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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든 드라마든, 유난히 제목이 헷갈리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비슷한 제목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어의 조합이 자연스럽지 않아 더 자연스러운 쪽을 찾아가는 경향도 있죠.

 

어떤 쪽이든 대개는 '제목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최근 1200만 관객을 넘어 선 '7번방의 선물'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설마 없겠죠. '홍보 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엄청난 흥행 성적입니다. 그렇다고 제목이 너무 길어서 헛갈리게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생각해 보면 이렇게 제목이 헛갈리는 작품들이 대부분 흥행에서는 꽤 좋은 성적들을 냈더라는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어떤 영화들이 있었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바로 아래 포스터에 쓰여 있는 영화 제목을 한자 한자 정확하게 읽어 보시고, 스스로 반문해 보세요.

 

당신은 정말 이 영화의 제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정확한 제목은 '내가 살인범이다'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살인범이다'라는 제목으로 기억하고 있고, 심지어 '내가 살인자다', '나는 살인자다'로 착각한 분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바로 그런 작품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목: ‘세상의 끝’, 아니고요, ‘세계의 끝입니다.

 

관객 천만명이 넘었는데도 제목이 헛갈리는 영화가 있다. 바로 ‘7번방의 선물이다. 아마 아직도 ? 내가 본 영화는 ‘7번방의 기적인데…”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다. ‘7번방의 기적이란 영화는 없다.

왜 이런 착시현상이 생겼을까. 크리스마스 영화의 고전인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 이후로 유사 제목이 특히 한국에서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에 참여한 1987년작 ‘Batteries not included’는 국내 개봉 때 8번가의 기적이란 제목이 붙여졌다. 임창정과 하지원이 주연한 1번가의 기적 도 흥행에선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왠지 제목만큼은 친근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에는 QTV에서 신동엽이 진행하는 7번가의 기적 이란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된 적이 있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7번방의 기적이 등장한 것이다.

지금이야 대박이 났으니 별 상관 없겠지만, ‘7번방의 선물관계자들은 엉뚱한 제목을 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덜컹 덜컹 내려앉았을 거다. 사실 필자도 요즘 그런 느낌을 받고 있다. 다름아닌 새 드라마, ‘세계의 끝세상의 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하얀 거탑’, ‘아내의 자격의 안판석 감독이 연출하고 윤제문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치사율 100%의 변종 바이러스가 한국을 덮치면서 일어나는 상황을 그린 드라마다. 316일부터 매주 주말에 방송되고 있다. 포스터에서부터 세기말적인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하며, 서울 시내가 아비규환으로 변한다는 설정 하며 세계의 끝이라는 제목은 참 잘 지은 제목이다 싶었다. 본래 배영익 작가의 원작 소설 전염병에서 비롯된 작품이니 그냥 드라마 제목도 전염병으로 했으면 좋았겠으나 2010년 보건복지부가 전염병이라는 단어를 아예 감염병이라는 말로 바꿔 버렸다. 그렇다고 감염병이란 생소한 단어를 드라마 제목으로 붙일 수도 없지 없지 않은가.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계의 끝이란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世界りとハドボイルドワンダランド)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스키터 데이비스의 올드 팝 히트곡 ‘The end of the world’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절대 낯선 제목이 아니다.

그런데 제목을 확정한 바로 다음 날부터 혼란이 시작됐다. 많은 사람이새 드라마 세상의 끝말인데요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7번방의 선물아니라도 비슷한 제목이 있으면 헛갈릴 수 있다. 박시후 주연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나는 살인범이다로 잘못 쓴 기사만 해도 수백건이다. 당연히 나는 가수다 의 영향일 게다. 외화의 경우도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두 영화 디 아더스디 아워스를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좀 더 코믹한 경우로는 슈퍼맨 비긴즈배트맨 리턴즈가 있다(물론 팀 버튼의 배트맨2’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어? 하는 순간 또 헷갈리는 분들. 네. 슈퍼맨은 '리턴즈'가 맞고 배트맨은 '비긴즈'가 맞죠. 하지만 그게 또 끝이 아니라는 거...^^ 저 아래쪽에 보충 설명 나갑니다.)

 

하지만 세상의 끝이란 제목은 어디에도 없는데 왜 혼동을 가져오는 것일까. 정정해 줘도 심각하게 “‘세계의 끝’? ‘세상의 끝이 아니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봐, ‘신세계신세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잖아라고 항변했지만 그제야 알았다. 한국인에게는 세계보다세상이 훨씬 더 일상적인 단어라는 것을.

류시원 김희선이 주연한 왕년의 드라마도 세상 끝까지이고, 빔 벤더스 감독의 1991년작‘Until the end of the world’이 세상 끝까지로 번역됐다. 무라카미 하루키 탓을 해도 소용 없는 것이, 역시 일본 베스트셀러인 世界中心で、をさけぶ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번역됐다. ‘그 번역만 독특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재치있는 포털 검색 담당자 덕분에 세상의 끝을 검색해도 바로 드라마 세계의 끝이 뜬다. 그리고 위에서 예로 든 작품들 대다수가 흥행 성과가 썩 나쁘지 않았다는 점도 기대를 모으게 한다. 부디 세상 끝까지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드라마가 되길 기대해 본다. (끝)

 

 

아시는 바와 같이 '7번방의 선물'은 1200만, '내가 살인범이다'는 300만 고지를 넘어서며 흥행에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끝'도 방송을 시작한 뒤까지 여전히 '세상의 끝'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는데 비해 아직 시청률 면에서는 아직 대박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놀라운 완성도와 스케일, 그리고 윤제문, 장경아 등의 탄탄한 연기가 호평받고 있습니다.

 

'슈퍼맨 비긴즈'와 '배트맨 리턴즈'는 당연히 영화 '슈퍼맨 리턴즈'와 '배트맨 비긴즈'를 혼동해서 쓴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아는 분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놀란의 3부작 중 첫 작품은 분명 '배트맨 비긴즈'지만 '배트맨 리턴즈'라는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팀 버튼이 만든 배트맨 시리즈의 두번째 영화, '배트맨 2'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영화의 부제가 바로 '배트맨 리턴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배트맨 리턴즈'라는 표기를 어디선가 보게 되면 혹시 팀 버튼의 영화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슈퍼맨 비긴즈'의 경우에도 미드 '스몰빌'을 국내에서 방송할 때 이 제목을 쓴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래 저래 확인이 필요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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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세월 동안, 한국의 신작 드라마가 그 전에 방송됐던 일본이나 미국 드라마를 아무 허락 없이 베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무슨 새로운 드라마를 기획할 때 기존의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를 베끼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죠. 

 

물론 한국은 이미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볼 때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콘텐트 강국입니다. 프라임 타임에 자국산 드라마를 편성하는 나라, 콘텐트 최강국인 미국 드라마가 프라임타임에 맥을 못 추는 나라는 생각보다 대단히 드문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후반까지는 '외화'가 당당하게 핵심 시간대를 지켰죠.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국의 영향을 받은 해외 콘텐트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늘 우리가 베끼고 받아들이던 일본 드라마 가운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표절이라고 불러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겁니다.

 

 

 

혹시 오다기리 조 주연 드라마 '가족의 노래'를 보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앞으로 방송하게 될지도 모르는 해외 콘텐트를 점검해 보는 것도 꽤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오다기리 조는 워낙 한국에 인기 높은 일본의 톱스타이기도 하고,'가족의 노래'는 특히  설정이 독특해 관심을 끌었지만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죠. 결국 8회만에 조기종영을 맞았습니다. 한 회가 대개 11회 정도에서 끝나는 일본 드라마의 특성상 조기종영하는 경우는 꽤 드문 편입니다.

 

아무튼 별 사전정보 없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됐을 때 상당히 놀랐습니다. 놀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얼마전에 썼던 글입니다.

 

 

 

지난 4월 일본 후지TV에서 방송된 <가족의 노래>(家族のうた)라는 드라마가 있다.

오다기리 죠가 주인공을 맡았는데도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8회 만에 막을 내린 범작이지만, 한국 시청자들에겐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있었다.주인공 하야카와 세이기(오다기리 죠)는 10여 년 전 밴드의 일원으로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인물. 하지만 밴드 해체 후 쇠퇴일로를 겪었고,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퇴물 뮤지션이 되어 있다.

충실한 매니저 미키(유스케 산타마리아)만이 하야카와를 감싸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전성기라는 착각에 빠진 하야카와는 늘 자존심만 앞세워 미키의 속을 썩인다.그러던 어느 날, 한 10대 소녀가 하야카와의 집 대문을 두드린다. 자신이 하야카와가 한 여성 팬과 벌인 하룻밤 불장난으로 태어난 딸이며, 엄마가 죽고 없으니 이제 하야카와와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하야카와는 몸서리를 치지만, 심지어 두 명의 소녀가 더 나타나 하야카와가 자신의 생부라고 주장한다.

 

 



한국 관객이라면 ‘어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한국 영화 <라디오 스타>(2006)와 <과속스캔들>(2008)을 본 사람에겐 너무나 익숙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에게 일본 측과 판권에 관련된 협의가 있었는지를 확인했지만, 그는 <가족의 노래>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작가 사카이 마사아키의 히트작 중에는 묘하게 기시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

그의 2010년 히트작 <할아버지는 25살>은 빙하에 46년간 갇혔다가 살아 돌아온 주인공(후지와라 타츠야)이 자신의 할아버지뻘인 아들, 동갑인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967년 미국 ABC에서 방송된 시트콤 <두번째 백년>(The Second Hundred Years)도 빙하에 갇혔던 주인공이 아버지뻘의 아들, 동갑인 손자를 만나 벌이는 난리법석을 다루고 있다. 1970년대 국내에서도 ‘청춘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이다.

 

 

<할아버지는 25살>과 <청춘 할아버지>. 사실상 리메이크작입니다. 두 사진 모두

나이든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관계입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도 <청춘 할아버지>의 판권을 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모르겠습니다.


사카이의 또 다른 히트작 <절대영도: 미해결사건 특명수사>는 오랫동안 미해결로 남아 있던 사건을 재수사하는 경찰 특설 팀의 이야기다. 긴 시간 아무도 손대지 않아 서류철이 차가워졌다는 뜻에서 제목이 붙은 미국 드라마 <콜드 케이스>(Cold Case)와 노골적인 공통점이 느껴진다. 사실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미국, 일본 작가들의 창작을 은근히 도용하고 채용했던 점을 생각하면, <가족의 노래>의 구성이 아무리 뻔뻔스럽다 해도 함부로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이준익 감독이나 강형철 감독 개인이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측이 일본 방송계를 싸잡아 매도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뜻이다).

오히려 국내 창작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라도, 해외 저작물의 무단 도용이나 차용에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필요할 때다. 한국 드라마의 수준을 몇 년 끌어 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는 <추적자 THE CHASER>(SBS)조차도 몇몇 미국 드라마와의 유사점을 지적받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시야를 지난 20년, 30년간의 드라마 전체로 확대할 때 한국 드라마의 독창성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대다수 한국 드라마들이 ‘외국 작품의 영향’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도 대외적으로 한국산 콘텐츠의 도용을 떳떳하게 항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가족의 노래>와 <과속 스캔들>. 차이가 있다면 <가족의 노래>에서는 무려

      세 소녀가 '내가 당신의 딸'이라고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 중 하나가 남매.

 

윗글에서는 한국 드라마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됐지만 사실 '가족의 노래'를 보다 보면 기시감이 드는 작품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휴 그랜트, 드루 배리모어 주연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입니다.

 

 

 

 

'한때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던 뮤지션 이야기'라는 기본적인 공통점 외에도 주인공의 밴드 시절 동료 가운데 현재 잘 나가는 프로듀서로 변신한 남자와 갈등을 겪는다는 , 주인공에게 당대의 여자 아이돌 가수에게 곡을 줘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지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먹고 살기 위해 어린이 공원('가족의 노래'에서는 동물원) 관련 일을 하게 된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정상적으로 후반까지 진행됐다면 공통점이 더 발견됐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드라마 소재를 가져다 쓰는 일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당연한 일이 돼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우리는 후발국'이라는 이유로 그런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뿐이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의 것을 그냥 가져다 쓰는 일은 없어져야 할 시점이 온 듯 합니다. '가족의 노래'가 바로 그런 시대임을 보여주는 좋은 잣대가 된 듯 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 그런 부분에서 떳떳해 져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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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극의 세계에 집착하는 영화 감독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셰익스피어 극의 리메이크를 시도했던 감독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죠. 특히 '햄릿'은 수십차례나 세계 각국에서 시대와 배경이 바뀐 채 영화화됐고, 영화 천황 구로자와 아키라도 '맥베스'와 '리어 왕'을 자기 식으로 만들어 낸 걸로 유명합니다.


