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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와 관련된 코멘트를 할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볼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만들걸 그랬다"고 합니다. 물론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겠지만, 저는 이 말에 한 30% 정도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감독의 '역사 비틀기' 솜씨는 이미 <황산벌>에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그 부문에서는 <황산벌>의 성취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햄릿>을 이용한 경극 장면은 지나치게 가벼웠다고나 할까요. 영화는 화려하고 볼거리도 풍부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기에는 약간 부족했다는 것이 저의 느낌입니다.

아무튼 국민의 1/4이 봤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성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제 지독하게 못난 짓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은 영화가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릴 무렵인 지난 2월에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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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1)
 

'왕의 남자'가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온갖 대작들이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연말연시 대목을 겨냥하고 일제히 포문을 여는 12월. '킹콩'과 '태풍'의 쌍끌이 정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려되던 '왕의 남자'는 예상밖의 선전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 관객 동원면에서는 '태풍'의 절반 정도인 200만명 선을 웃돌고 있지만 제작비는 '태풍'의 1/4 수준이니 효율면에서는 두배가 넘는 셈이다.

원작 연극 '이'가 보여준 이색적인 소재, 감우성과 정진영에서 신인 이준기에 이르는 출연진의 호연, 이미 '황산벌'에서 역사의 재해석에 만만찮은 솜씨를 보여준 이준익 감독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룬 결과. 그런데 '왕의 남자'를 보다 보면 궁금증이 절로 생긴다. 과연 이 영화는 얼마나 역사 속의 사실과 일치하고 있을까? 예전같으면 꿈도 꾸기 힘든 일이지만 최근 전산화된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의 힘으로 일반인들도 조선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단, 이하의 내용은 그냥 궁금증을 해소하자는 글일 뿐, 영화의 공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일찌기 임권택 감독의 '개벽'이 개봉됐을 때 한 재야사학자는 '최제우와 전봉준은 보은 집회에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영화에서는 사실을 왜곡했다'며 영화의 '부정확한 고증'을 지적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하기도 했지만, 이는 영화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다. 영화 작가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사건들의 구멍을 상상력으로 메울 권리가 있다.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1. 장생과 공길은 실존 인물인가?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의 연산군조에 장생이란 인물은 나오지 않지만 공길은 딱 한번 나온다. 연산군 11년(폐위되기 1년 전) 12월 29일의 일이다.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중략)'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하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이날 왕은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로 모이면 도둑이 된다"는 이유로 아예 광대들이 대거 참석하던 전통 유희인 나례를 폐지시켜버렸다.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어지간히 비위가 상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이보다 6년 전인 연산군 5년(1499년) 12월19일만 해도 은손(銀孫)이라는 뛰어났던 광대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가 은퇴했으니 후임자를 천거하라고 대신들에게 요구할 정도로 연희에 애정이 두터웠던 연산군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실제의 역사는 이런 기록 한 줄로 추정하기에는 훨씬 복잡했을 것이다. 참고로 공길이 미소년이었을 것이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


2. '왕의 남자'가 커버하고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인가?

시작의 시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앞부분의 내용이 갑자사화 직전의 긴장된 분위기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작은 연산군 10년인 1504년 3월 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1506년이다. 이렇게 따지면 전체 시간은 약 2년에 달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2년이 흘렀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3. 연산군은 정말 성종의 후궁들을 영화처럼 죽였나?

놀랍게도 실록은 영화보다 훨씬 끔찍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연산군 10년(1504년) 3월20일, 연산군은 임사홍의 밀고로 마침내 모친에 대한 복수의 칼을 뽑았다. 폐비 윤씨의 죽음이 아버지 성종의 후궁이었던 엄씨와 정씨, 그리고 이들을 궁으로 들인 할머니 인수대비의 참소 때문이라고 판단한 연산군은 일단 정씨의 소생인 두 동생,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잡아들여 곤장을 친다. 그 다음의 행동은 인간으로서는 용서받기 힘든 패륜의 극치였다. 실록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본다.

