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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 쇼'를 진행하며 엔터테이너로 변신한 박중훈이 자신의 토크쇼 진행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박중훈쇼'가 재미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세태가 안타깝다"고 언급했습니다. "촬영 끝나면 멱살 잡을 얘기를 하면서도 게스트가 질문에 꼬박꼬박 대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더군요.

일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지만 또 일면 반발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연예계 스타들은 좀 너무 심하다 싶게 대중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류스타급의 톱스타들은 어쩌다 한번씩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도 자신이 노출하고 싶은 곳까지만 보여주고 말죠.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정성은 삼대독자를 돌보는 과보호 어머니 수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럴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서는 어쨌든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세에  충실한 스타들이 더 인기를 얻는 듯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신비주의가 약발이 있는 듯 합니다. 광고주들은 확실히 그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토크쇼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연예계의 온도차이에 대한 내용입니다. 물론 아쉬움이 깊이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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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런데, 내가 손님 아니었나?

요즘 재미있게 보는 미드 중에 '앙투라지(Entourage)'가 있다. 불어로 '측근' 정도의 뜻을 가진 이 말은 스타 하나에 붙어 사는 매니저와 에이전트, 잔심부름을 하는 어릴 때 친구 등등 소위 '패거리'들을 가리킨다.

드라마 '앙투라지'에는 젊은 나이에 할리우드의 톱스타로 떠오른 빈센트 체이스(에이드리언 그레니어)와 그의 형이자 마음만 톱스타인 무명 배우 조니(케빈 딜런)가 나온다. 입만 열면 '사나이의 길'을 강조하는 마초 배우 조니는 최근 방송된 '앙투라지' 시즌 5에서 모처럼 TV 토크쇼에 출연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토크쇼 진행자 우피 골드버그(실명으로 출연)의 노련한 유도에 말려 여자친구에게 차인 사실을 고백한 뒤 "널 잊지 못하고 있다"며 눈물까지 흘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만약 조니가 아니라 한국의 유명한 남자 연기자가 토크쇼에 출연해 헤어진 여자친구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면 어떻게 될까. 여자의 눈물만은 못하지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씬에선 남자의 눈물도 꽤 괜찮은 상품이다. 아마도 그의 미니홈피에는 '오빠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어요'라는 댓글이 섭섭찮게 매달릴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조니는 이 방송을 본 사람들에게 모두 반편 취급을 받는다. 여자에게 차인 것도 차인 것이지만 방송에 나가서 남자가 '질질 짜기나 한다'는 건 무시당해 싼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토크쇼에서의 모습에 대한 한국과 미국 시청자들의 반응 차이는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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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KBS 2TV '박중훈 쇼'에 장동건이 나왔다. 호스트 박중훈과 제작진은 동아시아 10개국을 호령하는 스타 장동건을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다루듯 했다. 여성 시청자들이야 아니었겠지만 남자 시청자들은 정말 별 것 아닌, "성인이 된 뒤에 몇번이나 여자를 사귀어 봤습니까" 정도의 질문에도 물을 마시며 주저하는 장동건의 모습에 속이 좀 꼬였을 법 하다. 고만 질문에 목이 바짝 마르다니, '무릎팍 도사'라도 나갔으면 애저녁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일 아닌가.

물론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한국의 스무살에서 마흔살 사이 여성들에게 최상의 판타지를 제공해주는 왕자님 아닌가. 과연 그도 자고 일어나면 눈에 눈꼽이 낄까(이날 박중훈이 구사한 조크 중 가장 공감이 갔다).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부러워할만한 스타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그가 뭐하러 사소한 웃음을 위해 제 살을 깎겠느냔 말이다. 오히려 박중훈이 조금이라도 장동건을 몰아붙일라치면 '아니, 감히 어떻게 저런 불경스런 말을'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영화 '트로픽 썬더'를 보면 너무 큰 온도차에 놀란다. 벤 스틸러나 잭 블랙은 그렇다 치고, 톰 크루즈가 대머리 가발을 쓴 채 뚱보로 분장하고 둥실둥실 엉덩이 춤을 추고 있다.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망가지는 걸까?

뼛속까지 엔터테이너인 미국 톱스타들의 엽기 행각을 보면 가끔 이건 좀 도를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맷 데이먼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멜(Jimmy Kimmel) 사이에서 벌어진 'I'm ****ing Matt Damon' 비디오 시리즈를 보면 이런 사소한 장난에 벤 애플렉, 브래드 피트, 카메론 디아즈, 로빈 윌리엄스, 조쉬 그로번 등의 톱스타들이 끼어들어 어처구니없이 망가지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분들을 위한 링크입니다.)


아무튼 '참 미국 애들은 별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그들이 만든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럼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쪽이 더 좋은 공급자 아니었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게 된 거지? 이것도 한미간의 차이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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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란 대중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들이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방식은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게 가장 기본일텐데 가끔은 '군림하는 것이 대중을 위하는 길'로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스타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는 건 대중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은 가끔 변태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품질의 싼 물건이 있는데도 공연히 '그래도 뭔가 있으니 비싸겠지'라는 생각에 고가의 물품 쪽으로 눈을 돌리곤 하죠. 깎아 주면 괜히 싸구려 취급을 하기도 하고, 친절하게 대할 수록 만만하게 보기도 합니다. '일본인은 하루에 1품목 이상 구매할 수 없음'이라는 오만한 안내문이 쓰여 있는 파리의 명품점은 매일 그래도 좋다는 일본 관광객들로 미어 터진다고 하죠.

뭐 이런 것도 좋습니다만, 계속 이러다 보면 가끔은 상품 공급자들이 '최대한 소비자에게 잘 보이고,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물건을 내놓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는 것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로서의 권리, 여러분이 지갑을 여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고 기억할 필요도 있겠죠. 재미없는 방송에 단호하게 채널을 돌릴 때처럼 말입니다. 수년간 드라마고 영화고 단 한편도 출연하지 않은 채, 줄기차게 광고만 찍어대는 연예인의 상품 가치가 유지되는 '한국 연예계의 불가사의'는 그리 소비자로서의 기본 자세에 충실하다고 보긴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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