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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 참 많다.

 

사실 스페인을 여행지로 결정한 뒤부터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역시 현지에 가 보니 놓친 것들이 꽤 있었다.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하면 이렇다. 최신 유행에 따라 10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대체 언제 다녀온 여행을 여태 우려먹고 있느냐는 분들이 꽤 많다. 하지만 팍팍한 삶 속에서, 그래도 아직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마지막 마무리. 혹시 스페인에 가려고 준비하시는 분들은 지금까지 했던 포스팅들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http://fivecard.joins.com/search/스페인

 

 

 

 

 

 

1. 과일, 최고다.

 

 

오렌지, 멜론, 포도 등 거의 모든 과일이 상상 이상의 맛을 낸다. 특히 감 맛이 최고다.

(물론 사과,배와 딸기는 현재까지 한국산이 최고)

 

특히 위 사진, 'KAKI'라고 되어 있는 은 가을이라면 꼭 드셔 보시기 바란다. 수십년간 감을 먹어 온 한국인으로서 인생 최고의 감을 스페인에서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시와 단감, 대봉시의 장점만을 취한 환상의 감이다.

 

 

 

2. 예약 시스템, 뭔가 조금씩 이상하지만 어쨌든

 

 

여행을 계획하셨다면 아마 렌페(Renfe)의 자주 다운되는 예약 시스템에 당황하셨을 듯.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는 건 분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거의 반드시 T10(10회 탈 수 있는 지하철 패스. 저 위의 기계에서 살 수 있다)을 사용하시는 게 좋고, 알함브라 궁전이나 카탈루냐 음악당 공연 티켓을 인터넷으로 예매한다면, 어느 도시에서나 잘 보이는 라 카이샤(La Caixa) 은행 앞에 ATM 기계와 함께 있는 티켓 발매기에서 출력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시길. 

 

 

3. 유로자전거 나라, 싸진 않지만 유용하다

 

 

여행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단순 안내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유로자전거 나라의 가이드들든 새로운 도시를 돌아 보는데 매우 유용했다. 특히 피카소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피카소의 일생 스토리를 듣고 피카소 미술관에 들르는 구성은 신선하고 많은 도움이 됐다.

 

 

4. 시장, 무조건 가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든,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이든, 시장을 가 보면 스페인이 달라 보인다.

 

시장(식료품 시장으로 특화된)을 가 보면, 물건을 사고 파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밤낮도 없다. 광장시장의 약간 밝고 예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5. 타파스라는 종류의 음식은 없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타파스(Tapas)는 음식의 사이즈다. 한국에서는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도 먹고 싶고, 깐풍기도 먹고 싶고, 난자완스도 먹고 싶을 때 인원이 적으면 방법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에선 그걸 모두 타파스로 시키면 된다. 서너 입씩 먹을 분량으로 여러가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스페인의 식문화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다.

 

혹시 가게 된다면 타파스보다 더욱 미니멀한 핀초(Pincho)도 잊지 말고 드시길.

 

 

6. 식사 시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시에스타 시간에는 식당이고 가게고 모두 쉰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지만, 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에스타의 개념이 점점 흐려져 간다고도 하고, 그 시간에 사람들은 낮잠을 자는게 아니라 카페며 식당에서 계속 먹고 마시고 떠들고 있다.

 

아무 시간이나 가서 먹고 떠들고 마셔도 된다. 웬만한 바나 레스토랑은 심야까지 한다. 한국과 비슷한, 참 좋은 나라다.

 

 

7. 하늘, 평원의 하늘은 다르다

 

 

 

안달루시아의 하늘. 평원 위의 하늘은 구름부터 다르다.

 

 

8. 알함브라, 역사를 알아야 보인다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결혼으로 맺어지며 탄생한 대 스페인 왕국, 그리고 알함브라의 함락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남부 스페인 여행은 의미가 반감된다. 가기 전에 대략의 윤곽이라도 파악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물론 유로자전거 투어 같은 곳에선 어느 정도 설명을 해 주지만, 공부는 스스로.

 

 

 

9. 달리, 상상 그 이상

 

 

바르셀로나를 간다면 인근 피게레스(Figueres)에 있는 달리 미술관을 꼭 가 보시길 권한다. 난 미술엔 개뿔 흥미 없어, 하시는 분들, 인간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10. 야경, 가는 곳마다 꼭 놓치지 말길

 

 

밤의 고딕 지구를 한바퀴 돌고 나면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으슥할 것 같지만 오히려 한밤중에도 어딜 가나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그래도 멋지다. 그리고 알함브라의 야경은 꼭 한번 시도해 보시길(안타깝게도 봄, 여름에만 가능해서 나는 실패).

 

그리고 다음에 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들.

 

- 바르셀로나에서 분수 쇼 보기 (왜 매일 안 하냐고)

- 리세우 오페라 (그 날짜에 적절한 공연이 있는지가 행운의 시작)

- 톨레도에서 1박 (밤의 톨레도가 진짜라던데)

- 세고비아에서 돼지 통구이 (느끼하다는 사람도 있던데...)

- 달리가 살던 지중해의 어촌까지, 더 나아가 프랑스 국경까지.

- 그리고 국경을 넘어 모든 방문자가 '거기서 살고 싶다'던 리스본.

 

 

 

 

 

 

물론 이곳은 언제 가도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다. 매혹의 공간.

 

이렇게 해서 1년여(;;)에 걸친 스페인 여행기 끝.

 

곧이어 발리 방문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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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나긴 스페인 여행기의 마지막 편입니다. 지루하셨겠지만 이제 끝.]

 

기대 이상이었던 알카자르 덕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한 터라 톨레도의 나머지 지역 구경을 위해선 조금 서둘러야 했다.

 

사실 톨레도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엘 그레코의 도시라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이제 일단 엘 그레코는 뒷전. 우선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찬탄했던 언덕 위의 톨레도 뷰를 보기 위해 서둘렀다.

 

 

사상 최악의 길찾기 코스인 톨레도 관광에서 그나마 뭔가 트인 공간을 보려면 조코도베르 광장으로 가야 한다. 사실 처음에는 '뭐? 이따위가 광장이라고?' 라는 생각이지만, 톨레도에서 30분만 여기저기로 걸어 보면 '아, 이게 광장이구나'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미로다.

 

그래서 조코도베르 광장의 저 M 사인이 보일 때 매우 반가웠다.

 

 

건물을 찍을 때는 사진에 표현되지 않지만 참 아름다운 날씨였다.

 

 

잠시 대기하며 배룰 채우고, 드디어 미니열차 Zocotren 출발. 요금은 5유로 정도고 약 40분 가량 톨레도 주위를 돌며 구경을 시켜준다. 톨레도 내부에서도 저렇게 다니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톨레도 내부엔 저 정도의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다. 조코베르 광장을 벗어나면 도보 이동만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못 봤지만, 만약 그 좁은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려 한다면 한참 욕을 먹을 듯.

 

 

그러니까 이런 길은 여기 말고는 없다고.

 

 

성벽을 따라 난 도로를 통해 성 밖으로 나가기 전. 톨레도 성은 주변 지역보다 표고가 높다.

 

 

 

톨레도는 대략 이렇게 팝콘 알갱이 같이 생겼다. 보시는 바와 같이 외곽의 70%를 타호 강이 감싸고 있는, 평지보다 살짝 높은 고지대에 도시가 건설된 것이다. 방어를 위한 최선의 거점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굉장히 중요한 팁: 이 미니열차는 톨레도 시내를 빠져 나와 시계방향으로 도시외곽을 돈다. 그 말은 즉...

 

기차 안의 좌석은 한 줄에 약 4명씩 앉는 배치인데, 오른쪽 창가 쪽에 앉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 된다.

 

다들 저렇게 팔을 내놓고 촬영에 열중하게 된다. 그만치 풍광이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성 밖으로 나서면,

 

 

 

타호 강을 건넌다. 그림같다.

 

 

강 건너에서 시계방향으로 순환도도를 달리며 톨레도를 바라보게 된다. 오른쪽 자리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아까 가본 알카자르가 역시 도시의 상징답게 눈에 확 들어온다.

 

 

 

 

 

왕년에 쓰이던 다리와 정문.

 

이런 몇 군데의 포인트만 차단하면 톨레도는 그야말로 철벽 방어 태세가 된다.

 

 

 

남쪽으로 돌아 나오면 알카자르 말고도 볼만한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

 

 

 

아이 이뻐.

 

 

 

잠시 후 차를 뷰포인트에 세워 준다.

 

강 건너편은 절벽. 만약 성문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 강을 건너고, 다시 톨레도의 성벽을 넘어야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구경 화약무기가 발달하기 전까지 톨레도로 쳐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알 수 있다.

 

 

 

 

오른쪽의 알카자르와 비슷한 높이인 첨탑이 톨레도의 카테드랄이다.

 

성-속 권력의 경쟁 구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살짝 다른 각

 

 

이런 장난을 쳐 보고 싶게 하는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저 올망졸망한 골목길.

 

잠시 후, 저 골목길에서 좌절하게 된다.

 

저 골목 안에 갇히면 길찾기의 제왕도 당황하게 된다. 바로 옆에 저만한 높이의 대성당이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혹시 이런 것도 침략자에 대비한 설계인 것일까.

 

 

도시의 서편. 아무튼,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라 그냥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게 된다.

 

 

 

이건 동쪽 다리. 그러니까 정면의 성문(북문)이 있고, 다리는 동편과 서편에 하나씩 있다.

 

 

북쪽 성문을 통해 다시 성 안으로.

 

이제부터 본격적인 도보 톨레도 관광이 시작된다.

 

 

 

아니 웬 롯데리아...

 

근데 잘 보면 t가 하나 없다. 저 로떼리아는 복권. lotto와 같은 어원이겠지?

 

 

지금까지는 그나마 넓은 길. 사실 저렇게 차가 서 있지만, 톨레도 주민들은 대체 이 골목으로 어떻게 차가 다녀? 싶은 곳까지 차를 끌고 돌아다니는 듯 싶다. 뭐 동네가 동네다 보니 적응한 것이겠지만.

 

 

 

그런데 예쁘다 예쁘다 하고 다니다 보니 길을 잃었다. 뭐 여행 다니면서 길 찾는 거야 평소 일도 아니라고 자부했던 터라 아무 걱정 없이 잘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여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위를 올려다 봐도 저렇게 자기 머리 위의 하늘만 보여.

 

 

밑을 봐도 표지판 하나 없고...

 

 

저렇게 빤히 보이는 건물도 막상 가다 보면 길이 없고 건물은 사라져 버린다. 골목길의 마술이다. 나중엔 무서워진다.

 

 

한참을 헤맨 뒤에 가까스로 도착한 카테드랄. 저 첨탑이 그 도시 밖에서도 잘 보이던 바로 그 첨탑인데, 막상 도시 안에선 저 첨탑이 보이질 않는다. 물어 물어 간신히 찾았다. 골목이 하도 복잡하니 현지인들도 마땅히 가르쳐 주기기 쉽지 않은 듯. 톨레도 가시는 분들은 농담 아니고, 나침반을 휴대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웅대한 카테드랄의 규모. 막상 대성당 앞에도 공터가 없으니 건물의 규모가 제대로 드러나는 사진은 감히 찍을 방법이 없다.

 

곧 내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청나게 크고 장대하다.

 

 

엘 그레코의 도시에 왔으니 역시 엘 그레코 앞에 서야 한다. 그가 1603년에 남긴 'Santo Doming'라는 작품.

 

 

 

이런 식으로 엘 그레코의 그림들이 전시된 공간을 살짝 지나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걸개 그림이 방문자를 반긴다. 아직 놀라면 안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스페인 역사의 진짜 수도는 마드리드가 아니라 톨레도였다는 것은 카테드랄을 보면 안다.

 

 

이제 슬슬 익어가는 카테드랄의 기본 구조. 가운데에는 파이프오르간과 성가대석이 있다.

 

 

 

 

 

규모는 세비야 카테드랄이 더 클 수 있으나, 장식의 화려함은 톨레도 카테드랄이 훨씬 앞서 있다.

 

 

 

 

황금색으로 뒤덮인 장식 속에 곳곳의 이런 목각이 눈길을 잡는다.

 

 

 

진정 요란한 주 제단.

 

 

 

 

역시 딱 보면 알 수 있는 엘 그레코의 손길.

 

 

뜻하지 않은 곳에서 카라밧지오의 그림을 만난다. 그가 그린 San Juan Bautista.

 

스페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San Juan Bautista는 앞서도 말했지만 Saint John the Baptist, 즉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스페인식 표기다. 어디선가 '바우티스타 성인'이라는 기이한 번역도 본 것 같다.

 

 

 

더 화려한 왕실 예배당(Capilla Real). 아무튼 이 카테드랄의 주제는 '화려함'이다. 금색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용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위쪽을 바라보면 채광창을 통해 왕실 예배당으로 햇살이 비친다. 신비롭다.

 

 

 

그리고 그 앞쪽에는 엘 그레코의 12사도 그림이 있다. 익숙한 사람은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누가 봐도 엘 그레코'.

 

 

 

그렇게 해서 카테드랄과 이별하는 길.

 

 

 

 

 

부속 건물은 고승들의 묘지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카테드랄과 이별.

 

엘 그레코를 찾아 산토 도메 성당까지 가는 것이 당초의 목표였으나 불행히도 알카자르에서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잡아 먹고, 카테드랄을 찾느라 너무 헤매는 바람에 감히 산토 도메 성당을 찾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리 예매해 놓은 열차 시간이 달랑달랑.

 

어느 분이 톨레도는 관광객이 떠나간 오후 다섯시 이후가 진짜 끝장이라던데, 안 그래도 언젠가는 톨레도에서 하룻밤 자 보고 싶다.

 

 

 

그렇게 해서 톨레도 역으로 복귀.

 

 

그래도 톨레도에 오면 꼭 먹어 봐야 한다는 마사판(Mazapan)은 한 상자 샀다.

