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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를 보다 보면 참 요즘과 다르고, 조선시대와도 또 다른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의 위험성 - 굳이 천추태후가 역사의 주역으로 나서야 하는가 - 등에 대해서는 심히 공감하고 있고, 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을 했지만 차후에 다시 모아서 포스팅할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보다 먼저,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희한한 고려 왕조의 가족내 혼인상(사촌 정도는 근친혼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던)에 대해서 조금만 얘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근친혼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의미가 오늘날에 와서는 더없이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오래 전에는 이것이 상식인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그냥 알아 두는 선에서 그쳐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은 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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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방송분에서 한 신하가 경종이 외사촌남매간인 황보씨의 두 자매(뒷날의 천추태후와 동생)와 혼인하겠다는 데 대해 '근친혼'이라면서 반대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고려 초기의 신료라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외사촌남매간이라면 현대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끔찍한 근친혼이지만 당시 왕가의 혼인 습속을 살펴보면 거의 남남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외사촌간의 혼인은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합법입니다. 친사촌이라고 해도 미국 절반 이상의 주에서 합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혈족 개념이 강한 한국이니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죠. 그리고 내막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사촌간 혼인은 고려 초기라면 근친혼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 안에서 경종(최철호)은 신정황태후(반효정)에게 꼬박꼬박 '외할머니'라고 부르고 치(뒷날의 성종)이나 두 공주에게 '짐의 외사촌'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한국의 족보상으로 이들은 외할머니나 외사촌이 아닙니다. 그냥 할머니나 사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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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대로 고려 태조 왕건은 6명의 황후를 비롯한 29명의 부인을 통해 수없이 많은 자손을 두었습니다. 모두 왕권 안정을 위한 노력이었죠. 신라 왕가를 비롯해 각 지방의 유력한 호족들과 모두 혼인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자손들 사이에서 빽빽한 혼맥이 다시 형성됩니다. 즉, 똑같은 왕건의 소생인 형제 자매들끼리 어머니만 다르면 다시 혼인을 한 것입니다. 단지 남자는 아버지의 성대로 왕씨를 따랐지만 딸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기 때문에 얼핏 봐서는 형제간 혼인이 아닌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고려 5대 왕인 경종은 4대 광종의 아들입니다. 광종은 태조의 제3 황후인 신명황후 유씨의 소생이죠. 그리고 광종의 아내인 경종의 어머니는 제4 황후인 신정황후 황보씨(드라마의 반효정)의 딸인 대목황후입니다. 대목황후도 황보씨로 설정되어 있지만 엄연히 왕건의 딸이죠. 어머니만 다른 남매끼리의 혼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광종의 어머니인 신명황후 유씨는 정종이 되는 요 왕자, 광종이 되는 소 왕자를 낳고 신정황후 황보씨는 뒷날 대종으로 추증되는 욱 왕자를 낳습니다. 이 욱 왕자가 제6 황후인 정덕황후 유씨의 딸(역시 어머니만 다른 남매입니다)과 결혼해서 낳는 것이 바로 뒷날의 성종인 황주원군 치, 그리고 천추태후 황보수와 황보설 자매입니다.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들이지만 위의 예에 따라 아들은 왕씨, 딸은 황보씨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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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경종이 신정황태후를 가리켜 외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일면 맞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황주원군이나 황보수-황보설 자매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의 동생인 대종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외사촌인 동시에 친사촌이 되는 셈이죠. 아울러 신정황태후 또한 할아버지의 여러 부인들 중 하나이니 그냥 할머니도 되는 셈입니다.

이처럼 거미줄같은 고려 왕조의 혼맥이 결정판을 이루는 것이 바로 8대 현종입니다. 현종의 아버지는 현재 출연하고 있는 경주원군 욱(대종 욱과 한자가 다릅니다. 드라마 속의 김호진). 왕건의 아들이며 제5황후인 신성황후 김씨의 소생입니다. 신성황후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사촌이니 신라 왕가를 외가로 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신라계 중신들이 다음 왕으로 경주원군을 밀려 하죠.

경주원군은 나중에 경종의 아내였던 효숙왕태후(헌정왕후) 황보설(그러니까 뒷날의 신애)과 정분이 나서 그 사이에서 대량원군(뒷날의 현종)을 낳습니다. 엄연한 왕비가, 그것도 자신의 숙부이며 남편의 숙부가 되는 황실의 근친과 바람을 피운 셈입니다. 그런데도 왕족의 씨앗이기 때문에 아이는 대량원군이라는 엄연한 왕자의 칭호를 받고 자라나죠. 심지어 불륜의 주범인 경주원군까지도 사후에 안종이라는 이름으로 왕의 자리를 추증받습니다. 왕의 아버지가 된 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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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대의 불륜 커플... >

그러니 뒷날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닙니다. 천추태후 자신이 왕건의 친손녀이니 그 아들도 절반은 왕씨의 자손이니 말입니다. 중국의 예를 보더라도 자신의 친정 쪽으로 아예 왕가를 바꿔 놓으려 한 한고조 유방의 아내 여씨나 측천무후 무씨에 비하면 훨씬 양심적인 편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살펴볼 때 고려 초기의 왕실 계보는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참 곱게 잘 갈린 콩 분말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대로 다 필요에 의한 것이었고, 오늘날의 도덕관념으로 재단해서는 안되겠죠. 왕가가 사방의 귀족들로부터 권위의 위협을 받던 시절, 조금이라도 왕가의 권위와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외성 귀족들이 외척으로 참여하는 것을 심각하게 제한해야 했고, 그 결과가 이런 심각한 족내혼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그런 부분(예를 들면 남매간 혼인)은 살짝 가려 보려고 시도하고 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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