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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이 압도적인 호쿠사이 미술관.

그런데 사실 이게 다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었다. 

호쿠사이의 고향 스미다라는 점을 강조한 것까진 좋은데, 정작 호쿠사이의 그림을 그리 많이 소장하고 있지는 못했다. 

전시실은 3층의 두개가 전부. 2층은 특별 전시 때만 사용한다고 한다. 

전시실 하나만 보면 400엔, 두개 다 보면 700엔. 그런데 표를 사려고 서 있으면 옆에서 친절하게 얘기를 해준다. 400엔으로 볼 수 있는 건 전부 레플리카라고. 

뭐요 레플리카? 호쿠사이 미술관이라고 이름을 걸어놓고 레플리카?

뭐 기본적으로 우키요에는 전부 판화다. 그 판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느 것인지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건 좋았다. 

그 유명한.... 그런데 물론 레플리카.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요시와라의 새해' 그림. 

요시와라는 에도 시대의 유명한 유곽 지역. 새해를 맞아 요시와라의 여인들이 몸 단장을 하고 손님맞이 준비를 하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요란하게 그려져 있다. 

물론 '풀 스케일 하이 데피니션 레플리카'라고 쓰여 있다. 

가나가와의 혼모쿠 해안 그림. 그 유명한 가나가와의 파도 그림의 자매편 쯤 되는데, 역시 레플리카. 

조개줍기 그림. 언뜻 봐도 몇군데 벗겨진 것이 오래된 느낌이 든다. 혹시 이건...?

진품이네. 그 유일하게 하나 있는 진품에는 '사진찍지 말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아. 미안해. 벌써 찍었네. 이거 하나는 봐줘. 

이런 식의 삽화들, 

그러니까 이 두 그림은 모두 후가쿠 36경이라는 시리즈의 일부다. 후가쿠( 富嶽)는 후지산의 별칭. 

당연히 후가쿠 36경에 담긴 그림에서는 모두 후지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판화집에는 모두 46장의 그림이 실렸다는데(36경이라더니?) 당시에도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과연 몇부나 찍었을지?

(물론 이 그림들도 모두 레플리카...)

사실 호쿠사이의 작품들 중에서 특별히 맘에 드는 건 이런 식의 귀신 요괴 그림들.

결국 현장에서 이런 우키요에로 그린 귀신 그림 모음집을 샀다.

그리고 우키요에 미술관을 따로 찾은 보람은,

호쿠사이의 아틀리에(?)를 재현해 놓은 공간.

제자 츠유키 릿츠가 그의 작업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대로 방을 재현해 놓았다. 

방이 좀 추웠던 듯? 옆에 앉은 여인은 당연히 아내겠거니 했는데 위의 설명을 다시 읽어 보니 딸이라고.

아니 딸이 왜 나이가 더 들어 보여... 살림살이가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기야 당시의 우키요에는 포스터, 포장지, 책 표지로 마구 뿌려졌다고 하니 뭐 그럴수밖에. 대신 후손들에게는 꽤 좋은 일을 한 편이다. 호쿠사이의 이름만 내건 이 허접한 미술관도 꽤 많은 방문객을 모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호쿠사이의 공로 중 하나는 만화를 발명(?) 했다는 것인데, 

그의 작품집 중에는 호쿠사이만화(北斎漫画)라는 이름인 '그림 그리는 법 교본' 풍의 책이 여러 가지 있다. 

대략 이런 식으로 된 책인데, 인물 표정의 단순화, 동작, 표정을 통한 의미 전달 등이 현대 만화의 기본을 모두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호쿠사이 만화가 줄거리와 대사가 있는 현대 만화와 바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cartoon의 한자 번역어가 '만화'가 된 것은 바로 이런 호쿠사이의 공헌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현재 모든 일본의 만화가/애니메이터의 조상은 호쿠사이라는 말이 자주 통용된다. 

물론 이 미술관에 전시된 호쿠사이 만화는 진품인지.... 역시 촬영 금지. 

그리 크지도 않은 전시실 2개 뿐인 호쿠사이 레플리카 뮤지엄은 30분 정도면 다 볼 수 있다. 더 있고 싶어도 더 볼게 없다. 

기념품점에서 도록이나 카드를 사는 정도로 끝. 

건물만 멋진 호쿠사이 미술관 안녕. 

기운이 빠져 호텔로 후퇴하기로 했다. 

오는 길에 다이몬 역 앞에 있는 도쿄 유수의 붕어빵집을 들렀다.

한국에서는 '붕어빵' 이지만, 아무래도 그 원조일 일본에서는 '타이야키'라고 부른다. 타이는 돔. 

돔과 붕어의 몸값 차이가 있으니, 한국의 붕어빵과 일본의 타이야키는 몸값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팥, 고구마, 크림이 든 타이야키는 300엔. 계절 한정 상품인 사과가 든 것은 330엔. 

한국에서 붕어빵이 이제 천원이라고 개탄을 했는데 여기선 이미....

그 이름도 거룩한 나루토 타이야키 본점. 나루토는 물결이 거세기로 유명한 세토나이카이의 해협 이름이다(닌자와 무관). 거기서 잡은 도미가 맛있다고 해서 타이야키 이름에 나루토를 붙이는 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센스.... 

(하긴 영덕 게빵이 있는 한국 사람이 이런 말 하면 안 될지도.)

잘 보니 토카치(홋카이도의 지명이다)의 명산 팥, 나루토의 고구마를 썼다는 것 같다.

근데 한국 붕어빵도 이렇게 번듯한 가게에서 위생복 입은 직원이 만들면 한개 3000원쯤 하려나?

3000원짜리 단팥빵이 있는 걸 보면 그리 놀라운 가격이 아닐수도. 

돈 날아가지 말라고 누르는 역할의 도미도 있다. 천엔 내고 3개. 

사과에는 애플파이 같은 사과 프리저브가 들었고, 

팥에는 팥이 가득 들었다.

껍질이 한국 붕어빵보다 훨씬 얇은데다 팥도 연양갱 수준으로 달다.

