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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 서서히 인기에 불이 붙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하녀들'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나라가 선 지 1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상황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사회가 아니고 보면 10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닙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두메산골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새 나라가 섰다는 사실도 최신 뉴스일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나라의 주역들이 가장 경계할 일은 아무래도 전 왕조의 후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동태 파악입니다. 백제가 망한 뒤에도 백제의 강역에서 부흥운동이 펼쳐졌고, 고구려도 부흥운동이 일어난 데 이어 그 땅에서 고구려의 후신임을 주장하는 발해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자료를 보면 태조 이성계는 공양왕을 비롯한 고려 왕실의 후예들에게 상당히 관대한 듯 하지만 그 아랫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죠. 자신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조선이 망한 뒤 고려 왕씨들이 어떤 운명을 걸었는지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름은 바로 '왕 거을오미' 입니다.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 1393~) [가장 극적으로 살아남은 고려의 후예]

 

드라마 하녀들에는 조선 초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반목하는 사이 고려를 수복하려는 왕씨들과 그 유신들로 구성된 만월당이라는 비밀 조직이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려가 망한 뒤 두문동에 들어간 72명의 고려 유신들이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는 기록은 있으나, 누군가 조직적으로 고려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운동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구려의 안승이나 백제의 귀실복신 같은 인물은 고려가 망한 뒤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 고려 왕씨의 후손들은 조선 건국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집권 직후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손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공양왕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둔 데 이어 태조 2(1393) 526일에는 거제도를 비롯한 낙도로 유배가 있던 공양왕의 후손들을 육지로 나오게 해 생업을 주고 안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들 중 왕강은 위화도 회군 당시 이성계에게 동조한 공이 있어 조선 건국 뒤에도 벼슬을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계 본인보다 정도전을 비롯한 공신들은 훨씬 더 강력하게 왕씨들을 처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을 내버려 둘 경우 새로운 왕조에 해가 될 것이라는 상소가 빗발쳤고, 마침내 1394226일에는 이성계가 직접 보호하던 왕강와 왕승보 등도 귀양가는 몸이 되었다. 이어 414일 윤방경 등을 강화에, 손흥종 등을 거제에 보내 왕씨 일족을 단속하라는 명을 내렸다. 말인즉 파견되는 관리가 재량껏 단속하라는 것이었으나, 조정의 여론을 감안하면, ‘재량껏이란 씨를 말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삼척에 귀양 가 있던 공양왕도 이때 아들과 함께 처형됐다.

 

야담집 추강냉화에는 당시 학살의 풍경이 기록돼 있다. 파견된 관원들이 왕씨들에게 육지에서 떨어진 낙도에 모두 모여 살게 해 주겠다며 거짓 포고령을 내려 포구에 모은 뒤, 배에 싣고 가다가 가라앉혀 몰살시키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이 이성계의 꿈에 나타나 죄없는 내 후손들을 몰살시키니 네 아들들도 뒤가 좋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어 426일에는 아예 왕씨라는 성의 사용 금지령이 내려진다. 본래 왕씨면 어머니의 성을 쓰고, 사성(賜姓)으로 왕씨를 받은 자들도 본래의 성으로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왕씨들이 전()씨나 옥(), ()씨로 성울 바꾼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다들 한자로 보면 자가 들어 있는 글자들이다.

 

공양왕의 형인 왕우는 태조의 8남 방번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귀의군에 봉해진 뒤, 이런 변란 속에서도 왕씨의 제사가 끊겨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목숨을 보존했다. 하지만 1397년 왕우가 죽고 장남 왕조가 귀의군의 칭호를 물려받은 뒤, 이듬해인 1398 826일엔 귀의군 왕조와 그 아우 왕관이 죽었다는 기록이 실렸다. 이날은 1차 왕자의 난으로 방번-방석 형제와 정도전, 남은 등이 주살당한 날이다. 방번이 죽었으니 그 처남들인 왕조와 왕관을 더 이상 살려 둘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 왕씨가 사라졌다.

