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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빠담'이 이제 두 회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1일 개국 때부터 종편방송은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외면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드라마 한 편이 나쁜 얘기 한마디 듣지 않고 방송되고 있는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새로 시작하는 방송사에서 '빠담빠담'을 방송하는 것도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개국 첫 드라마를 무엇으로 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나름 돈 깨나 써서 방송하는 드라마인데, 그래도 반향이 꽤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 민간 상업방송인데 시청률이 우선이라는 의견 등등.

하지만 그래도 '빠담빠담'이라는 작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그래도 이런 작품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쉽게 모아졌습니다. 안 그래도 흰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을 방송, 이 작품이라면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방송이 시작되고 나니 묘한 반응이 일각에서 나왔습니다. 쏟아지는 호평 한 구석에서 "왜 이런 드라마는 '종편'에서 해서 사람을 갈등하게 만드냐'는 의견(아니 종편이 무슨 유신 시절의 대남방송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ㅋ ), 그리고 '지상파에서 했으면 20%는 나왔을 걸작인데 방송사를 잘못 만나 참 안타깝다'는 의견 등등.

그런데 과연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빠담빠담'은 빅 히트를 기록했을까요. 현재 '빠담빠담'은 2%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지상파 채널도 아니고, 아직 채널의 존재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서울을 벗어나면 '채널15'라고 자신있게 말할 처지도 아닌 상태에서 이 정도면 대단히 선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써 본 글입니다. <과연 '빠담빠담'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그만치 달라졌을까?> 미리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는 의견입니다. 

시작합니다.



얼마 전, 드라마 <천일의 약속>(SBS, 2010)을 집필하던 김수현 작가가 트위터에 올린 한마디가 화제가 됐다.

‘이미숙이 수애 남매 생모일 것이라는 점치기가 있었던가 본데 하하’, 이어서 ‘이젠 사촌 오빠 이상우가 수애를 좋아한다는 얘기가… 좋아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사촌 누이동생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배려가 전부, 숨겨놓은 카드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그리 아시길’이라는 내용이었다. <천일의 약속>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미숙은 지형(김래원)을 끝까지 애닯게 사랑하는 향기(정유미)의 엄마 역으로 출연했다. 만약 자신의 딸을 버린 지형에게 서연(수애)이란 연인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찾아가서 어떤 행패를 부렸을지 모를 캐릭터였다.

물론 이 드라마가 <천일의 약속>이 아니고, 작가가 김수현이 아니었다면, 이 분위기의 드라마에서 ‘알고 보니 이미숙이 어려서 수애 남매를 버리고 달아난 생모였다’는 식의 진행은 충분히 가능했을 거다. 최근 몇 년간 지상파 드라마를 주의 깊게 보아 온 시청자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그걸 알기 때문에 김수현 작가도 일단 ‘하하’ 하고 반응했던 것이다.

드라마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가 종편 채널 JTBC에서 방송되고 있다.

면면이 일단 화려하다. 국가대표 작가 노희경과 <아이리스>(KBS2, 2009)의 김규태 PD가 힘을 합쳤고, 정우성 한지민 김범이라는 출연진도 화려하다. 이 드라마는 현재 전국 기준으로 2퍼센트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요즘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이하 <빠담빠담>)가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빠담빠담>의 기획안은 각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국 데스크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작품을 거부했다. ‘장사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빠담빠담>은 전통적인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 같지는 않은 드라마다. 첫 장면부터 주인공 강칠(정우성)이 교수대에 목이 매달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 다시 살아난다. 사건의 물리적 순서도 불분명하다. 귀휴로 교도소 밖에 나가 있던 강칠과 국수(김범)가 어느새 교도소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꿈인지, 환각인지도 분명치 않은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신경 말초를 박박 긁는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강칠에게 이어지는 기적이 과연 환상인가, 아니면 자칭 천사인 국수가 일으키는 기적인가를 궁금해 한다. 그러면서 10대 시절 교도소에 들어가 16년 옥살이 끝에 출감한 강칠이 여주인공 지나(한지민)를 만나 조금씩 삶의 기쁨에 눈떠 가는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과연 <빠담빠담>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10퍼센트대의 시청률을 올리며 선전했을까.

노희경 작가의 전작 <그들이 사는 세상>(KBS2, 2008)도 완성도에서는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현빈과 송혜교라는 주인공의 무게 역시 <빠담빠담>에 비해 못할 것이 없다. 극 중 사극 제작 신(<그들이 사는 세상>은 드라마 PD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다)에서 단 1회를 위해 사극 세트를 세웠다가 바로 불태워버렸을 정도로 투입된 물량도 <빠담빠담>을 넘어섰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가 최고 시청률 7.7퍼센트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거부한 시청자들이 과연 <빠담빠담>은 받아들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빠담빠담>의 현재 시청률은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유료방송 채널이라는 약점과, 종편에 대한 일각의 반감을 극복하고 이만한 수의 시청자들이 이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고 있다는 게 놀랍고 반갑다. ‘화학조미료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주방에서 MSG를 쓰지 않는 식당은 며칠 못 가고 망한다는 것을. 드라마 시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수라도 진짜 음식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끝>



입맛에 대해 얘기를 하고 나니 이런 이야기가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경영 압박이 심해지면 퀄리티를 훼손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을 100% 부인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최대한 초심을 잃지 않고, 이 기조를 간직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빠담빠담' 19회와 20회. 마지막까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빠담빠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사실 결말은 저도 모릅니다.;;)



다음주부터는 송창의, 한혜진, 조재현, 박건형 주연의 '신드롬'이 방송됩니다. '브레인'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뇌수술을 통해 인간의 지각을 바꿔 놓으려는 위험한 시도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김성령이 송창의와 모자관계로 나온다니... 이건 좀 가슴이 아프군요. 아직 너무 젊으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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