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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이번 토리노 세계선수권에서 1등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타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즌 전승의 기록을 세워도 좋았겠지만,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남아있는 가장 큰 목표였던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이기 때문에 그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대회가 보여준 것은 오히려 '김연아도 사람이었다'는 정도를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려 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밴쿠버의 큰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가 기대 이상의 점수를 내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던 '대인배 김연아'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충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김연아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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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은 '김연아는 지금부터 뭘 할까'일 겁니다. 스무살 나이에 이만한 성취와 이만한 영광을 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김연아가 살아야 할 삶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1/4 정도를 지났다고 할까요? 일반인들 같으면 오랜 수험 준비를 마치고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이 '이제 나도 인생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할 나이와 비슷합니다.

물론 저는 본인과 아는 사이도 아니고, 부모님의 측근도 아닙니다. 다만 '우상 김연아'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한번 생각난 바를 끄적여 봤습니다. 제목은 '김연아는 앞으로 뭘 하며 살까?' 였죠. 시점은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는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어쨌든 3월 초 정도의 시점에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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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연아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1990년생 김연아.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섰다. 어떤 영화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최상의 드라마가 밴쿠버의 얼음 위에서 펼쳐졌다. 김연아 스스로 “내가 꿈꾸던 것을 모두 이뤘다”고 했듯 1차적으로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에게 더 이상 노릴 목표는 없는 셈이다. 물론 목표는 만들 수도 있다.

1930년대의 전설적인 스케이트 선수 소냐 헤니는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을 3연패했고,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도 1984년과 1988년, 두 번에 걸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스무 살에 불과한 김연아가 역대 세 번째 신화를 만들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두 번째 금메달 도전이 현명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대세다.

헤니야 전 세계가 그의 독무대였던 시절이었고, 비트 역시 사회주의 동독 체제 하에서는 스케이팅 외에는 달리 할 게 없었다. 피겨 스케이팅 종목의 출전 선수들은 날로 어려지고 있어 스물네 살이면 충분히 노장급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금메달’을 얻는 것에 실패했을 때 잃을 것이 너무 커 보인다.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르디이른 스무 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의 목표로 삼아 도전할 성취를 거둔 이 천재 아가씨는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본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오지랖 넓게도 이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국보 김연아’를 남이 아니라 여기게 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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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20세기 전반 최고의 아역 배우로 명성을 떨친 셜리 템플이다. 1928년생인 셜리 템플은 1930년대 어떤 성인 스타들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어려운 시기에 극장에서 템플의 미소를 보며 어려움을 잊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치하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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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역 배우에겐 연령 제한이 있었다. 1940년대 이후 템플의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기 시작했고 1945년, 그녀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갑작스레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템플은 성인 배우로 활동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멸의 아역 스타’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할 뿐이었다. 템플의 명성이 돌아온 것은 유방암 투병을 벌이면서도 직업 외교관으로 이름을 날린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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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던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부임한 것은 그동안 가상 적국이었던 미국의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바꿔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이른 시기에 최상의 성취를 이룬 조숙한 천재들은 대부분 그 분야에 매진해 명성을 이어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분야도 분명 있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나 아역 스타는 그런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현재까지의 성공만으로도 김연아는 평생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성을 얻었다. 지금부터 여생(?)을 여유있게 보낸다 해도 그건 본인의 선택 사항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자신을 위해서든, 그를 사랑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든 제2의 인생을 위한 설계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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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빙상 영웅 에릭 하이든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1980년 동계올림픽에서 스물두 살의 나이로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미터부터 1만 미터까지 다섯 종목을 제패한 불멸의 스타 하이든은 스케이터로서의 전성기를 지났다고 판단하자 과감하게 스케이팅을 포기하고 사이클 선수로 변신했다. 동시에 학업에도 열을 올려 1991년 스탠퍼드대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최근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미국 선수단의 팀닥터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이든의 인생’이라는 대하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그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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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미국 대표팀 팀닥터로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하이든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 글은 김연아보고 '앞으로 인생을 이러이러하게 살아라'라고 강요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생의 초기에 상당히 많은 것을 이루고, 그 나머지 인생은 그냥 편안하게 놀면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구축한 두 사람이 긴 여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예시일 뿐입니다.

김연아가 이런 두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살건, 아니면 좀 더 쉽고 편안한 삶을 살건, 그건 전적으로 김연아 자신의 선택일 뿐입니다. 김연아가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해 전업 주부의 삶을 살건,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하건, 지금부터 학업에 전념해 박사님이 되건, 올림픽을 2연패하건, 그냥 피겨 지도자로 제2의 김연아를 육성하며 살건, 거기에는 어느 하나가 우세한 것이라는 평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된다'고 감히 다른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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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팬으로서, 혹은 좀 더 나이먹은 사람으로서 김연아에게 바라는 것은, 그중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한다는 것이고, 또 부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실망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탠다면, 늘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는 삶도 참 피곤하겠지만 반대로 늘 지나칠 정도로 쏟아지던 세상의 관심이 어느날 사라지더라도,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무엇을 선택해도 나중에 후회는 남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선택은 또 다른 후회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점은 누구나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에릭 하이든의 삶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 삶이 정답이라고 누가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라고 해서 '내가 정말 이짓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미 주목받아버린 사람의 삶이란 이래서 힘든 면이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김연아가 제목이 됐지만, 수많은 10대 아이들 스타들의 경우에도 분명 비슷한 면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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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월요일 아침인데도 늘지 않는 구조자 수와 떨어지지 않는 기침이 영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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