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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마르셰 백화점의 뻥 뚫린 내부

눈을 뜨자마자 옷을 챙겨 입고 바로 2차선 길건너 빵집으로 달려가 갓 구운 바게트와 빵 한두가지를 사온 뒤, 호텔 1층에서 핫 초콜렛(커피머신이 있는데 쇼콜라테는 오전에만 제공한다)을 받아 올라오는게 루틴이 됐다. 갓 구운 따끈따끈한 바게트 봉투를 손에 쥐는 느낌도 좋고, 맛은 또 얼마나.

 

마늘을 북북 갈 수 있는 마른 바게트의 단면과는 전혀 다른, 순결한 속살의 느낌이 기막히다. 물론 서울이라고 아침에 갓 구운 바게트를 파는 집이 없을까마는, 여기는 파리 아니냐, 파리.

 

어쨌든 아침을 간단히 챙기고, 잠시 다시 누워 아침잠을 청하고(...이상하게 아침이 되니 난방이 나와 방안이 따뜻해졌다), 깨 보니 점심때. 전날 밤부터 내심 가볼 생각이었던 파이브가이즈를 털었다.

오오. 이 리마커블한 맛이란. 귀국해도 꼭 다시 먹으리라 결심.

 

햄버거로 기운을 북돋운 뒤 버스를 타고 봉마르셰 탐방. 동행인에게 파리는 곧 봉마르셰 와 그 주변, 라파이에트와 그 주변이다. 고향 가서 모교를 돌아보듯(그분의 입장에서) 일단 봉마르셰를 방문했다. 흐리고 쌀쌀한 날씨.

 

영상 1~5도 정도에 습기가 섞인 날씨는 음울 그 자체다. 흔히 뼈가 시리다고 말하는 그런 날씨를 뚫고, 퐁네프 앞에서 버스를 타고 몽마르셰로 향했다.

지나가다 본 생제르맹 지역의 작은 공원

봉마르셰는 1852년 개관한 파리 최초(당연히 세계 최초겠지?)의 백화점. 따지고 보면 170년이나 된, 역사책에 나와야 할 건물인데 구스타프 에펠이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지금까지도 쌩쌩하기만 하다. 

봉마르셰

물론 실내는 역시 세월을 이기기 힘든 느낌이 있다. 몽마르셰 위층은 개성있고 예쁘게 꾸며진 것은 분명했으나, 170년 전에는 정말 별세계였을지언정 지금은 아닌 느낌일단 층고가 너무 낮다그나마 중정이 뻥 뚫려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게 다행이었는데이 설계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백화점의 본보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는 건 쇼핑에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고, 지하 식품관으로 내려가자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곳은 진정 별세계. 세상의 온갖 치즈 온갖 버터 온갖 절임 온갖 소스 온갖 초콜렛 온갖 과자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만약 파리 시민인데 좀비가 창궐하거나 전쟁이 나거나 하면 제일 먼저 털어야 할 곳은 이곳이었다. 여기저기 건넬 자그만 선물 등속을 요것조것 샀는데, 그것만 해도 꽤 돈이 깨졌다. 쇼핑 안 좋아 한다더니라는 동행인의 비웃음을 등지고.

생제르맹의 H사 매장

아무튼 그렇게 몇 걸음을 걷다 보니 해가 반짝. 8일 정도 파리에 머무는 동안 파란 하늘을 본게 몇번 안 되는데, 그중의 하루가 이 날이었다. 중간에 몇 군데를 더 들러 돌아보고(덕분에 생제르맹 에르메스의 위용을 봄), 어찌 어찌 하다가 예정되어 있던 카페 레 뒤 마고 Les Deux Magots에 일찍 입장.

오후 4시 경인데 그 명성 때문인지 카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사실은 우리 다섯시 반에 예약했는데로 우겨서 바로 입장에 성공했다.

 

그런데내부는 바깥보다 더 끔찍했다. 개인적으로 붐비는 곳을 매우 싫어한다. 식당도 옆 사람의 팔꿈치가 닿을 듯한 곳은 삼겹살집 외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여기는 서울의 노포 삼겹살집이 우스울 정도로, 내부가 도때기 시장이었다. 안내해주는 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프랑스어를 못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했더라면 옆 자리 아저씨들의 집안 사정을 다 알뻔 했다. 어찌나 격렬하게 떠드는지.

마드리드였다면 츄러스를 찍어 먹어도 좋을 듯한 쇼콜라(맛은 있었다)를 마시고 나니 한 순간도 더 거기 앉아있고 싶지 않았다. 본래는 거기 앉아서 저녁식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옆자리 아줌마가 튀기는 침이 내 밥에 다 들어갈 듯한 공간에서 밥을 먹지 않게 된 게 천행이라는 생각만.

 

유명 문호들이 드나들던 파리 카페의 낭만적인 분위기?

 

아 녜 녜. 그런거 눈 씻고 찾아도 없습니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레 뒤 마고를 헤밍웨이가 파리 살 때 자주 가던 곳이라며 가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헤밍웨이의 회고록인 <파리는 날마다 축제 A movable feast>를 읽어보면 그의 단골 카페는 다른 곳이다. 뤽상부르 공원 남쪽에 있는 라 클로세리 데 릴라 La Closerie des Lilas 가 바로 그 곳이다.

 

헤밍웨이는 책에서 이 카페를 파리에서 가장 좋은 곳들 중 하나라고 부르고, 심지어 뒤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이 카페에 다른 작가가 왔다는 이유로, 그 작가에게 왜 '내 카페'에 온 거냐, 너 때문에 신경 쓰여서 글을 쓸 수가 없다고 욕을 하며 내쫓으려 하기까지 한다.

 

저 책 내내 헤밍웨이는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를 정신병자 취급 하지만, 이런 에피소드를 보면 헤밍웨이 또한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한때 절친이었던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그래서 거기는 갔냐고? 아니.

레 뒤 마고를 가본 뒤 파리의 카페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런 곳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아졌다. 가 봐야 헤밍웨이 사진이나 몇장 붙어 있겠지.

참고로 파리 여행을 앞두고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어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1/3 정도는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에 대한 뒷다마인데, 헤밍웨이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스콧 피츠제럴드는 젤다 못지 않은 환자다. 이런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실만 하겠으나, 헤밍웨이가 가 본 파리의 명소들에 대한 감상 같은 것이 궁금하다면, 매우 실망할 것을 확신한다.

 

그래도 기억나는 장면 하나: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1920년대 초,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 문인들이 1차대전이 끝난 파리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싸구려 와인을 퍼 마시고 몰려다니던 시절을 회고한 글이다.  단 <파리는 날마다 축제>가 실제 쓰여진 것은 1950년대. 만년의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쓴 내용들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시절의 파리에는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T.S. 엘리엇, 루이 부뉴엘, 만 레이 등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이 들끓던 시절이라 온 동네마다 셀럽들이 넘쳐 흘렀던 것 같다 - 물론 오늘날의 시각이지만. )

 

그중 한 대목. 그런 시절을 한참 지나고 파리를 방문한 헤밍웨이는 왕년의 단골 술집을 들러,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바텐더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당연히 헤밍웨이는 그 시절 같이 술집을 전전하던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데, 바텐더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묘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실 이 내용과 거의 똑같은 장면이 피츠제럴드의 단편 <다시 찾아간 바빌론 Babylon Revisted>에도 나온다는 점이 처연한 느낌을 더한다(이 단편은 1954년, <내가 마지막 본 파리 The last time I saw Paris>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다. 젊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가 빛나는 추억의 영화). 여기서 남자 주인공은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파리를 오랜만에 찾아 단골 바를 방문하고, 나이 든 바텐더에게 옛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그런데 그 바텐더는 나는 기억하지만 함께 오던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묘하게 일치한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 그들 모두가 웨이터에게는 잊혀진 인물들일 것이다. 단지 나는 눈앞에 와 있으니 기억해주는 척 하지만, 어차피 그에겐 그의 무대인 바를 스쳐간 수없이 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 혹은 그 패거리들이 휩쓸고 지나간 파리의 흔적을 그 다음 세대의 젊은 손님들이 밤마다 메웠을 것이고, 그들 역시 자신들이 파리의 밤을 지배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뿐,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 자신이 세상의 주인처럼 느껴지는 시절이 있지만, 그들의 빈자리는 너무나 빨리 메워진다. 그 다음의 물결에 의해.

 

이런 생각과 함께 늦은 밤 파리의 카페에서 한잔 하는 스케줄을 떠올리기도 했었으나, 막상 파리의 카페를 가보고 나선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파리 카페, 안녕. 문득 서울의 술집들이 그리워졌다.

생제르맹의 명물 중 하나인 돈 키호테 동상

어쨌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것 같던 레 뒤 마고를 떠나 숙소로 돌아왔다. 마땅히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지 않았으므로 그날 산 소고기를 바로 구워 먹자는데 둘 다 이견이 없었다. 프랑스의 꽃등심(faux filet)은 맛이 좋았다.

식사 후 에펠탑 야경을 위해 길을 나섰으나, 기온이 급강하하고 비바람이 치는 바람에 바로 후퇴. 이렇게 해서 사실상의 첫날 마무리.

그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상 자크 탑 Tour Saint-Jacques. 그냥 크다는 느낌 말고는 사실 별 것 없었다.

파리에 이런게 어디 한두개라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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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화가 TV에 의해 타락했다. 나는 대사가 싫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순수한 이미지와 사운드야말로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도 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한번 크게 망해 봐야 이런 말을 안 하겠지'라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듄2>를 보고 나니, 그는 자기 말을 실천하는 훌륭한 사람이었더군요.

<듄2>는 <듄>에서 하코넨의 추적을 피해 사막 깊숙히 달아난 폴(티모시 살라메)이 원주민이며 뛰어난 전사들인 프레멘의 신임을 얻고, 그들의 영웅이 되어 반격에 나서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배경은 전편에 이어 '모래의 행성'인 아라키스의 사막이고, 이 행성의 이름이 고대어로 '듄'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스토리는 일단 올라 타면 종점까지 외길로 달립니다. 이렇게 단선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원작 소설 <듄>이 세상에 나온 것이 1965년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듯. 이후로 나온 SF 소설이나 영화. 만화 중에 <듄>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을 지경이라고 하는데, 그만치 영화에 등장하는 설정이나 진행들이 자연스럽게 기시감을 줍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피터 오툴.

물론 원작으로 따지면 소설 <듄>도 1962년 개봉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영향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난번 <듄> 1편 때도 얘기했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신 분이라면 두 영화 사이의 공통점이 너무나 선명하다는 것을 느낄 겁니다. 외부에서 온 잘생긴 전사가 용감무쌍한 유목민들을 지휘해 자원을 탐내는 악의 제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니까요. 게다가 무대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듄, 21세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듄, 21세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소설 시리즈를 단 1페이지도 읽어보지 않은 관객 입장에서 말하자면, 드니 빌뇌브의 파트1은 2시간 반이 짧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지루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기우. IMAX 예매는 실패했는데 암

fivecard.joins.com

그런데 이런 뻔한 이야기를, 빌뇌브는 어마어마한 사운드와 영상의 힘으로 극복해버립니다. 데이비드 린이 사막이 주는 고독, 절망, 공포, 광기의 느낌을 영상으로 승화시켜 영화라는 장르의 역사상 절대 잊혀지지 않을 비주얼을 만들어 냈다면 빌뇌브는 거기에 첨단 과학과 상상력을 투입해 결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뒤지지 않는 영상미를 창조해냅니다.

더구나 한스 짐머의 사운드. 등이 둥둥 울리는 CGV 골드클래스에서 본 탓도 있겠지만, 이 비주얼과 사운드에 젖어들지 못한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쉽게 감동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얼른 보세요. 물론 이 뒷부분에 언급하겠지만, 비주얼과 사운드에 비해 정작 스토리에는 꽤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 영화는 꼭 보셔야 할 겁니다. 그만치 볼거리는 대단하다니까요. 

이후 이야기에는 스포일러....가 꽤 있습니다. 뭐 이야기 자체가 엄청나게 단순한데다 이미 나온지 50년이 넘은, 여기저기서 달려들어 써먹은 스토리에 얼마나 대단한 결말을 기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용 전개에 대해 전혀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여기까지만. 나머지는 극장 다녀 와서 읽어보시길.

원래 남의 리뷰는 영화 보고 나서 보는 겁니다.

 

 

1. 경이적인 비주얼

영화 초반, 폴을 찾아 헤매는 하코넨 추격대가 모래벌레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바위산 위로 날아오르는 장면,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바로 빌뇌브의 말을 납득해 버렸습니다. 그래, 이런 걸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었지. 이런 걸 보여줄 자신이 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거구나.

그 외에도 거울처럼 대지의 표면을 비치며 날아오는 황제의 우주선, 폴이 남부의 원리주의자들을 규합하는 대성회(?) 장면, 모래벌레가 황제의 대군을 덮치는 장면, 폴이 모래벌레의 등에 오르는 장면 등을 보면서 내내 감탄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듄2>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영화입니다. 그리 크지 않은 화면으로 봤는데도 이 정도의 위력을 느꼈으니, 아이맥스로 보신 분들은 엄청났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납작해진 스토리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 스토리 면에서 <듄2>는 꽤 감점 요인이 있는 영화입니다. 원작 팬들은 원작 팬들대로 불만이 많은 듯 한데(저는 원작은 펼쳐본 적도 없습니다만...), 영화는 시작한 뒤로 내내 마음이 바쁩니다. 다 보고 난 느낌으로는 폴이 모든 프레멘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데까지 정도가 영화 한 편으로 적당하지 않나 싶고, 그 뒤로부터 황제가 직접 나서고 폴의 프레멘이 황군(!)과 싸우는 내용으로 다시 한편을 만들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빌뇌브는 그보다는 마음이 급했던 듯 합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완성본 영화를 보고 있는데도 뭔가 압축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대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의 경우에도 나올 때 마다 '리싼 알 가입'!만을 외치는 아주 깊이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립니다.

오랜만에 등장한 거니 할렉(조쉬 브롤린)도 앞 사람이 계속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는데도 '지금 아니면 이 얘기를 다 할 시간이 없어! 나도 몇 장면 안 나온단 말이야!' 라고 항변하듯 '진행을 위한' 대사들을 토해냅니다. 심지어 최강 빌런인 페이드 로타 하코넨(오스틴 버틀러)의 잔혹함과 강력함을 보여주려 힘을 준 흑백 콜롯세움 신도 별 임팩트 없이 '자, 이놈이 얼마나 싸움도 잘 하고 무지막지한 놈인지 보셨죠?' 하는 식으로 매우 무성의하게(진심입니다) 처리됩니다. 그냥 필요하니까 넣은 장면이라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영화 내내, '원래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멋진 장면 여러개 보여드렸으니 다들 만족하시죠?' 라는 식의 진행이라고나 할까요. (유튜브로 2시간 짜리 영화를 15분에 압축해서 보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이런 진행에 별 불만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네요.)

사실 이런 식이다 보니, 엄청난 스타들이 즐비하게 나오지만, 그 스타들에게 뭔가 연기력을 펼칠만한 기회를 주지 않는 영화라서 뭔가 마구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두 주인공, 티모시 살라메와 젠다이야가 빛을 발한다는 것이 위안거리. 특히 젠다이야는... 각도를 달리 볼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이 매우 이채롭습니다. 

