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서초동 법원 타운을 가면 약국 편의점보다 변호사 사무실 간판이 더 많다. 건물 하나가 1층의 편의점이나 식당 빼고는 2층부터 7,8층까지 전부 로펌인 경우가 적지 않다.
<서초동>은 그런 건물 한 층씩을 쓰는 작은 로펌(변호사가 2~3명씩밖에 없다)에서 각각 일하는 10년차 이내의 '어쏘' 변호사들 이야기다. 법조계란 매우 좁은 선후배들의 사회다 보니 대략 한두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 변호사도 늘 끼니는 해결해야 하니 밥동무가 필요하다. 그렇게 한 건물에 다니는 이유로 고정 밥동무가 된 젊은 변호사 다섯명의 이야기다.
 
밥동무 이야기다 보니 당연히 식사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것이 처음부터 작가의 의도인지, 연출의 착안인지 모르겠으나 매끼 모여서 다른 음식을 먹는 장면이 '굳이' 나오는데, 그 장면들이 참 좋았다. 물론 아는 분들은 '먹는데 환장한 네가 보니 그렇겠지'라고 하시겠으나, 사실 식구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밥 식, 입 구. 끼니때 모여 밥 같이 먹는 사람이 식구다. 그렇게 매일 '특별한 일 없으면' 같이 수저를 맞대는 사이야말로 진짜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일 수 있다. 그 '밥 먹는 장면'과 이런 저런 장면들을 볼 때, 박승우 감독은 조만간 걸작을 내놓을 것 같다.

 

 
<서초동>은 지금까지 드라마에 주로 나오던 변호사들과는 '다른 변호사들'을 보여준다. 너무 영웅스러워서 부담스럽지도 않고, 방금 구치소에서 자기가 풀어준 마약상습범 재벌 2세와 특급호텔의 퍼스널 스카이라운지에서 로마네콩티로 건배를 나누는 모습도 아닌, 대략 근처에서 많이 보이는 직장인 비슷한 변호사다.
물론 어쏘 변호사라도 변호사인 만큼, 그 또래의 일반 직장인들보다는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영원히 어쏘로 있을 수는 없다. 나이가 차면 개업을 하든, 다른 무슨 길을 찾아 떠나야 하는게 어쏘의 숙명이다. '사장' 변호사의 입장에선 머리가 굵으면 슬슬 인건비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고, 또 한편으로는 '키워서 부려먹을만 하면 나가는' 것도 짜증스러울게다. 그런 애매한 시기의 변호사들이 나오는 건 변호사판 <언젠가는 슬기로울...>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중간쯤 될까.
 
많은 드라마 속 변호사들처럼 <서초동>의 변호사들도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일들을 하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그래도 '변호사라는 것이 원래 돈 받고 의뢰인이 하려는 말을 대신 해주는 기능직'이라고 변명한다. 그래도 <서초동> 속 변호사들은 불쌍한 사람이 더 불쌍해지는게 싫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너무 지나친, 정의감이 넘쳐서 도저히 현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아니라서 좋았다.
 
다만 법정드라마답게 많은 사건이 등장하는데, 그 각각의 사건들이 변호사들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주는 용도로는 적절하지만 시청자의 관극 욕구를 충족해줄만큼 자극적이거나 흥미롭지 않다는 점은 좀 아쉽다. 아무래도 법정드라마라면 사건 자체로 관심을 끌 수 있었어야 하는데, 이것까지도 지나치게 리얼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P.S. 로펌 대표들 중 하나인 김지현이라는 배우에게 눈길이 갔고, 강유석의 생활연기가 돋보였다. 무엇보다 문가영이 이렇게 매력적인 배운줄 지금까지 몰랐다니. 무슨 말을 해도 편들어 줄 것 같은 사랑스러움이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