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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를 보다 보면 참 요즘과 다르고, 조선시대와도 또 다른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의 위험성 - 굳이 천추태후가 역사의 주역으로 나서야 하는가 - 등에 대해서는 심히 공감하고 있고, 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을 했지만 차후에 다시 모아서 포스팅할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보다 먼저,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희한한 고려 왕조의 가족내 혼인상(사촌 정도는 근친혼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던)에 대해서 조금만 얘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근친혼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의미가 오늘날에 와서는 더없이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오래 전에는 이것이 상식인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그냥 알아 두는 선에서 그쳐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은 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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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방송분에서 한 신하가 경종이 외사촌남매간인 황보씨의 두 자매(뒷날의 천추태후와 동생)와 혼인하겠다는 데 대해 '근친혼'이라면서 반대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고려 초기의 신료라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외사촌남매간이라면 현대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끔찍한 근친혼이지만 당시 왕가의 혼인 습속을 살펴보면 거의 남남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외사촌간의 혼인은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합법입니다. 친사촌이라고 해도 미국 절반 이상의 주에서 합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혈족 개념이 강한 한국이니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죠. 그리고 내막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사촌간 혼인은 고려 초기라면 근친혼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 안에서 경종(최철호)은 신정황태후(반효정)에게 꼬박꼬박 '외할머니'라고 부르고 치(뒷날의 성종)이나 두 공주에게 '짐의 외사촌'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한국의 족보상으로 이들은 외할머니나 외사촌이 아닙니다. 그냥 할머니나 사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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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대로 고려 태조 왕건은 6명의 황후를 비롯한 29명의 부인을 통해 수없이 많은 자손을 두었습니다. 모두 왕권 안정을 위한 노력이었죠. 신라 왕가를 비롯해 각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과 모두 혼인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자손들 사이에서 빽빽한 혼맥이 다시 형성됩니다. 즉, 똑같은 왕건의 소생인 형제 자매들끼리 어머니만 다르면 다시 혼인을 한 것입니다. 단지 남자는 아버지의 성대로 왕씨를 따랐지만 딸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기 때문에 얼핏 봐서는 형제간 혼인이 아닌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고려 5대 왕인 경종은 4대 광종의 아들입니다. 광종은 태조의 제3 황후인 신명황후 유씨의 소생이죠. 그리고 광종의 아내인 경종의 어머니는 제4 황후인 신정황후 황보씨(드라마의 반효정)의 딸인 대목황후입니다. 대목황후도 황보씨로 설정되어 있지만 엄연히 왕건의 딸이죠. 어머니만 다른 남매끼리의 혼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광종의 어머니인 신명황후 유씨는 정종이 되는 요 왕자, 광종이 되는 소 왕자를 낳고 신정황후 황보씨는 뒷날 대종으로 추증되는 욱 왕자를 낳습니다. 이 욱 왕자가 제6 황후인 정덕황후 유씨의 딸(역시 어머니만 다른 남매입니다)과 결혼해서 낳는 것이 바로 뒷날의 성종인 황주원군 치, 그리고 천추태후 황보수와 황보설 자매입니다.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들이지만 위의 예에 따라 아들은 왕씨, 딸은 황보씨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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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경종이 신정황태후를 가리켜 외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일면 맞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황주원군이나 황보수-황보설 자매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의 동생인 대종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외사촌인 동시에 친사촌이 되는 셈이죠. 아울러 신정황태후 또한 할아버지의 여러 부인들 중 하나이니 그냥 할머니도 되는 셈입니다.

이처럼 거미줄같은 고려 왕조의 혼맥이 결정판을 이루는 것이 바로 8대 현종입니다. 현종의 아버지는 현재 출연하고 있는 경주원군 욱(대종 욱과 한자가 다릅니다. 드라마 속의 김호진). 왕건의 아들이며 제5황후인 신성황후 김씨의 소생입니다. 신성황후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사촌이니 신라 왕가를 외가로 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신라계 중신들이 다음 왕으로 경주원군을 밀려 하죠.