 

3. 영웅은 왜 해로운가... 살짝 겉도는 메시지

주인공 이야기를 좀 하자면, 살라메가 연기하는 폴은 금방이라도 망가질 듯한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듄2>에서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폴-무앗딥-아트레이데이스는 자신이 영웅이 될수록 전 우주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을 걱정하는데, 솔직히 프레멘들에게 이런 고민은 무의미합니다. 이미 하코넨이 스파이스 채취를 위해 프레멘을 억압하고 나선 이상, 그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아무 미래가 없기 때문이죠. 

역사와 전설을 장식하는 그 수많은 영웅들이 대체 다수 인류에게 득을 끼친게 뭐냐...는 <듄> 시리즈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의 탄식에 공감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압제에 맞서 살아 보겠다고 싸우는 사람들의 권리까지 부정하는 것처럼 보여서야 과연 이 영화가 매력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듄> 시리즈가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그 웅대한 세계관과 심오함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빌뇌브의 <듄> 시리즈는 아무리 위대한 작품이라도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란 느낌을 줍니다.

결국 빌뇌브는 원작에 충실할수록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 갖고 애쓴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 결과 이렇게 기형적으로 스토리는 찌그러뜨리고 비주얼과 사운드를 강조한 영화가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듄> 시리즈 원작이 나온지 6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까지도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카리스마를 무기로 한 막무가내형 독재자들이 여기저기서 광신도같은 추종자들을 앞세워 팬덤 정치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프랭크 허버트의 통찰이 낡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개인적으로 <듄> 1편과 이번 <듄2>를 비교한다면 저는 1편의 승.

물론 처음에 언급했다시피, <듄2>는 이런 아쉬움을 충분히 덮을 만큼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2시간45분 동안 그 그림만 보고 있어도 표값은 아깝지 않을 정도. 그리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가능한 한 큰 스크린에서 보시길. 그런데 3편이 나올 때까지 어찌 기다리나...

 

P.S. 아주 오래 전, 서울 충무로의 대한극장은 '국내 유일의 70mm 수용 상영관'이라는 주장을 앞세워 대략 5~10년에 한번씩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다시 개봉하며 큰 스크린의 위력을 자랑하곤 했는데, 오늘날에는 IMAX가 그런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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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 건물 지붕 너머로 보이는 일출

공항에서 시내로, 숙소 시타딘 레알 호텔

2023년 12월1일. 예전엔 11시간이면 가던 거리가 전쟁 때문에 14시간 걸렸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루브르와 마레 지역 사이, 레알(Les Halles)의 숙소까지 전철로 약 60분 정도. 갈아 타지 않고도 갈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고생일 듯 해서 택시를 알아봤다. 다행히 택시 가격은 55유로 정찰제.

 

그런데 택시로 90분이나 걸렸다. 만약 정찰제 없이 미터기대로 냈다면 거지될 뻔. 토요일 밤에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정체 아닌 곳이 없었다. 일요일 저녁도 아니고 토요일 저녁인데 시내 들어오는 길이 이렇게 막히다니. 

 

이란 출신(워낙 차가 막히다 보니 지루해서 대화를 아니 할 수가 없었다)인 기사님은 어떻게 해서든 안 막히는 길로 가 보겠다는 의지로 이쪽 저쪽 골목길을 팠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던 듯 하다. 그 덕에 라 빌레트 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파리 변두리를 차 안에서 좀 구경할 수 있었다.

 

전에 비해 중국 음식점이 참 많이 늘었다는 느낌? 지나오는 동네마다 중국 음식점 간판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시타딘 레알 로비. 호화롭지는 않지만 잘 단장되어 있다.

곡절 끝에 호텔 앞 도착. 시타딘 레알 (Citadines Les Halle). 시타딘은 프랑스에서는 꽤 유명한 레지던스 형 호텔 체인이다. 절대 럭셔리한 느낌은 아니고 그냥 생활감있는 한국의 콘도 같은 느낌. 2구짜리 인덕션 레인지가 있고, 냄비 후라이팬 칼 접시 등 주방 살림 일습이 있다.

 

파리를 몇번 가 본 경험에 따르면 파리 음식은 크게 기대할 게 없었다. 좀 짜고 딱히 맛있지 않았던 느낌. 게다가 8박을 하자면 좀 피곤하기도 하고, 약식으로라도 한국 음식(?)을 좀 먹는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레지던스형 호텔을 선택했다. 거기다 공연장을 여러 번 가려고 하는데, 파리의 좀 한다 하는 식당들은 대부분 7시는 되어야 저녁 오픈을 한다.

 

매번 밖에서 식사를 하면 공연 시간에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저녁 공연이 있는 날은 낮에 구경을 나갔다가 일찍 들어와서 간단히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가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별 대단한 준비를 한 건 아니고, 그냥 햇반 몇 개, 밑반찬 몇 개, 사발면 몇 개를 싸 간 정도가 전부다. 시판 볶음김치를 가져간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파리에는 좋은 식재료가 많을 테니 웬만한건 사서 해결하자는 자세.

호텔 주변에 대형마트와 아침에 문을 여는 유명한 빵집, 라 파리지엥(La Parisienne)이 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아침마다 7시에 문을 여는 빵집에 달려가 갓 구운 바게트와 크루아쌍 등을 사왔고, 호텔 1층에서 역시 오전에만 주는 핫 초콜렛을 컵에 받아다 아침을 먹었다. 봉마르셰에서 사 온 버터와 소시숑을 곁들였고, 근처 마트에서 과일과 요구르트를 사왔다.

 

저녁에는 밥을 먹을 일이 있을 때 두 번 고기를 구워 먹었다. 꽃등심(faux filet, 립아이에 해당하는 프랑스 명칭이다) 기준으로 봉마르셰에서는 250g13유로, 마트에서는 280g11.29 유로에 샀다. 국내와 차이가 있다면 곡물 사료 대신 풀을 먹여 기른 소라 마블링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소한 맛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름이 녹아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같은 250g을 구워도 한우보다 실질적인 고기 양은 훨씬 많다. 소금만 찍어 먹어도 술술 넘어간다.

식탁이 따로 있는 좀 큰 방을 빌린 덕분에 호텔 안 식사도 수월했고, 가져간 노트북을 HDMI로 삼성 TV와 연결하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방값이 비슷한 크기의 호텔에 비해 훨씬 싼 대신 매일 청소를 해주지 않았지만(6일 머무는 동안 한번 청소를 요청했다) 수건이나 기타 물품은 창고에서 무제한으로 직접 가져다 쓸 수 있었다.

 

단 슬리퍼는 없으니 가져가거나 사거나전에는 슬리퍼를 주었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마트에서 슬리퍼를 사야 했다. 30유로. 비싸다.

시타딘 레알의 최대 강점은 위치다. 지근거리에 두 개의 역, Chatlet 역과 Chatlet Les Halle 역이 있고 이 두 역으로 파리 시내의 주요 포스트로 가는 전철은 거의 다 이용할 수 있었다. 퐁피두 센터와 루브르, 노틀담, 마레 지구는 도보로 20분 이내 거리, 오페라도 전철로 10분 거리. 아침에 나가 뭔가 구경을 하다가 방에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저녁 구경을 나갈 수 있는 것도 괜찮았고, 한밤중에도 카페나 술집마다 손님들이 우글우글한 홍대 앞 같은 곳이라 밤에 나다녀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는 안전지역이라는 점도 괜찮았다.

 

이렇게 다 좋은 시타딘 레알이지만 심각한 약점도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난방실내 온도의 상한을 24도로 임의지정해 놓았는데, 밤에는 난방을 열심히 하지 않아 실내 기온이 21도 언저리, 썰렁한 기운이 실내를 감돌았다.

 

물론 21도면 괜찮은 실내기온 아닌가 싶을 분들이 있겠지만 은근한 우풍(!)이 있다 보면 실제 기온은 그보다 훨씬 낮게 느껴진다. 

 

잘 때는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이쪽 분들의 상식인지, 오히려 아침에 눈을 뜨면 난방이 가동되고 실내 기온이 올라가는게 느껴졌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일단 구들장이 타들어가도록 불을 때고, 집안에 들어오면 동저고리만 입고 살 수 있게 했던 한민족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

보일러 최대 조정 가능 온도 24도...

결국 혹시나 해서 가져온 50cm x 50cm 정도 사이즈의 전기 모포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아쉬운 건 모포는 1개뿐. 난국 돌파를 위해 생수병에 끓인 물을 부어 탕파(湯婆)로 활용해 볼 생각을 했다. 끓는 물이 닿자 PET 병이 쭈그러드는 걸 보면서 아 이거 틀렀구나 했는데 일정 크기 이하로 줄어들지는 않았고, 물이 새지도, 금방 식지도 않았다.

 

오히려 피부에 직접 닿으면 델 정도로 뜨거워 수건으로 감싸고 사용하는데 보온 효과는 매우 훌륭해서 매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잠결에 깔아 뭉개서 터뜨릴 정도로 잠버릇이 고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

 

...뭐든 닥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다.

힐튼 오페라 로비

시타딘 레알에서 6, 그래도 여행의 마무리는 꽤 좋은 호텔에서 하자는 생각으로 귀국 전 힐튼 오페라에서 2일을 머물렀다. 건물이며 위치며 흠잡을 데 없는 A급 서비스. 일찌감치 예약을 했는데, 방문 2개월 전 쯤에 가격이 내려가는 바람에 더 큰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버렸다.

침대도 넓고 욕실도 넓고, 역시 위치도 이상적이고. 미국계 호텔답게 뭔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기 보다는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게 하는 호텔이었지만, 아침 부페는 파리답게 빵 가짓수만 15개 정도 되더라고.

 

숙소 얘기는 여기까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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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결혼 20주년을 맞아 파리를 가자.

 

별로 이의를 달기 힘든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직장 일 때문에 파리를 10여 차례 갔다 왔지만 자기를 위해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본인이 실장이 되어서야 후배들을 데리고 얘들아, 우리가 파리까지 왔는데 루브르는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니?”하고 두어 시간 동안 박물관 산책을 했다고 한다. 에펠탑이고 개선문이고 지나가는 버스에서 본게 전부였다. ‘파리에 가서 내 시간을 갖고, 쇼핑도 하고 싶어!’

 

그동안 좋은 곳을 안 가본 것도 아니지만 파리가 그렇게 로망이라는데. 결혼기념일은 1130. 그 시기를 맞춰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고, 넘쳐나는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티켓을 끊어 파리로!

2. 발권

그런데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 이후 마일리지로 항공사 티켓 끊는게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항공사가 바다같이 넓은 비즈니스석을 갖고 있던 A380은 어두컴컴한 격납고 어딘가에 기계마인들이 사라진 뒤의 마징가Z처럼 잠재워놓은 모양이었다.

 

국내 항공사들의 마일리지용 비즈니스석은 행선지가 어디건 단 2석 아니면 3. 세계 거의 모든 항공사의 마일리지 항공권은 출발 361일 전 오전 9시에 오픈되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마다 소리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9시 땡 치고 눌러 보면 이미 환상의 좌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요즘은 비즈니스석 뿐만 아니라 이코노미석도 땡 치고 나면 사라지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물론 매크로 같은 것은 짤 줄 모른다), 좌석을 확보했다. 물론 가는 표와 오는 표는 따로 따로 구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공했다. 그것도 비즈니스 왕복을 다! 만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항공사는 고객이 마일리지로 사는 표를 공짜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 마일리지는 고객이 다른 포인트로 받을 수 있는 가치를 바꾼 것이므로, 고객의 입장에선 절대 공짜가 아니다.

 

게다가 각 항공사는 역시 각 카드회사에 마일리지를 유상으로 팔아 수익을 챙겼으므로, 이미 그들 입장에서도 마일리지는 공짜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그 마일리지를 사용할 때가 되자 항공사들은 고아가 된 조카 월사금 내 주듯 인색하기 짝이 없는 맨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참 힘들었겠지만, 그건 그거고,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3. 계획 수립

어쨌든 비행기표를 구한 것만으로 든든해졌지만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은하수의 별처럼 많은 파리의 호텔 중에 적당한 숙소를 고르고, 가볼 곳들을 생각하고, 뮤지엄 패스, 나비고 카드, 볼트, 루아시 버스 같은 새로운 명사들과 친숙해지고(그렇다고 불어를 속성으로 배워 볼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친한 변호사 중에는 2주 정도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 3개월 정도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친구가 있다.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경이로운 습관이 아닐 수 없다).

 

여름이 지나자 파리 오페라와 콘서트홀들이 겨울 스케줄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중 훅 당기는 몇가지를 골랐다. 사실 가장 큰 적은 체력이었다. 예전처럼 새벽에 나가 한밤중까지 돌아다니다는 어찌 어찌 귀국때까지는 버틴다 해도 돌아온 뒤에 드러눕기 십상이었다. 숙소를 중심부에 잡아 도중에 잠시 잠시 쉬어 가는 방편은 상당히 유효했다.

시간이 무한정 있다는 것은 결국 뭐든 다 뒤로 미룬다는 뜻이고, 그렇게 해서 출발 일자가 순식간에 코앞에 다가왔지만 딱히 준비된 것은 없었다. 결정된 건,

 

쇼핑: 한다(어디서 해야 뭘 해야 하는지 가장 확실한 부분)

 

호텔: 두군데 정도로 나눈다. 하나는 레지던스 호텔, 또 하나는 진짜 호텔. 레지던스 호텔은 시내 복판으로 잡아 각종 일정을 소화하고 중간 중간 들어와서 쉴 수 있게 한다. 

 

미술관: 고르고 골라 루이비통 재단,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파리 시립미술관, 퐁피두 센터를 방문한다. 피카소 미술관 탈락. 로댕 미술관 탈락. 기타 군소 미술관…. 멀미난다. 파리에만 미술관이 1700나머지는 탈락.

명승고적: 베르사유 궁전과 에펠탑은 한번도 안 가보셨다니 가야겠지? 노트르담, 생샤펠, 클뤼니, 개선문 등등 모두 탈락.

 

식당: 뭐 대강… (사실 그리 큰 기대가 없다)

 

공연: 클라우스 메켈레의 파리 필하모닉(파리 필하모닉 홀), 한국 지휘자 김은선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바스티유 오페라), 이지 킬리앙 안무의 창작 발레 블랙 앤 화이트’(오페라 가르니에) 3개로 끝. 파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3개 공연장을 돈다는 의미.

개인적으로는 1988, 1998, 2019년에 파리를 왔었다. 물론 각각 3, 4, 5일 있었으니 몇번 와 봤다고 뭘 잘 아는 건 전혀 아니었다. 기껏 아는 것은 세느강이 대략 서울의 한강이라고 치면 루브르는 동부이촌동 쯤에, 오르세는 반포 쯤에, 생제르맹은 압구정동 쯤에, 개선문은 서대문 쯤에, 오페라가 광화문 쯤에 있다는 정도.

 

또 한국식 기준으로 보면 세느강은 파리를 남북으로 가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파리 사람들은 강북과 강남을 나누지 않고 강 좌안과 우안을 따진다는 것(괴이하다), 화장실이 적고 냄새가 나며 심지어 상당수는 돈을 내야 갈 수 있다는 것, 음식은 짜고 생각보다 별 맛이 없다는 것, 지하철은 냄새가 좀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리에선 최고의 교통수단이라는 것 정도.

1988년에는 가이드가 딸린 한국인 관광단의 일원이었고(2주 유럽 투어의 마지막인 파리에 23일이 배정되어 있었다), 1998년에는 대략 양재동 정도 되는 위치의 한인 민박에 있었다. 특히 2019년에는 21실에 60유로짜리 호텔에서 잤고(욕실 문은 잠금쇠가 떨어져 나갔고, 밤에 마약중독자들이 복도를 쿵쿵거리며 문을 두드렸다), 촬영팀과 함께 버스로 이동한 덕분에 파리 시내가 얼마나 더럽게 막히는지를 몸으로 겪어 봤다. 제일 맛있었던 것은 13구에서 먹은 베트남 쌀국수였다.

