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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 조(G.I. Joe)'가 마침내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리 인기를 모으지 못했지만 G.I 조 인형은 미국의 남자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놀만큼 인기 만점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말할 것도 없죠.

물론 아무리 인기 있는 원작이라고 하더라도 이병헌이 듣보잡 캐릭터로 나오면 의미가 없겠죠. 한국이나 아시아 출신이 아니더라도, 비 미국 출신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엉성한 캐릭터를 맡아 무너지는 경우는 한두번 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병헌이 스톰 섀도우 역을 맡았다고 할 때부터 안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아직 영화는 못 봤습니다만, 영화상으로도 훌륭한 모양입니다. 뿌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병헌에게 할리우드 진출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말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굴까요(제목에 썼으면서 이런..). 바로 성룡입니다. 오래 전에 썼던 글입니다. 이병헌과 성룡의 사연은 맨 뒤쪽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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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헌, 할리우드는 가서 뭘 하게?"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다 보면 언뜻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오버랩된다. 그렇다. 교집합은 바로 아시아의 보석 공리다.

연인 장예모 감독과 함께 중국 영화를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히트 상품으로 만들어 내던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이미 공리도 40대. 하지만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다 보면 미모와 카리스마는 어떤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할리우드 진출에 있어 <게이샤의 추억>의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모국인 중국 국민들은 장자이와 공리를 '일본 창녀가 됐다'며 매국노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공리는 세계인의 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현재 공리가 있는 자리에는 다른 한국 여배우가 설 수도 있었다. 스필버그와 드림웍스 관계자들은 이 작품의 제작에 앞서 줄잡아 100여명의 한-중-일 3국 여배우들을 만났다.

김희선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드림웍스는 장자이와 공리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 구사 능력이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고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아시아 배우들은 이런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현재 <로스트>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리를 구축한 한국 배우가 된 김윤진을보면 영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물론 역시 영어 실력이 뛰어난 김민(성룡과 공연했던 <액시덴털 스파이>로 세계 무대에 나설 기회가 있었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언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기력을 갖춘 상태에서 뛰어난 영어 구사력을 갖춘 김윤진에게 미국 시장은 그리 높은 벽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데뷔하던 시절의 김윤진은 오히려 한국어보다 영어 구사력이 뛰어난 배우였다. 중학교때 이민을 가 미국 보스턴대에서 셰익스피어극을 전공하고 미국에서도 연극 활동을 하던 김윤진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은 <질투>와 <국희> 등으로 잘 알려진 드라마의 거장 이승렬PD였다. 그는 지난 96년 미니시리즈 <화려한 휴가>를 제작하며 최재성의 여동생 역으로 김윤진을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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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자가 만난 김윤진은 교포 치고는 정확한 발음을 갖고 있었지만 인터뷰 도중에도 가끔 "그걸 한국말로 뭐라고 하죠?"라며 자기가 표현하려는 단어를 찾았다. 대본에 나오는 어려운 말은 일단 외우고 나중에 뜻을 물어본다던 김윤진은 그러면서도 항상 사전을 갖고 다니고, 밑줄을 치며 신문을 읽는 열성을 보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국에서도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고 미국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진 외에도 할리우드의 제의를 받았던 배우들은 대부분 영어구사력의 관문을 넘은 인물들이었다. 차인표가 007 시리즈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캐스팅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지만 당시 그는 이 영화가 한국의 실상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했다. 결국 그 배역은 재미교포 배우 윌 윤 리에게 돌아갔고, 역시 재미교포인 릭 윤이 악역으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양들의 침묵>의 조나선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에 출연했던 박중훈 이후 남자 연기자 중에서 '꿈의 할리우드'에 가장 근접해 있는 배우로는 이병헌이 첫 손에 꼽힌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다 그를 캐스팅하면 한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흥행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한류 스타로서의 지명도는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호조건이다. 이런 이병헌에게 대놓고 "할리우드에 가면 뭘 하냐"고 만류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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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병헌보다 먼저 할리우드를 밟은 아시아의 스타 성룡이었다.


지난 2005년,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성룡은 이병헌을 만나 반가운 술자리를 가졌다. 술잔이 도는 사이 이병헌이 할리우드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성룡은 "할리우드에 왜 가려고 하느냐. '가 봤는데' 별 것 없더라. 할리우드에 가는 것 보다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는 게 훨씬 낫다. 일단 당신이 노려야 할 것은 아시아 최고의 스타다. 그리고 나서 할리우드에서 모시러 오면 가고, 아니면 말면 그 뿐이다."


이날 성룡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할리우드에서 <러시 아워> 시리즈의 흥행 대박을 일궈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백인들의 변함 없는 편견 때문에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는 것이 동석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과연 성룡의 이 한마디가 이병헌의 야망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답은 몇년 뒤의 결과로 미뤄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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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실제로 의형제를 맺었을 정도 친한 사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룡도 진정으로 이병헌에 대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거죠.

아무튼 이 무렵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빼어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려 온 이병헌은 마침내 입성에 성공했고, 할리우드의 스타 감독 중 하나인 스티븐 소머즈와도 친분을 쌓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윗글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는 '몇년 뒤'가 벌써 왔군요. 이런 이병헌의 모습을 보면 성룡도 옛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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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태연의 푸딩-젤리 커플이 파국을 맞았더군요. 정형돈의 '실제' 연애가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커플을 무참하게 깨 놓은 셈입니다. 구분을 하자면 정형돈이 출연하고 있는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계열의 프로그램이지만, '무한도전'에서는 정형돈의 연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소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는 당연히 다르죠. 이 프로그램이 발을 딛고 있는 건 아무래도 가상현실이니까요. 이 쇼의 생존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 쇼를 철석같이 믿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프로그램 안에서 달달한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가 사실은 따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있다는 것 만큼이나 '확 깨는' 일은 또 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부터 연출진과 기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충분히 오갔기 때문이죠.

"출연자 중에서 누가 열애설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절대 그런 일은 없게 해야죠."

하지만 그 우려하던 일이 이번에 일어났고, 누구나 '이건 사실이 아니야'라고 속으로는 알고 있었겠지만, 이제부터 '우결'을 보는 눈은 달라질 겁니다. 제작진은 즉시 정형돈-태연 커플을 퇴장시켰지만 이제는 그게 문제가 아닐 겁니다. 안 그래도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우결'을 지탱하고 있던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졌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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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예전에 '우리 결혼했어요' 가 처음 화제를 일으킬 때 썼던 글로 넘어갑니다. 새로 글을 써도 되겠지만, 어차피 지금부터 하려던 말도 그 때 이미 했던 말과 거의 흡사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사태는 '우결'이 시작하던 지난해 5월에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대목에서 질문을 해 봅니다. 리얼리티 쇼는 정말로 리얼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리얼리티 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서바이버'나 '배철러' 같은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의 상당 부분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믿는 냉소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쇼의 진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우승자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든가 하는 정도까지 미리 다 짜여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배철러'같은 경우에는 1위로 뽑힌 여자와 남자 주인공이 실제로 결혼하는 일도 있죠. 하지만 이런 리얼리티 쇼에서 가끔씩 악역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작설'이 믿고 싶어집니다.

누구라도 잘 보이고 싶을 게임 안에서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건 다른 보상을 약속받고 하는 행동일 거란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는 '심플 라이프' 같은 쇼에 나오는 것처럼 패리스 힐튼이 저능아일 거라고는 절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역시 리얼리티 쇼인 '밀착취재, 스타의 신혼(Newlywed)'에서 '참치는 물고기가 아니라 새'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던 제시카 심슨도 쇼가 끝난 뒤 "이 쇼는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쇼 아니냐"며 자기를 바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웃었습니다. 제목에 리얼리티가 들어간다고 다 사실은 아닌 겁니다.

그리고, 최소한 미국의 리얼리티 쇼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이 출연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래야 진짜 리얼리티 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리얼리티 쇼'라는 간판을 내걸고 연예인들이 출연합니다. 말하자면 '연기가 직업인 사람들'을 내놓고(가수도 포함됩니다. 가수는 노래가 곧 연기죠) 그걸 믿어달라고 하는 셈인데, 그걸 또 악착같이 믿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 걸 보다가 쓴 글입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이건 현실이 아니야!"

1938년. 미국 뉴저지주가 발칵 뒤집혔다. 라디오에서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급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 물론 이건 진짜 뉴스가 아니었고, 뒷날 '시민 케인'을 내놓은 천재 영화감독 오손 웰스가 H.G. 웰스의 SF소설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을 각색한 실감나는 라디오 드라마였다.

방송극 중간 중간 여러 차례 '이 방송은 실제가 아니라 구성된 드라마'라는 고지 방송이 나갔고, 심지어 광고도 끼어 있었지만 속은 사람들은 그런 건 고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부분만을 들었기 때문이다.

뒷날 미디어 연구자들은 이 사례에서 '매스컴은 사람들에게 탄환이나 피하주사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강효과이론을 주창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사건의 교훈은 다른 데 있다.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무엇을 보여 주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쪽이다.

바로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 코너 얘기다. 남녀 네 쌍이 각각 둘만의 공간에서 밤을 지새며 나누는 '결혼 역할극'이 이 프로그램의 실체지만, 여기에 열광하는 여성 시청자들에겐 마지막의 '극', 혹은 '역할극'이라는 부분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예전부터 드라마 속 커플들의 희로애락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열혈 시청자들은 많았지만, '우결'의 경우는 또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들이 실제로 결혼했거나,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전판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열혈 팬들은 이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출연자들이 이런 상황에서의 연기에 매우 능숙한 전문가들이라는 사실도 그냥 무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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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들에게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 통해 최고의 '훈남'으로 떠오른 알렉스가 음반 준비를 위해 이 코너에서 빠졌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은 마치 알렉스가 파트너 신애를 차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라도 한 듯 아우성 일색이었다.

문득 오래 전 사무실에서 받은 전화 한 통이 생각난다. 기운 빠진 목소리의 한 여자가 당시 인기 절정이던 배우 H의 전화번호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사기를 당하고 식구들이 병이 있는데 전부 길에 나앉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H씨의 전화번호가 필요할까. "도와주실 것 같아서요." 여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희 사연을 알면 꼭 도와주실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리고 싶어요."

최신 미디어 이론들은 대부분 '매스컴에 의해 섣불리 휘둘리지 않는 똑똑한 정보 수집자'로서의 대중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이건 연기야. 실제가 아니야'라는 말을 무시하고 방송이 주는 판타지에 푹 빠져 있는 시청자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들에겐 누가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을 줄지 궁금하다. (끝)



혹시 마지막의 빨간 알약 얘기에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신 분들은 없겠죠.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두개의 알약을 내밉니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이 상황이 모두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매트릭스가 주는 환상 속에서 잘 살게 되죠. 하지만 빨간 알약을 먹으면 꿈에서 깨고, 잔혹한 현실을 맛보게 됩니다.

물론 바로 뒤에도 나오지만 모피어스와 함께 싸우는 전사들 중에도 '차라리 그때 파란 알약을 먹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하죠.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의 팬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현실과 이 프로그램 내용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난해, 알렉스가 새 앨범 준비를 위해 '신애와의 신혼 생활'을 포기한다고 발표하자 아쉬움의 함성이 일었죠.

하지만 알렉스가 군에 입대하는 성시경의 뒤를 이어 6월 초부터 라디오 DJ를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이 아쉬움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엄청난 악플이 달리기 시작한거죠. 물론 그 수가 절대 다수는 아니겠지만, 알렉스의 소속사 쪽에선 경악했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팬들은 '어떻게 DJ할 시간은 있고, 신애와 달콤하게 속삭일 시간은 없느냐'는데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알렉스의 죄(?)라면 너무도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한 죄겠군요. 만약 이 대목에서 알렉스가 따로 사귀는 여자친구가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 대목은 지난해 5월의 시선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정형돈- 저 위 사진을 보니 심지어 재혼이었던 - 이 이 가정을 현실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최근 결혼 발표를 한 신애는 과연 저 때 '그분'을 사귀고 있었을까요, 아닐까요. 그것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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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예화로 들어간 전화는 제가 직접 받은 거였습니다. 사연은 위에 적은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은 무척이나 절박해 보였습니다. 도저히 매니저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을 수 없더군요.

