두 차례의 굵직한 영화로 친숙해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을 이번엔 흑백 드라마로 만들었다. 왜 하필 흑백인가, 왜 하필 이번 주인공은 왜 이렇게 늙고 못생겼나 싶기도 하지만 단 한회만 봐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사기에는 별 소질 없는 리플리가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서사. 1950 혹은 60년대 이탈리아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도 일품. 2024년의 드라마로 단 한편을 찍으라면 여기에 투표할 것 같다. (넷플릭스)

리플리, 흑백 영상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리플리, 흑백 영상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처음 공개됐을 무렵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를 보다가 에 눈길이 갔다. 이미 세계적인 스타를 써서 두번이나 영화화된 작품. 그걸 심지어 드라마로? 결과 다 아는 얘기로 8부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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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여왕

한국에도 여자 레슬링이란 종목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만큼 뭔가 제대로 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이 드라마는 1980년대 초, 일세를 풍미했던 악역 전문 레슬러에 초점을 맞춘다. <극악여왕>을 먼저 보고 <정년이>를 보게 되니 어찌나 그 정서가 비슷한지. '그리 팬시하지 않았던 과거의 유행을 오늘날의 시선에 맞춰 팬시하게 바꿔놓은 무대'라는게 2024년의 트렌드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나 공들여 찍은 액션 신이 일품인 반면, 그렇게 공들여 찍은 장면을 차마 편집할 수 없어 너무 길어진 액션신이 단점이기도 한 묘한 드라마다. 그렇지만 강추. 개인적으론 오랜만에 보게 된 카라타 에리카도 반갑기 그지없네.  (넷플릭스)

극악여왕, 과거를 살려내되 오늘날의 감각으로.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극악여왕, 과거를 살려내되 오늘날의 감각으로.

한국에도 여자 레슬링이 있었다. TV에서 김일 천규덕의 레슬링을 중계방송하던 시절, 오프닝으로 여자 경기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선 여자 경기가 오프닝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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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2

1편을 추천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오히려 2편에서 이야기가 더 진화했다. 워싱턴의 정치 구도 속에서, 직업 외교관이면서 영국 전문가인 남편을 제치고 주영 미국 대사가 된 주인공.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영국이라는 '영원한 같은 편'이면서 '어딘가 그래도 낯선' 나라를 맡아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일품이다. 물론 드라마인 만큼 이 안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실제라고 오해해선 안되겠지만, 충분히 몰입할 만한 전문성이 담긴 대본과, 그걸 소화해 내는 배우들에 대한 존경이 앞선다.  특히 주인공 케리 러셀의 캐릭터 창조가 압권이고, 루퍼스 시웰을 비롯한 영국 배우들이 탄탄하다. (넷플릭스)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 전쟁

미국 서부의 전설 와이어트 어프는 유명한 'OK목장의 결투' 사건으로 서부에서 가장 유명한 총잡이가 되는데, 사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이 결투로 악을 물리친 보안관은 오히려 공권력으로 시민을 압박한 악당으로 몰리고, 그 정서의 배경에는 남북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지역감정이 있고, 대륙을 철도로 관통하려는 자본가들의 동기가 있다. 

거의 정석적인 선과 악 대결 스토리로만 알려졌던 이야기에서 이런 중층적인 분석이 나오다니.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오가는 형식이 너무나 적절했던 걸작. (넷플릭스)

와이어트 어프, OK 목장은 시작이었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와이어트 어프, OK 목장은 시작이었다.

'OK목장'이란 이름은 어린 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그런 우스꽝스런 이름의 목장이 실제로 미국 아리조나주 툼스톤에 있었고, 와이어트 어프라는 유명한 보안관이 전설을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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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호시스

영국 MI5에는 007만 있는게 아니다. 거기서 일 못하는 걸로 찍힌 요원들은 시내 슬럼가의 허술한 사무실에서, 도저히 '본사'가 처리할 수 없는 허드렛일들을 수행하게 된다(설마 실제로 이런 건 아니겠지). 그 부서로 가 있는 루저들을 '본사'에서는 슬로 호시스, 즉 느린 말이라고 부른다. 

그 느린 말들의 보스가 게리 올드먼. 물론 이게 드라마다 보니 너무나 당연히, 그 느린 말들이 수트를 빼입은 본사 요원들이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척척 해결해 낸다. 왜? 리더가 너무나 유능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느린 말들이 정말로 무능하다기 보다는 너무나 개성이 강하다 보니 본사의 딱딱한 관료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거였기 때문에. 긴 말이 필요 없다. 문제는 한번 발을 들이면 시즌5까지 도저히 발을 뺄수 없다는 것. 역시 만두는 중국에서, 소프라노는 발트해 연안에서, 그리고 스파이 드라마는 영국에서 찾아야 제대로다. (애플티비)

가족계획

지난해의 <소년시대>에 이어 쿠팡도 연말에 한칼을 보여줬다. 김곡/김선 콤비의 새 작품.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두 10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인데 - 사실 진짜 가족인지도 좀 의심스럽지만 - 각 개인의 개인기가 어지간한 나라 하나는 말아먹을만큼 무시무시하다. 당연히 조용히 살고 싶은 가족인데, 하필 정착한 지역에도 만만찮은 악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다. 정의구현 같은 걸 하고 싶은게 아닌데 강제로 정의구현을 하게 되는 이야기야말로 이 시대의 정서.

작품 특성상 잔혹한 장면이 적잖게 등장하지만, 그만치 웃긴다. 올해 가장 시원한 드라마. 탄산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 (쿠팡)

 

그리고 그밖에 꼭 언급해야 할 드라마들

중간에 흐름이 좀 요상했다는 느낌이 있지만 역시 <정년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 안 끝나 뭐라 할 수 없지만 <옥씨부인전>도 그 줄에 충분히 들어설만 한 작품. 

넷플릭스 드라마로는 위에 든 세 편 외에는 사실 취향인 작품이 없었고, <삼체>가 볼만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추천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시즌2는 없을테니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않으시는게 좋을지도. 

넷플릭스가 양으로 민다면 애플티비는 질로 앞선다는 세평이 있는데, 물론 개인적인 취향으로 애플티비는 너무 무거운 작품이 많다는 게 약점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테드 라소 3>(이 얘기를 이제 하는 걸 보면 애플티비를 한동안 외면했다는 걸 눈치채실듯)는 역시 걸작이었고, 원제가 <Shrink> 인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가 딱 취향이었다. 물론 케이트 블랜칫의 <디스클레이머>도 딱 취향은 아니었지만 볼만했다. 

(아마존 프라임은 2025년쯤에나 한번 다시 살려 볼 생각)

 

그리고 드라마 아닌 시리즈들도 한번 언급하자면,

더 커뮤니티

이런 소재로 이런 신선한 리얼리티 쇼를 만들 수 있다니. 이 쇼를 아직 모르는 사람은, 여기서 길게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주 시민의 자격이 없다. 벤자민 화이팅. 

곽튜브의 기사식당

왜 그렇게 여행 프로그램이 많은데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적을까. 역시 이 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인 '진정성'을 설명해주는 교과서. 

흑백요리사

설명이 필요 없는 2024년의 빅 콘텐트. 물론 이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외식업계나 고급 레스토랑업계가 살아날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좀 과했지만,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한 모든 것을 갖고 있었던 프로그램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흑백요리사, 콜로세움을 허물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흑백요리사, 콜로세움을 허물다

수만개의 품평이 올라오고 있는 . 굳이 말을 보태기보다 개인 기록용으로 남김.[주: 지난 9월28일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늦었지만 옮겨 봅니다. 당시의 느낌을 보관하기 위해. 사실 드라마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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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해 뭔가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려 고민하시는 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1년 동안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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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개됐을 무렵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삼체>를 보다가 <리플리>에 눈길이 갔다. 이미 세계적인 스타를 써서 두번이나 영화화된 작품. 그걸 심지어 드라마로? 결과 다 아는 얘기로 8부작이나 할 얘기가 있겠어?
 
