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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 TV 드라마 '내 여자'가 방송중입니다. 고주원 박솔미 박정철 최여진 주연의 드라마인데, 여자에게 버림받은 한 남자의 복수극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매번 지켜보게 되지는 않지만, 왠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왠지 정이 가는 드라마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내 여자'는 1980년작인 MBC TV 드라마 '종점'의 리메이크입니다. 이병주 원작 '망향'을 각색한 작품으로, 이제 방송작가 중 최고 원로급인 이희우 작가가 '종점'에 이어 여전히 '내 여자'도 집필하고 있더군요.

당시 '종점'의 네 주인공은 현재 고주원 역이 이정길, 박솔미 역은 김자옥, 박정철 역은 박근형, 그리고 최여진 역은 김보연이 연기했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바보같은 보도자료 때문에 최여진=고두심이라는 보도가 몇번 나온 것 같은데, 김보연이 재벌집 딸 역이었습니다.
 
사실 '청춘의 덫'이 방송되고 몇년 지난 뒤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방송 당시에도 '청춘의 덫'과의 유사성이 여러 번 지목됐던 것 같습니다. 당연한 얘기죠. 남자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여자가 복수한다는 부분에서 성별이 바뀐 걸 제외하면 재벌 남녀가 각각 문제의 '헤어진 남녀'를 좋아한다는 내용, 그리고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정길, 박근형)이 같다는 점 등에서 유사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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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이 방송된 건 중학교 2학년 때. 그리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청춘의 덫'과 '종점'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이정길이 연기한 남자주인공의 이름이 '안현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김자옥이 변심해 갈라서는 장면이 선명합니다.

재벌집 아들 박근형은 마음에 두고 있던 김자옥을 비서로 기용한 다음 지방으로 함께 출장을 갑니다(당시만 해도 해외 로케이션은 힘들던 시절이라...). 하지만 가 보니 출장은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었어고, 박근형은 김자옥을 호텔 나이트클럽으로 데리고 가 술을 마시고 춤을 청합니다. 카메라는 박근형의 어깨 너머로, 뭔가를 결심하려는 표정의 김자옥을 클로즈업하죠.

이들의 관계가 만들어진 뒤, 모든 것을 알게 된 남자와 여자가 만납니다. 밤의 공원 정도로 설정된 세트. 배경의 서울 야경이 사진인 태가 너무도 역력한 세트였지만 연기는 진지했습니다.

"...말 해!"
"뭘 말하라구요."
"...가난이 싫어서 가는 거라고 말해! 쪼들리기 싫어서 가는 거라고!"
"그래요. 토큰 짤랑거리면서 버스 타기 싫어서 가는 거에요. 됐어요?"
(그 당시엔 버스를 탈 때 토큰이란 걸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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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를 때리는 짜악 소리와 함께 남자는 떠나갑니다. 이런 장면에서 이정길-김자옥의 연기는 불꽃을 튀깁니다. 옛날 배우와 요즘 배우를 비교하는 건 좀 가혹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런 장면에서의 연기는 희미한 기억으로도 절로 비교가 됩니다.

그래서 이정길은 회사에서도 묘한 혐의로 해직당하고, 용달차 사업을 하면서(구레나룻을 기른 이정길의 모습은 사극 외에선 처음 본 듯 합니다) 살아가다가 어찌어찌해서 복수의 꿈을 키우게 되죠. 남자의 복수 앞에서 배신자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후반의 볼거리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현재까지의 '내 여자'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참 많은 변명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28년 전보다는 지금의 드라마 분위기가 '악역도 미워할 수 없게 해 줘야 한다'는 쪽의 생각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따지고 보면 이런 것도 최신 유행은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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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엔딩은 어찌 될 지 모르지만, '종점'은 재벌집 딸 김보연과 이정길이 맺어지는 걸로 끝납니다. 이정길에게 사랑을 고백한 김보연은 "나 현상씨 시골 집 가서 현상씨가 좋아하는 반찬 다 알아왔어요. 그거 매일 만들게요. 나 요리도 꽤 잘 해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웃습니다.

'내 여자'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뭐 제작진이 제정신이라면 용서와 재결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고, 결말에는 상당히 제한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주제를 살리려면 박정철-박솔미 커플은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고, 원작의 김자옥처럼 박솔미가 병상에 눕게 될지는... 그건 작가의 선택이겠군요.

아무튼 왕년의 '종점'에 비해 '내 여자'는 큰 스케일의 기업드라마로서도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특히 조선산업이라는 한국의 심장 같은 사업을 배경으로 한 점도 눈에 띄더군요. 그래도 드라마 자체의 얼개가 옛날 드라마이다 보니, 21세기의 분위기를 내는 데 제작진의 고민이 꽤 따를 것 같습니다.


 




p.s. 1980년 당시엔 드라마와 함께 주제곡 '종점'도 꽤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김추자라는 가수는 당시 이미 공개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 노래만큼은 드라마의 인기를 업고 상당히 히트했죠. 훨씬 나중에 나온 '서울의 달'의 느낌도 꽤 납니다만.

이 노래를 들어 보실 곳은 이쪽입니다. 온 인터넷을 다 뒤져도 '종점'의 스틸 컷 하나 구할 수 없던데 이분은 어디서 이런 슬라이드까지 만들어 놓으셨는지 놀랍습니다.

http://blog.naver.com/kurt0181?Redirect=Log&logNo=2002745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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