(왕은) 모비(母妃) 윤씨(尹氏)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嚴氏)·정씨(鄭氏) 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중략)

왕이 항과 봉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인수 대비(仁粹大妃)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욕하기를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항을 독촉하여 잔을 드리게 하니, 대비가 부득이하여 허락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손자에게 하사하는 것이 없습니까?' 하니, 대비가 놀라 창졸간에 베 2필을 가져다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대비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 뒤에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다음날 왕은 자신의 명대로 어머니를 곤장으로 친 안양군에게 말 한마리를 상으로 내리는, 제 정신인 사람은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결국 안양군 봉안군 형제는 1년 뒤 유배를 거쳐 사약을 받는다. 연산군은 이들을 죽이기 전에도 전 재산을 몰수하고 첩들을 다른 종친들에게 첩으로 보내는 등 악착같은 복수의 집념을 보였다. (2편에서 계속  http://isblog.joins.com/fivecard/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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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가요계를 악의 소굴로 생각하는 재야 가요 운동가라는 사람들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야말로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에 현재의 한국 가요계를 과연 '순위' 없이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든 순위를 '납득할 수 있는 기준'만으로 매길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차트인 빌보드 차트도 결코 판매량으로 매기는 차트는 아닙니다.

차트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과연 그나마 방송사만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차트를 만들 수 있는 기관이 한국에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실을 모르는 맹목적인 비판만큼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지난 1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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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왜 방송사는 가요 순위를 매기면 안되나?

MBC TV '음악중심'이 순위 발표를 포기했다. 이로써 한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가요에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그동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던 각종 시민단체들은 무척 속 시원해 할 일이겠지만 기자의 심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과연 TV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일각에서 주장하듯 가요계를 '정화'하는데 도움이 될까? 기자는 이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가요계의 비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동물원을 없애면 야생동물 남획이 사라지고 초등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으면 우등생과 열등생이 없어지는 평등한 사회가 된다는 식의, 지극히 단순한 논리의 소산일 뿐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공격하는 논리를 살펴보자. 비판자들은 가요의 순위 매기기가 비리의 온상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물론 방송은 대다수 가수와 제작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 중 하나지만 매주 발표되는 음반의 수에 비해 매주 방송에서 다뤄줄 수 있는 가수와 노래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이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가수들에게 있어 1차적인 문제는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그 다음 얘기다. 일단은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렇다면 비리 근절의 가장 좋은 수단은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방송에서 가요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되어야 한다. 1위냐 2위냐 순위를 다툴 수 있는 가수들이 전체 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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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를 매기든, 매기지 않든, 가요계의 비리가 이슈가 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무명의 신인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성 인기 가수들이 새 음반을 냈을 때,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인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제아무리 담당 PD가 자신의 귀를 믿고 훌륭한 신인을 발굴해도 어딘가에서는 잡음이 나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비리를 둘러싼 논란이 '순위'와는 사실 별 상관이 없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또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특정 장르에만 편중해 대중음악의 저질화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순위 매기기와는 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방송사의 자체 기준에 의한 출연자 선정에 외부의 입김이 개입됐을 때, '카우치 사건'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10대 취향의 음악에만 편중해 대중음악계를 왜곡시킨다'는 주장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의 축으로 지목된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한국에서 가장 대중의 지지가 높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그리고 현재 대중음악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은 계층은 바로 10대들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계층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 일이지,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을 뜯어고치자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런 주장을 드라마에 그대로 적용하면, '10대를 겨냥한 시트콤'같은 프로그램도 사라져야 한다. 과연 모든 드라마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일 필요가 있을까.

일각에서는 순위 매기기 자체가 가요계의 '상업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이런 주장에까지 응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방송사든 아니든 가요 순위가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 당장은 누가 인기가수이고 누가 인기가수가 아닌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지만,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난 뒤 누군가 한국 가요사를 정리하려는 상황이라면,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당시를 평가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음반 판매량도 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빌보드 차트가 그저 음반판매량 순위가 아닌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빌보드 차트가 지금의 권위와 명성을 획득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빌보드 지 편집진의 노력이 있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비판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TV 가요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공정한 순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존재가 음반 판매량과 방송 회수, 다운로드 회수, 전문가들의 평가 등을 종합해 방송사보다 권위있고 공정한 순위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보다 믿을만한 순위 작성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이런 중요한 과업을 일부의 비판 때문에 폐지해버린 방송사들의 단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끝)