경주원군은 나중에 경종의 아내였던 효숙왕태후(헌정왕후) 황보설(그러니까 뒷날의 신애)과 정분이 나서 그 사이에서 대량원군(뒷날의 현종)을 낳습니다. 엄연한 왕비가, 그것도 자신의 숙부이며 남편의 숙부가 되는 황실의 근친과 바람을 피운 셈입니다. 그런데도 왕족의 씨앗이기 때문에 아이는 대량원군이라는 엄연한 왕자의 칭호를 받고 자라나죠. 심지어 불륜의 주범인 경주원군까지도 사후에 안종이라는 이름으로 왕의 자리를 추증받습니다. 왕의 아버지가 된 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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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대의 불륜 커플... >

그러니 뒷날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닙니다. 천추태후 자신이 왕건의 친손녀이니 그 아들도 절반은 왕씨의 자손이니 말입니다. 중국의 예를 보더라도 자신의 친정 쪽으로 아예 왕가를 바꿔 놓으려 한 한고조 유방의 아내 여씨나 측천무후 무씨에 비하면 훨씬 양심적인 편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살펴볼 때 고려 초기의 왕실 계보는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참 곱게 잘 갈린 콩 분말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대로 다 필요에 의한 것이었고, 오늘날의 도덕관념으로 재단해서는 안되겠죠. 왕가가 사방의 귀족들로부터 권위의 위협을 받던 시절, 조금이라도 왕가의 권위와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외성 귀족들이 외척으로 참여하는 것을 심각하게 제한해야 했고, 그 결과가 이런 심각한 족내혼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그런 부분(예를 들면 남매간 혼인)은 살짝 가려 보려고 시도하고 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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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조만간 자기도 모르게 근친혼을 할수있음 호적제도가 폐지되서 어릴때 헤어진 남매가 20년후에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물론 성은 바꼈겠죠), 남매인것을 알게 되는 일들이 엄청 나올겁니다...coming soon 2009.01.12 22:24
  • 프로필사진 halen70 저도 동감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었지만 그렇게 폐지시키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2009.01.13 02:53
  • 프로필사진 문화인 근친혼이 나쁘다는 것은 유교 윤리일 뿐이다. 조선 왕조가 멸망한지 100년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유교 윤리를 절대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목을 매다는지 모르겠다. 민족사 5000년 대부분을 유교 없이도 아무 문제없이 잘만 살았거늘, 자주적 기상이 넘치던 1000년전의 자랑스런 옛 조상들을 보고 콩가루네 뭐네 비웃는 이들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 중국 것이라면 하늘 같이 섬기던 최근 수백년 동안의 조상들이 더 못난 것 같은데, 유교 윤리에 투철해서 "콩가루가 아닌" 그 분들이 오히려 자랑스러운가 보다. 왜 우리 나라에는 외래 사상이 들어오면 원산지에서 쇠퇴한 이후에도 더 지독하고 광적인 형태로 변질되는 것일까?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퇴조하였는데도 북에서는 극단적인 개인 숭배로 변질된 주체사상이 국가 지배 이념이고, 한국의 개신교는 서양보다 훨씬 배타적이고 광적이다. 한국 유교도 말할 것이 없다. 유교가 지배하기 전 1000년 전 자기네 조상들을 보고 콩가루니 뭐니 하는 걸 보면 근세 이전의 조상들은 예수 안 믿었으니 다 지옥 갔다는 개신교 광신도와 다를 바가 없다.
    대한민국은 엄연한 세속 국가인데도 아직까지 유교 율법이 법으로 강제된다. 20세기말까지 동성동본 금혼같은 황당무계한 법이 엄연히 살아있었고, 21세기 들어와서까지, 배우자가 죽은 후에 배우자의 친족이랑 결혼하는 것까지 금지되고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탈레반이 울고 갈 수준이다.
    2009.01.12 22:26
  • 프로필사진 최재혁 저도 하도 가계가 이상해서 정리해서 드라마 이해하려고 홈페이지 여러개 뒤져서 정리해 놓았습니다.

    주소는 : http://cafe.naver.com/tongchunchoi/243 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오셔서 보셔도 좋을듯합니다. 그리고 위키백과에서 찾아본다면 드러나지 않은 가계를비롯하여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작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부계혈통이 정립된 것은 유교가 들어온 이후라 생각되어지는데 그후로도 결혼풍습은 모계혈통시대의 풍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풍습이라는 것이 일정기간 이상 신부의 집에서 사는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풍습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말이 장가간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풍습은 조선중기까지 지속되는데 조선초기부터 법으로까지 정해서 시행했지만 지켜지지 않다가 명종조에 이르러 다시 한번 시행하기를 강력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러 조선시대 여성중 제일 잘 알려진 두 여인의 운명을 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풍습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신사임당이고 받지 못한 사람이 허난설헌입니다.

