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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후에도 한참을 못 보고 있다가 드디어 봄.

페이스북에나 몇줄 쓰려다 너무 길어져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이리로 가져왔습니다. 중간에 반말 존댓말 왔다갔다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올립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다듬을 수도.


사실 이 영화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퀸 노래를 많이 들려주면서, 그 사이 사이에 스토리를 배치하느냐를 고민한 영상물, 즉 초장편 뮤직비디오에 해당하는 영화이므로 영화 자체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할 얘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내용이 사실이라고 곧이곧대로 믿을 분들이 아무래도 80% 이상이라는 점에서, 왜 줄거리가 이렇게 짜여졌는지가 좀 의아해집니다.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앨범 출시가 퀸의 분열 내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했다는, 별로 믿어지지 않는 스토리가 왜 영화의 축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더라는 것이죠.

아마도 제작진의 설득에 메이와 테일러가 '수긍'을 한 쪽으로 진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일수도 있으니 그만 보실 분은 여기서 그만 두시길.>

 

0. 잠시 영화 진행 리마인드. 매니저 중 하나가 "CBS에서 400만 달러에 솔로 앨범을 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며 프레디 머큐리의 귀에 속닥질을 하고, 여기 솔깃한 머큐리가 솔로 앨범을 내겠다고 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멤버들은 "너는 퀸을 죽였어!" "어떻게 상의도 없이!" 하고 흥분하고 등을 돌리고, 상심한 머큐리는 더욱 매니저의 말만 들으면서 앨범 작업만 하고, 심지어 매니저는 라이브 에이드에 나가라는 말 조차도 차단해서 알려주지 않고, 결국 전 애인인 메리가 나타나서 모든 걸 알려주기 전까지 머큐리와 다른 멤버들의 갈등은 깊어지기만 하고.... 그래서 반성한 머큐리가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다시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서고... 이런 스토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1. 퀸 멤버 중 솔로 앨범을 낸 건 머큐리 혼자만이 아니고, 심지어 머큐리가 첫 솔로 앨범 'Mr. Bad Guy' 를 내기 전 로저 테일러는 이미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밴드 전체의 음악성과 별개의 '자기 음악 세계 실현'은 퀸 뿐만 아니라 많은 밴드에서 이뤄진 관행. 그러니 머큐리가 솔로 앨범을 낸다고 해서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니가 그럴수가!"라고 분개하는 건 좀 이상한 일. 신해철이나 김종서처럼 밴드를 버리고 아예 솔로 가수로 새 길을 걸은 것도 아니고.

2. 라이브 에이드가 85.7.15의 일이니 영화상으로 표현된 심각한 갈등과 머큐리의 고립은 85년 상반기의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85년 상반기 퀸은 84년 앨범 Works의 홍보를 위한 전 세계 순회공연 Works Tour를 진행중이었더군요. 84년 8월 시작된 이 공연은 85.5.15 일본 오사카에서 끝났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이래야 고작 2개월.  즉 실제로는 매일 같이 먹고 자고 비행기타고 다음 공연장으로 이동해서 다시 공연하고 먹고 자고 파티하고 하고 있을 시절인데 영화 속에서는 서로 얼굴도 안 보고 어딘가 따로 떨어져서 남남처럼 지내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영화와 현실의 시간표는 완전히 어긋나기 시작>

3. MR. BAD GUY 앨범은 83년부터 녹음을 시작해 85.4.29 발매.

그러니까 머큐리가 이 시점에 솔로 음반 발매를 털어놓고, 갈등을 빚고, 멤버들과 소원해지고, 라이브 에이드라는 것이 열리는 지도 모르고, 화해하고, 다시 라이브 에이드에서 멋진 공연을 펼친다는 건 몽창 지어낸 이야기. 갈등이 있었다면 The Works 앨범을 녹음하기 이전의 일일테니 83년 쯤인데, 이미 그 갈등을 극복하고 Works 앨범을 내고, 같이 전 세계 투어도 다니고 한 다음에 올 85년의 라이브 에이드에다 이 갈등을 갖다 붙였으니 이건 실제 역사와는 영 딴판.

4. 라이브 에이드를 앞둔 화해(?)의 조건이 '앞으로 모든 노래를 니 노래 내 노래 하지 말고 모두 퀸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수익분배도 1/4로 하자'는 것이었다고 나오는데, 그래서 그 화해(?)의 산물로 나온 86년 앨범 'A KInd of Magic'에서 첫곡 One Vision은 작곡자가 'Queen'이지만, 타이틀 트랙인 A Kind of Magic은 '로저 테일러 작곡'이라고 되어 있음.

