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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이 Maid라니까 많은 사람들이 혹시 전도연 나오냐는 드립을 쳤다. 한국 제목은 <조용한 희망>. 사실 잘 지은 제목은 아니다. 

스무살 나이에 아기 엄마가 된 주인공. 알콜중독과 폭력성을 슬슬 드러내기 시작한 남편에게서 아이를 떼놓기 위해 대책없이 집을 나온다. 기댈 곳?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자칭 예술가 엄마는 딱 봐도 사기꾼인 연하 남친에게 빨대를 꽂혀 살고 있다. 일찌감치 재혼한 아빠도 새엄마 눈치에 선뜻 뭘 어쩌지 못하는 상태. 주머니엔 잔돈 몇푼 뿐이고 일자리는 아예 가져본 적도 없다. 대체 이 주인공은 뭘 할 수 있을까. 좋은 길이건 나쁜 길이건, 선택지란게 있긴 할까? 

여기까지만 들어도 고구마를 10000개 먹은 듯한 답답함이 느껴지실 분들이 많겠지만 이건 그냥 시작이다. 과연 이 정도로 아무 대책이 없는 상태가 있을까 싶은데, 보다 보면 문득, 이 주인공의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형편상 진학은 못했지만 대학 장학생으로 뽑힐만한 재능이 있고, 매력적인 외모도 갖고 있다. 낙천성과 의지는 캔디급이고, 신라면에 물을 부어 먹는 수준(이봐 그건 컵라면이 아니라 봉지라면이라고!!)의 식생활에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갖췄다. 마약은 쳐다도 안 본다. 

그러니 비슷하게 암담한 생활의 늪에 빠진 다른 많은 여성들에겐 이 드라마는 '주인공 혼자 잘나서 갖은 어려움을 헤치고 인생을 설계하는 판타지'로 보일 여지가 충분히 있다. 드라마다 보니, 주인공은 우연히 마주치게 된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는데, 주인공에게 저런 능력치들이 없었다면 과연 저런 호의를 제공받을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얄팍한 가난 포르노에 그치지 않는 것은, 시청자에게 무엇을 보여주려는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과 애정이 굵은 명조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끔 생각한다. 대체 내가 낸 세금은, 그 많은 복지예산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 많은 공무원들은 뭘 하길래 신문 기사엔 늘 안타까운 가난과 한숨이 실리는 걸까. 아버지 간병을 떠안았다가 빚만 지고 존속살해로 재판을 받고 있는 청년이 그 지경에 빠지도록 이 사회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바로 이런 감정을 일으키는데 최적화된 영화였다면, 드라마 <조용한 희망>은 흔히 말하는 '사회 안전망'이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때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차분하고 설득력있는 접근을 보여준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지만 결코 복지 선진국은 아니라는 평을 듣는다. 그런 사회에서 누군가 인생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과연 누가 당신을 받쳐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충실한 조명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난국을 맞은 사람들을 찬찬히 보면 80~90%는 자업자득이라고. 대개 그런 이들은 실패가 유전자에 박혀 있고, 누군가 손을 내밀면 그 손까지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도 한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코로나 사망자보다 자살자가 훨씬 많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시각이 있는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조용한 희망>은 그런 시각에 맞서 차분하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시스템도 세상 모든 루저를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 특히 어떤 젊은이가, 조금만 도와주고 믿어주면 자기 힘으로 헤쳐 나올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데도 그토록 힘들어한다면, 그것 하나 구제할 능력이 없다면 과연 이런 나라를 소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나. 별 것 아닌 당신의 도움 하나로 한 인생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까지 마다할텐가. 정말 당신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매년 매달 내는 세금이 너무너무 아까운 분들은 한번쯤 보셔도 좋을 드라마. 반면 내 아이들이 늘 남들보다 앞서가며 번듯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사회라는게 원래 밑에 깔아주는 애들이 충분히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절대 보면 안 될 드라마. 어쨌든, 강추. 

P.S. 웬만하면 이미 아시겠지만 엄마 역 앤디 맥도웰과 주인공 마거릿 퀄리는 실제 모녀간. <원스...>에 단역으로 나왔다. 살짝 미국 한효주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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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말하자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다.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2배속 기능이 없기 때문' 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적응이 빠른 넷플릭스는 어느새 1.5배속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얼마전 화제가 된 어떤 작품의 특정 회차에 대해 지인과 대화를 나눴다. "재미있던데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네. 2배속으로 보니 볼만하던데요."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요즘 이렇게 대답한다. '스킵이나 2배속 기능을 쓰지 못하게 하는 작품'.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오갈 때마다 결말에 대한 예측이 달라지는 작품, 그런 미묘하고도 스릴 넘치는 힘겨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감히 스킵해가며 볼 수 없는 작품을 보고 싶었다. 

최근 그런 작품 하나를 봤다. 영국 드라마 <라인 오브 듀티 Line of duty>. 흔히 내사 internal affairs 라고 불리는 조직이 이 드라마에선 반부패 Anti-corruption 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실제 영국 경찰에 있는 편제인지는 모르겠다. 이 부서의 역할은 일선 경찰들의 직무 수행중 탈법행위를 조사하고, 궁극적으로는 외부 세력과 결탁한 현직 경찰들을 적발하는 데 있다. 

적이 어디 있는지 알고 나서 공격해 격파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진짜 문제는 도대체 어디를 때려야 하는가, 즉 적의 좌표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있다. 고문과 협박으로 털어놓게 할 수 있다면 조금 쉬워질 수도 있겠으나, 조사하는 자도 조사받는 대상도 경찰이라면 모든 것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드러나 봤자 경찰 조직의 위신 추락이라는 이유로 수사 자체를 꺼리는 조직의 생리도 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인지를 뼛속 깊이 느끼게 해 준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재미없고 답답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법도 한데, 정말 놀라운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랬더라면 시즌 6까지 절대 가지 못했을 듯. 어지간한 내공의 작가진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물이다. 

가장 선명한 특징은 여배우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킬리 호스, 탠디 뉴튼, 지나 맥키, 폴리 워커 등 탄탄한 중년 연기자들이 극의 흐름을 쥐락펴락한다. 반면 잘생긴 남주도, 그럴듯한 러브라인도, 입이 떡 벌어지는 액션도 전혀 없지만 몰입감은 보장할수 있다. 

진심으로, '이런게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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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D.P, 개의 날

 

1. 6년 전. 드라마팀에 있던 시절. 뭘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을까 눈에 불을 켜고 찾던 무렵이다. 김보통이란 작가의 '아만자'를 재미있게 봤는데 누군가 'D.P. 개의 날'이라는 작품도 좋다는 얘기를 했다.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2인조 헌병 이야기. 흥미진진. 이거 너무 재미있잖아! 

2. 원작을 사자고 제안했는데 전원 반대. 군대 얘기를 누가 보냐(아...). 칙칙하다(아닌데). 너무 어둡다(아닌데). 아무튼 좌절. 누군가 원작을 샀다는 소문을 들음. 

3. 6년 뒤. '이거봐! 내가 뭐랬어! 잘만 만들었고만!' 이라는 생각보다는 '하긴. 6년 전 환경이면 안 먹혔을지도 몰라. 방송에선 안 통했을지도. 16부작 얘깃거리는 안 나왔을지도...'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좋은 원작이 좋은 제작진을 만나는 건 드문 운이다. 얼마나 많은 좋은 원작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 얼마나 묻히고 있는지. 한준희 감독을 만난 건 '개의 날'의 행운이다.

4. 꼭 사서 만들어보고 싶던 웹툰이 '개의 날' 말고 세개 정도 더 있었다. 하나는 사려다 경쟁에 밀려 못 샀고(그러나 그 제작자는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다), 다른 한편은 열심히 우겨 원작을 확보했지만 제작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결과를 보지 못했다. 기약도 없다. 

5. 마지막 한편은 사자고 했을 때 '개의 날' 때보다 더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번엔 "정말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냐"는 반문을 몇 차례나 들었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엉뚱하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이들 이야기라서 한국 학원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열심히 주장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그새 누군가 사서 열심히 만들고 있고, 2022년 쯤에는 볼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잘 만들어주길. 

6. 모든 일은 천.지.인이 합쳐져야 이뤄지는 법. 이 작품은 지금이 제 때일까? 만약 2017~18년에 나왔다면 제작단계부터 관심이 뜨거웠을텐데.

...어쩌면 나는 너무 빨랐던 걸까? ㅎㅎㅎ

#아니 #깜냥이안됐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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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드 영드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플랫폼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ABC, NBC 등 메이저 채널과 HBO, STARZ, LIFETIME 등 몇몇 전문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미드로 끝나지 않고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 등등에다 디즈니, 피콕 등등 대형 스튜디오들이 직접 공급하는 채널까지…. 어디서 뭘 하는지 솔직히 다 알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미국 시청자들은 과연 알려나.

그런 무수한 작품들 가운데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경로는 넷플릭스와 왓차, 그리고 아마존 정도일 듯 합니다. 요즘 OCN같은 영화 전문 채널의 미드 신작 공개는 거의 사라진 느낌이고, KBS에서 간혹 BBC 계열의 걸작드라마를 방송해 주는 정도?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미드 영드를 볼 수 있는 경로는 매우 제한적인데, 이 제한성은 또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걸러져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방송 현지에서 시청량이든 작품성이든 뭔가 의미있는 평가를 받은 작품들을 우선 들여와 자막화 등 과정을 거칠테니까요.

(이 부분에서 넷플릭스는 다시 한번 예외. 솔직히 양적으로 일단 밀어붙이고 보자는 느낌? 옥과 돌을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추천 알고리듬? 아직도 이걸 진지하게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

어쨌든 개인적으로 2020년에 본 것들 중의 베스트입니다. 하나 꼬릿말을 달자면 저 총 쏘고, 달리고, 구르고, 닥치는대로 부수고 이런거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제발 그런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 좀 볼만한 것들 좀 만들어 주세요. 그 쪽 방향으로는 개실망의 연속인 2020년이었습니다.