과연 그 뒤로 진짜 도움이 갔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런 식의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가 '이미지가 좋은' 스타들에게 직접 전달되기 시작한다면 그 또한 당혹스러운 일이겠죠. 아무튼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를 소비하시는 분들에 대해선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지나치게 빠져서, 현실과 방송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분들은 빨리 주변 분들이 깨워주셔야겠죠.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점점 똑똑한 정보 추구자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 정론인데, 21세기에도 이런 판타지에 빠져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참 놀랍기만 합니다. 이래서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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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일은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의 1주기입니다. 벌써 1년이 지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4월1일자로 장국영 관련 포스팅을 할까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어제 어떤 분도 댓글을 다셨지만 이 무렵이 되면 장국영의 신화가 되살아나곤 하죠.

이상할 정도로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는 아까운 한창 나이에 일찍 가버린 스타들이 많이 몰려 있습니다. 제목에도 있듯 장국영 뿐만 아니라 브랜든 리, 커트 코베인이 모두 이맘때 이승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봤습니다.

4월, 완연한 봄날이고 꽃은 피었지만 이상하게도 찬 바람이 가시질 않는군요. 옛날 글을 다시 읽어봐도 처연한 느낌은 여전합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4월, 왜 이다지도 잔인한가

4월.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라디오 DJ들은 '잔인한 달…'을 오프닝 멘트로 흘렸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묘하게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스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1993년 3월 31일은 '브루스 리' 이소룡의 아들인 영화배우 브랜든 리가 촬영장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숨을 거둔 날이다. 당시 나이는 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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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1987년, 그가 이국호(李國豪)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출연한 영화 데뷔작 '용재강호(龍在江湖)'가 개봉됐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비록 백인 혼혈이라 상당히 서구적인 얼굴이었지만 뚫어질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은 누가 뭐래도 이소룡의 재림을 알리고 있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묘한 분위기의 영웅 '크로우'로 기억되는 그는 '크로우' 촬영장에서 빈 총이어야 할 총이 발사되는 바람에 숨을 거둔다. 부자 2대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도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2003년 4월 1일 세상을 떠난 장국영은 6주기를 맞았다. 47세의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던 그였지만, 마음의 그늘을 이기지는 못했다.

1994년 4월 5일에는 그런지 록의 대명사였던 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27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유서까지 발견됐는데도 아내 코트니 러브가 개입됐다는 등 음모설이 끊이지 않았다. 생전에도 처절한 고독과 절망, 허무를 노래했던 그였기에 팬들의 눈물도 그치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죽음을 맞은 사람은 누구라도 안타까움의 대상이 된다. 하물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들의 경우임에랴. 해가 바뀔 때마다 팬들은 나이를 먹어 가고, 언제나 젊은 채로 남아 있는 스타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그 위에는 팬들 자신의 젊은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움과 슬픔이 한데 합쳐지는 까닭이다.

더구나 올해는 국내에서도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지난 2일 38세의 한창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언제나 즐거운 노래로 사람들의 근심을 덜어주던 그였던 탓에, 애도의 눈물이 어색하면서도 더욱 애틋하다.

4월이 왜 이토록 잔인한지, 답은 물론 없다. 다만 한창 피는 꽃소식 속에 못다 이룬 젊은 스타들의 꿈과 그들을 그리는 팬들의 눈물이 있어 이 봄을 더욱 처연하게 한다. (끝)








이국호(李國豪, Brandon Bruce Lee)
1965년 2월 1일 출생  - 1993년 3월 31일 사망.






브랜든 리 아닌 이국호의 데뷔작, '용재강호'가 국내에서 개봉됐을 때의 포스터입니다. 네이버 그래플러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NBlogMain.nhn?blogId=grappler39 에서 퍼 왔습니다. 이런 포스터가 남아 있다니 믿어지질 않는군요.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이소룡의 아들'이라는 선전 문구 때문에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물론 그리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국호의 눈빛, 상대에게 손가락을 겨누고 정면으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는 순간 '그래, 저 눈빛이야!'라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습니다. 역시 씨는 속일 수 없는 법이더군요.

예고편에 미국 버전과 홍콩 버전이 있습니다만, 홍콩 버전이 역시 제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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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했던 시절의 이소룡 일가 사진입니다. 당연히 왼쪽 아래가 브랜든 리,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긴 소녀가 샤론 리죠.  어렸을 때는 혼혈이라기보다는 백인 아이 같던 이 소년은 지금 아버지 곁에 누웠습니다.



이제 이렇게 시애틀의 한 묘역에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장국영(張國榮)
1956년 9월 12일 출생 - 2003년 4월 1일 사망




장국영 얘기를 하자니 너무 할 얘기가 많습니다. 그건 곧 다른 포스팅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이번엔 2003년의 비극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애잔한 마음을 전한 '천장지구' 이야기만 잠깐 보태겠습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당학덕은 장국영의 장례식장에서 '아자, 천장지구유시진, 차애면면무절기(阿仔,天長地久有時盡 此愛綿綿無絶期)'라는 헌시를 전했다고 합니다.

영화 '천장지구'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 구절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서 한 글자만을 바꾼 것입니다. '장한가'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옛 노래죠. 대단한 장시지만 유명한 끝부분만 보면 이렇습니다.


臨別殷勤重奇詞
헤어질 무렵 간곡히 다시금 전할 말 부탁했는데

詞中有誓兩心知
그 말 중에는 두 사람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다.

七月七日長生殿
칠석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밤 깊어 사람 없자 은밀히 속삭였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 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里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이 하늘과 이 땅도 언젠가는 다할 날 있으련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한만은 영원히 이어져 끝이 없으리.

당학덕의 노래는 이 마지막 구 구절에서 한(恨)을 사랑(愛)으로 바꾼 것입니다.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밖에 없어 암수가 같이 있어야 날 수 있는 새죠. 연리지는 두 그루의 나무가 줄기가 붙어 하나의 나무가 됐다는 채옹의 고사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깊음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부부의 연이 두터움, 가끔은 친구 사이의 우정이 두터움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장구한 천지도 언젠가는 다할 날이 오겠지만, 이 한만은 끝내 이어져 끝날 날이 없으리'라는 말을 열 네자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간결미는 한문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 아닐 수 없죠.

장국영이 부른 수많은 주옥같은 곡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곡 한 곡을 골랐습니다. '영웅본색'의 주제가 '당년정(當年情)'이죠. 요즘은 바비 킴의 '사표를- 던져라-'로 더욱 익숙해진 곡이 돼 버렸지만.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
1967년 2월 20일 출생 - 1994년 4월 5일 사망





코베인에 대해서도 그리 길게 보탤 말은 없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연에,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니 저와 동갑이군요.^





유서의 마지막에도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썼지만




팬들은 그의 아내를 증오하죠.

그를 생각하면 저는 항상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너바나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잘 알려진 MTV 언플러그드 버전입니다.



...과연 코트니는 그날 어디서 자고 들어갔기에 이렇게 남자를 비탄에 빠지게 했을까요.



임성훈(Turtleman)
1970년 9월 3일 출생 - 2008년 4월 2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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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데뷔해 운동가요 '사계'를 댄스곡으로 편곡한다는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준 터틀맨은 2005년 이미 심근경색 판정을 받고 수술도 받았습니다. 심근경색과 댄스가수란 거의 양립할 수 없는 영역이죠.

하지만 그는 '병원에 누워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며 계속해서 곡을 쓰고 무대 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명을 재촉하는 일이었겠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었지만 그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터틀맨이 남긴 노래들을 고르다 보니, 추모곡으로 걸맞은 노래는 한 곡도 없더군요. 하긴, 병마와 싸우면서도 밝고 즐거운 노래들을 만든 터틀맨이고 보면 자신의 추모 분위기를 어둡고 칙칙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비행기'입니다.






마지막 노래로는 이 노래가 어울릴 것 같아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퀸의 'No One But You', 부제는 'Only the good die young' 입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은 일찍 죽고, 좋은 일들은 이미 끝나 버린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똑같의 제목의 노래를 빌리 조엘도 불렀지만 아무래도 이 노래의 분위기가 훨씬 어울리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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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호풍환우(呼風喚雨)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김인식 감독은 그런 의혹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완패한 상황에서 지난 21일 내린 단비는 한화의 숨통을 터 줬고, 하루 연기돼 열린 2차전에서는 바람이 매 상황마다 한화에 유리하게 불었다. 1회말 삼성 조동찬의 홈런성 타구가 역풍에 꺾여 잡히는가 하면 기회 때마다 한화 타자들의 타구는 순풍을 탔다. 그야말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린 적벽대전같은 한판 승부였다. (이건 2007년 한국시리즈의 상황을 놓고 한 얘깁니다. 지금 상황과는 무관하지만, 이 자리에 최근 벌어진 WBC 멕시코전 상황을 대입하면 같은 결론이 됩니다. 더블스틸, 번트, 버스터, 좌-우 투수들의 정신 없는 계투, 여기에 때맞춰 터져 준 타자들의 장타... 그야말로 현란한 '야구의 모든 것'이었죠.)

 아직 올해 한국시리즈의 최종 결과를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만약 김인식 감독의 이런 스토리가 실제상황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흥행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감독이 무슨 마술사라도 되나. 세상에 저런 만화같은 스토리가 어디 있냐. 대본에 개연성이 없다"며 혹평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야구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면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 불보듯 뻔하지만 극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면 누구나 당연한 일로 여긴다. 즉 같은 사람이라도 야구장에 갈 때와 극장에 갈 때에는 기대하는 극적 감동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현실이 극적 상상력을 능가해 버리는 상황은 스포츠의 세계에선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중에는 의외로 히트작이 드물다. 야구를 국민적 여가(national pastime)라고 부르는 미국에서도 야구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중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소재로 한 코미디 <메이저 리그>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흥행작이 없다.

 한국도 큰 차이는 없다.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흥행 대박을 기록했을 뿐, 전설의 고교야구 영화 <자, 지금부터야>에서 <YMCA 야구단>, <슈퍼스타 감사용>에 이르기까지 '야구 영화'하면 내세울만한 작품이 딱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래 야구영화는 안된다고 말해 버리기엔 저변이 너무 아쉽다. 매년 야구장을 찾는 관중만도 300만. 이승엽이며 박찬호의 성공 스토리, 올 연초 WBC 4강에 열광했던 잠재적인 야구 팬들은 한둘이 아니다. 프로 야구가 등장한지도 24년이나 돼 기반도 성숙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기 연예인들이 팀을 구성해 직접 공을 던지고 때리며 정규 리그를 치르고 이를 TV로 중계까지 하는 나라다. 개중에는 장진, 김상진 감독이 소속된 팀도 있고, 리그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야구단 플레이보이스에는 장동건 김승우 주진모 황정민 조인성 등 현역 최고의 톱스타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이 정도 저변이면 이제는 한국에도 '이런 야구 영화가 있다'고 말할만한 영화 한 편쯤이 나올 때가 된게 아닐까. 연예계 애구파(愛球派)들의 분발이 기대된다. (끝)





굳이 지금 이 글을 다시 올린 건 어제 올린 글이 너무 묻힌 데 대한 아쉬움입니다.



김인식 감독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긴데 이 분의 야구관에는 참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김감독의 두산 재임 시절 한 선수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선수: 감독님은 땅볼 치는거 별로 안 좋아해요.

나: 왜?

선수: 사실 땅볼로 깔아 쳐도 각 잡아서 잘 갈라 치면 안타 나오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플라이로 날아가는 공 치라고 맨날 그러세요. 신인들이 땅볼 치면 물어봐요.

