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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하던대로 10편의 영화를 꼽아 봤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극장에서 본 영화가 꽤 많네요. 

어쩌다 보니 올해 최고의 영화로 꼽을만한 씨너스가 맨 위에 있는데, 숫자가 1위~10위라는 뜻은 아닙니다.

1. 씨너스 (라이언 쿠글러)

얼마 전에 올린 '21세기의 첫 쿼터를 대표하는 25편의 영화' 중의 한 편으로 올려놨으니 여기 빠질 수는 없는 작품.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도 20세기 초 미시시피 델타 지방의 끈끈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025년 단 한편을 뽑으라면 이 영화. 이미 리뷰를 길게 써서... 그쪽을 참고하시길.

씨너스, 하룻밤의 혈투로 압축한 블루스의 역사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씨너스, 하룻밤의 혈투로 압축한 블루스의 역사

0. 스포일러는 없지만 일단 영화를 보시고 읽어보시길 권장. 근 몇년 사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른 보라고,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보라고 권한 영화가 없었다. 후회 안 하실 거라고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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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보 (이상일)

가부키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가, 그냥 막연한 이웃나라 연희극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 재능과 혈통, 우정과 경쟁, 인간 본연의 심리에 어필하는 훌륭한 작품. 3시간이 짧게 느껴집니다. 

국보, '가부키'라는 남자들만의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국보, '가부키'라는 남자들만의 이야기

0. 야쿠자의 아들 기쿠오(요시자와 료)는 부모를 잃고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의 제자가 되어, 한지로의 아들 슌스케(요코야마 류세이)와 함께 자라고, 함께 수련한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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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폴 토머스 앤더슨)

올해의 코미디. 찌질이 중년남으로 변신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인종주의 인간말종 꼰대로 변신한 션 펜, 두 아저씨의 열연이 기발한 정치 코미디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폴 토머스 앤더슨에겐 아직 이런 장르가 무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정말 재미있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PTA는 운동권을 비웃은 걸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PTA는 운동권을 비웃은 걸까

1. PTA , 그러니까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 중 , , , 는 좋아하는 영화들이지만 , 는 고만고만하고 는... 전혀 취향이 아니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불세출의 천재 감독'이란 평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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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쩔수가 없다 (박찬욱)

흠이 있다면 <기생충>보다 늦게 만들어 진 것? 늘 그렇듯 풍성한 비유와 기이한 유머로 가득한 박찬욱스러운 작품. 한마디로 주제를 요약하자면 '구조는 노예들을 싸우게 한다'? 거대한 공장에 '혼자' 서 있는 박찬욱 감독의 모습이 어쩐지 다른 50대 감독들이 다 나가떨어진 한국 영화계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어쩔수가 없다, 아마도. 이제는 정말로.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어쩔수가 없다, 아마도. 이제는 정말로.

1. .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한편으론 웃기면서 한편으론 곤혹스러운’. 이것이 이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가 아닐까. 아마도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기억될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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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콘클라베 (에드워드 버거)

교황의 급사 이후, 후계자 선출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 스스로를 킹메이커의 자리에 놓은 로렌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후보들을 눈대중으로 심사하며 카톨릭 교회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후보자들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아마 2010년 중반이었다면 아카데미상은 <콘클라베>의 차지가 됐을 듯. 그만치 고전적으로 완성도 높은 영화. 수사극(?)의 형태로 되어 있는 중간 중간의 문제들이 너무 쉽게 해결되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2025년 최고의 정치 드라마(아, 아직도 이 영화가 종교극이라고 알고 계신건 아니겠죠)로 손색이 없습니다. 예기치 못한 엔딩의 감동도 일품. 대단한 영화입니다.

 

6. 시빌 워 (알렉스 갈랜드)

어느 편이 어느 편인지도 모르게 미국의 50개 주들이 제각각으로 흩어져 서로 싸우게 된 근미래(사실상 현대). 국가의 분열을 초래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어느새 동부 끝으로 고립되어가고 있고, 특파원들은 대통령이 내릴 최후의 선택(?)을 취재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통과하는 미국의 시골 지역은 중앙 권력이 사라지며, 서부개척시대보다 더 엉망진창인 무법지역으로 변해 있습니다. 너무나 현실 같아서 차마 웃을 수 없는 영화. 결말은 사이다일까요, 아닐까요. 

시빌 워. 우화가 아닌 악몽. 9개의 질문과 대답.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시빌 워. 우화가 아닌 악몽. 9개의 질문과 대답.

를 꽤 기다렸다. 2023년 연말,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예고편을 보고 와 정말 할리우드는 다이내믹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미국 개봉도 4월로 늦어지고(아마도 예측 불가능한 미국 대선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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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앤드루 헤이그)

2023년작. 좀 늦게 봤지만 올해의 영화로 꼽지 않을 수 없을만큼 강렬했던 작품. 어둡고 우울한 도시에서 친구가 된 두 남자.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어렸을 적 부모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지 않은 주인공.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보시길.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디즈니플러스에서 를 봤다. 앤드루 헤이그, 의 그 감독이다. 앤드루 스콧, 좋아하는 배우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퀴어? 보고 나서 알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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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F1 (조셉 코신스키)

역시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 중 하나. 그동안 수많은 주제, 주제, 주제들에 시달렸던 관객들을 해방시켜 준 영화. '내가 왜 지금까지 영화라는 것을 보아 왔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속편 기대. 

F1, 세상은 변했나, 변하지 않았나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F1, 세상은 변했나, 변하지 않았나

2017년 F1의 사업권을 사들인 미국 회사 리버티 미디어는 의외로 F1이 미국에선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데 충격을 받고,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을 찾아나섰다. 그래서 2019년 시작된 기획이 넷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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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노라 (션 베이커)

'어째서 아노라가 2025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어야 했는가'는 당시에는 꽤 논란이 됐지만, 할리우드가 당시 사회 분위기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은 뭐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죠. 그리고 션 베이커를 잘 모르셨던 분이라면, <아노라>를 통해 이 놀라운 감독의 세계를 느끼게 되실 듯. 자, 아직 안 보신 분들이라면 빨리 <아노라>를 보시고,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시길.

 

 

10. 세계의 주인 (윤가은)

역시 '만들어 줘서 고마운' 영화. 아직 인생의 도입부인 10대라는 세대, 그리고 남은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위 사람들은 어떤 태도여야 하는지를 찬찬히 가르쳐주는 영화. 물론 거기다 재미있는 영화. 윤가은 감독이 디렉션의 힘을 어서 느껴 보시길.

세계의 주인, 주인이의 세계.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세계의 주인, 주인이의 세계.

근래 굉장히 비슷비슷한 영화평이 여기저기서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왜 좋은지 어떻게 설명을 하고 싶은데 설명을 하려들면 바로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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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좋은 영화들이 많이 봤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19년작 <리처드 주얼>은 정의란 무엇이고, 우리는 얼마나 외모나 연출에 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세상이 멸망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좋은 사람들도 있고...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 한국 영화로는 역시 넷픓릭스에서 본 <살인자 리포트>(조영준) 좋았습니다. 당연히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하는 출발점에서 실제로 반전이 밝혀지는 후반까지 구성이 정말 탄탄합니다. 

좀 고전적인 취향이라면 쩐 아인 훙의 <프렌치 수프> (원제가 La passion de Dodin Bouffant네요)를 추천. 줄리엣 비노슈의 잔잔하게 나이든 모습을 볼 수 있고, 딱히 음식에 관심이 좀 있는 분이 아니라도, 충분히 빠져들만한 잔잔한 이야기가 일품. 음식에 관심 많은 분들이라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도 올해의 영화로 추천할만.

반면 좀 너무 평이한건 싫다 하는 분들은 넷플릭스에 있는 <악마와의 토크쇼>를 강추합니다. 1970년대, 심야 시간대 시청률 경쟁을 벌이던 토크쇼들은 한명이라도 더 보게 하기 위해 마술, 심령, 불륜, 별별 소재들을 다 동원했는데, 그러다 결국 스튜디오에 악마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야말로 별별 짓을 다 보게 됩니다. 카메론/콜린 케언스(Cairnes, 캔스? 케이언스? 호주의 도시 이름인 Cairns와도 철자가 다름)는 형제인가본데 물론 전혀 들어본 적이 없고, 아는 배우도 나오지 않지만 아주 재미있습니다. 물론 호러는 아니지만, 노약자들은 시청을 피하시길.

 

자, 2025년 한햇동안 애써주신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26년에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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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F1의 사업권을 사들인 미국 회사 리버티 미디어는 의외로 F1이 미국에선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데 충격을 받고,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을 찾아나섰다.
 
 
그래서 2019년 시작된 기획이 넷플릭스 다큐 <본능의 질주 Drive to survive)>. 그 뒤로 시리즈도 승승장구, F1의 인기도 급상승. 코신스키도 영화 <F1> 제작에 <본능의 질주>가 미친 영향을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다. F1에서 보여줄 수 있는 카메라 앵글을 비롯해 거의 모든 비주얼 요소를 가이드로 보여준 셈인데, 어찌 보면 이런 면에선 영화 공짜로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레이서의 세계를 다룬 영화들은 참 많이도 나왔다. 할 얘기도 이미 다 했다. 남자의 고독, 질주 속에서 느끼는 실존감, 팀메이트간의 갈등, 특히 백전노장 드라이버와 신예 후배의 갈등, 차의 성능인가 드라이버의 실력인가, 의리와 명분... 주인공만 바뀐 똑같은 플롯의 영화들이 쌓여 있다. 물론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그리고 사실 영화라는게 원래 그런거 아닌가. 느와르는 안 그렇고, 로맨틱 코미디라고 크게 다른가.

스티브 맥퀸의 <르망(1970)>과 이브 몽탕의 <그랑프리(1966)>를 좋아한다. 두 캐릭터 모두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노장 드라이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후배들과 경쟁하고, 달린다.
 
지금은 매우 식상한 얘기지만 이런 영화들에는 꼭 "대체 이렇게 목숨 내놓고 이걸 해야겠어요? 뭐때문에 시속 200마일로 달리는 미친 짓을 하죠? (당신이 죽으면 나는 어떡해요?)" 라고 묻는 여성들이 나왔다. 그러면 노장들은 오만 폼을 잡고 말한다. "내겐 달리는게 전부야." 그렇다. 매우 유치하고 진부하지만, '달리는 것이 나의 존재 증명'이라는 그 시대의 과장된 진지함이 좋았다.

 

 
다행히도 코신스키의 <F1>에는 같은 질문을 던지는 여성 캐릭터가 없... 나오긴 한다. (웨이트리스가 비슷한 질문으로 브래드 피트에게 "돈은 중요치 않아요"라고 말할 기회를 준다.) 대신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그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를 만든다. 멋지지 않은가. 이것이 2025년이다.
 
사실 <F1>을 신나게 보고 나왔는데, 정작 <F1>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영화 자체가 그 자신에 대해 너무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F1의 규칙 같은건 나도 모른다. 아무튼 브래드 피트는 멋지고, 보고 있으면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지만, 영화란 건 원래 이런 거였고, 이랬어야 했다.
 
P.S. 파트너 돈 심슨이 살아있던 시절, 다들 아시다시피 1990년 제리 브룩하이머는 레이싱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바로 톰 크루즈의 <폭풍의 질주>. <F1> 속편에선 톰형과 빵형이 '왕년의 라이벌'이었던 것으로 놓고 데이토나나 르망에서 '마지막 대결'을 위해 만나보는건 어떨까. <탑건 매버릭> 감독이기도 한 코신스키는 이미 이런 구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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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쩔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한편으론 웃기면서 한편으론 곤혹스러운’. 이것이 이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가 아닐까. 아마도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기억될 <고추잠자리>씬을 보면서 딱 그런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은.
 
이 다크한 코미디가 얼마나 대중적일지가 솔직히 궁금하다.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을 묘수풀이로 즐기는 관객들에겐 대단히 만족스러운 영화일 듯. 참고로 사과나무도 나오고, 뱀도 나온다.
 
 
2. 벌써 10몇년 전의 일이다. 한 지인의 지인이 출판사를 냈다며 건네 준 책에는 이런 추천사가 적혀 있었다. ‘박찬욱: 내가 가장 영화로 만들고 싶은 원작’...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야, 역시 재미있었다.
 
 
3. 소설 제목은 엑스(AX). 해고된 중년 가장이 재취업을 시도한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하고, 주인공은 자신이 특화된 영역의 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 나와 비슷한 경력자들을 제거하면 되겠네? 그래서 실업자 아저씨는 킬러로 급변신을...
 
 
4. 대략 이런 이야기. 당연히 원작과 똑같지는 않다. 제지회사 베테랑 엔지니어 유만수(이병헌)는 사랑하는 미인 아내(손예진)와 두 아이, 두마리의 개, 자기가 태어나 자란 숲속의 집(어려서 집안이 망해 쫓겨났다가 성인이 되어 되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식물들로 가득 찬 온실까지, ‘다 가졌다’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영화 도입부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이제부터 주인공이 나락으로 향한다는 이정표다.
 
 
5. <어쩔수가 없다>. 제목은 너무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혼자 일해 혼자 먹고 살 수가 없다. 반드시 어떤 부분은 남에게 의지해야 한다. 남이 해주는 일은 어딘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한국에서 그 부분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말 중 하나가 ‘어쩔수 없다’다.
 
사실 영화 앞부분에서 미국인 임원의 대사는 “Sorry, no other choice”였던 것 같은데,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어쩔수가 없다”는 아마도 “It is what it is”, 아니면 “That’s the way it goes. It was the best I could do”에 더 가깝지 않을까.
 