이어즈 앤 이어즈 Years and years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 아직도 안 보신 분이 있나 싶을 정돕니다. 2019년 공개되어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무서울 정도의 예측력을 보여준 작품. 일종의 찰스 디킨스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 캐럴> 처럼 니들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런 세상이 올 거야. 하지만 이건 드라마야. 아직 기회는 있어. , 얼른 일어나.”  [왓챠]

 

나의 눈부신 친구 My Brilliant Friend

BBC-RAI(이탈리아의 KBS) 합작. 나폴리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20세기를 관통하는 두 여인의 성장/인생/사랑 드라마. 두 친구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흔히 이 작품을 우정의 드라마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필생의 라이벌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데 여자들의 친구 관계에는 이 요소가 결코 빠지지 않는다고도 하는군요. 이상 여자분들의 말씀. 제가 한 얘기 아닙니다.)  [왓챠]

 

퀸즈 갬빗 Queens gambit

아마도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 체스보드 위에서 성장하는 한 천재 소녀의 종횡무진 활약담. 더욱 놀라운 것은 기존의 성장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불우한 출생 닥쳐오는 환난 주위의 악의 각성과 능력 발휘 끝없는 도전 최후의 승리 같은 식의 도식적인 전개를 한방에 날려 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시원함이 전편을 관통합니다. 저렇게 이야기를 배배 꼬아 고구마를 만들지 않아도 성공 스토리가 가능하다는 놀라운 사례. 음악과 패션도 화려합니다.  [넷플릭스]

 

그리고 베를린에서 Unorthodox

뉴욕 티파니 본점 같은 보석 거리 주변에서 눈에 띄는, 납작한 사각모자에 귀밑으로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약간 시대착오적 검은 복장의 유태인들을 보신 적이 있는지. 첨단 도시 한복판에서 원리주의적 신앙을 고집하는 사람들 속에서 도망쳐 나오기로 결심한 한 여인(19…)의 이야기입니다. 신기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이런 드라마들이 어딘가에 잘 숨어있다는 걸 안 것도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만달로리안 1 & 2 Mandalorian

이미 보신 분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리고 스타워즈 마니아라면 안 본 사람이 없을. 개인적으로는 스타워즈 영화 1~9 시리즈 본편보다 훨씬 작품성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배경을 모두 설명하기도 귀찮고, 훨씬 자세히 설명해두신 분들이 많으니 각자 찾아보시길. 핵심적인 사항 두가지만 말씀드리면 1)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영화 기준으로 에피소드 6이 끝나고 수년 뒤, 67의 사이 정도라는 것, 2) 여기 나오는 아기 요다는 우리가 잘 아는 그 요다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꼭 알아 두시길.  [디즈니]

 

데브스 Devs

만장일치는 아닌 작품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인간이 과연 어떻게 하면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혹은 신이라는 존재의 권능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면 어떤 것이 될까를 고민해 보신 분이라면 강추. 흐름이 좀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음악과 분위기가 충분히 커버합니다.   [왓챠]

 

장야 1 長夜

길이가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랑야방> 이후로 가장 재미있게 본 중국 드라마. 녕결(영결?)이라는 주인공의 무협 성장담인데, 이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 하나로 먹고 들어가는 작품입니다.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진비우의 아버지는 진개가라는 영화감독입니다. 이렇게 쓰면 아무도 모르실테니… ‘첸 카이거’. 연기력은 아직 좀 부족한 부분이 보이나 시원시원한 얼굴과 190 가까운 기럭지는 분명 아시아의 슈퍼스타가 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주의: 진비우의 위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주인공 배우가 바뀌는 시즌2는 재앙입니다. 아무리 궁금해도 절대….    [왓챠]

 

컨페션 A Confession

왓슨마틴 프리먼 주연의 수사극. 젊은 여성의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유력한 용의자가 나타나고, 실종자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여기서 범인으로부터 자백을 받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취한 고참 형사의 선택이 두고 두고 그의 발목을 잡습니다. ‘한 남자의 외로운 투쟁이야기 가운데 단연 뛰어난 수작. 탄탄하게 정석을 지키는 영웅 이야기. 영국 드라마 특유의 감칠맛이 잘 살아 있습니다. 한번 영드 보기 시작하면 미드는 싱거워서 보기 힘들어집니다.   [왓챠]

 

디 아워  The Hour

한때 기자생활을 했기 때문에 기자 이야기를 그리 재미있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더군요. TV라는 매체가 사람들의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무렵, 아주 옛날 영국 TV의 뉴스 프로그램 이야기입니다. 사실을 파헤치는 이야기와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이야기, 비슷한 주제지만 <뉴스룸>과는 매우 다른 색깔을 보여줍니다. 비교해서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듯. 늘 그렇지만 벤 위쇼의 연기도 발군.   [왓챠]

 

퀴즈 Quiz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퀴즈 프로그램 포맷입니다. 한국에서도 <퀴즈가 좋다>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적이 있죠. 그런데 이 퀴즈 프로그램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이 포맷의 허점(?)을 노려 거액의 상금을 노린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정말로 조작에 성공한 것일까요? 아니면 우연히 행운이 따른 것이었을까요. 짧고 밀도높은 드라마가 그날의 진실에 접근합니다. 3부작, 짧고 강렬합니다.  [왓챠]

 

사실 모든 분들이 그렇겠지만 보긴 무수히 봤습니다. 그런데 보다가 왠지 아닌거 같아서 끄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끊고, 나중에 봐야지 했다가 잊고생각보다 건진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탑10을 꼽아 보니 이렇습니다. 왓챠에서 본 드라마가 많은 건 아무래도 왓챠가 믿고보는 HBO와 BBC 드라마를 많이 들여온 결과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 탑10에 들까말까 경합했던 작품으로는 아마존 프라임의 <업로드 Upload>가 있습니다. 사후세계에도 적용되는 하드 용량의 무서움...

작년에 좋았던 작품들의 시즌2(2019년 리스트 참조)는 다 믿고 보셔도 될 듯. 넷플릭스에서 <코민스키 메소드 2>, <폴리티션 2>, <빌어먹을 세상 따위 2> 다 좋습니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를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별나도 괜찮아 Atypical>도 재미있게 보실 듯.

그리고 올해는 넷플릭스가 좀 적은데 드라마는 아니지만 HM 차원에서, 올해의 넷플릭스 콘텐트는 단연 <라스트 댄스 Last Dance>. 개인적으로는 역시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도 강추작입니다.

한국 드라마로는 <비밀의 숲2>를 필두로 전설이 된 <슬기로운 의사생활>, 그리고 <방법>이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쀼의 세계>는 아무래도 좀 취향이 아니라서….^^

P.S. 그러고보니 일본 드라마는 한 편도 없네요. 요즘은 주위에서 추천하시는 분들도 별로 없고... 일드 화이팅.  혹시나 해서 작년 리스트를 첨부합니다.

 

개취로 뽑아본 2019년의 10대 영미 드라마 (tistory.com)

 

개취로 뽑아본 2019년의 10대 영미 드라마

사실은 2019년에 다 본 것도 아니고, 대략 지난 1년간 본 드라마들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들입니다. 이 어지러운 시국에 제가 세상에 뭘로 봉사할 수 있나 잠시 생각을 해 보다가, 아무래도 실내에

fivecard.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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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2019년에 다 본 것도 아니고, 대략 지난 1년간 본 드라마들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들입니다.

이 어지러운 시국에 제가 세상에 뭘로 봉사할 수 있나 잠시 생각을 해 보다가, 아무래도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이런거나 좀 보시면서 시름을 달래시라고 권해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일본 드라마는 통 본게 없어서 추천을 못 합니다. 혹시 재미있었던 것들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매일 매일 뉴스 보신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울분만 더 쌓이고, 욕하고 싶은 사람만 늘어납니다. 그러느니...

리스트 들어갑니다.

1. 더 보이즈 The Boys

아마도 2019년에 본 것들 중에 재일 재미있었던 걸 꼽으라면 이 드라마를 들겠습니다. 출장 다니고 정신없던 틈틈이 위안이 되었던 작품입니다.

어벤저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 그 어벤저스는 거대한 돈벌이의 소재가 되어 있습니다. 어벤저스를 관리해 주는 기업이 초우량기업이 되어 있죠. 이 기업은 미국 정부와 거래해서 미국의 치안 유지를 외주로 관리해주는 일을 합니다. 게다가 어벤저스가 나오는 드라마,영화, 다큐, 책, 그리고 수없이 많은 머천다이즈 상품 개발까지 안 하는 분야가 없습니다.

이렇게 슈퍼히어로가 잘 되는 사업이다 보니 미국 시골 동네마다 슈퍼히어로 선발대회(아메리칸 아이돌 풍의)가 열리고,청소년들 중 일정 정도의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스타 슈퍼히어로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런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아마존 프라임의 작품 선정 능력에 신뢰를 갖게 한 작품.

2. 배리 Barry

전통의 명가 HBO의 걸작. 내심은 착하지만 갖고 있는 거라곤 사람 죽이는 기술밖에 없는 사이코패스 킬러가 어느날 연기를 통해 자아실현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됩니다. 사이코패스가 연기를? 감정의 공유가 안 되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연기를? 그러니까 드라마죠. ㅎ

 

3. 코민스키 메소드 Kominsky Method

왕년에도 그리 잘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자 깨나 울렸던 배우 역으로 마이클 더글러스가, 그리고 그의 평생 친구 겸 에이전트(변호사) 역할로 앨런 아킨이 나옵니다. 실제 노인들이 노인 역을 하죠.

연기 학원을 운영하는 마이클 더글러스(이거 때문에 Barry와 몇 장면이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는 여전히 철딱서니 하나 없고, 상처를 한 앨런 아킨은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합니다. 공통점이라면 두 사람 모두 '선량한 노인'은 아니라는 것.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마음은 사실 별로 안 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우 공감이 갑니다. 아무튼 2019년의 넷플릭스 시리즈라면 이걸 꼽겠습니다. 시즌2도 재미있네요.

 

4. 폴리티션 The Politian

약간 취향을 탈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2020년 넷플릭스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무래도 올해 안에 넷플릭스에서 더 재미있는 드라마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은.

구조는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인데 하는 짓들은 프로 정치인들을 넘어섭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브릭 Brick> 같은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이해가 빠를 듯. 주인공 벤 플랫은 왕년에 토니상을 받았던 뮤지컬 스타 출신으로, 극중에서도 몇 차례 뛰어난 노래 실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엄청나게 몰입감있는 드라마입니다.

5. 빌어먹을 세상따위

개인적으로 넷플릭스의 수많은 콘텐트들 가운데 넘버 1은 이 작품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뽑은 작품들이 전부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있는 주인공이 뭔가 살아남아서 이뤄 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들이네요. 그게 제 취향인 모양입니다. 그렇게만 얘기하면 어두운 이야기로 보이기 쉽지만, 엄청난 코미디입니다.

이 작품 역시 도라이 중의 상 도라이인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 대한 애정 혹은 호감만으로 어떻게든 이 거지같은 세상을 살아가 보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웃기기도 하면서 몇몇 장면에선 눈물을 자아내기도. 시즌 2가 시즌 1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6. 굿 오멘스 Good Omens

아마도 많은 분들이 영화 <오멘>에 대해서 들어 보셨을 겁니다. 6월6일6시에 악마의 자손이 인간 아기의 형상으로 태어나고, 그 아들이 명문가의 아들로 둔갑해 성장하면서, 몇몇 사람들이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이 아이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 고전 공포영화 오멘> 패러디입니다. 즉 코미디라는 뜻이죠. 천국과 지옥은 두 개의 진영으로 묘사되고, 지상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들과 함께 살아온 천사와 악마가 있습니다. 당연히 천사의 역할은 그 아기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고, 악마는 그 아이가 자라나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때까지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인간세상의 재미를 다 알아 버린 천사와 악마(당연히 수천년 동안 적수로 지내다 보니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습니다)에겐 아마겟돈이며 세상의 종말이며 이런 것들이 다 귀찮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선택은...?

