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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태연의 푸딩-젤리 커플이 파국을 맞았더군요. 정형돈의 '실제' 연애가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커플을 무참하게 깨 놓은 셈입니다. 구분을 하자면 정형돈이 출연하고 있는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계열의 프로그램이지만, '무한도전'에서는 정형돈의 연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소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는 당연히 다르죠. 이 프로그램이 발을 딛고 있는 건 아무래도 가상현실이니까요. 이 쇼의 생존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 쇼를 철석같이 믿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프로그램 안에서 달달한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가 사실은 따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있다는 것 만큼이나 '확 깨는' 일은 또 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부터 연출진과 기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충분히 오갔기 때문이죠.

"출연자 중에서 누가 열애설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절대 그런 일은 없게 해야죠."

하지만 그 우려하던 일이 이번에 일어났고, 누구나 '이건 사실이 아니야'라고 속으로는 알고 있었겠지만, 이제부터 '우결'을 보는 눈은 달라질 겁니다. 제작진은 즉시 정형돈-태연 커플을 퇴장시켰지만 이제는 그게 문제가 아닐 겁니다. 안 그래도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우결'을 지탱하고 있던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졌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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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예전에 '우리 결혼했어요' 가 처음 화제를 일으킬 때 썼던 글로 넘어갑니다. 새로 글을 써도 되겠지만, 어차피 지금부터 하려던 말도 그 때 이미 했던 말과 거의 흡사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사태는 '우결'이 시작하던 지난해 5월에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대목에서 질문을 해 봅니다. 리얼리티 쇼는 정말로 리얼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리얼리티 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서바이버'나 '배철러' 같은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의 상당 부분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믿는 냉소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쇼의 진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우승자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든가 하는 정도까지 미리 다 짜여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배철러'같은 경우에는 1위로 뽑힌 여자와 남자 주인공이 실제로 결혼하는 일도 있죠. 하지만 이런 리얼리티 쇼에서 가끔씩 악역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작설'이 믿고 싶어집니다.

누구라도 잘 보이고 싶을 게임 안에서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건 다른 보상을 약속받고 하는 행동일 거란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는 '심플 라이프' 같은 쇼에 나오는 것처럼 패리스 힐튼이 저능아일 거라고는 절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역시 리얼리티 쇼인 '밀착취재, 스타의 신혼(Newlywed)'에서 '참치는 물고기가 아니라 새'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던 제시카 심슨도 쇼가 끝난 뒤 "이 쇼는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쇼 아니냐"며 자기를 바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웃었습니다. 제목에 리얼리티가 들어간다고 다 사실은 아닌 겁니다.

그리고, 최소한 미국의 리얼리티 쇼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이 출연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래야 진짜 리얼리티 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리얼리티 쇼'라는 간판을 내걸고 연예인들이 출연합니다. 말하자면 '연기가 직업인 사람들'을 내놓고(가수도 포함됩니다. 가수는 노래가 곧 연기죠) 그걸 믿어달라고 하는 셈인데, 그걸 또 악착같이 믿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 걸 보다가 쓴 글입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이건 현실이 아니야!"

1938년. 미국 뉴저지주가 발칵 뒤집혔다. 라디오에서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급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 물론 이건 진짜 뉴스가 아니었고, 뒷날 '시민 케인'을 내놓은 천재 영화감독 오손 웰스가 H.G. 웰스의 SF소설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을 각색한 실감나는 라디오 드라마였다.

방송극 중간 중간 여러 차례 '이 방송은 실제가 아니라 구성된 드라마'라는 고지 방송이 나갔고, 심지어 광고도 끼어 있었지만 속은 사람들은 그런 건 고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부분만을 들었기 때문이다.

뒷날 미디어 연구자들은 이 사례에서 '매스컴은 사람들에게 탄환이나 피하주사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강효과이론을 주창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사건의 교훈은 다른 데 있다.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무엇을 보여 주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쪽이다.

바로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 코너 얘기다. 남녀 네 쌍이 각각 둘만의 공간에서 밤을 지새며 나누는 '결혼 역할극'이 이 프로그램의 실체지만, 여기에 열광하는 여성 시청자들에겐 마지막의 '극', 혹은 '역할극'이라는 부분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예전부터 드라마 속 커플들의 희로애락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열혈 시청자들은 많았지만, '우결'의 경우는 또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들이 실제로 결혼했거나,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전판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열혈 팬들은 이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출연자들이 이런 상황에서의 연기에 매우 능숙한 전문가들이라는 사실도 그냥 무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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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들에게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 통해 최고의 '훈남'으로 떠오른 알렉스가 음반 준비를 위해 이 코너에서 빠졌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은 마치 알렉스가 파트너 신애를 차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라도 한 듯 아우성 일색이었다.

문득 오래 전 사무실에서 받은 전화 한 통이 생각난다. 기운 빠진 목소리의 한 여자가 당시 인기 절정이던 배우 H의 전화번호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사기를 당하고 식구들이 병이 있는데 전부 길에 나앉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H씨의 전화번호가 필요할까. "도와주실 것 같아서요." 여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희 사연을 알면 꼭 도와주실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리고 싶어요."

최신 미디어 이론들은 대부분 '매스컴에 의해 섣불리 휘둘리지 않는 똑똑한 정보 수집자'로서의 대중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이건 연기야. 실제가 아니야'라는 말을 무시하고 방송이 주는 판타지에 푹 빠져 있는 시청자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들에겐 누가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을 줄지 궁금하다. (끝)



혹시 마지막의 빨간 알약 얘기에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신 분들은 없겠죠.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두개의 알약을 내밉니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이 상황이 모두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매트릭스가 주는 환상 속에서 잘 살게 되죠. 하지만 빨간 알약을 먹으면 꿈에서 깨고, 잔혹한 현실을 맛보게 됩니다.

물론 바로 뒤에도 나오지만 모피어스와 함께 싸우는 전사들 중에도 '차라리 그때 파란 알약을 먹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하죠.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의 팬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현실과 이 프로그램 내용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난해, 알렉스가 새 앨범 준비를 위해 '신애와의 신혼 생활'을 포기한다고 발표하자 아쉬움의 함성이 일었죠.

하지만 알렉스가 군에 입대하는 성시경의 뒤를 이어 6월 초부터 라디오 DJ를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이 아쉬움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엄청난 악플이 달리기 시작한거죠. 물론 그 수가 절대 다수는 아니겠지만, 알렉스의 소속사 쪽에선 경악했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팬들은 '어떻게 DJ할 시간은 있고, 신애와 달콤하게 속삭일 시간은 없느냐'는데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알렉스의 죄(?)라면 너무도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한 죄겠군요. 만약 이 대목에서 알렉스가 따로 사귀는 여자친구가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 대목은 지난해 5월의 시선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정형돈- 저 위 사진을 보니 심지어 재혼이었던 - 이 이 가정을 현실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최근 결혼 발표를 한 신애는 과연 저 때 '그분'을 사귀고 있었을까요, 아닐까요. 그것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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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예화로 들어간 전화는 제가 직접 받은 거였습니다. 사연은 위에 적은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은 무척이나 절박해 보였습니다. 도저히 매니저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을 수 없더군요.

과연 그 뒤로 진짜 도움이 갔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런 식의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가 '이미지가 좋은' 스타들에게 직접 전달되기 시작한다면 그 또한 당혹스러운 일이겠죠. 아무튼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를 소비하시는 분들에 대해선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지나치게 빠져서, 현실과 방송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분들은 빨리 주변 분들이 깨워주셔야겠죠.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점점 똑똑한 정보 추구자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 정론인데, 21세기에도 이런 판타지에 빠져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참 놀랍기만 합니다. 이래서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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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일은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의 1주기입니다. 벌써 1년이 지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4월1일자로 장국영 관련 포스팅을 할까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어제 어떤 분도 댓글을 다셨지만 이 무렵이 되면 장국영의 신화가 되살아나곤 하죠.

이상할 정도로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는 아까운 한창 나이에 일찍 가버린 스타들이 많이 몰려 있습니다. 제목에도 있듯 장국영 뿐만 아니라 브랜든 리, 커트 코베인이 모두 이맘때 이승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봤습니다.

4월, 완연한 봄날이고 꽃은 피었지만 이상하게도 찬 바람이 가시질 않는군요. 옛날 글을 다시 읽어봐도 처연한 느낌은 여전합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4월, 왜 이다지도 잔인한가

4월.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라디오 DJ들은 '잔인한 달…'을 오프닝 멘트로 흘렸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묘하게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스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1993년 3월 31일은 '브루스 리' 이소룡의 아들인 영화배우 브랜든 리가 촬영장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숨을 거둔 날이다. 당시 나이는 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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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1987년, 그가 이국호(李國豪)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출연한 영화 데뷔작 '용재강호(龍在江湖)'가 개봉됐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비록 백인 혼혈이라 상당히 서구적인 얼굴이었지만 뚫어질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은 누가 뭐래도 이소룡의 재림을 알리고 있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묘한 분위기의 영웅 '크로우'로 기억되는 그는 '크로우' 촬영장에서 빈 총이어야 할 총이 발사되는 바람에 숨을 거둔다. 부자 2대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도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2003년 4월 1일 세상을 떠난 장국영은 6주기를 맞았다. 47세의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던 그였지만, 마음의 그늘을 이기지는 못했다.

1994년 4월 5일에는 그런지 록의 대명사였던 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27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유서까지 발견됐는데도 아내 코트니 러브가 개입됐다는 등 음모설이 끊이지 않았다. 생전에도 처절한 고독과 절망, 허무를 노래했던 그였기에 팬들의 눈물도 그치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죽음을 맞은 사람은 누구라도 안타까움의 대상이 된다. 하물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들의 경우임에랴. 해가 바뀔 때마다 팬들은 나이를 먹어 가고, 언제나 젊은 채로 남아 있는 스타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그 위에는 팬들 자신의 젊은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움과 슬픔이 한데 합쳐지는 까닭이다.