    친정에 육아 등 많은 부분 의존할 수 있었던 신사임당은 친정이 있는 강릉의 오죽헌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펼쳐보였습니다. 자제분인 율곡 이이 선생도 강릉에서 태어났고 다른사람의 눈치 안보고 작품활동에 매진할수 있었습니다. 이후 본가로 오게 되면서도 아들들의 출생이 있어서 작품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토데는 가지고 오게되엇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결혼 후 바로 시집으로 들어가서 살게 된 1세대인 허난설헌은 태어난 아기들이 일찍 죽는등 모든 부분에서 작품 할 수 있는 아무런 도움없이 살아가게 되어 결국에는 자기가 가진 재능을 재대로 펼쳐보이지도 못하고 요절하게 되었죠.

    허균이 남긴 기록과 사서에 남아있는 기록에도 형제들이 모두 천제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특히 허난설헌은 오라비인 혀균이 밝혔듯이 여자이면서도 자기의 재능을 뛰어넘을 정도의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재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죠. 요절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댁에서 시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한계로 작품활동을 하기에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에 워낙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남편에게도 엄청난 부담이 되어 남편의 사람을 못받고 산 원인이 되었답니다. 이후 사후에는 그녀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을 불살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사임당에 비해서 전해지는 작품들이 적다고 합니다. 친정에서 살던 세대라면 더많은 작품이 남아있었을겁니다.
    2009.01.12 23:50
  • 프로필사진 뭔 소린가요? 근친혼 야그를 하는디. 2009.01.12 23:39
  • 프로필사진 최재혁 근친혼의 근본적인 풍습은 모계혈통의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말슴을 드리려고 하다 그와 상대되는 부계혈통을 설명하다보니 다소 엉뚱한 예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근친혼은 일처다부제 형태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목민족에서 자주 보여졌는데 전투력의 유지와 관계되는 일이었기에 죽은 형의 형수를 취해 결혼한다든지 하는 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조카들과 형의 죽음으로 혈연관계가 엷어질 수 있는 형수의 집안과도 계속적인 혈족관계를 유지시키는 역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친혼이 유난히 고려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닌 대부분의 고대국가에서 보여지는 형태입니다. 기록상에 남아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신라의 성골,진골의 가계로 성골은 왕실간의 혼인관계고, 진골은 왕실과 일반성씨들의 혼인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혈족 혼인관계가 신라의 중기에이르러 왕계에 성골들이 없어져 성덕,진덕여왕을 거쳐 성골출신이 아닌 진골출신의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죠.
    2009.01.13 00:14
  • 프로필사진 쩝... 뭔~.. 남의 족보에 이리 빠삭~하댜~ ^^

    그나저나, 그당시 근친혼이 무슨... 특별한 경우(??)라기보단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인간이 땅에 대해 밀도를 많이 차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쉬이~ 다른 사람들을 믿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겠죠~

    걸핏하면, 전쟁에.. 분쟁에.. 인구밀도도 낮고...
    그런 상황에서 노동력이자, 인간적으로도 친밀하고 잘 아는 사이를 떠나, 다른 족에게 시집을 갈 수 있었을까요?

    암튼, 무슨 정치적... 이딴 식으로만 생각진 말아주시길~
    (물론, 그럴 분들은 잘 없겠지만... ^^)

    전, 여기서 근친혼에 대해 긍정적 마음을 가지게 되시거나, 유교을 마구 헐뜯는 건 솔직히.. 개인적으로 좀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저의 생각을 적어봤습니다!!! ^^

