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칸도의 지붕 덮인 회랑 마루를 따라 걷는다.
보시다시피 사람은 하나 가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림같은 광경 때문에 불만이 없다.

색의 폭격

정비석 선생의 말처럼 짜면 주르륵 빨간 물이 쏟아질 기미.

회랑 중간 중간에 전각을 지나는데, 전각 안은 모두 촬영 금지. 대략 이런 느낌이다.

마당이 더 붉고

아무래도 그늘진 쪽은 단풍도 덜 붉은데, 그래도 예쁘다.

딱 이 정도로 사람이 없으면 정말 여기서 살고 싶을 듯.

이런걸 봐선 여름에 와도 에이칸도는 멋지겠지만,
그래도 단풍철만은 못하리.

바닥 돌에 떨어진 잎들만 봐도 예쁘다.

이제 끝. 나가는 길을 내려와 보면,

정말로 관광엽서같은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말이 필요 없음.

다리 정면에서 보면 이렇다.
변재천은 일본에서 말주변과 예술적 재능을 관장하는 여신. 불교와 신도(신토)의 중간에 있는 존재라서 절 안에 도리이가 있다. 뭐 한국에도 절 안에 산신당이 있는 절들도 많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일본 절을 다니다 보면 한국보다 훨씬 더 신도 혹은 민간신앙과 불교의 결합이 깊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단풍의 조형미가 그만.

그렇게 해서 대략 한시간 정도, 에이칸도의 숨막히는 풍광 속에서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나가는 길에 있는 애기동자 4형제.
본래의 조형 의도는 눈을 감고 명상하는 모습인 것 같은데, 거기 이끼가 끼면서 뭔가 심통맞은 인상으로 바뀌었다. 돈도 안 내고 그냥 사진 찍는 걸 나무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에이칸도 산문을 나와 남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난젠지가 나온다.
중간에 이렇게 문이 닫힌 작은 사찰 같은 곳도 보인다.

5분 정도 걸으면 바로 위용을 드러내는 난젠지의 본당.
난젠지는 특이하게도 내부와 외부를 딱 구별하는 담벼락이 없다. 그냥 큰길에서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
(당연히 입장료 같은게 없다.)

그 넓은 경내에 향훈이 진동한다. 가보니 엄청나게 큰 향로에 엄청나게 많은 향촉이 타는 중.
돈 내라는 표시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나 향을 피울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본당 앞에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면, 거대한 문루가 보인다.
바로 난젠지의 상징, 삼문이다.

누각이 3층이라 삼문인가? (아님. 1층이 커서 그렇지 2층임)
아무튼 평소에는 문루에 올라갈 수 없는데, 가을 단풍철이라 특별히 개방했다고.
아, 물론 저런데 올라가는게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아무튼 22m. 대략 7,8층 건물의 높이다.
그렇게 삼문을 겉에서 보고, 난젠지의 진짜 명물을 보러 발길을 돌렸다.

이것이 수로각. 언뜻 보기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북부에 남아 있는 로마식 수도교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실제로 이것도 비와 호수의 물을 교토 시내로 운반하는 수로. 19세기 말의 작품인데, 당시로서는 첨단 공법인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했고 지금도 물을 운반하는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난젠지 경내를 통과하는 대신 '최대한 멋지게 지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하는데, 막상 지어놓고 나니 정말로 난젠지의 명물이 되어버렸다.

멋짐.

그렇게 멀리서 산문에 다시 안녕을 고했다.
이렇게 해서 에이칸도-난젠지 구경을 마쳤다. 난젠지에는 이밖에도 여러 구역이 있지만, 삼문과 수로각 외에는 크게 찾아가서 볼만한 가치는 없는 것 같다.

수로각에서 흘러온 물일까? 난젠지에서 시내 방향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를 따라 걸으면,

교세라 미술관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거대한 도리이가 있다. 신사도 없는데 웬 도리이?
알고보니 헤이안진구 (여기서 1km 정도 떨어짐)의 영역임을 이 먼 곳에서부터 알리는 거라고.
물론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20세기 물건이다.

아무튼 일본 제조업의 상징 중 하나인 교세라가 운영하는 미술관.
세가지 정도 전시가 있었는데, 그냥 소장품전을 보기로 했다.

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미술관 카페/식당을 참 좋아한다.
내 기준으로 좋은 미술관은 좋은 카페에서 좋은 전망과 감각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그리고 세계의 괜찮은 미술관들은, 대부분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유명한 미술관에 가면 꼭 카페를 간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 미술관들은 영 꽝이다. 국중박도, 리움도, 엉망이다.
뭔가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이 차 한잔을 마시고, 시장기를 때우면서, 지금 본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할 공간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작품만 보고 가게 만들거나, 있어도 시장통 같이 해 놓는다면 대체 그걸 좋은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 헬로 키티 전시.
하긴 도쿄의 국립박물관에서도 한 관을 털어 헬로키티전을 하고 있더만.