더구나 올해는 국내에서도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지난 2일 38세의 한창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언제나 즐거운 노래로 사람들의 근심을 덜어주던 그였던 탓에, 애도의 눈물이 어색하면서도 더욱 애틋하다.

4월이 왜 이토록 잔인한지, 답은 물론 없다. 다만 한창 피는 꽃소식 속에 못다 이룬 젊은 스타들의 꿈과 그들을 그리는 팬들의 눈물이 있어 이 봄을 더욱 처연하게 한다. (끝)








이국호(李國豪, Brandon Bruce Lee)
1965년 2월 1일 출생  - 1993년 3월 31일 사망.






브랜든 리 아닌 이국호의 데뷔작, '용재강호'가 국내에서 개봉됐을 때의 포스터입니다. 네이버 그래플러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NBlogMain.nhn?blogId=grappler39 에서 퍼 왔습니다. 이런 포스터가 남아 있다니 믿어지질 않는군요.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이소룡의 아들'이라는 선전 문구 때문에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물론 그리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국호의 눈빛, 상대에게 손가락을 겨누고 정면으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는 순간 '그래, 저 눈빛이야!'라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습니다. 역시 씨는 속일 수 없는 법이더군요.

예고편에 미국 버전과 홍콩 버전이 있습니다만, 홍콩 버전이 역시 제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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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했던 시절의 이소룡 일가 사진입니다. 당연히 왼쪽 아래가 브랜든 리,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긴 소녀가 샤론 리죠.  어렸을 때는 혼혈이라기보다는 백인 아이 같던 이 소년은 지금 아버지 곁에 누웠습니다.



이제 이렇게 시애틀의 한 묘역에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장국영(張國榮)
1956년 9월 12일 출생 - 2003년 4월 1일 사망




장국영 얘기를 하자니 너무 할 얘기가 많습니다. 그건 곧 다른 포스팅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이번엔 2003년의 비극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애잔한 마음을 전한 '천장지구' 이야기만 잠깐 보태겠습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당학덕은 장국영의 장례식장에서 '아자, 천장지구유시진, 차애면면무절기(阿仔,天長地久有時盡 此愛綿綿無絶期)'라는 헌시를 전했다고 합니다.

영화 '천장지구'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 구절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서 한 글자만을 바꾼 것입니다. '장한가'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옛 노래죠. 대단한 장시지만 유명한 끝부분만 보면 이렇습니다.


臨別殷勤重奇詞
헤어질 무렵 간곡히 다시금 전할 말 부탁했는데

詞中有誓兩心知
그 말 중에는 두 사람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다.

七月七日長生殿
칠석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밤 깊어 사람 없자 은밀히 속삭였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 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里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이 하늘과 이 땅도 언젠가는 다할 날 있으련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한만은 영원히 이어져 끝이 없으리.

당학덕의 노래는 이 마지막 구 구절에서 한(恨)을 사랑(愛)으로 바꾼 것입니다.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밖에 없어 암수가 같이 있어야 날 수 있는 새죠. 연리지는 두 그루의 나무가 줄기가 붙어 하나의 나무가 됐다는 채옹의 고사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깊음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부부의 연이 두터움, 가끔은 친구 사이의 우정이 두터움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장구한 천지도 언젠가는 다할 날이 오겠지만, 이 한만은 끝내 이어져 끝날 날이 없으리'라는 말을 열 네자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간결미는 한문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 아닐 수 없죠.

장국영이 부른 수많은 주옥같은 곡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곡 한 곡을 골랐습니다. '영웅본색'의 주제가 '당년정(當年情)'이죠. 요즘은 바비 킴의 '사표를- 던져라-'로 더욱 익숙해진 곡이 돼 버렸지만.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
1967년 2월 20일 출생 - 1994년 4월 5일 사망





코베인에 대해서도 그리 길게 보탤 말은 없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연에,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니 저와 동갑이군요.^





유서의 마지막에도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썼지만




팬들은 그의 아내를 증오하죠.

그를 생각하면 저는 항상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너바나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잘 알려진 MTV 언플러그드 버전입니다.



...과연 코트니는 그날 어디서 자고 들어갔기에 이렇게 남자를 비탄에 빠지게 했을까요.



임성훈(Turtleman)
1970년 9월 3일 출생 - 2008년 4월 2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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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데뷔해 운동가요 '사계'를 댄스곡으로 편곡한다는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준 터틀맨은 2005년 이미 심근경색 판정을 받고 수술도 받았습니다. 심근경색과 댄스가수란 거의 양립할 수 없는 영역이죠.

하지만 그는 '병원에 누워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며 계속해서 곡을 쓰고 무대 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명을 재촉하는 일이었겠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었지만 그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터틀맨이 남긴 노래들을 고르다 보니, 추모곡으로 걸맞은 노래는 한 곡도 없더군요. 하긴, 병마와 싸우면서도 밝고 즐거운 노래들을 만든 터틀맨이고 보면 자신의 추모 분위기를 어둡고 칙칙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비행기'입니다.






마지막 노래로는 이 노래가 어울릴 것 같아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퀸의 'No One But You', 부제는 'Only the good die young' 입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은 일찍 죽고, 좋은 일들은 이미 끝나 버린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똑같의 제목의 노래를 빌리 조엘도 불렀지만 아무래도 이 노래의 분위기가 훨씬 어울리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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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호풍환우(呼風喚雨)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김인식 감독은 그런 의혹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완패한 상황에서 지난 21일 내린 단비는 한화의 숨통을 터 줬고, 하루 연기돼 열린 2차전에서는 바람이 매 상황마다 한화에 유리하게 불었다. 1회말 삼성 조동찬의 홈런성 타구가 역풍에 꺾여 잡히는가 하면 기회 때마다 한화 타자들의 타구는 순풍을 탔다. 그야말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린 적벽대전같은 한판 승부였다. (이건 2007년 한국시리즈의 상황을 놓고 한 얘깁니다. 지금 상황과는 무관하지만, 이 자리에 최근 벌어진 WBC 멕시코전 상황을 대입하면 같은 결론이 됩니다. 더블스틸, 번트, 버스터, 좌-우 투수들의 정신 없는 계투, 여기에 때맞춰 터져 준 타자들의 장타... 그야말로 현란한 '야구의 모든 것'이었죠.)

 아직 올해 한국시리즈의 최종 결과를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만약 김인식 감독의 이런 스토리가 실제상황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흥행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감독이 무슨 마술사라도 되나. 세상에 저런 만화같은 스토리가 어디 있냐. 대본에 개연성이 없다"며 혹평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야구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면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 불보듯 뻔하지만 극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면 누구나 당연한 일로 여긴다. 즉 같은 사람이라도 야구장에 갈 때와 극장에 갈 때에는 기대하는 극적 감동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현실이 극적 상상력을 능가해 버리는 상황은 스포츠의 세계에선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중에는 의외로 히트작이 드물다. 야구를 국민적 여가(national pastime)라고 부르는 미국에서도 야구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중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소재로 한 코미디 <메이저 리그>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흥행작이 없다.

 한국도 큰 차이는 없다.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흥행 대박을 기록했을 뿐, 전설의 고교야구 영화 <자, 지금부터야>에서 <YMCA 야구단>, <슈퍼스타 감사용>에 이르기까지 '야구 영화'하면 내세울만한 작품이 딱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래 야구영화는 안된다고 말해 버리기엔 저변이 너무 아쉽다. 매년 야구장을 찾는 관중만도 300만. 이승엽이며 박찬호의 성공 스토리, 올 연초 WBC 4강에 열광했던 잠재적인 야구 팬들은 한둘이 아니다. 프로 야구가 등장한지도 24년이나 돼 기반도 성숙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기 연예인들이 팀을 구성해 직접 공을 던지고 때리며 정규 리그를 치르고 이를 TV로 중계까지 하는 나라다. 개중에는 장진, 김상진 감독이 소속된 팀도 있고, 리그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야구단 플레이보이스에는 장동건 김승우 주진모 황정민 조인성 등 현역 최고의 톱스타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이 정도 저변이면 이제는 한국에도 '이런 야구 영화가 있다'고 말할만한 영화 한 편쯤이 나올 때가 된게 아닐까. 연예계 애구파(愛球派)들의 분발이 기대된다. (끝)





굳이 지금 이 글을 다시 올린 건 어제 올린 글이 너무 묻힌 데 대한 아쉬움입니다.



김인식 감독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긴데 이 분의 야구관에는 참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김감독의 두산 재임 시절 한 선수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선수: 감독님은 땅볼 치는거 별로 안 좋아해요.

나: 왜?

선수: 사실 땅볼로 깔아 쳐도 각 잡아서 잘 갈라 치면 안타 나오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플라이로 날아가는 공 치라고 맨날 그러세요. 신인들이 땅볼 치면 물어봐요.

나: 뭐라고?

선수: 이렇게요.


(김감독): 야, 내야에 (수비가) 몇명 서 있냐?
(신인): 여섯명요.
(김감독): 그럼 외야엔 몇명 서 있냐?
(신인): 세명요.
(김감독): 그럼 내야가 더 넓어, 외야가 더 넓어?
(신인): ...외야요.
(김감독): 그럼 자식아, 내야로 쳐야 되냐, 외야로 쳐야 되냐?
(신인): ...외야요.



나: 음.... 맞는 말이잖아. ;

선수: 맞는 말이긴 해요.