하지만 감독과 각본을 겸한 스티븐 제일런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오스카 각본상/각색상 후보에 5회나 올랐던(1회 수상, 쉰들러 리스트) 대가의 말씀인데 누가 감히 토를 달았을까 싶기도 한데,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8회를 넋놓고 정주행했다.
 
 
앤드루 스코트는 개인적으로 <셜록>의 모리어티 교수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은 배우. 그가 리플리 역을 하기에는 너무 늙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 한데, 사실 리플리 역을 했던 배우들 중에는 존 말코비치도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마셨으면.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알랭 들롱의 그림자가 워낙 커서 그렇지, 솔직히 맷 데이먼도 그닥 꽃미남 계열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제작진도 18년 차이 나는 다코타 패닝과의 로맨스는 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이번 작품에서 이 부분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마지라는 캐릭터가 리플리가 디키에게 갖는 동경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은 좀 아쉬운데, 그 밖에도 앤드루 스코트의 리플리는 보여줄 것이 많았다.
 
전작들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이 작품의 리플리는 사기꾼의 재능이 매우 떨어진다. 능력보다는 동기가 앞서고, 충동적인 시도가 겹쳐지다 보니 스스로도 내릴 기회를 놓친 비극의 주인공이다. 일단 사고를 쳐 놓고 고민하는 리플리가 신선했다.
 
옆엣분은 이탈리아의 멋진 풍광이 흑백 영상에 갇힌 게 매우 유감이라는 평을 남겼는데, 개인적으로는 펠리니와 데 시카의 이탈리아가 다시 살아오는 듯한 느낌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뭣보다 계속 인용되는 카라밧지오. 화면의 미학적으로도 근래 보기힘든 걸작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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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목장'이란 이름은 어린 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그런 우스꽝스런 이름의 목장이 실제로 미국 아리조나주 툼스톤에 있었고, 와이어트 어프라는 유명한 보안관이 전설을 남긴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란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결투라고 썼지만, 사실 진짜 결투는 아니었다. 카우보이와 보안관이 등을 지고 열 걸음을 걸어가 총을 쏘거나 하는 사건은 OK목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영화 수입업자들은 Gunfight 라는 말을 '총격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손님을 쫓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정말 볼게 하나도 없는 넷플릭스에서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 전쟁>을 근 한달에 걸쳐 봤다. 1881년 10월26일, 툼스톤의 보안관보로 일하던 어프 3형제와 와이어트의 친구 닥 할리데이는 카우보이 갱 두목인 아이크 클린턴과 그 무리들에게 추방 명령을 집행하러 OK목장으로 향했다.
 
반대로 아이크 패거리는 명령에 따르긴커녕 어프 형제를 손보러 시내로 향하던 길. 양쪽 모두 무장중이었으로 마주치자 바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어프 쪽이 4:6으로 불리했지만, 30초만에 아이크 쪽 3명이 사살됐고 나머지는 도주했다. 어프 쪽은 두명이 총에 맞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완승.
 
이것이 잘 알려진 'OK목장의 결투'의 내용인데, 알고 보니 이 사건은 넷플릭스 6부작 다큐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 유명한 총격전 이후, 와이어트 어프는 도박을 좋아하는 보안관에서 자경단(posse) 리더로 변신하는 기구한 운명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배경엔 남북전쟁의 상처인 '남북감정', JP모건의 사업 확장, 무능한 대통령의 대처 같은 복합적인 상황이 있었다. 흥미진진.
 
드라마와 사학자들의 증언이 엇갈리는 다큐드라마 형식. 한때 서부극에 관심을 두었던 사람이라면 중간에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와이어트 어프 역을 맡은 팀 펠링햄은 어쩌면 차세대 비고 모텐슨이 될 수도 있을듯.
 
 
이건 실제 와이어트 어프.

 

그리고 이게 바로 전설의 영화 <OK목장의 결투>.

 

만년의 와이어트 어프. 초기 할리우드 서부극에서 '기술고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소림사 고승이 무술영화의 무술감독을 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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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봉테일'을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디테일의 제왕은 단연 '안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안판석의 드라마는 10억 픽셀의 해상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졸업>. 지나가는 버스의 불빛, 차창에 비친 그림자, 밤거리 편의점 창을 통해 보이는 삼각 김밥 하나도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현미경으로 보던 세상이 어느 한 순간, 드론에서 보는 지형도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안판석의 드라마다.
 
이제 4회인 <졸업>은 '대치동 학원가를 무대로 한 러브스토리'로 곱게 포장됐지만, 이미 공교육과 사교육의 자리 싸움으로 논란을 겪고 있다. 물론 또 그렇게 삭막한 이야기만은 절대 아닌 것이, 위하준의 오랜 동경이 필터가 되어 정려원을 바라보는 장면, '작가를 사랑하게 하지 못하는 국어교육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같은 문제제기에선 은근히 가슴이 뛴다.
 
단지 이 치열한 세계, '고1 국어 문제 하나의 답이 한개냐 두개냐'가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처럼 여겨지는 세계. 이 세계를 소파에 기대 편안히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육아 경험이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스친다. 혹시 저 현장 당사자들에겐 이 드라마가 지옥도로 보이는 것은 아닐지. 아무튼 강추. #졸업
 
P.S. 정려원과 위하준이 소속된 학원 원장 이름이 '현탁'인 것은 혹시 <스카이캐슬>에 대한 오마주인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조현탁/안판석 감독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
P.S.2. 제목이 <졸업>인데, 어, 이 노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인가...? 응 아니야. 신곡이야. ㅎㅎ

[그리고 <졸업>에 대해서는 끝나고 한번 더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했습니다.]

 

홍콩 누아르 전성기에 중국어 영화들을 보다 보면 수시로 등장하는 욕 중에 "왕빠다!"가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말일까 궁금해 했는데, 한자로 忘八蛋, 즉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여덟가지 핵심도덕(예의염치 효제충신)을 모두 까먹은 버러지같은 놈이란 뜻이었다. 제 발음은 '왕바단'.
 
간밤에 끝난 안판석의 <졸업>은 바로 염치와 망각에 대한 드라마였다. 우리는 얼마나 저열해질수 있고, 얼마나 염치 없는 삶에 뻔뻔해질수 있는가. 얼마나 어른의 삶이란 핑계로, 내 몸의 편안함을 위해 내 마음 따위는 가볍게 쓰레기통에 쳐박을수 있는가. 위선도 가식도 귀찮다며 다 떨궈 낸 욕심 가득한 얼굴로 너는 세상을 모른다고 말할 셈인가.
 
<졸업> 속 주요 인물들은 서로 염치를 깨닫게 해주고, 결국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아차린다. 비록 드라마지만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라서 다행'이 아니라서 더 다행이란 생각. 두달 내내 정주행하면서 행복했다.
 
 

 
P.S.수많은 명배우들. 정려원과 김정영 배우의 재발견. 진짜 선생님 같은 김송일 배우를 보면서 자꾸 페친 한분이 떠올라 내내 혼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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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여자 레슬링이 있었다. TV에서 김일 천규덕의 레슬링을 중계방송하던 시절, 오프닝으로 여자 경기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선 여자 경기가 오프닝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지만, 희귀취향의 왕국 일본에선 여자 프로레슬링이 자립 가능한 규모의 영역으로 꽤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다는걸 이번에 알았다. 5부작 <극악여왕>은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의 치열한 라이벌 시기를 그린 드라마다.
 
