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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좀 하다가/영화를 보다가

퍼펙트 센스, 매일 하나씩 감각을 잃어간다면

퍼펙트 센스(2011)

데이비드 맥켄지 감독. 이완 맥그리거, 에바 그린 주연

만약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한가지씩 감각을 잃어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엔 후각이, 이어 미각이 사라진다. 인간들은 혼란에 빠지고, 냉소적인 셰프였던 마이클(이완 맥그리거)는 실업자가 될 위기에 놓인다. 수전(에바 그린) 연구팀은 급속도로 번져가는 전염병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주어진 오감으로 부족하다는 듯 가상 세계에까지 감각을 확장해가고 있는 현대인에게서 가장 기본적인 감각들을 빼앗아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흥미로운 설정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오감은 인간이 욕망을 갖게 하는 전제다. 감각이 없으면 욕망도 없다. 미각이 사라진 뒤에 미식이, 청각이 사라진 뒤에 음악이 사라지듯 시각과 촉각이 사라진 뒤에 성욕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충족할 수 없는 즐거움이 없다면 인간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할까.

<퍼펙트 센스>는 감각이 하나 하나 사라질 때마다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세상의 종말이 찾아왔다는 절망과 파괴, 그리고 또 하나는 어떻게든 최대한 남아 있는 감각을 이용해 삶을 유지하려 하는 방향(물론 오감은 욕망의 전제이기 전에 모든 생명체의 안전을 위한 도구이지만, 영화는 거기까지 커버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선 맛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은 레스토랑을 찾고, 와인을 마시며 얼굴을 마주한다. 청각을 잃은 뒤에는 빠른 속도로 수화를 익힌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라이브 바에서는 밴드가 음악을 연주한다. 청중들은 공기의 진동을 통해 음악을 느끼려 애쓴다.

마스크 착용이 강제되는 사회. 격리. 강제 수용. 텅빈 거리. 11년 전 영화라기엔 놀라울 정도로 팬데믹 시대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는 영화. 초기 개발 단계의 제목은 ‘The last word’였다고 한다.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그 단어다. 흥미로운 설정을 100% 활용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대사,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And life goes on)’으로 대변되는 낙관이 강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만약 이런 세상도 올 수 있다면 코로나 따위가 대체 무슨 문제일까.

그런 의미에서는 매우 용기를 주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