    (너무 부정적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주세요~)
    *^^*
    2009.01.13 00:09
  • 프로필사진 김진희 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고려의 족내혼은 고려만을 두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고려는 역사의 기틀은 고구려에 근반을 두고 있지만 문화는 신라의 것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족내혼이라고 볼 수도 있죠. 신라 역시 족내혼이었고 삼촌과 조카가 결혼했던 진성여왕의 이야기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족내혼을 이어받은 나라가 하나더 있으니 바로 일본입니다.
    흔히들 족내혼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더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왕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며 왕권의 안정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였으니 무작정으로 비판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공부하였다면 당연히 한 번더 생각해볼 일이죠. 지금 일본 역시 왕족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족내혼을 고수한다고 들었는데...아, 이건 확실하지 않구요..
    암튼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2009.01.13 00:15
  • 프로필사진 글쓴님께 질문하나! 그럼 고려 왕가에는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 같은건 없었나요? 근친혼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궁금해서요^^ 2009.01.13 00:42
  • 프로필사진 한반도는 5천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유교 성리학이 지배했던 시절은
    최근 300년 정도 밖에 안됐지만
    위력이 대단하긴하다
    족보니 호주제니 동성혼 금지니 뭐니 따지는 인간들
    이게 무슨 전통인양 떠들지만
    사실 이 삼백년 밖에 안된 전통인것을
    2009.01.13 00:48
  • 프로필사진 위에분 근친혼의 자녀가 유전 관련 질환이 많다는 것은
    의학적 근거가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DNA추적해보면 다 얽히고 설키기 마련이거든요
    아마도 근친끼리 혼인을 막기 위한 유언비어가 아니었나 추측해보는데요
    조금만 검색해보시면 알것입니다.
    2009.01.13 00:50
  • 프로필사진 근데.. 유럽왕실을 보면 혈우증같은 열성 유전 질환이 많지 않았던가요? 2009.01.13 01:44
  • 프로필사진 이홍기 근데 // 유럽 왕실의 혈우병은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고 빅토리아 여왕의 자녀들이 유럽 왕실로 퍼져갔기 때문이지 유럽 왕실의 근친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2009.01.13 15:28
  • 프로필사진 나도참여 고려 중.후반으로 가면 외척에 의해 왕의 이모하고도 결혼합니다. 고려후기 안향의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서서히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이 성립되기 시작했지요. 2009.01.13 07:15
  • 프로필사진 최낙길 신라 화랑세기기록을 보면 1-28대 까지 성골이면 성골은 왕궁( 신궁 .왕궁 등 왕족궁을 벗어나면 진골이 된다 진골로서 첫번째 왕이 된 태종무열왕은 처음에는 성골가족가 결혼하여 살다가 후에 진골계통인 보종공 후에 가야계통인 문희 와 결혼하고 성골계통은 진덕여왕을 끝으로 끊기고 가야계가 계통을 잊는다 또한. 고려시대 왕씨족보 방송하는 것을 보앗는데 왕씨는 근친혼으로 결혼한 흔적이 역력하다 대충 이런 방송을 잠깐이나마 스쳐가는 내용을 들은적이 생각난다 그렇담 고려시대 왕씨 또한 근친혼으로 왕실을 이어 같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2009.01.13 08:07
  • 프로필사진 유머나라 크하... 그랬군요. 드라마 보며 정말 의아스러웠는데, 속이 시원히 뚫리는 느낌이네요. 2009.01.13 08:29
  • 프로필사진 송원섭 /몰아서/ 근친혼이 과연 DNA에 이상을 일으켜 유전병이나 기형아 출산의 위험이 있는지는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근친혼을 금기시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사회적인 필요성, 즉 미성년 여아에 대한 성적 보호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안에서 보호되어야 할 귀여운 여동생이나 딸, 조카가 성적인 대상이 될 때 상당히 끔찍한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2009.01.13 09:01
  • 프로필사진 가을남자 근친혼과 근친상간은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근친혼은 근친과의 공식적인 혼인을 뜻하고 근친상간은 근친간의 간통을 의미하는 말로 도덕적으로 큰죄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의 근친혼은 아마 고려말 주자학이 들어오고나서부터 없어지고 현대의 윤리가 정립이 되지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009.01.13 09:40
  • 프로필사진 가을남자 근친혼을 긍정시 하고 생각하시는분들이 많아 충격입니다.
    내가 비록 나이가 많아 보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는 몰라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만 근친혼을 금지하는 나라라서 우리가 모자라는 사람이라는듯한 글은 참 어이가 없군요. 나는 인간은 생각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짐승과는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2009.01.13 09:52
  • 프로필사진 Woody 천추태후는 완전 댓글이;;;;;

    저는 영상이 그리고 셋트가 어딘지 어색하고 돈이....많이 들었다는데 적게 든거 아닌가 하면서 중간 중간 막 돌리기도 하면서 보는데....

