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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아내]

'네 이웃의 아내'는 금기 중의 금기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성경의 10계명 중 아홉번째가 바로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죠.

 

JTBC에서 새로 시작한 월화드라마의 제목이 '네 이웃의 아내'라는 건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른바 '남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이 드라마에서 특이한 점은 그 '남의 아내'가 곧 '나의 아내'라는 점입니다. 아파트에서 한 복도와 안 엘리베이터를 쓰고 있는 앞집. 그 앞집에 마주 보고 사는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남편과 아내를 탐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뭔 막장 불륜 스토리냐 싶기도 하고, 스티븐 킹의 스와핑 단편 같기도 한 얘기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드라마라는 것의 존재 이유가 '세상의 변화에 대한 단초를 짚어간다'는 것, 혹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의 단면을 보여주자'는 것이라면, '네 이웃의 아내'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습니다.

 

 

 

 

송하(염정아)는 광고회사의 꽤 유능한 팀장. 종합병원 의사인 남편 선규(김유석)와 겉으로 보기에는 주위의 부러음을 살 만한 전문직 부부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꾸역꾸역 살고 있는 커플. 신선한 자극도 이미 부부생활에선 사라진지 오래. 아직 어린 아들과 딸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대기업 부장인 상식(정준호)는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철두철미하고 책임 추궁에 강한 남편. 유능하지만 독선적인,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살아온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런 상식에게 늘 반쯤 기가 죽어 사는 아내 경주(신은경). 남편 앞에선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정도로 순종적이지만 사실은 남편의 밥그릇에 침을 뱉는(위 사진) 비틀린 면을 보여주는 여자입니다.

 

주위에서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부부들의 모습이지만 이들 사이에선 뭔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일에서의 성공을 향해 악착같이 버티던 송하에게도 어느새 직장이 시들해지고, 병원의 수익 창출에 영 비협조적인 선규는 경영진의 눈밖에 나 위기를 맞습니다.

 

 

 

 

상식 역시 어느 남자에게나 찾아오는 중년의 위기를 슬슬 느끼고 있고, 경주는 과연 두 딸에게 자신이 제대로 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회의하기 시작합니다.

 

아무튼 별 일 없던 것 같은 안온한 부부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계기는 평범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불의의 사망 사건. 그것도 남편이 가정불화 끝에 아내를 폭행하고, 달아나던 아내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는 사건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라고 부르기엔 약간의 어폐가 있지만, 모든 사람이 살인사건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건 이후 송하는 "인생이란, 부부란 뭘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앞집이 비면서 상식과 경주가 앞집으로 이사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아울러 이 사건을 통해 경주는 상식에 대한 인간적인 기대를 더 낮춰 잡게 되죠.

 

 

 

 

그러는 사이 송하와 상식이 광고회사와 광고주 관계로 만나게 되고, 상식과 경주는 앞집 사람으로 얼굴을 마주칩니다. 그러면서 슬슬 이들의 잠들어 있던 과거가 눈을 뜨고, 비밀스러운 관계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주변에선 또 다양한 인물들의 인생이 그려집니다. 이 드라마의 주제를 말하고 있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특히 아파트의 두 주부들입니다. 이름은 따로 없고, 주부1, 주부2라고 표현해야 할 듯한 캐릭터들이지만 비중은 제법 큽니다. 바로 서이숙-김부선 콤비죠.

 

 

 

 

영자 역의 김부선은 왕년의 아매부인으로 잘 알려진 분이지만 서이숙은 많은 분들께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대표적인 배우일 겁니다. 많은 드라마에 상궁이나 동네 아줌마 역 등으로 나오셨죠. 아무튼 이 드라마에서는 최고의 적역을 맡았습니다.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밖에선 아무도 몰라!" 라는 소름끼치는 대사를 말하는.

 

 

 

 

또 김부선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이세창 역시 할 얘깃거리가 많아 보입니다. 한참 연상인 아내와 조용히 잘 살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사실은 물밑에 숨은 바람의 제왕.

 

그밖에 송하의 직장 동료인 섹시한 유부녀 지영(윤지민)과 직장 내 넘버1 킹카인 정이사(양진우) 등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지 궁금한 캐릭터들이죠.

 

 

 

 

어쨌든 '네 이웃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출발했으니,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속시원히 꿰뚫는 이야기가 나올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해 '아내의 자격'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또 불륜 드라마냐'고 보지도 않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몸서리치게 리얼한 묘사에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네 이웃의 아내'는 '아내의 자격' 처럼 현실보다 더 리얼한 드라마를 표방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대신 이 드라마에는 미스테리가 있고, 코미디가 있습니다. 10년 넘게 산 부부들, 더 이상 할 말 못할 말이 따로 없는 부부들의 속내가 여지없이 파헤쳐집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늘 보는 드라마의 늘 보는 그런 결론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드라마가 30여편씩 방송되는 드라마 공화국, 하지만 결말이 궁금해지는 드라마는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떤 '부부의 진실'에 도달할까요?

 

 

 

 

P.S. '네 이웃의 아내' 홈페이지에서는 현재 드라마 리뷰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자신의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리뷰 하나 잘 쓰면 상품이 후두둑. 상품 중에는 명품 프라다 백도 들어 있습니다. 이 기회에 드라마 보고, 한 살림 장만하시기 바랍니다.

 

http://home.jtbc.co.kr/Board/Bbs.aspx?prog_id=PR10010260&menu_id=PM10020468&bbs_code=BB1001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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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 여기저기서 '힐링 드라마' '힐링 예능'이 등장한지 오랩니다. 하지만 진짜 '힐링 드라마'라고 부를만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바로 JTBC 새 주말드라마 '맏이'. 어떤 드라마일까요?

 

타이틀 사진을 보면 어떤 내용일지 대략 짐작하실 만 합니다. 어린 다섯 남매가 부모를 잃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죠. 제목이 '맏이'인 것은 그 성장을 위해 맏언니가 엄마 노릇을 하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한다는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것이구요.

 

그 '맏이'가 14일 처음 방송됐습니다. 그리고 방송 첫날부터 반응이 호평 일색입니다. 한마디로 무공해 청정 드라마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일단 누가 누군지 구별을 해야 드라마 보는 데 도움이 될 듯. 드라마의 중심인 오남매부터 시작합니다.

 

아역 캐스팅은 단연 최강입니다. 얼굴만 봐도 캐릭터가 절로 느껴집니다.

 

 

다섯 남매의 성격까지 뚜렷합니다. 드라마의 핵심인 맏이답게 똑똑하면서도 심지가 굳고 갖은 고생 속에서도 밝고 바른 마음씨를 간직하는 맏딸 영선. 아역 유해정, 어른 역은 윤정희가 연기합니다.

 

둘째 영란은 집안 살림이야 어쨌든 예쁜게 좋고 비싼게 좋은 허영 덩어리. 어느 집안에나 희한하게 둘째 중에 이런 성격이 많은 듯 합니다. 예쁘게 자라지만 그 예쁜 얼굴 때문에 결국 문제를 만듭니다. 아역 박하영, 어른은 조이진.

 

 

 

'난 공부가 제일 싫어요'라고 말하는 세째 영두. 아들이지만 똑똑한 구석도 없고, 야무진 구석도 없는 그런 아이. 아역은 김윤섭, 어른은 강의식. 그저 착한 것 하나 외에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네째 영숙은 말 없이 소심하고, 부모를 잃은 충격 때문에 몽유병까지 생기는 약한 아이입니다. 언니의 도움이 유난히 필요한 동생이죠. 아역 한서진. 어른은 미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막내는 아직 아기 상태에서 못 벗어난 영재. 김예찬 군이 연기합니다. 10여년 뒤라고 해도 아직 아역 상태일 듯.

 

 

 

 

이 다섯 아이들이 아빠(윤동환)와 엄마(문정희) 밑에서 가난하지만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고 어쩔 수 없이 고모를 찾아가 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고모도 소실 살이에 눈치 보며 사는 처지라는 것. 그 고모네 환경입니다.

 

 

 

고모 은순(진희경)은 동네 갑부 이상남(김병세)의 첩 살이를 하면서, 둘 사이에 아들 종복이를 낳아 기르고 있습니다.

 

그 이상남의 본처가 이실(장미희). 둘 사이에는 인호(아역 박재무, 어른 미정)와 지숙(아역 노정의, 어른 오윤아) 남매가 있지만 이실은 누구에게나 냉랭하기만 합니다. 워낙 상남과의 결혼이 원치 않은 결혼이었던데다 결핵이 깊어지며 누구 하나 곁에 가까이 두려 하지 않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실을 어려서부터 짝사랑했던 창래아재(이종원)만이 마음을 기울여 이실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정도. 딸인 지숙까지도 '차라리 돌아가시는게 낫겠다'는 속내를 비칠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 은순의 조카 오남매가 들이닥치면 반가워 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겠죠. 은순 역시 떠맡을 처지가 아니지만 여기 말고는 기댈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사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영선이 친자식들조차 열지 못한 이실의 차가운 마음을 열게 되는 스토리.

 

 

 

 

그리고 한 동네에서 성장하는 영선의 소울메이트 순택네가 있습니다.

 

순택이네는 그래도 양반 끄트머리를 자처하는 집안. 어머니 반촌댁은 일자무식에 떡장수지만 그래도 아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전형적인 어머니입니다.

 

그 아들인 순택(아역 채상우, 어른 재희)은 도내 1등을 차지하는 수재. 부잣집 아들인 인호와 학교에서는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입니다. 당연히 부모의 온갖 기대를 품에 안은 '개천에서 난 용' 캐릭터죠.

 

그 동생인 순금(아역 박지원, 어른 미정)은 오빠와는 달리 공부는 전혀 소질이 없지만 마음만은 하늘만큼 넓은 소녀. 눈치도 없고 남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공해 캐릭터입니다. 특히나 아역 박지원 양의 캐스팅은 정말 신의 한수. 단 1회만 봤을 뿐인데도 웃음이 빵빵 터집니다.

 

 

 

'맏이'의 초반은 이 아역들의 눈부신 활약이 신화를 만들어 낼 것 같은 예감.

 

부모 없이 오남매만 남아 갖은 고생 끝에 천천히 어른이 되어 가고, 어른이 되어서도 돌봐줄 사람 없어 또 고생하고, 그중에 또 철없이 맏언니 속 썩이는 캐릭터도 있고...

 

이렇게 이야기만 들으면 참 불쌍하고 눈물나고 답답한 이야기일 듯 하지만, 대한민국 원로 작가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김정수 작가는 그리 뻔한 드라마와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나올 듯 한 구석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어른들을 웃깁니다. 그 웃음이 오히려 더 찡하게 와 닿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전체적인 드라마의 색채는 밝은 녹색입니다.

 

 

 

 

저 또한 농촌 생활 한번 해 본적 없지만, 오가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래, 저 시절엔 다들 저랬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할 드라마죠.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정말 저 시절엔 저랬나' 싶은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피가 조금 다를 뿐,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람살이의 모습은 똑같다고나 할까요.

 

또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듣다 보면 이건 금세 우리 삼촌, 우리 고모, 우리 누이의 모습이라고 공감할 만한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요 인물들만 20여명이 되는 대형 드라마인데도 인물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가 모두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다는 데서 대 작가의 관록이 느껴집니다.

 

저 불쌍한 아이들이 언제 다 자라서 사람 구실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드라마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눈길을 떼기 힘들게 하는 드라마. 이런 드라마는 참 오랜만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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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대중문화 상품을 살펴보더라도 자국산 TV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자국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인기 콘텐트인 나라는 더욱 적습니다.

 

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역시 미국과 영국입니다.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프랑스나 독일의 TV 편성표를 살펴보더라도 미제 드라마, '하우스'나 'CSI'가 프라임 타임에 편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미드'가 영 맥을 못 추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입니다. 자국산 드라마 콘텐트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셜록'이나 '왕좌의 게임' 조차도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합니다.

 

한국은 어떻게 해서 드라마 강국이 되었을까요. 1980년대 후반부터 인재들이 부단히 이 분야로 모여들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좀 더 나은 콘텐트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끝없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강한 드라마'를 만든 절대 공로자 중 한 분이 어제 급서했습니다. 뜻하지 않게 원고 청탁이 와서 급하게 쓴 글입니다.

 

 

 

 

제목: 30년의 도전, 아쉬움 속에 끝맺다.

 

사극의 거장 이병훈PD는 후배 김종학 PD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1985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의 '임진왜란' 편을 찍을 때 이야기. 당시 급박한 촬영 일정 때문에 이PD는 한 후배에게 왜군들이 조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신을 부탁했다. 마침 추운 겨울이라 '엑스트라들 감기 들면 촬영이 어려워지니 신경 써서 찍으라'는 조언까지 했다. 이PD가 자기 신을 마치고 후배 PD의 촬영을 살피러 갔더니 조선 포로 엑스트라들이 맨발에 동저고리 차림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부까지 했는데. 화가 난 이 PD가 후배를 불러 따지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요, 왜병들이 포로를 잡아갈 때 옷이며 신발을 제대로 챙겨서 끌고 갈 것 같지 않더라구요. 그래야 시청자들도 납득하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라 더 이상 야단을 치지 않았다는 이 PD, 당시에도 '저렇게 독하니(?) 좋은 PD가 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듬해, 입사 10년차인 후배 김종학은 '조선왕조500년'의 '회천문'을 연출했다.