 

엄청나게 달다. 우유나 쓴 커피가 없으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

 

이렇게 해서 스페인에서의 열흘간이 지났다. 총정리편은 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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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Toledo. 실질적인 스페인의 역사적 수도. 현재의 수도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수도가 된 것은 1561년, 펠리페 2세 때의 일이다. 그 전까지 마드리드는 작은 소읍에 불과했고, 스페인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럼 스페인의 빛나는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가야 할 도시는 어디일까. 사실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 세비야 - 마드리드까지 '꼭 가야 하는 도시'를 잡아 놓고 그 틈새에 어느 도시를 가야 할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슬람 유적의 코르도바와 절벽미의 론다, 피카소의 말라가, 백설공주의 도시(?) 세고비아와 요새 도시 쿠앵카 등등의 후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마드리드 일정에서 하루를 빼서 간다면 엘 에스코리알톨레도 중 골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엘 에스코리알 El Escorial 은 수도원/학교/묘지를 겸하고 있는 곳으로,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에 천도한 이후 이 도시를 기념하기 위해 강력한 역사적 기념물을 남기고자 하는 야망으로 건설한 거대한 구조물이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해서,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엘 에스코리알은 일단 교통이 좀 불편하고, 지명도가 그리 높지 않은 탓에 가 본 사람이 별로 없는데다, 대부분 장소들이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 뭔가 자료를 참고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사진을 못 찍으면 가 봤다고 잘난체 하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아무튼 도보 이동을 매우 싫어하는 동반자가 있는 이상 이동 경로가 복잡한 건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 첫번째 스페인 여행이라면 톨레도를 빼놓아선 안 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남쪽의 아토차 Atocha 역에서 톨레도 행 AVE를 타는 것이 가장 손쉽고 빠른 길이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노선이라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도 AVE가 다니고 있어 30분이면 도착한다. 왕복 요금은 50유로 가량 소요.

 

그래서 바쁘지 않은 사람이라면 왕복 10유로 정도면 해결되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단 버스를 탈 경우 1시간~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정보. 뭐 조금만 부지런했더라면 버스를 탈 수도 있었는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기차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도착한 톨레도. 물론 톨레도는 중세의 성곽 도시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시내에 기차역이 있을 리 만무하다. 역은 성에서 차로 약 5~10분 거리에 있다. 걸어가는 것도 괜찮겠으나 30분 가량 소요. 별 고민 없이 택시를 탄다. 4~5 유로.

 

거리를 생각하면 아까울 수도 있겠지만 비싼 기차까지 탄 마당에.

 

 

 

그렇게 해서 순식간에 톨레도 성문 앞에 도착한다. 저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톨레도가 시작된다.

 

 

 

택시를 타든 뭘 타든 바로 이 소코도베르 광장 Plaza de Zocodober 광장에서 내린다. 물론 광장이래봐야 농구 코트가 2개 이상 들어가기 힘든 크기다. 왼쪽의 'OPEN'이라고 써 있는 곳이 미니열차 Zocotren l의 출발/종착점. 자동차가 딸린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꼭 타 봐야 할 시설이다. 

 

 

소코도베르 광장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모습. 그러니까 남쪽 대문을 통해 톨레도 성에 입성해 소코도베르 광장까지 걸어 올라왔다면 바로 이 각도에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관광객들은 저어기 보이는 맥도날드(고성에 웬 맥도날드냐고 놀리지 말 것. 바로 옆에는 KFC도 있다. 엄청나게 잘 된다) 매장에서 왼쪽 길이나 오른쪽 길을 택해 걸어 올라가며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일단 왼쪽 길로 올라갔다. 이유는 이 도시의 알카자르를 보기 위해서.

 

 

대략 엇비슷하게 비교하자면, 알카자르는 스페인식 성곽 도시의 방어 핵심 구조물이다. 외성벽이 돌파되어 적이 성 안에 밀려들어왔다고 할 때 두번째 수성전을 전개할 만한, 도시 안의 도시라는 느낌이다. 일본식 성이라면 천수각의 의미라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 혼자 생각이지만 - 대부분의 스페인식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두 건물은 알카자르와 카테드랄(대성당)이다. 카테드랄이 카톨릭의 귄위를 상징한다면 알카자르는 왕이나 영주의 세속 권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영주들은 알카자르를 건설할 때 카테드랄에 기가 죽지 않도록, 보는 이들이 위압감을 느끼도록 심혈을 기울인 것이 아닐까 싶다.

 

카테드랄은 화려하며 장식적이고 우아하되 알카자르는 남성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강직한 미감을 지닌다. 특히 톨레도의 알카자르가 갖고 있는 이런 매력이 극대화된 형태가 바로 엘 에스코리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나는 왠지 이런 쪽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현재 톨레도의 알카자르는 군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를 들어가면, 이 거대한 건물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 동안 개축을 거듭해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적이 나온다.

 

 

 

그리고는 바로 전시 시작.

 

그런데 이 전시물이라는 것이 왕년의 밀덕 또는 어쨌든 잠재적 밀덕이라고 할 수 있는 10대~60대 남성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것인 반면, 여성 관람객들에게는 대체 이따위 것들을 왜 시간 내서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런 식. 스페인을 천년간 장악했던 무어 인 기병의 기본 무장이다.

 

 

 

그리고 많이 보던 스페인식 풀 플레이트 Full Plate 갑옷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역시 사이즈는 작다.

 

 

이런 식의 챙 있는 투구는 불행히도 과거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선 별 감흥 없는 역할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나 영국 해적들을 영웅으로 그린 영화들에선 이 투구는 곧 '거드름은 피우지만 전투만 했다 하면 깨지는 스페인 세력'의 상징이었으니.

 

 

흥미로운 전시. 슬라이드를 이용해 역사적인 전투 현장을 저 노란색과 빨간색 부대 이동을 통해 설명한다. 바닥의 굴곡은 당연히 현지의 지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역사 교육을 위한 박물관 등에선 충분히 활용할만한 모습이다.

 

 

 

 

대략 3층까지는 과거 알카자르의 자리에 있었던 옛 건물의 토대 발굴 현장을 같이 보여준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현재의 알카자르가 위용을 드러낸다. 네 귀퉁이의 첨탑을 빼고 대략 5~6층 높이라는 느낌.

 

 

 

 

내다보면 그 주위는 모두 평원이다.

 

 

 

어쨌든 이렇게 생긴 건물.

 

 

 

 

 

 

 

 

 

 

정교하고 아름답다. 손 크기까지 고려해 맞춤 제작하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

 

 

 

 

 

수많은 실전을 거치며 주인을 보호했을 갑주의 모습. (아니면 단순히 보관상의 실수로 때가 묻은...?)

 

 

이렇게 보면 저 갑옷의 주인공들이 그리 큰 체구는 아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초기의 총기들은 외형만으로 참 매력적이다.

 

 

영어로는 Musketeer라고 불렀을 총기병.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총사 銃士 들의 스페인판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건물의 4층 정도로 올라오면 갑자기 화려한 장식적 공간이 나타난다. 이른바 '하늘 위의 중정 Pateo' 인 셈이다.

 

 

 

 

 

 

 

 

과거 왕가의 문장을 전시한 곳에서 확 눈에 띄는 문장. 바로 합스부르크 가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다.

 

 

합스부르크 가라면 대개 오스트리아를 연상하지만 카를 5세(1500~1558, 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의 후손들은 대표적인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스페인 군주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이자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문장. 아무리 봐도 스페인의 역사적 전성기는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결혼과 스페인 전토 통일(그리고 비슷한 시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달), 카를로스 1세에서 펠리페 2세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 16세기 시절로 여겨진다.

 

카를로스 1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미남 필립'과 페르디난드-이사벨라 부부의 유일한 혈육인 요아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미 탄생과 동시에 네덜란드와 스페인 왕위를 확보했고,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가 죽으면서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현재의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상당 부분과 이 나라들의 모든 해외 영토를 한 손에 거머줜 강대한 권력자가 등장한 것이다.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 대제(나라에 따라 샤를마뉴, 찰스, 칼, 카를로스라고 발음만 다르게 불리는 이름들의 조상) 이후, 그리고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유럽의 패왕이 되기 전까지 이렇게 넒은 영토를 독차지한 유럽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독일/오스트리아에 기반을 둔 합스부르크 왕가의 종손이었기 때문이고, 그리 보면 카를로스 1세 자신의 스페인 혈통은 50%에 불과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이 왕에게 굳이 그리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비유를 하자면 명나라 황제가 조선 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조선과 명나라 모두의 황제가 되고, 그 후손들이 조선의 왕으로 이 땅을 다스린 뭐 그런 상황이라고 할까. 아무튼 스페인 왕이고 사후에도 아들 펠리페 2세를 비롯해 줄줄이 그 후손이 스페인 왕가를 차지한 데 대해 막상 스페인 사람들은 별 불만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런 논의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여담이지만 카를 5세의 후손들인 합스부르크 왕들의 대가 끊긴 1700년에는 역시 스페인 공주를 어머니로 두었지만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태어난 프랑스 왕가의 후손 필립 5세 -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 가 스페인 왕이 되면서, 부르봉 왕가의 스페인 왕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렇듯 스페인 왕의 계보를 보면 국내파보다는 수입파가 훨씬 더 많은데, 대체 왜 그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졌는지는 공부가 짧아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 쌍두 독수리 가슴의 방패가 저렇게 복잡한 것은 저 문장에 들어가야 할 상징물이 그가 다스린 지역의 수만큼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 멋진 형이다.

 

 

 

 

느닷없이 등장하지만 세고비아의 알카자르. 바로 디즈니랜드에 있는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이 되었다는 그 성이다.

 

물론 뮌헨에 가면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은 퓌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라고 한다(사실 이쪽이 더 비슷하다).

 

뭐, 세계의 온갖 성 중에서 가장 멋진 것들을 모아서 지었겠지, 당연히.

 

 

 

 

 

 

대표적인 기병들의 군도인 사브르. 어찌 보면 무어 인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현대로 넘어오면 스페인 내전기의 무기들이 등장한다.

 

 

바로 스페인 인민전선군 - 그러니까 프랑코에 맞서 싸운 쪽의 기본 스타일이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록은 이번 여행에서 가 본 스페인 어디에도 짙게 남아 있었다.

 

 

전시물은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봐도 좋을 정도로 방대했다. 간혹 가다 이런 깜찍한 전시물도 있다.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투 장면 묘사.

 

 

정원으로 나오면 보오얀 톨레도 교외가 펼쳐진다.

 

 

살짝 장난친 그림. 그리고 건물 밖에는 중세 ~ 근세의 무기들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묘한 물건이 눈길을 끌었다.

 

 

아니 이 친숙함은 뭐지...?

 

 

 

 

 

영화 '신기전'을 보신 분들이면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가? 바로 조선시대의 다연장 로켓 무기인 화차의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신기전(神機箭)을 장착한 화차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다.

 

 

 

정면으로 보면 더 많이 보던 그 물건이다.

 

 

이름도 Hwach. 화차의 공식 표기인 Hwacha와 한끗밖에 다르지 않으니 중국이나 일본의 비슷한 물건을 가져다 놓은 건 아닌 듯 싶다. 저 설명을 독할 능력은 없으나 동양에서 온 물건(oriental로 추측해 보건데) 이라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대체 어쩌다 이 화차는 이역 만리, 톨레도 알카자르 앞에까지 와 있게 된 것인지.

 

물건의 인연이 기구하기도 하다. 아무튼 아방(我邦)의 흔적을 만리 밖에서 만나니 실로 반갑기 짝이 없었다.

(이건 뭐냐 열하일기도 아니고...)

 

알카자르 방문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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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밤 풍경을 보기 위해 나섰다.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가 봐야 한다고 하는 곳은 마요르 광장 주변과 푸에르타 델 솔. 그래서 마드리드의 상징 중 하나인 마요르 광장 Plaza Mayor 근처로 나섰다.

 

 

 

마요르 광장 역시 스페인의 다른 광장들처럼 건물로 둘러 싸여 있다. 애당초 처음에는 광장이 있고 그 주위에 건물이 선 것이겠지만, 이제는 광장을 보기 위해선 건물들 사이로 난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이런 느낌.

 

문득 지금도 약간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청계천 구 세운상가 언저리의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쇠락한 동네가 되어 가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그 구름다리같은 청계천 상가의 기둥 아래로 제과점이며 술집, 금은방 같은 점포들이 이어졌다.

 

마요르 광장 주변의 고풍스러운 기둥과 가스등 느낌의 가로등, 그 노리끼리한 불빛 아래, 마드리드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신다. 이야기가 넘쳐 난다. 구경꾼은 알 수 없는.

 

 

 

광장 안쪽. 당연히 북적이고 있다.

 

 

딱 나와 있기 좋은 날씨. 선선하고 보송보송하다.

 

 

펼쳐 보면 이런 모습.

 

 

광장을 둘러싼 건물 틈으로 나오는 문(물론 여닫는 문은 아니다) 하나 하나 마다 이렇게 이름까지 붙어 있다.

 

 

광장 서쪽으로 나오면 불이 환한 거대한 유리장 같은 것이 보인다.

 

사진을 클릭해 보면 건물 왼쪽 위로 간판이 있다. Mercado de San Miguel. 산 미구엘 시장이다.

 

 

 

이 위치. 대략 광장과 비교해 봐도 결코 만만찮은 규모다.

 

 

밤 열시 가까운 시간인데 아직도 불야성.

 

유럽 다른 지역 사람들이 스페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거라고 한다.

 

(물론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같을 거라고 생각된다.)

 

 

 

스페인에서 가는 곳마다 입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풍성한 과일.

 

태양의 혜택을 받은 과일들이 진한 원산지의 맛으로 다가왔다.

 

 

가격도 꽤 괜찮은 편. 반건조 무화과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 딱 한국 밤 같은 생긴 밤이 있고, 그 옆에도 어디서 많이 보던 과일이 있다.

 

그렇다. 한국의 대봉시와 똑같이 생긴 감이다.

 

그런데 대봉시보다 100배쯤 맛있다. 모습은 대봉시지만 내용물은 단감인데, 딱딱한 단감이 아니고 살짝 말캉해서 망고보다 약간 더 단단한 상태의 단감(감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떤 상태인지 아실 수 있을 거다). 그 맛난 스페인 과일 가운데서도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막힌 맛이다.