이 글을 쓴지 2년이 돼 가지만 상황이 달라진게 있다면 지상파 TV 가요 프로그램들이 극도의 시청률 저하로 영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정도입니다. 가수들은 시청률이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해 인지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기존의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비정상적인 시각도 이런 현실을 만든 범인 중 하나일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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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킹콩'에 열광했던 건 이렇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힘도 세고, 잔머리 따위는 굴리지 않고, 외모는 좀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일편단심인 남자친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나온 '킹콩 무비'들을 비교해서 즐겨보실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송원섭의 through*2] 세 '킹콩'들에 대해 궁금한 8가지 것들

지난 1933년 처음 극장에 등장한 이후 킹콩은 슈퍼맨과 배트맨을 포함해 어떤 캐릭터 못잖은 유명한 존재가 됐다.

이번에 피터 잭슨이 만든 작품은 72년 전의 오리지널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것. 과연 이 사이 킹콩은 얼마나 달라졌고, 그 동안 어떤 변천사를 겪어왔을까? 모르고 봐도 상관없지만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킹콩' 이야기를 모아 봤다.

1. 킹콩은 지금까지 3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머라이언 쿠퍼의 오리지널은 1933년작. 1976년에는 제프 브리지스, 제시카 랭 주연의 '킹콩'이 만들어졌고 2005년, 피터 잭슨이 33년작을 리메이크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미지의 섬에 석유를 찾아 나섰다가 킹콩을 발견한 유조선 선원들의 모험을 그린 76년판의 감독 존 길러민은 1986년 암컷 킹콩이 나오는 속편을 제작하기도 했으나 그 수준은 참혹할 정도였고, 이 영화는 정식 '킹콩' 계보에서 사실상 삭제됐다. 33년판에도 '킹콩의 아들(Son of Kong)'이라는 속편이 있지만 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계보는 할리우드판 킹콩만을 감안한 것. 지난 76년 만들어진 이낙훈 주연의 한미합작 3D영화 '킹콩의 대역습(Ape)'이나 킹콩이 등장하는 고지라 시리즈를 합하면 킹콩이 출연한 전 세계 영화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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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 킹콩 중에서 실제로 가장 컸던 것은 신장 12미터(40피트)였던 76년판의 킹콩. 33년판 킹콩의 키는 대사에는 15미터(50피트)로 되어 있지만 피터 잭슨은 33년판에 나오는 킹콩의 키를 사람이나 건물의 높이와 비교할 때 실제 키는 그 절반 정도라고 판단하고 2005년판에 나오는 킹콩의 키를 7.5미터(25피트)로 결정했다.

3. 세 편 모두 킹콩은 뉴욕에서 최후를 맞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세 편 모두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무대가 된 것은 아니었다. 76년판에서 킹콩은 9.11 테러로 사라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기어올라간다. 뉴욕의 마천루를 대표하는 빌딩들이 '킹콩' 유치를 위해 벌인 경쟁에서 WTC가 이긴 결과였다.

4. 피터 잭슨의 2005년판은 33년판의 충실한 재현.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고 어머니의 털 코트를 잘라 킹콩 인형을 만들고 놀았다는 잭슨의 33년판에 대한 존경심은 가끔 장난기로 변해 나타나기도 한다. 도입부에서 화감독 데넘(잭 블랙)과 조수 프레스톤(콜린 행크스)은 여배우 캐스팅에 대해 이런 대화를 나눈다.

데넘: 페이는 어때?

프레스톤: 페이는 쿠퍼와 함께 영화 찍고 있어요.

데넘: 맞아. RKO 영화였지.

페이(레이)가 출연하고 (머라이언)쿠퍼가 연출한 RKO 영화란 바로 오리지널 '킹콩'. 잭슨은 원작에서 앤 대로우 역을 맡은 페이 레이를 2005년판에도 특별출연시켜 마지막 대사인 "킹콩을 죽인 건 비행기가 아니야. 미녀가 야수를 죽인 거지"라는 대사를 맡기려 했지만 레이는 지난해 8월 97세로 사망했다.