나: 뭐라고?

선수: 이렇게요.


(김감독): 야, 내야에 (수비가) 몇명 서 있냐?
(신인): 여섯명요.
(김감독): 그럼 외야엔 몇명 서 있냐?
(신인): 세명요.
(김감독): 그럼 내야가 더 넓어, 외야가 더 넓어?
(신인): ...외야요.
(김감독): 그럼 자식아, 내야로 쳐야 되냐, 외야로 쳐야 되냐?
(신인): ...외야요.



나: 음.... 맞는 말이잖아. ;

선수: 맞는 말이긴 해요.


뭐, 감독님의 유머였는지, 진지한 얘기였는지는 지금은 알 길이 없네요. 하여간 김인식 감독님, 같이 있으면 절대 심심하지 않은 특급 유머감각의 소유자셨습니다. 건강 때문에 좋아하시던 술도 못 드신다는데 참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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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심의의 잣대라는 건 참 균형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TV에서 여자 연예인의 비키니 차림이라는 건 대단히 음란한 표현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여름의 특집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이 모두 수영복 위에 티셔츠를 껴입거나 반바지를 입고 나오는 건 패션 감각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저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가 수영복만 입고 출연한 프로그램에 대해 '보기에 편치 않다'고 눈살을 찌푸리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에게는 '아니 수영장만 가도 요새는 일반인들도 다 저러고 다니는데...'라고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청학동에서 인터넷 하시는 분들이 '그럼 TV를 수영장으로 만들겠다는 거냐'고 수염을 부르르 떨고 하시는데, 뭐 꼭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도 좋아하는 사극 드라마에서는 예전부터 훨씬 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SBS TV에서 곧 방송될 '자명고' 팀이 사진 두 장을 공개했습니다. 자명공주 역의 정려원과 낙랑공주 역의 박민영이 잇달아 '목욕신'을 찍었더군요. 네. 아주 옛날부터 자주 보던, 사극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바로 그 '쇄골 아래 10cm' 짜리 목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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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화끈거리십니까? 애들이 볼까봐 두려우십니까(엄살은...)? 그런데 이런 장면은 벌써 수십번 안방극장에서 재현된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죠.

현대극에 나왔다면 시청자들이 득달같이 들고 일어날 장면도 사극에 삽입되면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가는 것이 흔히 있던 일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한 2년 전에 썼던 글이 있어서 좀 수정했습니다. 고려하고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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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사극에만 목욕신이 나올까?

사극이 강하다. 2006년 MBC TV '주몽'의 빅 히트 이후 주중 시간대에도 사극과 퓨전 사극 드라마의 고정 편성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이산',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바람의 화원' 등이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주말 사극인 '대조영'과 '대왕 세종', '천추태후', 그리고 퓨전 사극인 '일지매'와 '홍길동'까지 더하면 사극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은 주가 없을 정도다.  

심지어 케이블TV에서도 사극(풍) 드라마가 꾸준한 인기다. 조선시대의 수사드라마 '별순검'은 지상파에서도 의미 있는 숫자인 4%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OCN의 '메디컬기방 영화관', CGV의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사극이 왜 인기일까. 수만가지 답을 내릴 수 있지만 사극 붐을 설명할 때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빼놓을 수는 없다. 온 주위를 둘러 봐도 신나는 일이 없을 때. 현실이 너무도 심각하고 각박할 때 사극은 도피의 공간을 제공한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미 수백년전에 흙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어떤 위기에 처하든 그건 모두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고로 편안하다.

게다가 사극에는 상당히 풍부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존재한다. '라쇼몽'의 원작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현대 일본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다가와상은 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는 일찌기 역사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내가 원하는 설정을 마음대로 맞춰 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소설을 쓰는게 아니라 작가가 원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적절한 시대와 배경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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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반드시 이렇지는 않더라도 사극이 현대극보다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훨씬 적절한 형태라는 것은 확실하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사극의 고증이 훨씬 어려울 것 같지만 최근의 퓨전 사극 붐은 이마저도 흐트러놓은지 오래다. 현대극이라면 대단히 민감할 내용도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훨씬 매끄럽게 전달된다.

심지어 사극은 방송에서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섹스와 폭력의 문제에서도 현대극보다 훨씬 관대한 대접을 받는다. '메디컬기방 영화관'이나 '정조암살 미스테리 8일' 같은 케이블 TV 드라마 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방송된 사극 중에서 여주인공의 목욕신이 등장하지 않은 작품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현대극이라면 꽤나 화제가 될법한 수준이 일반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노출만도 아니다. '태왕사신기'에서의 피가 튀는 살육 장면 역시 현대극에서 재현됐다면 방송위원회의 규제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건 한국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최근 몇년새 붐을 이뤘던 '로마'나 '튜더스'같은 사극에서의 노출이나 폭력 강도는 현대극보다 훨씬 강렬하다. 아마도 '이건 다 현실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서슬 푸른 검열의 손길도 멎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재미있는 사극을 많이 보여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이 떠나는 것이 드라마 바깥, 실제 세상의 문제 때문이라면 상당히 우울해진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주식회사 한국'의 앞날이 밝을 때에는 드라마도 밝았지만 어느새 TV의 현대극에서는 치정과 불륜 드라마만 살아남게 돼 버렸다. 과연 내년에는 '밝은 현대극'을 볼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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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밝은 현대극이 나왔습니다. (이건 농담.^)

현대극이 싫어서 사극을 본다... 이건 좀 말장난같긴 하지만 현 상황에선 가장 정확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사극에는 목욕신이 나와도 괜찮다'는 선입견 역시, '저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듯 합니다.

아무튼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극이 더 야하고 잔인하다'는 것 또한 절묘하게도 사실입니다. 위에 예로 든 '튜더스'나 '로마'는 정말 대담하죠.




아울러 사극이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한국의 목욕신들.

(왜 꼭 하얀 속곳을 입고 목욕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장희빈'의 김혜수



'황진이'의 하지원




'왕과 나'의 구혜선




그리고 충격(?)이라는 표현도 나왔던 '신돈'의 서지혜




'여인천하'의 강수연






'왕의 여자'의 박선영까지.


정말 너무나 비슷비슷하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독 사극에만 관대한 한국 방송이 모든 시대에 좀 더 관대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자들만 나온다고 뭐라 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건 인정해야 합니다. 영화 '스카페이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누가 기억이나 해 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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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 정도면 기억할 만도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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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1955년생 중에서 성형수술 안 하고 이 분만큼 곱상한 분은 없습니다.^

이 분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무려 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던 '장학퀴즈' 출연자 예비 심사 자리에서 저는 "안녕? (가슴에 손을 얹고)나는 주철환 선생님이야"라고 말하는 PD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학생 다섯을 앉혀 놓고 몇가지 규칙을 설명하던 이 분은 "그러니까 '반복'은 되지만 '번복'은 안 된다"고 설명하다가 대뜸 저를 가리키면서 "니가 반복과 번복의 차이를 설명해 봐"라고 지목하시더군요. 더듬거리며 설명했더니 "그래, 똑같은 답을 되풀이하는 건 되지만 바꿔서 대답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게 퀴즈의 원칙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최근들어 소란스럽기도 했지만 이 분이 OBS 대표가 되셨을 때의 글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분이 임기를 꽤 많이 남겨놓고 사퇴를 선언하셨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새삼 이 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2007년 연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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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PD의 꿈 ‘TV 정글’에서 통할까

경인TV 대표로 방송 복귀한 주철환 사장

당대(唐代)의 시성(詩聖) 두보의 작품 중에 ‘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이라는 칠언절구가 있다. 안록산의 난으로 유랑 중이던 두보가 한때 최고의 명창이었으나 이미 쇠락한 가객 이구년을 만난 감회를 노래한 시다. 1990년대의 스타 PD 주철환은 “흘러간 인기 가수를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칠 때 혹시라도 출연 요청을 해올까 봐 시선을 피하는 심정”을 이 시에 빗댔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그의 재기발랄함을 설명하는 데 있어 아주 미세한 편린에 불과하다. 항간에 수없이 회자되는 ‘꿈·끼·깡·꾀·꼴·끈’ 이라는 쌍기역 돌림의 ‘성공 조건’ 또한 그의 작품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 출신인 그는 ‘모여라 꿈동산’ ‘퀴즈 아카데미’의 주제가를 직접 작사·작곡하기도 했다.

이런 르네상스풍의 지식인인 그가 이화여대 교수가 됐을 때에도 ‘과연 조용히 학계에만 몸을 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 결국 그는 28일 처음 전파를 내보낸 경인TV(OBS)의 대표직을 맡아 현장에 복귀했다.

하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않으니 일선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표라고 해도 그에게 맡겨진 사명은 회사의 경영보다는 콘텐트의 관리다. OBS라는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프로그램에 어떻게 ‘주철환 표’의 색깔을 입히느냐가 사람들의 관심사다.

‘주철환 표’란 무엇일까. 일찍이 그와 함께 MBC ·TV의 예능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스타 PD 송창의(현 tvN 대표)와 그의 색깔은 현직 시절부터 ‘당의정론’으로 확연히 구분됐다. “오락 프로그램은 일단 재미있으면 그걸로 제 기능을 다한 것”이라는 송창의의 주장에 주철환은 “재미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프로그램에 담아내야 한다”고 맞섰다.

이른바 ‘당의정처럼 오락으로 포장된 교양을 시청자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이 흐름은 뒷날 ‘이경규가 간다’나 ‘느낌표’ 등을 통해 KBS·SBS와는 다른 ‘MBC 예능’의 독특한 색채로 계승됐다.

OBS는 28일 개국과 함께 7명의 스타 영화감독이 만드는 드라마, 주철환 대표가 직접 진행하는 정보성 토크쇼, 앙드레김의 반생을 그린 팩션 드라마 등 기존 방송사와는 색채가 다른 상품을 매장에 전시했다. 그렇다 해도 현실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다.

OBS는 개국 후에도 상당 기간 인천과 경기도 일부 지역(서울 제외) 주민들만의 방송이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여타 지방에서 케이블TV로라도 OBS를 시청하려면 방송위원회의 역외 재전송 허가가 떨어져야한다.

주 대표는 자신의 영문 이니셜 C H의 C를 ‘창의력(Creativity)+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상식(Common Sense)’으로, H를 ‘조화(Harmony)+휴머니티(Humanity)+유머 감각(Humor Sense)’으로 정의해 이를 새 조직의 모토로 삼았다.

요약하면 ‘인간의 얼굴을 한 방송사와 방송 콘텐트’인데, 과연 무한 시청률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TV 정글’에서 이런 선의가 살아남을 것인지, 그 방법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겠다. (끝)







 


물론 이 분에 대한 항간의 오해도 살짝 있습니다. 이 분이 만든 프로그램이 모두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퀴즈아카데미'와 '우정의 무대' 등은 크게 성공했지만 이들 못잖게 야심에 찬 프로그램이었던 'TV 청년내각'은 실패했죠.

또 많은 분들이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이 분이 만든 것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이 코너는 이 분의 전임자였던 송창의 PD의 작품입니다. 이때도 이미 인기였지만 주철환 PD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맡으면서, 자신이 연출한 첫 몰래카메라에 이 분을 등장시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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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내사랑 굿바이 굿바이 어디서나~~'라는 가사로 유명한 '이별 아닌 이별'을 한창 히트시키고 있던 이범학입니다. 당시 '퀴즈 아카데미'에는 문제 출제(문제 읽기)를 위해 인기 연예인들이 하루 한명씩 출연했는데, 어느날 출연중인 학생들 앞에 이경규가 "오늘부터 내가 이 프로그램의 MC를 맡게 됐다"고 주장하며 나왔습니다. 그날의 출제자가 이범학이었던 거죠.