 

잘 보면 과일의 이름은 Kaki, 즉 일본어로 감이다. 일본에서 수입된 감이 스페인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 꽤 고전적인 향취를 느끼게 한다면 산 미구엘 시장은 그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물론 시장 구석구석마다 이렇게 즉석에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게 해 놓았다는 점은 똑같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이다.

 

 

 

금요일 밤이다 보니 사람들이 와글와글.

 

 

그리고 문득 젓갈과 비슷한 신기한 비주얼 발견.

 

 

뭔가 지렁이 같은 비주얼이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저 Gulas라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별미로 장어의 새끼를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저렇게 마트에서 파는 Gulas는 큰 생선(주로 대구) 살로 만든 가짜 새끼 장어라는 것.

 

즉 장어의 비주얼을 가진 '새끼장어 맛살'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게맛살을 먹듯이 이쪽에선 또 이런 걸 먹는다.

 

 

 

빠에야에 와인까지 곁들여도 5유로. 싸다.

 

 

 

 

가격표를 보기 전까지는 오향장육인 줄 알았다. 삼겹살 같이 생긴 초콜릿 과자. 얇은 막을 여러 겹 붙여 튀겨낸 듯한 맛이다. 페스추리 Pastry 의 느낌?

 

 

 

같이 어울려 당장 뭘 먹고 싶은 분위기. 아예 끼니를 여기서 때울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 자리에서 저렇게 굴을 까서 화이트와인과. 그리고 그 곁엔 친숙한 타바스코. 침이 절로 넘어간다.

 

 

영국처럼 모든 사람이 서 있는 펍의 분위기는 아니고, 웬만큼 앉을 자리가 있으면 다들 앉아서 먹는 느낌.

 

 

 

헉. 아구 ;;

 

바로 옆이 수산물 매장으로 이어지지만 냄새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한국 대형마트의 수산물 코너와 비교해도 그 반의 반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마트 수산물 매장의 위생 관리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위 이름표에서 볼 수 있듯 아귀는 스페인어로 Rape다. (영어 아니다)

 

이 이름표를 보고 웃음이 난 이유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해산물 스튜 사르수엘라 Zarsuela를 먹었을 때, 웨이터에게 이 스튜의 국물은 뭘로 내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Rape가 주 재료라는 거였다. 대체 그게 뭐냐.

 

그때 그 웨이터 형이 그려준 그림이 이랬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건 저 그림을 보고 아귀라고 맞췄다는 것. ^

 

 

 

 

그리고 여러분이 스페인에 가시면, 꼭 드셔봐야 할 것이 - 물론 지금까지 꼽은 것도 엄청나게 많지만 - 바로 저 물건이다. 빨간 새우. 카라비네로 Carabinero 라고 한다. 저 선명한 붉은 색을 제외하면 한국 대하와 똑같이 생겼는데, 제철에 먹는 대하나 타이거 새우보다 조금씩 더 크다. 지중해 산으로 이탈리아에서는 감베로 로쏘 Gambero Rosso 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래 조그만 숫자를 보면 1Kg에 70유로. 대략 9만5천원 정도 되니 절대 싼 식재료는 아니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살도 살이지만 대가리에서 정말 진한 국물이 나온다. 너무너무 맛있다.

 

지난번 글 http://fivecard.joins.com/1262 에서 소개한 벤타 엘 부스콘에서 먹으면 이렇게 나온다. 오른쪽 아래에 수줍게 숨어 있는 빨간 애들이 바로 쟤들이다.

 

 

 

시장을 나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여기가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형태의 술집인 메손 Meson이 즐비한 산 미구엘 거리 Calle Cava San Miguel.

 

 

 

 

저 계단을 올라가면 마요르 광장으로 통한다.

 

 

그래도 한군데는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음?

 

 

물론 1년 내내 관광객이 밀어닥치는 곳이니 본래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뭔가 스페인의 정취가 느껴진다.

 

 

 

마드리드 특산물이라는 코시도 마드릴레뇨를 판다는 간판.

 

마드리드에 한 1주일만 있었어도 저런 집들을 찾아다니며 마드리드의 맛을 더 연구하련만.

 

이렇게 해서 마요르 광장 밤 풍경 스케치를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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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둘쨋 날. 여전히 날씨는 흐리고, 동행인은 쇼핑을 원한다. 가난한 여행자의 마음에 그늘이 진다.

 

생전 처음으로 H 브랜드의 매장을 들어가 보고, 스페인을 대표하는 엘 코르테 잉글레스 El Corte Ingles 백화점도 가 보고... 뭐 그런 오전. 국내에서 살 수 없는 청바지를 잔뜩 샀다.

 

(여담이지만 국내 의류 메이커들은 허리 사이즈 34인치가 넘는 사람은 그냥 자루만 만들어 줘도 감사하며 입으라는 태도를 언제 버릴 지 궁금하다. 뚱보들도 디자인이 들어간 옷을 입고 싶다.)

 

 

 

그리고 찾은 곳이 바로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제2의 미술관인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공식 명칭은 국립 아트센터 뮤지엄 레이나 소피아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꽤 길다. 프라도가 고전 미술 작품의 총 본산이라면 레이나 소피아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곳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파리의 퐁피두 센터와 비교할 만 하다고 할까? 본래 병원이었던 건물을 1986년 개축했고, 설립자인 레이나 소피아 왕비의 이름을 땄다.

 

저 대형 엘리베이터 박스가 붙은 쪽이 정문이라는데 정문은 사실 눈길이 별로 가지 않고...

 

 

 

후문 쪽이 진짜 현대 미술관 답다.

 

 

 

아무 것도 안 써 있는데 분명히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일 것 같은 대형 조형물이 서 있다.

 

나중에 보니 제목이 '붓놀림(Brushstroke)' 이라고. 그렇게 알고 보니 붓처럼 보인다.

 

 

천장과는 또 이런 조화.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의 식당이 괜찮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가격이 꽤 괜찮은 편.

 

그리고 비프 스테이크가 express menu에 있다는 점도 꽤 인상적이다.^^

 

 

 

식사와 함께 미술관을. 그리고 휴식을. 아주 좋은 느낌이다.

 

 

 

 

 

많은 분들이 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를 정확하게 안다. 2층 옆에 써 있다. 게르니카 Guernica 라고.

 

 

 

엘리베이터에서 바라본 풍경.

 

 

 

이 미술관도 마찬가지. 사진을 찍지 말라는 표시는 분명히 되어 있으나, 대부분 지역에서 사진을 찍건 말건 별 관심이 없다.

 

형식적으로라도 '사진을 찍지 말라'는 역할을 해야 할 안내원(?) 들은 꽤 많이 배치되어 있다. 하는 역할에 비해 사람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적 배려라는 느낌이다. 만약 사설 미술관이라면 정말 남아 도는 인력이 많다.

 

아무튼 그 사람들도 딱 한 군데, 게르니카 근처에서는 사진 찍기를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그래도 게르니카가 어떤 식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건너편 전시실에서 찍은 장면.

 

저 방 안으로 들어가면 한 벽 가득 게르니카가 펼쳐져 있다.

 

매우 크다. 방 안에서는 어차피 그림 전체를 찍을 각도가 안 나온다.

 

 

 

 

1937년 4월26일. 히틀러의 독일 공군이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한 사건이다. 165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런데 배경을 알고 보면 더 기가 막히다. 당시 스페인과 독일은 전쟁중도 아니었다. 스페인은 내전중이었고, 뒷날 이 폭격은 프랑코가 독일 공군에 요청해 이뤄진 것임이 밝혀졌다. 바스크 인들의 민족주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공격이었다는 얘기다.

 

외국군을 요청해 자국 국민을 학살한 만행에 분노한 피카소는 강렬한 그림을 그려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전시하고 이를 규탄했다. 프랑코가 집권한 이상 이 그림은 스페인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뉴욕 현대미술관의 간판이 되었다. 프랑코 사후 그림이 돌아올 수 있게 됐을 때에도 스페인의 모든 미술관이 이 작품을 원했고, 경합 끝에 레이나 소피아가 최종 승자가 됐다.

 

 

 

피카소는 이후 이런 그림도 그렸다. '한국에서의 학살'. 6.25 전쟁 중 한국에서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 어디 한두번이었을까. 이 그림은 그중에서도 황해도 신천에서 있었던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실은 대략 이런 느낌. 프라도 보다 세련된 느낌이 든다.

 

 

네 방향을 둘러 싼 본래 병원 건물답게 중정 patio 가 있고 가운데 제법 나무가 우거졌다.

 

 

 

인상적인 그림을 발견하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제목과 작가 이름 적은 메모를 분실.

 

 

 

어디에나 별 관심 없이 학교에서 가잔다고 온 아이들은 구석에 '짱박히기' 신공을 구사한다.

 

 

 

 

 

이번엔 메모를 같이 찍었다. 루치아노 파브로라는 이탈리아 작가.

 

무라노 글래스를 이용한 작품이 매우 인상적이다.

 

 

 

 

반면 존 케이지의 '소리 전시'는 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현대미술도 분명 유행을 탄다. 그리고 '현대'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 이후 치러진 수많은 실험들 가운데서 이제 걸러 낼 것은 냉정하게 걸러 낼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에는 매우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에 와서는 미술관 한 구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먼지만 쌓여가는 쓰레기 대접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세월을 견뎌 내지 못하는 것을 강제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닐까.

 

 

 

레이나 소피아의 중정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애정행각을 펼치고

 

 

누가 봐도 칼더의 작품인 모빌 하나가 무심히 아이들을 내려다 본다.

 

 

엇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

 

 

알고 보니 호안 미로의 작품.

 

 

 

 

이 얼굴을 희화화 한 느낌이더라니까... 뭐 느낌이 안 오면 말고.

 

 

 

 마드리드의 하늘은 계속 부옇게 흐려 있고,

 

 

어느새 뉘엿 뉘엿 해가 넘어가는 오후. 건너편에 바로 아토차 역이 있다.

 

 

그러고 보니 레이나 소피아 바로 앞이 작은 호텔촌이네.

 

베란다에 나와 레이나 소피아를 보는 것까진 좋은데 바로 역 앞이라 꽤 시끄러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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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들렀던 두 군데의 맛집을 소개한다.

 

두 집 모두 어찌어찌 추천을 받아 간 집인데, 정말 훌륭했다.

 

먼저 카사 밍고 Casa Mingo. 통닭집이다.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가 알 정도로 현지에서 유명한 집.

 

그렇다고 비싸고 럭셔리한 집이 아닌 동네 맛집 같은 분위기이니 여행자에겐 더욱 좋다.

 

 

 

외관. 밤에 불이 들어오면 그럴싸한 위치다. 시내의 다운타운은 아니고, 왕궁에서 약간 남서쪽 외곽에 있다.

 

서울로 치면 마포나 여의도 정도의 위치?

 

 

스페인식 저녁 타임으로는 살짝 이른 8시였지만 손님은 꽤 들어차 있었다.

 

드시는 모습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집의 주 메뉴는 영계구이 Pollo Asado, 즉 통닭이다.

 

 

 

초점이 흐려졌지만 주 메뉴인 Pollo Asado는 10.2 유로 정도. 그리고 이 집에서 꼭 맛봐야 하는 두 가지를 더 안내받았다. 하나는 시드라 Sidra. 그리고 또 하나는 아사디요 Asadillo y ventresca 다. 시드라 옆의 3/4는 아마도 리터를 말하는 듯(즉 750ml).

 

 

 

시드라는 영어로 사이다(Cider). 이 대목에 얘기하자면, 대체 왜 레몬 소다 맛의 청량음료가 왜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는지는 역사의 미스테리다. 미국의 세븐업이나 스프라이트에 해당하는 음료를 '사이다'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인 것으로 안다.

 

그 밖의 나라에서 사이다는 사과를 주 원료로 하는 와인을 가리킨다. 모든 사이다가 스파클링 와인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마셔 본 사이다에는 모두 적당량의 탄산이 들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줬다. 와인이라고 했지만 도수도 10도 미만. 맥주보다 약간 독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아사디요 이 벤트레스카, 혹은 벤트레스카 콘 피멘토스라는 이름의 이 음식. 그리 맵지 않은 고추와 토마토에 간 닭고기를 함께 볶은(보기에 따라서는 졸인) 음식이다. 마늘과 양파도 상당량 들어간 듯 한 맛. 한마디로 한국인 입맛에 딱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고추참치 통조림의 양념 맛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뽈로. 사전상으로 Pollo는 병아리를 뜻한다고 되어 있지만, 병아리라고 보기엔 만만치 않은 크기다. 한국에서 삼계탕 재료로 사용하는 웅추보단 최소 1.5배는 더 큰 사이즈. 기름을 쪽 빼고 껍질이 바삭바삭하게 구워 절로 침이 넘어간다. 냄새가 그만.

 

 

가게 한 구석을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한때는 한국에도 많았던 저 닭 굽는 틀. 이집 특유의 오븐 안에서 뽈로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실 한국식 통닭은 저렇게 굽고 끝나지는 않았다. 왕년의 통닭 명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저렇게 전기 틀에 넣고 굽는 것만으론 껍질의 식감이 그리 바삭바삭해지지 않아 손님 상에 내 가기 직전에 통째로 기름에 한번 튀겨 낸다고 한다. 그런 비밀이 있었다는.

 

 

어쨌든 먹는 법은 단순하다. 닭 살을 쭉쭉 찢어서 아사디요를 소스로 활용해 발라 먹으면 된다. 아사디요 바른 닭을 먹다가 목이 막히면 시드라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한국에 치맥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시드라와 뽈로의 컴비네이션이 있었다.

 

맛은 최고. 아사디요 레서피를 알아 오면 국내 치맥 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 듯 싶었다.

 

 

 

정면 사진은 못 찍었으나 저 대머리 홀 서빙 아저씨, 관광객 응대의 기본기가 충실한 프로였다.

 

말이 통하고 안 통하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눈빛과 몸짓 하나 하나가 친근감을 더한다.

 

잘 나가는 집이라 그런지 회전도 꽤 빠른 편.

 

 

 

이 정도의 포만감으론 적절한 가격이라 여겨진다. 만족.

 

 

 

 

 

돌 벽에서도 관록이 느껴진다.