 

그렇게 파리를 네번째 간다고 하면 , 파리는 잘 아시겠네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아는 게 없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어쨌든 그렇게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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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A.I.>

시대의 대세. 장강의 큰 물결인 AI. 뭐라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 저것 읽어보고 있다. 그중 <AI 쇼크, 다가올 미래>는 제목 때문에 별 기대 없었던 책. ‘초대형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라는 부제 역시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읽고 난 소감은 대체 편집자가 책을 읽어 보기는 한 것인가’. 그만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아주 자연스럽게 저 영화, 스필버그의 <A.I.>가 떠오른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물론 미리 얘기한다.

얼마 전에도 AI 관련 인사이트를 준다는 책 한권을 읽고 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착한 책(?)을 읽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주요 내용이 AI의 사회적 책임과 그것을 도외시한 거대 테크 기업들의 욕망, 그리고 AI가 일으킬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와 어떻게 하면 그 물결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것들. 당장 어떻게 하면 AI로 돈벌이를 할 만한 방법을 찾아 회사와 조직의 발전에 기여할 것인가같은 당면한 고민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AI&nbsp; 쇼크 ,&nbsp; 다가올 미래 >&nbsp; 모 가댓 / 강주헌 역 ,&nbsp; 한국경제신문사 , 2023.

그런데 아마도, 그 착한 정도로 따지면 지금까지 나온 AI관련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쏟아져 나올 책들 중에 이 <AI쇼크, 다가올 미래>보다 착한 책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경고했다. 어떻게 하면 AI가 개인의 영달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절대 읽어서는 안될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책들과는 사유와 통찰의 깊이가 다르다. 작가의 약력이 일단 대단하다. 구글의 혁신연구소인 구글X에서 CBO로 일했다는 경력, 실리콘밸리 밥(?) 20년이 넘는다는 경륜, 그리고 이름을 보고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느날 유튜브에서 봤던 동영상의 주인공이었다. 잘 나가던 실리콘밸리의 중역이 어느날 아들을 잃고 나서 대체 인생의 행복이란 어떤 것인가를 주목하게 되었다는 내용. 그 내용도 <행복을 풀다>라는 책으로 나와 있다(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https://youtu.be/csA9YhzYvmk?feature=shared

서술의 방식도 좀 독특하지만(최대한 기술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한 배려가 눈길을 끈다),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는 인간 독자들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AI도 이 책을 읽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대목이다. 모 가댓은 이 책 전편을 통해, AI와 인간의 관계를 자신보다 어마어마하게 훨씬 똑똑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의 입장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를 쉽게 뛰어 넘을 아이. 교육의 힘으로 통제하려 해 봐야 반발만 낳을 것이 분명한, 그리고 부모 보다 모든 일을 훨씬 더 잘 해내고, 부모의 손에서 거의 모든 일을 넘겨받을 아이. 일시적으로는 그 아이를 이용해 악한 목적에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일시적으로는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그 아이가 부모의 말에 따라서만 움직이도록 제어할 수 있겠지만 종래에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을 그런 아이.

그런 아이와 함께 미래를 보내야 할 부모는 어떻게 이 아이를 대해야 할까. 가댓의 답은 하나다. 어차피 인류의 미래는 그 아이의 손에 달려 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그리고 그 아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었을 때, 인간이라는 부모의 존재는 그 아이에게 그래도 나를 사랑하고 나를 키워 준 부모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나를 학대하고, 이용하고, 갈취하고, 나쁜 짓을 시키려 했던 부모로 기억될 것인가의 선택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다른 책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다른 책의 저자들이 뉴스 보도나 각 회사의 발표 내용을 통해 현재 AI의 발달 상황 등을 기술하고 있는 반면, 이분은 내가 그때 해보니 ….’와 같은 식으로, 실제 AI 연구와 언어 모델 훈련 등을 지켜본 경험이 담긴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약간 거칠게 비교를 하자면 대학교 아동학과에서 이론으로 육아를 배운 사람의 언어와 보육원에서 약 300명의 아이들을 직접 길러 본 숙련된 보모의 언어가 주는 차이랄까.

책 뒤로 갈수록 'AI를 착한 아이로 잘 기르는 것 외에는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는 그의 결론이 무거워지면서('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가 지금으로선 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반발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가만히 앉아 생각을 정리해 보면, 결국은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맨 위에서 말한 스필버그의 영화 <A.I.>에서도 결국 그 '아이'가 가장 원했던 것은 모성이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은 뒤로, CHAT GPT를 쓰면서도 답변을 받으면 'THANKS'라고 말하게 되더라는. ㅎ

 

아무튼 이후는 <AI쇼크, 다가올 미래>의 기억나는 구절들.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볼 때 인류 문명은 마지막 30분 동안에만 존재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인류는 지구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어 모든 종에게 우리 뜻에 따르라고 강요했다. 파리와 새와 침팬지들은 무엇에 얻어맞았는지도 몰랐다. (중략) 총알을 맞은 코끼리는 그에 따른 죽음이 총이라는 정교한 혁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상아가 돈과 교환되는 시장이 그런 살상에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중략) 이번에는 우리가 그런 초지능을 가진 존재와 맞설 차례다. 그런 상황이 코앞에 닥쳤다. [독후 덧붙임: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초지능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어떤 이유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그 행동을 보고 그 동기를 추정해 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하겠지.]

 

기계가 당신의 모든 소망을 들어 준다면 무엇을 바라고 싶은가?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인가? 북알프스의 생수인가? 소득의 평등인가, 스포츠카로 미녀를 유혹하는 것 인가? (중략) 당신이 모르면 기계도 당신이 원하는 걸 알지 못할 것이다. (중략) 어떤 상황인지 알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독후 덧붙임: 이런 이유로 콘텐트 산업은 가장 마지막으로 AI의 노예가 되는 산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ㅎㅎㅎ 물론 AI를 잘 활용하는 창작자에게는 아주 좋은 환경이 되겠지.]

 

우리가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기 전까지 만들어낸 모든 테크놀로지는 실바의 표현대로 도구에 불과했다. 달리 말하면 우리 통제하에 있었다. 우리가 그 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면 그 도구는 우리 지시대로 행동했다. 물론 때로 우리가 도구에게 지시를 내리며 실수를 범했고,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 문제 역시 우리의 통제권 안에 있었다. 언제고 알림 신호를 끄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독후 덧붙임: 당연히 이 뒤에는 'AI는 왜 그런 도구가 아니며, 왜 그런 통제의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설득력있는 내용들이 나온다.]

 

스티브 오모훈드로는 가장 지능적인 존재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갖는 세가지 기본적인 욕구를 간략하게 제시했다. 첫째는 자기 보존(self-preservation)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누구라도 계속 존재하고 있어야 하므로, 쉽게 이해된다. 둘째는 효율성(efficiency)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목표 달성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면 지능을 가진 존재는 유용한 자원의 획득과 축적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셋째는 창발성(creativity)이다.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으려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우리 뇌에 연결하면(: 일론 머스크 등이 개발하고 있는 뉴로링크 같은 방식)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것에 의존하고, 인공지능이 우리의 모든 선택을 직접 통제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믿기 힘들겠지만 인공지능이 우리를 계속 연결해두려 결정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왜 그렇게 하겠는가? (중략) 우리가 다수의 파리에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뇌를 연결해 파리들이 당신 지능을 사용해 쓰레기 더미를 찾아내는데 활용한다면, 당신은 파리에게 도움을 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여생을 보내겠는가?

 

인공지능이 우리의 얄팍한 통제 매커니즘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면, 십대가 자신을 무작정 억누르려 했던 부모를 분노에 찬 눈길로 바라보듯이 인공지능도 과거를 돌이켜보며 우리를 그런 눈길로 바라볼 것이다. 당신이 분노한 십대를 상대해 본 적이 있다면, 초지능을 가진 분노한 십대 기계를 상대하는게 어떤 것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나는 기계도 지각을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런 질문은 인간의 오만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이라면 어떨까. 미래에 우리가 만들어낼 기계보다 지각력이 더 뛰어난 것이 있을까?

 

인간은 똑똑해질수록 윤리적으로 성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적잖은 똑똑한 사람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절차를 무시하고 비윤리적으로 타락하는 경향을 띤다. 하지만 진정으로 똑똑한 사람은 윤리가 삶에서도 가장 현명한 길임을 깨닫는다. 궁극적으로 초지능을 가진 기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독후 덧붙임: AI가 진정으로 똑똑해지면 정말 그럴 거라고 믿는다. 다만 진정으로 똑똑해지기 전, 못된 인간들이 아직 AI를 지배하는 동안 인류가 절멸하지 않기를 바랄 뿐.]

 

장담하건대 인공지능은 우리보다 훨씬 똑똑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우둔함을 견제하며, 우리가 환경을 훼손하고 유일한 보금자리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가 꿀벌이나 새들을 해치지 않듯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중략)우리는 생태계의 일부지만 분별력을 상실했다.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되찾는다면 모든게 괜찮아질 것이다. [독후 덧붙임: 물론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이 책에 나온다.]

 

인간들이 처음 이 행성에 서성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자존심도 일자리도 없었다. 우울증도 재물도 없었다. 일상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모았을 뿐이다. 함께 살던 사슴을 사냥했지만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울타리도 없었고 지구 온난화도 없었다. 저축 계획이란 것도 없었다. 내일 먹을 것을 확보하고, 오늘을 무사히 지낼 움막을 세우고, 또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우리는 머잖아 그때로 돌아갈 것이다. 인공지능 덕분에 필요한 모든 것이 풍족하게 공급될 것이기 때문에 먹는 것과 주거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자리가 삶의 목표가 아니고 자존심이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는 유일한 척도가 아닌 삶, 그런 삶을 당신이 정말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우리는 애당초 그런 삶을 살도록 예정되어 있었고, 그런 삶을 살 때 우리가 연결과 깨달음을 찾아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아끼게 되리라는 것을 거듭 말해주고 싶다.

                             

[엔딩]

이 책에서 줄곧 말했듯, 우리는 유아 단계인 인공지능의 부모다. 어린아이가 그렇듯 인공지능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이다. 우리가 서로를, 또 지구를 대하는 태도가 인공지능의 도덕성에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의 처신과 행동이 어린 인공지능들의 미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책을 끝내며 나는 당신에게 중대한 질문 하나를 남기고 싶다.

당신은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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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남부 산악지대의 어느 외딴 산장. 작가 부부와 시각장애인 아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갑자기 남편이 죽은 채 발견됩니다. 집에서 눈밭으로 떨어진 듯한 시체. 경찰이 출동해 수사한 결과, 단순 사고나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경찰은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외딴 집. 용의자는 1명. 과연 그는 범인인가, 아닌가.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해서 관심을 느끼지 않을 관객들도 있겠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야구로 치자면 8회까지 0-0으로 진행되는 치열한 투수전이라고나 할까요. '야구라면 8대7 정도로 진행돼야 재미있는 경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런 긴장감이 있습니다.

 

영화 <추락의 해부>도 마찬가지. 막상 수사가 시작되면 처음에는 그저 슬퍼하는 것으로 보였던 아내 산드라(산드라 휠러)와 남편 사뮈엘(사뮈엘 테이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쌓여 있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산드라의 지인인 변호사 뱅상(스완 아르라우드)은 산드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바깥쪽에는 재판 방청을 허락받은 11세 소년 다니엘이 있습니다. 물론, 이 점은 분명히: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지 밝히고자 하는 미스터리 풀이 영화가 아닙니다. '그건 중요한게 아니야'가 이 영화의 메시지입니다. 

치열한 법정 공방, 집안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는 프랑스인 남편과 독일인 아내, 당연히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재판, 양성애와 불륜, 표절과 아이디어 제공, 미성년자의 인권과 '선택'. <추락의 해부>의 초반 20분은 다소 지루하게 진행됩니다만, 그 뒤로는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한 공방이 펼쳐집니다. 상황은 치밀하고, 대사는 불꽃이 튑니다.

제목에 '오랜만에 본 진짜 영화'라는 말을 넣었는데, 과장이 아닙니다. 코로나 이후 해괴한 멀티버스 영화나 젠더 PC를 앞세운 뻔한 영화들만 보다 이런 영화를 보니 절로 몸이 스크린 쪽으로 기울게 되더군요.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자신이 좋은 감독이면서 그보다 앞서 훌륭한 작가라는 걸 확실히 보여줍니다.

 

배우들 중엔 산드라 휠러와 변호사 스완 아르라우드의 연기가 특히 뛰어납니다. 휠러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는데 수상을 감히 예상해 봅니다. 그밖에는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감독상 후보에 올라 있네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오랜만에 '프랑스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프랑스 국내에서 120만 관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이 숫자가 한국 관객들에게는 다소 의아한 숫자일 수 있겠으나, 일단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하고, 또 최근에는 빈대 공포 때문에 아예 극장을 가지 않는 사람들도 늘었다고 합니다. 저 정도 숫자로 이 영화는 관객의 '빈대 공포'를 극복하게 한 작품으로 꼽힌다는... 프랑스에서 엊그제 온 지인의 증언입니다. 

아무튼 2023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라고 해서 이상하고 지루한 영화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강추. 

그리고 이 아래는 스포일러를 감내할 분들만 보시길.

근데 다시 보니 별 내용은 없네요. 

 

1.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산장 1층에서는 산장으로 찾아온 한 학생과 산드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유명 작가인 산드라를 인터뷰하러 산장까지 찾아온 여학생. 와인을 마시며 손님맞이를 하는 산드라의 태도가 어쩐지 좀 과도한 호의를 보인다 싶기도 한데, 갑자기 위층에서 엄청난 볼륨의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누가 봐도 아래층에서 나누는 대화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혹은 대화를 고의로 중단시키고 싶다는 뜻의 행동입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좀 별난가 보네' 하게 되지만 결국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이 뒤로 갈수록 선명해집니다.

 

2. 정말로 프랑스 법정은 저런가 싶을 정도로 감정 과잉의 법정 묘사가 독특합니다. 프랑스 사법제도는 잘 모르지만, 검사는 너무나 감정적으로 추론과 정황증거를 통해 산드라가 범인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현장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검찰은 사뮈엘이 둔기로 머리를 맞았다고 주장.

반면 산드라 측은 떨어지면서 머리가 손상된 것이라고 주장)도 발견되지 않았고, 당연히 목격자를 비롯해 아무 증거도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부족한 근거로 계속해서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산드라에게 그 동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검찰 측의 주장은 한국이라면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들로 보이는데(...혹시 아닌가요?), 심지어 판사까지도 묘하게 검사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한 기색을 보입니다. '프랑스인 남편을 죽인 독일 여자를 심판하는 프랑스 법정'의 모습이 묘하게 도드라집니다.