1980년대 일본 여성 프로레슬링에는 정도를 걷는 '크래쉬걸스'와 닥치는대로 반칙을 일삼는 악역 '극악동맹'이 있었는데 크래쉬 걸스의 리더격인 나가요 치구사는 숏헤어가 어울리는 미소년스러운 외모로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의 인기를 자랑했다.
 
드라마 속 말고 실제의 크래쉬걸스. 왼쪽이 아마조네스 아스카, 오른쪽이 나가요 치구사.
나가요 치구사가 역경을 딛고 챔피언에도 오르고, 여자 레슬러들을 규합해 경기단체도 만들고 업계의 큰언니로 성공하는 이야기(실화다) 였다면 그걸로 한폭의 드라마가 나왔겠는데, 뜻밖에도 이 <극악여왕>은 제목 그대로 극악동맹의 리더, 90kg대에 가부끼 분장을 즐기던 덤프 마츠모토가 주인공이다.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그런데도(혹은 그래서) 드라마는 재미있다. 핵심 질문은 "덤프 마츠모토는 왜 악역 여왕이 될수밖에 없었나'. 이 사연을 꽤 그럴듯하게 풀어낸다. 덤프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크러쉬 걸스의 나가요 치구사가 아닌, 흉악무도한 덤프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엔딩도 자못 감동적.
(물론 드라마상의 '사건'들은 거의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 위주로 진행되지만, 내용은 거의 허구라고. 예를들어 무대에서 덤프가 치구사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어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원인이나 동기는..)
 
카라타 에리카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최근의 나가요 치구사.
이 드라마의 강점 중엔 나가요 치구사 역을 맡은 배우가 카라타 에리카라는 점을 빼놓을수 없다. 낯익은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면, 맞다. 몇해전 LG폰 광고에 나와서 세상을 술렁이게 했던 바로 그 배우다. 레슬러 연기를 위해 10KG를 불렸다는데도 여전히 가냘프고, 여전히 예쁘다.
사실 <극악여왕>도 일본 드라마 특유의 느린 전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특히 유혈낭자한 레슬링 경기 장면이 너무 자주 나오고 너무 긴데, 보다 보면 약간은 면죄부를 줄만하단 생각이 든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수없이 잔부상을 겪어가며(안 봐도 느껴진다) 애써 촬영한 레슬링 장면(심지어 퀄리티도 높다)을 그냥 편집해버리기는 너무나 힘들었을 것 같다. 저런 장면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 상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 근데 아무래도 취향을 꽤 탈 거같다.
 
[여자 프로레슬링은 일본에서는 지금도 꽤 인기를 얻고 있다고. 이 드라마를 보시면 어쩐지 '정년이'가 생각날수도...]
 
당시의 실제 경기 장면. 드라마와 비교해보시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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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개의 품평이 올라오고 있는 <흑백요리사>. 굳이 말을 보태기보다 개인 기록용으로 남김.
[주: 지난 9월28일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늦었지만 옮겨 봅니다. 당시의 느낌을 보관하기 위해. 사실 드라마가 아닌데 딱히 이런 종류의 글을 올려 놓을 다른 카테고리를 만들기도 애매한 것 같아 이 페이지로.]
 
 
1. 요리를 주제로 한 서바이벌 게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뛰어난 심사위원의 날카롭고 정리된 평가가 처음도 아니고, 처음인 건 압도적인 규모. <피지컬100>과 <더 인플루언서>를 넘어 이제 예능은 실내체육관급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든 시대로.
 
2. 흑과 백. 1층과 2층. 이보다 시대정신에 맞는 구도는 없을 듯. 스튜디오 슬램은 정말 대단하다. 이미 <슈가맨> 시리즈와 <싱어게인>으로 얻은 언더독 스토리텔링과 일반인 판정의 노하우가 요리에 덧씌워졌다.
 
3. 1층에서 흑셰프들이 싸울 때 스튜디오는 콜로세움 같았다. 검투사들이 거친 운동장에서 피를 흘리며 싸울때 객석의 로마 귀족들은 흰 토가를 나부끼며, 꿀과 포도를 맛보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여기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짜 관객들은 화면 밖에 있었고, 이들은 우아하게 관전하던 귀족들의 흰 토가가 피와 먼지로 더럽혀지는 모습을 보며 열광한다.
 
4. 사실 공정한 심사란 환상이다. 특히 미각의 공정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기 미각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권위(ex. 미슐랭)에 기대고, 남의 눈치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맛을 상찬하는 일은 너무 흔하다. 어쨌든 <흑백요리사>는 그 안에서 성공적인 권위와 승복을 만들어냈다. 일부 시청자들은 불만일수도 있겠으나, 저 100명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백종원/안성재라는 이름을, 그 심사를 받아들이고 출연을 결심한 상태에서 이미 <흑백요리사>는 성공한 셈이다.
 
5. 누가 이익인가. 쉽게 생각하면 잃을게 많은 백셰프들이 손해일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예능에서 이들을 '한번 대결해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존경의 대상으로 예우해 줄 것인가. 그 업장들의 예약 리스트만 봐도 모두 위너.
 
6. 서울의 파인 다이닝 시장이 이 프로그램으로 살아날까 하는 건 너무 지나친 기대. 한국인에게 파인 다이닝은 아직 '정말 맛있는 걸 먹으러'가는 곳이 아니라 '특별한 자리'를 위해 가는 곳이다. 이게 바뀌려면 서울이 더 글로벌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비교의 기준이 도쿄, 홍콩, 싱가포르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파인 다이닝 신이 빈약해 보이는 것은 한국의 특급 호텔 라인업이 빈약해 보이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분은 서울에 진정한 5성급 호텔이 몇이나 되는지, 왜 그런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길.
(물론, 그래서 안타깝다는 말도 아니고, 이게 잘못됐다는 말도 아니다.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것 뿐이다.)
 
7. 어찌됐건 예능은 예능. 아무리 재미있어도 <흑백요리사>가 보여주는 맛에 과몰입은 금물이다. 실제 가보니 실망했다면 그건 당신 책임. 리조또가 알덴테건 죽이건, 가장 소중한건 내 취향과 기준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은 최현석 셰프의 명언. "주방에서 셰프보다 높은게 딱 하나 있죠. 재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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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 18개 부문 수상. 디즈니 플러스 <쇼군>이 엄청난 기록으로 미국 TV 역사에 발자국을 남겼다. 쇼군 이야기는 지난번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사실 나오자마자 보지는 않았다. 이 드라마를 늦게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여주인공에게서 고전적인 일본 미인의 느낌을 받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누가 뭐래도 2024년 <쇼군>의 주인공인 애나 사와이는 전통적인 일본 미인상이라기 보다는 하와이-폴리네시안 얼굴로 보였다. 이런 얼굴이 마리코 역을 맡는다는 것은, 왕년의 마리코 역을 연기한 시마다 요코에 대한 모욕이라는 느낌이 살짝 들 정도라...

