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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용광로 청년'으로 불리는 29세 김모씨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지도 벌써 1주일이 지났습니다. 처음 사고가 터졌을 때에는 그저 가끔씩 일어나는 산업재해 사고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직후, 네티즌 허모씨가 쓴 추모시가 세상을 뒤흔들었고, 그 시에 나오는 내용대로 한 조각가가 나서 김씨의 조상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청원에 나섰고, 또 한편에서는 역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안전불감증이 아니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득 지난 주말, '그 쇳물 쓰지 마라'로 시작되는 시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을 때 어떤 소리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속칭 '에밀레종', 성덕대왕신종의 소리 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글입니다.



제목: 에밀레종

국립경주박물관은 1998년,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의 구성 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밝혀진 주재료는 구리(85%)와 주석(14%). 뼈의 성분인 인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유명한 ‘에밀레종’ 설화는 어찌 된 것일까. 많은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이 전설은 20세기 이전의 어떤 기록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이 성덕왕을 위해 구리 12만 근을 들여 종을 주조하다 완성을 보지 못했고, 아들 혜공왕이 771년 완성해 봉덕사에 안치했다’는 내용뿐이다. 신종을 기술한 고려·조선시대의 문건에서도 아기의 희생을 암시하는 구절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전설이 실린 가장 오래된 기록은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1906년 쓴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인 것으로 추정된다. 헐버트는 “조선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종에서 ‘에미, 에밀레(Emmi, Emmille)’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 말은 ‘엄마, 엄마 때문에’라는 뜻이다”고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문제의 종이 있는 곳은 경주가 아니라 서울 한복판이다.

성덕대왕신종이 곧 에밀레종이라는 주장은 192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함세훈의 친일 희곡 ‘어밀레종’(1942)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에밀레종 전설은 한민족의 유산을 폄하하려는 일제의 조작이란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면 역사소설가 문영은 중국 당나라에도 유사한 설화가 있음을 지목한다. 인명을 경시하는 학정에 대한 고발의 메시지가 인신공양 설화로 바뀌었을 거란 추정이다. 그만한 역사(役事)라면 피는 몰라도 눈물은 수없이 흘렀을 테니, 종소리가 원망하듯 슬프게 들렸을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난 7일 충남 당진에서 한 젊은이가 섭씨 1400도의 용광로에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 한 무명 네티즌이 쓴 조시가 인터넷을 타고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그 쇳물 쓰지 마라/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은 쓰지 마라/(중략)/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정성으로 다듬어/정문 앞에 세워 주게/가끔 엄마 찾아와/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종소리처럼 퍼지며 눈물을 자아내는 이 조시가 부디 생명 존중과 사고 방지의 뜻을 널리 널리 전파했으면 한다. (끝)



성덕대왕신종은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 무게 18.9톤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종이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특히 이 거대한 종을 온 사방을 균질한 비중으로 구성한 것 뿐만 아니라, 오래전 본 방송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천년이 넘는 세월 이 신종을 지탱했던 고리도 만만찮은 내공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현대 기술로도 종의 상층부에 뚫린 구멍의 크기에 맞는 고리를 만들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더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문이 싹텄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이 종은 '에밀레종'이라고 불렸을까요. 전설대로라면 신라시대부터일텐데, 우리는 어떻게 한자로는 표기도 되지 않는 '에밀레'라는 소리로 이 종의 별명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걸까 하는 의문입니다. (비슷하게는 표기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면 '애밀래'나 '애밀례', 혹은 '예밀래'가 되었겠죠.)

어쨌든 이렇게 의문 많은 에밀레종 이야기가 널리 퍼진 것은 일제시대가 분명합니다. 그때문에 에밀레종의 전설 자체가 한민족의 중요한 문화유산인 성덕대왕신종의 격을 낮추기 위한 일제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런 전설이 존재한 것만은(그 대상이 보신각 종인지, 성덕대왕신종인지도 불분명하긴 하지만) 사실인 듯 합니다. 

그리고 윗글에 인용되어 있는 문영(블로거 초록불님으로도 유명합니다) 님은 이 전설이 중국 일대에서 여러번 등장하는 것과 관련, 이런 전설은 아마도 여러가지 형태로 백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던 가혹한 정치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희생이 있었고, 그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전설로 변했을 거란 얘깁니다.

이런 부분에서 에밀레 전설과 아래 조시가 만난다는게 저의 느낌입니다.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백마디 말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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