그걸 한층 더 넘어서서, 만들어진지 2천년이 넘은 그리스 비극들이 다룬 모티브가 지금까지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삶의 형태가 변한다 해도 삶의 방식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들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고 있다는 설득력을 가진 지금이야말로 그리스 비극이 자주 다뤘던 주제들이 확연한 의미를 갖고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썼던 글입니다. 제목은 '왜 그리스 비극은 아직도 유효한가' 정도로 붙이면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을린 사랑'을 보고 나서 쓴 글입니다.

시작.


신(神)들이 마련해 놓은 운명은 인간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만큼 가혹하고 기구하다.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스 마르케스가 시나리오를 쓴 1996년 작 <오이디푸스>(Oedipus the Mayor)라는 영화가 있다.

마약 군벌과 부패한 정부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남미 콜롬비아의 한 도시에 젊은 시장 에디포가 부임한다. 하지만 도시는 실질적인 지배자 라이오가 게릴라에게 납치당한 사건으로 혼란스럽다. 얼마 뒤 라이오는 시체로 발견되고, 에디포는 라이오의 미망인 조카스테와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락없이 남미를 배경으로 한 텔레노벨라(텔레비전 소설)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갑자기 등장한 관 짜는 노인(장님인 데다 이름이 심지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다)이 심상찮은 대사를 읊어대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라이오는 언젠가 자신이 아들에 의해 살해당할 거라는 꿈을 굳게 믿고 있었다. 에디포는 결국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알아차리고 만다. 아들과 정(情)을 통한 사실을 알게 된 조카스테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에디포는 스스로 두 눈을 파낸 뒤 거리를 방황한다.

무려 2,400여 년 전 쓰여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왜 아직도 유효한 텍스트일까? 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지 않아도 그리스 비극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는 선명하다. 신(神)들이 마련해 놓은 운명은 인간의 상상 따위는 미치지 못할 만큼 때로 가혹하고 기구하다. 만인의 추앙을 받는 영웅도, 세상을 발아래 놓을 수 있는 미녀도 그런 운명 앞에선 가랑잎 같은 존재일 뿐.

그런 주제에 감히 ‘오만’(Hubris)을 품는 건 멸망을 자초하는 짓이란 게 그리스 비극의 공통된 메시지다. 물론 마르케스의 <오이디푸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디포 시장은 현실을 개혁하려는 젊은 이상주의자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녹록지 않다.

결국 그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모든 가치관을 부정당하고(심지어 자신이 30년 이상 믿고 의지한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무너져 내린다. 자기 스스로 두 눈을 파내는 것은 극한의 자기 부정이다. 마르케스가 이토록 강하게 부정하는 대상은 뭘까.

서구 민주주의를 그대로 남미에 이식하려는 시도야말로 마르케스에게는 지독한 오만이다. 남미의 특수성을 부정하고 합리성과 자본주의의 논리로 남미를 ‘계도’하려는 시도는, 알지 못한 채 근친상간의 패륜을 저지른 주제에 도덕 회복을 외치는 오이디푸스만큼 헛되다는 게 이 영화의 결론이다.

한때 유럽 영화를 이끌어가던 감독들이 앞 다퉈 그리스 비극을 영상으로 옮기던 시절이 있었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메데이아>(1962), 미카엘 카코야니스 감독의 <엘렉트라>(1962)는 시대적 배경이 에우리피데스 시대 그대로였지만, 그 중에도 줄스 다신 감독의 <죽어도 좋아>(Phaedra,1962)는 에우리피데스의 <히폴리토스> 무대를 현대로 옮겨왔다.

결말 부분의 광기 어린 자동차 질주로 유명해진 바로 그 영화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왕은 선박왕 타노스(랠프 발로네)로, 아들이며 후계자인 히폴리토스는 내성적인 화가 청년 알렉시스(앤서니 퍼킨스)로 바뀌었다. 현대 영화의 페드라(멜리나 메르쿠리)가 알렉시스와의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정열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그리스 비극을 모태로 한 영화 한 편이 최근에 국내 관객들을 충격에 몰아넣고 있다(물론 어떤 비극인지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에 해당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캐나다 영화 <그을린 사랑>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그 모델이 된 그리스 비극의 교훈을 뛰어넘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오만을 반성하고 신을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 때 진정한 인간 정신의 고양을 이뤄낼 수 있다는 빌뇌브 감독의 메시지는 지난 2,400년 동안 인간이 멈춰서 있지 않았음을 납득시키는 아름다운 증거다. <끝>




이 '시장 오이디푸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 '오이디푸스'라는 비디오로 출시된 적이 있습니다. 구해 보시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해 볼 수 있긴 합니다만,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고전 취향이신 분들은 마리아 칼라스가 메데이아 역으로 나오는 '메데이아'같은 작품을 한번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단, 대단히 지루하다는 점은 각오를 하셔야 할듯.^^)

현대극으로 의미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죽어도 좋아' 쪽입니다. 다소 평면적인 신화/비극 속의 페드라에게 부여된 입체적인 캐릭터가 멜리나 메르쿠리라는 명배우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안소니 퍼킨스가 절벽으로 질주하며 '페드라!'를 외치는 이 영화의 엔딩을 기억하고 계시죠. 지금까지도 '불꽃같은 사련'을 얘기할 때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입니다. 이런 장면의 연기는 배우라면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을 듯 합니다.

동영상이 좀 길긴 합니다만 약 4분30초 이후에 펼쳐지는 안소니 퍼킨스의 독백과 질주, 그리고 절규는 한번쯤 보실만 합니다.





'그을린 사랑' 이야기는 그쪽 리뷰에서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http://fivecard.joins.com/947

@fivecard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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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물론 공신력있는 조사 결과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대한민국의 연예인이나 셀러브리티 남자 가운데서 미중년이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릴 사람이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40여분이 50개의 답변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 손석희 교수님(성신여대)은 무려 9표의 몰표를 받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다수표를 받은 분들을 보다 보니, 묘한 추세가 나타나더라는 겁니다. 즉, '꽃미남'을 고른다면 미모와 몸매로 평가할 여성들이, '미중년'을 고를 때에는 뭔가 다른 기준을 적용하더라는 거죠. 그게 뭐였을까요?



일단 그 설문조사(?) 내용을 토대로 쓴 글을 먼저 보시는게 정리가 빠를 겁니다.

제목: 왜 한국엔 미중년이 드물까

그러니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꽃미남의 표상, 완벽한 미모의 상징이던 원빈이 23세 연하의 소녀에게 망신을 당할 날 말이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의 상대역인 만 열살 소녀 김새론은 "촬영 시작할때 원빈이 누군지 몰랐다", "우리 또래는 2PM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원빈을 안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연기 쪽으로 활동할 것이기 때문에(!) 원빈 아저씨가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는 3연타로 원빈을 넉다운시켰다.

물론 33세와 10세는 큰 차이지만 세월이 흘러 48세와 25세쯤 되면 자연스럽게 멋지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키애누 리브스나 조지 클루니, 톰 크루즈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여대생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미중년. 그런데 갑자기 국내에서는 거기에 대응시킬만한 인물이 금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한국 여성들이 생각하는 미중년은 어떤 사람일까. 이럴땐 트위터에 묻는게 제격이다. 질문을 올렸다. "한국 남자 중에 미중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연예인이건, 그냥 유명인이건)은 누가 있을까요?"



짧은 시간에 50명 가까운 분들이 답변을 해 왔다. 61세의 정동환에서 37세의 김원준까지 총 26명이 거론됐다. 순간적으로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건 트위터의 각별한 매력이다. 아무튼 다양한 답변을 들은 결과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9표로 1위, 조국 서울대 교수와 배우 안성기가 6표로 공동 2위, 배우 정보석이 5표로 4위, 배우 홍요섭이 3표로 5위였다. 그밖에 송호창(변호사) 염재호(교수) 천호선(정치인) 정명훈(지휘자) 김광민(피아니스트) 등 일반인 셀레브리티들이 박상원 정동환 천호진 조민기 차인표 탁재훈 등 연예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뜻밖에도 연예인에 대한 선호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창 활동이 많은 박중훈 정준호 신현준 유동근 최민식 등 40대 톱스타들이 단 한표도 나오지 않았다는게 의외였다.

물론 응답자가 그리 많지도 않았던 약식 조사지만 추세는 뚜렷했다. '20대 꽃미남'을 골라 달라고 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미모와 몸매가 여기선 절대적인 조건이 아니었다. 꽃미남 아닌 미중년을 골라 달라고 했을 때에는 응답자들이 외모뿐만 아니라 지성이나 사회적 지위, 능력, 도덕성 등을 고려했다는 느낌이 확연하다.

그러고 보면 미중년이 드문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기름진 안주와 잦은 술자리, 운동부족이 젊어서 한가닥 하던 미남들을 망가뜨렸다는게 흔한 핑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세상 자잘한 욕심에 흐려진 마음은 그대로 안색에 비치기 마련. 또 교언영색과 눈치보기에 도가 튼 영악한 눈빛에서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풍길 리 없다. 심지어 학교 졸업한 뒤로는 독서로 머리를 채우지 못하고, 여유로 옷장을 채우지 못하니 제아무리 타고난 외모가 원빈 아니라 텐빈이라 해도 스타일이 따라 주지 못한다. 이게 일반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팔자다. 마음가짐이나 흐트러지지 않았다면 자신감이라도 버텨 주련만.



50대 동안의 기수인 주철환 전 OBS사장은 최근 저서 '청춘'을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전.당.포'를 꼽았다. 인생 선배로서 가져야 할 '전문성', 그리고 약간의 '당근', 마지막으로 '포용력'을 지닌다면 마음을 터놓고 젊은이들의 정기를 흡수할 수 있다는 거다. 자기 혼자 거울 보고 웃는 미중년보단, 젊은이들과 함께 웃는 전당포 중년이면 제법 만족해도 좋을 듯 싶다.

P.S. 월드컵 붐을 타고 미중년 붐을 일으킨 독일 대표팀의 속칭 '장동건' 뢰브 감독도 코딱지 먹는 동영상 하나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리는게 세상이다. 미중년까진 언감생심이라도 최대한 깔끔은 떨어야 한다는게 교훈이다. 곱게 늙기, 정말 쉽지 않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


네. 하려는 말이 모두 들어 있다 보니 더 보탤 말이 별로 없습니다.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눈꼬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미중년' 아저씨들이 젊은 아가씨들에게 빠다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끼한 눈빛과 멘트로 어필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저건 그러니까 그냥 영화, 그것도 미국 영화라고 생각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위에 나온 분들 가운데 얼굴을 잘 모를만한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사진을 몇장 더 덧붙입니다. (의외로 조국 교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분들이 꽤 있더군요.^^)




일단 한국의 진정한 엄친아로 꼽히는 조국 서울대 교수.


송호창 변호사


염재호 고려대 교수, 그리고


아, 죄송합니다. 이 분이 아니군요.


(야유는 좀;; 솔직히 이런 저질 개그 좋아하시는 분도 많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여성들이 '중년 남성'의 매력으로 꼽는 가장 큰 요소가 지성미였다는 겁니다. 잘생기되 살짝 비어 보이는 것도 젊어서는 매력으로 커버될 수 있지만 나이 먹은 뒤에는 뭘 채워 줘야 버틸 수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아, 물론 며칠 전에 만나 뵌 미모의 법조인 한 분이 엄격하게 제한을 하신 내용을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지성미가 중요하다는 의견에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어쨌든, 뭐니 뭐니 해도, 심지어 얼굴 생김보다도 날씬한게 중요하다. 배 나오고 퉁퉁한 사람은 절대 미중년이 될 수 없다. 지성미 아니라 뭐라도 그냥 아저씨다."

네. 그래서 미중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지성미+날씬한 뱃살이라고 정리하면 될 듯 합니다. 둘 중 하나만 있는 분들은 그냥 '괜찮은 아저씨'에 만족하셔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 무슨 노력을 해도 뢰브 감독 같은 외양을 갖출 수 없는 분들은 지성미라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괜찮은 아저씨 소리라도 듣죠. 이게 오늘의 주제.)