양갱에 껍질을 살짝 붙인 느낌. 어우 달어. 난 인제 됐네. 

이렇게 해서 레플리카 미술관을 다녀온 느낌으로 똑같이 퐁퐁 찍어내는 붕어빵으로 마무리.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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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인가 도쿄를 처음 갔을 때, 혼자였다. 날은 꽤 쌀쌀했고,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일본어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마디도 못한다. 여행안내서에서 우에노라는 지명을 처음 봤다. 숙소가 신주쿠 주변이라, 녹색 야마노테센을 타고 한참을 갔다.

우에노공원이라는 이름 안에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이 한데 모여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한적한 공원. 차가운 비가 스물스물 내리는 길을 혼자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데, 진입로에 뜬금없이 군고구마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침을 챙겨 먹었지만 군고구마 냄새는 위협적이었는데 가격이 400엔. 당시 한국 기준으로 고구마 하나에 4천원은 너무 비쌌는데 심지어 웬만한 무 만큼 고구마가 컸다. 

"하프?"

손님이 없어서 그랬는지, 외국인이 딱해서 그랬는지 아저씨가 절반을 뚝 잘라 주고 200엔을 받았다. 그때부터 우에노는 내 기억 속에 군고구마로 남았다. 

어 하고 들어가보니 여기는 아시아관. 우에노 일본 국립박물관에는 3개의 건물이 있다. 하나는 한국, 중국, 태국 등의 유물을 전시한 아시아관, 일본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본관, 그리고 표경관이라는 건물이다. 건물은 표경관이 제일 예쁜데... 뭔가 헬로 키티 전시회를 하고 있다. 

다 돌아보기엔 기운도 딸리고, 아무래도 관심있는 건 일본 유물. 본관으로. (사진은 재팬가이드. 건물 정면 사진을 못 찍음)

1938년에 지어진 건물. 고색창연한 1층 로비와 계단. 

눈길을 확 사로잡는게 화려한 기모노. 

뭐 제대로 기모노를 보자면 복식박물관 같은 것이 따로 있겠으나,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인 만큼 하나 하나 수로 놓인 장식이 어마어마한 공력이 들었음을 바로 알수 있게 한다. 

사실 기모노에서부터 느껴지는데, 워낙 오래 전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전시의 규모가 좀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서울의 국립박물관처럼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지도 않고, 주제별로 일본을 대표하는 유물들을 보여주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다는 느낌? 

이를테면 죠몬시대, 아스카 문명, 무로마치 시대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게 아니라 유키요에, 기모노, 그림, 칼, 요로이와 구조쿠(갑옷), 도자기, 불상 등 주제에 따라 유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한 주제에 대해 전시된 유물이 그리 많지도 않다. '보셨죠? 이렇게 대단한 유물이 많아요' 라는 태도가 아니라, '뭐 이런 겁니다' 정도랄까. 대신 동선이 훨씬 여유롭고, 이해를 돕는 보조 자료(이를테면 영상)의 활용이 많았다.

그리고 모든 유물의 설명이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로. 

여름에 도쿄 민예관을 다녀온 뒤로 도자기에 요즘은 눈길이 간다. 이런 19세기식의 화려한 스타일.  

이건 17~18세기 에도 스타일. 에도 시대에도 '교야키(京燒)'라고 부른 것은 교토 도자기였다니. 바닥에도 '미조로가이케'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는 것은 이때 이미 도공들의 브랜드가 진행되었다는 얘기겠지. 철화, 청화, 백토가 모두 동원된 표현 기법도 세련되어 보인다. 

이것이 임진왜란때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모여 살았던 큐슈 이마리(伊万里) 도자기. 아직까지는 독자적인 스타일 보다는 중국 경덕진 도자기 스타일의 작품들을 만들 시절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그 이전 것들인, 한반도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건너간 물건들도 꽤 많았다.

'겐토'라는 이름까지 붙여져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명품으로 꼽히던 작품.

우리 눈으로 보기엔 그냥 흔한 밥공기 같은 이런 물건들이 일본에서는 고려다완이라 불리며 엄청난 귀물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다. 

그리고 눈길이 가는 건 이런 정교한 완구류,

한국 유물 중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이런 정교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 소풍 세트라니.

주문 생산일지, 공산품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물건이 만들어지고 팔렸다는 것은 취향이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수준의 도시 문명이 통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얘기.

그리고 우타가와 히로시게(이때까지는 우타가와도 한 사람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우타가와는 우키요에 화가 패밀리의 이름. 스승이 우타가와면 제자도 데뷔 후 우타카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의 우키요에를 보다가, '내친김에' 스미다에 있는 호쿠사이 미술관을 가기로 맘 먹었다. 

전철역에 내리면 보이는 엄청 큰 간판. 전철역에 '스미다'가 살짝 가렸다.

어쨌든 호쿠사이가 살았다는 동네라 '스미다'를 강조한다.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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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후쿠오카 맛집이라는 키와미야. 도쿄역 1층 식당가에 도쿄점이 있다.

소싯적부터 함박스텍이 진정한 소울푸드라고 생각하며 자라온 터라 맛있다는 함박스텍이라면 닥치는대로 먹어왔다. 키와미야는 極味라는 이름 그대로 궁극의 맛을 지향한다는 집. 거의 순 살코기 덩어리인 함바그를 손님이 직접 숯불에 구워 먹는 컨셉이라니. 어찌 당기지 않을손가. 

그러나 첫날은 보기좋게 실패하고, 둘쨋날은 오픈런으로 맞섰다. 11시 오픈이라니, 10시 반에 가면 충분하겠지.

물론 줄은 좀 서 있는데, 전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 이 정도면 충분히 들어가겠다 싶었다.

줄서기가 어찌나 요란한지, 대표로 줄서기 금지가 난리. 하지만 곧 이것 때문에 분노하게 된다. 

오른쪽으로 꺾어져서도 몇명 더 서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오픈런 성공이다 싶었는데... 바로 앞의 키작은 여자가 문제. 

