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에서는 사람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자이크 사진을 씁니다.
이런 모자이크가 아니라
이런 모자이크를 말하는 겁니다. 방송국에서 모자이크를 하고 음성변조를 할 때 신문들은 이니셜 기사를 씁니다. 물론 이니셜 기사는 '선정적인 나쁜 기사'의 표본처럼 되어 있긴 하지만, 다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니셜 기사가 없어지면 필요 이상으로 피해를 보실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Start.
배도환씨, 죄송했습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신문에 자기 기사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사람들이 못 알아보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밥은 굶어도 체면 구겨지는 일은 못 참는다.
그렇다면 연예인과 정치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정치인들은 자기가 이것으로 불리는 걸 영광으로 알지만 연예인들은 이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정답은 바로 `이니셜`이다.
일찌기 JP에서 시작해 DJ, YS를 거쳐 KT, DY까지 내려오는 이니셜은 바로 `저렇게만 불러도 누구나 다 안다`는 지명도의 상징이자 거물의 증거였다. 최근엔 고작 30대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ES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는데, 물론 정치인이 아니긴 하지만 이 두 글자 이니셜의 유구한 전통을 생각하면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반면 연예인들은 이니셜로 불리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IS는 얼마전 조폭 관련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연예인들에 대한 보도를 하며 이니셜을 사용했다. 그중 L씨는 "경찰이 신원을 철저하게 보호해 줄 것이라고 해서 조사에 응했고, 혐의 내용을 전부 부인했다. 그런데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내 이름이 마구 나돌고 있더라. 도대체 인권 보호에 관심이 있기나 하다는 얘기냐"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예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무분별한 이니셜 보도` 운운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여기서도 보듯 이니셜 사용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당사자의 신원은 보호하되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내용만큼은 전달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까지 실명을 밝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나쁜 이니셜 보도는 있다. 첫번째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주는 이니셜 보도다. 예를 들어 `동남아는 물론 미국에서도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겸 탤런트 B`라고 쓰려면 차라리 그냥 실명으로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두번째는 이니셜을 쓰는 것이 기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쓰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다. 즉 사실이라는 확증도 없는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항의를 피해 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이니셜 기사를 말하는 것이다. 심각한 내용보다는 요조숙녀 A양이 드라마 쫑파티를 하다가 술에 취해 화장실에서 잠이 들었다는 정도의, 장난기어린 정도가 대부분이었긴 했지만 대부분의 연예 기사에서 비난받았던 이니셜 기사는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무튼 최근에는 K씨, M씨, T씨처럼 구체적인 이니셜은 사라지고, 기사 안에 이름이 나오는 순서대로 A씨, B씨, C씨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경우가 익명으로 처리된 연예인들의 신상을 보호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만을 가진 분들은 여전히 있었다. 예전에 한 동료 기자는 이런 항의를 받은 일이 있다.
"이것 봐요, 이기자, 아니 왜 이니셜로 기사를 써서 사람을 귀찮게 해."
"저희는 선생님 기사를 이니셜로 쓴 적이 없는데요."
"글쎄 며칠 전에 A양이 B군이랑 어쩌고 저쨌다고 기사가 났다면서?"
"예, 그런데요?"
"사람들이 죄다 날 보고 난리야. 당신이랑 안문숙이랑 사귄다고 신문에 났던데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하던 사람은 바로 배도환. `B군 맞잖아, 나, B군` 하던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항의받던 기자는 물론,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모두 웃다가 쓰러져 버렸다. 안문숙씨, 배도환씨, 사소한 일로 가끔 귀찮게 해드린 데 대해 업계 종사자로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p.s. 이 글을 쓰고 났더니 나이 어린 시청자들은 '배도환씨가 누구에요'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니, 국민배우 배도환씨를 모른단 말입니까.
바로 이 분입니다.
옆의 어린이는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배도환씨의 사진을 보니 웬만한 사진은 모두 어린이를 안고 있군요. 정치인의 특징 중에는 '사진찍을 때는 무조건 가까이 있는 어린이를 덥썩 안아든다'는 것도 있는데, 이분도 기질이 좀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늘 '이니셜이 소용없는 연예인'으로 통하는 가수 겸 탤런트 B군(RAIN), 안재욱씨, 배용준씨 등 여러 A군과 B군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한가지만 더. 신문에 가수 J양 혹은 가수 J라고 나오면 그냥 이 분인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거 아주 심각합니다.
'어제처럼'의 가수 제이입니다. 이 분을 쓸 때는 대개 제이(J)라고 쓰죠. 그냥 J양이라고 나오는 건 이니셜이 J로 시작하는 여자 연예인의 신원을 가리기 위해 쓴 겁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연재를 했다가 > 두루두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007영화에 출연한 최초의 한국인 (20) | 2008.07.01 |
---|---|
자신의 가치를 몰랐던 한채영 (0) | 2008.06.20 |
'왕의 남자', 장녹수는 꽃미녀였나 (2) (0) | 2008.06.17 |
'왕의 남자', 장녹수는 꽃미녀였나(1) (0) | 2008.06.17 |
[두루두루] 가요순위프로그램은 악인가? (0) | 2008.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