 

하지만 태종 13(1413) 11, 고려 왕족인 왕휴의 서자 왕거을오미가 발견되어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왕휴가 이밀충이란 사람의 누이를 첩으로 삼아 낳은 아들인데 20세가 되어 호패를 마련하려는 것을 지신사 김여지가 조정에 보고한 것이었다.

 

 

 

관계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 공초가 있었으나 태종은 역성혁명이 일어나도 전조의 자손들을 아예 멸족시킨 경우는 없었다. 특히 태조의 경우 왕씨들을 몰살시킨 것이 본의가 아니었고, 당시만 해도 내가 나이 어려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제 내가 왕씨의 자손들을 보호하겠다며 거을오미의 석방령을 내렸다. 이후 문종 1(1451)에는 왕씨의 사용 금지령을 해제하고 임금이 직접 "왕씨의 후손들을 찾아 조상의 제사를 지내게 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오늘날까지 개성 왕씨의 후손들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가 망한 뒤 부흥의 움직임이 공식 문서에 기록된 바 없는 것은 아마도 이런 가혹한 박해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왕거을오미도 왕씨에 대한 박해가 끝났음을 알린 인물이기는 하나, 관직이나 토지를 주어 잘 살게 했다는 기록 역시 없는 것을 보면 무슨 특전이 주어진 것은 아닌 듯 하다. 문종 때 왕씨의 사당인 숭의전을 짓고 왕우지를 발탁해 왕순례라는 이름을 내린 뒤 숭의전 부사로 봉해 토지와 집을 주어 조상의 제사를 모시게 한 것이 완전한 사면의 첫 기록이다.

 

이렇듯 조선 왕조가 왕씨를 받아들이는 데 대략 건국에서 60년이 걸렸다. 다시 한번 망국의 비애를 느끼게 된다.

 

P.S. 고려 왕씨에서 비롯된 성씨 중에는 위에서 거론한 성씨 외에 개성 내()씨가 있다. 일설에 따르면 조선 초 검문하던 군관이 무슨 성씨냐고 묻는 말에 당황한 왕씨 일족이 ?”하고 반문하는 바람에 내씨가 되어 살아남았다는 것인데, 믿을만한 이야기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개성 내씨 이야기는 참 코믹합니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았다니 다행이라는 생각.

 

뭐 역사의 만약이란 얘기해 봐야 그냥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지만, 왕우와 이성계가 사돈을 맺을 때 하필 방번과 왕우의 딸을 결혼시킨 것이 묘한 상황입니다. 이성계가 후계자로 삼으려 한 아들은 방번과 어머니가 같은 방석이었으니, 그대로만 됐으면 왕우의 집안은 누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왕자의 난으로 태종 방원이 방번-방석 형제를 처지했으니 왕우의 자손들은 두 겹의 역적이 된 셈이죠. 망국의 왕손인데다 난신적자의 집안... 이것이 팔자 소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끔 전씨(全이든 田이든) 중에 고려 왕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속설에 따르면 가능성은 꽤 있는 편입니다. 한때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의 측근들도 넌즈시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비슷한 경우를 부여 서씨의 경우에도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왕성은 본래 부여(夫餘)씨인데, 나라가 망한 뒤 여(餘)자의 일부를 변형해 여(余)씨나 서(徐)씨로 성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왕씨의 후손들은 이렇게 경기도 연천의 숭의전(문종 때 세워진 왕씨들의 사당)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니, 굳이 누가 진짜 고려의 후손인지를 따질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하녀들'은 태종 초, 함흥차사가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시작했으니 왕씨의 후예들은 모조리 참살당한 뒤의 상황입니다. 그래도 고려 부흥의 음모가 등장하니 왕씨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하녀들'의 등장인물 중에는 누가 고려 왕실의 후예일까요. 뭐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눈치 빠른 분들은 대략 짐작을 하실 듯 합니다. 당연히 비밀조직 만월당의 주역들 중에 있겠죠.^^

 

('하녀들'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미 김치권[김갑수]와 아들 은기[김동욱]가 고려 왕실의 자손이고, 무명[오지호]은 이방원의 아들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이 글은 그 전에 쓰여진 글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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