 

그 다음. 벤타 엘 부스콘 Venta El Buscon.

 

 

마드리드의 중심인 솔 광장 Puerta del Sol 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낮이나 밤이나 사람이 부글부글한 솔 광장의 곰 동상에서 동쪽으로 두번째 골목... 정도로 설명하면 될 듯. 찾기도 쉽고, 한참 걸을 필요도 없다. 그란 비아 주변에서도 충분히 도보로 도달 가능한 거리다.

 

Venta El Buscon은 좀 묘한 이름이다. Venta는 매상/수입/판매, Buscon은 사기/갈취 뭐 그런 뜻이라는데, 명색이 장사하는 집이면서 주인이 손님을 갈취한다는 뜻은 아닐테고, 느낌상으론 '이문 생각 없이 막 퍼주는 가게' 정도의 작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전에 어딘가 있었던 '주인이 미쳤어요' 정도의 가게 이름?

 

 

 

이 집에서 가장 가성비가 높은 메뉴로는 빠리야다 데 마리스코 Parrlliada de Marico 를 꼽는 분위기다. 뭐 이름은 길지만 우리말로 바꿀 때 '해산물 모듬'으로 불러 무리가 없을 듯 하다.

 

 

 

해산물이라고 하지만 어패류는 없고 모두 해양 갑각류. 바닷가재 Lagosta,  빨간새우 Carabineros, 닭새우 Cigalas, 대하 Gambas 가 나온다. 모두 맛으로는 한몫 하는 친구들이다.

 

18유로짜리 고기 모듬은 어떤 맛일지.^^

 

 

 

 

이건 안에서 문쪽으로 바라본 구도. 거리의 노천 식당이 가까이 있는데, 나름 보도는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반면 안쪽은 왁자지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기있는 동네 주점 분위기. 바며 테이블이며 꼭꼭 들어찼다.

 

 

 

 

도시 한 복판의 느낌이 절로 난다.

 

 

 

음식이 나왔다. 해산물 모듬 한 접시, 구운 야채(아스파라가스, 파프리카, 호박, 버섯 등) 한 접시, 그리고 전형적인 샐러드 한 접시.

 

구운 야채에서 나는 냄새도 향기롭기 그지없다.

 

 

꿀꺽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주인공은 이쪽. 몇마리 까 먹다 말고 황급히 사진을 찍었다.

 

달고 감미롭다.

 

 

 

 

 

특히 전날, 시장에서 바로 저 빨간 놈들을 본 터였다.

 

스페인에 가시는 분들, 꼭 저 빨간 놈들을 드셔 보시기 바란다.

 

새우의 신기원이다. 대하도 맛이 좋지만, 저 놈들은 국물의 농도가 다르다.

 

아 침 넘어간다. ;;

 

잠시 후....

 

 

뭐 이렇게 될 수밖에...

 

밖으로 나오면 바로 솔 광장의 번화가로 연결된다.

 

 

 

 

북적이는 인파를 뚫고 걸어서 호텔로. 사실은 이 날이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래서 맛난 음식에도 불구하고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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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로 가는 길은 고속전철 AVE 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소 흐린 날씨. 새로 지어진 세비야 산타 후스타 역은 최첨단 시설을 자랑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한가로움도 좋지만, 역시 초행 여행자라면 기차를 이용하는게 좀 더 안정된 여행의 지름길인 듯.

 

 

 

AVE 내부.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큰 짐칸이 따로 마련돼 있다. KTX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중간 정차 역에선 슬쩍 불안해서 한번 가 보기도 했다.

 

 

 

 

간단한 스낵을 파는 가운데의 휴식 공간이 인상적. 본격적인 식당칸은 아예 없었다.

 

 

마드리드 아토차 Atocha 역에 도착. 2시간 30분 소요.

 

마드리드로 오는 길에는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 중간에 워낙 명망 높은 관광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코르도바에서 1박을 할 생각도 있었지만 일단은 마드리드로 직행하는 것이 여러 모로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AVE를 이용해 오전에 이동하면 오후 시간을 편안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

 

 

이쯤 되면 현대 광고만 봐도 좀 반갑다.

 

 

역에 내리자 가는 빗발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택시 잡는 줄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보도로 뛰어내려 택시를 잡는다.

 

그러고 보면 역에 내려서도 별 말 없이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밀치고 지나간다.

 

이 고향에 온 듯한 친숙함은 뭐지? ^^

 

 

 

멀지 않은 그란 비아 Gran Via 거리의 아틀란티코 마드리드 Atlantico Madrid 호텔로 이동.

 

수영장이나 헬스클럽이 있는 화려한 대형 호텔은 아니지만 유서깊은 대도시를 여행하는 데 매우 적절한 호텔이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교통이 편했다. 1호선의 Gran Via 역과 5호선의 Callo 역이 지척이었고, 솔 광장은 걸어서 10분 이내에 위치해 있었다. 방이 좀 좁기는 했지만 깨끗하고 쾌적. 유럽 호텔들이 다 그렇듯 방이 좀 작은 것 빼곤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당시 마드리드 지역 1위였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호텔이었다. 추천.

 

http://www.tripadvisor.co.kr/Hotel_Review-g187514-d227459-Reviews-Hotel_Atlantico-Madrid.html

 

 

 

여장을 풀고 늦은 점심을 위해 '마드리드의 국물'을 먹으러 갔다.

 

마드리드의 국물, 라 볼라의 코시도 http://fivecard.joins.com/1177   참조.

 

 

그리고 나서 한걸음에 달려간 곳은 바로 프라도 미술관.

 

3대 뭐니 4대 뭐니 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흔히 우피치, 에르타미주, 프라도를 유럽 3대 미술관이라고 한다는데, 이 순위의 묘한 점은 파리의 미술관이 모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루브르나 오르세가 위의 세 미술관에 비해 모자란 점이 있단 말인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는? 뮌헨의 알타 피나코텍은?

 

아무튼 3대니 4대니 이런 숫자에는 신경쓰지 말자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고 프라도 미술관이 위대하지 않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거기에 규모와 컬렉션에서 딸리지 않는 미술관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

 

 

 

 

의외로 한산한 풍경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이 빽빽하다. 

 

마드리드를 다녀온 사람들은 흔히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에게 비해 볼 게 없다고들 한다. 마드리드가 스페인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된 게 그리 오랜 일이 아니고, 스페인 여행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게 되는 대성당이나 찬란한 아랍 유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관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그렇지 않다. 일단 톱스타 프라도가 있고, 레이나 소피아와 티에센 보르네제 미술관이 있다. 특히나 프라도는 벨라스케스, 고야, 무리요 같은 로컬 스타들과 루벤스, 엘 그레코, 보쉬 같은 용병들을 대거 끌어모은 진정한 미술관의 레알 마드리드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2층 중앙의 긴 복도. 벽에는 주로 루벤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날 프라도 미술관에서 4시간 정도를 보냈다. 미술관이 8시 넘어 문을 닫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술관 곳곳에는 모사를 하고 있는 캔버스가 펼쳐져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배려인 듯...?

 

 

물론 미술관에 가기 전에 두 권의 책, 성경과 그리스 신화는 반드시 읽고 가야 한다... 고 전에도 강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을 보고 '아, 여자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 아킬레스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작품을 즐기기 어렵다.

 

 

 

달리 미술관에서도 언급했던 파리스와 세 여신의 대면. 날개 달린 모자와 샌들을 신은 헤르메스가 파리스 옆에 있고 세 여신은 각각의 상징을 품고 있다. 각각 투구와 방패를 밑에 둔 아테네, 에로스가 매달려 있는 아프로디테, 공작을 거느린 헤라다.

 

...뭐 이런 그림이 수백점 있다.

 

그리고 눈길을 끈 그림 한 점.

 

 

 

멜렌데스라는 화가가 그린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엘 그레코의 유명한 그림 제목과 같다.

 

내용은 같다. 오르가스라는 백작이 선행을 많이 하고 신앙심이 두터웠던 덕분에 그의 매장 현장에 이미 죽은 성인들이 나타나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엘 그레코의 그림을 봐도 그렇고, 이 사람의 그림을 봐도 그렇고... 사람들의 놀라움이 '오오, 성인이 나타나다니, 역시 백작님은 위대한 분이셨어!' 라는 식의 것이라기 보다는 '으악! 유령이 나타났다!' 인 것 같아 좀 의아하기도 하다.

 

아무튼 비슷한 그림이라 놀랐다는 이야기.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내가 무슨 미술에 조예 깨나 있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 같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냥 호기심일 뿐.

 

이 미술관에서 보쉬의 '쾌락의 정원'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다는 벨라스케스의 '여관들(시녀들)'. '사진 찍지 말라'를 모토로 하고 있는 미술관이지만 실제로 프라도 미술관은 굉장히 사진 찍기 좋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그닥 통제하려는 시도도 없고, 사진을 찍으려는 포즈를 취한 사람에게 그냥 씩 웃기도 한다.

 

그래도 이 '여관들'이 있는 방만큼은 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통제를 하더라는. 그래서 문 밖에서 살짝 분위기 사진만 찍었다.

 

 

 

역시 벨라스케스의 '바쿠스의 승리(술꾼들)'이 있는 곳. 소심하게 멀리서...

 

직접 가까이서 그림을 보면 볼수록 벨라스케스는 천재라는 느낌이 든다.

 

어느 정도로 천재냐 하면...

 

약 400년 뒤에 태어날 미래의 사람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왼쪽은 프라도에 있는 '세바스찬 모라의 초상'이라는 난쟁이 그림. 그리고 오른쪽은... '왕좌의 게임'을 보시는 분이라면 너무도 잘 아실 배우 피터 딘클리지.

 

그림을 보고 허걱,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누가 저렇게 비교 사진까지 만들어 올려 놨다.

 

 

 

너무나도 광활하고 볼게 많은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서서 일찍 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추천하자면, 이 미술관에서 뭐니 뭐니 해도 벨라스케스의 대표작들과 고야의 '블랙 페인팅' 관 만큼은 놓쳐선 안된다고 하고 싶다.

 

고야는 일찍부터 화가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화가로 인정받은 초기 작품들은 사실 소박하다고 할 정도로 나이브한 느낌이 강하다. 농촌 정경이며,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동네 잔치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 그가 나폴레옹 전쟁을 겪고, 인간성이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한 만년에는 그림 자체가 바뀐다. 위에 가져다 놓은 '크로노스'도 대표적인 이 시기의 작품이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기를 해치는 자식이 나온다는 예언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을 모두 집어 삼켰다. 이런 어두운 심성을 표현한 시기를 고야의 '블랙 페인팅' 시대라고 말한다.

 

이 시기의 그림들을 보면 인간의 악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듯한 고야의 필치가 가슴을 뻥 뚫는 느낌을 준다. 전관, 수백점의 그림을 보더라도 고야의 블랙 페인팅 컬렉션 만큼 강렬한 느낌을 주는 곳은 또 없었다.

 

정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팁: 프라도에서 벨라스케스 관과 고야의 블랙 페인팅 전시실만큼은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이런 한적한 공간도 있다.

 

 

미술관에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술관 카페'.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슬슬 이런 카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꽤 오후에 미술관을 찾아 폐관 시간이 되어 나왔더니 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그런데 나와 보니 거리를 메운 시위대의 행렬. 아. 여기는 아직도 여전하구나.^^

 

 

 

시위 때문에 도로 교통이 마비되어 어찌 어찌 하다가 호텔로 귀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다.

 

 

 

 

 

 

호텔 야경과 함께 꿈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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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띄엄띄엄 올린 데 대한 사죄의 말씀. 어쨌든 1년 내에는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세비야 여행 중 스페인 광장은 좀 계륵같은 존재다. '김태희가 CF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사실 역사적인 유적도 아니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시성 공간이다. 다만 사진이 예쁘게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어머나 너 정말 유럽 갔다 왔구나'라는 평을 확실히 들을 수 있다.

 

그런 고민 끝에 아무튼 한번은 들러 보기로 했다. 카테드랄 앞에서 스페인 광장으로 가기 위해 가장 편한 방법은 트램을 타는 것. 택시를 타려 해도 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걸어 나가야 한다(카테드랄 주변은 도보 전용 구역이다).

 

걷는다 해도 30분 이내에 도착할 거리긴 하지만, 체력 보호를 위해 트램을 타기로 한다. 처음 세비아에 도착할 때 버스에서 내린 곳,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터미널 앞에서 내리면 된다.

 

 

 

깔끔한 내부.

 

정류장에서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표를 사게 되어 있는데, 차를 타고 나면 검표를 위한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경우 대개 '어쩌다 한번 검표 작업을 하는데 걸리면 50배 변상' 뭐 이런 규정이 있는 게 보통이다.

 

 

갈 때는 착하게 표를 샀는데 오는 길에는 자판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의지의 문제인지도...)

 

뭐 1.5유로 짜리 표를 아끼려고 한 건 아닌데.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터미널 바로 앞에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공원이 있다. 느낌상 이 공원이 터미널보다 먼저 생긴 듯.

 

공원은 해만 지면 바로 우범지역으로 변신할 것 같은 을씨년스런 포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용자도 그리 많지 않아 저렇게 노골적인 애정 행각을 펼치는 청소년! 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트램을 하차해 프라도 데 산 세바스찬 공원을 가로지르면 바로 스페인광장의 문에 해당한다.

 

아니 광장이라더니 웬 문, 하시는 분들은 일단 문을 통과해 보시면 안다.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거라 감흥은 없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 으리으리...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정경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런 반원형의 긴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양쪽에 이렇게 큰 탑이 스페인 광장의 상징 역할을 하는데 사진을 찍어 놓으면 꽤 그럴싸 하다.

 

 

 

다리와 운하도 그럴 듯. 운하에서 노 저어 주는 사공도 있다.

 

 

장난을 쳐 보면 이런 느낌.

 

 

그리고 맨 아래층엔 빙 둘러서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을 한 칸씩 타일로 꾸몄다.

 

대개 자신이 다녀온 도시들 사진을 하나씩 찍어 오곤 한다.

 

관광객의 전통을 따랐다.

 

 

 

관광객의 자세에 충실하게.

