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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이 터졌습니다. 한국 영화의 위기, 위기 할때 영화계가 "그래도 '강철중' 만큼은..."하는 기대를 걸었고, 또 반드시 터져야만 하는 영화였죠. 강우석 감독이나, 그의 제작-투자사 시네마서비스 입장에서도 그랬고 한국 영화계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설마 이건..." 했던 작품입니다. 그만큼 절박했다고 할 수 있죠. 사정을 보시면 이해가 갑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에서 제작 혹은 투자한 작품들은 이랬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궁녀' '아들', '황진이', '싸움', '신기전', '모던 보이', '뜨거운 것이 좋아',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그리고 '밀양'과 강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강철중'이었죠.

이중 '아들', '황진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싸움',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뜨거운 것이 좋아'가 줄지어 흥행에서 쓴 맛을 봤고 '모던 보이'와 '신기전'은 이렇다할 이유 없이 개봉이 한없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결과물에 대해서도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는 상태입니다. '밀양'과 '궁녀'가 간신히 손해를 안 본 정도라면 더 할 말이 없죠.

그러니 '강철중'이 무너졌으면 아예 시네마서비스가 문을 닫거나 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던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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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강우석 감독이 너무도 자신만만했던 '한반도'에서 '실미도'의 신화 재현에 실패한 터라 - 이 영화는 3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긴 했지만 누구도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를 꺼리는 아주 드문 사례입니다. 초반 '밀어붙이기'를 통해 관객 동원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동시에 한국 영화에 대한 신뢰도를 그만큼 떨어뜨린 영화였죠 - 가장 필요한 순간에 역시 가장 자신있는 무기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

뭐니뭐니해도 강우석 감독에게 사람들이 바라는 건 역시 코미디죠. 그 중에서도 역시 경찰 코미디, '투캅스' 시리즈와 '공공의 적' 시리즈가 제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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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별다른 설명도 필요없습니다. 2002년 '공공의 적'에 나온 강철중 형사와 강동경찰서 강력반이 그대로 재현되는데 단지 이번의 나쁜놈은 대 조직의 보스 이원술(정재영)입니다.

거성그룹이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회장이 된 원술은 고교생 싸움패들을 특채해 조직원으로 키우고, 겁없는 아이들을 속칭 '칼받이'로 이용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형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사표를 던지려던 강철중은 조직들의 극악한 행태에 분개해 사건 현장으로 뛰어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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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플롯이나 스토리에 큰 의미를 두게 되지는 않습니다. 처음 설정 때, 대단히 치밀하고 악랄한 두목으로 설정됐던 이원술이 어찌 보면 너무 간단히 무너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영화의 강철중은 별 고생을 하지 않습니다.

(칼까지 맞는데도 별 고생 아니라면 좀 미안한가요?) 아무튼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사소한 스토리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의미를 둔 게 아니라 이미 관객들의 애정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강철중이란 매력적인 캐릭터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웃음을 만들어내느냐에 집중하고 있고,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특히 강철중의 딸, 강미미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관객들이 배를 쥐고 웃게 하는 동안에도 어른답게 최소한의 '할 얘기'까지 빠뜨리지는 않습니다. 경찰보다 조폭이 더 폼난다고 생각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 아이들을 이용해 폭력 도구로 사용하는 조폭 두목들에게 '누군가는 그러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는 메시지 말입니다.

아무튼 설경구는 강철중 역할을 통해 뭐가 연기고 뭐가 연기가 아닌지를 헷갈리게 하는 명연기를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정재영은 '할만큼 했다' 정도가 적절한 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정재영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 '아는 여자'나 '바르게 살자', '귀여워' 를 생각하면, 그 이상의 것 - 예를 들자면 다양한 감정이 담긴 표정연기 - 을 요구하는 것도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죠. 진짜 건달 연기라면 '귀여워'에서 매우 훌륭하게 해 냈지만 이번 연기는 그런 원조 건달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고... 성과라면 강철중이 전화를 안 받는 장면에서 진짜 악당처럼 보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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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과거의 성공적인 조연들을 불러낸 데 대해서 자기복제니 뭐니 하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럼 대체 시리즈 영화의 장점이 대체 뭐란 말입니까. 그리고 '공공의 적' 하면 강철중 다음엔 역시 치사한 조폭 연기의 달인이신 산수 이문식 선생인데, 당연히 산수를 보는 즐거움을 관객에게 줬어야 정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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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는 '공공의 적 1-1'이라는 제목으로, 강철중을 검사로 만들었던 '공공의 적 2'를 무시해버리고 다시 '공공의 적'의 공식 속편 자격을 이 영화에 부여하는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탓인지, 각본을 쓴 사람이 장진 감독으로 바뀐 탓인지 강철중은 좀 변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알겠지만 1편의 강철중은 상당히 위험한 캐릭터였죠. 빼돌린 돈이며 훔친 마약 때문에 어지간히 고민도 하고, 교통과로 쫓겨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강철중'에서의 강철중은 거의 슈퍼 히어로 캐릭터입니다. 무슨 짓을 하건 걱정이 안 되는 수준으로 안전한 캐릭터가 되어 버렸죠. 무슨 말이냐면, 1편의 강철중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캐릭터였지만 이제 강철중 형사는 '공공의 적' 시리즈의 언저리 안에서는 절대로 죽지 않을 불사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관객을 안심시키는 캐릭터가 되어 버린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서민 영웅'의 캐릭터를 타고 태어난 터라 매편 죽도록 고생만 하고 별다른 즐거움은 누리지 못할 것 같으니 절로 혀를 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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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강철중'은 몇편이나 만들어지게 될까요?

다행스러운 것은, '공공의 적 2'에서의 설경구를 볼 때 어째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번 영화에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입니다. 이 다음의 '강철중' 영화에 대해서도 일단 설경구의 입장은 '작품이 좋으면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죠.

그렇다면 한 두가지 점만 조심하면 우리는 수시로 '강철중'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연구 부족으로 설경구가 하고 싶을만한 대본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는 상황, 그리고 두번째는 우리나라가 갑자기 좋은 나라가 되어 더 이상 공공의 적이라고 볼만한 존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는 상황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써 봤습니다.)

세번째는 이 영화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 설경구가 '공공의 적'의 속성을 띄게 되는 상황입니다. 이건 이 영화의 성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공공의 적' 시리즈의 '적'들은 모두 사회적인 강자이면서 악한입니다. 즉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남들보다 편히 잘 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들을 희생시키려는 사람들이죠. 즉 '잘나고 못된 놈' 들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악당들은 고급 양복과 넓은 사무실, 좋은 집과 좋은 외제 차 등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잘 살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방식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저 놈들은 뭔가 부정한 짓을 했기 때문에 - 실제로는 별로 나보다 나을 게 없으면서도 - 저렇게 잘 나가는 것'이라는 약간 비뚤어진 시각이죠. 어찌 보면 아주 노골적으로 사회적 편가르기를 시도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만약 설경구가 호화 별장을 산다든가, 향정신성 의약품과 관련된 시비를 일으킨다든가, 엄청난 미녀 스타와 염문설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동안 나왔던 '공공의 적'들이 갖고 있던 악덕을 보여준다면, 그는 더 이상 강철중 역을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이건 어찌 보면 설경구라는 배우의 운명일 수도 있겠군요. 물론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모습으로 봐선 이런 건 기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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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유망주 이한이 김남길(가운데)로 이름을 바꾼 모양이군요. 그럴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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