 

혹시 영상이 궁금하신 분은 이쪽

아무튼 앞의 글, <쇼군(2024)>에 대한 글에서 제임스 클라벨의 베스트셀러 소설 <쇼군>은 1975년에 출간됐고, 미국에서 1980년 NBC 5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히트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1980년 버전의 미니시리즈, 그러니까 내가 1981년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극장판으로 본 그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도대체 나는 그때 그걸 왜 보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1980년 12월25일자 매일경제 지면에는 베스트셀러 집계 단신이 실렸다. 국내 소설로는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 1위, 국외소설로는 제임스 클라벨의 <장군>이 1위였다. 클라벨의 <장군>, 즉 <쇼군>은 일단 미국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일본으로 역수입되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물론 미국에서는 진작부터 이걸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명목상의 주인공인 파란 눈의 사무라이 안진 역에는 리처드 체임벌린이 캐스팅됐다. 체임벌린으로 말하자면 19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잘 나가던 TV 스타 중 하나라고 불러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쇼군>으로 골든 글로브 TV 부문 남우주연상을 꿰찼고, 3년 뒤, 한국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가시나무새>를 통해 다시 한번 같은 상을 차지했다. 오죽하면 공식 별명이 '킹 오브 미니시리즈'다.

<가시나무새>의 레이첼 워드와 리처드 체임벌린. 49세의 나이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을 소화해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들었다. 대단한 양반.

당시 미국 TV에서 가장 핫한 장르는 '미니시리즈'였다. <달라스>나 <다이내스티>로 잘 알려진 이 장르는 짧으면 4부작, 길면 10부작 정도의 길이로 영화 못잖은 제작비를 투입해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쇼군>이나 <가시나무새>은 물론이고, 그 시절 한국 시청자들의 기억에 생생할 대표적인 미니시리즈들로는 남북전쟁을 그린 <남과 북>, 파충류 외계인의 지구 공격과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그린 <V>, 닉 놀테-피터 슈트라우스 형제를 스타로 만든 <야망의 계절>, 시드니 셀든 원작의 <내일이 오면> 등이 있었다. 

 

극장용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조금 모자라지만, 일반적인 TV 드라마 배우들보다는 지명도에서 앞서는 배우들이 딱 이 장르의 주인공 감이었다. 한국 TV의 드라마 장인들도 이 장르의 영향을 받아 1990년대부터  '미니시리즈'라는 이름의 드라마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한국에선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16부작이 기본 틀이 되었다. 그래도 핫한 배우들이 나오고, 보다 젊은 시청층을 겨냥하고, 일반적인 드라마보다 훨씬 큰 제작비를 투입한다는 면에선 같은 맥락 위에 있었다. 

영화 <타워링>의 주역들. 스티브 맥퀸, 로버트 와그너,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제니퍼 존스, 프레드 어스테어, 폴 뉴먼, 리처드 체임벌린, 로버트 본, 그리고 O.J. 심슨. 1950년대~70년대의 빅 스타들이 포진한, 뒷날의 <오션스 11> 못지 않은 화려한 출연진이다. 여기서 지명도로 따지면 체임벌린이 최하위 급?

아무튼 체임벌린은 이 영역에서 가장 빛났던 배우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들이 억대 예산을 투입할 만한 배우는 아니었다. 할리우드 빅 스타들이 총출동한 대작 <타워링>에도 출연했지만, 그의 역할은 꼴사납게 구명대에서 떨어져 죽는 악당 사위 역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TV에서는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4차례나 노미네이트되는 거물 대접을 받았다. 그 시절엔 TV 배우(한국식 영어로는 '탤런트'?)와 영화 배우사이에 매우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영화 <타워링> 출연진을 한 자리에 모은 사진. 위 사진의 배우들 이름을 7명 이상 댈 수 있다면 1950~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해 뭔가 한마디 해도 좋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왼쪽부터 스티브 맥퀸, 로버트 와그너,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제니퍼 존스, 프레드 아스테어, 폴 뉴먼, 리처드 체임벌린, 로버트 본, 그리고... O.J. 심슨. 모두 다 설명하려면 각각 한 문단씩은 충분히 채울만한, 당대/전세대의 슈퍼스타들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영화 <솔로몬 왕의 보물>과 그 속편(무명 시절의 샤론 스톤이 나온다)을 매우 재미있게 봤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가 아라미스 역을 맡았던 <삼총사>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영화 커리어의 실패는 좀 안타깝다. (여담이지만 그 많은 그의 TV 미니시리즈 주연작들 중에는 뒷날 영화로 리메이크돼 대박을 친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도 있었다. 이 오리지널 시리즈도 매우 재미있었던 기억.)  만년엔 커밍아웃을 하고 이런 톱스타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성 정체성(!)을 꼭꼭 감춰야 했던 아픈 추억을 털어놔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사실 세계 영화계를 기준으로 하면 체임벌린보다 도라나가 역의  미후네 도시로가 훨씬 더 슈퍼스타였을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몬>,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등 칸 영화제를 휩쓴 걸작들 덕분인데, 이런 명성에서 한국은 분명 예외였다. 철저한 일본 영화/음악에 대한 금수 조치 때문에, 아마 <쇼군> 당시 국내에서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유학생들 외엔 거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비디오 테이프도 구할 수 없던 시절이다).

한국 관객들이 그나마 미후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진주만 기습을 다룬 <토라 토라 토라>나, 알란 들롱과 공연한 <레드 썬> 등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왕년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영화광들이 아니라면, 굳이 '자막 붙은 영화'를 볼 이유가 없었던 미국의 일반 관객들에게는 그냥 마토(Mato)나 별 차이 없는, '영어 못하는 동양인 배우'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쇼군>은 미후네가 한국 팬들에게 처음으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53년생인 시마다 요코는 이때까지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톱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본도 '할리우드의 주목'에는 열광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고, 시마다 요코는 체임벌린과 함께 골든 글로브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 덕분에 일약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일본 TV는 <쇼군>을 수입 방송하면서, 매회 시마다 요코를 기용, 시청의 편의를 돕는 '해설'을 제작해 덧붙이기도 했다.

 

그 뒤로도 미모와 지성(?)으로 주목받은 요코였지만 사생활에서 유부남과의 관계, 알콜 중독으로 인한 파산,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누드 사진집 발간, 만년엔 58세의 나이로 성인용 비디오 출연 등 파란만장한 사건사고를 기록하며 69세로 삶을 마감했다. 비운의 스타라 할만 하다.  

 

 

아무튼 이야기는 다시 한국으로. 당초 일본에서도 1980년 11월 극장판이 먼저 공개되었고, 한국에서도 상영될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쏟아졌던 느낌이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가당치 않은 얘기였다. 1962년, 한국 정부는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영화 <콰이강의 다리> 상영을 불허한 적이 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영국군 포로들을 상대로 가혹행위를 벌이는 이야기가 한국인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당연히 지식인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는 집단 항의에 나섰고, 결국 이듬해 상영이 허락되기도 했다.

 

그만치 한국 사회에서 '왜색'이라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범죄였다. 한국 영화에 한국 배우들이 일본 의상을 입고 일본인으로 출연하는 것은 허용이 되었지만(물론 그래봐야 왜구 역이나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왜군 역 들, 혹은 개화기 조선에 들어와 여기저기서 폐를 끼치는 낭인들 정도), 미국 혹은 다른 나라 영화라도 일본적인 느낌이 나는 영화들은 아예 수입사들이 처음부터 시도를 안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그 수많은 닌자 영화, 사무라이 검술 영화들이 한국에서 전혀 공개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런데 <쇼군>의 경우는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1980년부터 미국에서 드라마로 방송된 <쇼군>이 엄청난 화제작이라는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하더니 1981년에는 수입추진중이란 이야기가 돌았고, 개봉이 결정된 뒤 일본 배우 미후네 도시로와 시마다 요코가 내한해 영화를 홍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요즘 같으면 상식적인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대체 이유가 무엇인지는 당연히 알 길이 없다. 