그냥 '퀴즈 아카데미'의 섭외인 줄 알고 스튜디오에 나온 이범학은 '2 더하기 2는 4입니다. 그럼 2 빼기 2는 무엇일까요(정답은 틀니)', '아담 스미스는 어쩌고 저쩌고 저쩌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발의 피란 무슨 뜻일까요(정답은 아주 적은 양)' 같은 황당한 문제를 읽다가 급기야는 '다음 흉내는 어떤 동물을 가리키는 것일까요'라는 문제를 내 놓고 원숭이 흉내를 내는 등 시청자들의 배꼽을 홀딱 빼 놓았습니다.





(그 뒤로 이런 몰래카메라, 즉 '몰카'들도 생겨났죠.^^)


이날 몰래카메라는 이범학 뿐만 아니라 문제를 풀러 나온 순진한 대학생들(개중에는 나중에 5승을 한 '달과 600냥'이라는 팀이 있었습니다)까지 희생양으로 만들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문에 '몰래카메라'라는 것을 주철환 PD가 만든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많아졌죠.

사실 저는 당시 집에서 이 방송을 보다가 "저건 틀림없는 조작"이라고 우겼습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저 바보같은 문제를 맞추는 동안(학생들도 처음엔 얼떨떨 하다가 계속 이런 문제가 나오자 나중에는 기를 쓰고 서로 맞추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학생들의 머리 뒤에 있는 점수판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제를 맞추거나 틀리거나 점수가 전혀 변동이 없으면 학생이든 MC든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가 해결된 뒤 녹화를 재개했어야 한다. 그런데 점수 변동이 없는데도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고 녹화가 진행됐다는 건 최소한 학생들은 이게 정상적인 녹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그건 오해였습니다. 나중에 그 '달과 600냥' 출신들을 잘 알게 됐는데 "워낙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라 아무 정신이 없었다. 점수판이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며 웃었습니다.  주철환 사장님도 나중에 이 얘기를 했더니 "야, 그런건 너같은 놈이나 알지 걔들이 그런걸 어떻게 신경 쓰겠냐"고 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이건 점수판을 조작하던 분과 호흡이 맞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본래 '퀴즈 아카데미' 제작진이 녹화 준비를 끝내고 있는데 이경규씨가 MC 자리에 들어오자 이 점수판 조작 담당이 "아, 그럼 녹화가 지연되는구나" 하고 잠시 자리를 비운 거였습니다. 그 사이에 '몰래 카메라'가 진행됐고, 점수판은 불통이었던 겁니다.


 


PD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많은 제자를 길러 내신 분(제자들 중에는 이 윗 분도 있습니다) 답게 주위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자신의 재능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는데 주저하지 않은 분입니다. 이 분의 작품들은 수시로 도용되고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 든 ‘꿈·끼·깡·꾀·꼴·끈’ 만 해도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작품인 양 자랑하고 있죠.

저도 그 뒤로 이 분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지만 가장 쓸모 있는 건 이 한마디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방송의 본질'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도중, 이 분은 '내가 방송의 본질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마'며 이 얘기를 하셨습니다.

"방송이란 건, 감탄고토(甘呑苦吐)야."




13개월만에 이때의 글을 다시 보니 역시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걱정이 현실이 된 듯 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OBS는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을 두드렸지만 일단 시청자와 방송이 만나는 접점이 너무 적었죠. 방송망 확대에 예상보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신생 방송사의 재정에 경기 악화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최근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신 점을 생각하면 사장직을 벗어 버리신 것이 오히려 홀가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능력있는 분이니 오래 쉬실 리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경기도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만 보이던 OBS는 이제는 서울 지역에서도 40% 이상이 시청 가능 지역이라고(물론 케이블로) 합니다. 요즘 경영이 힘들다고도 하는데, 초대 사장을 이렇게 떠나 보낸 OBS는 과연 언제쯤 전국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책을 또 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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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발라드 가수들도 데뷔하는 데 2-3년 이상 걸립니다. 노래 실력을 다듬느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일단 '외모'를 데뷔하는데 맞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형수술도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죠. 수술 한번에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여러 차례 성형해 조각같은 얼굴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수의 힘은 역시 가창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번 노래를 하면 듣는이의 간장이 다 녹아 내리고, 듣는 순간 팬이 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똑같은 소리를 내도 어떤 사람은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감정이 다 펼쳐지는데 다른 사람은 목소리 곱고 음정이 정확한데도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명가수는 타고 나기도 하지만 환경의 영향이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굴곡진 삶을 산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소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주장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가수로는 위 사진에 나오는 빌리 홀리데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늘 말씀드리지만 주말은 재방송^^)




빌리 홀리데이는 1915년 태어나 1959년 숨을 거뒀습니다. 할아버지는 형제가 16명이나 됐던 버지니아의 노예였고, 어머니는 홀리데이를 낳았을 때 겨우 13세였다고도, 16세였다고도 합니다.

홀리데이는 볼티모어의 빈민가에서 성장했고 부모는 그녀가 세살때 결혼했지만 곧 이혼해서 아버지를 만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11세때 성폭행을 당했고 이 일을 계기로 무단결석 증세를 보여 가톨릭계의 교정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1928년 뉴욕으로 이주해서도 다시 이웃집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런 전력 이후 그녀는 한때 창녀로 일했고, 옥살이도 경험합니다. 그래도 타고난 가창력 때문에 한 재즈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자 청중들은 눈물을 흘렸고, 이로 인해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뉴욕의 수많은 클럽들을 통해 입소문을 충분히 남긴 뒤에 1935년부터는 음반으로 빛을 보게 되죠.

이후의 삶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습니다. 재즈계에서 불멸의 여성 보컬로 각광받았지만 이미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고, 1959년 죽기 직전에도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간경화 때문에 4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죠. 하지만 죽기 1년 전인 1958년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Lady in Satin> - <I'm a fool to want you>가 수록된 - 을 내놓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한 건 우리나라의 다른 가수 한 분이 생각나서입니다. 예전에 거기에 대해 써 둔 글이 있어서 올려 봅니다. 홀리데이의 사연과는 전혀 다르지만, 이 분의 사연을 알고 나면 어떻게 해서 그런 절창이 가능한지를 느끼게 됩니다. 편의상 이니셜을 사용했지만 짐작하기 그리 어렵진 않으실 겁니다.




제목: 어떤 사람이 가수가 되나

S씨의 아버지는 판소리 중고제(동편제 서편제 외에도 있다)의 명창. 고모는 승무의 대가였다. S씨를 낳을 때 아버지는 이미 60대였지만 그의 제자였던 어머니는 갓 스무살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S씨를 데리고 개가를 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사내아이는 내주고 S씨와 함께 또다시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늘 두고 온 아들 생각에 눈물짓는 어머니와 단 둘이 자란 S씨는 매우 병약한 아이였다. 급기야 중학교때에는 심장병으로 2년 정도 학교를 쉬게 된다. 그 뒤로도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지느라 학교 생활이나 교우관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도 어머니가 S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오랜 병끝에도 가정교사(흔히 S씨의 첫 히트곡의 주인공이라고들 한다)를 둘 수 있었던 걸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매사 우울하고 예민한 성격이던 그가 1979년 10월, 감히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던 거물급 인사가 바로 눈앞에서 심복에게 사살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 지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S씨는 이미 스타가 된 뒤에 세번의 결혼을 했다. 첫번째 남편은 역술인. 그는 S를 보자 마자 "우리는 몇 세기 전부터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사이"라며 못을 박아 버렸다. S는 그의 그런 태도에 감히 반항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 없이 자란 S는 남자를 만날 때 항상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남자를 찾았다고 한다. 권위있는 남자야말로 자신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 남편은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파경으로 이어졌고, 결혼 생활에 관심이 없던 남편은 아들을 쉽게 내줬다. 아이를 기르며 살던 S는 이번엔 진해 출신의 호걸풍 사업가와 재혼을 했다. 매사 순조로워보였다. 딸 아이 하나를 낳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사업가라기보다는 어둠의 세계에 더 가까웠다. 게다가 알고 보니 본처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같이 살 수는 없었지만, 남자는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딸 아이는 내놓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감히 맞설 수 없었던 S는 늘 딸 아이가 눈에 선했다. 그래서 '아이야'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세번째 남편은 방송사 PD. 이미 이혼 경력이 있고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던 PD의 남자다운 리더십에 S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결국 S가 PD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두 사람은 곧 결혼을 했다.

그러는 사이 두번째 남편이 사업도 망하고, 병들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남편은 딸을 데려가 줄 것을 부탁했다. S는 세번째 남편에게 "딸에게 그동안 못한 엄마 노릇을 해 주고 싶다"며 딸을 미국으로 데려가 1년간 함께 살면서 음악을 가르쳤다.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자 두번째 남편으로부터 "딸이 너무 보고 싶으니 좀 내려 보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개통한지 며칠 안 된 KTX를 타고 딸이 내려가던 날, 두번째 남편은 마중을 나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절명했다.

S는 현재 부모가 엇갈리는 세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다. 다행히 세번째 남편은 절세호인이라 그의 굴곡 많은 삶에도 평화가 깃들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S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겹겹이 쌓인 한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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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목소리에서 뿜어나오는 겹겹이 싸인 한에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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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의 송화도 장님이 된 뒤에 그 한이 맺혀 나오는 목소리가 더욱 절창으로 꼽혔다고 하죠. 유독 맹인 명가수들이 많은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 작용을 하는게 아닐까요.

하긴 명배우 중에도 인생에 고달픈 역정이 담긴 사람들이 많이 있죠. 작가들 중에도 남다른 가족사를 가진 분들이 많은 걸 보면 '한'이라는 것이 창작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 작게 평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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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우를 여왕으로 인정하기까지  (69) 200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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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스타들은 미식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스타들과의 한끼 식사를 위해서는 자기가 아는 최고의 장소를 마련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정은이나 손예진처럼 아직도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떡볶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톱스타로 대접받을만한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 일가견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스타들이 식당을 내면 잘 되는 것은 결코 손님들이 스타들을 보러 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맛'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어떤 계층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일가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수의 면모는 항상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송승헌군이 어느날 문득 설렁탕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맛에 대해 감각이 있다는 걸 몰랐을 겁니다. 그냥 그런 얘깁니다.

그리고 글 마지막에 나오는 이승연의 골뱅이 먹는 법, 제가 실험해 봤습니다. 얼핏 생각과는 매우 다릅니다. 무척 맛있습니다. 여러분도 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공지: 주말은 재방송.^^




각양각색 스타들의 다양한 미각

스타들은 미식가다?

대부분은 그렇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스타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기회가 생기면 자기가 아는 한 가장 고급스럽고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자 한다. 가는 곳마다 맛난 것, 멋진 곳만 보고 다니면 자연히 기준이 높아질 밖에.

음식에 대한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는 스타들도 많다. 원로 스타인 신성일은 쇠고기를 먹되 살코기 쪽은 손도 대지 않고 내장을 탐식한다. 코미디언 고영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냉면 마니아. 그가 서울 시내에서 최고로 꼽는 집은 주교동 우래옥과 대한극장 뒤편의 필동면옥이다. 스물 세살이 될 때까지 한번도 아귀찜을 먹어보지 못한 김하늘은 스물 네살때 처음 먹어 본 목동의 한 아귀찜집을 잊지 못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찾아간다.

물론 음식에 대해 남들에 비해 날카로운 주관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송승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송승헌이지만 설렁탕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설렁탕이 나올 때, 보글보글 끓으면서 나오는 집은 다시는 안 가요. 국물에서 김이 나되 끓지는 않는 집이 맛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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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이유도 알 수 있다. 국물이 막 끓고 있는 집은 뚝배기로 국물을 잡아 따로 끓여 나온 집이고, 김만 나는 집은 큰 솥으로 오래 오래 끓이다가 작은 그릇에 덜어 나온 집이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큰 솥으로 끓이는 집 중에도 주문 받을 때마다 작은 뚝배기에 옮겨 다시 끓여주는 집이 있다는 항변이 있을 수 있지만, 원래 설렁탕은 그렇게까지 뜨거울 필요는 없는 법이다.