 

 

 



김종학은 거대한 서사 속에서 운명에 맞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이문열 원작을 극화한 '영웅시대'와 '황제를 위하여' 는 그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작품이란 평을 들었다. 북한의 현실을 그린 '동토의 왕국' 에선 다큐멘터리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낯선 연극 배우들을 대거 브라운관에 데뷔시키기도 했다. 김홍신 원작 '인간시장'에선 무명 신인이던 박상원을 기용해 한국형 히어로 드라마의 원형을 제시했다.

 

 


물론 '연출가 김종학'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작품은 단연 1992년작 '여명의 눈동자' 였다. 김성종 원작, 송지나 각색의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 말~한국 전쟁까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대치(최재성), 여옥(채시라), 하림(박상원)의 얽히고설킨 운명을 그렸다.

특히 이 시기를 다룬 한국 TV 드라마 중 최초로 이념의 벽을 넘은 작품이라 평가할 만 하다. 마지막 회, 빨치산 대장과 토벌군 장교로 만난 대치와 하림이 “우리의 자리가 언제 바뀌었어도 전혀 놀랍지 않았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화하는 장면은 아직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 큰 충격과 여운을 남겼다.

 

 

 


이 성공으로 MBC를 떠나 프리랜서가 된 김종학은 1994년 다시 한번 송지나 작가와 호흡을 맞춰 광주 민주화운동과 범죄 조직간의 암투를 그렸다. 제목은 '모래시계'. 최민수 고현정 등 호화 캐스팅이 뒷받침 된 '모래시계'는 60%대 시청률이란 전설로 '귀가시계'라는 별명을 얻었다. 개국 4년째였던 신생 방송사 SBS는 '모래시계'를 통해 비로소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에 들었다고 일컬어진다. 이후에도 도전은 계속됐다.

2002년작 '대망' 은 팩션 사극의 새 장을 열었고 2007년, 한류스타 배용준을 앞세운 판타지 블록버스터 '태왕사신기' 는 거대한 규모와 완성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제작사 대표 김종학'은 '연출가 김종학'에 미치지 못했다. '태왕사신기'에 투입된 200억원의 제작비는 당시의 한류 드라마 시장의 매출 규모에 비해 지나친 규모였다.

 

 

 

 

작품에는 엄격했지만 스태프들에겐 너그러웠던 성품도 적자 폭을 늘리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유작이 된 2012년작 '신의'는 이민호 김희선 등 한류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판타지 드라마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시청률은 저조했고, 막대한 투자는 이번에도 큰 짐이 됐다.

결국 시청자들은 더 이상 '김종학표 드라마'를 볼 수 없게 됐다. '모래시계' 이후 김종학의 일관된 꿈은 영화 연출이었다. 그는 한동안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작 영화의 제작에 몰두했으나 스스로의 완벽주의 때문에 계획은 자주 미뤄졌다. 그 동안에도 어린이 드라마,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천계영 원작 '오디션'을 아이돌을 소재로 개작하려는 기획도 진행중이었다. 일찍 정상에 섰지만 결코 안주하지 않은 도전 정신이야말로 '연출가 김종학'이 한국 방송사에 남긴 진정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끝)

 

 

 

 

 

 

고인의 업적을 다 기술하긴 터무니없이 짧은 분량입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작품들인 만큼 특별히 설명을 보탤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많은 후배들이 그를 가리켜 '역사를 아는 PD'라고 일컫습니다. 물론 송지나 작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원작 소설 '여명의 눈동자'를 읽어 본 사람들일수록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원작의 인물 구성과 사건의 흐름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보다 균형 잡힌 역사관이 가미되면서 일종의 '반공문학'이던 원작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원작의 대치는 그냥 흉폭한 악역이지만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대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 북으로 가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림 역시 이념이나 정치적 구도에 대한 고려 없이, 어찌 하다 보니 미군의 군속이 되어 남쪽 편에 서게 되죠.

 

이런 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설정입니다. 그래서 저 윗글에서 소개한 장면이 뭉클한 감동을 줬던 것이죠. (이 드라마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최초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내용 외에도 '여명의 눈동자'는 한국 드라마사에 길이 남을 수작입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대치와 여옥이 "살아있어야 해! 살아있으면 만나게 돼 있어!"하고 절규하는 장면, 또 영국군의 추격을 피해 밀림을 횡단하던 대치가 뱀을 잡아 씹어먹던 장면 등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 하나 거론하려면 날이 새도 모자랄 고인의 업적 중 하나는 탁월한 신인의 발굴입니다. 전혀 경력이 없는 신인을 발굴했다기 보다는, '그냥 그런 신인들 중 하나'를 찍어내 일약 스타로 만들어 내는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인간시장'의 박상원과 '모래시계'의 이정재입니다. 특히 이정재는 '모래시계' 이전에도 활동을 했고, '느낌' 등의 드라마를 통해 나름 꽤 인기를 얻은 청춘스타였습니다. 하지만 '모래시계'에서 말수 적은 보디가드 역할을 하면서 전 국민이 아는 주연급 스타로 승격됐죠.

 

오죽하면 이 역할 이후에 유망 남자 신인을 꾈 때 드라마 제작진이 단골로 하는 말 중에 "모래시계 이정재 같은 역"이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그 외에도 '백야 3.98'에서 심은하의 아역이었던 이은주, 김경아(왕희지)의 아역이던 송혜교, '모래시계'에서 최민수의 아역이었던 김정현이 김종학 감독의 손끝을 통해 발굴됐습니다.

 

 

 

 

'태왕사신기'에서도 이지아와 이필립이 스타덤에 올랐죠(배용준의 아역이던 유승호는 원래 아역 스타였으니 빼겠습니다).

 

 

 

 

아무튼 어느 때든 드라마 촬영장에서 만나면 늘 "이것만 하고 영화 하려고" 하며 웃으시던 감독님. 이제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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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서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를 잠시 비교했습니다. 본인은 비명에 가더라도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오르지 않고는 큰 차이가 있었죠.

 

게다가 소현세자는 아들들 뿐만 아니라 아내인 강빈까지 사약을 받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한번 왕위에서 밀려나면 언제 반역의 무리로 몰릴 지 알 수 없는 '밀려난 왕손'의 운명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죠.

 

여기에 하나 더. 그래도 '북벌 정책(비록 실질적으론 큰 의미가 없었다고 하나)'을 시도하며 '기개 있는 왕'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효종에게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형의 자손들에 대한 대접이죠.

 

일부 드라마에선 효종이 소현세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실상은 그럴만큼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지난번 글에 이은 소현세자 2탄입니다. 순서대로 보시려면 여기를 먼저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소현세자를 죽였나     http://fivecard.joins.com/1140

 

 

 

소현세자 (2)

 

1645 218, 백성들은 소현세자의 귀국을 앞다퉈 환영했다. 국가 차원의 경사였지만 이미 심사가 틀어진 왕은 퉁명스럽기만 했다.

 

공사견문은 인조의 성품에 대해 찡그리고 웃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무겁고 말이 없어 가까이 모시는 궁녀도 임금의 말을 자주 듣지 못했으며 여러 신하는 임금의 뜻이 어떤지 측량하지 못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내성적이고 감정표현이 별로 없던 인조의 내면엔 세자에 대한 미움이 계속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인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던 소용 조씨의 역할도 컸다. 조씨 소생의 숭선군은 세자가 귀국하던 1645, 고작 만 여섯살의 어린아이였지만 어쨌든 왕위 계승의 자격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소용 조씨, 공신 세력의 우려를 대변하는 김자점, 그리고 의심 많은 인조의 성품이 만난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423, 세자는 학질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24일과 25침을 맞았다는 기록 한 줄씩만을 남긴 채 26일 사망했다. 침을 놓은 사람은 인조의 신임이 두터웠던 어의 이형익이었다.

 

 

 '꽃들의 전쟁'에서 손병호가 연기하고 있는 이형익. 조선왕조실록은 꼭 집어 지목만 하지 않고 있을 뿐, 사실상 이형익의 손에 의해 소현세자가 죽음을 맞았을 것이라고 거의 적시하고 있습니다.

 

 

세자의 졸곡제를 다룬 실록 기사에는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온 몸의 일곱 구멍에서 모두 선혈(鮮血)이 흘러나오므로(중략)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 빛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藥物)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는 내용이 전한다. 사실상 독살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꽃들의 전쟁에서는 김자점(정성모)이 직접 이형익(손병호)에게 세자를 해치게 지시하는 장면이 나오고, ‘마의에서는 이형익(조덕현)이 다시 이명환(손창민)을 이용해 세자에게 독을 썼다는 설정이다.

 

 

'마의'에서는 그래서 이명환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다시 이형익을 살해한다는 설정입니다. 직접 손을 쓴 것은 한 단계 더 거친 이명환이란 해석.

 

 

이형익은 심지어 소용 조씨의 어머니와 사통하는 사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으니 누가 봐도 그에게 혐의가 가는 것이 당연했다. 언관들이 당장 이형익을 조사하라고 들고 일어났지만 인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그 뒤에도 수시로 이형익을 불러들여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았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인조는 62, 서둘러 대신들을 모아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봉하겠다고 밝혔다. 원칙대로라면 왕위계승의 우선권은 소현세자의 어린 세 아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대신들이 선뜻 동의하지 않자 인조는 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이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이때도 김자점이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앞장섰다.

 

흥미로운 것은 그해 113, 봉림대군의 감기가 낫지 않자 이번에도 의원 이형익이 침을 맞아야 낫는다고 간했다는 기록이다. 하지만 대군은 가벼운 감기라며 치료를 거절했고, 곧 회복했다. 만약 이 침을 맞았다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해가 바뀌어 1646 1, 인조는 수랏상의 전복구이에서 독이 나왔다며 진실 규명을 지시했다. 처음부터 소현세자빈 강씨를 용의자로 놓은 수사였다. 하지만 이때 이미 강빈은 궁중의 왕따 신세였고, 엄중한 감시의 대상이었다. 독을 반입해 어선에 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문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었고, 강빈의 하인들 가운데서 자백이 나왔다.

 

조정 대신들이 목숨만은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인조는 중국 조나라 무령왕의 예를 들며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맞섰다. 무령왕은 장남을 폐하고 차남을 후계자로 삼았다가 후계 구도를 놓고 분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궁에 유폐되어 굶어 죽은 인물이다. 누가 봐도 비슷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인조의 광기는 이미 통제의 범위를 넘어 있었다. 강빈은 사약을 받고, 어린 세 아들도 제주도에 유폐됐다. 그중 둘은 일찍 죽고(그 죽음의 원인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막내 석견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아이가 추노의 그 아기다.

 

 

조나라 무령왕의 고사는 참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무령왕은 사실 당시 중국 남자의 하의(당시까지는 바지보다 치마에 가까웠던)를 개량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라!"는 개혁 조치를 한 긍정적인 고사로 자주 인용되는 인물입니다. 당시까지 오랑캐의 옷으로 간주되던 헐렁한 바지를 '말 타고 내리기 편하다'는 이유로 도입해 전국 7웅 중 하위권이던 조나라의 국력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인물입니다.

 

하지만 말년에 총기가 흐려진 탓인지, 다 자란 장남을 제쳐 놓고 후비가 낳은 어린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한 뒤 양위합니다. 대개 이렇게 되면 장남이 정치적으로 제거되는 것이 수순이지만, 갑자기 장남이 불쌍해진 무령왕은 장남의 영토를 넓혀 조나라를 두개로 쪼개 상속할 궁리까지 합니다. 하지만 후비파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격분한 장남은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후비파에 유능한 장군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어 반란은 가볍게 실패. 장남은 아버지 무령왕의 궁으로 달아납니다. 이미 왕위를 넘겨받은 후비와 어린 아들 쪽에선 장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무령왕은 "내 아들인데 목숨만이라도 보존하게 해 달라"고 오히려 간청하죠.