 

 

 

왠지 카메라에 있는 장난 기능을 마구 써보고 싶어지는 공간이다.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수시로 광장을 드나든다.

 

 

자동차는 매연을 남기고, 마차는 말의 **를 남긴다.

 

마른 **가 부서져 있다. 아기가 만지려 다가가자 엄마가 질색을 한다.

 

 

 

아무튼 사진 찍고 잠시 돌아보기엔 그럴 듯 한 곳이다.

 

해지고 저녁식사 후, 예정대로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갔다.

 

 

카테드랄에서 남쪽으로 죽 걸어가면 강가에 투우장이 나온다.

 

 

투우장 정문. 웬만한 축구장 규모다.

 

투우장 바로 옆에 유명하다는 플라멩코 공연장 El Patio Sevillano 가 있다.

 

 

 

 

 

뭔가 샤갈 풍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매일 밤 19시와 21시30분에 90분씩 공연을 한다. 

 

늦은 시간에 더 좋은 출연진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뒷시간으로 예약. 민박집을 통해서 예약하면 성인 요금 38유로를 35유로로 할인받을 수 있다. 음료 한 잔이 제공되고, 3 course dinner를 함께 할 수 있는 상품도 있는데 그닥 밥을 먹으면서 보고 싶은 공연은 아니다.

 

여기는 음료 손님이 앞쪽에 앉고 식사 손님이 뒤쪽에 앉는데, 경우에 따라선 식사 손님이 앞줄인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플라멩코 공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힘차게 발을 구를 때마다 무대의 마루바닥에서 적잖게 먼지가 일어난다.

 

식사를 즐기며 공연을 보실 분들은 한번쯤 생각해 보실 문제.^

 

 

공연장 앞길. 붐비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들어가 보니 관광객들이 꽤 들어차 있다.

 

 

그리 넓지 않은 무대. 성수기 때에는 2층 양 옆의 테라스 같은 좌석까지 빽빽하게 찬다고 한다.

 

공연 시작. 특별히 줄거리가 있는 공연은 아니다. 다양한 음악에 따라 1인무, 2인무, 4인무 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첫번째 나온 출연자가 계속 박자를 틀리고,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4인무부터 뭔가 맞아 들어간다는 느낌을 줬다. 오른쪽의 분홍색 치마 입은 분이 첫번째 독무자로 나와 기대를 꺾은 분.

 

동행인은 내 귀에 대고 "저 사람은 취미교실에서 온 것 같지 않아?" 라는 독설을.

 

반면 맨 왼쪽, 배우 션 빈을 살짝 닮은 양반은 테크닉도 훌륭하고 전체적으로 좋은 느낌의 공연을 보여줬다.

 

 

이 공연장의 2인자로 보이는 이분. 한국의 지인을 닮아 깜짝 놀랐다.

 

 

 

 

 

 

남자 솔로를 지나, 이 공연장의 간판으로 보이는 분이 나섰다.

 

 

 

 

최소 40년 경력은 되어 보이는 이분. 확실히 포스가 달랐다.

 

파워보다는 관록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힘이 탁월했다. 진정 박수.

 

 

 

1인무, 2인무, 4인무 식으로 펼쳐지다가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테마를 이용한 간략 무용극이 공연되고, 이어 전체 무용수들이 등장해 각자의 개인기를 펼쳐 보이는 마무리를 통해 공연이 끝났다.

 

 

역시 '스승님'의 포스를 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체적으로 '스승님'의 관록과 노련미가 끌고 가는 공연이라는 느낌. 하지만 몇몇 공연자들은 정말 머릿수를 채우러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 사이에 기량 차가 적지 않았다.

 

아울러 전체 공연의 느낌이 흔히 플라멩코에 기대하는 어둡고 비장한 느낌을 완전히 배제한, 밝고 명랑한 공연이란 점이 그리 와 닿지는 않았다. 우연히 그라나다에서 동굴 플라멩코를 보고 오신 분을 공연장에서 만났는데, 이 분이 그라나다에서 설명 듣기로는 "그라나다 플라멩코는 집시 문화의 영향으로 페이소스가 짙은 춤을 보여주지만, 세비야는 본래 술집에서의 여흥을 위한 댄스가 발달해 발랄하고 화려한 공연을 우선으로 한다"고 하더란다.

 

혹자는 세비아에서 가장 좋은 공연을 하는 El Arenal 이 아니어서 실망했을 거라고도 한다. 물론 평을 보면 El Patio Sevillano의 공연이 좋았다는 분도 있고...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좋을 듯 하다.

 

아마도 바르셀로나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이 워낙 훌륭해서 이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카탈루냐 음악당,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http://fivecard.joins.com/1197

 

 

 

 

공연을 보고 세비야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시가의 골목들이 아름답다.

 

해가 뜨면 여행의 마무리를 위해 마드리드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아쉬울 뿐.

 

 

 

 

그래도 아직 마드리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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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서는 두 끼(첫날 점심과 저녁)를 밖에서 먹고 한 끼(이튿날 아침)를 민박집에서 해결했다. 민박집 식사는 총각 혼자 운영하시는 민박집 사정을 생각하면 딱히 뭐라 따질 수준은 아니었으나, 아무튼 광고대로의 '푸짐하고 영양가 넘치는 식단'은 결코 아니었다. 뭐 한끼 정도야 그러려니 하는 거다.

 

첫날의 두 끼는 모두 타파스로 해결했다. 일단 점심. 세비야에 도착하자 마자 짐을 두고 나가는 길에 식사를 해결했다. 민박집-카테드랄은 도보 5~10분 정도. 그 중간의 골목길에 Pimenton 이 있다.

 

 

 

주소는 Calle Garcia de Vinuesa 29, 41004 Seville, Spain. 트립어드바이저에 El Pimenton 이라는 이름으로 리뷰가 올라와 있다.

 

http://www.tripadvisor.co.kr/Restaurant_Review-g187443-d3742726-Reviews-El_Pimenton-Seville_Province_of_Seville_Andalucia.html

 

위 주소로 구글 검색을 해 보면

 

 

 

주위를 둘러볼 때 분명 같은 곳인데 다른 가게가 나온다. 생긴지 얼마 안 되는 가게인 모양이다. 민박집에서는 '새로 생긴 집인데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다'고 추천했다. 가게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차가운 타파스와 뜨거운 타파스 메뉴가 있고, 여기서 1인당 3가지를 고르면 음료와 빵, 커피를 포함해 8.95 유로에 준다는 착한 가게다. 당연히 두 사람이므로 차가운 접시 3개와 뜨거운 접시 3개를 시켰다.

 

 

실내. 그냥 깔끔하다. 으리으리하지 않고 실속을 차렸다는 느낌.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마냥 깔깔거리고 떠드는 품이 나쁘지 않다.

 

뭐, 현지인이 아니고 세비야에 오래 눌러 앉은 장기 여행자들일 수도.

 

 

가지 튀김과 크렌베리 소스 

 

 

 

야채 튀김. 한국식 야채 튀김과 매우 흡사한데 씹히는 맛이 좋다.

 

 

새우가 들어간 감자 샐러드. 왠지 '안전한 맛'을 위해서 시켰는데 다른 메뉴들도 전혀 입에 맞지 않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해도 좋았을 듯한 라따뚜이. 정작 메뉴에는 스페인어로는 Pisto Al la Italiana (이탈리아식 잡동사니 요리), 영어로는 Ratatouille 라고 써 있다. 아무튼 맛이 좋았다.

 

 

이게 아마... 버섯 크림으로 덮은 쇠고기 요리였던 듯. 아무튼 맛있었음.

 

 

Questo fritto con arandanos. 치즈 튀김과 크렌베리 소스.

 

흡족한 점심식사였다. 가격대 성능비로 보나, 냉정한 맛 평가로 보나 맛집으로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음.

 

저녁은 조금 더 넉넉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서 간 곳이 대성당의 뒤편이 있는 이 집.

 

아무리 봐도 이름이 딱 써 있지 않다.

 

Bar La Catedral. 주소는 Calle Mateos Gago 5.

 

 

사실 처음부터 이 집으로 들어간 건 아니고, 맨 처음엔 카테드랄이 보이는 광장 한 구석의 꽤 운치있는 카페의 야외석에 자리를 잡으려 했다. 해가 막 기우는 시간.

 

 

 

그래서 이렇게 앉아서 관광객용 사진도 찍고 하면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하지만 일단 웨이터의 자세부터 '그 테이블이랑 의자랑 니들이 쉬라고 내놓은 거 아니다. 거기 앉으면 식사를 해야 한다' '우리는 코스만 취급한다. 단품은 안 판다' '와인 시켜라. 와인 좋은 거 있다. 와인을 안 마셔? 왜?' 뭐 이런 식이다.

 

게다가 살펴본 메뉴도 이건 '특제 슾' '세비야 식 스테이크' '새우를 곁들인 샐러드' 등 그냥 세계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기본 양식 정찬이다. 이런 걸 먹으려면 대체 왜 여기까지 왔겠나. 물론 가격이나 싸면 모르겠는데 1인당 30유로.

 

야. 야. 사진 다 찍었으니 됐다. 니네 집에서 밥 안 먹을란다, 하고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고 가다 보니 눈에 띄는 웨이터 형. 실물은 이것보다 잘 생겼다.

 

옆에 보이는 메뉴처럼 줄줄이 이런 타파스가 한 접시에 3유로에서 12유로까지 다양하다. 이런 데를 가고 싶었다.

 

영어 메뉴와 스페인어 메뉴. 이제 여행 일주일에 접어드니 영어 메뉴만 보는 게 더 헷갈린다. 스페인어 메뉴와 영어 메뉴를 같이 보는게 훨씬 주문하는 데 편리하다.  

 

 

 

그리고 바쁜 웨이터 불러다가 이것 저것 물어보면서 주문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물론 바쁘니까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관광선진국 웨이터는 그러지 않더라는 거지. 게다가 이것 저것 물어봐서 시키려고 노력하는게 가상한지 추천도 막 해 주고, 재료를 집어다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게 여행의 재미라고 생각.

 

 

 

뭐 길가 바로 옆 테이블이라 그렇게 우아하지는 않다. 인도에 나와 있는 테이블이기 때문에 행인들이 옆으로 지나다니기도 하고.

 

그래도 저 골목 안의 가로수가 모두 라임이다.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서인지 떠다니는 공기결에 라임 냄새가 묻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라임들은 다 익어 땅에 떨어져 밟혀도 구린내가 나진 않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다.

 

상그리아도 당연히 한잔.

 

 

 

치즈와 토마토가 들어간 신선한 샐러드 한판. 뭐 이건 괜히 시켰다 싶기도 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음식을 너무 많이 시킨 것 같아서.^^

 

 

또 음식마다 야채가 조금씩 딸려 나오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튼 첫 접시는 Chocos fritos con ali-oli. '마늘 소스 오징어 튀김'이다. 스페인에선 초코 Choco 즉 그냥 오징어와 세피아 Sepia, 뼈오징어가 매우 흔히 식재료로 쓰인다. 스페인 사람들은 세피아를 흔하게 먹어서 이번 여행 내내 세피아는 두세번 먹은 듯 하다.

 

이 오징어는 얼마나 큰 놈인지 모르겠으나 세피아에 비해 식감이 쫄깃했다. 오른쪽에 있는 마늘이 들어간 드레싱에 찍어 먹으면 맛이 아주 그만이다.

 

 

Langostinos Salsa tartara gratinados 큰 새우 타르타르 소스 볶음.

 

흔히 새우는 그냥 Gamba, 랍스터가 Langosta 라고 하는데 Langostino는 중간 정도 되는 큰 새우를 말한다고.

 

뭐 대하 수준으로 큰 새우는 아니고 아무튼, 저런 애가 몇마리 들어 있다.

 

 

 

이건 뭐 이름이 엄청나게 길었는데 요약하면 '메추리알을 곁들인 하몽 토스트' 정도 되겠다.

 

그래도 하몽은 하나 시켜야 스페인 관광객 아니겠어?

 

 

 

Solomillo Catedral (Salsa Sevillana Antigua) - 전통 소스로 조리한 카테드랄식 소 등심

 

여기서의 카테드랄은 이 식당의 이름을 말한다. 보기에 좀 저래서 그렇지 육질이며 육즙이며 흠잡을 데가 없는 맛이다. 스페인 쇠고기의 질에 대해서는 거듭 감탄하게 된다. 맛있다. Solomillo는 영어의 Sirloin에 해당하는 듯.

 

 

 

Turbante de Pimiento con Carne Picada y Salsa de Piquillo

터번            피망               간 고기             매콤한 소스

 

이 집의 대표 메뉴라고 불러도 좋을 음식. 피망의 속을 간 고기로 채우고 그 상태에서 구워 매콤한 소스를 뿌린 음식이다.

 

아마도 완성된 형태의 모양 때문에 투르반테(터번)이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Champinones Plancha. 버섯 구이. 집어 먹다 찍어서 좀 갯수가 적어 보이는데 원래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았다.

 

 

먹다가 찍어서 좀 지저분하긴 한데, 이렇게 테이블 가득 시켜 놓고 아구 아구 먹어댔다.

 

 

 

그렇게 해서 가격이 세금 포함해 34.1 유로. 전망좋은 광장 카페에서 먹었더라면 절대 느낄 수 없었던 포만감과 정신적인 만족감을 포함해서, 그 광장 카페 정식 가격의 딱 절반이다. 웨이터들이 번갈아 나와서 눈이 마주치면 '맛있어? 맛있지?' 라고 눈빛으로 물어본다. 좋다.

 

어느새 해가 져 깜깜해지고,

 

 

가게 안에는 불이 들어온다.

 

 

 

가게 안 곳곳에 소 머리가 장식돼 있다.

 

 

 

아마도 왕년에 투우에 나갔던 소들이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가게 바로 앞에서 찍은 각도. 히랄다 탑과 대성당의 동쪽 면이 바로 보인다.

 

 

 

구글맵에서 본 이 식당의 위치.

 

 

 

지도에서 보면 이렇다.

 

 

 

밤에 보면 더 훌륭한 카테드랄. 금박을 씌운 듯한 조명도 훌륭하다.