닐 게이먼의 원작도 탄탄하고, 냉전시대 미소 양대진영의 노숙한 스파이들을 연상시키는 두 주인공의 연기가 그만입니다. 이건 아마존 프라임에서 보시면 될 듯.

7. 잭 라이언

톰 클랜시 소설을 보시거나, <긴급 명령> 같은 영화들을 보신 분이라면 잭 라이언이라는 캐릭터를 잘 아실 듯. 영화에서는 해리슨 포드가 주로 맡았던 역할이기도 합니다. 물론 알렉 볼드윈도, 벤 애플랙도 한 작품씩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영화속의 잭 라이언은 이미 박사로 산전수전 다 겪은 cia 분석가였지만 드라마 속 잭 라이언은 그 잭 라이언 박사의 젊은 날이라고 보시면 될 듯. 아무튼 액션은 상큼하고, 시원합니다. 특히 존 크라신스키라는 주인공, 왕년에 <오피스> 같은 작품에 나오던 찌질이 배우가 이런 매력이 있다니 참 신기하기도.

 8. 트레드스톤 Treadstone

,제이슨 본이 출연하는 <본> 시리즈에 나오던 기관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혹할만한 시리즈. 제이슨 본 처럼 과거 잃은 전사들을 키워내던 비밀조직 트레드스톤의 잔재가 전 세계에서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그중에 북한도 있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에 나오는 북한은 <사랑의 불시착>에 나오는 북한과는 천지차이. 그리고 거기서 북한 출신의 여성공작원으로 한효주가 나옵니다(그 밖에도 한국 배우들이 깜짝 출연을…). 긴장감 넘치는 수작. 아직 시즌2가 결정되지는 않은 모양인데, 시즌2가 나온다면 생각보다 엄청난 장편이 될지도.

 

9. You

생각해보다가 좀 지났지만 이 작품도 재미있게 봤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캐럴라인 캐프리스 원작 소설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드라마를 보다 보니 이게 그 얘기더군요. 그런데 출연 배우들의 호연으로, 책보다 드라마가 확실히 생동감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드라마를 그냥 무서운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기도 하시던데, ‘스토커는 자신의 어떤 감정을 사랑이라고 느낄까라는 시각에서 보면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포인트, ‘어떻게 보면 스토커보다 더 무서운 여주인공을 발견하신다면 매우 만족스러운 시청이 되실 거라고 생각. 남자주인공 펜 베즐리는 <가십걸>의 그 남자 맞습니다.

 

10. 디스커버리 오브 위치즈 Discovery of Witches

사실 좀 망설이다 10위에 넣었습니다. 10위의 경합작품은 <킬링 이브> 인데, 앞부분은 흥미로웠지만 뒤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의 지능이 뚝뚝 떨어지면서 애정이 식었습니다.

<디스커버리 오브 위치즈>는 뱀파이어인 남주와 위치인 여주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비인간 종족들의 치고 받는 과거사가 주 내용은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어찌 보면 성인 버전의 <트와일라이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남주 역의 매튜 굿 같은 좋은 배우들이 나오면서 뭔가 설정의 빈 구석이 채워진 느낌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근래 보았던 화제의 판타지 드라마들, <위처>나 올란도 블룸의 <카니발 로우> 보다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더 크라운> <아웃로 킹> <메시아> <종이의 집> 등은 강한 추천이 있었지만 보고 나니 결국 제 취향은 아닌 것으로…. , 이제 여러분이 보신 것들을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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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뭔가 한마디 정리하는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뵙고 인사를 드린 적도 몇번 있지만 특별히 긴 대화를 나눴다거나 내세울 만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전혀 아닙니다. 그저 오랜 시간 그분의 모습을 본 시청자로서, 관객으로서의 입장일 뿐입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1970년대 한국에서 TV 드라마는 지금보다 훨씬 영향이 큰, 온 국민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흑백이었지만 TV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TBC, MBC, KBS라는 세 채널에서 방송해 주는 드라마야말로 경쟁 대상이 없는 대중의 관심사였죠.

 

 

 

 

그 시절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트로이카'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이라는 세 이름이었죠. 사실 이 세 스타가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가장 빛난 스타였던 것은 맞지만 이 셋은 바로 'TBC의 트로이카'였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탤런트(TV 배우와 영화배우가 이런 이름으로 구별되고 있었습니다)나 코미디언들에게도 전속 방송사가 있었습니다. TBC에는 TBC 배우들만 나오고, MBC에서는 MBC 배우들만 나오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 TBC의 위상은 워낙 강력해서 저 트로이카 외에도 홍세미 김창숙 김형자 같은 당대 최고 여배우들과 원미경 같은 최고의 기대주들이 모두 TBC에만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남자 배우로도 한진희 노주현 김세윤 같은 배우들이 모두 TBC 전속이었죠.

 

MBC가 드라마 왕국으로 거듭나는 것은 5공의 방송 통폐합 이후이지만, 물론 이 시절에도 MBC 드라마는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남자로는 이정길 박근형 현석, 그리고 여자로는 김영애 이효춘 같은 배우들이 MBC의 얼굴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KBS의 얼굴이라면 한혜숙 김자옥 정도의 배우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어렴풋이 남아 있는 제 기억으로는 방송 통폐합 이전 KBS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시절의 그 드라마 가운데서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김수현의 1978년작 '청춘의 덫'입니다. 이미 리메이크 작인 1999년판 '청춘의 덫'이 '전설의 드라마' 대접을 받는 분위기에서 78년작을 얘기하자니 뭔가 엄청난 옛날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매회 빠뜨리지 않고 '청춘의 덫'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다른 걸 다 떠나서 최소한 배우들의 연기 만큼은 1999년작이 1978년작을 따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GQ 아티클 '서울, 1978년 겨울'에서 퍼 왔습니다. 위 5장의 사진들이 모두 '청춘의 덫' 마지막회 장면들입니다.

(http://www.gqkorea.co.kr/2010/12/14/%EC%84%9C%EC%9A%B8-1978%EB%85%84-%EA%B2%A8%EC%9A%B8/)

 

78년작과 99년작은 인물의 이름부터 이야기의 구조가 일단 똑같습니다. *(  )안에 78년작의 배우를 앞에, 99년작의 배우를 뒤에 써서 구별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난하지만 유능한 회사원 동우(이정길/이종원)는 윤희(이효춘/심은하)와 딸 하나를 두고 동거중인 사이. 형편상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장래를 약속한지 오래인 관계입니다. 하지만 동우는 어느날 오너 가문 상속녀 영주(김영애/유호정)의 관심을 받게 되고,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유혹에 직면합니다. 돈 뿐만 아니라, 착하지만 순종적이기만 한 윤희에 비해 활달하고 자존심 강한 영주의 매력이 강렬하게 어필하기도 합니다.

 

결국 동우는 윤희를 버리고 영주와 결혼하려 하고, 그러는 사이 동우와 윤희 사이의 딸이 사고로 죽음을 당합니다.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동우가 영주와 있었다는 사실을 안 윤희는 180도 돌변합니다. 팜므 파탈로 변신한 윤희는 영주의 오빠이며 소문난 한량인 영국(박근형/전광렬)에게 접근,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오너 집안에 들어가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본래 기업 경영이나 가업 승계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던 영국은 윤희 때문에 감춰져 있던 능력을 드러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방송되던 당시의 제 나이를 생각하면 이런 스토리에 사로잡혔다는 게 좀 이상하실 수도 있겠지만 뭐 굳이 그걸 따지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집에나 약간 이상한 애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 )

 

 

 

아무튼 이 드라마는, 당시 굉장히 중요한 드라마 저널의 역할을 했던 조선일보 '방송주평'에 따르면, 초반에는 "때가 어느 땐데 1950년대 얘기같은 혼전관계 순정녀 이야기냐"는 말을 듣다가 윤희의 각성 이후에는 장안의 화제작이 됐고, 하지만 "미혼모가 변심한 애아빠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라니, 이렇게 부도덕한 내용을 온 국민이 보는 드라마로 방송하다니 제정신이냐"는 높은 분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조기종영이 결정되는 비운의 작품이 돼 버렸습니다. 김수현 작가가 굳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기로 한 데에는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배경 설명은 이 정도. 아무튼 당시 김영애라는 배우의 미모는 독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위에서 나열한 수많은 당대의 톱 여배우들이 있었습니다만, 한국에서 보기 힘든 날카로운 콧날과 함께 '원조 얼음공주'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도시적인 미모를 갖춘 배우는 달리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른 배우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목소리에서도 지적이고 냉정한 면모와 함께 뭔가 감춰진 열정을 느끼게 하는 배우였죠(물론 이런걸 다 당시에 느꼈다는 건 아닙니다. ^^;; ).

 

 

아무튼 요즘도 한국 드라마에는 '도도하고 섹시하면서 평민(?)들을 벌레 보듯 하는' 재벌가 따님 캐릭터가 드물지 않게 등장합니다만, 근 40년 전에 그 원형을 연기한 배우로 이 배우만한 사람이 있었을까, 여기에는 반박하실 분이 별로 없을 듯 합니다. 특히 저 오리지널 '청춘의 덫'에서는 윤희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내는 사람이 영주인데, 그걸 안 뒤에도 오빠가 윤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차마 비밀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런 내면의 갈등을 연기하는 김영애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두번째 작품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작품, '모래시계'입니다. 이 드라마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건 공간의 낭비이기도 하고, 다들 기억도 선명하실테니 넘어갑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의 1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캐릭터는 바로 태수(최민수, 아역은 김정현) 어머니 역으로 등장했던 김영애입니다.

 

김영애는 젊은 날 좌익 운동을 하다 빨치산이 된 남편을 떠나 보내고, 혼자 아들을 키워 온 어머니 역을 맡았습니다. 수재였던 아버지의 유일한 흔적인 아들은 어머니에겐 인생의 유일한 의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혼자 몸으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요릿집을 운영하다 보니 여자로서 적잖은 수모를 겪어야 했고, (명시적이진 않지만) 알콜 중독이 됐어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어쩌면 집착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잘생긴 아들이 공부하는 것만 봐도 흐뭇해서, 아들의 공부방 웃목에 소반을 들여 놓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면서 앉아 있는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이 빨치산 아버지 때문에 출세길이 막혔다는 현실을 마주한 어머니는 세상을 살아갈 희망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술취한 몸으로, 바람에 날아간 목도리를 줍다가 기차에 치여 생을 마감하는 1회의 마지막 시퀀스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한때 대통령을 꿈꿨던 패기만만하고 똑똑한 젊은이가 어떻게 해서 좌절과 분노로 가득한, 태수라는 이름의 야수로 성장하게 되는지를 너무도 선명하게 설명해 주는 이야기였죠. 이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가 김영애가 아니었다면, '모래시계'의 신화도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개인적으론 최근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당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나이 많은 어머니 역할의 모습을 볼 때에도 이 '모래시계'의 잔상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아마 그랬던 분들이 꽤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고인의 업적과 공헌을 얘기하자면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 듯 하고, 감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말하기도 힘듭니다. 다만 그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개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조의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늘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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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하녀들'이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금요일 밤 9시45분(정확하게는 금-토 9시45분)이라는, 드라마가 낯선 시간대에 처음 등장해서 '삼시세끼'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두 예능 프로그램에 '나는 가수다 3'까지 끼어든 뒤, 자력 생존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하녀들'이 갖고 있는 '(양반들의) 슈퍼 갑질에 대한 을(노비들)의 분노'라는 주제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땅콩 리턴' 사건과 맞닿아 일으킨 화학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은 지금껏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애사극'입니다. 템포와 주인공의 배치가 남다르죠. 지금까지의 사극들 가운데에도 '멜로 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대부 계층의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져 있고, 거기에 맞춰 다양한 캐릭터들이 배치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대장금' 처럼 서민 계급의 주인공을 배치한 위대한 작품도 있었지만 '대장금'은 사실 대표적인 궁정 사극이고, 연매물도 아니었죠.

