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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7일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특정 주제에 대해 10가지 항목을 나열하는 챌린지의 일환으로 한 것]

여기 거론된 음식들은 모두 10세 이전에 먹어 좋아하기 시작한 음식들. 식성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들이며, 지금도 항상 즐겨 먹는 음식들이다.

세상엔 참 맛있는게 많네.

1. 오장동 흥남집 세끼미
혼자 한그릇만 먹는다면 당연히 세끼미. 물론 한그릇만 먹을 때가 없어서 그렇지. 지난 50년간 대략 500그릇을 먹어본 결과, 맛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다 쳐도 대안은 없다. 그리고 내겐 여전히 훌륭하게 느껴짐.

2. 태극당 아이스 모나카
이 맛 때문에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의 농도까지 결정당함. 유지방이 지나쳐도 안되고, 물맛이 나도 안되고, 우유 말고 잡내가 나도 안되고, 약간 사각거릴 정도가 최적.

맛살구. 이 포장보다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이 더 보편적.

3. 맛살구
새콤달콤의 가장 직관적인 예. 더 이상 안 나와서 가장 안타까운 과자. 입안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산산한 맛.

4. 겉이 허연 곶감
곶감은 역시 적당히 말라 껍질쪽은 약간 단단하고 하얀 시상이 제대로 덮인 것이 제맛. 요즘 나오는 물컹한 반건시도 맛은 있지만 '이게 곶감이야?' 라는 생각이 늘 든다. 소금물에 적시기만 한 굴비를 먹는 기분. 어릴적 어머니께 "그런데 곶감은 뭘로 만든 건가요?"를 질문했다가 7년간 지켜온 신동 이미지가 끝장난 굴욕의 식품이기도.

5. 가정식만두
소고기 돼지고기 두부를 섞어 넣고, 배추김치를 씻어 다져 소를 만든 만두. 애기 베개만하게 만들어서, 끓는 물에 넣고 삶아 두번째 떠오르면 초2간장1에 찍어 먹는다. 한 30개쯤 먹어 터질듯한 배는 생강 맛이 강렬한 가정식 수정과로 달랜다. 물론 식당에선 불가능한 메뉴들이라 아쉽지만, 대체제로 두부가 주 재료인 냉면집 만두들도 좋다.

6. 동대문 스케이트장 떡볶이
대부분의 떡볶이가 맵기만 할때 맵단의 신기원을 보여준 떡볶이. 한개 5원이라 30원 내고 6개를 먹는데 떡볶이가 줄어드는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10개를 먹으면 배가 불렀다. 100원어치 먹으면 그날로 별명은 '식인돼지'.

7. 함박스테이크
역시 동대문에 있었던 파인힐? 인가에서 처음 먹어본 듯한 기억. 육즙이 줄줄 새는 두툼한 함박스테이크를 서니사이드업과 함께 입에 넣고 씹으면 절로 퍼지는 웃음. 여기에 약간 두꺼운 감자튀김과 마카로니가 데미그라스 소스에 곁들여지면 천상의 맛. 근 10여년간 먹어 본 함박 중에선 역시 이촌동 이꼬이와 가로수길의 화동플레이스가 최고였는데 지금은... 슬프다.

8. 대전 한밭식당 설렁탕
아마도 온 일가가 부산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대가족이 애들 저녁 먹이자고 들른 집일 듯. 졸다 깬 정신에 '한밭식당'이라는 옥호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물론 그때는 '한밭=대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생전 처음 먹어본 설렁탕이란 음식. 뽀얗고 고소한 국물에 아니 날계란을 띄우고? 꼬리한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젓가락으로 찍어 깨물어 먹는 거대한 깍두기의 폭 삭은 맛과 국에 만 밥의 조화가 그리 달콤할 수가 없어 아구아구 퍼먹었다. 한밭식당이 아직도 있다는 건 검색으로 알았지만 그리 다시 가보고 싶지는 않다. 당연히 그때 그 맛이 아니겠지. 응 아닐거야.

9. 맥도날드 햄버거, 치즈버거
'맥도날드 햄버거'라고 하면 '그중에 무슨 버거?'라고 묻는 사람이 더 많다. 그게 특정 버거의 이름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진정한 마니아. 대한민국에 맥도날드가 미8군 영내에만 있었던 시절, 그쪽에 연이 있던 작은아버지는 조카들 모이는 날이면 어른 몸통만한 봉투 가득 '햄버거'와 '치즈버거'를 사다 주시곤 했다. 케찹 피클두쪽 패티만 들어있는 미니멀 버거의 놀라운 맛! 지금도 가끔 먹지만 이 버거가 2000원인 건 다른 버거 대비 좀 비싸다는 느낌.

10. 빙수
요즘 서울에선 역시 동빙고와 밀탑, 아티제. 다양한 빙수 전문점 열풍이 지나고 전반적인 빙질이 상향평준화된듯 하나, 여전히 돼지바같은 맛을 좋아하시는 분도 있는 듯. 먹고 나서 텁텁해지는 빙수 극혐. 이건 예전에 써둔 글로 대체. https://fivecard.joins.com/m/831

0. 번데기
다트판에 아무리 찍어도 결론은 기본 10원어치. 신문지로 접은 봉지는 수분을 흡수하면 바로 푹 젖어 안에 품은 번데기 덩어리를 쉽게 내놓지 않았다. 속에 숨은 번데기 한알 빠뜨리지 않으려고 봉지를 해체하던 기분. 걸어가며 씹을 때마다 뿜어나오던 고소한 육즙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길티플레저.