 

6. 그리고 구조는 노예들이 서로를 적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건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부터 유지해 온 스탠스가 아닌가. 그때도 송강호는 신하균에게 말했다. “사실 너 착한 놈인거 안다. 그러니까… 죽이는거 이해하지?” 이건 내가 너를 죽이는 게 아니라, 이 구조가 너를 죽이는 거야. 그러니 나를 탓하지 말아줘. 나도 어쩔수가 없어. AI도 나오고, 이야기의 외피는 새롭지만 그 속살은 소설 원작이 나온 시절의 시각을 지나치게(?)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닐지.
 
(물론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선택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과 문명의 흐름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버려서 누구도 '어쩔 수 없이' 이 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어쩔수가 없다' 인지도.)
 
 
7.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가 <기생충>보다 늦게 만들어진 이상, 비교는 필연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디언 분장의 손예진은 아마도 관객에게 보내는 ‘인정할게. 자, 됐지?’의 사인일듯. 암튼 비슷한 문제에 대해 두 감독이 제출한 두 장의 답안지를 보는 느낌이다.
 
 
8. 전체 제작비에서 대체 출연료만 어느정도일까 싶게 캐스팅이 환상적이다. 차승원 이성민이 이 정도 비중의 역할로 출연하는 영화라니. 배우들의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짧다. 이병헌의 능력을 굳이 얘기하는 건 이제 사족일 뿐이고, 궁금한 건 박찬욱 감독과 손예진의 조합이었는데, 결과는 감동적이었다.
 
 
9.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올드보이>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처음으로 ‘죄’만 있고 ‘벌’은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벌이 있다면... 레슨비?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엔딩의 이병헌 혼자 있는 장면은 혹시 박찬욱 감독이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유는…)
 
 

10. 어쨌든 얼른들 가서 보세요. 보고 더 얘기합시다. 떡밥은 천지.

예를 들어 영재인 딸인 어딘가 AI를 비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악보를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 표기하는 아이. 놀라운 재능이 있지만 인간 부모들과는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 아이. 어딘가 미심쩍은 눈으로 인간 어른들을 보고 평가하고 있는 아이. 결국 그 '아이'와 어떻게 미래를.... (정말 돈이 많이 든다. 제대로 키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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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에서 <올 오브 어스 스트레인저스>를 봤다. 앤드루 헤이그, <45년>의 그 감독이다. 앤드루 스콧, 좋아하는 배우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퀴어? 보고 나서 알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도 그 관계 자체가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런던 어딘가의 낡은 고층 아파트. 입주자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폐허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 아담(앤드루 스콧)은 어느날 이웃 해리(폴 메스칼)을 알게 된다. 세상 살이에 미련이라곤 없어진 아담은 어느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떠냐"는 해리의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한다. 뒤늦게 자기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 아담. 그리고 그들은 매우 친숙한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아담은 갑자기 어려서 살던 옛 집을 찾아가는데, 거기에는 여전히 부모님이 살고 있다. 자기를 남겨 두고 죽었을 때의 젊은 모습 그대로. 그들은 너무나 반갑게 아담을 맞이한다.
 
(네. 이런 얘기에요. ㅋ)
 
 
왠지 그렇게 끝나면 안 될 것 같은 방향으로 영화가 흘러가고, 결국 엔딩 크레딧이 뜬 뒤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기분 오랜만인데, 굳이 기억을 뒤져 보자니 관금붕의 <연지구>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외로움, 인연, 그리움, 이런 키워드들에 이어 ‘회한’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다 늦은 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문명이란 어떻게든 어둠을 이겨 보려는 인간들의 발버둥이 이뤄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밤을 낮처럼 밝혀냈지만, 마음 속의 어둠은 쫓아낼 수 없었고, 도시에도 여전히 그늘은 있다.
 
 
그 그늘에서 무엇이 나올지를 두려워한다면, 아직 당신은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지도.
 
1월이지만 올 연말에 꼽을 올해의 영화 중 한 자리는 확정. 영화는 잔잔하지만 여운은 어마어마하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음.
 
 
P.S. 일본 작가 야마다 타이치의 <이방인과 보낸 여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1988년에 영화화됐다. 물론 번역 출간도 되지 않았고, 영화도 볼 방법은 없어 보인다. 혹시 보신 분 계심?
 
 
P.S.2. 해리 역의 폴 메스칼이 <글래디에이터>에서 그 소년 루시우스였다고. 아. 세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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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굉장히 비슷비슷한 영화평이 여기저기서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왜 좋은지 어떻게 설명을 하고 싶은데 설명을 하려들면 바로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세계의 주인>. 여고생 주인은 어린이집 원장인 엄마, 마술사를 꿈꾸는 초딩 남동생과 살고 있다. 태권도를 좋아하고, 봉사 모임에도 나가고, 남자친구와 키스도 좋아하는, 활기차고 씩씩한 주인. 어느날 같은 반 남학생 수호가 서명운동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는데, 주인은 정색을 하고 거절한다. 아니 충분히 찬성할만한 일인데 왜?
 
 
영화의 전반은 수수께끼를 내고, 후반은 그 수수께끼의 답을 준다. 의아했던 것들이 풀려 나가면서, 관객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게 하는 묘한 영화. 미스테리는 해결되고, 웃음이 화면 가득 차오르지만 당신은 영화를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악은 분명 존재한다. 악이란 너무나 알아보기 쉬워서, 마주하는 자가 유혹에만 넘어가지 않으면 피해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는 물론이고, 실제 세상에도 악한 인간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만, 일단 악행이 저질러지고 나면, 어떤 식으로 단죄를 하든 '그 뒤의 삶'이라는 것은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넘어온다.
 
 
그 악행의 흔적, 악행이 남긴 것은 지우개로 지우거나 욕실세제로 박박 닦아내릴수 있는게 아니다. 그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태양 아래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는 악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약한 자들을 보호할수 있을까. 한번 무너진 것은 어떻게 다시 일으킬수 있을까. 그리고 그 무너진 것을 다시 쌓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윤가은 감독은 답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얼개를 짜는 재능 못지 않게 배우들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솜씨가 놀랍다. 영화 시작 후 30분이면 '음. 저 배우와 저 배우는 상당히 오버액션을 하네'라는 생각이 드는데, 1시간30분쯤 되면 그 오버액션도 연출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드물게 정교하면서도 동시에 휘몰아치는 힘이 느껴지는 영화. 상영관이 적은게 안타까운데 어떻게든 찾아서 보시길 권한다. 내 마음이 얼마나 굳어 있나 볼수 있는 자가검진 세트로도 사용 가능.

 

P.S.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윤가은 감독의 영화 몇 편을 찾아 봤는데, '남동생'이라는 존재의 특이한 역할이 공통점으로 드러나는 걸 보았다. 윤 감독은 남동생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관계일지가 궁금했다. (지인을 통해 '남동생이 있다'는 것까지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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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TA , 그러니까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 중 <리노의 도박사>, <부기 나이트>, <팬텀 스레드>, <펀치드렁크 러브>는 좋아하는 영화들이지만 <마스터>, <매그놀리아>는 고만고만하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전혀 취향이 아니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불세출의 천재 감독'이란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비호를 넘어 극혐에 가깝다(물론 라디오헤드의 우울증 유발형 음악도 좋아하지 않는다). 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이번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도 유일한 약점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펼쳐지는 장면들과 지금 이 음악이 어울리나? 아무튼 내 취향엔 맞지 않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배틀...>은 진심 재미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선에 맞선(?) 가상의 테러 조직과 세월의 흐름, 백인우월주의 비밀 서클 같은 주제들이 종횡무진 대륙을 질주하며 벌어지는 요란한 액션 코미디. PTA가 어쩌다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기특하기 짝이 없다.
 
3.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말도 안되는 짓거리와 영화 속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 하는 짓들을 보면 이 영화는 트럼프의 나라가 되어 버린 미국에 대한 강렬한 비판인데, PTA는 그걸로 그치지 않고 그 반대편도 날카롭게 후벼 판다.
 
 
4. 겉멋들린 운동권 엄마는 결국 모든 걸 배신해버리고, 그 바람에 애당초 혁명의식이란게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밥(디카프리오다)은 하루 아침에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는데, 그 1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어린 딸을 부양하면서 잡히지도 않고 버틸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무능하기 짝이 없다.
 
니들도 잘한게 없다는, 미국 진보진영에 대한 실망이 그대로 담긴 듯한 느낌이다. 너희가 쓸데없는 PC와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에만 매달려 민생을 돌보지 않는 바람에 정권이 트럼프한테 넘어간 게 아니냐는 분노가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젊었을 때는 목숨을 걸고'를 외우고 다니는 586 꼰대들에 대해 실망한 한국 관객들의 호응도 눈부시다.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5. 디카프리오를 비롯해 천하의 악당 역을 맡은 션 펜, 카라테 센세 역의 베니시오 델 토로의 활약이 눈부신데, 이 세 아저씨(셋 중 하나는 확실히 내년에 오스카 트로피를 쥐지 않을까. 특히 주연일지 조연일지 모르겠으나 션 펜)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를 타란티노 아닌 PTA가 만들었다는 것이 의아해진다.
 
 
6. 물론 PTA에게 이런 장르가 익숙지 않아 그런지, 아니면 '어차피 이 영화는 코미디'라는 생각에서인지 뒷부분으로 가면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진다. 특히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감탄해마지 않는 마지막 시퀀스의 자동차 추격전 장면에서 대체 마지막에 세 대의 자동차가 어떻게 그 차가 그 차인줄 알고 쫓고 쫓길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냥 달리다 보면 그 차가 그 차고, '본능적으로' 그 차가 자기를 죽이러 쫓아오는 차인 걸 눈치챈다는 식이다.) 하지만 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은 금물. 특히 망원렌즈 활용을 극대화한 촬영은 박수받을만 하다.
 
 

 

SLA 홍보 요원이었던 허스트와 체포된 뒤의 모습.

 

7. 영화 속 프렌치75는 1970년대 언론재 벌 허스트가의 손녀 패트리샤 허스트를 납치한 사건으로 주목받았던 SLA 같은 무정부주의 조직에서 모티브를 가져온게 아닐까 싶다. 60년대의 대책없는 낭만이 남아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2010년쯤의 미국에서 이런 조직은 존재했을리가 없어 보이긴 한다.
 
SLA는 Symbionese Liberation Army의 약자로, 이들은 반 자본, 반 인종차별, 반 제국주의를 주장하는 극좌 조직이었다. 사상적으로 치밀하지는 않았고 막시즘과 모택동의 사상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이나 호치민의 게릴라 전에 대한 생각들을 조합한 것이 이들의 기반이었다. 
 
1974년 당시 SLA 는 패트리샤 허스트를 납치했다. 처음에는 유괴 사건이었고 이들은 허스트의 몸값으로 빈민들에게 식량을 지급하라는 등의 요구조건을 내새웠지만, 사라졌던 허스트가 SLA의 테러 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찍히며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테러 조직에게 납치당했던 재벌가 상속녀가 그 테러 집단의 한패가 되어 있다니.
 
그들과 함께 생활하던 허스트는 그들의 반복되는 주장에 어느새 '세뇌되었고', 그들의 일원이 된 것이다. 허스트는 피해자에서 어느새 지명수배 명단에 함께 오르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조직은 체포되어 와해되었고, 허스트도 당연히 같이 처벌을 받았지만 1982년 허스트는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의 책(그러니까 자발적 참여가 아니고 억압적 세뇌에 의해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인 것이다... 운운)을 써서 사면에 성공했다. 정말로 그녀가 자발적으로 동참했는지, 아니면 새로운 심리적 이론의 근거를 마련한 것인지는 그녀 본인만 알 듯. 
 
8. 어쨌든 PTA 답지 않은 결말까지도 한국 관객 취향에도 딱 맞을듯한 작품. 개인적 기준으론 상반기의 <씨너스>와 올해의 영화를 다툰다. 얼른들 보시도록.
 
 
P.S. 성수동 메가박스가 문닫기 직전에 관람. 이런 식으로 극장이라는 존재가 삶의 주변에서 아예 사라져버릴까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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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 안 읽고 오신 분들을 위해 리스트만 앞에다 붙인다.

기준은 작품성 예술성 모르겠고, 그냥 내가 가장 좋아한, 2001-2025 사이의 영화 25편. 배치는 제작 연도순. 순위 아님.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 2001)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피터 잭슨, 2001)
시티 오브 갓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2)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무간도2 (유위강/맥조휘, 2003)

킬빌 (퀜틴 타란티노, 2003)
올드보이 (박찬욱, 2003)
쿵푸허슬 (주성치, 2004)
타인의 삶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렛미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타짜 (최동훈, 2008)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빗 핀처, 2008)
아이언맨 (존 파브로, 2008)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2010)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2010)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2011)
베스트 오퍼 (주세페 토르나토레, 2013)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아쉬가르 파라디, 2013)
킹스맨 (매튜 본, 2014)

매드맥스: 퓨리로드 (조지 밀러, 2015)
쓰리 빌보드 (마틴 맥도나, 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2019)
씨너스 (라이언 쿠글러, 2025)

 

이것만으론 아쉬우니 한줄씩 붙인다. 

1~11까지는 바로 앞의 포스팅 참고.