그리고 1981년 12월26일,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물론 저때에는 저걸 <쇼군>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당연히 <장군>이지. 

 

솔직히 수입업자들의 촉으로는 당연히 수입해서 상영관에만 걸리면 대박이 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 다음으로 이 영화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한국 관객들이었을테니 말이다. 소설 <쇼군>은 물론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이 '지식인의 필독서'였던 시절. 게다가 전 중장년층의 80~90%가 일제시대에 교육받은 일본어 회화 가능자들(즉 은근히 일본 문화에 대한 향수가 어딘가에 남아 있는 분들). 

물론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그리 듣던 만큼 대단한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좀 심심하기도 했고(대규모 전투신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내가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수준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일본의 쇼군 이야기라더니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디 가고, 들어본 적도 없는 도라나가가 주인공이냐는 의아함도 있었다. 게다가 그때까지 일본 역사나 문화를 깊이 있게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젊은 관객(나다)들에겐 대체 영화 속의 정치 상황이 어떤 것인지, 마리코가 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지 등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리코의 실제 모델은 아케치 다마 혹은 호소카와 카라샤 라고 불리던 인물.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이다. 호소카와가의 며느리가 되었는데, 대역죄인의 딸이라 마땅히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이미 출가외인이고, 호소카와 가문은 아케치에게 동조하지 않고 맞선 공이 있어 '멀리 유폐' 되는 선에서 끝났다.

아무튼 그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기독교에 투신하고, 뒷날 호소카와 가문이 도쿠가와의 편에 서자 이시다 미츠나리가 가라샤를 인질로 잡기 위해 군대를 보냈는데, 이때 포로 되기를 거부하고 폭탄에 불을 붙여 장렬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쇼군>의 마리코와 상당 부분 행적이 일치한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실제 모델이 있었는지, 아케치 미쓰히데가 대체 누구인지, 남편과는 왜 사이가 나빠졌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봤으니 당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물론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당시 청춘/틴에이저 영화로 유명했던 문여송 감독이 동아일보에 기고한 감상문을 보면, 마침내 금기를 뚫고 극장에서 일본 문화를 접하게 된 감회가 넘쳐 흐른다. 

'마리코는 분명 블랙슨의 침실에 침입했다. 그러나 뒷날 간밤에 침실에 침입했던 여자는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보낸 하녀였다고 시침떼는 장면은 모든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쇼군에서 느낀 것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늘 갈구하던 영화 에로티시즘의 한 단면, 어떤 기교를 다시 한번 생각케 했다.  (1982. 2. 4. 동아일보)'

그랬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장면은 2024년에도 그대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재현되었다. 아무튼 그때 그 <쇼군>이 부활해 에미상을 휩쓰는 공전의 히트작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참... 감회가 새롭다. 어쨌든 왕년의 <쇼군>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로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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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종>이라는 새로운 드라마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이수연 작가의 작품이고 한효주 주지훈이 주인공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작품이 한방에 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에 나눠 업로드 된다는 걸 알고 나선 '다 올라오면 봐야겠다'로 태세를 전환했다. 마침 <쇼군>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있어 이번 디즈니 멤버십 부활의 타겟을 <쇼군>과 <지배종>으로 잡았다.

 

(이 OTT 난립의 시대, 그 많은 OTT에 모두 월사금을 바치는 것은 너무 부를 과시하는 일이라는 입장이라, 대부분의 OTT들은 똑 똑 떨어지는 빗물이 고이면 멤버십을 살려 후루룩 마시고, 바닥이 마르면 구독을 끊는 형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업계 종사자분들, 이해하시죠?)

요즘 핫한 바이오 산업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라길래 주인공들이 너무나 야근을 많이 해서 <집에 좀> 가라는 드라마인가 잠시 생각했으나(...죄송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정 한국에서 보기 드문 웰메이드 테크노 스릴러였다. 디즈니 플러스를 볼 수 있는 분들이면 지금이라도 꼭 보시길.

 

(올해 상반기에 드라마 좀 보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다들 '아니 왜 이렇게 볼만한 드라마가 없어요?' 하시던데, 보실게 있었습니다. 바로 이거였어요. 주제 의식, 전개, 배우들의 연기, 핵심을 찌르는 대사, 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꼽기에 손색이 없네요.)

 

시작: 현재에 아주 가까운 미래. 동물의 특정 부위 세포를 대량 증식해 소를 잡지 않고도 꽃등심이며 안심을 실험실에서 배양해 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축산업의 양상이 뿌리부터 흔들린 시대. 그 중심에 한국 기업 BF가 있다. 수백조 가치를 평가받는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 BF 총수 윤자유(한효주)는 과감하게 농업과 축산업을 공장에서 대체하는 것만이 환경 파괴를 막고 인류 문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길임을 역설한다. 

 

해군 대위 출신의 경호원 채운(주지훈)은 전직 대통령(전국환)을 불구로 만들고 자신을 퇴역하게 한 의문의 폭발 사건에 대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채운에게, 당시 폭발 현장에 윤자유도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BF에 접근해 그 배후에 BF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사해 볼 것을 지시한다. 

한편 BF는 생계 위협을 받는 농어민들의 시위로 여론이 악화되고, 국제적인 사이버 테러리스트 집단에게 해킹을 당해 거액을 요구받는 위기를 맞는다. 총리 선우재(이희준)는 이 상황을 정국 운영에 유리하게 활용하려 하고, 선우재의 아버지이며 재벌 그룹 회장인 선우근(엄효섭)은 윤자유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BF의 지분을 요구한다. 

 

스포일러가 싫은 분들은 대략 여기까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윤자유와 채운은 어찌 어찌 같은 편이 되어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역시 이수연 작가의 팬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은 누가 정말 같은 편이고 누가 정말 적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의심하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위해 진심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다. 얼른들 보셔.

참,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들도 있던데 지배종이란 dominant species, 즉 여러 생명체가 같이 존재하는 하나의 생태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종, 즉 다른 종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종을 말한다. 당연히 지구 생태계의 지배종은 인간인데, 내용상 이 드라마에서 지배종이란 현생 인류보다 한 단계 더 진화했다고 볼 수 있는 '새로운 인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여기까지만. 

 

(스포 경고. 넘어오지 마세요)

 

<비밀의 숲>에서 거대한 적들에 비해 돈도 없고, 뭔가 힘도 없는 주인공들의 노력이 안타까우셨던 분들이라면 이번엔 좀 편안하게 보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상대인 재벌그룹이나 국무총리만은 못하지만 BF그룹은 기술도 있고, 맨파워도 있다. 최소한 돈이 없어서 뭘 못하는 일은 절대 없다. 경호원도 수십명씩 고용할 수 있다.

 

비록 이 드라마가 근미래, 아직 이뤄지지 않는 신기술이 적용된 사회상을 그리고 있지만, 혹시나 <그리드> 같은 드라마일까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그리드>에 비하면 기술은 그렇게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고, 복잡한 타임슬립 트릭도 없다. 연출 의도인지 가끔씩 시간상의 인과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시청에 방해 되는 요소는 아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24>나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느낌의 슈퍼 에이전트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드라마라는 점. 국내 드라마 주인공 중에선 이 작품의 주지훈에 비견될만한 캐릭터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배신+배신으로 점철되는 악당들의 뿌리를 추격해 가는 과정이 탄탄한 플롯 덕분에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심지어 <존 윅>에나 나올법한 파워 수트, 인공장기 수술의 부작용(?)인 초인적인 힘까지 장착하다니. 