시오카와 분린 (塩川文麟,1808–1877년)의 청록누각산수도+병화당자도(青緑楼閣山水図・瓶花唐子図).
가림막의 양면으로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당시의 양식인데, 지금 보이는 쪽은 병화당자도다. 당자란 역시 당시 풍습으로 '중국 스타일의 동자상'을 그림에 넣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병이 엄청나게 크거나, 소년들이 엄지동자들이거나 둘 중 하나일 듯. 1860년 그림인데, 일본풍이라기보다는 중국풍의 작품이다.

이카이 쇼코쿠 (猪飼嘯谷, 1881–1939년)의 1934년 작 유조수차도 遊釣水車図.
수차 옆에서 낚시를 하며 노는 소년의 모습을 그렸는데 특이하게도 수차는 그냥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34년이면 일본 군국주의가 거의 절정을 구가하고 있던 시절인데, 뭔가 한가로운 느낌. 아무래도 수차는 늘 그렇듯 과학 기술의 상징일테고, 하지만 수차가 쓰러지건 물에 둥둥 떠 있건 낚시하는 소년은 아무 관심이 없다. 고사관수도의 현대적 표현일지.

그리고 다음 그림도 맥락이 궁금하다.

기쿠치 게이게쓰 (菊池契月, 1879–1955)의 <쇼난공 형제 小楠公弟兄>. 이것도 1943년 작품인데 인물들은 당시 인물은 아니고, 머나먼 옛날, 남북조 시대 인물인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두 아들을 그린 그림이다.
배경이 상당히 흥미롭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고다이고 천황의 오른팔이었던 인물. 고다이고 천황은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앞세워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1334)시키고 천황의 실권을 회복했다...고 잠시 착각했지만,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야심가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막부의 권력을 다시 천황에게 넘겨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아시카가는 새로운 허수아비 천황을 세우고(북조), 패전해 달아난 고다이고 천황은 남쪽에 공격한다. 이것이 남북조 시대(1336-1392)다.
구스노키는 이때 고다이고 천황을 도와 승산 없는 싸움에 뛰어들어 결국 목숨을 바쳤는데, 그의 두 아들은 행동이 엇갈렸다. 장남은 아버지의 원칙에 동의, 끝까지 싸우다 죽었지만 둘째는 북조와 남조를 오가며 배신을 거듭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북조의 편을 든 덕분에 구스노키 가문은 멸문을 면했다.
이 배경이 흥미로운 것은, 1943년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당시 군국주의 일본 정부는 구스노키를 '천황에게 절대 복종하는' 충절의 화신으로 승화시켰고, 여러 프로파간다를 이용해 그 우국충정을 널리 알리려 했다. 동상을 세우고 그림을 그리고... 그래서 기쿠치의 저 그림도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그림으로 보일 수 있었는데, 묘하게도 기구치는 우상화된 장남과 아버지를 그린 것이 아니라, 미묘한 행동을 했던 차남을 같이 그렸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충절의 상징인 장남. 검은 옷을 입은 것이 뭔가 고민이 많은 차남. 기구치의 무게는 어디에 실렸을까.

그런데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작품은 저 그림들을 포함해 총 6점이었고, 이날 전시된 그림들은 대략 30~40점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 외의 그림들은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다. 따로 이 전시의 도록을 파는 것도 아니면서, 그림의 제목을 기억하기 위해 제목을 찍는 것조차 제지한다. 이건 거의 정신병 수준이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루브르도, MOMA도 작품의 사진을 찍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관람객들이 사진 찍기 따위에 열중하지 않고 현장에서 그림에 더욱 심취하게 하기 위해서? 농담하지 마라.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그림들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만다. 정말로 바보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헬로키티 전이 얼마나 높은 미술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보같은 사진촬영 금지만 없어도 관람객이 10배는 더 올테고, 굳이 미술관 재정을 위해 헬로키티전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훨씬 더 주옥같은 소장품들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서 기념품점에 와 보니 작년에 긴자에서 본 야노베 겐지의 우주고양이 모형을 팔고 있다.

인상적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진 촬영 금지 조치 때문에 나쁜 인상을 남긴 교세라 미술관.
일단 호텔로 복귀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대망의 도후쿠지 공략에 나서기로 했다.

기다려라 도후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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