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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표였던 '8일에 공연 8개 보기' 미션을 마쳤습니다. 가장 비싼 공연은 런던에서 본 '빌리 엘리어트(60파운드)'였는데 가장 싼 공연은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본 '어새신(7파운드)'이었습니다. 거의 1/10 가격이죠.

물론 공연의 수준, 공연장의 수준, 배우의 수준 등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가격 차이만 강조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비싼 공연은 비싼 공연대로 제 값을 하죠. 또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들을 실연 무대로 볼 수 있다는 건 에딘버러 프린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입니다.

이번 프린지에서는 '어새신'과 '리틀 샵 오브 호러' 두 편을 봤습니다. 나름대로 지명도는 꽤 있는 작품들입니다. '어새신' 은 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스티브 손드하임의 작품으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했거나 암살을 기도했던 저격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암살자들' 이란 제목으로 2005년에 국내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만석이 주연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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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중에서 총 맞아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암살범이나 암살 시도범이 많은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꼽아 보면 이렇게 많더군요.

리온 촐고스(Leon Czolgosz) - 윌리엄 매킨리 암살범
존 힝클리(John Hinckley) -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범
찰스 기토(Charles Guiteau) - 제임스 가필드 암살범
주제페 상가라(Giuseppe Zangara) - 프랭클린 루스벨트 암살 미수범
사무엘 빅(Samuel Byck) - 리처드 닉슨 암살 미수범
리넷 프롬(Lynette "Squeaky" Fromme) -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
사라 제인 무어(Sara Jane Moore) -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 에이브 링컨 암살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 존 F 케네디 암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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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암살당한 사람이 4명이나 되는군요. 물론 암살 미수범은 이 뮤지컬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많겠죠. 아무튼 막이 오르면 독점 무기상(proprietor)이 암살자들에게 총을 나눠줍니다. 모든 암살자가 소개되면서 이 뮤지컬의 테마 송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구든 권리가 있어(Everybody's got the right)'이 흘러나옵니다.

 
(동영상을 다시 보니 사무엘 빅-산타 복장-역으로 마리오 칸토니가 나오는군요. 누구냐면... 그 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게이 안소니 역으로 나오는 배우 말입니다.)


무슨 권리일까요. 당연히 '대통령을 죽일 권리'입니다. 이 뮤지컬이 블랙 코미디라는 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암살자들 중 존 윌크스 부스는 '우리의 위대한 개척자'로 소개됩니다. '당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든, 그 문제는 대통령을 총으로 쏨으로써 해결될 것'이라는 게 첫 장면의 내용입니다.

이런 식으로 뮤지컬 '어새신'은 암살자들의 사연과 말도 안되는 행태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하이라이트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맞춰집니다. 사회부적응자인 오스월드에게 등장인물들은 "왜 자살따위를 해? 그러지 말고 대통령을 쏴! 어리석게 무명으로 죽지 말고 존 윌크스 부스처럼 역사에 남아!"라고 설득합니다. 결과는...

'어새신'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나 클로드 미셸 숀버그, 알란 멘켄의 뮤지컬처럼 아름다운 멜로디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는 다른 어떤 뮤지컬에서도 보기 힘들죠. 브로드웨이에서 장수한 작품은 아니지만 수많은 학생 극단이나 소규모 단체들이 끊임없이 이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레이건을 저격한 뒤 "조디 포스터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랬다"고 증언한 존 힝클리와 연쇄 살인마 찰리 맨슨을 사랑하는 리넷 프롬의 듀엣곡 'Unworthy of your love'입니다.




이번에 에딘버러 프린지에서 본 '어새신'은 Rather Like a Shark/DULOG라는 단체의 무대였습니다.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만 공연하는 뮤지컬의 한계는 이미 지난 2002년 프린지에서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그냥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 같더군요. 전체 출연진 중에서 프로페셔널한 가창력이나 무대 적응력을 가진 배우는 3-4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열의는 높이 평가할 만 했다'고 해야겠죠.