 

밖에선 잔혹한 결단이 내려집니다. 장군들이 "만약 장남을 잡으러 들어갔다가 무령왕을 다치게 하는 날이면 우리는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그 죄 때문에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죠. (이건 사실 또 얘기하려면 긴 얘기가 되어 여기선 생략하겠지만 병법의 대가 오자(오기)의 죽음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궁의 문을 밖에서 잠그고 아무도 나오고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한달이 지나 굶어 죽은 무령왕과 장남의 시체가 다 썩어 없어진 뒤에야 문을 열어 통곡을 하며 장사를 지낸 겁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맞지만 무령왕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은 스스로 후계자를 잘못 고른 결과이니, 인조 자신이 강빈을 죽여야 하는 이유로는 매우 궁색합니다. 그리고 무령왕과 자신을 비교한 것은 소용 조씨 소생의 숭선군을 세자로 봉하겠다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만, 결국 그렇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시선에선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겠지만 김자점이나 소용 조씨에겐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행여라도 소현세자의 자손이 왕위를 차지하는 날이면 그들 자신은 물론 일가친척의 생명 또한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비정함은 효종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효종은 왕위에 오른 뒤,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홀로 남은 어린 조카 석견을 경안군으로 봉하고 서울로 불러 올렸지만, 형수 강빈의 억울함을 회복해주는 것은 딱 잘라 거절했다. 오히려 상소를 올려 강빈의 신원을 촉구한 김홍욱을 잡아다 때려 죽이기도 했다. 아무리 조카가 가엾어도, 그들에게 '역적의 자손'이라는 죄를 씻어 주고 나면 자신의 후손들이 계승할 왕좌가 불안해 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경안군은 1665년 만 21세로 죽었다. 두 아들을 낳아 후사를 이었으나, 맏손자 밀풍군은 영조 때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자결했다. 소현세자와 그 후손들에게 조선은 더없이 잔혹한 나라였다. ()

 

 

 

 

 

소현세자와 강빈이 죽은 뒤, 세 아들이 남았습니다. 인조가 서둘러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 소현세자가 죽은 뒤 왕위 계승 서열에서 각각 1,2,3위가 될 왕손들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게 된 이상 효종의 왕위 계승 경쟁자일 뿐입니다. 1647년, 이들은 처음엔 각각 흩어져 귀양을 갔다가 '서로 모여 살게 하라'는 인조의 은혜(?)로 제주도에 모입니다.

 

1648년, 석철이 13세의 나이로 가장 먼저 죽고 곧이어 둘째 석린도 숨을 거둡니다. 공식적인 원인은 풍토병. 하지만 인조와 김자점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의혹은 당시에도 일었다고 합니다.

 

석철이 죽기 전 청나라 장수 용골대(병자호란 때 선봉장이었던 당대 청의 대표적인 장군입니다)가 조선 조정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현세자의 아들이 고아가 되어 형편이 딱하다고 하니 내가 데려가 기르면 어떻겠는가."

 

용골대와 소현세자는 심양 시절에 꽤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실록에 남은 기록은 주로 조선을 무시하는 용골대에게 소현세자가 맞서 싸운 내용이지만, 그렇게 자주 대면을 했으니 꽤 교분이 쌓였을 법 합니다. 하지만 인조의 입장에서 해석해 보면 이 말은 매우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네가 아무리 둘째를 왕으로 세웠다지만, 맏손자는 우리 손에 있다. 네가 삐딱하게 나오면, 언제든지 왕이 될 수 있는 후보를 우리가 데리고 있다.

 

더구나 그 손자가 잔혹하게 부모를 죽인 할아버지를 곱게 볼 리가 없죠. 오죽하면 석철의 죽음을 전하는 실록에 "용골대가 그런 말을 했으니 모든 사람들이 이제 석철이 온전하겠느냐고 걱정했는데 이렇게 죽었다"는 말이 다 나오겠습니까.

(先是, 龍骨大之來也, 以取養石鐵爲言, 人皆謂其必 不保全, 至是卒)

 

 

 

 

 

그 뒤로 왕위는 효종-현종-숙종으로 이어집니다. 숙종의 친위세력은 숙종을 가리켜 '삼종의 혈맥(三宗之脈)'이라고 떠받듭니다. 그러니까 3대가 모두 국왕의 정궁(정식 왕비)으로부터 태어난 왕자들로만 이어진 혈맥이라는 것이죠. 그게 뭐 대단하냐 싶겠지만 조선 역사를 살펴보면, 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세조-단종까지 이어진 초기 4대를 제외하면 정궁 소생의 왕자들로만 왕위가 이어진 예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효종은 즉위와 함께 아버지의 세력이던 인조 반정 공신들을 싹 청소하고, 북벌 이데올로기와 함께 정통성을 확보해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한 뒤 3대에 걸쳐 자신의 후손들이 왕 노릇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 공로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형의 자손들이 세상에 나올 수 없도록 형수 강빈의 억울함을 풀어 주지 않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는 건 권력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가의 자손은 두 가지 면에서 위태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위를 지키고 있는 쪽에서 볼 때도 잠재적인 경쟁자요, 정권을 뒤집어 엎으려는 음모가 쪽에서는 옹립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입니다.

 

사실 광해군 시절의 능양군(인조)처럼 반란군과 사전에 교감이 있던 경우도 있지만, 뒷날 김자점의 난(?)에 함께 거론된 숭선군이나 소현세자의 증손자로 이인좌의 난에 연루된 밀풍군의 경우엔 다들 "그들이 일방적으로 옹립하려 한 것일 뿐 직접 관련은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숭선군은 살아남았고 밀풍군은 죽음을 당했죠. 이들의 생사는 정말 그때 그때 운에 달렸다고 할 정도로 달랐지만, 특히나 밀풍군의 죽음에는 '한이 많은 소현세자의 자손'이라는 면도 꽤 작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무튼 이건 먼 뒤의 이야기. 당장 소현세자의 죽음과 강빈의 운명, 이어지는 소용 조씨(김현주)의 악행은 아직 한참 더 '꽃들의 전쟁'을 통해 펼쳐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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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도시 정경호]

'무정도시' 라는 드라마가 월/화요일 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동시간대에 방송된 쟁쟁한 지상파 드라마들의 몇배나 되는 검색량이 밀어닥쳤습니다. 검색어 순위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그만치 이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화제의 핵심에는 '정경호'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는 배우. '무정도시'에서는 국내 최대 마약 거래 조직의 하부 조직을 이끄는 중간 보스 시현 역을 맡았습니다.

 

드라마에 대해서도 '영화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정경호에게 저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인도 아니고, 주연을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이미 수많은 출연작과 꽤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에게 이런 평이 나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입니다.

 

정경호 본인과 제작진에겐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고 말이죠.

 

 

 

'무정도시'가 방송되기 전까지, '정경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활짝 웃는 미소년의 얼굴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런 모습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런 모습.

 

 

 

 

그런데 '자명고'에서는 슬쩍 남자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무정도시'에서는 활짝 피어납니다.

 

흔히 말하는 '리젠트 스타일'의 머리와 수트 차림의 색다른 모습. 단정한 듯 하지만 감정의 동요가 없는 냉정함이 빛납니다.

 

 

 

대개 '리젠트 스타일'이라고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하는데, 뭐 사실 서양에선 리젠트 스타일이란 말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폼파두르 스타일 Pompadour style 을 일본에서 '리젠트 스타일'이라고 부른다는 얘기가 있군요. 그런데 누가 봐도 콩글리시같은 올빽 All-back'은 엄연히 쓰이는 표현이라니... 참 어렵습니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

 

아무튼 리젠트든 올빽이든, 아무나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머리 모양입니다. 일단 머리칼 외의 얼굴 각 요소들과 전체적인 윤곽이 받쳐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결점을 백일하에 드러내 주는 공포의 헤어 스타일.

 

 

 

 

그런데 저런 수준의 외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머리 모양으로 남성미를 극대화해서 표현하신 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어린 분들은 잘 모르실 수도.

 

 

바로 누아르의 제왕, 험프리 보가트 선생이십니다. 물론 머리숱이 적어서 저런 머리 모양밖에 안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저런 허무와 냉정이 깃든 눈빛은 아무한테서나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무정도시'의 정경호에게서 그런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의 대사.

 

"수야... 이 거리, 우리가 다 먹어 보자."

 

남자다움을 강조하기 위한 거친 말투나 과장된 몸짓은 없습니다. 말투도 조용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거역하기 힘든 카리스마가 담겨 있습니다. 상복에 가까운 검은 수트는 원래 '그쪽' 남자들의 유니폼 같은 것이지만, 정경호의 스타일은 결코 그 안에서 땀을 흘리거나 칼을 휘두를 것 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20대1로 '다구리'를 뛴 뒤에도 땀방울 하나, 숨결 하나 가빠질 것 같지 않은 모습입니다.

 

물론 저 수트 안에 탄탄한 근육이 감춰져 있긴 하지만, 결코 근육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이 아닙니다. 정경호는 스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을 익힌 듯 합니다.

 

(혹은 이정효 감독의 디렉션이 정경호의 내면을 제대로 끌어낸 것인지도.)

 

 

 

지난번 리뷰에서도 얘기했지만 '무정도시'에는 유난히 등장인물들이 거리를 바라보는 뒷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좋게 말하면 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욕망의 표현이죠.

 

누구의 눈에서 바라본 미래가 현실이 될까요. 물론 '무정도시'는 꽤 길고 잔혹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의 주인공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그건 지금부터 드러날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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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도시]. 한때 극장에 '느와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멋도 모르고 온갖 영화들이 따라 하던 표현입니다. 느와르(noir)란 검다는 뜻의 불어지만, 필름 느와르는 정작 프랑스와는 무관하고, 1950년대를 전후해 쏟아져 나오던 암흑가를 그린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쉴 해밋을 비롯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문학의 거장들이 큰 영향을 미쳤죠.

 

이 필름 느와르가 긴 세월을 거쳐 1980년대 홍콩에서 한번 용트림을 합니다. 주윤발의 선글래스와 함께 '홍콩 느와르'가 아시아를 넘어 퀜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미국/유럽의 오다쿠들까지 사로잡은 것이죠.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홍콩 느와르는 전설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이고, 외래어 표기도 '누아르'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그러는 사이 유위강 감독이 '흑사회'와 '무간도' 시리즈로 새로운 누아르 열풍을 일으켰고, 한국에서도 '비열한 거리',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신세계'가 나와 그 맥을 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TV에선 마침내 드라마 '무정도시'가 나왔습니다.

 

 

 

 

 

서울. 현대. 경찰 고위 간부 민홍기 국장(손창민)은 마약 조직과 조폭의 결합체인 거대 조직 저울파를 제거하기 위해 보스 저울(김병옥)에 대한 그물을 좁혀갑니다. 하지만 조직에 신분을 감추고 침투시켜 놓은 핵심 언더커버 요원이 살해되고 덫은 실패합니다.

 

경찰대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 검사를 지망했던 형민(형민)은 일선에서 마약 조직과 일전을 벌일 각오로 경찰에 돌아와 특설팀의 팀장을 맡습니다. 애인인 경미(고나은)는 그의 선택이 불만이지만 어쨌든 그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경미에겐 어려서부터 친동생처럼 함께 자란 보육원 출신의 동생 수민(남규리)이 있습니다.

 

한편 저울의 약을 내다 파는 하부 조직을 거느린 시현(정경호)은 통칭 '박사 아들'이라고 불리는 암흑가의 엘리트. 하지만 이익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저울과 마찰이 일고, 마침내 친형제같은 현수(윤현민)와 함께 암흑가의 패권을 노리는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1회를 온라인으로 미리 공개했습니다.

 

60분입니다. 한번 보시죠.

 

 

 

(선공개 영상과 실제 방송 1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 장면이 다를 수 있습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미리 고지된대로 '무정도시'는 '무간도' 풍의 언더커버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원제가 아예 '언더커버'였는데, 많은 시청자들이 '언더커버'라는 말을 듣고 '대체 언더커버가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통에 새로운 제목이 붙었다고 합니다.

 

(뭐 잘 아시겠지만 undercover는 잠복, 잠행, 또는 아예 신분을 감추고 벌이는 위장 침투 등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런데 드라마 제목을 저렇게 하자니 "박명수 나오는 그 사장님 얘기 비슷한 거냐?"는 질문이.... <- 참고로 '언더커버 보스'에는 박명수가 출연하지 않습니다. 나레이션을 했을 뿐이죠.)

 

아무튼 이 드라마에 깊이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막상 드라마를 본 건 20일 제작발표회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일단 제가 처음 읽어 본 버전의 대본에 비해 훨씬 시청자 친화적으로 바뀐 부분은 참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가 읽어봤던 시점의 대본은 막이 오르면 곧바로 조직간의 치열한 전쟁 신이 시작됩니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시현의 쿠데타죠.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이 쿠데타가 시작됐다면 대다수 시청자들은 누가 누구편인지 엄청나게 헷갈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는 수시로 시현의 뒷모습을 비춥니다. 어떤 때는 밤의 도시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리고 어떤 때는 길을 걷는 시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액션 스타치고는 그리 떡 벌어진 편이 아닌 정경호의 어깨가 이 장면에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나는 밤의 도시 전경. 그리고 그 도시를 모두 차지하고 말겠다는 남자의 야망. 하지만 뭔가 야망보다는 우수가 느껴지는 남자의 뒷모습.