뭐, 감독님의 유머였는지, 진지한 얘기였는지는 지금은 알 길이 없네요. 하여간 김인식 감독님, 같이 있으면 절대 심심하지 않은 특급 유머감각의 소유자셨습니다. 건강 때문에 좋아하시던 술도 못 드신다는데 참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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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심의의 잣대라는 건 참 균형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TV에서 여자 연예인의 비키니 차림이라는 건 대단히 음란한 표현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여름의 특집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이 모두 수영복 위에 티셔츠를 껴입거나 반바지를 입고 나오는 건 패션 감각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저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가 수영복만 입고 출연한 프로그램에 대해 '보기에 편치 않다'고 눈살을 찌푸리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에게는 '아니 수영장만 가도 요새는 일반인들도 다 저러고 다니는데...'라고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청학동에서 인터넷 하시는 분들이 '그럼 TV를 수영장으로 만들겠다는 거냐'고 수염을 부르르 떨고 하시는데, 뭐 꼭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도 좋아하는 사극 드라마에서는 예전부터 훨씬 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SBS TV에서 곧 방송될 '자명고' 팀이 사진 두 장을 공개했습니다. 자명공주 역의 정려원과 낙랑공주 역의 박민영이 잇달아 '목욕신'을 찍었더군요. 네. 아주 옛날부터 자주 보던, 사극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바로 그 '쇄골 아래 10cm' 짜리 목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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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화끈거리십니까? 애들이 볼까봐 두려우십니까(엄살은...)? 그런데 이런 장면은 벌써 수십번 안방극장에서 재현된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죠.

현대극에 나왔다면 시청자들이 득달같이 들고 일어날 장면도 사극에 삽입되면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가는 것이 흔히 있던 일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한 2년 전에 썼던 글이 있어서 좀 수정했습니다. 고려하고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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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사극에만 목욕신이 나올까?

사극이 강하다. 2006년 MBC TV '주몽'의 빅 히트 이후 주중 시간대에도 사극과 퓨전 사극 드라마의 고정 편성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이산',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바람의 화원' 등이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주말 사극인 '대조영'과 '대왕 세종', '천추태후', 그리고 퓨전 사극인 '일지매'와 '홍길동'까지 더하면 사극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은 주가 없을 정도다.  

심지어 케이블TV에서도 사극(풍) 드라마가 꾸준한 인기다. 조선시대의 수사드라마 '별순검'은 지상파에서도 의미 있는 숫자인 4%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OCN의 '메디컬기방 영화관', CGV의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사극이 왜 인기일까. 수만가지 답을 내릴 수 있지만 사극 붐을 설명할 때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빼놓을 수는 없다. 온 주위를 둘러 봐도 신나는 일이 없을 때. 현실이 너무도 심각하고 각박할 때 사극은 도피의 공간을 제공한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미 수백년전에 흙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어떤 위기에 처하든 그건 모두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고로 편안하다.

게다가 사극에는 상당히 풍부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존재한다. '라쇼몽'의 원작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현대 일본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다가와상은 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는 일찌기 역사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내가 원하는 설정을 마음대로 맞춰 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소설을 쓰는게 아니라 작가가 원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적절한 시대와 배경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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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반드시 이렇지는 않더라도 사극이 현대극보다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훨씬 적절한 형태라는 것은 확실하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사극의 고증이 훨씬 어려울 것 같지만 최근의 퓨전 사극 붐은 이마저도 흐트러놓은지 오래다. 현대극이라면 대단히 민감할 내용도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훨씬 매끄럽게 전달된다.

심지어 사극은 방송에서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섹스와 폭력의 문제에서도 현대극보다 훨씬 관대한 대접을 받는다. '메디컬기방 영화관'이나 '정조암살 미스테리 8일' 같은 케이블 TV 드라마 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방송된 사극 중에서 여주인공의 목욕신이 등장하지 않은 작품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현대극이라면 꽤나 화제가 될법한 수준이 일반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노출만도 아니다. '태왕사신기'에서의 피가 튀는 살육 장면 역시 현대극에서 재현됐다면 방송위원회의 규제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건 한국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최근 몇년새 붐을 이뤘던 '로마'나 '튜더스'같은 사극에서의 노출이나 폭력 강도는 현대극보다 훨씬 강렬하다. 아마도 '이건 다 현실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서슬 푸른 검열의 손길도 멎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재미있는 사극을 많이 보여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이 떠나는 것이 드라마 바깥, 실제 세상의 문제 때문이라면 상당히 우울해진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주식회사 한국'의 앞날이 밝을 때에는 드라마도 밝았지만 어느새 TV의 현대극에서는 치정과 불륜 드라마만 살아남게 돼 버렸다. 과연 내년에는 '밝은 현대극'을 볼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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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밝은 현대극이 나왔습니다. (이건 농담.^)

현대극이 싫어서 사극을 본다... 이건 좀 말장난같긴 하지만 현 상황에선 가장 정확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사극에는 목욕신이 나와도 괜찮다'는 선입견 역시, '저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듯 합니다.

아무튼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극이 더 야하고 잔인하다'는 것 또한 절묘하게도 사실입니다. 위에 예로 든 '튜더스'나 '로마'는 정말 대담하죠.




아울러 사극이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한국의 목욕신들.

(왜 꼭 하얀 속곳을 입고 목욕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장희빈'의 김혜수



'황진이'의 하지원




'왕과 나'의 구혜선




그리고 충격(?)이라는 표현도 나왔던 '신돈'의 서지혜




'여인천하'의 강수연






'왕의 여자'의 박선영까지.


정말 너무나 비슷비슷하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독 사극에만 관대한 한국 방송이 모든 시대에 좀 더 관대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자들만 나온다고 뭐라 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건 인정해야 합니다. 영화 '스카페이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누가 기억이나 해 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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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 정도면 기억할 만도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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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어쨌든 흥행에서는 날로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의 모습에서 '세련된 영국제 스파이'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건 영 아쉬운 부분입니다. 비록 왕년의 선배 007들은 이제는 서민용 대출 광고나 상조 광고에 나올 정도로 노장들이 되어 버리셨지만 말입니다. 아랫 글은 '카지노 로열'때 쓰여진 글입니다만, 대부분은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007이 본 시리즈를 모방했다든가, 다니엘 크레이그에게서 션 코너리의 냄새를 느낄 수 없다든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에 수많은 논의가 있었고, 본 시리즈야말로 결국 고전 007 시리즈에서 많은 부분을 모방했다는 것(엄밀히 따지만 제이슨 본, J.B.라는 이니셜부터 이미 대놓고 베끼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이언 플레밍이 그려내고 있는 원작 소설의 본드는 다니엘 크레이그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이 Young 님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건질 건 이언 플레밍과 다니엘 데포의 공통점 정도...? 아무튼 '일요일은 재방송'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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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진짜 007을 돌려다오

007 제임스 본드와 로빈슨 크루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국 작가의 유명한 주인공'이라는 대답은 5점.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적이 있는 역할'이라면 8점 쯤 된다. 10점짜리 대답은 이 둘에다 '전직 첩보원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추가되어야 한다.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이 2차대전 당시 진짜 영국 첩보원으로 활약했다는 건 상식이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 데포가 영국 첩보기구의 창시자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명예혁명으로 뒤숭숭했던 17세기 말 윌리엄 3세의 편에서 '영국의 적'들과의 첩보전을 주도했다.

(다니엘 데포)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영국제 스파이'의 장구한 역사를 짚어 보자는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한발 건너 있는 영국은 오래전부터 군사력보다는 외교력과 정보력으로 균형자의 위치를 지켜왔다.

이런 전통을 대변하듯 007로 대표되는 영국제 스파이들은 깔끔한 의상과 침착하고 우아한 태도,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이미지를 굳혀 왔다. 프랑스인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오는 영국인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의 느낌 그대로다.

 (이언 플레밍입니다.)



하지만 007 시리즈 최신작 <카지노 로얄>은 이런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새로 발탁된 제임스 본드 역할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우아하지도, 여유롭지도 않다. 사건이 닥치면 일단 몸으로 밀어붙인다. 유머도 모른다. 당연히 플레이보이도 아니다. 오히려 순정을 바치다 당하기도 한다.

이번 변화는 궁여지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007 시리즈 제작진이 피어스 브로스넌을 은퇴시킨 이후 캐스팅난에 시달렸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멜 깁슨, 조지 클루니에서 주드 로를 거쳐 제라드 버틀러까지 이들이 물망에 올렸던 수많은 후보들을 거론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다. 수많은 진통 끝에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거친 용모의 배우가 선택됐고, 거기 맞춰 새로운 본드 상이 탄생했다.



결국 <카지노 로얄> 자체는 나름대로 완성도있는 작품이 됐지만 골수 007 마니아들로부터는 '진짜 본드를 돌려달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크레이그에게선 션 코너리나 로저 무어의 향취를 전혀 느낄 수 없는데다, 본드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감초였던 비밀병기 전문가 Q도, 국장 M의 비서 머니페니도 등장하지 않는 본드 영화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콜리스는 이번 제임스 본드에 대해 "훌륭한 몸은 갖고 있지만 영혼은 없다"고 혹평했다.

일리가 있다. 몸으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이 보고 싶으면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나 빈 디젤의 <XXX>를 보면 된다. 전반부의 맨몸 추격전이 멋지다면 프랑스 영화 <13구역>이나 <야마카시>를 볼 일이다. 이런 주인공들이 널렸는데 대체 왜 제임스 본드가 후배들의 흉내를 내 가면서 이미지를 바꿔야 할까. 이런 부분에 대해 한국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 지 궁금하다. (끝)






피어스 브로스넌이 나온 <로빈슨 크루소>입니다. 별 재미는 없습니다. <로마 Rome>에서 섹시한 모습을 과시했던 폴리 워커가 나온다는게 인상적인 정도.


다니엘 데포의 경력이 궁금하신 분은
http://en.wikipedia.org/wiki/Daniel_Defoe 나 콜린 윌슨의 <잔혹>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가지 얘기가 있었지만 저는 본드 캐릭터의 원형은 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의 데이비드 니븐입니다. 원작에 그려진대로 어떤 난국을 맞아도 절대 흥분하거나 판단력을 잃지 않고, 정확한 판단으로 태평스럽게 행동하는 영국 신사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낸 명배우였죠.