보너스는 - 이미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 뢰브 감독 팬들의 정신이 번쩍 들게 했던 바로 그 동영상입니다. 파는 건 뭐 그렇다 치지만 먹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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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이번 토리노 세계선수권에서 1등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타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즌 전승의 기록을 세워도 좋았겠지만,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남아있는 가장 큰 목표였던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이기 때문에 그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대회가 보여준 것은 오히려 '김연아도 사람이었다'는 정도를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려 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밴쿠버의 큰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가 기대 이상의 점수를 내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던 '대인배 김연아'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충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김연아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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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은 '김연아는 지금부터 뭘 할까'일 겁니다. 스무살 나이에 이만한 성취와 이만한 영광을 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김연아가 살아야 할 삶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1/4 정도를 지났다고 할까요? 일반인들 같으면 오랜 수험 준비를 마치고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이 '이제 나도 인생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할 나이와 비슷합니다.

물론 저는 본인과 아는 사이도 아니고, 부모님의 측근도 아닙니다. 다만 '우상 김연아'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한번 생각난 바를 끄적여 봤습니다. 제목은 '김연아는 앞으로 뭘 하며 살까?' 였죠. 시점은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는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어쨌든 3월 초 정도의 시점에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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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연아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1990년생 김연아.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섰다. 어떤 영화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최상의 드라마가 밴쿠버의 얼음 위에서 펼쳐졌다. 김연아 스스로 “내가 꿈꾸던 것을 모두 이뤘다”고 했듯 1차적으로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에게 더 이상 노릴 목표는 없는 셈이다. 물론 목표는 만들 수도 있다.

1930년대의 전설적인 스케이트 선수 소냐 헤니는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을 3연패했고,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도 1984년과 1988년, 두 번에 걸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스무 살에 불과한 김연아가 역대 세 번째 신화를 만들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두 번째 금메달 도전이 현명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대세다.

헤니야 전 세계가 그의 독무대였던 시절이었고, 비트 역시 사회주의 동독 체제 하에서는 스케이팅 외에는 달리 할 게 없었다. 피겨 스케이팅 종목의 출전 선수들은 날로 어려지고 있어 스물네 살이면 충분히 노장급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금메달’을 얻는 것에 실패했을 때 잃을 것이 너무 커 보인다.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르디이른 스무 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의 목표로 삼아 도전할 성취를 거둔 이 천재 아가씨는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본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오지랖 넓게도 이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국보 김연아’를 남이 아니라 여기게 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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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20세기 전반 최고의 아역 배우로 명성을 떨친 셜리 템플이다. 1928년생인 셜리 템플은 1930년대 어떤 성인 스타들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어려운 시기에 극장에서 템플의 미소를 보며 어려움을 잊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치하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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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역 배우에겐 연령 제한이 있었다. 1940년대 이후 템플의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기 시작했고 1945년, 그녀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갑작스레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템플은 성인 배우로 활동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멸의 아역 스타’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할 뿐이었다. 템플의 명성이 돌아온 것은 유방암 투병을 벌이면서도 직업 외교관으로 이름을 날린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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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던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부임한 것은 그동안 가상 적국이었던 미국의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바꿔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이른 시기에 최상의 성취를 이룬 조숙한 천재들은 대부분 그 분야에 매진해 명성을 이어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분야도 분명 있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나 아역 스타는 그런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현재까지의 성공만으로도 김연아는 평생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성을 얻었다. 지금부터 여생(?)을 여유있게 보낸다 해도 그건 본인의 선택 사항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자신을 위해서든, 그를 사랑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든 제2의 인생을 위한 설계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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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빙상 영웅 에릭 하이든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1980년 동계올림픽에서 스물두 살의 나이로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미터부터 1만 미터까지 다섯 종목을 제패한 불멸의 스타 하이든은 스케이터로서의 전성기를 지났다고 판단하자 과감하게 스케이팅을 포기하고 사이클 선수로 변신했다. 동시에 학업에도 열을 올려 1991년 스탠퍼드대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최근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미국 선수단의 팀닥터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이든의 인생’이라는 대하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그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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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미국 대표팀 팀닥터로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하이든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 글은 김연아보고 '앞으로 인생을 이러이러하게 살아라'라고 강요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생의 초기에 상당히 많은 것을 이루고, 그 나머지 인생은 그냥 편안하게 놀면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구축한 두 사람이 긴 여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예시일 뿐입니다.

김연아가 이런 두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살건, 아니면 좀 더 쉽고 편안한 삶을 살건, 그건 전적으로 김연아 자신의 선택일 뿐입니다. 김연아가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해 전업 주부의 삶을 살건,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하건, 지금부터 학업에 전념해 박사님이 되건, 올림픽을 2연패하건, 그냥 피겨 지도자로 제2의 김연아를 육성하며 살건, 거기에는 어느 하나가 우세한 것이라는 평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된다'고 감히 다른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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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팬으로서, 혹은 좀 더 나이먹은 사람으로서 김연아에게 바라는 것은, 그중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한다는 것이고, 또 부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실망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탠다면, 늘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는 삶도 참 피곤하겠지만 반대로 늘 지나칠 정도로 쏟아지던 세상의 관심이 어느날 사라지더라도,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무엇을 선택해도 나중에 후회는 남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선택은 또 다른 후회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점은 누구나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에릭 하이든의 삶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 삶이 정답이라고 누가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라고 해서 '내가 정말 이짓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미 주목받아버린 사람의 삶이란 이래서 힘든 면이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김연아가 제목이 됐지만, 수많은 10대 아이들 스타들의 경우에도 분명 비슷한 면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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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월요일 아침인데도 늘지 않는 구조자 수와 떨어지지 않는 기침이 영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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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받은 선물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먹은 걸 두 배로 토해내야 하는 시절이 돌아왔습니다. 네. 공포의 화이트데이 시즌입니다. 이미 2월14일이 발렌타인데이고 3월14일은 화이트데이라는게 있다며? 라는 식으로 얘기하다가는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시대가 된지 오래입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남성들(아마도 미혼일 겁니다)은 이번 화이트데이 선물값으로 8만2천원을 쓸 각오(?)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꽤 큰 돈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흥미로운 건 이들이 지난 발렌타인데이때 받은 선물의 평균 추정 가격이 4만1천원이라는 겁니다. 정확하게 두배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죠.

당연히 이 대목에서 황현희의 절규가 생각납니다. "니생일엔 명품백, 내생일엔 십자수냐!" 돈으로 바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불쌍한 남자들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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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선물 비용이 딱 두배라는 기사는 이쪽입니다.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view.html?cateid=1038&newsid=20100312074007556&p=akn

그리고 한 홈쇼핑 회사의 조사 결과도 화이트데이 관련 상품의 매출이 거의 두배에 가깝다는군요. 쇼핑 현장에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렌타인데이보다 화이트데이가 더 큰 대목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4&aid=0002266300

그리고 결정적으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경우 발렌타인 데이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1위 초콜릿, 2위가 상품권이란 응답이 나왔답니다. 반면 여자들은 마찬가지로 화이트데이에 받고 싶은 선물로 1위 가방, 2위 화장품, 3위 상품권이라고 응답했답니다.

그럼 화이트데이의 상징인 꽃과 사탕은? ‘가장 받기 싫은 선물’로 찍혔다는 겁니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9/02/11/200902110500023/200902110500023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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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충격을 받는 순진한 남자들도 있을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화이트데이에 꽃과 사탕을 안겨주면 환하게 웃던 여친이 속으로 '이게 다야? 딸랑 이거? 이 짠돌이 자식. 내년에도 내가 너랑 이날을 보내고 있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고 이를 갈고 있었을 거란 얘깁니다. 작년에 그랬는데 올해도 여전히 여친과 잘 만나고 있다구요? ...아마도 여친의 친구들이 그리 쓸만한 소개팅을 해주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십쇼. 행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우울한 세상입니다. '쿨한 삶'이나 '세련된 생활'을 추구한다고 포장되어 있는 각종 월간지들을 보다 보면 페이지 사이의 이율배반이 너무도 선명합니다. 한쪽에서는 '돈보다는 역시 나의 꿈이 중요해' '문화와 교양이 풍부한 나는 얼마든지 무식한 너희를 비웃을 수 있어'라는 엘레강스한 기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반면 몇장 넘기면 '시계 말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본다고? 이런 원시인 같으니' '이 정도도 못 사면 너는 인간도 아니야. 어떻게 3년 전 스타일의 청바지를 입고 길에 나설 수가 있어?'라는 식의 돈쓰기 장려운동이 낯간지럽게 나타납니다. 남성지건 여성지건, 사실 아는 사람이 보면 전혀 교묘할 것 없지만, 출판사를 먹여살리는 광고주들에 대한 성의가 철철 넘친다고나 해야 할까요. 이런 메시지들에 중독되신 분들, 제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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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순진하게 꽃과 사탕만 안겨주면 우리 사랑이 영원할거라고 믿는 건 바보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넘겨다 본 광고의 카피는 '정말 사탕만 선물하려고?' 더군요. 여자들이 대놓고 '우린 안 보이는 마음 같은 건 몰라. 어서 네 마음이 잘 보이게 신용카드로 그려 봐'라고 말하는 세상. 한번 바꿔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보원'이 승승장구하고, 박성호와 황현희, 최효종의 인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거겠죠.

(우리 인간적으로, 왜 여자들만 갖고 그러냐고 뭐라 하지 맙시다. 남자들 솔직히 초콜렛만 받아도 감지덕지합니다. 간도 안 맞은 수제 초콜렛 받아도 맛있는척 감동하고 먹는게 남자들입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괜히 감동했어. 괜히 맛있다고 그랬어. 한입만 먹을걸 그랬어. ---- 다이어트.)

아무튼 화이트데이가 되어 또 한번 '개콘의 혜안'을 느낍니다. 얼마 전에 썼던 글을 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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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개콘'에서만 유행어가 나올까

지난 연말연시에 여기저기서 수많은 송년회와 신년 모임이 있었다. 모임의 자리에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적시 적소에 사용되는 유행어. 연말 모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냐’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었다면, 2월 초까지 이어지는 음력 신년 모임에서 애용되는 코멘트는 ‘니가 말한 ○○이 그 ○○은 아니겠지’다.

TV와 담쌓고 지내시는 분들은 대체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할 것 같다. 위의 두 대사는 모두 KBS 2TV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에 나오는 유행어들이다. 앞의 것은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라는 코너에서 파출소에 끌려온 취객으로 등장하는 박성광이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멘트고, 뒤의 것은 ‘드라이 크리닝’이라는 코너에서 래퍼로 등장하는 김지호가 윤형빈과 함께 하는 말이다.

며칠 전 가졌던 모임에서도 이 분위기는 계속됐다. 그리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는데도, 요즘 뜨고 있는 신흥 유흥가 얘기가 오가는 동안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저희도 그 동에 살거든요” 같은 대화가 나오자,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니가 말한 그 동이 야동은 아니겠지?”를 합창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필자 주위의 사람들이 유난히 TV 예능 중독인 것은 아닐 듯했다.

연말연시, 평소 접하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은 이제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젊은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거였다. 특히나 <개콘>은 중장년층까지 넓은 수용자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 하나로 순식간에 형성되는 공감대의 힘은 무서울 정도였다. 함께 미소를 짓는 가운데 ‘아, 개콘을 보시는군요?’ ‘네, 저도 그렇게 딱딱한 사람은 아닙니다’와 같은 정서가 교환되는 것을 보면서 코미디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됐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개콘> 유행어들의 특징은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유행어들이 갖고 있던 특징이 변형이 쉽지 않고 원형 그대로 재생할 때 효과적인 것이었다면, 최근의 유행어들은 외부의 사용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개콘>의 또 다른 인기 코너인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박성호가 퍼뜨린 ‘괜히 ○○○ 했어, 괜히 ○○○ 했어, 나 어떡해’와 ‘우리 인간적으로 ○○○는 해 줍시다’는 사용자가 쓰고 싶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대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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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보원 선생님, 자꾸 성함을 거론해서 죄송합니다.)