윤자유라는 '이상주의자이면서 유능한 이과 출신 경영자'의 역할을 한효주 외에 다른 어떤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었을지도 솔직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 역할은 수시로 매우 인간적인 대학교 서클 회장 언니에서 사람 수십명의 목숨 따위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적들과 한치 양보없이 싸워야하는 우리편 대장의 면모를 오가야 하는데, 결코 구현이 쉽지 않을 인물이 한효주 덕분에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졌다. 

그리고 드라마에 생동감을 주는 것은 역시 막강한 악의 무리들. 엄효섭, 이희준의 화려한 악당 연기는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고, 잘 모르는 배우였던 박지연의 열연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것이, '악당들'의 목적이 BF가 갖고 있는 '진짜 무서운 비밀'의 확보에 있었다면, 대체 김신구 교수(김상호)를 굳이 죽여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살려서 핵심 원천 기술을 빼오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활용이 아닌가 하는 대목 처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또 후배 경호원은 하필이면  '칼과 불을 막아내는' 파워 수트를 입고 있다가 죽고, 경찰 세 사람을 공중부양시키는 채운의 괴력은 막상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 특공대원들과의 1:1 대결 때에는 어디론가 실종되어 버린다는 진행 등도 아쉽다. 가장 중요한 전투 신에서 채운이 좀 더 슈퍼파워를 과시했어야 하는 건 아닐지. 

그래도 현 시점에서 가장 시즌2가 기대되는 한국 드라마라면 아무래도 <지배종>을 첫 손가락에 꼽게 된다. 내부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디즈니 플러스의 빠른 결단을 촉구한다. 

P.S. 그리고 디즈니 플러스 마케팅 점검 좀 하시죠. 어떻게 구글 검색을 해도 포스터 말고는 검색되는 사진이 이렇게 없을수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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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플러스의 10부작 <쇼군>. 드라마 한편을 보고 나서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은 작품도 정말 오랜만이다. 일단 줄거리를 살펴보자.

배경은 서기 1600년의 일본. 타이코(태합) 나카야마는 1598년 사망하면서  '5대로'라고 불리는 다섯 명의 강대한 영주들에게 어린 아들의 앞날을 부탁했다. 하지만 2년 뒤, 5대로의 결속은 깨지고, 나카야마의 심복인 이시도는 후계자를 위한 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어린 후계자의 생모인 오치바와 동맹을 맺고 강력한 라이벌인 에도의 다이묘 토라나가를 거세하기 위해 갖은 압박을 가한다. 


내전을 예감한 각지의 영주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엄청난 눈치보기를 시전하던 상황, 네덜란드 배를 탄 영국 항해사 존 블랙손이 토라나가의 세력권인 이즈 반도 끝으로 표류해온다. 당연히 일본과 단독 무역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포르투갈인들과 그들의 편인 천주교 영주들은 이 개신교도의 출현을 껄끄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고, 토라나가는 이 복덩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심복의 아내 마리코를 블랙손에게 통역으로 붙인다. 블랙손은 피치못하게 토라나가의 수하가 되어 전국시대의 종말을 앞둔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일본의 1600년이라면 임진왜란 종결로부터 2년 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시대인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왜 생소할까. <쇼군>의 원작을 쓴 제임스 클라벨이 창작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인지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을 모두 바꿨기 때문이다. 저 위의 줄거리에서 나카야마 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시도 대신 이시다 미츠나리, 토라나가 대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대입하면 실제 역사가 된다. 사실 블랙손이라는 인물 역시  '안진'이란 이름으로 도쿠가와를 섬겼던 영국인 윌리엄 아담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디테일은 다르지만 큰 줄거리는 대략 일치한다. 

 

어쨌든 클라벨의 이 소설은 1975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번역 출간된 한국과 일본에서도 크게 성공했고, 1980년에는 5부작 미니시리즈(약 540분 분량)로 제작되어 역시 큰 성공을 거둔다. 이 미니시리즈는 한국에서 방송되지는 못했지만 2시간짜리 극장판으로 편집돼 1981년 피카디리 극장에 걸린다. 이 영화를 본 사람으로 생각나는 얘기가 참 많은데...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따로 한번 써야 할 것 같다.

쇼군, 1980


1980년판의 리처드 체임벌린(뒷날 <가시나무새>로 잘생긴 남자가 신부복을 입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바로 그 분이다), 미후네 토시로, 시마다 요코의 명성에 비길 정도는 아니지만 2024판에서도 사나다 히로유키를 필두로 아사노 마사노부, 히라 타케히로 등 할리우드에도 어느 정도 기반을 갖고 있는 일본 톱스타들이 출동해 탄탄한 연기를 보여준다.

사실 드라마의 작중 화자 겸 명목상의 주인공은 블랙손 역을 맡은 코스모 자비스지만, 누가 봐도 진정한 드라마의 축은 토라나가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와 마리코 역의 안나 사와이다. 굳이 주제를 찾자면 '아시아의 정치 고수들 손바닥에 놓인 단순한 영국인' 이라고나 해야 할까.  블랙손은 끝까지 일본인들을 깊고 깊은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장깃말처럼 끌려다니는 존재다.

반면 다른 한 쪽에서 이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야부시게 역을 맡은 아사노 타다노부의 열연이다. 왕년의 섹시 스타가 어쩌다 이런 코믹한 아재가 됐는지 모르겠으나, 야부시게는 여기서 큰 영주들 사이에 낀 소영주, 즉 대영주의 가신들이 겪는 애환을 상징하는 존재다. 명분상의 의리로는 토라나가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나, 가문과 영토를 보존하려면 이시도를 무시할 수 없기에 거의 내놓고 양다리를 타는 그런 남자... 전설 속 일본 전국시대 사무라이의 실체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2024년의 <쇼군>이 주는 충격은, 1970년대(소설 <쇼군>은 1975년에 나왔다) 미국인들이 바라보던 저 먼 동양의 신비로운 나라 일본의 이미지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는 거다. 사실 이런 시각은 1969년작인 <007 두번 산다>나, 일본이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으로 떵떵거리고 있던 1993년작인 <떠오르는 태양>에서나 큰 차이가 없다. 이 작품들 속의 일본인들은 항상 신비로운 미소 속에 자신들만의 세계를 갖고 있고, 특히 여성들은 뭔가 은밀한 임무를 위해 언제든 몸과 마음을 다 외국인들에게 바친다. 상급자의 명령은 하급자에게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며, 잘못에 대한 사죄는 결국 항상 셋푸쿠(切腹, 우리에겐 '할복'이 더 익숙하지만 정작 일본어로 많이 쓰이는 이 단어는 한자로 '절복'이다)를 통해서만 해결된다. 

 

현대 일본인들이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일본인들이 이 드라마를 만드는 데 동원된 명분은 아무래도 '아니, 누가 지금이 그렇댔나, 이건 400년 전 얘기잖아' 같은 것일텐데, 이 드라마 속의 몇몇 상징들을 봐선 지금도 미국이 일본과 일본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번 <쇼군>에서 블랙손이 일본에 상륙하는 이즈 반도 끝자락엔 시모다(下田)란 항구가 있다. 1853년, 미 해군의 매튜 페리 제독이 구로후네, 즉 흑선(黑船) 함대를 몰고 무력시위를 벌여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킨 바로 그 곳이다. 참고로 블랙손의 모델인 윌리엄 아담스가 실제로 상륙한 곳은 저 머나먼 큐슈였다. 

...뭐 이런건 그냥 일종의 피해망상이라고 치자. 아무튼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나 흥미로울, 넘쳐나는 오리엔탈리즘 덕분에 이 드라마는 공전의 히트작이 됐다. 디즈니 플러스 발표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미국 국내에서는 훌루(Hulu), 글로벌하게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배급됐는데 '역대 디즈니 플러스가 만든 드라마 시리즈 중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한다. 