이윽고 셔터가 올라가고, 입장 준비 시작. 4인석 같은 것은 없고, 이런 식으로 빙둘러 카운터에 앉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열기 5분 전쯤 앞에 줄을 선 여자 옆에 어디선가 4명의 일행이 날아와 붙는다. 다들 여행가방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메 열차에서 내렸거나, 열차를 타러 차비를 하고 나온 느낌. 줄세우기 담당 직원이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길래 '미리 대표로 줄서기 없기'를 금지하고 있는 매장인 만큼 제지를 하겠거니 했는데....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거기서 처음 오픈런 줄이 딱 끊길 줄이야. 

왜 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줄에 서 있던 여자가 일행이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우리는 손님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라나(번역기를 돌려서 알려줌). 이런 젠장. 

다행히 회전은 꽤 빠른 편이어서 약 20분 뒤에 자리가 났다.

아무튼 이렇게 꽉 찬 카운터와 음식 냄새를 맡으면서 20분 대기. 

여러가지 조합이 있는데, 대략 괜찮아 보이는 스테이크+함바그 세트를 주문했다. 

요만한 스테이크 한 덩어리와,

역시 요만한 함바그 한 덩이를 준다. 

그리고 다양한 소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앞에서 직원이 직접 함바그를 동그랗게 빚고,

밥, 국(콩소메 수프), 양배추 샐러드를 준다. 이 세가지는 무한 리필. 

그리고는 철판 위에 이렇게 살짝 레어 상태로 준다. 앞은 구운 마늘편. 

이게 아마 스테이크 100g + 함바그 120g의 2480엔 짜리였던 듯. 

여기에 400엔을 추가하면 밥, 수프, 양배추는 무제한 리필이다. 내 기준으로 딱 기분좋은 점심 사이즈. 

그리고는 자기 앞의 철판에 알아서 더 익혀 먹는 구조. 

레어 상태로 그냥 먹든, 더 익혀 먹든 그건 손님 마음이다. 

각종 소스를 부어 놓는 틀. 

일단 레어로 한점 맛을 본다. 

워낙 마블링 천지의 고기라 역시 더 익히는 게 좋아 보인다. 

치지지직 

아 좋다. 육질도 양념도 A급. 흰 쌀밥과 아주 궁합이 좋다. 

그리고 역시 우유맛이 진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 

줄서기 파동만 없었으면 참 괜찮은 맛집으로 기억에 남았을텐데, 유감이다. 그래도 그냥 가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 먹어보길 잘 했군. 그런데 솔직히 줄이 너무 긴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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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야역에서 아 저기인가보다 하고 빌딩 숲 속으로 쑥 들어왔는데 별세계였다. 작은 정원처럼 꾸며진 예쁜 공간.

지도상으로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은 황거라고 불리는 천황의 거처와 도쿄역 사이에 있다. 말하자면 도쿄의 구 도심에서 심장부에 위치한 곳이다. 요즘은 옛날같지 않겠지만 미쓰비시라는 이름은 과거 제국을 꿈꾸던 시절부터 일본을 상징하는 브랜드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종합상사였고, 성룡은 모든 출연작에서 미쓰비시 자동차를 타고 나왔다. 

그 미쓰비시 그룹의 1호관, 그러니까 첫번째 사옥이 있던 자리라는 얘기. 물론 그 1호관은 지금으로 봐선 아주 조그만 3층짜리 건물이지만, 미쓰비시 그룹의 후예들은 그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주변을 으리으리한 수십층짜리 오피스 건물들로 둘러쌌다. 미술관을 나와서 알았지만, 도쿄 역까지 가는 동안 큰길 따라 '미쓰비시'라는 이름을 단 빌딩들이 죽 이어진다. 저 블록 하나가 전부 미쓰비시 타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저 시계가 보이는 곳이 말하자면 미쓰비시 타운의 입구,

그 입구로 들어가 몇미터 이동하면 이런 빨간 벽돌 건물이 보인다. 이게 바로 미쓰비시 1호관.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건물 한 켠에 내력이 적혀 있는데, 대강 1894년에 빅토리아 시대 양식을 살린 건물로 지어졌고, '한 블록의 런던'을 도쿄 시내에 재현해 보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얘기. 처음부터 줄곧 보존된 것은 아니고, 한번 허물었다가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 안으로. 먼저 로트렉 전을 본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구역과 찍을 수 없는 구역이 엄격하게 구분된다. 

그 유명한 로트렉의 디방 자포네(Divan Japonais). 1870년대 파리에서 유명했던 카페/레스토랑/공연장을 겸한 공간의 이름인데, 거기서 펼쳐지는 공연과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스터의 형태로 그려냈다. 가운데 앉아 검은 옷을 입고 공연을 보고 있는 것이 로트렉 그림에 늘 등장하는 캉캉 댄서 제인 아브릴(깃털 모자가 포인트), 무대에 있는 것이 가수 겸 댄서 이베트 길베르라고.

그리고 유난히 인상적이었던 작품. 제목은 <독일의 바빌론>인데 빅토로 조즈(Victor Joze)라는 작가의 동명 소설용 포스터다. 당시 베를린 사교계의 타락과 혼란스러운 인간 군상을 그린 작품인데, 너무 노골적인 내용이라 당시 독일 대사관에서 판매 금지를 요청할 정도의 작품이었다고. 그래도 로트렉이 "그러면 안되지!"하고 직접 포스터를 그리는 등 출판의 자유(?)를 위해 애썼다는 전설이 있다. 

작품 사이로 이동하다 찍은 정원. 밤에 가보면 야경이 그리도 아름답다고 한다. 아무튼 마음에 쏙 드는 장소였다.

그리고 소피 칼의 작품은 전면 촬영 금지. 이 전시의 제목은 '부재 absense'인데, 칼이 자주 사용했던 주제인 듯 하다. 현장의 설명 등을 읽어보면, 프랑스의 한 미술관에서 유명 작품들이 도난을 당하고, 미술품 도난이라는 사태에 항의하기 위해 해당 미술관에서는 그림이 있던 자리에 텅 빈 액자만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칼은 거기서 영감을 얻었던지, 제목만 있고 내용이 보이지 않는 전시를 시도했고, 이번 전시에서는 그림을 가려 놓고 제목만 보여준 뒤, 가린 커튼을 열어 작품을 보게 하는 전시를 시도했다. 