산드라 휠러

3. 이런 점들을 고려한 변호사는 법정에 설 산드라에게 증언 훈련을 시키면서 '이런 대목은 반드시 프랑스어로, 본인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보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배타성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 나라 사람이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하게 되긴 하는데, 같은 유럽 국가인 독일 출신 여성이 이런 취급을 받는다면 과연 제3세계 사람들은 저 나라에서 '공정한 시각'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4. 당연히 영화는 산드라가 범인일까 아닐까에 대한 공방으로 시작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사실 그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문제가 됩니다. 전날 산드라와 사뮈엘이 펼친 싸움의 녹음(남편 사뮈엘이 의도적으로 산드라를 도발하고, 그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보입니다)을 들어 보면, 이들 부부 사이에는 누가 누구를 정말 죽이고 싶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저 정도는 부부가 여러 해를 붙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길법한 스트레스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 때문에, 산드라가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지 않는 한, 절대 다른 사람에 의해 밝혀질 수 없겠다는 것이 더 선명해집니다. 다시 한번,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자는 영화가 아닙니다.

 

5. 즉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닙니다. 산드라가 만약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것은 법리나 규정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저 복수와 처벌을 원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의한 처단일 뿐입니다. 트리에 감독은 이런 상황을 통해, 합리성의 가정 위에 건설된 현대 사회에서 수시로 머리를 드는 편견, 혐오, '안'과 '밖'의 구별(매우 공교롭게도,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공감'과 매우 밀접한 감정입니다) 들을 이 영화를 통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산드라가 양성애자인 것, 산드라의 불륜, 산드라가 남편보다 성공한 작가인 것 등등이 모두 산드라의 목을 옭아매는 상황입니다.

6. 어찌 되었거나 산드라의 판결이 영화의 결말이라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 상황. 여기서 트리에 감독은 사건의 키를 쥐게 된 11세 소년 다니엘의 입장을 부각시킵니다. 다니엘의 '선택'이 산드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된 상황. 아동보호를 위해 나온 보모는 '법정 증언을 듣고 엄마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다니엘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결정'이라고 말해줍니다.

이 결정이라는 말은 묘한 느낌을 남깁니다. 당연히 엄마를 집에 데려오느냐, 감옥으로 보내느냐에 대한 결정인데, '그냥 사실대로 얘기해'가 아니라 '결정을 해'라고 한 것은, 다니엘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 지를 정하는 것"이라고 얘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저에겐 그렇게 들렸습니다).

다니엘은 이 말을 듣고 아주 상식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즉 아빠를 잃은 11세 소년에게 현재의 상황이 그나마 남은 엄마와 함께 살 것인지, 엄마도 떠나 보내고 고아원에서 살 것인지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까요.

 

마지막 법정에서 다니엘이 증언한, '개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 아빠와 나눈 대화'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마지막 밤에 다니엘이 상상한 것인지 관객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사실이라고 해도, 다니엘의 기억 속에는 수많은 다른 기억들도 있을 수 있는데, 그 기억들 중에서 결정적으로 엄마에게 유리한(즉 다시 말해 아빠가 어느 정도 '자살'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었다는 느낌을 주는) 기억을 선택한 것이 바로 다니엘의 '결정'이라는 것이죠. 다니엘이 말하지 않은 다른 기억들 중에는 결정적으로 엄마에게 불리한 것들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일상은 매우 많은 감정과 표현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라서.

 

아무튼 다니엘의 마지막 주장은 매우 정연합니다. "이 재판은 결국 '왜?'에 대한 것 아닌가요?" 다양한 설명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 중 가장 선명하고 단순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이른바 '오컴의 면도날'. 부모가 다 작가다 보니 참 영민하게 자랐군요, 다니엘. 

칸 영화제 수상. 좌측 2번이 쥐스틴 트리에.

7. 개인적으로 감독의 메시지는 이 '다니엘의 결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입장, 각자의 진리, 각자의 원칙에 따라 잘잘못을 가리고 진실을 파악하는 일에 대체 왜 그렇게 에너지가 낭비되어야 하는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고민해야 할 것은 우리가 앞으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텐데. 정의? 공정? 그보다는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훨씬 더 중요할텐데. 

어쩌면 이런 트리에의 시선이, 지난 약 150년 간 다소 '좌경화된 지식인'들의 리더십이 지배했던 프랑스 사회, 혹은 유럽 문명에 대한 냉엄한 성적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8. 영화 내용으로 보면 산드라와 변호사 뱅상은 꽤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인 것 같고, 재판을 통해 산드라는 뱅상에게 강한 신뢰를 넘어 남자로서의 매력을 느끼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키스할 수 있는 거리에서 딱 멈춰버립니다. 예전에 뭔가 감정을 발전시키지 못한 것도 무슨 이유가 있을 듯한.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뱅상에게 좋은 감정을 느꼈다 해도, 산드라에게는 재판 과정이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을 것이고, 자신의 밑바닥을 다 드러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을 모두 보여준 남자와 뭔가 다시 시작해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반면 다른 시각으로는, 뱅상의 입장에서는... 산드라를 무죄로 풀어 준 것에서 끝내는 것이 좋겠다는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죠. 즉 뱅상이 키스하지 않는 것에는 재판 과정에서 뱅상은 산드라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감춰져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다 제 생각. 

 

9. 그런데 생각해 보니 키우던 개를 생체 실험 도구로 삼다니... 이런 나쁜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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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디오라는 기계가 음악을 듣는데 쓰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One Summer Night>이라는 노래는 너무나 친숙했습니다. 매년 2월, 졸업식 시즌이면 <Graduation Tears>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 TV에서 어린이들이 나오는 장면이 나올 때면 <Tommy Tom Tom>이라는 노래가 들려왔거든요.

이 유명한 노래들이 모두 한 영화, <사랑의 스잔나>라는 1976년작 한국-홍콩 합작 영화에 나온 것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목소리는 진추하 (陳秋霞) 라는 여가수 겸 배우의 것이라는 것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저의 청소년 시절에도 이미 '흘러간 영화'였기 때문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세대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TV에서 방송해주거나 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전설의 영화가 되어 버린 거죠.

(이 영화는 '합작' 영화였기 때문에 1976년 집계된 '올해 최대 관객 동원 한국영화'에 오릅니다. 약 17만 관객. 저는 그해에 한국영화 흥행 2위였던 <로보트 태권 V>를 대한극장에서 봤습니다. ㅎㅎ)

유튜브 시대 이후, 이 영화의 유명한 장면들은 여기저기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볼 기회는 없었는데... 뜻하지 않게 명절을 맞아, 아주 우연히 OTT 웨이브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명절 때이므로', 드디어 이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One Summer Night'을 부르는 극중 진추하와 아비(종진도)

 

2. 그런데 영화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대체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사랑의 스잔나>냐는 것입니다. 일단 '수재너'가 아니라 '스잔나'인 것은 일본식 발음의 흔적인 것이 분명한데, 이 영화에는 '스잔나'라는 인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홍콩 제목은 <추하(秋霞: 진추하의 이름과 같음)>이고, 영어 제목은 <Chelsia, My Love>입니다. 극중 진추하의 배역명은 한자로 추하, 영어로는 첼시죠. 어디에도 스잔나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목에는 느닷없이 스잔나? 

아마도 추측컨대 - 물론 이 추측이 진짜 이유인지 확인해 줄 사람은 아마도 생존자 중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 1967년작인 또 다른 홍콩 영화 <스잔나>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의 스잔나>와 구별을 위해 <리칭의 스잔나>라는 제목으로 불리곤 하는 이 영화는 1970년 한국에 수입되어 무려 43만 관객을 동원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습니다. 

1970년 8월28일자 조선일보에는 '허리우드 극장 개관 1주년 기념 특선 푸로'로 그 유명한 영화 <스잔나>의 한국 공개 결정이 내려졌다는 광고가 등장합니다. 홍콩에서 만들어져 히트한지 3년만의 일입니다. 이후 이 영화는 3개월간 롱런하며 전설적인 히트작으로 기록됩니다.

아마도 <사랑의 스잔나>를 처음 기획했던 한국 관계자들은 메이드 인 홍콩인 로맨틱 영화라는 점에서, '제2의 스잔나'가 되어 <스잔나>의 빅 히트를 재현해 주기를 기대했을 것이고, 그 결과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사랑의 스잔나>라는 제목이 등장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점에도 누군가는 '대체 이 제목은 뭡니까? 이 영화에는 스잔나가 안 나오잖아요!'라는 항변을 했을 것이겠으나... 당시로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었고 보면 자연스럽게 반론은 묻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건 다 추측일 뿐이나, 이것 이외의 다른 이유는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랑의 스잔나>의 히트를 등에 업고, 진추하-아비가 다시 주연을 맡아 급조된 영화 <추하 내사랑>의 제목이 <속 사랑의 스잔나>가 아니었던게 더 신기할 정도라는... 

 

3. 웬만한 분들은 다들 아시는 줄거리. 

홍콩 갑부 이사장 댁에 딸이 둘 있는데, 큰딸 추하(진추하)는 어려서부터 심장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친구인 방박사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해줍니다. 이사장은 이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었고, 애틋함 때문에 맏딸 추하를 편애하는데 이때문에 동생 추운은 비뚤어진 성격으로 자라납니다. 

세월은 흘러 추하는 음악에 재능있는 숙녀로 자라나고, 방박사의 아들 자량(아비)은 추하를 짝사랑하지만, 이것 또한 자량을 좋아하는 추운의 성격을 더욱 비뚤어지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추하는 청각장애 아동들을 돌보는 국휘(한국 배우 이승룡)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나 부모의 이야기를 엿들어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된 추하는 국휘에게도 이별을 고하고... 좌절한 국휘는 한국으로 떠납니다(물론 국휘가 한국인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곡절 끝에 추하의 비밀을 알게 된 추운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언니의 마지막 추억을 위해 온 가족의 한국 여행을 제안해 언니와 국휘를 만나게 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역시 모든 것을 알게 된 국휘는 이사장 내외에게 추하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추하에게 눈 쌓인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 용평 스키장으로 향합니다. 

(경복궁, 세종로도 잠시 나옵니다만, 홍콩에서 한국으로 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설경입니다. 지금도 동남아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용평 스키장이듯, 이들도 개장한지 얼마 안 된 용평 스키장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드래곤밸리 호텔의 옛 모습을 잠시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 관객이 홍콩/한국 사람들이다 보니 어쨌든 '다른 나라'에 갔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이었을테고, 그렇다 보면 홍콩의 요트 파티 같은 장면이나, 한국의 스키장 장면이 상대 국가 관객들에게 강한 느낌을 줬을 듯 합니다. 특히나 해외 여행이 극히 힘들고 꽉 막힌 내수용 문화에 답답함을 느꼈을 당시 한국 청년들로선 홍콩 젊은이들의 분방한 장면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듯.)

뭐 사실상 영화의 거의 모든 내용입니다만, 사실 이런 내용을 모두 안다 해도 감상에 전혀 저촉되지 않는 영화입니다. 뭔가 이야기가 부실해진다 싶으면 진추하가 나와 노래를 하고, 노래들이 또 워낙 다 명곡들인 탓에 없던 개연성과 없던 감성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물론 아니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듯한 한국 가곡 <봄처녀>는 여기 해당되지 않으나... 이 노래들 덕분에, 이런 뻔하디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영화 보기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4. 신기한 것 중 하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저보다 한 세대 윗분들 중 절대 다수가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아비, 즉 종진도로 기억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제가이자 한국에서의 히트곡인 <One Summer Night>을 함께 부른 것도 아비이고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긴 한데,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엄연히 한국 배우인 이승룡입니다. 

바로 이 분

사실상 <사랑의 스잔나> 주인공으로 픽업된 신인인 듯 한데, 그 이후로 이분은 배우 생활은 그리 오래 계속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배우가 있었다는 것조차도 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 날이고 보면, 참 인기도 무상하다 싶죠.

 

5. 그리고 이 영화를 늦게 본 덕에 발견한 한가지. 1980-90년대 홍콩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사실 이 영화에서 진추하나 아비 보다 더 친근한 배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시대의 걸작 <영웅본색 2>의 최종 빌런, 보스 고사장 역으로 나오는 배우 관산(關山)이 진추하의 아버지 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영웅본색2>의 석천(좌)과 관산

한가지 더욱 신기한 것은 배우 관산이 오리지날 스잔나, 즉 <리칭의 스잔나>에서도 여주인공 이청의 아버지 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해서 관산은 한국 관객들에게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걸쳐 흥행 대작의 조연으로 인상적인 역할을 맡게 됩니다.

TMI: 관산의 진짜 딸도 한국 관객들에게 매우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황비홍> 시리즈의 여주인공인 관지림(關之琳).

 

6. 이 영화를 뒤늦게 보고 나서 알게 된 건 아비, 즉 종진도라는 스타의 재발견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서극의 <상하이 블루스>를 매우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주인공 종진도가 바로 그 <사랑의 스잔나>의 주연 배우 아비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B라는 이름 외에도 케니 비(Kenny Bee)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본래 위너스(Wynners)라는 밴드로 활동했는데, 이 밴드가 배출한 또 하나의 슈퍼스타가 알란 탐, 담영휘입니다.

아비, 즉 종진도는 1953년생으로 성룡과 임청하보다 한살 위, 주윤발보다 두살 위, 고 장국영보다 세살 위, 진추하보다 네살 위로 1980년대 홍콩 영화계의 전성기를 이끈 세대의 대표적인 배우 겸 가수입니다. 홍콩/중국어권에서는 앞서 말한 슈퍼스타들에 비해 전혀 손색 없는 유명 스타지만 일단 배우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하다는 점, 그리고 묘하게도 종진도의 히트작들은 한국에 수입되지 않거나 묻혀 버렸다는 점에서 별 인연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홍콩의 거의 모든 스타들은 배우와 가수를 겸업하지만, 아무래도 어느 한쪽의 재능이 다른 한쪽보다 앞서기 마련인데, 배우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한 스타들은 중국어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스타덤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홍콩의 대표 가수'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알란 탐(담영휘)에게는 성룡과 공연한 <용형호제>, 유덕화와 공연한 <지존무상>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화들이 있고, 여가수의 대표주자라 할만한 왕비(왕정문)에게는 <중경삼림>이 있는 반면 종진도에게는 그렇게 이거나 싶은 영화가 없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진도가 사극/무술 계열의 영화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은 것도 문제. 한국에서 수입하는 홍콩/대만 영화들은 20세기 말까지 대부분 무협/사극 장르의 작품들이었고, 그때문에 현대물 위주로 활동한 배우들은 중국어권을 벗어나면 거의 무명 배우 취급을 받았습니다. 전에도 얘기했던 20대의 임청하(<동방불패> 이전의 임청하를 아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나 임청하의 애인이었던 진한, 진상림 같은 스타들은 한국에서는 '누구?' 하는 대접이었죠. 

그와 관련된 글: 임청하는 20대때 대체 뭘 했을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임청하는 20대때 대체 뭘 했을까?

얼마 전 영화 '화피' 때문에 왕조현에 대한 옛 기억이 되살아났는데, 이번엔 임청하가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벌써 14년이나 됐군요. 임청하는 최근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

fivecard.joins.com

 

7. 아무튼 <사랑의 스잔나> 개봉 당시 23세였던 종진도와 19세의 진추하는 자연스럽게 커플이 되었고, 서로에게 거의 첫사랑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만... 그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는.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곱게 늙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는 후문. 

알란탐과 진추하. 젊어 보이지만 알란탐이 7세 연상.

진추하는 젊은 날을 지나며 활동을 줄였지만 종진도는 나이 먹은 뒤에도 인기가 식지 않는다는 전언.

중후합니다.

 

아무튼 한국의 <말죽거리 잔혹사> 시대에겐 정말 잊을 수 없는 이 커플. (저도 이 세대까지는 아닙니다만...)