한마디로 이 역시 실제와는 영 딴판인 얘기.

5. 퀸이나 핑크 플로이드가 위대한 점 중 하나는 10만명씩을 수용할 수 있는 웸블리 구장 같은 초대형 공연장에서, 어디서 들어도 훌륭한 음향 배치를 독자적인 기술로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어딘가 인터뷰를 보면 브라이언 메이가 이걸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게 나온다). 그런 퀸이 '라이브 에이드에 나와' 라는 요청을 받으면 '거기는 음향 시스템을 어떻게 해놨대? 드럼 세트도 하나 갖고 다 돌려가며 써야 한다는데?' 라는 점에서라도 참여를 주저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무튼 그래서 라이브 에이드는 끝까지 참가를 망설인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

6. 아무튼 현실과 영화의 괴리는 이런데, 영화 시나리오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사전에 몰랐을 리 없는 퀸 멤버들이 왜 이런 요상한 갈등설(?)을 영화에 넣는데 반대하지 않았을까가 매우 의문입니다. "...미안해, 그때는 말 못했지만 사실 네가 솔로 앨범 내는게 우리는 너무 싫었어. 우리도 내지 않았냐고? 너는 너고 우리는 우리잖아." 뭐 이런 게 진실이었을지?

아울러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의 입장: "그래, 영화 속에서 우리는 파티도 싫어하고 난잡하게 여자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게 최고였어. 응. 그냥 그렇게 믿어 줘. 우리는 살아 있고, 마누라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있잖아. 이제 늙어서 갈 데도 없어. 받아 줄 데도 없고. 그러니까 나쁜 건 다 네가 가지고 가. 프레디. 사랑해." 뭐 이런 것이었는지도.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든 몇가지 생각. 

<아셔도 그만, 모르셔도 그만.>

 
1. 머큐리가 내놓은 문제의 솔로 앨범 Mr. Bad Guy 수록곡 중 영화에 나오는 곡은 단 한 곡, 바로 타이틀 트랙인 Mr. Bad Guy 입니다.

머큐리가 폐인(?)이 되어 가며 '다들 좋다는 얘기만 하는' 녹음실에서 솔로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뿜빰뿜빰뿜빰하는 전주가 잠시 흘러 나옵니다. (아주 오래 전, 서울음반의 상징인 녹색 껍질이 씌워진 카세트 테이프로 열심히 듣고 다녔죠. 곡들의 면면이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당시 음악 좀 듣는다는 친구들은 모두 이 음반을 싫어했습니다. 하긴, 이 친구들은 퀸의 Works 앨범도 인정하지 않았죠.^^)

2. 사실 이 앨범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곡은 거의 모든 사람이 그냥 '퀸의 노래'라고 알고 있는 I was born to love you. 이 곡은 나중에 퀸의 다른 멤버들이 반주를 다시 녹음해 머큐리 사후 발매 앨범인 Made in Heaven에 슬쩍(그것도 처음엔 일본 발매분에만! )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 보시면 반주가 두가지. 머큐리 솔로 앨범 버전은 전자악기 중심의 약간 저렴한 듯한 반주고 퀸 리메이크 버전은 처음에 천둥소리가 나면서 메이의 기타 사운드가 울려퍼집니다. 아무튼 뭔가 께름칙한 부분이 있었는지, 웬만한 히트곡은 다 들어 있는 퀸의 그레이티스트 히츠 1, 2, 3 앨범에도 이 곡은 들어 있지 않지요.

(그러니 앞으로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곡'이라고 족보를 제대로 찾아 주기 바람.)

3. Mr. Bad Guy 전주가 잠시 나오는 것 외에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밴드의 곡은 아마도 Dire Straits의 Sultans of Swing 이 유일한 듯.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서기 전, 퀸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이 곡의 일부가 잠시 들립니다. Dire Straits는 퀸의 바로 앞은 아니고 앞의 앞 순서죠.


(그런데 이런 것까지 정확하게 재현한 이 영화에서 왜 스토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상.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봐도, 이 영화에서 스토리가 솔직히 뭐가 중요하겠어. 노래가 주인공이고, 노래가 열일 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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