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천년 전, 일련의 고수들이 천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살수단(암살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천년 동안 역사 뒤에서 암약하며 세상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조직의 핵심이었던 한 암살자가 그들의 독선에 의심을 품고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때부터 중원은 혈겁에 휩싸이게 된다....-

네. 아주 무협지적인 구상이죠. 그리고 실제로, 영화 '원티드'는 너무도 전형적인 무협지입니다. 단지 칼이나 주먹 대신 총을 주로(칼을 안 쓰는 건 아닙니다) 쓴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티드'의 주인공 웨슬리(제임스 매커보이)는 직장에서 뚱뚱한 여자 상사에게 아무리 '갈굼'을 당해도, 여자친구가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워도 아뭇소리 하지 못하는 천하의 찌질남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여신같은 폭스(안젤리나 졸리)가 나타나고, 그의 일상은 전쟁터가 되어 버립니다.

어찌어찌하다 자신에게 천하제일살수(죄송합니다. 이런 표현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보니...)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웨슬리는 그때부터 무공을 익혀 정의 실현에 나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총을 쓰는 무협지적 영상의 역사는 아마도 허관걸 주연의 '루안살성'에서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마크 다카스코스의 '크라잉 프리맨'은 이 영화의 할리우드 버전으로 두 작품 모두 일본 만화 '크라잉 프리맨'을 원작으로 하고 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일련의 영화 이후 사라진 것 같았던 총 쓰는 무협영화는 총과 무공을 조화시키지는 않았던 '매트릭스'를 슬쩍 비껴가 '이퀼리브리엄'에서 꽃을 피웁니다. 심지어 건 카타(Gun Kata)라는 마니아적인 용어도 남겼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티드'에서 총을 사용한 무공은 '이퀼리브리엄'을 넘어섭니다. '뻥 중의 개뻥'으로 꼽힐 만한 총알 곡선으로 쏘아 보내기를 비롯해 수 킬로 밖에서 저격하기, 달리는 전철에서 쏘기 등 만화 '크라잉 프리맨'이나 '고르고 13'에서나 보여졌던 놀라운 비기들이 속속 드러나 관객을 신나게 합니다.

여기에 그가 최강의 킬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쌓는 수련, 찌질이에서 진짜 남자로 거듭나는 설정, 그를 단련시키는 다양한 고수들의 등장 등 너무도 무협지적인 도구들이 매우 완성도 높게 구현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식의 시도를 무협의 확장으로 생각하며 유쾌하게 받아들일 관객들에겐 '원티드'는 매우 신선하고 즐거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관객들에겐 허튼 소리와 뻥으로 점철된 황당무계한 영화로 보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영화는 일단 '남는 것(혹은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상당수의 한국 관객들에겐 이런 영화를 받아들일 공간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에는 무거워지려면 얼마든지 무거워질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른바 운명의 베틀(운명의 여신들이 짜는 베에 의해 인류와 개인의 운명이 정해진다는 신화는 그리스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습니다)이 결정하는 사람을 리더가 지목하면 휘하의 킬러들이 그 사람을 척살한다는 것은 상당히 은유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있지만, 베틀이 짠 베 위에서 2진수로 암호화 된 한 사람의 이름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베 위에서 올 수를 세어 특정인의 이름이 나타난 부분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건 애당초, 처음부터 그 베를 해석하는 사람이 죽일 사람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사적인 정의 구현에 나선다는 스토리는 수없이 많은 영화에 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중의 어떤 주인공도 웨슬리처럼 "내가 죽이려는 사람이 진짜 죄인인지 어떻게 알아?"라는 고민을 단 3분만에 해치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 그따위 고민으로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않겠다'는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의 스타일인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해 47세. 세계 문화의 변방 중 변방인 카자흐스탄 출신의 감독이, 그것도 중앙 아시아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티무르'라는 이름의 감독이 이렇게 할리우드의 메인스트림에 뛰어들어 세계 액션 영화의 조류에 몸을 싣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이 감독은 러시아 영화인 2004년작 '나이트 워치'와 2006년작 '데이 워치'를 성공시킨 결과 '원티드'로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이른바 만화적인 상상력에서는 기존의 할리우드 감독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두번째 할리우드 영화가 은근히 기대됩니다.


p.s. 물론 다시 한번 경고하지만, '오래 오래 여운이 남는' 영화를 원하는 분들은 절대 보시면 안되는 영화입니다. '이퀼리브리엄'이나 '콘스탄틴'에 열광하신 분들이라면 아마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을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2. 어느 포스터를 봐도 안젤리나 졸리의 사진이 더 크게 나온다는 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졸리가 이제까지의 출연작 중 가장 매력적으로 나오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