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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R2D2를 연상하시는 영화 '알투비(R2B) 리턴 투 베이스'를 봤습니다. 본래 '빨간 마후라 2 프로젝트'라고 불렸던 것이 시간과 논의를 거치면서 결국 '알투비 R2B'라는 제목으로 결정됐더군요. 다 아시겠지만 R2B는 '리턴 투 베이스(Return to Base)', 즉 '기지로 귀환'이라는 뜻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분들 중에는 다른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창공 액션 영화라면 추억의 명화인 조지 페퍼드 주연의 '대야망(The Blue Max)'부터 그 이름도 거룩한 '탑 건(Top Gun)'를 지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두 편의 고전 영화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두 편이 공군과 파일럿의 세계에 대해 이뤄 놓은 업적이 워낙 큰 탓일 겁니다.

 

그리고 '알투비'가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과연 이 영화를 어느 정도나 기대하고 보느냐의 차원이 될 것 같습니다.

 

 

줄거리. 태훈(정지훈)은 비행 실력에 있어선 따를 사람이 없지만 도대체 질서와 복종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파일럿. 결국 묘기를 부리다 공군 시험비행단에서 쫓겨나 (아마도 동부전선 어디쯤의) 전투여단에 배치됩니다.

 

선배 대서(김성수)의 편대에 배속된 태훈은 여기서 동기생 유진(이하나), 후배 석현(이종석)과 함께 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여단의 에이스는 미국 연수까지 다녀온 철희(유준상). 그는 제멋대로인 태훈의 기를 꺾어 진짜 군인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훈은 여기서 미모의 정비사 세영(신세경)을 발견하고 달콤한 연애에 빠져듭니다.

 

그러는 사이, 북한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서서히 긴장이 고조됩니다.

 

 

 

오래 전, '탑 건'이 개봉할 무렵, 관객들은 궁금증에 빠졌습니다. 이 영화가 F-14를 모는 미 해군의 최정예 파일럿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았는데, 대체 실제 전투 장면이 나오는지, 나온다면 그 상대는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야망'이나 '빨간 마후라' 처럼 아예 전쟁 상황을 다룬 영화라면 이런 궁금증이 들 이유가 없겠지만, '탑 건'이나 '알투비' 같은 영화는 대체 '누구와 싸워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뭐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관객들보다 몇년 전에 했어야 할 고민입니다.

 

물론 안 싸울 수도 있겠지만, 수백억원짜리 전투기를 보여주면서 그 전투기가 실전에선 이런 위용을 뽐낸다는 장면을 넣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을 일어났다고 우기는 것도 좀 웃기는 얘기.

 

 

여기서부터 전투기와 파일럿이 나오는 영화의 리얼리티가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이를테면 그 파일럿의 전투기가 어떻게 해서 교전상황에 말려들게 되느냐 하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그럴싸하고 납득할만한 상황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알투비'는 안타깝게도 좋은 점수를 따내지 못합니다.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CG가 화면을 장식하고 몇몇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일단 비행기가 날고 긴박한 상황이 펼쳐지면서부터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이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물론 그따위가 뭘 중요하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죠.)

 

어떤 분들은 '막상 비행기가 날고 액션이 펼쳐지기 전까지, 달달한 연애담이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마지막 항공 전투 신은 호쾌하고 볼만했다' 고 평을 합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바로 그 유치하고 달달한 연애담 덕분이고, 정작 돈 냄새가 물씬 나는 공중 전투 시퀀스는 한마디로 '기본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주 깔끔하게 마음을 비우고, 아무 기대도 없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영화를 보시는 동안, 절대로 논리적인 사고나 이성적인 판단 따위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어쩐지 RETURN TO BASE 라는 제목은 '기본으로 돌아가라' 라는, 스스로 하는 반성처럼 읽힙니다.

 

그냥 하는 얘기는 여기까지. 나머지에선 스포일러가 밀어닥칩니다. 영화를 보러 가실 분은 여기서 표 끊으러 가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제작사 및 홍보 관계자, 알바 여러분도 별로 기분좋으실 얘기가 아니니 여기서 그냥 다른 데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 태훈이 왜 시종일관 감정의 제어가 되지 않는 미친놈처럼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고 (어려서부터)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사실 그보다는 그냥 "'탑 건'의 톰 크루즈가 대략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라는 쪽이 솔직한 설명일 겁니다.