 

 

 

 

 

1회에서 제작진이 가장 힘을 준 부분은 아무래도 지하보도에서 벌어지는 1대10 정도의 액션 신입니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의 좁은 복도 액션을 연상시키는 장면. 실제로 1대10 정도의 싸움이 가능하려면 배후를 차단할 수 있는 좁은 길이라야 가능할 겁니다. 한번에 한명씩 상대할 수 있으니까요.

 

이정효 감독이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액션을 마음껏 구현한 듯한 느낌입니다.

 

 

 

 

반가운 얼굴 중 하나는 김병옥.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보디가드 역으로 눈길을 끌었던 바로 그 배우입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암흑가의 거물 저울 역을 맡아 마음껏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긴 드라마(20부작)다 보니 저울보다 더 지독한 최종 보스도 나중에 등장합니다만... 1회에 나오는 저울의 모습은 꽤 충격적.

 

 

 

아울러 이 드라마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배우는 이재윤입니다.

 

얼마전 끝난 '야왕'에서 수애 오빠 역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 신예. 아직 신인 태가 가득하지만 버들가지같은 꽃미남형이 아니라 선이 굵은 남성미를 제대로 풍길 줄 아는 배우입니다. 일단 비주얼에선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분은 바로 이 분.

 

'청담동 살아요'에서 보신 분들은 그냥 인상만 나쁜 성형외과 의사로 기억하시겠지만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그야말로 악마의 친구 역으로 적나라한 악마성을 드러냈던 인물이죠.

 

이번 드라마에서도 당연히(?) 좋은 역은 아닙니다. 공포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1회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매우 기대됩니다.

 

무정도시. 27일 월요일 밤 10시부터 제대로 시작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JTBC 홈페이지 jtbc.co.kr 를 방문하시면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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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도시]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물론 아직 잘 모르실 겁니다. 방송에 나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JTBC 드라마고, 오는 27일 오후 9시 50분에 첫 방송이 나갑니다. 주인공은 정경호-남규리, 한국 TV 드라마에서 흔히 보지 못한 본격 느와르 드라마입니다. 아무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상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김남길 손예진. 박찬홍(연출)-김지우(극본) 콤비의 작품입니다(JTBC 개국작인 '발효가족' 팀이죠). 같은 27일 밤 10시에 시작합니다. 드라마의 지명도나 방송사의 힘에서 영 딸립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드라마를 알리기 위해 한 이벤트 중에서는 아마 가장 규모가 큰 '이상한 짓'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5월13일. 명동에 이상한 아저씨들이 우글우글 모였습니다. 장소는 명동의 한 중심인 명동예술극장 사거리. 명동예술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메이지좌(明治座)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던 고급 문화 공간으로 한때 국립극장으로 사용된 적도 있습니다. 이후 다른 용도로 쓰인 적도 있었으나 2009년 과거의 모습을 되찾고 극장으로 복원된 유서깊은 공간입니다.

 

(네. 명동예술극장에서 도와주신 게 많아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명동예술극장 앞 작은 사거리에 한 패는 명동성당 쪽에서, 다른 패는 명동 전철역 쪽에서, 또 다른 패는 롯데백화점 건너편 쪽에서 진입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매우 불량해 보이는 패거리인데다 검정 양복 차림이라 한 눈에도 뭐하는 사람들인지 대략 짐작이 갑니다.

 

 

 

 

 

사거리 앞에 모이더니 대뜸 대거리를 시작합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듯 합니다.

 

 

 

 

 

 

시비가 몇번 오가더니,

 

가장 인상이 나쁜 빨간 띠 편에서 먼저 외칩니다. "안되겠다, 얘들아! 쳐라!"

 

똘마니들이 일제히 함성을 올리며 돌진합니다. 그런데 무기가 좀...

 

 

 

 

네. 총천연색 물총입니다.

 

 

 

 

 

 

 

 

현장 영상입니다.

 

 

 

 

구경하던 관광객들만 신났습니다.

 

 

 

물총 싸움이 한참 벌어지다 사이렌이 울리고, 명동예술극장 벽면에서 현수막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 깜짝 등장한 남자.

 

바로 이재윤입니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야왕'에서 수애의 오빠 역으로 지명도를 높였죠.

 

실물로 보니 엄청 건장합니다.

 

 

 

 

"'무정도시'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는 이재윤의 인삿말로 이벤트는 끝.

 

그런데 뜻밖에 이재윤의 팬들이 엄청 많습니다. 이벤트가 끝나고도 이재윤은 한동안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건 일본에서 온 관광객 아주머니들. 대체 언제 이재윤을 보셨는지, 반가워서 펄쩍펄쩍 뜁니다.

 

모처럼 명동 나들이에 팬들의 반응이 좋아 이재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관광객들도 즐거워 하시고, 구경하는 사람 모두 좋아했던 한 폭의 이벤트였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취재해 주신 덕분에 검색어 순위에도 죽죽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편집한 영상이 나왔습니다.

 

 

 

 

이건 이재윤씨 팬들을 위한 보너스.

 

 

 

 

3분 정도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더랬습니다. 기획서를 썼다 찢기를 수십번. 마침내 이벤트의 틀이 마련됐고 수많은 장소를 물색하다가 결국 명동예술극장 앞 사거리가 선택됐습니다.

 

 

 

 

일단 명동예술극장에 현수막을 드리운다는 게 정상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더군요. 물리적으로 아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쨌든 해결했습니다.

 

그 다음은 배우들. 제작비 절감을 위해 사전 리허설은 하지 못하고(ㅠㅠ), 대신 당일 새벽부터 여의도 공원에서 치열한 연습이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솔로대첩'이 이뤄졌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한 듯 웃던 배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조직의 일원이 되어 갔습니다. '우리 형님'이 '저쪽 형님'에게 학대를 당하자 나중에는 진심으로(?) 흥분하시는 분이 있더군요.

 

 

 

 

아무튼 행사가 무사히 끝나 다행. 그리고 이제 드라마가 잘 되는 게 남았습니다.

 

 

 

 

 

http://drama.jtbc.co.kr/moojeong/?cloc=jtbc|header|drama

 

현재 '무정도시' 홈페이지에서는 4개의 이벤트가 동시 진행중입니다.

 

입맛대로 골라잡으시면 푸짐한 상품이 쏟아집니다. 관심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조 아래 숫자 눌러 추천 한방만 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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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첫 주말이 지나갔습니다. '인조' '김자점' '소용 조씨' '인조반정' '병자호란' '소현세자' 등 관련 검색어들이 주말 내내 포털 헤드라인을 장식(물론 가장 오래 떠 있던 검색어는 아무래도 소현세자빈 역의 '송선미' 였지만)하더군요. 물론 검색의 동기에 대해 말하자면 또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뭐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폭됐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1,2회에서는 인조(이덕화)와 김자점(정성모)의 질긴 인연이 중요한 요소로 그려졌습니다. 1636~37년에 걸친 병자호란이 끝났을 때, 인조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도원수 김자점을 죽였어야 정상이었습니다. 도원수는 오늘날의 육군 참모총장.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항복을 하는 상황에서 도원수가 멀쩡히 병력을 유지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건 죽어 마땅한 죄죠.

 

하지만 인조는 김자점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캐자면 1623년,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을 통해 왕이 될 때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드라마에서도 그 장면에 다뤄졌죠.

 

 

 

 

 

일단 인조반정의 주역들을 인명록처럼 살펴보겠습니다. 1623년 3월12일(음력)로 돌아갑니다. 그날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기록입니다. 광해군의 마지막 날이죠.

 

 

왕이 대신·금부 당상·포도 대장을 부르게 하고, 또 도승지 이덕형(李德泂), 병조 판서 권진을 입직하게 하였다.【이반의 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여러 여인들과 어수당(魚水堂)에서 연회를 하며 술에 취하여 오랜 뒤에야 그 상소를 보았는데,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이에 유희분·박승종이 두세 번 비밀리에 아뢰어 속히 조사하게 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이 명을 내렸다. 대신 이하 관원들이 대궐에 나갔으나 대궐문이 벌써 닫혔으므로 비변사에 모였는데, 비변사 당상들도 와서 모였다.】 도감 대장 이흥립(李興立)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호위하게 하고,【흥립은 박승종의 사돈으로서 그의 추천으로 직임을 제수받았는데 이 때 은밀히 반정군과 합세하였다.】 천총 이확(李廓)을 보내어 창의문(彰義門) 밖을 수색하게 하였다.【이반이 문 밖에 반정군이 주둔해 있다고 고했기 때문이었다. 이확이 명령을 받고 즉시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 때 밤이 이미 자정이 지났다.】 이날 금상(今上)은 연서역(延曙驛) 마을에 주둔하였는데, 대장 김류(金瑬),【이때 전 강계 부사(江界府使)로 집에 있었다.】 부장 이귀【이때 전 평산 부사로서 논핵을 받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등은 최명길(崔鳴吉)【전 병조 좌랑.】·김자점·심기원【유생.】 등과 홍제원(弘濟院) 터에서 모였고, 장단 방어사(長湍防禦使) 이서(李曙)는 부하 병사를 거느리고 왔고, 이괄(李适)【북병사(北兵使)에 제수되었는데 떠나지 않았다.】·김경징(金慶徵)【전 찰방인데 김류의 아들이다.】·신경인(申景摠)【도총도사(都總都事).】·이중로(李重老)【이천 방어사(伊川防禦使).】·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유생인데 이귀의 아들이다.】 장유(張維)【전 한림.】·원두표(元斗杓)·이해(李澥)【유생.】·신경유(申景裕)【무신인데 전 부사이다.】·장신(張紳)·심기성(沈器成)·송영망(宋英望)【유생.】·박유명(朴惟明)·이항(李沆)【무신.】·최내길(崔來吉)【사예.】·한교(韓嶠)【전 현감.】·원유남(元裕男)【전 병사.】·이의배(李義培)【무장.】·신경식(申景植)【전 현감.】·홍서봉(洪瑞鳳)【전 승지.】·유백증(兪伯曾)【전 좌랑.】·박정(朴茢)【승문원 정자.】·조흡(趙潝) 등이 모두 와서 모였다. 문무 장사(將士) 2백여 명이【군사는 모두 1천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으로 들어가【전날부터 바람이 불고 운애가 끼어 성안이 낮에도 어두웠었는데 반정군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바람이 멈추고 구름이 걷혀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창덕궁 문 밖에 도착했을 때 이흥립이 지팡이를 버리고 와서 맞이했고 이확은 군사를 이끌고 후퇴하였다. 그리고 대신 및 재신(宰臣)들은 군대의 함성소리를 듣고 모두 흩어져 도망갔다.

 

역사 상식. 광해군 때의 정권 주도 세력은 북인, 특히 대북이었고 인조 반정의 주역들은 서인들이었습니다. 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 소장파였던 서인들은 벼슬이 없거나, 부사/좌랑 정도가 고작입니다. 북병사로 임명된 이괄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내쫓기던 중종반정 때에도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양다리를 걸쳤듯 인조반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광해군이 반정 음모를 입수하고 궁성 경비를 맡긴 이흥립이 바로 반정군과 내통하고 있었으니 이건 뭐 성공하지 못하면 이상할 지경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인조실록의 첫번째 기사, 즉 3월13일 기록된 인조반정의 상세한 내막을 보면 참 진행 과정이 가관입니다. 어쩌면 성공한게 신기할 정도로 엉성한 반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엉성한 음모에도 무너질 정도로 광해군 하대의 정국은 어수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광해군에 대한 최근 역사가들의 우호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그리 유능한 군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는 하선이 아니고 진짜 광해여서 그랬는지도.^^)

 

 

 

 

인조반정 기사입니다.

 

 

 상(=능양군, 즉 인조)이 의병을 일으켜 왕대비(王大妃)를 받들어 복위시킨 다음 대비의 명으로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였다. 광해군(光海君)을 폐위시켜 강화(江華)로 내쫓고 이이첨(李爾瞻) 등을 처형한 다음 전국에 대사령을 내렸다.


 상은 선조 대왕의 손자이며 원종 대왕(元宗大王)【 정원군(定遠君)으로 휘는 이부(李琈)인데, 추존되어 원종이 되었다.】의 장자이다. 모후는 인헌 왕후(仁獻王后)구씨(具氏)【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이다. 추존되어 왕후가 되었다.】로 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만력 을미년(1595년) 11월 7일 해주부(海州府) 관사에서 탄생하였으니, 당시 왜변이 계속되어 왕자 제궁(王子諸宮)이 모두 해주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탄강할 때 붉은 광채가 빛나고 이상한 향내가 진동하였으며, 그 외모가 비범하고 오른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무수히 많았다. 선묘(宣廟)께서는 이것이 한 고조(漢高祖)의 상이니 누설하지 말라고 하면서 크게 애중하여 궁중에서 길렀고, 친히 소자(小字)와 휘(諱)를 명하고 깊이 정을 붙였으므로 광해가 좋아하지 않았다. 장성하자 총명하고 어질고 효성스럽고 너그럽고 굳건하여 큰 도량이 있었다. 여러 번 자급이 올라가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져서는 더욱 겸양하면서 덕을 길렀다.