물론 나중에 등장한 진짜 본드들은 훨씬 더 당당한 체구의 미남들이었지만, 이런 느낌들은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조지 라젠비나 티모시 달튼이 장수하지 못한 것은 모두 이런 부분들에서 본드의 분위기를 풍기지 못했기 때문이죠. 특히 늘 긴장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달튼이 007이 된 것은 다니엘 크레이그 못지 않은 실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원작자 이언 플레밍 역시 션 코너리가 007 1호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데이비드 니븐이었으면 했는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뒷날 션 코너리의 발전을 지켜본 플레밍은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해 냈다"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아무튼 범인이 뛰면 같이 뛰는 본드 캐릭터의 어디에서 우아함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뛰어라. 네가 뛰어서 도착하는 그곳에서 나는 기다리마...라는 것이 진정한 본드의 자세가 아닐까요. 저는 이런 본드를 보고 싶은 겁니다.

(앞글의 댓글에도 달았지만 차나 모터사이클, 스키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직접 뛰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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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사실은 왕국이지 제국이 아니지만- 이 자랑하는 수출품 중 하나로 영화를 꼽게 된 데 대해 공로상을 준다면 아무래도 둘로 나눠서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리처드 커티스가 이끄는 영화사 워킹 타이틀 Working Title이 받는다면 나머지 하나는 마땅히 배우 휴 그랜트에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휴 그랜트와 워킹 타이틀은 <네번의 결혼식, 한번의 장례식>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어바웃 어 보이> <러브 액추얼리>라는 일련의 걸작 로맨틱 코미디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가 주연하지 않은 워킹 타이틀의 대표작을 꼽자면 <빌리 엘리어트>나 <사랑도 리콜이 필요해 High Fidelity>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요?

아무튼 그랜트와 워킹 타이틀의 호흡은 대단한 찰떡궁합입니다. 그랜트가 주연한 다른 영화들, <투 윅스 노티스>나 <미키 블루 아이즈>, <비터 문> 같은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어떤 쪽이 그의 강점을 제대로 살렸는지는 명약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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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제외하고 휴 그랜트의 캐릭터에 매우 짙은 일관성이 느껴진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소심한 남자'죠. 한발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워킹 타이틀이 만든 대부분의 히트작들이 '소심하고 별 내세울 것 없는 남자가 멋진 여자와 맺어지는 이야기'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고 그 핵심에는 휴 그랜트라는, 그 역할을 똑 따 먹을 수 있는 배우가 있다는 얘깁니다.

 영화 속에서는 약간 얼띤 캐릭터만 맡지만 그는 옥스포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수재(?)에다가 <노팅 힐>에서 공연한 줄리아 로버츠에 대해 물으면 "입이 크다. 엄청 크다. 어찌나 큰지 키스신을 찍을 때면 어디선가 희미하게 키스 소리의 메아리가 퍼져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고 말할 정도로 멋진 유머감각도 갖춘 사람입니다. 물론 오랜 연인이던 엘리자베스 헐리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의 대부가 될 정도로 대범한(한국사람으로선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남자이기도 합니다.

왜 휴 그랜트 얘기를 이렇게 오래 했을까 하신다면, 다음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복선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바로 오늘의 주제, '소심한 남자'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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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남자의 힘, 할리우드를 누를 수 있다

2006년 6월, 온 한국이 월드컵의 광풍에 휘말려 있을 때 일본 영화 한편이 조용히 개봉됐다.
<전차남>은 화제만으로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품. 별볼일없는 소심한 남자가 우연한 기회에 꿈에 그리던 미녀와 인연이 닿은 뒤 연애 상황을 인터넷에 올려가며 조언을 통해 사랑을 성취해가는 이야기로 2005년 일본에서 드라마와 영화. 소설 모두 빅 히트했다.

따지고 보면 <전차남>의 직계 조상은SBS TV가 이문식-박선영 주연으로 리메이크해 방송했던 일본 드라마 <백한번째 프로포즈>다. 정말 별볼일 없고 못생긴 노총각이 공주같은 여주인공과 맺어진다는 내용으로 이미 지난 93년에는 문성근-김희애 주연으로 국내에서 영화화되기도 했고 2004년에는 중국에서도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로 만들어진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런 류의 드라마들은 굳이 말하면 신데렐라의 정 반대 스토리(‘개구리 왕자 스토리’라고 해야 하려나). 즉 ‘소심하고 사랑에 서툰 남자의 성공담’이라는 범 인류적인 소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소재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있는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사실 남자의 용모는 여자를 사귀는 데 큰 장애가 되지 않지만 소심한 성격과 기술의 부족은 절대적인 장벽이다. 그리고 사랑의 기술이란 결국 능란한 사람보다는 서툰 사람이 많기 때문이고. 관객들도 후자 쪽에 훨씬 감정이입이 쉽다. 그러다 보니 얘깃거리도 풍부하다.

게다가 소심한 남자의 연애담은 찍는 데 돈이 들 일도 거의 없다. 영국 영화를 세계적인 대중문화 상품으로 끌어올린 제작사 워킹 타이틀의 히트작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노팅 힐> 그리고 <러브 액추얼리>에 모두 사랑에 서툰 남자(주로 휴 그랜트)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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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영화에서도 소심한 남자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짭짤한 성공을 거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도 김주혁의 캐릭터가 빛났고.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도 박용우의 활약이 힘을 발휘했다. 특히 <달콤 살벌한 연인>의 순 제작비가 9억원에 불과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쯤 되면 한국 영화에서도 소심한 남자들의 활약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싸고 재미있으면서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먹힐 수 있는 소재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태풍>이 미국에서 개봉 첫주에 24개 스크린에서 약 6만6000 달러(한화 약 6500만원)의 흥행 수입에 그친 현실이나.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 사례를 보나 역시 한국 영화에 활력을 더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강력한 시나리오의 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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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괴물'이나 '디 워', '놈놈놈' 같은 영화가 한국이 주력해야 할 분야인가 하는 것은 오랜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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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선생이 내한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한번 올때마다 화제를 뿌리고 가시는 히딩크 선생님. 참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업적을 남기셨지만 이분으로 인해 한국과 네덜란드간에 형성된 우호 친선의 분위기는 이루 다 말하기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물론 이분의 후임들인 조 본프레레와 핌 베어벡이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좀 안타깝지만 히딩크와 아드보카트의 업적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튼 이런 양국간의 우호가 형성된 것은 좋은데, 이 우호관계를 거론할 때 약 400년 전 한국을 찾았던 화란인 하멜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사실 좀 불만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면 납득하시겠지만 하멜은 양국 우호를 상징하기에 그리 적절한 인물이 아닙니다. 한국에 정을 붙이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끝없이 빠삐용처럼 탈출을 시도하다가 마침내 성공한 사람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한 네덜란드 기업인들이 만든 자선단체의 이름이 '하멜협회'로 붙여지는 등 항상 하멜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건 좀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안이 없다면 모를까, 정말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박연, 한국인들이 잊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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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의 정체가 궁금하시면 아랫 글을 자세히 읽어보셔야 합니다.^^)

<두루두루> 박연에서 아드보카트까지

두 차례의 월드컵을 통해 한국과 네덜란드 사람들 사이에는 하나의 공고한 유대가 형성됐다. 특히 히딩크는 일본전을 앞두고 "명예 한국 시민의 자세로 일본을 반드시 꺾겠다"는 멘트까지 날려 한국 팬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불타오르게 했다. 한 개인의 노력이 두 나라를 그 어느 때보다 친근하게 만들어준 사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한 이방인이 머나먼 아시아의 한 나라를 방문한 뒤 서서히 그 나라 사람들과 동화되고, 마침내 그들과 목숨을 걸고 어깨를 나란히 싸운다. 그렇다. 바로 일본을 무대로 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다. 이 영화는 없는 신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네이선 알그렌이라는 가상 인물까지 동원해 감동을 쥐어 짜려 했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 역사에는 우연히 한국과 인연을 맺고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네덜란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과 네덜란드의 인연을 얘기할 때 1643년 한국에 온 <하멜표류기>의 저자 하멜을 꼽지만, 그는 한국 여자와 결혼해 13년 동안을 살고도 결국 적응하지 못해 결국 탈출한 뒤 고국에 돌아가 책을 썼다. <하멜표류기>의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귀국을 막은 한국인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그는 사실 '우호의 상징'으로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다.

반면 박연(벨테브레)은 하멜보다 16년 앞선 인조 5년(1627년) 두 동료와 함께 한국에 표류했고,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총포술 교관으로 일하면서 박연이란 이름으로 귀화해 결혼도 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터지자 조선을 위해 청나라에 맞서 싸우다 두 동료는 전사하고 박연만 살아남았다.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했을 때 박연은 통역 자격으로 이들을 만나 "이 나라는 살 만한 곳이니 정을 붙이고 살아 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먼 이방의 나라에서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 뛰어들어 피를 뿌려 가며 이 땅의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했던 벽안의 한국인. 박연과 동료들의 실화를 모델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면 <라스트 사무라이>의 엉성한 감상주의를 능가할 수 있지 않을까? (끝)




그런데 놀랍게도 네덜란드 현지에서도 이 이름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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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테브레(Jan Janse Weltevree)의 고향인 De Rijp(어떻게 읽는지 모르겠군요) 지방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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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의 가문 홈페이지(http://www.weltevreden.com/Fame/Fame.htm)에도 '우리 조상중에 최초로 한국 땅을 밟은 이런 분이 계시다'는 내용이 올라 있더군요. 참 감개가 무량합니다. (사실 중간의 사또 차림을 한 박연의 사진은 2002년엔가 박연과 하멜의 모습을 재현한 행사 사진 중 하납니다. 당시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분장한 것이라는군요.^^)




마지막으로 유머 하나:

2002년 당시에도 이런 비슷한 논의가 있어서 회사에서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 얘기를 했더니 회사의 어떤 선배가 하신 말씀:

"이야, 그럼 아악을 정리한 사람이 네덜란드 사람이었구나?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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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딩크형, 언제 또 오시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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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도 또 어딘가에서 '한국인 최초로 007 영화에 출연한 배우 릭 윤...'어쩌고 하는 얘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얘기가 안 나올때가 됐는데 싶었지만 뭐든 한번 잘못 알려지면 끝이 없더군요.얼마전 2006년 개봉된 '강적'의 리뷰를 이쪽 글로 옮겨왔는데, 거기에 연결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작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007 영화에 출연한 사람은?