요리에 대한 지식으로는 명세빈도 한 몫 한다. 명세빈은 된장찌개 한가지를 끓여도 주 재료를 차돌박이로 하느냐, 야채로만 끓이느냐, 멸치 국물로 끓이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반면 비슷한 이미지지만 손예진은 부대찌개 한가지를 끓여도 "끓여는 봤는데 뭘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




연예계에는 소품으로 나온 음식은 먹지 않아야 한다는 오랜 관습이 있다. 소품을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소품을 건드리면 촬영에 차질이 생길까봐 나온 말인 듯 싶지만, 이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로 김혜수다. 김혜수는 "내가 열일곱살 이후에는 소품으로 컸는데 무슨 소리냐"며 이것 저것 집어먹곤 한다.

김혜수 외에도 대부분 스타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탤런트 김소연은 중국에서 튀긴 전갈까지 먹을 정도로 비위가 좋고 성시경은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을 때도 삼겹살을 따로 구운 뒤 같이 끓여 먹을 정도로 느끼한 음식에 강하다. 반면 레스토랑 경영자인 어머니와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누나를 둔 싸이는 첨단의 입맛을 자랑하지만 오이와 날 토마토를 먹지 못한다는 의외의 약점이 있다.

입맛을 살려 식당 경영으로 각광받고 있는 연예인들은 한둘이 아니다. 선우재덕은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서 분식점을 10년 이상 경영한 경험을 살려 파스타 체인점 <스게티>를 성공시켰다. 늘 TV 출연때마다 고기 먹는 이야기를 하는 강호동도 역시 고기집 체인 <육칠팔>로 재벌 분위기를 내고 있다. 치킨과 피자 가게로 요식업계에 진출한 박명수는 자신의 히트곡 <바다의 왕자>를 따서 해산물 전문점 <바다의 왕자>를 역시 체인으로 개발하고 있다.

서경석도 양화대교 남단에서 삼겹살과 칼국수 전문점 <경서기네>를 운영하고 있고(얼마 전 서경석씨가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집은 이제 서경석씨와 무관하다고 합니다.) 이정재는 영화 <시월애>에서 자신이 살던 집 이름과 같은 대학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 마레>를 경영한다. 춘천 부근에서 탤런트 정보석이 경영하는 라이브 카페 <스타스클럽>은 아예 '정보석 카페'라는 이름으로 관광 명소가 되어 있을 정도다.



필자는 최근 이승연으로부터 특이한 '별미 식사법'을 들었다. 준비물은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골뱅이 통조림, 그리고 구운 김이다. 밥 한 숟가락에 골뱅이를 하나 얹고, 김으로 싼 다음 골뱅이가 잠긴 국물에 폭 찍어 입에 넣는다. 잘 어울릴까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한번만 먹어 보면 모두 승복하고 만다는 얘기. 여러분도 한번 '이승연의 미각'을 시험해보시기 바란다. (끝)


최근 연예인 중에서 요식사업으로 가장 잘 나가는 분은 아무래도 한류스타 배용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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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은 서울에서 건강식 레스토랑 '고릴라 인 더 키친'을 성업중인데다 도쿄에서는 한정식 '고시레'로 성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고시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 일본에서 도시락과 김치(위 사진들)까지 내놓고 있죠. '그분의 밥'을 먹을 때마다 그분의 따뜻한 미소를 느끼는 일본 아주머니들의 정성이 외화 획득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아무리 톱스타들이 하는 식당이라도 맛이 없으면 망하는게 세상의 원리라는 점 만큼은 반드시 기억해야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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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어쨌든 흥행에서는 날로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의 모습에서 '세련된 영국제 스파이'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건 영 아쉬운 부분입니다. 비록 왕년의 선배 007들은 이제는 서민용 대출 광고나 상조 광고에 나올 정도로 노장들이 되어 버리셨지만 말입니다. 아랫 글은 '카지노 로열'때 쓰여진 글입니다만, 대부분은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007이 본 시리즈를 모방했다든가, 다니엘 크레이그에게서 션 코너리의 냄새를 느낄 수 없다든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에 수많은 논의가 있었고, 본 시리즈야말로 결국 고전 007 시리즈에서 많은 부분을 모방했다는 것(엄밀히 따지만 제이슨 본, J.B.라는 이니셜부터 이미 대놓고 베끼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이언 플레밍이 그려내고 있는 원작 소설의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이 Young 님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건질 건 이언 플레밍과 다니엘 데포의 공통점 정도...? 아무튼 '일요일은 재방송'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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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진짜 007을 돌려다오

007 제임스 본드와 로빈슨 크루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국 작가의 유명한 주인공'이라는 대답은 5점.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적이 있는 역할'이라면 8점 쯤 된다. 10점짜리 대답은 이 둘에다 '전직 첩보원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추가되어야 한다.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이 2차대전 당시 진짜 영국 첩보원으로 활약했다는 건 상식이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 데포가 영국 첩보기구의 창시자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명예혁명으로 뒤숭숭했던 17세기 말 윌리엄 3세의 편에서 '영국의 적'들과의 첩보전을 주도했다.

(다니엘 데포)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영국제 스파이'의 장구한 역사를 짚어 보자는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한발 건너 있는 영국은 오래전부터 군사력보다는 외교력과 정보력으로 균형자의 위치를 지켜왔다.

이런 전통을 대변하듯 007로 대표되는 영국제 스파이들은 깔끔한 의상과 침착하고 우아한 태도,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이미지를 굳혀 왔다. 프랑스인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오는 영국인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의 느낌 그대로다.

 (이언 플레밍입니다.)



하지만 007 시리즈 최신작 <카지노 로얄>은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새로 발탁된 제임스 본드 역할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우아하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사건이 닥치면 일단 몸으로 밀어붙인다. 유머도 모른다. 당연히 플레이보이도 아니다. 오히려 순정을 바치다 당하기도 한다.

이번 변화는 궁여지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007 시리즈 제작진이 피어스 브로스넌을 은퇴시킨 이후 캐스팅난에 시달렸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멜 깁슨, 조지 클루니에서 주드 로를 거쳐 제라드 버틀러까지 이들이 물망에 올렸던 수많은 후보들을 거론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다. 수많은 진통 끝에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거친 용모의 배우가 선택됐고, 거기 맞춰 새로운 본드 상이 탄생했다.



결국 <카지노 로얄> 자체는 나름대로 완성도있는 작품이 됐지만 골수 007 마니아들로부터는 '진짜 본드를 돌려달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크레이그에게선 션 코너리나 로저 무어의 향취를 전혀 느낄 수 없는데다, 본드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감초였던 비밀병기 전문가 Q도, 국장 M의 비서 머니페니도 등장하지 않는 본드 영화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콜리스는 이번 제임스 본드에 대해 "훌륭한 몸은 갖고 있지만 영혼은 없다"고 혹평했다.

일리가 있다. 몸으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이 보고 싶으면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나 빈 디젤의 <XXX>를 보면 된다. 전반부의 맨몸 추격전이 멋지다면 프랑스 영화 <13구역>이나 <야마카시>를 볼 일이다. 이런 주인공들이 널렸는데 대체 왜 제임스 본드가 후배들의 흉내를 내 가면서 이미지를 바꿔야 할까. 이런 부분에 대해 한국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 지 궁금하다. (끝)






피어스 브로스넌이 나온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별 재미는 없습니다. <로마 Rome>에서 섹시한 모습을 과시했던 폴리 워커가 나온다는게 인상적인 정도.


다니엘 데포의 경력이 궁금하신 분은
http://en.wikipedia.org/wiki/Daniel_Defoe 나 콜린 윌슨의 <잔혹>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가지 얘기가 있었지만 저는 본드 캐릭터의 원형은 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의 데이비드 니븐입니다. 원작에 그려진대로 어떤 난국을 맞아도 절대 흥분하거나 판단력을 잃지 않고, 정확한 판단으로 태평스럽게 행동하는 영국 신사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낸 명배우였죠.

물론 나중에 등장한 진짜 본드들은 훨씬 더 당당한 체구의 미남들이었지만, 이런 느낌들은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조지 라젠비나 티모시 달튼이 장수하지 못한 것은 모두 이런 부분들에서 본드의 분위기를 풍기지 못했기 때문이죠. 특히 늘 긴장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달튼이 007이 된 것은 다니엘 크레이그 못지 않은 실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원작자 이언 플레밍 역시 션 코너리가 007 1호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데이비드 니븐이었으면 했는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뒷날 션 코너리의 발전을 지켜본 플레밍은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해 냈다"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아무튼 범인이 뛰면 같이 뛰는 본드 캐릭터의 어디에서 우아함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뛰어라. 네가 뛰어서 도착하는 그곳에서 나는 기다리마...라는 것이 진정한 본드의 자세가 아닐까요. 저는 이런 본드를 보고 싶은 겁니다.

(앞글의 댓글에도 달았지만 차나 모터사이클, 스키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직접 뛰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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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과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얘기를 하다가 문득 '맛있는 청혼'이라는 드라마 생각이 났습니다. 손예진의 데뷔작인 이 드라마는 한때를 풍미한 히트작이면서 수많은 스타들이 쏟아져 나온 바로 그 작품이죠.

손예진과 소유진은 물론이고, 권상우와 지성 역시 이 작품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왜 그랬는지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뭐 재활용인 걸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냥 가볍게 즐겨 주시길.^^)

혹시 아래 사진이 기억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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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작 '아웃사이더 Outsiders'의 한 장면입니다. 위 사진에 나오는 얼굴들을 잘 봐 주시기 바랍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패트릭 스웨이즈, 맷 딜런, 롭 로,  톰 크루즈, 토마스 하웰, 랄프 마치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입니다.

물론 패트릭 스웨이즈는 '사랑과 영혼 Ghost'에 출연하기 전이고, 톰 크루즈 역시 '탑건 Top Gun'에 나오기 4년 전입니다. 롭 로도 '어젯밤에 생긴 일 About Last Night', 랄프 마치오도 '베스트 키드 Karate Kid'에 나오기 전이죠.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역시 찰리 쉰의 형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나오고 4-5년 사이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여주인공이던 다이언 레인을 포함해 모두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인기 스타들로 떠올랐습니다. 영화가 나올 당시 가장 유명했던 스타는 'I was made for dancing'으로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던 가수 레이프 개릿이었지만 오히려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죠.

(감독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그래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의 감독 소피아 코폴라도 대사가 거의 없는 아역으로 나옵니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 한 편에 함께 출연했던 무명 스타들이 한방에 모두 톱스타로 성공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일본 드라마 '고쿠센' 1, 2편의 경우도 그렇죠.

한국에서는 흔히 이와 유사한 예로 '우리들의 천국'이나 '내일은 사랑', '사랑이 꽃피는 나무'같은 드라마들을 꼽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사실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젊은 스타들을 육성하기 위해 주간 시추에이션 드라마로 상당 기간을 끌고 간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끝나 버리는 미니시리즈에서 새로운 스타들이 우루루 쏟아져나온다는 건 참 보기 드문 일이죠. 일단 미니시리즈의 주연을 신인들이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01년 방송된 '맛있는 청혼'은 참 이례적인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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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드라마, <맛있는 청혼>

야구 감독 가운데도 유난히 신인들을 잘 길러내는 감독들이 있다.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를 우승시킨 강병철 감독이 대표적인 경우. 강감독은 일부러 신인들의 기를 키워줘 좋은 성적을 내게 하고, 이를 통해 노장들을 자극해 분발하게 하는 기술에서 국내 최고로 정평이 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유독 신인들을 데리고 좋은 성적을 내는 연출자들이 있다. 이런 드라마들은 대부분 청소년 취향의 트렌디 드라마인 경우가 많지만 <닥터 갱> <네멋대로 해라>의 박성수 PD는 독특한 색채의 드라마들을 만들어내면서도 신인들에게 개성을 심어 주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연출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이런 방면에서 '거장'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맛있는 청혼>이라는 드라마였다.