12.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빗 핀처, 2008)

어느 순간엔가, 모든 좀비 영화는 가장 무서운 병, 치매라는 병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가장 슬픈 좀비 영화는 바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다. 사랑하던 사람이 살아 있으나 더 이상 사랑하던 사람이 아닐 때, 그 사람을 바라보던 케이트 블랜칫의 슬픈 눈빛이 지금도 떠오른다. 관심 있는 분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단편을 읽어 보시길. 각색이란 얼마나 위대한 예술인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https://fivecard.joins.com/302

 

벤자민 버튼, 21세기의 포레스트 검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런 영화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데이빗 핀처는 잘 알려진대로 '에일리언 3'에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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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이언맨 (존 파브로, 2008)

슈퍼맨은 단순하지만 명쾌한 데가 있어서 그나마 좋아했는데 뭘 해도 고민하는 배트맨은 너무 중2병스러워서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언맨의 자기애와 과시욕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슈퍼히어로의 등장. 그리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시대의 매혹적인 화법. 이 영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마블은 없었다.

https://fivecard.joins.com/271


 

아이언 맨, 제2의 트랜스포머가 될 듯

마블 코믹스의 세계가 참 깊고도 넓다는 것은 일찌기 알았지만, 아이언맨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의 제작 소식이 들릴 때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고편만큼은 대단한 수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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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2010)

솔직히 놀란의 영화는 거의 다 봤지만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인터스텔라>, <덩케르크>는 매우 마음에 들었던 반면 그 나머지 영화, 배트맨 3부작과 <메멘토>, <테넷> 등은 뭔가 좀 거슬렸다. 그런 사람으로서 <인셉션> 은 발상에서 그 발상을 영화로 표현한 방법까지, 진정 최고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그런데 과연 팽이는 멈춘 걸까.

https://fivecard.joins.com/823 

 

인셉션, 9가지 궁금증에 대한 심층해설

안 보면 왕따된다는 영화 '인셉션'. 본 사람도 또 보고 아이맥스로 봐야 진짜배기라고들 소문이 자자한 인셉션. 요즘 단연 장안의 화제입니다. 그런데 결말이 두가지네 어쩌네, 레오나르도 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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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ivecard.joins.com/820

 

인셉션, 누가 난해하다 했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에 대해 수없이 많은 평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말들 속에는 흔히 공통된 단어나 어구가 등장합니다. '난해' '관객의 혼동' '지적인 블록버스터' '매트릭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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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을린 사랑 (대니 빌뇌브, 2010)

뭐하는 감독의 무슨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이런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보는 동안 설마...했던 것이 설마...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나는 충격의 순간도. 이런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어느 세계, 어느 문명을 누리고 있어도 결국은 모두 비슷한 인간이라는 사실로 순식간에 회귀하곤 한다. <듄>이나 <컨택트>도, <시카리오>도 훌륭했지만 여전히 내게 빌뇌브의 최고작은 <그을린 사랑>이다. 

https://fivecard.joins.com/947 

 

그을린 사랑, 당신의 심장을 직격하는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보러 가서 가장 놀랐던 점은 극장이 거의 꽉 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지명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각계의 호평이 쏟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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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왜 여전히 살아있을까

고전극의 세계에 집착하는 영화 감독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셰익스피어 극의 리메이크를 시도했던 감독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죠. 특히 '햄릿'은 수십차례나 세계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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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2011)

그 많은 앨런의 영화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직도 물론 <애니 홀>을 꼽지 않을 수 없고, 10개를 꼽는대도 7,8개는 20세기의 영화들일 것 같은데, 그래도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매혹적인 상상은 늘 다시 들쳐보고 싶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고 싶은가. 무엇이 나에게 진짜 산다는 느낌을 줄 것인가. 스스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앨런의 위대한 헌사.

 

17. 베스트 오퍼 (주세페 토르나토레, 2013)

<시네마 천국>의 토르나토레를 사랑했고, 그 뒤로도 그는 생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 놀라운 작품들을 잇달아 만들어냈다. <스타메이커>, <언노운 우먼>을 지나 <베스트 오퍼>와 <피아니스트의 전설>중 어느 것을 꼽을까 고심하다가 선정한 것이 <피아니스트의 전설>이었는데, 어느 분의 지적으로 확인해 보니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1998년작. (아뿔싸)

가슴을 쓸어내리며 <베스트 오퍼>로 정정한다. 영화 <베스트 오퍼>는 '자만심'에 대한 경이로운 우화. 세상을 우습게 보는 남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고, 그 외로움 때문에 의외의 곳에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개인적으로 토르나토레와 파라디를 21세기 초반,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부르고 싶다. (사실 토르나토레의 작품 중에 엔니오 모리코네에 헌정하는 다큐멘터리 <엔니오(2021)>를 뽑을까도 잠시 고민. 이렇게 눈물이 펑펑 흘렀던 영화도 드물었던 것 같다.)

 


1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뭔가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어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고레에다(꼭 좋은 뜻만은 아님). 아무래도 그냥 마구잡이로 혼자 분류할 때, '가족과 아이들'에 천착했던 고레에다 1기의 정점에 있는 영화는 이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키웠는데 내 아이가 아니라니...에서 오는 직관적인 느낌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잊을 수 없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

 


19.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아스가르 파라디, 2013)

고구마 서사를 싫어하기 때문에 <어떤 영웅>은 좀 실망이었지만, 그래도 파라디에 대한 기대가 여전한 것은 <씨민과 나데르의 이혼>과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가 워낙 좋았기 때문. 두 작품 중 어느 것을 고르는가는 그야말로 미세한 취향 차이일 수 있는데(두 편 다 고르자니 25편은 너무 적었다), 전자는 누가 봐도 '확실한 이야기'가 있었던 반면, 후자는 '무슨 이야기인지 분명치 않은' 이야기인데도 그걸로 한 편의 영화에서 눈을 뗄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가 위대한 스토리텔러 파라디의 재능을 더 잘 발휘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리스트에 넣었다.


20. 킹스맨 (매튜 본, 2014)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 역을 맡은 007 시리즈가 흥행 기록을 돌파할 때 한켠에서 분노로 몸을 떨던 사람들이 있었다. '저게 어떻게 제임스 본드냐!' 매튜 본의 <킹스맨>이 사랑받은 이유 중에는, 그렇게 '진정한 본드'를 빼앗긴 사람들이 이쪽으로 집결한 것도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지. 비록 그 기세가 2편 3편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킹스맨>의 발랄한 엔딩만큼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을 때마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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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왕년의 007 팬들을 위한 최상의 선물

어느 정부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 비밀 정보 기관 [킹스맨]의 멤버 갤러해드(본명은 해리, 콜린 퍼스)는 임무 수행중 죽은 동료의 아들에게 메달을 줍니다. 세월이 흘러 17년 뒤, 그 소년 엑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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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매드맥스: 퓨리로드 (조지 밀러, 2015)

이 영화, 네번째 매드맥스 시리즈 영화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감독의 나이를 보고 전율했다. 70세 노장의 감각이 이렇게 힙할 수가 있다니. 34세때인 1979년 <매드맥스>를 내놨던 조지 밀러는 결국 그 세계관을 갈고 닦아 30여년 뒤에도 통할 수 있게 부활시키는 놀라운 저력을 과시했다. 그 시절 칙칙한 불법 복제 비디오로 <매드맥스>와 <매드맥스2>를 보던 사람들 중 누가 2015년에도 젊은이들이 빨간 내복에 열광할 줄 알았을까. 밀러는 아직도 6번째 매드맥스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부디 가시기 전에 10편을 채워주시길. 


22. 쓰리 빌보드 (마틴 맥도나, 2017)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마틴 맥도나의 영화라고는 <킬러들의 도시> 하나밖에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의 영화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작은 도시에 세워진 세 개의 간판. 그리고 법 집행을 믿을 수 없는 엄마의 폭주. 정의와 질서라는, 인류가 문명을 건설한 이후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어 있는 두 가지 요소가 제대로 충돌하도록 폭탄을 던지는 영화. 결국 영화란 우리의 인생에 뚝 떨어진 예기치 못한 사건과 거기에 대한 캐릭터들의 반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관점에서, 그 정의에 가장 충실한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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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가 작가 지망생들에게 미칠 영향은?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영화가 끝나 갈 무렵, 이 영화, '쓰리 빌보드' 의 악영향에 대해 잠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꽤 적지 않은 수의 시나리오 작가 혹은 시나리오 작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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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정말로 우연히, 부산영화제 참관차 갔다가 사전정보 0인 상태로 보게 된 영화. 그런데 여운이 일주일은 갔다. 어린이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 중 이보다 강렬한 작품이 있었을까. 대체 무엇을 해 줘야 할지 모르는,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은 분명한 철없는 엄마와 그나마 철이 좀 든 어린이의 기막힌 드라마. 물론 베이커에게 아카데미 작품/감독/극본상을 안겨준 작품은 <아노라>였지만, 가장 오래 기억될 영화는 역시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아닐지. 

 

 


24.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2019)

신카이 마코토의 소위 '재난 3부작' 중 많은 사람들이 <너의 이름은>을 최고로 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베스트를 꼽자면 <날씨의 아이>. 끝없이 비가 내리는 도쿄의 어느 여름. 비가 그치고 해가 떠오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가 있다. 그런데 이 홍수는 우연이 아니고, 세계의 지형을 바꿀 노아의 대홍수였고, 그런 결과를 막는 것도 결국 그 소녀에게 달린 일이었다. 여기서 신카이는 묻는다. 자, 이 소녀 하나를 희생시켜서 그 비를 막을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전체주의 국가' 일본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다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동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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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일본인도 달라졌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나날. 비슷한 또래의 한 믿을만한 분이 극찬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포스터 속 파란 하늘이 끌려서 를 선택했다. 어쩌면 며칠 전 한강을 건너다 본,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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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씨너스 (라이언 쿠글러, 2025)

대체 이게 뭐지. 호러 뮤지컬? <리틀 샵 오브 호러>나 <이발사 토드>의 연장선인가? 아니면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리메이크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였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고는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드는 뚝심이 어마어마했다. 마이클  B 조던의 1인 2역 열연도, 영화 전편에 넘쳐 흐르는 순혈 블루스의 힘도 강력한 작품. 이 모든 것을 조율해 낸 라이언 쿠글러의 다음 작품이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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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너스, 하룻밤의 혈투로 압축한 블루스의 역사

0. 스포일러는 없지만 일단 영화를 보시고 읽어보시길 권장. 근 몇년 사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른 보라고,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보라고 권한 영화가 없었다. 후회 안 하실 거라고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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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고 추리다 영 아쉬워서 두편은 깍두기로 추가한다.


와일드 테일즈 (다미안 시프론, 2014)

인간의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6편의 단편 모음 영화. 아르헨티나, 그 중에서도 부에노스 아일레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야기 하나 하나의 밀도가 24시간 우려낸 설렁탕 이상이다. 천재의 다음 작품들을 기대하게 하는 힘이 압권.


스틸 라이프/삼협호인 (가장가, 2006)

사람들은 왜 모이고, 무엇 때문에 흩어지는가. 왜 제목은 스틸 라이프일까. 지아 장커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인물 하나 하나는 왠지 거대한 산수화 속에 박혀 있는 동그라미 머리 하나 하나처럼 느껴지곤 한다. 장강은 유유자적 흘러가고, 청산도 그대로 그 모습인데, 거기 잠시 머물다 가는 인간들의 사연이 제아무리 기구하다 하나, 어차피 곧 흘러갈 일들 아니겠는가. 이런 느낌 때문에 쉽게 '사회성 강한 영화'로 단정할 수 없게 하는 대작. 

 

이렇게 2001-2025까지 25편을 꼽아 봤다. (다 뽑은 지금도 역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뽑았어야 하나 생각중이다.)

여러분의 25편은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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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즈가 21세기의 첫 쿼터를 맞이해 영화 100편을 꼽았다. 

물론 내 취향은 아니다. 나같으면 절대 꼽지 않았을 영화들이 대량으로 끼어 있다. 그냥 '21세기의 첫 100대 예술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리스트였다. 예술영화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그냥 직접 꼽아 봤다. 2025년이다 보니 그냥 숫자를 맞춰 25편을 뽑았다. 꼽아 놓고 보니 개중엔 좀 뭔가 있어 보이는 영화도 있고, 심각한 사람들이 보면 피식 웃을 영화들도 있는 것 같다. 그냥 취향의 기억을 위해 정리해 본다. 모든 작품의 기준은 논리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욕하실 분은 취향을 욕하시길.

생각해보니 인생 참 짧다. 과연 20세기의 두번째 쿼터에서 내가 이런 리스트를 만들 수 있을까. 약간 회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20세기의 마지막 쿼터에 대한 25편의 영화도 한번 골라볼까 싶다. 그래도 리스트 두개는 남겨 봐야지.

21세기가 2000년에 시작하는지, 2001년에 시작하는지는 좀 애매한 것 같은데, 그래도 꽂아넣고 싶은 영화가 2000년 작품이라 여기에 넣었다. 그럼 시작한다. 순서는 연도순. 

화양연화 (왕가위, 2000)을 꼽으려고 했는데 2000년은 21세기가 아니란다. ㅠㅠ

그래서 다시.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 2001)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피터 잭슨, 2001)
시티 오브 갓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2)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무간도2 (유위강/맥조휘, 2003)

 

킬빌 1,2 (퀜틴 타란티노, 2003)
올드보이 (박찬욱, 2003)
쿵푸허슬 (주성치, 2004)
타인의 삶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렛미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타짜 (최동훈, 2008)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데이빗 핀처, 2008)
아이언맨 (존 파브로, 2008)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2010)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2010)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2011)
베스트 오퍼 (주세페 토르나토레, 2013)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3)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아쉬가르 파라디, 2013)
킹스맨 (매튜 본, 2014)

매드맥스: 퓨리로드 (조지 밀러, 2015)
쓰리 빌보드 (마틴 맥도나, 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 2017)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2019)
씨너스 (라이언 쿠글러, 2025)

 

줄이고 줄이다 영 아쉬워서 두편은 깍두기로 추가한다.