 영화 퀴즈. 한국인 중 최초로 007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누구일까?

온 세상이 월드컵 판(주=이 글이 처음 쓰여진게 2006년이라는 점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인데 무슨 뜬금없는 질문인가 하실 분도 있겠지만 잠시 머리를 써 보시기 바란다. 물론 <다이 어나더 데이>의 릭 윤이나 윌 윤 리를 꼽았다면 실격이다. 그렇게 쉬운 문제면 내지도 않았다. 만약 이 문제에 오순택이라는 답을 댔다면 당신의 잡학도도 만만치 않다.
오순택은 지난 1974년 007 시리즈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제임스 본드를 돕는 홍콩의 영국 정보요원 입 경위 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의 본드는 로저 무어였고, 악당 역할은 전문 드라큘라 배우로 유명한(이제는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이라는 쪽이 더 알기 쉬운) 크리스토퍼 리가 맡았다.

필자는 이번 주초 영화 <강적>의 시사회에서 깜짝 놀랐다. 악의 거두인 황회장 역으로 오씨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70세인 오씨는 지난 59년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도미한 뒤 100편에 달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한국 영화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강적> 촬영장에서도 오씨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조민호 감독과 박중훈 정도였던 것 같다. 조민호 감독은 "첫 작품인 <정글주스>에 출연했던 재미 배우 김만(79년작 <전우가 남긴 한마디>로 올드 팬들에겐 친숙한 이름이다)씨의 소개로 오씨에게 출연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노역 배우 풀이 제한된 한국 영화계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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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뮬란>에서 아버지 목소리를 맡았던 오씨는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금세 '아아'하고 알아볼 만한 얼굴.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에 야마모토 제독 역할로 출연한 일본계 배우 마코와 함께 할리우드에서는 대표적인 동양인 배우로 꼽힌다. TV에서도 <미녀삼총사> <에어울프> <맥가이버> 등 추억의 외화들에 골고루 등장했고, 필자에게는 지난 82년작인 TV 미니시리즈 <마르코 폴로>에서 쿠빌라이 칸에 대항하는 남송의 재상 양저 역을 맡은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현재 서울예대 연극과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오씨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한국 영화의 제작 현장을 이해해야 할 것 같아 출연하게 됐다"며 "출연 조건이 '수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막상 해 보니 생각같지 않더라"며 웃었다.

박중훈과 오순택, 한국이 낳은 할리우드 배우 두 명이 함께 출연하는 영화 <강적>이 22일, 월드컵 열풍과 정면으로 대결에 나서지만 이를 홍보하는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도 오씨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영화계가 할리우드에서 41년간 현역 배우로 활동했던 그의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도움은 차치하고라도, 모처럼 고국 영화에 출연한 노배우에 대한 예우가 이 정도라는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산 경험이야말로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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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택은 자신을 가리켜 '할리우드에 진출한 두번째 한국계 배우'라고 못박아 말합니다. 첫번째 배우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인 필립 안이라는 것이죠. 필립 안은 <킬 빌>에서 빌 역할을 맡아 요즘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데이비드 캐러딘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시리즈 <쿵후>에서 캐러딘이 연기한 케인의 사부 역을 포함해 거의 200여편의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는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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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택의 출연작 중에는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파이널 카운트다운>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미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이상기류에 휘말려 진주만 기습 직전의 북태평양으로 시간이동을 하는 내용이었죠. 여기서 오씨는 니미츠호 함재기에 맞서다 포로가 되는 일본 제로전투기 조종사 역으로 출연합니다. 오씨는 "한국 사람 역할로는 출연할 만한 작품이 없었다. 이제 우리 나라도 잘 살게 됐으니 괜찮은 역할도 생길 텐데..."라며 허허 웃더군요.

오씨는 자신의 대표작을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와 공연한 독립 영화 <Home of our own>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대표작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라고 부릅니다. 이 영화는 홍콩-태국 등 동남아를 무대로 한 영화라서 친숙한 배경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의 근거지는 태국의 유명한 휴양지 푸껫의 팡아만에 있는 실제 지형으로, 지금은 '제임스 본드 섬'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경력을 가진 배우의 한국 영화 데뷔가 너무 조용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웠습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정창화 감독에 대한 재발견도 이뤄지는 시대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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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갓 건너온 한채영을 봤을 때, 이런 보석이 있나 싶었습니다. 특히 국내 여자 연예인들에게서 흔히 보기 힘든 글래머 체형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했죠. 조랑말을 보다가 서러브렛 순종 말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강렬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한채영은 사진 찍을 일이 있을 때마다 헐렁한 옷을 걸치고 나타났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죠.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2년전 드라마 <불꽃놀이> 제작발표회장에 나타난 한채영의 모습은 그날의 헤드라인을 휩쓸어버렸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쓴 글입니다. 그게 벌써 2년이나 지났군요. 그 사이 한채영은 유부녀가 됐죠.



'초원이 다리'만 백만불 짜리는 아니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한 장면. 호텔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리처드 기어는 거품 목욕을 하고 있는 줄리아 로버츠에게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렸다"며 측은한 표정을 짓는다. 이때 줄리아 로버츠의 대답. "이리 와요. 내가 '80인치'로 위로해 드릴게요."

여기서 말하는 80인치란 로버츠의 두 다리 길이. 1인치가 2.54㎝이니 말대로라면 한쪽 다리가 1m를 넘는다는 얘기다.

'다리가 아무리 길다 한들 설마 1m나 되랴' 싶기도 하지만 최근 MBC TV 새 드라마 <불꽃놀이> 제작발표회에 등장한 한채영의 위용은 이런 의심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한 위력을 과시했다. 그야말로 '각선미란 이런 것'임을 백마디 말이 필요없게 만드는 무력시위라고나 할까.

동양적인 신체미의 핵심이 목에서 어깨로 내려오는 가녀린 선이라면 쭉 뻗은 각선미는 그야말로 근대 이후 도입된 서구적인 미의 상징. 이런 면에서 한채영의 다리가 주는 느낌은 1980년대 국산 자동차 개발자들이나 90년대 반도체 연구원들이 느꼈을 법한 감회를 줬다. '이제 더 이상 수입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물론 한채영에게도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 데뷔작이 2000년 <가을동화>이니 결코 신인은 아닌 한채영. 하지만 데뷔 초에는 인터뷰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포대자루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소속사 스타제이의 정영범 대표에게 물으니 "몸매를 드러내는 걸 쑥스러워한다"는 거였다.

저런 몸매를 쑥스러워하다니. 당시 필자의 머릿속에는 초패왕 항우의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고사가 스쳐갔다. 항우의 라이벌인 유방의 참모들은 전국의 노른자위인 함양을 장악한 항우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공을 세워도 고향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비단옷(錦衣)을 입고 밤길을 가는(夜行) 격'이라는 말을 퍼뜨렸다고 한다. 자랑해야 할 것을 자랑하지 않는 것도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얘기. 이런 맥락에서 세월이 흘러 한채영의 생각이 바뀐 것은 본인을 위해서나, 팬들을 위해서나 백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리 얘기를 하자면 제이미 리 커티스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왕년의 명우 토니 커티스의 딸이며 영화 <트루 라이즈>의 주인공 커티스는 한때 스타킹 모델로 나서면서 100만 달러의 '다리 보험'을 들어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도 몇몇 연예인들이 유사한 보험을 들었다는 내용이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해당 보험사에 확인해 보면 '보험료를 내지 않아 그저 명목상의 보험일 뿐'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쯤해서 보험사 하나가 나서 '한채영 다리보험'을 유치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보험료가 부담스럽다면 그 정도는 보험사가 부담해도 되지 않을까? 최근 며칠 사이 '한채영의 다리'에 쏟아진 뜨거운 관심과 회사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별로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 같다. '초원이 다리'만 백만불짜리는 아닐 텐데 말이다.
(신문에 실렸던 글은 여기까지.)




아참,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한채영이 몸매 드러내기를 꺼리던 시절'의 증거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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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푸대자루같군요.^^





물론 한채영의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채영이 몸매 드러내기를 부끄러워 한 것은, '연기자라면 몸매나 외모보다는 연기력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박찬호가 '그저 공을 빨리만 던질 수 있는 어깨'를 부끄러워하거나, 차범근이 '발만 빠르면 뭘하나'라고 생각했더라면 과연 그만큼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타고난 재능이나 천분을 과시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도, 부당한 일도 아닙니다.

오늘의 교훈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을 깨닫는 순간이 진정한 자각이 오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말을 해놓고 보니 그렇게 '자각' 할만한 장점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 막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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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는 사람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자이크 사진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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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자이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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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자이크를 말하는 겁니다. 방송국에서 모자이크를 하고 음성변조를 할 때 신문들은 이니셜 기사를 씁니다. 물론 이니셜 기사는 '선정적인 나쁜 기사'의 표본처럼 되어 있긴 하지만, 다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니셜 기사가 없어지면 필요 이상으로 피해를 보실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Start.



배도환씨, 죄송했습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신문에 자기 기사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사람들이 못 알아보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밥은 굶어도 체면 구겨지는 일은 못 참는다.

