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미국 월드컵 대표팀. 김주성 하석주 고정운 홍명보 등 왕년의 스타들이 보입니다. 지난번에 이어 한국축구사 요약 족보 2탄. 좀 길어도 그냥 한방에 끝내기로 했습니다. 한국축구 100년사 (2)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하자 축구협회는 또다시 대표팀 이원화론을 들고나왔다. 이번에는 화랑과 충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아이디어는 청룡-백호와 똑같았다. 아무튼 이 해 화랑팀의 일원으로 제6회 박스컵에 출전한 차범근은 첫 경기인 말레이시아전에서 1 대 4로 뒤지던 후반 38분부터 순식간에 3골을 넣으며 4 대 4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이날 이후 ‘한국 축구=차범근’이라는 등식은 그가 은퇴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은 남북 축구가 역사적인 첫 만남을 기록한 해였다..
지난 2005년 6월, 한국의 6회 연속 본선 진출이 결정된 쿠웨이트 국립경기장에서 창밖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경기전만 해도 쿠웨이트 3(손가락 세개), 한국 0이라고 재롱을 부리던 녀석들이 쿠웨이트가 박살이 났는데도 뭐가 그리 신나는지 BE THE REDS 티셔츠를 흔들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산만하고 활기차보이는 녀석들이더군요. 한때는 야구, 축구, 농구를 취재했습니다. 지나간 사진들을 보다 보면 그때의 잔영들이 조금씩 남아 있는 걸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그때 썼던 글들 중에도 남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해 가을 한 주간지의 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나름대로 간략하게 요약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총정리하고 싶은 분들은 한번 읽어보세요. 축구인들은 이미 1990년대부터 '한국축구 백년..
(마이데일리 뉴스 사진입니다.) 올해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던 양준혁이 요즘 살아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 반갑습니다. 프로야구 최고참 자리를 다투고 있는 이 노장의 분전을 보니 문득 생각나는 옛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1995년 여름의 어느 날입니다. 당시 삼성은 어정쩡한 중위권 팀이었습니다. 방망이는 괜찮았습니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 진출 주역이던 방망이는 비록 김성래가 급격한 쇠퇴의 기미를 보였지만 양준혁을 중심으로 신인 이승엽, 무명 중고신인 이동수(결국 95년 신인왕이 됩니다), 그리고 백인천 타격 인스트럭터의 후광을 받은 신동주와 최익성 등이 수혈되면서 만만찮은 기세를 보였습니다. 문제는 투수력. 김태한과 박충식을 제외하곤 믿을 선수가 없었습니다. 오봉옥이 잠시 구원투수로 반짝했지만 불펜의..
히딩크 매직이 유로 2008에서 부활했죠. 네덜란드까지 이길 줄은 정말 몰랐는데, 역시 네덜란드는 뒷심이 없는 팀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한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전력을 보면 어느 팀과 붙어도 지지 않을 것 같은데 절대 우승을 못하는 팀들이 있습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죠. 또 얘기가 곁길로 샜는데 아무튼 히딩크, 정말 대단합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납니다. 히딩크 감독이 희동구가 된 사연에 관련된 얘깁니다. 2002년 6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뜨거운 열기가 온 나라 안에 넘쳐 흘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열기가 뿜어나온 것은 6월4일, 폴란드전에서 한국이 월드컵 본선 사상 첫 1승을 올린 다음부터라고 얘기해야 정확할 겁니다. 당시 다른 회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저도 한 술집에서 폴란드전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