(....근데 이런 것들을 굳이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심지어 전시의 설명 문구도 찍지 못하게 해서 과연 무슨 소득이 있을지 모르겠다.)

촬영이 허락된 소피 칼을 몇몇 작품들. 소피 칼은 유난히 작품에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을 즐기는 듯 한데, 문제는 그 텍스트가 전부 프랑스어라는 것. ㅠㅠ 무슨 말인지. 

단순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무래도 이 <시계>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관 모양의 시계. 너무나 직관적인. 

이어서 <그의 시선>, <누구세요>, <눈 주위의 멍>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리고 작은 갤러리에서는 坂本繁二郎とフランス 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1세대 유럽 유학파 화가라고 할 수 있는 사카모토 한지로(1882-1969)의 작품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대략 누가 봐도 당대 인상파의 영향이 짙은 그림들을 비슷한 시기의 밀레나 모네의 그림 등과 비교해서 보여주는 전시. 그 시기에 일본은 벌써...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전시였다. 

건물 밖으로 나와 보니 은행잎이 한껏. 12월인데. 

미쓰비시 1호관의 명물은 갤러리와 레스토랑이라는데, 레스토랑을 미리 예약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와 보니 엄청난 장사진. 

이 공간에서 식사를 할까도 했으나 역시 너무 줄이 길어 포기. 당초 계획(앞글 참조) 대로 도쿄역 지하의 표적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보행 인구가 별로 없어서인지, 12월 중순인데 아직도 가을 같은 느낌. 은행나무 가로수가 드문드문 있는 길이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5분쯤 걸어가자 도쿄역이 보이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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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스카이액세스 탑승장

인천공항에서 나리타로 가는 항공편은 여러가지 있지만, 직장인들은 일단 출근했다가 저녁에 떠나 늦은 밤에 나리타에 내리는 경우가 꽤 있다. 이 경우,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도쿄 시내로 가는 것은 꽤 피곤한 일정일 수 있다. 이때 문득, '그렇다면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 봤다. 나리타 주변에는 비슷한 생각을 한 여행자들 때문에 수많은 호텔들이 있다. 인천공항에도 구내에 호텔이 있는데, 나리타에는 구내에는 적당한 호텔이 없었지만 셔틀로 5분 거리에 다양한 호텔들이 있었다. 여기서 하룻밤을 잔 뒤, 아침에 나리타 공항으로 다시 가서 스카이액세스 편으로 도쿄 시내로 들어가면 매우 효율적인 이동이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검색해 본 뒤 '나리타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이라는 이름의 나리타 토부 호텔 예약. 호텔비도 다음날 아침 조식 부페 포함 10만원대 초반. 

그러나... 광고는 역시 광고일 뿐. 호텔 방은 꽤 크기는 했지만 정말로 침대와 TV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냥 썰렁하기만 한 방이었다. 침대도 별로. 베개도 별로. 심지어 공항 라운지가 무색하다(고 어떤 블로거가 그랬다)는 조식 부페는 정말이지 부페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 딱히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국내에서 가격으로 치자면 1만5천원? 2만원 짜리 정도?

그리고 오전 10시에도 나리타 공항에서 출발하는 스카이액세스는 만석을 넘어 만원 전철에 가까운 수준. 아니 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오길래 이 새벽에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는 것인가....라고 생각을 해 보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만치 공항 주변의 호텔에서 1박을 하고 시내로 들어가자는, 바로 나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결론은: 나리타 1박후 오전에 도쿄 시내 이동은 딱히 그리 권하고 싶지 않고, 나도 다시 시도하고 싶지 않다. 그냥 늦게라도 어떻게든 시내로 이동을 하고, 체크인을 한 뒤 늦잠을 자라, 그게 컨디션 조절에는 더 낫다. 괜히 다음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시내로 이동하고, 호텔에 짐을 맡기고 다시 나오고 하는게 더 피곤하다. 

나리타 토부 호텔에서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공항이 조만치에 보인다.

....그런 상태로 아무튼 다이몬 역에 내려 오전에 리치몬드 호텔에 도착했고(앞글 참조), 체크인을 하고, 방 키를 받은 뒤 짐을 프런트에 보관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첫 목적지는 미츠비시 1호관 미술관. 이름이 왜 이 모양인지는 전혀 몰랐고, 일본어로 된 어떤 사이트에서 올 겨울 도쿄에서 봐야 할 중요한 미술 전시 중 하나로 꼽혔던 툴루즈 로트렉 X 소피 칼(Sophie Calle)의 전시를 보러 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름다운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호텔에서 북쪽으로 이동, 히비야 역에서 내려 히비야 공원을 살짝 구경하고, 다시 길을 건너 미츠비시 1호관으로 이동해 이 전시를 본 뒤, 도쿄역으로 이동해 역 구내의 식당가에서 이름난 키와미야 도쿄역점의 함바그로 점심을 먹고, 동남쪽 긴자로 이동, 동네 구경과 약간의 쇼핑을 한 뒤 긴자의 빵가게들도 좀 구경하고, 어찌 어찌 시간을 보내다가 신바시 한 구석의 예약해둔 야키토리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귀환해 푹 자자. 

그러나 이 계획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호텔을 나서 5분 정도 걸어 오나리몬 역에서 미타선을 타고 두 정거장을 가면 바로 히비야 역. 일단 오나리몬 역으로 걸어갈 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은 아주 좋았다. 도쿄의 12월은 영상 5~10도 정도. 서울의 쾌적인 늦가을 날씨 같았고, 길 건너로 시바공원과 조죠지(増上寺), 그리고 도쿄타워가 보이는 길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히비야 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갑자기 칼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서쪽으로 황거가 있는 히비야 공원 앞은 아무 바람막이가 없는 지형 탓인지 엄청 독한 강풍이 불어 전철을 타기 전 느꼈던 온화한 날씨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느끼게 했다. 가능한 한 빨리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살길이라는 판단. 

