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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보면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대체 왜 드라마 '타짜'의 배경이 부산일까, 왜 이 드라마에는 '우정'이라는 말이 이렇게 자주 나올까. 그리고 왜 고니의 패거리는 네 명이고, 원작에 없는 건달들이 이렇게 많이 나올까.

뭐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바로 이 냄새를 위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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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타짜'는 고니(장혁)과 영민(김민준)이라는 두 친구를 주역으로 내세웠습니다. 드라마의 진행 방향으로 보아 영민은 타짜 아귀(김갑수)의 수하로 들어가고, 고니는 세상을 돌면서 스승 평경장(임현식)을 만나 최고의 타짜가 되어 다시 만날 모양입니다. 물론 그때는 두 사람이 적수가 되어 있겠죠. 그 사이에 난숙(한예슬)과 정마담(강성연) 이야기도 나오겠지만, 어차피 드라마의 큰 흐름에는 둘 다 별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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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의 1부인 '지리산 작두'를 시대만 조금 바꿔 거의 그대로 재현했던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와 어쨌든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듯 합니다. 그래서 1부 '지리산 작두'와 2부 '신의 손'을 적당히 얼버무리는 선에서 각색이 이뤄졌죠.

만화에서 1부의 주인공은 고니, 2부의 주인공은 고니의 누나의 아들인 대길이지만 드라마판의 주인공인 고니는 고니와 대길이를 합쳐 놓은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대길이의 평생 연인인 광숙이-미나는 난숙이-미나로 이름을 살짝 바꾸고, 식당을 하는 어머니(박순천)와 사진관 아저씨(이기영)의 로맨스는 그대로 살리되, 사진관 아저씨가 왕년의 타짜 '지리산 작두'가 됩니다. 이 '지리산 작두'는 바로 만화에서 고니의 별명이니 족보가 어지러워지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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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다 보니 영민이란 캐릭터가 새롭게 추가됐고, 아귀의 캐릭터도 원작이나 영화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만화와 영화판에 나오는 본래의 아귀는 돈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원시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악의 화신이지만 김갑수가 연기하는 아귀는 머리좋고 영악한 사업가처럼 보입니다.

여차하면 상대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본래의 아귀와는 달리 이 새로운 아귀는 너무 머리를 많이 굴리죠. 말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귀라는 캐릭터가 본래 갖고 있던 위압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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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캐릭터로 넘어가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 캐릭터가 어디서 온 것인지가 너무도 잘 보이기 때문이죠. 김민준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영화 '사랑'의 치권을 쉽게 연상시킵니다. 부산 출신인 김민준에게 '사투리로 하니까 연기가 되는구나!'라는 칭찬을 듣게 했던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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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민준의 연기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너무나 익숙한 캐릭터라는 점이 걸립니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 캐릭터를 만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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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굳이 부산이 무대인 점이며 굳이 폭력배들이 처음부터 치고 받고 하는 점, 패거리가 네 명인 점 등이 모두 희대의 히트작인 '친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 계열의 흐름과 영화 '친구'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 함께 뒤섞여 흘러가는 작품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두 흐름이 그리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는게 문젭니다.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가 희대의 히트작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연재로 이 만화를 지켜보신 분들은 잘 느끼시겠지만, 이 만화의 특징은 하루 이틀만 연재를 놓쳐도 따라가기 쉽지 않을 만큼 스토리의 진행이 빠르다는 데 있죠. '이런 정도의 스토리라면 좀 더 늘려도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하지만 '친구' 스토리의 수혈은 이야기를 다양하게 한 것이 아니라, 진행을 더디게 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돼 버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심지어) 영화 '친구'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박장 장면을 통해 한껏 흥미를 올려 놓으면, 우정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친구 스토리'가 들어와서 분위기를 흐려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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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원작 만화의 각색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통틀어 볼 때 '가능한 한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한 작품'일수록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틀을 가능한 한 유지하려고 애썼던 영화 '식객'과 '타짜', '비트', 드라마 '식객'이 전자의 예라면 '사랑해'나 '아스팔트 사나이'가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원작의 구성과 전개가 탁월하기 때문에, 손을 대면 댈수록 망가진다는 쪽에 저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타짜'도 굳이 원작의 설정에 왜 그렇게 많이 손을 대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더구나 그 '손질'이 창의적인 시도였다면 모를까, 이미 초대박이 난 영화와 그 아류작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익을 대로 익은, 어쩌면 슬슬 싫증이 났을 수도 있는 터치라면 말입니다. '타짜'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현재의 시청률은 단지 '에덴의 동쪽'이 잘 나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듯 합니다. 왠지 교각살우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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