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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08년 8월에 런던에 가면 반드시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빌리 엘리어트 보기'였습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찬사를 뿌렸고, 2005년 이후로 영국에 갔다 온 사람들은 죄다 '빌리 엘리어트' 얘기 뿐이더군요. 올해 10월부터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이 열리고, 언젠가 한국에서도 무대에 올려질테니 보긴 보게 되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물론 다 아시겠지만 이 '빌리 엘리어트'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엘튼 존이 노래를 만들어 붙인 뮤지컬입니다. 아마도 '아이다'와 '라이온 킹'을 제치고 엘튼 존 최고의 뮤지컬로 남지 않을까 싶은 작품입니다. 이 뮤지컬이 상영되는 극장은 웨스트 엔드의 다른 극장들과 좀 떨어진 빅토리아 팰리스 시어터였습니다.

저번 비싸게 먹기편에서 설명한대로 고든 램지가 운영하는 호스피탈 로드의 폭스트로트 오스카(Foxtrot Oscar)가 버스로 약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한 코스로 묶을 만 합니다.^ 아, 물론 이 극장은 런던에서 시외로 나가는 버스 거점인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의 바로 앞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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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빅토리아 스테이션에서 뒤로 바로 돌아서면 빅토리아 팰리스 시어터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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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 방향으로는 위키드(Wicked)가 상연되고 있는 아폴로 시어터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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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를 볼까도 생각했지만 '라이온 킹'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아동극은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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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는 이미 줄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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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본연의 자세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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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안도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건 막이 오르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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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영화와 똑같습니다. 대처 수상 치하의 영국. 자원 고갈로 경제성이 떨어진 탄광에 대해 대처 정부는 감원을 비롯한 엄격한 경쟁력 강화 조치에 들어갔고, 광부들은 파업으로 여기 맞서고 있었습니다. 광부들의 생활은 악화될대로 악화됐고, 그런 가운데서도 소년 빌리는 우연한 기회에 무용에 눈을 떠 춤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빌리에게 춤을 가르쳐 주는 윌킨슨 부인과 일찍 죽은 빌리의 엄마(영화엔 안 나옵니다)가 겹쳐지는 장면이 좀 추가된 정도죠. 물론 무대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경찰관과 시위대의 대립 같은 장면들도 상당히 잘 고안된 장치로 실감나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가장 나빴던 점은 대사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점. 영어실력도 실력이지만 워낙 사투리 억양이 강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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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결말은 영화의 결말과 살짝 다릅니다. 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어른 빌리는 이미 뮤지컬 중반에 등장합니다. 소년 빌리와 함께 '백조의 호수'에 맞춰 춤을 추죠.



그 분위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엘튼 존이 부르는 'Electricity' 뮤직비디오를 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이 노래는 -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 왕립 무용학교 입학 면접때 빌리가 하는 대답, "춤을 출때면 전기가 내 몸을 따라 흐르는 것 같아요"를 대신하는 곡입니다. 뮤지컬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장면이죠.




엘튼 존의 걸쭉한 목소리보다는 제 3대 빌리(초대 빌리라고도 하죠)인 리엄 모우어 군이 부른 버전이 더 잘 어울립니다.




이번 뮤지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인 'Solidarity'. "Solidariy, Solidarity, Solidarity Forever"라는 후렴구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빌리 엘리어트 전편의 예고편.




웨스트엔드에서 본 빌리 엘리어트의 소감을 정리하라면, 통상 수많은 뮤지컬들이 히트하는 노래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성공과 실패로 갈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뮤지컬은 음악적으로는 그리 뛰어나다고 보기 힘듭니다. 'Electricity'를 비롯해 등장하는 노래들 중 '아, 이 노래!'할만한 곡이 귀에 쏙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은 탁월한 무대 연출과 소년 빌리들의 대활약으로 롱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원작 영화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테고, 소년 빌리에 초점을 맞춘 화려한 안무가 뒷받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만큼 이 뮤지컬은 무대를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팬텀'의 오리지널 캐스트 CD가 전체 뮤지컬의 60% 정도를 갖고 있다면 이 뮤지컬의 오리지널 캐스트 CD는 기껏해야 30% 정도를 이해하게 해 줄 뿐입니다.

일부의 '뮤지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극찬은 좀 지나치다 싶지만 세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릴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반드시 감상할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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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원작 영화를 다시 참고했지만, 역시 빌리는 그리 착한 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왕립 무용학교에 합격했을 때, 빌리는 윌킨슨 부인에게 달려가 합격 사실을 얘기하며 "전부 선생님 덕분이에요!"하고 울먹여야 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영화와 뮤지컬에서 모두 윌킨슨 부인은 딸 데비를 통해 빌리가 합격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죠. 정말 배은망덕한 놈 아닙니까?

하지만 마음이 하해와 같은 윌킨슨 부인은 런던으로 떠날 때가 되어서야 기껏 찾아온 빌리를 축복해 줍니다. 빌리는 마지못해 "고향에 자주 돌아올 거고, 올 때마다 만나뵈러 올게요"라고(놈이 하던 행태를 보면 당연히 맘에 없는 얘깁니다) 말하지만, 윌킨슨 부인은 "아냐, 너는 그럴 리가 없어"라고 못을 박아 줍니다. 그리고 나서 말하죠.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가. 성공을 향해서."

그렇게 해서 빌리는 발레리노로 성공했고, 그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했을 아버지나 형은 그냥 나몰라라 했을 겁니다. 기껏 공연에 초대는 했지만 "뒤풀이 파티에 가야 해요"라고 가족들 앞에 그냥 등을 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성공이란게 원래 이런 면이 있긴 하죠.


p.s. 2 브로드웨이 공연을 위한 미국 빌리 역 소년들의 오디션 장면입니다. 총 1500명이 지원했다는군요. 2분43초쯤에 저희가 웨스트엔드에서 본 빌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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