 

이에 비해 '하녀들'은 조선 초기를 무대로 일단 양반댁 규수 가운데서도 "조선의 개국공신인 명문거족 국씨 집안의 무남독녀라 여느 반가의 규수들과는 급이 다른", 그 시대의 it girl 이던 인엽(정유미)가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한방에 최고의 지위에서 노비로 전락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드라마 '하녀들'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엽을 중심으로 정혼자이며 양반 댁 도련님인 은기(김동욱), 그리고 뭔가 비밀스럽지만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병판 댁 노비의 우두머리 무명(오지호)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축소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뭔가 아쉬움을 느낄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함흥차사'입니다. 극중 인엽이 병조판서 허응참(박철민)의 연회장에 박차고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함흥에 차사로 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간 것이죠. 또 이어 허응참의 아내이며 윤옥(이시아)의 어머니인 윤씨부인(전미선)이 인엽에게 쏘아부치는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잔혹한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이 함흥차사란 무엇일까요. 대개는 아시겠지만,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해설 들어갑니다.

 

 

 

 

 

 

함흥차사

[명사] 咸興差使. 심부름 등을 위해 한번 떠난 사람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음. 함흥은 함경남도의 지명, 차사는 예전 긴한 일을 위해 보내던 사신에게 주는 임시 관직명.

12일부터 방송된 JTBC 새 주말연속극 하녀들은 여주인공 인엽(정유미)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조선 태종(안내상)의 밀명을 받아 함흥차사로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함흥차사네 글자는 요즘도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말에는 불발된 쿠데타의 흔적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본래 8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권력 다툼으로 세 아들을 잃었다. 결국 천수를 누린 사람은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그리고 5남 방원(태종) 뿐이었다.

 

'태조는 왕좌를 위해 형제들을 죽인 태종을 용서하지 않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흥(영흥부)으로 돌아갔다. 조선이 건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은 1401. 아버지가 아들의 왕 자격을 부정한다는 것은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었으므로 태종은 수시로 태조와 가까웠던 인사들을 보내 태조의 귀경을 설득했다. 하지만 태조는 차사들이 오는 족족 목을 베어 돌아갈 뜻이 없음을 알렸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함흥차사의 유래다.

 

 

     [극중 인엽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이성계(이도경)에게 차사로 가서 도성 귀환을 설득하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장면.]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현재 함흥차사에 대해 가장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 문헌은 역사서가 아니라 야담집인 축수편(逐睡篇)이다. 여기에는 성석린이 이성계를 회유하다가 귀공은 나를 달래러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가 그런 이유로 왔다면 제 아들들이 눈이 멀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그의 두 아들은 장님이 되었고, 성석린은 "아무리 목숨이 걸렸어도 그런 장담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하고 탄식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이성계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또다른 차사 박순의 죽음 덕분이다. 태조는 박순에게 설득당했으나, 그가 돌아가자 태조의 측근들은 그를 따라가 죽일 것을 권했다. 이에 태조는 그가 이미 멀리 갔을 것이라 보고 장수에게 칼을 주며 용흥강을 못 건넜거든 베어 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병으로 걸음을 지체했던 박순은 강가에서 죽음을 맞았고, 이를 후회한 태조가 귀경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사(正史)의 기록은 어떨까. 일단 태조가 처음 북쪽으로 떠난 것은 태종 1(1401) 3월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해 410일 태종이 도승지를 보내 안변(현재의 원산 부근)에 머무는 태조의 문안을 묻고, 태조가 오래 머물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태종이 성석린을 보내 설득하자 태조는 426일 도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126, 태조는 한밤중 갑자기 소요산으로 떠났다. 실록은 임금(태종)이 전송하려 따라갔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꼴도 보기 싫은 태종의 전송 같은 것은 전혀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태종은 다시 성석린을 보내 설득했으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결국 해가 바뀌고 14024, 태종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소요산 자락까지 찾아갔다. 426, 마침내 태조의 입에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왔다.

 

6개월 뒤인 115, 안변부사 조사의반란을 일으켰다. 명분은 태종에게 살해당한 이복동생 방번-방석 형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8일자 실록에 눈여겨 볼 기사가 실려 있다. 조정에서 파견된 박순이 함주에서 조사의의 난에 가담하지 말라고 지방 수령들을 설득하다가 피살됐다는 내용이다. 이 박순은 위의 축수편에 대표적인 함흥차사로 기록된 그 '함흥차사' 박순이다.

 

 

 

게다가 이성계는 안변 바로 북쪽인 함주에 머물고 있었다. 119일자 실록은 태종과 조정 대신들이 반란군 지역에 있는 태상왕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과 무학대사를 급파해 태조의 귀경을 설득하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축수편에서 박순을 죽이라고 주장했다는 태조의 측근이 누구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세등등했던 조사의의 반군은 한달도 못 되어 1127일 안주 부근에서 궤멸됐고, 128일자 실록에는 태상왕(이성계)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짧은 한 줄이 기록됐다. 다시 야사로 넘어가면, 마지막 함흥차사는 무학대사라고 전해진다. 박순의 죽음으로 자책하던 태조는 옛 스승 무학대사의 말에 마음이 풀어져 도성으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수편에는 도성으로 돌아온 태조와 태종 사이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환영 잔치를 벌이려 장막을 칠 때, 태조의 성품을 잘 아는 하륜이 태종에게 기둥은 반드시 사람 몸통보다 굵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간했다. 태조는 멀리서 태종을 보자 바로 활을 쏘았고, 태종은 급히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명궁으로 소문난 태조 이성계였으나 화살은 기둥을 뚫지 못했다.

 

태조는 탄식하며 태종에게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옥새가 여기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륜은 또 직접 술을 권하지 말고 내시를 시켜 전달하라 조언했고, 태종은 그대로 했다. 그러자 태조는 술잔을 들이키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옷소매 속에서 무쇠방망이를 꺼내 내려놓고 모두 하늘의 뜻이로구나하며 껄껄 웃었다.’

 

과연 태조의 북행과 차사들의 죽음은 조사의의 난과 무슨 관계일까. 태조는 아들 태종에 대항해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 쿠데타를 시도한 것일까. 축수편의 마지막 기록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녀들'에서 인엽의 아버지 국유는 아마도 성석린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 조사의의 난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함흥차사'의 고사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성계는 8명의 아들을 뒀는데 첫 아내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장남 방우,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4남 방간, 5남 방원(태종), 6남 방연의 여섯 아들을 두었고 한씨 사후 계비 신덕왕후 강씨로부터 7남 방번과 8남 방석을 두었습니다. 이중 6남 방연은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고 장남 방우는 - 여러 기록을 볼 때 아버지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듯 한 - 역시 조선 건국 2년만인 1394년 40세에 술병(?)으로 사망합니다.

 

누가 봐도 아들들 가운데 가장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1392년 당시 25세였던 방원이었지만 정도전과 이성계는 8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노골적으로 방원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합니다. 결국 방원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을 비롯해 방번 방석 형제를 죽였고, 2남 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킨 뒤 1400년 초 2차 왕자의 난으로 바로 위의 형인 방간을 축출합니다. 방간을 바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자신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한 뒤 마침내 그해 11월 왕위에 오릅니다.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뜻을 어기고 형제들을 참살한 방원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고, 태종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공을 무시하고 왕위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 아버지가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개국 10년도 안 된 나라의 안정을 생각하면 아버지까지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고려를 되돌려 놓으려는 유신들의 세력(곧 밝혀질 '하녀들'의 또 다른 축입니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조사의의 난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고, 정사든 야사든 꼭 집어 '그 배후에 이성계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사건이 이성계와 무관할 리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태종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설득해 반란에서 발을 빼게 하려 특사들을 보내 설득했고, 함흥차사들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약간 완곡하게 표현한(아버지와 아들이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살짝 감추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 살짝 과장과 은유가 깃들며 '축수편'에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진 것이죠.

 

(진짜 의문은 당대 최고의 무장인 이성계가 뒤에 있었다면, 왜 조사의의 군대가 한달도 못가 그렇게 쉽게 무너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종과 이성계의 극적인 타협? 조사의의 심각한 무능? 이성계의 일방적 변심? )

 

 

어쨌든 '하녀들'은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음모인 고려 회복 운동과 태종의 대처,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엽이 노비의 치욕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 남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절대 을'이었던 노비들이 '슈퍼 갑'인 양반들을 어떻게 조롱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가는지가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그 시대의 '슈퍼 갑'이었던 양반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피고용인을 노비 대하듯 하는,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심한 모습일 수도 있는 기괴한 모습들...)

 

 

 

 

 

 

'하녀들'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남다른 공간감입니다. 조명의 사용을 통한 실내 공간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조현탁 감독의 연출은 지금까지 사극에 나왔던 대청/안방/주방/창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하녀들'을 보는 새로운 재미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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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경이라는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김수현 김정수 정성주에서 김은숙 홍자매에 이르기까지, 여성 일색인 한국 드라마의 스타 작가 그룹에서 정말 몇 안되는 남성 작가로서(물론 정하연 최완규 작가가 있습니다만), 오랜 시간 필명을 날리고 있는 대형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의 드라마를 좋아하시던 분들이라면 대개 40대 이상일겁니다. 도지원과 양동근(!)의 실질적 데뷔작인 '서울뚝배기(1990)'를 비롯해서 최민식 한석규 채시라 트리오가 빛났던 1994년의 '서울의 달', '차력 연기자' 이상인을 하루아침에 국민 스타로 만들어 버린 '파랑새는 있다'(1997) 까지가 이 분의 황금기였다고 봐야 할테니까요. 오늘날까지도 효과 있는 백윤식의 도사형 캐릭터도 바로 이 '파랑새는 있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이 분이 그 이후라고 그냥 쉬신 건 결코 아닙니다. 3년 전에도 천정명 이상윤 주연의 퓨전 사극 '짝패'로 건재를 과시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벌집 같은 쪽방이 나오고, 거기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그늘진 사람들이 나와야 진정한 '김운경 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칠맛 나는 대사들을 톡톡 터뜨려 주는 재능 있는 연기자들도 그리웠습니다. '김운경 드라마'는 역시 꽃미남 꽃미녀는 아니더라도, 자기 역할을 쏙쏙 뽑아먹는 신 스틸러들이 함께 할 때 제 맛이 나죠.