또 이런 유행어들의 본고장이 코미디라는 것은 다양한 함의를 통해 언중유골의 효과를 낼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를테면 회식 자리에서 평소 쫀쫀하게 부하 직원들을 편애하던 상사를 향해 “고과 1등만 좋아하는 더러운 부장!”이라고 소리쳐도 어차피 코미디라며 도망갈 수 있다. 뭔가 뒷일이 켕기면 “나 같은 놈도 받아주는 아름다운 선배!”라는 식으로 슬쩍 물타기를 할 수도 있다. 문득 이런 유행어들이 왜 전부 <개콘>에서만 나오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한때 <개콘>과 천하를 다투던 SBS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폐지설까지 나오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때 정성호 김미려 조원석 등이 활약하던 MBC TV <개그야>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요즘은 후속 <하땅사>가 재건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콘>의 경쟁자들은 왜 이렇게 인구에 회자될 만한 유행어를 낳지 못하는지 한 번쯤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개콘>의 유행어들 속에는 세상 읽기가 감춰져 있다는 점을 그냥 지나치면 곤란하다. 듣는 사람이 ‘아, 저건 내 얘기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유머는 진정한 힘을 얻게 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제작진의 분발이 기대된다. “그런 유행어 하나 못 만들면 그건 개그 프로그램 아니잖아요. 그냥 쑈지 쑈.” (끝)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남성 여러분, 부디 화이트데이 주말의 위기를 다 잘 넘기시고, 다들 팔팔하게 월요일을 맞이하시길.^ 뭐 돈 굳었다고 좋아하시는 싱글들은 복 받은줄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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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쉬리'의 강제규 감독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화두를 던진 이래 이 주제는 한국 영화/드라마 제작자들의 벗어날 수 없는 고민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얘기인 즉 간단합니다.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영화건 드라마건, '블록버스터'라고 불릴 만한 성과를 향해 투자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옹호세력은 만만찮습니다. 이를테면 '쉬리'를 위시해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도전했던 수많은 대작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관객들의 성원을 얻어냈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나 '디 워', 올해의 천만 관객 동원작 '해운대'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 대작들을 겨냥하고 그 스타일을 표방했던 작품들이 '그래도 이게 한국 영화의 저력'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작품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외양에 비해 자랑할만한 내실을 갖췄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시비가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옹호론자들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외양을 키우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면 외양과 내실이 모두 탄탄한, 소위 '작품성있는 대작'이 나올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의혹 역시 끊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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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색칠한 스티로폼이라는게 너무 역력한 바윗돌을 던지며 싸우는 신라군과 백제군을 보는 시청자들, '아이리스'의 어이없는 마무리를 보며 분개했던 시청자들은 과연 어떤 쪽의 손을 들어 줄까요. 그와 관련한 생각입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다 하려다 보니 꽤 길어졌습니다.



제목: 한국 사극의 전투신은 왜 동네 북인가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대규모 스펙터클 전쟁 영화와 드라마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소지섭 김하늘 주연의 MBC 드라마 <로드 넘버원>(연출 이장수)이 있고, KBS는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6·25 소재 드라마 <전우>를 부활시킨다는 방침이다. 영화계에선 차승원 김승우 권상우 주연 <포화속으로>(감독 이재한)의 제작 소식이 눈길을 끈다.

이런 현대전 대작들의 영향인지 드라마 <선덕여왕>의 붐을 이어갈 사극 대작의 소식은 잠잠하다. 이병훈 프로듀서의 <동이>(MBC) 외에는 눈길을 끄는 작품도 없다. 제작사들은 아예 사극 시놉시스를 대놓고 기피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제작비가 현대극의 두 배 이상 드는 데다 상품 노출을 통한 제작비 지원 역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영세한 외주제작사의 입장에선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피할 수밖에 없다.

또 최근 몇몇 대작 사극들의 경우,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제작비 부족으로 인해 작품의 시각적 퀄리티가 뚝 떨어지는 안타까운 경우를 낳곤 했다. 유종의 미를 위해선 드라마 후반에 대형 전투 신 등이 나와야겠지만, 불행히도 거기 들어갈 제작비는 이미 다 쏟아 부은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사극 전문가는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다.

“50부작이라고 치고 처음 2회까지 20회 분의 제작비를 쏟아 붓는다. 초반에 눈길을 끌지 못하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10회까지 40회까지의 제작비를 쓴다. 시청률만 기대대로 나오면 나머지 회차에 대한 제작비는 방송사에서 부담하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초반엔 200~300명의 단역 배우에다 수십 필의 말까지 동원돼 그럴싸한 전쟁 장면이 구현되지만, 후반에는 네티즌들로부터 ‘30만 대군이 아니라 30명 대군이냐’는 악플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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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들일 돈을 다 들인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그냥 감동해 주는 것도 아니다. 최근 종반으로 접어든 <선덕여왕>의 전투 신은 초반에 비해 물량 면에선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시청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낮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시청자의 기대치는 <글래디에이터>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맞춰져 있다. <적벽대전>조차도 어설퍼 보일 정도다. 한국 TV 드라마의 제작비로 이런 작품들과 스펙터클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바엔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 HBO의 인기 사극인 <로마(Rome)>나 <튜더스(The Tudors)>같은 작품들을 참고하는 거다. <로마>는 카이사르의 말년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제정 출범에 이르는 로마의 격동기를, <튜더스>는 영국의 전제 왕정을 확립한 헨리 8세의 파란만장한 편력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에서 대규모 전투 신을 찾아보기는 너무도 어렵다.

특히 <로마>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 - 카이사르의 이집트 원정 - 옥타비아누스와 브루투스의 대결 -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결 등 로마의 운명을 건 전투들을 정면으로 관통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 50명 이상의 병력이 격돌하는 전투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스펙터클이 없다는 이유로 실망하지 않는다.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전쟁 장면만 피해 가는 솜씨가 너무도 절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의상이나 미술비까지 아낄 수는 없겠지만, 한국 사극의 제작진이 연구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두어 시간에 끝나는 영화야 어쩔 수 없겠지만, 드라마는 특히 이런 지혜를 닮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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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태왕사신기'의 전투 신은 위에 든 예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종학이라는 완벽주의자의 손끝에서 나온 전투신은 위에 거론된 작품들과는 좀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왕사신기'또한 '내실과 외양의 균형'을 비교하는 논리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배용준이라는 한류 슈퍼스타의 등장과 호쾌한 전투신까지는 흠잡을 데가 없지만, '쥬신의 왕'을 자처하는 담덕이 대체 왜 한민족의 재통일과 중원 회복을 꾀하지 않는지를 비롯해 작품의 내적 논리에서는 수없이 많은 허점이 쏟아져 내립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현재 방송가나 업계에서 맞서는 내용을 요약하면 "드라마가 드라마지(혹은 영화가 영화지)", 즉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래"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실의 퇴장을 전후에 '선덕여왕'에 쏟아진 실망과 비난에 대해 제작진이나 MBC 드라마국이 '그런건 설정'이라거나 '작가의 권한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 역시 그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결국은 그냥 그 정도라는 것을 자인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 시청자들(혹은 관객)의 수준으로 보아 내용의 논리적 완결성이나 플롯의 개연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낭비"라는 것이 현재 제작진의 논리입니다. 거기에 쓸 시간이나 노력, 자본이 있으면 더 비싼 배우를 쓰거나, 더 많은 엑스트라를 쓰거나, 말을 몇마리 더 쓰거나, 더 화려한 갑옷을 만들거나, 화약을 몇KG 더 쓰는게 시청률을 높이는데(혹은 관객을 늘리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죠. 그리고 현실을 생각하면 거기에 정면으로 반발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네. 이 부분에선 시청자/관객들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겠죠).

하지만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닙니다. 엑스트라 500명을 써 본 경험이, 제작비 200억원을 컨트롤해본 경험이, 할리우드 특수효과팀과 작업해 본 경험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겪으면 한국 영화/드라마가 제작비 1억 달러짜리 영화나 회당 제작비 1000만달러대의 드라마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가 열심히 따라잡는 속도가 할리우드의 발전 속도보다 빠르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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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참고로 삼고 싶은 것은 BBC의 드라마 진용입니다. 척 봐도 그리 돈 들어가는 드라마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장수 SF 시리즈 '닥터 후'만 해도 거대 미드에 비하면 제작비 얘기를 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각개 드라마의 완성도는 찬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대형 전투신 하나 없이 대작의 느낌을 다 내는 '로마'나 '튜더스'의 교훈도 연구해볼 만 합니다.

이제는 한번쯤, '어떻게 하면 돈을 덜 들이고 돈 들인 드라마보다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까'에 좀 투자가 이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어떻게 하면'을 연구하는 비용은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것 또한 생각해둬야겠죠. 언제까지 '역시 일본 원작이 내러티브가 튼튼하다'면서 드라마며 영화며 죄다 일본 원작 판으로 만들어야 합니까.

물론 어떻게 하면 되는지도 다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실천하지 않을 뿐입니다. 당장 돈이 안 되는 단막극을 통해 연출자나 작가들을 훈련시키는 비용은 너무나 아깝지만, 작품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광고주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투자(이를테면 단막극 한 편의 제작비와 맞먹는 톱스타의 기용)에는 눈에 불을 켜는 방송사에 사실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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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케이블TV 사상 최고의 히트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도 막바지에 달해 최종 승자 가리기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예선을 시작한다고 홍보에 열을 올릴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지난 주에 이 프로그램은 MC와 심사위원 한명을 교체했습니다. 예정된 수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시청자들의 방송평과 일치하는, 적절한 교체였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심사만 시청자 피드백을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 셈이죠.

'슈퍼스타K'가 본선을 시작했을 무렵, 시청자들로부터 적잖은 불만(?)이 터져나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심사위원들의 투표 결과(10%)가 아니라 네티즌들의 투표(70%)에 의해 사실상 상위 입상자가 결정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이 꽤 많았죠.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 '공평'과 '불공평'을 나누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의견입니다.



슈퍼스타 K가 불공평하다고?

요즘 QTV '열혈기자'라는 프로그램에 관여하고 있다. '열혈기자'란 연예기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물론 지원자는 수백명이었다)에게 매주 미션을 부여하고, 수행 결과를 토대로 매주 한두명씩을 떨어뜨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는 한 사람은 일간스포츠 연예기자로 채용된다. 부상으로는 차를 한대 준다.

이 도전자들에게 기사 연습 삼아 현재 방송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들의 리뷰를 시켰더니 한 친구가 M.net의 '슈퍼스타 K'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껏 최고 가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는 10%만 반영되고 네티즌 투표가 70%를 차지하는 것은 말도 안 되게 불공평한 제도라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말 불공평한 제도일까?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도전자를 탈락시키는 방법은 크게 나눠 세가지다. 같은 도전자들끼리 평가해 떨어뜨리는 방법('서바이버', '배첼러' 등),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해 떨어뜨리는 방법('어프렌티스', '프로젝트 런웨이' 등), 그리고 시청자나 네티즌들이 떨어뜨리는 방법('아메리칸 아이돌' 등)이다. 마지막 방법은 앞의 두 방법에 대해 불공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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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일단 프로그램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슈퍼스타 K'는 대중 가수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고의 대중 가수는 어떤 사람인가? 전문가들이 최고라고 인정하는 사람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어느 시대나 '비운의 명가수'라는 이름으로 소수 마니아들의 칭송을 받지만 최고의 자리에선 한발 비껴 가는 가수들이 있다. 자주 예로 드는 코멘트지만, 한때 최고의 남성 R&B 보컬이었던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내한 공연 때 기자회견에서 "농구에선 가장 골을 잘 넣는 마이클 조던이 최고지만 팝계에선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인정한다면, 전문가들인 심사위원들이 1위를 선정하는 것보다 대중이 직접 ARS 투표를 통해 떨어뜨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결코 '불공평한' 일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사실 불공평하다면 대중의 인기라는 것이 본래 '공평'과는 거리가 멀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뽑았다는 칸 영화제 그랑프리작이 흥행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심지어 이보다 훨씬 대중적이라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역시 정작 일반 관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때가 많다.

그렇다고 아예 작정하고 대중적으로 만들면 늘 대박이 나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늘 도박성을 띤다. 그나마 실력과 인기의 차이가 가장 적은 분야는 스포츠다. 그 스포츠에서도 팬들이 뽑은 인기 순위 1위와 전문가들이 뽑은 실력 1위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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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확장시킬수록 대중의 선택이란 점점 더 믿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장 잘 만들어진 자동차가 항상 판매 1위가 되는 것도 아니고, 최고 품질의 상품이 반드시 시장 점유율 1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온 세상의 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에게 '지금 당신네 나라의 국가원수는 당신네 정치인들 가운데 제일 뛰어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떤 답이 나올까?

그런 면에서 '슈퍼스타 K'의 방식(혹은 그 원조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방식)은 대중의 잔혹함과 변덕스러움, 그리고 때로 이해하기 힘든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좋다는 건 아니다. "불공평하다고? 어쩔 수 없어. 그게 바로 세상의 이치니까…"라고 안영미 흉내를 내긴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대중과 평단을 모두 감동시키는 진짜 천재가 불쑥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웅크리고 있다. 사실은 이런 희망이 '슈퍼스타 K'를 지탱하는 진짜 힘일 지도 모른다.