여러분의 입맛을 형성한 음식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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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밥, 19세기 한국인의 욕망  (2)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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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의 양식'을 준비하다 보니 이런 저런 읽을거리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단행본으로 나온 책도 책이지만 논문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오늘은 흥미로운 논문 두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조현범 (2002). 19세기 중엽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의 조선 인식. 종교연구, 27, 211-235.

노용필 (2009). 18ㆍ19세기 한국의 벼농사ㆍ쌀밥ㆍ술에 관한 서양인 천주교 선교사들의 견문기 분석. 교회사연구, 32,

두 편 모두 19세기 한국 땅을 밟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눈에 당시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이 어떻게 비쳤는지를 다룬 논문들입니다. 당연히 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것도 '많이'.

밥, 국 반찬... 이 정도면 상당히 잘 차려진 밥상인듯.

두 논문 모두 여러번 등장하는 다블뤼 신부의 증언입니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량은 1리터의 쌀밥으로, 이는 아주 큰 사발을 꽉 채운다. 각자가 한 사발씩을 다 먹어 치워도 충분하지 않으며, 계속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2, 3인분 이상을 쉽게 먹어 치운다. 우리 천주교인들 중의 한 사람은 나이가 30세에서 45세가량 되는데, 그는 어떤 내기에서 7인분까지 먹었다. 이것은 그가 마신 먹걸리 사발의 수는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64세나 65세가 다 된 어떤 사람은 식욕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5사발을 비웠다. 10사발을 감당할때 장사라고 말한다.…

아마 많은 분들이 소반에 큰 밥그릇을 놓고 앉아 있는 구한말 한국 청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많은 분들이 모두 '아니 저 밥을 혼자 다 먹는단 말이야?'라고 생각하셨을테지요. 하지만 저 다블뤼 신부의 증언을 보면 저런 밥그릇으로도 몇 공기를 먹는데 당시 한국인의 식성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른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엘리사벳은 프랑스군 야영지 안에 바다 가까이 있는 내 오두막집에서 15일을 지냈다. 기운을 차리고 많이 먹었다. 어느 날 저녁 쌀밥을 한 사발 가득히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방긋하게 열린 문으로 들어다 보니까 3리브로(1,500그램)나 되는 빵을 먹으려고 애썼다. 빵이 너무 커서 입이 빵 끝에 닿지 않으니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땅에 대고 그 작고 하얀 이빨로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주고, 조선 사람을 불러 밥 한 사발을 더 주라고 했더니 그 어린것이 다 먹었다

 

이건 다른 신부의 증언입니다. 리델 신부는 병인양요 직후, 키울 식량이 없다며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조선 여자아이를데려다 기르기로 하고, 영세를 내려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을 줍니다. 그 엘리사벳은 대략 7~8세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런 어린아이도 저녁밥을 두 사발씩 먹는다는 겁니다. 뭐 여기 다 가져오진 않았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배가 단단해서 더 이상 밥 한 숟가락도 더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밥을 먹인다... 그런 내용도 있습니다. 이사벨라 비숍 여사도 한국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가 숟가락으로 배를 눌러 보고, 배가 빵빵해서 숟가락을 튕겨낼때까지 밥을 먹이는 모습을 보았다고 기록한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늘어난 위장이 큰 역할을 하는 거겠죠. 물론 눈치채셨겠지만, 한국인은 밥만 먹지 않습니다.

조선에는 곡물, 특히 쌀로 만든 술밖에 없다. 그래서 매년 수확량의 절반 이상이 술을 만드는 데 날아가 버린다. 이 때문에 식료품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생각해 보라.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술 취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왕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대소 관리들이 매일 술에 취해 있다. 양반에서부터 시작해서 무수한 사람들이 자기 정신을 술병 바닥에 두고 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의정이나 임금도 공공연히 폭음을 한다.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뒹굴거나 술을 깨기 위해 잠을 잔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쉬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이것을 큰 타락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습이다. 그래서 허용되며, 아주 고상한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요즘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어 점점 개선될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참 한심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이밖에도 신부들의 눈에 비친 당시 조선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교육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요즘과 너무 다르군요), '개처럼(!) 함부로 교접한다'고 할 정도로 성적으로 문란하고, 수다스럽고, 입이 싸고, 거짓말이 보편화 되어 있는데 속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런데 처음에 다들 이랬던 신부들이 다들 인정하는 조선 사람들의 매력이 있습니다. 처음에 아무리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신부들도, 좀 지내다 보면 다들 감탄하는 내용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자선행위를 진정으로 존숭하고 실천한다. 사랑방에서 받는 대접 이외에도, 적어도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면 거절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그를 위해 다시 밥을 하기도 한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식사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즐거이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뱃사공들은 밥을 먹지 않고 배 타러 나온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을 철직으로 한다. 잔치가 벌어지면 언제나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서 형제처럼 모든 것을 나눈다. 여비가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엽전 몇 닢의 도움을 받는다. 없는 사람이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의 하나다.

이 나라 백성들에게 상호 부조는 자스러운 것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애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형제애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한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근대적인 이기주의에 대해 증오와 가증스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결론은.... 여기서 내릴 결론은 없구요, 한국 사람은 참 안 변한다, 라는 정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물론 밥 먹는 양은 많이 줄었네요. 밥 대신 고기나 반찬을 많이 먹게 되었기 때문이겠죠. 날씬한게 부의 상징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어쨌든 없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나눈다는 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미덕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게 가진 사람으로부터도 더 나온다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이상. #양식의양식 준비중에 나온 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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