 

 

 

 

 

카테드랄 앞의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부른 배를 안고 플라멩코를 보러 간다.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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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의 명물이라면 역시 히랄다 Giralda 탑이다.

 

높이 105m. 38층이라고 표기되는 히랄다 탑은 느낌 그대로 아랍 문화의 유산이다.

 

어쨌든 유럽에서도 크기로 손꼽히는 대성당의 상징이 됐고, 산지가 적은 안달루시아의 대평원에서 수백년 동안 멀리 멀리까지  그 종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38층이라는 말에 다소 긴장했지만 다행히 층고가 그리 높지는 않다.

 

여름에 올라간 사람들은 퍽 고생을 했을 거란 생각. 아무튼 도전. 오늘의 입장객수가 곧바로 표시된다.

 

 

 

 

계단이 아니라 네 면을 따라 비스듬히 경사면을 오르게 되어 있다.

 

계단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왕이 말을 타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말이라면 좀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올라가며 짬짬이 창밖을 내다 본다.

 

 

역시 성당의 명물 중 하나인 오렌지 나무 정원. 파티오 같은 게 아니라 그냥 파티오다. 내놓고 이슬람 양식.

 

 

조금씩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성당의 지붕을 통과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거의 다 올라왔다.

 

 

마침내 정상. 시원한 바람이 분다.

 

 

산지가 없다는 게 실감날 정도로 일망무제의 평원이 펼쳐진다.

 

알록달록 예쁜 건물들. 문득 장난을 쳐 보고 싶다.

 

이렇게.

 

 

 

 

 

 

 

 

뭐 다른 쪽도.

 

 

정말 예쁜 거리다.

 

 

 

오렌지 정원도.

  

 

 

정말 모형처럼 보인다.

 

 

 

세비야 대성당의 지붕. 용의 등뼈와 날개를 봉인한 듯한.

 

거대한 소음과 함께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상상.

 

런던의 상징 중 하나인 세인트 폴 성당을 건설하던 크리스토퍼 렌이 지붕의 무게 때문에 고민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이 세비야 대성당도 마찬가지. 지붕 쪽에 실리는 하중을 분산해 주기 위해 세워진 보조 기둥들의 위용이 인상적이다.

 

 

 

멀리 투우장이 보인다.

 

그 부근에 밤에 플라멩코를 보기로 한 공연장이 있다.

 

 

 

 

 

탑에서 내려가 오렌지 정원으로.

 

어쩐지 회랑에 악어가 매달려 있다. 무슨 사연일지.

 

 

오렌지 나무 사이로 정상이 보인다.

 

정상의 바람이 느껴지는 듯.

 

저 꼭대기의 여인상은 '왕자의 문' 앞에 있는 여인상과 같은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성당에서 오렌지 정원으로 나오는 문.

 

'수태의 문' Puerta de la Concepción 이라고 해석해야 할 듯 하다.

 

그냥 이해의 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이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것이고 보면.

 

(영어의 컨셉션에 그런 뜻이 있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성당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히랄다 탑과 성당의 지붕에게.

 

안녕.

 

성당을 나서 동쪽으로 담을 돌아가면 알카자르가 나타난다.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1. 유료다. 2. 민박집에서 "그라나다에서 오시는 길이면 실망하실 거에요. 안 보셔도 돼요"라는 말을 들은 뒤였다. 굳이 알함브라를 보고 와서 다시 이슬람 양식의 정원을 보고 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담벼락은 멋지다.

 

 

 

 

 

담벼락이 끝나는 곳에서 산타 크루즈 지역이 시작된다.

 

 

세비야의 구 시가 지역. 좁다란 골목길 속에 알록달록 칠해진 다양한 가게와 건물들이 빼곡 들어찼다.

 

 

 

골목 골목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흔적과 관광객을 맞이하는 구역의 구별이 없는 점이 눈길을 끈다.

 

세비야를 찾은 사람들이 이곳의 정취를 얘기하는 이유를 알 듯 하다.

 

장난감처럼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골목이 마냥 예쁘다.

 

 

 

 

 

사람 사는 모습을 한껏 보여주는 동네다.

 

물론 다들 속으론 먹고 살기 바쁘겠지만.

 

 

 

 

마돈나가 왔다 갔다는 산 마르코 San Marco 라는 맛집.

 

소개는 받았는데 별로 뭘 시켜 먹어 보고 싶진 않았다. 마돈나가 별거냐.

 

 

그보다 더 원래부터 유명하다는 Bodega Santa Cruz 라는 식당.

 

뭐 그리 끌리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정작 들어간 집은 이 집. 이름은 La Catedral.

 

나중에 다시 나온다.

 

 

 

이렇게 히랄다 탑과 산타 크루즈를 헤매고 다녔다.

 

 

 

 

마지막으로 느낌이 좋았던 종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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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인(아랍인)들로부터 국토를 되찾기 위한 스페인 카톨릭의 노력 결과, 세비야는 비교적 일찍, 13세기에 이미 기독교인의 땅이 되었다. 그 뒤로 세비야는 내륙의 교역 도시로 발달했고, 1401년에는 이슬람 예배당이 있던 자리에 카톨릭의 위엄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거대한 성당을 세울 계획이 세워졌다.

 

착공 100년이 되기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뭐 틀린 말인 건 다 알지만 그냥 이렇게 쓰자)했고, 세비야는 이 새로운 대륙 개척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실제로 배가 드나드는 항구로는 세비야 서쪽의 우엘바와 남쪽의 카디스가 발달했지만, 신대륙 항해를 위한 법적 절차나 인허가는 모두 세비야에서 이뤄졌다. 신대륙에서 들어온 막대한 부 역시 세비야에 집결됐다. 거대한 문서보관소와 황금의 탑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역시 세비야가 바로 신대륙 개척의 상징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스페인식으로 크리스토발 콜론의 묘가 세비야에 있는 것도 당연한 일.

 

 

 

 

스페인은 세계에서 52번째, 유럽에서 다섯번째, 그것도 유럽이라고만 하기엔 좀 껄끄러운 러시아와 터키를 빼면 세번째로 큰 나라(프랑스, 우크라이나 다음)다. 남북한을 합친 크기의 두배 이상 크다. 제국 스페인의 남쪽 해안선은 지브롤터를 경계로 동쪽은 지중해로, 서쪽은 대서양으로 열려 있다.

 

스페인의 대항해시대는 곧 대서양으로 열린 항구의 발전을 뜻하며, 우엘바와 카디스, 두 개의 항구를 끼고 있는 세비야는 제국 남부의 중심지로 줄곧 발달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유난히 큰 성당, 유난히 금박을 많이 씌운 성상을 구축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부와 권위의 상징인 세비야 대성당을 보러 갔는데, 입구의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에그머니.

 

 

식도와 척추의 단면이 너무도 선명하게 묘사된 사람의 목부터 보게 됐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가 대체 누군가...했더니 Saint John Baptist. 그러니까 우리 말로 세례 요한이었다.

 

살로메의 복수 때문에 목이 잘렸다는 그 양반. 그런데 그 머리를 이렇게 정교하게 묘사해 놓은 조각품은 대체....;;

 

 

 

두 성스러운 존재가 세비야 대성당의 상징인 히랄다 탑을 가호하는 그림이다. 한쪽은 아마도 성모 마리아일 듯 한데 다른 한 쪽은 대체 누구... 아무튼 손에 종려나무를 든 이런 수호신의 묘사는 세비야에 대단히 흔하다. 종려나무 가지가 바로 세비야의 상징이라서.

 

아무튼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뜨왓.

 

 

 

 

 

정말 거대하고...길다.

 

 

지난번에 본 세비야 대성당의 모습. 그림 앞쪽이 북쪽이고,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 남쪽에 관광객 용 입구가 있다.

 

 

 

 

그리고 북쪽이 위로 가게 그려진 지도. 남쪽 입구가 관광객의 출입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입구 왼쪽으로 돌아서 정작 성당 내부로 들어서게 되는 건 위 지도의 숫자 10번이 그러진 지점 부근이다.

 

지도의 11, 12, 16, 17, 23, 24, 27 등으로 되어 있는 작은 방들은 스페인어로 카필라(Capilla), 즉 영어의 chapel에 해당하는 예배당이다. 지도의 왼쪽 상단에 있는 성소 교회에서도 보았듯 큰 대성당 안에, 세비야 유력 가문들이 각각의 예배당을 운영해 온 셈이다.

 

 

 

그 각각의 예배당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네만의 제단을 화려하게 장식해 가문의 영광을 뽐냈다. 무리요나 엘 그레코 같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 동방에서 가져온 희귀한 성상 등 갖은 보물들이 이 안을 장식했다.

 

 

 

 

세비야 대성당은 길이가 긴 쪽이 135m, 짧은 쪽이 100m인 직사각형의 모습이다. 천장의 가장 높은 곳이 42미터, 물론 첨탑인 히랄다 탑을 뺀 천장 얘기다. 히랄다 탑 꼭대기는 105m에 달한다. 그 기둥과 내부의 공간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위압한다.

 

 

각각의 카필라들은 이런 스테인드 글라스 하나와,

 

 

이렇게 요란하게 장식된 제단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제단의 양쪽 벽면은 이런 식으로 온갖 고전 회화들로 가득하다.

 

한마디로 카필라의 규모가 각 가문의 세 대결인 셈이다.

 

이런 카필라들을 구경하며 동쪽으로(동쪽에 주 제단이 있으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거대한 볼거리가 눈길을 장악한다.

 

 

합창대석의 양쪽에 장착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정말 크고 위압적이다. 다른 표현이 필요 없다.

 

 

 

이런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합창대석의 좌우에 하나씩 배치돼 있다.

 

나무로 조각된 디테일 하나 하나가 섬세하기 이를데 없다.

 

합창대석을 지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네 사람이 떠받든 관이 나타난다.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지다.

 

 

 

 

 

지도의 파란 별 모양이 있는 곳이 바로 콜럼버스의 묘지. 별 왼쪽 위의 Coro는 코러스, 즉 합창석을 말하며 그 바로 옆의 Capilla Mayor는 흔히 말하는 High Altar, 즉 이 성당의 주 제단을 말한다. 물론 그보다 더 동쪽 끝에는 Capilla Real, 즉 왕실 예배당이 있다.

 

 

 

콜럼버스의 묘를 상징하는 이 거대한 석상은 네 사람의 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들고 대성당의 남쪽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형상이다. 네 왕은 각각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나바라, 즉 스페인이 통일되기 전에 있던 네 왕국의 왕들이다.

 

그러니까 이 네 왕이 운구를 할 정도로 대단한 위업을 남겼다는 얘기다.

 

 비록 죽은 뒤이지만 대단한 예우다.

 

 

 

문득 관 바닥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생겼다.

 

 

그의 업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지금껏 여러모로 말이 많지만,

 

대장부로 태어나 죽어서 이런 예우를 받는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콜럼버스의 묘를 지나면 오른편(그러니까 남쪽)으로 성구실과 보물창고에 이른다.

 

 

같은 실내고 별다른 조명이 없는데도 성구실은 무척 밝다.

 

천장을 보면 바로 이유를 알 수 있다.

 

 

다중 쿠폴라를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밖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돔의 상부에 채광창을 두어 빛을 성당 안으로 스며들게 한 배치다.

 

 

 

물론 사진에서 보듯 필요한 곳에는 각각 조명이 배치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쪽 보물창고는 훨씬 밝다.

 

 

 

언뜻 보기에도 어지간한 공력으로는 만들기 어려웠을 보물들이 즐비하다.

 

 

그, 어린아이(아무리 아기 천사라고는 하지만)들의 머리통을 밟고 선, 인자하기보단 잔혹해 보이는 성모상.

 

 

 

 

몇 안되는 출처를 알 수 있는 작품 중 하나.

 

조각가 페드로 롤단(Pedro Roldan)이 만든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의 조각이다.

 

뒷날 '산 페르난도(성 페르난도)'로 추앙받은 페르난도 3세는 13세기 중엽, 세비야를 탈환해 기독교도의 품으로 되돌린 왕이다. 이때문에 산 페르난도라는 지명은 라틴 아메리카 문화권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이런 성구실 안에도 작은 파티오가 있고, 파티오 안에 분수가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이슬람 양식의 반영임을 알 수 있다.

 

 

 

 

 

 

 

 

 

 

 

뭐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아무튼 보물의 산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따라 주 제단 Altar Mayor와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이 보수중.

 

보수막이라도 찍어 올 걸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주 제단은 목각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1.5톤의 황금을 들이 부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생겼다.

 

세비야 관광 진흥 사이트에서 퍼옴.

 

 

 

 

 

 

뭐 대신 이 성당을 대표하는 사이트 중 하나인 은의 제단 Altar de Plata.

 

 

 

 

흔히 보는 기독교적인 상징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사실 이런 건 처음 봤다.

 

오히려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라면 모를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일단 세비야 대성당의 내부 관람을 마쳤다.

 

 

흔히 서양의 대성당을 들어가면, 건물 전체가 왠지 드래곤을 형상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성당 내부를 들어서면 거대한 용의 몸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느낌.

 

특히나 이 거대한 세비야 대성당의 천장은 용의 등뼈를 보는 듯한 상상을 자아냈다.

 

 

사실, 밖에서 보기에도 좀 그렇게 보이는 구석이 있다.

 

 

 

 

어느 카필라엔가 있었던, 아무리 봐도 엘 그레코의 작품인 것 같은 그림 한 점.

 

(뭐 영향을 받은 화가일 가능성도 당연히.)

 

 

어떤 카필라는 이렇게 문을 열어 놓고 청소중이기도 했다.

 

위쪽의 초상화들은 아마도 자랑스러운 역대 귀족 가문의 조상들인 듯.

 

자. 이제 히랄다 탑을 오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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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의 오페라 제목이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세비야 Sevilla 의 이발사'로 바뀌어 자리잡은 건 아마도 1992년 세비야 엑스포를 전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1992년은 '투우와 태양, 다혈질의 나라'였던 스페인이 '세련되고 매력적인 나라'라는 브랜딩을 위해 전력투구했던 해인 듯 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같은 해다.