(중략. 중간 내용은 광해군의 실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반정의 정당성에 대한 합리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죠.)

 

...상이 윤리와 기강이 이미 무너져 종묘 사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 개연히 난을 제거하고 반정(反正)할 뜻을 두었다.

 

무인 이서(李曙)와 신경진(申景禛)이 먼저 대계(大計)를 세웠으니, 경진 및 구굉(具宏)·구인후(具仁垕)는 모두 상의 가까운 친속이었다. 이에 서로 은밀히 모의한 다음, 문사 중 위엄과 인망이 있는 자를 얻어 일을 같이 하고자 하였다. 곧 전 동지(同知) 김류(金瑬)를 방문한 결과 말 한 마디에 서로 의기투합하여 드디어 추대할 계책을 결정하였으니, 곧 경신년(1620년)이었다. 그 후 경진이 전 부사(府使) 이귀(李貴)를 방문하고 사실을 말하자 이귀도 본래 이 뜻을 두었던 사람이라 크게 좋아하였다. 드디어 그 아들 이시백(李時白)·이시방(李時昉) 및 문사 최명길(崔鳴吉)·장유(張維), 유생 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 등과 공모하였다. 이로부터 모의에 가담하고 협력하는 자가 날로 많아졌다.

 

(3년 된 음모. 이렇게 3년에 걸쳐 모의가 진행됐고, 참여자도 한둘이 아니었으니 음모가 소문이 아니 날 재주가 없습니다. 특히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따르면 주동자인 이귀가 입이 싸서 '음모가 자주 누설되었다'고 되어 있을 정도.)

 
임술년(1622년) 가을에 마침 이귀가 평산 부사(平山府使)로 임명되자 신경진을 이끌어 중군(中軍)으로 삼아 중외에서 서로 호응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모의한 일이 누설되어 대간이 이귀를 잡아다 문초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김자점과 심기원 등이 후궁에 청탁을 넣음으로써 일이 무사하게 되었다.

 

(김자점이 광해군의 총애를 입은 김상궁 김개시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뇌물을 써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것이 1차 위기.)

 

신경진과 구인후 역시 당시에 의심을 받아 모두 외직에 보임되었다. 마침 이서가 장단 부사(長湍府使)가 되어 덕진(德津)에 산성 쌓을 것을 청하고 이것을 인연하여 그곳에 군졸을 모아 훈련시키다가 이때에 와서 날짜를 약속해 거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훈련 대장 이흥립(李興立)이 당시 정승 박승종(朴承宗)과 서로 인척이 되는 사이라 뭇 의논이 모두들 ‘도감군(都監軍)이 두려우니 반드시 이흥립을 설득시켜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에 장유의 아우 장신(張紳)이 흥립의 사위였으므로 장유가 흥립을 보고 대의(大義)로 회유하자 흥립이 즉석에서 내응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이서는 장단에서 군사를 일으켜 달려오고 이천 부사(伊川府使) 이중로(李重老)도 편비(褊裨)들을 거느리고 달려와 파주(坡州)에서 회합하였다.

 

(도감군이란 바로 훈련도감의 정예병. 말하자면 광해군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핵심이 되는 군사력입니다. 그런데 그 훈련도감을 지휘하는 훈련대장 이흥립이 돌아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반(李而攽)이란 자가 그 일을 이후배(李厚培)·이후원(李厚源) 형제에게 듣고 그 숙부 이유성(李惟聖)에게 고하자, 유성이 이를 김신국(金藎國)에게 말하였다. 이에 신국이 즉시 박승종에게 달려가 이이반으로 하여금 고변(告變)하게 하고 또 승종에게 이흥립을 참수하도록 권하였다. 이반이 드디어 고변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12일 저녁이었다.

 

그리하여 추국청(推鞫廳)을 설치하고 먼저 이후배를 궐하에 결박해놓고 고발된 모든 사람을 체포하려 하는데, 광해는 바야흐로 후궁과 곡연(曲宴)을 벌이던 참이라 그 일을 머물러 두고 재결하여 내리지 않았다. 승종이 이흥립을 불러서 ‘그대가 김류·이귀와 함께 모반하였는가?’ 하므로 ‘제가 어찌 공을 배반하겠습니까?’ 하자 곧 풀어주었다.

 

(이흥립의 평소 처신이 좋았던 것인지... 광해군 말년에 정말 인물이 없었던 것인지. 아무튼 위에서 보듯 이흥립은 수도방위사령관에 해당하는 요직에 있으면서 반정 핵심인 장유의 아우의 장인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광해군의 측근인 박승종과도 사돈 사이입니다. 내심 '어느 쪽이 이기든 내게 설마 해를 입힐까'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여담이지만 계유정난이나 중종반정, 인조반정 때의 실록 기사를 보면 어찌나 5.16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지 가끔 놀라곤 합니다.

 

이렇게 양다리에 능했던 이흥립은 결국 반정에 참여한 댓가로 공신의 자리에 오르지만, 1년 뒤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자결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도성으로 쳐들어 온 이괄 앞에서도 이렇게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 한편으로 몰린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정작 거병 소식을 박승종에게 고발한 김신국이 인조 즉위 후에도 중용됐다는 점입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만...)

 

 의병은 이날 밤 2경에 홍제원(弘濟院)에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김류가 대장이 되었는데 고변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포자(捕者=체포하러 오는 관원)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그를 죽이고 가고자 하였다. 지체하며 출발하지 않고 있는데 심기원과 원두표(元斗杓) 등이 김류의 집으로 달려가 말하기를, ‘시기가 이미 임박했는데, 어찌 앉아서 붙잡아 오라는 명을 기다리는가.’ 하자 김류가 드디어 갔다.

 

(솔직히 '나를 잡으러 오는 놈을 베고 가려 했다'는 말은 핑계로 들립니다. 오히려 다 들통났다고 생각하고 움츠리고 앉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다른 기록에는 '포자를 죽이고 가겠다'는 호기있는 표현보다 '이렇게 된 이상 체포될 뿐'이라고 말했다고도 되어 있습니다.)

 

 

 

 


 이귀·김자점·한교(韓嶠) 등이 먼저 홍제원으로 갔는데, 이때 모인 자들이 겨우 수백 명밖에 되지 않았고 김류와 장단의 군사도 모두 이르지 않은 데다 고변서(告變書)가 이미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군중이 흉흉하였다. 이에 이귀가 병사(兵使) 이괄(李适)을 추대하여 대장으로 삼은 다음 편대를 나누고 호령하니, 군중이 곧 안정되었다. 김류가 이르러 전령(傳令)하여 이괄을 부르자 괄이 크게 노하여 따르려 하지 않으므로 이귀가 화해시켰다.

 

(정작 군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이괄 뿐이었는데 반정의 공로를 가를 때 이괄은 뒷전으로 밀립니다. 결국 이것이 반정 1년 뒤, 이괄의 난의 계기가 된 것이죠. 저런 소극적인 입장이었던 김류가 금세 장 행세를 하고, 정작 군대를 이끈 이괄에게 2등 공신 자리밖에 주지 않은 데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상이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나아가 연서역(延曙驛)에 이르러서 이서(李曙)의 군사를 맞았는데, 사람들은 연서를 기이한 참지(讖地)로 여겼다.

 

(바로 '꽃들의 전쟁'에 나오는 '김자점이 능양군을 찾아가 설득해서 끌어냈다'는 부분은 이 대목이라야 할텐데, 실록에는 그런 흔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연려실기술'에는 능양군이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추대할까 경계해 일찌감치 가솔들을 거느리고 연서역에 나와 있었다고 전합니다.

 

아무튼 김자점은 초기 능양군을 임금 감으로 점찍어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고, 그 뒤로도 인조가 김자점을 감히 떨치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인연이 큰 역할을 합니다.) 

 

 

 

 

장단의 군사(=장단부사 이서가 거느린 군사)가 7백여 명이며 김류·이귀·심기원·최명길·김자점·송영망(宋英望)·신경유(申景裕) 등이 거느린 군사가 또한 6∼7백여 명이었다. 밤 3경에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러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다가, 선전관(宣傳官)으로서 성문을 감시하는 자를 만나 전군(前軍)이 그를 참수하고 드디어 북을 울리며 진입하여 곧바로 창덕궁(昌德宮)에 이르렀다.

 

이흥립은 궐문 입구에 포진하여 군사를 단속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초관(哨官) 이항(李沆)이 돈화문(敦化門)을 열어 의병이 바로 궐내로 들어가자 호위군은 모두 흩어지고 광해는 후원문(後苑門)을 통하여 달아났다. 군사들이 앞을 다투어 침전으로 들어가 횃불을 들고 수색하다가 그 횃불이 발[簾]에 옮겨 붙어 여러 궁전이 연소하였다.
 
상이 인정전(仁政殿) 계상(階上)의 호상(胡床)에 앉았다. 궁중의 직숙관(直宿官)이 모두 도망쳐 숨었다가 잡혀왔는데, 도승지 이덕형(李德泂)과 보덕(輔德) 윤지경(尹知敬) 두 사람은 처음엔 모두 배례를 드리지 않다가 의거임을 살펴 알고는 바로 배례를 드렸다. 명패(命牌)를 내어 이정구(李廷龜) 등을 불러들이니, 새벽에 백관들이 다 모였다.

 

박정길(朴鼎吉)이 병조 참판으로 먼저 이르렀는데, 판서 권진(權縉)이 뒤미처 이르러 ‘정길이 종실(宗室) 항산군(恒山君)과 함께 군사를 모았는데, 지금 들어왔으니 아마도 내응할 뜻을 둔 것 같다.’라고 하였으므로 곧 정길을 끌어내어 참수하였다. 항산군을 잡아다 문초하니, 혐의 사실이 없어 석방하였다. 그런데 정길은 당연히 참형을 받아야 할 자라 사람들이 모두 그의 참수를 통쾌하게 여기었다.

 

(그러니까 박정길이 죽은 것은 혼란중의 착오에 의한 것이지만, 원래 미움 받는 사람이었다...는 정도의 의미. 항상 혁명 때에는 반혁명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요주의 대상이 됩니다. 얼른 궁으로 찾아온 것은 잘 한 것이지만 오해를 풀지 못할 정도로 혁명 주체들과 평소 관계가 엉망이었다는...)


 그리고 상궁(尙宮) 김씨(金氏)와 승지 박홍도(朴弘道)를 참수하였다. 김 상궁은 선묘(宣廟)의 궁인으로 광해가 총애하여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줌으로써 권세를 내외에 떨쳤다. 또 이이첨의 여러 아들 및 박홍도의 무리와 결탁하여 그 집에 거리낌 없이 무상으로 출입하였다. 이때에 와서 맨 먼저 참형을 받았다. 홍도는 흉패함이 흉당 중에서도 특별히 심한 자라 궐내에 잡아들여 참수하였다. 광해는 상제가 된 의관(醫官) 안국신(安國臣)의 집에 도망쳐 국신이 쓰던 흰 의관을 쓰고 있는 것을 국신이 와서 고하므로 장사들을 보내 떠메어 왔고, 폐세자(廢世子)는 도망쳐 숨었다가 군인들에게 잡혔다.
 
상이 처음 대궐에 들어가 즉시 김자점(金自點)과 이시방(李時昉)을 보내 왕대비(王大妃)에게 반정한 뜻을 계달하자, 대비가 하교하기를 ‘10년 동안의 유폐 중에 문안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밤중에 승지와 사관(史官)도 없이 이처럼 직접 계문하는가?’ 하였다. 두 사람이 복명하여 아뢰자 상은 곧 대장 이귀(李貴)와 도승지 이덕형, 동부승지 민성징(閔聖徵) 등에게 명하여 의장을 갖추고 나아가 모셔오게 하였다. 이에 이귀 등이 경운궁(慶運宮)에 나아가 사실을 진계하며 누차 모셔갈 것을 청하였으나 대비는 허락하지 않았다. 상이 이에 친히 경운궁으로 나아갔다.