그렇게 미츠비시 1호관을 찾아 들어가는데, 오호 이건 또 새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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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도리. 구운 새. 좋은 닭 구우면 당연히 맛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일본은 닭이 다르다고. 닭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다가, 모처럼 한번 경험해보는걸로.
 
 
 
결론부터 말하면, 달랐다.
 
 
닭도 닭이지만 들인 정성과 공력에서 차이가 났다. 에비스 가든 부근의 야키도리 오하나. 딱 10석, 카운터석뿐인 매장인데 매달 예약을 오픈하자마자 예약완료가 뜬다. 2시간에 걸쳐 총 17개의 접시가 나왔다.
 

김 위에 익힌 얇은 닭가슴살을 깔고, 그 위에 시소잎과 오이를 펼친 뒤 다시 닭가슴살 회를 얹어 만다.

그렇게 해서 첫 접시는 '시소와 오이가 들어간 닭가슴살회 마끼'.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대가 두배로 급상승했다. 감탄. 이어서 줄줄이 감탄의 연속이다.

2. 다진 닭고기 춘권
 
예상할 수 있는 맛이지만 당연히 맛있었다. 매우 뜨거움.
3. 튀긴 쌀전병 위의 닭무침
 
뜨거운 것 다음에는 식은 것인가. 바삭바삭한 전병까지 같이 먹어 식감이 즐겁다.
 
4. 진한 닭육수의 죽순과 완탕
 
가장 인상적인 메뉴 중 하나. 닭육수의 강렬함에 국물을 완샷하지 읺을수 없었다. 
5. 다릿살 간장양념구이
 
역시 예측 가능한 맛이었지만 아삭이는 실채소와의 조화가 좋았다.
6. 튀긴 미니옥수수와 채소
 
이쯤 되니 셰프와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닭을 먹으러 왔는데 닭은 어디 있나! 닭을 달라!"고 항의(?)를 하니 "닭 기름에 튀긴 미니 옥수수"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옥수수에서 꽤 진한 맛이 났다.
7. 오리 가슴살 미디엄레어 구이
 
왜 갑자기 오리인가. 닭가슴살은 지방이 너무 적어 퍽퍽한 반면, 오리는 가슴살에도 지방이 꽤 있어 촉촉하기 때문이라나(이건 셰프가 아닌 옆자리에 혼자 왔던 중국 손님의 주장). 오리 특유의 쇠 맛이 좀 나긴 했지만, 아무튼 맛이 좋았다.
8. 츠쿠네(완자)
 
이건 뭐...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기본적인 맛. "왜 피망을 주지 않는가"라고 항의(?)했더니 셰프들끼리 서로 "쟤가 뭘 봤는지 피망을 달래"라며 낄낄대고 웃더라. 빨간 무 절임과 같이 제공.
9. 고기볶음 미소를 얹은 두부튀김
 
미소 안에 닭이 좀 들었던 듯? 
10. 목껍질(쿠비가와) 볶음
 
요즘 야키토리 집들도 세세리(목살)을 많이 내놓곤 하는데, 이건 세세리가 아니라 그 부위의 껍질. 짭조롬.
11. 닭 갈비끝 연골(난코츠) 주변살 구이
닭 한마리에 하나씩 든,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그 하얀 연골. 신선했다.
12. 생강을 박은 허벅지살 말이와 고추
 
별 생각 없이 깨물었다가 속에 박힌 생강 맛에 깜놀. 생강과 감싼 살 맛이 잘 어우러졌다. 
아무리 닭이라도 계속 먹으면 느끼할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걸 억누르기 위한 고안들이 다양하다.
13. 날개 튀김
 
한국식 치킨에서도 이렇게 펼쳐 튀긴 날개맛을 볼수는 없을까. 절정의 튀김. 바삭함과 고소함의 끝.
14. 군고구마
 
신선하고, 활기차다.
 
15. 껍질째 구운 등살
 
라임을 뿌려 단숨에 해치웠다. "고기로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안도와 함께. 
 
사실 양이 좀 많게 느껴지긴 했다. 점심을 굶고 왔어야...
 
16. 기름발라 구운 오니기리와 닭육수 오차즈케
 
마지막까지 온 이상 다들 배가 차서 살짝 진력이 날 시점. 그런데 오독오독 오니기리 누룽지를 씹고 있으니 믿을수없게 식욕이 살아난다. 여기에 닭 육수까지.
 
 
밥을 말고, 곁들여 나온 향채들을 넣고 저으니 군침이 돈다. 미니 닭곰탕 후루룩 원샷.

 

 
17. 유자빙수
 
앙증맞은 빙수기까지 센스 만점. 가득찬 배와 기름 맛을 걷어준다. 최고.
 
(여기다 대고도 '아즈키를 내놔! 아즈키가 없으면 카기고오리가 아니야!'라고 진상을 부림.)
 
 
대략 한 접시에 7000~8000원 정도니 절대 싸지는 않은 가격. 하지만 감동적인 맛, 감동적인 장인 정신. 앞으로 6개월은 다른 닭 생각이 안 날테니 내년쯤 다시 시도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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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양식 문화가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건 사실 상식이다. 19세기 개항 시절부터 해외 문물의 도입에 워낙 적극적이었던 일본. 온갖 나라의 온갖 식재료와 기술이 세계적인 대도시 도쿄로 몰려든 결과일테고, 1980년대 버블 시대를 거치며 그 모든 취향이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됐을 터. 

(이런 '취향'의 허세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라고 생각한다. 읽어 보신 분은 잘 아실 터. 세기말적인 허세와 극도로 발달한 욕구가 '정말 이렇게까지 했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버블 시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어쨌든 서울에도 정통 나폴리식 피자를 굽는 집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얼마 전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 군이 '아시아 최고의 피자'라고 극찬한 집이 도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또 도쿄를 가는 김에, 그럼 그런 집은 가 봐야지. 점심에는 예약을 받지 않아 상당한 웨이팅을 각오하고 고고.