밤 10시 공연이라 공연장인 베들렘 극장은 깜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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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연장 주변은 와글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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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입구의 카페에서 술이며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에 한창인 관객들이 한바닥이었습니다. 축제 기간인 탓도 있었겠지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그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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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의 무대. 왼쪽의 연주석이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두번째 뮤지컬은 '리틀 샵 오브 호러(The little shop of horrors)' 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여러번 공연된 적이 있는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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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에는 C라는 이름을 가진 공연장이 여럿 있습니다. 프린지에서는 모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소극장들인데, 이번 '리틀 샵 오브 호러'를 본 곳은 C계열인 C too(C2라는 뜻)였습니다. 에딘버러 성 바로 입구의 수백년 된 돌 저택을 지하층을 개조한 극장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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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안뜰도 있습니다.

'리틀 샵 오브 호러'는 로저 코먼의 1960년작 영화를 알란 멘킨이 1982년 오프 브로드웨이용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1986년에는 다시 뮤지컬로 영화화됐고(스티브 마틴이 출연합니다), 2003년에는 마침내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됩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알라딘', '포카혼타스'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신화에 한몫을 담당한 달러박스 작곡가 알란 멘킨이 최초로 만든 뮤지컬이라는 점에 주목해야겠죠.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부모도 없이 꽃집 점원으로 일하는 시무어 크렐번은 지극히 소심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입니다. 그리 약지도 못해서 꽃집 주인인 무쉬닉에게 늘 이용만 당하죠. 같은 꽃집에서 일하는 오드리를 짝사랑하지만 오드리는 애인인 치과의사 오린에게 늘 구타를 당하고 삽니다.

그런 시무어가 어느날 이상한 식물의 싹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문제는 이 식물이 말도 할 줄 알고,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외계에서 온 괴물이었던 거죠. 하지만 시무어는 이 식물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오드리의 이름을 붙여 '오드리 2' 라고 부르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왠지 엄청난 비극이 될 것 같지만 이 뮤지컬은 이런 사연을 아주 경쾌한 코미디로 풀어갑니다. 물론 블랙코미디죠.)

소극장 공연을 위해 이 뮤지컬의 장점이라면 아주 제한된 캐릭터로 공연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위 내용에 나오는 다섯명의 배우 외에 각각 쉬폰, 크리스탈, 로넷이라는 이름이 붙은 세 명의 여성 코러스만 있으면 공연이 가능합니다.

출연진이 적은 반면 음악적으로는 대단히 탄탄합니다(당연하죠. 알란 멘킨의 명성이 짤짤이에서 딴 건 아닙니다).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식인식물 오드리2의 곡인 'Feed Me' 입니다. 영화판에서 오드리2 역은 왕년의 R&B 그룹 포탑스의 리드 보컬 리바이 스텁스(Levi Stubbs)가 맡았습니다.



한곡 더 하자면 악당 치과의사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노래. 'Dentist Song'입니다. 스티브 마틴의 젊은 모습이 낯설지도.^^ (아래 동영상엔 없지만 영화에서 환자 역으로 빌 머레이가 나오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이 환자 역은 1960년작 영화에선 젊은 잭 니콜슨의 배역이더군요.^^)



