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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은 사골칼국수의 고향이다. 대학로에서 내려오면 혜화동 로타리에 떡 보이는 혜화동칼국수집이 있고, 그 뒤에는 전직 대통령 단골집이었다는 국시집이 있고, 반대쪽으론 골목 안 가정집에 숨어 있는 손국수집이 있다.
 
전부 사골 머리 양지 다 때려넣고 푹푹 삶은 뽀얀 소고기 국물 칼국수다. 이 동네에선 닭칼국수나 바지락 칼국수는 취급하지 않는다. 모두 다 맛있고, 조금씩 미묘하게 다르다.
그런데 언젠가, 맛집 컬렉터인 L감독님이 한 말씀. "명륜 손칼국수 가봤어요? 혜화동 언저리를 넘어 서울에서 최고에요."
그렇다면 가봐야지, 했는데 그게 만만한 미션이 아니었다. 일단 저녁 장사가 없고, 주말에도 쉰다. 주차도 안된다(이번에 보니 가게 입구에 2대 정도 가능). 난관.
 
그래서 당초 생각보다 엄청 늦어서야 가 볼수 있었다. 설렁탕과 칼국수. 두 메인의 국물은 같다고 한다. 혹시 문배동 육칼처럼 반반 메뉴는... 없다. 그냥 미련이 남으면 공기밥을 시켜서 칼국수에 말아 먹을 것. 
수육/문어 반반 주문. 문어를 주문하니 초장이 나오고, 수육이 나오니 간장이 나오는데 송송 썬 마늘종을 반찬으로 주는게 특이하다. 물론 입에 같이 넣고 씹으면 한국인인 이상 싫을 리가 없다.
 
 
 
문어는 평범하게 그냥 맛있는데(미안하다. 포항 분들의 손을 거친 문어를 먹은 뒤로 다른 문어들은 그냥 평범하게 느껴진다), 수육에서 눈이 확 뜨인다. 꽤 두껍고 모양없이 그냥 대충 썬 고기인데 기가막히게 부드럽고 즙이 죽죽. 수육을 더 시킬걸!
대망의 메인 칼국수. 진하다. 그리고 진짜 칼로 썬 칼국수다. 후루룩이 아니라 호로록 호로록. 간이 깊이 배어 있다. 살강살강 씹히는 파와 부스러기 수육의 조화도 그만. 완벽하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간이 약간 세다. 이날만 그랬는지, 원래 그랬는지 모르겠지만(많이 가 보신 분들은 원래 그 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물을 타서 먹게 되더라도 또 가고 싶은 맛. #송원섭맛집 #명륜손칼국수 #간판을못찍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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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 남쪽의 하카(客家). 하카라면 북방에서 내려온 중국의 유태인. 주윤발 장국영.
 
하카는 많이 들어 봤는데 하카식 음식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고, 사실 그냥 이름에 끌려 방문. 근데 그런거 있잖아 왜. 오래된 식당 아닌데 간판만 봐도 뭔가 내공이 느껴지는 거.
(어쨌든 이 식당은 맛있지만 하카식은 아니었습니다.^^ 중국에는 진짜 하카식 식당들도 꽤 있다고.)
 
 
 
오이무침은 흔한 메뉴지만 살짝 고수맛이 섞인 데서부터 양념의 섞임이 상큼하기 이를데없고(물론 오이를 썰지 않고 부숴 주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았겠으나 그건 아니었다), 공심채는 흔히 먹듯 숨을 죽인 맛이 아니라 줄기의 힘을 탱탱하게 살려 아삭아삭한 맛이 별미다. 처음 두가지 채소에서 기대 폭등.
 