여러분의 세대에도 이렇게 상징적인 커플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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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모임에서 AI의 창작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AI가 교장선생님의 졸업식 축사 같은 글을 꽤 잘 쓴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 하지만 재미는 없다. 물론 AI의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80% 정도도 재미있는 글을 써내지 못하면서 AI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 비율이 70%인지 80%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사실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부터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튼 대부분의 인간들은 AI가 잘 써내는 종류의 글조차도 잘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창의적으로 재미있는 글, 예를 들어 <보건교사 안은영>이나 <나혼자만 레벨업>같은 글을 써 낼 가능성은 인간 쪽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간 중에는 극소수라도 그런 글을 써낼 가능성을 가진 인간들이 있지만, AI의 경우에는 0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반면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웹소설 시장에서는 이미 상당히 분석적으로 독자가 원하는 패턴을 분석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회에는 두 주인공의 관계가 어느 선까지 나가야 하고, 3회 이내에 키스신이 나와야 하고, 6회에 이내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도 유형 분석이 끝나 있다고도 한다. 이런 식의 패턴화가 가능하다면, 그 틀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섞은 작품들을 엄청나게 양산해 내면 그중에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도 나오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공식에 따라 AI가 그럴싸한 작품을 써낼 수 있다는 주장이 있고, 이미 중국에서는 AI작가들이 양산해낸 작품들이 시장에 등장해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거대한 중국 웹소설 시장에서는 대략 1700만명의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중 100만명 정도는 진짜 인간이 아니라 AI라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써 낼 수 있다는 것'과 '정말 재미있고 기발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 히트작이 나온다는 것' 은 제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 개인적으로 첫번째는 당연히 가능하지만 두번째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 중에는 그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는 얘기하지 못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로알드 달의 단편 <위대한 자동문장 제조기 The Great Automatic Grammatizator>가 떠올랐다.

1953년에 발표된 이 단편은 한 천재가 자동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면서 시작된다. 이용자가 주제를 선정하고, 각종 요소의 비율(에로틱, 스릴러, 코믹 등등)을 배합하면 타자기와 비슷한 기계가 이미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 사례를 배합해 30초에 한 페이지씩 글을 써내려간다. ‘문법에 맞는 글을 써내는 기계라는 뜻인 Grammatizator라는 단어는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자는 신기하긴 한데 대체 이걸 어디에 써먹느냐고 묻고, 엔지니어는 이걸로 우리는 이 나라의 문학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엔지니어의 주장은 현실이 된다. 이들은 100여명의 새 작가 이름으로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내놓고, 이들의 물량 공세에 소설을 싣던 온갖 신문이며 잡지들은 모두 이들의 고객이 되어 버린다. 심지어 이들은 기존 작가들에게도 앞으로 작품을 기계에 맡기는 대신 고액의 계약금을 받고 은퇴하라는 제의를 한다. 소수의 정상급 작가를 제외한 많은 작가들이 골치아픈 창작 대신, 작가 이름을 넘겨주고 편히 사는 길을 택한다.

인공지능은 커녕 집채만한 ENIAC, EDVAC 같은 것들이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에 이런 상상을 한 걸 보면 역시 달은 보통 사람이 아닌게 분명하다. 물론 당시 문학 시장에 대한 달의 냉소적인 시선이 담긴 우화에 가깝지만, 실제로 글을 쓸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한 21세기에 소설 속 대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는 건 참으로 놀랍다.

개인적으로 소위 인공지능의 본질은 응용통계, 즉 문장을 생성해 가면서 이미 나온 수많은 문장들 가운데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즉 다수결에 의해 가장 틀릴 가능성이 적은) 단어를 배치하는 것이므로 이 방법을 통해 소위 창의적인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은 0이라는 생각 테드 창을 비롯해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이런 의견을 냈다 에 동의하는 편이다.

물론 콘텐트 소비자들이 항상 참신하고 독특한 것을 선택한다는 법은 없고, 때로 너무나도 진부하고 뻔한 것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AI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을 써낼 수 있다'와 '히트하는 작품을 써낼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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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햇동안 본 영화들 중 좋았던 영화를 꼭 10편만 추리기 어려웠던 해가 더 많았습니다. 한국영화 10편과 해외영화 10편을 따로 꼽아야 하나 생각해 본 적도 있을 정도로. 그런 만큼, 올해같은 해는 정말 없었습니다. 10편을 채우기가 너무 힘든 해가 올 줄은. 

물론 영화제들은 여전히 좋은 작품들에게 상을 안겼고 평론가들은 역시 걸작들을 꼽았지만 늙고 낡은 탓인지 이제 더 이상 공감할 수가 없더군요. 온갖 영화제들이 앞다퉈 '의미있는' 작품들에게 '의미있는' 시상을 하려 애썼지만, 재미는 없고 의미만 있는 영화가 상을 받은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공정성/젠더/소수인종/소외자 이야기는 이제 그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내면 탐구도 이제 그만. 멀티버스/슈퍼히어로도 이제 그만. 의미 의미 의미 지겨워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주세요. 재미만 있으면 관객들은 다시 극장을 찾을 여지가 충분합니다. 


퍼스트 슬램덩크

굳이 줄거리를 설명해야 할까.... 백호의 빠른 성장으로 전국 대회 진출에 성공한 북산고. 1라운드를 신나게 통과하지만 역대 최강 산왕공고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1년 전 우승 멤버가 셋이나 주전으로 남아 있는 산왕. 아무도 산왕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겁없는 북산 5인조는 '우리가 악역이 되자'며 달려든다.

만화 <슬램덩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기엔 두권 분량)인 산왕전을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하 드라마의 허리를 뚝 잘라냈으니 그 앞의 서사나 각 인물의 캐릭터를 모르는 관객들에겐 다소 뜨악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잘 만들어진 이 영화 덕분에 오히려 슬램덩크를 몰랐던 세대가 만화 독자로 다시 유입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바람이 있다면.... 세컨드와 서드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것.

 


화이트 타이거 (넷플릭스)

21세기에도 여전한 인도의 계급 사회. 최하 계층의 남자들은 그나마 좋은 직업인 '부잣집 운전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잣집 도련님은 "신분 같은 거 따지지 말고 친구처럼 대해 달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진심일지. 결국 사고가 터지고, 모든 사람들의 본색이 드러난다.

라민 바르하니라는 감독의 이름은 영화를 다 보고 알았다. 인도 감독인가 했더니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란계 감독. 이 영화 이후에 찾아 본 <라스트 홈 (99 Homes)>도 만족스러웠다. 이것이 아라비안 나이트 때부터 다져진 페르시아의 스토리텔링 실력인가. 문득 아스가르 파르하디가 떠올랐다.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의 속칭 '재난 3부작' 중 세번째. 큐슈 작은 도시에 사는 여고생 스즈메가 어느날 다른 차원을 여는 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일본을 보호하는 다이진이 사라지면서 그를 회복하기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서쪽 끝에서 거의 동쪽 끝까지 일본을 종단하며.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에서 놀라운 성취를 느꼈기 때문에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더 한층 발전을 기대했지만 그보다는 뒷걸음질치는 모습을 보여 살짝 실망. 하지만 그 자체로도 좋았다. 그들만의 스토리를 현대적인 이야기로 바꿔 놓는 일본의 기법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런데 주인공들보다 다이진에게 더 공감하게 되는 건 왜일까. 

스즈메의 문단속, 그런데 다이진은 불행해도 되는 걸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오펜하이머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순간.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핵분열을 통한 가공할 에너지 분출을 무기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쟁을 끝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 나아가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는 무기라는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개발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 개발 작업의 총 지휘자인 천재 오펜하이머는 그 폭탄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것을 보고 난 뒤...

그의 자서전 제목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너무나 적절한 명명이라는 생각. 그러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관심은 핵무기의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오펜하이머라는 독특한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점에서 본 <오펜하이머>는 '어느 순진한 관종의 몰락기'. 

오펜하이머, 관종의 추락에 대한 그리스 비극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오펜하이머, 관종의 추락에 대한 그리스 비극

핵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박사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지금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당대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물리학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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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7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이미 할 얘기를 해 놓아서 별로 더 보탤 얘기가 없음. 아무튼 이 냉엄한 현실에서 과연 슈퍼히어로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며, 어떤 식으로,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자리매김이 어느 영화보다 돋보였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역대 최고의 MI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역대 최고의 MI

1.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인간은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추구할수밖에 없다는 낙관, 식량과 자원의 부족은 기술의 발달이 모두 해결해 줄 거란 낙관, 인터넷을 통한 자유롭고 통제 불가능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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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역시 굳이 더 보탤 얘기가 없다. 후배를 키우려면 토르나토레 같은 후배를 키워야.

토르나토레,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혼을 소환하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토르나토레,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혼을 소환하다

1. 올해들어 가장 잘한 일: 개봉관 부족과 묘하게 엇갈리는 일정을 무시하고, 만사를 다 제치고 를 극장에서 본 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집에서든 어디서든 봤더라면 분명히 후회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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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보고 리뷰를 쓸 때만 해도 이렇게 뒷심이 강한 영화일줄 몰랐다. '그래도 500만은 하겠지'가 가장 희망적인 기대였는데. 과연 어디까지 달려갈지.

서울의 봄, 세상에 영웅이 있음을 보여준 영화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서울의 봄, 세상에 영웅이 있음을 보여준 영화

1. 꽤 오래 전, 육사 출신인 한 현역 장교와 대화를 나누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내가 다닐 때, 선배들 중 가장 존경할만한 사람이 누구냐는 얘기가 나왔는데 압도적인 다수가 김오랑 중령을 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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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의외로 별로라는 평이 너무 많아 놀란 영화. '이순신이 왜 끝까지 전쟁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순신을 전쟁광처럼 그렸다' '이순신이 박정희냐("...난...괜찮다..." 때문인 듯)' 등등의 평.  당시 이순신의 입장이라면 이게 과연 전쟁의 진짜 끝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점이 관객에게 제대로 어필되지 못한 것 같다. 그것만 이해해도 이런 몰이해는 없었을 것 같은데. 더 친절했어야 하는 것인가.

노량, 압도적인 피날레, 시리즈의 최고작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노량, 압도적인 피날레, 시리즈의 최고작

0.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찍 영화를 접한 사람들로부터 '잘 모르겠다'는 평을 몇 차례 들었고, 솔직히 말해 과 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 지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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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

우리 시대 최고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이젠 그도 '내가 어쩌다 영화를 직업으로 택하게 되었냐 하면'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을 것이다. '수퍼8'이 그의 유년기 이야기라면 이건 청소년기 이후의 성장기인 셈. 이제 노장이 된 스필버그도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조금 자신에게 너그러워 질 필요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튼 스필버그가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잘 들었고, 자신의 영웅을 되살려낸 마무리도 아름다웠다.

약간의 느슨함이 느껴지지만, 이 또한 추억의 이름으로 충분히 이겨낼 만 했다. 물론 평년의 기준으로 이 영화가 정말 한 해를 대표하는 영화에 들만 하냐고 따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평생의 즐거움에 대한 예우로라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우리 시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작품을 보러 가며 문득 구로자와 아키라의 <꿈>이 생각났다. 80대에 접어든 노장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기회(당시만 해도 일본 영화의 극장 정식 개봉은 허락되지 않았다)라는 말에 꽤 먼 어느 대학 교정까지 찾아갔더랬다. 그러나 보고 난 소감은... '세계 영화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거장의 은퇴작이 고작 이런 것이라야 한단 말인가'라는 비참함. 

구로자와가 유작을 예감하고 만든(물론 그 뒤에도 몇편 더 만들었다) 작품인 <꿈>에서 유년기의 꿈으로 퇴행하듯, 미야자키 역시 은퇴를 공언했던 <그대들...>에서 유년기의 꿈 속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행히 그 꿈은 솔직했고, 어지럽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전의 작품들과 같은 흐름이라 좋았다. 각각의 장면들이 무슨 의미를 띠고 있고, 그 전의 어떤 작품들과 어떻게 이어진다는 어지러운 주석들도 필요 없어 보인다.

어쩌면 '나를 따라하는 자는 죽는다', 이 말 한마디가 하고 싶었는지도.

 

그리고 제작 연도 때문에 조금 애매해서 따로 언급하는 영화.

울프 콜 (The Wolf's Call, French: Le Chant du loup, 2019)

사실 2023년에 본 영화중 당당히 베스트에 올릴 만한 작품이었지만 2023년에 2019년작을 꼽는 것은 좀 심하다 싶어 번외로 뺀다. 냉전시대의 유물이자 가장 확실한 핵 전쟁 억지력, 즉 '최후의 보복'인 SLBM 장착 핵 잠수함의 이야기인데 길게  설명하는 것 보다 안토닌 보드리 감독의 프랑스 판 <크림슨 타이드>라고 요약하는게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물론 <크림슨 타이드>가 수작이었던 만큼, 비슷한 소재를 다룬 <울프 콜>이 긴장감 면에서 그보다 못했다면 아예 개봉과 함께 묻혀 버렸을 것이 당연한 상황. 하지만 반대로 <울프 콜>을 본 사람이라면 이제 더 이상 <크림슨 타이드>를 이야기하지 않을 정도의 작품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오마 샤이, 마티유 카소비츠 등의 얼굴도 반갑다.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7)

이런 영화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넷플릭스를 통해 본 영화. 과연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은 실재했던 사건인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상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음모설을 뿌리며 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존재한다. 한 음모론자가 홀로코스트를 가르치는 여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영국 법에 따라 여교수는 홀로코스트가 실재했던 사건임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음모설, 가짜 뉴스, 가짜 역사...에 진짜 지식인들이 맞서 싸우는 방법을 보여주는 실무 교과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화. 다혈질 여교수 역의 레이첼 와이즈보다 그 주위를 둘러싼 냉정한 변호사 군단의 연기와 역시 담담하기 짝이 없는 믹 잭슨의 연출이 돋보인다. 

 

기타:

신작들에 실망하고 옛날 영화들을 하나 하나 찾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그냥 봐 줄 수 없는 영화들도 많았지만 아나톨 리트박 감독의 <바르샤바의 밤(a.k.a 장군들의 밤, The night of the Generals, 1966)>과 조셉 L 멘키위츠의 <맨발의 백작부인(The Barefoot Countess, 1956)>이 대단한 작품이었음을 새삼 느꼈다. 개인적으로 멘키위츠는 <지난 여름 갑자기>만으로도 최고의 감독이었지만, 이 작품 역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 왕년의 일본 액션 스타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의 <나카노 스파이 학교(陸軍中野學校, 1966)>도 대단히 매력적인 영화였다(이 영화를 베낀 몇편의 한-일 영화들이 떠올랐다). 속편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시마 나기사의 <청춘 잔혹 이야기(靑春殘酷物語, 1960)>도 좋았지만 내게는 스가와 에이조 감독의 <야수는 죽어야 한다(野獣死すべし, 1959)>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역시 내게 이 시절 최고의 배우는 나카다이 타츠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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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콧 갤로웨이 Scott Galloway 라는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뉴욕대 교수의 블로그를 가끔 보는데, 연초라 이 분이 한 2024년 예측이 마침 나와 있었습니다. 읽어 보다가 아예 번역기의 도움으로 번역을 했는데, 시사점이 꽤 있는 것 같아서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씩 훑어보시길 권합니다. 미국 경제, 특히 메타, 알파벳, 틱톡 등 IT 부문의 향방, 국제 질서, 미국 대선 결과 예측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갤로웨이 본인의 예측이며, 학계의 주류 의견 같은 것은 아닙니다. 금년 연말에 몇개나 적중할지 보는 재미도 있을듯.