제가 본 '리틀 샵 오브 호러'는 FirstMinute Productions in Association With Ben Monks & Will Young(http://www.dontfeedtheplants.com/home.html)이란 연기단체의 무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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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뮤지컬을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아마도 가장 돈이 드는 부분은 식인식물의 시각적인 구현일 겁니다. 뭘로 만들든 간에 상당히 돈이 드는 구석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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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이 사진 정도는 써 줘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번 프린지 무대에서의 식인식물은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화분 대용의 큰 들통과 녹색 타이즈를 입은 사람만으로요. 괴물을 만드는 소도구비용은 단 한푼도 들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꽤 예산 절약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의외로 대단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아무런 추가 장비 없이 괴물이 희생자를 잡아먹는 모습까지 깔끔한 연출로 커버해버리더군요. 일단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할 만 했습니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대극장에서도 충분히 통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코러스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길 바라는 건 무리였지만, 다섯 주역은 입장료가 2만원이란 게 미안할 정도의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사진 찍는데 상당히 과민한 듯 해서 무대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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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샵 오브 호러'는 대형 무대나 찬란한 효과를 쓰지 않고도 뮤지컬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소품'의 대표적인 예로 불릴 수 있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큰 무대를 앞두고 있는 미래의 스타들이 단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작품들이 좀 더 자주 무대에 올려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지난 2002년에 본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빈 햄리쉬(뮤지컬 '코러스 라인'의 작곡자이며 영화 '스팅'과 '더 웨이 위 워'로 오스카상을 받은 인물입니다)의 소품 '그들이 우리의 노래를 하고 있어(They're playing our song)' 도 6-8명이면 충분히 공연이 가능한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작품은 작아도 음악이나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절대 작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겠죠. 2만원짜리 뮤지컬의 감동이 20만원짜리보다 훨씬 더 클 수 있으니까요.

서울의 작은 극장에서도 이런 작은 뮤지컬들이 자주 올려지고, 늘 자리가 꽉 차지는 않더라도 무대와 객석에서 열의에 가득 찬 눈동자들이 서로 부딪히는 광경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뮤지컬 붐이라고는 하지만 20만원짜리 뮤지컬은 꽉꽉 차고 5만원짜리는 손해를 보는 상황, 특정 스타가 출연하는 회차만 매진되고 나머지 회차는 자리가 비는 상황은 결코 건강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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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매년 8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에딘버러 페스티발에는 공식 행사인 인터내셔널 페스티발과, 그 주변에서 열리는 프린지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공식 페스티발은 브로드웨이, 프린지는 오프 브로드웨이 식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겠죠. 세계적인 공연단체와 아티스트들이 으리으리한 공연장에서 뽀대 있게 공연하는 공식 페스티발이 열리는 동시에 온 시내의 수백개 공연장에서 수천개의 곁다리 공연이 열립니다. 연극, 음악, 뮤지컬 등 장르에도 아무 제한이 없죠.

당연히 한국 공연도 꽤 있습니다. 올해도 10여개 단체가 공연했다더군요. 물론 올해 열린 2000여개의 전체 공연 중에선 결코 눈에 띌 정도가 아닙니다만, 꽤 늘어난 숫자입니다. 지난 2002년에 갔을 때 한국 공연을 하나도 안 보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번엔 챙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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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는 태권도 가족과 B-BOY 가족이 최고의 가족을 뽑는 콘테스트 결승에서 맞붙어 각자 기량을 뽐내 대결한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서 태권도 가족의 최고 연장자인 할머니와 B-BOY 가족의 할아버지가 눈이 맞아 므흣한 관계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태권도 패밀리는 태권도 선수 출신, B-BOY 팀은 B-BOY 출신들이 공연에 나섭니다. 전혀 연기 경력이 없는 선수들을 연습시켜서 만든 공연이더군요.

공연장 입구는 이렇습니다. 이 공연장에선 '패밀리'외에도 인도의 민속 공연이 3개, 그리고 다른 한국 공연팀의 '아리랑 파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헤비메탈 드러머 출신인 최소리씨의 퍼포먼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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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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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패밀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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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석 조금 넘는 작은 공연장이었지만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더군요. 두 아이를 데려온 현지인 관객 맥클라런드씨에게 물어보니 "공연을 본 친구에게 추천 받아 아이들을 데려왔다. 너무 재미있었다. 나도 다른 가족에게 추천하겠다"고 하더군요.

왠지 뿌듯했습니다.




매일 하루 2회씩 공연을 한 팀이라 지칠만도 하지만, 이른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곧바로 다시 가두 홍보에 나섰습니다.