와일드 테일즈 (다미안 시프론, 2014)
스틸 라이프/삼협호인 (가장가, 2006)

이상 긴 리스트 끝. 

제목만 열거하고 끝내려니 뭐라도 한마디씩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순서는 연도순. 순위 아님.

화양연화 (왕가위, 2000)

정말 인생 최고의 순간은 언제 찾아오는 것일까. 내가 지금 최고의 순간에 있다는 것을 그 순간에는 알 수 있을까. 먼 훗날, 지나고 난 뒤 석상의 귀에 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면, 인생은 너무나 슬픈 것이 아닐까. '유려하다'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슬로모션,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만옥의 치파오,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몇몇 사람들과 반대로 과도하다 싶은 1인 샷들. 내용을 떠나 '가장 아름다운 영화'로 오래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21세기는 2001년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어쩔수 없이 <화양연화>는 제외.

1. 물랑루즈 (바즈 루어만, 2001)

바즈 루어만이 그동안의 영화들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쏟아부은, 그의 영화 세계 종합편. 인도 영화인들은 '인도 사람이 만들지는 않았지만 발리우드 영화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것은 마치 '한국인이 제작하지 않은 K-POP'을 연상시킨다)'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모든 장면들이 현란하고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은 탱고와 어우러진 '록산' 신. 데이비드 셔젤이 <바빌론>으로 해보려 했던 것들을 이 영화는 모두 뛰어넘고 있다.


2.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피터 잭슨, 2001)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피터 잭슨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시기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할 듯. 물론 그가 아니었어도 이렇게 잘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스스로 이야기 속에 폭 빠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그려낸 성과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명배우들이 열연했지만, 이 영화 시리즈에서 딱 한 장면만 뽑으라면 2편에 나오는 '로한의 봉화' 장면. 지금도 빅 스크린에서 이 장면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끼쳤던 순간이 생생하다.


3. 시티 오브 갓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2)

지옥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신이 있다면 이런 도시를 세상에 남겨두어도 좋은 것일까. <시티 오브 갓>을 보면서,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아름다움, 가치, 보람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 뒷날, 그가 <두 교황> 같은 영화도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 강렬하고 또 강렬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오고 20여년, 세상은 점점 더 '신의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4.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우리는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슬픔과 상실과 분노를 자아내는 힘을 악이라고 부른다. 악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떠난 적이 없었고, 우리는 그것을 기를 쓰고 단죄하려 하지만,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 세상의 일부이며, 우리는 잠시 그것을 잊으려 노력할 뿐이다. 그런 인간들의 이야기 중 <살인의 추억>은 단연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5. 무간도2 (유위강/맥조휘, 2003)

<대부>가 만들어 진 이후, 범죄집단과 그 가족을 그린 영화로 <대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은 없다. <무간도2>는 1편에서 만들어진 인물의 구도(경찰에 잠입한 마피아와 마피아 속에 잠입한 경찰) 위에 <대부>의 가족 플롯을 덮어 씌운 탁월한 작품. 1편도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2편은 그 구도에 그리스 비극의 장중한 운명을 얹은 걸작이다. 물론 그 뒤에는 3편이라는 어이없는 작품이 있어 이 영화를 트릴로지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역대 어떤 홍콩의 갱스터 무비보다 뛰어난 작품.


6. 킬빌 1,2 (퀜틴 타란티노, 2003)

자신이 보고 자란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타란티노의 핏빛 광시곡. 장난기조차도 엄숙하게 연출하는 이 작품을 과연 누가 비웃을 수 있을까. 최고다.

https://fivecard.joins.com/425

 

킬빌, 쿵푸의 스타 데이비드 캐러딘을 조상하다

영원한 '쿵푸'의 스타 데이비드 캐러딘이 73세로 운명했습니다. 1936년생. 4일 방콕의 한 호텔에서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됐다는군요. 70대에 자살이라니...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로 왕년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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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올드보이 (박찬욱, 2003)

박찬욱은 항상 죄와 벌을 말한다. 그런데 그 벌은 누가 내리는 것인가. 신이? 신을 대신해서 인간이? 아니면 그냥 인간이 인간의 판단으로? 어떻게 결정하든, 그 벌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궁금한 것. 과연 오대수의 뒤편에서 흔들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8. 쿵푸허슬 (주성치, 2004)

주성치를 모르는 사람도 없었지만, 영화 좀 본다는 사람 중에 '주성치 영화를 보는 사람'을 비웃지 않는 이도 드물었다. 그러나 <소림축구>와 <쿵푸허슬> 이후에는 이 콧대높은 소위 영화 마니아들은 여래신장 맞은 두꺼비 꼴이 되었다. 순도 높은 주성치 스타일의 루저 주인공에서 깨알같은 전통 무협 장르 패러디까지 완벽한 선물같은 영화. 

 

 


9. 타인의 삶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모든 영화는 인간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것은, 별다른 원칙 없이 '그저 열심히' 하던 사람에게 변화의 계기가 찾아오는 순간. 동독 비밀경찰의 숨가뿐 기밀 업무 속에서, 하나의 '인간'이 눈을 뜨고,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폰 도너스마르크는 왜 좀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보시고 꼭 <작가미상>을 보실 것.

 

10. 렛 미 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뱀파이어는 주인이 초대하지 않으면 그 집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규칙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기에 한국에서도 호랑이는 창귀의 부름에 대답하는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었으니, 이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 사람의 피를 빨아야 살 수 있는 괴물도 청순하고 여릴 수 있다는 뜻밖의 경험. 순백의 눈 위에 그려진 순수의 그림. 아름다운 영화.

클로이 모리츠가 나온 영어판 리메이크(2010)도 좋았는데 왠지 <렛 미 인>을 보면 줄리앙 뒤비비에의 고전 영화 <나의 청춘 마리안느>가 떠오른다. 사춘기, 그리고 영원한 사랑, 이 두개의 키워드 때문에. 

 

 

11. 타짜 (최동훈, 2008)

허영만의 원작은 걸작이 분명했는데, 최동훈이 아니었다면 그 숨결을 이렇게 살려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소재는 도박이지만 분명 이것은 의리와 불의, 성장과 복수의 무협 극화. 검결을 외던 검객들이 그저 화툿장을 손에 쥐었을 뿐. 불행히도 속편들은 <타짜>의 맥을 제대로 잇지는 못했다. 이제 곧 20주년이 되면 시리즈 리부팅은 어떨지.

https://fivecard.joins.com/156

 

'타짜', 왜 자꾸 '친구'가 어른거릴까

화면을 보면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대체 왜 드라마 '타짜'의 배경이 부산일까, 왜 이 드라마에는 '우정'이라는 말이 이렇게 자주 나올까. 그리고 왜 고니의 패거리는 네 명이고, 원작에 없는 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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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뒷부분은 여기로 이어집니다.

https://fivecard.joins.com/1564

 

21세기 첫 25년의 영화 25편 (2)

앞의 글 안 읽고 오신 분들을 위해 리스트만 앞에다 붙인다.기준은 작품성 예술성 모르겠고, 그냥 내가 가장 좋아한, 2001-2025 사이의 영화 25편. 배치는 제작 연도순. 순위 아님. 물랑루즈 (바즈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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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야쿠자의 아들 기쿠오(요시자와 료)는 부모를 잃고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의 제자가 되어, 한지로의 아들 슌스케(요코야마 류세이)와 함께 자라고, 함께 수련한다. 이들은 한지로를 계승해, 가부키의 온나가타(여성 역할을 전문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로 성장한다.

두 사람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지로는 기쿠오의 재능이 아들 슌스케를 훨씬 능가한다는 것을 깨닫고, 기쿠오는 그 재능을 한껏 펼치고 싶은 야심을 품고, 슌스케는 아버지의 선택과 친구의 재능 앞에 좌절한다. ...그렇게 50년이 흐른다.

이상일 감독의 <국보>. 화려하고 재미있다. 전혀 난해하지 않고, 선명하다. 3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얼른들 극장에서 보시길. 극중 가부키 장면의 화려함이 압도적이고, 묘하게 닮은 두 주인공의 열연에 절로 빠져든다. 정리 끝. 



1. 영화에도 등장하듯 일본에는 '인간 국보'라는 개념이 있다. 공식 용어로는 '중요 무형문화재 보지자', 대략 어떤 것인지 느낌이 온다. 아마 한국의 인간문화재 제도는 이 제도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가부키든, 교겐이든, 전통춤이든 어떤 한 분야의 인간 국보가 되면 그 분야에서는 절대적인 해석 권력이 되며, 누구도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제목이 <국보>인 것은, 바로 이 제도를 전제로 한 것이다.



2. <국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당연히 '혈통'과 '재능'이다. 가부키는 가문이 지배하는 사회고, 그 가문의 이름이 곧 배우의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은 대를 건너가면서도 4대 5대 6대로 이어져 다른 인물이지만 선대 같은 인물을 그대로 계승한다. 계승의 근거는 혈통이고, 스타 가문의 후계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스타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대가 끊어지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통이 아닌 사람은 가문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명문가 출신의 후계자는 주인공을 맡고, 조연 가문의 후계자는 조연을 맡는다. 가부키 명문가의 자손들은 사회적으로도 귀족 대우가 기본이고, 가부키 외의 연예계 활동, 이를테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할때도 남다른 대접을 받는다. 

사실 재능이냐 혈통이냐를 따지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엘리트 교육을 받기때문에 실력으로 꼬투리를 잡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인 마츠 다카코가 유명 가부키 패밀리의 딸이고, 신인일 때부터 "(가문의 힘 덕분에)마츠 다카코는 수영복을 입지 않아도 뜰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다.


3.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를 보러 가기 전, 내가 가부키에 대해 아는 게 고작 이런 지엽적인 것들 뿐이라는 깨닫고 뭔가 예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넷플릭스를 뒤져 보니 <이쿠타 토마의 도전>이라는 게 있다. 유명 배우 이쿠타 토마가 글자 그대로 친구의 꾐(?)에 빠져 가부키 연기에 도전하는 내용의 소프트 다큐다. 

일드 많이 보신 분이면 눈에 익었을 배우 오노에 마츠야(2대)가 바로 그 친구인데, 이 배우가 가부키 가문의 후계자라는 것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들이 하는 가부키는 정통 가부키라기보단 대중화를 지향하는 신 가부키라 로보트도 나오고, 개그도 나온다. (신 가부키라는 것은 말하자면 창작 가부키를 가리키는데, 고전 가부키 중에는 한국의 판소리 다섯마당처럼 18편이 오래 전부터 전통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서 '노래방 18번'이 나왔다.)

 

아무튼 <이쿠마 토마의 도전>을 보면 가부키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해를 얻을수 있고, 그렇게 해서 이들이 공연하는 가부키 <아카도 스즈노스케>가 전편이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다. <국보> 관람에 상당히 도움이 됐다.

<아카도 스즈노스케>에서 온나가타 역을 맡은 나카무라 간교쿠는 오종종한 체구의 미인형(?)으로, <국보>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비련의 여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한국식 로코 주인공 같은 발랄한 온나가타의 전형을 보여준다. 온나가타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4.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야기했듯 예술 세계에서의 재능과 노력의 대립이라면 <아마데우스>가 있고, 극중 세계와 바깥 세계, 여기에 여성 역할의 남자 연기자를 등장시켜 성 정체성의 문제를 덧붙인 걸작으로는 <패왕별희>가 있다. 그렇다면 <국보>는 여기에 어떤 이야기를 보태야 할까. 

이상일 감독은 온나가타, 남자들만의 세계인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하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두 남자의 50년에 걸친 우정과 경쟁을 철저하게 '남자의 눈'으로 그렸다. 실제로 온나가타라는 역할의 역사를 남색(!)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울테지만, 감독은 그렇게 뻔한 길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두 주인공은 극중에서 여자 역을 하고 여성성을 표현하는 데 몰두할 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되고 있는 것은 넘치는 확고한 남성성이다.

물론, 그들 각각의 내면에 있는 여성성은 당연히 발현되는데, 끝까지 이 두 주인공은 서로를 '동성의 친구'로서 인식한다. 한쪽이 어느 한쪽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이 다음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가 됩니다. 영화를 보고 오실 분은 여기서 정지.]

 

5. 여성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현실과 무대를 구별하지 못하는 불량배들의 폭력에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은 여장남성과 관련 소재를 다룬 작품들의 클리셰라 하겠는데(<헤드윅>이나 <프리실라>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보>에도 이런 장면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기서 잠깐 '만약 감독이 이 장면을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구성했다면 <국보>는 어떤 작품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부분이 영화의 성격을 결정한다. 사실 <국보>는 그 방향으로 흘러가기에는 너무나 남성 중심적인 영화다. 

<국보>의 여성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역할은 하루에라는 역인데,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하루에는 처음에는 기쿠오에게 인생을 바친 헌신과 후원을 약속하고, 나중에는 슌스케의 아내가 되어 후계자를 낳아 주는 역할이다. 그러나 하루에게 왜 이렇게 변신을 하고, 그 변신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는지는 영화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국보>에서 이상일 감독의 연출 방식은 '...이 밖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은 얘기는 다 할 시간이 없어요' 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하루에의 존재는 스토리의 구멍일까.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상일 감독은 하루에를 '가부키 세계' 혹은 '예술 세계의 시스템'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모든 예술은 탁월한 재능을 사랑하지만, 결국은 예술계도 하나의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에는 처음에는 기쿠오를 추앙하지만 결국은 슌스케에게 봉사한다. 이런 논리를 하루에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감독의 의도 아니었을까.

