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한국 케이블TV 사상 최고의 히트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도 막바지에 달해 최종 승자 가리기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예선을 시작한다고 홍보에 열을 올릴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지난 주에 이 프로그램은 MC와 심사위원 한명을 교체했습니다. 예정된 수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시청자들의 방송평과 일치하는, 적절한 교체였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심사만 시청자 피드백을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 셈이죠.

'슈퍼스타K'가 본선을 시작했을 무렵, 시청자들로부터 적잖은 불만(?)이 터져나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심사위원들의 투표 결과(10%)가 아니라 네티즌들의 투표(70%)에 의해 사실상 상위 입상자가 결정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이 꽤 많았죠.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 '공평'과 '불공평'을 나누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의견입니다.



슈퍼스타 K가 불공평하다고?

요즘 QTV '열혈기자'라는 프로그램에 관여하고 있다. '열혈기자'란 연예기자를 지망하는 젊은이들(물론 지원자는 수백명이었다)에게 매주 미션을 부여하고, 수행 결과를 토대로 매주 한두명씩을 떨어뜨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남는 한 사람은 일간스포츠 연예기자로 채용된다. 부상으로는 차를 한대 준다.

이 도전자들에게 기사 연습 삼아 현재 방송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들의 리뷰를 시켰더니 한 친구가 M.net의 '슈퍼스타 K'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껏 최고 가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매긴 점수는 10%만 반영되고 네티즌 투표가 70%를 차지하는 것은 말도 안 되게 불공평한 제도라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말 불공평한 제도일까?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도전자를 탈락시키는 방법은 크게 나눠 세가지다. 같은 도전자들끼리 평가해 떨어뜨리는 방법('서바이버', '배첼러' 등),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해 떨어뜨리는 방법('어프렌티스', '프로젝트 런웨이' 등), 그리고 시청자나 네티즌들이 떨어뜨리는 방법('아메리칸 아이돌' 등)이다. 마지막 방법은 앞의 두 방법에 대해 불공평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쎄다. 일단 프로그램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슈퍼스타 K'는 대중 가수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이다. 최고의 대중 가수는 어떤 사람인가? 전문가들이 최고라고 인정하는 사람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어느 시대나 '비운의 명가수'라는 이름으로 소수 마니아들의 칭송을 받지만 최고의 자리에선 한발 비껴 가는 가수들이 있다. 자주 예로 드는 코멘트지만, 한때 최고의 남성 R&B 보컬이었던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내한 공연 때 기자회견에서 "농구에선 가장 골을 잘 넣는 마이클 조던이 최고지만 팝계에선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최고의 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인정한다면, 전문가들인 심사위원들이 1위를 선정하는 것보다 대중이 직접 ARS 투표를 통해 떨어뜨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결코 '불공평한' 일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사실 불공평하다면 대중의 인기라는 것이 본래 '공평'과는 거리가 멀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뽑았다는 칸 영화제 그랑프리작이 흥행에서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심지어 이보다 훨씬 대중적이라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역시 정작 일반 관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때가 많다.

그렇다고 아예 작정하고 대중적으로 만들면 늘 대박이 나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늘 도박성을 띤다. 그나마 실력과 인기의 차이가 가장 적은 분야는 스포츠다. 그 스포츠에서도 팬들이 뽑은 인기 순위 1위와 전문가들이 뽑은 실력 1위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을 확장시킬수록 대중의 선택이란 점점 더 믿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장 잘 만들어진 자동차가 항상 판매 1위가 되는 것도 아니고, 최고 품질의 상품이 반드시 시장 점유율 1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온 세상의 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에게 '지금 당신네 나라의 국가원수는 당신네 정치인들 가운데 제일 뛰어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떤 답이 나올까?

그런 면에서 '슈퍼스타 K'의 방식(혹은 그 원조인 '아메리칸 아이돌'의 방식)은 대중의 잔혹함과 변덕스러움, 그리고 때로 이해하기 힘든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좋다는 건 아니다. "불공평하다고? 어쩔 수 없어. 그게 바로 세상의 이치니까…"라고 안영미 흉내를 내긴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대중과 평단을 모두 감동시키는 진짜 천재가 불쑥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웅크리고 있다. 사실은 이런 희망이 '슈퍼스타 K'를 지탱하는 진짜 힘일 지도 모른다.

P.S. 그럼 '슈퍼스타 K'에서 대중이 선택한 최종 우승자는 켈리 클락슨 같은 슈퍼스타의 자리가 보장되는 거냐고? 어허. 지금까지 뭘 들으셨나. 대중에게 어떤 식이든 변덕 없는 일관성을 기대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좌절로 끝난다니까. 그건 그때 가 봐야 알지.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중문화와 관련된 각종 산업은 모두 동전던지기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만치 현재까지의 추세로 미래의 경향을 점치는 것이 그야말로 '점치는' 수준에 가깝다는 얘기죠. 가장 믿을만한 생산 단위들을 이용해 콘텐트를 만들어도 기대했던 결실이 나올지 안 나올지에 이르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슈퍼스타 K'는, 말하자면, 대중문화의 생산 단위에서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중간 마진을 제거하려는 시도입니다. 생산자들이 직접 대중 앞에 나서서 우리의 가치를 매겨 달라고 요청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중의 직접 평가가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여기서 배출된 승자들은 그만치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다만, 이 가능성 역시 '높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뜬다'고 말하기는 힘들 겁니다. 대한민국 연예계로 진출하는 채널이 바로 이 '슈퍼스타 K'하나로 한정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반드시 그럴 거란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프로그램이 케이블 TV로서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이 전체 대중의 취향을 대변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릅니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들'의 경우에도, 모든 우승자가 승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슈퍼스타 K'는 미국 시장에 비해 턱없이 위축돼 있고 지금 이 순간도 무너져가고 있는 유료 음악 시장을 무대로 삼아야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만약 '대중이 직접 뽑은' 이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정작 음반을 내놓고 프로로 데뷔했을 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 물론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 그거야말로 대중의 두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