 

세비야는 이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흔적으로 유명한 도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개의 문화 유산, 투우와 플라멩코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시킨 곳이 바로 세비야라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메리메는 세비야의 담배 공장을 배경으로 소설 '카르멘'을 썼고, 이를 비제가 불멸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카사노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 후안의 근거지도 세비야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를 거쳐 마드리드로 가는 일정. 과연 중간에 어디를 거쳐야 할까 하는 걸 놓고 잠시 고민했는데, 가 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세비야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고? 일단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 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의 도시 치고 카테드랄이 없는 도시는 없지만, 그래도 세비야의 카테드랄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다.

 

 

 

세비야 대성당 안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

 

15세기 말. 당시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대국은 포르투갈이었다. 항해왕 엔리케를 비롯해 바스코 다 가마, 바솔로뮤 디아스 등 명성 높은 탐험가들의 활약에 의해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해안을 따라 인도양으로 진입해 인도 서안에 이르는 무역로를 개척하고 거대한 부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비롯한 많은 선각자들은 생각했다. 지구는 둥글다(많은 사람들이 '지구는 둥글다'는 주장을 갈릴레오가 처음 한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지동설이나 지구 자전설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별개의 주장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기원 3세기 이전,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널리 알린 주장이다). 만약 남쪽으로 돌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서 인도가 나왔다면, 반대로 서쪽으로 똑바로 나아가도 인도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많은 모험가들(당시의 벤처 투자자들)이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대개의 투자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1492년 1월, 코르도바에서 역사적인 영토 회복으로 한창 들떠 있던 이사벨라 여왕을 후원자로 삼는 데 성공했다(물론 6년이나 공을 들인 끝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1492년 4월3일, 콜럼버스는 니냐, 핀타, 그리고 산타마리아라는 이름의 세 범선을 이끌고 지금 우엘바(Huelva)의 일부인 작은 항구 팔로스 델 라 프론테라(Palos de la Frontera)를 출발했다.

 

제노바 출신의 이탈리아인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코르도바에서 이사벨라 여왕에게 투자 허락을 받고, 산타페(그라나다 부근의 소읍)에서 '발견된 땅의 총독이 되고, 신대륙 수입의 10%를 갖는다'는 약정에 서명했고, 팔로스에서 1차 원정을 출발했고, 서인도제도에 도착했다가 바르셀로나로 귀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라 여왕 부부를 알현하며 원정의 성공을 알렸다.

 

저 많은 인연 있는 땅을 두고 왜 세비야에 콜럼버스의 묘가 있을까. 그 이유는 세비야야말로 대항해시대 스페인의 영광을 가장 크게 누린 도시였기 때문이다. (다음 글로 이어짐)

다시 시점은 그라나다를 출발할 때로 거슬러 올라감. 

 

 

 

그라나다에서 세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세비야. 입구의 야자수 가로수가 손님을 반긴다.

 

그라나다-세비야 구간은 기차 버스 모두 가능하고, AVE가 아직 다니지 않아 시간도 얼추 비슷하다. 단지 버스가 약간 싸다.

 

뭐 꼭 가격이 싸서라기보다, 스페인의 고속버스는 어떤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ALSA 버스는 깨끗하고 편했다. 3시간 짜리 노선이라 그런지 중간에 정차는 없었고, 시속 100Km를 준수했다. 물론 도로 중간을 봐도 한국식의 거대한 휴게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주유소와 편의점, 화장실 정도만으로 구성된 휴게소는 중간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오래 전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에서 들렀던 휴게소는 그래도 커피숍과 카페테리아 정도의 설비를 갖춰 놓고 있었는데, 이게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차이인지, 아니면 그라나다-세비야 구간이 짧아서 없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ALSA 버스는 와이파이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터지지는 않았다. 옆자리 미국인의 아이폰도 마찬가지. 그 외에는 깨끗하고 쾌적했고, 인터넷으로 예매도 할 수 있어 간편했다.

 

물론 한국의 우등버스와 비교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지만.

 

 

 

세비야 고속버스 터미널. 나름 운치있게 꾸며져 있다.

 

공식 명칭은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Prado de San Sebastian) 터미널.

 

그냥 Estacion 은 역, Estacion de Autobuses는 버스 터미널이다.

 

 

 

밖으로 나오면 이렇다.

 

 

 

단 1박만을 위해 구한 민박 숙소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장점은 세비야 구시가와 가깝다는 것.

 

투우장 바로 옆이었고, 대성당까지 빠른 걸음으로 5분 정도 걸렸다. 또 직접 제작한 지도를 나눠주고 포스트를 설명해 주는데, 특히 식당 추천이 좋았다. 초행길에 꽤 도움이 됐다. 침구류에서도 불쾌한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단점은 대부분의 민박이 그렇듯 바닥이 아예 맨발로 다닐 수 없는 돌 바닥이고, 욕실에서 방까지 신을 신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 2인실이라도 방 안에 욕실이 있는 구조와 복도를 지나 공용 욕실이 있는 구조는 천지차이다. 그리고 식사는 전혀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그냥 혼자 자취하면서 먹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워낙 대단한 대접을 받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주요 관광 포스트와의 연결점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추천. 나머지 요소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비추.

http://cafe.naver.com/sevilla5happy.cafe

 

 

 

지도에서 B지점이 민박집, A지점이 대성당 모퉁이(대성당이 워낙 거대하다. 농담 아니고 지도상의 저 구획이 모두 성당이다).

 

도보로 5분은 조금 과장이고 7,8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도 왼쪽의 큰 M자가 써 있는 곳이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 즉 버스를 내린 고속터미널.

 

거기서 꽤 큰 공원(공원 이름도 프라도 산 세바스티안인 모양이다. 버스 터미널 이름과 같다)을 건너가면 바로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na이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대성당 부근, 그리고 에스파냐 광장만 보기로 맘먹은 사람에겐 좋은 입지가 아닐 수 없다.

 

 

 

숙소에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 피멘톤(Pimenton)은 반드시 들러 볼만한 곳. 나중에 자세히 소개한다.

 

 

저 피멘톤 앞길로 죽 내려가 도착한 카테드랄(Cathedral, 대성당)의 남쪽 면(엄밀히 말하면 성소교회의 남면).

 

세비야를 대표하는 교통 수단인 트램이 마침 지나갔다.

 

 

 

트램의 뒷모습. 1.5유로에 시내의 주요 지점을 연결해 주는데 꽤 편리하다.

(카테드랄 앞에서 고속터미널까지 단 2정거장. 5분이면 도착)

 

표를 끊고 차를 탔는데, 전혀 검표와 관련된 수단이 없어 매우 당황했다.

물론 처음엔 당황하지만, 다음엔 매우 기뻐하게 된다.

 

 

 

꽤 걸어야 카테드랄과 성소교회(Iglesia del Sagrario: Church of Sanctuary)의 경계면에 도착한다.

 

왼쪽은 왕실예배당의 입구, 오른쪽은 카테드랄의 서쪽 문.

 

 

 

그러니까 저 빨간 동그라미를 친 곳이 바로 대성당의 부속 건물인 성소교회다.

 

지금 서 있는 길이 저 빨간 선이 그어진 길이고.

 

 

 

전에도 말했듯 스페인의 카테드랄 앞길은 그리 넓지 않아서 전경을 찍기가 편치 않다.

 

그래서 꼭 이렇게 올려찍기를 해야 한다.

 

그래도 이 서문, 즉 승천의 문(Fuerta del la Asuncion)이 이 거대한 성당의 메인 도어라니 찍어 둬야지.

 

 

 

서문의 좌우를 자세히 찍은 뒤, 옆의 성소 교회로 입장한다.

 

 

 

성소교회 의 내부. 천장의 흰 천은 보수공사를 위해 씌워 놓은 것인데, 제법 잘 어울렸다.

 

성소교회, 즉 영어로 하면 Church of Sanctuary 인데, 무엇을 위한 성소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지도 않고... (보기에 따라선 깊숙한 곳일 수도 있다.)

 

아마도 예수의 유골이나 성인의 유골을 안치했다는 의미로 Sanctuary라고 한 듯.

 

 

 

왕실예배당만 해도 규모가 상당하다. 물론 잠시 후 보게 될 대성당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

 

스페인식 성당의 배치를 보면, 복도(?) 양쪽으로 있는 작은 방 하나 하나가 모두 예배당 역할을 한다.

 

이런 작은 방들을 카필라 Capiilla 라고 한다.

 

 

 

작은 방 하나 하나마다 이런 식의 성상 배치가 되어 있다.

 

대부분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예배당이다.

 

 

 

중앙의 주 성상만이 예수를 모시고 있다.

 

 

 

조금 자세히 보면 이런 모습.

 

예수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면 아마도 이 제단 뒤편일 것 같다.

 

나머지는 거의 모두 성모상이다.

 

 

이렇게 금빛으로 찬란하게 묘사된 성모상.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성모의 발 아래를 받치고 있는 올망졸망한 아기 천사상들이다.

 

신체의 다른 부위는 보이지 않고 얼굴만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좀 징그럽기도 하고, 성모가 아이들의 머리통을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식으로 천사의 몸통을 다 묘사하고 있다면 그나마 낫긴 하다.

 

아무튼 좀 적응하기 힘든, 스페인 식의 묘사법이다.

 

 

주 예배석 위쪽의 쿠폴라에서 들어오는 빛. 흰 천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보수중이라 조금 더 돋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카테드랄의 앞길로 이렇게 한가롭게 관광객 용 마차가 다닌다.

 

 

 

서쪽 문 근처에서 죽 내려와 왼쪽으로 꺾어지면 대성당의 남쪽 문, 즉 관광객을 위한 일반 입구가 나타난다.

 

위 사진의 파란 세모가 있는 곳. 바로 여기다.

 

 

 

이것이 세비야 대성당의 대략의 입면도. 아까 위에서 본 승천의 문(Puerta de la Asuncion)이 오른쪽(그러니까 서쪽)에 있고, 지금 서 있는 면은 저 입면도에서 안 보이는 남쪽이다.

 

그 남쪽에는 왕자의 문(Puerta de la Principe)이 있다.

 

바로 이 문. 이 문 왼쪽이 관광객용 출입구다.

 

 

 

남쪽면에 위치한 카테드랄의 동쪽 출입구. 개인 입장객은 이곳으로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단체 입구는 북쪽, 히랄다 탑 옆구리에 따로 있다)

 

입구의 청동상은 세비야의 문장이 든 깃발과 세비야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입구로 처음 들어가면, 세비야 대성당과 관련된 박물관을 먼저 보게 되는데,

 

 

 

 

에그머니나. 이게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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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호텔에 부탁했다.

 

"산 건너편에서 알함브라의 야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매우 로맨틱한 식당이 있다고 들었다. 거기서 제일 전망이 좋은 자리를 예약해 다오."

 

스페인 사람답게 잘 생긴 직원은 씩 웃으며 최고의 장소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테라스 자리를 달라고 했더니 웃으며 10월 밤 날씨면 테라스에서 밥 먹다가 얼어 죽을 수 있단다. 대신 창이 넓은 식당을 추천하겠다며 '나만 믿어'라는 눈빛을 쏜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 남자의 눈빛이다. 남녀 안 가리고 쏜다.

 

그래서 간 곳이 여기. 에스뜨레야스 데 산 니콜라스 Estrellas de San Nicolas.

 

Callejón Atarazana Vieja, 1, 18010 Granada, ; +34 958 28 87 39

 

 

산 니콜라스 는 흔히 말하는 '알함브라 앞산' 동네, 즉 알바이신 지구의 꼭대기 쯤에 있는 전망대의 이름이다.

 

본래 건너편에 있는 알함브라를 보는데 최적화된 전망대고, 그 전망대 바로 옆에 이 레스토랑이 있다.

 

 

 

식당의 외부 전경.

 

 

 

낮에 알카사바에서 바라본 산 니콜라스 전망대. 가운데 사람들이 서 있는 공터가 산 니콜라스 전망대고, 오른쪽 동그라미 친 곳이 바로 이 레스토랑이다.

 

 

 

식당 내부는 그냥 흔한 산장식 레스토랑. 그닥 운치는 없다. 오직 알함브라의 아경이 있을 뿐이다.

 

창가 테이블을 달라고 분명히 요청했는데 '이미 그 자리는 오래 전에 예약된 자리라' 어쩔 수 없단다.

 

성질 같아선 나가버리겠는데, 비까지 내리는 이역만리. 치안도 좋지 않다는 지역에서 무리하면 안 된단다.

 

아쉬운 마음에 창 너머 풍경을 도촬하는데 그도 쉽지는 않다.

 

창가 자리를 내놓으라고~~

 

 

 

 

자료 사진을 보니 여름철엔 아예 창틀을 뜯어내는 모양이다. 이편이 훨씬 잘 보이긴 하겠다.

 

 

 

 

첫 메뉴. 세가지 치즈와 견과류가 들어간 샐러드.

 

머리에 떠오르는 바로 그런 맛이다. 맛있는 재료들을 모아 만들었으니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여전히 마음은 창가 자리에 있는데,

 

 

 

그라나다 지역의 좋은 물로 만들었다는 탄산수.

 

물맛 좋다.

 

냉수 먹고 속 차리자.

 

 

 

메인 디시. 안달루시아 풍의 쇠꼬리 찜.

 

와인 소스가 진한 맛을 내는데, 사실 쇠꼬리를 갖고 한 요리를 골라 먹으라면 한국식 꼬리찜을 먹겠다.

 

꽤 유명한 음식이라 맛이 궁금했는데, 한국식 꼬리찜을 먼저 먹어 본 사람이라면 이걸 먹고 감동하긴 쉽지 않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비추.  

 

 

 

 

식후. 디저트 와인과 함께 저 통 안에 계산서를 꽂아서 내 온다.

 

나름 귀염을 떤다.

 

 

 

 

창가 자리 손님이 먼저 자리를 뜬 김에 다시 촬영 시도.

 

아니 왜 알함브라는 잘 안 나오고 뚱보만 나와.

 

이때까지만 해도 식당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종업원에게 산 니콜라스 전망대가 어디냐고 물으니 건물 바로 바깥이란다.

 

진작 얘기하지.