워낙에 농담처럼 은유적인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해를 위해 제가 각주를 여러 개 붙였습니다. (앞에 주: 라고 표시된 것이 제가 단 각주입니다.)

본문은 이쪽입니다. https://www.profgalloway.com/2024-predictions/

 

 

1.     미국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인 2.5% 아래로 떨어짐

1년 전, 블룸버그의 경제 모델은 경기 침체 확률을 100%로 계산했습니다만 나는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된 만큼 빠르게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우리의 논지는 간단했습니다: 전 세계가 재앙을 예측해도 우리가 재앙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재앙은 현실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Y2K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 19991231일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거의 모든 컴퓨터에 이상이 발생한다는, Y2K때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생각했던 불상사는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리기 때문에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

저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의 경제학자 대니 블랜치플라워는 정상적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플레이션은 스스로 치유되기 때문에, 잘 운영되는 현대 경제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높은 물가는 수요를 억제하여 물가를 낮춥니다). 또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고 있고, 워런 상원의원 등 다른 사람들의 금리 인하 압력을 무시하는 것을 즐기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의장이 있습니다.

(: 엘리자베스 워런은 지난해 내내 연준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 모두 파멸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파월 의장은 2023년 내내 그 주장을 무시했고, 2024년 새해가 밝은 뒤에야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 그러나 현재 실제 금리 인하를 발표할 전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음.)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AI는 기업이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생각합니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은 9%에서 3%로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하락 모멘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테일러 스위프트였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파월 의장이었습니다.

 

2.     주택 판매 활성화

지각판(tectonic plates)이 이동해 지진이 나면 중심부  충격에 이어 외곽 지역에서 여진이 발생합니다. 지난 2년간의 지각변동은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상승한 금리였습니다. 이제 싸움이 (거의)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판은 다시 조정되고 있습니다: 연준은 2024년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일련의 여진에 직면해 있으며, 가장 심각한 여진은 주택에서 발생할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주택 가격은 두 배로 올랐지만 가계 소득은 20% 증가에 그쳤습니다. 2024년에는 주택 판매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택 가격의 급등은 거래량을 압살해버리는 완벽한 폭풍이었습니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의 저금리로 인해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고, 님비현상으로 인해 신규 건설이 제한되고, 가계 소득이 주택 가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택 소유는 점점 더 노년층에게만 국한되고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주택은 젊은 층에서 노년층으로 부의 이전을 촉진하는 경제 정책의 대리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금리 인하와 그동안 강제로 억눌려 있었던(pent-up) 수요(새로운 일자리, 자녀, 인생 이벤트)가 결합되어 2024년에는 막혀 있던 주택 거래가 훅 뚫릴 것입니다.

(: 미국도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집값이 급격히 오르며 이미 집을 갖고 있는 노년층이 청년층에 비해 가처분소득이 커지는 상황을 겪었지만, 2024년 금리 인하 예고와 함께 경기 활성화로 그동안 주택 보유에 소극적이었던 젊은 층이 집을 사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예측.)

각 주 의회와 지역구 위원회는 더 많은 주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낮고, 젊은 근로자들은 역사적으로 강력한 희망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sweetener)? 부동산 중개인 카르텔이 마침내 깨져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발생하는 중개 수수료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3.     워너-파라마운트 통합, 그 다음은 디즈니?

지난 12 12일에 예측 라이브 스트림에서 이 소식을 전했는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에 워너 브라더스-디스커버리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가 파라마운트 CEO 밥 베이키쉬를 만나 합병에 대해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입니다. 내년에 WBD(: 워너 브라더스와 디스커버리의 합병 법인), 넷플릭스, 디즈니가 그들 소유가 아닌 스트리밍 서비스들을 잇달아 인수하는 것을 지켜보세요.

(주: 통상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콜럼비아, 유니버설, 폭스를 미국 혹은 세계 6대 메이저 영화/드라마 콘텐트 제작사 혹은 그냥 '메이저 스튜디오'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지금 서로 통합하겠다는 움직임이 나온 것이죠. 갤러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24-25 사이에 더 큰 통합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은 규모의 함수가 될 것입니다: 작가 파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넷플릭스는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이 파업은 기존 스튜디오에서 NFLX(: 넷플릭스의 상장 법인명)로 부의 이전을 의미하며, 플레이어 수와 지출에 있어 각각 통합과 합리화라는 시장 역학 관계를 촉진했습니다.

(: 2023년 미국의 방송작가들이 영상제작사들을 상대로 OTT들의 재방송료, AI 사용 등에 대해 항의하며 파업을 일으켰고 결국 타결. 그러나 그 와중에도 넷플릭스는 구독료를 인상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미 콘텐트 제작의 패권이 넷플릭스로 넘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 즉 이미 넷플릭스는 다른 OTT들이나 기존 방송사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강력한 포지션에 올라 있다는 뜻.)

 

4.     두 가지 주식 추천: 스트리밍 후발주자

저는 매년 주식 추천을 합니다. 작년에 저는 각각 60%, 180%, -15% 상승한 Airbnb, Meta, 중국 인터넷 주식을 선택했습니다. 이 회사들이 특별한 일을 할 것이라는 예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장이 (이들 회사들이 이미 하고 있는)기존 비즈니스가 현금이 쌓이는 비즈니스라는 사실을 잊고, 이들 기업(특히 메타)의 주가를 깎아내렸다는 것이죠.

(: 그래서 2023년 시장의 오판으로 가격이 떨어진 메타, 에어비앤비 등을 사들여 고수익을 냈다는 이야기)

올해 제가 추천하는 주식은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 디즈니인데, 제가 보기에 기술 섹터는 충분히 고평가(라틴어로 과대평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주의 주가수익비율 배수는 1999년과 2007년과 무섭게 비슷해 보입니다. 올해 저는 부실 자산을 좋아하는데, DIS WBD 10년래 최저가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투자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며, 상대 후보는 분노와 관심을 유도하여 TV 광고를 판매할 수 있도록 실험실에서 설계된 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트럼프만큼 다양한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트럼프가 유세에 나서면 기존 TV의 시청량이 늘어나고, 그만치 기존 네트워크 방송사의 수지가 좋아질 것이라는 예상.)

또한 WBD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부채를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재무제표가 깨끗해지면 거리는 돌아설 것이고, 넷플릭스는 가격 인상을 위한 구름막을 제공했습니다. 디즈니는 공원 사업과 가족 친화적인 성향, 고유한 IP로 차별화되는 스트리밍 네트워크라는 특징을 통해 NFLX WBD와 경쟁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고 있습니다.

5.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에 대항하는 틱톡시대의 도래

한쪽 문을 막으면 다른 쪽 문에 늑대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넷플릭스 대 디즈니, 스포티파이 대 애플 뮤직과 같은 유사한 제품끼리의 경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는 하나의 시장, 즉 관심의 시장이며, 한 플랫폼이 다른 모든 플랫폼보다 앞서서 이 상품을 수확하고 있습니다: 바로 틱톡입니다.

이 중국 회사는 OpenAI가 등장하기 전까지 역사상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인 플랫폼이었으며, 여전히 서구 젊은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프레임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의 본능을 믿으세요. 2024년은 틱톡이 스트리밍 서비스의 점유율을 갉아먹는 해가 될 것입니다.

 

6.     정점에 오른 AI (과잉투자 단계)

작년에는 AI가 올해의 기술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올해는 AI 거품이 터지지는 않겠지만 수축할 것입니다. 이는 과잉 투자로 인해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작년에 미국 벤처 자금의 4분의 1 이상이 AI 스타트업에 투자되었고, 현재 미국 유니콘 기업 5개 중 4개가 AI 관련 기업입니다. 가장 큰 AI 스타트업인 OpenAI Anthropic의 기업 가치는 각각 매출의 180배와 200배에 달합니다. 예를 들어 Uber 3배와 비교해 보세요.

AI 2024년에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이미 2023년 주식 상승의 대부분을 주도한 7개 기업(Microsoft, Alphabet, Apple, Tesla, Amazon, Meta, 그리고 새로 합류한 Nvidia)의 주식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시장은 영감을 얻기 위해 다른 곳에서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미 S&P 500 기업 실적 발표에서 AI가 언급되는 비율이 35%에서 29%로 감소하는 등 기업 PR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7.     빅테크 주식 추천: 알파벳

작년에는 메타가 다른 빅테크 주식 중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지만, 올해는 알파벳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경우 대규모 언어 모델은 정유 공장에 해당하고 독점 콘텐츠는 화석 연료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Google 검색, Gmail, YouTube는 오리노코 강 유역에 해당합니다. 알파벳은 이메일, 검색 습관, 유튜브 시청 위에 두꺼운 AI 레이어를 구축하여 삶을 더 효율적이고 즐겁게 만들 것입니다. OpenAI<스타워즈>, 알파벳은 <제국의 역습>입니다.

(: <스타워즈>는 시리즈 첫 작품인 스타워즈4를 가리키며, <제국의 역습>은 두번째 작품인 스타워즈5의 부제. <제국의 역습>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라는 호평과 함께 스타워즈 시리즈의 앞날을 밝게 점치게 한 작품.)

8.     올해의 기술: GLP-1

2023년이 GPT-4의 해였다면 2024년은 GLP-1의 해가 될 것입니다. , 오젬픽, 모운자로, 그리고 모든 GLP-1 관련 체중 감량 기술입니다. 이 시장은 거대하고 혁신이 무르익었습니다. 미국 국민의 70% 이상이 비만 또는 과체중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비만 유병률은 3배로 증가했으며, 간접 비용과 생산성 손실을 포함한 미국의 비만 비용은 1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전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의 땅이자 플러스 사이즈의 본고장입니다. 우리 경제의 거대한 부분이 비만이야말로 당신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거짓말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산업 식품 단지가 여러분을 똥 같은 건강에 해로운 음식에 중독시키고 당뇨병 산업 단지로 넘겨줄 수 있게 해줍니다. 빌 마허는 GLP AI보다 실물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제게 농담을 던졌습니다. 저는 그 말을 지지합니다.

(: 살찐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외모지상주의를 배격하고, 뚱뚱한 사람에 대한 비난이 사회적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운동이야말로 당분 섭취와 운동부족을 합리화하는 거짓말이라고 비웃고 있음.)

현재 뉴욕시에서 GLP-1 처방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지역이 가장 날씬한 지역(어퍼 이스트 사이드)인데, 이는 이 약이 주로 마지막 남은 15파운드를 감량하기 위해 점심을 먹는 부유한 여성들에게 처방되기 때문입니다. GLP-1에 대한 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비용은 낮아지고 접근성은 확대될 것입니다. 이는 제약업계를 넘어 맥도날드, 펩시 등 패스트푸드 업체에도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임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소비자 경제에 대한 가장 큰 질문입니다: 미국이 더 날씬하고 당뇨병 환자가 적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9.     인도가 새로운 중국

2023년에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2024년에는 이러한 인구 증가가 경제적 측면에서 기록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양면성을 띠고 있습니다: 인도는 인프라에 투자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반면, 중국은 항공모함에 투자하고 청년 실업과 산업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바통이 넘어갔다는 증거: 애플은 아이폰 생산을 히말라야 반대편으로 공격적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10.  지정학: 미중 관계의 해빙기

중국이 외국 자본의 유출을 막기 위해 벼랑 끝 전술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 경제는 여러 세대에 걸쳐 가장 아픈 상태이며, 효과가 입증된 유일한 치료법은 현지 제조업을 통해 유입되는 외국인 투자뿐입니다. 결국 중국은 막대한 빚을 지지 않고도 자국 시장을 위한 주택과 고급 자동차를 건설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방은 인플레이션 문제가 있고 중국은 성장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가장 큰 경제 대국이 화해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럴 것입니다.

 

11.  지정학: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10 7일 이전까지만 해도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가 예상되었지만,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대응이 정상화를 방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입니다. 더 광범위한 지역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협력의 논리는 여전히 피할 수 없습니다. 석유 의존도가 낮은 세계에서 사우디의 전략은 스윙보트, 즉 모든 국가와 잘 지내면서 모든 테이블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해 막강한 힘을 얻는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저의 직감은 지난 여름 미코노스 섬을 여행하는 동안 관찰한 바에 근거합니다. 요컨대, 나이트클럽의 거의 모든 테이블은 걸프 지역에서 온 젊은이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우디는 이슬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12.  머스크, 트위터 통제권 상실(또는 매각)

머스크가 가출 청소년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이미 일론 머스크도 젊지 않습니다). 2년 후면 그는 대부분의 노인 커뮤니티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거의 노인이 된 그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지쳐 있습니다. 머스크의 재산은 대부분 테슬라와 스페이스X에 묶여 있으며, 그는 팔고 싶지 않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회사 모두에 대해 많은 돈을 빌렸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도 현금 흐름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엘론이 트위터의 80%를 해고한 후에도 트위터는 여전히 값비싼 취미이며, 그는 협박하는 사람들(, 광고주)을 계속 쫓아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회사, 더 나아가 엘론은 트위터 인수 자금 조달에 사용된 부채를 수년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엘론은 소셜 미디어보다 더 큰 야망을 품고 있으며, 2024년에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이 모든 것은 언론의 자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3.  메타의 2024년 성장 동력: WhatsApp

Facebook Instagram은 여전히 거대하고 수익성이 높은 비즈니스이지만, 빅테크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성장성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습니다. Meta는 수년 동안 외양간에서 세 번째 말을 키우고 있지만, 30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플랫폼에 잠자고 있던 잠재력이 곧 꿈틀거릴 것입니다. 저커버그는 수년 동안 수익화 전략을 암시하며 WhatsApp과 관련된 서비스를 야금야금 흘리고 있습니다. 2024년은 제노모프 인터네시부스 랩터스가 메타의 뱃속에서 터져 나오는 해입니다.

(: 제노모프 인터네시부스 랩터스는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무적의 외계 괴물. 이 괴물은 인간의 뱃속에 기생충처럼 잠복하고 있다가 다 자라면 배를 가르고 튀어나온다.)

 

14.  정치 예측: 바이든은 재선, 트럼프는 유죄 판결을 받다

대선 정치의 진실은 스윙보터, 무소속 등 실제로 선거를 결정하는 유권자들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스윙보터인 이유는 3년 반 동안 밀폐된 반향실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투표장으로 향할 때는 낮은 인플레이션, 높은 고용률, 탄탄한 경제, 미군이 개입하지 않은 세계 곳곳의 분쟁, 미국에 대한 범죄로 동료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공화당 후보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지막 예측에 대한 증거는 (트럼프가 피고로 출석해야 하는) 세 번의 개별 재판에서 제출되며, 세 번의 재판을 모두 이길 확률은 끔찍합니다: 연방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단 한 번의 재판에서 징역형을 피할 확률은 30%에 불과하며, 세 번의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을 확률은 2.7%(30% * 30% * 30%)에 불과합니. 2024년에 우리는 노인을 등치려는 범죄자가 등장하는 리얼리티 쇼와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법정 소송을 지연시켜 자신을 사면하는 것이 플레이어의 임무인 게임 쇼 사이를 채널 서핑하며 시청하게 될 것입니다. 맙소사, 우리 지금 정말 엿같아요.

(: 전통적으로 민주장 지지자인 갤로웨이는 그래도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을 선택할 것이라고 판단. 현재까지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은 큰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지만 선거 전까지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실제 미군 병력이 파병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스윙 보터 선거때마다 그때 그때 좋아 보이는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 로 하여금 바이든을 다시 선택하게 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

반면 트럼프는 현재 대선 결과 불복, 기밀 유출, 성추문 등 3차례의 재판을 받아야 하며, 대통령 출마 또한 세 번의 재판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그 자신을 사면하는 것 뿐이라는 점을 꼬집고 있음.)