사실 약간 억지인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인물이다. 감독이 하루에라는 캐릭터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었다면, 최소한 슌스케의 아내가 된 뒤에 기쿠오에게 뭐라도 이해를 구하는 행동이 있어야 하겠지만, <국보>의 하루에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기능적인 캐릭터로 그냥 활용되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6. 이 영화에는 묘하게 등장인물들이 분장실 거울을 통해 다른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거울 속에 있는 나(남성)는 나인가, 아니면 극중 인물인 여성인가, 아니면 극중 여성을 연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존재하는 내 안의 여성인가. <국보> 속의 '여성'이란 이런 존재다. 이 가상의 여성이 강조되기 위해, 실제 여성 캐릭터들은 소품이나 별 치이 없게 다뤄지는 셈이다.

이런 내용을 통해 영화 <국보>는 철저하게 남자들의 이야기와 남자들의 세계라는 가부키 월드의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생각. 물론 더 나아가면 일본이라는 사회의.... (뭐 이건 그냥 넘어가자)



7.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호연. 키쿠오와 슌스케의 소년 시절 역할을 한 두 배우, 성인 연기를 한 두 배우 모두 감동적인 열연을 펼친다. 1년 넘게 가부키를 수련해야 했다는데, 화면을 보면 그 성과가 놀랍다(혹시 가부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영 미흡했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 관객으로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고 이색적인 가부키 무대의 연출 또한 대단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키쿠오와 슌스케의 관게를 LGBT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당연히 없지 않겠으나, 누차 말했듯 이 영화는 남성성의 강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끌릴 수도 있겠으나, 그 끌림은 근대 이후 설정된 우정(그리스 시대의 우정이 아니다)의 선을 넘어서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선이 비슷한 두 배우를 캐스팅 한 것은 결국 또 하나의 거울, 즉 내가 너를 보듯 너는 나를 보면서, 나의 이런 인생을 너만은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조한다. 

 

8. 엔딩. 이상일 감독은 죽 이어진 스타일대로, 구체적인 해석이나 설명 없이 영화를 맺는다. 과연 기쿠오는 무엇을 얻었나. 인간 국보가 된 것이 그가 평생 추구한 것의 성취인가. 평범한 인간들이 추구하는 다른 모든 요소들을 포기하고 도달한 것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가. 답은 어디에도 없다.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문득 철저한 자기 부정으로 끝을 맺은 이문열의 <금시조>가 떠오른다. 

9. 아무래도 가부키라는 장르를 지금껏 한번도 접근하려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받아 온 항일교육, 즉 왜색을 멀리하고 일본 문화의 요소를 긍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강력한 정신 교육의 의 지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국보>가 호평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제 그런 구세대의 잔재에서 어느 정도 대한민국이 자유로워졌다는 뜻. 혹은 케이팝과 케이컬처라는 이름의 문화적 자부심이 '가부키 정도는 뭐라도 괜찮아'라는 안심을 준 것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런 요소들 외에도 가부키라는 장르에 다가가기 쉽지 않았던 것은 그 '형식 과잉'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하지만 영화 <국보>는 그런 형식 과잉의 예술에 대한 거부감을 어느 정도 씻어주고 있다. 뭣보다 이 정도의 치열함이 있다면, 그게 뭐든 그 결과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다음번 일본 방문 때에는 한 막이라도 가부키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봐야 할 것 같다. 그 전에 만화 <가부쿠몬>부터 구해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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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고 쓴 글은 맞지만 딱히 리뷰라고 하기는 애매한 글입니다. 극장판 <무한성편>은 일단 비주얼 면에서는 황홀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성의 렌더링이 감동을 자아내고, 격투신의 박진감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물론, 그러나, 본인이 애니보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귀멸의 칼날>은 만화책 대신 애니로 거의 다 봤으면서...), 특히나 무한성편에서 모든 캐릭터들은 너무나 말이 많습니다. 장광설도 이런 장광설이 없습니다. 싸우는 시간보다 떠드는 시간이 훨씬 더 길고, 그게 제게는 심하게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저같은 이런 의견보다는, 비주얼 당연히 멋지고, 내용도 가슴저리게 감동적이었다는 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무튼 쓴 글은, 무한성편을 보다가 든 궁금증입니다. 대체 왜 어른들은 어디 가고, 아이들만 혈귀와 싸우고 있는거지?

시작.

무한성에 앞서 <귀멸의 칼날>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열심히 보고 있다(미친돗이 열광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뜻. 대단한 팬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 보다 보니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왜 귀멸대의 검사들은 이렇게 다 어릴까. 인류의 미래가 걸린 혈귀와의 전쟁을, 어른들은 왜 방관하고 있을까. 무한성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나이 많은 주 교메이가 27세. 탄지로는 16세. 나머지 주요 등장인물들은 10대 중반-20대 초반. 최연소 주인 토키토는 13세... 너무 어리다.



가장 먼저 나올 답은 '<귀멸의 칼날>의 타겟이 10대라서'인데 이건 너무 당연한 애기고, 그럼 이것을 설정이 어떻게 합리화하는가가 궁금했다. 

첫번째 이유는 귀살대와 주가 얼마나 극한직업인가에서 기인한다. 즉 귀살대에서 혈귀들과 싸우며 20 중반을 넘긴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그 전에 대부분 싸우다 죽기 때문이다. 27세면 놀라운 나이. 귀살대가 되어 싸우면서 그 나이를 넘겨 심지어 늙어 죽을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행운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혈귀와의 전쟁이 중요한 일이라면, 혈귀가 이렇게 날뛰는데 왜 조정은 적극적으로 토벌하지 않고, 혈귀와의 투쟁은 일개 가문의 일로 한정되어 있을까. 혈귀의 수장 무잔이 여러 경로를 이용해 조정까지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잔이 조정을 움직여 귀살대를 토벌해버리는게 더 손쉬울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세계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약간 비약이 있겠지만, 가능한 답은.... 이 <귀멸의 칼날>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혈귀를 배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혈귀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존재이므로, 당연히 희생자는 계속 나오지만, 혈귀의 덕을 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이 '혈귀'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죽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 

그런 것이 바로 어른의 세계다. (다만 혈귀의 혜택이 뭔지는 잘 보이지 않는데, 그냥 넘어가자.)



귀살대는 그런 세계 안에서 인간의 마음을 지키려 싸우지만, 성인이 된 귀살대가 거의 없는 것은, 성인이 되기 전에 모두 전투에서 사망한다기보다는 살아남더라도 혈귀가 되거나, 혈귀의 존재를 인정해버리는(혹은 혈귀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인간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혈귀의 상현 중에는 귀살대 출신이 몇명 있고, 그중 아카자는 끝까지 물의 주 키유에게 '혈귀가 되라'고 권유하고 무잔도 탄지로를 혈귀로 만들려 한다. 사실 상현까지 성공한 것이 두명일 뿐, 귀살대에서 넘어간 인원은 실제론 훨씬 더 많은게 아닐까.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귀멸의 칼날>은 인간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너무나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라고 모두 불의에 맞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아닌데,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들은 어느새 이들을 가로막는 존재(즉 혈귀)가 되어 있거나, 혈귀와 함께 살아가기를 택한다. 예를 들어 빵 공장에서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는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지만, 죽을 사람은 어차피 죽는다. 이건 자연재해나 마찬가지다, 라고 외면하며 살아간다. 이런 것이 혈귀 식의 논리다.

혈귀가 수십만 수백만이 아니니, 혈귀로 인한 희생자는 80억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일 뿐. 그 정도를 희생시키고,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내 삶을 유지하는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혈귀와 싸우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잔을 해치우는 과정에서 주인공 탄지로를 비롯한 귀살대 대부분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는 것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그들은 이미 정상적인 '어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혈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말로 이런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귀멸의 칼날>은 정말 끔찍한 작품이 아닐수 없다. 비록 무잔을 해치우는걸로 끝났지만, 끝나지 않는 이야기... 무잔은 사라져도 다른 무잔이 어느새 만들어져 그 자리를 차지할테고. 아무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석은 관객의 권리)

제일 불쌍한 토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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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스포일러는 없지만 일단 영화를 보시고 읽어보시길 권장. 근 몇년 사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른 보라고,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보라고 권한 영화가 없었다. 후회 안 하실 거라고 믿는다. 이상.

 

1. 블루스라는 단어가 나에게 의미를 준 시점을 기억한다. 1993년 여름, 취업이 결정되지 않은 애매한 시기에 갑자기 기회가 생겨 난생처음으로 미국 유람을 가게 되었다. 첫 도착지는 시카고. 당시 노스웨스턴대 유학중이던 친구 집에 기숙하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시카고에 왔으면 가봐야 한다고 끌고 간 곳이 블루스 바였다. 

허름한 창고같은 건물, 중학교때 이후로 본적이 없는 나무 책걸상 같은 테이블과 의자. 파고다극장만도 못한 무대. 그런데 온 손님 중에는 뭔가 상류사회 냄새가 나는 사람들도 있어 좀 의외였다.  

라이브 시간이 되자 지독하게 깡마른 흑인 노인 한 사람이 담배를 물고 무대로 걸어나와 아주 천천히 기타를 어깨에 걸치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저러다 쓰러지는거 아닌가 싶었다. 이마 가득한 주름 사이에는 담배도 끼울수 있을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불붙은 담배를 마이크 옆에 끼운 노인은 별 연습도 없이 바로 기타줄을 뚱겼다. 



그런데 그 첫 음, 지이이잉 하는 기타 소리를 듣는 순간, 아 이건 대체 뭐지! 하는 느낌이 머리를 띵 때렸다. 그때까지 태어나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곧이어 노인은 30년 동안 하루 5갑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절대 낼수 없을듯한 가래 끓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당연히 가사는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지만, 지금 그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한방에 알수 있었다. '삶에 대한 배신감', 바로 그거였다. 

젊어선 나도 한때 우쭐했고, 세상이 우습게 보였고, 연애도 많이 했어. 그런데 지금 내 꼴을 보면 알겠지? 인생이 그래. 기대? 기대하지 마. 도전? 그러다 내 꼴 나. 사랑? 야, 이게 정말 웃긴 건데 말이지, 내가 왕년에, 그런데 다 끝났어. 돌이킬수 없어. 뭐가 이래. 에이 씨발. 생각할수록 이건... 

표정, 목소리, 기타 소리, 완벽하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흡수할수 있었다. 가사 따위 아무 필요 없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날 그가 불렀던 노래 가사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해라면 완벽한 오해였을 것이다. 뒤이어 드러머도 나오고, 사람들은 일어서서 춤을 췄다. 금세 쓰러질것 같던 노인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맥주 한병으로 버텨서 세번의 라이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친구가 아주 잘난척하는 웃음과 함께 말했다.

 "이게 블루스라는거야." 

그 뒤로 집에 돌아와서 블루스에 심취해 자칭 국내 최고의 블루스 마니아가 되었냐....는 건 절대 아니었다. 블루스를 좋아하게 되었고, BB King이며 Buddy Guy며 들어 봤지만, 음반으로 듣는 블루스에선 그날의 처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날의 쨍한 충격은 추억의 더깨가 얹혀지며 더 대단했던 것으로 포장됐을테니, 그 체험의 재현은 불가능했다.

운이 좋아서 나중에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를 가 볼 기회도 있었으나, 지독하게 상업화된 라이브 바들을 봤을 뿐이다.

그런데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너스>를 보고, 그날 밤의 그 감흥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2. 영화 <씨너스>는 미시시피주 클락스데일이라는 실제 존재하는 지역을 무대로 하고 있다. 거대한 미시시피강의 하구 삼각주를 가리키는 '델타' 지역이야말로 블루스의 고향이다. 

사실 이 클락스데일과 멤피스를 연결하는 선이 바로 블루스가 태어난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도로의 이름이 바로 61번 고속도로고, 밥 딜런의 앨범 제목인 <Highway 61 revisited>에 나오는 그 61번 도로다. 일명 <블루스 하이웨이>. 이 도로로 나가기 전, 클락스데일 시내에는 일명 <블루스 크로스로드>라는 사거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에 가 보면 'Home of the Blues'라는 대문짝만한 아치가 걸려 있다. 하지만 이 홈은 블루스를 세상에 알린 홈이고, 진짜 고향은 클락스데일이라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니까 블루스는 클락스데일에서 태어났고, 멤피스에서 성인이 되었고, 시카고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바로 영화 <씨너스>의 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 제목을 저렇게 단 거다.)

델타 블루스의 완성자, 현대 블루스의 조상으로 불리는 기타리스트 로버트 존슨은 이 사거리에서 악마를 만났고, 악마에게 기타를 배워 불세출의 기량을 과시했다는 전설적인 존재다. 그 뒤로 이 사거리에 서 있으면 악마를 만날 수 있고,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생겼고, 랄프 마치오 주연 영화 <크로스로드(1986)>는 이 전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 <크로스로드(1986)>. 당대의 하이틴 스타였던 랄프 마치오가 스티브 바이와 기타 배틀을 펼치는 클라이막스가 압권.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의 록 마니아들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기타 배틀 신에서 악 소리를 냈다. 당대의 천재 속주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가 '악마에게 혼을 판 기타리스트'로 나오기 때문에. 그 장면은 지금 봐도 재미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안 보신 분들은 한번씩 보시기를 권한다. 

왼쪽이 랄프 마치오(30여년 전 한때 <베스트 키드>, 혹은 <가라테 키드>라는 영화로 세계적인 하이틴 스타 반열에 오른 적이 있다), 오른쪽이 스티브 바이.