그렇다면 연예인과 정치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정치인들은 자기가 이것으로 불리는 걸 영광으로 알지만 연예인들은 이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정답은 바로 `이니셜`이다.

일찌기 JP에서 시작해 DJ, YS를 거쳐 KT, DY까지 내려오는 이니셜은 바로 `저렇게만 불러도 누구나 다 안다`는 지명도의 상징이자 거물의 증거였다. 최근엔 고작 30대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ES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는데, 물론 정치인이 아니긴 하지만 이 두 글자 이니셜의 유구한 전통을 생각하면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반면 연예인들은 이니셜로 불리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IS는 얼마전 조폭 관련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연예인들에 대한 보도를 하며 이니셜을 사용했다. 그중 L씨는 "경찰이 신원을 철저하게 보호해 줄 것이라고 해서 조사에 응했고, 혐의 내용을 전부 부인했다. 그런데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내 이름이 마구 나돌고 있더라. 도대체 인권 보호에 관심이 있기나 하다는 얘기냐"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예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무분별한 이니셜 보도` 운운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여기서도 보듯 이니셜 사용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당사자의 신원은 보호하되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내용만큼은 전달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까지 실명을 밝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나쁜 이니셜 보도는 있다. 첫번째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주는 이니셜 보도다. 예를 들어 `동남아는 물론 미국에서도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겸 탤런트 B`라고 쓰려면 차라리 그냥 실명으로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두번째는 이니셜을 쓰는 것이 기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쓰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다. 즉 사실이라는 확증도 없는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항의를 피해 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이니셜 기사를 말하는 것이다. 심각한 내용보다는 요조숙녀 A양이 드라마 쫑파티를 하다가 술에 취해 화장실에서 잠이 들었다는 정도의, 장난기어린 정도가 대부분이었긴 했지만 대부분의 연예 기사에서 비난받았던 이니셜 기사는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무튼 최근에는 K씨, M씨, T씨처럼 구체적인 이니셜은 사라지고, 기사 안에 이름이 나오는 순서대로 A씨, B씨, C씨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경우가 익명으로 처리된 연예인들의 신상을 보호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만을 가진 분들은 여전히 있었다. 예전에 한 동료 기자는 이런 항의를 받은 일이 있다.

"이것 봐요, 이기자, 아니 왜 이니셜로 기사를 써서 사람을 귀찮게 해."

"저희는 선생님 기사를 이니셜로 쓴 적이 없는데요."

"글쎄 며칠 전에 A양이 B군이랑 어쩌고 저쨌다고 기사가 났다면서?"

"예, 그런데요?"

"사람들이 죄다 날 보고 난리야. 당신이랑 안문숙이랑 사귄다고 신문에 났던데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하던 사람은 바로 배도환. `B군 맞잖아, 나, B군` 하던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항의받던 기자는 물론,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모두 웃다가 쓰러져 버렸다. 안문숙씨, 배도환씨, 사소한 일로 가끔 귀찮게 해드린 데 대해 업계 종사자로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p.s. 이 글을 쓰고 났더니 나이 어린 시청자들은 '배도환씨가 누구에요'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니, 국민배우 배도환씨를 모른단 말입니까.

바로 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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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어린이는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배도환씨의 사진을 보니 웬만한 사진은 모두 어린이를 안고 있군요. 정치인의 특징 중에는 '사진찍을 때는 무조건 가까이 있는 어린이를 덥썩 안아든다'는 것도 있는데, 이분도 기질이 좀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늘 '이니셜이 소용없는 연예인'으로 통하는 가수 겸 탤런트 B군(RAIN), 안재욱씨, 배용준씨 등 여러 A군과 B군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한가지만 더. 신문에 가수 J양 혹은 가수 J라고 나오면 그냥 이 분인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거 아주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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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처럼'의 가수 제이입니다. 이 분을 쓸 때는 대개 제이(J)라고 쓰죠. 그냥 J양이라고 나오는 건 이니셜이 J로 시작하는 여자 연예인의 신원을 가리기 위해 쓴 겁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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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됩니다. http://isblog.joins.com/fivecard/13)


흔히 조선 3대 악녀(?)로 정난정, 장녹수, 장희빈을 꼽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여기에 광해군 때의 상궁 김개시(개똥이)를 포함시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아무튼 조선같은 신분사회에서 여자의 몸으로 정권을 농단할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 재능이라고 봐야겠죠.

영화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에 비해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강성연은 농염한 연기로 전과는 크게 다른 느낌을 심는데 성공했습니다. TV에선 지나치게 바른생활소녀 역할만 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무튼 강성연이 연기한 장녹수는, 실제로는 강성연 만한 미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녀가 아닌데도 남자를 녹이는 별난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 요지인데, 한번 자세한 내용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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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연산군이 정씨와 엄씨의 시신을 처리한 방식은 원문에는 '裂而?之, 散棄山野'라고 되어 있다. '잘게 찢어 해(?, 젓갈)로 담가 산과 들에 흩뿌렸다'는 뜻이다. 시신마저도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은 최고의 형벌을 뜻한다. 일찌기 한고조 유방이 통일의 공신인 팽월을 죽인 뒤 시체를 해(?)로 만들어 각지의 장수들에게 돌려 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내용은 뒷날 '중국인은 사람 고기를 수시로 먹었다'는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저 처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분풀이가 되지 않았던 새디스트들이 개발한 복수의 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4. 장녹수는 정말로 연산군을 아이 다루듯 했나?

강성연이 연기한 장녹수는 연산군을 아기 다루듯 하며 공길과 연산의 관계를 질투하는 드센 여자로 나온다. 과연 실제의 장녹수는 어떤 여자였을까.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장녹수는 이팔 청춘도 아니었고, 빼어난 미인도 아닌 30여세의 농염한 여인이었으며 특히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다'는 것은 실록에도 나온다. 실록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장녹수는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寵愛)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얼굴은 보통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엄청난 상을 내렸다. (중략)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려 있었다.'


5. 이극균은 정말 역모를 일으켰나?

광대들을 동물처럼 풀어놓은 사냥놀이에서 진짜 화살을 쏘다 잡힌 신하에게 연산군은 "네놈은 내 어머니에게 사약을 안긴 놈이 아니냐"고 말한다. 대본상으로 이 인물은 이극균이다(사실 진짜 이극균은 연산군에게 처단될 때 이미 67세의 노인이었으므로 활을 쏘아 누구를 노리고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종조에 북방의 야인들을 무찔러 국경을 안정시키는 등 공이 많았으나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사사당할 때 조카 이세좌와 함께 사약을 받든 탓에 갑자사화의 희생양이 됐다. 영화와 같은 사건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연산군은 이극균이 '나라의 명을 따랐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지은 죄가 없다'며 사약을 먹지 않고 목을 매어 죽자 시신의 목을 베어 효수한 뒤, 나중에는 무덤을 파 백골을 바람에 날리게 하는 등 복수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이극균과 이세좌의 운명은 두고 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뒷날 숙종 때의 장희빈은 사약을 거부하며 "나에게 사약을 안기는 자는 뒷날 이세좌의 꼴이 될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가 뒷날 경종이 될 운명이었으니 그리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다만 경종이 단명하는 바람에 갑자사화와 같은 피바람은 다시 일지 않았다.


6. 한글로 연산군을 욕한 벽보가 붙었나?


이것이 유명한 익명서 사건이다. 1504년 7월, 신수영의 집에 익명으로 된 투서가 날아들어왔다. 살펴보니 3명의 의녀들이 모여서 임금을 비판했다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익명서가 순 한글로 쓰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한 의녀가 '옛 임금은 난시(亂時)일지라도 이토록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는데 지금 우리 임금은 어떤 임금이기에 신하를 파리 머리를 끊듯이 죽이는가. 아아! 어느 때나 이를 분별할까?’ 하고 묻자 다른 의녀가 ‘그렇다면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하려니와, 무슨 의심이 있으랴’라고 대답했다는 등의 대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무튼 이 익명서를 보고 연산군은 대노하여 익명서의 등장인물들인 실재 인물들을 잡아들여 문초를 했으나 다들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조정이 발칵 뒤집혔고, 대신들은 '고발하는 자에게는 범인의 재산과 베 500필을 주고, 벼슬이 없는 자라면 3품 벼슬을 주며, 천민이면 양인을 만들어 준다'는 후한 상을 내걸기를 주청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범인이 잡히자 않자 연산군은 몸이 달았다. 7월22일에는 한글을 쓰는 자를 처벌하고, 한글로 구결을 단 책까지 불태우라는 '언문 금지령'이 내려지고, 7월23일에는 한글을 잘 쓰는 자들의 필체를 보고하게 하여 필적 대조를 통해 범인을 잡으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결국 25일에는 한글과 한문을 잘 쓰는 자들의 필적을 사헌부 등에서 보관하게 하여 뒷날의 사단에 대비하라는 조치가 내려진다. 이렇게 난리를 피운 데 비하면 범인이 잡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필적 대조 사태는 영화에 나온 것과 과히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7. 연산군은 동성애자였나?

정사든 야사든 '연산군과 동성애'에 대한 암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연산군에게서는 과도한 이성애의 흔적이 보일 뿐이다. 나중에 숙원의 직첩을 받은 장녹수를 비롯해 전향, 수근비 등의 수많은 여인들이 실록에 이름을 드러낸다. 특히 '사대부가의 여인들을 잔치에 불러 오래도록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종친인 월산대군부인 박씨와도 관계를 맺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월산대군은 아버지 성종의 친형이니 자신의 큰어머니를 능욕한 셈이다.

