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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호풍환우(呼風喚雨)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김인식 감독은 그런 의혹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완패한 상황에서 지난 21일 내린 단비는 한화의 숨통을 터 줬고, 하루 연기돼 열린 2차전에서는 바람이 매 상황마다 한화에 유리하게 불었다. 1회말 삼성 조동찬의 홈런성 타구가 역풍에 꺾여 잡히는가 하면 기회 때마다 한화 타자들의 타구는 순풍을 탔다. 그야말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린 적벽대전같은 한판 승부였다. (이건 2007년 한국시리즈의 상황을 놓고 한 얘깁니다. 지금 상황과는 무관하지만, 이 자리에 최근 벌어진 WBC 멕시코전 상황을 대입하면 같은 결론이 됩니다. 더블스틸, 번트, 버스터, 좌-우 투수들의 정신 없는 계투, 여기에 때맞춰 터져 준 타자들의 장타... 그야말로 현란한 '야구의 모든 것'이었죠.)

 아직 올해 한국시리즈의 최종 결과를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만약 김인식 감독의 이런 스토리가 실제상황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흥행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감독이 무슨 마술사라도 되나. 세상에 저런 만화같은 스토리가 어디 있냐. 대본에 개연성이 없다"며 혹평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야구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면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 불보듯 뻔하지만 극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면 누구나 당연한 일로 여긴다. 즉 같은 사람이라도 야구장에 갈 때와 극장에 갈 때에는 기대하는 극적 감동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현실이 극적 상상력을 능가해 버리는 상황은 스포츠의 세계에선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중에는 의외로 히트작이 드물다. 야구를 국민적 여가(national pastime)라고 부르는 미국에서도 야구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중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소재로 한 코미디 <메이저 리그>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흥행작이 없다.

 한국도 큰 차이는 없다.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흥행 대박을 기록했을 뿐, 전설의 고교야구 영화 <자, 지금부터야>에서 <YMCA 야구단>, <슈퍼스타 감사용>에 이르기까지 '야구 영화'하면 내세울만한 작품이 딱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래 야구영화는 안된다고 말해 버리기엔 저변이 너무 아쉽다. 매년 야구장을 찾는 관중만도 300만. 이승엽이며 박찬호의 성공 스토리, 올 연초 WBC 4강에 열광했던 잠재적인 야구 팬들은 한둘이 아니다. 프로 야구가 등장한지도 24년이나 돼 기반도 성숙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기 연예인들이 팀을 구성해 직접 공을 던지고 때리며 정규 리그를 치르고 이를 TV로 중계까지 하는 나라다. 개중에는 장진, 김상진 감독이 소속된 팀도 있고, 리그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야구단 플레이보이스에는 장동건 김승우 주진모 황정민 조인성 등 현역 최고의 톱스타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이 정도 저변이면 이제는 한국에도 '이런 야구 영화가 있다'고 말할만한 영화 한 편쯤이 나올 때가 된게 아닐까. 연예계 애구파(愛球派)들의 분발이 기대된다. (끝)





굳이 지금 이 글을 다시 올린 건 어제 올린 글이 너무 묻힌 데 대한 아쉬움입니다.



김인식 감독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긴데 이 분의 야구관에는 참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김감독의 두산 재임 시절 한 선수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선수: 감독님은 땅볼 치는거 별로 안 좋아해요.

나: 왜?

선수: 사실 땅볼로 깔아 쳐도 각 잡아서 잘 갈라 치면 안타 나오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플라이로 날아가는 공 치라고 맨날 그러세요. 신인들이 땅볼 치면 물어봐요.

나: 뭐라고?

선수: 이렇게요.


(김감독): 야, 내야에 (수비가) 몇명 서 있냐?
(신인): 여섯명요.
(김감독): 그럼 외야엔 몇명 서 있냐?
(신인): 세명요.
(김감독): 그럼 내야가 더 넓어, 외야가 더 넓어?
(신인): ...외야요.
(김감독): 그럼 자식아, 내야로 쳐야 되냐, 외야로 쳐야 되냐?
(신인): ...외야요.



나: 음.... 맞는 말이잖아. ;

선수: 맞는 말이긴 해요.


뭐, 감독님의 유머였는지, 진지한 얘기였는지는 지금은 알 길이 없네요. 하여간 김인식 감독님, 같이 있으면 절대 심심하지 않은 특급 유머감각의 소유자셨습니다. 건강 때문에 좋아하시던 술도 못 드신다는데 참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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