웨이팅을 각오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자집 '리스토(Risto)' 자체도 핫하지만 피자집이 있는 곳이 바로 도쿄의 최신 핫플레이스 아자부다이 힐스이기 때문.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건축가인 토마스 헤더윅의 헤더윅 스튜디오가 설계한 곳. 안 그래도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는데, 바로 이렇게 기회가 생겼다. 

일류 건축가들이라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헤더윅의 스타일은 뭔가 자연과의 공존에 무게를 두는 느낌이 짙다. 

아자부 언덕을 올라가며 구축된 건물들이다 보니 뭔가 능선을 연상시키는 그런 설계. 

명품 샵들이 그득한, 3층 정도의 건물들이 언덕 아래에서부터 죽 줄지어 올라가고(가 보면 실제로 건물들이 언덕을 기어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덕을 꽤 올라간 곳에 메인 빌딩인 타워 플라자를 비롯, 몇개의 건물들로 둘러 싸인 중앙 정원이 나타난다.

어느새 그 정원의 명물이 된 크레페 가게. 

3층으로 올라가면 리스토가 나온다. 

오픈 직전에 도착. 줄은 서 있지만 대기 없이 앉을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화덕. 뻬뻬가 화덕이란 뜻은 아니겠지?

피자 가격은 대략 저 정도. 장소가 장소다 보니 비싼 거 인정. 시그니처인 별 모양 피자와, 하루 5개 씩만 만든다는 한정판 피자를 시켜봤다. 그게 뭐지. 

"나폴리에선 와인을 피자 안주로 먹나?"

"아뇨. 이탈리아 사람도 와인이랑 피자는 같이 잘 안 먹어요."

"그럼 뭘 먹어?"

"대개 맥주랑 먹죠."

오호. 이딸리아에서도 피맥이 정석. 알베군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암. 

주방장 특선 모듬 전채. 프로슈토, 모짜렐라, 말린 토마토 등등. 맛난 것들. 

그리고 시그니처 별 피자. 물론 내용물은 아주 충실한 나폴리식 마르게리타 피자다. 

당연히 맛있는데, 아주 충실하게 맛있다. 그리고 저 별의 뿔 모양 손잡이 속까지 매콤한 양념이 잘 되어 있다. 

이것이 한정판이라는 Il futuro della salsiccia e friarielli. 생 소시지를 까서 채소와 함께 마구 볶은 뒤 반죽에 녹아들게 해서 같이 구운 피자. 맛있다. 뭐라 더 표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대책없이 맛있다. 

아쉬워서 시켜 본 봉골레. 양이 너무 치명적이긴 한데, 저 국수가 믿을 수 없게 맛있다. 국수가 바지락과 홍합의 맛을 쪽쪽 빨아들인 그런 맛. 국수라기보다는 길게 늘인 수제비를 먹는 맛? 놀랍다. 

그리고 나폴리탄 라구 파스타를 더 먹었는데, 이건 너무 맛있어서 그랬는지 사진찍는 걸 잊었나보다. 없어짐. 

점심을 두둑하게 먹고 아자부다이 힐스의 상징 같은 뚜껑 아래서 크레페로 마무리. 

총평: 아자부다이 힐스는 괜찮은 피자집이었다. 좀 비싼 것만 빼면 아주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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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탄다(五反田)은 훈독과 음독이 섞여 있어서 일본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지명이라고 들었을 뿐, 거기 뭐가 있는지 알 일이 없었다. 한번 이쪽에 호텔을 잡으려 했더니 밤에 좀 시끄러울 수 있다고 해서 피한 정도. 

그런데 육식 대가들께서 이 동네가 의외로 맛집이 많다고 하심. 직장인들이 많아서 점심 먹으러 오기 좋은 곳인가? 아무튼 육타 오너 이남곤 셰프의 '인생 함박스텍'이라는 추천을 듣고, 불원천리 달려왔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이렇게 생긴 입구. 바로 왼쪽에 대기석이 넉넉하게 확보되어 있는 것이 '우리는 줄 서는 가게'라는 자부심을 돋보이게 한다. 

(야외 좌석 아님)

메인은 누가 뭐래도 함박스텍. 와규 100%를 자랑하는 집이다 보니 함박스텍과 비프 스테이크의 병합 상품도 여러가지 눈에 띈다. 평소같으면 병합 상품에도 관심을 가질만 하지만, 이른 저녁 예약이 기다리고 있는 터라 눈물을 머금고 함박스텍만 시키는 것으로. 

그런데 일행은 3명인데 이 식당의 함박스텍 종류는 4가지다. 

"그래도 네개 다 시켜봐야겠죠.?"

"그럼요."

대강 이런 분위기. 아주 작지도, 아주 크지도 않은, 딱 맛집 사이즈. 

먼저 샐러드를 준다.

뭐.... 샐러드다. 

가장 먼저 나온 1호.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다. 체다 치즈를 얹은 함바그와 데미그라스 소스라는 정통의 조합. 가지, 당근, 구운 감자, 매쉬드 포테이토, 머리 뗀 숙주가 같이 익어가고 있다. 

사실 모든 함박은 거죽만 익힌 레어 상태로 서빙되기 때문에, 더 익히고 싶은 사람은 저 상태에서 반으로 갈라 아직도 쩔쩔 끓는 철판에 익혀야 한다. 

2번. 계란 후라이를 얹은 함바그에 야자와 소스. 먹어 보니 우스터 소스와 간장의 조합 같은 느낌이다. 간장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좋은 선택일수도. 

아, 여기에 공기밥과 미소시루가 나온다. 

3번 조합. 모짜렐라 치즈를 얹은 함바그와 토마토 소스. 

4번은 소바 장국에 많이 넣는 간 무(오로시)와 폰즈 소스. 느끼한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선호할 수도. 