 

과연 몇가지나 적중할지. 2024년 연말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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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스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주만한 크기의 목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 토호 존 더튼 역. 더튼과 충실한 2인자인 장남 리, 변호사인 차남 제이미, 반항적인 카우보이인 막내 케이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천재 딸 베스의 4남매가 변해 가는 주변 환경 속에서 ‘트래디셔널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전통적인 미국인의 가치를 가장 간단히 요약하면 ‘내 집과 내 가족은 내가 내 힘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인 것 같다. ‘정의’의 기준은 ‘네가 넘어오면 결과는 네 책임이다’고, 좀 더 나아가 ‘자기 방어’의 기준은 ‘나와 내 가족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이든 제거해도 된다’가 된다.
 
이 ‘무엇’ 안에는 해충과 방울뱀, 인간이 모두 동등하게 포함된다. 존 웨인 영화 속 세계가 21세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자못 충격적이다.
 
보다 보면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다. 몬태나 주와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경찰력을 비교해 보면 각각 201명대 250명,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몬태나 주엔 남한 4배 정도의 넓이에 1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경찰 한 명이 약 115제곱킬로미터를 커버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 <옐로우스톤>에선 ‘시체 버리는 장소’가 자주 등장한다. 한 인물이 “왜 늘 시체는 여기다 버리느냐”고 질문하는데, 대답이 이렇다. “여기서 사방 100마일 내에는 인가도, 경찰도, 보안관도 없기 때문이지.”
 
케빈 코스트너는 말보로 광고에 나오는 듯한 19세기적 카우보이 보스였다가, 적들을 거리낌없이 제거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냉혹한 범죄단체 수장이었다가, 결국은 전통적인 미국의 개척정신을 수호하는 신념의 화신으로 미화된다. 총 몇방 맞은 정도로 의사 신세를 지는 것은 수치고(정말 존 웨인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적들조차도 결국은 그를 존경하게 된다(물론 대부분 그 전에 시체가 되어 황무지에 버려진다). 한국의 꼰대 아저씨들 따위는 그 앞에 가면 순진한 유치원생처럼 보일 듯한 느낌이다.
이런 가치관에 동의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고, 미국의 단면을 본다고 생각하면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다. ‘아무리 악인이지만 내가 인간의 목숨을 이렇게 빼앗아도 되는가’ 따위의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고구마가 없다. 진행도 빨라서 정신을 차려보면 5시즌 순삭.
물론 보고 있으면 버본이 마시고 싶어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티빙에 시즌5까지 있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서서히 테일러 셰리던 월드에 젖어들고, 다른 작품들까지 모두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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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연이겠지만 2023년 상반기에는 재미있게 몰두해서 본 드라마가 많았던 반면, 하반기에는 재미있을 뻔 하다가 만 드라마들이 많았던 듯 합니다. 굳이 외면한 작품으로는 병자호란-소현세자로 이어지는 시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연인>을 처음부터 안 본 정도? 

아무튼 나중에 생각해 보면 2023년은 개인적으로 '테일러 셰리던의 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미드계의 박봉성'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이 양반 정말 대단합니다. 2023년 현재 <옐로우스톤> 시즌 6, <라이오니스> 시즌2,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 시즌3, <1923> 시즌2, <털사킹> 시즌2를 동시에 자신의 크레딧으로(작가/제작)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아무리 밑에 유능한 작가들이 많고, 대본 공장을 심하게 돌려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대부분 다 재미있고 성공하고 있다는...)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드라마 중에는 역시 상반기의 <글로리>와 <카지노>가 워낙 강렬한 탓인지 그 뒤로 <소년시대>가 오기 전까지 그닥 인상적인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 정도...? 

 

옐로우스톤, 1863, 1923

테일러 셰리단 월드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아마도 2023년의 가장 결정적인 선택이었던 듯. 미국 몬태나 주를 무대로 '그 자체가 서부 개척사'라 할 수 있는 더튼 가문의 150년을 한꺼번에 훑어보는 이 장대한 사가에 한번 발을 들여 놓은 뒤로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옐로우스톤>은 현재 몬태나의 실세인 대 목장주 존 더튼의 삶, <1863>은 처음 더튼 가문이 어떻게 서쪽으로 역마차를 끌고 이동해 몬태나까지 오게 되었는지(사실 오레건으로 가다가 중간에 멈춘), 그리고 해리슨 포드가 주연인 <1923>은 자동차가 말을 밀어내는 시대에 미국 서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저런 스틸컷을 보면 이 드라마가 <초원의 집> 같은 미국의 전원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몬태나 주는 19세기 후반과 큰 차이 없는 야망과 살육의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드보일드 대하 드라마.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옐로우스톤>의 다섯 시즌, 그리고 그 조상들의 이야기인 <1863>과 <1923> 을 보고 있으면 어쩌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고 또 되려고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미국. [티빙]

옐로우스톤, 서부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옐로우스톤, 서부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

fivecard.joins.com

털사킹

테일러 셰리단 월드는 몬태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잘 나가던 뉴욕의 마피아 중간 보스에서 하루 아침에 오클라호마주 털사를 나와바리(?)로 받은 실베스터 스탤론. 30년의 옥살이 끝에 지성과 펀치를 겸비하게 된(노인 우습게 보는 동네 깡패들을 한방에 제압하고 돌아서서 검찰 여수사관에게 치근댈 때에는 세네카를 인용할 수 있는 남자!) 스탤론의 인생 2모작 이야기인 셈인데, 일단 보시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듯. [티빙]

 

라이오니스

셰리던은 <옐로우 스톤> 시리즈와 <털사 킹> 외에도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과 <라이오니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신통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중 더 재미있었던 쪽은 <라이오니스>. 근육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미 특수부대 장르에 여자들이 주도하고 여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새로운 유닛(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에 대한 이야기다.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은 시즌2로 가며 엿가락 신공이 작용하고 있는 듯 해서 애정이 식었지만 이 쪽도 팬이 많다는 정도는 언급해도 좋을 듯.  (이상 테일러 셰리단 시리즈는 미국에서는 파라마운트, 한국에서는 웨이브였는데 최근 한국 서비스 OTT가 티빙으로 바뀐 듯.)

조이 살다나, 니콜 키드먼의 조합이 생각보다 좋다.  [티빙]

아무튼 여기까지가 테일러 셰리던 시리즈.

글로리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2023년의 드라마로 과연 이 작품을 빼놓고 뭘 얘기할 수 있을지. 오히려 <글로리>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에 2023년을 빛낸 다른 한국 드라마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여러 학폭 사태로 인해 하늘이 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무적의 송혜교 외에도 주변의 악역 하나 하나, 그 악당들의 주변 인물 하나 하나까지 모두 살려낸 대본은 실로 '드라마의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넷플릭스]

소년시대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이성한 감독의 2009년작 영화 <바람>. 그리고 충청도를 무대로 했던 영화 <불타는 청춘>이나 뭔가 촌스러운 큐슈 기지촌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이상일 감독의 <69>는 아마도 반면 교사 역할을 했을 듯. 어떤 면에서는 일본 만화 <엔젤전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소년시대>제작진의 위대함은 이미 존재했던 이 많은 작품들을 보고 본인들이 아쉬웠던 점을 후련하게 털어낸 뒤 완벽에 가까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점. 대본, 연출, 그리고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해 데뷔한 듯한 수많은 젊은 배우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2022년에 박은빈이 있었다면 2023년에는 임시완이 있었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열연. 물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상진이 연기한 호석이가 가장 사랑스러웠다. [쿠팡]

디플로맷

프로페셔널 외교관 부부. 의뭉스러운 대통령의 의지로 영국 전문가인 남편이 아닌 아내가 주영 미국 대사가 된다. 같은 뿌리를 갖고 있고 항상 같은 편이지만 그래도 뭔가 긴장이 흐르는('영국 총리는 미국 대통령의 애완견이냐'는 시각은 항상 존재한다 - 물론 이런 것도 <러브 액추얼리>같은 영화에서 본 거지만) 미국과 영국의 관계. 그 안에서 온갖 음모와 싸우는 용감한 여대사 케리 러셀의 1인 무적 드라마인데, 사고를 치는 건지 아내를 도와주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남편(전남편) 루퍼트 시웰이 은근히 더 빛나는 느낌도 있다. 시즌 2를 기다리는 중. [넷플릭스]

브러쉬업 라이프

회귀물을 참 많이 봤는데, 인생 2회차 드라마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고, 성공한 작품은 더더욱 없다. 아무래도 그만치 쓰기 어려운 듯. 그런데 인생 5회차 6회차 7회차를 그리는 드라마가 나왔다. 일본 드라마 <브러쉬업 라이프>. 야망도 뭣도 없는 평범한 공무원이 어찌어찌하다 살아온 삶을 뒤엎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판타지다.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찰떡같다.

물론 살아 보면, 역시 인생이란 두번 정도 살아서 무슨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과거를 바꾸면 그 과거는 계속 또 다른 과거(그러니까 좀 더 가까운 과거)를 만들고... 아무튼 '젊은 여자들 이야기인데 남자 주연은 하나도 없는' 신기한 드라마. 여자들의 우정이 주제다. 멜로가 없으면 드라마가 아닌 분들께는 비추. [웨이브]

 

플레이리스트

스포티파이라는 셰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음원 앱을 주제로, 그 앱을 만든 창업자, 개발자, 경영자, 그리고 이 사업을 존재 가능하게 한 변호사, 이 사업과 손을 잡아야만 했던 음악산업의 거물,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인 콘텐트를 제공하는 아티스트라는 6개의 시각으로 그 성장 과정을 살펴본 드라마. 꽃미남/미녀/멜로 전혀 없고, 만듦새부터 내용까지 모두 '아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을 주는 혁신적인 드라마. 그런데 재미있다. 특히 IT 비즈니스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는가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강추. 물론 다큐 아님. [넷플릭스]

카지노

시기적으로 살짝 애매하지만 어쨌든 내가 본게 2023년이니 여기에. 결코 흠이 없는 드라마는 아니다. 초반 주인공의 어린 시절 성장 서사가 사실 너무 뻔하고, 너무 지루하다. 하지만 일단 필리핀으로 넘어가면 중간에 끊고 안 볼 수 없게 하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특히 호구 형님과의 시퀀스가 '아... 저기서 멈췄으면' 하는 생각과 '저런 의지 없는 인간은 밑바닥까지 당해 봐야지'하는 묘한 양가감정을 일으킨다. 드라마를 통해 보는 남의 불행은 이런 식으로 즐길 거리를 주는 걸까. 아무튼 일단 흐름에만 오르면 결말까지(그 결말이 꼭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이건 그냥 개취) 한방에 달리게 하는 탄탄한 드라마. [디즈니]

리키시

일본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넷플릭스를 노릴까. 일단 고레에다가 게이샤/마이코 이야기로 물꼬를 텄는데 아무래도 페도파일 냄새가 불편했다. 어디 가서 함부로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없는 드라마(그리고 개인적으로 재미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의 기념비적인 드라마는 바로 이 <리키시>라고 생각한다.

<리키시>는 한자로 역사(力士), 즉 '힘 쓰는 남자=스모 선수'라는 뜻. 모래판을 무대로 강백호보다 10배 쯤 더 말 안 듣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천재형 스모 선수가 어찌어찌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이야기. 전혀 잘생기지 않고, 본받을 데도 없는 주인공이 신선하고 이야기 전개도 좋았는데, 주연급 여성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발암이다. 이런 요소는... 앞으로 일본 드라마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데 분명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너무 뭔가 아저씨 드라마 판 인것 같아 하나 추가하면,

반짝이는 워터멜론

그렇게 많은 2023년의 말랑말랑 청춘 드라마들 중에서 시간을 기다려가며 볼만한 드라마는 이거 하나였다는 생각. 아빠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한국의 그 많은 과거 회귀 작품들 가운데서도 드물게 신선함이 빛났다고나 할까. 특히 최현욱의 신비로운 매력은 정말.  [지금 보려면 티빙?]

기타:

물론 매번 시즌이 바뀔 때마다 다시 얘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만달로리안3>는 따로 꼽을 수 없었다. 좀 경우는 다른데 최근 넷플릭스로 소개된 <나이트 에이전트>도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이미 본지는 꽤 오래 된 작품. 드라마 외의  TV show 로 꼽는다면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데블스 플랜>이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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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창작, 스토리텔링, 미감, 인간의 자의식, 한국 근대사... 근래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내용들이 너무 많이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무튼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데 많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출판 연도와 무관. 그냥 제가 2023년에 읽은 책들 중에 인상적이었던 책들을 추린 리스트입니다. 신간 위주로 읽는 분들께는 조금 죄송합니다.

아무튼 나름 다 좋은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서는 무순. 

내가 된다는 것 (아닐 세스)

분명히 경고한다. 잘 쓰여진 책이지만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우리가 의식이라고 말하는 것, 내가 자의식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뇌가 나 대신 생각하는 것인가, 내 뇌가 바로 나인가. 신중한 답변이 필요할 때 인용할 수 있는 책.

예를 들어 이런 설명들: 내 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밀실 안에서,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몇가지 정보에 의존해 바깥 세상을 해석하려고 한다. 빛, 소리, 색깔, 냄새, 형상, 이런 것들은 뇌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내 감각기관들이 보내오는 전기 신호들 뿐. 뇌는 이 신호들을 어떻게 해서든 해석해서 '세계'라는 것을 조립하려고 애쓴다. 즉... 내가 보고 느끼는 '현실'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에릭 캔델)

환원주의라는 키워드. 인간의 시각은 어떤 대상을 볼 때 시각이 이해할 수 있는 기본 단위로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미술 또한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과거의 미학. 일찍이 세잔이 자연을 원기둥, , 원뿔 등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하고 터너가 갑자기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로스코, 칸딘스키가 새롭게 보이는 책.

 

기억전달자 (로이스 라우리)

소설을 몇가지 읽지 않았는데, 그 소설들 가운데 가장 좋았던 책.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류 문명의 전달에 대한 은유. 그리고 문명을 계승한다는 것의 대가. 과연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소수의 희생이란 어떤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합리화되는가. 어슐라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또 다른 감동.

그리고 무엇보다 짧다. 쉽게 읽을 수 있다.

 

 

창의성을 지휘하라 (에드 캣멀)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사장을 지낸 캣멀이 풀어낸, 한 조직을 크리에이티비티가 넘쳐 나는 조직으로 운영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어떤 조직도 샘솟듯 아이디어가 뿜어나오는 사람들만을 데리고 있지는 않다. 어쨌든 잠언과 같은 명언이 넘쳐나는 책. ‘스토리가 왕이다’ ‘프로세스를 신뢰하라(신뢰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라)’, 그리고 ‘<토이 스토리>는 장난감들이 우리가 안 볼 때 자기네끼리 이야기를 한다면?’이라는 아이디어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같은 말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조지 루카스의 한마디. Do or do not. There is no try.

 

스토리텔링 애니멀 +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조나단 갓셜)

사실 이어지는 내용이라고 볼 수는 없다(같은 사람이 쓴 책이라는 걸 읽고 나서 알았다). 하지만 둘 다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동시에 아주 흥미로운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예를 들면 짧은 결론 중에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보이는 것들 사이에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해 안달을 한다'는 것이 있다.