로버트 존슨

어쨌든 '전설'에 따르면 1911년생인 로버트 존슨이 어디선가 기타를 배워 클락스데일 무대에 신화처럼 등장한 것이 1932년, 그의 나이 21세때다. 그렇게 당대 최고로 인정받고 급사한 것이 1938년. 27세에 사망했으니 블루스의 신으로 군림한 기간은 대략 7,8년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 <씨너스>의 배경도 1932년 클락스데일이라는 것. 이쯤 되면 영화 <크로스로드>와 <씨너스>는 엄청나게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3. 영화에 대해 간단히 소개. 

1932년 미시시피주 클락스데일. 시카고의 알 카포네 조직 휘하에서 목돈을 모은 1차대전 참전 용사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이 쌍둥이 형제 양쪽을 1인2역으로 연기한다)이 돌아와 블루스 클럽을 연다. 백인 농장주 소유인 제재소 건물을 사서 블루스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이들 형제는 어리지만 발군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사촌 새미(마일스 케이톤), 관록있는 피아노-하모니카 연주자 델타 슬림(델로이 린도), 내장과 운영을 맡을 야오(보 초우) 부부 등 죽마고우와 일가친척을 모두 불러 모은다.

그렇게 해서 오픈한 클럽은 대성황을 맞고, 클럽 무대에 데뷔한 새미는 뛰어난 실력으로 갈채를 받고, 공식적으로는 금주법 시대지만 다들 흥청망청 부어라 마셔라 취해서 춤을 추는 흑인들만의 신명나는 잔치가 진행된다. 하지만 저 멀리 어둠속에서, 흡혈귀 무리들이 서서히 클럽을 노리고 다가온다. 그리고, 해가 뜰 때까지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사투가 시작된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타란티노의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오버랩된다.)

많은 출처에서 이 영화를 '이색적인 호러'라고 소개했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혈투가 나오니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이건 참 생뚱맞은 홍보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뱀파이어가 나온다고 우리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호러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뱀파이어 군단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백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 물리면 흑인도 황인도 뱀파이어가 되기는 하지만, 뱀파이어 무리는 절대 다수가 백인이다. 영화 속 흑인들이 블루스 기반의 음악으로 흥을 올리는 반면, 뱀파이어들은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며 덩실덩실 포크댄스 같은 춤을 춘다. 이게 대체 뭘까. 조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구도다. 

많은 흑인들은 백인들이 흑인들의 것을 강제로 빼앗았다고 말한다. 일단 자유를 빼앗고, 노동력을 착취했고, 나중에는 그들의 영혼(이걸 soul이라고 하면 중의법이 된다)까지도 빼앗았다. 수많은 백인 뮤지션들이 흑인 음악의 정수를 가져가 자신들의 음악에 녹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영향을 받거나 새로운 장르로 탈바꿈시키는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 하겠지만, 아예 훔쳐 쓰는 경우도 흔했다. 

흑인 음악이 주류 음악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아니, 자리잡기 시작할 무렵까지, 그러니까 흑인이 듣는 음악과 백인이 듣는 음악이 따로 있던 시절에 흑인들의 멜로디를 그냥 가쳐 가서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예를 들면 척 베리 같은 유명 뮤지션도 히트곡 <Sweet Little 16> 같은 히트곡을 그냥 도용당하기도 했다(이 곡이 바로 비치 보이스의 대표 히트곡 <Surfin USA>다). 이 곡은 발매 당시 그냥 브라이언 윌슨 작곡으로 표기됐다. 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이런 일들에 대해 아예 항변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척 베리는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Surfin USA>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https://youtu.be/ZLV4NGpoy_E?feature=shared

아무튼 이 영화의 분위기로 볼 때 백인 뱀파이어들은 '자유, 노동력에 이어 흑인들의 영혼까지' 빨아 먹는 존재들이라는 은유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렇다면 대체 왜 아일랜드 민요를? 이건.... 굳이 끼워맞추려면 아일랜드 출신들이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 이민들 가운데서도 주로 하층 노동계급으로 천대받는 계층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인종주의든 뭐든, 계급간의 갈등은 실제 접점이 가장 넓은 지점에서 가장 강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흑인들과 가장 접점이 많은 것도 백인들 중 최하위의 계급을 형성하고 있던 아일랜드계(혹은 폴란드 등 동구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흑인들에게 직접적인 박해자로 나섰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대략 그런 의미를 담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설정은 그렇다 치고, 도입부에서 영화는 어딘가 인디영화스러움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전반부에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카메라는 자주 초점을 빗나가고, 조명은 지나치게 어둡다. 특히 실내 장면에서 인물들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 21세기의 첨단 문명 시대에 기술이나 제작비가 부족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마도 이런 설정들은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1932년'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아닐까 한다. 전기도 제한적이고, 특히 실내 조명은 엉망이었을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이클 B 조던과 라이언 쿠글러.

4. 호러 영화라고 누가 주장하든 말든, 사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음악+역사극이다. 음악 신동 출신인 마일스 케이톤을 비롯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직접 연주와 노래를 실연했다고 한다. 영화는 블루스라는 장르가 목화 따고 돼지 비계에 닭 튀겨 먹던, 비록 노예 신분은 벗어났지만 생활 수준은 그리 나아진 것도 없었던 델타 지역 흑인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라는 것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된 노동과 낮은 보상, 딱히 꿈도 희망도 없는 삶 속에서 이들은 직설적인 가사와 음률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을 터. 이런 정서가 역사책 100권보다 묵직하게 가슴에 와 박힌다. 

플롯 면에서는 누가 봐도 타란티노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지만, 타란티노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한과 그 한풀이가 담긴 영화. 그런데 자세히 보면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멕시코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장악해가고 있는 미국 마약상들이 구 아즈텍의 성소를 함부로 모욕했다가 아즈텍 지박령들에게 혼나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정서적으로는 꽤 근접해 있다. 다만 <씨너스>에선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느끼기 힘든, 짙은 페이소스가 풍겨 나온다는 정도. 

씨너스는 결국 결말에서, '불멸이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뱀파이어 영화의 클리셰 같은 이 질문에 대한 쿠글러의 답은 "이미 (블루스 뮤지션으로서) 나는 불멸의 존재다" 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블루스고, 블루스가 나인데, 이 육신의 불멸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탄탄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무튼 <씨너스>근 3,4년 간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선명한 영화였다. 오랜만에 마음이 뒤흔들리는 걸 느꼈다. 사실 록키 시리즈를 다시 우려 먹고 있는 <크리드>도, 마블의 <블랙 팬서>도 개인적으로는 별 감흥 없는 영화들이었는데, 이 영화 한 편으로 라이언 쿠글러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됐다. 

아무래도 극장에서 내려갈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으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서두르시길. 어차피 좀 있으면 OTT에 올라오겠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직도 극장에서 보는게 압도적으로 더 좋은 영화들이 있다. 정말이다. 믿어라. 

P.S. 과연 내년 오스카에서 <씨너스>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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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를 꽤 기다렸다. 2023년 연말,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예고편을 보고 와 정말 할리우드는 다이내믹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미국 개봉도 4월로 늦어지고(아마도 예측 불가능한 미국 대선과 정치적 상황이 편집 과정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12월31일에야 개봉이 이뤄졌다. 

미국은 대략 160년 전에 내전(civil war)을 겪은 나라다. 여러가지 이유로 연방을 박차고 나간 남부 연합을 상대로 대통령은 탈퇴 불가를 선언했고, 결국 전쟁이 터졌고, 연방의 승리로 미국은 다시 한 나라가 되었다. 나라를 지켜낸 대통령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워싱턴엔 미국의 신전같은 기념관이 세워졌다. 

 

영화 <시빌 워> 속 미국은 좀 다르다. 적극적으로 분열을 부추기고 독재에 나선 대통령에 맞서 나라가 여러 갈래로 분열되었고,  그중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힘을 합친(사실 영화 속이니 가능한 조합이다) 서부군이 워싱턴을 위협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시작 부분. 뉴욕에 머물던 베테랑 저널리스트 리(커스틴 던스트)는 서부군의 우세 속에 워싱턴에 고립된 대통령을 인터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전쟁의 끝을 보기 전, 벙커에 숨은 독재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할지가 가장 세상이 궁금해 하는 뉴스일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가능만 하다면야 누군들 1945년 8월의 히틀러를 인터뷰하고 싶지 않았을까). 

 

역시 베테랑인 동료 조엘과 둘이만 갈 계획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은퇴를 앞둔 노장 새미, 그리고 종군기자를 꿈꾸는 스무살 안팎의 제시가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리와 제시

보고 난 느낌: 저널리스트를 앞세운 것은 탁월한 판단. 미국의 내전을 '미국인 종군기자'의 눈으로 지켜보게 한다는 시선이 좋았다. 내전을 누가 일으켰는가, 내전의 대의명분은 어느 쪽에 있는가, 누가 어떻게 전쟁 후의 세계를 건설하는가는 영화 밖에 있다. 전쟁이 일어난 뒤 벌어질 일들과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랙스 갈랜드는 냉철하고 차분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2025년이 방금 시작했지만 올해 연말에 꼭 넣고 말 수작. 강추한다. 

(아울러 마지막 30분 정도에 걸쳐 벌어지는 시가전 장면은 지금껏 본 수많은 영화 속 교전 장면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훌륭하다. 실제 전쟁 속에 들어가 아드레날린에 중독되는 제시의 마음 속을 이해할 수 있는 명장면이 이어진다. 대강 엑스트라들에게 자동화기만 쥐어 주면 저절로 총격 액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던 몇몇 영화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1. 영화가 시작될 때, 전쟁중인 미국은 어떤 형국인가?

미국 개봉때 만들어진 자료 중 하나가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대략 4개 정도의 큰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고,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전쟁은 서부군(Western Forces)과 충성파(Loyalist States)사이의 전쟁이다. 충성파는 현 대통령과 그를 중심으로 한 미 합중국에 대한 충성을 말하는 것이고, 서부군은 대통령의 독주와 헌정파괴에 대한 항의로 독립을 선언한 세력을 말한다. 

 

2. 서부군의 주력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로 되어 있는데 이건 무슨 얘긴가. 

영화 막판에 공개되는 서부군의 깃발. 미국 국기에서 50개의 별이 있어야 하는 위치에 두개의 별이 있다. 두 별은 캘리포니아 주와 텍사스 주를 의미하고, 이 깃발에 13개의 붉고 흰 줄이 있는 것은 이 깃발을 지지하는 자들이야말로 미국 독립 당시 13주의 정신, 즉 미국의 헌법과 수정헌법을 진정으로 지지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두 주의 깃발에 모두 별이 하나씩 들어 있기는 하다. 

사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하나로 힘을 합친다는 것 자체가 농담이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확실한 민주당 지지 주고 텍사스는 공화당, 특히 트럼프 지지의 중심 거점이기 때문이다(특히 이민 문제에 있어, 멕시코 접경인 텍사스가 가장 강경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 두 주가 힘을 합쳐 괴물 같은 독재자 대통령에게 대항한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특정 정파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감독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알렉스 갈랜드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영화 속 대통령이 트럼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물론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3. 그럼 영화 시작 시점의 뉴욕은 어느 파벌의 소속인가?

지역적으로 동부 끝인 뉴욕은 당연히 충성파 지역이어야 하겠지만 영화 속 설정은 뉴욕의 특수성(UN 본부가 있는 국제 도시)을 감안한 중립 지역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수시로 정전되고 길에서 물 배급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영화 속에서 기자들이 머무는 호텔과 로비(기자 클럽?)는 교전지역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에서 베이루트나 사이공의 외신기자들이 머무는 호텔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런 느낌을 주려는 것이 연출 의도였을 것이다. 여기서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면서 속으로는 특종 경쟁을 하는 기자 집단의 아지트 같은. 

4. 뉴욕에서 워싱턴을 가는데 며칠이 걸린다고?

영화 속에서 '고속도로는 파괴되고, 교전지역을 피해 에둘러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뉴욕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거리는 233마일(약 375km) 정도라 대략 네 시간이면 차로 주파 가능한 거리지만, 영화 속 이동 거리는 857마일, 약 1379km 정도다. 워싱턴을 포위하고 있는 최전선을 우회해 펜실베이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를 거쳐 둘러둘러 갔다는 얘기. 

서부군의 사령부가 설치되어 있다는 샬러츠빌 Charlottesville 이 워싱턴 DC 전의 최종 목적지로 되어 있는데(새미와 제시를 내려놓겠다고 리가 마음먹었던 곳), 이 샬러츠빌도 워싱턴 DC 보다 훨씬 남서쪽 아래에 있다. 

 

 

[스포일러 경고.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일단 보시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사람 따라 취향도 각각이라, 일단 난 다 알아도 상관없어 하는 분도 있는데, 아무튼 나라면 나머지는 영화 보고 와서 읽어볼 듯.]

 

5. 그래서 어느 쪽이 좋은 쪽인가 

영화 속에서 어느 편이 어떤 이념으로 누구를 죽이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두고 있지는 않다. 영화 속 리와 노엘의 집단도 어떤 지역에서는 군복 입은 쪽과, 어떤 지역에서는 군복 입은 쪽을 상대로 싸우는 민병대 같은 복장의 집단과 주로 소통한다. 그나마 이들에게 다행인 것은, 양쪽 집단 모두 저널리스트 혹은 프레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용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세력이건 자신들의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와 명분 쌓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일 듯. 아울러 '후세에 물려줄 자신들의 모습'을 저널리스트들이 기록하고 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결론은 누가 정의인지는 제작진이 구분할 의사가 없다는 쪽. 저널리스트들과 소통하는 민병대 세력이 유색인을 다소 포함하고 있고, 백악관 진입 세력을 흑인 여지휘관이 이끌고 있지만 대통령 경호실을 대표해 나온 경호원도 흑인이다. 

