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에 대한 판단은 꽤 엇갈립니다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간 건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이 글은 이 영화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이 영화 아직 못봤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열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대사 "He's just not that into you"는 드라마 속에서 여자들이 일반적인 남자의 생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주는 소재로 쓰였죠. 여자들은 늘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살다 보면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얼마 전 한 여자 후배에게 일어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후배는 20대 후반. 소위 명문대를 나왔고 다른 일에서는 무척이나 야무지고 똘망똘망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하루는 소개팅을 했습니다.
소개팅을 했는데 제법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왔답니다. 게다가 매너가 짱이었다는군요.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호스트 역을 맡은 김주혁도 "프로 호스트들을 만나 보니 인물은 크게 대단한 게 없었다. 역시 매너는 끝내 주더라"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매너, 중요하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남자는 식사와 차로 이어지는 첫날 소개팅 풀코스를 무난히 소화하고, 후배의 전화번호를 알아 갔습니다. 물론 조만간에 다시 보자는 립 서비스도 했죠. 하지만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좀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소개팅의 상식 중에 상식인 일을 이 후배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 일주일째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자 후배는 주선자를 닦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전화를 한다더니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거냐. 그 남자 어떻게 된 거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
죄라면 후배를 좋게 보고 남자 하나 붙여주려 했던 죄밖에 없는 애꿎은 주선자는 또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봅니다. 물론 이 이후의 상황은 불보듯 뻔합니다. "요즘 매우 바쁘다. 여유가 생기면 연락하겠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대답입니다.
하지만 후배는 이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전화를 기다리다가 급기야는 친구들에게 이 남자를 씹어대기 시작합니다. "뭐야, 처음부터 기대를 갖게 하질 말던가. 전화한다고 해 놓고 왜 전화를 안 해. 남자들은 이상해. 그놈만 이상한 걸까? 하여간 이상해."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웃음이 터져나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열심히 보신 분이라면 아마 이와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보셨을 겁니다. 특히 시즌6의 4번째 에피소드, <Pick-A-Little, Talk-A-Little> 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캐리의 애인 잭 버거가 네 여자와 담소를 나누는데 미란다(혹시 모르시는 분이라면 사진 맨 오른쪽)가 얼마전의 만족스러운 데이트 이야기를 합니다.
첫 데이트에서 키스를 두 번이나 했는데 남자가 유감스럽게도 다음날 바쁜 일이 있어서 그냥 갔고, 곧 전화를 한다고 했는데 지금껏 전화고 이메일이고 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데이트때 그렇게 좋았다면 곧 전화가 오겠지"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하지만 잭 버거는 '진실을 원하느냐'고 묻고, '그 남자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것 뿐(He's just not that into you)'이라고 말해줍니다.
이 대사는 나중에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토리 어드바이저였던 그렉 버렌트 (Greg Behrendt)가 쓴 연애 지침서의 제목이 될 정도로 유명한 한마디가 됐습니다(그리고 당연히 이번엔 영화의 제목이 됐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상황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여자들은 의외로 잘 모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후배의 이야기를 전해 준 다른 후배(역시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스펙입니다)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역시나 "그 남자가 좀 이상한 사람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설명했죠.
"그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 남자가 소개팅에서 **이(소개팅을 했던 후배의 이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했을까?"
소개팅이라는 건 참 묘하게 예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일단 주선자의 얼굴을 생각해야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온다고 해서 마구 행동해선 안됩니다. 최대한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거죠.
이런 예의바른 행동을 자기에 대한 지나친 호감으로 착각해선 곤란합니다. 첫날은 누구나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죠. 그 예의에는 '상대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잘 들어가셨나요' 정도의 귀가 확인 문자도 이 예의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기껏 잘해주더니 전화도 안 거는 이상한 놈'이라고 상대를 매도하는 것은 대단히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첫날의 그 남자는 여자에게 호감을 표시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날 약속을 하는지 마는지'에 달려 있는 거죠.
물론 아주 드물게 손가락이 부러졌다든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든가, 회사가 망했다든가 하는 일로 전화를 못 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면 남자는 절대로 소개팅에서 만난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전화를 생략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바로 다음날 전화를 걸게 되고, 제아무리 선수라 해도 일주일을 넘지 않습니다. (선수일수록 전화를 늦게 하는 경향이 있죠.^^)
결론입니다.
첫 만남 이후에 남자가 전화를 걸어오기까지의 기간은 그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를 확인해주는 시간입니다. '첫날'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첫날 아무리 잘 대해 줘도 그건 그 남자의 일상적인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은 이럴 때 여자 쪽의 친구 중에 '그럼 니가 전화를 해보면 되잖아'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친구는 멀리 하는게 좋습니다. 물론 가끔은 이런 식으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런 전화가 걸려오는 순간 남자는 그나마 있던 정(?)까지도 떨어지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여자를 스토커 취급하고 경계 태세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여자에게 매력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더욱 그렇죠.
만약 정말로 그 남자에게 전화를 한번 걸어보고 싶어진다면, 최소한 열흘은 기다려 보는 게 좋습니다. 열흘이라면 어떤 남자라도, 호감을 느낀 여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시간입니다. 열흘 내에 전화하지 않는 남자는 1년이 지나도 전화하지 않습니다(어쩌다 술을 한잔 먹으면 전화할지도 모릅니다. 이건 또 다른 심각한 문젭니다. 절대 넘어가면 안됩니다).
따라서 열흘이 지난 상태에서 전화를 하는 건 '밑져야 본전'인 상태가 되는 겁니다. 이때도 뜨뜻미지근한 상태라면 조용히 마음을 접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이런 전화는 하지 않는게 더 좋죠. 정말 제법 매력있는 남자라면, 이런 전화 한통에 왕자병이 더욱 심해질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p.s. 요즘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남자들이 나약해져서 '여자들이 빨리 반응을 안 보이면 그냥 발 뺀다'는 친구들이 꽤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고, 전화도 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도 있더군요.
뭐 세상이 좋아졌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남자라면 진득하게 달려드는 맛이 있어야지, 그런 찌질이들을 뒀다 뭐에 쓰겠습니까. 그런 남자라면 오히려 연결 안 되는게 여자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자기 앞으로 건물 두채 쯤 있는 남자라면 적극적으로 달려들 만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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