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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새기다/한때는 체육인

WBC 경우의 수, 대만을 6점차로 넘어라 [WBC 경우의수 정리] 네덜란드-대만전은 최악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네덜란드-대만전 결과가 네덜란드가 이기면 최선, 대만이 큰 점수차로 이기면 그 다음, 접전으로 이기는게 그 다음, 3~6점차로 이기는게 최악이었는데 하필 딱 5점차 승부가 났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네덜란드가 호주를 이긴다고 가정하고, 한국은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기되 특히 대만을 6점차로 꺾어야 2라운드에 자력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겨도 5점 차라면 한국/대만/네덜란드간의 득실점 중 자책점의 비율까지 계산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4점 차 이하로 이기면 같은 2승1패라도 한국이 무조건 탈락합니다. 물론 열심히 기도하면 호주가 네덜란드를 잡아 주는 로또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실제론 지금부터 대표팀 타선이 심기일전, 막강 공격력.. 더보기
WBC, 한국 1라운드 통과 경우의 수는? 더보기
런던 개막식, 가공할 문화적 자신감의 축제 대니 보일, 다니엘 크레이그, 케네스 브라나, 사이먼 래틀, 폴 매카트니, 미스터 빈, 데이비드 베컴, 조안 K 롤링, 엘리자베스 2세, 메리 포핀스, 볼드모트...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는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섹스 피스톨스, 퀸, 유리스믹스, 프로디지.... 런던 올림픽 개막의 충격이 하루 종일 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니 산만하고 별 재미 없던데...'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 행사를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개막식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올림픽 개막식 치고 멋지지 않은 적은 없었던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런던 개막식이 줄곧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지금까지의 개막식들이 보여줬던 틀을 깨 버렸기 때문입니다. .. 더보기
최동원은 왜 혹사당했나 (2) 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11번은 영구결번이 됐군요. 과연 이제 와서 구단이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주장이 팬들로부터 제기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이 '최동원 잔혹사' 풍의 냄새를 풍기기는 합니다만, 최동원이 속해 있던 '70년대 야구'의 풍경을 바라볼 때 최동원의 혹사는 어찌 보면 거의 모든 투수들, 특히 에이스 급 투수들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현상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400승 투수인 재일교포 김경홍(가네다 마사이치. 한때 김정일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의 투구사를 보면 50~60년대 일본 프로야구 역시 '투수 혹사'라는 면에선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매년 투구 이닝이 300이닝.. 더보기
최동원은 왜 혹사당했나? 최동원에 대해 늘 나오는 얘기는 '단기전에서는 최강이었고 타자를 압도하는 기세가 일품이었지만 젊어서 너무 혹사당한 탓에 투수로서 단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환경으로 들어가 봐야 합니다. 그리 짧게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세를 풍미한 대투수를 나름대로 조상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 출범 직전인 1977~1981년의 시점으로 돌아가 봅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고교야구였고, 성인야구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있었지만 후대에까지 전설로 불릴 만한 스타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꼽자면 최동원, 장효조, 그리고 김재박을 첫 손에 꼽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세 선수는 각자 자기 포지션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위세를 뿜어내고 있었죠. .. 더보기