개인적으로 3번-1번-2번-4번의 순. 다음에 다시 갈 의사는 매우 크고, 만약 다시 간다면 토마토 소스와 데미그라스 소스 중에서 고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 사진의 모델과 똑같이 생긴 종업원이 서빙을 하고 있다. '혹시 이 가게 모델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차를 불렀는데 차가 엉뚱한 위치에 있다고 그 위치까지 달려가서 차를 다시 잡아 준 기타야마상, 감사합니다.

그 밖에도 서빙이 세련되고 친절한 가게. 

그리고 식사 후에는 누구나 다 가는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이제야 처음 가 봤다. 

(내가 얘기했잖아. 도쿄 잘 모른다고.)

눈길을 끈 것은 아사노 타다노부의 화집. 

제목 자체가  Gaps in the film, 촬영 중간중간 짬 날때마다 그렸다는 얘기 아닌가. 

워낙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더 호감이 가네, 이 아저씨.

서점에 왜 이런게? ;

아무튼 이런 서점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러고 나서 한 10년 전, 이 츠타야 서점이 생기기 전에 이 동네를 와 봤다는 걸 기억해냈다. 

아무튼 도쿄는 계속 발전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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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일본 민예관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안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18년에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정병모 선생이 민화에 대해 강연을 했고, 그때 마침 현대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던 민화 전시회에 갔는데, 전시 작품 중 몇몇이 도쿄에 있는 '민예관'이라는 곳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예관이 뭐야, 찾아보니 그 유명한 야나기 무네요시가 세운 사설 박물관의 이름이었다. 

 

뭔가 마음 속에서 비밀의 문 하나가 열리는 느낌...이었다면 과장일까.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 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어렴풋이 '한국적 미감에 깊은 애정을 보인 일본인'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게 다였다. 그가 설립한 민예관이라는 곳이 도쿄에 있고, 거기에 수많은 한국 미술품들이 있다는 것까지는 듣보도 못한 일이었다. 

물론 야나기에 대해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전통 미술에 대해 특유의 선입관을 갖게 했다', 혹은 '결코 진심으로 조선의 독립을 지원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 또한 식민 통치의 한 측면이었다'는 식의 비판도 있다. 이를테면 야나기는 조선사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어둡고 비참한, 사대를 강요당한 역사로 보았고, 조선의 미술이 한의 미술, 혹은 비애를 짊어진 미술로 드러난 것이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야나기의 '진심과 애정'이 바로 일제가 한국을 병합하려 했던 소위 문화통치의 도구로 쓰였다는 시각이다. 

1924년 야나기가 경복궁 집경당에서 개관한 조선민족미술관

하지만 당시 일본의 식민 통치하에 있던 조선의 암울한 상황과, 그 당시 한국 지식인들이 야나기에게 보인 호의를 생각하면, 오히려 후대 사람들이 무리한 평가를 내리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시대의 한계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야나기 이전에는 과거 한국인이 이룩한 미적 작업 중에서도 백자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미학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스스로를 자각할 능력이 없었다고나 할까.  "깨진 사기 조각, 항아리 조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백자나 사발 같은 서민적인 작품에서 미감을 느끼고, 그것을 '백성의 예술', 즉 '민예(民藝)'라는 이름으로 불러 준 사람이고, 무엇보다 1924년 서울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측 자료에 따르면 당시 조선총독부는 이 미술관의 존재, 특히 그 이름에 '민족'이라는 것을 넣는 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전해진다. 문화통치 시기였기 때문에 박물관 자체를 막지는 않았고, 1945년까지 존속됐다. 해방 이후 서울에 있던 대부분의 소장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넘겨받았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일 것 같고, 왜 일본민예관이라는 곳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 것 같다. 구글 지도에서 일본민예관의 위치를 찾아봤다.

 사실 일본을 꽤 오갔지만 일본어 한마디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정작 도쿄에는 어디에 뭣이 있는지 잘 모른다.  도쿄는 놀러 가기보다는 거의 출장으로 간 탓에 다른 일에 신경을 쓰기 힘들었고, 근래 휴가로 일본을 갈 때에는 홋카이도와 큐슈를 번갈아 다녔기 때문에 자유롭게 도쿄 곳곳을 오갈 수 있었던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시부야 역에서 전철과 도보로 10여분 정도. 생각보다 변두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번 여행 날짜를 잡고 나서 일본 민예관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야나기 무네요시와 조선민족미술관' 특별전. 조선민족미술관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가 걸려 있는 거다. 

 

아무 근거 없지만 이건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 (물론 뇌과학자 모 선생님은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하셨지만 ㅎㅎ)

 

왠지 이때를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스케줄을 뽑았다. 일본 민예관이 있는 동네는 시부야구에서도 대략 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고마바(駒場) 지역이다. 앞서 지도에서 보듯 도심에서 그리 크게 떨어진 것도 아닌데, 일반적인 도쿄 여행자들의 동선과는 별 교차점이 없다. 

시부야 역을 경유하지 않고 가는 방법. 도심에서 전철 치요다센을 타고 요요기우에하라 역에서 내리면 시부야구에서 운영하는 하치코버스(일종의 마을버스)가 다닌다. 요금 100엔.

요요기우에하라 역에서 시부야 역 방향으로 세 정류장을 가 우에하라 2초메 미나미에서 내린 다음, 고마바 지역에서 10분 정도 주택가 골목을 걸으면 일본 민예관이 나온다. 

한적하고 곱게 단장된 길. 양쪽의 집들이며 주차된 차들을 보면 꽤 사는 분들이 사는 동네 맞는 듯.

좁은 길을 사이로 일본 민예관과 야나기 무네요시가 살았던 집이 마주 보고 있다.

매표소에서 1100엔짜리 표를 끊으면 두 장의 표를 준다. 한장은 서관(야나기 본가) 관람권, 하나는 민예관 본관 관람권. 서관은 4시까지만 개방하니 그쪽을 먼저 보고 오라는 안내까지 해 준다(본가는 개방하지 않는 날도 많다). 