6. 인종차별이 영화 속 이슈인가?

노엘의 아시아인 동료들을 사살하는 백인 병사(아이러니컬하게도 커스틴 던스트의 진짜 남편인 제시 플레먼스)를 보면 인종주의는 이 전쟁의 이슈 중 하나지만, 드러난 이슈는 아닐 것 같다. 만약 이게 그렇게 부각되는 이슈였다면, 아무리 목숨 걸고 막 나가는 두 동양인 저널리스트들이라 해도, 교전지역으로 그렇게 대책없이 들어가지는 않지 않았을까. 

(혹은 그런 명시적인 경고도 무시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 병사가 말하는 '리얼 아메리카'는 최소한 아시아계 이민을 '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인종주의가 전쟁의 원인이었다기 보다는, 영화 앞부분에서 린치가 자행되는 시골 주유소의 모습처럼, 헌법이 무시되고 질서와 공권력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개개인의 편견과 본성, 총 든 자가 정의라는 원시적 폭력성이 무한대로 제약 없이 노출될 수 있다는 삽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7. 대통령의 죽음과 조엘의 질문이 뜻하는 것은.

연장선상에서, 하나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관용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 내란의 주범이며, 더 이상의 발언권을 보장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만, 조엘은 저널리스트로서, 이 역사의 현장에서 전쟁의 한 주역인 대통령에게 마지막 코멘트를 요청한다. (사실 이들의 목적이 바로 전쟁의 막판에 몰린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한 진영을 이끌던 수장 치고는 참으로 비겁한 한마디밖에 들을 수 없었다. "나 죽이지 말라고 해줘. Don't let them kill me." 그동안 온갖 수사로 강한 모습을 보였던 권력자가, 끝까지 측근들을 앞세워 목숨을 구걸하고 결국 이렇게 비루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다니.... 라는 갈랜드 감독의 조소가 담겨 있다. 

 

8. 리는 왜 그렇게 최후를 맞나.

몇 차례의 사건을 거치며 제시는 변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인 만큼, 아드레날린 분비로 겁도 없어진다. 리가 보기에는 '그 일'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다. 목숨도 아깝지 않다. 반면, 이런 과정을 모두 겪었을 리는 새미의 죽음을 겪은 뒤 모든 것에 염증을 느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라는 생각에 지배되어, 워싱턴 진입 후에는 사진을 거의 찍지 못한다. 

결국 마지막 희생은 '제발 너도 나처럼 되지 마. 무감각하게 스릴에 중독되어 판단 없이 뛰어들지마' 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리가 쓰러진 뒤에도 제시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총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들어간다. 리의 메시지는 전해진 것일까, 아닐까. 그건 한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과연 저널리즘이란 뭘까. 저널리스트란 뭘까. 전쟁터에서 누구의 편도 아닌 채, 총든 사람들의 꽁무니를 따라 왔다갔다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질인가. 네 편도 내 편도 아니라는 것이 이제 의미가 있는 시대인가. 쓰러진 리의 모습이 던지는 질문들. 

(사실 쓰러진 리는 방탄조끼같은 것을 입고 있었고, 어쩌면 살아남았을 수도 있겠다. 이 또한 분명치는 않다.)

9.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대체 뭘까.

누가 봐도 알 수 있듯,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우리는 이 꼴 날 수도 있다'는 경고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이민의 나라'에서 빗장을 걸어 잠그는 현실, 다양성에 대한 거부, 대놓고 지지세력에게 폭력을 선동하는 대통령, 과연 이런 불확실성이 문명의 파괴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설정에 대한 해설을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의미가 깊다고 본다. 적의 수괴를 사살하고 만세를 부르는 서부군 병사들. 과연 이 사건 이후의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 10년 뒤, 30년 뒤에 그 장면을 찍은 제시의 사진들은 어떤 의미로 해석될까. 폭군을 죽이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승리의 상징으로 남을 지, 아니면 이유야 어쨌든 야만의 도래와 문명의 후퇴를 알리는 신호로 여겨질지. 

워싱턴에 진입한 서부군이 첫 시가전을 벌이는 장소가 하필 링컨 기념관이다. 링컨 기념관 기둥 뒤에 숨어 저항하는 수비대나, 거기에 화력을 퍼붓는 서부군이나. 링컨,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그렇게..."

 

 

 P.S. '내전'은 좀 민감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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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민했다. 열편의 영화를 꼽을 수 있을까. 올해 그렇게 괜찮은 영화를 많이 봤나? 영화 자체를 많이 보지 못했다. 대신 드라마 시리즈는 평소보다 더 본 것 같기도 한데, 극장에 간 횟수가 매우 줄어들었고, 솔직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다. 특히 한국 영화는, 만드시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좀 그랬다.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Perfect Days

대체 왜 저 남자는 아무 불만 없다는 표정으로 도시의 변기를 닦고 있을까. 평온하고 소박한, 아무 욕심도 없어 보이는 한 남자의 일상 속에 얼마나 큰 폭풍우가 감춰져 있는지 보여준 걸작. 야쿠쇼 코지라는 훌륭한 배우의 힘으로 이야기는 절로 설득력을 얻었다. 속죄, 욕망, 번뇌 같은 단어들이 햇살처럼 마음에 박힌다.

퍼펙트 데이즈, 속죄와 구원의 우화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퍼펙트 데이즈, 속죄와 구원의 우화

를 뒤늦게 봤다. 주위의 찬사와 추천 속에서도 사실 비슷한 영화라는 말에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연말을 맞아 보길 잘 했다.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코모레비 (木漏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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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해부(쥐스틴 트리에) Anatomie d'une chute

눈 덮인 산 속, 추락한 남자의 시체. 과연 범인은 아내인가, 아닌가. 미스터리가 형성될 수 없을 것 같은 시공간에서 이뤄지는 미스터리. 여자가 무죄라면, 과연 왜 무죄인가. 죄의 유무는 범행 여부에 따라서만 결정되어야 하는가. 도저히 공이 돌아다닐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페널리 에리어 안에서 절묘하게 슈팅을 뽑아내는 쥐스틴 트리에의 솜씨가 놀랍다. 

추락의 해부, 오랜만에 본 '진짜 영화'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추락의 해부, 오랜만에 본 '진짜 영화'

프랑스 동남부 산악지대의 어느 외딴 산장. 작가 부부와 시각장애인 아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갑자기 남편이 죽은 채 발견됩니다. 집에서 눈밭으로 떨어진 듯한 시체. 경찰이 출동해 수사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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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 (조지 밀러) Furiosa: A Mad Max Saga

전작 <매드맥스4>로 사령관 퓨리오사라는 불멸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 조지 밀러 옹의 노익장이 빛나는 또 한편의 걸작. <매드맥스4>가 워낙 기대치를 높여 놓은 탓에 좀 더 박한 평을 얻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퓨리오사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 <빨간 내복 사가>도 혹시 볼 수 있으면 어떨까.

퓨리오사, 남신들의 성전을 박살내는 여신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퓨리오사, 남신들의 성전을 박살내는 여신 이야기

의 프리퀄 는 문명의 종말을 맞은 호주 대륙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경작이 가능한 땅, 녹색의 낙원에서 시작한다. 열살 남짓한 소녀 퓨리오사는 엄마(찰리 프레이저)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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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2 (드니 빌뇌브) Dune: Part Two

이 시대의 완벽주의자 드니 빌뇌브의 야망이 빚어낸 결정체. 물론 1편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OTT  시대의 관객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알려주기엔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원작의 한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겠지만, 부디  이 듄 시리즈도 조금만 더 21세기의 관객들도 만족할 수 있도록 서사에 좀 더 신경을 써 주길. 1편도 그랬지만 2편의 주인공은 확실히 '벌레'.

듄2, 장대한 빛과 소리의 걸작, 그러나 아쉬운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듄2, 장대한 빛과 소리의 걸작, 그러나 아쉬운 이야기.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화가 TV에 의해 타락했다. 나는 대사가 싫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순수한 이미지와 사운드야말로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도 한 것으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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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선 글레이저) The Zone of Interest

아우슈비츠의 담벼락 밖.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인간이기를 선택한 자들은 떠나고, 일신의 안위를 선택한 자들은 남아서 즐긴 곳. 누군가는 이런 고발에 왜 은유가 필요하냐고 비판했지만,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은 다큐멘터리가 할 수 없는 울림을 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는 거울을 볼 줄 몰랐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는 거울을 볼 줄 몰랐다.

1.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뭘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수용소에서 일하는 독일군들은 당연히 수용된 유태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특히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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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스 (루카 구아다니노) Challengers

가장 중요한 것은 승부였나, 사랑이었나, 혹은 그 둘은 따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었나. 두 명의 하이틴 테니스 유망주가 어느날 여신같은 주니어 테니스 스타를 만났고, 둘 다 사랑에 빠졌다. 여신은 두 남자에게 이기는 자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뒤로 대략 15년에 걸쳐 두 남자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치열한 대결을 펼친다. 나의 가장 치명적인 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매우 고전적인 승부 속의 은유. 이걸 청춘과 패션으로 녹여낸 구아다니노의 솜씨가 놀랍다. 

이소룡들 (데이빗 그레고리) Enter the Clones of Bruce 

한글 제목은 직관적이지만 영어 제목은 여러가지 주변 정보를 알아야 웃을 수 있다. 그만큼 이 영화가 이 리스트에 있다는 것은 확실히 제목의 '개취'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영어 제목의 브루스 리란 우리 모두가 아는 Bruce Lee. 그리고 출연자 리스트에는 Bruce Le, Bruce Li, Bruce Lau가 총출동한다. 홍콩 영화의 주류를 쇼 브라더스에서 골든 하베스트로 바꿔놓은 영웅. 우리가 아는 이소룡의 영화는 <당산대형>에서 <사망유희>까지 억지로 늘려도 5편 뿐이지만, 당시 서구에서는 수십편의 영화가 브루스 리의 영화로 공개됐다. 왜? "동양인 얼굴은 구별하기 힘들어서." 이런 얘기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재미있을 영화. 

아 개취라니까요.

 

위키드 (존 추) Wicked

무대극 원작에 대해서도 한동안 사람들은 "어떤 영화화도 원작을 능가할 수 없다"고들 했다. 하지만 피터 셰퍼의 위대한 대본을 밀로스 포먼이 영화화한 <아마데우스> 이후, 그런 시비는 사라졌다. 특히 뮤지컬 분야에서는 물리적인 제약이 큰 무대를 벗어날 때 더 놀라운 결과물이 나오곤 했다.

<위키드>는 3시간 내외의 무대 뮤지컬을 두 편의 영화로 나누다 보니 앞부분의 진행이 더뎌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이 뮤지컬의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는 <Defying Gravity> 시퀀스에서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압도적인 연출을 보여줬다. 누군가가 왜 아직도 극장에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손가락을 들어 <위키드> 포스터를 가리키라고 말하고 싶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넷플릭스 오리지널, 바오 응우옌) The Greatest Night in Pop

2024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날로서 3시간 이하의 단편 영상물 중에서 볼만한 게 있느냐는 질문에, 거의 유일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던 작품. 물론 '그 세대'가 아니라면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작품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당대의 제왕과 제왕의 형님, 모든 것을 기획한 사람, 그 핵심이 되고 싶었지만 겉돌았던 사람, 이 자리에 선 것이 정말 일생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를 위한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쉬움과 분노를 느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날의 이벤트를 조명한 바오 응우옌의 솜씨도 탁월했다. 

 

파묘(장재현)

이 영화가 없었다면 과연 2024년의 한국 메이저 영화 중에 뭘 이 리스트에 넣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물론 일본 귀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국 영화의 신기원이라고 할 정도로 몰입감이 엄청난 걸작이었고, 그 뒤로는 앞부분의 성취를 조금씩 깎아먹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다음번에도 장재현 감독의 영화를 꼭 보겠다는 믿음은 분명하다. 차 번호판이니 포스터니 하는 것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 없이도 충분히 훌륭했던 작품. 

 

페르시아어 수업 (바딤 페럴먼) The Persian Lessons

2차대전 독일 수용소. 한 독일 장교가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한 수감자가 살기 위해 "나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 압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결국 한 남자는 자기가 만들어 낸 가공의 세계로 다른 남자를 끌어들인다는 설정인데... 좀 늦게 봤지만 '이런 소재로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에서 충격을 받았던 작품. 사기꾼의 사기가 들통나느냐 마느냐 하는 긴장감도 긴장감이지만, 정말 저런 식으로 세계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2022년작이라 맨 뒤로 밀렸지만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뭐 이렇습니다. 예전에 기운 뻗치고 뭘 모를 때에는 추천 영화와 망작을 같이 꼽기도 했는데, 나이 먹고 보니 그게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고, 뭔가 콘텐트들을 만드는 데 관여해 보니 그런거 저런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만드는 사람들은 피똥 싸면서 만드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어쨌든 새해에도 이 글 읽는 분들 다들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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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를 뒤늦게 봤다. 주위의 찬사와 추천 속에서도 사실 <패터슨> 비슷한 영화라는 말에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연말을 맞아 보길 잘 했다.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코모레비 (木漏れ日: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라는 새로운 명사를 이야기했다.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달리건, 자동차로 달리건, 걸어가며 바라보건, 아니면 제 자리에 누워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건 코모레비는 아름답다.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도 한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쓴들, 이 세상의 모든 코모레비를 가질 수 없고, 내가 없다 한들, 심지어 아무도 즐기는 사람이 없다 한들 코모레비는 변함 없이 어딘가에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한때 '코모레비'가 될 뻔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보고 나니, 그 코모레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코모레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같은 순간은 하나도 없는, 변화 없는 것 같은 나날들 속의 코모레비같은 햇살의 가치'에 큰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물론 그게 중요한 영화긴 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속죄와 욕망에 대한 영화로 읽혀서 매우 와 닿았다. 