연산군 12년(1506년) 7월20일, 월산대군부인 박씨가 사망한 내용을 다루며 실록은 '사람들은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자결한 것이라고 쑥덕거렸다(人言見幸於王, 有胎候, 服藥死)'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 스캔들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중종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이 바로 이 대군부인 박씨의 남동생이었던 것이다. 박원종은 누이의 시신 앞에서 통곡했고 그로부터 불과 40여일 뒤인 9월2일, 성희안 유자광 등과 군사를 일으켜 연산군을 물리치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옹립한다. 아무튼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연산군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 인용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모두 국사편찬위원회의 온라인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을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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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와 관련된 코멘트를 할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볼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만들걸 그랬다"고 합니다. 물론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겠지만, 저는 이 말에 한 30% 정도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감독의 '역사 비틀기' 솜씨는 이미 <황산벌>에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그 부문에서는 <황산벌>의 성취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햄릿>을 이용한 경극 장면은 지나치게 가벼웠다고나 할까요. 영화는 화려하고 볼거리도 풍부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기에는 약간 부족했다는 것이 저의 느낌입니다.

아무튼 국민의 1/4이 봤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성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제 지독하게 못난 짓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은 영화가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릴 무렵인 지난 2월에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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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1)
 

'왕의 남자'가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온갖 대작들이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연말연시 대목을 겨냥하고 일제히 포문을 여는 12월. '킹콩'과 '태풍'의 쌍끌이 정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려되던 '왕의 남자'는 예상밖의 선전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 관객 동원면에서는 '태풍'의 절반 정도인 200만명 선을 웃돌고 있지만 제작비는 '태풍'의 1/4 수준이니 효율면에서는 두배가 넘는 셈이다.

원작 연극 '이'가 보여준 이색적인 소재, 감우성과 정진영에서 신인 이준기에 이르는 출연진의 호연, 이미 '황산벌'에서 역사의 재해석에 만만찮은 솜씨를 보여준 이준익 감독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룬 결과. 그런데 '왕의 남자'를 보다 보면 궁금증이 절로 생긴다. 과연 이 영화는 얼마나 역사 속의 사실과 일치하고 있을까? 예전같으면 꿈도 꾸기 힘든 일이지만 최근 전산화된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의 힘으로 일반인들도 조선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단, 이하의 내용은 그냥 궁금증을 해소하자는 글일 뿐, 영화의 공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일찌기 임권택 감독의 '개벽'이 개봉됐을 때 한 재야사학자는 '최제우와 전봉준은 보은 집회에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영화에서는 사실을 왜곡했다'며 영화의 '부정확한 고증'을 지적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하기도 했지만, 이는 영화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다. 영화 작가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사건들의 구멍을 상상력으로 메울 권리가 있다.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1. 장생과 공길은 실존 인물인가?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의 연산군조에 장생이란 인물은 나오지 않지만 공길은 딱 한번 나온다. 연산군 11년(폐위되기 1년 전) 12월 29일의 일이다.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중략)'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하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이날 왕은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로 모이면 도둑이 된다"는 이유로 아예 광대들이 대거 참석하던 전통 유희인 나례를 폐지시켜버렸다.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어지간히 비위가 상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이보다 6년 전인 연산군 5년(1499년) 12월19일만 해도 은손(銀孫)이라는 뛰어났던 광대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가 은퇴했으니 후임자를 천거하라고 대신들에게 요구할 정도로 연희에 애정이 두터웠던 연산군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실제의 역사는 이런 기록 한 줄로 추정하기에는 훨씬 복잡했을 것이다. 참고로 공길이 미소년이었을 것이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


2. '왕의 남자'가 커버하고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인가?

시작의 시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앞부분의 내용이 갑자사화 직전의 긴장된 분위기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작은 연산군 10년인 1504년 3월 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1506년이다. 이렇게 따지면 전체 시간은 약 2년에 달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2년이 흘렀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3. 연산군은 정말 성종의 후궁들을 영화처럼 죽였나?

놀랍게도 실록은 영화보다 훨씬 끔찍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연산군 10년(1504년) 3월20일, 연산군은 임사홍의 밀고로 마침내 모친에 대한 복수의 칼을 뽑았다. 폐비 윤씨의 죽음이 아버지 성종의 후궁이었던 엄씨와 정씨, 그리고 이들을 궁으로 들인 할머니 인수대비의 참소 때문이라고 판단한 연산군은 일단 정씨의 소생인 두 동생,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잡아들여 곤장을 친다. 그 다음의 행동은 인간으로서는 용서받기 힘든 패륜의 극치였다. 실록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본다.

(왕은) 모비(母妃) 윤씨(尹氏)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嚴氏)·정씨(鄭氏) 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중략)

왕이 항과 봉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인수 대비(仁粹大妃)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욕하기를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항을 독촉하여 잔을 드리게 하니, 대비가 부득이하여 허락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손자에게 하사하는 것이 없습니까?' 하니, 대비가 놀라 창졸간에 베 2필을 가져다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대비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 뒤에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다음날 왕은 자신의 명대로 어머니를 곤장으로 친 안양군에게 말 한마리를 상으로 내리는, 제 정신인 사람은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결국 안양군 봉안군 형제는 1년 뒤 유배를 거쳐 사약을 받는다. 연산군은 이들을 죽이기 전에도 전 재산을 몰수하고 첩들을 다른 종친들에게 첩으로 보내는 등 악착같은 복수의 집념을 보였다. (2편에서 계속  http://isblog.joins.com/fivecard/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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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가요계를 악의 소굴로 생각하는 재야 가요 운동가라는 사람들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야말로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에 현재의 한국 가요계를 과연 '순위' 없이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든 순위를 '납득할 수 있는 기준'만으로 매길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차트인 빌보드 차트도 결코 판매량으로 매기는 차트는 아닙니다.

차트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과연 그나마 방송사만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차트를 만들 수 있는 기관이 한국에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실을 모르는 맹목적인 비판만큼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지난 1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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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왜 방송사는 가요 순위를 매기면 안되나?

MBC TV '음악중심'이 순위 발표를 포기했다. 이로써 한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가요에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그동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던 각종 시민단체들은 무척 속 시원해 할 일이겠지만 기자의 심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과연 TV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일각에서 주장하듯 가요계를 '정화'하는데 도움이 될까? 기자는 이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가요계의 비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동물원을 없애면 야생동물 남획이 사라지고 초등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으면 우등생과 열등생이 없어지는 평등한 사회가 된다는 식의, 지극히 단순한 논리의 소산일 뿐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공격하는 논리를 살펴보자. 비판자들은 가요의 순위 매기기가 비리의 온상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물론 방송은 대다수 가수와 제작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 중 하나지만 매주 발표되는 음반의 수에 비해 매주 방송에서 다뤄줄 수 있는 가수와 노래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이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가수들에게 있어 1차적인 문제는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그 다음 얘기다. 일단은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렇다면 비리 근절의 가장 좋은 수단은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방송에서 가요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되어야 한다. 1위냐 2위냐 순위를 다툴 수 있는 가수들이 전체 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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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를 매기든, 매기지 않든, 가요계의 비리가 이슈가 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무명의 신인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성 인기 가수들이 새 음반을 냈을 때,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인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제아무리 담당 PD가 자신의 귀를 믿고 훌륭한 신인을 발굴해도 어딘가에서는 잡음이 나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비리를 둘러싼 논란이 '순위'와는 사실 별 상관이 없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또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특정 장르에만 편중해 대중음악의 저질화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순위 매기기와는 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방송사의 자체 기준에 의한 출연자 선정에 외부의 입김이 개입됐을 때, '카우치 사건'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10대 취향의 음악에만 편중해 대중음악계를 왜곡시킨다'는 주장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의 축으로 지목된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한국에서 가장 대중의 지지가 높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그리고 현재 대중음악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은 계층은 바로 10대들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계층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 일이지,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을 뜯어고치자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런 주장을 드라마에 그대로 적용하면, '10대를 겨냥한 시트콤'같은 프로그램도 사라져야 한다. 과연 모든 드라마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일 필요가 있을까.

일각에서는 순위 매기기 자체가 가요계의 '상업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이런 주장에까지 응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방송사든 아니든 가요 순위가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 당장은 누가 인기가수이고 누가 인기가수가 아닌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지만,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난 뒤 누군가 한국 가요사를 정리하려는 상황이라면,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당시를 평가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음반 판매량도 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빌보드 차트가 그저 음반판매량 순위가 아닌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빌보드 차트가 지금의 권위와 명성을 획득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빌보드 지 편집진의 노력이 있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비판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TV 가요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공정한 순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존재가 음반 판매량과 방송 회수, 다운로드 회수, 전문가들의 평가 등을 종합해 방송사보다 권위있고 공정한 순위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보다 믿을만한 순위 작성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이런 중요한 과업을 일부의 비판 때문에 폐지해버린 방송사들의 단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끝)





이 글을 쓴지 2년이 돼 가지만 상황이 달라진게 있다면 지상파 TV 가요 프로그램들이 극도의 시청률 저하로 영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정도입니다. 가수들은 시청률이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해 인지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기존의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비정상적인 시각도 이런 현실을 만든 범인 중 하나일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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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킹콩'에 열광했던 건 이렇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힘도 세고, 잔머리 따위는 굴리지 않고, 외모는 좀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일편단심인 남자친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나온 '킹콩 무비'들을 비교해서 즐겨보실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송원섭의 through*2] 세 '킹콩'들에 대해 궁금한 8가지 것들

지난 1933년 처음 극장에 등장한 이후 킹콩은 슈퍼맨과 배트맨을 포함해 어떤 캐릭터 못잖은 유명한 존재가 됐다.

이번에 피터 잭슨이 만든 작품은 72년 전의 오리지널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것. 과연 이 사이 킹콩은 얼마나 달라졌고, 그 동안 어떤 변천사를 겪어왔을까? 모르고 봐도 상관없지만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킹콩' 이야기를 모아 봤다.

