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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일단 핏빛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그동안 나온 수많은 영화에서 사람 목이 날아가면 '으익' 하면서 눈을 가리던 심약한 여성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1) 아무 것도 본 게 없어서 영화 내용에 대해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거나 (2) 이 영화 덕분에 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져서 극장 문을 나서면서 초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유로폴(뭐 인터폴의 유럽판이겠죠)의 자료분석요원 미카(나오미 해리스)는 일련의 살인 사건이 기존의 테러 조직이 아닌 수백년 된 닌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를 포착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순간, 미카는 알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입니다.
라이조(이준/정지훈)는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비밀의 닌자 조직을 거느린 오즈누(쇼 코스기)에 의해 살인병기로 사육됩니다. 하지만 그는 비인간적인 닌자로 살기를 거부하고 조직을 이탈하죠. 당연히 조직의 살해 명령이 떨어져 쫓기는 처지가 됩니다.
한 15분만 영화를 보거나,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의 얼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줄거리 혹은 플롯을 극도로 슬림하게 한 뒤, 나머지를 모두 피칠갑의 전투 신으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영화에서 필수일 '쫓기는 킬러와 여주인공 사이의 멜로드라마' 까지도 생략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정지훈군은 그 나머지 시간을 종횡무진 닌자들을 도륙하는데 사용합니다. 얻어맞고, 칼로 쓸리고, 피를 흘리고, 복근을 보여주면서 어쨌든 끝까지 달립니다. 당연합니다. 주인공이 죽거나 하면 그걸로 영화는 끝이니까요.
이 영화의 닌자들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존재들입니다. 물이나 음식 따위의 기초적인 생명 유지 조건에 전혀 구애받지 않으며, 심지어 나중에는 상처의 자연 치유능력까지 보여줍니다. 그런 닌자 수십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라이조는 뭐 말할 것도 없겠죠.
애당초 이 영화는 '딱 그런 관객'들을 위한 맞춤 상품입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볼 필요가 없겠죠. 마찬가지로 피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거나 물리적인 타당성이 결여된 액션을 혐오하는 사람은 아예 극장 근처에도 가면 안 될 작품이죠.
반면 그런 장르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닌자 어쌔신'은 충분히 제 몫을 하는 영화입니다. 액션 연출은 진부하지 않고, CG도 훌륭합니다. 스파이더맨이나 '매트릭스'의 니오는 왜 100대 1로 싸우면서도 적을 해치우지 않고 톡톡 때려서 꼭 다시 반격하게 만들까 짜증을 냈던 분들에게는 강추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정지훈군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정지훈에겐 그리 많은 대사도 주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감정을 배제한 채 의미만 전달하면 되는, '킬러의 대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 TV 드라마에 나오는 T모군을 보면 그런 대사도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정지훈군의 연기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속편이 제작된다면 정지훈이 연기하는 라이조의 캐릭터가 좀 더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실 영화의 마무리나, '닌자에게는 아홉개의 오랜 파벌이 있다'는 설정 등은 속편 제작을 향한 제작진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만, 개봉 첫주에 박스 오피스 6위를 기록한 미국 시장에서의 흥행 성적으로 볼 때, 속편 제작 여부는 그리 낙관할 수 없을 듯 합니다.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여자 마법사 나오미 해리스보다는 좀 더 젊고 예쁜 상대가 나타나 주길 기대합니다. 억지로든 뭐든 약간의 '느낌'을 내려 시도한 부분이 보이긴 합니다만, 이건 아무리 봐도 이모와 조카 사이더군요.
P.S. 왕년의 닌자 마스터 쇼 코스기의 등장은 '킬 빌'에 나오는 소니 치바의 등장만큼 올드 팬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합니다. 반면 한때 아시아계의 별로 꼽혔던 릭 윤의 캐릭터는 '몰락'이란 두 글자를 너무나 선명하게 새기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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