 

유사가 연(輦)을 등대하고 위의를 베풀었으나 상은 이를 모두 거두라 명하였다. 교자에 오르기를 청하였으나 역시 따르지 않고 말만 타고 가면서 광해를 떠메어 따르게 하였는데, 도성 백성들이 환호성을 울리면서 ‘오늘날 다시 성세를 볼 줄 생각지 못하였다.’ 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이하는 생략. 어쨌든 무력으로 궁을 장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서열상 광해군의 모후 뻘인 인목대비의 추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나 광해군은 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한 것 때문에 여론의 공격을 받아왔고, 그런 의미에서 인목대비의 인정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죠. 다만 인목대비는 은근히 '누가 새 왕이 될지는 내가 결정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광해군을 죽여서 내 아들(영창대군)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이 강해 공신들과 꽤 긴 시간 동안 옥신각신합니다. 이때 이귀가 인목대비와의 기 싸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덕분에 인조반정의 핵심 주체 사이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유지하게 됩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류, 최명길, 심기원, 원두표, 구인후, 김자점 등 인조반정의 주체들은 14년이 지난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점에도 정국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자점을 해칠 수 없는 것은 김류의 조언 때문입니다. 사실은 인조보다는 김류에게 김자점이 더 필요한 인물이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당시 이들 혁명 주체 세력은 같은 서인 출신이지만 뒤늦게 사림에서 정치에 나선 송준길, 송시열, 김상헌 등의 인물들에게 위협을 느낍니다. 특히나 패전에 대한 책임이나 명에 대한 의리의 선명성에서 이들은 뭔가 뒤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혁명 주체 세력의 투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 용도로 김자점이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이건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시각과는 약간 차이가 납니다. 위에서 그렇게 판단을 했건 말건, 김자점은 왕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 '꽃들의 전쟁'의 출발점이니까요.

 

아무튼 김자점의 생애와 의혹(그는 정말 반란을 꿈꿨나?)에 대한 부분은 다른 글에서 조명해 보겠습니다. 기록을 보면 볼수록, 참 흥미로운 삶을 산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절해고도에서 인조의 배신과 옛 인연을 되새기다 광기어린 춤을 추기 시작하는 김자점 역의 정성모. 정말 대단한 에너지의 배우라는 생각입니다. 이 장면은 두고 두고 '궁중잔혹사'의 명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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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은 기획 초기부터 '여성 사극'을 표방했던 작품입니다. '꽃들의 전쟁-여자들의 정치 이야기'라는 캐치프레이즈부터 그랬습니다.

 

'여성 사극'이라는 말은 사극 중에서도 특정한 작품군을 떠오르게 합니다. 대개 고전이 된 '개국'에서부터 '무인시대', '연개소문'으로 이어지는 KBS 대하사극풍의 작품들을 '남성형 사극'이라고 부른다면 '여성 사극'은 오래 전 MBC를 통해 방송된 '여인 열전'에서 SBS 사극의 정점을 찍었던 '장희빈'과 '여인천하'류, 그리고 JTBC의 개국 콘텐트로 큰 역할을 했던 '인수대비'같은 작품들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분명합니다. 주로 궁정이나 양반가의 규방이 주 무대가 되죠. 그리고 성격상 호쾌한 액션이나 군중을 동원한 몹 신보다는 오밀조밀한 대사를 통해 갈등과 해소가 이어집니다. 대개의 경우 주인공과 악녀의 무한대립이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꽃들의 전쟁'은 이런 전형적인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19일 선공개된 1회 영상(본 방송은 3월23일)을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에 선공개된 1회 영상은 실제로는 1회를 조금 넘어 2회 앞부분까지 살짝 걸치는 내용입니다. 대작의 위용을 충분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중간에 영상을 교체하는 바람에 카운트가 내려갔는데, 약 18시간만에 5만명 가량이 이 영상을 보시고 호평을 쏟아내고 계십니다.

 

 

 

 

간략한 도입부 줄거리.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겨울을 넘겨 새해를 맞은 조선 16대 왕 인조(이덕화). 정축년 초 마침내 청에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습니다. 김상헌(한인수)을 비롯한 척화파 대신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인조는 대군 앞에서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합니다.

 

호란의 틈바구니에서 양반가의 서녀 얌전이(김현주, 훗날의 소용 조씨)는 몰락한 양반의 자손인 남혁(전태수)와 애틋한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신분 차이가 분명한 두 사람이 인연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죠. 물론 그렇다고 얌전이가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은 아닙니다. 오히려 천방지축 말괄량이형입니다.

 

다시 궁정. 도원수 김자점(정성모)이 격분한 인조에게 치도곤을 당합니다. 조선의 주력군을 이끌고 임진강 언저리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죄. 하지만 영의정 김류(김종결)는 은밀히 김자점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결국 김자점은 절도유배로 목숨을 부지합니다.

 

항복의 치욕은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구차한 삶은 정작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세자(정성운)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보내야 하는 상황. 세자빈(송선미)은 갓난 아들 석철과 눈물로 이별하고, 인조는 홀로 남겨진 손자 석철을 부여안고 비통한 눈물을 흘립니다.

 

 

 

 

사실 인조 시대가 사극의 초점이 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찌기 80년대 초, 컬러TV 시대를 맞은 KBS가 방송사의 위용을 떨치기 위해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사극 '대명'에서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조명한 적은 있었죠.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전쟁의 끝에서 바로 효종 시대로 점프하고, 전란의 마무리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조 후기의 정치사는 한국 사극의 역사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꽃들의 전쟁'은 기존의 여성 사극류와는 규모에서 확연히 차이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간간이 보여주는 전쟁의 참화나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은 인조의 치욕 장면 등은 소위 '정통 사극'에서도 쉽게 볼 수 없던 거대한 비주얼을 과시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여성 사극들과 차이나는 점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작가 정하연의 내공이 빛나는 부분입니다.

 

정하연 작가의 정치 분석은 매우 날카롭습니다. 일찌기 수많은 작품들에서 드러났듯, 그의 사극에는 선인과 악인의 흑백 대립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갑에게는 갑의 명분이, 을에게는 을의 명분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산성에서 눈물로 항복을 권하는 최명길과 군신이 다 같이 죽자는 김상헌. 기존의 사극이라면 어느 한 쪽에 좀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꽃들의 전쟁'에서 최명길은 세자를 청으로 보내서는 안된다는 김상헌에게 "이제 와서 좋은 말은 혼자 다 하십니다. 무슨 대안이라도 있으신지요"라고 정면으로 맞받아 칩니다. 

 

오히려 보다 큰 간신으로 그려지는 쪽은 영의정 김류와 도원수 김자점. 김자점이야 조선 왕조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미움을 받는 인물이지만, 그 김자점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할 말'은 그렇게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던' 김자점을 인조가 다시 불러 중용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식의 중량감있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키는 '여자들의 전쟁'이기 때문이죠. 여자들의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되, 그 근거가 되는 역사나 정치 이야기가 단순화/유치화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소용 조씨(김현주) - 소현세자빈 강씨(송선미)의 대립이 드라마의 축이지만, 그 사이에서 열다섯 나이에 입궁하는 장렬왕후 역의 고원희도 눈길을 끕니다. 최근 2AM 뮤직비디오, 아시아나 모델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 드라마로 확 개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제작발표회 때 보니 의외로 또박또박 말을 잘 하던데, 별명이 '애늙은이'라는군요.

 

 

 

 

 

그리고 사극에서 빠질 수 없는 깨알 재미를 책임지실 분들. 일단 침장이 역의 손병호. 가벼운 톤을 잡았는데도 존재감이 그만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이 분. 내관 역을 맡은 우현.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꽃미남 부문'을 책임질 전태수. 오랜만이라 그런지 각오도 남달라 보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갖출 건 다 갖춘 '꽃들의 전쟁', 23일 '무자식 상팔자' 후속으로 공식 출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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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 마침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줄곧 궁금해하긴 했지만, 3월13일 이전까지는 아무도 미리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은 극도로 커져 있었습니다.

 

안판석 감독의 팬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분은 제작에 있어선 지독한 완벽주의자입니다. 방마다 놓여 있는 소품 하나, 쓰레기통에서 나오는 영수증 하나, 약 봉지에 쓰인 이름이나 주소 하나 허술하게 촬영되지 않습니다.

 

'주인공 윤제문' 이라는 이름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만들어진 1회를 보고 난 사람들은 일제히 납득했습니다. 사실 3월13일 공개된 분량은 정규 1회를 넘어 2부 앞부분까지 포함되는, 약 80분 가량이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으론 긴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의 몰입도는 대단했고,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걸작이다.'

 

 

 

3월13일 공개한 1회 선공개 영상은 여기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1회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세계의 끝' 첫회는 원양어선 문양호의 마지막 생존자 기영(김용민)이 고무 보트에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장쾌한 헬리콥터 샷으로 시작합니다.

 

질병관리본부에 첫 출근한 나현(장경아). 첫날부터 팀원들은 나현을 놀리기 위해 '셜록'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주헌(윤제문)에게 나현이 뭘 타고 왔는지, 뭘 먹었는지를 맞추는 게임을 합니다. 정확하게 다 맞춰 내는 주헌을 보고 놀라는 나현.

 

첫번째 희생자가 생기고, 질병관리본부의 수뇌부 회의가 열립니다. 보름달을 닮았다는 이유로 괴 바이러스에는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첫 희생자의 직업은 스킨스쿠버 다이버, 취미는 사진 촬영. 다각도로 수색에 들어가지만 발병 원인에 대한 단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첫번째 희생자를 이송한 구급요원도 같은 증상으로 사망하고, 희생자의 집에 누군가 이틀간 머물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인물의 정체를 찾아내기 위한 주헌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됩니다.

 

한편 '그 인물'인 기영도 자신이 들렀다 간 흔적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이 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안 기영은 자수를 생각해 보지만, 생체 실험 재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디론가 달아나려 합니다. 그래도 2년간 원양어선 생활을 기다려 준 여자친구는 한번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세계의 끝'의 전제가 되는 이야기는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라는 의학적 존재에서 시작합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면 그 사람은 감염되든가, 아니면 자연치유되든가 할 겁니다. 그런데 몸 속에 그 병원체가 우글거리는데도 그 사람은 멀쩡하고, 그 사람과 접촉한 다른 사람은 병에 걸리는 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장티푸스가 유행하던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메리 말론이라는 여성에게서 이런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고 무려 51명이 장티푸스로 사망했지만, 정작 그녀는 너무나 멀쩡했습니다. 1907년 마침내 관계 당국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조사를 시작했죠.

 

 

 

 

'세계의 끝'은 몸서리쳐지는 재난 드라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주헌을 비롯한 조사반원들은 목숨을 걸고 질병과의 전면전을 벌이지만, 사실 이 병난의 문제는 바로 장티푸스 메리와 같은 존재인 기영의 선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기영이 치료약 개발에 협조한다면 상황은 훨씬 좋아질 수 있겠지만, 자신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도 기영은 어디론가 달아날 생각만을 합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다 죽었어"라고 괴로워하면서도 그 다음의 선택은 "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갈거야"라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원초적인 이기심을 드러낸 것이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건 싫어' 이면서 동시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죽어도 알게 뭐냐' 인 겁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기영에 대한 분노가 치밀지만, 동시에 '과연 나는 어떤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영과 여자친구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왕년의 명작 '여명의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애절한 철조망 신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안판석 감독은 윤제문, 장현성, 박혁권 등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들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물론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낯설 뿐이지 다들 연극계에서는 이미 연기력이 입증된 분들입니다. 많은 경우, 연출자들은 드라마와 현실의 벽을 가능한 한 엷게 하기 위해 이런 캐스팅을 합니다. 다큐멘터리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죠.

 

제목과 배우들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 http://fivecard.joins.com/1106

 

안 감독은 제작발표회장에서 "인생에 갑작스레 던져진 재난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게 된다. '아내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평온하기만 하던 일상에 '불륜'이라는 재앙이 밀려오면서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던 가족이 일순 붕괴된다. '세계의 끝'도 마찬가지"라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블록버스터급 재난 드라마이면서 휴먼드라마인 '세계의 끝', 만듦새에서는 이미 동급 최강이라는 점이 입증됐습니다. 제작진도 '옥의 티 0'라는 자신감을 내보일 정도입니다. 이제 매주 주말 밤마다, 온 세계가 종말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음산한 체험이 기다릴 겁니다. 3월16일(토) 오후 9시55분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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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라는 제목은 아직 그리 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끝'이라고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기억하실 겁니다(초기엔 '일각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죠).

 

이 소설의 도입부에는 너무나 유명한 노래,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의 가사가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혹시 제목은 귀에 익지 않아도, 멜로디를 들으면 아, 그 노래? 하실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가사의 첫 부분은 이렇습니다.

 

 

 

 

Why does the sun go on shiny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more..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 세상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녀풍의 노래입니다. 스키터 데이비스의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전 세계인이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노래죠.

 

그런데 그 노래를 이렇게 번역해 놓으면 느낌이 영 다르더라는 겁니다.

 

왜 태양은 아직도 반짝이는 것일까

왜 파도는 계속 밀려오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는 걸까,

이 세상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어떻습니까. 스산한 느낌이 감돌지 않으시나요?

 

이 제목은 바로 이런 느낌을 가져온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의 어느날. 서울 시내에 정체불명의 괴질이 발생합니다. 치사율은 100%. 관계 당국에 비상이 걸리고 TF가 발족하지만 감염원은 오리무중. 치열한 추적 끝에 원양어선을 타던 복학생이 최초의 보균자로 파악되지만 그의 소재는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괴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보면 달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주인공 강주헌은 헌병 장교 출신이란 독특한 경력의 질병관리본부 역학 조사과장. 치열한 조사 끝에 감염원을 찾아내지만, 괴 바이러스의 치료는 그걸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미친 바이러스의 발생 뒤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던 거죠.