사실 서관은 딱히 큰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늑하고 곱게 단장된 2층집. 고아(古雅)하다는 말이 절로 느껴진다.

 

특히 서재가 좋아 보였다. 볕 잘 들고 통풍도 좋을 듯한 넓은 창, 단단하고 기대기 좋을 듯한 넓은 책상, 벽 둘러 쌓인 책장. 지금이라도 그 서재에 들어가 앉으면 일어서기 싫을 듯한 방이다.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 두었으면 좋으련만, 집 전체가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 아쉽지만 그냥 집을 나서야 했다.]

본관 전시. 역시 2층 집인데 보기보다 앞뒤로 넓은 집이었다. 전시 소개 포스터/도록의 표지가 모두 같은 그림이다. 사진 위의 맨 왼쪽, 가는 풀 문양이 그려진 청화백자 각항아리가 바로 야나기가 처음 조선 백자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 바로 그 작품이라고 한다. 아래쪽 전시 광경은 조선민족미술관의 전시실 사진. 

 

1층에선 이번 특별 전시와 별 상관 없는 유럽 공예품 등의 상설 전시중. 2층으로 올라가자 가장 눈길을 끌 만한 공간에 깨진 도자기 파편들이 정성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대부분 조선에서 넘어 온 것들. 대체 이걸 왜 전시해 놓았을까.

굳이 말하자면 '내가 눈여겨 보지 않았어도 당신들이 이 다음에 보게 될 명품들을 명품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라는 공치사일까. 내가 손대기 전에 이 귀물들이 얼마나 천대받고 있었는지 직접 보라는 뜻일까.  이 생각 자체가 유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설사 그런 공치사라 해도, 충분히 인정할 만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듣던 대로 민예관 전체가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고, 이번 전시에서는 대략 대여섯 점 정도만 촬영 허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나마도 평소보다는 후한 것이라고 한다. 도자기에 대단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기 전 도서관에서 '일본 민예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도자기 일람'을 한번 살펴봤다. 가장 관심이 간 작품은 이런 것들이었다. 

코믹한 표정의 민화풍 호랑이가 떡 자리잡은 백자 항아리.

그리고 세상에 이런 백자가 있나 싶었던 3중 찬합.

다행히 이번 전시품 중에 둘 다 있었다.

민화 속 호랑이가 그려진 백자동화호문호는 그리 섭섭지 않은 크기였고, 백자청화채찬합은 과연 찬합으로 쓸 수 있었을까 싶게 작았다. 찬합이란 용도대로라면 어른 한끼분 정도의 반찬을 담으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 어쨌든 한국 백자 중에서 저렇게 전체를 푸른 색으로 칠한 그릇은 처음 봤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두개만으로도 이 전시를 보러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만 했다.

그밖에 사진 촬영이 허가됐던 품목들은 이렇다. 

이 자기들을 설명하는 표찰(사진 오른쪽 아래를 보듯, 작품 이름을 설명해 놓은 것 외에는 아무 해설이 없다) 중 상당수에 염부(染付)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는데, 이 염부가 청화백자의 청화를 뜻하는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일본어로는 소메츠케라고 읽는다. 

이건 금사리 자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18세기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에서 나온 물건이라는 뜻. 즉 한국식으로 저 표찰을 읽으면 '난초 문양과 글자가 들어간, 금사리에서 구워진 청화백자 항아리' 라는 뜻이다. 

포도줄기와 잎이 그려진 청화백자 항아리.

여기엔 또 염부에 진사까지 붙은 염부진사 染付辰砂 라는 설명이 있다. 뒤의 화조문면취호(花鳥紋面取壺)라는 것은 꽃과 새가 그려진 각진(面取) 병이라는 뜻인데, 왜 굳이 병(甁)이 아닌 항아리(壺)라고 썼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대체 염부진사가 뭘까. 물론 찾아보면 다 나온다. 

염부진사(染付辰砂)란 일본어로 소메츠케 신슈, 요즘 우리가 쓰는 용어로 하면 청화(靑華)+동화(銅畵)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즉 백자에 청색 안료를 넣은 청화, 산화철을 넣은 철화처럼 산화동을 넣어 그림을 그린 백자를 동화라고 부른다. 즉 대부분의 봉황 몸체는 청화로 그려 푸른색이고, 벼슬과 날개 일부에 산화동을 이용해 붉은 색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소메츠케 신슈라고 설명한 것. 

이 봉황문 항아리도 도록에서 먼저 보고 실물이 궁금했던 것이라 감회가 깊었다. 

반면 위쪽의 꽃 그림 병은 산화동으로만 그렸기 때문에 신슈(辰砂)라고만 쓰여 있다. 진사초화문병. 

 

그러니까 이 특별전 중에서 가장 아껴둔 물건들을 이 특별 전시실에서 전시하고, 그중에서도 몇개를 골라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두고 있었다. 언뜻 봐도 참 좋은 물건들인데, 이 물건들을 눈으로만 보고 오려니 참 아쉽기 짝이 없었다. 물론 도록도 샀지만, 도록은 대부분 흑백이라... 

못내 아쉬워서 휴식공간 앞에 있던 장식장을 한장 찍어 봤다.

가운데 줄 왼쪽이 바로 가기 전부터 보고 싶었던(위에서 언급한) 3중 찬합이다. 

휴식공간 바깥쪽의 항아리들. 뭔가 어린 시절 집집마다 있던 장독대가 생각나 정겨웠다. 

일본 미술관에 가면 언젠가부터 이런 테누구이(手拭)들을 눈여겨 보게 된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 몇개 사도 큰 부담이 없는.  그런데 예쁘다. 도록과 함께 기념품으로.

어느새 문 닫을 시간이 된 미술관. 간혹 한국에서도 전시하고, 수집 과정부터 '일제가 강탈해 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든 물건들이지만, 그래도 남의 손에 있는 것이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곧 또 만나게 되길. 

 P.S. 조선민족미술관 100주년 기념 전시는 8월25일까지 진행된다니 그 사이 도쿄에 가실 분들은 짬이 나면 들러 보시길. 결코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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