 

그런데 그런 드라마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유나의 거리'는 눈에 뻔히 보이듯, 유나라는 여자 주인공(김옥빈)의 이야기입니다.

 

 

 

 

 

유나의 직업은 소매치기. 그것도 업계에서 에이스로 통하는 소매치기죠. 아버지(임현식)의 뒤를 이은 2대 소매치기인 셈인데, 징역도 산 적이 있지만 어쨌든 소매치기 본능을 끊을 수 없는 천부적인 소매치기입니다. (뒤에 대사에도 나옵니다. "소매치기 중에 끊을 수 있는 소매치기도 있고 못 끊는 소매치기도 있는데, 걔는 절대 못 끊어")

 

 

 

 

그리고 유나의 반대편에는 이 세상에 절대 남지 않았을 것 같은 '착한 남자'가 있습니다. 착한 남자라고 해서 연약하고, 감성 충만하고, 늘 세상에 불쌍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질질 짜고 하는 그런 남자가 아닙니다. 가진 것 없지만 절대 비관하지 않고,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으며, 알고 보면 할 줄 아는 것도 많은 훌륭한 남자입니다. 그런 남자 창만(이희준)의 눈에 비친, 예쁘고 발랄한 유나는 대체 왜 저럴까 싶은 존재입니다.

 

 

 

유나와 창만이 세들어 사는 다가구주택(뭐 흔히 벌집이라고 불리는 집들입니다)과 콜라텍을 운영하고 있는 한사장 역의 이문식. 왕년 '공공의 적'에 나오는 산수 역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 이문식이 오랜만에 건달 출신의 사업가(...)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사장 부인 홍여사 역은 김희정.

 

 

 

 

왕년의 장도끼 장노인 역에는 정종준. "마사까리. 난 도끼 들고 다닌 적이 없어. 그런데도 왜놈들이 나보고 마사까리라고 불렀어. 왜? 내가 도끼 눈이라는거야. 싸움은 눈으로 하는 거야." 젊어서 명동 이화룡의 오른팔이었다는 장노인은 지금은 늙고 다리 한쪽이 불편한 채로 한사장에게 얹혀 사는 처지입니다. 집도 절도 식구도 없는 신세.

 

물론 한사장이 장노인을 모시고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장노인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 냅니다. 그 비밀이 6회 이내에 드러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장노인 역할에 좀 더 체구는 작고 눈매가 매서운 배우를 캐스팅했으면 했습니다만, 김운경 작가는 정종준이라는 배우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더군요. 물론 그 연기력에 의심을 가져 본 적은 전혀 없습니다.)

 

 

 

 

왕년의 부패 형사 봉반장. 한사장과는 범인과 형사로 쫓고 쫓기던 악연이 있고, 지금은 왕년의 유명 소매치기(유나의 선배)와 결혼해 살고 있습니다.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형사 어네스트 보그나인 커플을 연상케 하는 조합이죠.

 

아무튼 형사 시절 범죄자들을 뜯어먹어 '봉걸레'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지금은 노래방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찌질한 품성. 그 때문에 아내와 유나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합니다.

 

 

 

 

 

한사장의 처남. 일명 개삼촌(조희봉). 사람보다 개를 좋아하며, 옥상에서 개 키우는 게 주 업무입니다. 하지만 건달인 매형을 믿고 설치다 주로 맞고 멍 빼는게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뒤로 가면 기가막힌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보다 개랑 더 친해서 개랑만 논다고? 사실은 개들도 쟤 싫어해. 맨날 물리고 그래."

 

 

 

사실 저 위에 있는 기라성같은 신 스틸러들과 비교할 짬밥은 아니지만, 극중 역할의 비중 때문에 포스터 멤버에 들었습니다. 남수 역의 강신효. 유나보다 한참 떨어지는 실력과 경력의 소매치기라서 어떻게든 유나를 자기 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도 인생의 목표가 확고해 '소매치기는 마흔살까지만' 이라는 신념으로 일하는 소신파.

 

얼마 전 이준 주연 영화 '배우는 배우다'를 보다가 이준의 친구(매니저) 역인 강신효를 처음 봤습니다. 연기는 아직 맘먹은 대로 안 되는 듯 하지만, 남자다운 눈빛. 머잖아 제몫을 할 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일곱 장의 포스터 멤버(개인샷으로 포스터가 있는 출연진) 외에도 출연진은 꽉 찬 라인업입니다.

 

 

 

유나의 룸메이트 미선(서유정)과 그 불륜 상대인 정사장(윤다훈). 사전 공개 영상에서 잠깐 보여 준 서유정의 막강 불륨은 왕년 맘보걸의 명성이 절대 과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세월을 거스르는 듯한 몸매.

 

 

 

또 이분을 빼놓을 수 없겠죠. 유나의 아버지이며 전설적인 소매치기 역의 임현식.

 

 

 

마지막으로 한사장 딸 다영 역을 맡은, 은근히 팬이 많은 신소율까지. 이렇게 '유나의 거리' 라인업이 펼쳐집니다.

 

 

 

물론 드라마의 스타일이 다르고, 주 소구층이 다르긴 하지만 지난 주 끝난 '밀회'에 비해 손색 없는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특히나 한번 두번 씹어도 단물이 흐르는 듯한 대사의 맛은 당대 최고 수준이죠. 그리고 그런 대사들을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살려내는 신 스틸러들이 즐비한 라인업. 특히 툭툭 던지는 듯한 이희준의 말투를 처음 들었을 때, 이 대사가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1회의 숨은 얘기 하나. 본래 대본에는 창만이 유나에게 "다들 날 보고 장동건 닮았다고 그래요"라는 장면이 있는데, 이걸 이희준이 '이병헌'으로 굳이 바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들 '이병헌 닮았다'고들 했다는군요.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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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피아노곡 소개]

 

'밀회' 3부 이후는 음악이 극의 중심이 아니어서 살짝 서운하셨던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7,8회는 음악의 역할이 다시 전면에 나섰습니다. "누가 뭐라구 그래! 음악이 갑이야" 라는 말씀대로. 특히나 강조된 곡은 아무래도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본래 팬이 많은 곡이죠. 그밖에도 많은 곡들이 소개됐습니다. 더 쌓이기 전에 일단 4부 이후, 8부까지 쓰인 곡들을 정리합니다.

 

3부까지 쓰인 곡들은 이쪽 포스팅에 있습니다. http://5card.tistory.com/1246

 

 

 

 

자, 먼저 드라마 진행 순서대로. 5부에서 선재와 혜원이 듀엣으로 연주해 눈길을 끌었던 곡이 있습니다.

 

모짜르트의 '네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KV 521. '네개의 손' 시리즈가 슈베르트에 이어 펼쳐졌습니다.

 

 

 

1941년생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1971년생인 에프게니 키신. 30년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음악을 통해서는 연인 같은 화음을 들려줍니다. 특히 가끔씩 키신의 재능 - 한때 피아니스트의 새로운 세대를 개척한 신동이었죠 - 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돌아보는 아르헤리치의 미소를 보면, 어딘가 '밀회'의 모티브가 이 연주 동영상에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음은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

 

 

 

 

5부에선 제목만 언급되고 6부에서 선재가 입학 오디션을 위해서 연주하는 곡입니다. 정열적이고 파괴적인 곡이죠.

 

리스트는 아마도 최초로 그루피(groupie)를 거느렸던 피아니스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늘 검은 옷을 즐겨 입었던 리스트.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유럽의 귀부인들이 마차를 빌려 연주 일정에 따라 유럽을 횡단하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택시를 전세 내서 '오빠들'을 뒤쫓고 다닌다는 사생팬들의 행태와 그리 다를 게 없습니다. 그만치 리스트의 외모와 초절정의 기교가 눈부셨다는 얘기죠. 그가 작곡한 곡들도 자신의 기교를 한껏 과시하듯 화려한 테크닉을 가져야만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많습니다.

 

라자르 베르만은 '다자키 쓰구루'를 읽어 보신 분이라면 설명이 필요 없을 피아니스트.

(스페인 광시곡 이야기는 아래서 또 이어집니다.)

 

 

 

그리고 8부에선 대망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곡들 중 가장 대중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입니다. 파가니니는 사라사테와 함께 지금까지도 초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이죠. 피아노에서의 리스트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파가니니의 일생을 그린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스트(Paganini: The Devil's Violinist)의 한 장면. 바로 이 곡이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파가니니가 당시 어떤 카리스마로 무대에 임했는지 느낄 수 있죠. 요즘의 록 기타리스트와 사실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실제로도 없었을 겁니다.

 

위 영상을 보면 저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1986년작 전설의 영화 '크로스로드(Crossroads)'. 기타 소년 랄프 마치오가 우여곡절 끝에 '악마에게 혼을 판 기타리스트'와 대결을 펼입니다. 그런데 그 기타리스트가 바로 스티브 바이라는게 웃음의 포인트. 누가 봐도 진짜 '악마에게 혼을 판 것 같은' 바이의 초절정 연주 기교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마치오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기타로 변주해 멋지게 역전승을 따냅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여기.

 

 

 

리스트의 피아노 광시곡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광시곡이라는 제목에서 피아노 독주를 연상하시겠지만 이 곡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물론 광시곡답게 전통적인 협주곡의 악장 개념은 없고, 작게 나눠 24개의 변주로 이뤄져 있죠. 특히 유명한 곡은 바로 18 변주입니다.

 

스티븐 허프(Hough)가 연주한 위 영상에서는 대략 20분 15초 부근부터 들으시면 여러분이 찾는 '바로 그 멜로디'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 듣기도 귀찮으신 분들은 아래 영상에서 딱 18번 변주만 들으시면 됩니다.

 

 

 

 

이 곡을 선재와 혜원이 연주하게 된 건, 두 사람이 국제 음악제 예심을 위해 DVD를 제작하기 위한 곡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혜원이 "너 협주곡 피아노 파트 다 외는 곡 뭐 있니?"라고 묻자 선재는 더듬 더듬 "슈만 협주곡하고...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변주곡" 이라고 대답합니다.

 

(사실 이건 아마도 정성주 작가님의 사소한 실수인 듯 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입니다. '변주곡'이 아니죠. 정작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라는 곡은 따로 있습니다. 브람스의 곡이죠. 바로 이 곡.)

 

 

 

 

이어집니다.

 

8부에선 협주곡 반주를 하다 말고 벌떡 일어선 혜원의 꾸지람에 그 자리를 모면해 보려던 선재가 "선생님, 그 손열음이 카푸스틴 치고 그렇게 일어날 때 좋았었는데..."하고 나름 애교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가서 찬물에 세수하고 와"라는 싸늘한 대답.

 

여기서 카푸스틴은 러시아 출신 작곡가 Nikolai Girshevich Kapustin 을 말합니다. 손열음은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할 때 카푸스틴의 변주곡 41번을 연주했습니다. 그때 곡을 마무리하면서 벌떡 일어난 모습을 말하는 겁니다.