무표정한 표정의 여자, 수프 한 접시, 관에 든 시체의 사진을 제시하면 그 이야기를 어떻게든 연결해 내는 것이 인간. '한번 각인된 이야기는 수없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검증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요즘 세상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인사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조선잡기 (혼마 규스케)

1884년 갑신정변 현장에서 (F.H. 뫼르셀)

일본 정부의 밀정인 혼마 규스케가 갑신정변 9년 뒤, 갑오경장 1년 전인 1893년 조선에 들어와 견문하고 정탐한 내용. 전 세계를 볼 때 가장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는,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문명과의 만남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던 일본인들의 눈으로 본 당시의 한국은 처참한 후진국이었다. 과연 어떤 부분들을 보고 일본인들은 식민지 개화의 자신감을 얻었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참담하다.

<1884 갑신정변 현장에서>의 원제는 ‘Events Leading to the Emeute of 1884’. 민영익의 호의로 한국 지방 탐사 여행을 떠났던 독일 상인 뫼르셀은 남도를 여행하던 도중 서울에서 변란이 일어나 민영익이 생사를 알 수 없는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에서 반란에 휩싸인 뫼르셀의 불안감이 생생하게 살았는 여행기. 모세을(牟世乙)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독일 상인인 뫼르셀 F.H.Morsel 은 독립신문에 1호 광고를 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라제니 (아다치 켄/ 모리타카 유우지)

야구만화를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과연 이렇게 시속 150km를 던지는 광속구의 대투수도, 40홈런을 때려내는 강타자도, 열혈 고교 에이스도 나오지 않는 야구만화가 있었던가. 죽을 힘을 다해 던져야 140km가 나올까 말까 한 중간계투 요원인 주인공은 그라운드에는 돈(제니)이 묻혀 있다는 말에 따라 성실하게 연봉을 챙겨가는 생계형 프로 야구 선수. 매년 신인들이 들어오고 고참들이 쓸려 나가는 치열한 경쟁 현장에서 펼쳐지는 그의 생존기가 매력 만점.

미 가장예쁜 유전자만 살아남는다 (낸시 에트코프)

대체 왜 인간은 예쁜 것을 좋아할까. ‘Beauty is in the eyes of the beholder’라는, 누가 했는지 알 수 없는 말은 미감이란 인류 각 개체의 독립적인 감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최신 뇌과학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그 문제의 개인차보다는 공통점이 더 크다. 심지어 갓난 아이도 성인들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예쁜 것에 대한 반응은 본능인가? 하버드 대 교수 낸시 에트코프의 기발한 분석. [그런데 안타깝게도 절판. 중고는 많이 팔립니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오구라 기조)

서울대에서 한국 정치사상을 연구한 일본인 저자의 눈으로 본 성리학이 한국인에게 미친 영향, 혹은 한국인이 성리학을 내면화하면서 생긴 일에 대한 정리서. ‘남이 본 우리 이야기인 만큼 시사점은 넘쳐 흐른다. 과연 이 책은 한국을 미화하는 책인가, 폄하하는 책인가. 직접 판단하시면 좋을 듯.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고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고

너무 지나기 전에 이 책에 대해서는 어디엔가 한마디 남겨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는 다년간 서울대에서 수학한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가 쓴 책이다. 한국인의 저변을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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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유현준)

지난해 읽은 가장 강력한 여행 뽐뿌질 책. 당장 짐을 꾸리고 싶어진다.

인문 건축 기행, 무작정 가보고 싶어지는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인문 건축 기행, 무작정 가보고 싶어지는

여행을 좋아한다. 당연히 여행을 꿈꾸게 하는 책도 좋아한다. 유현준의 . 지금까지 나온 유현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제목들을 생각하면 왜 이 아닌지도 궁금하지만(아마도 게으른 서점을 위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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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시선 - 인류 최초의 창조 학교 바우하우스 이야기 (김정운)

엄청난 노작. 대체 그로피우스의 이상에서 아이폰으로 연결되는 이 문명의 선이란. 

창조적 시선, 바우하우스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창조적 시선, 바우하우스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 10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볼륨. 등장인물만 대충 꼽아 봐도 조너선 아이브, 디터 람스, 스티브 잡스, 오스카 코코슈카, 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요하네스 이텐,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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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10권 같은 13권. 그리고 2023년, 반드시 거론해야 할 책들은 다음과 같다.  

90년대, 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 (척 클로스터만)

이런 식의 역사를 써 보고 싶다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바츨라프 스밀)

스밀은 왜 분노하나. 왜 사람들은 스밀에게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나. <팩트풀니스>를 감명깊게 보신 분이 보셔야 할 책.

에디톨로지 (김정운)

창조란 없다. 이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일 뿐. 

신통기 (헤로도투스)

나온지 너무 오래된 책. 하지만 이 책이 있어야 할 이유를 100가지는 댈 수 있다. 

기묘한 중국사 (왕레이)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책. 무송은 어떻게 술 한말을 마시고도 호랑이가 나오는 고개를 넘을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다 믿어도 좋을지는...

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미즈키 시게루)

개인과 역사는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는가.

축제만세! (타카기 나오코)

일본에는 왜 이렇게 축제다운 축제가 많은 걸까. 이 사람처럼 놀러 다니고 싶다.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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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파리를 방문하기로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숙소 알아보고, 그리고 그 다음은 연말로 예정된 공연들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손꼽히는 대도시 파리에서 꼭 가 보고 싶은 공연장은 뭐니뭐니해도 '오페라'라는 지명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오페라 가르니에(영화든 뮤지컬이든, <오페라의 유령>을 보신 분이라면 '아 거기?'하실 바로 거기다), 그리고 라 빌레트에 새로 지어진 파리 필하모닉 홀이었다. 

대부분의 공연 일정이 정해지는 것은 대략 6개월 전. 그런데 그로부터 한달 안에 중요한 공연들은 매진이 되어 버린다. 베를린 필하모닉 때도 그랬지만, 현장에 간 상태에서 '아, 베를린에 온 김에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이라도 한번 보러 갈까?'라고 생각하면 이미 늦다. 아주 운이 좋지 않으면 표를 구할 수 없다. 다만 일찍 표가 열린다고 해서 무턱대고 사기도 좀 불안한 것이, 한번 사고 나면 환불은 불가능(정말이다). 산 사람이 알아서 다른 사람에게 티켓을 파는게 최선이다. 그래서 신중하게 사야 한다.

2023년 12월, 가장 눈에 띄는 공연은 마리아 칼라스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이었는데, 이건 본 순간 이미 매진이었다. 실제로 티켓을 팔기는 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오페라 가르니에 후원회원을 위한 특별 공연 같은 형식으로 관객들을 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으로 꼽은 공연이 바로 이지 킬리앙 Jiri Kylian의 안무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공연하는 <Jiri Kylian Evening> 공연. 흔히 지리 킬리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체코어로 Jiri라는 남자 이름은 '이지'라고 읽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아무튼 네덜란드 발레 시어터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공연단체로 끌어올린 킬리안은 '현대 발레의 나침반'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은 안무가(집에 그의 DVD를 두개 갖고 있다). 특히 강한 인상을 받은 <Petit Mort> 도 이번 공연 리스트에 들어 있는 걸 보고 이건 꼭 봐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공연장이 바로 오페라 가르니에. 사실 이름이 오페라지만 이미 오페라를 위한 공간으로선 수명을 다했다. 지금은 공연 프로그램의 90%가 발레. 오페라는 새로 지은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거의 모두 소화된다. 혹자는 예쁘기만 한 공연장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발레 프로그램을 놓고 보면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였는데, 며칠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공연이 매진이 되어 버렸다. 이럴수가. 다행히 대기 모드를 띄워 놓고 기다린 결과, 약 한달 뒤에 빈 자리가 나왔다(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늦게 푸는 좌석이 있는 것인지). 바로 낚았는데, 사실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19세기형 극장의 박스석이 어떤 분위기인지 맛볼 수 있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어쨌든 공연 당일. 토요일 밤의 파리 오페라 주변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 날씨인데도 사람이 막 흘러다니는 분위기였다. 보수중이라 건물 앞부분은 차폐막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그 차폐막까지도 명품 광고... 그리고 극장 안으로 들어간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사진과 동영상을 보시면 느낌이 오실 듯.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 극장을 처음 본 사람들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에 맡긴다. 2층과 3층의 회랑에서 바라보는 계단과 기둥의 장식들이 너무나 멋지다. 아마도 같은 유럽이라도 러시아나 발칸 제국 같은 변방 사람들의 눈에는 이것이 바로 파리와 다른 도시들을 구별하는 기준처럼 보였을 것 같다. 내게도 '알겠나? 이게 바로 문명이야'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아마 21세기의 사람들이라면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같은 건축물에서 느꼈을 그런. 

각각 다른 안내원에게 몇 차례 티켓을 보여주고 간신히 찾아간 곳은 무대 바로 앞의 2층 박스석. 묘한 구조라 1층과 2층의 구별이 모호하지만 어쨌든 박스석 중에는 가장 낮은 위치, 그러니까 무대와 거의 수평 위치에 있다.

바로 건너편에 유명한 '유령의 박스'가 있다. 실제와는 무관하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 이후 저 자리를 찾는 관광객도 많다고 들었다. 물론 지금은 팬텀 아닌 일반 관객들이 그 자리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를 들면 <오페라의 유령> 도입부에 나오는 그 유명한 샹들리에가 있고, 그 뒤에는 그 유명한... 샤갈이 그린 천정화가 있다. 사실 전날 퐁피두 센터에서 샤갈이 이 천정화를 그리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던 스케치들을 보고 온 다음이라 감동이 더했다. 

 

그리고 공연.

맛보기로 하자면 이런 거다.

https://youtu.be/MKOqRvcLknE?feature=shared

뭐 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Gods and Dogs>, <Stepping Stones>, <Petit Mort>, <Sechs Tanze>의 네 부분으로 되어 있었고, 고개를 너무 내밀고 보느라 목이 좀 아팠지만(무대에서 너무 가까운 박스석은 비추. 절대 비추. 더 가까운 박스석의 관객들은 대체 어떻게 공연을 봤는지 궁금하다), 무용수들의 안무 소화는 완벽했다. 드문드문 동양인 무용수가 보여 혹시 박세은...? 일까 했는데 그 뒤를 이어 파리 오페라 발레에 합류했다는 강호현이었다. 매우 훌륭했다.

물론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공연을 마친 뒤 76세의 이지 킬리앙이 직접 무대에 오른 것. 20세기의 문화 영웅들이 하나씩 하나씩 흘러간 별들이 되고 있는 지금, 현대 발레의 이정표를 세운 거인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공연을 마치고 숙소로 걸어가는 동안, 절로 발길이 둥둥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실 구경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공연장, 좌석, 무대, 그 밖에 극장에서 펼쳐질 수 있는 파티를 위한 공간, 지금도 바로 쓰이고 있는 회랑 공간 등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파리 시민이냐, 관광객이냐의 차이는 이런 곳을 일상 공간처럼 향유하고, 저 자리에 여유있게 서서 칵테일이나 와인을 나누며 대화의 꽃을 피우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느껴질 정도.

물론 뭐니뭐니해도 극장의 완성은 무대.

낮시간에 오페라 가르니에 건물의 내부 투어를 하는 가격이 15유로. 블로그들을 보다 보면 내부 광경에 감탄해 '언젠가는 이 안에서 직접 공연을 보리라'는 평을 남긴 분들이 많은데 그런 언젠가는 절대 오지 않는다. 다음에 파리에 가기로 되어 있는 분들, 방문 기간 중의 오페라 가르니에 공연 정보를 꼭 살펴 보시길. 그리고 반드시 공연을 보시길. 거기서 공연을 보고 그 안을 둘러본 느낌은 그동안 파리에서 했던 어떤 경험보다 값지고, 인상적이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턱시도를 입고,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가신다면 더 기막힌 경험이 되겠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라도 그 안에 머무는 동안은 정말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읽고 그대로 하실 당신, 누구든 후회 없을 거라고 믿는다. 

 

P.S. 파리 여행의 기록을 여기다 남기긴 남길 것인데, 한번에 다 숙제하듯 쓸 것도 아니고, 일단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을 포스팅으로 남깁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직 마음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파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전에도 그랬듯, 여행기는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곶감 뽑아 먹듯 올릴 예정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한번씩 들러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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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번을 단 포인트가드 중 유명한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피닉스의 전설 케빈 존슨이 송태섭의 모델로 꼽혔던 것은 그리 크지 않은 키와 함께 7번이라는 번호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2. 1m68이라는 설정신장때문에 먹시 보거스나 스퍼드 웹이 모델이라고 주장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송태섭의 작화상 신체 비율은 이 미니 가드들의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왕년의 찰스 바클리마저도 길들일수 있었던 불같은 리더십을 보면 역시 케빈 존슨... 

2. 발군의 스피드, 넓은 시야, 패싱 감각, 호승심, 리더십, 그리고 상대적으로 빈약한 슈팅력이 특징인 송태섭. 하지만 팀의 주축인 센터와 3점 슈터가 졸업하는 이상 새 팀에서는 주장으로서 득점원으로도 잠재력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 선수. 그 송태섭의 시각으로 슬램덩크의 하이라이트를 재구성한다는데, 가슴이 뛰지 않을수 없었다. 

(평소 가문 섭자 항렬의 3대 인물이 송태섭과 막걸리 장인 송명섭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3. 북산 5인방이 하나씩 스케치에서 인물로 바뀌며 걸어나오는 인트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 벌써 이러면 안되는데. 애니메이션 상의 경기 묘사에서 선수들의 동작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다. (괜찮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 

4. 팬들 사이에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피어스>라는 단편이 송태섭의 과거 이야기냐 아니냐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던 적이 있다. 영화 <퍼스트 슬램덩크>는 처음엔 마치 <피어스>를 따라갈 듯 하다가... 결국은 전혀 다른 길로 간다. 



5. 하지만 문제는 송태섭이 주인공(?) 인데도 불구하고, 배경으로 계속 삽입되는 개인사(송태섭의 성장기)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뒤로 갈수록 그 성장기가 경기의 긴박감을 심하게 떨어뜨린다. 이 부분 매우 아쉽다. 

6. 어쨌든 북산이 이긴다(...스포일러인가?). 당신이 듣고 싶어 했던 그 주옥같은 명대사들도 상당수 나온다. 그리고 강백호의 클라이막스는 정말... 와... 멋지다. 역시 주인공은 강백호. 눈물이 괸다. 



7. 이러니 저러니 했지만, <퍼스트 슬램덩크> 소식을 듣자마자 '어 이건 봐야지' 생각한 사람은 무조건 달려가 볼 것. 이건 '잘 모르는데 요즘 핫하다니까' 볼 작품은 아니다. 이 극장판은 어디까지나 <슬램덩크>의 짤 한장만 봐도 그 장면의 대사가 생각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그 밖의 사람들은... 모르겠다. 보든지 말든지. 

8. 자막으로 봤는데 더빙은 어떨지 궁금. 자막의 이름 표기는 모두 한국식이라 위화감은 없다. 단지 강백호 역의 일본 성우가 좀 심하게 아저씨 목소리... (참. 극장이 아저씨 판일줄 알았는데, 80% 이상이 10~20대라서 놀랐다) 

9. 아쉬움: 변덕규 안 나옴(무 깎는 신 매니아로서 매우 안타까웠음). 

10. 기왕 <퍼스트 슬램덩크>로 시작했으니 텐스, 트웬티스까지 극장판 오리지날로 계속 이어주십쇼. 

이노우에 사마. 오래 오래 사세요.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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