 

미주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봐선 이것은 한류를 한방에 날리는 일류(日流)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일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일본 배경의 미국 드라마고 쇼러너인 레이첼 콘도는 일본계지만 하와이 출신 미국인이다. 말하자면 <오징어게임>보단 <파친코>에 가깝다. 그건 그런데, 사실 겁나는 건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봤지? 이런게 통하잖아. 우리도 이런거 만들면 당장 미국 시장 다 먹을 수 있어! 잘 할 수 있잖아?" 할 몇몇 사람들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이란게 과연 어떤 걸까. 혹시 남편이 죽으면 수절 과부 만들기 위해 며느리에게 자결을 강요하고, 자손 얻기 위해 씨받이를 들이고, 그래도 안되면 남자를 씨내리로 들이고, 복자승에게 보내 임신을 시켜 오려 하고, 가문과 나라의 안녕을 위해 딸들을 대국에 공물로 바치고, 그중 권력자의 처첩으로 성공하는 케이스가 나오면 그 댓가로 아버지와 오빠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고.... 뭐 이런 이야기들 아닐까. (왠지 너무 잘 먹힐 것 같아 불안하다.)

어쨌든 이런 찜찜함이 가시지 않는 것은 내가 그런 사정을 지켜보며 살아 온 한국인이기 때문인데, 사실 이런 생각을 걷어 내고 보면 <쇼군>이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점은 감히 부인할 수가 없다. 검술 액션이나 전투신은 거의 없지만 의상, 건축, 미술은 탄복할 만 하고, 음모, 폭력, 잔혹, 그리고 은밀한 남녀관계까지 볼거리가 넘친다. 배우들의 연기, 연출력 모두 탄탄하다. 거기에 몇 차례의 셋푸쿠 신을 둘러싼 제작진과 시청자의 줄다리기는.... 정말 대단한 경지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센고쿠(전국)시대란 무엇인가, 쇼군과 다이묘는 어떤 관계인가, 하타모토는 또 뭔가. 에도와 오사카는 어떤 관계인가 등등을 알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쇼군>은 그런거 하나도 몰라도 드라마를 즐기는 데 전혀 지장이 없도록 잘 만들어진 오락물이다.

오히려 일본 역사에 관심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장면 때문에 몰입이 깨질 수도 있을 부분들이 있는데, 이 역시 재미있게 보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뭐 그렇게 자잘한 생각이 많은가?"

남의 일이니까 재미있게 보는데 이런게 내 이야기가 되면 별로 즐겁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이런 느낌은 어떻게 하면 사라질 수 있을까.

...하긴 어쩌긴 뭘 어째. 그냥 보고 즐기기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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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스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주만한 크기의 목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 토호 존 더튼 역. 더튼과 충실한 2인자인 장남 리, 변호사인 차남 제이미, 반항적인 카우보이인 막내 케이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천재 딸 베스의 4남매가 변해 가는 주변 환경 속에서 ‘트래디셔널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전통적인 미국인의 가치를 가장 간단히 요약하면 ‘내 집과 내 가족은 내가 내 힘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인 것 같다. ‘정의’의 기준은 ‘네가 넘어오면 결과는 네 책임이다’고, 좀 더 나아가 ‘자기 방어’의 기준은 ‘나와 내 가족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이든 제거해도 된다’가 된다.
 
이 ‘무엇’ 안에는 해충과 방울뱀, 인간이 모두 동등하게 포함된다. 존 웨인 영화 속 세계가 21세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자못 충격적이다.
 
보다 보면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다. 몬태나 주와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경찰력을 비교해 보면 각각 201명대 250명,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몬태나 주엔 남한 4배 정도의 넓이에 1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경찰 한 명이 약 115제곱킬로미터를 커버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 <옐로우스톤>에선 ‘시체 버리는 장소’가 자주 등장한다. 한 인물이 “왜 늘 시체는 여기다 버리느냐”고 질문하는데, 대답이 이렇다. “여기서 사방 100마일 내에는 인가도, 경찰도, 보안관도 없기 때문이지.”
 
케빈 코스트너는 말보로 광고에 나오는 듯한 19세기적 카우보이 보스였다가, 적들을 거리낌없이 제거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냉혹한 범죄단체 수장이었다가, 결국은 전통적인 미국의 개척정신을 수호하는 신념의 화신으로 미화된다. 총 몇방 맞은 정도로 의사 신세를 지는 것은 수치고(정말 존 웨인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적들조차도 결국은 그를 존경하게 된다(물론 대부분 그 전에 시체가 되어 황무지에 버려진다). 한국의 꼰대 아저씨들 따위는 그 앞에 가면 순진한 유치원생처럼 보일 듯한 느낌이다.
이런 가치관에 동의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고, 미국의 단면을 본다고 생각하면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다. ‘아무리 악인이지만 내가 인간의 목숨을 이렇게 빼앗아도 되는가’ 따위의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고구마가 없다. 진행도 빨라서 정신을 차려보면 5시즌 순삭.
물론 보고 있으면 버본이 마시고 싶어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티빙에 시즌5까지 있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서서히 테일러 셰리던 월드에 젖어들고, 다른 작품들까지 모두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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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연이겠지만 2023년 상반기에는 재미있게 몰두해서 본 드라마가 많았던 반면, 하반기에는 재미있을 뻔 하다가 만 드라마들이 많았던 듯 합니다. 굳이 외면한 작품으로는 병자호란-소현세자로 이어지는 시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연인>을 처음부터 안 본 정도? 

아무튼 나중에 생각해 보면 2023년은 개인적으로 '테일러 셰리던의 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미드계의 박봉성'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이 양반 정말 대단합니다. 2023년 현재 <옐로우스톤> 시즌 6, <라이오니스> 시즌2,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 시즌3, <1923> 시즌2, <털사킹> 시즌2를 동시에 자신의 크레딧으로(작가/제작)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아무리 밑에 유능한 작가들이 많고, 대본 공장을 심하게 돌려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대부분 다 재미있고 성공하고 있다는...)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드라마 중에는 역시 상반기의 <글로리>와 <카지노>가 워낙 강렬한 탓인지 그 뒤로 <소년시대>가 오기 전까지 그닥 인상적인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 정도...? 

 

옐로우스톤, 1863, 1923

테일러 셰리단 월드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아마도 2023년의 가장 결정적인 선택이었던 듯. 미국 몬태나 주를 무대로 '그 자체가 서부 개척사'라 할 수 있는 더튼 가문의 150년을 한꺼번에 훑어보는 이 장대한 사가에 한번 발을 들여 놓은 뒤로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옐로우스톤>은 현재 몬태나의 실세인 대 목장주 존 더튼의 삶, <1863>은 처음 더튼 가문이 어떻게 서쪽으로 역마차를 끌고 이동해 몬태나까지 오게 되었는지(사실 오레건으로 가다가 중간에 멈춘), 그리고 해리슨 포드가 주연인 <1923>은 자동차가 말을 밀어내는 시대에 미국 서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저런 스틸컷을 보면 이 드라마가 <초원의 집> 같은 미국의 전원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몬태나 주는 19세기 후반과 큰 차이 없는 야망과 살육의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드보일드 대하 드라마.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옐로우스톤>의 다섯 시즌, 그리고 그 조상들의 이야기인 <1863>과 <1923> 을 보고 있으면 어쩌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고 또 되려고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미국. [티빙]