5. 33년판과 2005년판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일단 캐릭터 중에서 남자 주인공 잭 드리스콜은 2005년판에서 앤 대로우(나오미 와츠)가 존경하는 작가지만 33년판에서는 그냥 용감무쌍한 부선장일 뿐이다.

킹콩과 여주인공 사이의 종을 초월한 애틋한 감정은 76년판에서 시작됐다. 33년판의 여주인공 페이 레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킹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76년판의 제시카 랭은 마지막 순간 헬기 편대의 기총소사를 막기 위해 흐느끼며 킹콩을 감싼다. 2005년판에서 피터 잭슨은 여기에 감미로운 스케이팅 신까지 추가하며 '미녀와 야수'라는 주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6.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 역을 맡아 명성을 얻은 앤디 서키스 는 이번에는 1인2역을 해내 피터 잭슨의 오른팔임을 증명했다. 영화에 나오는 디지털 킹콩의 표정은 서키스의 표정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킹콩 역할을 위해 런던 동물원의 고릴라들과 안면을 틀 정도로 심도있는 연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또 하나의 캐릭터는? 바로 애꾸눈 선원 럼피다.

7. 이밖에 프레스톤 역의 콜린 행크스는 별로 닮지 않았지만 톰 행크스의 아들. 또 지미 역의 제이미 벨은 '빌리 엘리어트' 의 그 소년이다. 카일 챈들러가 연기한 극중 할리우드 스타 브루스 박스터는 어딘가 클라크 게이블을 희화화한 듯한 모습. 실제로 브루스 박스터라는 배우가 있기는 했지만 원작이 만들어질 무렵인 30년대에 활동하지는 않았다.

8. 피터 잭슨은 두 권의 책을 잊지 않고 부각시킨다. 첫째는 1912년에 출간된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원시 생물들이 군집해 살고 있는 절해고도를 탐험하는 내용인 이 책은 오리지널 '킹콩'의 발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 2편의 제목이 '잃어버린 세계'인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잭슨이 그려낸 해골섬의 장벽 모습은 '잃어버린 세계'의 삽화에서 영감을 얻은 33년판의 영상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또 2005년판에서 지미가 항해중 읽는 책은 1899년에 나온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 훗날 프란시스 코폴라가 만든 '지옥의 묵시록'의 원안이 되는 바로 그 책이다. 서구인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저개발국의 자연과 주민들에게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거를 저질렀는가를 고발하는 이 책을 등장시킴으로써 잭슨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송원섭 기자





p.s. 심지어 한국 영화 '킹콩의 대역습'은 입체영화였습니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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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면 진행되는 조용필의 예술의전당 공연 리뷰입니다.

2005년 연말 공연을 보고 쓴 글이니 벌써 세월이 참 흐를대로 흘렀군요.

한때 조용필은 '마마미아' 스타일의 공연을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미 그 욕심은 버렸다는군요. 하지만 그의 공연에는 여전히 뮤지컬의 향취가 풍깁니다.




[송원섭의 through*2] 두얼굴의 조용필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갈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조용필, '바람의 노래' 중에서


몇해 전부터 조용필의 콘서트는 항상 2부로 나뉜다. 2부는 보통 가수들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 1부는 뮤지컬 스타일의 독특한 콘서트가 펼쳐진다.

한동안 '마마미아'(아바) '위 윌 록 유'(퀸)처럼 한 뮤지션의 노래들로만 채워지는 '가수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조용필은 최근 "기존의 곡들을 죽 배열하는 식의 뮤지컬은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매년 갖는 연말 공연의 1부다.

올해 공연의 1부였던 '정글 시티'에서 고정된 캐릭터는 한 사나이(조용필)와 영원의 여인(이상은) 뿐이다. 캐주얼 러브가 판을 치는 도시 한 복판에서 지쳐가는 주인공은 문득 먼 기억의 저편에서 어린 시절 사랑했던 그녀를 떠올리고, 마침내 그녀를 찾아낸다는 것이 '정글 시티'의 줄거리다.

