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이었던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속편 '신과함께 2: 인과 연'이 개봉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신과 함께'의 흥행 열풍이 갖는 의미를 물어보곤 합니다. 물론 흔히 거론되는 의미만 해도 이미 여러가지입니다. 우선 한국영화 최초로 대작 2편을 동시에 제작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식한 용감한^^ 기획입니다. '신과 함께'가 흥행 초대박을 기록하면서 1편만으로 두 편 모두의 순익분기점을 넘기는 쾌거가 이뤄졌지만, 만약 1편이 흥행에서 쓴 맛을 봤다면 2편은 아예... 상상하기도 싫은 대재앙이죠. 또 '판타지=마법사, 요정, 드라곤이 등장하는 서구풍 이야기' 라는 등식을 깨고, 한국 고유의 설정을 기반으로 최초의 본격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뭣보다 웹툰 원작의 폭발력을 입증한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밖에, 얼마전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두 가지 면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고 얘기했습니다.
첫째. '수출용 상품으로 적절한 한국 영화는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가장 충실한 답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근래 한국의 대형 흥행작들을 살펴 볼 때, 철저하게 한국 로컬 관객들을 노린 '한국형 블럭버스터'들이 주류를 이뤘다는 점이 특징으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1987'이나 '택시운전사'가 대표적이고, 흥행 참사를 기록하긴 했지만 '군함도'도 개봉 직전까지 '실패할 수 없는 영화'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듯, 일단 소재면에서 철저하게 한국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해외 진출에서는 주목할 만한 결과를 낳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신과 함께'는 누가 봐도 훨씬 문화적 장벽을 넘기 쉬운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신과 함께' 1편의 모자간 정서 같은 것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전 인류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죠. 그 밖에도 '신과 함께'를 보는데 한국 현대사나 정치 구도에 대한 선이해, 혹은 큰 관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보편성이야말로 '신과 함께' 프랜차이즈의 큰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둘째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의외로 천대(?) 받아온 가족영화의 성공입니다. 한국 영화 제작자들에게 왜 가족영화, 즉 패밀리 무비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떤 제작자들은 약간 모욕을 받은 표정을 짓곤 합니다. "내가 그 따위 영화나 만들 사람으로 보이냐"는 속내인 것이죠. 이런 제작자들에게 있어 '가족영화'란 '유치한 저예산 영화'와 거의 동의어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제작자들은 아직도 '한 시대를 관통하는 뜨거운 메시지를 담아 성인 관객들을 격동시키는' 작품들을 선호합니다. 사회성 강한 영화와 폭력물, 메시지가 강한 사극 등이 주로 한국 영화에서 흥행이 잘 되는 장르로 여겨지는 것도 한 몫을 하겠죠.
그런데 굳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역대 할리우드 영화 흥행 순위를 보면 상위권에는 PG, 혹은 PG-13 등급의 가족 관람을 겨냥한 영화, 즉 패밀리 무비들이 압도적입니다. 왕좌의 게임, 쥬라기공원, 해리 포터, 스타워즈 시리즈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죠. 특히 여름/겨울 방학 시즌을 노리는 영화라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패밀리 무비의 수요는 압도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1위인 '명량'이 동원한 1700만명의 관객 중에도 부모님과 함께 온 초등학생들의 수가 만만찮게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무공의 위업을 다룬 영화'의 교육적인 효과 때문에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을 무시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극장을 찾은 부모님들이 적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신과 함께' 이전에도 12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흥행 대작으로 '국제시장'을 들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 역시 지금 이 글에서 의미하는 패밀리 무비를 겨냥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 라는 이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반면 '신과 함께'는 개봉 직후부터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은 한국영화 대작'임을 대대적으로 알린 작품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속편들을 통해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가족 영화 프랜차이즈 블럭버스터'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요약하면
1. 최근 한국 흥행작 가운데 드물게 해외 시장에서 수출용 상품으로 가치를 가진 영화다.
2. 어른들도 흔쾌히 함께 볼 수 있는 온 가족용 프랜차이즈라는 새 시장을 개척했다.
..도입부가 너무 길었군요. 2부는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48번째 귀인인 자홍(차태현. 2부엔 안 나옵니다)의 재판을 성공적으로 마친 세 차사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 앞에 또 하나의 귀인 수홍(김동욱)이 등장합니다. 자홍의 동생 수홍이 49번째 귀인이므로, 수홍까지 환생시키면 세 차사 역시 천년의 의무에서 풀려나 환생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수홍의 정당한 재판을 요구하는 세 차사에게 염라대왕(이정재)은 두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당연히) 49일 안에 수홍의 재판을 모두 마칠 것. 그리고 지상에서 많은 차사들을 괴롭혀 온 성주신(마동석)을 제압하고 허춘삼(남일우) 노인을 저승으로 데려오라는 것.