 

 

잘 아는 듯이 얘기하지만 저도 저렇게 벌떡 일어선 모습은 이번에 찾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손열음은 이때 위에서 언급한 리스트의 스페인 광시곡도 연주했습니다. 여기서 은근히 선재가 손열음의 팬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마지막으로 8부에 소개된 '선재의 모짜르트 교과서' 님은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 Maria Joao Pires 입니다.

 

 

 

 

포르투갈어의 표준 발음이 쉽지 않아 흔히 마리아 호아오(혹은 후아오) 피레스라고 소개됩니다만, forvo.com을 참고한 결과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모두 '주앙'이라고 발음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같은 이름이 들어간 보사노바의 대가 Joao Gilberto는 요즘은 거의 '주앙 질베르토'로 교정이 이뤄지고 있더군요.

 

이 분의 모짜르트입니다. 피에르 불레즈와 협연한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1944년생. 2003년의 영상이니 극중에서 혜원과 선재가 얘기하던 '60세 무렵'의 모습입니다.

 

이상 4부~8부까지의 삽입곡들과 거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엮어 봤습니다.

 

매회 하기는 힘들고, 또 곡이 쌓이면 포스팅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협찬 광고 하나. 스피커는 역시 쿠르베. http://courbea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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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가 방송되기 전, 방송을 예고하는 기사에는 허튼 악플들이 많이 달렸습니다. 이모와 조카 같다느니, 저질스러운 불륜 드라마는 공해라느니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딱 첫주 방송이 나간 뒤부터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싹 사라졌습니다.

 

한국 방송시장에서는 매주 20여편의 드라마가 방송됩니다. 개중에는 훌륭한 것도 쓰레기 같은 것도 다 있습니다. 하지만 '밀회'를 단 한 회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물건이든 직접 써 보면 대개 품질이 드러납니다. 흔한 두루마리 휴지가 같은 길이라도 처음부터 세 겹인 휴지가 있고, 가격은 싸지만 홑겹이라 몇번을 겹쳐 써야 제 구실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밀도가 다르죠. '밀회'도 그렇습니다. 압축도가 다른 드라마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밀회'를 본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시간이 짧게 느껴지냐" "앞부분 한 20분 못봤는데 흐름을 못 따라갈 것 같다. 왜 이리 진행이 빠르냐"는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허투루 버리는 시간, 잡담으로 시간만 늘려 놓은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다 보고도 무슨 내용인지 모를 수도 있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대사에 군더더기 설명이 없고, 우리가 일상에서 대화하듯 '피차간에 다 아는 얘기는 생략하고'라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생각하면서' 보지 않으면 안되고, 그래서 똑같은 70분 드라마라도 훨씬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감독의 자존심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그냥 삽화처럼 지나가는 장면도 나중에 보면 아, 그래서 저 장면이 들어갔고, 저 대목에서 저 사람이 그 말을 했구나 하는 것이 깔려 있는 드라마입니다. 제작비가 더 비싼 드라마 중에는 조연급까지도 시청자들이 알만한 배우들로 쓰는 경우들이 있습니다만, 안판석표 드라마에는 허투루 나오는 조연들 중에도 어색해 보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 시청자들이 몰라서 그렇지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역할로 나오는 분들도 대개는 연극 경력이 20년 이상 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아내의 자격'이나 '하얀 거탑' 때 지나가는 역으로 보였던 배우들이 계속 눈에 띄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검증된 배우들은 계속 쓴다...는 것 역시 안판석 표 드라마의 특징이죠. 예를 들어 '아내의 자격'에 연변 아줌마로 나왔던 연극배우 길해연이 '밀회'에는 역술가 겸 투자전문가로 나오고, '아내의 자격'에서 김희애 동생 역이었던 장소연은 이번에도 김희애의 부하 직원으로 나옵니다.)

 

 

 

 

 

드라마 구조가 보여주는 세계는 무섭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고액연봉의 기획실장이지만 혜원(김희애)의 삶은 칼날을 밟고 산다, 혹은 담장 위를 걷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나날입니다. 4부에서 김희애가 스스로를 지칭한 '3중 첩자'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김희애는 최종 보스인 서회장(김용건), 회장의 딸 영우(김혜은), 회장의 후처 성숙(심혜진)의 딱 중간에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능했다면 애저녁에 눈밖에 나 버려졌을 겁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에 붙었다면 그 역시 세 사람이 벌이는 신경전 속에서 녹아 버렸겠죠.

 

세 사람 모두 혜원에게는 은근히 자기 속내를 털어놓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묻습니다. 말이 '3중 첩자'지 여기서 만약 다른 쪽의 기밀을 누설해 준다면 그날로 역시 버려지는 몸이 될 겁니다. 세 사람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여기서 저쪽 얘기를 한다는 것은 저쪽에서도 여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임을 바로 알아차릴테니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4회에 나온 서회장과 혜원의 대화는 그야말로 백전노장, 산전수전 다 겪은 여우와 여우의 대결입니다.

 

 

 

 

서회장: 뭣보다 성숙이가 널 안 내놓겠지.

혜원: (웃음)

서회장: 한 잔 해라.

혜원: 운전 땜에.

서회장: 그 밑에 있으믄 평생 실장일텐데.

혜원: 평생이믄 고맙죠. 직함이야 어찌됐든.

서회장: 한성숙이는 젖두 크구, 다 좋은데 딴주머니가 너무 커져버렸어.

혜원: (민망하지만 미소 지우지 않고,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서회장: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앉혀 놨다.

혜원: 어떡하죠, 회장님? 제 원칙대루라면, 지금 그 말씀 이사장님께 보고 해야 하는데,

서회장: 허허 참, 이거, 니가 진짜 큰 여우다, 나한테 협박을 다 하구.

혜원: 죄송합니다.

 

 

이런 세계에서 버티는 혜원도 대단하지만, 어쨌든 힘을 가진 사람들은 혜원이 아니라 이들 셋입니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거스르는 날이 혜원에게는 그 자리에서 버티기 힘든 상황이 시작되는 날인 거죠. 이런 상황에서 지혜를 발휘해 살아남고, 회장을 위해 설렁탕 집의 음식 나르는 아줌마까지 섭외하는 혜원. 영우에게는 입만 열면 '윤리 도덕'을 말하는 것이 어쩌 보면 대단히 모순적입니다.

 

유명 음대를 나와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왕년의 피아노 수재, 선재(유아인)의 눈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초호화 스펙에다 다른 세상에 살 것 같은 혜원이지만 실제로는 적잖은 대가를 치르고 있습다. 잔혹하고 무서운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앨리스가 전사로 다시 태어난 셈입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모욕과 굴욕을 다 참고, 본래 갖고 있던 도덕적 원칙을 다 숙여 입시 비리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본래 도덕이라곤 모르는 듯한 재벌가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살아남은 혜원. 그 대가로 누리고 있는 것은 유명 음대 교수 부인이며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 만약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위협하는 일이 닥치면 혜원은 가차없이 그 싹을 잘라 버릴 인물입니다.

 

 

 

 

그런 혜원이 과연, 가진 것을 모두 내려 놓으면서 스무살 어린,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아무 것도 아닌 선재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려 할까요. 아직까지는 자신의 애정을 다른 감정, 즉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묻혀 버릴 선재의 재능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애써 속이며 행동하고 있지만, 드라마가 드라마가 되려면 그 감정이 곧 드러나고야 말 겁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드러날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성주 작가의 거침없는 필로를 생각하면 지레 겁이 납니다. 혜원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혜원을 여신으로 생각하는 선재가 혜원의 삶의 참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혜원의 껍데기 남편 준형을 비롯한 나머지 인물들이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엇을 기대하든, 아마도 시청자들은 그 기대보다 훨씬 적나라한 현실을 보게 될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 은근히 두려움이 앞서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일 선물로 받은 16개의 초콜릿 가운데 벌써 네개나 포장지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물론 기획 단게에서 20부로 끝낼 수도 있다는 검토가 있었으니 기대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라흐마니노프. 보컬리제. 유자 왕의 연주입니다. ('밀회'에 나올 곡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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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에는 드라마 성격상 수많은 피아노 곡들이 등장합니다.

 

클래식의 세계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아무리 좋은 곡도 어떤 상황에서 듣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들어 좋은 곡이 있고, 전날 밤에 그렇게 좋았던 곡이 다음날 눈 뜨고 들으면 대체 내가 왜 이런 곡을 좋다고 했는지 이상할 때도 있죠.

 

아무래도 영상과 결합된 곡들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온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나 '쇼생크 탈출'에 나온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2중창'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분들이 '밀회'에 나온 주옥같은 피아노 곡들을 기억하실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 선재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템포가 빠르고 높은 수준의 기교가 필요한 곡들이 많이 선곡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들린듯 건반 위를 달리는 번개같은 손'이 확실히 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겠죠.

 

가장 먼저 알려진 곡은 이미 하이라이트 영상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저 곡 제목이 뭐냐"는 말을 들었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여기서 네 손은 four hands 입니다. your hands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두 명의 호흡이 잘 맞는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때 더 매력적인 곡입니다. 이 곡은 앞으로도 '밀회'의 주된 테마처럼 자주 쓰일 예정입니다. 선재와 혜원이 함께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많은 것을 예고해 준다고 봐야겠죠.

 

 

 

의외로 남녀가 함께 연주한 버전은 많지 않아서 파울 바두라-스코다와 요르그 데무스 듀오.

 

그 전. '밀회' 1회에서 준형(박혁권)이 '나천재'라는 아이디로 선재(유아인)가 올린 영상을 보는 장면에 나온 곡은 바르톡의 피아노 모음곡(Op.14) 중 3번입니다. 준형이 "미친놈. 피아노로 개그하나"라고 말했던 바로 그 장면에 나오는 곡이죠.

 

 

 

 

2부에선 꽤 여러 곡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혜원(김희애)이 선재에게 "너 왜 평균율 칠때 페달 안 써?"라고 묻는 곡은 유명한 J.S.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아곡집 중 1번 전주곡(BWV 846) 입니다. 아무리 생각 없는 사람도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한다는 곡이죠.

 

이 분야에서 신화적인 존재인 글렌 굴드 버전입니다.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할 때에는 이 굴드의 연주처럼 대개 페달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혜원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선재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무슨 이유인지를 물은 것이죠. 선재는 "왠지 악보에 그렇게 하라고 써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 역시 혜원이 선재의 천재성을 파악하는 대목입니다. 선재가 '배우지 않고도' 작곡자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 차리는 것이죠.

 

 

그 다음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Appassionata)' 3악장.

 

"열정 3악장 다시 해봐. 아니다. 코다부터."

"저, 틀렸나요?"

"아니. 다시 듣고 싶어서."

 

혜원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다리 위에서 미친듯이 난간을 건반 삼아 두드리는 선재의 모습. 바로 그 부분입니다.

 

 

 

 

코다(Coda)는 소나타 형식의 종결부를 뜻합니다.