P.S. 그럼 '슈퍼스타 K'에서 대중이 선택한 최종 우승자는 켈리 클락슨 같은 슈퍼스타의 자리가 보장되는 거냐고? 어허. 지금까지 뭘 들으셨나. 대중에게 어떤 식이든 변덕 없는 일관성을 기대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좌절로 끝난다니까. 그건 그때 가 봐야 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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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와 관련된 각종 산업은 모두 동전던지기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만치 현재까지의 추세로 미래의 경향을 점치는 것이 그야말로 '점치는' 수준에 가깝다는 얘기죠. 가장 믿을만한 생산 단위들을 이용해 콘텐트를 만들어도 기대했던 결실이 나올지 안 나올지에 이르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슈퍼스타 K'는, 말하자면, 대중문화의 생산 단위에서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중간 마진을 제거하려는 시도입니다. 생산자들이 직접 대중 앞에 나서서 우리의 가치를 매겨 달라고 요청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중의 직접 평가가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여기서 배출된 승자들은 그만치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다만, 이 가능성 역시 '높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뜬다'고 말하기는 힘들 겁니다. 대한민국 연예계로 진출하는 채널이 바로 이 '슈퍼스타 K'하나로 한정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반드시 그럴 거란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프로그램이 케이블 TV로서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이 전체 대중의 취향을 대변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릅니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들'의 경우에도, 모든 우승자가 승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슈퍼스타 K'는 미국 시장에 비해 턱없이 위축돼 있고 지금 이 순간도 무너져가고 있는 유료 음악 시장을 무대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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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대중이 직접 뽑은' 이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정작 음반을 내놓고 프로로 데뷔했을 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 물론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 그거야말로 대중의 두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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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드라마의 본격화가 곧 드라마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리 있는 얘깁니다. 왕년에는 의사 가운이건, 이발사 가운이건 어쨌든 흰 가운만 입고 나오면 의사라는 식의 드라마도 꽤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명찰 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만드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그만큼 '날림 제작'은 사라져가는 분위기인 듯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직업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나왔을 때 "실상은 저것과 전혀 달라!"라며 분개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불만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 매우 드물 지경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어느 쪽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그래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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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스타일'이 방송된 이후, 잡지사에 근무하는 여기자들(요즘은 주로 '에디터'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의 반응이 이런 저런 방향에서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제작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만족한다는 반응은 거의 없다. 99%가 "세상에 저런 잡지사가 어디 있냐"는 내용이다.

날마다 파티 의상인 김혜수를 두고 "어떻게 저렇게 입고 일을 하냐"는 반응이 기본이고 "남의 회사 어시(assistant, 즉 수습)를 돈 주고 빼간다는게 말이 되냐" "포토그래퍼가 기획회의에 들어오는 회사가 어디 있냐"는 등 디테일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스타일'만 그랬던 게 아니다. 직업의 세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치고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야, 정말 리얼하다. 실감난다'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는 당최 들어 보질 못했다. 신기할 정도다.

의사든 변호사든 예외가 없다. '종합병원' 이후 모든 메디컬 드라마, '애드버킷' 이후 모든 법정 드라마가 진짜 의사나 변호사들로부터는 "세상에 무슨 의사(혹은 변호사)가 그따위냐. 대체 병원(혹은 로펌)인지 놀이터인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를 들어왔다. 최근의 '뉴하트'나 '파트너'에 이르기까지 주된 평가는 "저런 식으로 했다가는 당장 옷 벗어야 할 것"이란 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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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꼭 전문직만 그런 건 아니다. 농부든, 어부든, 간호사든, 항공사 여승무원이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자신들의 직업에는 죄다 불만이다. 체크해 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재벌이나 조직폭력배들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자신들의 역할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재벌 2세들도 드라마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야, 저게 말이 되냐? 근데 너 혹시 니네 회사에 맘에 드는 여직원 있으면 저렇게 하냐?"하고 통화를 할까?)

물론 기자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연예 담당 기자들은 정상인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 지는 것 같다. 사실 '스타의 연인'에 나오던 얼띤 기자(정운택)나 영화 '과속 스캔들'에 나오던 봉필중 기자(임승대)를 마음에 들어 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게다가 봉필중 기자처럼 기사를 썼다간 집이 몇 채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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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되는 드라마 '드림'에 나오는 희한한 기자(정은표)는 사진 한 장의 댓가로 스포츠 백 하나에 가득 찬 현찰을 챙긴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하긴 그 정도 돈을 막 뿌려댈 수 있을 정도로 격투기 선수와 스포츠 에이전트들이 떼돈을 벌고 다니는 날이 오긴 했으면 좋겠다(이 친구들도 '드림'에 불만이 많더라는 얘기).

기자의 경우는 다른 직업들과 좀 다른 면도 있다. 다른 직업의 경우엔 좋은 변호사나 좋은 의사가 나오는 드라마도 '리얼리티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을 받곤 한다. 하지만 기자의 경우엔 아예 '좋은 기자'라는 것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는 손예진이 주연했던 '스포트라이트'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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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경우에도 '정의를 지키는 신념에 찬 방송 기자'들과 '부패하고 타락하고 게으른 신문 기자'들이 드라마 속에서 아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뭐 방송국에서 만든 거니까 이해한다. 신문사가 만들었다면 아마 반대가 됐겠지). 아무튼 일부나마 '좋은 기자'들을 다룬 죄로 이 드라마는 시청률에서 참패했다. 시청자들은 아마도 '좋은 기자'가 나오는 드라마를 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군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전문직 드라마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온에어'를 두고 PD나 드라마 작가로부터 불평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연기자나 매니저들은 이들 드라마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지만, PD나 작가들이 이 드라마에 불만이 있었다면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을 거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혹시 작가협회에서는 '해당 직업을 가진 극중 인물들이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면 그 드라마는 망한다'고 가르치는 걸까? 그런데 이거 혹시 한국 드라마만 이런 걸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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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업은 모르지만 최소한 기자에 대한 한 한국드라마만 저런 건 아닌 듯 합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 1976)' 같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기자라는 종자들은 항상 무슨 일이 되게 하기보다는 안 되게 하는데 재능이 많은 존재들로 그려집니다.

아래 사진의 아저씨가 나오는 '다이 하드'가 대표적인 경우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하는 역할이란게 대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부분을 생각해보면 '스포트라이트'는 대단히 무모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 뭘 믿고 기자를 주인공으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목에 대한 답은 나와 있는 셈입니다. '망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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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요즘 '스타일'을 본 잡지사 쪽의 반응이나 '드림'을 본 스포츠 에이전트, 혹은 이종격투계에서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현실불감증'은 여전한 듯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현실보다 한심하게'가 아니라 '현실보다 너무 화려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이 불만은 그냥 불만 수준으로 남아 있는게 다행일 듯 합니다. 만약 현실보다 나쁘게 그려졌다면 당장 소송이나 대대적인 항의를 받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전에 간호사 단체나 항공사 여승무원 단체에서는 이런 일이 꽤 잦았죠. 바로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라는 항의 말입니다.

이런 항의를 고려한다면 역시 특정 직업을 나쁘게 그리는 것 보다는 좋게 그리는 것이 유리하겠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쁘게 그리는 것이 대세'인 이 직업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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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일밤'의 '퀴즈 프린스'부터 KBS의 '퀴즈 대한민국'까지, 요즘 방송가에 퀴즈 프로그램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들은 널렸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KBS의 '도전 골든벨'에서 SBS의 '퀴즈 육감대결'까지 역시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퀴즈 프로그램이 있지만, 제대로 된 퀴즈는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20년 전, 그리 머지 않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말 끔찍한 퀴즈 후진국입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돼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의 출제 수준은 들쭉날쭉이고, 퀴즈 프로그램이 끝날 때만 되면 대체 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들먹이면서 강제로 감동적인 분위기를 끌어내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재미도 없고, 감동은 더더욱 없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흐름을 끊어 먹는 사회자들도 짜증을 유발합니다. 재치있는 토크를 보려면 대체 왜 퀴즈 프로그램을 봅니까.

한국 퀴즈 프로그램들이 왜 날로 재미없어지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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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퀴즈인을 무시하는 나라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신 분들은 당연히 그 퀴즈가 어디서 보던 거다, 했을 거다. 맞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긴 퀴즈를 했다. MBC <퀴즈가 좋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왕년에 퀴즈 좀 해본 사람으로서 얘긴데(나중에 혹시 시비 거실 분이 있을까봐 써두자면, 지상파 퀴즈 프로그램에 한 열다섯 번 정도 나가봤다), 한 명의 출연자가 열 문제를 연속으로 모두 맞혀야 한다는 건 사기다. 정상적 포맷이 아니다.

퀴즈 프로그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출연자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과 운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 <퀴즈가 좋다>는 후자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생각해 보자.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정통한 분야는 서너 개를 넘기 힘들다. 그런데 열 개의 문제를 하나도 틀리지 말고 모두 맞혀야 한다니. 문제 난이도가 중간만 넘겨도 절대 불가능한 과제다.

이 프로그램의 원조는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나>(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다. 이 프로그램이 히트하면서 세계 각국이 그 포맷을 사다가 자기 나라 실정에 맞는 퀴즈를 만든 거다. 위에서 거듭 말한 것처럼 이 포맷이 원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외국 제작자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타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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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열 개의 문제를 내되 모두 객관식으로 낸다. 둘째, '장난하냐'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쉬운 문제로 열 개를 채운다. 셋째, 도전자가 다음 문제에 도전할지 말지를 정할 때, 다음 문제와 보기를 먼저 본 다음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이 정도는 해줘야 도전자에 대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퀴즈가 좋다>는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뒷부분의 어려운 문제는 모두 주관식이었다. 난이도? 아마도 이 프로그램 포맷을 사간 나라들 중 최고 수준이었다. 세 번째의 '문제 미리 듣기' 배려 같은 건 언감생심.

이런 국제 기준 미달의 불리한 조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고, 극소수의 운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들이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뭐 1,000만 원이라는 최종 상금이 그 자체로 그리 적은 돈은 아니다(형식상 2,000만 원이지만 1,000만 원은 어디엔가 기부하고 도전자는 절반만 갖는다는 설정. 물론 세금을 떼면 800만원 정도다). 하지만 해외 도전자들의 상금 액수를 알고 나면 아마 그 분들도 속았다는 느낌이 들 거다.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밀리어네어'라는 제목에 맞게 '백만 단위'의 상금을 줬다. 영국의 100만 파운드, 미국은 100만 달러, 대다수 서유럽 국가들은 100만 유로를 줬다. 환율에 따라 오락가락하지만 대략 10억 원에서 20억 원 사이의 상금이다. 소위 선진국 가운데서는 1,000만 엔이 걸렸던 일본이 가장 적은 편이었다. 어쨌든 최소 1억 원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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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사는 나라만 보지 말라고? 영화로 보신 대로 인도의 우승 상금은 2,000만 루피. 약 6억 원 정도다. 말레이시아도 100만 링깃(약 3억 8,000만 원), 필리핀도 잘나갈 때는 200만 페소(약 6,000만 원)를 줬다. 최근 필리핀의 상금인 100만 페소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상금을 주는 나라는 억지로 하나 찾았다. 베트남의 우승 상금 1억 2,000만 동이 한국 돈으로 1,000만 원 정도 되는 모양이다. 이것이 한국 퀴즈계의 현실이다.

그렇다. 하자는 얘기가 바로 이거다. 하다못해 인도에서도 퀴즈만 잘하면 한 살림 차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림없다. 왕년엔 장학퀴즈 기장원만 해도 대학은 공짜로 다녔는데, 이젠 어림없다. EBS 장학퀴즈 7연승을 해도 상금은 3,000만 원.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 원꼴이니 1년은 자기 돈으로 다녀야 한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퀴즈계의 김연아가 나오길 기대한단 말인가. 정말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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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서는 퀴즈 상금이 형편없이 싸다는 지적을 했지만, 상금만 싼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싼 상금조차도 시청자들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방송사들의 꼼수가 더욱 쇼를 저질로 만듭니다.

'1대100' 같은 프로그램의 연출진은 아예 솔직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매일 우승자가 나오면 저희 프로그램 당장 폐지됩니다. 어떻게든 우승자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죠." 이런 자세로 하다 보니, 시청자나 참가 희망자가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군가 상금을 타면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 블로거가 박지선이 5000만원 상금 탄 걸 언론이 먼저 기사화하는 바람에 보는 재미가 없었다고 분개했던데, 이런 속사정을 모르니까 하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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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난이도 조정도 안 되는 한심한 문제로 일관하면서 출연자가 수준이 높네, 실력이 대단하네 부추겨 놓고 정작 고액 상금이 걸린 마지막 단계에서는 도저히 '상식'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내 도전자를 좌절시키는 것이 정해진 패턴입니다. 물론 '퀴즈 영웅'이 너무 안 나오면 영업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적절할 때 한두번씩 서비스 문제로 영웅이 나오는 길을 열어 둡니다.