옐로우스톤, 서부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옐로우스톤, 서부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

fivecard.joins.com

털사킹

테일러 셰리단 월드는 몬태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잘 나가던 뉴욕의 마피아 중간 보스에서 하루 아침에 오클라호마주 털사를 나와바리(?)로 받은 실베스터 스탤론. 30년의 옥살이 끝에 지성과 펀치를 겸비하게 된(노인 우습게 보는 동네 깡패들을 한방에 제압하고 돌아서서 검찰 여수사관에게 치근댈 때에는 세네카를 인용할 수 있는 남자!) 스탤론의 인생 2모작 이야기인 셈인데, 일단 보시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듯. [티빙]

 

라이오니스

셰리던은 <옐로우 스톤> 시리즈와 <털사 킹> 외에도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과 <라이오니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신통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중 더 재미있었던 쪽은 <라이오니스>. 근육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미 특수부대 장르에 여자들이 주도하고 여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새로운 유닛(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에 대한 이야기다.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은 시즌2로 가며 엿가락 신공이 작용하고 있는 듯 해서 애정이 식었지만 이 쪽도 팬이 많다는 정도는 언급해도 좋을 듯.  (이상 테일러 셰리단 시리즈는 미국에서는 파라마운트, 한국에서는 웨이브였는데 최근 한국 서비스 OTT가 티빙으로 바뀐 듯.)

조이 살다나, 니콜 키드먼의 조합이 생각보다 좋다.  [티빙]

아무튼 여기까지가 테일러 셰리던 시리즈.

글로리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2023년의 드라마로 과연 이 작품을 빼놓고 뭘 얘기할 수 있을지. 오히려 <글로리>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에 2023년을 빛낸 다른 한국 드라마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여러 학폭 사태로 인해 하늘이 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무적의 송혜교 외에도 주변의 악역 하나 하나, 그 악당들의 주변 인물 하나 하나까지 모두 살려낸 대본은 실로 '드라마의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넷플릭스]

소년시대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이성한 감독의 2009년작 영화 <바람>. 그리고 충청도를 무대로 했던 영화 <불타는 청춘>이나 뭔가 촌스러운 큐슈 기지촌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이상일 감독의 <69>는 아마도 반면 교사 역할을 했을 듯. 어떤 면에서는 일본 만화 <엔젤전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소년시대>제작진의 위대함은 이미 존재했던 이 많은 작품들을 보고 본인들이 아쉬웠던 점을 후련하게 털어낸 뒤 완벽에 가까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점. 대본, 연출, 그리고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해 데뷔한 듯한 수많은 젊은 배우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2022년에 박은빈이 있었다면 2023년에는 임시완이 있었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열연. 물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상진이 연기한 호석이가 가장 사랑스러웠다. [쿠팡]

디플로맷

프로페셔널 외교관 부부. 의뭉스러운 대통령의 의지로 영국 전문가인 남편이 아닌 아내가 주영 미국 대사가 된다. 같은 뿌리를 갖고 있고 항상 같은 편이지만 그래도 뭔가 긴장이 흐르는('영국 총리는 미국 대통령의 애완견이냐'는 시각은 항상 존재한다 - 물론 이런 것도 <러브 액추얼리>같은 영화에서 본 거지만) 미국과 영국의 관계. 그 안에서 온갖 음모와 싸우는 용감한 여대사 케리 러셀의 1인 무적 드라마인데, 사고를 치는 건지 아내를 도와주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남편(전남편) 루퍼트 시웰이 은근히 더 빛나는 느낌도 있다. 시즌 2를 기다리는 중. [넷플릭스]

브러쉬업 라이프

회귀물을 참 많이 봤는데, 인생 2회차 드라마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고, 성공한 작품은 더더욱 없다. 아무래도 그만치 쓰기 어려운 듯. 그런데 인생 5회차 6회차 7회차를 그리는 드라마가 나왔다. 일본 드라마 <브러쉬업 라이프>. 야망도 뭣도 없는 평범한 공무원이 어찌어찌하다 살아온 삶을 뒤엎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판타지다.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찰떡같다.

물론 살아 보면, 역시 인생이란 두번 정도 살아서 무슨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과거를 바꾸면 그 과거는 계속 또 다른 과거(그러니까 좀 더 가까운 과거)를 만들고... 아무튼 '젊은 여자들 이야기인데 남자 주연은 하나도 없는' 신기한 드라마. 여자들의 우정이 주제다. 멜로가 없으면 드라마가 아닌 분들께는 비추. [웨이브]

 

플레이리스트

스포티파이라는 셰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음원 앱을 주제로, 그 앱을 만든 창업자, 개발자, 경영자, 그리고 이 사업을 존재 가능하게 한 변호사, 이 사업과 손을 잡아야만 했던 음악산업의 거물,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인 콘텐트를 제공하는 아티스트라는 6개의 시각으로 그 성장 과정을 살펴본 드라마. 꽃미남/미녀/멜로 전혀 없고, 만듦새부터 내용까지 모두 '아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을 주는 혁신적인 드라마. 그런데 재미있다. 특히 IT 비즈니스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는가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강추. 물론 다큐 아님. [넷플릭스]

카지노

시기적으로 살짝 애매하지만 어쨌든 내가 본게 2023년이니 여기에. 결코 흠이 없는 드라마는 아니다. 초반 주인공의 어린 시절 성장 서사가 사실 너무 뻔하고, 너무 지루하다. 하지만 일단 필리핀으로 넘어가면 중간에 끊고 안 볼 수 없게 하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특히 호구 형님과의 시퀀스가 '아... 저기서 멈췄으면' 하는 생각과 '저런 의지 없는 인간은 밑바닥까지 당해 봐야지'하는 묘한 양가감정을 일으킨다. 드라마를 통해 보는 남의 불행은 이런 식으로 즐길 거리를 주는 걸까. 아무튼 일단 흐름에만 오르면 결말까지(그 결말이 꼭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이건 그냥 개취) 한방에 달리게 하는 탄탄한 드라마. [디즈니]

리키시

일본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넷플릭스를 노릴까. 일단 고레에다가 게이샤/마이코 이야기로 물꼬를 텄는데 아무래도 페도파일 냄새가 불편했다. 어디 가서 함부로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없는 드라마(그리고 개인적으로 재미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의 기념비적인 드라마는 바로 이 <리키시>라고 생각한다.

<리키시>는 한자로 역사(力士), 즉 '힘 쓰는 남자=스모 선수'라는 뜻. 모래판을 무대로 강백호보다 10배 쯤 더 말 안 듣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천재형 스모 선수가 어찌어찌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이야기. 전혀 잘생기지 않고, 본받을 데도 없는 주인공이 신선하고 이야기 전개도 좋았는데, 주연급 여성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발암이다. 이런 요소는... 앞으로 일본 드라마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데 분명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너무 뭔가 아저씨 드라마 판 인것 같아 하나 추가하면,

반짝이는 워터멜론

그렇게 많은 2023년의 말랑말랑 청춘 드라마들 중에서 시간을 기다려가며 볼만한 드라마는 이거 하나였다는 생각. 아빠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한국의 그 많은 과거 회귀 작품들 가운데서도 드물게 신선함이 빛났다고나 할까. 특히 최현욱의 신비로운 매력은 정말.  [지금 보려면 티빙?]

기타:

물론 매번 시즌이 바뀔 때마다 다시 얘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만달로리안3>는 따로 꼽을 수 없었다. 좀 경우는 다른데 최근 넷플릭스로 소개된 <나이트 에이전트>도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이미 본지는 꽤 오래 된 작품. 드라마 외의  TV show 로 꼽는다면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데블스 플랜>이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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