하지만 성주신은 전투력이라면 절대 남부럽지 않았던 해원맥을 한방에 무릎꿀립니다. 게다가 성주신은 "너희 죽을 때 내가 저승사자였는데... 나 기억 안 나냐?"는 충격적인 말까지 던집니다. 과거를 잊은 해원맥과 덕춘은 큰 충격을 받죠. 아울러 수홍은 자신을 지옥 재판정으로 인도하는 강림에게 끈질기게 캐묻습니다. "대체 왜 내 재판에 이렇게 집착하는 거지? 내 재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거 아냐?"
그렇게 해서 '신과 함께2'는 해원맥과 덕춘이 어떻게 저승사자가 됐는지, 그리고 성주신과 허춘삼 노인은 어떻게 되는지, 전편에 이어 등장하는 염라대왕과 강림은 대체 무슨 사연인지 세 갈래의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사실 수홍은 1편에서만큼 중요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엔딩에서 그가 뭔가 더 큰 빅 픽처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알려지면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참 많아 조심스럽네요. 게다가 뒤집은 32의 등장은 정말이지... ^^]
1편이 자홍의 죽음, 망자가 저승에서 겪어야 할 재판의 과정, 한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 등을 보여주며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큰 주제에 도달하는 다소 단순한 흐름이라면, 2편에서는 지상과 저승의 이야기가 비틀리고 꼬이며 비슷한 비중으로 흘러갑니다. 특히 2편에서는 성주신-해원맥-덕춘 라인과 강림-수홍-염라 라인이 팽팽합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논리적인 얼개도 1편보다는 2편이 더 탄탄합니다.
게다가 1편에 없었던 철학적인 질문이 2편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현세에서 죄를 지은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 죽음, 즉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도록 강제로 차단하는 것'이라면 이미 죽음을 맞은 이후인 저승에서 죄인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은 무엇일까요?
말을 바꿔 보면, 만약 이승에서의 삶이 끝난 뒤 저승에서도 한 인격의 정체성이 유지된다면, 그래서 그 인격이 소멸되지 않고 존재를 이어간다면, 영원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존재를 가장 괴롭게 할 형벌은 무엇일까요? 불구덩이? 얼음 벌판? 매일 날아와 심장을 파 먹는 독수리? '신과 함께 2'는 한 인간을 천년 동안 괴롭힐 수 있는 신선한 방안을 제시합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인간으로부터 레테 여신의 선물을 빼앗는다는 것인데요, 그게 어떤 것인지는 직접 영화를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
1편에 비해 2편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주지훈의 매력 발산입니다. 1편에서도 나름 멋졌던 해원맥은 2편에서 고려 최강의 무사, 여진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흰 삵' 으로 변신해 여심을 강타합니다. '뇌는 없고 행동력만 최강인' 현재의 해원맥에 비해, '흰 삵' 버전의 주지훈은 쓸쓸한 눈빛의 츤데레 검객, 즉 고전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에 예고편 2초 등장 만으로도 2편에 대한 흥미를 100포인트 이상 상승시켰던 마동석의 근육미(?)도 열일을 합니다. 마동석 표 코미디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지만, 아무튼 마동석은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열연을 펼칩니다. 마동석이 아니라면 누가 했어도 '이렇게 적절할 수' 없는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성을 통해 '신과 함께 2'는 전편에 비해 손색 없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의 도가니에 관객을 집어던집니다. 개인적으로는 1편의 강렬한 결정타 - 많은 지식인들이 '신파'라고 짜증스러워했던 -가 2편에는 없고, 전반부 수홍의 발걸음이 좀 무겁다는 점에서 2편보다는 1편이 더 가슴에 와 닿지만(개취입니다), 이미 1편을 보신 분들은 2편에 올라타지 않을 재간이 없겠죠. 뭣보다 2편을 보시면 다시 3편을 기다리게 될 겁니다. 벌써 2편은 개봉일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군요.
1편도 그랬지만 '신과 함께' 시리즈의 관람이란 행위는 전통적인 영화 관람이라기보다는 롤러코스터 탑승에 비교하고 싶습니다. 그 흐름에 저항하면 턱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두통이 올 수도 있습니다. 저 새까만 곳에서 떨어지는 청룡열차에, 독수리요새에 몸을 맡기고 그 아찔함을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원해집니다.
P.S. 그런데 이미 나오기로 했다는 3편은 언제쯤 개봉? 아무래도 내년 여름은 힘들겠죠? (염라는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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