손예진 소유진 정준 소지섭. 2001년 벽두 <맛있는 청혼>의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MBC TV 드라마국은 완전히 사색이 돼 있었다. 정준은 청소년드라마 <사춘기>의 이미지가 강한 '소년 배우'. 같은 무명이라도 소유진은 드라마 한두편에 출연한 경력이라도 있었지만, 손예진은 아예 드라마고 뮤직비디오고 단 한번도 카메라 앞에 서 본적이 없었다. 소지섭 역시 <발리에서 생긴 일> 이후의 소지섭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런 캐스팅일 리는 물론 없었다. 공을 들이던 차태현이 출연을 거부하자 김래원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지만 촬영 하루만에 박PD는 정준으로 주인공 교체를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김래원의 연기력이 믿음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김래원이 출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미 캐스팅돼 있던 박진희도 출연을 포기해 결국 소유진이 등장했다. 생짜 신인인 손예진의 경우, 다른 연기자들이 받쳐 준다면 신인 하나 정도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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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대진운도 나빴다. 이 드라마는 방송 한달 후면 SBS TV의 <아름다운 날들>과 맞붙게 되어 있었다. 이장수 PD가 연출한 이 작품의 출연진은 이병헌 류시원 최지우 신민아 이정현. <맛있는 청혼>의 김인영 작가와 <아름다운 날들>의 윤성희 작가는 김혜수 주연의 <짝>을 함께 집필한 사이로 묘한 라이벌 의식을 가질만 한 '동급'이었지만 배우들의 이름값으로는 뉴욕 양키스와 동네 리틀야구단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든 사람의 예상 밖이었다. <맛있는 청혼>은 승승장구,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치달렸고 <아름다운 날들>은 <맛있는 청혼>의 방송이 끝난 뒤에야 간신히 20%대로 올라설 수 있었다. 신데렐라가 된 손예진과 소유진은 모두 그 다음날로 주연급 연기자의 명단에 올랐다.

특히 손예진은 그 뒤로 최근작인 SBS TV <연애시대>까지 뚜렷한 실패 없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마다 승승장구했고, 소유진은 한때 부침을 겪었지만 최근 KBS 1TV <서울 1945>를 통해 여성미를 뽐내며 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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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은 이 드라마 전까지는 출연작이 아예 없으므로 별다른 사연도 없지만 소유진은 당찬 면모 하나로 무명시절을 꿋꿋하게 버텨나갔다. 사실 소유진은 이보다 훨씬 먼저 스타덤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가을동화>의 오디션을 본 소유진은 한채영이 맡았던 역할의 최종 경선에 올랐지만 윤석호 PD는 소유진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유는 용모나 연기력이 아니라 태도. 지나치게(?) 구김살없는 소유진의 성격이 윤 PD의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소유진을 처음 보는 사람은 '버릇없다'며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의 가정환경을 알고 나면 이해가 간다. 아버지가 예순 넘어 얻은 막내딸인 소유진이 얼마나 귀여움을 받고 자랐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게다가 이런 성격이 덕분에 소유진은 처음 대하는 카메라 앞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 <맛있는 청혼>의 신화를 얘기하자면 두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하나는 이 드라마에서 정준의 친구인 편의점 집 아들 역으로 출연한 지성, 또 하나는 드라마가 끝나기 직전 정준이 운영하던 중국집에 배달 오토바이 청년으로 투입된 권상우다.

둘 다 이때까지는 아무런 경력이 없는 신인이었지만 나중에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다들 아는 바와 같다. 이렇게 해서 <맛있는 청혼>은 '주연에서 단역까지 모두 톱스타가 된 행운의 드라마'로 한국 방송사에 남았다. (끝)

약간 변명을 하자면 권상우는 몰라도 지성은 이 드라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연한 드라마'는 아니었습니다. 이 드라마 외에도 단역으로는 몇번 얼굴을 비쳤죠. 이 드라마는 그가 출연한 최초의 '의미 있는' 드라마였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권상우의 당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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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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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런 시절도 있었다는게 새삼스럽군요.^

 

여기서 떼넨 손예진만의 발달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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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가끔 이니셜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에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 글에는 이니셜이 나오긴 합니다만, 그리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 보면 누군지 친절하게 가르쳐 드리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제가 만나 본 수많은 여배우들 가운데 이 분만큼 '여왕'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왕이나 여왕, 아무나 하는게 아니죠.본래의 제목은 'K, 그녀를 여왕이라고 인정하게 된 이유'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어 보고 나시면 많은 분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2001년 쯤 있었던 일입니다. 


"따로 가서 한잔 할래요?"

만약 당신이 이런 메모를 미모의 톱스타로부터 받았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렇다. 이 이야기는 누구라도 한번쯤 꿈꿔봤을 만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200*년, 한 사극이 시청률 50%에 육박하는 인기를 모으고 있을 때의 얘기다. 방송사는 신이 나서 제작진을 치하하는 잔치를 벌였다. 시끌벅적한 행사를 마치고 방송사 고위 간부들과 몇몇 기자들, 작가들과 일부 주연 배우들이 여의도에서 따로 자리를 벌였다. 흥이 난다기보단 지나치게 격식이 앞선 따분한 술자리였다.

그때 화장실을 다녀온 K가 슬며시 손을 뻗어 성냥갑 하나를 쥐어 주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던졌다. 눈빛이 0.1초나 스쳤을까. 못 견디게 궁금해진 기자는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성냥갑을 펼쳤다. 성냥갑 안쪽의 흰 속껍질에는 '따로 한잔 할래요?'라는 말과 함께 한 대형 가라오케 이름과 전화번호가 쓰여 있었다.

[참고로 핸드폰은 있었지만, 문자 기능이라는 것이 아직 나오기 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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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자는 학창시절 K가 출연하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그와 안면을 튼 적이 있었다. 취재하면서 몇 차례 옛 추억을 되새기기도 했고 현장에서 다른 기자들보다는 친근하게 말을 건넬 수 있었지만 그저 그런 정도. 그런 상황에서 기자에게 주어진 이 성냥갑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 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감히 누가 이런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

자리로 돌아온 기자는 K의 눈빛에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바보같이 헤벌쭉 웃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K도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 가슴이 콩당거리고 뛰었다. 술자리에 10여 명의 사람이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만 그와 의사소통을 했다는 쾌감은 매우 컸다. 술자리가 파하자 기자는 즉시 택시를 타고 강남으로 달렸다. 꽤 늦은 시간이라 약속 장소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구에서 'K씨가 예약한 방'을 찾았다.

앞장선 웨이터가 문을 열 때 방안에서 여러 사람의 웃음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방을 잘못 찾았다'는 것이었다. 방안에는 적게 잡아도 30명은 돼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60여 개의 눈동자가 내 몸에 꽂히자 술기가 확 달아났다. 입구 쪽에 앉은 한 사람이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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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기자분이잖아. 몰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누나한테 얘기 듣고 오신 거죠?"

그러니까 방을 잘못 찾은 건 아니었다.

"누나한테서 좀 전에 전화 왔어요. 곧 도착할 거래요. 먼저 저희랑 한잔 하고 계시죠."

그들은 '제작부', 즉 촬영ㆍ녹음ㆍ미술ㆍ조명 등의 스태프 중 막내급에 해당하는 친구들이었다. 흔히 퍼스트ㆍ세컨드ㆍ서드 등 숫자로 불리는 어시스턴트들은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박봉에 24시간을 근무하는, 육체적으로는 가장 혹사당하는 사람들이다. 화려한 축하연도 그들에게는 남의 일이었지만, 그런 그들을 누군가는 챙겨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K와 함께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따로 회식을 해 왔다고 했다. 이 자리에 K 이외의 다른 배우나 방송사 간부, 제작진의 우두머리들이 온 일은 없었다. 아무 힘도 없는 이들에게 술을 사 봐야 '누나'라는 친근한 호칭과 존경 외에 K가 얻을 것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매달 적잖은 개인 돈을 써 가며 스태프의 노고를 위로해왔던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짧지 않은 경력이지만 어떤 배우도 이런 일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었다는 얘기는 그 전에도, 그 뒤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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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도착했다.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데려가려 찾아온 큰누나를 만난다 한들, 그보다 반가운 환호성이 터지진 않았을 듯 싶다.

잠시 후 기자는 이런 대단한 일은 결코 돈이나 배포만으론 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됐다. 그녀는 그 자리의 30여명과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폭탄주로 건배를 했다. 물론 전부 원샷으로.

이 감동적인 배포, 감동적인 주량. 그 광경을 지켜보다 기자는 어느새 의식을 잃었다. 얼마 전까지도 MBC TV <문희>가 방송됐다.  그는 나이를 잊은 듯 팽팽하고 아름답다. 과연 그의 젊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혹시 그 엄청난 주량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전생에 어느 나라 여왕이었을 것이 분명한 그 카리스마에서 온 것일까. 확실히 강수연에겐 대한민국의 다른 어떤 배우도 감히 따를 수 없는 것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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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 보실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분을 직접 만나 보시면 누구라도 여왕으로 인정하고 싶어질 거라는 데 한표를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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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 한이 명가수를 만든다?  (20) 200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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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페셜 '나는 이영애다'를 봤습니다. '대장금'의 세계적인 인기에 비쳐 이영애라는 배우의 그동안 가려져 있던 일상을 그린다는 데 관심이 끌렸습니다.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건 '과연 이 내용이 이만한 시간과 전파를 들여 방송할 만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이영애다'에서 새롭다고 느낀 것은 이란과 짐바브웨 시청자들의 '대장금'에 대한 열광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막상 현장에서의 연출은 유치할 정도로 작위적이더군요. 아무리 '대장금'이 좋다고 해서 자기 아내를 '양금(이란에선 장금을 이렇게 부른답니다)'이라고 부를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한번 해 본 얘기일게 뻔한데 그게 얼마나 이 사람들이 '대장금'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단한 증거인 듯 그려집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이 다큐멘터리(?)의 수준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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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가 거리를 걷고, 영어를 배우고, 모자를 눌러 쓰고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이영애의 꾸밈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겠죠. '인간시대'처럼 몇주씩 한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이영애에게 던져진 질문 역시 너무도 피상적이고 기초적인 수준이고, 이영애의 대답 역시 언제나처럼 '무리 없는 정답'일 뿐입니다. 30분만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이영애'를 쳐 보고 질문지를 만들었다면 이렇게 무미건조한 문답만 오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은 이영애는 '대장금'이라는 대단한 드라마에 나왔고, 이영애는 그로 인해 전 세계의 수십개 나라에서 놀라운 인기를 얻었고, 그런 이영애는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참 성실하고 온화하며, 차분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훌륭한 연기자라는 것입니다. 네. 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과연 이걸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참 궁금합니다.

제작진이 늘 이영애를 접하던 드라마-예능쪽 팀이 아니고 교양 파트 팀이어서 평소 이영애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작 한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상식적이고 뻔한 내용으로만 채워 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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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산소같은 여자'라는 이영애의 별명에 대해 '산소=무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안티들도 있었지만, 현재 대한민국 여자 연예인 중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그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심은하가 사실상 은퇴하고, 왕년의 68년생 트리오인 최진실 채시라 이승연이 서서히 아줌마 역할 쪽으로 기울고 있는데다 김희선과 고소영도 최근 들어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90년대의 여성 톱스타들 가운데 여전히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김혜수와 이영애, 고현정 정도라고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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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90년대 초의 드라마들을 잠시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초호화 캐스팅(물론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얘깁니다)인지 사뭇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얼마전 99년작 '해피 투게더'를 연출한 오종록 PD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캐스팅을 할 수 있는지 참(이병헌 송승헌 차태현 한고은 김하늘 전지현...) 웃음만 나온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보다 조금 앞선 시절의 드라마들은 더욱 대단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전 언급했던 '아스팔트 사나이'도 이병헌 정우성 최진실 이영애 허준호라는 엄청난 라인업을 자랑했죠. 사실 그 시절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이런 드라마가 드물지 않습니다.^^ 흥행에 실패한 드라마들도 모두 지금같으면 회당 수천만원씩 받을 스타들이 즐비하더라니까요.