줄거리는 있으나 거의 모든 노래는 조용필 혼자 이끌어간다. '명성황후'의 주역이었던 이상은과 코러스, 어린이 합창단이 부분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가수 혼자 노래를 하면서 나머지 출연자들이 춤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기본적인 형식은 빌리 조엘의 노래를 이용한 브로드웨이 쇼 '무빙 아웃(Movin' Out)'을 연상시킨다.

'무빙 아웃'은 무대 상단에 밴드와 가수(물론 빌리 조엘 본인은 아니다)가 위치하고, 하단의 배우들은 무용을 통해 1960년대에 고교를 졸업한 뉴욕 출신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반항의 나날과 월남전의 상처를 딛고 세상과 화해하게 되는가를 연기한다. 물론 그 시대의 젊음을 노래에 담았던 빌리 조엘의 노랫말들이 나레이션 역할을 한다.

뉴욕에 '피아노 맨' 조엘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조용필이 있었다. 가왕 조용필은 '추억 속의 재회' '눈물의 파티' '꿈' 등 주옥같은 노래와 노랫말을 통해 도시와 고독, 소외와 절망의 극복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구원의 여인을 향해 부르는 노래,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라는 '바람의 노래'는 대체 한 가수가 이룰 수 있는 성취의 끝은 어디인가를 의심케 하는 찌릿한 전율이 객석에 차고 넘치게 했다.

1부 공연에서 하늘 위로 올라갔던 조용필은 2부 시작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팬들을 만났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풍겼던 1부와는 달리 2부의 조용필은 때로 친근한 동네 아저씨처럼("밀지들 말어, 다쳐, 여기 상주 만들 일 있어?"), 아니면 옛날 그대로의 '오빠'처럼("아유, 알았다니까, 소리좀 고만 질러") 팬들을 품에 안았다. 그렇다. 그의 얼굴은 정확하게 두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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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못찾겠다 꾀꼬리' '정' '눈물로 보이는 그대' '미지의 세계' '잊혀진 사랑' '여행을 떠나요' '모나리자'...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히트곡의 퍼레이드는 마침내 앵콜곡 '단발머리'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자존심'으로 막을 내렸다.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막이 내려와도 팬들의 아우성이 끊기지 않자 조용필은 퇴장하는 밴드를 다시 불러세워 관객들과 함께 '친구여'를 합창했다.

문득 공연 전 조용필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욕심 같아선 전 공연을 1부처럼 하고 싶은데, 팬들 마음이 다 똑같지가 않아요. 어떤 노장 하나가 '난 허공 들으러 왔는데 지금 이게 뭐야' 하면 어떻게 할거야. 그분들 생각도 해야 돼요."

그러고 보니 '허공'은 없었다. '촛불'도, '물망초'도, '큐'도, '간양록'도,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그 겨울의 찻집'도 이날 공연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미워 미워 미워'도, '비련'도, '아시아의 불꽃'도, '마도요'도 연주되지 않았다. 대체 이 노래들은 언제 다 들려주려는걸까. 문득 '그분'이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는 '조빠'였구나.

송원섭 JES 기자
five@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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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셨나요? 이 영화에서 짜장을 얼굴에 묻힌 최진실과, 김 서린 창문에 하트를 그리던 박중훈의 모습이 기억나시나요?

그런 분들이 읽어보시면 잠시나마 옛 기억이 살아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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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형사'의 부활에 대한 단상

재미란 무엇인가. '엔터테인먼트'를 취재 대상으로 10년 이상 종사하다 보니 '재미'라는 말의 벽에 부딪힐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나마 결론을 내린 것이 있다면, '결국 재미란 음식 맛과 같다. 어느 정도 일반적인 기준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개개인의 취향이 절대적인 기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명세 감독의 '형사'가 디지털 판으로 재상영된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의 일이다. 디지털 버전의 '형사'는 CGV강변 인디영화관에서 23일부터 일주일간 하루 2차례씩 상영되며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상영기간이나 회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 연말 영평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을 휩쓴 이후의 쾌거라고 할 만 하다.