 

요즘 상한가인 랑랑이 연주하는 '열정' 3악장. 선재의 코다 부분은 위 영상에서 7분10초 정도 되는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 열정 3악장의 메인 테마가 계속 변주되다가, 한 순간에 새로운 주제가 제시되면서 폭풍처럼 몰아치는(물론 앞부분도 강렬합니다만, 거기서 한번 더 '강렬함'이 추가됩니다) 마무리가 인상적입니다.

 

 

 

물론 '열정'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고뇌에 가득 찬 1악장 부터 순서대로 듣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이제는 지휘자로 더 유명하지만 다니엘 바렌보임의 손은 아직 녹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제목만 나온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Wanderer Fantasie'. 입시 곡으로 뭘 치겠느냐는 준형과 혜원의 질문에 선재가 선택한 곡입니다.

 

일세를 풍미한 천재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선재가 꿈을 이뤘을 때 가질 수 있을 모습을 미리 보는 듯한 영상.

 

김선욱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협연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입니다.

 

 

제목이 그래서가 아니고, 그야말로 모든 피아노 곡들 가운데 황제의 자리라고 봐도 좋을 듯한 곡이죠.

 

만석을 이룬 대형 콘서트 홀에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황제'를 연주하는 모습은 모든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꿈이기도 할 겁니다. '밀회'에서는 1회 음악제 장면에서 조인서(박종훈) 교수가 직접 지휘를 겸해 연주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런 다양한 곡들의 연주 연기를 위해 연기자들은 악보를 외우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준의 연주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손가락과 연주가 거의 일치하는 수준의 숙달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 드라마나 영화 속 연주 장면 중에서는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일단 대략 3부까지 등장하는 중요한 곡들을 훑어봤습니다. 뒤로 갈수록 더 다양한 곡들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밀회'를 즐기는 좋은 방법, 음악과 함께 즐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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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소문이 무성했던 화제의 [밀회] 1회가 방송됐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얘기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습니다. 대본을 아무리 읽어보고 잘 아는 배우들이 나와도, 편집을 마치고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기 전엔 그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가 될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던 '밀회'. 순산이었습니다.

 

 

 

 

'밀회' 첫회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설명에 소요됐습니다. 일단 인물관계도는 이렇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본질적으로 혜원(김희애)-선재(유아인)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한복판에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1회를 제대로 보신 분이라면,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이 아직 살짝 감춰놓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금세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장 흥미로운 관계는 혜원을 중심으로 한 성숙(심혜진)과 영우(김혜은)의 관계입니다. 혜원은 예고 동창인 영우와 명목상 친구로 되어 있지만 재벌 회장의 딸이자 자신의 고용주 뻘인 영우의 시녀 역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물론 혜원은 연봉 1억인 '서한예술재단 기획실장' 자리에 그 시녀 역할까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회장의 후처인 성숙이 있습니다. 교양미넘치는 포장에도 불구하고 고급 룸살롱의 마담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영우로부터 절대 계모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실속을 차리려는 야심과 계략이 가슴에 가득하고, 총명하고 성실한 혜원을 자기 사람으로 곁에 두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성숙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건 자신을 '한마담'이라고 부르는 영우의 목소리. 그 한마디에 성숙은 애써 지켜 온 교양미의 허울을 벗고 영우의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암늑대가 되어 버립니다. (1회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화장실 격투 신;;)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혜원의 '뺨 맞는 신'은 바로 이런 갈등이 표출된 결과입니다.

 

 

 

             

 

 

새파랗게 어린 남자 모델을 데리고 오피스텔에서 잠든 영우를 깨우러 간 혜원. 그 혜원이 "하려면 진짜 사랑을 하든가"라고 쓴소리를 하자 영우는 다짜고짜 뺨을 갈기며 쏟아붓습니다. "기집애야, 너는 진짜야? 너 정말 강준형 사랑해서 바람 안 펴? 니 남편 허당인거 누가 몰라?"

 

그리고 드라마는 서한예술재단이 운영하는 서한음대의 민학장(김창완)과 혜원의 남편인 교수 준형(박혁권)을 보여줍니다. 이 사회의 맨 꼭대기에서 여러 혜택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 향기롭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음을, 그리고 이 드라마가 그 군상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예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한때 기획 단계에서 이 드라마는 '음악판 하얀 거탑'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얀 거탑'이 한국 의학계의 후진성과 어두운 단면을 보여줬다면 '밀회'는 한국 고전음악계의 병폐와 환부를 백일하게 드러낼 겁니다.

 

 

 

제법 긴 1부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우연히 서한재단 아트센터의 공연 날, 택배 물건을 갖고 현장에 도착한 선재가 무대 뒤에서 커튼 너머로 혜원 일행을 바라보는 지점입니다. 협연을 앞둔 조인서 교수(박종훈)와 민우(신지호)가 피아노를 조율하며 혜원과 함께 잡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선재에게는 감히 꿈꿀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곳입니다.

 

이 장면을 트친 하나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청년의 눈빛은 가늘게 떨리며 촉촉하고 몽환적이다.

근데 심지어 그게 유아인이란 거지." (@hsjeong)

 

더 이상 적절할 수 없습니다.

 

 

 

숨가쁘게 달린 1회는 사전 공개 영상에서 드러났던 장면, 즉 혜원이 선재를 불러 피아노 실력을 테스트 해 보는 장면 바로 앞에서 끝났습니다.

 

이 예고에 대한 내용은 이쪽: 밀회, 보는 이를 압도하는 20분 http://fivecard.joins.com/1240

 

그러니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 두 주인공이 만난 것이 1회 끝나기 3분 전인 걸 보면 - 사실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머잖아 두 사람의 관계에선 불꽃이 튈 겁니다.

 

드라마가 나오기도 전에 설정만으로 이 드라마를 싸구려 불륜 드라마 취급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1회를 보라'는 것 뿐입니다.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수준으로 이 드라마와 견줄 만한 작품은 올해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한마디 더 보탠다면, "이게 바로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있게.

 

혹시 1회를 보실 기회를 놓친 분들, 여기서 1회를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다행인 건, '이제 겨우 1회가 방송됐을 뿐'이란 겁니다.

아직도 15회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만치 더 즐기실 수 있단 얘기죠.

 

P.S. '베토벤 바이러스' 까지만 해도 연주자의 손이 흘러나오는 음악과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누가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느냐'는 게 일반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밀회'는 다릅니다. 진짜 피아니스트들인 박종훈, 신지호는 물론이고 김희애와 유아인도 정확하게 건반을 짚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밀회'가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작은 예일 뿐입니다.

두고 보시면 더 놀랄 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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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12일. JTBC 드라마 '밀회' 제작발표회가 열렸습니다.

 

김희애-유아인 주연, '아내의 자격'의 안판석 감독, 정성주 작가의 재회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화제가 된 드라마였습니다만, 사실 어떤 드라마가 나올 지는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습니다. 물론 일찌감치 대본을 읽어 보고 '이건 아마도 올해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대본과 정작 만들어진 드라마는 또 다른 법이거든요.

 

그리고 제작발표회. 본래 JTBC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는 1회를 모두 보여드리는 것이 관례였습니다만 이번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분 가량의 부분만이 먼저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당초 제작진은 '하이라이트'를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만, 만들어진 영상을 보니 하이라이트가 아니더군요. 일반적으로 하이라이트라고 하면 여기저기서 뽑은, 시청자들이 보기에 극적인 장면들을 편집한 영상을 말하는데, 이날 공개된 영상은 드라마 한 중간의 20분 정도를 통으로 잘라 낸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이 드라마 앞부분의 하이라이트가 되기는 합니다. 일단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선재(유아인)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피아노 천재입니다. 어려서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닌 것 외에는 제대로 배운 적도, 누가 지도해 준 적도 없지만 타고난 감각으로 피아노를 '가지고 놀아서' 기적적인 성취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택배 아르바이트.

 

혜원(김희애)은 재벌그룹에서 운영하는 예술재단의 기획실장. 재단 일은 물론이고 회장 사모님인 재단 이사장(심혜진)의 비서에서부터 재단 이사이자 동갑내기인 회장 딸(김혜은)의 뒤치닥거리까지 1인3역을 완벽하게 해 내는 슈퍼 우먼이지만 한때는 촉망받던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손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주자의 꿈을 접었지만, 지금도 음악인의 재능을 판별하는 '귀'는 국내 1인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저 영상 바로 앞에 있었던 일: 혜원의 재단에서 주관하는 연주회 날. 우연히 그 공연장에 택배 일로 갔던 선재는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 놓인 그랜드피아노의 유혹에 빠져 놓여 있던 악보를 연주해 버립니다. 당연히 예정돼 있던 연주자가 리허설을 하는 걸로 알았던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자 경악합니다.

 

CCTV를 통해 택배 옷을 입은 청년이 피아노를 치는 걸 발견한 혜원은 선재를 찾아내 재능을 테스트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보신 영상 내용의 전개가 이어집니다.

 

 

 

 

 

사실 대사도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두 사람이 피아노를 치는 내용으로 이어지지만 간간이 나오는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의 캐릭터가 모두 드러난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정말 정성주 작가의 내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쌀쌀맞음을 가장한 혜원의 관심과 놀라움, 처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준 사람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선재의 순수함과 진지함.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어떤 대사보다 뜨거운 교감이 시청자에게 전달됩니다. 대본의 완벽성이 전혀 손상 없이 보는 이에게 이어지는 안판석 감독의 연출력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 영상을 본 어떤 사람은 '어지간한 베드신보다 에로틱했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의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짧은 연주를 통해 두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의 대화보다 더 깊은 교감을 나누고, 혜원은 선재를 알아갑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연주 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보는 이들이 새삼 느끼게 됩니다. 뭐랄까요, 영상과 음악과 두 배우의 연기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마술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밀회'는 남편이 있는 40대 커리어 우먼과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는 스무살 청년의 사랑이란 충격적인 설정 때문에 알려졌지만 드라마의 도입부에선 전혀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재의 발견되지 못한 재능, 혜원의 불행한 결혼생활, 예술계의 권력인 후원자와 음악대학, 예술재단을 둘러싼 상류층의 부덕함과 부조리가 시청자의 눈길을 잡는 드라마입니다. 처음 선재를 발견한 혜원의 눈은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기쁨과 자기 표현에 능하지 못한 소년 선재를 향한 귀여움으로 가득합니다.

 

아무튼 20분 가량의 드라마 발췌본을 보고 난 부작용은 '밀회' 본편이 너무 기다려진다는 겁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하루빨리 3월17일이 오길 바랍니다.

 

 

 

 

P.S.1.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곡은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입니다. 남녀가 같이 연주하는 버전을 찾다가 마르타 아르게리히와 에두아르도 델가도의 버전을 골랐습니다. 이 곡도 이제 유명해질 듯.

 

)

 

 

 

P.S. 2. 위 영상을 보시다 보면 특이하게 생긴 스피커가 화면 한켠에 등장합니다. 바로 저 왼쪽 끝 아래 있는 물건.