이건 몸풀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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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딘버러 페스티발 기간중엔 온 거리가 공연장이 되고, 가두 홍보도 허가받은 장소와 시간에만 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패밀리' 팀은 불행히도 그런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한국식의 게릴라 홍보로 승부를 걸었다는군요.

그냥 몸으로 밀어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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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중 B-BOY 팀의 박성배군(정말 박지성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맨유 유니폼이라도 있었다면.^^)의 묘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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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붕붕 나는 건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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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군의 후배. 다른 단원들은 이 주변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높이며 공연 전단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좀 더 집단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러면 금세 공연 단속팀이 출동해서 처벌 대상에 오른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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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여기가 로열 마일. 에딘버러 구시가의 중심입니다. 페스티발 기간중에는 인파로 넘쳐나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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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속을 피해(?) 두 사람 정도의 팀 퍼포먼스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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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하기 이를데없습니다. 이러고 있으면 수십명이 "무슨 공연이냐? 어디서 하냐?"고 물어보고 전단을 받아 갑니다.


태권도 팀도 가만 있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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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역의 김미란양이 품세를 시작했습니다. 구경하는 관객들이 늘기 시작합니다.

사실 무허가 홍보라 너무 관객이 몰려도 안됩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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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시범단 출신답게 동작에서 절도가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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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발차기. 구경꾼들의 박수가 터집니다.

공연 막바지라 다들 파스로 도배가 된^^ 몸들이었지만, 에딘버러 하늘을 지르는 발차기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기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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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에딘버러 페스티발에서 지난 22일 초연된 매튜 본의 신작 '도리언 그레이'를 봤다는 얘깁니다. 아시다시피 매튜 본은 '백조의 호수'를 남자 무용수들로 채운 걸로 유명한 안무가죠.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1890년 당시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공포소설의 하나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남자간의 금지된 사랑을 은근히 비치고 있는 줄거리(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 파문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에 경악한 사람도 있었겠죠.

이 시절에 비하면 매튜 본은 대단한 표현의 자유를 타고 난 셈입니다. 네. 마돈나의 남편인 가이 리치의 친구이며 클라우디아 쉬퍼의 남편인 영화감독 매튜 본이 아니라 무용계의 스필버그 취급을 받고 있는 바로 그 매튜 본입니다. 지난 23일, 매튜 본의 신작 '도리언 그레이'를 봤습니다. 22일 밤 공연이 월드 프리미어였으니 세계에서 두번째로 무대에 올려진 공연을 본 셈이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내용을 잠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런던 사교계의 중심 인물인 귀족 청년 헨리 경은 친구인 화가 바질이 그리고 있는 초상화를 통해 그림의 모델인 미남 도리언 그레이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바질은 그레이에게 끌리는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레이를 만난 헨리는 자신의 분방한 도덕관으로 그레이를 '오염'시키죠. 헨리의 영향으로 그레이는 자신의 미모가 갖는 위력을 마음대로 휘두릅니다.

그는 잠시 여배우 시빌에게 끌리지만, 자신이 무대 밖의 그녀에게 아무련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싸늘하게 변해 버리죠. 결국 시빌은 자살하고, 그는 자신이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바질이 그린 초상이 점점 늙은 모습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영원한 젊음과 미모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는 18년 뒤의 시점으로 넘어갑니다. (혹시 스포일러라고 하실 분도 있을테니 이 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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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도리언 그레이'는 이 이야기를 21세기의 패션과 광고 산업으로 끌고 옵니다. 그레이는 무명의 웨이터에서 일약 톱모델로 올라서는 꽃미남 스타로, 바질은 '당연히' 사진작가가 됩니다. 이렇게만 바뀌면 너무 평이하겠지만 여기서 헨리 경은 연예계의 권력자(에이전시 사장? 광고주? 미디어의 실력자?)인 레이디 H로, 여배우 시빌은 남성 무용수 시릴로 성별이 바뀝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초상화는 그저 사진으로 대입되는 것이 아니라, 그레이의 내면을 상징하는 분신(도플갱어)로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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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리언 그레이와 레이디 H.)