장효조가 야구소년에게 신이 된 날, 1978.7.25 한국 야구 만화에는 대개 주인공과 맞수인 완벽한 야구 선수가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오혜성 못잖게 유명했던 마동탁이죠. 그런데 한국 야구에는 그런 타자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너무 완벽해서 만화같았던 타자입니다. 그 타자, 한때 재일교포 강타자 장훈에 비견되어 '작은 장훈'이라고 불렸던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고인이 됐습니다. 왕년의 야구소년 눈에 불가능이 없는 타자로 여겨졌던 거인이 이렇게 빨리 전설이 되어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리 요즘 정신이 사람 정신이 아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강타자 장효조'를 얘기할 때 프로 진출 이후를 얘기하곤 합니다. 4회의 타격왕, .331의 통산 타율. 신화가 되기에 충분한 숫자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한 천.. 더보기
34년전 차범근, '5분에 3골'의 전설을 되돌아보다 차범근 감독은 나이답지 않게 요즘 단문 메시지를 즐기는 듯 합니다. 며칠 전, 차감독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골많이 넣는 공격수라고 페널티킥 잘 차는것 아니야. 배짱이 좋아야해. 나 어제 (일본 대표팀의 수비수)고마노가 실축하는거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더라. 승부차기, 그거 진짜 만만치 않아. 5분동안 3골씩 넣는 나도 그건 어렵다니까" 라는 말이 여러 군데에서 기사화됐습니다. 물론 일본-파라과이전의 승부차기를 보고 승부차기의 어려움에 대해 쓴 글이지만 글 말미에 있는 '5분에 3골'이라는 말에 옛 생각이 되살아났습니다. 바로 70년대, 월드컵보다 한국인들에겐 더 인기있었던 '박스컵'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으실 겁니다. '차범근 신화'의 수많은 클라이막스 중 하나인 이 '5분에 3.. 더보기
일어서라 이청용, 2014년이 기다린다 잘 싸웠습니다. 기대 이상입니다. 솔직히 말해 16강이 쉬운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얘기한 적 있지만 1986년 이후 지금까지 16강에 한번이라도 가본 나라는 40개국, 두번 16강에 오른 나라는 27개국뿐입니다. 우루과이라는 강적을 상대로 한 16강전에서도 역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그 대단하다는 포를란을 봉쇄했고, 더 많이 뛰었고, 기대 이상으로 미드필드를 장악했습니다. 아르헨티나전 대패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상대 공격을 차단해나갔습니다. 종료 휘슬과 함께 경기장에 쓰러져버린 선수들의 아쉬움이야 뭐 더 이상 얘기할게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말마따나 이번 대회는 희망의 대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중심에 이청용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청용은 이번 대회 전이라.. 더보기
[월드컵] 도대체 16강이 뭐길래 이 난리지? 모든 일에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1986년, 사실상 처음으로 '제대로' 예선을 통과해 한국이 월드컵 무대를 밟았을 때만 해도 모든 여론과 언론은 '16강 가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가공할 대진운과 한국의 실력으로 볼 때 그건 정말 무리하고 무모한 목표였습니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렀고, 한국 축구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 사이 한번도 빼놓지 않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2002년에는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해에 4강에 가기도 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할 때 과연 한국이 세계 4강권의 실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하려는 얘기는 이겁니다. 이제 4강도 가 봤고, 4강이 진짜 실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번에 원정 .. 더보기
박주영, 5년전 나이지리아전을 재현하라 어쨌든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한판 승부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한국의 16강 향방을 가늠하게 됐습니다. 비관과 낙관이 교차했지만, 아무튼 역대 월드컵에서 조별 예전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 놓았을 때의 상황들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나은 상황임이 분명합니다. 수영복 챙겨서 휴가 떠나듯 가벼운 마음은 아니겠지만, 무리하게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깝게 2006년, 첫 두 경기에서 한국은 1승1무를 기록해 전적면에선 1승1패인 올해보다 나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지금보다 무척 나빴습니다. 2패를 기록한 토고가 최종전에서 2무였지만 외형상 최강인 프랑스를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1승1무인 스위스와 비겨도 조 3위로 탈락하는 묘한 상황에 놓였었죠. 아무튼 그건 그렇고, 한국은 최종전에서 맞.. 더보기