상금 자체도 적은데다 그 상금마저 주지 않으려는 짠돌이 방송사. 이런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겠다고 줄을 선 시청자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 뿐입니다.

물론 정상적인 퀴즈 프로그램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유치한 짝퉁 퀴즈 프로그램의 범람 또한 문제입니다. MBC에서 EBS로 가면서 완전히 망가져 버린 '장학퀴즈'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1년이 멀다 하고 프로그램 포맷만 바꾸지 말고, 제발 출제되는 문제의 질에나 신경을 썼으면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문제 잘 맞추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입니다. 연예인 흉내내는 얼치기 고교생 스타를 만드는 프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귀신도 하기 힘들, 50문제 연속 맞추기 라는 어처구니없는 포맷의 '도전 골든벨' 또한 큰소리 칠 처지는 아닙니다. 과연 현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별별 얘기가 다 있습니다만, 애당초 사실상 불가능한 포맷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출연자들을 끼워 맞추다 보니 생기는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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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좋은 퀴즈 프로그램이란 어떤 것일까요. 일단 정통 퀴즈란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째, 경쟁이 일어나는 동안 출연자가 같은 문제를 갖고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둘째, 높은 점수를 획득한 사람이 승자가 될 것. 미국 퀴즈 쇼 '제퍼디'의 장수 비결은 이 두 개의 원칙을 충실히 지킨 데서 비롯됩니다.

퀴즈 마니아인 영국인들은 여기서 출발해 잇달아 세계적인 인기 포맷을 개발해냅니다.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걸어 두고 문제의 난이도를 통해 여유있는 운영을 합니다. 물론 '100만 파운드'의 상품은 그저 시청자를 유혹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줄 수 있는 상금입니다.

BBC의 '위키스트 링크' 또한 퀴즈 풀이와 동시에 사람들의 편견과 착각을 관찰할 수 있는 고급 심리 게임입니다. 하지만 이 포맷에서 흥미로운 점은 모두 버리고, 한심한 부분만을 가져 온 것이 오늘날 KBS에서 방송하고 있는 '퀴즈 대한민국'의 포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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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억지 감동에 대한 부분. 특히 KBS 계열이 이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데, 항상 퀴즈를 풀다가 막판에 가면 꼭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들먹이면서 출연자를 울먹이게 하려고 합니다. 퀴즈를 잘 푸는 것만으론 불만인가요?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효자, 효녀, 효부입니다'를 그렇게 강조해야 하는 걸까요.

프로야구가 열리고 있는 잠실구장에 가서, 9회말 2사 만루에 등판한 구원투수를 붙잡고 "대체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떨립니까? 이 고비만 넘기면 오늘 승리의 수훈이 되는데 부모님께 하시고 싶은 말씀 없나요?"한다고 해 보십쇼. 얼마나 코미디인지.

퀴즈는 스포츠입니다. 잘 풀면 이기는 거고, 잘 푸는 사람이 영웅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 퀴즈 프로그램은 계속 퇴보하고 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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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보고 참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듯 합니다. 지난번에 '울버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항상 헤니의 얼굴은 서구인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다가, '울버린'에서 진짜 백인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헤니를 보니 이건 동양인의 얼굴이더라"라는 얘기를 했는데, 많은 분들이 거기에 공감하시더군요.

그런데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남녀 배우들 사이에는 무시 못할 차이가 나타납니다. 남자 배우의 경우,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보이는 배우들은 모두 아시아계와 백인의 혼혈입니다. 즉 순수 아시아인의 얼굴로 할리우드에서 뭔가 해보려는 배우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거죠. 반면 여배우들은 혼혈이건 아니건 모두 경쟁력이 있더라는 겁니다.

어찌 보면 좀 기분나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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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헤니군, 그러고보니 자네 동양인이었나?

다니엘 헤니가 나온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봤다. 휴 잭맨보다 헤니가 주인공인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영화는 예상대로 시원한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호화 오락 대작. 그런데 두 가지 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첫째, 헤니가 꽤 괜찮은 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비교의 기준은 '스피드 레이서'의 비나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박준형일텐데 둘 보다는 훨씬 할리우드 관객들에게 괜찮은 모습으로 비칠 듯 했다. 대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앞으로 미국 관객들에게 헤니를 설명할 때 "'울버린'에서 에이전트 제로 역으로 나온 배우"라고 설명하면 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무엇보다 유명한 원작이고, 박스 오피스 1위 영화의 프리미엄도 있을 것 아닌가. 이런 면에서 'G.I 조'를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삼은 이병헌의 선택도 훌륭했던 셈이다. 80년대 이후 성장한 미국 남성 가운데 G.I. 조 시리즈의 인형 한두개 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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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전혀 뜻밖으로, 헤니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다. 영화를 함께 본 사람이 "헤니가 동양인으로 보이지 않아?"라는 말을 꺼냈을 때,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조각 미남' 헤니의 모습은 아무래도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울버린'에서 백인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헤니를 보니 이건 누가 봐도 '걔네 편'이 아니었던 거다. 그쪽 관객들이 헤니를 보더라도 "음. 잘생긴 동양인 총각이군"이라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한둘이 아닌 듯 했다. 필자의 블로그에 이런 얘기를 쓰자 공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오히려 해외 거주기간이 긴 사람들은 '그럼 헤니가 서양 얼굴 취급을 받았단 말이야?'란 식으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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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남자 배우로서 그나마 미남 대접을 받는 배우 가운데 순수 아시아풍의 얼굴을 가진 배우는 거의 없다. 어머니가 독일계 혼혈이었던 이소룡을 거쳐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황제'의 존 론도 중국계 아버지와 포르투갈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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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 3'에 진나라 장군으로 등장한 러셀 웡(중국명 왕성덕) 역시 중국계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어머니 사이의 혼혈이다. 그의 막내 동생이며 홍콩에서 활동하는 마이클 웡(왕민덕)에 이르기까지 이 왕씨 형제들은 혼혈 미남의 대표주자 격인 인물들이다.

아무튼 다니엘 헤니를 포함해 이런 얼굴들 역시 구미인들의 시각에서는 죄다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로 보였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런 미남들도 아직 할리우드의 주인공 자리는 역부족이다.
반면 여배우의 경우 아시아계 혈통은 꽤 선호되는 편이다. 이미 피비 케이츠(어머니가 필리핀계 화교)에서 매기 큐(어머니가 베트남계 화교), 데본 아오키(어머니가 독일계)에 이르는 아시아 풍 혼혈 미녀들은 상업적으로 검증된 바 있다. 심지어 나이를 먹지 않는 신비로운 얼굴이라는 전설까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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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배우들로 한정한다면 굳이 혼혈일 필요도 없다. 여배우들 중에는 김윤진이나 양자경, 공리, 장자이 같은 전형적인 아시안 얼굴의 미녀들까지도 월드 스타 자격증을 받았다. 루시 류나 산드라 오, 바이 링 등은 좀 다른 분류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여배우는 혼혈이 아니더라도 꽤 경쟁력이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굳이 스타들을 꼽지 않아도 해외로 진출한 동포/유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이같은 추세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계 남성의 인기와 여성의 인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반면 주윤발이나 성룡을 섹스 심벌이라고 우기지 않는 한 남자 배우 가운데서는 이런 성공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순수 아시아인 남성의 명예^^를 지켜줄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봐도 결국 믿을 사람은 단 한명 뿐인 듯 하다.

정지훈군. 건투를 비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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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통하는 얼굴과 세계에서 통하는 얼굴이 반드시 다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서구 백인 중심의 심미안에 너무 젖어든 탓인지도 모르지만, 웬만하면 이제 지구촌 어디에서나 한 지역에서 특출한 미모는 다른 지역에서도 대략 인정받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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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루시 류라는 배우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혹시 중국인들은 루시 류 같은 얼굴을 미인으로 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더군요(이건 한국 사람이 산드라 오 같은 얼굴을 미인으로 친다는 생각만큼이나 큰 오해입니다). 그저 백인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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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데본 아오키도 그리 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무튼 서구인들은 열광합니다. 몸매가 뛰어난 거야 인정하지만... 아무튼 저런 얼굴을 '신비롭다'고 하더군요.

한때는 백인들이 '김태희나 김희선 같은 미인들보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무수리 같은 얼굴을 더 미인으로 친다'는 오해도 있었습니다만, 이건 사실이 아닌 듯 합니다. 별로 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백인들도 아시아의 대표 미녀들을 보면 안 예쁘다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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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제가 듣고 본 바에 따라 내린 결론은, 백인들은 동양인 여자는 다 좋아한다는 겁니다. 동양인 여자가 심한 기형만 아니면 '작은 도자기 인형'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백인들 중에서도 좀 깨인 사람들은 공리나 장자이가 루시 류보다 미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은 루시 류나 장자이를 비슷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동양인 여배우들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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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윗글에 나오는 중국계 미국인 배우 왕성덕씨. 러셀 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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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인 왕민덕씨도 홍콩 영화 좀 보신 분들에겐 참 낯익은 얼굴이죠. 아무튼 이런 수준의 용모도 할리우드의 높은 벽 때문에 미국 영화에서는 조연급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사실 많이 나오는 걸로는 일본계인 마코 선생을 따를 사람이 없죠.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얼굴을 보면 아, 저 할아버지? 할 얼굴입니다. 한국인인 오순택 선생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의 동양인 역할은 거의 쓸었던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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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좀 나아질 지 모르지만, 할리우드가 동양인 남자 배우들에게 기대했던 역할이 이런 수준의 용모였다는 건 참 불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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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주윤발 형님이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 놓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죠. 나이도 있고...  '아시아인의 덴젤 워싱턴'이 되기엔 좀 여러 모로 부족합니다.

한동안은 동양인 남자 배우가 백인 여배우와 키스신을 연기하는 것도 금기 취급을 받았다니 뭐 이런 데서 뭘 기대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런 벽을 넘어서려면 시간도 꽤 걸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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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으로 비가 잘 되기를 더욱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제목에도 저렇게 달았듯, 비든 다니엘 헤니든 이들이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그건 '아시아인의 성공'이라는 뜻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헤니가 한류 스타냐 아니냐 하는 옹졸한 생각을 계속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아시아계 남자 배우가 미국 본토에서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대국적인 할리우드 역사를 볼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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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중되는 업무로 짜증만 늘어가는 나날에 WBC 경기는 단비와도 같더군요. 초반에 류현진이 살짝 흔들릴 때만 해도 잠시 불안하더니, 여지없이 뒤집는 솜씨는 짜릿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본전 콜드게임패 이후 김인식 감독님을 비방하는 어처구니없는 찌질이들의 손질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이렇게 모든 걸 보여주시는 데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감독님의 '집안 칼' 들인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가 이렇게 펄펄 날아 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나머지 7개 구단 팬들이 한화 팬들에게 점심이라도 사야 할 듯 합니다.

모처럼 이른 야구의 계절을 맞아 옛날 추억을 되살려 써 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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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감독과 영화 감독

90년대 초. 처음 신문사에 들어가자 야구 담당을 시켰다. 워낙 야구를 좋아하던 터라 거리낄 건 없었지만 야구 담당 기자라는 건 알고 보니 장돌뱅이였다. 노트북과 속옷을 둘러메고 전국 산천을 유람하는게 일이었다.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된 어느 날, 한 야구단 직원과 여유있게 노닥거리고 있었다. 서로 야구관이 달라서(물론 팬과 경기인의 시각 차이였겠지만) 옥신각신하던 차에 살짝 흥분한 그 양반이 물었다. "그래서 송기자가 생각하기에 한국 최고의 감독은 누구요?"

아니 그렇게 쉬운 걸 묻다니. "그야 임권택 감독이지." 그 다음날부터 다른 구단 직원들의 눈길이 달라진 걸 느꼈다. 그 양반이 "되게 웃기는 기자가 들어왔다"고 소문을 냈다나.

야구에도 감독이 있고 영화계에도 감독이 있다. 한국에선 다 감독이지만 원산지에선 야구 감독은 매니저(manager)고 영화 감독은 디렉터(director)다. 야구 감독은 운영자고 영화 감독은 지시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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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복장 김경문 감독이 거짓말같은 한점차의 명승부를 연발하며 8전 전승, 감동의 금메달로 전 국민을 오르가즘에 빠뜨렸다. 이때 메달권에도 들지 못한 일본 야구 팬들은 중얼거렸다. "두고 봐라. WBC가 있다." 나오는 스타들을 보자면 솔직히 그렇다. 올림픽이 선댄스라면 WBC는 오스카다.