기자는 분명 이명세 감독의 팬이 아니다. '형사'를 재미있게 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한때는 그에게 심각한 반감을 갖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너무도 한심한 것인데 여기서 한번 공개해보기로 한다.

대부분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기자도 이명세 감독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통해 처음 만났다. 경직 일변도의 한국영화계에 한줄기 훈풍으로 다가왔던 이 영화에는 신랑 박중훈이 유리창에 하트를 그려 창문 너머에 있는 신부 최진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좀 더 자세히 복기해 보자. 추운 겨울날, 집들이를 마치고 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던 박중훈은 김 서린 창 너머로 최진실이 설겆이하는 광경을 본다. 박중훈은 손을 호호 불며 하트를 그리고, 창을 두드려 최진실이 그 하트를 보게 한다.

흐뭇한 장면. 그러나 기자는 이 장면에서 심사가 마구 뒤틀렸다. 생각해보라. 추운 겨울이면, 창문에 김이 서리는 것은 따뜻한 집 안쪽이지 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쪽이 아니다. 그러므로 박중훈은 창문에 하트를 그릴 수도 없고, 설사 그린다 해도 안쪽에 서린 김 때문에 최진실은 하트를 볼 수도 없다.

기자는 '이런 기초적인 자연법칙조차도 무시하고 영화를 만든' 이명세라는 감독을 향해 치기 어린 비난을 퍼부었고, 그 뒤로는 그의 영화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괴로워'는 물론이고 '인정사정 볼것없다' 또한 허점 투성이의 영화일 뿐이었다(그러면서 참 많이도 봤다).

지난 9월 개봉됐던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는 일반 관객들을 상대로는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열광하던 팬들은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간판을 내린 것을 견디지 못하고 직접 돈을 걷어 단관 상영회를 계속해왔다. 팬카페에서는 이 영화를 몇번 봤느냐를 가지고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극장에서 몇명이 이 영화를 봤느냐는 그 다음 문제. 이명세 감독은 행운아다. 적지만 자신의 영화를 호응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데 스필버그인들 부러울까.

영화든 드라마든, 만듦새나 수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된 평가의 기준도 있고, 누구라도 그 기준으로 영화를 농단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나 관객수가 그 영화의 '재미'까지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에겐 최악의 드라마가 남들에겐 인생 최고의 걸작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유명한 평론가라도, 이런 면에서는 '수많은 관객(또는 시청자)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송원섭 JES 기자 five@jesnews.co.kr

*<Through*2>는 연예계의 다양한 사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칼럼입니다. 제목인 <Through*2>는 걸리는 곳 없이 이리저리 통한다는 <Through+Through>, 한글로는 <두루두루>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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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연말, 패닉의 앨범을 듣고 쓴 글입니다.

'두루두루(Through*2)'라는 제목을 정하고 가장 먼저 쓴 글이죠.





<송원섭의 Through*2> 패닉은 '취업재수생' 정서, 서태지는 '자퇴생' 정서?

듀오 패닉이 7년만에 4집으로 복귀했다. 이적과 김진표, 비록 패닉이라는 이름으로는 아니었지만 두 뮤지션은 모두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활동했던 프로젝트나 팀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원고지 한장은 충분히 채울 정도다. 그렇지만 패닉 이후의 어떤 움직임도 그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지난 95년 데뷔한 패닉의 등장과 성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와 맞닿아 있다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팬들은 패닉을 통해 서태지의 공백에서 온 아쉬움을 달랬다. 고만고만한 목소리의 '대중가요 가수들'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뮤지션의 등장이야말로 대중이 애타게 찾던 것이었다.