1. 킹콩은 지금까지 3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머라이언 쿠퍼의 오리지널은 1933년작. 1976년에는 제프 브리지스, 제시카 랭 주연의 '킹콩'이 만들어졌고 2005년, 피터 잭슨이 33년작을 리메이크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미지의 섬에 석유를 찾아 나섰다가 킹콩을 발견한 유조선 선원들의 모험을 그린 76년판의 감독 존 길러민은 1986년 암컷 킹콩이 나오는 속편을 제작하기도 했으나 그 수준은 참혹할 정도였고, 이 영화는 정식 '킹콩' 계보에서 사실상 삭제됐다. 33년판에도 '킹콩의 아들(Son of Kong)'이라는 속편이 있지만 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계보는 할리우드판 킹콩만을 감안한 것. 지난 76년 만들어진 이낙훈 주연의 한미합작 3D영화 '킹콩의 대역습(Ape)'이나 킹콩이 등장하는 고지라 시리즈를 합하면 킹콩이 출연한 전 세계 영화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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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 킹콩 중에서 실제로 가장 컸던 것은 신장 12미터(40피트)였던 76년판의 킹콩. 33년판 킹콩의 키는 대사에는 15미터(50피트)로 되어 있지만 피터 잭슨은 33년판에 나오는 킹콩의 키를 사람이나 건물의 높이와 비교할 때 실제 키는 그 절반 정도라고 판단하고 2005년판에 나오는 킹콩의 키를 7.5미터(25피트)로 결정했다.

3. 세 편 모두 킹콩은 뉴욕에서 최후를 맞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세 편 모두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무대가 된 것은 아니었다. 76년판에서 킹콩은 9.11 테러로 사라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기어올라간다. 뉴욕의 마천루를 대표하는 빌딩들이 '킹콩' 유치를 위해 벌인 경쟁에서 WTC가 이긴 결과였다.

4. 피터 잭슨의 2005년판은 33년판의 충실한 재현.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고 어머니의 털 코트를 잘라 킹콩 인형을 만들고 놀았다는 잭슨의 33년판에 대한 존경심은 가끔 장난기로 변해 나타나기도 한다. 도입부에서 화감독 데넘(잭 블랙)과 조수 프레스톤(콜린 행크스)은 여배우 캐스팅에 대해 이런 대화를 나눈다.

데넘: 페이는 어때?

프레스톤: 페이는 쿠퍼와 함께 영화 찍고 있어요.

데넘: 맞아. RKO 영화였지.

페이(레이)가 출연하고 (머라이언)쿠퍼가 연출한 RKO 영화란 바로 오리지널 '킹콩'. 잭슨은 원작에서 앤 대로우 역을 맡은 페이 레이를 2005년판에도 특별출연시켜 마지막 대사인 "킹콩을 죽인 건 비행기가 아니야. 미녀가 야수를 죽인 거지"라는 대사를 맡기려 했지만 레이는 지난해 8월 97세로 사망했다.

5. 33년판과 2005년판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일단 캐릭터 중에서 남자 주인공 잭 드리스콜은 2005년판에서 앤 대로우(나오미 와츠)가 존경하는 작가지만 33년판에서는 그냥 용감무쌍한 부선장일 뿐이다.

킹콩과 여주인공 사이의 종을 초월한 애틋한 감정은 76년판에서 시작됐다. 33년판의 여주인공 페이 레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킹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76년판의 제시카 랭은 마지막 순간 헬기 편대의 기총소사를 막기 위해 흐느끼며 킹콩을 감싼다. 2005년판에서 피터 잭슨은 여기에 감미로운 스케이팅 신까지 추가하며 '미녀와 야수'라는 주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6.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 역을 맡아 명성을 얻은 앤디 서키스 는 이번에는 1인2역을 해내 피터 잭슨의 오른팔임을 증명했다. 영화에 나오는 디지털 킹콩의 표정은 서키스의 표정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킹콩 역할을 위해 런던 동물원의 고릴라들과 안면을 틀 정도로 심도있는 연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또 하나의 캐릭터는? 바로 애꾸눈 선원 럼피다.

7. 이밖에 프레스톤 역의 콜린 행크스는 별로 닮지 않았지만 톰 행크스의 아들. 또 지미 역의 제이미 벨은 '빌리 엘리어트' 의 그 소년이다. 카일 챈들러가 연기한 극중 할리우드 스타 브루스 박스터는 어딘가 클라크 게이블을 희화화한 듯한 모습. 실제로 브루스 박스터라는 배우가 있기는 했지만 원작이 만들어질 무렵인 30년대에 활동하지는 않았다.

8. 피터 잭슨은 두 권의 책을 잊지 않고 부각시킨다. 첫째는 1912년에 출간된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원시 생물들이 군집해 살고 있는 절해고도를 탐험하는 내용인 이 책은 오리지널 '킹콩'의 발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 2편의 제목이 '잃어버린 세계'인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잭슨이 그려낸 해골섬의 장벽 모습은 '잃어버린 세계'의 삽화에서 영감을 얻은 33년판의 영상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또 2005년판에서 지미가 항해중 읽는 책은 1899년에 나온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 훗날 프란시스 코폴라가 만든 '지옥의 묵시록'의 원안이 되는 바로 그 책이다. 서구인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저개발국의 자연과 주민들에게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거를 저질렀는가를 고발하는 이 책을 등장시킴으로써 잭슨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송원섭 기자





p.s. 심지어 한국 영화 '킹콩의 대역습'은 입체영화였습니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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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면 진행되는 조용필의 예술의전당 공연 리뷰입니다.

2005년 연말 공연을 보고 쓴 글이니 벌써 세월이 참 흐를대로 흘렀군요.

한때 조용필은 '마마미아' 스타일의 공연을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미 그 욕심은 버렸다는군요. 하지만 그의 공연에는 여전히 뮤지컬의 향취가 풍깁니다.




[송원섭의 through*2] 두얼굴의 조용필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갈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조용필, '바람의 노래' 중에서


몇해 전부터 조용필의 콘서트는 항상 2부로 나뉜다. 2부는 보통 가수들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 1부는 뮤지컬 스타일의 독특한 콘서트가 펼쳐진다.

한동안 '마마미아'(아바) '위 윌 록 유'(퀸)처럼 한 뮤지션의 노래들로만 채워지는 '가수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조용필은 최근 "기존의 곡들을 죽 배열하는 식의 뮤지컬은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매년 갖는 연말 공연의 1부다.

올해 공연의 1부였던 '정글 시티'에서 고정된 캐릭터는 한 사나이(조용필)와 영원의 여인(이상은) 뿐이다. 캐주얼 러브가 판을 치는 도시 한 복판에서 지쳐가는 주인공은 문득 먼 기억의 저편에서 어린 시절 사랑했던 그녀를 떠올리고, 마침내 그녀를 찾아낸다는 것이 '정글 시티'의 줄거리다.

줄거리는 있으나 거의 모든 노래는 조용필 혼자 이끌어간다. '명성황후'의 주역이었던 이상은과 코러스, 어린이 합창단이 부분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가수 혼자 노래를 하면서 나머지 출연자들이 춤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기본적인 형식은 빌리 조엘의 노래를 이용한 브로드웨이 쇼 '무빙 아웃(Movin' Out)'을 연상시킨다.

'무빙 아웃'은 무대 상단에 밴드와 가수(물론 빌리 조엘 본인은 아니다)가 위치하고, 하단의 배우들은 무용을 통해 1960년대에 고교를 졸업한 뉴욕 출신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반항의 나날과 월남전의 상처를 딛고 세상과 화해하게 되는가를 연기한다. 물론 그 시대의 젊음을 노래에 담았던 빌리 조엘의 노랫말들이 나레이션 역할을 한다.

뉴욕에 '피아노 맨' 조엘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조용필이 있었다. 가왕 조용필은 '추억 속의 재회' '눈물의 파티' '꿈' 등 주옥같은 노래와 노랫말을 통해 도시와 고독, 소외와 절망의 극복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구원의 여인을 향해 부르는 노래,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라는 '바람의 노래'는 대체 한 가수가 이룰 수 있는 성취의 끝은 어디인가를 의심케 하는 찌릿한 전율이 객석에 차고 넘치게 했다.

1부 공연에서 하늘 위로 올라갔던 조용필은 2부 시작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팬들을 만났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풍겼던 1부와는 달리 2부의 조용필은 때로 친근한 동네 아저씨처럼("밀지들 말어, 다쳐, 여기 상주 만들 일 있어?"), 아니면 옛날 그대로의 '오빠'처럼("아유, 알았다니까, 소리좀 고만 질러") 팬들을 품에 안았다. 그렇다. 그의 얼굴은 정확하게 두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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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못찾겠다 꾀꼬리' '정' '눈물로 보이는 그대' '미지의 세계' '잊혀진 사랑' '여행을 떠나요' '모나리자'...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히트곡의 퍼레이드는 마침내 앵콜곡 '단발머리'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자존심'으로 막을 내렸다.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막이 내려와도 팬들의 아우성이 끊기지 않자 조용필은 퇴장하는 밴드를 다시 불러세워 관객들과 함께 '친구여'를 합창했다.

문득 공연 전 조용필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욕심 같아선 전 공연을 1부처럼 하고 싶은데, 팬들 마음이 다 똑같지가 않아요. 어떤 노장 하나가 '난 허공 들으러 왔는데 지금 이게 뭐야' 하면 어떻게 할거야. 그분들 생각도 해야 돼요."

그러고 보니 '허공'은 없었다. '촛불'도, '물망초'도, '큐'도, '간양록'도,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그 겨울의 찻집'도 이날 공연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미워 미워 미워'도, '비련'도, '아시아의 불꽃'도, '마도요'도 연주되지 않았다. 대체 이 노래들은 언제 다 들려주려는걸까. 문득 '그분'이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는 '조빠'였구나.

송원섭 JES 기자
five@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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