 
미리 주문한 오리는 광동식이라기에 기대했는데 북경식과 사실상 다를 게 없어 살짝 실망. 하지만 맛은 대박. 오이채와 파채를 넣고 전병에 싸먹는 바로 그 맛이다. 살코기를 먹고 나면 남은 살점이 붙은 뼈를 튀겨낸 뒤 큐민 등등 양고기 양념에 굴린 느낌으로 주는데, 살짝 느끼한 오리 맛을 없애 준다. 맛있다.
사천볶음밥(중국식 햄이 들었다. 이름과 달리 맵지 않음). 버터 탕수육, 창펀 모두 탄탄한 내공을 자랑하는 맛. 샤오롱바오는 내 기준으로는 살짝 국물이 좀 과하게 기름진 맛이긴 했는데 다들 맛있다고 난리.
아무튼 시그니처 오리는 가성비를 넘어 아주 훌륭하고, 나머지 요리들도 뺄 것 없이 만족스러움. #송원섭맛집 #오랜만에흡족한차이니즈 #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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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여수댁(혹자는 여수집이라고도 한다). 덕자찜 한번 먹자는 따거의 말씀에 우루루 모였다. 병어찜이나 덕자찜이나 대개 갈치조림이나 별 다를 것 없는 국물에 푹 졸여 국물도 떠 먹고 살점도 들어 먹고 하는 게 일반적인데, 경리단길 시장의 여수댁은 하얀 덕자찜을 낸다.
왕년에 민어집으로 유명했던 팔판동 병우네(코로나 지나고 보니 어디론가 사라짐)에서 먹어 본 뒤로 하얀 덕자찜은 처음이다. 덕자 사진 옆의 전화기는 크기 비교를 위해 누군가 내민 것.
50cm는 되어 보이는 덕자병어를 홍고추 대파 썰어 넣고 담백하게 잘 쪄냈다. 두터운 흰 살을 떠내 양념 간장 뿌려 파와 함께 입 가득 넣고 씹으면 고소하면서도 달큰한 맛이 일품.
물론 비싸서 아무 때나 먹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럿이 한입씩 먹는 재미가 있다. 메뉴판을 보면 덕자 외에도 가오리 민어 등 고춧가루 넣지 않은 생선찜이 전문. 서울에서 여수식 맛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있다.
 
 
 
추가로 생선구이. 서대, 좀 작은 민어, 조기가 나온다. 괜히 이름만 드높아서 여수 가는 사람들이 먹어 보고 실망하는 군평선이는 필요 없다. 앞으로도 여수 가시는 분들, 맛이 없는 것은 아니나 뼈만 많고 살은 한 숟가락인 군평선이를 그 가격에 먹느니 다른 맛난 생선들을 잔뜩 드시길. 
 
모두 살짝 반건조해서 구운거라 고소한 풍미가 그만. 여기에 닭똥집 제육 같은 기본 안주들이 매우 충실하고, 일단 자리에 앉으면 나오는 기본 찬에 파김치, 돌김, 돌게장이 훅 달려든다.
 
 
돌게장(사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올 때 살짝 눈짓을 하면 양푼에 밥 비벼 먹으라고 계란후라이까지 같이 주시는 센스가 일품. 후식으로 나오는 구운 가래떡에 설탕 궁합도 매력적이다.
단 일견 허름해 보이는 가게의 분위기에 비해 비싼 집(정확하게 말하면 비싼 재료 취급 전문점. 내장이 화려했다면 더 비쌌겠지)이라는 건 각오해야 할 듯. #송원섭맛집 #경리단길 #여수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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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2차 시기가 한번 훑고 지나간 뒤로 면역이 약화됐는지 잔병이 끊이질 않는다. 이 몸을 너무 오래 써서 그런가.
그런 사이에도 간신히 가본 캐롤스. 간판부터 닐 세다가의 오 캐롤을 연상시키니 전체적으로 아메리칸 다이너, 가까이는 한때 국내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TGIF나 베니건스를 연상시키는 '정통'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압구정 코코스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패밀리 레스토랑의 전성기가 80년대 말에서 90년대였던 만큼, 그 세대에 맞춘 듯한 BGM이 제격이다. Chicago의 You're the inspiration과 Peter Cetra의 Glory of Love에 맞춰 멜론 절반만한 잔에 나오는 프로즌 스트로베리 마가리타 주문. 크어. 역시 격에 맞는다.
시그니처 비프 립 바베큐, 베이비 백 립(돼지), 애피타이저 샘플러, 프라이드 치킨 샐러드가 잇달아 등장. 옛날 그 맛이기는 커녕 훨씬 발달한 첨단의 맛이다. 바베큐 소스에 푹 전 소갈비와 돼지갈비를 버터에 지진 빵 사이에 끼우고 코울슬로와 할라피뇨를 얹어 먹으면...
이건 정말 알기 쉬운 직설적인 맛. 0.01초만에 뇌에 쨍하게 전달되는 그 맛. 헤어날 수 없다. 샘플러에는 코코넛 쉬림프, 모짜렐라 튀김, 어니언 링 등이 향수를 자극하는데 찍어먹는 소스가 청양고추 마요네즈라면 이것 또한 더 바랄게 없다.
 
흥이 나서 좀 달릴까 했더니 업장 마감이 10시고 건물 조명이 꺼지는 시간이 9시50분쯤이니 참고하시라는 안내. ㅠㅠ 이게 아마도 유일한 약점일듯 싶으니 한번 추억의 안주로 달리실 분들은 좀 일찍 가셔야 할듯. 개인적으로 그저 먹고 마시는 걸 넘어서, 매장에서 좀 살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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