 

 

 

밖으로 나왔다. 비에 젖은 알함브라가 훨씬 잘 보인다.

 

사진 왼쪽의 높은 건물이 대사의 방이 있는 코마레스 탑, 그리고 그 뒤로 약간 높이 보이는 흉물이 카를로스5세 궁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성벽이 알카사바.

 

 

건물 측면도.

 

바로 옆에 있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로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 목적인 알함브라.

 

 

생각만큼 잘 나오진 않는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다.

 

 

 

비 때문인지 문 닫은 앞집 식당.

 

날씨 좋은 날이면 이 집에 가서 노천 테이블을 잡는게 여러 모로 좋을 듯 하다.

 

 

 

 

어쨌든 호텔로 귀환.

 

 

 

밤에 보면 정말 그럴듯한 로비가 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내다 본 그라나다 시가 야경. 멋지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한 공간도 나쁘지 않다. 이 호텔, 꽤 추천할 만 하다.

 

다만 성수기 때는 꽤 비쌀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안달루시아를 고속도로로 가로질러 세비야로 향했다.

 

잇힝,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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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출신의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에서 그라나다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건축물과 음악의 일체감. 나는 이미 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과 세비야의 알카사르에서 이런 것을 짐작했다. 그런데 여기 그라나다에서 그것은 가장 명확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드러났다. 아랍 건축물의 최후이자 최상의 노력은 모든 물질적 형태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벽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것을 호리호리한 기둥이나 아치로 대체했다. 혹은 아랍의 카펫처럼 벽들을 조각하고 디자인했다. 그렇게 그것들은 무게에서 해방되었다.

 

기둥들은 더 가늘어졌을 뿐만 아니라 더 낮아졌다. 아치는 영묘하게 물결친다. 장식물들은 사상처럼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 된다. 단일한 주제가 주어지고, 이 주제는 수학적인 정교함과 환상의 풍요로움으로 무한히 울려퍼진다.

 

아랍의 음악가이자 건축가들은 빛과 공기와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들은 대담한, 하나의 특별한 목적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물질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고정되고 무거운 모든 내용물을 추상화시켜서 오직 지적인 윤곽만을 남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보고 나니 진정 실감이 난다.

 

 

윗글의 이상이 가장 잘 실현된 곳을 찾자면 역시 나스르 궁전 가운데에서도 사자의 정원 Patio de los Leones 을 꼽게 된다.

 

사자의 정원인데 사자는 어디 있다고 궁금해 하실 분들, 

 

사자 나온다.

 

 

 

뒤로 돌면 이런 장식의 문.

 

앞을 보면 생각보다 규모는 작지만 자못 감동을 자아내는 사자의 정원이 전경을 드러낸다.

 

 

 

 

 

 

나스르 궁전 평면도. 대략 파란 선을 따라 구경을 하게 된다.

 

중앙의 긴 빨래판 모양이 도금양(아라야네스)의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이고 우하단에 사자의 정원이 보인다.

 

 

사자의 정원에 있는 사자는 우리 민화 속 호랑이를 닮았다. 공포의 대상이 아닌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사자상이 12마리인 것은 매 시간마다 물을 흘려 내보내는 것으로 시계의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든 사자가 입을 통해 물을 흘려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의 방들.

 

첫번째 방은 흔히 아벤세라헤의 방 Sala de los Abencerrajes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팔각별 모양의 천장은 나스르궁 최강의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방은 나스르 궁에서 가장 흉악한 전설을 담고 있는 방이다.

 

아벤세라헤 일족의 남자 30여명이 이 방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유는 정치적 음모에 대한 발각설과 왕비와의 불륜설이 있다. 가이드북에는 이 방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있다는 등의 호러 스토리를 전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천장의 아름다움이 매우 인상적인 방이다.

 

어쨌든 성 전체가 기독교도들에게 넘어가기 전에도, 넘어간 뒤에도 이 방은 께름칙하다는 이유로 그리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여행 사이트나 기행문의 '알함브라' 파트를 장식하는 바로 그런 비주얼이다.

 

사실 사자의 정원을 구성한 이 수많은 기둥들이 사진으로 볼 때보다 못하다고 실망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 많은 관광객용 사진들은 대개 여름의 해질녘에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진들 속에서 이 기둥들은 금빛으로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직접 가서 보면 솔직히 그런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날씨가 꽤 흐렸다. 해가 쨍쨍 나는 맑은 날엔 또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꽤 조명을 타는 유적이다.

 

 

 

벽에 어른어른 그림자 같은 것이 비친다. 이런 것들이 아벤세라헤 일족의 핏자국인지도.

 

 

그리고는 왕의 방. Sala de los Reyes

 

스페인어의 Sala는 방(Room)으로도, 홀(hall)로도 번역되는데 이 경우엔 그냥 홀이라고 하는게 나을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Sala de los Reyes 는 방도 홀도 아닌 그냥 긴 회랑이다.

 

 

 

그 다음 방은 두 자매의 방 Sala de Dos Hermanas 이라고 불린다.

 

특별한 전설이 있는 방은 아니다(심지어 정말 자매가 살았다는 보장도 없다). 보압딜과 그 이전의 군주들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던 방으로 알려져 있다. 저 높은 천장에서부터 들어오는 빛이 꽤 아름답게 방을 감싼다.

 

또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사자의 정원을 지나 나스르 궁의 부속 건물로 접어든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 보면 창틀의 모양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고,

 

 

천장의 글자도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여기는 카를로스 5세가 잠시 사용했다는 황제의 집무실 Habitaciones de Carlos V 이다.

 

 

방 자체가 지금까지 거쳐온 알함브라의 방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기독교도들이 알함브라의 주인이 된 뒤에 구축한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나타나는 방이 바로 '워싱턴 어빙의 방'.

 

전에 말했던 '알함브라 이야기'의 저자이며, 사실상 서구 사회에 알함브라 관광 붐을 일으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중세 이후 먼지에 덮여 있던 알함브라를 세상에 널리 알린 덕분에 관광객들이 밀려오고, 그 덕분에 스페인 정부도 알함브라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고 정비에 나섰다는 얘기다.

 

어빙은 물론 '스케치북'의 저자로 알려진 미국 문학의 비조이기도 한데, 이렇게 알함브라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방이 남을 정도의 영광은 역시 알함브라를 소개한 공이 아닐까 싶다.

 

(국내 번역 제목은 '알함브라' 1권과 2권인데 그라나다로 갈 때 꼭 읽고 가야 할 정도는 아니다. 감상이 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고나 할까. 맘에 드는 문장은 아니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의 형상.

 

아시는 분 있으면 설명 좀...

 

 

 

워싱턴 어빙의 방을 나선 테라스에서 구 시가 쪽을 바라보면 이런 정경이 펼쳐진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구조를 가진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이런 장난도 쳐 보고 싶어진다. 인형 같은 집들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나스르 궁 구경도 거의 끝이다.

 

쇠창살의 정원 Patio de la Reja. 글자 그대로 네 면이 모두 건물에 둘러 싸인, 정통 사각형 파티오다. 작고 아담.

 

 

 

그리고 나서 건물을 돌아 나오면 오렌지 정원 Jardín de los Naranjos 이 나온다.

 

 

옆으로 돌아 들어가면 아랍풍 목욕장의 유적이 등장.

 

 

 

타일로 방수가 되어 있는 목욕방. 별 모양의 천장 창을 통해 조명을 해결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오렌지 나무 정원을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된다.

 

 

나스르 궁 안녕. 그리고 관람 시간이 끝났다.

 

알함브라는 여기서 안녕.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의외로 알함브라를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생각보다 매우 작은 규모(나스르 궁에 한정해 이야기할 때), 나스르궁을 보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절차와 줄서기의 번거로움, 또 아마도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직면해야 할 안달루시아의 직사광선과 더위 등이 이런 실망을 부추긴 요인이 아닐까 싶다.

 

알함브라는 다른 중동 지역의 이슬람 유적에 비해 규모와 색채감이 좀 약한 것도 사실이다. 돌과 벽돌의 자연색을 그대로 활용한 유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마르칸트의 티무르제국 유적의 웅대함과 신비로운 파란 타일에 넋을 잃어 본 사람이나, 이스탄불 톱카피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금은보화의 빛을 본 사람에게 알함브라는 다소 소박하게 보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알함브라에 대한 열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전에도 얘기했지만) 알함브라의 아간 관람 사진을 보고 난 뒤였다. 아마도 밝은 태양 아래서는 워싱턴 어빙이 그토록 강조하는 '달빛 어린 전설'이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관능적이고 요염한 분위기'를 느끼기 쉽지 않을 듯 하다.

 

언젠가 돌아와 밤의 알함브라를 보게 되길 기원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식당...은 다음 편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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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엠비씨 일기예보 배경음악(일설에 따르면 오늘의 주요 프로그램 안내 배경음악이라고도 한다^^)으로 늘 나오던 청승맞은 기타 연주곡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곡의 제목이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함브라 궁전? 뭔가 아라비안 나이트 풍의 이름을 가진 이 궁전이 아라비아가 아닌 스페인 땅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세월이 또 흘렀다. 제법 머리가 굵었고 왜 스페인에 아랍인들의 궁전이 있는지도 알았다. 또 세월이 흘러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역은 바로 나스르 궁전이고, 그 나스르 궁전이야말로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 땅에 남겨 놓은 최고의 보물이라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왔다.

 

 

 

 

바닥도 예사롭지 않아.

 

 

드디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작다면 작은 공간이다. 나스르 궁전은 절대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단지 치명적인 조형미가 있을 뿐이다.

 

 

설계도면으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입구로 들어가 직진하면 제일 먼저 메수아르 Mexuar 에 도달한다.

 

 

 

천장 장식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기둥과 각도가 애매하다 보니 카메라에 담기 쉽지 않은 '메수아르의 방'. 거의 모든 가이드북에 '메수아르의 방'이라고 나오는데 그냥 메수아르 Mexuar 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이 메수아르는 나스르 궁전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전실 antechamber 이며, 왕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때로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메수아르를 거쳐 나오면 다시 하늘이 보이고

 

 

작은 파티오가 하나 나온다. 저 문 안의 방 이름을 따서 파티오 델 쿠아르토 도라도 Patio del Cuarto Dorado, 즉 '황금의 방의 파티오'라는 이름이다.

 

 

 

 

작은 분수도 하나 있다. 파티오라고 불리려면 당연히 분수 하나는 있어야 한다.

 

 

 

 

 

이 황금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알함브라 전체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다.

 

 

 

황금의 방 자체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지만,

 

 

지금부터 알함브라는 디테일로 승부한다.

 

 

 

 

 

온 벽이 다 장식이다.;;

 

다른 문화권이라면 그림이나 조각이 있을 법 하지만 우상숭배를 극도로 경계하는 이슬람의 특성상 어디에나 기하학적인 문양 뿐이다. 꽃무늬 비슷한 문양은 가끔 눈에 띄지만 동물 모양은 절대 없다.

 

 

 

황금의 방을 나와 모퉁이를 돌아 입구를 나서면 앗, 많이 보던 광경인데, 라는 정원에 도착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말 낯익은 광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아직 오른쪽을 볼 시간이 아니다. 왼쪽의 검게 보이는 입구로 발을 들여 놓으면,

 

 

 

 

 

 

 

 

코마레스 탑의 입구에 해당하는 배의 방 Sala de la Barca 이 나온다.

 

 

 

 

이런 다소 어두운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알함브라가 규모로 사람 기죽이기에 들어간다. 이것이 '대사의 방 Salón de los Embajadores '.

 

대사의 방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알함브라의 왕이 외국 대사들을 접견하기 위한 자리다.

 

대사의 방은 알함브라의 마지막 이슬람 군주였던 보압딜이 1492년 1월, 기독교도의 왕, 페르난도2세와 이사벨라 여왕에게 항복한 장소이기도 하다. 보압딜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해를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북아프리카로 망명한다. 물론 상대가 관용이라곤 모르는 기독교도들이었으니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이야기'에 따르면 이 기독교도 군주들의 후손인 카를로스 5세는 보압딜의 우유부단한 처사를 비웃으며 "나 같으면 알함브라를 나의 무덤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빙은 이런 말로 보압딜을 옹호했다.

 

"권력과 권세를 지닌 사람들이 패배자들에게 영웅주의를 설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불행한 이들에게 목숨 말고 남은 게 없을 때, 그 목숨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들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이 거대한 방은 이렇게 이슬람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굴욕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전성기 때 왕은 이 창을 등지고 앉아 귄위를 뽐냈다고 한다. 

 

 

 

여기 저기 인용되는 대사의 방의 천장.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이 시절 사람들에겐 하늘에서 별이 떨어질 듯한 위압감을 주었을 듯한 천장이다.

 

 

 

다들 천장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쥐어 뜯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어디에나 있는 종유석 문양.

 

대사의 방을 나서 다시 배의 방을 지나 이 아치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스페인어를 살려 '아라야네스의 정원'이라고도 소개되는 도금양의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이 나타난다.

 

도금양은 뭘 도금했다는 뜻이 아니고, 식물의 이름이다.

 

 

이 샘으로부터 시작되는, 우아하고 격조있는 정원이다.

 

완벽한데 저 건물 너머로 보이는 흉물스러운 건물이 정돈된 스카이라인에 끼어든다. 바로 위에서 보압딜을 무시했던 카를5세가 이 궁 안에 지은 카를5세궁이다.

 

대체 왜 저기다 저따위 건물을 지은 것인지 불만이 생긴다.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지나온 방향을 바라보면,

 

 

코마레스 탑이 보인다. 저 탑 안이 하나의 방이고, 그 방이 바로 그 대사의 방이다. 그러니 넓을 수밖에.

 

흔히 나스르 궁전은 3개 지역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첫째 메수아르, 둘째 대사의 방(코마레스 탑)과 도금양 정원, 그리고 세째는 사자의 정원과 거기 딸린 세 개의 방이다.

 

 

이것이 절정에 오른 기둥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자의 정원 Patio de los Leones.

 

 

 

엄청나게 많은 기둥들. 기둥 하나 하나, 벽면 하나 하나가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 안에 있으면 정말 아름다움에 둔감해 질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사자의 정원이라더니 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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