 

 

저것이 바로 유명한 쿠르베 스피커입니다. 관심있는 분은 http://www.courbea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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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누가 들어도 너무 깁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우사수]라고 불릴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2012년 연말부터 2013년 초까지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습니다(당연히 '우결수'라는 제목으로 불렸죠). 이 드라마는 김윤철 PD와 하명희 작가가 호흡을 맞췄고, 결혼을 앞둔 두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안과 기대, 좌절과 화해를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성준과 정소민이 사랑스런 젊은 커플로 등장했고, 정소민의 '세상 물정을 다 아는' 닳고 닳은 엄마로 이미숙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만에 김윤철 PD는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또 한편의 여자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우사수'는 MBC TV의 '기황후', KBS 2TV '총리와 나', SBS TV '따뜻한 말한마디' 와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월화드라마입니다. 묘하게도 '우사수'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우결수'를 집필했던 하명희 작가가 '따뜻한 말한마디'의 작가이기도 하다는 게 참 묘한 운명을 느끼게 합니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응답하라 1994' 와 같은 궤도에서 출발합니다. 드라마 한 편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빨라도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니, '응답하라 1994'가 종영하고 바로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건 사실 우연입니다(제작발표회에서도 관련 질문이 나왔는데 김윤철 PD는 안타깝게도 '우사수'의 준비 때문에 '응사'를 한 회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1995년, 다같이 지긋지긋한 고3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한 세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잠시 삽화로 보이는 2002년. 정완(유진)은 만삭의 임산부, 선미(김유미)는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 그리고 지현(최정윤)은 원숙한 주부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인 세 친구는 열심히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현재. 서른 아홉 동갑내기엔 세 친구의 위치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던 정완은 남편과 헤어져 홀어머니와 함께 아들 태극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는 선미는 잘 나가는 골드미스. 지현은 준재벌급의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셋 모두 그늘이 있습니다. 정완은 생활고 때문에 마트에서 알바를 해야 하는 처지. 선미는 어느새 동년배 남자들에게 자신이 '늙은 여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현은 결혼생활 10년이 넘었는데도 어려운 형편의 친정 때문에 여전히 시모에게 가정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찍 낳은 딸 세라는 어느새 무서운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빵꾸똥꾸' 진지희가 어느새 성장해 10대 역으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사수' 1회는 1995년에서부터 이들 세 단짝 친구의 현주소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세 여자 주변에 포진된 남자들도 슬슬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완은 영화사 대표 도영(김성수)와 젊은 나이에 장래가 촉망되는 감독 경수(엄태웅)을 만납니다. 동시에 도영은 지현의 첫사랑이기도 하고, 선미 역시 경수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선미에겐 진심을 고백하는 한참 연하의 부하 직원 윤석(박민우)이 있지만, 선미가 보기엔 정말 철딱서니 없는 사내아이일 뿐.

 

과연 이 남자들이 서른 아홉이란 나이의 여주인공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의 도입부에서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시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열 아홉 나이의 세 친구가 일제히 미장원으로 달려가 한껏 헤어스타일을 고치고, 귀를 뚫습니다. 이걸 통해 '어른이 됐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죠. 성년식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나란히 귀를 뚫은 세 친구가 20년 동안 우여곡절을 - 대학 졸업반이 될 무렵 IMF를 겪고, 취업난으로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해외 연수가 보편화되기도 하고(물론 졸업 연도를 늦추려는 시도와 함께), 대학 운동권이 총학생회에서 배제되기도 하고, 본격적인 아이돌 시대를 경험해 보기도 하고, 2002년의 대축제로 20대의 끝자락을 장식해 보기도 하고, 그리고서 이제 중년의 문턱에 와 있는 세 친구.

 

그런 그들의 시작을 '귀를 뚫는다'는 행위로 표현한 것. 매우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세 배우 모두 서른 아홉이란 나이를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나이.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실제 나이보다 위인 배역은 거의 맡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캐스팅이지만 선공개된 '우사수' 1회를 봐선 이들 중 누구도 연기의 깊이가 부족해 애를 먹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1회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건 누가 뭐래도 '여자를 가장 잘 아는 연출'로 불리는 김윤철 PD의 늘어지지 않는 속도감. 따발총같이 쏟아지는 대사가 아닌데도 지루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빠른 전개가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39라는 숫자를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노래는 퀸의 '39'입니다. 물론 나이로 서른 아홉이 아니라 1939년을 담고 있는 노래지만, 그래도 흘러간 좋았던 날들을 돌이켜보는 데서 이 드라마, '우사수'와도 만나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우사수'와 관련해선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가 여자의 인생에서 갖는 의미와 관련해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이쪽도 들러 보셔도 좋습니다.

 

여자 나이 서른 아홉, 공돈 1000만원이 생기면 뭘 하지? http://fivecard.joins.com/1209

 

 

 

 

P.S. '우결수'도 '우결수'지만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의 시놉시스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드라마는 2004년 방송됐던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극본 김인영 연출 권석장)'였습니다. 당시엔 명세빈 이태란 변정수가 사회생활과 연애 사이에서 고민하는 30대 초반의 세 친구로 나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샀던 작품이었죠.

 

'우사수'는 '응답하라 1994' 세대의 현재 이야기인 동시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10년 뒤 이야기라면 딱 맞을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보실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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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서른 아홉. 만약 누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쓰라'며 돈 1000만원을 준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는 1월6일부터 방송되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비와 함께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39'라는 숫자는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를 뜻합니다. 이 나이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핵심입니다.

 

과연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정말 마흔이 되면, 그때부터의 인생은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할까요? 서른 아홉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이후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까요? 예전만큼 '40'이란 숫자의 의미가 크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여전히 그 나이를 맞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 합니다.

 

그 나이를 맞기 전, '앞으로의 인생을 위한 준비 비용이야'라면서 누군가 1000만원을 준다면, 그리고 가족이나 남편이나 애인이나 아이들이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그 돈은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1. '우결수'에서 '우사수'까지. JTBC 미니시리즈의 진화

 

'우사수'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말, 줄인 제목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우사수'가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연초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줄여서 '우결수')라는 드라마를 방송해 꽤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미숙이 극성스런 엄마로, 이미숙의 딸로 정소민이, 정소민과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로 성준이 출연했던 드라마입니다.

 

여교사에 예쁜 얼굴로 경쟁력을 갖춘 신붓감인 정소민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남친 성준과 결혼하려 하지만, '인생에 한번 하는 결혼,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면 안된다'는 친정 엄마의 소신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이 서슬에 보자 보자 하던 성준의 엄마 선우은숙이 발끈, 결혼은 산으로 가고 두 사람은 거의 헤어질 위기에 놓이죠.

 

결혼을 앞둔 커플의 심리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위 '결혼 한탕주의', 그리고 이들 커플을 둘러싼 다른 세 커플의 각기 다른 사랑만들기가 꽤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PD가 연출을 맡았고 당시 무명에 가깝던 하명희 작가는 현재 방송중인 SBS TV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한마디'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 김윤철 PD가 새롭게 만드는 드라마가 1월6일부터 JTBC에서 방송됩니다. 제목은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와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로 붙였습니다.

 

 

 

 

 

2. '우사수'는 어떤 드라마?

 

'우결수'가 남녀간의 연애 못잖게 여자들끼리의 우정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는 걸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우사수'는 그렇게 사이 좋게 지내던 세 여자친구가 서른 아홉 나이를 맞아 각각 이혼녀, 유부녀, 노처녀로 '상태'가 갈린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셋 다 그리 형편이 좋지 못합니다. 애 딸린 이혼녀는 본래 시나리오 작가지만 생활을 위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전남편이 재결합하자는 줄 착각했다가 김칫국을 마시는 처량한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부잣집으로 시집간 유부녀는 씀씀이에 모자람이 없지만 엄한 시어머니와 다소 마마보이인 남편 때문에 남몰래 폭음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처녀. 브리짓 존스처럼 뚱뚱하지도 않고, 스타일도 좋고 수입도 좋은 소위 골드미스지만,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은 달랠 길이 없습니다.

 

서른 아홉인 세 여자의 "대체 어디서부터 인생이 꼬인 걸까..."라는 넊두리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까지가 이 드라마의 주제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유진 최정윤 김유미가 각각 이혼녀, 유부녀, 골드미스로 나오고 엄태웅 김성수 박민우가 여자들의 서른아홉을 흔들어 놓을 남자들로 등장합니다.

 

 

 

 

 

3. 39 드림 프로젝트

 

서른 아홉. 남자든 여자든 마흔이 넘으면 대개 중년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젊어 보이고, 아무리 건강해도 마흔이 넘으면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할 것을 권해 옵니다. 특히 암 검사나 위/대장의 내시경 검사가 권장됩니다.

 

이런 나이를 앞두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을, 그리고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과연 그때 그 판단을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앞으로도 내 인생은 지금과 거의 차이 없이 흘러가게 될까.

 

'우사수' 방송에 즈음해 JTBC는 여자들의 인생에서 서른 아홉이란 나이가 갖는 별스러운 의미에 주목해 한가지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바로 '39 드림 프로젝트' 라는 이벤트입니다.

 

참가자는 대한민국 모든 여성 입니다. 딱 서른 아홉인 분도 있고, 넘은 분, 아직 이 나이를 맞지 않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딱 서른 아홉인 분은, 직관적으로 '지금 내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는 이야기를 써 주시면 됩니다. 이미 서른 아홉을 지나 온 분들은, '그때 기회가 있었더라면 이런 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내용을 적어 주십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때 못한 그 일'을 다시 저질러 보시는 겁니다. 아직 서른 아홉을 맞지 않은, 상대적으로 행운아인 분들은 '내가 지금 서른 아홉'이라고 가정하고, 그 전에 꼭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은 일을 적어 주십쇼.

 

 

 

 

단 저희가 선정되신 한 분에게 지원해 드릴 수 있는 돈은 1000만원 입니다. 상당히 큰 돈이지만 아주 많은 돈은 아닙니다. 이 돈으로 저희는 참가하신 여러분께 카페를 차려 드리거나, 좋은 별장을 사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달 정도 인도 전역을 여행하거나, 아프리카에 가서 멀리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바라 보며 아침 커피를 드시게 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스키 강습을 받게 해 드릴 수도, 옥스포드에서 영어 연수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상태 괜찮은 중고차나 사람들이 쳐다보는 자전거를 살 수도 있고,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볼 수도 있습니다. 크게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신 성형을 통해 새로운 운명에 도전하시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드실 수 있지만 '버킷 리스트'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위안이라면 이 '39 드림 프로젝트'는 앞날이 창창한 사람들의 재충전 기회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즉시 아래 링크를 눌러 JTBC 홈페이지를 노크하시면 됩니다.

 

http://home.jtbc.co.kr/Event/Event.aspx?prog_id=PR10010275&menu_id=PM10021612&cloc=jtbc|top|top

 

그리고 '우사수'에 나오는 세 여자의 운명에도 계속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P.S. 물론 그 1000만원을 지원받은 분이 그 돈을 어떻게 쓰셨는지는 많은 분들의 관심사가 될 듯 합니다. 어떻게 그 돈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돈을 쓴 뒤로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저희가 어떻게든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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