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도시]. 한때 극장에 '느와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멋도 모르고 온갖 영화들이 따라 하던 표현입니다. 느와르(noir)란 검다는 뜻의 불어지만, 필름 느와르는 정작 프랑스와는 무관하고, 1950년대를 전후해 쏟아져 나오던 암흑가를 그린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쉴 해밋을 비롯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문학의 거장들이 큰 영향을 미쳤죠.
이 필름 느와르가 긴 세월을 거쳐 1980년대 홍콩에서 한번 용트림을 합니다. 주윤발의 선글래스와 함께 '홍콩 느와르'가 아시아를 넘어 퀜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미국/유럽의 오다쿠들까지 사로잡은 것이죠.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홍콩 느와르는 전설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이고, 외래어 표기도 '누아르'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그러는 사이 유위강 감독이 '흑사회'와 '무간도' 시리즈로 새로운 누아르 열풍을 일으켰고, 한국에서도 '비열한 거리',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신세계'가 나와 그 맥을 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TV에선 마침내 드라마 '무정도시'가 나왔습니다.
서울. 현대. 경찰 고위 간부 민홍기 국장(손창민)은 마약 조직과 조폭의 결합체인 거대 조직 저울파를 제거하기 위해 보스 저울(김병옥)에 대한 그물을 좁혀갑니다. 하지만 조직에 신분을 감추고 침투시켜 놓은 핵심 언더커버 요원이 살해되고 덫은 실패합니다.
경찰대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 검사를 지망했던 형민(형민)은 일선에서 마약 조직과 일전을 벌일 각오로 경찰에 돌아와 특설팀의 팀장을 맡습니다. 애인인 경미(고나은)는 그의 선택이 불만이지만 어쨌든 그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경미에겐 어려서부터 친동생처럼 함께 자란 보육원 출신의 동생 수민(남규리)이 있습니다.
한편 저울의 약을 내다 파는 하부 조직을 거느린 시현(정경호)은 통칭 '박사 아들'이라고 불리는 암흑가의 엘리트. 하지만 이익을 쉽게 내주지 않으려는 저울과 마찰이 일고, 마침내 친형제같은 현수(윤현민)와 함께 암흑가의 패권을 노리는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1회를 온라인으로 미리 공개했습니다.
60분입니다. 한번 보시죠.
(선공개 영상과 실제 방송 1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 장면이 다를 수 있습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미리 고지된대로 '무정도시'는 '무간도' 풍의 언더커버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원제가 아예 '언더커버'였는데, 많은 시청자들이 '언더커버'라는 말을 듣고 '대체 언더커버가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통에 새로운 제목이 붙었다고 합니다.
(뭐 잘 아시겠지만 undercover는 잠복, 잠행, 또는 아예 신분을 감추고 벌이는 위장 침투 등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런데 드라마 제목을 저렇게 하자니 "박명수 나오는 그 사장님 얘기 비슷한 거냐?"는 질문이.... <- 참고로 '언더커버 보스'에는 박명수가 출연하지 않습니다. 나레이션을 했을 뿐이죠.)
아무튼 이 드라마에 깊이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막상 드라마를 본 건 20일 제작발표회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일단 제가 처음 읽어 본 버전의 대본에 비해 훨씬 시청자 친화적으로 바뀐 부분은 참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가 읽어봤던 시점의 대본은 막이 오르면 곧바로 조직간의 치열한 전쟁 신이 시작됩니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시현의 쿠데타죠.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이 쿠데타가 시작됐다면 대다수 시청자들은 누가 누구편인지 엄청나게 헷갈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는 수시로 시현의 뒷모습을 비춥니다. 어떤 때는 밤의 도시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리고 어떤 때는 길을 걷는 시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액션 스타치고는 그리 떡 벌어진 편이 아닌 정경호의 어깨가 이 장면에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나는 밤의 도시 전경. 그리고 그 도시를 모두 차지하고 말겠다는 남자의 야망. 하지만 뭔가 야망보다는 우수가 느껴지는 남자의 뒷모습.
1회에서 제작진이 가장 힘을 준 부분은 아무래도 지하보도에서 벌어지는 1대10 정도의 액션 신입니다.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의 좁은 복도 액션을 연상시키는 장면. 실제로 1대10 정도의 싸움이 가능하려면 배후를 차단할 수 있는 좁은 길이라야 가능할 겁니다. 한번에 한명씩 상대할 수 있으니까요.
이정효 감독이 한번 해 보고 싶었던 액션을 마음껏 구현한 듯한 느낌입니다.
반가운 얼굴 중 하나는 김병옥.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보디가드 역으로 눈길을 끌었던 바로 그 배우입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암흑가의 거물 저울 역을 맡아 마음껏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긴 드라마(20부작)다 보니 저울보다 더 지독한 최종 보스도 나중에 등장합니다만... 1회에 나오는 저울의 모습은 꽤 충격적.
아울러 이 드라마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배우는 이재윤입니다.
얼마전 끝난 '야왕'에서 수애 오빠 역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 신예. 아직 신인 태가 가득하지만 버들가지같은 꽃미남형이 아니라 선이 굵은 남성미를 제대로 풍길 줄 아는 배우입니다. 일단 비주얼에선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분은 바로 이 분.
'청담동 살아요'에서 보신 분들은 그냥 인상만 나쁜 성형외과 의사로 기억하시겠지만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그야말로 악마의 친구 역으로 적나라한 악마성을 드러냈던 인물이죠.
이번 드라마에서도 당연히(?) 좋은 역은 아닙니다. 공포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1회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앞으로의 활약이 매우 기대됩니다.
무정도시. 27일 월요일 밤 10시부터 제대로 시작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JTBC 홈페이지 jtbc.co.kr 를 방문하시면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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