기자도 혼동하는 16강 경우의 수 총정리 '경우의 수'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을 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면밀한 진단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인데, 누군들 화끈하게 그냥 실력으로 이겨서 올라가는 걸 원치 않겠습니까.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16강 경우의 수는 꽤 낙관적이라는 겁니다. 몇가지 분석 기사도 나온 듯 한데 매우 실망스러워서 직접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분명 1대4로 대패했으면 뭔가 큰 타격이 있을 법 한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의 대미지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당초의 계산'에 아르헨티나에게 한국이 진다는 것은 이미 들어 있었던 상황이고, 가능하면 좀 적은 점수차로 졌다면 더 좋았겠지만 후반 초기에 분위기를 탄 것이 오히려 병이 됐다는 건 뭐... 지금 와서 한탄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죠... 더보기
불꽃남자 정대세, 박지성과 함께 뛰었더라면 사람들은 흔히 프로화가 선수들의 스포츠 정신을 망친다고 말하곤 합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위한 정신보다는 돈에 눈이 먼 잔치라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곤 합니다. 하지만 정대세는 브라질전에 임해 반드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정대세는 경기전 북한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정대세는 "드디어 이 자리에 왔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축구를 시작하고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대단한 자리다. 그 자리에서 브라질과 같은 대단한 팀과 대결을 펼친 것은 너무 감동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무슨 만화에 나오는 축구 소년같은 소감인지. 그리고 그 소년의 열정은 마침내 놀라운 일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북한은 졌지만, 그 결과는 세상을 놀.. 더보기
한국, 이제는 그리스를 응원해야? 개막 첫승, 한국이 해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상대로 거둔 첫승, 그것도 경기 내용까지 완전히 압도하는 2대0의 완승, 정말 월드컵 신경쓰고 본지 근 30년만에 이렇게 여유있게 이겨버리는 경기는 처음이라 지금까지도 감흥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4팀이 각각 세 경기씩 해서 두 팀이 올라가는 조별 예선은 워낙 변수가 화려합니다. 세 팀이 각각 승점 9에서 승점 0까지 다양한 성적을 낼 수 있고, 그 성적들이 제각기 상대적이기 때문에 오만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조별 예선의 남은 경기에서 기대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합계 승점 5(그러니까 앞으로 최소 2무)만 올려라, 둘째는 그리스, 최소한 1승(아니면 1무)이라도 올려라. 이 두가지면 16강은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됩니다... 더보기
롯데, 원래 사직구장에서 약했다? 야구 열기에 슬쩍 편승한 포스팅입니다. 준 PO에서 롯데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홈에서 2연패를 했군요. 지난밤 부산에서 쓰러진 소주병이 얼마나 될지... 상상이 갑니다. 삼성이 2연승을 하는 동안 눈길을 끈 점이라면 아무래도 삼성에 있는 롯데 연고, 특히 부산 출신 선수들의 분전이 돋보였다는 점입니다. 1차전에서 6타수 4안타를 친 1번 박한이와 4번 진갑용의 부산고 선후배가 롯데 마운드를 초토화시키는데 기여했다면, 2차전에서는 채태인이 이번 PO 첫 홈런을 때려냈죠. 채태인은 부산상고 출신입니다. 물론 부산 출신 선수는 당연히 롯데에 훨씬 더 많죠. 손민한-장원준-손광민으로 이어지는 부산고, 송승준-이대호-박현승으로 이어지는 경남고의 양대 명문고를 비롯해 대부분의 선수가 부산 경남 출신입니다. 하지.. 더보기
압축! 한국축구 100년사(2) 94년 미국 월드컵 대표팀. 김주성 하석주 고정운 홍명보 등 왕년의 스타들이 보입니다. 지난번에 이어 한국축구사 요약 족보 2탄. 좀 길어도 그냥 한방에 끝내기로 했습니다. 한국축구 100년사 (2)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자 축구협회는 또다시 대표팀 이원화론을 들고나왔다. 이번에는 화랑과 충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아이디어는 청룡-백호와 똑같았다. 아무튼 이 해 화랑팀의 일원으로 제6회 박스컵에 출전한 차범근은 첫 경기인 말레이시아전에서 1 대 4로 뒤지던 후반 38분부터 순식간에 3골을 넣으며 4 대 4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이날 이후 ‘한국 축구=차범근’이라는 등식은 그가 은퇴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은 남북 축구가 역사적인 첫 만남을 기록한 해였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