일상의 소중함? 잔잔한 감동? 천만에. 



2. 히라야마는 왜 화장실 청소부가 되었을까. 누가 봐도 '이런거 하실 분' 혹은 '이렇게 사실 분'이 아닌 사람이 매일 아침일찍 일어나 토사물 쌓인 아침의 공공화장실을 꼼꼼하게 닦고 정리한다. 대체 왜.

누가 봐도 '닦음'의 의미는 선명하다. 그는 지우고 싶고, 펴고 싶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고 싶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 그 노력은 결실을 이룬듯 했다. 

 


3. 다만 빔 벤더스가 그리 친절할리 없고, 사실 친절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 사연을 깔끔하게 털어줬더라면 영화의 아우라는 확 사라져 버렸을게다. 그저 이 정도로 짐작하고 상상하게 하는게 좋다.

히라야마의 동기 가운데 단지 느낄수 있는 것은, 배운 사람인 그에게 어느 한 순간 자신과 주변에 대해 견딜수 없는 환멸이 찾아왔고, 기존의 삶을 도저히 유지할수 없는 계기가 있었을 거란 정도였다. 맨 정신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4. 조카, 동생, 술집 여주인, 안경 쓴 남자와 일련의 만남은 그에게 그가 왜 현재의 삶을 택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 일들이 한방(대략 2주 사이)에 찾아오는 바람에, 그는 지난 수년간의 삶이(최소 6년, 대략 10년? 15년?), 혹은 치열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닫게 된다.

긴 시간 변기를 닦으며 속죄(수행)를 했건만, 그렇게 쌓아올린 마음이 이렇게 한방에 무너져버리고 마는구나. 여전히 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다가가려 하고, 질투하고 좌절하는구나. 그냥 그런 인간의 삶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구나. 그렇게 울고 웃을수밖에 없었구나. 



5. 그렇게 폭풍우가 이는 듯한 영화를 봤다. 영화는 결코 잔잔하지 않았다. 야쿠쇼 코지는 치열했다.


대략 여기까지가 페북에 썼던 글. 사실 여기서 할 얘기를 다 하긴 했지만, 한발 더 들어가보려 한다. 역시 결말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혹은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도, 이 영화에 대한 좋은 감정만을 갖고 싶은 분도 멈추시기를 권장한다.

물론 이런 해석 역시 개인적인 시각일 뿐이고, 민주적으로 1/n의 가치를 갖는다. 반대로, 빔 벤더스가 어떤 인터뷰에서 어떻게 말했거나 야쿠쇼 코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했든, 그것이 절대적인 해석의 기준일 수도 없다. 이미 해석은 관객의 것이니까. 

 

 

 

 

6. 히라야마는 계속 꿈을 꾼다. 꿈은 흑백으로 묘사되어 확실히 현실과 구분된다.

7. 조카 니코가 찾아온 날, 히라야마는 니코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만치 그가 기존의 가족들을 떠나온 것이 오래 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던 그는 이 낯선 소녀가 누군가와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제서야 "니코니?"라고 묻는다. 

8. 그날 밤, 그의 꿈에는 니코가 나타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니코가 아니다. 꿈이라는 것의 속성상, 바로 오늘 처음 본, 지금 위층에서 자고 있는 조카가 나온다는 것은 넌센스다. 이 꿈에 나타난 소녀는 아주 오래 전, 그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던 소녀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소녀가 왜 니코와 똑같이 생겼을까

9. 며칠 뒤, 기사가 모는 렉서스를 타고 여동생이 딸을 데리러 나타난다. 여동생은 "요양원으로 아버지를 방문해 보라. 예전처럼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치매 상태일 수도 있고, 그냥 노쇠했을 뿐일 수도 있다. 어쨌든 히라야마의 가출은 아버지와의 심각한 갈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버지로부터 내쫓김을 당했을 수도, 내쫓기기 전에 그 스스로 떠났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히라야마의 '죄'는 가족 내부의 죄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조카의 비밀을 상상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10. 히라야마는 바 여사장과 전남편이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여사장과 눈이 마주친 히라야마는 맥주 세 캔을 사들고 도망친다. 강가에서 술을 마시는 그를 발견한 전남편(어떻게 히라야마를 찾았고, 어떻게 알아봤는지를 따지지는 말자 ㅎ)은 그와 여사장 사이의 서사를 말해주고, 그녀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히라야마가 도망쳤다는 것은 그 역시 여사장과의 관계가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고, 그림자 놀이는 좀 난감하지만, 결국 인간의 감정과 관계라는 것은 논리와 주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짙다면 그냥 짙은 것이고, 안 짙다고 하면 안 짙은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졌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11. 사실 이 영화가 사람들이 말하듯, '소소한 일상의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말하자는 거였다면, 마지막에 울었다 웃었다 하는 히라야마를 설명할 수 없다. 히라야마는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고, <미션>의 로버트 드 니로가 갑옷 뭉치를 끌고 이구아수 폭포의 절벽을 오르듯, 남의 오물을 씻는 행동으로 속죄를 꾀했다. 가끔씩 '난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아'라는 듯한 몸짓의 노숙자가 악몽처럼 나타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조카와의 해후 전까지 그는 자신의 속죄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조카와 여사장의 사건으로 그는 자신의 속죄가 눈속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울고 웃음을 반복하게 된다. 좌절일까. 좌절만은 아니다. 삶이란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고, 그는 자신의 삶을 이제 스스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릴 지도 모른다. 즉 '사는' 것에서 '살아지는' 삶을 이어갈 수도 있고, 속죄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깨달음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코모레비는 번뇌의 다른 표현일 뿐. 번뇌가 싫어 인간의 삶을 떠났다면(떠날 수 있었다면), 사실은 코모레비도 사라졌어야 한다. 찰나가 영원이고, 영원이 곧 찰나라면 코모레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나는 이 열린 결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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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뭘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수용소에서 일하는 독일군들은 당연히 수용된 유태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특히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는 아내 헤드윅(잔드라 휠러)과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수용소 담장 바로 밖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았다.

 

뜰에는 넓은 잔디밭과 꽃들이 우거졌고, 마당에는 아이들을 위한 수영장이 있었다. 가족들은 여름이면 부근의 강에서 수영을 했고, 저녁때면 마당에 간단한 파티 테이블을 차려 놓고 의자에 기대 지는 해를 바라보곤 했다. 그 석양을 배경으로, 아우슈비츠에서는 거대한 굴뚝이 밤새 연기를 뿜어냈다...

2. 영화는 회스 부부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악마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소름끼치게 보여준다. 회스에게 유태인 학살은 음식쓰레기 배출이나 수돗물 공급과 마찬가지로, 처리해야 할 업무일 뿐이었다. 아내 헤드윅은 유태인 포로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유태인들로부터 빼앗은 옷가지와 각종 물품을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 쓴다. 반면 자신들의 자녀와 가족에 대해서는 너무나 자애롭고 헌신적인, 훌륭한 부모다.

 

이들의 관심사는 이 평온하고 풍요로운 삶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 뿐. 헤드윅은 회스가 아우슈비츠 소장직을 그만두게 될 때 "나는 여기서 떠날 수 없어!" 라며 흥분하고, 회스는 어떻게 하면 상부의 신임을 얻어 소장직을 되찾고, 헤드윅을 실망시키지 않을까에만 관심이 있다. 수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고 있다는 데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진정 충격적이다.

여기까지 보셨으면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은 충분하다. 나머지는 영화 속 디테일에 대한 소소한 얘기들. 딱히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어렵지만(이 영화의 결말을 모를 사람은 없을테니), 아무튼 강추작. 박수가 아깝지 않다.

자, 그냥 표 사러 가세요. 나머지는 영화 보고 다시 오시길.

 

가운데가 루돌프 회스

3. 이 끔찍한 이야기는 다소 과장된 우화처럼 보이지만, 거의 모두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이 또한 놀랍다). 루돌프 회스는 실존인물이고, SS 장교 출신으로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었다. 1943년 11월 잠시 다른 인물과 교체됐지만 44년 5월 복귀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존 오브 인터레스트', 즉 나치가 아우슈비츠 주변 약 40제곱킬로미터의 지역에 설치한 특별 구역의 이름인데, 이 동네에 멋진 마당이 있는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회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마틴 아미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전쟁이 끝나고 회스 가족은 자취를 감췄다. 추적자들은 먼저 북부 독일의 어느 공장에서 노동자로 변신해 있던 아내 헤드윅과 가족들을 찾아냈고, 헤드윅은 처음엔 남편이 죽은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알고 있는 사실을 자백했고, 회스 또한 덴마크 국경 지역에서 농부로 가장하고 있다가 체포됐다.

 

회스는 자신이 1941년부터 43년까지 SS 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의 명령에 따라 약 200만명의 유태인을 가스로 살해하고 시신을 태우는 작업을 지휘했음을 자백했고, 사형을 선고받아 아우슈비츠 수용소 자리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회스 역을 맡은 크리스티안 프리델. 매우 흡사하다.

4. 과연 회스의 가족들, 아내 헤드윅과 자녀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회스는 종전 후 재판에서 "최소한 아내와 장남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저녁때마다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연기, 그리고 시체 타는 냄새를 맡으면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방문자들은 이 냄새와 연기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독일인들은 금세 익숙해져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학살당한 유태인의 것임이 분명한 모피 코트를 뽐내는 헤드윅.

4. 조나단 글레이저는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을 선명하게 알려주지 않는 쪽을 택했다. 예를 들어 회스의 장모는 왜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지, 어느날 회스 앞에서 신발을 벗는 여자는 누구인지, 낚시를 하던 회스는 왜 갑자기 아이들을 물에서 꺼내 집으로 끌고 오는지, 왜 갑자기 회스는 구토 증세를 보이는지 등에 대해 깔끔한 설명은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상황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긴 하다. 

 

장모는 정말로 태연하게 악마의 삶을 살고 있는 딸과 사위 가족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달아난 것이고, 회스와 아내는 아우슈비츠에서 상당수의 유태인들을 몸종처럼 부리고 때로 성노예 취급도 했을 것이고, 강물에서 시체 태운 재를 발견한 회스는 '아이들'이 그 재에 오염될까봐 깜짝 놀란 것이고... 구토는 아마도 잠시나마 '미래의 사람들이 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은 어떤 취급을 받게 될까' 와 같은 자각이 일시적으로 무의식을 뚫고 나와 신체에 반응을 일으켰음을 상징하는 것일텐데, 이런 해석들이 맞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영화를 보는 이들이 이런 것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추론하고, 결론을 내리기를 글레이저 감독이 바란 것일 뿐. 

 

벽에 사과를 박아 넣는, 뒤집힌 그림 속 소녀도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몇몇 폴란드 사람들은 작업 중에 유태인 수감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밤에 몰래 진흙 속에 음식을 감춰놓기도 했다고 하는데, 영화 내용중에는 '사과 하나를 놓고 두 수감자가 싸움을 벌였다'는 말을 들은 회스가 '둘 다 강에 던져버리라'고 명령하는 장면도 있다. 

5. 홀로코스트라는 것이  '그저 명령에나 복종하고, 조직 안에서 과업의 완수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인간들에 의해 집행되었다는 보고는 2차대전 이후 많은 연구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그것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이르면, 이건 '악의 평범성'을 넘어 '악의 무심함'이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다. 물론 이 영화는 그저 홀로코스트의 고발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담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과 희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을까. 글레이저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가자지구의 학살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했다. 단지 홀로코스트의 고발만이 중요했다면, 당시의 피해자였던 유태인들이 이제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기괴한 현상을 외면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쟁 외에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거의 모든 선진국들은 담 너머의 참상에 고개를 돌린다. 아니, 엄밀히 말해 모든 선진 문명국들의 풍요는 일정 부분 이상 '담 너머'의 희생에 일정 부분 이상 빚을 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생각하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소름끼치는 은유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6.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2024 아카데미 작품, 각색, 감독상을 포함해 5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그중 국제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과 음향상을 수상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은 로컬 영화제잖아요" 이후 영어가 아닌 언어를 바탕으로 제작된 많은 영화들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바람에, 소위 국제영화상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이 2024년 시상식에서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작품상과 국제영화상 후보에 모두 오른 반면, <추락의 해부>는 작품상 후보에는 올랐지만 국제영화상 후보에서는 빠졌다. 작품상이 아카데미상의 최고상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 국제영화상 후보에는 들지 못한다는 게 좀 우습긴 하다(물론 해당 국가에서 <추락의 해부>를 후보로 밀지 않으면 국제영화상 후보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 현행 제도다). 

 

7. 다만 개인적으로 음향상에는 다소 의문이. 과연 이 영화의 검은 화면이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그렇게 대사 없는 장면이 꼭 필요한 것이었나? 여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렇게 굉음과 비명을 꼭 들려주면 더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겐 이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 속에 감춰진 악의 선명함으로 충분했고, 굉음에 가까운 음향은 오히려 과잉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 외에는 모든 부분에서 칭찬하고 싶은 걸작.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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