    암튼, 역사지식이 있으신 분들이 참 우리나라에 많다고 생각됩니다.

    댓글 읽다가 ㅎㅎ님 글보고 대박...ㅋㅋㅋ

    아무튼 저는 지식보다 국사시간에 혹은 역사시간에 선생님이

    웃으면서 이해안가는 현상이지만 콩가루라고 했던 알기쉽게 해주기 위해서... 그런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ㅋㅋ

    작성자님의 말이 저를 아주 웃게 만드네요..ㅋㅋㅋ

    요기서 웃다가 갑니다. -ㅁ-ㅋ
    2009.01.14 13:47
  • 프로필사진 wonus 생리학적 실험결과 비슷한 유전인자를 가진 남녀는 서로 밀어내며, 다른 유전인자에게 끌리게 된답니다. 예컨데 혈액형이 같아도 뭔가 안끌리고, 좌우지간 눈에 안보이는 색다른 인자가 서로 끌리게 한다네요. 그러니 조선시대 이전 천년간 서로 안끌리는 사촌끼리 근친혼을 했으니 한 두 번하고 뭔가 끌리는 딴 상대 찾아 다니느라 성문화가 문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유전자라도 세대를 거듭하면서 모계의 다른 유전자가 섞이게 되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유전자로 변형되므로 본래 유전자를 가진 자와 혼인해도 무관하다고 합니다. 2009.01.21 06:45
  • 프로필사진 무지한것들.. 과거를 지금의 잣대로 비아냥하다니...
    태초의 인간은 근친혼으로 번성을 한것이다.
    그 형제들끼리 결혼을 했다고 봐야지..
    일정기간 지나서 근친혼을 금지한 기록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집트를 비롯해서 과거의 강대국들은 대부분 왕가에서 특히나 근친혼을 했다...
    그리고 한심한 잡것들...
    세계역사를 살펴보면,...특히 왕족중심으로 근친혼은 일반적이었던것을...자기민족이 특별히 수치스럽다는 한심한잡것들.
    2009.02.07 16:14
  • 프로필사진 유교???? 중국에서 쓰다가 내다버린것을...
    열심히 줏어 섬기는 어리석은것들아.
    사대주의에 물들어서 유교의 껍데기만
    들여와서 힘없는 여자들이나 억압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던 그 허접한것을 추앙하다니..
    유교로 불료국인 고려를 멸망시키고,...반란을 하기위해서
    신흥사대부를 비롯한 이씨일가가 이용한 성리학찌꺼레기인것을...
    2009.02.07 16:17
  • 프로필사진 고려까지만 해도 여성의 지위는 그렇게 마소와 다를바없던 조선과는 달랐다.

    남자들에게 독재와 체면과 허세와 그딴것을 안겨준게 유교다.
    오죽하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있겠니?

    공자가 자기 나라에서도 쓰임을 얻지 못하던 것들...
    조선시대에 와서는 중국에서 내다버린것 정도였는데, 왜 조선이 유교에 목을 맸는줄 아는가? 왕씨의 고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유교로 세세하게 목줄을 만들어 죄어온것이다. 그 폐단을 안다면,...사화의 많은 부분도 그런 씨잘데게 없는 세세한것을 빌미로 시작되게 많았다/.
    2009.02.07 16:21
  • 프로필사진 정원휘 근친혼과 신화하고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라왕족들은 "편두"라는 머리를 가졌는데요, 나중에 왕족이나 귀족중에서 편두가 나오지 않으면 일부러 다듬이 돌로 눌러 성스러운 편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유골도 발견되었지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중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나오는 그런 뾰족한 머리 말이에요. 이집트 벽화에도 나오지요.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신을 조상으로 둔 왕족들의 이야기가 있구요. 즉 그들은 신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원숭이랑 결혼할 수 없듯이 미개한 별 지구에 이주한 신족은 할 수 없이 저희'끼리 결혼해야 했던 것 아니겠어요? 2009.02.0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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