 

길게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1회를 그냥 통으로 보여 드립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물량 규모가 만만찮습니다.

 

일단 맛뵈기부터 보고 싶은 분은 다음 티저 영상을 먼저 보셔도 좋습니다.

 

 

 

 

네. 돈 좀 들었습니다.

 

 

 

 

강주헌 역을 맡은 배우는 윤제문. 의외로 사람들이 이름을 잘 모르는(!) 배우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의 사수 건달 역으로 이 배우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영화에서 '명품 조연', '신 스틸러'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그 왜 연기 죽이는 놈 있잖아' 등으로 명성을 날렸죠.

 

그리고 나서 '뿌리깊은 나무'의 가리온, '더 킹 투 하츠'의 악당 김봉구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이미지를 각인시킵니다. 하지만 그냥 '윤제문' 하면 아직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보단 '가리온'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죠.

 

사실 캐스팅 리스트에는 윤제문보다 잘생긴 배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완벽주의자 안판석 감독님이 이 배우를 콕 찍은 겁니다. 이 친구와 하겠다고. 뭐 거기서 사실상 게임은 끝난 거죠.

 

다른 사람들이 아쉬울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전달하는 사람이 지어낸 얘긴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닙니다. '하얀 거탑'으로 김명민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섰듯, '세계의 끝'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에 윤제문이 각인될 거라고. 뭐 '하얀 거탑', '아내의 자격'을 만든 양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누가 감히 토를 달겠습니까.

 

 

 

 

주인공이 윤제문이면 주인공의 파트너인 이나현 역이라도 좀 있어보이는 배우가 뽑히길 기대했지만 전화로 캐스팅 소식을 듣고 "누구?" 라고 한 세번 물어봐야 했습니다. 장경아랍니다. 대체 장경아가 누구야.

 

 

 

 

 

1987년생. 26세. 드라마가 드라마다 보니 위 사진에선 심각하고 초췌한 모습만 보이지만, '여고괴담' 때만 해도 이랬습니다.

 

 

 

이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박혁권, 장현성 등 '아내의 자격'을 통해 '안 사단'으로 불리게 된 배우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역시 이 배우들도 저희 회사 근처에선 '김희애 남편'이나 '김희애 시누이 남편'으로 더 유명한 분들이기도 합니다만.^^ (죄송합니다. '아내의 자격'의 여파가 아직 안 가시고 있어서...)

 

 

 

아무튼 아직 쇼킹한 비주얼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배우가 아니라 시체가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가곤 했지만, 밀도 있는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룰 것 같습니다.

 

'세계의 끝' 1회는 JTBC 홈페이지와 포털 네이버, 다음(위에 퍼온 영상)을 통해 선공개됩니다. 미리 보시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정규 방송은 16일 오후 9시55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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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상팔자]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시청률 10%를 우습게 아는 분들은 "10%? 10% 짜리 프로는 지상파에 널렸어"라고 말하지만 지상파에서의 5%와 비 지상파 채널에서의 10%는 참여의 질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직 어지간해서 지상파 3사, 4개 채널의 테두리를 벗어냐려 하지 않습니다. 그 밖으로 나가는 데에는 그만치 '끙'하는 작심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죠. 채널 번호도 잘 모릅니다. 대개 채널을 돌리다가 어 이거 재미있을거 같은데 하면 그냥 시청하는 식의 패턴이죠.

 

그런 상황에서 10%라는 건 엄청나게 목적성이 강한 시청자의 수가 만만찮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채널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 가서 본 채널이라는 얘기죠. 매일 신도림역을 지나가는 5만명이 '신도림역'에 부여하는 가치와, 단풍철에 설악산을 찾은 5만명이 '설악산'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는 결코 같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JTBC에서 방송되는 '무자식 상팔자'가 10%대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화제도 뜨겁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의아해 지기도 합니다. 물론 드라마의 우수성이 의심스럽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드라마들과 비교해 볼 때, '무자식 상팔자'는 유난히도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방송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문득, 어쩌면 우리는 이미 '김수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이미 2,30년 전부터.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최근 '무자식 상팔자'의 등장인물 가운데 준기(이도영)-수미(손나은) 커플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무자식 상팔자, 학습된 가족 판타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의 입에선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야, 정말 리얼하지 않냐?”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처절한 격전 장면에 대한 평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의문. 과연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 영화를 ‘리얼하다’고 말할까. 관객 중 실제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을 가 봤거나, 사람이 총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관객은 이 영화가 리얼한지 리얼하지 않은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데도, “리얼하다”는 표현을 입에 올린다.

 

분명 어색한 일이다. 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전혀 보지 못한 장면을 ‘리얼하다’고 느끼게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그 참상을 2차대전 기록영화와 라이프 사진집에서 익히 보았기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오마하 비치라는 격전지의 이름을 이 영화를 통해 안 사람이 대다수일 테니 말이다. 관객들이 느끼는 이 가짜 리얼함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사기꾼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흔히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부모 자식간의 예의에 충실한 아버지, 어쨌든 아버지를 존경하는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대가족이 등장한다. 3대의 한집 거주는 필수. 그런데 이런 대가족은 사실 50대 이하의 시청자들 중 절대 다수에겐 판타지다. 한국 사회는 40년 전인 70년대 초부터 이미 핵가족화를 시작했다. 20년 전엔 이미 조손(祖孫)이 한 집에 사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무자식 상팔자’ 속의 가족 관계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호평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이 향수는 허구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존재한 적도 없는 향수’를 느끼는 것일까.

 

 

 

‘시나리오 마스터’라고 불리는 미국 USC의 로버트 맥키 교수가 한 말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가를 가정하고, 잘 만들어진 서사가 읽는 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통찰력있게 묘사했다.

 

“읽어가는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내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중략) 나는 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가족이라는 사회 형식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살고 있는 관객들은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중략) 나는 내가 느끼는 나만의 감정들을 표현하지만 관객 모두는 그 느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가장 적절한 예로 떠오른다. ‘가짜 리얼리티’의 원천은 치밀한 디테일에서 비롯된 공감가는 인물 설정과 전개다. 시청자들 중 누군가는 드라마 속 장남과 맏며느리의 대화에서, 다른 누군가는 막내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갈등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맏손녀와 엄마의 말다툼에서 자신이나 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요소가 더 있다. 우리가 이미 김수현의 드라마 속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많은 시청자들의 경우, 지금 보고 있는 김수현 드라마 속의 어떤 대사는 30년 전 어느 드라마 속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30여년 전에 시청률 50%~70%를 오갔던 그녀의 드라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이런 것’이라고 설득했고,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그 규범의 영향을 받아 행동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매트릭스‘ 속 아키텍트처럼) 우리의 삶의 일부를 그려낸 셈이다. 그런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언젠가 내가 실제로 겪었던 것 같은’ 향수를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굳이 보드리야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

 

 

 

 

극중 상황. 스물다섯 나이에 학력은 고졸,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며 커피 장인으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준기는 어느날 같은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고생 수미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수미는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자라온 결손가정 출신의 '사실상' 가출 여고생입니다. 커피숍 알바로 근근이 고시원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죠. 하지만 천부적인 붙임성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준기를 사로잡습니다.

 

마침내 수미에 대한 동정이 그냥 동정이 아님을 알아차린 준기는 아직 미성년인 수미와 결혼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합니다. 당연한 어른들의 반대. 하지만 수미를 직접 만난 아버지-할아버지의 순으로 수미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결국 '3년간 연애 인턴 기간(?)'을 두고 준기와 수미의 관계가 반 허락을 받습니다.

 

 

 

현실에선 있을 법 하지 않을 일입니다.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20대 중반의 아들이 아직 만 18세도 안 된 여고생과 결혼하겠다는데, 그걸 내버려 둘 부모가 있을 리 없죠.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요즘 분위기에서 그 나이에 결혼하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설 젊은이도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배경은 철저한 판타지입니다. 과연 요즘 10대 여고생들 가운데 수미 같은 말투와 생각을 보여주는 아이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미는 요즘의 '5,60대 어른들이 바라는 여고생'의 형상화죠. 혹은 70년대 쯤 존재했을 법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웃음을 잃지 않고 자립의 꿈을 키우는' 여고생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옮겨 온 모습입니다.

 

 

 

(문득 1976년작 영화 '너무너무 좋은거야'의 실제 나이 16세 임예진이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하지만 언젠가 항공사 여승무원이 되기를 꿈꾸는 쾌활하고 똘똘한 소녀 캐릭터죠. 사실상 '무자식 상팔자'의 수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울러 수미와 준기의 관계를 허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할아버지(이순재)인데, 이 할아버지의 허락을 위해선 김수현 작가의 치밀한 배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준기의 누나인 소영(엄지원)이 미혼모가 됐을 때 가족들은 여자보다는 그래도 남자가 운신하기 좋으니 태어난 아기를 '준기가 어디서 사고 쳐 낳아 들어온 아기'로 포장하자는 꾀를 냅니다. 사실 이 거짓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우연한 기회에 그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당연히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죽을 죄를 지었다'는 소영의 눈물 앞에 아무 말 없이 현관을 나섭니다. 그 앞에 서 있던 것이 바로 준기.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준기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고 문 밖으로 나가죠.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손짓은 '그러니까 네가 누나의 곤란함을 알고, 밖에서 아이를 낳아 들어온 칠칠치 못한 놈 행세를 하려고 했던 거구나. 착한 놈. 나에게 거짓말을 한 너희 애비와 삼촌들은 정말 죽일 놈이지만 너는 정말 가족을 위할 줄 아는 놈이구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던 것이죠.

 

그 뒤에도 온 가족은 '평소 밖에서 병든 강아지 하나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던' 준기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준기는 3남매의 막내. 맏이 소영은 판사에 둘째 성기(하석진)는 의사인데 비해 변변찮은 스펙입니다. 하지만 그런 '착함' 때문에 할아버지가 막내 손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각별한 것이죠. 또 그렇기 때문에 '조건이며 상황 따지지 않고' 준기가 데려온 수미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요즘 세상이 이렇게 '우리가 먹고 살만 하니 불쌍한 아이(수미-손나은) 하나 정도 품을 수 있다'는 쪽에 가까운지, 아니면 '있는 사람이 더 한'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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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 참 많고도 많습니다. 특히 한국 안방극장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꽤 많이 인기를 누렸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점 하나 찍고'의 원조인 '아내의 유혹' 이후 특히 많아졌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JTBC '가시꽃'도 그런 유형의 드라마입니다. 억울하게 모든 것을 빼앗긴 여자가 죽음을 가장하고 기회를 노린 다음, 새롭게 태어나 돌아와서 자신을 망가뜨린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많이 듣던 얘기긴 합니다.

 

물론 '아내의 유혹'이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의 원조라고 보기에 '아내의 유혹'은 참 젊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원형을 살펴보려면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 합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수 이야기, 특히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 벌이는 복수 이야기의 고전은 뭐니뭐니해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쓰여진 것이 1845년이고 보면 그 전이라고 이런 이야기가 없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품의 지명도나 완성도, 대표성 등을 고려할 때 '원조'라는 이름을 가질만 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이 남자라는 점. 여자의 복수 이야기도 장화홍련전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널렸지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귀신이 주인공이면 안 될 듯한 분위기입니다.

 

(물론 웃자는 얘기지만, 시각을 좀 돌려 보면 셰익스피어의 '헛 소동'이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여주인공 히어로가 행실이 나쁘다는 모함을 받아 결혼이 깨지고, 히어로가 죽음을 가장한 뒤 진실이 밝혀지자 히어로의 아버지는 남자들에게 '내 딸은 이미 죽었지만 똑같이 생긴 조카딸이 있는데 그 아이와 결혼하라'고 하죠. ...네. 사실 전혀 다른 느낌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죽은 여자가 돌아오는' 상황은 아마도 '헛 소동'이 원조일 것 같다는 얘기.)

 

그러다 문득 한 후배가 "선배, 혹시 예전에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서 잘나가는 모델로 변신해 복수하는 외국 드라마 본 기억 나지 않아요?"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앗.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날듯 말듯. 남편이 아내를 악어 밥으로 던졌는데 여자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성형수술로 더욱 미인이 되어 복수하는....?

 

그래서 찾아냈습니다. 바로 '에덴으로 돌아오다'.

 

 

 

1983년작 호주 드라마 '에덴으로 돌아오다(Return to Eden)'는 이런 내용입니다.

 

부유한 40세 여성 스테파니(레베카 질링)는 유명 테니스 선수이자 미남인 그렉(제임스 레인)과 결혼, 온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찬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렉의 진짜 연인은 스테파니의 절친인 질리(웬디 휴즈). 세 사람은 늪지대로 여행을 떠나고, 배 위에서 악어를 바라보며 스테파니가 탄성을 지르고 있을 때 그렉은 스테파니를 뒤에서 밀어 버립니다. 악어 밥을 만들어 버리고자 한 거죠.