한때 신해철은 "서태지는 '낙오자 정서', 내가 대변하는 것은 '비겁자 정서'"라고 정리한 적이 있다. 패닉은 이런 구분에 따르면 역시 '낙오자 정서'에 속하는 그룹을 대변해왔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지금까지 패닉은 비록 낙오자이기는 하나 언제든 현실을 딛고 성공하고 말겠다는 '취업 재수생의 정서', 서태지는 세상은 세상, 나는 나라는 '자퇴생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구별할 수 있다.
패닉의 노랫말들은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자신을 노래하긴 하지만, 항상 '현실에의 복귀', 혹은 '언젠가의 화려한 성공'을 동경하고 있다. 4집의 대표곡이 '로시난테'로 뽑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뮤지컬 '라 만차의 사나이'에 나오는 '임파서블 드림(Impossible Dream)'과 일맥상통하는 이 노래에서 이적은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달려보자/ 언제고 떨쳐낼 수 없는 꿈이라면', 김진표는 '절대 포기하면 안돼/ 모든 걸 할 수 있는 바로 난데'라고 노래한다. 1집의 대표곡인 '달팽이'에서도 이적은 '언젠가/ 저 멀고 거치른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노래했다.

이적이 불렀던 토이의 5집 수록곡인 '모두 어디로 간 걸까'는 비록 이적이 쓴 가사는 아니지만 이런 맥락에서 너무나도 패닉적인 노래다. '말해줘/ 난 잘하고 있다고/ 나 혼자만 외로운 건 아니라고'라는 가사는 '지금은 비록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지만 나는 결코 이렇게 뒤처져 있지는 않을 거야'라는, 결코 현실을 포기하지 않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거칠은 인생속에/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나를 완성하겠어(컴백홈)'라는, 서태지가 갖고 있던 '이 세상을 등져도 어쨌든 나는 나'라는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서태지만큼 강한 의지를 부르짖지는 않지만,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패닉의 목소리가 한층 따뜻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런 패닉의 목소리가 7년간의 공백을 딛고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어쩌면 7년 전보다, 사람들은 한층 더 이렇게 옆에서 격려해주는 목소리에 목말라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7년 전에 10대였던 패닉의 팬들이라면 이제 사회의 차가운 바람을 정면에서 맞게 된 시점에 만난 옛 친구가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표곡의 제목이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라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일찌기 삼국지에 나오는 위무제 조조는 귀수가(龜首歌)라는 시에서 '노기복력, 지재천리(老驥伏?, 志在千里)'라고 읊었다. '늙은 천리마는 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그 뜻은 천리 밖에 있다'는 뜻. 이 시의 댓구인 열사모년 장심불이(烈士暮年 壯心不已), '절개 있는 선비는 비록 늙었어도 당당한 뜻은 사라지지 않는다'와 맞춰 읽으면 바로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 로시난테면 어떠냐. 비록 잠시 뜻을 잃었어도, 또는 이미 늙었어도 타고 떠날 말 한필만 있으면 우리는 모두 정의의 기사 돈키호테인 것을.

송원섭 JES기자 fivecard@jesnews.co.kr

*<Through*2>는 연예계의 다양한 사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칼럼입니다. 제목인 <Through*2>는 걸리는 곳 없이 이리저리 통한다는 <Through+Through>, 한글로는 <두루두루>라는 뜻입니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조조는 뛰어난 무장인 동시에 대단한 문장가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편에 나오는 횡삭부(橫朔賦)도 훌륭하지만 여기서 예로 든 귀수가는 감히 조조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龜雖歌

神龜雖壽, 신령스런 거북이 오래 산다 하나,
猷有竟時. 반드시 죽을 때가 있고
騰蛇乘霧, 이무기(騰蛇), 안개를 타고 오르나,
終爲土灰. 결국은 흙먼지가 되고 만다.

老驥伏? 늙은 준마는 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志在千里, 뜻은 천리밖에 있으며,
烈士暮年 열사는 늙어도
壯心不已. 장한 뜻은 사라지지 않네.

盈縮之期, 넘치고 모자란 때가
不但在天    하늘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네.
養怡之福, 몸간수를 잘 하고 마음을 즐겁게 가지면
可得永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을.

幸甚至哉, 얼마나 행복한가,
歌以詠志. 노래로써 뜻을 읊을 수 있으니.





노기복력(老驥伏력)의 '력'은 木자 옆에 歷자가 붙은 것으로, '말구유 력'이라고 불리는 글자입니다. '노기복력 지재천리, 열사모년 장심불이'. 나이 먹은 뒤에 들으면 다시금 가슴이 뛰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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