아무튼 이 시절, 산소같던 이영애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엔 연기력이나 미모보다 다른 측면이 더욱 돋보였죠. 지칠줄 모르는 박지성을 가리켜 산소탱크를 메고 뛰는 것 같다(물론 정말 메면 무거워서 더 못 뛰겠지만)고들 하는데, 이영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에 나오기 전까지의 이영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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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다 보면 연예인 사이에도 세대차가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10.26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처음으로 신문 인터뷰를 해도 별로 어는 기색들이 없다. 구김살없이 자라난 세대라 그런 모양이다.

반면 지구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조금 고된 스케줄이 잡히면 픽픽 쓰러져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가 예전보다 훨씬 잦아졌다. 이제는 '링거 투혼' 같은 이야기가 너무 흔해져서 기삿거리가 되질 않는다.

옛날엔 안 그랬느냐고?

예전에는 스타가 되려면 체력이 필수 요소였다. 이쯤에서 기억나는 스타가 있다.

이영애를 처음 본 것은 지난 96년초 방송됐던 KBS 2TV 드라마 <파파> 때였다. 당시 <파파>의 남자주인공인 배용준은 김지호와 함께 데뷔했던 캠퍼스 드라마 <사랑의 인사>와 <젊은이의 양지>를 마치고 막 떠오르던 시점이었고, 그를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 놓은 <맨발의 청춘> <첫사랑> 등엔 아직 출연하기 전이었다. 이영애 역시 '산소같은 여자' CF로 큰 인기를 모았지만 93년 드라마 데뷔작인 <댁의 남편은 안녕하십니까> 이후 별다른 성공작이 없을 때였다.

배용준과 이영애는 여기서 이혼한 부부로 나왔는데 누구나 예상하듯 결말은 재결합이었다. 배용준이 대단히 이지적이고 냉철한 성격이었다는 점을 빼면 최근 은근히 마니아들을 양산했던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드라마 <연애시대>와 거의 비슷한 플롯이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거의 4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 MBC TV에서는 <그들의 포옹>이라는 드라마가 기획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의 포옹>의 방송 시점과 <파파>의 종영 시점은 1주일 차이였는데 이영애가 이 드라마에도 출연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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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포옹>은 최민식 안재욱 김승우 등이 출연한-지금으로서는 엄청난 호화 캐스팅이지만 당시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던-법정 드라마로 법조계에 진출한 젊은이들이 사회의 벽에 부딪혀가며 자신의 소신을 지켜간다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도 이영애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다기에 '무척 피곤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파파>와는 달리 <그들의 포옹>은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16부작을 마쳐가고 있었는데, 새로 기획되는 MBC TV의 주말 드라마에 이영애가 또다시 캐스팅 물망에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의 제목은 <동기간>. 이영애가 나온다면 김지수 이민영과 함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갈래머리 여고생으로 나올 드라마였다.

아니 드라마 세 편을 연이어 출연하다니. 요즘같으면 이렇게 스케줄을 잡는 매니저가 있다면 바로 계약 해지 사유다. 물론 지금도 동시에 서너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중견 배우들이 있지만, 이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한진희-노주현-정윤희-유지인이 돌아가면서 매번 주연을 하던 70년대도 아니고, 90년대 이후에 한 배우가 휴식도 없이 세 편의 드라마에서 연속으로 주인공을 맡았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튼 <동기간>이 시작됐는데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동기간>의 장수봉 PD와 박진숙 작가 는 이 작품 바로 전에 아들을 편애하는 집안에서 자라난 한 여성의 성장기를 그린 최수종-김희애 주연의 <아들과 딸>을 최고의 인기 드라마로 만들어내고, 한석규라는 걸출한 신인을 발굴한 터였다. 당연히 엄청난 기대가 쏟아졌지만 <동기간>은 <아들과 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조기 종영의 운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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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국에서 우연히 이영애를 만났다. 지금같으면 어디 가서 마주쳐도 인삿말이나 건네 주실까 겁나는 대 스타지만 당시에는 같이 앉아서 음료수도 나눠 마시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운하지 않을 리가 있나. "좋은 드라마인데 안타깝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은 정말 궁금했던 질문.

"괜찮아요?"
"네?"
"혹시 피곤하거나 어디 아프지 않아요?"
"…별로요. 제가 원래 좀 튼튼한 편이라서요."

너무나 멀쩡한 대답. 비단같은 외모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강철같은 면모였다. 이어진 얘기인 즉, "<파파>와 <그들의 포옹>에서 계속 세련된 현대 여성 역할을 맡다 보니 이건 좀 아닌데 싶고 뭔가 좀 연기 변신을 해 보고 싶었다. <동기간> 대본을 봤는데 천둥벌거숭이라고 해야 할 말괄량이 역할이더라. 너무 마음에 들어서 대번에 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체력? 체력은 원래 좋은 편이라서…." 감탄했다.

아무튼 결론은 그렇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외모와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체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아직도 미니시리즈 한편 찍으려면 하루 2시간 수면으로 일주일 이상은 버틸 수 있는 체력이 필수다. 전국의 연예 지망생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체력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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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나는 이영애다'를 보고 나니 옛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굳이 '대장금' 방송 5년째를 맞아 이영애와 대장금에 대해 다시 짚어 볼 생각을 했다면,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을 '생활인 이영애'를 겉핥기로 시도하느니 과연 이영애와 대장금 현상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변화를 일궈냈는지, 혹은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발생한 매출이나 산업적인 기여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등을 제대로 다뤄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한자리수 시청률(9.7%)에 머물진 않았을 지도 모르죠.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이영애를 우리는 밀착 인터뷰 해 봤어'라고 자랑하기엔 너무나 빈약한 내용이라 아쉬움만 남습니다.

'비'편도 제작중인 모양인데, 과연 이번엔 좀 새로운 걸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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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중생 아역 스타가 교내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보도가 있은 뒤로 아역 탤런트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린 배우들이 잘 자라는 건 뭣보다 중요한 일이고, 거기에 대해 관심이 늘어나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사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사람이 아니면 별 의미없는 얘기도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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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이라는 걸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 소년이 바로 몇해 전, <여인천하>에서 어린 세자 역을 맡아 안방극장을 들었다 놨다 했던 아역스타 권오민 군이라는 걸 아시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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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최근 '이산'에서 대수(이종수)의 아역으로 나온 배우라는 것도 알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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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탤런트 중에 어른으로 성장해서 크게 성공한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아역 스타 셜리 템플은 나중에 미국의 가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지요. 반면 어린 시절의 연예계 경험이라는 것이 성장에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얄개' 이승현씨의 경우가 널리 알려졌고, 몇몇 아역 출신 연예인들은 이미 성년이 되기 전에 아주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신문 사회면에 이름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아역 스타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요. 선진국에서는 촬영장에 교사가 대기하지 않으면 아역을 동원한 촬영은 아예 불법적인 행위로 규정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는 한국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지켜 본 아역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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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건 아역 배우들이 연기를 못해서 드라마가 재미 없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항상 아역 배우는 선수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녀들을 아역 배우로 만들어 보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뜻도 되겠다. 하기야 요즘처럼 연예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상황에서는 이런 수가 훨씬 더 많아졌음 직 하다. 그러나 아역 배우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세계에 던져져 겪어야 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권오민. 누군지 모르겠다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동구 역으로 출연해 강혜정과 멋진 호흡(?)을 보여줬던 소년이다. 그래도 기억이 안 난다면 혹시 왕년의 인기 드라마 <여인천하>의 세자라면 기억이 좀 더 쉬울지 모르겠다.

97년생인 권오민은 <여인천하>에서 태어난지 6일만에 어머니를 잃고 문정왕후(전인화)의 손에 자라는 세자 역할로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연출자였던 김재형 PD는 어린 세자가 드라마의 인기를 끌고 나가자 신이 나서 세자의 대사 양을 대폭 늘렸다. 하지만 권오민은 신동 소리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말 투성이인 대본을 척척 외워 주위의 칭찬을 독차지했다.

권오민의 영특함(?)을 일러주는 일화가 있다. <여인천하> 촬영장으로 국회의원들과 송도균 당시 SBS 사장이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 여성 국회의원이 귀엽다며 세자를 덥썩 안고 뽀뽀를 시도했다. 하지만 "악, 이상한 아줌마야! 싫어, 놔!"하고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금세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송사장이 안았다. 역시 권오민은 격렬하게 반항했다.

"싫어, 놔, 놔."

"이 녀석,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데?"

"나 SBS 사장이야. 방송국 사장이라구."

잠시 몸부림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하던 권오민, "그래? 그럼 해" 하며 볼을 송사장 쪽으로 쑥 내밀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박장대소할수밖에.

그러나 이런 날만 있지는 않았다. 세자가 인기가 좋다 보니 한 아침 프로그램에도 출연을 했는데 철없는 MC 하나가 "엄마가 좋아, 어마마마가 더 좋아?"하는 질문을 해 버린 거다. 워낙 어린 나이라 거짓말을 못 하고 머뭇거리던 세자가 "어마마마가 더 좋다"는 식의 대답을 했다.

그 다음부터 촬영장 분위기가 묘하게 냉각됐다. '어마마마'인 전인화는 권오민의 가족들 눈치를 보느라 잠시도 세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권오민 역시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어마마마' 주변에는 가까이 가질 않았다. 자연히 연기 호흡이 깨졌고, NG가 잦아져 녹화 시간이 길어졌다. 특히 엄마가 주변에 있으면 더 NG를 많이 내는 것 아닌가. 결국 연출진은 진짜 엄마를 스튜디오 밖으로 내보내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을지 딱하기도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이며 드라마 <회전목마>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걸 보면 구김살 같은 건 전혀 없는 모습이라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성장기의 혼란을 이겨내지 못해 나쁜 길로 빠진 아역 출신 스타들은 전 세계적으로 한둘이 아니지만 권오민이 보여준 영특함을 보면 손창민이나 정준 못잖은 아역 출신 스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아역 스타들이 제대로 크는 데에는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홀로 집에>로 만 10세에 엄청난 부와 명성을 손에 넣었지만 어린 나이에 결혼과 이혼, 마약 파문 등으로 혼란을 겪은 끝에 평범한 20대 청년이 되어 버린 매컬리 컬킨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성공한 이후로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안돼'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했지만 그게 결국 내게는 독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정작 힘든 역할은 바로 '성공한 아역 스타의 부모'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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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연예인들 중에는 귀신을 직접 본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유난히 많습니다. 웬만한 가수들은 녹음 한번 하면 귀신을 접해 본다고 하고, 가끔 귀신들이 이번 드라마가 잘 될지, 이번 영화가 잘 될지 아닐지를 알려준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귀신과 유난히 가까운 걸까요? 전부 지어낸 얘기들일까요? 그럴 지도 모르지만 이 바닥(?)에선 나름대로 오래 된 설명이 있습니다. 대략 이런 설명입니다.

아무리 연기를 못하는 여배우도 술집 작부 역할과 무당 역할은 잘 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세 가지 종류의 직업에 필요한 '끼'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죠. 이 '끼'는 바로 '신끼'라고 흔히 부르는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는군요.

가수들의 녹음실이나 영화 현상실 등에는 귀신들이 많이 산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하지만 그런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귀신들은 착한 귀신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도 하네요.