 

그렉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스테파니를 향해 총을 겨눕니다. 악어가 시원찮으면 구하기 위해 악어를 쏘다가 실수로 스테파니를 맞혔다고 하려고 했던 듯. 하지만 악어는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스테파니를 공격하고, 피투성이가 된 스테파니는 조용히 물 속으로 사라집니다. 어쩔 줄 모르는 질리를 한 팔로 제지하며 지는 해를 향해 총 한방을 쏘는 냉혹한 그렉.

 

(이 장면은 위 동영상 27분30초 지점부터 꽤 실감나게 나옵니다.)

 

 

 

 

"말도 안 돼! 악어한테 저렇게 물려 가서 살아났다고?" 라고 화내실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악어의 평소 습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악어는 일단 잡은 먹이를 그 자리에서 토막낸다거나 하지 않고, 일단 물속으로 끌어들인 뒤 익사시키는 쪽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엔 바로 먹지 않고 물 속의 수초 줄기나 돌 틈에 끼워 '저장'해 두기도 한다는군요. 그러니 '저장'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스테파니가 살아 나올 가능성도 있는 셈이죠.

 

(어디까지나 가능성!)

 

 

1983년의 '미니시리즈(한국 미니시리즈는 16부가 기본이지만 70~80년대 영미권에서는 3~6회 정도의 연작 드라마를 미니시리즈라고 불렀습니다)' 판 '에덴으로 돌아오다'는 불과 딱 세편짜리 소품이었지만, 호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만만찮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1986년에는 22부작의 정규 시리즈로 제작되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리즈도 제목이 'Return to Eden'이라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미니시리즈'라는 설명이 붙은 것이 원편.)

 

 

 

 

 

한국에서는 1989년 신년 특집으로 방송돼 상당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연히 여러 차례 앵콜 방송됐고, 얼마 뒤에는 '시드니 셸던 원작'의 소설이 발간되기도 했죠. 왜 ' '를 쳤느냐... 이유는 이 소설이 시드니 셀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랍지만 사실. 이 시절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법이 통할 정도로 허술한 나라였다는 겁니다. (또는 그럴 정도로 시드니 셀던은 구매력 있는 작가였다든가.)

 

 

 

아무튼 결론.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라는 장르에서 원조격인 작품을 찾으라면 이 '에덴으로 돌아오다'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가장한 트릭은 샤론 스톤, 이자벨 아자니 주연 '디아볼릭'의 원작인 1955년작 프랑스 영화 'Les diaboliques'이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여자의 죽음이 소재가 아니라서 제외.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국에서도 '아내의 유혹'이 인기를 얻었고, 현재는 '가시꽃'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유망한 신인에서 깜짝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은 세미(장신영). 하지만 세미에게 그 기회를 빼앗긴 유명 스타 지민(사희)은 복수를 다짐합니다. 세미는 재벌집 외동딸인 지민의 집 별장 관리인의 딸이었기 때문에 지민은 깨진 자존심에 몸을 떨었던 거죠.

 

그 별장에서 파티가 열리고, 세미는 술에 취한 지민의 오빠 혁민(강경준)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결국 혁민을 피해 달아나던 세미는 2층에서 추락해 식물인간이 되고, 혁민 일행을 저지하려던 세미의 아버지도 계단에서 밀려 떨어져 죽음을 맞습니다. 재벌 2세와 국회의원 아들 등으로 구성된 혁민의 일행 특성상 부모들은 모든 연줄을 동원해 사건을 무산시키고,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던 세미의 어머니도 사고를 위장해 살해합니다.

 

  (실제 드라마 장면과는 좀 다른, 장신영의 여유 컷)

 

남은 것은 식물인간이 된 세미. 일당은 세미마저 조용히 없애 후환을 없애려 하지만 세미는 깨어나고, 혁민/지민의 집안에 원한을 갖고 있는 남준(서도영)의 도움으로 복수를 준비합니다. 물론 집에 불을 질러 세미가 죽은 것으로 꾸미는 것은 필수. 그리고 7년 뒤, 세미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복수를 시작합니다.

 

 

 

 

...이런 어디서 살짝 본 듯한 스토리. 하지만 '가시꽃'은 스피디한 전개(어차피 다 짐작하실 만한 내용은 과감히 통과!)와 적절한 악역들의 배치(특히 악당 중에서도 잡초같은 3류 악당 백춘 역을 맡은 이철민씨가 압권입니다. 보신 분이라면 이해하실 듯...)로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송 7회만에 시청률이 3배로 급상승중입니다. (아, 물론 출발점이 좀 낮긴 했죠.^^)

 

전형적인 복수극의 외양을 갖춘 '가시꽃'이 어느 정도까지 주부 시청층을 흡수할 지 개인적으로 참 궁금합니다.

 

(보너스는 1~7회까지의 하이라이트 요약. 이 정도면 지금부터 '가시꽃'을 보시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주요 사건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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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의 대부분의 드라마들에서 주역은 청춘들입니다. 아무리 '제빵왕 김탁구'같은 드라마에서 '실질적인 주연'은 전인화와 정성모 같은 중년 배우들이었다고 해도 제목이 '김탁구'인 이상 김탁구 역의 윤시윤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찬가지.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이하 우결수)도 실질적인 주인공은 한 딸의 이혼과 한 딸의 결혼을 온 몸으로 추진하고 있는 억척 엄마 들자 역의 이미숙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드라마의 핵심은 정훈(성준)과 혜윤(정소민) 커플입니다. 이 두 젊은이의 가파른 결혼 길이 드라마의 갈 길이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두 사람이 드라마의 커플 1번, 그리고 공기준(김영광)-동비(한그루) 커플이 2번으로 드라마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혼 위기에 있는 혜윤의 언니 혜진(정애연) 부부가 3번이죠. 그런데 4번 커플이 드라마 전면으로 죽죽 치고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민호(김진수)와 들래(최화정)의 중년 커플입니다.

 

 

극중 민호는 세 번의 이혼 경력을 갖고 결혼생활에 질려 할리 데이비슨 모터사이클 타는 취미로 사는 40대 중년남입니다. 그래도 '건물 하나 정도 갖고 있는' 재력 덕분에 사는 데 지장 없고, '20대 아니면 여자로 보이지 않는' 생활을 계속해 왔습니다.

 

반면 혜윤의 이모 들래는 50세의 노처녀 어린이집 교사. 예전엔 예쁘다는 말도 수없이 들었고, 소녀적인 정서를 아직 갖고 있는 탓에 이상형의 남자는 어디까지나 미소년-미중년으로 진화했을 뿐 무식하고 교양없는 중년의 아저씨에겐 눈길조차 줄 생각이 없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참 사람 일이라는게, 하다 보니 들레가 모터사이클에 대한 묘한 동경을 갖고 있고, 그러다 보니 민호와 들래 사이가 남녀 사이가 됩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론 꽤 있습니다.

 

 

들레 같은 스타일의 노처녀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 분들의 특징은 몸도 늙고 마음도 늙어가는데, 유독 취향은 늙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현실과는 아무 상관 없이, 이 분들의 이상형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발견됩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만큼 대부분 먹고 사는데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현실에서의 로맨스는 그만치 멀리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소녀시절의 판타지가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에 대한 하명희 작가의 시선은 코믹하지만 냉엄합니다. 이미 지난주 10회에서 드러났듯, 나이 50에 생물학적으로 처녀인 들레의 꿈 속에서 저승사자로 변한 언니 들자(이미숙)는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는 말 알죠? 아직까지 성경험이 미개봉 상태이기 때문에 그 몸으론 저승에 갈 수 없어요.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될 거에요"라고 악담을 던진 뒤 주저없이 들레의 관 위로 삽질을 해 댑니다.

 

 

 

"언니 나는 어디로 가?"

 

 

"생전에 날 알던 사람인가본데, 난 저승사자가 되어 전생의 기억이 없어요."

 

 

"어디보자. 혼전순결이 미개봉 상태라서 이 상태론 저승에 갈 수가 없어요. 사랑하지 않은 자 유죄란 말 알죠?" 

"...그럼 전 어떻게 되나요?"

"이대로 구천을 떠돌게 되는 거죠."

 

 

이 뒤로는 이런 상상에 충격을 받은 들래가 민호에게 "중간 과정 생략하고 빨리 자자"고 재촉하는 코믹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나이 50에 처녀라는게 생매장당할 죄라고 한다면 분노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상이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하실 분도... 뭐 따지다 보면 정말 억울한 분들도 있겠죠.;; (이런 얘기는 여기까지.)

 

사실 민호-들레 커플이 인기를 얻는 것은 실제 생활에서 그런 처지에 있는 분들이 이 커플을 좋아하시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반대로 그와는 전혀 거리가 먼 분들에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이 커플에 대한 하명희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눈길을 끕니다. 아마도 이 커플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척, 언제라도 젊은 여자들과 어울리면서 센 척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민호도 외롭습니다. 남자 생각 따위는 전혀 없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들레가 외로운 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눈에 보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의 외로움을 자신의 외로움에 겹쳐 보면서, 두가지 외로움이 서로 닮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민호의 별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들레는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외롭구나. 이렇게 같잖은 짓을 하면서까지 친해지고 싶어하는구나. 내가 뭐 잘났다고. 나도 아는데. 외로운 게 뭔지."

 

여기서 핵심은 바로 '내가 뭘 잘났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데에는 사실 긴 시간이나 논리적인 설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첫 눈에 서로 눈이 맞아 뭔가가 시작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즉 일단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먼저 호감을 갖기 시작한 경우라면 바로 이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내가 뭘 잘났다고.' 거기서부터 공감과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우결수'는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이 보게 만들어진 드라마인 듯 하지만 사실은 퍽 어른용 드라마입니다. 대사 하나 하나마다 통찰이 숨어 있고, 인생이 녹아 있습니다. 웃음 속에 페이소스가 있고, 한숨 속에 지혜가 있습니다.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하고, 이해를 구한게 잘못이야?" "잘못이지. 그럼. 왜 다 알게 해. 생각만 복잡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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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결수]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본래 긴 제목은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입니다.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지만,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이 드라마는 지난주부터 매주 월,화요일 저녁 9시50분에 방송됩니다. 10시대는 본래 KBS 2, MBC, SBS 지상파 3사의 드라마가 격돌하는 시간이죠. 그런데 과감하게 그 시간에 뿌리를 박았습니다.

 

사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습니다. 그만치 드라마의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여러가지 이유로 힘들긴 하지만 어지간한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지금도 기대 이상의 성원을 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만한 성원을 받게 된 것은 바로 SNS 덕분이라는 것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결수'는 처음부터 온라인을 통한 다양한 홍보에 힘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방송 1주일 전,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우결수' 1회가 먼저 공개됐습니다. 그러니까 정규 편성으로 방송되기 1주일 전에 드라마 1회를 인터넷으로 먼저 볼 수 있게 한 것이죠. 예고편이나 편집본이 아니라 정규 1회를 말입니다.

 

 

 

그리고 1회 영상을 SNS로 공유하기만 해도 선착순으로 캔커피를 그냥 드리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방송 전 1주일간 이 1회는 13만회나 플레이됐습니다. 지금까지 총 20만 네티즌이 이 1회 영상을 보셨습니다.

 

방송이 시작된 뒤, 출연진들이 적극적으로 SNS를 통해 자신의 출연작 홍보에 나섰습니다.

 

남자 출연진 중 최고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진수.

 

 

 

물론 가장 영향력 크고(?) 열심한 사람은 정훈 역으로 출연중인 성준입니다.

 

 

 

성준의 가장 큰 위력은 파급력. 성준이 한번 트위터에 글을 남기면 수많은 팔로워들이 그 글을 널리 퍼뜨립니다. 그런데 성준 팔로워들은 "오빠, 키스신이 너무 많아서 못 보겠어요"라는 하소연을 할 때도 있더라는...^^

 

뒤늦게 트위터 활용에 나선 김영광.

 

 

 

이 역시 300여회가 넘는 리트윗을 기록하는 위력이 엿보입니다.

 

성준-김영광 투톱의 힘은 SNS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정애연,

 

 

한그루도 열심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편의 드라마를 방송했지만 이렇게 출연진이 자기 드라마에 애정을 갖고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는 처음 보는 듯 합니다.

 

이렇게 출연진이 열심이다 보니 다른 쪽으로도 전파됩니다.

 

이 드라마와 전혀 상관 없는 김수로도.

 

 

 

지금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을 이용해 '우결수'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연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남긴 호평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전문가가 쓴 리뷰보다 생생합니다. 그만치 이 드라마가 볼만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주죠.

 

결론은: 얼른 동참하십쇼.^^ 지금부터 보셔도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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