WBC를 앞두고 한국엔 썩 좋지 않은 소식이 잇달아 들려왔다. 영화로 치자면 흥행이 보장된 톱스타 이승엽과 박찬호의 캐스팅이 잇달아 불발됐고, 김병현은 여권이 없어서 출연할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추신수는 깐깐한 소속사에서 액션 신은 촬영해선 안된다고 감시 매니저를 붙였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영화를 살리는 최고의 조연배우 박진만마저 만두를 먹다 체해서 촬영장에 나오지 못했다. 명장 중의 명장 김인식 감독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지만 스타 없는 영화는 소 없는 찐만두다(박진만씨, 죄송합니다).

반면 같은 날 개봉하는 경쟁작을 만드는 재팬 픽처스는 신바람이 났다. 다르빗슈, 오가사와라, 조지마 등 일본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출연 요청을 한데다 할리우드(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자카, 조지마, 이치로, 이와무라까지 참여를 선언했다. 그나마 뉴욕 양키스의 마쓰이가 빠져 1.00군이 아닌게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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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개봉 첫주는 콜드게임으로 끝났다. 일본 작품은 작품성과 재미를 겸비했다는 극찬을 받은 반면 한국의 주인공 김광현은 "가서 다트 게임 CF나 더 찍으라"는 혹평을 받았다. 냄비같은 언론들이 또다시 '한국영화 위기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은 패자부활전을 딛고 일어섰고, 결국 30만 달러의 추가 보너스가 걸린 1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제압했다. 김인식 감독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영화 감독과 야구 감독 얘기로 돌아간다. 두 감독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야구 감독은 선수와 똑같은 유니폼과 모자를 쓰지만(대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영화 감독이 배우처럼 입고 메이컵을 하면 스태프들이 수근거린다. 영화 감독은 배우의 동작이 마음에 안 들면 들때까지 다시 시킬 수 있지만 야구 감독에겐 한 번의 기회뿐이다. 즉 영화 감독은 각본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야구 감독은 각본 없이 드라마를 만든다. 배우 출신 영화감독은 그리 많지 않고 명감독으로 남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누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될 수는 없다)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 야구감독이 되는 경우는 아예 없다.

하지만 공통점도 많다. 두 사람 모두 수십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자기 일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며, 연패를 당하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성공해도 자기가 스타로 만들어 준 새파란 녀석들만큼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도 양쪽 모두 현장에서 감독이 죽으라면 톱스타들도 죽는 척 해야 한다.

얘기가 갑자기 산으로 가는 것 같지만 아무튼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대한민국 최고의 덕장 김인식 감독님! 영국의 대니 보일이란 감독은 '공도 못 만져본' 인도 꼬마들을 데리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냈습니다. 이번 한국 팀도 간판들이 빠져 김이 새지만 감독님을 믿습니다! 파이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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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맨 위의 질문을 받은 순간엔 참 난감했습니다. 그 구단 직원 형님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그 구단의 감독님이자 당시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불리던 분이 바로 옆에 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때까지 제가 하고 있던 얘기는 '그 감독님이 왜 최고 감독이 아닌지'를 역설하는 거였기 때문에, 무척 곤란해 질 상황이었죠. 그걸 보고 이 직원 형님이 저를 궁지에 몰기 위해 그런 질문을 느닷없이 던진 거였습니다. (임권택 감독님, 감사합니다.^)

아무튼 WBC 얘기로 돌아가서,

실제로 베이징에 왔던 일본 팀도 강팀이었지만, 그 팀과 이번 팀은 무게가 다릅니다. 영화 캐스팅으로 치자면 '오션스 11'에 로버트 드 니로와 안젤리나 졸리가 조연으로 나오는 식이랄까요. 물론 일본 야구의 정식 1군(위에서 말한 1.00군)이 되려면 양키스의 마쓰이가 참가해야 하지만, 이 정도면 진정한 일본 야구의 진짜 실력을 대변해주는 팀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굳이 숫자를 매기자면 1.05군 정도?

반면 한국은 1.2군 정도로 평가해야 할 듯 합니다. 어쨌든 베이징 대표팀보다 현재의 진용이 살짝 무게가 부족하죠. 지금까지 한국이 해외에 내보냈던 최강팀은 개인적으로 1차 WBC 대표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의 시점에서 볼 때 박찬호는 몰라도 이승엽이 빠진 건 한국에겐 실제 전력을 떠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허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1.2군이 일본의 1.05군과 당당히 맞서 1승1패를 했다는 건 두고 두고 자랑할 일입니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2006년 이후 한국 야구 대표팀이 병역 혜택 없이 벌이는 최초의 빅게임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 야구의 힘 = 국방부의 힘이라고 비아냥거려온 일부 사람들에게 진정한 실력을 보여줘야 할 계기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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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님의 사퇴에 대해 이래 저래 말이 많지만, 솔직히 말해 한-미-일 대표팀이 최소 팀간 10차전 이상의 리그를 벌인다면, 김성근 감독님만한 적임자는 없겠죠. '김성근식 야구'는 상대와 만나면 만날 수록 조금씩 더 강해집니다.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이죠.

반면 WBC처럼 단기전에다, 상대에 대한 전력을 거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해야 한다면, 김인식 감독님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순간적인 대응 능력이나, 자신이 키운 선수 아닌 여러 구단 출신의 톱스타들에게 두루두루 존경을 받는 인화의 힘 등에서 그렇죠. 물론 대표팀 감독 선정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알맞은 감독에게 지휘봉이 넘어간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한번 우승을 기대해 보는 것도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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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야구장의 봉중근 의사처럼 극장가에서는 봉테일 열풍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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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의 연예기자들 중 상당수가 2부로 접어든 KBS 2TV '꽃보다 남자'로 먹고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3개의 연재를 하고 있는데 주기가 모두 다릅니다. 중앙일보 분수대는 매주, 일간스포츠 두루두루는 격주, 그리고 무비위크의 롤링페이퍼는 확실치 않지만 4주에 1회 정도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불운한 경우에는 한주에 모두 몰리게 되죠. 거기다 다른 회사일까지 겹쳐서 지난주는 제법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영화 시사회도 드문드문 갈까말까한데, 본 건 '꽃보다 남자' 뿐이고, 그렇다고 전부 '꽃보다 남자' 얘기로 쓸 수도 없고... 무척 고민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그중 하나가 이 글입니다.

'꽃보다 남자'의 존재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미덕'이라고 할만한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장점 한가지가 있더군요. 물론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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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미덕

아주 오래 전, 필자가 코흘리개 학생이던 시절의 얘기다. 어느날 집에 좀 일찍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밥그릇이 좀 컸다. 귀찮은 설겆이를 피해 냉면 사발에 반찬을 몰아 넣고 간이 비빔밥을 만드신 듯 했다. 입이 방정이었다. "엄마, 무슨 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

그날 저녁 내내 분위기가 냉랭했다. 당시엔 대체 어머니가 별것도 아닌 말에 왜 그렇게 분개(?)하셨는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 해가 지난 어느날, 갑자기 섬광처럼 깨달음이 뒤통수를 갈겼다. 그랬다. 어머니도 여자였던 거였다. 말한 사람이 누구건 그런 식의 무식한 논평을 당했다는 사실은 한 여자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던 거다.

지난 설 연휴, 수많은 남자들이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한편의 TV 드라마를 통해서다. 네 명의 꽃미남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를 그린 '꽃보다 남자'는 KBS 2TV와 기타 케이블 TV를 통해 재방송과 재재방송, 사방 오방 재생되어 나갔다. 그리고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집집마다 초등학교 5학년 손녀에서 칠순을 넘긴 할머니까지, 온 집안의 여자들은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앉아 네 꽃미남들의 품평회를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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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을 본 남자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그들 여자들이 드라마 보느라 수정과 한 사발만 달라는 남편(혹은 아들, 혹은 아빠)의 요청은 들은 체도 않는 데 격분하여 "에잇, 여자들이란!"하고 혀를 끌끌 차며 다시 화투 패를 펼쳐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몇몇 남자들은 그 썩 잘 만들지도 못한 드라마 한 편이 대한민국의 10세에서 75세 사이 여성들을 홀딱 사로잡아 버린 데 대해 평소답지 않은 인류학적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들이 내린 결론을 대략 요약하자면 "그러니까 우리 마누라, 우리 어머니, 우리 형수들도 우리(이란 약 10세에 75세 사이의 남자들을 말한다)가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볼 때 느끼는, 막연하고 나른한 행복감과 충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그중 몇몇의 느낌은 이랬다고도 한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도 아직 여자였구나!"

남자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동방신기나 H.O.T의 파괴력은 대략 초등학교 학부형의 연령 장벽을 넘지 못했다. '다모'의 이서진이나 '주몽'의 송일국,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이나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도 F4의 강력함에 비길 정도는 아니었다. 필자가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인 것은 '첫사랑'의 배용준 외에는 없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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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매주 주말이면 저녁밥 내놓으라고 짜증내는 남편과 아들들을 내팽개치고 TV 앞에 숨 죽이고 앉아 있다가 "아이고! 배용준이가 끝내 깡패가 되려나보다. 어쩌면 좋으냐!"고 속상해 했다는 바로 그 드라마 말이다. 이 드라마가 기록한 65.8%의 대한민국 역대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은 거저 먹은 게 아니었다.

꽃보다 남자. 욕하려고 맘 먹으면 한도 끝도 없다. 허술한 편집,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대사, 음악 구성이고 뭐고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OST 수록곡, 무개념의 학원 폭력 묘사…. 장담하건데 5년, 아니 3년만 지나도 그 촌스러움에 치가 떨릴 드라마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에는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이 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딸들이 '여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공감하게 해 줬다는 공, 또 그 어머니들에게 그 먼 옛날, 당신들도 눈썹 진한 오빠들을 보고 가슴 떨려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준 공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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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글을 보고 '우리 어머니는 그따위 저질 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하는 분이 아니야!'라면서 격분하실 분들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분명히 '꽃보다 남자'도 아니 보고 '아내의 유혹'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불철주야 자식 걱정과 남편 걱정, 또는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으로 날을 지새느라 그따위 드라마를 볼 시간 따위는 없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너무 우아하시고 고상하셔서 이런 허섭쓰레기에는 아무 관심 없는 분들도 있겠죠.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시간낭비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어머니 잘 모시고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아버지나 삼촌들이 TV에 나오는 소녀시대를 무슨 음흉한 마음이 있어서 좋아하는게 아니잖습니까. 어머니들도 마찬가집니다. 오히려 음흉한 마음(?)이라면 여중생들이 더 많이 갖고 있겠죠.

주위의 증언이나 반응으로 미뤄 볼 때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 여성 중 적잖은 분들이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그놈 참 잘났다'는 감탄사를 토해 내고 계신 듯 합니다. 그 분들에게 잠시나마 고단한 인생사를 잊게 해 주는 효과를 냈다면 드라마가 막장 아니라 막막장이라 해도 충분히 용서를 해야겠지요.

그런 뜻입니다. 하지만 좀 더 잘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여전합니다. 어떤 분이 '꽃보다 남자 허술하게 만들었다고 욕하지 말라'고 분개하는 댓글에다 '그럼 너는 천추태후 보다가 운동화 신은 놈 나와도 좋으냐'고 답글을 다셨던데 제 말이 그말입니다. 이 드라마 수출까지 한다는데 너무 막나가면 민망하잖습니까.

2부의 도입부는 시간이 충분한 상태에서 찍은 덕분인지 1부 끝부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몇번 더 볼때까지 평가를 미뤄야 할 듯 합니다.





그 전의 꽃남 관련 글들입니다.


12부에서 극에 달한 '꽃보다 남자'의 허술함에 대한 농담


꽃남들의 운명에 대한 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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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 쇼'를 진행하며 엔터테이너로 변신한 박중훈이 자신의 토크쇼 진행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박중훈쇼'가 재미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세태가 안타깝다"고 언급했습니다. "촬영 끝나면 멱살 잡을 얘기를 하면서도 게스트가 질문에 꼬박꼬박 대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더군요.

일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지만 또 일면 반발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연예계 스타들은 좀 너무 심하다 싶게 대중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류스타급의 톱스타들은 어쩌다 한번씩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도 자신이 노출하고 싶은 곳까지만 보여주고 말죠.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정성은 삼대독자를 돌보는 과보호 어머니 수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럴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서는 어쨌든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세에  충실한 스타들이 더 인기를 얻는 듯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신비주의가 약발이 있는 듯 합니다. 광고주들은 확실히 그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토크쇼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연예계의 온도차이에 대한 내용입니다. 물론 아쉬움이 깊이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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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런데, 내가 손님 아니었나?

요즘 재미있게 보는 미드 중에 '앙투라지(Entourage)'가 있다. 불어로 '측근' 정도의 뜻을 가진 이 말은 스타 하나에 붙어 사는 매니저와 에이전트, 잔심부름을 하는 어릴 때 친구 등등 소위 '패거리'들을 가리킨다.