스타가 된 그레이의 타락을 그려내는 소재로 마약과 술, 바이섹슈얼과 오만방자함 등의 부덕이 무대를 수놓습니다. 매튜 본의 타고난 흥행감각 덕분에 '도리언 그레이'는 훌륭한 대중용 상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무용극이라지만 조금도 지루하거나, 전문적이라거나,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기발한 회전무대는 수시로 광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작가의 침실로, 화려한 파티장에서 은밀한 사랑의 공간으로, 플래시를 받는 현장에서 그레이의 방 사이를 수시로 오갈 수 있게 합니다. 이 이중 회전 무대와 도플갱어의 존재는 너무도 간단하게, '자아의 분열'이라는 주제가 오스카 와일드와 매튜 본을 관통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죠. 아무튼 이 작품은 19세기 고전의 현대화라기보단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 더욱 가까이 있습니다. 도리언 그레이가 광고하는 향수의 이름이 불멸(Immortal)이란데선 무릎을 탁 치게 하기도 합니다.
 
매튜 본의 작품을 처음 본 저같은 사람에게 있어 '도리언 그레이'는 매우 흥미롭고 강추하고 싶은 수작입니다만, 이미 '백조의 호수'에서 '에드워드 가위손'까지 그의 작품을 여럿 경험한 평론가들에게 있어선 그리 매력적인 작품이 아닌 듯 합니다. '가디언'과 '더 타임즈'는 모두 인상적인 혹평이더군요. '가디언'은 새로운 것이 없다는 쪽, '타임즈'는 심지어 '게이 포르노가 너무 자주 나온다'는 식입니다. 사실 중요한 러브 신이 모두 남자 무용수들 사이의 것이긴 합니다. 하긴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어찌 보면 매튜 본의 주요 고객들인 '배운 여성 관객'들의 취향에 맞춘 고급 야오이 무용극(?)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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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리뷰 모두 그레이 역을 맡은 리처드 윈저(Richard Winsor)에겐 호감을 갖고 있더군요 윈저나 레이디 H역의 미카엘라 메짜(Michaela Meazza) 모두 본과는 '에드워드 가위손' 등에서 손발을 맞춘 사이입니다.

자, 지금부터는 염장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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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연 장소인 킹스 시어터는 에딘버러 성 남서쪽에 있습니다. 매튜 본 정도의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 초연을 하기엔 좀 초라해 보일 정도로 낡은 극장이란 느낌. 1906년에 지어진 극장답게 외양은 꽤 쇠락했고(왕년의 단성사나 스카라 극장 느낌입니다), 아주 규모가 큰 홀도 아닙니다. 하긴 이런 걸 보면, 한국 공연문화는 지나치게 외양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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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도 있군요. (네. 휴가중이란 뜻입니다.)


아무튼 극장 안은 '에딘버러 페스티발의 60년 역사상 무용 작품으로는 최고 히트작'이라는 설명답게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찼습니다. 올해 날씨와 올림픽 때문에 에딘버러 페스티발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데서 더욱 이례적인 히트로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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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갈채와 함께 공연이 끝났습니다. 무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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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마지막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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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는 9월2일부터 런던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된다고 합니다만, 매튜 본의 인기를 생각하면 언제든 국내 무대에도 올려지겠죠. 매튜 본 빠순이(?)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곧 비행기 티켓을 사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입가심으로 두 사람의 도리언 그레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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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 하트필드는 1945년작 영화의 타이틀 롤인 도리언 그레이입니다. 왠지 신성일씨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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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그레이는 영화 '젠틀맨 리그'의 스튜어트 타운젠드입니다. 하긴 뭐 리처드 윈저 정도라면 그레이 역으로는 손색이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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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번 실패하고 오기로 올리니 올라가는군요. 이놈의 유럽 인터넷. 오랜만에 훈훈한 포스팅이라고 좋아하실 분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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