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양식 문화가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건 사실 상식이다. 19세기 개항 시절부터 해외 문물의 도입에 워낙 적극적이었던 일본. 온갖 나라의 온갖 식재료와 기술이 세계적인 대도시 도쿄로 몰려든 결과일테고, 1980년대 버블 시대를 거치며 그 모든 취향이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됐을 터.
(이런 '취향'의 허세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라고 생각한다. 읽어 보신 분은 잘 아실 터. 세기말적인 허세와 극도로 발달한 욕구가 '정말 이렇게까지 했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버블 시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어쨌든 서울에도 정통 나폴리식 피자를 굽는 집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얼마 전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 군이 '아시아 최고의 피자'라고 극찬한 집이 도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또 도쿄를 가는 김에, 그럼 그런 집은 가 봐야지. 점심에는 예약을 받지 않아 상당한 웨이팅을 각오하고 고고.
웨이팅을 각오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자집 '리스토(Risto)' 자체도 핫하지만 피자집이 있는 곳이 바로 도쿄의 최신 핫플레이스 아자부다이 힐스이기 때문.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건축가인 토마스 헤더윅의 헤더윅 스튜디오가 설계한 곳. 안 그래도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는데, 바로 이렇게 기회가 생겼다.
일류 건축가들이라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헤더윅의 스타일은 뭔가 자연과의 공존에 무게를 두는 느낌이 짙다.
아자부 언덕을 올라가며 구축된 건물들이다 보니 뭔가 능선을 연상시키는 그런 설계.
명품 샵들이 그득한, 3층 정도의 건물들이 언덕 아래에서부터 죽 줄지어 올라가고(가 보면 실제로 건물들이 언덕을 기어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덕을 꽤 올라간 곳에 메인 빌딩인 타워 플라자를 비롯, 몇개의 건물들로 둘러 싸인 중앙 정원이 나타난다.
어느새 그 정원의 명물이 된 크레페 가게.
3층으로 올라가면 리스토가 나온다.
오픈 직전에 도착. 줄은 서 있지만 대기 없이 앉을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화덕. 뻬뻬가 화덕이란 뜻은 아니겠지?
피자 가격은 대략 저 정도. 장소가 장소다 보니 비싼 거 인정. 시그니처인 별 모양 피자와, 하루 5개 씩만 만든다는 한정판 피자를 시켜봤다. 그게 뭐지.
"나폴리에선 와인을 피자 안주로 먹나?"
"아뇨. 이탈리아 사람도 와인이랑 피자는 같이 잘 안 먹어요."
"그럼 뭘 먹어?"
"대개 맥주랑 먹죠."
오호. 이딸리아에서도 피맥이 정석. 알베군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암.
주방장 특선 모듬 전채. 프로슈토, 모짜렐라, 말린 토마토 등등. 맛난 것들.
그리고 시그니처 별 피자. 물론 내용물은 아주 충실한 나폴리식 마르게리타 피자다.
당연히 맛있는데, 아주 충실하게 맛있다. 그리고 저 별의 뿔 모양 손잡이 속까지 매콤한 양념이 잘 되어 있다.
이것이 한정판이라는 Il futuro della salsiccia e friarielli. 생 소시지를 까서 채소와 함께 마구 볶은 뒤 반죽에 녹아들게 해서 같이 구운 피자. 맛있다. 뭐라 더 표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대책없이 맛있다.
아쉬워서 시켜 본 봉골레. 양이 너무 치명적이긴 한데, 저 국수가 믿을 수 없게 맛있다. 국수가 바지락과 홍합의 맛을 쪽쪽 빨아들인 그런 맛. 국수라기보다는 길게 늘인 수제비를 먹는 맛? 놀랍다.
그리고 나폴리탄 라구 파스타를 더 먹었는데, 이건 너무 맛있어서 그랬는지 사진찍는 걸 잊었나보다. 없어짐.
점심을 두둑하게 먹고 아자부다이 힐스의 상징 같은 뚜껑 아래서 크레페로 마무리.
총평: 아자부다이 힐스는 괜찮은 피자집이었다. 좀 비싼 것만 빼면 아주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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