드라마 '앙투라지'에는 젊은 나이에 할리우드의 톱스타로 떠오른 빈센트 체이스(에이드리언 그레니어)와 그의 형이자 마음만 톱스타인 무명 배우 조니(케빈 딜런)가 나온다. 입만 열면 '사나이의 길'을 강조하는 마초 배우 조니는 최근 방송된 '앙투라지' 시즌 5에서 모처럼 TV 토크쇼에 출연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토크쇼 진행자 우피 골드버그(실명으로 출연)의 노련한 유도에 말려 여자친구에게 차인 사실을 고백한 뒤 "널 잊지 못하고 있다"며 눈물까지 흘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만약 조니가 아니라 한국의 유명한 남자 연기자가 토크쇼에 출연해 헤어진 여자친구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면 어떻게 될까. 여자의 눈물만은 못하지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씬에선 남자의 눈물도 꽤 괜찮은 상품이다. 아마도 그의 미니홈피에는 '오빠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어요'라는 댓글이 섭섭찮게 매달릴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조니는 이 방송을 본 사람들에게 모두 반편 취급을 받는다. 여자에게 차인 것도 차인 것이지만 방송에 나가서 남자가 '질질 짜기나 한다'는 건 무시당해 싼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토크쇼에서의 모습에 대한 한국과 미국 시청자들의 반응 차이는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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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KBS 2TV '박중훈 쇼'에 장동건이 나왔다. 호스트 박중훈과 제작진은 동아시아 10개국을 호령하는 스타 장동건을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다루듯 했다. 여성 시청자들이야 아니었겠지만 남자 시청자들은 정말 별 것 아닌, "성인이 된 뒤에 몇번이나 여자를 사귀어 봤습니까" 정도의 질문에도 물을 마시며 주저하는 장동건의 모습에 속이 좀 꼬였을 법 하다. 고만 질문에 목이 바짝 마르다니, '무릎팍 도사'라도 나갔으면 애저녁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일 아닌가.

물론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한국의 스무살에서 마흔살 사이 여성들에게 최상의 판타지를 제공해주는 왕자님 아닌가. 과연 그도 자고 일어나면 눈에 눈꼽이 낄까(이날 박중훈이 구사한 조크 중 가장 공감이 갔다).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부러워할만한 스타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그가 뭐하러 사소한 웃음을 위해 제 살을 깎겠느냔 말이다. 오히려 박중훈이 조금이라도 장동건을 몰아붙일라치면 '아니, 감히 어떻게 저런 불경스런 말을'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영화 '트로픽 썬더'를 보면 너무 큰 온도차에 놀란다. 벤 스틸러나 잭 블랙은 그렇다 치고, 톰 크루즈가 대머리 가발을 쓴 채 뚱보로 분장하고 둥실둥실 엉덩이 춤을 추고 있다.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망가지는 걸까?

뼛속까지 엔터테이너인 미국 톱스타들의 엽기 행각을 보면 가끔 이건 좀 도를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맷 데이먼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멜(Jimmy Kimmel) 사이에서 벌어진 'I'm ****ing Matt Damon' 비디오 시리즈를 보면 이런 사소한 장난에 벤 애플렉, 브래드 피트, 카메론 디아즈, 로빈 윌리엄스, 조쉬 그로번 등의 톱스타들이 끼어들어 어처구니없이 망가지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분들을 위한 링크입니다.)


아무튼 '참 미국 애들은 별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그들이 만든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럼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쪽이 더 좋은 공급자 아니었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게 된 거지? 이것도 한미간의 차이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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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란 대중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들이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방식은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게 가장 기본일텐데 가끔은 '군림하는 것이 대중을 위하는 길'로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스타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는 건 대중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은 가끔 변태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품질의 싼 물건이 있는데도 공연히 '그래도 뭔가 있으니 비싸겠지'라는 생각에 고가의 물품 쪽으로 눈을 돌리곤 하죠. 깎아 주면 괜히 싸구려 취급을 하기도 하고, 친절하게 대할 수록 만만하게 보기도 합니다. '일본인은 하루에 1품목 이상 구매할 수 없음'이라는 오만한 안내문이 쓰여 있는 파리의 명품점은 매일 그래도 좋다는 일본 관광객들로 미어 터진다고 하죠.

뭐 이런 것도 좋습니다만, 계속 이러다 보면 가끔은 상품 공급자들이 '최대한 소비자에게 잘 보이고,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물건을 내놓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는 것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로서의 권리, 여러분이 지갑을 여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고 기억할 필요도 있겠죠. 재미없는 방송에 단호하게 채널을 돌릴 때처럼 말입니다. 수년간 드라마고 영화고 단 한편도 출연하지 않은 채, 줄기차게 광고만 찍어대는 연예인의 상품 가치가 유지되는 '한국 연예계의 불가사의'는 그리 소비자로서의 기본 자세에 충실하다고 보긴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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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가 끝난지 2주가 지났습니다. 후속 드라마 '종합병원 2'도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고 있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2008년의 가장 인상적인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될 전망입니다. 시청률은 간신히 20%에 턱걸이한 정도였지만, 화제성과 파급력은 시청률 40%대를 넘나드는 드라마 이상이었습니다.

수천개의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이 쏟아졌고, 저도 이 드라마와 김명민이 연기한 강마에 캐릭터의 인기 원인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해괴한 주장들이 발견되더군요. '우리도 강마에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강마에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인가' 하는 류의 주장들이었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에서 '강마에 리더십'이라고 부를만한 긍정적인 부분이 발견된 일이 있던가요? 실력만 좋으면 자신의 지휘하에 놓인 사람들을 그렇게 공깃돌 놀리듯 다뤄도 되고,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만 하면 칭찬받아 마땅한 것일까요? 문득 20여년 전의 또 다른 신드롬이 생각났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막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은 '베토벤 바이러스'에 열광한 모든 시청자들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바로 위에서 말했듯 '비정상적으로', '강마에 리더십'이라는 키워드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입니다. 이 점을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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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마에의 외인구단', 그렇게 마음에 드시던가요?

 1983년, 대한민국 곳곳의 만화 대본소에서는 비슷한 대화가 수없이 오고 갔다. "'외인구단' 9권 나왔어요?" "네. 나왔어요." "어디 있어요?" "지금 누가 보시는데. 줄 섰어요. 기다리세요."

이현세의 장편 극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30권으로 완간될 때까지 당대 대중문화의 코드를 지배했다. 처음에는 만화에 친숙했던 10대들이, 곧이어 대학생을 거쳐 사회인들까지도 이 만화의 영향권에 흡수돼 버렸다. 1986년 이장호 감독이 만든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도 원작 마니아들에겐 혹평을 받았지만 그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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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이었을까. 잠시 기억을 되살려 보자. 한국에도 프로야구라는 것이 생긴지 얼마 안 됐을 즈음, "강해져라, 그럼 아무도 너희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손병호라는 광적인 지도자가 야구계의 루저들을 불러 모은다.

주인공 까치를 비롯한 여섯 명의 선수들은 무인도에서 손 감독의 지휘로 1년 동안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혹독한 훈련을 받아 무적의 야구 전사로 거듭난 뒤, 꼴찌 구단과 단체 계약을 한다. 조건은 후기리그 50전 전승에 1인당 2억원씩(당시 물가로는 서울 시내 아파트 5채 값 정도 된다)의 보너스를 맞바꾸는 것. 물론 구단주는 야구에서 50전 전승이란게 가능할 리 없으니 날로 먹는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차근차근 목표를 달성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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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토리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손병호 감독의 메시지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돈 없고 가방끈 짧고 빽 없어서 한탄하던 사람들에게, 유능하고 집념에 불타는 지도자가 나를 단련시켜 최강의 승부사로 거듭 나게 해 준다는 얘기가 더없이 매력적인 판타지로 여겨진 거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얘기 아닌가? 최근 한국 시청자들은 어중이 떠중이 단원들에게 "이기적이 되어라. 남들을 위해 희생해서 얻은 게 뭐냐"고 강변하는 한 곱슬머리 지휘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단원들의 볼멘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니들은 내가 연주하는 악기일 뿐"이며, 심지어 "니들은 그냥 개고 난 주인이니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나 짖으라"고 소리친다. 이런데도 차츰 단원들은 그의 가르침에 동화되어 간다.

물론 현실에선 어림없는 얘기다. 그래도 실력은 있으니 따르는 거 아니냐고? 강마에는 커녕 카라얀이 다시 살아 온다 해도 이런 막말을 참고 견딜 단원들이 있을 리 없다. 야구 감독이라면 당장 선수들이 태업에 들어간다. 담임 선생님이 이런 식이면 교육청에 신고할 학생들이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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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년 전 '외인구단' 분위기 그대로 '강마에 신드롬'이 등장한 건 무슨 이유일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은 거다. 즉, 내가 성공하지 못한 건 내 탓이 아니다. 머리 좋게 낳아 주지도, 엄청난 재산을 물려 주지도 않은 부모 탓이며, 일찌기 재벌 2세와 초등학교 동창이 되지 못한 탓이고, 욕설과 구타를 퍼부어서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유능한 스승을 만나지 못한 탓이다.

강마에는 자녀들을 과외로 뺑뺑이 돌리는 학부모들과도 코드가 맞는다. "우리 부모가 나를 이렇게 신경써서 교육했다면 내가 뭐가 되어도 됐을 것"이므로, "우리 애들이 나를 똑같이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혹독한 강훈으로 아이들을 단련시키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님이 바로 강마에였다는 걸 알아 줘야 할텐데. 글쎄다.

아무튼 온 세상이 강마에를 동경하는 사람들 판인 걸 보면 세상이 지나치게 빨리 변한다 싶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공포의 외인구단'도 내년에 드라마로 나온다던데, 무대를 입시학원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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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외인구단' 신드롬은 두 가지 면에서 전근대적인 판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옥훈련' 만능주의였죠. '실미도'에서 보듯 '지독하게 굴리면' 다들 '붕붕 날아다닐 수 있다'는 군대식 문화가 온 사회에 확산된 경우였습니다.

지금 들으면 웃어 넘길 일이지만, 고 김동엽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아마추어 시절의 실업 구단 이름입니다) 창단 감독을 맡아 전 선수단을 이끌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 구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해 롯데가 실업야구 우승을 차지하자 당시의 매스컴은 '스파르타식 훈련'의 미덕을 칭송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겪었던 야구인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세상에 그거보다 무식한 짓이 없었다. 감독이 뛰라는데 안 뛸수도 없고, 그 첫해 이후로 몸이 망가져서 옷 벗은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이런 문화의 잔재는 지금도 사회 각계에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대표 축구팀이 졸전 끝에 패하기라도 하면 바로 "군기가 빠졌다. 더 굴려야 한다"는 비난이 쇄도하죠. 어떤 조직이든 '쥐잡듯 잡으면' 능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풀어 주면 기어 오르는' 게 세상 이치라는 논리가 거의 항상 득세합니다.

인격이나 자율성 따위를 인정하는 리더는 그날로 '나약하고 조직장악력이 떨어진다'는 딱지가 붙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강마에가 멋진 리더로 착각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욕먹는 사람들이 남들일 때 얘기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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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남 탓'과 자율성의 실종입니다(남 탓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기대는 경향도 강합니다). 내가 지도자는 아니지만, 지도자는 전지전능해야 하고 청렴결백해야 하며, 인격적으로도 완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디선가 완성된 스승이나 리더가 나타나 나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용사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눈 앞에 존재하는 리더나 스승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보통입니다. 내가 바람직한 인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죠. 유능한 리더의 출현을 동경하고, 그 리더의 성공을 찬양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권위를 인정하는 짓은 죽어도 못한다는 이율배반입니다.

거스 히딩크의 성공을 찬양하고, 히딩크같은 지도자가 다시 없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칭찬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지도(휘)하는 사람들이 그때 '태극전사들'이 치른 파워프로그램에 해당하는 '마구 굴림'을 시도라도 할라치면 도끼눈을 뜨는게 인지상정입니다. 어떤 지도자도 스스로 변할 의지가 없는 구성원을 드림팀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물론 동기부여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것도 베이스가 있을 때 얘기죠.

그런 의미에서 이제 서서히 식어가고 있지만, '강마에에 대한 열광'은 좀 쓴 웃음을 짓게 합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왜일까요.  



p.s. 좀 생뚱맞기도 하지만 정말 찾아보니 별게 다 있군요.^^



그나자나 까치 오혜성 역으로 윤태영은 너무 건장한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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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 드라마 초창기에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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