뭐 당연히 믿거나 말거나 얘깁니다. 어지간한 괴담에 질린 분들, 마지막 얘기까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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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괴담 - 귀신을 만난 스타들


영화 스튜디오나 음반 녹음실에는 흔히 귀신이 돌아다닌다. 왜일까. 스타들이 갖고 있는 '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들과 소통하는 신기(神氣)와 통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아무튼 스타들과 관련된 괴담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영화 사상 가장 많은 괴담에 휩싸인 작품은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걸작 공포영화 <엑소시스트>일 것이다.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이 영화는 선과 악이 한 소녀의 몸속에서 펼치는 영화를 소름끼치면서도 박진감있게 그려냈다. 한데 이 영화의 힘이 바로 진짜 악마의 개입에 의해 빚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영화를 찍기 시작한 뒤로 배우와 스태프를 포함해 9명이 죽었고 특히 배우 잭 맥고원과 바실리스키 말리아로스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죽었다. 세트에서는 원인 모를 불이 나기도 했고, 수많은 관계자들이 악몽으로 시달렸다는 저주받은 영화다.

한국에선 영화 <실미도>를 촬영할 당시 인민군복을 입은 귀신이 출몰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이 정도의 '저주받은 영화'는 아직 못 들어봤다. 귀신을 직접 봤다는 스타 중에는 김보성의 목격담이 유명하다. 김보성은 이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도 꺼려할 정도다.

영화 <하얀 전쟁> 촬영을 위해 베트남 현장을 찾은 일행은 동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하지만 유독 김보성의 방에서는 여자 웃음소리가 나고 옷장 안에서 소리가 나는가 하면 자다가 깬 김보성의 눈에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물끄러미 자신을 내려다보는 광경이 목격되는 등 웬만한 사람 같으면 기절할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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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도 무서운 거지만 밤에 잠을 못 자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김보성에게 한 스태프가 묘방을 가르쳐 줬다. "듣자하니 이 동네에 사는 처녀귀신이라고 하는데, 굳이 남자 방에 나타나서 괴롭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게다. 오늘부터는 베개 하나를 더 꺼내 머리맡에 놓고, '자, 여기서 편히 자라'고 말해 보라"는 거였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과연 귀신의 요동은 멎었고, 김보성도 편히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자다가 보면 침대에서 누군가 옆에 누워있는 듯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가는 듯한 소리도 들리곤 했다는 증언이다.

가수들 중에서 귀신과 가장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김민종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귀신 이야기를 물으면 김민종은 "어려서부터 절에 살아서 귀신과 친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가 흔히 본 것은 우산 귀신. 비 오는 날, 방과 후에 산길을 걸어 절로 가다 보면 우산 저 모퉁이에 뭔가 하얀 것이 꾸물꾸물하고 매달려 있었다. 우산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달려간 민종에게 외할머니는 "절 근처에 못된 귀신은 못 산다. 귀신이 살아도 착한 귀신이고, 네가 집에 잘 오나 돌봐주는 거였을 게다. 다음부터는 친하게 지내라"고 해 줬다. 그 다음부터는 가수가 되고 나서 녹음실에서 귀신을 봐도 그리 무섭지 않더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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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종이 아니더라도 가수들의 녹음실에서 귀신이 나오는 일은 엄청나게 흔하다. 이 녹음실 귀신에 대해서는 심수봉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목소리만 들어도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음기가 강한 심수봉의 목소리는 귀신과도 쉽게 어우리진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심수봉이 녹음에 들어가면 녹음실 기사들은 아예 캄캄한 밤에 더듬더듬 일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상할 정도로 심수봉만 노래를 시작하면 멀쩡하던 형광등이며 전구가 모조리 터져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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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예계에서 가장 귀신을 싫어하는 연예인을 꼽으라면 당연히 이승환이 첫 손에 나올 것 같다. 지난 97년 발표한 <애원>의 뮤직비디오의 지하철 기관사 옆에 웬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던 것. 이 뮤직비디오를 놓고 진위 논쟁이 벌어지고, 일각에서는 '음반 홍보를 위한 조작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여기에 심한 상처를 받은 이승환은 뒷날 <귀신소동>이라는 노래까지 발표하며 '멀쩡한 사람을 음반 팔아먹으려고 귀신까지 만들어내는 놈으로 만들었다'고 질색을 했다. 그러니 귀신이라면 치가 떨릴 수밖에.(끝)






이밖에도 남동생과 한 방에서 자는데 벽장에서 웬 여자가 걸어나와 동생의 목을 조르기에 황급히 깨웠더니 동생이 웬 여자에게 끌려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가수 김현정의 목격담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여가수 J양(이니셜입니다)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그의 전 매니저에게 직접 들은 것입니다.

어느날 그가 J양을 태우고 밤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천천히 자동차 보닛 위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더랍니다. 차창을 가릴 정도는 아니고, 차 맨 앞부분에서 앞유리 쪽으로 기어올라오려고 하는데,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더라는군요.

형상은 머리가 긴 걸 보니 여자인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골수가 흘러내리고 있고, 두 팔 역시 모두 엉망으로 뒤틀리고 피투성이였다는군요(당연히 하체는 보이지 않았답니다). 이 매니저는 태어나서 자기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런 그가 척 보기에도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시체의 형상이더라는 겁니다.

아무튼 이런 형상이 갑자기 달려들었으면 급브레이크라도 밟았을텐데, 느릿느릿 나타난데다 왠지 '차를 세우면 정말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때문에 세울 수가 없더라는군요. 그렇게 인적이 드문 길로 차를 계속 달리는데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더랍니다. 그렇게 무서워 본 적이 없었다는군요.

이때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뒷자리의 J양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하더라는군요.



"...오빠도 보여?..."



당연히 네게도 보이냐고 반문을 했겠죠. 그랬더니 J양의 대답.



"오빠는 처음 봤구나. 나는 자주 봐. 그런데 그래도 무서워."



그제서야 그는 평소에도 가끔 J양이 "오빠 저거 보여?"하고 아무것도 없는 방향을 가리키던 생각이 나더랍니다. J양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계속 보였던 거죠. 그날따라 그 보닛 여자 형상은 왜 매니저에게도 보였던 걸까요.

아무튼 이것이 그가 J양의 매니저를 그만둔 이유라고 합니다.

...뭐, 믿거나 말거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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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수 J양이라니까 이 가수 'J'인줄 아시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윗글에 나오는 J양이란 이 J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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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죽었네 살았네, 일본 바이어들이 발길이 끊어졌네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류 상품은 뭘까요. 복잡할 게 없습니다. 한류 스타들이 나오는 콘텐트, 특히 드라마입니다. 영화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급 효과나 위력 면에서는 드라마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럼 '겨울연가'의 빅 히트 이후로 대체 한국의 자랑스런 한류 스타들은 얼마나 많은 콘텐트를 만들었을까요.

소위 4대천왕의 마지막 드라마 작품들입니다.


이병헌, 2003년 올인 (2009년 방송 예정 아이리스)

장동건, 2000년 이브의 모든것

배용준, 2002년 겨울연가 (2007년 태왕사신기)

원빈, 2000년 가을동화


이렇습니다. 한마디로 물건이 없는데 뭘 사라는 겁니까.

이 대목에서 가정을 한번 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배용준의 데뷔작 <사랑의 인사>부터 모든 출연작이 일본에서 없어서 못 파는 히트상품이 된 마당에, 2003년 이후에 배용준이 출연한 드라마가 단 한편이라도 있었다면, 그 드라마의 가격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불행히도 그런 기회를 사소한 이유로 놓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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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사마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놓친 사람들

요즘 '욘사마'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좀 모자란 사람이거나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연예계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아시아를 뒤흔드는 배용준의 위명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

이런 '욘사마의 치세'는 NHK가 드라마 <겨울연가(일본 방송명은 <겨울 소나타>)>를 지상파로 방송하기 시작한 지난 2004년 4월3일부터 2년간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위성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방송되며 마니아들을 양산했던 <겨울연가>가 지상파에서도 위용을 떨치며 배용준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겨울연가> 폭풍 이후 한국의 배용준 관련 소프트웨어는 동이 났다. 배용준이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모든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의 특수 상품이 된 것. 업자들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배용준이 2002년 <겨울연가> 이후로 현재 일본에서 방송중인 <태왕사신기> 외에는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없었다는 거였다.

그런데 '욘사마 신화'가 탄생하기 불과 3개월 전인 2004년 1월, 아주 사소한 문제로 배용준의 출연을 거절한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은 <폭풍 속으로>. 그 사연은 이렇다.

한국 TV 드라마계에서 2003년은 최완규 작가-유철용 PD-그리고 이병헌의 해였다. 바로 <올인>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었다. 다른 화제작도 많았지만, 이병헌-송혜교 커플의 탄생을 비롯해 '올인'보다 더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드라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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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 콤비는 2004년을 맞아 또 하나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폭풍속으로>는 최완규 작가가 젊은 시절 푹 빠져 있었다는 외화 <야망의 계절(Rich men, Poor men)>을 원안으로 한 작품. 어느 모로 보나 빈틈없고 철저한 엘리트인 형과 잡초처럼 자라난 동생의 이야기로, 원작격인 <야망의 계절>에서는 피터 시트라우스와 닉 놀테가 형제로 출연해 톱스타가 됐다.

<폭풍 속으로> 제작진은 형제 중 동생 역할을 배용준에게 제의했고, 배용준은 선뜻 '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배용준은 막상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자 독특한 제의를 했다. '시놉시스(드라마 기획안)가 지나치게 형 역할 중심으로 쓰여진 것 같으니, 동생 중심으로 다시 써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은 요청이었다. 시놉시스는 어차피 대본을 쓰기 전에 관계자들에게 드라마가 갖고 있는 대략의 골격을 설명해주는 정도의 용도로 쓰일 뿐, 정작 방송될 때에는 시놉시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가는 드라마도 비일비재하다. 제작진도 이미 동생이 실질적인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배용준에게 제의를 한 것이었고, 형 역할을 제의받은 몇몇 톱스타는 '동생이 주인공인 드라마'라며 출연을 거절했을 정도다. 게다가 그때까지 대본이 이미 나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더욱 동생 중심으로 대본을 쓰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놉시스를 다시 써 달라'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일. 그런데도 배용준은 '당장 보기에 좋지 않다'며 계속해서 수정을 요구했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라도 꼭 짚어 넘어가야 하는 꼼꼼한 성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별 것 아닌 문제가 자존심 대결로 발전하면서 결국은 출연 자체가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았다. 배용준의 입장은 "그거 고치는 데 돈이 드냐. 그만한 일도 못 해주느냐"는 것이었고 제작사 측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공연히 까다롭게 군다"는 것이라 의견차가 좁혀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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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의 성공으로 한껏 자신감에 차 있던 최-유 콤비는 사실 이런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박신양과 이정재라는 만만찮은 카드들이 <폭풍 속으로>'의 형제 역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배용준 카드가 사라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정재의 캐스팅도 불발됐고, 어찌어찌 하다가 이 역할은 <다모>로 가능성을 보인 신인 김민준에게 돌아갔다. 형 역할도 당초 예상과는 달리 김석훈이 맡았다.

그로부터 1개월 뒤, 제작진은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한 김민준의 연기를 볼 때마다 다 잡았다 놓친 배용준을 그리워해야 했다. <폭풍 속으로>는 20%대로 수준급의 시청률을 보였지만 배용준은 이내 '욘사마'라는 아호를 달고 먼 하늘로 날아올랐다.

만약 <폭풍속으로>가 '배용준의 최신작'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더라면 이 드라마는 도대체 얼마에 일본으로 팔려나갔을까. 지금도 <폭풍 속으로>와 관련된 몇몇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때 그거 좀 그냥 고쳐 줄 걸." (끝)






- 결국 '폭풍속으로'도 25%대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끝났지만 제작진의 눈에는 얼마나 배용준이 밟혔을까요. 물론 최완규 작가는 그 뒤로도 '해신'과 '주몽'을 히트시켰고 현재도 '식객'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저 때 생각을 하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앉아서 100억원대의 돈을 날린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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