 

이 영화의 골격은 대부분 이 공식에 따릅니다. 인물의 배치나 설정에서 어떤 목적이나 방향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일한 설명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또는 '탑 건 안 봤어? 탑 건에서도 그랬잖아' 뿐입니다. 통제가 안 되는 야생마같은 주인공이 있으면 '왠지' 냉철한 이성으로 그를 통제하려 하는 맞수 캐릭터가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연애를 할 예쁜 정비사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그를 이해해 주는 큰형같은 선배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왠지' 그 큰형을 짝사랑하는 선머슴 같은 동기생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왠지 그렇게 있으면 굴러갈 것 같은' 캐릭터들이 즐비합니다. 어디서 본 듯 하고, 무슨 말을 할지 뻔히 보이는 캐릭터들 말입니다.

 

결국 그러다 보니 극의 흐름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살아 숨쉬는 듯한 캐릭터라고는 선임 정비사 역의 오달수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태훈과 철희가 서로 마주 보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는 초등학생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서가 유진의 마음을 받아들여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모든 관객들은 '아, 대서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이승을 하직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서 위 사진의 세 인물과 관련된 대사, 설정, 연기는 모두 최악입니다. 이 세 인물이 나오는 부분을 싹 들어내면, 이 영화에 대한 악평이 상당부분 감소될 수 있을 듯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군요.

 

'알투비'를 보다 보면, 촬영할 때 있었던 참 많은 장면들이 가혹한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장면들조차 이렇게 뻔하디 뻔한 장면의 연속일 때는 참 난감합니다. 심지어 그 뻔한 대서의 장례식 장면에, 대서의 어린 아들이 영정을 들고 걸어가는 장면까지 나오면, 관객은 슬픔과는 아무 상관 없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좀 다행인 것은 메인 주인공을 정지훈과 신세경이라는 매력적인 스타들이 맡았다는 정도. 이해하기 힘든 두 인물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으면 왠지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세영의 주정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활력 있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알콩달콩 장면이 이 영화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영화의 흥행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정지훈과 신세경이 아니었다면... 꽤 끔찍한 결과가 벌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면 문제의 전투 장면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설정으로는 북한의 원산 핵기지 주변 병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중앙 정권(아마도 김정은)에 대항하고, 자신들의 선명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미국을 향해 핵탄두가 장착된 ICBM을 발사하려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일까요? 이를테면 김정은 정권을 타도하고 싶은데 자신들의 힘으로는 영 부족하니 미국을 향해 ICBM을 발사하면 미국이 그 보복으로 북한 체제를 궤멸시킬 거라는 계산일까요. 단순한 자살 테러 치고는 참 심오합니다. 어쨌든 그냥 넘어갑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런게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눈에 띄는 것만 거론하자면, 수도 서울에다 총질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대는 전투기를 '민간인 피해 때문에 격추시킬수 없다'고 주장하는 지휘본부, 대서의 3일장을 치르는 동안 완전히 전 세계가 (대서를 애도하기 위해?) 휴전상태로 들어갔다가 장례식을 마치자 다시 시작되는 '긴박한 상황', 긴 밤 다 지새우고 굳이 대낮에 단 2기로 북한에 침투하는 놀라운 대담성, 그런데 그 단 2기를 막아내지 못하는 엄청난 방공망, 지하 활주로는 폭파됐는데 대체 어디서, 그것도 단 1기만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MIG-29 요격기, 분명히 발사되는 걸 봤는데도 공중에 정지하고 있다가 태훈의 폭격을 받고 폭발하고 마는 이상한 ICBM, 휴전선 바로 위인 원산에서 핵탄두가 폭발했는데도 거기에 대한 걱정이나 대비는 전혀 없는 만사 태평의 한-미 양국 군사 수뇌들.... 한마디로 참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 이어지지만 뭐... 날아가는 비행기의 CG는 멋집니다.

 

 

 

당연한 반론이 예상됩니다. "누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그런걸 그렇게 따지냐"에서 그저 "이런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언젠가 한국 영화도 할리우드 수준의 창공 액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고..."라는 등등. 하지만 그렇게 훈훈하게 덕담을 주고받기엔 아쉬움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늘 얘기하지만 말이 되고 안 되고는 항상 그 영화가 갖고 있는 틀 안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럼 스타워즈에서 광선으로 칼싸움하는 건 말이 되냐?'는 식의 반론은 바보 인증일 뿐입니다. 그건 원래 전제가 그렇게 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제7광구' 때도 그랬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특수효과가 아니라 플롯과 대사, 연기입니다. 특히나 이런 류의 영웅담 블록버스터에서는, 제발 오글거려야 할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쭉 나올만큼 오글거리는 대사가 나와줬으면 합니다. 저는 작전에 투입되는 파일럿들이나 석현을 구하러 가는 레스큐 팀에게 비행단장이 뭔가 정말로 아드레날린이 확 뿜어나오는 연설이라도 할 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 영화는 규모가 커지고 제작비가 많이 투입될수록 이런 기본은 점점 무시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RETURN TO BASE, '기본으로 돌아가라' 일까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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